2011년 12월 7일 수요일
[영혼체 윤회론]불교가 망한 원인 무아의 잘못된 해석
영혼체 윤회론을 선언하며!
나 자재만현은 비아非我인 영혼체가 윤회의 주체임을 선언합니다!지난 2000여년 간 왜곡되어온 무아설無我設을 바로 잡고, 윤회의 주체가 없어도 윤회할 수 있다는 무아윤회설無我輪廻設을 완전한 사설邪設로 단정하고 영원히 폐기 처분합니다.
영산불교 정법의 이름으로 유아윤회설有我輪廻設 - 영혼체 윤회론을 공식적으로 불교의 교설로선언합니다.우리 영혼체는 인간의 실체로서 원래 본체계의 존재입니다. <<열반경>>에서 말하는 상락아정常樂我靜의 아我가 바로 청정무구한 영혼체입니다.
그러나 무량 세월을 지내오는 동안 분별이 일어나고 욕심이 생기고죄업을 지어 우리 영혼체에는 업장 등 비본질적인 것들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습니다. 이렇게 오염된 상태의 영혼체를 우리는 비아非我라고합니다.
그래서 유아윤회설은 성격상으로는 비아윤회설이 되고 내용적으로는 영혼체 윤회론이 됩니다.우리 불교가 고향인 인도에서도 사라지고 전세계로활발히 뻗어나가지 못한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이 잘못 해석되어온 무아설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도 무아설이 잘못 해석되었다고 하시면서 이것이 불교가 망한원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부처님의 뜻을 받들어 잘못해석된 무아설을 바로잡고 '영혼체 윤회설을선언하여 정법의 새 시대를 열어가고자 합니다.
무아설이 바로서야 부처님의 실존도, 윤회 . 해탈계의 존재도 그 근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무아설의 바른 해석은 정법불교의 출발점입니다.무아설에대한 새로운 교설로 인하여, 그 동안 잘못해석된 무아설을 너무나 오랜 기간 동안 인정해온 기존 불교계는 물론 학계, 종교계 전반에 걸쳐 만만찮은파장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정법의 산고産苦를 위한 아픔으로 감수해야 할 부분입니다. 이를계기로 불교 정법으로의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을 하루 빨리 마무리 지어야 할 것입니다.이에 불자 여러분의 이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이 책자을 발간하오니, 우리 불교계 모두가 '잘못해석된 무아설의 포로'에서 벗어나, 깨어있는 불교도로서 정법의 길에 적극 동참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끝으로 바쁜 가운데서도 이 책을 집필하느라 노고를아끼지 않은 혜운 법사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불자 여러분에게 부처님의 가피가 늘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불기 2554년 사월 초파일
영산불교 현지사
자재 만현
책을 펴내며
참으로 길고긴 어둠의 터널이었습니다.'무아설의왜곡'이 정법의 햇빛을 받기까지, 몇 십 년도 몇 백 년도 아니고무려2000여 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그 부끄러움의 긴 세월 동안 내로라하는 학자, 선지식, 큰스님들이 많이도오셨다 가셨지만, 그 지혜의빛이 어둠을 밝히기에는 역부족이었나 봅니다. 부처님의 법통 태자와 문수보살 법왕자의 인연을 위해 남겨두었던 것일까요?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이 땅 대한민국에서 사랑하는 두 분 제자 가섭존자 광명 만덕 큰스님과 아난존자 자재 만현 큰스님을 보내주시어 정법의 새 시대를 열게 해주신 거룩하신 우리 교주 불세존께 오체투지로감사와 예경을 올리옵니다.
불교의 위대한 점은 인연법과 3법인, 4성제를 토대로 업- 윤회 - 해탈로 이어지는 인간 구원에 대한 정연한 진리체계와 실천증득에 있습니다. 여기에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부처님의 우주적 구원력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업-윤회-해탈의 주인공으로중생이있으며, 이 중생의 업장을소멸시켜주는 부처님의 우주적 구원력이라는 대자비가 실질적인 알맹이를 이루고있습니다.그런데 잘못 해석되어온 '왜곡된 무아설'은 중생의실체도 부처님의 존재도 부정하는 논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불교의 두 주체인 핵심 알맹이를 모두 빼고껍데기만 남겨놓은 꼴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위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인 우리 불교가전 세계로 활발하게 뻗어나가지 못하고 탄생지인 인도에서도 사라진 채 아시아 일원에서 생명을 유지하고있는 정도로 쇠잔해 있습니다.우주접계의 절반이 훨씬 넘는 영역을 차지하면서 우주 정법계를 이루고 있는 불교의 법계 위상을 감안할때 이것은 정말 초라하기 그지없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알맹이가 빠진 껍데기 불교만 가지고도 이만큼이라도 살아남았다는 것은 불교의 위대성을 반증해주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그러므로 불교가 본래의 진면목을 보여주기만 한다면전 세계로 확산되리라는 것은 긴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이제 이 역사적인 일을 시작하려고 법통 태자이신가섭존자 광명만덕 큰스님과 문수보살 법왕자이신 아난존자 자재 만현 큰스님께서 신불교인 영산불교를 개창하고 정법의 새 시대를 열어가고자 하는 것입니다.무아설은 원래 부처님께서 중생들의'나'에 대한 집착을 끊어주기 위해 늙고 병들어 죽어버리는 '현상계의 나'가 없다고한 것인데, 이를 잘못 확장하여본체계의 실체인 영혼체마저 없는 것으로왜곡하여지금까지 불교의 올바른 교설로 행세해왔습니다.
이제 영산불교는 부처님의 뜻을 받들고 이 시대 걸출하신 대선지식인 두 분 큰스님의 가르침을 받아 왜곡된 무아설과 이를 토대로 한 '무아윤회설'을 영원히불교 교설에서 없애는 위대한 폐기를 단행하고, 올바른 무아설의 해석을 통해'영혼체 윤회론'을 정립하여신불교의 정법시대를 열어가고자 합니다.
위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인 불교의 진면목을 세계에 널리 보여주고자 합니다.그 오랜 세월 동안 '왜곡된 무아설'이라는 깊은 늪에빠져있던 우리 불교계와 전 세계 불자들이 하루 빨리정법의 손길을 잡고 늪에서빠져나와 우리 불교를 살리고정법을 널리 펼치는데 함께 참여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에 영산불교에서는 우리 불교계와 불자님들이 무아설을 바로이해하고 새로운 '영혼체 윤회론'을 받아들이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그 동안 자재 만현 큰스님의 법설을 중심으로 이 책을펴네게 되었습니다.이 책을 펴 낼 수 있도록 가르침을 주시고 격래해주신 큰스님께 오체투지로 감사의 예경을 올립니다.
행여 큰스님의 가르침을 잘못 이해하고 쓴 부분이 있다면 모두 필자의 짧은 지식과 부족함 때문이오니 독자여러분의 넓은 이해가 있으시기 바랍니다.그리고 이 기회에 불교에 관한 글을 쓰시거나 강의하시는 학자님께 특별히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우리 부처님은 우주의 대성자이시고 인류의 대스승이십니다.
그런데 필자가 글을 읽다보면 자주 "석가가....."라는 문구를 접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안쓰러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불교도이건 아니건 대성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어 존칭으로 표현해주었으면 참고맙겠다는 생각이 듭니다.아무쪼록 이 책이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널리 알리고 독자 여러분이 정법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여러분에게 부처님의 가피가 항상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불기 2554년
사월 초파일
혜 운 합장
불세존 말씀
무아가 잘못 해석되었느니라.
자재 만현이 맞느니라.
자재 만현은 법왕자로서 이것을 바로 잡아야하느니라.
이것이 불교가 망한 원인이니라.
무아無我는 잘못 해석한 것이니라.
나는 무아無我를 이야기했지만, 저 세상이 없다고 아니했다.
살아있는 것, 언젠가 죽는다.
내것이 아닌 것을 내 것이라 생각하는 것을 말했다.
하늘에 태어나거나 인간으로 오길 말했노라.
태어나는 것도 고통이고, 죽는 것도 고통이다.
육도윤회에 돌면서 고생하는 것을끊어주기 위해
무아無我를 이야기 했노라.
'있다 없다'를 확실하게알면서 '있다 없다'를 초월한 자리,
더 나아가서 대적정삼매에 들어 무아無我의 환희는
붓다의 경계이니라.
여기까지 공부 못하고 법을 모독 능멸하여
중생을 오도한 죄는무간지옥에 가느니라.
붓다와 법은 영원히 멸도하지 않느니라.
왜곡되고 왜소화된
세계 불교의 실상을 안타까워하며
무량겁 전에 우주 법계 최초로 불과를 이루시고, 다시 2600여 년 전에 사바세계에 몸 받아오셔서 위없는가르침을 주시고 대열반에 드신 후, 무아 속 절대계에빛의 인격체로 여여히 살아계신 거룩하신 우리 교주불세존께 백천만 번의 오체투지로 예경 드리옵니다.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우주적 진리의 불교가 2600여 년의 오랜 세월을 거쳐 오면서 너무도 많이 왜곡되고 왜소화 되어 위대한 불교 본래의 진면목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그래서 지금은 이 왜곡된 우리 불교의 실상을 반성적 차원에서 냉철하게 파악하고 왜곡의 원인을 정확히밝혀, 진정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토대로 새로운 불교의 방향을 정립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위대한 우리 불교의 진면목을 드러내어 정법을 세상에 널리 알려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불교는환골탈태해야 합니다.그러기 위해선 먼저 우리 불교도들이 깨어나야 합니다. 긴긴 잠에서 깨어나, 훌훌 털고 일어나야 합니다.눈을 똑바로 뜨고 귀를 크게 벌리고 마음을 활짝 열고진리의 말씀 - 정법의 사자후를 드러야 합니다.
한구절 진리의 게송을 듣기 위해 흉악한 나찰에게 한 몸을 기꺼이 던지는 설산동자와 같이 진리를 갈구하는간절한 마음으로 귀 기울여야 합니다.수천 년 간 많은 훌륭한 학자들이 해설하고 주석을해놓은, 그래서 불교의 정설로 굳어진 교설조차도 때로는 과감하게 버릴 줄 아는 용기와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이제까지 나의 분신처럼 가지고 있던 불교에 대한 지식도 버릴 줄 아는 아픔도 감수해야 합니다.지금 세계불교는 남방불교, 북방불교, 티베트불교라는 세 갈래의 큰 흐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중 어느 불교도 부처님의 법통을 이어받지 못하고, 왜곡되거나 왜소화되어 있습니다. 정법불교의 위대한 면면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불교의 실상을 아주 포괄적으로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불자로서 현행 불교를 비판할 목적은 추호도 없음을 미리 밝혀 드립니다.
오로지 우리 불교의 앞날을 위해서라는 것이 유일한 이유입니다.고대 인도의 마가다국 아쇼카왕 때 스리랑카로 전해져 꽃을 피운 동남아시아 중심의 남방 상좌부불교는스스로의 틀에 갇혀 감히 그 틀을 깨고 밖으로 나올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계율을 엄격히 지키는것은 높이 사줄만합니다. 위빠사나 수행법도 불교 경론에 있는 수행법입니다.그러나 그 수행법에만 집착하다 보니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는, 보다 수승한 수행법을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라한이 수행 목표이고 해탈신을 갖는 보살이나불신을 두는 붓다의 경지는 감히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어마어마한 위신력과 심원한 적멸의 해탈세계를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방불교는 이런 한계가 있지만 그래도 크게 왜곡되지 않은 것만이라도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북방으로 전해진 중국불교와 한국불교는 소위 선불교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으나, 태동 초기부터외도사상과 혼합되어 불교의 본질에서 많이 벗어나 있습니다.
심즉시불이니 견성성불이니 하면서 그럴듯한 교설을 내세우고 있지만, 부처님의 참 경계를 이해하지못해 결과적으로 불교를 왜소화시키고 부처님을 격하시키고 있습니다.한국의 간화선도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화두를 들려면 부처님의 성호가 가장 좋은 화두가 되어 밤낮으로 불러야지, 왜 경전에도 없는 조사 스님의 말씀을 화두로 들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큰 성과도 없고 본격적인 수행의 시작단계인 견성,즉 공을 깨치는 수준에 이르는 것이 고작입니다. 그것을 위해 고생스럽게 오랜 기간 수행을 해야 하는지 이제 한번쯤은 되돌아볼 시점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그래도 최후의 보루로서 티베트불교가 있지 않느냐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랬으면 참 좋겠습니다.
티베트불교는 수행체계가 잘 갖추어져 있긴합니다. 그러나 수행의 어는 단계에서 하고 있는, 힌두교 요가 수행이 가미된 밀교 수행법은 정법이 아닙니다. 또한 티베트불교의 지도자는 신통을 사용하여 환생을 함으로써 정법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티베트불교를 위한다고 하지만 정법에 반하는 것은 하면 안 됩니다. 티베트불교의 우수성으로 주장하고 있는 즉신성불의 교설은 불자들의 안목을 흐리게 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불신보신불이 얼마나 거룩하고 위대하고 차원 높은 존재인지도 모른 채, 중음계에서 우주 본성의 빛인 정광명을 받은 의생신을 보신불이라 여기는 어처구니없는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세계 불교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몇 가지로 요약해서 정리해봅니다.
1. 세계 불교는 부처님의 실존과 위신력을 믿지 않는 부처님 없는 불교가 되어버렸습니다.
2. 세계 불교는 인간의 실체인 영혼체을 부정하고 윤회주체마저 없다고 하는 주인공 없는 불교가 되어버렸습니다.
3. 우리 불교는 붓다가 되고 보살이 되는 완전한 생사해탈을 이루는 수행법이 없는 불교가 되어버렸습니다.
4. 우리 불교는 해탈법위와 해탈의 적멸세계에 대해제대로 알려주지 못하는 차원 낮은 불교가 되어버렸습니다.
불교는 우주 법계의 법왕이신 부처님을 교주로 모시고 있으며 완벽한 교리체계와 구원사상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신도 수로 보면 기독교 천주교 포함, 이슬람교, 힌두교 다음으로 겨우 네 번째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신도 수가 종교 평가의절대적인 지표가 되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이것은 오늘날 불교의 위상을 보여주는 단적인 하나의 지표가 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그리고 불교의 고향 인도에서는 불교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불교가 세계로 뻗어나가 널리 정착되지 못하고, 아시아 일원에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을 정도로 쇠퇴했습니다.불교 교리의 위대함과 우주 법계영역의 절반 이상을차지하고 있는 불교의 위상을 감안한다면 이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성적표인 것입니다.
그럼 불교가 왜 이런모습이 되었을까요? 이제 그 이유를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
무아설의 왜곡을 통탄한다
불교 쇠퇴의 주범
불교가 태어난 고향인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졌다는 것은 우리 불자들이 깊이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아야 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는 불교가 세계로 널리 뻗어 나가지 못한 원인을 제공해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와 지금의 환경이 많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지금 세계 어느 지역, 어느 나라에서나 인도에서와 유사한 이유로 불교가 사라지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아무리 환경이 다르고 시대가 바뀌어도 불교가 사라지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필경 불교 자체에서 찾아야 할 일이지 외적 환경과 여건을 구실 삼아 면책 받을 수 있는 성질이 결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진 원인에 대하여 학자들은 대체적으로 세 가지 정도의 이유를 듭니다.
첫째는 이슬람 세력이 침공하여 큰 사원들을 파괴하고 많은 스님들을 학살함으로써 교단을 붕괴시켰다는 것이고,
둘째는 불교가 밀교화 되면서 힌두교에 흡수되었다는 것이며,
셋째는 불교의 심원한 철학적 교리때문에 일반 민중에게 뿌리내리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여기에 더하여 불교 내부의 부패와 분파주의 등을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불교는 힌두교의 막강한 영향하에서도 180년 이상 쌍벽을 이루면서, 인도의 사상과 문화의 한 축으로서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위에서 본 이유들만으로 불교가 인도에서 짧은 기간 내 완전히 사라져 버린 원인을 밝히기에는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불교가 처해있는 것과 대등한 조건 속에서, 어쩌면 불교보다 더욱 심한 탄압을 받았다고 생각되는 힌두교나 자이나교가 살아남은 것만 보아도 뭔가 보다 본질적인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제 그 이유를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 대개 어떤 종교가 얼마나 생명을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그종교가 사회와 민중 속에 얼마나 뿌리를 깊이 내릴 수 있는가에 죄우된다고 생각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종교는 사회적으로 유익한 역할을 담당하면서, 그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본질적 가치가 민중들에게 호소력 있게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당시 불교가 과연 불교로서의 고유한 본질적 가치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민중들을 향해, 사회를 향해 제시해 줄 수 있었느냐 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그러나 당시 그 누구도 이러한 불교의 가치를 완벽히 이해하고, 대외적으로 매력적인 것으로 보이도록 설명해주지 못했던 것입니다.
종교의 사회적 역할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불교가 민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알맹이인 '고유한 본질적 가치'는 불교가 튼튼히 뿌리내리기 위한 일차적이고도 근원적인 요소가 된다고 하겠습니다.
그럼 불교의 종교로서의 고유한 본질적 가치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인연법과 사성제와 삼법인을 토대로 '업-윤회-해탈과 부처님의 구원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부처님의 구원력을 제외한 '업-윤회-해탈사상'은 일찍부터 힌두전통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교는 힌두교가 미처 알지 못하는 훨씬 정교하고 깊은 차원에서 '업과 윤회'의 진실을 밝혀주고 '적멸의 해탈세계'를 그려주며, 부처님의 업장소멸이라는 '우주적 구원력'을 제시해줄 수 있는 수승한 교리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얼마든지 차원 높게 힌두교와의 차별을 시도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질적인 차별화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논리입니다.
그런데 불교는 '고유한 본질적 가치'를 제시해주기는커녕 오히려 불교의 핵심적 교리인 '무아설'을 왜곡하여 힌두교의 아트만이론과의 잘못된 차별화를 시도하면서 '업-윤회-해탈'의 주인공은 없다고 떠들고 다님으로써 허무적 성격의 종교라는 인식을 확산시켰습니다. 영혼체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우겼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위대하신 실체를 몰라 구원사상도 제대로 설명해 주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왜곡된무아설의 실체'입니다.
아무리 윤회하는 삶이 고통이라고 외쳐봐야 고통 받는 '나의 실체'와 '나의 영혼체'가 없는데 미래의 그 고통이 얼마나 절실하게 와 닿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우리 인간은 모두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영원한 즐거움을 누리는 해탈의 주인공이없다고 하는데, 나라는 '해탈의 주체'가 없는데 그런 불교를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고 깊이 믿을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정말 구원을 해주시는 것인지, 어떻게 구원을 해주시는지도 모르는데, 누구를 믿고 불교를 믿는단 말입니까? 그리고 이런 소재는 힌두교를 비롯한 외도들에게 얼마나 좋은 공격거리가 되었겠습니까?
무려 2000여 년 간이나 힌두교와 외도들에게 발목이 잡히고 스스로 잘못된 논리에도 묶여 갈팡질팡하고 있는데 어떻게 불교가 전 세계에 퍼져나가기를 기대할 수 있단 말입니까?
불교의 위대한 점은 인연법과 3법인, 4성제를 토대로 업-윤회-해탈로 이어지는 인간 구원에 대한 정연한 진리체계와 실천증득에 있으며, 여기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부처님의 우주적 구원력입니다.
다시말하면 업-윤회-해탈의 주인공인 중생이 있고, 이 중생의 업장을 소멸시켜주는 부처님의 우주적 구원력이라는 대자비가 실질적인 알맹이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잘못 해석되어온 '왜곡된 무아설'은 중생의 실체도 부처님의 존재도 부정하는 논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불교의 두 주체인 알맹이를 모두 빼고 껍데기 만 남겨놓은 꼴이 되었습니다.
이런 껍데기 불교, 반쪽도 안 되는 낙제점짜리 불교를 가지고도 그래도 아시아에서 이 정도의 교세를 유지하고있는 것만 해도 너무아 고마운 일입니다.
달리 생각하면 이것은 불교의 위대성을 반증해주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너무나, 너무나 위대하신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불교가 본래의 진면목을 보여주기만 한다면 전 세계로 확산되리라는 것은 긴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필자는 이 모든 엄청난 사태의 주범을 '무아설의 왜곡'으로 보고 싶습니다. '무아설의 왜곡'이 밉습니다. 그냥 밉습니다. 한 방 크게 먹여주고 싶습니다. 아니 때려누여서 실컷 두들겨 패주고 싶습니다. 그래도 분이 안 풀립니다.
그래도 살생은 하면 안 되니까 죽이지는 못하고 이'무아설의 왜곡'을 열시왕의 심판을 받도록 만들어 세세생생 극무간지옥으로 보내버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이 주범 '무아설의 왜곡'의 동조자가 여기저기 도처에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이 많이 있습니다.
부처님 도와주시옵소서! 이 많은 선량한 동조자들을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부처님! 이렇게 사정하면 되올는지요?
전 세계 고명하신 불교학자 여러분! 제발 과거의 잘못된 논리를 반성하시고 더 이상 '무아설의 왜곡'의 동조자가 되는 주장을 펴지 마시기를 간절히 애원합니다.
전 세계 학덕이 높으신 큰스님, 선지식들이시여! 고요한 선정에 들어 부처님의 진실한 가르침을 되새겨보면서 "무아설의 왜곡'의 동조자가 되지 마시고 중생들에게 바른 가르침을 펼쳐주시옵소서!
사랑하고 존경하는 전 세계 사부대중 여러분! 오랜세월을 불자로 살아오면서 나도 모르게 '왜곡된 무아설의 포로'가 되었다면 하루 속히 깨어있는 불자가 되어 정법에 귀를 기울여주소서!
정법을 외면하고 정법이 아닌 법을 펼치는 것는 큰 죄업을 짓는 일입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절제된 표현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세계 불교사의 새로운 장을 열며
고맙게도, 너무나 고맙게도 거룩하신 우리 교주 불세존께서는 아끼고 사랑하는 두 제자, 가섭존자 광명만덕 큰스님과 아난존자 자재 만현 큰스님을 이 땅 대한민국에 내려 보내시어 '영산불교'라는 신불교의 정법으로 무아설의 바른 교의를 설하여 정법의 새 시대를 열어가게 해주셨습니다.
부처님! 오체투지 감사드리옵니다.!
'무아설의 왜곡'으로 2000여 년 간 우리 불교계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해왔던 '무아와 윤회 주체' 문제에 대하여 영산불교 현지사의 자재 만현 큰스님께서는 BBS 불교방송 TV법회2010. 4 를 통해 "비아인 영혼체가 윤회의 주체"라고 쾌도난마의 사자후를 해주셨습니다.
물론 큰스님께서는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Ⅰ. Ⅱ>>를통해 이미 부처님의 실존과 영혼체영체 윤회론을 세계 불교계에 선언한 바 있습니다. 이번 큰스님의 법설은, 천동설이 지동설로 코페르니쿠스적 대반전을 하여 진리가 세상에 밝혀지고 인류문명사의 새로운 한 페이지를 장식했듯, 종교상의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을 알리는 역사적 대선언입니다.
아마 이 선언은 세계 불교계나 불교 교학에 엄청난 회오리를 몰고 올 것이 틀림없습니다. 무아와 윤회 주체의 논쟁에 관한 수많은 논서가 한낱 휴지조각이 될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영산불교는 우리 불교계가 이 문제에 대해 정말로 대성적인 차원에서 대응해 주시기를 진심으로바랍니다. "윤회 주체는 비아인 영혼체"라는이 경천동지할 선언으로 오랜 기간 '왜곡된 무아설'을 주장하고 믿어왔던 기존의 학계나 종교계, 특히 불교계에 큰 파장이 오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정법의산고를 위해 겪어야 할 아픔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로지 우리 불교계의 앞날을 생각하고,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 세상에 널리 펼칠 수 있는가 하는 관점에서 생각하고 처신해야 할 것입니다.
인도의 대논객인 용수도, 무착이나 세친도 이 무아설에 대해 올바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무아설이나 영체론은 최소한 상품보살 이상이 되어야 그 실체를 어느 정도 알 수 있고, 붓다의 수준에 가서야 완벽하게 체득할 수 있는 심오한 차원의 교설입니다. 따라서 이론 연구를 중심으로 하는 불교학자들이 접근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곡된 무아설이 2000여 년 간이나 고쳐지지 않고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 됩니다. 그렇더라도 이 '무아설의 왜곡'은 우리 불교계의 한 치부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자재 만현 큰스님이라는 걸출한 선지식이 탄생하셔서 부처님을 친견하고 가르침을 받으시면서 일생일대의 희원을 이루시고, 우리 불교가 많이도 왜곡되었다는 사실을 이론적, 체험적으로 알게되었습니다.
그래서 영산불교라는 신불교 교단을 창립하여 영산당시의 불교를 복원하고 왜곡된 불교를 바로잡아 정법의 새 시대를 열어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교왜곡의 가장 핵심주제를 '무아설의 왜곡'으로 보고 전세계 불교계를 향해 정법의 사자후를 하신 것입니다.
이는 분명 세계 종교사에 큰 획을 긋는 종교상의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이 될 것이고 세계 불교사에 새로운 지평을 여는 역사적 대선언이 될 것입니다.
무아설이 바로 서야 부처님의 실존론이 자연스럽게도출되고, 실체적인 삼신설을 이해함으로써 부처님에대한 깊은 믿음을 갖게 됩니다.
이는 부처님의 가피를 찾는 칭명염불로 연결되어 붓다회상을 만나게 되고, 그러면 생사해탈의 지름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붓다회상이 지금 한국땅, 춘천 현지사에서 열리고 있다는 엄청난 소식을 아울러 전해드립니다. 믿고 안 믿고는 모두 인연에 맡기겠습니다.
무아와 윤회 주체 문제의 불교사적 개관
초기불교의 무아론 개관
초기불교는 부처님 재세 시와 불멸 후 100년경까지의 불교를 말합니다. 근본불교 또는 원시불교라고도합니다.
초기불교시대의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장 충실하게 전승하고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은 <<아함경>>입니다. <<아함경>>은 팔리어로 된 <<5니까야>>와 한역 <<4아함경>>이 있습니다.이 팔리어 <<5니까야>>는 한역 <<아함경>>의 내용과 유사하지만 한역 <<아함경>>에 없는 소부<<쿳다까 니까야>>가 있어 <<법구경>>이나 부처님 전생을 다룬 본생담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아함경>>에는 불교의 4성제, 3법인또는 4법인, 8정도, 12연기, 5온, 12처 등 불교의 기본 교리가 담겨져 있습니다. 3법인 관련 내용도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본 주제와 관련이 있는 경전내용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물론 팔리어 <<니까야>>에도 한역 <<아함경>>과 유사한 내용이 많이 나옵니다.
우선 무아의 내용을 포함한 3법인4법인을 말씀하신 경전의 내용을 보겠습니다.
네 가지 진리란 어떤 것이냐? 모든 존재와 현상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니 이것이 첫 번째 근본 진리이다. 모든 존재와 현상은 괴롭다는 것이니 이것이 두번째 근본 진리이다. 모든 존재와 현상에는 실체로서의 '나'가 없다는 것이니 이것이 세 번째 근본 진리이다. 번뇌가 다 멸하면 열반이라는 것이니 이것이 네번째 근본 진리이다.
여기서는 우리에게 친숙한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 열반적정의 네 가지 진리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모든 존재와 현상에는 실체로서의'나'가 없다는 것"이 바로 무아의 개념인데 번역에 따라 약간씩 다르게 표현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글대장경>>에는 "일체의 법은 나라고 할 만한것이 없다"로 되어 있는데 내용상의 큰 차이는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모든 존재와 현상'이나 '일체의 법'의 개념을 가지고 현상계의 존재를 넘어 존체계의 '나'까지 부정하는 근거로 삼을 수는 없다고 봅니다.
이는 첫 번째부터 세 번째까지의 진리는 무상 . 고 . 무아라는 현상계의 속성을, 그리고 네 번째의 '열반적정'은 현상계로 넘어선 본체계의 속성을 나타내는 것이란 점을 볼 때, 여기서의 무아 개념은 현상계에 한정하여 보는 것이 자연스런 흐름이라 하겠습니다.
이어서 경의 내용을 몇 가지 더 보도록 하겠습니다. <<잡아함경/염리경1권>>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색은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요. 괴로움은 곧 나가 아니며 나가 아니면 또한 내 것도 아니다. 이와 같이 수 . 상 . 행 . 식도 또한 무상하다. 이렇게 관찰하는 것을 진실한 바른 관찰이라 하느니라.
또 <<잡아함경무상경 8권>>에는 모든 것은 무상하다. 모든 것은 괴롭다. 모든 것은 공하다.
모든 것은 나가 아니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잡아함경비아경2권>>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나옵니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색은나가 아니다. 만일 색이 나라면 응당 색에서 병이나 괴로움이 생기지 않아야 하며, 또한 색에 대하여 '이렇게 되었으면....' 한다든가,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지 않아야 할 것이다. 색에는 '나'가 없기 때문에 색에는 병이 있고 괴로움이 생기는 것이며, 또한 색에 대하여 '이렇게 되었으면...' 한다든가,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것이다. 수 . 상 . 행 . 식도 이와 같으니라."
"비구들아,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색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비구들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아, 만일 무상하다면 그것은 괴로운 것인가?"
"그것은 괴로운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곳은 변하고 바
뀌는 법이니라."
마갈다국 사람들이 부처님으로부터 색 . 수 . 상 .행 . 식의 오온이 모두 무상하다는 가르침을 받고나서, "그렇다면 누가 활동하고 누가 고락을 받을 것인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부처님께서 이를 아시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중아함경빈비사라왕영불경 11권>>에 나와 있는 내용입니다.
어리석은 범부는 가르침을 들은 것이 없어 '나'를'나'라고 보아 '나'에 집착한다.
그러나 필경 '나'도 없고 '내 것'도 없나니, '나'를 비우고 '내 것'을 비워야 하느니라.
법이 생기면 생기고, 법이 멸하면 멸하여, 다 인연을 따라 모이어 괴로움이 생기는 것이니, 만일 인연이 없으면 도는 괴로움은 곧 멸하느니라.
이상 견정에서 살펴 본 무아와 관련된 내용을 종합해보면 부처님께서는 "색 . 수 . 상 . 행 . 식의 오온으로 구성된 인간의 존재는 무상하며, '나'가 아니다. 무상한 것은 괴로운 것이고 변하는 것이다"라고 현상계의 무상 . 고 . 무아 개념을 강조하시면서 중생들의 '나'에 대한 집착을 떼어주기 위해 고심하고 계시는 흔적을 역력히 읽어볼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경전상의 맥락으로 보면 무아보다는 비아의 개념으로 많이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팔리어 경전상의 용어로 사용된 아나트만anatman이 아트만atman이라는 단어에 부정을 의미하는 접두어 an이붙어 이루어진 단어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있다. 없다'의 존재론적 의미보다는 '이다. 아니다'의 서술적 의미가 강하다고 생각되는 것도 한 이유가 됩니다. 무아
를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 원어는 niratman이라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무아냐 비아냐 하는 것보다도 경에서는 모두 '현상계의 나'를 부정하고 있다는 사실이고, '본체계의 나의 실체'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는 사실입니다<<대승열반경>>에는 본체계의 '나의 실체인 아'에 대한 내용이 많이 나옵니다. 이는 '무아설'을 '본체계의 나의 실체까지 없는 것'으로 확대하여 해석할 타당한 근거가 되지 못함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무아'를 말씀하셨다 하더라도 그것은 중생의 아상을 떼어주기 위한 방편적 차원이지 본체계의 존재인 '나의 실체'까지를 부인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는 나중에 상론하겠습니다.
초기불교의 무아설과 관련하여 일본의 히라카와 아키라는 아주 정확한 관점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초기불교의 무아설은 진아의 적극적 부정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요, 오히려 진정한 아가 아닌 것을 아라고 잘못 알아서 이에 대해 집착하는 그릇된 아견을 제거하기 위함이다."
부파불교시대
무아설의 이해와 윤회 주체
부처님께서 대열반에 드신 후 100년 쯤 지나자 그동안 통일적으로 운영 되었던 교단은 교리, 계율, 교단 운영규범 등에 관한 승려들 사이의 의견 차이로 분열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보수파인 상좌부와 진보파인 대중부로 갈라지더니 이후 분열을 거듭하여 결국 20여 부파가 생기게 됩니다. 이렇게 갈라진 각 부파들은 저마다 불교교리를 연구하여 부파들 나름대로 논서를 내놓음으로써 불교 교리가 학문적으로 발달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불멸 후 100년경부터 약 1000년 간 지속된 이 시대를 부파불교시대라고 합니다. 부파불교는 아비달마Abhidharma불교라고도 합니다. 부파불교에서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는 크게 두
가지로보입니다. 하나는 불신관의 이론을 정립하는 일이고 또 하나는 무아와 윤회 주체간의 모순을 해결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두가지 문제는 학자들이 이론적으로 정립하고 해결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과제였다고 보여집니다. 최고의 수행 경지에 가서야 알 수 있는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불교의 가장 핵심이 되는 이 두가지 문제에 대해 정확한 교설을 정립하지 못한 것은 천주의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이것은 필자가 불자이기 때문에 하는 말만은 결코아닙니다. 중생 구원을 표방하는 종교는 많이 있지만 실질적으로 중생을 고통에서 구원해줄 진리의 종교는 불교밖에 없기 때문에 그 아쉬움이 더욱 크다는 것입니다.
당시 불교의 위대한 교설을 제대로 알려주지 못했기 때문에 불교가 힌두교에 밀려 인도에서 사라졌고, 오늘 날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왜곡되고 왜소화된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무아와 윤회 주체간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하여 부파불교의 내노라하는 논사들이 온갖 있는 지식, 없는 지식을 다 동원하여 다양한 이론을 내놓습니다. 물론 이것은 힌두교의 공격에 대한 대응이기도 합니다.
부파불교가 내놓은 의견들의 방향을 보면 고정 불변하는 윤회 주체는 아니지만 심식류의 그 무엇인가가 있어서 윤회를 한다는 입장입니다.
대중부는 윤회의 주체로서 근본식사상을 주장합니다. 이 근본식은 우리의 육체와 마음 작용의 의지처가 되는 식으로 사후에도 존속하여 몸을 받는 근본이 된다는 것입니다.
상좌부는 유분식사상을 주장하여 모든 업력의 인을 간직한 식인 유분식이 윤회의 주체가 된다고 합니다.
독자부는 푸드갈라를 윤회의 주체라고 봅니다. 푸드갈라는 어원적으로는 신체, 영혼, 개인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그 본성은 오온과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어떻든 푸드갈라는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저 세계에서 이 세계로 윤회하는 생명의 주체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보겠습니다. 설일체유부는 오온상속석를 주장합니다. 오온으로 이루어진 인간 존재는 실체가 없는 무상한 것이지만, 그 궁극적인 구성 요소는 실재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모든 법은 찰나에 생하고 찰나에 멸하지만, 그 법은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실재한다고 하는 것이 바로 유부의 삼세실유설입니다. 이렇게 유부에서 삼세실유설을 주장한 것은 업과 윤회를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 설은 오온의 모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일견 무아윤회처럼 보이나 궁극적 실재인 구성요소가 있다고 보기 때문에 유아윤회적 성격이 있다고 보겠습니다.
경량부에서는 일미온이라는 미세한 의식이 죽음 이후에도 소멸되지 않고 다음 생을 이어간다고 합니다.
화지부에서는 윤회의 주체로서 궁생사온을 주장합니다. 궁생사온은 삶과 죽음을 연결해주는 궁극적인 것으로서 부단히 상속되는 인과 주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무아와 윤회 주체에 대한 여러 부파의 주장을 살펴보았습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무아윤회를 대전제로 하고 있지만 독자부의 푸드갈라 이론과 설일체유부의 오온상속설은 유아윤회적 성격이 있다고 볼수 있겠습니다. 나머지 심식류가 윤회한다고 보는 이론도 식류를 윤회의 존재로 내세우기 때문에 순수무아윤회론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부파불교가 무아설에 발목이 잡혀 윤회 주체에 대한 명확한 논리를 제시하지 못하고 푸드갈라나 심식류 같은 애매한 이론을 내세운 부분은 참으로 궁색한 발상입니다.
우리가 아무런 선입견 없이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고정적인 실체를 갖지 않는 존재가 윤회를 한다는 것은 얼른 납득이 될 수 없는 그런 논리입니다. 그러니 이런 이론들이 대외적으로 설득력을 가지기가 힘든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대승불교시대
무아와 윤회 주체에 대한 이해
대승불교는 부파불교의 학문적이고 출가자 중심 불교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대중 중심의 새로운 불교사상으로서 중생 구제자로서의 부처님에 대한 믿음과 보살사상이 강조된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기원 전후로부터 8세기까지를 대승불교시대로 보고 있습니다. 대승불교의 주요철학사상은 용수(나가르쥬나)의 중관.공사상과, 미륵보살의가르침을 받은 무착(아상가)세친(바스반두)이 정립한 유식사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승불교의 선구적 경전이라고 볼 수 있는 <<반야심경>>을 통해 공사상이 전개되었고, 용수는 <중론>에서 연기하는 모든 존재는 자성이 없기 때문에 공하다고 이론적으로 뒷받침하였습니다.
이는 부파불교설일체유부에서 '나'라는 존재의 무상성을 강조하면서도 우주 만물의 실체성을 인정한 법 유아무 사상에 대해 대승불교가 비판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 용수의 공사상은 무아 대신 존재의 개념을 초월한 공의 개념을 도입하여 무아와 윤회의 모순을 극복하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무아설의 허무주의적 성격을 더 심화시킨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대승불교의 또 다른 한 축인 유식사상은 일체만유는 식에 의한 현현에 불과하다고 보는 관점을 말합니다.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유식 이론에서는 우리의 마음을 8단계로 나누어 안 . 이 . 비 . 설 . 신의 전5식과 6식인 의식, 7식인 말나식, 8식인 아뢰야식으로 구분합니다.
그리고 이 아뢰야식이 업의 종자를 보관하는 저장소로서 장식이라고도 하며 이것이 윤회의 주체가 된다고 합니다. 이는 부파불교시대에 윤회의 주체로 상정하고 있었던 여러 심식류를 아뢰야식이라는 하나의 식으로 통일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아뢰야식 윤회 주체설은 부파불교의 심식류에 비해 그 성격이 보다 분명하고 업의 저장소도 명확히 밝혔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이론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윤회 주체라고 하기에는 식으로서의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점은 나중에 상술하겠습니다.
힌두교의 불교 교리 비판,
대응과 아트만 이론에 대해
힌구교의 불교교리 비판과 대응
(김형준. 인도 정통사상과 불교의 대립/이거룡. 윤회의 주체를 둘러싼 논쟁)참조.
불교는 태동 당시부터 사성계급제인 카스트제도와 동물희생제에 반대를 하면서 베다전통의 바라문교(고대 힌두교)에 도전하는 한편, 육사외도로 불리는 자유사상가들의 유물론,쾌락주의, 단멸론, 회의론 등을 비판 하면서 독자적인 사상과 교설로 민중 속에 파고들었습니다.
불교의 교세가 확장됨에따라 힌두사상과 대립은 불가피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힌두교의 불교에 대한 비판은 초기에는 주로 생활과 관련된 현실적인 문제로부터 출발했으나, 점차 교리 논쟁으로 확대되어 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불교와 힌두교는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교리체계를 발달시켜왔습니다.
본격적인 힌두교의 관점에서 불교 교리를 비판한 것은 부파불교의 논장이 성립된 이후인 7~8세기경 또는 그 이후라고 보고 있습니다.(김현준, 상게논문.)
힌두 전통사상의 불교에 대한 비판은 주로 미망사, 나야야, 베단타학파에서 나타났습니다(김현준,상게논문.) 힌두교와 불교간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였던 이론 논쟁의 핵심은 불교의 무아설과 힌두교의 유아석이었고, 이에 따른 윤회 주체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무르띠(T.R.V. Murti)의 견해에 따르면 인도철학사에서의 유아설과 무아설의 대립은 금세 유럽철학에서의 합리론과 경험론 사이의 갈등 이상으로 첨예한 논쟁거리였다고 합니다. (이거룡, 상게논문.)
당시 힌두교는 아트만이라는 영원불멸하는 자아를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당시의 인도불교는 어떤 경우에도 상주불멸하는 자아를 인정할 수 없다는 무아론을 내세우고 있었습니다.(물론 이무아론의 해석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렇게두 종교간의 교리가 정반대가 되다보니 논쟁은 불가피 했다고 보입니다.
특히 윤회 주체의 문제에들어가면 더욱 첨예하게 대립하게 됩니다. 힌두교에서 봤을 때 무아이면서 윤회를 한다는 불교의 교리는 참 좋은 공격거리였을 것입니다. 반면에 불교의 입장에서는 이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가 참으로 곤혹스러웠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계시기라도 했다면당장 달려가서 여쭈어 보았을 터인데 그러지도 못하고 참 답답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무아론이나 윤회론은 어는 것도 포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불교를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불교 비판론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베단타학파의 상까라는 부파불교의 오온과 찰나이론, 유식학파의 관념론적 경향과 중관학파의 허무주의를 비판했습니다. 이중 무아설과 무아윤회의 근저가 되고 있다고 보는 오온과 찰나이론에 대한 비판 내용을 잠간 살펴보겠습니다.
그는 찰나설에 대해서는 찰나멸, 찰나생은 후생존재가 발생하기 전에 선행존재가 소멸해버림으로써 인과 관계가 성립할 수 없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또한 찰나설과 설일체유부의 실재론을 묶어 순간적인 실체가 생성과 소멸을 지닌다는 주장은 자기모순이라고 비판합니다. 그리고 윤회의 실체적 주체가 없다고 하는 무아윤회에 대하여는 오온이론과 윤회를 엮어서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당신(불교도)은 영원한 윤회 속에서 오온의 집합은 끊임없이 하나에서 다른 곳으로 이어지고, 그렇기 때문에 무명 등은 그 오온 속에 머문다고 말할지모른다. 그러나 그 경우 당신은 각각의 오온이 필연적으로 같은 종류의 오온을 낳거나, 아니면 어떤 정혜진 규칙없이 같거나 다른 종류를 생성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서 전자의 경우라면 인간은 결코 신이나 동물 또는 지옥의 존재로 변할 수 없을 것이다. 꼬한 후자의 경우라면 지금 이 순간에도 코끼리나 신이 되었다 가 다시 인간으로 변할 수 있을 것이다.(김형준, 상게논문.)
영혼체를 인정하지 않는 불교에 대한 상카라의 비판은
다음과 같이 이어집니다.
불교에 따르면 몸과 마음의 합성체는 그 합성체를 욕구하고 즐거움을 경험하기 위하여 그것을 사용하는 영혼을 지니지 않는다.이와 마찬가지로열반을 욕구하는 자도 없다.
설사 어떤 자가 열반을 용구한다 해도 그가 바로 열반을 얻는 자는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열반의 순간에 그것은 완전히 다른 합성체가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만일 동일인이 그것을 욕구하고 그것을 얻는 다면 이는 영원한 영혼을 인정하는 결과가 된다.(이거룡, 상게논문.)
사실 이러한 힌두교의 비판은 충분히 예상될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비판이 없더라도 불교는 무아와 윤회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문제를 두고 부파불교시대의 각 부파는 윤회 주체 대신 여러 가지 애매한 심식류를 동원하여 이를 해결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이것은 이미앞에서 본 바와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해결이 아닌 또 하나의 모순된 논리를 개발한 것일 뿐입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인과법이라는 불교의 기본 교리를 도외시하고 우주이법을 위반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당연한 결과로 불교의 무아윤회에 대한 힌두교의 비판에 대해서도 불교는 왜곡된 무아설의 태생적 한계로 인해 정확한 논리를 내세워 설득력 있게 대등할 수 없었습니다. 부파불교의 수준 이상으로 대응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미 앞에서도 본 바와 같이 왜곡된 무아설로 인해 불교는 윤회와 해탈의 주체도 없는 허무한 종교의 성격으로 인식되어 민중 속에 재대로 뿌리를 내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당시에 불교가 무아설과 윤회 . 해탈사상, 그리고 부처님의 구원사상 등을 저왁하게 설명해주고 한 단계 높은 차원에서 힌두교와의 차별성을 강조했더라면 상황은 지금과 많이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불교가 인도에서 쇠퇴하지도 않았고, 12세기경이슬람의 침입으로 불교가 인도 땅에서사라지는 운명을 맞이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마가다국 마우리아 왕조의 아쇼카왕 시대에 불교가 인도 전역으로확산되었고 스리랑카와 미얀마, 이집트, 그리스 등의 지역까지 전파된 것을 감안하면불교는 오히려힌두교를 흡수하면서 지금쯤 유럽을 포함하여 전 세계에 전파되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이 위대한 진리의 종교가 그 진면목을 찾지 못하고 왜곡된 채 너무나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2) 힌두교의 아트만 이론에 대해
힌두교에서는 우주 만물은 법,브라흐만으로부터 나왔다고 합니다. 이 법이 개별 주체에 들어간 것이 아트만atman으로서, 아트만은 영원불멸하는 자아라고 합니다. 그리고 수행을 통해 이 아트만이 범과 하나임을 깨닫는 범아일여의 경지가 되면 영원한 즐거움을 누리는 해탈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교리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힌두교에서는 이 아트만이 윤회의 토대가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윤회의 주체가 구체적으로 무엇이고 어떻게 윤회를 하는지에대하여는 명확한 설명을 못하고 있습니다.
아트만은 범과 같으면서 개아이기도 한 것입니다. 아트만이 범우주 본성과 같다면 아트만은 행위를 할 수도 없고 업을 지울 수도 없어야 합니다. 그것은 순수의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아트만 자신은 윤회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럼 윤회를 하는 실체는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트만과 윤회 주체는 어떤 관계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베단타학파에서는 윤회하는 미세신(이거룡, 상게논문.)을 말하고 있지만, 그 미세신 역시 애매한 개념이고 그 성격에 대하여는 또 다른 설명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불교의 윤회 주체인 영혼체는 매우 구체적이고 확실한 개념입니다. 그리고 네 개의 영혼체에 대한 설명을 통해 윤회 주체는 구체적으로 무엇이고 어떻게 윤회를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할 수가 있습니다.
사실 힌두교는 일찍부터 업과 윤회와 해탈을 주장한 수준 높은 종교입니다. 그러나 힌두교에 대해 몇 가지만 더 지적해 보겠습니다.
힌두교에서는 육신에 존재하는 아트만을 바로 자신이라고 깨닫게 되면 이는 곧 범과 하나가 되어 해탈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공을 깨친 수준으로 해탈의 수준과는 또 다른 경지라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힌두교에서는 불교의 육도윤회세계, 해탈계의 차원 높은 세계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없습니다.
또한 사람을 행위에 의해 판단하지 않고 출신성분에 따라 고착화시켜버린 사성제의 문화는 크게 잘못된 전통이라고 보겠습니다. 아울러 동물을 희생시켜 제의식에 사용하는 것도 잘못된일입니다.
불교와 기독교의 파아나두라 논쟁
영혼체 관련 부분
이 글은 불교평론38호, 2009년 봄호에 발표된 <불교와기독교의 역사적 대논쟁석오진>의 내용을 인용하고 참고하였음을 미리 밝혀 둡니다.
상기 자료에 의하면, 19세기 후반1873년스리랑카에서 있었던 '불교와 기독교의 역사적 대논쟁'인 '파아나두라 논쟁'은 불교와 기독교라는 세계적 두 종교를 대표하는 지식인들이 각자가 신앙하는 종교의 위신을 걸고 공개적인 장소에서 승패를 걸고 행했던 종교대론입니다.
이 논쟁에는 불교 측에서 모호티와테 구나아난다Mohottiwatte Gunananda 비구가 참가했고, 기독교 측에서는 첫째 날에는 데이비드 데 실바David De Silva 목사가, 둘째 날에는 시리만나Sirimanna 전도사가 토론자로서 참가했다고 합니다. 청중은 첫 날에 5천 명, 둘째 날은 1만 명을 넘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논쟁의 결과에 대한 평가를 보면 대체로 기독교측의 열세로 끝났다는 평이 많았다고 이 자료는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서 그 평가에 대해 말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아설을 잘못 해석하여 영혼체가 없다는 것이 불교의 교리인 양 굳어졌고, 그 잘못된 교리를 두고 공방을 벌여 결과적으로 우문우답이 되어버린 이 사태에 대해 우리 불교계가 진정으로 반성하고 정법을 세워 널리 알리는 계기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논쟁의 영혼체 관련부분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자료에 의하면 기독교측의 실바목사는 "불교 교리에서는 영혼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인간의 윤리도덕이 성립될수 없지 않은가?"라고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이에대해 불교측의 구나아난다 스님은 "만약 기독교가 설하는 것과 같이 영원불멸의 영혼이 존재한다면 살인을 범했다 해도 별 문제가 없다는데 귀결 된다.
예컨대 사람을 죽인 것으로 말미암아 육체가 파괴되어 버린다 해도 영혼은 불멸하기에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인간들에게 불멸의 생명 또는 영혼이 존재한다고 생각함으로써 거꾸로 윤리도덕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논리가 성립되는 것"이라고 되받아졌다고 합니다.
참 실소가 나오는 장면입니다. 영혼이 없다고 전제한 것도 물론 잘못이지만, 영원불멸의 영혼이 있다고 해서 살인을 해도 별 문제가 없다고 보는 시각에 놀라음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스님의 신분으로 부처님께서 대표적인 네 가지 중한죄라고 정하신 4중죄 중의 첫 번째 계율인 살생중죄를 그렇게 가벼이 볼 수 있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않습니다.
특히, 이 4중죄는 4바라이죄라고 해서 출가스님이 어길경우 자격을 박탈당하는 무서운 죄인데도 말입니다. 만약 그 당시에 기독교측의 실바목사가 영혼체가 없다는 것에 대해 여러 가지 많은 모순점들을 예리하게 비판했더라면 불교측은 아마 상당히 곤혹스러워했을 것입니다.
어떻든 이 '파아나두라 논쟁'은 불교의 교리가 '영혼체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전 세계에 확인시킨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왜곡된교리가 바로 잡히기까지는 다시 일백 수십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나마 이 논쟁이 스리랑카 불교의 회생에 공헌하는 등의 긍정적 성과가 있었다는 것으로 약간의 위안을 삼고자 합니다.
무아설의 바른 의미
무아는 현상계에 국한된 개념
이제 문제가 되고 있는 무아설의 바른 개념을 알아보겠습니다. 그렇게도 오랜 세월을 잘못 알려져 왔지만 개념은 매우 간단하게 정의할 수 있습니다.
무아는 불교의 3법인의 하나로서 그바른 의미는 "현상계에는 영원불멸하는 '나의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조금 풀어서 표현해 보면"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나'라는 존재는 오온이라는 다섯 가지 요소가 인연으로 화합되어 이루어졌기 때문에 늙고 병들고 죽어 없어지므로 영원불멸하는 '나의
실체'는 현상계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현상계의 모든 사물에도 적용되는 개념입니다. 여기서 "현상계에는 영원불멸하는 '나의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 무아가 됩니다. 그리고 "현상계의 나는 '나의 실체'가 아니다"라고 하면 비아가 됩니다.
이 비아의 개념에는 우리의 육체는 물론 오염된 마음도 포함됩니다. 따라서 업장 등 모든 비본질적인것이 붙어있는 우리의 영혼체까지 이 비아의 개념에 포함됩니다. 여기서 비아인 영혼체가 윤회 주체가 되는 논리적 근거가 나옵니다. 그리고 위에서 본 '나의 실체'는 진아가 됩니다.
여기서 '현상계'를 강조한 사실에 주목해주시기 바랍니다. 무아나 비아의 의미는 바로 이 현상계를 두고 정립된 개념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현상계에는 나의 실체가 없다'라고 하거나 '현상계의 나는 나의 실체가 아니다'라고 하거나 두 가지 모두 본체계에 존재하는 나의 실체까지 부정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학자들은 이 '현상계'에 국한된 개념을 '본체계'까지 확대 적용하여 본체계의 실체까지 부정하는 큰 실수를 저지른 것입니다. '무아'를 어떤 경우에도 '나'라는 존재가 아주 없는 절대무아의 개념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무아설의 왜곡'입니다. 반면 '비아'라고 하게 되면 은연 중 진아의 존재를 상정하고 있는 개념입니다. '무아설의 왜곡'은 결과적으로 육도윤회와 생사해탈이라는 불교의 근간이 되는 교리를 부정하고, 불교의 존립 자체를 흔드는 이론적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무아의 개념과 관련하여 자재 만현 큰스님의 관련 법설2010. 4, 현지사 대전분원 법회을 일부 인용해보겠습니다설법 취지를 바꾸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구어체를 문어체로 바꿔서 표현합니다.
부처님께서 무아라고 하신 것은 유라는 것있다 고 하는 것에 너무 집착을 하기 때문에 그 집착심을 떼어 주기 위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무아라고 해서 행위의
주체까지 없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소아적인이기적인그 생각을 딱 잘라야 되겠기에, 여러분 자신만 아는 소아적인 중생심을 잘라야 나쁜 업을 짓지 않고 좋은 업을 지어서 하늘을 가고, 사람으로 와서 부처님회상을 만나서 윤회를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소아적인이기적인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나라는 생각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무아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라는 생각을 하지마라 그것입니다. 나만 아는생각은 소아적인 것입니다. 그 나라고 하는 생각,그 생각이 없는 나 무아, 그것은 정토에만 가도 보살들은 나라는 생각이 없습니다.
<<금강경>>에서 말하는 이치가 맞습니다. 그 정토에는 무아상 . 무인상 . 무중생상 . 무수자상입니다. 보살들 부처는 나라고 하는 생각이 없습니다. 다만, 다른사람의 어려움을 보고, 즉 중생의 괴로움을 보고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주기 위해 정말로 자비 자체로 살아가는 분, 그런 분이 보살입니다.
그러니까 '나라는 생각이 없는 나', '그 나'는 있습니다.
우리 불세존께서 가끔 아주 중대한 말씀을 발표하실 때에는 모든 삼천대천세계 부처님들 앞에서 "나 불세존은 삼천대천세계 여러 붓다님들 앞에서 무엇 무엇을 선언하노라"이러신단 말입니다.
'나 불세존은..............' 이렇게 나가신단 말입니다.우리 불세존, 나라는 생각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중생만 생각합니다. 불세존께서 말씀하신 무아의 의미는 '나라고 하는 생각을 하지 마라, 나라고 하는 생각을 갖지 마라' 그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무아를 말씀하신 것이지 '나라는 것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무아를 '나라는 것이 없다'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는데 마다 불교가 두들겨 맞는 것입니다. 인도에서 불교가 쫓겨난 것입니다.
만약에 부처님 말씀의 진위를 지금처럼 이해를 했다면, 우리 부파불교나 기타 대승불교의 하승들이 그 인도 석학들한테 이렇게 대응했더라면, 이 위대한 붓다를 낸 불교가 오히려 힌두교를 흡수했을 것입니다.
불교가 힌두교에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불교가 힌두교를 흡수해왔을 것입니다.
영산 당시의 '영산회상거염화'는
무아와 본체계에 대한 가르침
영산 당시 부처님께서 대중들 앞에 금색 바라화를들어 보이시자 가섭존자가 홀로 그 뜻을 알아차리고 미소를 지었다는 이야기는 염화시중의 미소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자재 만현 큰스님께서 쓰신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 의하면 영산당시의 이 이야기는 현상계의 모든 존재는 허망하여 실체가 없다는 무아사상을 가르쳐 주기 위한 방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보신불과 현지사 광명 만덕 큰스님가섭존자 간의 현대판 영산회상 거염화 이야기는, 부처님께서 탐스런 수국화 한 송이를 들고 가섭존자에게 묻고 대답하는 내용입니다.
영산 당시에는 꽃을 들어 보이시기만 했는데 지금은 직접 대화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책의 관련 내용을 인용해 봅니다.
어느 날 세존께서 청정법신 비로자나불로 뜨셔서 한 마당 작업하시고 원만보신으로 현신하셨습니다. 물론 깊은 선정 속의 일입니다.
깨끗하고 탐스러운 한 송이 수국화를 드시고 물으셨습니다.
'"이게 뭐냐?"
"본래부터 없는 것, 이름하여 꽃이라 합니다."
"이 꽃의 실체가 있느냐?"
"없사옵니다."
"영산 당시의 이 일은 있다 없다를 초월한 자리를 가르치고자 함이다.
살아 숨 쉬는 모두는 이 꽃과 같이 허망하여 실체가 없으니 믿을 것이 없다는 무아사상을 가르침이니라."
부처님의 이 말씀은 현상계 존재의 실체 없음과 함께 현상계를 초월한 본체계가 있음을 동시에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자재 만현 큰스님께서는 불세존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설명해주고 계십니다.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왔다가 인연이 다하면 꽃과같이 시들어 없어지는 것이니 그 무엇에 착하여 내것이다 네 것이다 분별하며 아옹다옹 하는가. 꽃과같이 인생도 허물어지는 것이니 그 어떤 것도 실체가 없음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부처님의 무아에 대한 가르침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처님께서 무상한 현상계의 세계와 함께 '있다 없다'를 초월한 자리본체게, 진제의 존재를 분명히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본체계에서는 무상이 아닌 상인 어떤 실체적 존재, 무아나 비아가 아닌 진아의 존재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맙게도 부처님께서는 대열반에 드시기 전, <<대반열반경>>에서 진아의 존재를 나타내는 교설을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출처/2천년간 무아윤회 논쟁에 종지부
영혼체 윤회론
펴낸곳/현지사-영산불교사상연구소
2011년 12월 1일 목요일
[2011년3월6일 현지사 자재만현큰스님 법문 대전편]열반경의 비밀장 이자삼점을 밝히다/ 삼신설/ 감로의 광명(해인)/
자재 만현 큰스님 정기법회
현지사 대전편
열반경의 비밀장 이자삼점을 밝히다/ 삼신설/ 감로의 광명(해인)/ 석가불탑 점안 계획과 십만등 동참 공덕/ 불자들에게 고함
신불기14년(불기2555년 신묘년 음력2.2(2011.3.6.일) 큰스님 대전 법문
신묘년 정월도 끝이 났습니다. 오늘은 음력2월2일 대전분원 정기법회일입니다. 오늘 처음 나와 주신 분들,
『부처님! 업장 많이 씻어 주소서. 오늘 전국에서 이렇듯 1,000여명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자 나와 주신 우리 착한 현지사 신도 분들의 업장 많이많이 씻어주소서』
몇 주 전 부처님의 말씀에 아주 중요한 부분이 있어서 오늘 간단히 요약하여 짚고 넘어가면서 법문 해드리겠습니다.
《열반경》이라고 하는 불경(佛經)이 있습니다.《대반열반경》.《열반경》은 부처님께서 마지막 입멸하시기 직전에 하신 말씀이올시다.《대반열반경》은 대단이 중요합니다. 석존(釋尊), 부처님의 최후 법문입니다. 그래서《열반경》에는 비밀장이 들어있습니다. 여래의 비밀이 감춰져 있습니다. 우리는《열반경》을 소홀히 해왔습니다.
거기를 보면 대단히 난해하고, 해석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천기(天機)를 누설할 수 없고 예언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어려운 말로 비유해서 써놨습니다. 그래서 학승들에 따라서 해석이 약간씩 다릅니다. 눈을 뜨지 못한 분들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지요.《열반경》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우리 부처님께서 입멸하시기 직전(하루 전)에 못 다하신 말씀을 거기에다가 다하신 겁니다.
당신께서 불과(佛果)를 이루시고 48년 동안 설법을 해오셨지요. 그러시다가 대반열반 하시는 날이었습니다. 사실 지난 48년간의 법문은 비유로 말하자면 반 조각 법문이었다. 반 조각 법문이었다. 무엇을 일러 비밀장이라 하는고? 비밀이라 하는고? 마치 이자삼점(伊字三點, ∴)과 같으니라. 그때 말씀 드렸지요. 동그란 원안에 점 셋(∴). 이것은 한 몸에 삼신(三身)을 갖춘 붓다를 이릅니다. 한 몸에 삼신(三身)을 갖춘 붓다를 상징하는 것이고, 두 번째 상징은 세 분의 붓다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부처님 입멸 후 3000년 쯤 되면 삼신(三身)을 갖춘 붓다가 출세한다”는 말씀은《화엄경》에도 있고《아함경》에도 있습니다. 그런데 세 사람은, 그 세 사람의 붓다는 여인을 포함한 두 사람과 미륵으로 해서 세 사람으로도 보고, 이자삼점(伊字三點, ∴)을 세 분의 붓다로 봅니다.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부처님의 청정한 광명(빛)을,《열반경》에서는 대열반광이라고 했고,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무량광(억종무량광)이라고 했고, 다른 경전에서는 오종백색광 ․ 백종오색광, 그리고《법화경》이나《화엄경》에서는 수 천 수 만 수억 빛의 색깔을 띤 청정한 부처님의 광명 빛이라고도 말씀했습니다.
그 “빛(열반광)이 중생의 털구멍으로 들어오게 되면 그 사람은 반드시 필정득성불도(必定得成佛道)이니라(반드시 성불할 날이 있느니라).”
그런데 부처님 근본불교 당시에는 이렇게 빛(무량광)을 쏘아주는 그런 작업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사실은 안 하시고, “내가 다시 올 때 그런 대열반광으로 중생들의 업장을 씻어 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난 시간에 밝게 설명 하는 것을 유보했습니다.
오늘 조금 더 설명 드리자면, 지금까지 2500년(3000년) 동안 큰스님의 어떠한 법문도(설법에서도) 붓다께서(부처님께서) 빛(광명)을 쏘아서(청정한 무량억종광을 쏘아서) 중생의(청법 대중의) 업장을 씻어 줄 수는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붓다가 출세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부처님 가신지 3000년쯤 되어서 붓다가 출세한다’ 하는 것입니다. 북방 불기(佛紀)로는 3000년이 넘었습니다. 지금 3007년인가, 3010년 정도 되었지요. 이 예언은 천기(天機)이기 때문에 누설할 수 없어서 꼭 정확하게 안합니다. 부처님도 누설할 수 없기 때문에 정확하게 말씀을 안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화엄경》이나《열반경》이나《아함경》에서 볼 때 ‘3000년 쯤에’이렇게 해석을 합니다.
‘3000년 쯤에 붓다가 출세한다’하는 것입니다. 그 ‘붓다는(대성자는) 한국에서 출세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불경(佛經), 즉《화엄경》이나《아함경》이나《열반경》을 봐도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불경(佛經)아닌 유가(儒家)의 역경(주역)을 봐도 ‘간방에 있는 한반도에서 정도령 대성자가 출세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도 알았습니다. 유가의 도인도 알았고, 도가(道家)의 도인도 알아냈습니다. 또 바이블(성경)에도 메시아가 온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들도 추측했습니다. 그런데 대성자(大聖者)는 붓다이상의 대성자가 없습니다. 한 몸에 삼신(三身)을 갖춘 그런 분은 없습니다. 그런 분은 붓다 뿐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출세했던, 우리 인류문화에서 족히 알고 있는 예수라든지, 마호메트라든지, 공자라든지, 소크라테스라든지, 노자라든지 하는 분들도 대단히 위대한 분들이지요. 그리고 한국 땅에 왔다 가신 증산(甑山, 姜甑山)같은 분도 대단한 위인입니다. 그런 분들도 한 몸에 삼신(三身)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이건 분명합니다.
삼신(三身)을 갖춘 붓다는 불가(佛家)에서만 나옵니다. 불교에서만이 보살이 나오고 붓다가 나옵니다. 그러면 삼신(三身)이 뭐냐? 삼신(三身), 스님이 많이 이야기를 했지요.
▸첫 번째, 화신(化身)입니다.
어디라고 말씀은 드리지 않겠습니다. 우리 절에 태사부님하고 나하고 크게 촬영한(찍은) 사진이 몇 개 걸려 있습니다. 그런데 한 쪽만 이렇게 보고 찍었단 말이에요. 한 쪽만 보고. 그러면 보는 사람들이 사진을 보면 ‘아! 그렇구나’하지요. 그런데 이 사진은 화신(化身)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각자의 붓다 화신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여기를 보고 찍었지만, 보는 사람이 정반대(180°)방향에서 본단 말이에요. 그래도 자기를 봅니다. 100명 1,000명이 여기서 보고, 저기서 보고, 중앙에서 봐도 꼭 자기만 봅니다. 이것은 화신불이 들어 있기 때문에 그럽니다. 그러니까 21세기 첨단의 과학에서도 과학자들이 풀 수 없는 부사의 한 것이지요. 화신은 그렇습니다.
‘붓다의 출세는 겁에 하나’그럽니다. 그러니까 ‘천만년 혹은 천만 생에 한번 붓다가 출세하는데, 한 분의 보살이 붓다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 때는 꼭 지존께서, 삼계의 지존이신 붓다의 붓다께서, 최초 불이신 우리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오시는데, 그 분의 진짜 몸인 원만보신노사나불이 오십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의 진짜 몸을 원만보신노사나불이라고 하지요.
그 붓다는 입멸하신 후 어디에 계셨느냐? 반열반 하신 후 어디에 계셨느냐? 어디로 가셨느냐? 어디에 계시느냐?
여러 번 말씀드렸지요. ‘유․무를 초월한 무아속 절대계에 계신다’고 했지요. 그런데 지금까지의 불교는
‘마음밖에 붓다를(佛을, 佛이)있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 밖에 불(佛)이 있는 것으로 보면 그것은 사도(邪道)다(사도의 견해다). 마음이 곧 붓다이기 때문에 마음밖에 붓다를 이야기하는 그것은 아니다’
이렇게 말을 했고, 이해해왔습니다. 그런데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부처님 당시 가섭이 여자의 몸을 받아와서, 소위 우주에 변만(遍滿)해 있는 불생불멸의 우주의 생명(대생명체, 실상, 진여당체)을 깨치고(견성입니다), 깨친 후 많은 선정(禪定)을 익혀 착(着)을 떼어서 아라한이 된 후, 그 후 부처님의 크신 가피를 입고(지도를 받아서 가피를 입고), 많은 삼매를 쌓아서 보살 삼매의 힘을 얻어 급기야는 불과(佛果)를 성취하면서 절대계에 당신의 몸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 세계의 비밀을 모두 알았는데, 그러고 보니 붓다는 어디에 계시느냐? 지금까지 불과(佛果)를 증한 분들은 모두 절대계에 계신다 그말입니다. 그 절대계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지금까지의 불교가 뭐라고 했지요? 마음밖에 붓다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고 했지요.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실 그렇고요. 마음 밖도 아니고 마음 안도 아니고, 그런대 유․무를(있다 없다를)초월한 절대, 무아속, 거기 중에서도 절대, 그러니까 ‘마음 밖도 아니고 마음 안도 아니고 유․무를 초월한 무아속 절대계에 여여히 계신다’라고 말합니다. 불과(佛果)를 증한 분들이 다 거기에 계시더라 그거예요. 어떻게? 지난 시간에 많이 이야기했기 때문에 그런 말은 또 접겠습니다.
우리 원만보신노사나불께서 거기에 계시다가 당신의 제자가 불과(佛果)를 이룰 쯤 되어서 인신(人身)을 받아오신 것을 알고 이 사바에 오신 거예요. 원만보신노사나불은 그때 오시는 거예요. 그러니까《열반경》에서는 “내가 다시 올 때”라고 되어 있어요. 내가 다시 올 때 어떻게 와?
그때는 이제 육신으로 오는 것이 아니고 진짜 당신의 본불(보신불, 지복의 몸)이 오시는데, 절대계에 계시는 삼계 지존의 그 붓다로서 제자로 하여금 불과(佛果)를 증하도록 외마를 막아주고 삼매로 이끌어 주고, 그리해서 불과(佛果)를 얻도록 하시기 위해서 오신다는 말이에요. ‘내가 다시 올 때’라는 말의 의미는 그거예요. “다시 올 때 묘한 감로가”라는 말은 대열반광을 말해요. “묘한 감로(甘露)가 나와서 중생들의 업장을 멸해줄 것이다.” 지금 그러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업장소멸이라는 것은 절대 자기 개인의 힘으로는 안 됩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업장소멸이 안 됩니다. 정화는 할 수 있습니다. 공부를 잘하면(마음공부를 잘하면), 반듯하게 생각하고 업을 짓지 않고 과거에 지은 업을 참회하면서 마음공부를 잘 합니다. 마음공부가 많지요. 지금까지 소개된 마음공부가 많습니다. 종파마다 수행법이 있지요. 자기의 근기에 따라 그 수행법을 통해서 공부하게 되면(정말로 바르게 공부한다면), 그리고 전생에 선근이 있다면 자기 업장의 일부가 정화됩니다. 정화는 됩니다. 정화는 되지만 업장소멸은 안 됩니다. 업장소멸은 붓다만이 해줍니다.
붓다만이 해주는데, 어떻게 해주느냐? 그 맑고 청정하고, 그 현란 황홀하고 아름다운 그 무량억종광으로 업장을 소멸해줍니다.
그러니까 세세생생 불구자로 태어날 업을 지은 사람이 있어요. 세세생생 태어나면 불구자로 태어날 업을 지은 사람이 있다고요.
가령, 누구라고 거명은 못하겠습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왕)으로서 정치를 하는데 잘못 할 수가 있어요. 크게 잘 못할 수가 있어. 실수할 수가 있어. 그래서 무고한 양민이 100만이고 수 백 만 명이 그 대통령(왕)으로 인해서 죽을 수가 있어. 우리는 역사에서 그런 인물을 몇몇 봤습니다. 그랬다거나(그런 지중한 업을 지었다가나),
두 번째, 부처님이 없고(부처님이라는 것은 없고), 또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육도를 윤회하고 하는 중생, 윤회를 벗어난 저 해탈세계, 이것도 방편으로 한 이야기이지 사실은 아니고, 이런 식으로 법을 능멸하고 모독하고 중생을 오도(誤導)하는 말을 하게 되면, 그건 용서가 없습니다. 그것은 무간지옥 극무간지옥을 간다고 합니다.
이런 업을 지은 사람은 혹 사람의 몸을 받아났다고 하더라도 세세생생 하나의 고통이 아니고 이중 삼중 사중의 고통을 받는, 그러니까 눈 코 귀 입의 기능을 못하는, 혹은 팔다리를 못 쓰는 뇌성마비 등 여러 가지의 고통이 합쳐진 그런 고통 즉, 세세생생 지중한 과보를 받는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과거에 선근이 있어가지고 그 부모가 붓다 회상을 만나서 큰 공덕을 지어 줄 때에는 부처님께서 그 애의 업장을 소멸해 줄 수 있는 그러한 일이 있어요. 그럴 수가 있어요. 한 달 전에 그런 경우도 봤습니다. 한 달 전에 생전예수재(生前豫修齋,산재)를 지내줄 때 어떤 애가 그랬어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인간 영혼의 실체를 규명 못하고 있었는데, 우리 영산불교에서 완전히 규명했다고 했지요. 영체(영적인 실체), 이것을 몰랐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불교가 윤회(輪廻)와 무아(無我)의 관계를 이야기하다가 보니까 앞뒤가 맞지를 않아. 무아(無我)이면서 윤회를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것을 부파 불교부터 연구해 가지고 내놓은 것이 소위 지난번에 이야기했던 '푸드갈라(pudgala)'이론이라든지, '식(識)이론'이라든지, '상속이론'이라든지 하는 온갖 이론이 나왔습니다.
대승 유식에서도 결국 아뢰야식으로 나오는데, 이렇게 밖에 말 못해요. 이렇게 밖에 말 못해. 그런데 이것이 다가 아니어요. 그 어떤 큰스님이 인간 영혼의 실체인 영체를 봤으면 답이 그냥 나오는 것인데 보이지 않으니까(그 영체를 본다는 것은 붓다의 경지이니까) 지금까지의 불교가 그렇게 되어버렸어. 그래서 심지어 기독교 측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사람의 영혼이 없으면 어떻게 되느냐 그거예요. 영혼이 없다고 한 것이 인도에서 우리 불교가 망한 정말 중요한 이유인데, 이렇게 되어가지고는 안 되지요.
지금까지의 불교가 그래요. 붓다(부처님)없고, 영혼이 없어. 지금 한국 종단을 대표한 모 종단에서 ‘영혼이 없다’고 정식으로 발표했습니다. 이건 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불교를 죽이는 이야기인 거예요. 여러분! 영혼이 없으면 천도(薦度)는 뭣 때문에 하고, 다음 생이 어떻게 있습니까? 나(我)가 없으면(영혼이 없으면), 삶의 의미도 필요 없는 것이지요. 살 필요가 없는 것이어. 영혼이 없는데 저 세상, 극락 운운할 자격이 없어. 무아(無我)를 그렇게 잘못 해석해 가지고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영산불교의 탄생은 굉장한 의미가 있습니다. 대단한 의미가 있습니다. 불(佛)이 되면(불과를 증하게 되면) 무량억종광을 방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 불과(佛果)를 이루었기 때문에 약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해주십니다. 삼계의 지존이신 부처님께서 오셔서 정수리에 앉아서 해주셔요. 그러나 세 번씩이나 불과(佛果)를 이루신 우리 미륵부처님이 오실 때에는 현지사로 오셔. 현지사 스님이 되셔. 그래서 불과(佛果)를 증하셔요.
(미륵부처님이 오시거든요. 불멸 후 3000년이라고 했는데, 북방의 불기로 보자면 지금 불기가 3000년이 넘어갔지요. 왔어야지요. 그런데 아직 오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현지궁 현지사에 계시거든요. 언제 오시느냐? 이것도 천기이기 때문에 말 못해요. 말을 못하지만 상당히 먼 훗날 오셔요. 먼 훗날. 100년 200년 300년 400년 후입니다. 그러나 오셔요)
그 분은 네 번째 불과(佛果)를 증하기 때문에 상당한 선정력(禪定力, 삼매의 힘)으로 청법 대중의 업장을 씻어 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만은 못합니다. 지금은 우리 부처님 법의 상속자인 태자가 와서 불과(佛果)를 증해버렸고, 문수의 법왕자가 불과(佛果)를 증했기 때문에 두 아들이 있어서 항상 계셔요. 그래서 무량광을 방광해서 많은 사람들의 업장을 씻어 주십니다. 우리 영산불교의 비밀이 이렇습니다.
영산불교에서 불공(佛供)을 올리는 것, 천도재(薦度齋)를 드리는 것, 기도를 하는 것, 심지어 사월 초파일 때 연등을 켜는 것 등등은 다른 절하고 비교가 안 됩니다 여러분. 스님이 이것을 비교하면 부덕할 것 같아서 말을 하지 않지요. 말을 못하지요.
예를 들면, 예수가 다시 사람 몸을 받아가지고 나와서 서울에다가 조그마한 예배당(교회)을 지었다고 합시다. 거기를 가는 것이 낫겠오, 아니면 그렇고 그런 목사가 잘 지어놓은 그 교회에서 예배를 보는데 내가 최고이고, 나한테 여기 교회 다니는 것이 최고이니까 이 교회로 오라고 해서 가는 그 신도도 있을 거예요. 어느 예배당으로 가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지혜가 있어야 되거든요. 스님들이라고 해서 다 똑같은 스님이 아니어요. 머리 깎았다고 해서, 이렇게 염의를 입었다고 해서 다 똑같은 스님이 아니어. 속을 들여다보면 천층만층이어. 갖추어진 실력 정도가 또 그래. 우리 영산불교 현지사가 정식으로 탄생한지 5년 되었습니다. 미륵부처님이 다시 스님이 되어 현지사로 오셔서 불과(佛果)를 증하여 우리 영산불교 현지궁 현지사의 맥을 이어간다고 할 때, 이게 얼마만큼 무서운 이야기입니까? 현지사가 이런 교단입니다.
그리고 48년 동안의 설법은 진짜 핵을 말씀하시지 않으셨어요. 진짜 핵을 우리한테 넘겨주신 거예요. 그 핵이 뭐냐?
첫째, 부처님 세계, 상락아정(常樂我淨)의 열반의 세계입니다. 이 부분이 지금 빠졌거든요. 이 부분을 영산불교에서는 정말로 잘 압니다. 이것이 핵입니다.
둘째, 인간 영혼의 실체(영체)입니다. 우리는 영체에 대해서 잘 압니다. 지금까지 그 어떤 사람도 몰랐어. 그 유명한 팔조의 스승이라고 하는(조사라고 하는), 제2의 석가라고 하는 용수도, 그 후 무착, 세친도, 중국으로 와서 달마도, 혜능도, 임제도 전혀 몰랐어. 우리나라에서 정말로 불교계의 고금 독보적인 존재라고 하는 원효도 몰랐어. 영체에 대해서도 몰랐고, 부처님이 마음 밖도 아니고 마음 안도 아니고 유·무를 초월한 무아속 절대세계에 여여히 계신다는 것은 까마득히 몰랐어. 그것을 절대 몰랐어. 이것은 스님이 여기서 분명히 이야기해 주는 거예요. 자신 있게 이야기해 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 위대한 불교가 이렇게 왜곡되고 왜소화(矮小化) 되어 버렸습니다. 앞으로 영산불교의 교학이 전부 틀을 갖추고, 많은 주석서가 나오고 할 때에, 이 영산불교 안으로 모든 불교가 · 종파가 통일이 될 거예요. 그 깊은 철학사상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모든 종교가 영산불교로 통일 될 수도 있어요.
이것은 김일부씨가 하는 말이어요. 100여 년 전에 왔다 가신 김일부씨라고 하는 정말로 대단한 역학자가 있었어요. 그분이 앞으로 하나의 종교로 통일 될 것이라고 했어요. 하나의 종교로. 지금 이런 예언이 많아. 새로운 불교가 탄생해서 세계를 지도한다고 하는 예언서가 있어. 이건 영산불교를 이야기한 거예요.《열반경》이야기도 영산불교를 이야기한 거예요.
거듭 이야기하지만, 초기 근본불교인 부처님 당시 그 교단에서는 무량광으로 중생의 업장을 씻어주지 않으셨어요. 그 모든 것은 영산불교, 3000년 후 당신의 아들이 불과(佛果)를 증할 그때에 당신이 오셔서 하실 것으로 이야기 하셨어요. 그래서 지난 수 천 년 동안의 불교계의 세계관과 수행법이 완벽해지고 달라지게 되어있어. 이제는 반 조각 진리가 아니라 만자(滿字)의 가르침이 될 거예요. 만자(滿字), 완전한 진리의 가르침이 많이 전도가 될 거예요. 그걸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이 감로의 광명(대열반광, 무량억종광),《화엄경》을 보면 해(海), 해인(海印)이라고 되어 있어요. 해인(海印)인 거예요. 해인(海印). 여의주적으로 마음대로 모두를 만들 수 있고, 마음대로 할 수 있어. 이 무량광으로요. 이것으로 불보살님이 상락아정의 정토세계를 만든 거예요. 보면 그 무량광으로 못할 일이 없어. 업장을 씻어주기도 하고, 업장을 소멸해 주기도 하고, 불교에 반(反)한 그 많은 외도들, 외도의 괴수들을 이것으로(무량광으로) 제압하고, 이것으로(무량광으로) 49제 때 혹은 천도재 때 귀신 영가를 잡아옵니다.
이 세상에 가득한 그 귀신들, 그 영가들 중에서, 무주고혼들 중에서 그 집 조상님 한 사람을 수배 못했을 경우, 그 많은 무주고혼들에다가 이 무량광을 쫘~악 비추면 그 조상이 툭 튀어 나온다고요. 이 무량광은, 그러니까 이 빛은 부처님의 지혜예요. 이 무량광은 못할 일이 없는, 능력이 있는 큰 힘이에요. 여기서 지장궁으로, 그러니까 명부(冥府)로 그 많은 무고혼들을 갖다가 연행할 경우, 너무 많아서 지장궁의 신장들이 와도 안 될 경우가 있어.
이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이 뜨셔서 작업하실 때 이런 경우가 있어. 그것은 빛으로 된다고. 지옥에 빛으로 길을 만들어 줘가지고 그리 쏘면 그 수많은 무주고혼들이 그 지장궁으로 갈 수가 있어.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어. 이 무량광은 천 만 억 가지의 색깔이고, 그러면서 투명한데, 밝기는 섬광(閃光)보다도 더 밝다고 했지요. 강하기도 섬광 이상으로 강하고요. 중생들은 물론, 외도의 수장들도 눈을 뜨면 실명이 되고 재가 되어 버립니다.
그러니까 그 무량광을 외도의 수장들에게 쏴버리면 부복해버려. 어찌할 수가 없어요. 그런 빛입니다. 그런 빛으로 붓다의 몸은 이루어져 있어요. 모든 붓다는 그렇게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모든 붓다끼리는 그런 무량광 빛으로 연결되어 있어. 이걸 상속되어 있다고 해. 부처님들은 빛으로(무량광으로) 상속되어 있어요.
이 무량광의 빛깔 수가 천 만 억 가지가 되듯이, 천 만 억 가지의 일을 할 수가 있어요. 어떨 때에는 두 색깔을 뽑아가지고도 하고, 또 어떨 때에는 다섯 색깔을 뽑아가지고 조합해서 일을 하시기도 합니다. 못할 일이 없어. 그래서 이것을 해인(海印)이라고 해. 붓다는 해인(海印)을 지니고 있어요. 그 말이 무슨 말이냐? 붓다는 무량광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이어요. 무량광으로 이루어져 있다. 무량광을 방광할 수 있다. 그래서 여러분이 지은 죄업을 무량광으로 씻어 줄 수 있어요.
큰 성인(聖人)의 출현을 불경(佛經)이나, 심지어 여러 종교에서, 유가(儒家)나 도가(道家)나 성경(바이블)까지, 혹은 주역(周易)같은데, 혹은 어떤 선지자가 쓴 예언서인 정감록이라든지 격암록이라든지에 예언을 해놨습니다. 알았습니다. 부처님 가신 후 3000년 쯤 되면 메시아가 오신다는 거예요. 그런데 어느 종파에서는 자기들의 교주가 메시아인 줄 알고 있지만 아니어. 삼신(三身)을 갖추어야 돼. 삼신(三身)을 갖춘 어른이 최고의 어른(성현)이어요. 그 누구도 삼신(三身)을 갖추지 않았어. 다시 말씀드립니다. 삼신(三身)은 법신불 보신불 화신불입니다. 붓다는 이 삼신(三身)을 갖추고 있어.
‣두 번째, 법신불(法身佛)입니다.
법신불은 뭐냐? 우주와 법계(온 법계), 우주를 넘어간 온 법계의 실상(핵, 실체), 그것과 하나가 되어버려야 돼. 붓다는 그 무량광 빛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금방 하나가 돼. 이것들의(본체의) 색깔은 자성광이기 때문에 그냥 흡수해 버려요. 하나가 되어버려. 그리고 이 빛이 우주와 법계에 충만(充滿)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주인이 되었기 때문에) 이 우주가 지니고 있는 힘을 쓰는 거예요. 이게 법신불이어요. 이건 형상이 없어. 이것은 우주적이어요. 붓다가 되면 자기 법신불이 생깁니다. 청전법신비로자나불 안에 생겨요. 다 있어.
‣세 번째, 보신불(報身佛)입니다. 보신불은 뭐냐?
절대계에 이 법신불과 똑같은 능력을 지니고 있되, 눈 코 귀 입이 있는 부처님, 그것을 보신(보신불)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보신불을 몰랐어요. 2500년 3000년이 흘렀는데 보신불을 정확히 몰랐어. 무착, 세친 대에 와서 미륵보살님의 말씀을 듣고《화엄경》과 모든 경전을 연구해서 삼신을 내놨지요. 그러나 그 삼신설(三身說)은 와 닿지를 않아. 지금 영산불교에서는 아주 자세히 이야기하잖아요. 그때는 이렇게 못했어. 그러니까 여러분들이나 대학원생들이 삼신(三身)을 가지고 박사 논문을 쓴 그 논문은 아니어. 와 닿지를 않아. 모래 씹는 맛이어요.
보신은 법신과 같은 능력이 있되 눈 코 입이 달려있는, 모습을 지닌 자기 부처를 말합니다. 이게 진짜 부처입니다. 우리 현지사에 원만보신노사나불이 와 계시잖아요. 그리고 좌우보처 문수·보현의 원만보신이 또 시립하고 계시잖아요. 그 삼계의 많은 붓다의 보신불들이 음력25일 날 현지궁 현지사로 전부 오시잖아요. 혹은 음력 초하루 날은 법신불 속으로 모두 들어가 버리잖아요.
그때의 능력은 우주적이고 온 법계의 능력을 지니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은 말세(오탁악세)이지만, 그래도 지금은 부처님의 가피로(은혜를 입어서) 잘 사는 거예요. 왜냐? 당신들의 두 아들이 왔기 때문에 오셨어. 이런 어른이 올 때에는 세상이 태평하다고 했습니다. 태평한 거예요. 지금 잘잘한(사소한)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닌 거예요. 부처님들께서 오셔서 작업을 해주시기 때문에 세상이 그래도 큰 불행은 카바 해가는(막아가는) 거예요. 지금처럼 잘 살고 있는 적이 있습니까? 앞으로 더 잘살아.
성인(聖人)은 붓다예요. 삼신(三身)을 갖춘 붓다가 대성자(성인)인 거예요. 그러면 어디서 오느냐? 역경(주역)에서도 간방에 위치한 한반도에서 출세한다고 했어요. 계두왕이 다스리던 곳, 한반도에서 나오신다. 《화엄경》에 해인(海印)을 가지고 성인(聖人)은 오신다. 성인(聖人)은 해인(海印)을 지니고 있다. 언제? 부처님 입멸 후 삼 천 년 쯤에 오신다. 성인 붓다는 이자삼점(伊字三點, ∴)과 같다. 삼신(三身)을 갖춘 어른이 성인(聖人)이다. 내가 다시 올 때 묘한 감로(무량광, 해인)를 내어서 중생의 업장을 멸해 줄 것이다. 지금 그러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어느 절에 가면 업장을 씻어 준다더라 하는 절이 있습디까? 그런 말 들어봤습니까? 영산불교 현지사 이후부터 이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승려들이 공부할 때, 저 애는 마장이 너무 심해서 도저히 공부하기가 어렵다고 판단이 될 때, 큰스님이 ‘너 어느 기도처에 가서 100일 업장소멸 기도하고 오너라’그럽니다. 100일 1,000일...아무리 해도 업장소멸 할 수 없는 거예요. 정화는 되지요. 업장소멸은 안 되는 거예요.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세세생생 불구로 태어날 사람, 불구도 이중 삼중 사중고의 불구로 태어날 사람의 업장 정도는 우리 원만보신노사나불 만이 해주셔요.
오여래라든지, 기타 여러 붓다님들은 그렇게 큰 지중한 업장이 아닌 정도는 소멸해 주셔요. 그러나 크고 지중한 업을 짓게 되면, 구체적으로 말해서 영체에 30㎝ 정도의 철판으로 가둬져 있어. 그 철판을 잘라서 그 철판 조각을 삼매화에 넣어서 재로 만들어 줘야 되고, 그러면 또 다시 다음단계도 보면 쇠사슬로 얽혀 있고, 고무 같은 그런 판이 또 덮혀 있고, 또 그것을 씻어주고 또 소멸해주고 또 소멸해주고... 이렇게 여러 번 많이도 해서 그 지중한 중생의 업장을 씻어주는 것을 봤습니다. 이건 현지사 밖에 없어. 이것은 영산불교에서 만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오늘이 음력2월이거든요. 4월 초파일 날 우리 영산불교 현지사에서는 대경사가 있습니다. 아셨지요? 여러분 아시지요? 석가불탑을 모시는 거예요. 다보불탑도 이 세상에서(지구촌에서) 불국사 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우리가 다보불탑을 조성해서 점안(點眼)을 해놨습니다. 저기는(경주 불국사의 다보탑은) 점안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 영산불교 현지궁 현지사의 다보불탑은 점안이 되어 있어요. 점안을 하게 되면 어떻다는 것을 전번 시간에 이야기했을 거예요. 석가불탑이 4월초파일 날 이루어집니다. 불국사의 석가탑은 석가탑이 아닙니다.
그것은 석가탑이 아닙니다. 석가불탑은 우리 부처님께서 사바세계의 교주이시기 때문에 영축산 허공에 영산궁과 함께 있습니다. 우리 부처님께서는 거기에도 계시는데, 지금은 순전히 여기 현지궁에 계십니다. 영산궁에 석가불탑이 있습니다. 그 석가불탑을 그대로 모방해서 지금 만들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4․8때 여러분들이 오셔서 예배할 수 있는 석가불탑과 다보불탑이 있는 데는 지구촌에 우리 영산불교 현지궁 현지사 뿐일 거예요. 여러분들이 이 석가불탑을 건립하는데 동참해 주시기 바라고, 그날을 위해서 십만등(十萬燈)을 켜는데 정말로 동참을 해주십시오.
왜 그러느냐? 우리 중생들은 이 고해(苦海)에서 살다가 보니까 지혜가 없어요. 항상 마음속이 시끄러워 가지고 번뇌 망상이 들끓어서 지혜가 있을 수가 없어. 법문을 해도 해도 잘 알아듣지도 못하시는데, 이렇습니다. 스님이 석가불탑에(우리 부처님 불탑에) 십만등 등등에 동참하라고 권선(勸善)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그러니까 우리는 자식이나 애인을 잃고 마음 아픈 꼴을 당하지 않아야 됩니다. 어미 소가 팔려간 새끼를 생각해서 닷새 일주일이 지날 때까지도 울다 울다 지쳐서 목이 쉽니다. 팔려간 어린 송아지 새끼는 새끼대로 엄마가 보고 싶어서 울기를 피를 토할 때까지 울다가 쓰러집니다. 우리는 다음 생 다음 생에 미래제가 다하도록 이런 운명을 지니고 나오면 안 돼. 그렇지요?
사업에 실패하고, 시험에 낙방하고, 연애에 실패하고, 그래서 낙담하고 절망해서 죽으려고 합니다. 다 원인이 있어요. 실패한 원인이 있거든요. 복을 못 지어서 그렇습니다. 과거 생에 선근 공덕이 없으면 그래요. 몸에 큰 병이 들거나, 혹은 일생을 불구로 태어나서 몇 번씩이나 자살을 시도하고 사는 사람도 있어. 한편, 지질이도 가난하게 태어나서(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먹고 입고 자는데 있어서 걱정이 병이 되어 사는 사람이 있어. 아무리 뛰고 날아도 안 돼. 돈이 안 모아져. 병약하고, 얼굴이 정말로 못 생긴 추남추녀(醜男醜女)로 태어나는 사람도 있어. 이렇게 태어나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살 수 없을 정도로 평생을 사는 사람들, 언제나 근심 걱정 슬픔 고통 초조 불안 속에서 사는 운명, 이 운명(숙명)을 바꿀 수는 없는가? 혹은 이렇게 태어나지 않을 수는 없는가?
다음 생 다음 생에 영원히 이렇게는 태어나고 싶지 않은데, 그런 길은 없는가? 이런 고통이 이중 삼중으로 겹쳐오면 이건 참말로 자살할 뿐입니다. 이승도 다음 생도 영원히 행복하다할 정도로 안락하게 살 수 있는 길은 없는가? 영원히 극락에서 살 수 있는 법은 없는가? 이거 있습니다. 있어요. 이렇게 불쌍하게 태어나고, 불쌍하게 사는 것은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과거 생에 우리가 오역죄를 지었다든지, 십악업 죄를 지으면 이렇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한테 ‘오역죄를 짓지 말고, 십악업의 죄를 짓지 말고, 오계십선(五戒十善)을 지키시오’하고 스님이 간곡히 권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것을 가볍게 들어버리고, 집에 가서 하루 이틀 일주일 열흘 지나버리면 다시 원생각의 상태로 돌아와 버리거든요. 그래서 죄를 무섭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사는데, 이건 아닙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지금 이 붓다 회상에서 하나의 큰 불사(佛事)를 내걸었다 할 때, 이때를 놓치면 안 되어요. 이건 물실호기(勿失好機)예요. 정말로 좋은 기회예요. 내가 살 수 있는 기회예요.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붓다 회상에서 조상을 위해 천도재를 한다? 다 지옥 아귀 축생에 떨어진 분들이어요. 혹은 명부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무주고혼으로 있어. 이런 분들이어요. 이런 분들을 위해서 많은 절에서 천도재를 하지요. 영혼이 없다고 하면서도 해. 앞뒤가 맞지 않지요. 붓다회상에서 천도재를 하면 그 효과는 다른 절의 것과 비교할 수가 없어요. 백 천배 이상의 효과가 있음은 물론, 비교가 안 돼. 그 지옥에서 벗어나니까요. 짐승세계, 아귀세계에서 벗어나 하늘까지 가니까요. 그런데 이걸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는 분이 있어요. 우리 착한 분들은 스님말씀 대로 많이 했습니다. 붓다회상에서의 불공(佛供)은 진짜 부처님한테 공양드리는 거예요. 우리 붓다 회상의 불공은 진짜 부처님한테 공양 올리는 거예요. 기도도 그렇고요.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십만등 불사, 부처님께서 전번에 말씀하신 것이 있어. 발원을 쓰라고 해라. 그러면 나는 100등을 한다는 사람도 있어요. 그러면 100등을 하겠습니다 하고 그냥 우리한테 넘겨줄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하루쯤 시간을 내어가지고 여러분이 사람 몸 받아 온 이후로 잘못한 것을 생각해봐. 크게 잘못한 것은 뭘 죽인 것이거든요. 우리 여자분들 있잖아요. 낙태로 인한 수자령 영가. 그 부분, 그거 안 되거든요. 그 다음, 열두 띠 짐승을 죽이면 안 돼. 원한이 맺어져. 원결이 맺어져요. 열두 띠 동물들은 뭣이 들어가 있다고? 영체(영혼체)가 들어가 있습니다. 그 짐승을 죽이게 되면 나하고 반드시 원결이 맺어집니다. 그 사람한테 반드시 죽게 되어 있어.
엊그제 무슨 택배업에 종사하는 30대 청년이 아마 타살 당했다고 하지요? 그 CCTV에 혐의를 둘만한 사람이 있는가 봐요. 포착이 되었는데, 아마 그 사람이 30~40대라든가 기회를 보면서 졸졸 따라다니는 사람이 있었어요. 결국 그 사람을 죽였는데, 지금 수배하고 있는가 봐요. 여러분, 반드시 그렇게 됩니다. 이게 인과(因果)입니다. 인과법. 이 인과법이 우주의 법칙이어요. 반드시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는 거예요.
내가 지은 업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아. 반드시 과보를 받아. 이것이 전번에도 말씀드린 '카르마의 법칙'이라고 했지요. 우주의 법칙이어 이것이. 우주의 법칙이어. 그런데 부처님만이 그 업을 씻어 준다고요. 오직 부처님만이. 오직 부처님만이 정업을 씻어 줄 수 있어. 소멸해 줄 수 있어. 그렇지 않으면 그 어떤 누구도 안 돼 이것은. 한다고 시도한 사람은 오히려 죄를 짓는 거예요. 큰 죄를 짓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는 붓다 회상이기 때문에 천도도 해주는 것입니다.
그 조상이 왜 지옥을 갔습니까? 그만큼 죄를 지었으니까 지옥을 가는 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지옥에서 구원해 주냐고요. 이건 오히려 큰 죄인 거예요. 그러나 우주자체의 진리와 하나가 되어버린 붓다가 연기법(緣起法)과 하나가 되어버리고, 온 우주의 힘을 쓸 수 있고, 그 이치에 통달해 있고 하신 분이 (천도재를 집전)하실 때에는 반드시 업의 그물에 걸치지 않도록 하면서 권해주는 거예요. 지혜로요. 그렇지 않는 한 이것은 시도할 것이 못 되요.
이것은 큰 죄를 짓는 거예요. 다른 절에서 몇 백 만원씩 받아가지고 천도재 했으면 책임을 져야 되는 거예요. 책임을 못 지고 능력이 없으면서, 영혼이 없다고 하면서, 우리 현지사에서 천도재 하니까 지금 마구 천도재를 하는 거예요. 이건 아니지요. 이것은 자가당착(自家撞着)이지요. 또 그렇게 하면 안 돼. 크게 업을 짓게 돼. 다음 생의 과보는 이야기를 접어두더라도, 그 절이 불러놓고 처리를 못했으니까 이 영가들이 떠나지를 않아. 절이 아마 귀신의 집합소가 돼. 그러면 기가 탁해. 아주 탁해. 여러분, 우리 현지사에 와 보세요. 공기가 얼마나 맑고 싱그러운가.
여러분한테 꼭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결점이 있지요. 결점이 누구나 다 있습니다.
▸우리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결점을 보완하도록 해야 돼. 이것을 요즘 말로 자기계발(自己啓發)이라고 하지요. 자기계발(自己啓發), 우리는 꾸준히 자기의 단점을 찾아서 보완해야 됩니다. 부단히 자신을 성찰해서 약점을 고치고, 많은 장점들을 지녀야 되요.《화엄경》〈입법계품〉의 가르침이 그것입니다.
▸누구나 자기 말을 하면 옳다고 따라주는 사람이 되어야 돼.
▸부지런하고 친절하고 남의 흉을 볼 줄 모르는 착한 사람이 되어서 열심히 살아야 되요.
▸때로는 불쌍한 이웃, 착하지만 불쌍하게 사는 이웃을 우리가 힘닿는 대로 반드시 살펴줘야 되요. 힘을 보태줘야 되요. 위해줘야 되요. 사람으로 와서 이런 좋은 일을 못하면 이건 아주 잘못 산 인간생활(인생)일 거예요. 부처님은 이것을 아주 강조하시고 가끔 말씀하신다고요. 네가 와서 좋은 일을 한 것이 뭐냐? 열시왕이 맨 먼저 물을 거예요. 열시왕이 더 잘 알고 물어. 대답을 하지 않더라도 열시왕은 다 알아. 딱 나오니까. 이웃을 위해서, 불쌍한 이웃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힘써 애썼다면 그건 칭찬 받는 거예요. 그건 참 부처님으로부터도 칭찬 받는 거예요.
▸남이 모르게 음덕을 쌓을 줄도 알아야 되고, 소위 자기만을 아는 이기심에 가득찬 그런 삶을 살아서는 안 돼. 모두가 다 자기만을 알지. 너무 애고해. 너무 탐심이 많아. 자기만을 생각하는 것, 이건 아니어. 이건 보살이 될 수 없어. 보살은 안 그래.
▸또 성질, ‘욱~!’하는 성질, 이런 버릇을 고쳐야 돼. 한번 성질을 내면 꼭 뱀 몸을 받는다고 해. 그러니까 이런 성질도 우리가 고쳐야 돼. 애써 고쳐야 돼.
▸남을 미워하지 말고. 미워하면 언젠가 그 사람은 나를 미워하게 돼. 시비하게 되고. 시비는 치고받는 싸움으로 돼. 그리고 나를 음해하고 비방하고 흉보고 다녀. 그러니까 아예 남을 미워하거나 그러지마. 이러기가 참 어려워. 이것을 고치기가 참 어려워. 그러나 고쳐야 돼.
▸게으르지 말아야 돼. 게으름이 습이 되면 이건 고칠 수가 없어. 모든 면에서 성공할 수가 없어. 게으름 병을 고치지 못하면 다음 생도 다음 생도 하는 일마다 안 돼.
▸우리는 항상 부처님 같은 거룩한 대성자를 생각해야 돼. 자기도 그러한 위대한 인간이 되기를 마음먹고, 열심히 자기의 약점(흠점)을 찾아서 고쳐 나가야 돼.
▸나보다 인간성이 더 나은 이를 존경할 줄 알아야 돼. 따라야 돼. 그 사람의 장점을 보고 내가 배워야 돼.
▸이생(금생)을 잘 살려면 남보다 나은 실력자가 되어야 돼. 다음 생도 다음 생도 세세생생 잘 살려면 흠점이 없는 사람이 되어야 돼.
▸그러면서 부처님 같은 거룩한 분을 생각하고, 자기도 그런 사람이 될 것이다고 결심하고, 그때그때마다 진심어린 염불을 할 줄 알아야 돼. 그런 착한 사람이 되게끔 힘을 달라고 기도할 줄 알아야 돼.
우리는 과거 생에 많은 업을 지었습니다. 중생들은 온갖 업을 지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윤회 윤회하다가 지금 사람 몸을 받았습니다. 사람 몸을 받아가지고 그래도 전생에 선근이 있어서 부처님 회상을 만나고 지금 부처님 말씀을 듣는 거예요.
▸그러니까 십만등을 밝히는데 있어서, 꼭 여러분들은 이건 정말로 마지막 기회이다. 이건 정말 나에게 오는 행운의 기회다고 생각해서 최선을 다해야 돼.
▸수자령, 열두 띠 동물을 죽인 원결, 그 원결(원한)이 맺혀지면 반드시 반대의 현상이 오는 거예요.
▸또 나로 인해서 그 사람의 재물이 크게 없어졌다든지, 그러니까 내가 그 사람의 재물을 훔쳤다든지, 그 사람에게 성적(性的)으로 크게 상처를 주었다든지, 거짓말을 해서 그 사람에게 큰 손해를 주었다든지 하게 되면 원결(怨結)을 짓게 돼. 원결을 지어. 다음 생에는 꼭 반대 현상으로 돼.
▸무엇보다도 부처님과 그 법을, 그 교단을 음해하고 비방하고 능멸하고 하는 것은 극무간지옥을 가. 중생을 오도(誤導)하는 죄는 그래.
▸그 다음에 부모를 상대해서 학대하고, 부모를 학대하다 못해서 흉기로 살해하는 것, 이건 천지가 용서를 못한다고 그래. 우리는 전생에 이런 짓을 한 사람이 미쳐서 오면 고쳐주지 않습니다. 이건 부처님께서도 못 고쳐주게 하셔. 이 사람의 것은 천도재도 못하게 해. 딱 빼놓습니다. 이런 거예요.
이런 업을 지은 우리는 가령, 100등을 켰다 하게 되면, 나는 수자령 다섯 사람을 그렇게 목숨을 앗았는데 50등을 해야지. 그렇게 배당을 할 수 있어. 1,000등을 한 사람도 있어. 신심이 장하면. 돈이 있어서가 아니어. 1,000등 한 사람도 있어. 이건 마지막 기회예요. 300등을 여기다가 하자. 일일이 그렇게 쓴단 말이어. 300등은 이렇게 해주시오.
나는 열두 때 동물을 무수히 죽였습니다. 무수히 죽였습니다. 살아 있는 닭(생닭) 수 십 마리를 펄펄 끓는 물속에다가 집어 쳐 넣어서 죽인 적도 많고, 이건 앞으로 자기가 꼭 그렇게 죽을 테니까 이 업은 소멸해야 돼. 이때 밖에 없습니다. 이때 밖에요.
그러면 열두 띠 동물을 그렇게 죽인 일이 있다면(그런 죄업을 지었다면), 이것도 한 300등 혹은 30등 이렇게 해요.
그 다음에 주지 않는 물건을 훔치거나 남의 재물을 갖다가 사기(詐欺)한 그런 죄업도 지은 적이 있을 거예요. 여러분, 앉아서 내가 정말로 어떻게 살아 왔나 하는 것을 쭈~욱 성찰해 보십시오. 그런 죄를 지었으면 또 10등, 혹은 100등, 이렇게 해요.
성적인 것, 거짓말 한 것, 부처님 교단이나 부처님의 법을 능멸 모독한 것 등은 전생에 외도의 성직자가 되어가지고 이런 업을 지었거나, 혹은 지금까지의 불교 성직자들은 이 부분에 많이 걸립니다.
부모를 학대한 죄 몇 등, 또 불효한 죄 몇 등을 밝힙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 ‘부처님! 나는 다음 생에 부처님 회상을 만나겠습니다. 큰스님 말씀을 들어보니까 부처님 회상을 만나야 내가 윤회를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으니, 나는 부처님 회상을 만나야겠습니다. 앞으로 나는 정말로 부처님 가르침대로, 큰스님 가르침대로 살겠습니다’ 하면, 한 100등은 또 다음 생에 붓다 회상 만나기를 발원합니다.
‘나는 지금까지 지은 죄를 참회합니다. 앞으로 정직하고 깨끗하게 살겠습니다’ 하고 또 한100등을 쓴단 말이오. 이렇게 하다가 보면 여러분, 한등 두등 열등에 그친다면 말이 아니지요.
‘저 스님은 내가 돈도 하나도 없는데, 내속을 통 모르고 저런 말씀을 하신다?’ 속으로 이렇게 말씀하실 분도 있을 테지요. 그러나 여러분! 성의가 있으면, 정말로 부처님의 가르침이 옳다고 생각하는 이때, 이때의 생각이 최선이어요. 집에 가서 하룻밤 지나버리면 생각이 또 틀려지네. 닷새 지나가면 또 틀려버려. 잊어버려. 지금 큰스님의 법문을 들을 때, 하! 옳다. 이게 진짜 마음이라. 이때 정해버려야지. 그래서 우리 영산불교 신도 분들은 10만등(十萬燈)을 켜지 못하면 안 돼. 이건 안 됩니다.
우리 세존은 지존이시어요. 삼계의 지존이시어. 미래제가 다하도록 삼계의 지존이시어. 모든 붓다의 아버지시어. 붓다의 붓다이시고 최초 불이시어. 그 많은 불보살님은 전부가 다 우리 세존의 가피로 된 거예요. 전부 그래. 그러니까 우리는 작품이라고 그래. 부처님세계에서는 붓다는 부처님의 작품이라고 그래. 그 작품이라고 하는 의미가 있어. 이건 깊이 말할 수가 없어.
그분의 지구촌에 오직 유일한 탑(선정에 들어가시려면 탑 속에 들어가셔), 그 탑을 만드는 이 거룩한 불사에 동참을 해야 되고, 이 4․8절(우리 부처님 오신 날) 탑을 개원하는 날 우리가 등을 켜야 돼.
그러면 부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나? 그 발원을 들어주신다고 하셨어요.
시간이 다 되었지요. 좋은 이야기를 이다음에 하겠습니다. 우리 신도분들, ‘스님 말씀을 따라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고 약속을 합시다. 성의가 있으면 할 수 있습니다. 이때 못하면 아닙니다. 안 됩니다. 스님이 5년 동안 법문한 가르침, 그 큰스님의 가르침은 사실입니다. 진리입니다. 전혀 틀리지 않을 거예요. 꼭 그렇게 아십시오.
오늘 처음 오신 우리 신도 분들, 들어보니까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지만, 조금은 감이 올 거예요. 스님 말씀이 옳은 것으로, 정말 따라서 행할 만한 말씀인 것으로 감이 올 것입니다. 꼭 그렇게 아시고, 다음에도 오시고 다음에도 오십시오. 그래서 많은 업장 소멸 받아 가시고, 또 복도 받아 가십시오. 그래서 금생도 다음생도 다음생도 우리가 근심 걱정 있게 사는 인간으로 오지 말고, 좋은 집안에서 건강한 몸을 지니고, 지혜롭고 총명한 머리를 지니고, 복을 많이 받아서 나와야지요. 그러다가 윤회를 벗어나고, 완전히 삼계를 탈출할 수 있는 극락정토에 가서 영원히 살 수 있는 그 길이 있습니다. 분명히 있습니다. 반드시 있으니까 그렇게 살아 주시기 바랍니다. 아셨지요?
전부 합장하시고, 부처님 염하겠습니다.
나무 영산불멸 학수쌍존 시아본사 구원실성 석가모니불...
천상천하무여불 시방세계역무비 세간소유아진견 일체무유여불자
고아일심귀명정례 終
2011년 11월 25일 금요일
[법문글]2011년2월27일 현지사 자재만현큰스님 정기법문 부산편
자재 만현 큰스님 정기법문
현지사 부산편
부산분원 법당의 불보살님/ 점안의 진수/ 탑돌이/ 십만등불사/ 개정 비교종교학/ 염불삼매에서 뵐 수 있는 부처님은 어떤 붓다인가/ 생전예수재/ 관음태교
신불기14년(불기2555년 신묘년 음력1.25(2011.2.27.일))
부산 분원 다섯 부처님 점안식 및 대법회
오늘은 신묘년 정월 25일 대재입니다.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현지궁 현지사 대재일입니다. 축원을 해드릴 테니까 모두 합장을 해주세요.
『우리 교주 불세존! 삼계의 지존이시고, 남섬부주 대교주이시고, 최초불이시고, 붓다의 붓다이신 대자대비하신 우리 부처님! 열여섯 사부님 부처님! 그리고 삼계의 모든 붓다님들! 오늘 사바세계 남섬부주 해동 대한민국 부산, 영산불교 현지궁 부산 분원에서 대설법회를 갖고 있습니다.
오늘 동참해 주신 전국의 착한 우리 현지사 단월님들, 부처님!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부처님! 크신 위신력으로 가피력으로 오늘 동참해 주신 우리 단월님들 신묘년 한 해에도 내내 건강하고, 삼재팔난 관재구설 모든 액살 만나지 않고 심중소구 소망사 모두 성취하기를 발원을 드립니다. 가피주소서 부처님. 특히 대열반광 무량억종광을 놓으셔서 오늘의 청법 단월님들의 다겁생래 죄업장 많이많이 씻어주소서.
우리 영산불교 현지궁 현지사에 크고 작은 시주해 주신 고마운 분들, 그리고 연등공양 1년등 사업등 공양 올려주신 분들, 자원봉사 해주신 분들, 거리포교 해주신 분들, 부처님께 음성공양 올려주신 분들, 이 모든 착한 우리 현지사 단월님들, 과거 생에 금생에 와서 지은 신․구․의 삼업 죄장 지중한 죄업장 많이많이 씻어주소서. 그리해서 금생도 잘살고 다음생도 잘살고,《열반경》의 말씀처럼 기어이 불도를 이룰 수 있도록 가피주소서. 사바세계의 자재 만현 간절히 발원을 드립니다. 섭수해 주소서 부처님들!!』
어제는 우리 부산 분원의 탱화와 불상, 훌륭하게 점안을 마쳤습니다. 오여래부처님 대신에 다섯 부처님을 모셨습니다. 여러분, 아침에 가셔서 모두 부처님께 오체투지 인사를 드렸지요.
○불상을 설명해 드립니다.
가운데 분이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부처님을 위시해서(기준으로 해서) 왼쪽에 다보여래부처님, 오른쪽에 보명여래부처님, 왼쪽에 혜위등왕불 미륵보살님, 오른쪽에 시방여래불 지장보살님을 모셨습니다.
불상이나 탱화에 있어서 전번과 다른 점이 금강좌로 했다는 것이 다릅니다. 금강좌. 원만보신부처님들은 항상 금강좌에 앉아 계십니다. 금강좌가 다릅니다. 전번에는 연꽃무늬 대형으로 했지요. 이번에는 금강좌로 바꾸었다는 것. 그리고 이제 스님이 말씀하겠지만, 거룩하신 우리 부처님들을 모시는 탱화이기 때문에 아마 어디에도, 어느 절에도 없는 금(金)탱화로 모셨습니다. 금(金)탱화입니다.
오늘 처음 나오신 분들이 있을 것 같아서 말씀드리는데, 우리 영산불교 현지궁 현지사의 불상이나 탱화는 머리 깎은 불상입니다. 두 눈은 뜨고 계십니다. 이점이 다른 어느 사찰의 불상이나 탱화와 다른 점입니다.
○그 다음, 탱화를 간단히 설명해드립니다.
이 후불탱화 속에는 스물 네 분의 붓다님들이 계십니다. 스물 네 분의 붓다님. 열네 분의 보살님들이 계십니다. 탱화 속에는 오여래를 모셨습니다. 앞쪽으로 석가모니불, 좌우보처 문수․보현보살님, 석가모니부처님을 기준으로 해서 왼쪽에 아미타부처님, 좌우협시로 대세지․관세음보살님, 왼쪽으로 약사여래부처님, 좌우보처로 일광․월광보살님,석가모니부처님을 기준으로 해서 왼쪽으로 마지막 다보여래부처님, 좌우보처 상원왕불․유리왕불보살님, 오른쪽으로 보명여래부처님, 좌우보처 장엄승불․사자원불님을 모셨고, 뒤쪽으로는 지장보살, 좌우보처에 자원행․선행장보살님을 모셨고, 광명불, 좌우보처 화광불․명상불, 자재통왕불, 좌우보처 정행․상행보살님, 혜위등왕불 미륵보살, 좌우보처 대원행․대행성보살님, 맨 오른쪽으로 칠구지불모왕불, 좌우보처 대행현지보살․법상불님, 그쪽의 사해용왕대신, 그리고 정명보살님을 모셨고, 미륵보살님 쪽으로 본화 보살이 두 분계십니다.
그리해서 부처님이 스물네 분, 불격을 갖춘 보살님들이 열네 분, 이렇게 후불탱화는 되어있습니다.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해드리겠습니다.
○그 다음, 칠성탱화입니다.
소위 칠성탱화, 치성광여래부처님을 모시는 탱화, 좌우보처 양대보살이 있고, 칠원성군(일곱 분 보살격의 성군)들을 모셨고, 그 앞에 지장보살 지장단, 좌우보처 두 보살, 열시왕(여러 판관들), 산왕불 쪽에는 좌우보처 양대보살, 그리고 대한민국 명산대천의 몇몇 산왕대신을 모셨습니다. 태백산 함백산 인왕산 계룡산 지리산 한라산의 산왕대신님들(보살임)을 모셨고, 화엄성중의 사천왕(아라한급)을 위시해서 104위 화엄성중을 모셨습니다.
탱화에 이런 불․보살님들을 모시고, 어제 점안을 훌륭하게 마쳤다고 하는데, 어떻게 훌륭하게 마쳤는가? 진짜 점안이라는 것은 어떤 것인가? 간단히 말씀을 드립니다.
진짜 점안은 우리 현지사 탱화입니다. 불상입니다. 일찍이 다보탑, 그리고 대적광전 점안, 춘천의 대웅보전 점안, 여래전 점안, 대전의 적광전과 법당점안, 부산의 적광전과 법당점안을 했는데, 진짜 점안은 어떤 것인가? 부처님 회상에서 불과(佛果)를 증한 분이 점안을 할 때 어떻게 다른가? 뭐가 다른가? 지금까지 말로만 진짜 점안이라고 했지, 설명은 드리지 않았습니다. 이건 설명할 필요가 없어서 드리지 않았는데, 오늘 말씀드리겠습니다.
진짜 점안을 마쳐야 생명력이 넣어집니다. 생명력이 있습니다. 앞에서 스물 네 분의 부처님과 열네 분의 보살님을 청했지요. 정중히 청합니다. 그분들이 절대계에서 모두 오십니다. 여러분들이 많이 들어서 아시겠지만, 부처님은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빛인 무량억종광 백종오색광 대열반광으로 이루어졌다고 했지요.
현란한, 도저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빛(빛덩어리), 그러면서 32상이 갖추어진 대단히 지혜롭고 자비스러운 스물 네 분의 부처님들이 어제 오셨고, 열네 분의 보살님들이 오셨습니다. 당신의 그 상(탱화)앞에 서서, 그 탱화 속으로 들어가십니다. 그 탱화 속으로 들어가실 때 키를 맞추고, 몸집을 맞추고, 입으신 옷대로 해서 변화신으로 빛덩어리가 들어가십니다. 그런 후에 전부 다 방광을 합니다. 방광을 하니까 그 탱화는 산산조각이 나서 산화되어버리고, 스물 네 분의 거룩한 부처님들이 그대로 앉아계신 분들은 앉아 계시고, 서계신 분들은 서계십니다. 열네 분의 보살님들도 그렇습니다.
그런 후에, 앞에 불상이 다섯 분계시잖아요. 다섯 분의 부처님은 당신의 화신을 탱화 속에 놔두고, 본불이 나오셔서 불상 속으로 들어가십니다. 불상 속으로 들어가셔서 방광을 하니까 불상이 산산조각 나가지고, 그 산산조각 난 것들을 모두 삼매화 불속에 넣고, 빛덩어리이면서 32상의 부처님들이 정좌하고 계십니다. 그 장관은 여러분들이 헤아리십시오. 이것이 진짜 점안이올시다.
점안이 된 불상과 탱화는 이미 우상이 아닙니다. 우상이 아닙니다. 생명력이 있는 붓다올시다. 보살이고요. 그래서 우리 현지사 불상과 탱화 앞에서 남을 흉본다든지, 그럴리야 없겠지만 도량(道場)에 들어가서 가래침을 뱉는다든지, 소대변을 본다든지, 불상 앞에서 나쁜 짓을 한다든지 하면 큰 일이(아주 좋지 않은 일이)있습니다. 우리 현지사는 부처님과 탱화, 탑 등이 모두 점안되어 있기 때문에(불과를 이룬 분께서 점안을 했기 때문에) 헤아릴 수 없는 능력(부사의한 능력)을 지니고 계십니다. 이게 점안 된 불상이고, 탱화이고, 탑이올시다. 이 세상 어느 절, 부처님 입멸 이후로 어느 절, 어느 탱화, 어느 불상이 이렇게 점안 된 곳이 있습니까(있답니까)? 없습니다.
이런 진짜 불상, 부처님 상에 여러분이 헌화를 했습니다. 지금 15층에 계시는 230여명의 우리 단월님들이 헌화를 했습니다. 그건 모두 입력됩니다. 부처님의 지혜는 한량없습니다. 측량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다음 생에 대단히 지혜롭고 덕스러운 얼굴을 지니고 나올 것이고, 돈으로 따질 수 없는 큰 복을 지니고 나올 겁니다. 스님의 이 말씀을 여러분들이 그대로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 하지 마십시오. 그대로 들어주십시오.
금년 음력4월8일 날 석가탑이 점안됩니다. 그때 또 헌화도 합니다.
그 다음, 탑돌이가 있습니다. 여러분, 탑돌이가 있지요. 춘천의 우리 다보탑이 점안 되어 있거든요. 저기 보정정토의 다보탑과 링크되어 있습니다. 점안될 때, 그 보정정토의 다보탑이 우리 다보탑 속으로 들어가서 이 다보탑이 앞에서와 같이 방광을 하니까 지금의 다보탑이 산산조각 나서 떨어져 나가버리고, 오직 다보부처님의 그 다보탑만이 우뚝 서있는 거예요. 빛덩어리 다보탑, 불가사의한 그 다보탑, 여러분의 눈으로는 저 다보탑이 돌덩어리 다보탑으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 다보탑을 도는 탑돌이, 3번 5번 108번 돌면서 다보여래불 다보여래불...하면서 발원 하는 것, 전부 입력이 됩니다. 부처님으로부터 들은 대로 그만큼 공덕이 된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이제 석가탑이 금년 4월 8일 완성됩니다. 그러면 다보탑과 석가탑이 있는 절은 이 세계(세상)에 불국사 한 곳 뿐입니다. 그런데 불국사의 석가탑은 3층탑입니다. 석가탑이 아닙니다. 알 수가 없지요. 다보탑은《법화경》에 나와 있으니까 그대로《법화경》의 설명대로 어떻게 생략할 것은 생략하고 그렇게 조성했지만, 석가탑은 본 사람이 없기 때문에 석가탑이라고 한 것이 3층탑을 해놨어요. 그런데 우리는 석가탑을 본래의 모습 그대로 재현합니다.
너무너무 섬세한 부분은 조각할 수 없기 때문에 다보탑과 같이 힘자라는 데까지 합니다만, 그 모습은 같이합니다. 이 석가탑, 석가탑까지 있는 데는 남섬부주에 우리 현지사 뿐입니다. 이 석가불탑, 석가탑 안에는 석가부처님 입상(불상)이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점안을 하게 되면, 이제 영산궁에 있는 석가탑과 똑같은 그런 위력, 그런 불가사의한 탑이 될 것입니다.
부처님도 화신이 들어가실 것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다보탑이나 석가탑을 탑돌이 하면 대단히 좋습니다. 모두 탑돌이를 하지 않는 모양인데, 지금 탑돌이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이런 절이 없습니다. 우리 영산불교 현지사, 겁에 한번 나올까 말까하는 붓다회상, 자랑할 것이 너무도 많아서 현대불교신문에 스물 몇 번 자랑하다가 끝냈습니다. 안 했어. 여러분, 그 신문의 하단광고에 스물 몇 번 나갔지요. 스님들, 불교인들이 도저히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지만, 그러나 진실한 이야기들입니다. 이 다보탑 이야기도 나갔습니다. 석가탑 이야기도 나갔고요. 이걸 모릅니다.
그 다음, 작년 초파일에 십만등(十萬燈)을 올렸지요. 금년 초파일도 십만등을 올립니다. 왜? 우리 석가모니부처님, 여러분이 석가모니부처님을 아셔야 됩니다. 우리 현지사 신도 분들은 석가모니부처님에 대해서 아셔야 돼. 우리 석가모니부처님은 삼계 지존이시고, 영원한(미래제가 다하도록) 남섬부주(지구촌) 교주이시고, 최초에 불과를 증한 분이시고(최초 불이시고), 그 수많은 붓다의 붓다이시고, 수많은 붓다의 스승이시고, 아버지이십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이 계시지 않았더라면 그 수많은 삼계의 붓다님들이 날 수가 없어. 그것도 이유가 있는데, 그건 이야기할 수 없어요. 어쨌든 우리 석가모니부처님의 탑을 만드는 일이어요. 그 탑이 완성되어 금년 4월 초파일 날 건립 되고(우뚝 서게 되고), 다보탑 건립 때도 십만등을 올렸듯이 우리는 그것을 기념해서 석가탑에도 정말 십만등을 올려야지. 십만등을 켜야지. 지금까지 십만등을 밝힌 절이 없습니다. 1600년 한국 불교사상 없습니다. 많이 켠 데가 2만등 정도 켰을 거예요. 십만등을 켠 데는 없습니다. 십만등을 꼭 켜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동참해주시기 바랍니다. 불세존의 탑인데, 우리 부처님의 거소인데(남섬부주의 별장이신데), 우리는 이 탑을 만들어서 부처님께 바쳐야 됩니다.
여러분, 〈보현행원품〉보현십대행원에 부처님에 대한 찬탄 예배 예경 공경 공양, 이렇게 시작된다고요. 열 가지 중에서 부처님께 효하는 것이 다섯 여섯 가지가 됩니다. 우리는, 보살이 되려면, 또 불과를 증하려면 삼계의 지존이 제일 첫 번째입니다. 우리 부처님에 대한 은혜는 말 할 수 없습니다. 겁을 다해도 이야기 못한다고 합니다. 불자라면 우리 부처님에 대한 효, 부처님을 생각하는 지극한 마음, 고마운 마음을 항상 지니고 있어야 되요. 불세존께서 지금 와계시는데, 이 탑은 우리가 꼭 서로 도와서 지어 올려야 되겠다는 효심으로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불세존 탑의 건립에 신심 있는 분들은 108등도 하고, 1,000등도 한 분들이 있습니다. 발원을 써서 꼬리표에 딱 붙여 놓잖아요. 업장소멸을, 여러분의 업장을 소멸해 주십사하고, 여러분의 소망을 성취시켜 주십사하고, 턱없는 소망은 성취되기 어렵지만, 소망이 성취 되리라고 봅니다. 부처님 말씀을 듣고 스님이 여러분한테 말씀드립니다. 이렇게 영산불교 현지궁 현지사의 불사(佛事)는 다른 절과 다릅니다.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비교하자면 정말로 많은 말씀을 해드려야 되지만, 스님이 이렇게 짚고 넘어가니까 지혜 있는 여러분들은 꼭 마음에 새겨주시기 바랍니다.
부처님께서 입멸하신지(반열반에 드신지) 2500년이라고도 하고, 3000년이라고도 합니다. 북방에서는 3000년 설을 주장하고, 남방 쪽에서는 2500년 설을 주장합니다. 결국 남방 설을 채택해서 금년의 불기(佛紀)가 2555년이지요. 가끔 스님이 강조합니다만, 그 후의 불교는 두 가지의 크나 큰 핵이 빠져버렸습니다. 크나 큰 핵이 빠져가지고, 지금의 불교는 너무너무도 왜곡 되고, 왜소화 되어 버렸어요. 그런데도 자기 종파의 불교가 최고라고 하지요. 두 가지의 핵이 빠졌다고 항상 스님이 이야기하지요.
첫 번째, 부처님은(불과를 이룬 붓다는) 마음밖에도 아니고, 마음 안에도 아니고, 유무를 초월한 무아속 절대계에 여여히 계신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우리 영산불교에서 인간 영혼의 실체를 규명했습니다. 이것은 2500년 3000년 동안 인류의 영원한 숙제였습니다. 이 두 가지가 영산불교에 의해서 규명 되어버렸습니다.
지금 우리 신도분이지요. 전번에 영산불교대학 교수를 지낸 분인데, 그 분이 또 이런 책(비교종교학)을 썼어요.
전번에 그분이 쓴〈비교종교학〉의 개정 증보판입니다.〈비교종교학〉, 이 책이 아마 보름 있으면 나올 거예요. 여러분, 정말 이 책은 한권씩 가보(家寶)로 꼭 구입해서 공부도 하고, 집에 모셔놓으십시오. 이 책은 현재 세계적인 종교다라고 하는 여덟 개의 대종교와 우리 대한민국의 민족종교 넷, 그리고 대단한 깊이의 철학을 지니고 있다하는 힌두교의 여섯 학파(6파)의 철학사상을 우리 영산불교의 사상과 비교해서, 도저히 게임이 안된다라고 하여 내놓은 것이 이 책입니다.
우리 불교의 교리는 재조명 되어야 됩니다. 너무도 왜곡 되었으니까 재조명 되어야 되는 거예요. 우리의 위대한 불교의 교학은 영산불교에 의해서 다시 써져야 됩니다. 여러분에게 전문용어가 사용되어서 스님이 미안하게 생각되는데, 인도 불교의 두 축이 있습니다.
한 축이 유식(唯識)입니다. 학자이신 우리 신도 분(거사님)이, 그 유식의 알곡이라고 할까, 중핵에 해당하는 것이 '세친'이 쓴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인데, 그 유식삼십송을 보니까 흠점이 너무 많다는 거예요. 흠점이 많다는 것은 이제 처음 유식이 크나큰 학파로, 크나큰 불교의 한 축으로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데, 감히 그 어떤 학자들이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지요. 그런데 영산불교의 사상을 공부하고, 사유를 해보니까 큰 허점이 있다 해서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을 지금 벗기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이야기하는 제7식인 말라식(末那識), 제8식인 아뢰야식(阿賴耶識)은 사실상 없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선 그 점에서 보더라도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은 폐기를 해야 된다는 것이지요. 왜 그러느냐? 인간 영혼의 실체를 규명하지 못한 상태에서 썼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지요. 여러분, 조금 어려운 말을 해서 죄송합니다. 어쨌든..그렇습니다.
오늘 대단히 중요한 법문 말씀을 해드립니다. 상당히 중요합니다. 가끔 스님이 중요한 법문을 하지요. 오늘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 현지사에서 ‘부처님이 계신다, 부처님이 계신다’고 하니까 지금까지의 불교, 그러니까 하나의 교단으로(종단으로) 행세한 크고 굵직 굵직한 교단이 있잖아요. 북방의 티베트 밀교가 있고, 남방은 위빠사나가 있고요. 중국 한국의 선종(禪宗)이 있습니다. 그리고 화엄이나 천태가 있고요. 이런 쪽에서, 특히 한국의 불교, 우리가 ‘부처님이 있다’고 크게 주장을 하니까 ‘아니다~’하는 거예요. 그래서 많은 책이 나오고, 많은 법문을 하고 그러는데, 오늘 이 법문을 여러분이 꼭 들으셔서 여러분 스스로 깊이 깊이 사유해 보십시오.
《능엄경》에, “수행인이 수행을 하다가 보면 불보살을 만날 수 있다”고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자세히 말하자면 오십변마장(五十辨魔障)입니다. 오십 가지의 마(魔)를 알아서, 그 마(魔)에 섭하면 안 되니까(붙들리면 큰 일 나니까) ‘알아라’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것을 오온(五蘊) 또는 오음(五陰)이라고 합니다. 이 오음(五陰)이 수행을 함에 따라서 그 본질이 다 녹아져 가야 돼. 색온(色蘊)이 녹고, 수온(受蘊)이 녹고, 상온(想蘊)이 녹고, 행온(行蘊)이 녹고, 식온(識薀)이 녹아버려야 완전한 윤회에서 벗어난 대자유를 누릴 수 있는 도인이 되는 거예요. 그건 맞아.
▸색음(色陰)이 녹을 때 불보살을 본다는 거예요. 허공에 부처님들이 가득히 현신한 것을 본다 그거예요. 그러니 우리 영산불교에서 부처님을 이야기하니까‘《능엄경》의 말씀처럼 그런 유(類)야’하고 우리를 공방(공격)하는 학승들이 있어요. 그래서 오늘 이야기 하는 거예요.
▸둘째, 진리를 찾아가는 구도자가 공부를 해나가는데 있어서 불보살의 형상으로 현신하는 그런 경계를 만날 수 있어. 불보살이 나타난다 그거예요. 영산불교 너 것들만 부처를 보는 것이 아니다.
▸그 다음, 동양에(도가에) 많은 영통법이 있어요. 통영법이라고도 해요. 영통법이라고 있어요. 그 영통법에 의해서 공부를 해도 불보살을 만나는 그러한 관문이 있어요.
▸그 다음,《반주삼매경(般舟三昧經)》이나《좌선삼매경(坐禪三昧經)》에 따라서 공부를 열심히 하다가 보면 염불삼매에 들어간다. 염불삼매에 들어가면 부처님을 친견한다. 부처님의 교화를 받는다. 부처님과 대화도 한다. 이 부분이 나옵니다.
오늘 이 부분에 대해서 설명해드립니다. 그래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다른 것은 다 그건 아니어도 ‘염불삼매에 들어가서 붓다를 친견한다’하는 부분입니다. 그 수행자가 사바라이죄를 잘 지키고, 부처님의 계율을 잘 지키면서 염불을 하게 되면, 염불을 1주일에서 90일 더욱 정진해 나가면 염불삼매에 들어간다. 염불삼매에 들어가면 부처님을 친견한다 그거예요.
자, 그때의 부처님은 화신(化身)이올시다. 화신불입니다. 본불은 아닙니다. 절대로 본불이 아닙니다. 본불은 겁에 하나, 불격을 갖춘 최상수보살이 붓다가 될 때, 원만보신노사나불이 붓다 만들어서 데려가기 위해 오십니다. 그래서 지도를 합니다. 그 지도를 받아서 공부를 하면 많은 관문을 뚫고 지나가게 되는데, 많은 관문을 뚫고 급기야 만나게 되는 붓다는 본불이올시다. 보신불(報身佛), 본불입니다. 화신불이 아닙니다. 더 설명을 해 들어갑니다.
▸염불삼매에서 친견하게 되는 붓다는 화신이기 때문에 온 몸이 무량광으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빛덩어리가 아니다 그거예요.
▸둘째, 염불삼매에서 친견할 수 있는 붓다는 중생의 업장을 소멸해 줄 수 없습니다. 정화시켜 주지도 못합니다.
▸셋째, 화광삼매화를 만들 수 없습니다. 이건 지금까지 별로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의 업장을 씻어주시는데, 오늘 지금 굉장히 씻어 주실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업장이 씻겨나가는데, 마치 돗자리를 갤 때 두루마리가 되잖아요. 이렇게 해서 나가는데, 그 업장을 부처님께서 저쪽에다가 삼매화라고 하는 영적인 불(삼매의 불), 도수는 몇 천억 도(℃)를 올려가지고 삼매화를 만듭니다. 마치 올림픽 경기장의 성화처럼 됩니다. 성화가 항상 타오르잖아요. 그와 같이 만들어서 거기에다가 집어넣어 버립니다. 그러면 그것이 완전히 산화되어 버려요. 이렇게 해줘야 여러분의 업장이 다시 와서 달라붙지를 않아. 그런 삼매화를 화신은 만들 수 없어.
▸그 다음, 내가 생각나는 것만 한 10개를 지금 적어 놨는데, 화신은 지옥 벌을 쉬게 할 수 없어. 본불, 석가모니불, 붓다의 붓다이신 석가모니불께서, 혹은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붓다의 위신력으로 지옥 벌을 쉬게 하는데, 화신은 안 돼. 그건 도저히 안 돼.
전번에 우리가 산재를, 생전예수재(生前豫修齋)를 한 두 사람 지내줬습니다. 이 두 사람은 우리 영산불교에 큰 공이 있어서 생전예수재(生前豫修齋)를 지내줬습니다. 공덕이 없으면 지낼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의 생전예수재(生前豫修齋) 지낸 것을 읽어드리겠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을 밝힐 수도 없고, 그 사람의 업병도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산재는 생전예수재(生前豫修齋)입니다. 남섬부주에 붓다가 출세하면 가능한 생전예수재(生前豫修齋)입니다. 붓다만이 해줄 수 있습니다(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붓다가 출세하면 가능합니다.
이때에는 허공계에 가득히 원만보신불님들께서 오늘처럼 뜨셔서 결정적일 때 무량억종광을 쏴 줍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공덕에 따라서 지옥 벌이 5분~10분, 15분, 30분 동안 멈춥니다. 이 사람은 지옥 벌이 15분간 멈췄습니다. 붓다님의 변식진언으로 그 지옥의 수많은 수고중생(愁苦衆生)이 한 끼 공양을 맛있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 지옥의 그 수많은 중생들이 한 벌씩 새 옷을 얻어 입을 수가 있었습니다. 15분간의 지옥 벌, 그 지옥 벌에 자기가 누구인 줄도 모르고, 그러한 그 사람이 부처님의 빛에 의해서 정신을 차려가지고 공양도 먹고, 옷도 입고, 15분간 쉴 수 있었습니다. 붓다님의 특별사면으로 대기지옥에서 100명이 하늘 천상에 갔습니다. 하지옥에서 100명이 대기지옥으로 올라가고, 중지옥에서 100명이 하지옥으로 올라가고, 무간지옥에서 100명이 중지옥으로 올라가기를, 그러니까 총 400명이 감형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부처님 법을 능멸 모독했거나, 악독한 폭군으로 사람을 많이도 죽였으면 업병을 면할 수 없습니다. 불구자로 태어나는 그 업병은, 그러한 죄를 지었다면 세세생생 그렇게 과보를 받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세세생생 불구자로 나올 걸, 그 업장을, 30㎝가 넘는 두터운 철판으로 둘러싸인 그것을 잘라가지고 화광삼매화에 넣었고, 또 사슬로 묶여진 것, 족쇄라든지 온 몸이 쇠사슬로 묶여진 그 모든 것을 풀어서 풀어서 그걸 산화시켰습니다. 그래서 금생에 마지막으로 불구자로 살면 이 사람은 그 엄청난 죄업이 붓다님들에 의해서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다음 생은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한 번으로 해서 다 되는 것으로 알지 마십시오. 우리 붓다가 된 사람도 10년 동안을 부처님께서 업장을 벗겨 줍니다. 다겁생으로 내려온 업을 티끌하나 없이 전부 다 벗겨주고, 전부 소멸을 해주어야 붓다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나머지 업장도 벗었으면(벗겨주었으면)하는 소망입니다. 어쨌든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또 한사람의 생전예수재(生前豫修齋)입니다. 우리 현지사의 어떤 스님입니다. 금생의 명이 다하여 이제 금생이 다 되었어. 어떤 사람을 해보니까 금생에 명이 다했어. 그래서 산재를 지내 줘야 되겠다 해서 그날 모셨습니다. 7년간 더 살 수 있는 명이 이어졌습니다. 이것은 설명이 많은데 그런 줄로만 아십시오. 오늘 대충이야기를 해가니까요. 저기 지장궁에 사람의 명이 심지로 불이 타고 있습니다. 보면 이건 앞으로 10년 살 사람이다. 이건 5년이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이분은 심지가 다 해버렸어요.
여러분, 촛불이 다 되면 이제 심지만 남아 있잖아요. 심지 주변에 초가 좀 있지. 그 액체화된 초가. 이제 그렇게 되었어. 가물가물할 때였습니다. 부처님께서 급하다고 하셔서 산재를 올려준 거예요. 삼계의 붓다님들의 위신력으로 지옥 벌은 15분간 멈추고, 한 끼 공양을 주었다. 이 분은 대기지옥의 73명이 하늘로 갔어요. 하지옥에서 대기지옥으로 73명이 가고, 중지옥에서 하지옥으로 73명, 무간지옥에서 중지옥으로 73명이 옮겨갔습니다. 이 스님은 품계가 정토 대기였는데, 그날 정토보살 20품으로 인가를 받았습니다. 아미타부처님께서 그 스님의 아기천사(정토아기)를 안고 오셨고, 약사여래부처님께서 특별기가 그쪽에서 내려와 가지고 피를 교체해 주었고(정토 20품 피로 교체해 주셨고), 정토 옷도 하사해 주셨습니다. 이게 생전예수재(生前豫修齋)랍니다.
▸이러한 예수재, 생전예수재(生前豫修齋)에서 우리가 볼 수 있듯이 화신은 그런 권능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본불인 원만보신이 그러지요.
▸그리고 공부하는 사람에게 천마(天魔)가 많이 붙어있습니다. 특히 그 스님들에게 천마가 많이 붙어 있는데, 천마가 붙어 있으면 공부가 될 수 없습니다. 그 천마에 의해서 미칩니다. 천마를 떼어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붓다입니다. 화신은 안 됩니다.
▸그리고 화신은 한삶정리도 못해줍니다. 본불이 해줍니다.
한삶정리라는 것은 그 사람의 공덕이 많을 때 해줍니다. 보니까 그 사람이 전생에 살인을 했는데, 그 사람 손에 의해서 죽은 사람이 태어나가지고, 몇 년 후에 그 사람과 외나무다리에서 만나게 되어 있어. 그러면 꼭 살인을 합니다(당합니다). 그럴 경우 한삶정리를 해주면 비켜가 버립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데, 이건 붓다만이 해줍니다.
▸저 수행자의 영체를 끄집어내는 일이라든지, 영체를 분리해 준다든지, 분리한 영체를 정화시켜 주는 것, 빛덩어리로 만드는 것 등은 전부 붓다만이 해줍니다.
앞에서 염불삼매,《반주삼매경》이나《좌선삼매경》에서 염불삼매에 들어가면 붓다를 친견하고,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대화도 한다는 것이 경에 나왔기 때문에 스님이 말씀을 해주는 거예요. 절대로 거기는 화신이다. 잘해야 화신이다. 아니면 천마(天魔)이고, 그렇지 않으면 화신이다.
▸우리 현지사 두 분 큰스님, 그분들은 부처님의 지도를 받아서 그 많은 과정(관문)을 지나가면서, 그 많은 삼매를(깊은 선정을) 닦아가지고 큰 선정력을 얻은 분이어요. 그래야만이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되는 거예요. 지금 우리 현지사에서 보살과를 얻은 분이 열다섯 분인데, 이분들은 공덕이 있어서 타력으로 간 거예요. 부처님의 타력으로 간 거예요. 자력으로 간 것이 아닙니다.
▸그 다음, 무고혼을 잡아가지고 지장궁으로 압송한다든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천도재하면 여러분의 집안에 무고혼이 많아. 돌아가신 조상님들 중에서 저승에 못 들어간 무고혼이 많아. 무고혼이 많으면 그 집안의 자손들이 잘 될 수가 없어. 그래서 무고혼을 전부 명부에 넣어 주는데, 이 명부에 넣어주는 일이 제일 어려워. 붓다만이 하는 거예요. 명부에 집어넣어 주는 거예요.
▸그리고 큰 병을 치료한다든지, 명을 이어 준다든지 하는 것은 붓다만이 하는 거예요.
▸그리고 청정법신비로자나불 소식도 몰라. 염불삼매에 들어가서 아무리 친견한다고 해도 청정법신비로자나불 소식도 몰라. 그건 화신, 잘해야 화신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이 잘못 공부한 거예요. 잘못 공부해가지고 천마를 만난다든지 그러고 있습니다.
그리고《능엄경》에서 이야기 하는 것은 마음의 소작입니다. 마음, 불가사의한 마음이 지은 환영(幻影)이어요. 그리고 공부할 때 불보살이 나타나는 것은 100% 하늘 마(天魔)가 둔갑 해가지고 나온 거예요.
도가(道家)의 영통법에 의해서 한 것도, 이것은 외도의 수장 급들이나 애제자 급들이 불보살로 화현 해가지고 나와요. 이걸 알아야 돼.
그래서 겁에 하나 나온 우리 현지사에서 두 큰스님이 공부를 해서 불과(佛果)를 얻은 것은 그 류(類)가 아니어. 그 차원이 아니어. 진짜 부처님, 원만보신이어. 진짜부처님, 본불입니다.
어제 스물 네 분의 본불, 열 네 분의 보살님들, 절대계에 계신 그 본불들이 내려오시고, 그 수많은 삼계의 붓다님들과 한 줄로, 붓다끼리는 전부 빛으로 연결되어 있어. 그러니까 어찌 보면 한 몸이어요.
이 화두타파라든지, 소위 공체험(空體驗)을 했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 이후 두타행으로 들어가야 되는데, 두타행하면서 깊은 선정을 많이 들어가야 돼. 선정, 선정력(禪定力)을 얻어야 돼. 그래야 해탈이 되는 것이지(생사해탈 하는 것이지), 삼매의 힘이 없으면 해탈 할 수가 없어. 그래서 많은 선정을 익히고 쌓아가야 아라한이 돼. 착이 떨어져야 아라한이 된다는 것. 여기서부터는 조심해야 돼. 여기서부터는 뭘 조심 하느냐? 여기서부터는 천마(天魔)가 작용하기 때문에(천마가 잡아가려고 호시탐탐 노리기 때문에) 지도자를 만나야 돼. 보살이나 붓다가 되려면 부처님을 만나야 돼. 그런데 부처님은 겁에 한 번 나오셔. 제자를 교육시켜서(지도해서) 붓다 만들어 가시기 위해서 한 번 나와. 아라한이 되고, 보살이 되려면 그때 그 회상을 만나야 돼. 지금 영산불교에서 아라한 이상이 조금 전에 세어보니까 아마 37명인가 될 거예요. 엄청난 것이지. 한국 불교가 1600년 동안에 아라한을 몇 명이나 내었을 까? 그 정도입니다. 스님이 뭐라고 말씀했지요? 몇 명이나 났을까? 무루대아라한은 없어.
앞에서 스님이 유식(唯識)을 이야기했습니다. 말라식 아뢰야식은 없다. 오직 있는 것은 ‘안이비설신의’의 육식(六識)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 말씀에 분명히 나와. 여기 '유식삼십송'을 해석하는 분은 잘 들어봐요. ‘일체는 12처니라’라고 되어 있어. 못이 딱 박혀 있어. 이 세상 현상계의 모든 것은 12처이다. 그러니까 육경(六境)과 육근(六根)을 합한 것이 12처이지요. 그 외에는 없는 거예요. 무슨 말라식이 있고 아뢰야식이 있어. 그건 영체의 기능이야. 아셨지요?
이렇게 불교가 왜곡 되었습니다. 모르면 가만히 있어야지요. 논사들이 잘못 사유해가지고 크게 논장을(논을) 잘못 써 가는데, 이건 중생을 오도하는 일로서 큰일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2500년이 흘렀는데, 이 불교가 지금 10점짜리 교단(종단)도 있어요. 부처님께서 “어떤 종단은 10점짜리 종단밖에 없다”고 하십니다. 이렇게 되어버렸어요. 10점짜리 종단에서 자기네들이 최고라고 하면 안 되지요. 불쌍한 중생들이 그 사람들을 따라 갈 텐데, 그 책임을 어떻게 지겠소.
이제 3월에 우리 영산불교대학 고급반 중급반 초급반이 개강 됩니다. 여러분, 진짜 불교를 알아야 돼. 그래서 영산불교 현지사 법문을 들어야 되고, 여러분들한테 너무도 아쉬워서 이렇게 불교대학을 지금 만든 거예요. 이것이 기초가 되어가지고, 이제 앞으로 교육과학기술부(구, 문교부)의 정식 인가를 받을 거예요. 불교대학에 좀 출석해서, 교수님들이 강의한 내용이 이해가 잘 안된다고 하더라도 들어보라고. 영산불교의 시각에서 논해가니까. 아마 개강이 될 것 같습니다. 신청자들이 상당히 접수를 했기 때문에 개강을 합니다.
그 다음, 관음태교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관음태교도 지금 꼭 그 교육을 시켜주려고 하는데 접수자들이 아주 적어요. 항상 이야기 하지만 애기를 많이 낳는 것이 능사가 아니어. 지금 우리 한국은 많이 낳아야 돼. 이대로 뇌두면 50년 100년이면 한국이 없어진다고 해요. 이 지구상에서 소멸 된다고 해. 그러면 적어도 두 세 명은 낳아야 돼. 옛날처럼 셋 다섯은 낳아야 됩니다. 그렇게 낳아야 되는데, 그놈들은 자기의 먹을 것을 가지고 나오는 거예요. 그건 맞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자꾸 그냥 교육비 교육비 타령을 해가지고 지금 산아제한(産兒制限)을 하고 있는데, 앞으로 좀 낳아야 되요. 낳되, 인재를 낳자 그거예요. 인재를 낳자. 부처님의 위신력은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임신할 때부터 관세음보살님을 찾으면서 자꾸 발원하고,《관음경》읽고, 다라니(불정심관세음보살모다라니)하고, 배를 쓰다듬으면서 관세음보살님을 찾으시라고요. 그러면 정말로 인재가 나오니까요. 여러 계층의 인재가 나오니까. 한 사람의 인재가 100사람을 당해 낸다고요(일당백 한다고요). 일당백(一當百)만 하나?
노벨상 수상자 한 사람만 나와 버리면 뭐... 이건 대단한 것이지. 노벨상 역사가 100년 된 지금까지 한국은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없지. 노벨과학상을 받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고 그러더라고. 그러나 관음태교를 하면 노벨상을 수상할 인재가 나온다고요. IQ가 높은 놈이 나와. 그러면서 부모님 속을 안 썩여요. 부모님 속을 썩이지 않습니다. 그런 자식이 나온단 말이에요. 지혜롭고 똑똑하고 선근이 있고 복덕이 있는 자식이 나올 거예요. 그러니까 관음태교를 해라 그겁니다.
또한 이 관음태교가 성교육에 크게 이바지 하게 될 것입니다. 성교육. 지금의 젊은이들, 성교육을 해야 됩니다. 성교육이 엉망이라는 거예요. 몸이(그릇이) 깨끗해야 돼. 그래야 좋은 놈을 받는 거예요. 그릇이 깨끗해야 돼. 성교육을 해야 돼. 그러니까 관음태교는 일석삼조(一石三鳥)이지요. 요즘 자녀들 학자금이 얼마나 많이 들어갑니까?
그러나 이 관음태교를 하면 사교육비가 필요 없어요. 총명한 애기가 나오니까 말입니다. 학교 공교육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니까 관음태교를 하는 거예요. 우리 영산불교 교단은 관음태교를 해야 된다고 부르짖는 종단입니다. 지금까지 관음태교를 몰랐어요. 그 관음태교는 교학적으로도 경전에 근거(전거)하고 있어요. 근거가 확실히 있습니다. 그러면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도 계시고 해서 ‘관음태교를 해야 되겠다’ 해서 지난 달에 1기생을 배출했는데, 2기생을 모집한다고 해도 젊은이들이 뭘 몰라. 종교에 대한 관심도 없고, 자기들 생각밖에 하지 않아. 그래서 ‘이게 문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이 주변의 친척이라든지, 친구의 자녀들이 수강할 수 있도록 포교를 좀 해주십시오.
시간이 50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하니까 무슨 질문이든지 받겠습니다. 어떤 문제든지 손을 들고 질문해주십시오.
여러분, 우리 현지사 신도 분들은 스님말씀을 잘 듣는 착한 우리 신도 분들로 생각합니다. 착한 분들이지요. 그래서 그동안에 업장도 많이 씻겨나갔고, 부처님 입멸 후 3000년 만에 있는 이 업장소멸, 부처님께서 업장 씻는 것은 부처님 입멸 후 3000년 만의 일이올시다. 이때를 놓치면 또 없습니다. 이건《열반경》에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가끔 이야기했지요. 그런 우리 착한 신도분들이지요. 그러니까 스님말씀을 꼭 유념하십시오. 십만등 불사 동참, 그리고 스님이 권하는 일은 하십시오 여러분. 하십시오. 질문 받겠습니다.
질문①
중생을 위해 이렇게 법문해 주시는 큰스님께 감사드립니다. 한국불교가 1600년 전 이차돈 성사의 순교를 계기로 이 땅에 들어왔고, 불교의 역사가 2600년 되었음에도 지금은 타종교가 한국을 거의 점령할 듯 하고 있는데, 21세기인 불기 2555년 이때에 한국불교를 국교화 한다든지, 이차돈 성사가 한국불교를 최초로 받아들이게 함으로서 한국불교가 국교화 된 것과 같이 불국토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그 점을 여쭙고 싶습니다.
(큰스님) : 진짜 부처님의 교법이 3000년 만에 이제 시작되었잖아요. 그렇게 될 것입니다. 우리 영산불교의 위대한 사상이 이렇게〈비교종교학〉등의 여러 가지 책으로 지금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20여권 나오고 있는데, 우리가 속도를 조절하고 있습니다. 우리 영산불교에서 뛰어가는 것을 조절하고 있습니다. 조절하고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너무 빨리 컸지요. 크면 어떻게 되는 줄 압니까? 시기질투가 따르겠지요. 보통 시기질투가 따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조절하고 있습니다. 조절하고 있는데, 우리 현지사는 많은 불사를 했습니다. 조용히 불사를 했습니다. 많이 하고 있습니다. 아마 금년도 저기 강원도 화진포에 병자의 치유를 위해서(한국의 병, 큰 업으로 받는 병은 좀 어렵지만) 약사전(약사궁)을 짓습니다. 아마 많이 알려져 가지고 많은 신도들이 올 것입니다. 그것까지 하면 불사는 거의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부처님의 법을 펼 것입니다. 법을 펴는데 약간 속도를 낼는지 모르겠습니다. 법을 폅니다. 속도조절을 하고 있습니다. 불교통합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종교도 통합 할 수 있습니다.
지금〈비교종교학〉이 한600페이지 분량으로 개정판이 나왔는데, 이 영산불교의 그 위대한 깊은 사상이 세계의 모든 종교와 한국의 민족종교 모두를 포용하고도(아우르고도) 넉넉히 남습니다. 영산불교가 그렇게 위대합니다. 영산불교와 같이 깊은 철학사상이 나온 것은 2500년, 3000년 만에 처음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어디를 가시다가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나는 저기 서울의 어느 절에 다니는 신도인데, 어느 절에 다니시오’하고 물을 수도 있잖아요. 그렇게 물어오면 ‘나는 영산불교 현지사 다닙니다’하고 아마 그렇게 대답을 하실 거예요. 그러면 저쪽에서 그럴 거예요. 아직 현지사의 사상(철학)이 많이 보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 신도들에게만 지금 법문을 하고, 아직은 책도 일반신문에 광고하지 않습니다.
어느 때인가 가게 되면 전부 광고할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모른단 말입니다. 다만 ‘염불하는 절이다’라고 알아요. 염불하는 절이다 할 거예요. 염불하는 절은, 스님이 30~40년 전 조계종에 있을 때만 해도 ‘염불, 계율 지키는 것을 고집하는 사람은 저건 외도다’고 했습니다. 참선을 하지 않으니까. 그래가지고 아마 여러분을 불쌍하다는 듯이 그런 눈초리로 볼 거예요. 여러분들이 그 사람한테 되물어야 되는데, 되물으려면 어느 정도 실력이 있어야 된다고요. 그래서 여러분한테 이렇게 법문을 해주는 거예요. 어떻게 되묻느냐?
‘신도님! 당신이 그렇게 그 이름난 그 절을 오랫동안 다니시고 그러는데, 그러면 불교에서 이야기하는(부처님께서 이야기하는) 육도가 무엇이고, 정말로 육도윤회를 하는 것으로 생각하오?’하고 물어봐요. 육도윤회를 하는 것이냐고. 그런 실력 갖고는 아마 거기도 대답 못할걸요. 그건 기본인데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그걸 알잖아요. 우리 현지사에서는 육도가 있음을 분명히 주장하고, 육도에 윤회하는 것을 분명히 주장합니다. 또한 육도윤회를 벗어난 해탈세계가 있다는 것을 주장하고, 해탈세계도 아라한, 무루대아라한, 천녀, 정토대기, 극락정토, 약사정토, 불격을 갖춘 최상수보살을 넘어가서 붓다예요. 저 사람들은 그걸 몰라요. 윤회를 벗어난 저쪽세계는 몰라요.
다만 본체(本體)를 알아요. 공부 많이 한 사람들은 본체를 알아요. 본체 이야기밖에 하지 않아요. 모든 생각이(사유가) 끊어져버린 자리, 마음자리, 공(空)자리 밖에 이야기 안 해. 공(空)의 자리 밖에 이야기를 하지 않아. 열반의 세계를 몰라. 상락아정(常樂我淨)의 열반의 세계(니르바나의 세계)에 대해서는 지금 전혀 몰라.
그런데 윤회를 믿고 법문하는 스님은 참 고마운 스님이지요. 그러나 지금 대부분의 불교는 윤회도 인정하지 않는다니까요. 붓다 없다니까요(붓다도 없다고 한다니까요). ‘마음이 부처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윤회도 마음속에서 이야기해버려요. 마음속의 상태가 이렇게 자꾸 바뀌어 지는 것, 좋아했다가 기분나빠했다가 웃었다가 울었다가 그냥 희희낙락하다가, 이것을 윤회라고 한다고요. 육도윤회를 이야기 안 해요. 지금 불교가 그렇게 되었어요. 지금 그런 절에 다니고 있어요. 그러면서 자기들 절에 폭 빠져 세뇌되어 가지고 자기네들 종단의 가르침이 최고인줄 알아. 그 가르침이 무엇인 줄도 몰라. 우리처럼 이렇게 정기적으로 법문도 하지 않아. 이 사람 불렀다가 저 사람 불렀다가 하지. 이 사람 불렀다가, 저 스님 불렀다가, 어느 학자 불렀다가, 이렇게 해주지. 그러니까 이렇게 법문하게 되면 정립이 안 됩니다.
우리 현지사는 한 분의 스님이 계속 법문하잖습니까? 지금까지 스님이 계속한 법문이 138회 일거예요.《법화경》처럼 모든 종교 철학을 전부 회통해가지고 정리해주잖아요. 여러분들, 법문을 그렇게 많이 들었으니까 당하지 말라고. 지금은 당할 수준이 아니어. 쉽게 당할 수준이 아니어. 고맙습니다. 그 다음 질문 받겠습니다.
질문②
스님 감사합니다. 출가한 스님이 아닌 일반 재가불자들도 스님이 가르치는 대로 체계적으로 공부하면 보살까지 갈 수 있는 지요? 또 한 가지는 집에서 공부하거나 법당에서 공부하는 방법이 있는데, 스님들마다 조금씩 다르게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같은 체계가 있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큰스님) : 재가불자들, 세간에 살면서 불교를 믿고 착하게 살려고 하는 분들, 우리 현지사 같으면 우리 신도 분들 중에서 아라한도 나오고, 보살도 나오고 그런다고 했지요. 나왔습니다. 현재 세 분이 보살과를 얻었습니다. 스님이 말씀드렸지요. ‘보살과를 얻는 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고. 아미타부처님의 말씀입니다. 스승 없이 자력으로는 안 됩니다. 부처님 법, 부처님 교단을 만나지 못하면 안 됩니다. 세 분이 나왔고, 지금 무루대아라한도 전번에 하나 나왔습니다. 우리 저 상좌가 의사인데 무루대아라한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많이 나올 것입니다.
그 다음, 스님들 대답이 들쭉 날쭉이다고 하셨는데, 당연하지요. 공부 많이 한 사람은 깊이 이야기할 것이고, 스님이라고 해서 다 공부를 많이 했다고 볼 수 없잖아요. 그러니까 대답은 각양각색일 것입니다. 공부는 여기 현지사 법당에 나와서 공부하는 것이 제일 좋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 점안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15층이나 여기 지하2층은 다 점안이 되어 있기 때문에 공부가 제일 잘 될 거예요. 공부할 때 마장(魔障)이 들어오는 것이 가장 무섭습니다. 여기는 마장(魔障)이 없고, 그 외마가 막아지기 때문입니다.
▸또 여기 와서 공부하게 되면 자기의 업장도 씻겨나가기 때문입니다. 염불하게 되면 그 부처님의 청정한 빛이(기가) 들어오기 때문에 자기의 업장이 씻어져 나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지사 본사나, 대전이나, 여기 부산의 법당에 오셔서 공부하십시오. 그게 제일 좋습니다.
질문③
며느리가 교회를 나가는데 관음태교를 시어머니가 해도 되는 지요?
(큰스님): 아하! 다른 종교를 이야기하기가 그렇습니다.
이〈비교종교학〉을 보니까 교수가 잘도 썼습니다. 아주 잘 썼습니다. 여러분, 사도(사마외도)에 빠지면 안 됩니다. 미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정말 사마외도에 빠지면 안 됩니다. 부처님의 정법으로 들어와야 됩니다. 그런데 절이라고 해서, 불교라고 해서 모두 부처님 정법의 가르침을 지금 하고 있느냐? 스님이 ‘아니다’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아니라고. 염불이 정법이올시다. 그래서 염불정법입니다. 여러분들 외워야 돼. 염불정법이어요. 염불정법. 염불하지 않는 그런 종파는 그건 아닙니다. 염불이 정법입니다.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팔정도칭명염불'입니다. '팔정도칭명염불'. 더 자세히 말하면 정직하고 깨끗하게 살면서 부처님을 칭명하는 것. 이 공부를 해야 됩니다. 이렇게 공부를 해야 됩니다 여러분. 그런데 관음태교를 ‘교회에 다니는 며느리가 임신을 했는데, 시어머니가 그냥 관음태교를 하면 효과가 어쩝니까’라고 하셨는데, 그것에 대한 답은 여러분한테 맡깁니다.
질문④ ...(잘 들리지 않음)
(큰스님) : 저기 염불삼매에 들어가서 부처님을 만난다고 했지요. 그 만나는 부처님은 그 수행자가 공부를 잘 했을 경우, 모든 계율도 잘 지키고 반듯하게 살면서 염불해서 염불삼매에 들었을 경우, 그런 경우 화신불을 만날 수 있다 그거지. 나머지는 아니다 그거지. 그러면 화신불을 만났을 경우는 업장이 소멸되느냐? 소멸이 아니라 정화가 되지. 정화가 되지. 염불삼매에 안 들어가도 여러분들이《금강경》읽고, 다라니를 하고, 석가모니불을 시키는 대로 잘하면, 여기 법당에 와서 하게 되면 업장이 많이 씻겨져 나가지. 씻겨져 나갑니다.
업장이 소멸 되어야 돼. 우리는 업장이 소멸 되어야 돼. 업장이 소멸되지 않으면 안 돼. 윤회를 해. 우리는 업의 찌꺼기를 다 말끔히 닦고 씻어버려야 돼. 쇠사슬이 묶여져 있으면 그건 중죄(중업)를 지어가지고 그런 거예요. 그건 자기의 힘 갖고는 풀 수 없어요. 그 때부터는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다든지, 천도재를 한다든지 해서 공덕을 지어야 돼. 그러면 부처님께서 그 쇠사슬을 끊어서 삼매화에 넣어 줄 수 있어요. 이런 소식은《열반경》의 말씀처럼 300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어요. 처음 있는 일입니다.
조금 어려운 말씀을 주~욱해서 미안한 감이 듭니다. 그러나 우리 신도분들 중 500명 1,000명은 개근을 합니다. 개근을 하는 분들은 스님의 법문 말씀을 많이 이해할 것입니다. 오늘 처음 오신 분들은 참 이해하기 어렵지요. 그런데 처음 오신 분들, 정말로 잘 오셨는데 앞으로도 나와야 됩니다. 나와야 되는데, 스님이 이렇게 간절히 권하는데 여러분들이 또 나오시다가 안 나오시게 되면 할 수 없지요. 할 수가 없는데, 그러지 마시오. 나오십시오. 나오셔서 부처님의 정법 말씀은 꼭 들어야 됩니다. 이 점안(點眼)에 대해서도 이렇게 법문한 내용은 여러분들이 아마 처음 들었을 거예요. 이게 진짜 점안인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저기 15층의 그 불상, 본불이 안 계시면 화신이라도 계셔요. 앞에서 말씀드린 스물 네 분, 열네 분의 불․보살님들이 다 본불만 계시는 경우도 있지만, 본불이 계시지 않을 때에는 당신의 화신을 놔두고 가십니다. 할 일이 많으시니까 그러십니다. 최소한 한 분의 부처님은 계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우리 법당에 오셔서 공부를 하셔야 돼. 그러면서 업장을 씻어야 돼. 업장을 씻지 않으면 그 과보는 받는 거예요.
물체에 그림자가 따라가듯이 반드시 받는 것이어. 이것을 카르마 법칙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확실히 맞는 말입니다. 자기가 나쁜 짓해서 과보를 받는 거예요. 자기가 착하게 살았기 때문에 복을 받는 거예요. 하느님이 있어서 복을 주고, 벌을 주고 그러는 것이 아니어. 이건 불과(佛果)를 증해보면 다 알게 되어 있어. 최초 불이신 우리 부처님께서 “창조주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분명히 처음이어요. 그런 말씀을 계속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주가 있어서 우주만물을 창조했다? 그 사람까지도, 운명까지도 창조주가 만들었다? 이런 종교를 지금 20세기에 믿고 있으니, 이거 참 안 됐지요. 사실 그런 종교는 지금 사양길에 들었습니다. 사양길에 들었어. 서구라파에 가도 사양길에 들었다고 해. 사양길에 들었어. 20세기를 사는 지혜 있는 우리가 그런 몽매한 원시시대 때나 통하는 말이 지금도 통하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지. 일신교는 아닌 거예요. 우리〈비교종교학〉하신 분, 해박합니다. 아주 강하게 주장하지. 저기 김중섭씨 오셨나? 15층에 계신다고? 박수를 치도록 하려고 했는데...
그리고 이제 우리가 속도를 낼 때가 있습니다. 부처님 법을 펼 때가 돌아오면 속도를 낼 것입니다. 스피디하게 나갑니다. 그때 여러분들 주변의 사람들에게 포교를 많이 해주시오. 여러분, 포교의 공덕이 대단히 큽니다. 지금도 해주시오. 오늘처럼 이렇게 1,000여명 이상 오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대한민국 절에서 한 달에 두 번 법회 하는 데 있어서, 매번 1,000명 정도 온다는 절은 없어. 스님이 중앙에 오래 있어서 알아. 없어. 저기 조계사나 능인선원도 안 돼.
우리는 38선 이북에 있는 절이어요. 그런데 1,000명씩 와. 그것도 전국에서 말입니다. 여러분들, 한 사람 두 사람씩 포교를 해주십시오. 열심히 포교한 분들이 지금 계셔. 참 고맙지. 지금 보니까 부처님께서 그 이름까지도 아십니다. 복을 지으려고 해야 돼. 이것은 무루복입니다. 선근공덕입니다.
합장해주세요.
나무 영산불멸 학수쌍존 시아본사 구원실성 석가모니불...
천상천하무여불 시방세계역무비 세간소유아진견 일체무유여불자
고아일심귀명정례
스님이 염불하라는 대로 염불하고 살면, 늙어서 똥오줌 절대 받아 낼 수 없습니다. 치매가 안 옵니다. 중풍이 안 오고요. 그리고 무서운 전염병을 만날 수도 없고, 전쟁에 총 맞아 죽을 수도 없습니다. 부처님의 그 수천만억 화신이 도와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그걸 아셔야 돼. 아셨지요.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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