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22일 목요일
[2011년4월3일 현지사 자재만현큰스님 정기법문 부산편]선(禪)의 역사와 문제점영혼체, 윤회, 무주고혼의 빙의..外
자재 만현 큰스님 정기법문
현지궁 현지사 부산편
신불기 14년(불기 2555년 신묘년 음력 3.1(2011. 4. 3. 일)큰스님 부산 법문
부처님 오시날 석가탑 점안/ 선(禪)의 역사와 문제점/ 영산당시 1,250인의 법위/ 보신부처님이 현지사에 계시는 이유/ 광명 만덕 큰스님의 능력/ 영혼체, 윤회, 무주고혼의 빙의/ 석가탑 안내장
오늘이 벌써 신묘년 양력 4월3일이지요. 금년도 벌써 3개월이 흘렀습니다. 음력으로는 3월 초하루지요. 오늘 부산 분원의 정기법회에 일본에서도 또 오셨네요. 항상 일본의 우리 신도 분들도 나오시고, 제주도에서도 오시고...오늘 1,000여명이 오셨습니다. 지금 우리 춘천 본사에서는 등을 한창 달고 있습니다. 어제 현재 십일만등(十一萬燈)이 넘었습니다. 11만6천등 정도가 되었습니다. 12만5천등이 앞으로 한 1주일이면 끝날 것 같습니다. 그 안에 모두 동참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번 4월 초파일은 대단히 뜻이 있습니다. 석가불탑(석가탑)을 조성, 점안해서 모십니다. 이 석가탑, 우리 현지사에는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이 있고, 작년에 다보불탑(다보탑)을 조성 점안해서 모셨고, 금년에는 석가불탑(석가탑)을 조성합니다. 여러분! 이 청정법신비로자나부처님, 다보불, 석가모니부처님의 불탑인 석가탑, 이것을 모르면 불법(佛法)을 전도할 자격이 없습니다. 나는 ‘불교는 위대한 종교이다.
우주적인 진리를 지니고 있는 메타종교이다’라고 선언한 지 5년 됩니다. 지금 내 뒤에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을 우리가 여기 부산에서 모시고 있는데, 이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을 내가 가끔 이야기하지만, 이 부처님이 어떤 부처님인지 2600년 동안 몰랐습니다. 모릅니다. 역시 다보부처님이나 다보탑도 그렇습니다.
불교의 석학이라는 분들이 다보불탑을 상징으로 봅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이 영적 실체를 보려면 붓다의 경지이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볼 수 없어서 그렇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지요. 이번 4월 초파일에 우리가 모시게 되는 석가탑(석가불탑), 이것은 어느 나라를 다 다녀 봐도 없습니다. 석가불탑은 없습니다. 진짜 석가탑이 없습니다.
불국사에 석가탑이 있지요. 그건 아닙니다. 우리 석가모니 부처님은 남섬부주 교주이십니다. 그러면서 삼계의 법왕입니다. 그분은 남섬부주 교주이시기 때문에 여러분이 아셔야 됩니다. 남섬부주에 와 계십니다. 우리가 사는 이 지구촌에 와 계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의 불교는 묘하게 왜곡되어서 불보살님이 없다고 하지요.
이 마음이 부처라고 하지요. 달리 모습을 지니고 계시는 절대자가 있다고 하지 않습니다. 부처님이 계신다고 안합니다. 지금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5년 전에 이 법상에 올라 책을 내면서 ‘불과를 증한 붓다는 마음 밖도 아니고, 마음속도 아니고, 유무를 초월한 무아속 절대계에 여여히 계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것을 그 누구도 이해 못했지요. 이해할 수가 없지요.
이 나라 선(禪)의 역사가 1300년쯤 되지요. 신라의 도의선사, 도의 큰스님이 중국 당나라에 가서 '서당 지장(西堂 智藏)'이라는 스님한테 법을 이어받아 거기에서 상당기간 수학을 하다가 귀국, 강원도에 진전사(陳田寺)를 지어서 주석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때부터 지금까지 1300년쯤 될 것입니다. 그분이 선의 종지(宗旨)를, 또 깨침을 진전사에서 많이 포교했습니다. 선풍을 진작했습니다.
손주 제자쯤 되는 '최징'이라는 분이 이제 가지산에 구산선문을 최초로 엽니다. 그 후로 많은 큰스님들이 중국에 가서 큰스님의 법을 받아와 구산선문을 열지요. 여러분 아시죠? 아홉 개의 본산, 선의 본산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선을 모두 가르쳤어요. 이런지가 1300년 됩니다. 이런 1300년의 역사가 있지요.
그 선(禪)에서는, 선불교(禪佛敎)에서는,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마음이 부처’라고 합니다. 마음 밖에서 부처를 이야기 하는 것은 용인이 안 됩니다. 아니라고 합니다. 따라서 극락도 지옥도 마음 밖에서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보지 않습니다. 스님이 가끔 법문을 해서 여러분들이 잘 아시겠습니다만, 오늘 처음 오신 분들이 많기 때문에 한 번 더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처음 오신 분 손들어 보세요! 전부 손들어 보세요!
박수로 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선(禪)에서는 그저 근심 걱정 고통 번뇌를 느끼는 마음자리, 이 자리가 지옥이라고 합니다. 또 항상 만족스럽고 행복을 느낀 그 마음자리를 극락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이 사람 자재 만현은 ‘그것은 전혀 옳지 않다’고 선언하면서 지금까지 법문을 해오고 있습니다.
그건 아닙니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 공부 많이 한 사람들이 유․무를 초월한 절대계를 넘어서, 훨씬 들어가서, 붓다의 삼매인 대적정삼매를 통과해서, 붓다의 깨달음 ․ 지혜가 열리지 않고 법문을 하게 되면 중생을 오도(誤導)할 수 있습니다. 눈먼 중생을 오도할 수 있습니다. 잘못 인도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 죄는 크답니다.
며칠 전에 우리 영산불교 스님이 된 두 사람의 전생을 알게 되었는데, 과거생이 2600년 전 부처님 영산 당시 부처님 제자들이었습니다. 영산당시 1,250명 안에 든 부처님 제자들이었어요. 더 자세히 말씀드리면, 한 스님은 702번째 였어요. 한 스님은 666번째이고요. 오늘 처음 여러분한테 1,250명의 법위를 말씀드립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겁니다. 영산당시 10대 제자는 보살 중품, 상품 그 이상입니다. 그 다음 16성을 아시지요? ‘16성은 보살 하품으로 보라’ 그러십니다. 열 분의 큰스님, 열여섯 분의 스님, 그 다음의 순위가 27번째이지요. ‘27번째에서 100위까지(100번까지)는 보살대기다, 정토대기다.’ 그 다음 ‘101번부터 500번까지는 무루대아라한이니라.’ ‘501번부터 1,250번까지는 아라한 아나함 사다함 수다원으로 보라.’
부처님 재세시 당신께서 반열반에 드시기 직전에 그 법을 보아서 모든 순위를 정했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어떤 때에는 항상 그 기록한 노트를 가지고 오십니다.
그러시면서 그 사람의 업장을 벗기시고 하실 때에 그 수행인 제자의 법위를 말씀해 주십니다. “저놈은 666번째, 이름은 누구니라.” 더 자세히 말씀도 해주십니다. “저 애는 내가 잘 기억하니라. 그때도 대단히 영특했다. 어느 십대제자 어느 존자가 너무도 사랑해서 내가 저 애를 잘 알지.” 이렇게도 말씀해 주십니다. 상당히 자세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석가탑에 대해서 말씀드리다가 이런저런 말씀을 해드립니다. 이 1,250명에 대해서도 말씀을 더 해드려야 되는데...
이 1,250명의 제자들, 어떻게 해서 1,250명의 제자들이 모여들게 되었느냐 하면, 여러분들도 잘 아실 거예요. '야사'라는 부잣집 아들이 처음 귀의했잖아요. 그 친구들이 50명 들어왔습니다. 그 다음에 '사리불'하고 '목건련'이 100명씩의 제자를 데리고 왔지요. 250명 되지요. 그 다음에 '가샤파(가섭)'삼형제가 있습니다. 십대제자의 가섭존자가 아닙니다. 가섭존자가 아닌 '가섭'삼형제가 있어요. 맏형이 500명, 그리고 두 동생이 250명씩, 그래서 자기들을 따르는 제자1,000명을 데리고 옵니다. 거기는 불을 숭상했지요.
그렇게 해서 1,250명이 되었습니다. 죽림정사가 마련될 때에 벌써 1,250명이 되었을 거예요. 그 후로 많은 수행인들이 부처님께 귀의했습니다. 귀의를 했는데, 부처님 곁에서 공부하다가 떠나고, 떠나고, 다른 곳으로 가서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그 중에는 또 환속을 하고, 많이도 환속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반열반에 드실 무렵 부처님께서는 어떤 생각으로 제자들의 법위를 모두 정하게 되셨습니다. 1,250명까지 부처님께서 스스로 인가를 해주셨다고 합니다. 이게 진짜 1,250명입니다. 처음 모인 1250인 하고는 다른 1250인입니다.
석가탑. 이 영산궁, 영축산 허공에 영산궁이 있습니다. 삼계지존이시고 남섬부주 교주이시기 때문에, 이 지구촌을 관장하고 계시니까 지구촌에 계셔야지요. 그래서 영축산 허공에 영산궁이 있습니다. 거기에 부처님께서 주~욱 계셔왔어요. 그리고 저기 상적광세계, 그걸 우리는 그냥 통칭 하늘이라고 하는데 그 연화장세계에 부처님 거소가 또 있습니다.
거기에 계시다가 영축산의 영산궁에 와계시다가 그렇게 해오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이 지구촌의 사바 세상에 인연 있는 불자들을 교화하시고, 필요에 따라서는 또 몸을 받아 오시기도 했고, 수많은 삼천대천세계에 불법이 있는, 불법을 믿고 있는 그 불국토에 가셔서 교화를 하시고 법문을 하시고, 그러시다가 춘천의 현지궁 현지사에 오시게 되었어요.
왜 오셨을까? 원만보신노사나불, 그 부처님이 왜 보신으로서(보신불로서) 춘천 현지사에 와계실까? 여러분, 왜 와계실까?
아시는 분이 적네. 우리 김병기씨? 아시는 분 손들어 보시오. 누가 말씀을 하시네.
이건 누구도 모르는, 정말 이것은 아무도 모르는 사실입니다. ‘두 제자를 붓다 만들어 데려가시기 위해서’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에 '가섭'을 항상 받쳐주고 계셨습니다, 보살피시고 계셨습니다. 가섭존자가 세상에 나오니까 어렸을 때부터 주~욱 보시다가, 이제 때가 되어서 서울에서부터 항상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시다가 이제 저기 보광동으러 갔다가, 보광동에서 이제 춘천으로 오셔가지고 우리 곁에 항상 계십니다.
부처님께서 오셔서 계시기 때문에 문수 · 보현, 또 사바세상에서 보살행을 하시는 관세음보살님 · 지장보살님, 그리고 불국토에서 큰스님들의 건강을 담임하고 계시는 약사부처님과 그 좌우보처, 그 분이 이제 두 제자의 건강과 성과를 얻은 제자들의 건강을 살피기 위해서 와계시고, 그러다가 보니까 영적으로 어머니 역할을 하시는 준제보살님이 와계시고, 이제 또 수보리 · 사리불은 십대제자로서 불과를 이루고 광명불의 좌우보처로 되어 있으니까 그분들이 와계시고, 또 오여래 부처님이 와계시고, 그리고 산왕불 ‧ 치성광여래불, 용궁 쪽의 보명불은 인간들의 길흉화복을 주관한다고 보면 맞습니다.
그러니까 복을 내리시는 그런 분들이 또 와계시고, 이렇게 해서 16사부님이 와계시는데, 전번에 작년이지요, 혜위등왕불이신 미륵부처님 미륵보살님께서 오셨어요. 그래서 16사부님이 계십니다.
영산궁에 그 석가탑이 있는데, 그 석가탑 안에 부처님이 터~억 계시지요. 지금 보면 그 영산궁의 석가탑을 그대로 조그만 하게 재현했기 때문에 그 영산궁의 석가탑하고 거의 같은 모습입니다. 저기의 다보탑은 사성제를 상징해서 사각이지만, 석가탑은 팔정도를 상징해서 여덟모서리(팔각)가 되어 있어요.
이제 석가불탑의 가운데에 부처님께서 터~억 계시지요. 다보탑은 선정에 드시기 때문에 그 형상만 해놨고, 석가불탑 안에는 왜 부처님을 모셨느냐? 여러분, 이제 초파일 날 가보시면 알아. 부처님께서 설법하실 때, 영산궁에서 설법하실 때, 부처님께서 설법하시게 되면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붓다들이 와서 법문을 듣고, 상품보살들 상수보살들이 와서 법문을 듣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법문을 하실 때 석가탑 안에 들어가셔서 하신다고. 거기의 불탑은 굉장히 크고 넓지요. 다보탑도 실물은 굉장히 크다고 했지요. 줄여가지고 저렇게 한 것이지요. 법문을 하실 때에는 당신이 가운데서 법문을 하게 되고, 좌우보처 문수·보현이 시립하고, 문수·보현의 양대 보살이 양옆에 또 시립하고, 우리 부처님의 태자이자 법왕자(법의 상속자)이신 광명불과 좌우보처이신 수보리(명상불)·사리불(화광불) 양 붓다들이 뒤에 계시고, 문수보살님의 법왕자 자재통왕불과 좌우에 상행·정행이 뒤에 계시고, 밑의 단에는 붓다들이 서열 따라 주~욱 계시는데, 옛날 왕이 조회를 할 때의 모습이 TV에 나오잖아요. 양쪽에 주~욱 시립해서 왕을 향하는 것이 아니고, 양쪽의 서로를 향하게 되지요. 그러합니다. 그렇게 한없이 수십 명 수백 명 수천 명이 좌~악 도열해 있어요. 그래서 부처님께서 법문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선(禪)에서는 부처가 없다고 그래요. 마음이라고 그래요. 이 경계를 보려면 대적정삼매에 자유로이 들어야 됩니다. 대적정삼매는 해인삼매보다 위입니다. 해인삼매는 상품보살이 드는 삼매인데, 해인삼매에 들고 나오셔서《화엄경》을 썼다고 하는 그런 깊은 삼매가 해인삼매예요. 그보다도 깊은 삼매가 대적정삼매입니다. 해인삼매에서 대적정삼매에 들어가려면 바위에다가 계란던지기라고 그래. 그렇게 생각하면 되어요.
그런 대적정삼매를 통과해야 지옥이 있는 것도 보고, 인간 영혼의 실체가 있는 것도 봅니다. 인간은 형이상적인 실체가 있는 거예요. 영혼이 없는 것이 아니어요. 여러분, 잘 들으셔야 돼. 영적인 실체가 있어. 형이상적인 실체가 있는데, 그것이 본체(本體)예요. 그것이 기체(基體)입니다. 기체(基體)가 있어야 우리가 윤회를 하는 거예요.
기체(基體)도 없이 윤회를 어떻게 하나요? 원 본체가 있어야 되는 거요. 그런데 사실은 2600년 동안 그 누구도 대적정삼매를 들어가는 분이 없었기 때문에 지옥도 극락도 없고, 사람의(인간의) 영혼도 없다고 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이 현상세계 존재의 세 가지 특성을 말씀하실 때 제행무상, 고(苦), 무아(제법무아)를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삼법인이라고 하지요. 그리고 저쪽 본체계의 그 상락아정의 세계는 열반적정이라고 해. 고(苦, 일체개고)를 빼고 삼법인이라고 합니다. 현상세계의 진상(진실)은 무상이고, 고(苦)이고, 무아예요. 연기법(緣起法)이 우주만법을 지배하기 때문에 무상한 거예요. 인연 따라 이루어지니까. 인연이 모이면 생기고, 인연이 다하면 흩어져버려요. 없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체가 없다고 하신 거예요. 무아(無我)라고 하신 거예요.
그러나 우리 인간을 볼 때에 우리의 몸뚱이가 색·수·상·행·식이라는 오온(五蘊)으로 이루어져 있잖아요. 이 오온을 따지고 보면(분석해 보면) 실체가 없어. 현상계에서 볼 때에는 없어. 그러니까 반야심경에 “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오온이 공하다는 것까지 보면 모든 근심 걱정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정말 본체계까지 우리 인간의 실체가 없느냐? 그렇지 않아. 그걸 이제 알아야 돼. 부처님께서는 중생이 너무 집착하기 때문에 그것까지는 말씀하시지 않으셨어요. 유(有)에 너무 집착을 해. 이 몸뚱이에 집착을 해. 죄를 짓는 이유가 이 몸뚱이를 나(我)라고 보기 때문에 그래. 이 몸뚱이, 이 생각, 이것은 내가 아니어. 이것은 무상한 거예요. 언젠가 없어지잖아요. 100년도 안 되어서 없어지잖아요. 생각도 자꾸자꾸 일어났다가 없어졌다가 하잖아요.
우리의 이 몸뚱이나 우리의 생각, 이건 내가 아닌 거예요. 나가 아니어. 내 것도 아니어. 그래서 무아를 비아(非我)로 봐야 되는 거예요. 비아로 해석해야 되는 거예요. 이건(몸뚱이) 나가 아니고, 내 것도 아닌 거예요. 그러니까 이 몸뚱이에 집착하지 말라 그거예요. 집착하지 마라. 이 몸뚱이에 집착하고 보니까 대상에도, 온갖 것에 대해서도 집착한단 말이어. 이것도 다 인연소생인데, 실체가 없는데, 이것을 집착해요.
그래서 이제 중생이 재물이라든지, 성이라든지, 명예라든지, 수명에 대해서 굉장히 집착을 해. 재물, 부(富)에 대해서, 명예에 대해서, 권력에 대해서, 성에 대해서 집착한단 말이어. 이것을 깨려고 하니까 이 집착을 하지 않아야 되요. 집착을 하게 되면 업을 지어요. 집착에서 오는 거예요. 업을 지으니까, 나쁜 업을 지으니까 고통이 오는 거요. 업은 왜 오느냐? 번뇌에서 와. 번뇌는 욕심에서 와. 왜?
이 몸뚱이가 나라고 생각하고, 이놈을 먹여 살리려 하고, 출세해야 되고, 많이 소유해야 됩니다. 여기서부터 업을 짓는 다고요. 그러니까 수행자들은 이걸 알아야 돼. 모든 것에, 현상세계의 일체 것은 집착해서는 안 돼. 그래서《금강경》에서 나라는 생각을 버리라는 거예요. 우리는 나라는 생각을 버려버려야 돼. 이게 수행자의 모습이어요. 그렇게 수행하는 거예요. 그렇게 가야 돼.
이 무아법을 이해 못해 가지고 저쪽 본체까지도 그냥 무아로, 무아법으로 해석해가지고 불보살도 없고, 극락도 없고, 지옥도 없고, 우리 영혼도 없다고 한단 말이어요. 이게 지금의 공식 견해요 태도입니다. 지금까지의 불교가 이것이어요. 이건 아닌 거예요. 이렇기 때문에 인도에서 버티지 못하고 쫓겨나온 거예요. 많은 이유가 있지만, 주된 이유는 이것이어요. 영혼이 없다는 거요. 무아라는 거요. 무아가 ‘내가 없다’고 하는데, 깊이 들어가면 그 말이 아니어. 이제《열반경》에 나옵니다.
이제 유아(有我)가 나와요. 유아(有我). 방편으로 무아를 말씀하신 거예요. 불보살님이 계셔. 32상80종호를 지니시고, 너무너무도 거룩하신 빛의 모습으로 지혜로 자비로 계신다고요. 대적정삼매에 들어가야 봅니다. 석가탑 안에서 법문을 주~욱 하시는 것도 봅니다. 붓다마다 얼굴이 다 달라요. 성격도 달라. 모두 다 부처님 법문을 숙연하게, 정말 공경하고, 지존의 어르신께서 법문하시는 것을 들으셔. 경청해. 의문이 있으면 딱 나가서 저기 티베트에서 인사하는 법, 그것은 오체투지가 아니지. 온몸을 그냥 바쳐서 하는 것 있잖아요.
그것이 저쪽의 예법이어요. 그래서 부처님 앞에까지 와서 호궤(胡跪)를 딱해가지고, 부처님께 의심나는 것을 질문하는 거예요. 이러는데 지금 부처님이 없다는 거예요. 불 · 보살 없다는 거요. 극락세계도 없고. 보살이 극락을 가는데, 극락세계가 없어. 지옥도 없다고 해. 결국은 윤회도 안한다고 해. 아니라고 해. 윤회도 지금 마음으로 해석해버리잖아요. 마음이 희로애락으로 돌아가는 것을 윤회라고 해요. 영혼도 없고. 그러면 무엇 때문에 기도를 하고, 불공을 하고, 천도를 합니까? 말이 안 맞지요. 영가가 왜 없어?
자살하고, 타살당해 죽고, 나쁜 병 얻어서 죽고, 사고사 당해서 죽고 하는 사람들이 명을 다 살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명부에 못 들어 가는 거예요. 반드시 명부에서 사자가 와서 데려 가는 거예요. 그런데 살 명이 있는데도 죽어버렸기 때문에 이것은 명부에서 오지 않았어. 그렇게 죽었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명부에 못 들어가는 거예요. 명부에 못 들어가다가 보니까 몸뚱이는 땅속에 들어가거나 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이(영혼체가) 진짜 생명체이니까, 이놈이(영체가) 먹고 살고, 젊은 애들은 성욕도 있고 그래. 이걸 충족하기 위해서 자기 자손의 몸속으로 들어간다고. 이것을 빙의라고 합니다. 빙의. 그래서 그 집안에 무주고혼이 많으면 큰일 나. 되는 일이 없어. 그 무주고혼이 있는 곳은 너무도 춥고 배가 고파. 여러분, 하루 세 끼 잡수셔야 되잖아요.
여름에는 시원한 옷을 입어야 되고, 겨울에는 따뜻한 옷을 입어야 돼. 목욕도 해야 되고, 극장에도 가야 되고, 야구장에 가서 구경해야 돼. 그 영혼체도 똑같은 그런 욕구가 있어요. 그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몸속으로 들어가야 돼. 몸속으로 들어가서 먹는 거예요. 그 무주고혼 상태로는 못 먹어. 몸속으로 들어가서 먹어야 돼. 여러분의 몸속으로 들어가야 돼. 그런데 나쁜 병을 10년 20년 앓다가 죽은 그 영혼체인데, 그 영혼체가 여러분의 몸속으로 들어가요. 아주 탁해.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여기는 세수도 못하고, 목욕도 못해. 그것이 여러분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 탁한 기가 문제가 돼.
우리 광명 만덕님은 대단한 어른입니다. 대적정삼매를 자유자재로 들어가요. 그렇게 보여도 붓다예요. 절대계에는 광명불이 대단한 파워가 있어. 지존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지존이 가지고 계시는 지휘봉을 들고 계셔요. 그건 여의봉과 같아. 못할 일이 없어. 오늘 아침에 나하고 통화했는데, 뭣을 물어보시더라고. 저기 영가수배를 하는데, 지금 그분이 귀신을 잡아. 여러분, 귀신 잡는다는 사람 들어봤습니까?
지금까지의 불교는 귀신이 없다고 하는데, 귀신을 잡는다는 거요. 그 말이 무슨 말이오? 귀신이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죽어서 명부에 못 들어가면 4번 영체가, 4번 영체 속에 3번 2번 1번 영체가 겹쳐져서 돌아다녀요. 여러분, 죽으면 이 생각 이 욕심을 다 가져가요. 4번 영체로 옮겨가요. 4번 영체는 여러분의 털끝 털구멍 하나도 안 틀려요. 여러분이어요. 털구멍 하나도 안 틀려. 안경 쓰고 죽었으면 그 사람은 안경 쓰고 다녀요. 꼽추는 꼽추로 다니고, 목발 짚고 다니던 사람은 거기서도 목발 짚고 다닌다고. 90살 먹은 꼬부랑 할머니라면 꼬부랑 할머니로 다녀. 그러니까 알아.
이번에 수배할 때, ‘저기 만현스님! 검찰에 가서 조사를 받고 그날 저녁에 자살해 죽었다는데, 그 말이 맞소?’ 하시더라고. 다른 전화를 하면서 이 영가가 거짓말 하는지 바른말 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묻는다고 하더라고. 그런 말씀을 하더라고. 그래서 ‘아! 그렇다’고 했습니다. 저기 검찰에 가서 그 무서운 심문을 받고, 요즘은 고문은 안 당하지. 그렇지만 하루 저녁에 그냥 열 몇 시간씩 고강도로 조사를 받잖아요. 심문을 받잖아요. 그러니까 ‘하! 이거 살 수가 없다’ 해가지고 얼마든지 죽는다고요. 거기에 가서 조사를 받고 얼마든지 자살해 죽는다고요. 그런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영가가 거짓말하나 하고 묻는다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의 불교가 ‘영가가 없다’고 합니다. 이거 안 되는 거요. 이런 불교 갖고는 중생을 구할 수가 없는 거예요.
지옥도 없고, 극락도 없다고 하니까 어디로 데려갑니까? 어디로? 무슨 교육을 한다는 말이어? 대부분이 지옥을 가는데. 무주고혼도 되는데. 한번 무주고혼이 되면 1000년도 가는데. 어쩌다가 법계에서 정리할 때가 있어요. 그때 또 놓치면(숨어버리면) 또 가. 거기도 숨어.
자, 불보살님 계시고, 영체도 있는 거예요. 그러나 부처님 당시에는 이런 말을 별로 하지 않으셨어요. 그 당시는 이제 불법을 펴시기 위해서 인간 몸을 받아오셨잖아요.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의 고통은 마찬가지예요. 춥고 병들고 늙고 그랬어요. 사업에 실패도 하고, 객지에 나가서 사고사 당해 죽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을 향해서 아주 기초부터 이야기해 주셔요. 기초부터 이야기해 주셔. 그래서 이러한 삶은 끝없이 이어진다 그거예요. 죽으면 또 무주고혼도 되고, 명부에 들어가면 49일 만에 지옥을 가든지, 하늘로 가든지, 사람으로 오든지, 짐승이 되든지 결정 되잖아요. 결정 된단 말이어. 거기서도 끝이 아니라 그거예요.
거기가 끝이 아니어. 저기 기독교는 거기가 끝이지. 하늘가고 지옥 가버리면 거기가 영원해버리더구먼. 그렇지 않아. 하늘이 어떻게 영원해? 극락세계는 영원해. 하늘은 또 복진타락하면 또 와. 지옥도 벌을 받을 만큼 받으면 다시 와. 올 때는 아귀나 짐승을 거치게 되어 있어. 그런 업을 지어. 죄를 지은 사람들은 온갖 죄를 짓습니다. 그렇게 해서 사람 몸을 받아오고, 또 사람으로 와서 살다가 죽으면 또 그래. 자꾸 여섯 세계를 윤회하는 거예요. 이 여섯 세계를 윤회하는데, 부처님께서 보실 때 윤회를 벗어난 세계가 있어요.
윤회를 벗어난 세계가 있어. 그 세계로 가면 윤회에 안 떨어져. 영원히 안 떨어져. 그 세계는 하늘세계보다도 더 좋아. 그래서 그 세계, 거기서부터 열반이라고 해. 니르바나세계라고 해요. 열반으로 가는 길을 말씀하시고, 열반에 드는 수행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게 오늘날 위빠사나, 저기 남방의 수행법입니다. 지관(止觀)수행법, 사마타 ‧ 위빠사나입니다. 그건 훌륭한 수행법입니다. 거기는 아라한까지가 됩니다.
아라한까지 되기 때문에 그것은 정말 바람직한 수행법이지만, 지금 여기 불행하게도 우리의 선불교가 1300년 동안 군림하고 있는데, 이 선불교는 아니어. 이 선불교는 인도의 불교가, 인도의 불교 중에서도 유식하고 여래장사상이 중국으로 와가지고 그 당시 중국의 도교하고 융합된 것이어. 이것이 선불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순수 부처님 불교라고 하기는 좀 그렇습니다. 수행법도 간화가 있고, 묵조가 있고 한데, 한국은 간화입니다. 화두공부가 주를 이루는 그런 종파인데 공부법도 틀려. 화두를 들라고 하지요.
아라한이 되는데 지관공부를 해야 돼. 팔정도에서 정념 정정 공부가 있어. 그래서 선정으로 들어가도록 해. 선정으로 빠지도록 해. 무아 속으로 들어가야 돼. 무상, 고(苦), 무아를 철견하면서 니르바나 세계로 들어가는 거예요. 이게 진짜 공부예요. 무아를 체험하면서 탐욕심과 진노, 화내는 마음과 공포의 경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거예요. 이게 진정한 자유입니다.
그런데 선(禪)에서는 자유 자유 하지요. 해탈도 말 안하고, 선정도 이야기 안 해요. 다만 욕심 탐욕 진심 치심, 이런 데에서 자유롭다고 하지만, 내 경험으로 봐서 화두타파 해가지고는 그렇지를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아주 예쁜 여자가 저기에 있으면, 전생에 인연이 되면 마음이 끌린다고. 그런데 남방 위빠사나는 그렇지 않습니다. 철저히 공부해 들어가는데, 그건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탐욕 진심 공포에서 자유로운 경계로 들어가. 자유로운 세계로 들어간다고. 이게 진짜 대자유입니다. 그러면서 윤회를 벗어난단 말이에요.
그런데 내가 오늘 이 선(禪)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지금 내가 할려고 했던 것은 순 선(禪)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분한테 많이 하고 싶었는데, 이것을 하게 되면 남의 종단의 교학과 수행법을 흉보는 것 같이 보여집니다. 나는 그것이 아닙니다.
내 진심은요. 부처님의 정법으로 들어왔으면 하는 노파심과 진심에서 말씀하는 거예요. 선불교(禪佛敎)를 따르고 그 수행법을 한다는 것, 나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봐. 내가 쓴《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권에서는 그래도 좋은 수행법이라고 해놨지만, 진실을 말 할 때에는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아. 진실을 말한다면 나는 그 수행법을 하지 말라고 그래. 왜? 견성, 전생에 상당한 선근이 있어야 되지요. 선근이 없으면 안 됩니다.
화두타파 못합니다. 화두일념이 안 됩니다. 의단이 생길 수가 없어. 확실히 인간의 본성자리는 드러나. 그건 맞아. 드러나. 화두타파 할 때에는 특성이 모든 경계가 뒤집혀져버려. 뒤집혀져. 그래가지고 공(空), 나와 더불어 모든 경계가 없어져 버려. 투~욱 터져버려. 이것이 특성이어. 그러면서 오직 빛만이 쏟아져. 이것입니다. 그러면서 대단한 평화와 안온과 행복감을 느껴. 정말로 희유하고 바람직한 일이어. 그러니까 일어나서 궁둥이 춤을 추는 거예요. 누구나 그래. 그건 사실이어. 그러나 그 경계가 한식경을 지나가지 않는다. 내가《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권에 써놨어. 그렇지만 한두 달 그 감이, 영상이 남아있지요. 남아있지. 다시 그 경계를 보려면 또 해야 돼. 죽으라고 해야 돼.
그런데 화두타파가 능사가 아니어. 화두타파 한 사람들은 자기가 조사어록을 봐도 전부 다 이해가 되고, ‘내가 뚫은 데가 진짜구나. 아! 그 큰스님도 여기까지 왔구나. 아! 내가 붓다구나 붓다.’ 자기가 붓다인체 하거든. 그래서 사부대중이 여불(如佛) 대접을 해주거든. 법상에 올라가서 그 지존인 우리 부처님을 갖다가 예의에 맞지 않는 말을 하거든. ‘석가가~’라는 말을 서슴지 않습니다. 이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물론 그 사람들은 그 선의 본성, 그 자리를 역설하려고 한 것이지만, 부처님을 갖다가 말을, 입에 담을 수 없는 독설을 합니다. 그러기도 합니다.
대적정삼매에 들어가서, 우주의 끝까지 들어가서 최정상까지 뚫어가지고, 그런 불의 경지에 가가지고 법을 설해야 되는 거예요. 법을 설해야 돼. 그렇지 않고는 큰 죄를 지을 수가 있어. 앞에서 이야기를 끄집어 내서 다 이야기를 못한 것이 있는데, 우리 두 제자 702번째와 666번째는 아라한이었습니다. 아라한이 어떻게 또 보살 되려고 와가지고 깨끗하게 살고, 부처님 율을 배워서 청정하게 살고, 죄짓지 말고 살 일이지, 도중에 한사람은 자기가 부리던 종을 팔아먹어 가지고 그 종이 한평생 피눈물을 쏟으면서 살았어. 노예로 살았으니까. 그 과보로 그 사람의 영체를 보니까 철판으로 싸여있었습니다.
그 철판을 빠개니까(그건 부처님밖에 빠갤 수가 없어), 그 영체가 쇠사슬로 목을 걸어가지고 있었습니다. 노예를 잡아갈 때 그렇게 하나 봐요. 목을 쇠사슬로 걸어가지고 두 손을 뒤로 묶어가지고 있었다고요. 그러니 사람으로 와가지고 산다고 해도 얼마만큼 행복스럽게 살았겠습니까. 영체가 그러한데요. 그래서 그 사람은 도저히 살 수 없어서 출가한 거예요. 대학도 나오고 출가도 했어. 쇠사슬도 다 풀어주고, 그 영체 몸속에 있는 온갖 부정한 것도 다 소멸해주고, 그 무서운 철판 업장이며 쇠사슬도 전부 부처님께서 무량광으로 끊어주셨습니다.
영체의 솨사슬은 부처님밖에 못 끊어. 오여래부처님 정도는 끊어주지요. 부처님 밖에 못 끊어. 이것은 백생 천생 수행해도 안 돼. 끊을 수가 없어. 이런 업은 소멸할 수가 없어. 그래서 그 끊어진 쇠사슬과 쇳덩어리를 이제 삼매화에다가 넣어서 재로 만들어 버려야 돼. 부처님은 언제 어디서라도 삼매화를 딱 만들어요. 마치 올림픽하면 성화봉 같이 만들어 놓습니다. 그래가지고 집어넣어 재로 만들어 줘야지, 그렇지 않으면 다시 오게 되어. 다시 달라붙게 되어. 자기가 지은 업을 완전히 그렇게 소멸해 주는 거예요.
우리는 그 구업을 지어서는 안 됩니다. 붓다와 그 교법을 비방 능멸하는 구업은 앞에서 노예를 팔아먹는 것, 종을 팔아먹는 것보다도 훨씬 더 무섭습니다. 그 업은요. 법상에 올라가서 그 지중한 업을 어떻게 짓냐고요. 왜 짓느냐 그거예요. 그러지 않았으면 싶어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런 업은 지어서는 안 돼. 그런 충정에서 선을 이야기합니다. 선종을 이야기 한 것입니다.
선종은, '육조 혜능'이라는 분이 당나라 때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산에 가서 나무를 해다가 팔아서 살았던 그런 나뭇꾼이었어요. 32살 때 출가했는데, 나무를 팔러 갔다가《금강경》을 읽는 소리를 듣고,《금강경》의 “응무소주 이생기심”이라는 부분을 듣고 깨친 사람입니다. '혜능'이. 그래서 5조 '홍인'스님 문하에 가서 그분의 인정을 받습니다. 인정받은 내력이 있어요.
오늘 선(禪)이야기를 좀 하려고 하는데 시간이 다 되었구먼. 내가 선(禪)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완전한 선종(禪宗) 출신입니다. 그럼에도 선(禪)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은 또다시 이야기하지만, 지금의 선불교(禪佛敎), 1300년인데 이 두터운 벽,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부처님이 계시니까, 절대계에 계시니까 염불이 정법이다.
팔정도칭명염불을 해라. 이것이 진짜 부처님 공부다.’ 위빠사나는 그 당시는 최고의 공부였어. 그런데 그 위빠사나는 아라한까지만 갈 수가 있어. 그 이상은 못가. 그러나 팔정도칭명염불은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될 수 있어. 이것은 그 우주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는 붓다들의(부처님의) 가피력이 오니까 가피를 입어서 업장도 씻고, 소멸하고 할 수도 있어. 업장이 소멸되지 않으면 과거생이나 금생에 와서 지은 그 무서운 죄업(업)을 반드시 받아. 과보를 반드시 받아. 그 무서운 죄업을(업을) 씻지 않으면, 소멸하지 않으면 반드시 받아. 그런데 우리 영산불교 현지사에서는 업장을 씻어줘.
그건《열반경》에 나와. 다시 이 세상에 와서 그때는 업장을 씻어준다는 《열반경》 이야기가 나와. 지금을 이야기 하는 거예요. 지금까지 업장 씻어 준다는 절이 있습디까? 없어. 업장이 무엇인지도 잘 몰라. 어떻게 하면 정화하고 소멸하는 지도 몰라. 그 실체를 몰라. 영체도 없는데 뭐. 영혼이 없는데. 그러면서도 공부가 안 되는 수좌들한테 ‘너는 업이 지중하니까 이번에 한 100일 저기 어디 기도도량에 가서 기도 좀 하고 오너라.’ 이렇게 하지. 기도 100일 한다고 해서 그것이 소멸되겠소? 부처님 말씀이 그래. “이건 천만 생이 가도 자력으로는 안 된다”고 하시면서 끊어줘.
영산불교, 우리 정법불교, 이것이 갓 태어난 지가 5년밖에 되지 않았어. 그러나 책에 나오는 법문 내용은 기가 막힌 거예요. 이건 내가 나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어. 정말 객관에서 봐서, 중도에서 볼 때 이런 법이 없었어. 이런 가르침이 없었어요. 우리 영산불교 현지사 신도가 되면, 이렇게 오늘 많이 씻어줘. 부처님이 지금 여러분의 업장을 많이도 씻어줘. 여러분, 법문이 어려워서 저 말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다
해도 좋아. 이 불교 용어까지 해석해서 법문하기가 참 어려워요. 그러니까 일정수준을 유지하는데, 이것을 들을 수 없다고 하는 분들도 있어요. 지금까지 다른 절만 다닌 사람은 처음에 와서 잘 못 들어. 이해를 잘 못해. 잘 몰라. 못 알아들을 거예요. 그렇지만 업장이 씻어지니까 와서 들으시라고. 삼생에 복을 지어가지고도 업장이 씻어지는 것이 아니어. 그래서 삼생에 걸쳐서 공덕을 짓는 것 보다 붓다의 법문을 듣는 것이 훨씬 더 낫는 거예요. 이것은 진실이어요.
저기 당나라 당시 '현장'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삼장법사 '현장'인데, 경율론에 아주 통달한 분이어서 삼장 칭호를 받았습니다. 현장법사가 30살 되던 해 인도 땅에 갈 것을 마음에 굳혔습니다. 그 중국 장안에서 인도를 가려면 걸어가니까 2~3년이 걸려요. 그런데 그 길이 지금처럼 평탄하나? 아니어. 고비사막이 있고, 천산산맥이 있고, 히말라야 산맥이 있고, 또 그 악산, 바위로 된 산, 길이 나있지 않은 산, 정글, 맹수․독사․전갈...등이 드글드글하고, 귀신이 우글거리는 그러한 멀고도 험난한 인도 땅, 목숨을 내던질 용기가 없으면 못 가. 현장법사가 대단한 보살이지요. 갔어요. 3년 걸려서 인도에 갔습니다.
그런 분들이 몇 분 있어요. 그래서 인도에 가서 17년 동안 공부를 했습니다. 죽지 않는 법, 영원히 죽지 않는 법이 인도에 있단다. 부처님께서 말씀해 놓으신 그 법이 있단다. '현장'은 이것을 구하기 위해 그렇게 자기의 소중한 젊음을 바친 분이십니다. 그래서 오실 때 한 600권의 경을 가져왔지요. 그래서 번역을 했는데, 그런 분들이 있어서 우리는 지금 가만히 앉아가지고《금강경》도 읽습니다.《금강경》, 이런 경전을 수지 독송만 해도 얼마나 복이 많으냐. 공덕이 되느냐.《금강경》읽어보면 있지요. ‘삼천대천세계만한 금덩어리 칠보를 가지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시주 보시한 공덕보다 더 많다’는 거예요.
이런《금강경》을 여러분이 읽잖아요. 그러한 사람들 덕으로 여러분들이 지금 앉아서 복을 짓고 있어요. 그런데《금강경》을 수지 독송하면서 이웃을 불쌍히 생각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나머지 여분을 나누어 줄 수 있어야 돼. 이러한 것까지 해야 돼. 그래야 진짜 그 사람은 큰 성과(聖果)를 얻을 수 있는 거예요. ‘하!《금강경》에 보면 사구게만 가져도, 사구게만 읽고 외워도 그 공덕이 이렇게 크단다. 하! 이것 참 좋네.’ 이《금강경》만 읽는 사람이 있어. 그러면서 불쌍한 사람이, 이웃이 생겨도 10원 100원 1,000원도 시주하려고 안 해. 지독히 안 해. 노랭이가 있어. 그러면 아니어. 그건 아니어.
우리 영산불교, 그 당시 '현장'법사가 알았더라면 단숨에 달려왔을 겁니다. 오지요. 영원히 죽지 않는 법이 있으니까 오지. 어느 불교, 어느 종교에 영원히 죽지 않는 법이 있나요? 없어요. 말은 있다고 하지. 그것은 아니어. 아니어. 잘하면 겨우 하늘갈 수 있을까? 그런 종교가 있고, 잘하면 윤회를 벗어날 수 있는 그런 가르침이 있어. 남방의 위빠사나입니다. 그러나 우리 현지사처럼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되는 길은 없어.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되어야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 영원히 극락에서 살아. 그 길이 있어. 스님이 항상 이야기해. 그 길로 들어오라고.
여러분, 그렇게 사시라고.
법문을 자꾸 듣고, 반드시 조상님 천도해야 되고, 나로 인해서 70명~100명의 우리 조상님들이 하늘에 태어난다. 그런 복을 지어야 돼. 그런 큰 복을 지을 줄 알아야 돼. 그런 길이 있잖아요. 문을 열어놓고 있잖아요. 기도를 해라. 석가탑을 조성해서 모시니까 불사를 해라. 이건 어마어마한 복이어. 우리 석가모니부처님, 영산불교 현지사에만 계셔. 여기하고 부산분원 대전분원은 왔다 갔다 하시지요. 다른 절은 화신으로 가 계십니다.
그걸 알아야 돼. 화신과 본불은 천지 차이어. 물속의 달그림자가 화신이라고 보면, 달 본체가 보신(본불)이어요. 그래서 우리 영산불교를 조금도 흉보지 말고, 감히 영산불교를 가지고 논하지 말라 그거요. 심지어 자기 자신도 빠지지 않으려고 하고, 잘 알지 못하면서도 ‘현지사에 가면 큰일 난다’고 한다든지, ‘뭐, 외도’라든지 하면 그 사람 앞으로 보세요. 어떻게 되는가. 정법을 능멸하면 엄청난 죄인 거예요. 그건 말로 할 수 없는 큰 죄인 거예요. 왜 그런 죄를 짓느냐고.
선불교에서는 ‘출가 수행해서 자신의 진면목을 깨우쳐 생로병사로부터 영원히 자유로울 진저’라고 합니다. ‘출가 수행해서 자기의 본래면목을 깨치면 생로병사로부터 영원히 자유롭다!’ 이런 말을 합니다. 그런데 오늘 이런 말들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다음에 하겠습니다. 이 말은 아닙니다. 자기의 면목을 깨친다고 해서 생로병사에 자유로울 수가 없어. 여기서 본래면목이란 ‘공’, ‘마음’ 우주 본체를 말하는 건데 이제 거기서 시작이어. 시작인데, 그것이 구경(究竟)인 줄 알고, 거기가 붓다자리인 줄 알고, 진실을 모르고 법을 모독하고 능멸하는 짓하면 큰 일 나.
여기서 이제 시작인 것이어. 자기의 본래면목과 계합이 되어버려야 돼. 그러면 여기는 완전히 보살이요 붓다이지. 본성이 드러난다고 해서 나하고 계합 되는 것이 아니어. 나는 다겁생의 업이(업장이) 있거든. 불순해. 순수하지 않아. 100%, 순도 100이 되어야 그 청정한 본체와 계합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붓다가 되어야 완전히 계합이 되는 거예요. 법신불을 얻음으로서 보신불을 얻고, 그래서 완전히 우주와 계합이 되는 거예요. 우주의 본체와 본성과 계합이 되는 거예요. 그러는 것이지, 출가 수행해서 화두타파 한다고, 자기의 본래면목이 드러났다고 해서 생로병사로부터 자유로운가?
이제 시작이지. 이건 이렇게 말하면 안 돼. 이것도 오도 하는 거예요. 많은 이야기가 있는데, 다음 시간에는 이것을 계속 해야 할 지, 흉본다고 할까봐 그래서 그럽니다. 나는 그것이 아니어. 그게 아니어요. 너희들 한번 깊이 성찰해봐라. 깊이 한번 사유해 봐라. 선불교가 완전히 영원히 죽지 않는 법이 있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가? 자기 본래면목을 깨쳤다고 해서 영원히 생로병사에서 자유로와? 아이쿠! 이제 시작인데. 시작이어 시작. 그런데 완전히 생로병사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한단 말이어. 완전 붓다라고 하거든. 이건 아니지. 이건 큰일 날 말이지.
그러니까 영산불교에서 나온 책도 보고, 법문도 와서 들어보고, 함부로 붓다 없다고 하지 말기 바랍니다. 영혼이 없다고 어떤 종단에서는 공식 출판물에다가 그 견해를 세상에 발표한 지가 2~3년 될 거예요. 이러면 되는가? 이러면 큰 일 나지. 이러면 안 되지. 극무간지옥을 가지. 무서운 철망이 씌워지지.
석가탑 안내장을 써 놓은 것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억겁을 윤회하면서 살아왔지만, 삼계의 붓다 중 붓다이신 다보여래불과 석가모니불, 그리고 삼계의 모든 붓다님들의 진불 법신체인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을 뵙는 일은 맹구우목의 비유같이 어려운 일이다. 과거생에 큰 선근 없이는 결코 만나 뵐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부처님 만나기는, 이건 안 되지. 그런데 저 불상, 다보여래부처님의 다보탑, 석가탑, 또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을 모시는 우리 전각에 가서 참배하는 것은 차선은 되지. 이것도 어려운 일이지)
법계의 지존이신 우리 교주 불세존께서는 영산당시 가섭 아난 두 애제자를 붓다 만들어 절대계로 데려가시기 위해 2600년 만에 이제는 원만보신노사나불로 친히 사바세계 해동 한국 땅 춘천 현지사에 와계신다. 인도 영축산의 영산궁에 이어 이곳 현지궁은 부처님의 제2의 궁이다. 깊은 대적정삼매에 들어서 본 거기 영산궁 석가불탑을 그대로 재현, 여기에다 건립 점안을 마쳐 서로 링크해 놓았다. 부처님 입멸 이후 어느 불교국가에도 이런 진짜 석가탑은 없다. 경건하게 부처님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석가모니불을 간절히 염하면 석가불탑 안에 어느새 부처님께서는 와계실 것이다.
여러분의 기원을 받아 주실 것이다. 이 나라 대한민국 국운융창을 바라고 평화를 염원하고 부처님의 정법이 널리 온 세상에 전도 되어서 수많은 인연불자들이 구원 받을 수 있도록 붓다회상 현지궁에 진정한 우주적 보물이 될 이 탑을 건립 점안한 것이다. 여러분들은 부디 이 말을 믿고 따라줄 것을 바란다. 예배 발원하면서 탑돌이 하라.
여러분, 영산궁의 그 석가탑과 링크했다는데 주목하십시오. 또 대적정삼매에 들어가서 본 그대로를 재현해 놓았으니까 스님 말씀대로 복을 많이 지으시길 바랍니다.
내가 조계종에 있을 때 한 10년 20년 전 참 절친한 도반이었는데, 그분의 이름은 밝힐 수 없고, 큰스님이지요. 일본 동경대학에 가서 박사학위을 받았으니까. 일본 동경대학에 가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이지요. 희유한 일이지요. 큰스님이었는데, 아파서 병문안을 가면 손을 꼭 잡고 ‘나는 한평생 학문만 하다가 진짜 공부는 안 했어. 진짜 공부는 못해 봤어.’ 그 큰스님의 진짜공부는 화두공부죠.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화두공부를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건 ‘노우(NO)!’그럽니다. ‘내가 이제 병원에서 나가면 단 하루라도 마음공부 할 것이다. 단 하루라도 염불할 것이다.’ 나한테 그랬어요. 그런데 그분이 그 후로 얼마 살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갔습니다.
젊은 나이에 갔어. 동대교수였지요. 저 세상으로 갔어. 여러분, 오늘도 우리 신도 분들을 보니까 '석가모니불' 칭명을 잘해.《금강경》잘 읽으시고 잘도 해. 여러분, 얼마나 큰 복을 짓는 줄 아십니까? 이 법문을 듣는 공덕,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요. 얼마나 큰 공덕인 줄 압니까? 어디에 가서 업장이 씻겨 지는 그런 절이 있답디까? 그래서 죽었는데, 그렇고 그런 곳으로 갔어. 우리 개근하는 신도분들, 스님 말씀 존중해서 꼭 들으려고 열심히 나온 분들, 그 스님보다도 10배 100배 좋은 과보를 받지요. 그것만 말씀 드립니다.
부처님 칭명입니다. 오늘 처음 오신 분들, 스님이 진심으로 여러분을 생각해서 법문을 한 것이니까, 이 소중한 인연을 이 번 한번으로 그치지 말고, 부디 다음도 나오시고, 다음도 나오시고... 우리 현지사를 사랑해 주십시오.
나무 영산불멸 학수쌍존 시아본사 구원실성 석가모니불...
천상천하무여불 시방세계역무비 세간소유아진견 일체무유여불자
고아일심귀명정례 終
2011년 12월 9일 금요일
[법문글]2011년3월20일 현지사 자재만현큰스님 정기법문 춘천편
현지사 뒷길
자재 만현 큰스님 정기법문
현지사 춘천편
신불기14년(불기2554년 신묘년 음력2.16(2011.3.20.일)
열반 후의 부처님은 어디로 가시는가/위대한 영산불교의 시각에서 본 개정 비교종교학/ 영산불교의 성기설(性起說)/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여기 여래전에 모셨던 세 분의 부처님이 계시지 않지요? 큰 흠이 있어서 다시 만들고 있습니다. 곧 모십니다. 먼저 지난 11일, 일본국을 강타한 진도 9.0의 지진을 비롯해서 일본에서는 쓰나미 해일 그리고 원전 방사능 누출의 대참화(大慘禍)가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피해를 크게 보고 있는 일본국과 그 일본인을 위해서 스님이 법문하기 전에 여러분과 더불어서 부처님께 간곡히 발원 기도하겠습니다. 합장을 해주세요.
『부처님! 거룩하시고 희유하신 우리 부처님! 크신 능력을 지니시고 계신 절대계에 계시는 우리 부처님을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부처님 입멸하신 후 2600년이 흐른 지금 영산불교에서 마음속도 아니고 마음 밖도 아니고 유무를 초월한, 거기서 더 나아가서 무아속, 또 더 나아가서 절대계, 상적광세계에 여여히 계시는 우리 부처님, 계심을 만방에 선언했고, 그 부처님의 크신 구원력(능력), 그리고 거룩하신 상호, 무량광으로 이루어진 그 불가사의한 32상의 단엄한 상호, 아름다운 상호..등등을 자재 만현은 이 세상에 출세하면서 선언을 했습니다.
우리 부처님! 대자대비하신 우리 부처님! 지난 11일 진도 9.0의 대지진이 일본국을 강타했습니다. 이어서 15미터 내외의 쓰나미 해일이 덮쳤습니다. 잦은 여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5.0을 넘는 지진들이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제1원전은 몇 군데가 폭발 내지 사고로 인해서 그 무서운 방사능이 유출되고 있습니다. 대 화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공식 집계된 사망 실종자가 1만2천~1만3천명이 된다고 합니다. 그 외 소식을 알 수 없는 이들이 수만을 헤아린다고 합니다. 부처님! 자재 만현은 엎드려서 간절히 일본 국민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깊은 위로를 보내드립니다.
부처님! 더 이상의 참화가 없도록, 피해가 없도록 가피주소서. 특히 그 원전 방사능 누출을 막기 위해서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정신으로 180명 정도가 자원해서 죽음을 무릅쓰고 원전으로 들어가서 그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신명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 훌륭한 보살정신, 우리는 배울 것입니다. 그분들, 거룩한 그 정신을 우리는 배울 것입니다. 부디 훌륭한 마음씨를 지닌 그 사람들, 한 사람도 사고 당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 살려 주소서!
그리고 오늘, 춘천시내에서도 30분을 와야 우리 영산불교 현지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법회에 동참해주신 우리 착한 1,000명 넘는 오늘의 불자님들에게 부처님!《열반경》에 있는 대열반광, 무량억종광, 부처님의 청정한 그 빛을 쏘아서 업장을 많이많이 씻어주소서. 우리 착한 불자들, 현지사 단월들, 신묘년 새해에 보다 더 잘 살 수 있도록, 그리고 부처님 믿는 마음을 보다 돈독히 할 수 있도록 업장 많이 많이 씻어주소서. 설법한 지 이제 5년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 현지사 단월님들은 보다 더 잘 살 수 있고, 또 많은 업장이 벗겨져 나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가피주소서. 삼재팔난 관재구설 만나지 않도록 가피주소서 부처님.. 자재 만현 오늘을 맞아 간절히 부처님께 기도 발원을 드립니다.』
일본국 피해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말씀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다만 위로를 보낼 뿐입니다. 광명 만덕님, 또 이 사람 자재 만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지난 음력 2월8일은 부처님 출가재일이었고, 또 어제 2월15일은 부처님 열반재일이었습니다. 우리 불자들은 이날을 꼭 잊지 마시고 출가 정신을 본받아야 됩니다. 또 열반(涅槃)의 의미를 알아야 됩니다.
우리 부처님께서 음력2월8일 출가를 하지 않으셨더라면, 그리고 무량겁 전에 출가를 않으셨더라면 불교, 그 위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이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삼계의 그 많은 붓다들과 보살들이 나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날의 부처님 출가정신을 본받아 몸과 마음을 다해서 정말로 정직하고 깨끗하게 살아야 됩니다. 지혜와 공덕을 짓는 일에 매진해야 됩니다. 부처는 못 이루더라도 모두 보살이 되어서 삼계를 탈출해서 영원히 극락에 살기 바랍니다.
또 우리 성직자들 스님들은 부처님의 정법을 널리 펴서 고통 받는 윤회중생을 많이 건져야 합니다. 어제 2월 보름은 열반재일(涅槃齋日)이었습니다. 열반재일. 부처님께서 반열반 하신 날입니다. 열반에 드신 날입니다. 부처님의 돌아가심을 그렇게 표현합니다. 죽었다고 하지 않습니다. 열반에 드신 날입니다.
그 불과(佛果)를 증한 분이 열반에 들면, 그 후의 소식을 지금까지 아무도 모릅니다. 2600년 전, 또는 2500년~3000년 전 사이 그 열반에 드신 부처님은 어떻게 된 것이냐? 이것에 대해서 거의 모릅니다. 이것도 영산불교에서 자세하게 파헤치고 있습니다. 그 소식을 많이 내놨습니다. 불과(佛果)를 증한 이가 다시 사람 몸을 받아 온다면 그 사람의 몸을 응화신(應化身)이라고 합니다. 화신(化身)이라고도 하고, 응신(應身)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이 몸뚱이를 응화신이라고 하는 것이 옳습니다. 응화신이 35살 때 불과(佛果)를 증하시고 45년 동안 법을 펴셨지요. 80세에 돌아가셨습니다. 45년 동안 중생구제를 다하시고, 큰일을 다 마치시고 이제 열반에 드셨습니다. 이제 열반에 들었다는 말을 하는데, 좀 자세하게 말씀드립니다. 무슨 말이냐? 불과(佛果)를 증한 이는 다시 사람 몸을 받아 올 때 당신의 진짜 본불은 절대계에 놔두고 오십니다. 보신불(報身佛)은 놔두고 오십니다.
여기서 할 일을 다 마치고 열반에 드시면 응화신의 생명 실체인 네 영혼체이지요. 영혼체 4개, 그 네 개가 뭉쳐서 하나가 되어가지고 곧바로 절대계에 있는 당신의 본불(本佛, 보신불)에 계합이 됩니다. 물론 그때는 많은 붓다님들이 금의환향(錦衣還鄕)하신 부처님에 대해서 열렬히 열렬히 환영합니다. 대 축제가 벌어집니다. 45년 동안 할 일을 다 하시고 돌아오신 우리 부처님에 대해서 정말로 정중하고 반갑게 맞이합니다. 부처님의 진불(본불)을 ‘원만보신 노사나불’이라고 합니다. 당신의 진불이신 그 불신(佛身)과 계합이 됩니다.
《아함경》등을 보면 4정려(精慮)를 넘어서, 4선정(禪定)을 넘어서 멸진정(滅盡定)으로 들어와 가지고 그 곳으로 간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곧바로 번개같이 갑니다. 그걸 말씀드립니다. 그 세계는 고(苦)라는 것이 없습니다. 고통이라는 것이 없지요. 보살이 가는 극락세계도 고통이 없는데, 그 상적광세계(常寂光世界)는 극락세계 중의 극락세계입니다. 그 세계의 당신 몸속으로 합일이 됩니다.
지금도 우리 광명 만덕 광명불이나 자재통왕불의 그 위신력, 대단하지요. 그렇지만 응화신의 네 영혼체가 합일이 된 그 부처님은 정말로 우주적인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우주적인 능력을 갖추게 되요. 또 그분이 당신의 법신불과 합일이 되어버리면 우주법계의 힘을 쓸 수 있습니다. 우리 부처님, 어제가 바로 열반재일입니다. 음력 2월15일 날 열반에 드셨어요. 응화신의 영적실체인 네 개의 영혼체가 무량광덩어리가 되어가지고 당신의 불신(佛身, 원만보신 노사나불)으로 회귀해서 합일이 되었다고 했지요.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것은 2500년, 3000년 동안 그 큰스님들이 이 부분에 대해서 정말로 모르기 때문에 전혀 법문이 없습니다. 그래서 영산불교가 위대하다고 합니다. 말로만 영산불교가 위대한 종교철학과 사상을 지니고 있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스님이 벌써 150여 차례의 법문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비교종교학〉이 나왔습니다. 그동안 동서고금의 철학 종교 사상을 총망라해서 정말로 객관에서, 중도에서, 그 모든 철학과 종교 사상을 면밀히 검토해서 그 깊이를 진단하고, 우리 영산불교와의 차이를 감히 비교 논증한 이〈비교종교학〉이 개정증보판으로 이번에 나왔습니다. 그 철학사상이 심오하다고 하는 힌두교, 그들의 육파(六派)철학이라든지, 인도의 육사외도(六師外道)의 철학이라든지, 그리고 지구상에는 그 많은 교파가 있다고 했지요.
수 천 수 만을 헤아리는 종교단체가 있다고 했지요. 그것의 대표 종교라고 하는, 대 종교라고 하는, 그러니까 적어도 학자들의 검증을 마친 대 종교라고 하는 여덟 개의 세계적인 종교, 그래도 건강하다고 하는 우리 한국의 네 개의 민족종교, 이런 것을 전부 내놓고 우리 영산불교의 입장에서, 그러니까 본체관(本體觀), 좀 어려운 이야기예요. 현상관, 또 우주관의 입장에서, 또 생사관의 입장에서, 구원관의 입장에서, 모든 측면에서 비교하여 우리 영산불교가 이렇게 위대하다는 것을 써놓은 것이〈비교종교학〉입니다. 이번에 이 책을 써주신 우리 법장 김중섭, 오늘 오셨습니까? 지하에 있다고?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 영산불교가 태어난 지 5년 밖에 안 되었지요. 감히 동서고금의 철학사상들, 서양이나 동양이나, 또 종교에 있어서 힌두교라든지, 그 힌두교의 다양한 철학사상, 우리 동양 쪽에 와서 도교의 노자사상, 또 저기 일신교 쪽에서도 유대의 카발라, 이슬람의 수피즘 쪽으로 전부 망라하고, 또 서구 지성인들이 지금 대단하게 매력을 느끼고 있는, 퐁 빠져 있는 그 부분을 드러내었는데, 그런데 영산 불교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이것은 너무도 차원이 낮은, 이 정도 갖고는 21세기 우리 인류를 향도할 수 없다는 거예요. 우리 불교 쪽에서도 티베트의 밀교라든지, 남방 쪽의 위빠사나라든지, 한 때 중국과 한국을 풍미했던 선불교라든지, 그것까지 전부 드러내 놓고 해부한 거예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어요. 학문적으로 검토한 거예요.
말이 나와서 더 말씀드리지요. 어떠한 종교 사상에서도 지니고 있지 못하는 상락아정(常樂我淨)의 니르바나의 세계에 대해서, 여기 영산불교에서는 그것을 완전히 통달이라고 할까, 그것을 완전히 깨쳤습니다. 이것은 감히 어떤 종교에서도, 그 어~떤 종교에서도 니르바나의 세계에 대해서는 모릅니다. 다만 본체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 힌두교하고 몇몇이 있지요. 본체를 넘어서, 니르바나의 세계에 대해서는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 영산불교의 위대한 사상이라고 할까, 많이 열거할 수 있지만 이 우주론에 대해서도, 우주관에 대해서도 가장 고둥종교라는 힌두교보다도 훨씬 자세하고 깊습니다. 따라서 생사관이라든지, 구원관 등은 정말로 완벽합니다. 그 사상이 심오하고 깊고 완벽하다는 것은 모든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실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구원할 수 있는 실력이 있습니다. 이것을 여러분들도 깊이 생각해 보고, 더 알려고 해서 ‘나도 우리 부처님 정법을 이 세상에 펴는데 일조를 해야 되겠다’ 하는 노력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부처님께서 열반 후 다시 삼계의 지존 자리로 복귀하셨습니다. 남섬부주 대교주의 자리로 복귀하십니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대적정삼매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극락보다 더 극락인 상적광세계, 환희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우리 부처님은 너무도 대자대비 하셔서 그 대로 환희의 세계에 스스로 안주하시지 않으시고 중생제도에 임하십니다. 원만보신불로서도 많은 일을 하십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두 아들을 붓다 만들어서 데려가기 위해서 지금 현지사에 와계십니다. 남섬부주에서 우리 부처님께서 항상 계시는 곳, 절대계에도 계시지만 남섬부주 어디에 계시느냐? 영축산 약간 허공에 ‘영산궁’이 있습니다. 거기에 계셔요.
그런데 지금은 여기 현지사에 계셔요. 지존이 여기에 계시기 때문에 좌우보처 문수 ․ 보현 두 보살님이 여기 계시고 두 분은 큰 부처님이시지요, 사바세계에서 보살행을 하시는 관음 ․ 지장 두 보살님역시 두 분은 큰 부처님이시지요, 모두 여기에 계시고, 그리고 오여래부처님 중에 한 분이신 약사여래부처님이 와 계셔. 약사부처님의 좌우보처 일광․월광 양대 보살님이 오셔. 그분들도 붓다들이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아시죠? 그분이 치유하시는데 부족하면 그 무량광 빛 신호에 의해서 약사정토의 상수보살들인 의사들이 또 내려 오셔요. 특별기로 많은 의료 기구를 싣고 오셔요. 참 희유하지요. 이런 부처님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어디에서도 못들었을 거예요.
지금 2500년 동안 불교가 내려왔지만 이런 것을 전혀 모릅니다. 이런 것을 자세히 말씀드리려고 해도 너무나도 이 소식을 모르는 사람들한테 갑자기 이야기를 하면 ‘저 사람이 이야기를 하나, 소설을 쓰나’ 하고, 그렇게 평가 받기 싫습니다. 이 논제는 밀장은 아니지만 밀장과 같이 가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약사정토의 그 약사궁을 조성하는 불사를 저기 화진포에다가 다음 달부터 착수합니다.
그러니까 그 약사부처님께서 이제 거기에 상주하실 거예요. 아마 도저히 나을 수 없는 병까지... 전생에 과거생에 흉기로 부모를 무자비하게, 정말로 극패륜아로서 부모를 시해했다든지, 부처님과 그 법을 모독하고 능멸했다든지, 이런 분들은 금생에 와서 도저히 나을 수 없는, 치료해줘서는 안 될 그런 병을 가지고 옵니다. 그러니까 그런 병은 놔두고, 그 외의 많은 병을 치유할 겁니다. 이제 화진포 약사전이 개원 되면 정말로 많은 신도들이 찾을 겁니다. 그걸 말씀드립니다.
우리 부처님은 열반 후에 완전히 당신의 불신(佛身)과 계합되어 가지고 많은 불국토를 다니시면서 법문을 하시고, 그 수많은 불국토의 보살들을 교화하시고, 여러 붓다님들을 독려하십니다. 대단히 바쁘십니다. 백 천 만억 당신의 화신이 성실하게 교화에 잘 임하는가의 여부를 삼매에 들어서 관하시고, 힘을 부어주십니다. 이 말을 알아듣겠습니까?
붓다들은 당신의 화신을 100이고, 1,000이고, 필요에 따라서 냅니다. 중생은 못하지요? 몸이 하나거든요. 붓다만이 그럽니다. 그런데 우리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삼천대천세계, 그 무수한 삼천대천세계에 당신의 몸(화신)을 많이도 많이도 보냅니다. 그래서 그 화신이 10년도 100년도 그 바운다리에서 교화활동을 하시는 거예요. 그걸 잘 하시느냐, 못하시느냐 하는 것을 선정(禪定)에서 보시고, 어떤 화신이 좀 부족하다 싶으면 더 힘을 넣어주시고. 이런 일도 하십니다.
우리 부처님께서 여러 가지로 자비하시고 해서 우리한테 가피를 주시고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대단히 우리 현지사 스님들의 말과 행동에 대해서 준엄하게 꾸짖고 계십니다. 현지사 스님들이야 100명도 안 되지만, 세 군데에 나뉘어져 있잖아요. 이 스님들의 말과 행동에 대해서 준엄하게 꾸짖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침마다 이 좌우명을 만들어서 읽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현지사를 사랑하는 단월님들이기 때문에 들어보시라고 스님이 읽어드리겠습니다.
『우리 출가제자들은 부처님의 뜻과 여망에 따라 오늘부터 영원한 스승인 거룩하신 우리 교주 불세존과 오여래부처님, 열여섯 사부님, 삼계의 붓다님을 항상 지극한 마음으로 예경하고, 언제나 마음속으로 공경 찬탄하고, 그리고 광수공양 드리는데 있어서 게을리 하지 않고 최선을 다할 것니다.
두 번째, 여러 과거 생에 지은 지중한 죄업을 참회하면서 이 이상 업을 짓지 않고 붓다 회상에 들어온 우리는 신구의(身口意) 삼업을 맑고 바르고 청정하게 지어갈 것입니다.
몸과 마음, 주변은 청정 청정 청정하도록 챙길 것이고(우리 현지사 깨끗하지요), 자기가 한번 한 말과 약속은 목숨처럼 지킬 것이며, 거짓말 아닌 바른 말을, 저속한 언사를 떠난 아름답고 품격있는 말을, 그리고 꼭 필요할 때만 말하는 제자가 될 것입니다.
일거수 일투족이 붓다 회상의 스님으로서 존경받는 처신을 다할 것입니다. 부처님 믿는 마음을 더욱 돈독히 해가면서 생각은 언제나 착하고 성스러운 보살심만을 지니도록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 매사에 교단의 주인이라는 주인 의식을 갖고, 맡은 바 소임에 철저하고 최선을 다 할 것입니다.
나로 인해 상대에게 누가 되는 일이 없는지 조심할 것이며, 서로 존경하고 사랑함으로서 화합하는 교단으로 만들어 가겠습니다. 등등입니다.』
이건 지금 부처님과 약속한 거예요. 이렇게만 하면 존경받겠지요. 한국의 부처님 제자들이, 특히 출가한 제자들이 일거수 일투족 안과 밖으로 존경받을 행을 하면 정말로 우리 한국의 불교는 희망이 있고, 발전에 발전을 할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불교가 가끔 지탄을 받고, 또 어떤 때에는 국가의 권력이 불교를 짓밟는 그런 법난(法難)도 가끔 당합니다.
한국 불교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우리 영산불교처럼 부처님의 출가 정신에 충실하지 않으면, 이 국가의 국운(國運)도 국가의 미래도 보장할 수 없습니다. 건전한 불법(佛法)이, 정법이 힘을 얻어야 그 국가가 부강해집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늘이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선신이 도와줍니다. 더 자세하게 말하면 불보살, 성중, 하늘 사람들이 음으로 양으로 도와줍니다. 그리해서 그 나라의 국운은 융창해지는 겁니다. 불법(佛法)이 우주의 정법이기 때문입니다.
〈비교종교학〉책을 보면 성기설(性起說)이 나올 것입니다. 이 세상 만물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도대체 하느님이 만들었는가? 아니면 어떻게 해서 이렇게 전개되었는가 하는 문제. 이것을 현상관이라고 해요.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그 종교의 현상관, 그리고 그 본체관(本體觀)을 들여다보면 그 깊이를 그냥 알 수 있는 거예요. 그냥 알 수 있어요. 이 책에서는 상당히 줄여서 써놨습니다. 써놨는데, 지금까지의 스님 법문이 점점 더 깊숙이 들어간다고 했지요. 1년, 2년 전 법문보다도 상당히 깊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이 중요한 현상관에 대해서, 영산불교의 현상관, 그 어떤 종교도 감히 알 수 없는 그 깊이를 여러분한테 간단하게 말씀드립니다. 이 부분은 너무 어렵습니다. 그러나 내 말에 대해서 적어도 오늘 오신 분의 1%~5%정도는 알아들을 거예요. 우리 신도 분들은 수준이 상당히 높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학부를 나오고 또 대학교수 분들도 많고 해서 그분들한테 좀 말씀을 드려줘야 되겠다 해서, 오늘은 조금 깊이 말씀을 드리려고 생각해 왔습니다. 이게 이해가 안되는 우리 신도 분들한테는 죄송합니다만 그러나 듣고만 계셔도 감(感)은 올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부터 판단이 됩니다.
우주의 본체라고 하는 이것을 공(空)이라고 했지요. 공(空), 하나의 큰 생명체가 무시(無始) 이전부터 있어왔지요. 여기서부터 이것을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비인격(非人格)으로 보는 거예요. 비인격체(非人格體)로. 인격체(人格體)로 보는 것이 일신교(一神敎)예요. 기독교라든지, 이슬람교라든지, 일신교에서는 하나님 그러잖아요. 우리는 비인격으로 봐요. 이것을 이법(理法)으로 봐요. 이것을 ‘스스로 있는 자존자’라고도 해요. 이건 ‘스스로 있는 자존자’예요. 그러나 눈도 없고, 귀도 없고, 코도 없고, 입도 없고, 몸뚱이도 없어요.
생각도 없고 의지도 없고 그렇기 때문에 비인격인 거예요. 이런 비인격체가 무엇을 창조할 수 없는 거예요. 창조하려면 의지도, 지혜도 있어야 되고 주체가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것이 공(空)과 함께 있는, 공(空)이전에 있어야 되요. 그래야 그 무서운 지혜와 능력으로 질료(質料)를 가지고 우주를 창조하는 것이지, 무시 이전에는 공(空)뿐이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건 아니어요. 공은우주에 두루해 있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실상이어요. 이것을 공(空)이라고도 하고, 본체(本體)라고도 해요. 그 진리의 이법은 연기법(緣起法)이어요. 모든 것이 연기(緣起)로 되는 것이어요.
자연은 자연법칙으로 진화하는 거예요. 모든 것은 자연법칙이어요. 지진이 터지고 화산이 터지고 하는 것은 전부 자연법칙이어요. 이건 자연의 이법이어요. 이 공(空)의 체(體), 체성(體性)은 지혜요 조화요 사랑이요 빛이어요.
본래 하나의 큰 우주생명체였기 때문에 그 속에는 모든 물질의 근원(根源), 궁극적인 근원, 질료인(質料因), 그리고 에너지가 충만해 있어요. 이게 성겁(成劫)으로 들어가면, 성주괴공(成住壞空)의 성겁으로 들어가면, 이 비인격적(非人格的)인 이법(理法)에서, 이 공(空)에서 세상 만물이 벌어져 나오는데, 이게 무량한 시간이 걸려가지고 된 거예요. 수~수 겁이 흐르고 중중무진(重重無盡) 진화해가지고 이렇게 된 거예요.
이 동력(動力)은 중생의 업력이어요. 그 많은 중생들의 업력,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의 업력에 의해서 인연 따라 공(空)에서, 공대(空大)에서 현상, 현상의 처음, 현상의 최초라 할까 이게 이루어져요. 그리고 의지를 지닌 수많은 영혼이 각기 1․2․3번 영체를 형성하고요. 우주만법은 우주의 구조, 법도에 따라 드러나고요. 우주는 자연법칙에 따라서 빅뱅이 일어나 시공이 벌어지고, 곧 우리 인간 유정 등 열두 띠 중생은 진여(眞如), 순수의식, 우주의식에서 1․2․3번 영체가 곧 드러나면서 성기(性起)하면서 과거생의 업이 붙어요.
그래서 이제 습이 생기고, 천천히 기가 생겨요. 각자의 기, 모든 것은 기가 있잖아요. 사대의 거짓 몸뚱이가 생기고. 이건 아주 후(後)의 일인데 운명이 정해져요. 다시 말하면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 물질적인 것도 아니고 정신적인 것도 아닌 세력으로 에너지에 의해서 공(空)의 충만한 에너지(힘)에 의해서 수많은 생명체의 종자들이 생겨나요.
물질적 원질(原質)인 원자들이 생겨나요. 지수화풍(地水火風)이 형성되어요. 많은 시간이 흘러가면 구산팔해(九山八海)가 성립되고, 음양이 오행으로 나아가고, 인드라망의 구슬처럼 상호 중중무진연기가《화엄경》에서는 이를 상즉상입(相卽相入)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겁이라는 시간을 통해서 우주 만법이 만들어져요. 물론 여기서 사람의 마음이 주인이 되요. 내가 업을 지어 내가 받아요.
신구의(身口意)로 지은 각자의 업은 영체에 보존이 되어요. 그 영혼체 1․2․3번은 영원히 죽지 않아요. 인간을 비롯해서 열두 띠 중생은 생사전생(生死轉生)을 하면서 이미 만들어진 육도를 윤회해요. 이렇듯 무수겁을 자연 법칙으로, ‘카르마 법칙’으로 우주 만법은 유전(流轉)을 계속하다가 공겁(空劫)에 들어서면 지구나 저 하늘의 달이나 태양이나 별들까지도 삼재(三災)로 망가져요. 그러다가 자체 핵폭발해버려요. 한편 영적인 것도 욕계 색계의 영적인 그 중생들은, 중생 업파에 의해서 자연이법을 따라 초선천 이선천까지 다 파괴되어 버려요. 그런 다음 공대(空大)로 돌아가 버려요. 공(空)으로 돌아가요.
다시 성겁(成劫)이 되면 이를 반복해요. 미래제가 다하도록.
이러한 윤회에서 우리가 벗어나려면, 삼계를 탈출하려면 삼계의 지존이신 부처님 법을 따르는 길밖에 없어요. 절대계에 계신 부처님을 믿고, 그 대자비하신 구원력에 의지해서 ‘팔정도칭명염불’을 하는 수밖에 없어요. 붓다 회상을 만나 선근공덕 많이 짓는 길 밖에 없어요. 이렇게 해서 아라한이 되고, 무루 대아라한이 되고, 천녀가 되고, 보살대기로 가고, 보살이 되고, 약사정토로 가고, 나아가서 붓다가 되어야 되요. 그래야 상락아정(常樂我淨)의 니르바나 세계에 가서 영원히 죽지 않고, 그 극락의 극락에서 사는 거예요.
이 성기설(性起說)을 아주 줄여서 이야기 했는데, 다시 말씀드리자면 힌두교 육파철학의 그 심원한 철학, 일신교의 창조론이라든지, 과학에서 이야기한 E=mc2이라든지, 노자의 <도덕경>에 연유하는 도가(道家)의 우주론이라든지, 선불교의 우주론 등을 뛰어넘습니다. 훨씬 위에 있어요.
영산불교의 성기설(性起說), 현상관을 오늘 말씀드립니다.
이게 너무 어려워서 본체관(本體觀)을 또 이야기해야 되는데, 어렵습니다. 접으려 했지만, 기왕에 말씀드렸으니까 오늘 대충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여러분들의 눈초리를 보니까 꼭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인 것 같습니다. 이게 지금 너무도 깊은 철학 사상이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거 알아듣지 못하겠지요. 그러나 감(感)은 오겠지. 그렇기만 해도 되요.
이 우주 이전에, 소위 본체(本體) 안에는 모든 것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파워가 있어요. 희유해요. 그리고 질료(質料)가 있어요. 또 지혜가 있어요. 불과(佛果)를 얻게 되면 이 붓다가 이 본체(本體)와 계합이 되어 버려요. 그러면 우주의 주인이 되는 거예요. 주인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이것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거예요. 그러나 아라한부터는 제한적으로 제한적으로만 쓸 수 있어요. 외도의 수장들도 대단해요. 우리 부처님 능력의 90%정도까지 가요.
그러나 외도는 영원히 멸도하지 않는 법을 몰라요. 대적정삼매, 그리고 무량광으로 이루어진 삼신(三身)을 갖출 수 있는 실력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의 그 무서운 힘 앞에서는 전 외도가 굴복해요. 비밀은 무량광, 무량억종광에 있어요. 무량억종광으로 붓다의 몸은 이루어져요. 그 무량억종광을 봐야 거기서부터 붓다의 경지이며, 붓다로 들어가는 거예요. 세상에 나도 붓다이고, 너도 붓다이고... 지금 그러는 사람들이 많은데 무량억종광이라고 하니까 자기들이 빛을 본 그것이 무량억종광인 줄 알아요.
무량억종광은 그게 아니어요. 마치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반딧불만 봐도 밝지요. 전깃불을 만나봐요. 이건 엄청난 거예요. 무량억종광이라는 그 빛을 보려면 정말로 과거생에 ‘불격(佛格)을 갖춘 최상수보살’의 수행이 있어야 되요. 그리고 부처님께서 붓다를 만들 생각이 있어서 오셔서 그 지도에 의해서 외마(外魔)를 막아주고 많은 삼매로 끌어가면서 그 빛을 보는 거예요. 그 외에는 볼 수가 없어요.
이 공(空)안에는, 본체(本體)안에는 정말로 무진장한 보물이 있어요. 이건 동양에서 알았어요. 동양 사상가들이 알아냈어요. 그러나 그 무진장한 보물을 완전히 쓸 수 있는 분은 붓다예요. 외도의 수장들도 무진장한 보물을 상당히 알아요. 그러나 붓다만큼 완전히 쓰지 못하고 제한적으로 쓸 수 있어요.
▸공(空), 본체(本體)안에는, 빛 ․ 힘이 충만해 있다는 것.
▸공(空)은 살아 있는 우주 생명체라는 것
▸공(空)은 영원히 불생불멸 한다는 것.
▸공(空)의 성품은 지혜요, 조화요, 사랑이요, 힘이라는 것. 자연이라는 것.
▸우주 구조나 메카니즘, 이런 것은 이법(理法)이라는 것. 우주의 이법은 연기법(緣起法)이라는 것.
우주의 이법은 부처님 이전에 있었기 때문에 부처님도 어찌하지 못해요. 이걸 잘 알아들어야 돼. 이에 대한 설명은 스님이 안 해줘요.
부처님이 계시는데 왜 일본에서 대지진이 터져버리는 것을 놔두셨을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그 부분은 스님이 설명 안해요. 이법은 부처님 이전에 있었어요. 그건 어쩌지 못하는 거예요. 부처님은 그 이법을 역행하지 않아요, 항상. 그러나 스님이 부처님께 발원하고 기도한 것은 이후 방사능 누출이 더 이상 되면 안 되니까. 이후에 또 바람이 우리 쪽으로 불면 안 되지요. 아까 우리가 취한 조치가 있었다고 했지요? 우주의 이법은 연기법(緣起法)이라는 것.
하나님이 있어가지고 6일 만에 만물을 창조했다는 이것은 초등학생에게도 믿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혜 있는 우리 지성인들이 그 교리를 옳다고 믿고 따르는 것을 보면, 이건 어처구니가 없지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대의 이야기예요. 인류의 문명이 미개한 시대, 미개한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종교예요. 그건 원시종교의 신이어요. 고등종교는 그렇지 않아요.
우리 영산불교의 사상 중에서 모든 종교 사상을 훨씬 능가한 것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주 본체관과 방금 말씀드린 현상관도 아주 중요한 부분이어요. 상락아정(常樂我淨)의 니르바나 세계에 대해서 지금 아무도 몰라요. 이것을 알아야 미래의 온 인류를 끌고 가는, 향도할 수 있는, 구원할 수 있는 자격을 지닌, 실력을 지닌 우주적 메타종교가 될 수 있는 거예요. 부처님에 대해서 지금 아무것도 몰라요. 아무도 몰라요. 우리 인간의 영적 실체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아무도 몰라요. 현재까지도. 물질문명은 나름대로 고도로 발달하고 있다고 하지만 인류의 정신문명은 아직도 걸음마 수준이라고나 할까요?
그리고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효’를 주장하지요. 제일 효를 주장한데가 유교예요. 유교에서 효를 이야기한 것 하고, 영산불교에서 효를 이야기한 것은 천지차이예요. 유교에서는 이 몸뚱이, 살아생전에 우리 부모님 잘 봉양해 드리고, 마음 편하게 지내도록 잘 봉양해 드리고, 돌아가시면 이 몸뚱이, 이 송장 잘 싸서 안장해주고 하는 이것을 효로 알아요. 그러나 그건 형식이어요. 그 유가(儒家)의 사람들은 이 몸뚱이에 대한 주인을 몰랐어요. 여러분 아시죠? 돌아가신 고인(故人)의 실체가 지금 나가서 무주고혼으로 있는데 몰라요.
실체가 명부에 들어가서 논죄를 받아가지고 지옥에 있는데 몰라요. 지옥을 모르니까요. 명부가 있다는 것은 도교쪽에서 좀 알아냈어요. 그런데 아무도 실제의 지옥을 본 사람이 없어요. 다만, 지장보살의 위신력에 의해서 꿈에 잠깐 볼 수는 있어요. 또 외도들의 수장급들은 지옥을 좀 볼 수 있어요. 그러나 영산불교만큼 정확히 볼 수는 없어요. 계율이 영산불교만큼 엄정한 데가 지금까지 없어요. 한 바가지의 청정수가 있는데 똥물 한 방울 떨어뜨린다면 어떻겠습니까?
마실 수 없다고 했지요. 여기는 그렇게 엄해요. 윤회 안의 세계와 윤회 밖의 세계에 대해서 잘 알아요. 지금까지는 아는 사람이 없었어요. 윤회 밖에 대해서 아라한, 무루 대아라한, 보살, 붓다, 이렇게까지 깊이 안 종교는 세계역사상 없었어요.
오는 음력 4월8일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석가불탑(석가탑)을 점안해서 봉안하는, 부처님 오신 날을 봉축하는 뜻 깊은 행사를 합니다. 이 석가탑, 전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이 석가탑은, 저기 인도의 영축산 약간 위의 허공에 ‘영산궁’이 있는데, 그곳에 부처님 탑이 있어요. 그걸 갖다가 재현한 거예요. 이것도 우리 현지사에서 처음으로 재현해 놓은 거예요. 다보탑도 그래요. 그러면서 그날 점안을 해요. 점안을 할 거예요. 생명력을 불어넣을 거예요. 영산궁의 석가탑과 링크를 시킬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은 탑돌이를 잘 해야 되요. 엄청난 복을 받아요. 법문을 하면 그날은 탑돌이를 하지. 그 외에는 또 하지 않으셔.
어느 학자가 우리 영산불교 현지사를 무슨 노다지광이라고 했지요? 다이아몬드 광(鑛)이라고 했지. 다아아몬드 광. 여러분들이 와서 법문만 들어도 부처님께서 꼭 업장을 씻어주시는데,《열반경》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지금 처음이어요. 부처님의 그 무서운 위신력으로 씻어주시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과거생에, 또 금생에 와서 지은 그 악업을 씻을 길이 없는 거예요. 죄를 지으면 그것이 정업이 되어버려요. 과거가 딱 정해져 버려요. 이건 씻을 수가 없는 거예요. 이〈비교종교학〉서문을 스님이 이번에 또 썼는데, 나올 거예요. 부처님 아니고는 안 되는 거예요. 업장소멸, 부처님 아니고는 안돼.
그런데 지금 그 부처님이 없다고 해요. 부처님도 없고, 우리 몸뚱이의 영적 실체, 이것이 있기 때문에 윤회를 하는 것인데, 기체(基體)라고도 하는 본체, 본체 없이 윤회할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 인간영혼의 실체를 이야기 하는데 사람들이나 스님들이나 모든 학자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어요. ‘저 소리가 무슨 소리인가’ 하고 말입니다. 보지 못하면 차라리 가만히 있어야 하는데 엉뚱한 비판을 해요. 아니 비난이라고 해야지.
영혼체를 못 봤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불교 교리를 많이 수정해야 되고 새로 조명해야 돼. 그래서 지금까지의 불교 교학을 다시 써야 돼. 많이 다시 써야 돼. 우리는 이제 정말 부처님의 훌륭한 가르침이 더 이상 사장되지 않고 힘있고 위대한 불교로 거듭나도록 해야 돼.
그 석가탑, 정말로 우리 부처님께서도 상당히 만족하신답니다. 보셨지요? 작년에 10만2천등이었어요. 오늘 현재 10만등에 상당히 근접해갑니다. 세상이 놀랄 일이어요. 다른 절에서는 가족 당 한두 등을 켜잖아요. 여러 등 안 켜요. 현지사에 와서는 나도 한 등, 우리 아버지도 한 등, 우리 아들도 한 등,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 앞으로도 한 등을 켭니다. 이렇게 해서 많이 켜요. 그만큼 믿기 때문에 그리고 그만큼 체험하기 때문에 그래요. 여기는 부처님 회상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데 하고 달라요.
법문할 때의 그 장면. 이것은 정말 이야기 못할 엄청난 성스러운 장면이 벌어져요. 붓다만 그래요. 내가 가끔씩 얘기했죠?
어떤 사람의 법문, 삼생의 공덕보다도 그 법문 듣는 게 더 수승하다고 하는데, 그렇게 거짓말 하면 안 되어요. 큰일 나요.
여기 현지사의 천도재(薦度齋) 보세요. 이런 천도재를 역사상 어느 세상에서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없어요. 붓다가 주관하시기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그래도 어떤 사람은 안 믿어요. 눈에 안 보이니까. 그런데 천도재 하면 큰 소원이 이루어 져요. 온갖 소원이 이루어져요. 그러니까 마구 몰려와요. 그런 소원이 이루어졌다는 것도 안 믿는 사람은 복이 없는 사람이어요. 그건 복이 없는 사람이어요. 그렇다고 소원을 이루기 위해 천도재를 지내지는 마세요. 효심으로 지내야 되요.
여러분들이 효도하라고, 진짜 효를 할 수 있도록 부처님께서 자비를 베푸는 거예요.
금년에 11만등이 훨씬 넘을 것 같아요. 작년보다 1만등만 더하려고 했는데. 그래서 어느 정도 다 되면 스톱(stop)할거예요. ‘이제 끝입니다’라고 선포할 거예요. 등은 청사초롱으로 할 것입니다. 작년보다 옷감의 질이 더 좋아요. 우리 부처님 등이기 때문에 최고의 질 좋은 옷감으로 해요. 그래서 우리 부처님께 발원을 하라고 했잖아요. 거기에다가 적으라고 했지요. 많이 들어주신다고 했어요. 들어주신다고 했어. 그러나 커다란 죄를 지어놓고는 등하나 켜놓고 ‘그 죄업 소멸하기를 발원한다’고 해서는 들어주기 어렵지. 그 때는 제한적으로 들어 주는 것이지요. 그걸 아시길 바랍니다.
우리 사람은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바르고, 정직하고, 깨끗하게 살아야 된다. 부처님께 귀의하고 부처님을 따라서 배워야 되겠다. 항상 부처님을 생각하고 염불해야 되겠다. 이게 사는 길이에요. 이렇게 살아야 되요.
나는 가끔 우리 주변에서 50살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 사람을 봐요. 똑똑한 사람이 죽는 것도 보고, ‘정말로 인물이다, 나라의 동량이다’하는 사람들이 죽는 것을 봐요. 그럴 때마다 나는 ‘어떻게 하나’ 그럽니다. 저렇게 죽어서 어떡하나! 왜 그런 생각을 한 줄 압니까? 어떡하나! 여러분, 사람 몸 받기 어려워요.
그런데 사람으로 와가지고 착하게 살지 못했다면, 정말로 보람 있게 살지 못했다면, 그리해서 성과(聖果)를 얻지 못했다면, 그리고 죽는다면 이건 슬픈 일이어요. 정말 슬픈 일이어요. 우리 현지사 스님들이나 단월님들은 지금 좋은 기회를 만난 거예요. 물실호기(勿失好機),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만난 거예요. 이때를 놓치지 말고 여러분들이 과거생에 지은 죄업, 금생에 와서 지은 죄업을 전부 털어야 되요. 빚도 갚아버려야 되요. 과거생에 지은 빚, 금생에 와서 지은 빚, 은혜도 갚아야 돼. 그래야 돼. 그래서 여러분들이 몇 년 후에 ‘스님! 내 법위를 좀 알고 싶습니다.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싶습니다’ 하면, ‘아! 그럽시다’ 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보면 ‘아! 우리 보살님은 지금 죽어도 성중7품이오, 혹은 성중2품이오’ 한단 말이에요. 성중 2품이면 벌써 아라한이어요. 아라한 정도 되면 성주괴공(成住壞空)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아라한이 되면 받지 않아요. ‘다시 사람 몸을 받아와서 보살이 되련다’해서 와가지고 함정에 빠져서 그러지, 안 오려면 안 와요. 영원히 안 오려면 안 와요. 생사윤회로부터 해탈한 그런 자유로운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스님 말씀 알아듣겠습니까?
전혀 배운 것도 없고, 그렇다 하더라도 이렇게 나오셔서 들으십시오. 부처님 말씀을 들으면 지혜가 생겨요. 정말 들을 말을 들어야 되요. 그래서 경전을 읽으라는 거예요. 경전을 읽으면 스스로 듣잖아요. 지혜가 생기는 거예요. 지혜가 생긴다는 말은 업장이 많이 씻어간다는 거예요. 그래야 지혜가 생겨요. 업장이 씻어지면 씻어질수록 우리는 보다 더 잘 살 수 있어요. 금생도 잘 살 수 있고요, 다음 생도 지옥 아귀 축생에 안 떨어져요. 무주고혼 안 되어요. 여러분, 오직 여기밖에 없습니다.
이 길밖에 없어요.
스님 말씀을 아주 경청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스님이 여러분한테 거듭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죄를 지어서는 안 되어요. 더 이상 죄업을 지어서는 안 되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잘못 산 것에 대해서 정말로 반성하고 참회해야 되요. 그 업을 씻으려면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면서 칭명염불을 열심히 해야 되요. 또 천도재를 모셔야 되요. 조상님께 효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지만 부처님께서 여러분의 업장을 씻어줘. 부처님께서 조상을 더 높은 좋은 세계로 천도해 주면서 2부에 가서 보너스를 주셔요. 그러지요?
씻어주신다고. 참회한다고 해서 지은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어요. 그렇지만 다시는 악업을, 못된 짓을 않하는 효과가 있어요. 앞으로 부처님을 항상 생각하고 본받아서 살 줄 알아야 되요. 늦었지만, 나도 이제 생각해 보면 한 5년, 10년을 살까? 좋아요. 부처님을 본받아야 되요. 부처님, 왕의 자리를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설산에 가서 구도(求道)하셨잖아요. 그 무서운 수행을 했잖아요.
그러지는 못할망정, 스님 말씀대로 살아야 되요. 지금 여러분들한테 그 문을 열어놨잖아요. 천도재, 부처님 공양, 기도, 불사 등 많이 열어놨습니다. 이때에 여러분들이 스님말씀 따라서 살아야 됩니다. 그랬으면 좋겠어. 죽어버리면 못가지고 가요. 가져가는 것은 업이여. 착하게 산사람은 선업을 못된 짓 한 사람은 악업을 가지고 간다고요. 재물은 가져가는 것이 아니어. 자식한테 줘봤자 더 나쁜 습(버릇)을, 자립정신이 아니고 의지하는 버릇을, 그것만 남겨줄 수도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사회복지단체에 준다고 하는데, 그것도 좋은 일이지만 그건 부처님의 정법 회상에다가 주는 것에 비하면 비교가 안 되어요. 비교가 안 됩니다. 가장 수승한 선근공덕이 되는 게 부처님이나 부처님교단에 시주를 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지혜가 좀 있어야 되고, 그러려면 법문도 잘 들어야 됩니다. 앞으로 계속 할 테니까 꼭 나오셔야 돼. 개근한 사람들, 스님이 볼 때 참 반갑고 기쁘고 복이 많은 분들이에요.
이제 시간이 다 되었으니까 한 두 분의 질문 받겠습니다. 두 사람만 스님이 답변해 주겠습니다.
질문①
제가 2주 있으면 조상 천도재를 지내게 됩니다. 저희 조상님이 있는 산소에 국가적인 사업으로 조상님 묘를 이장해야 되는데, 제가 알기로는 조상 천도재를 지내고 나면 명부에 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산소를 이장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 지, 그것을 알고 싶습니다.
(큰스님) : 많이 말씀드렸는데, 우리 거사님이 우리 현지사에 나온 지 얼마 안 되지요? (예, 부산은 몇 번 갔었고, 춘천은 처음입니다) 여기의 천도재는 첫 번째 천도재에서 그 집안의 무주고혼을 모두 명부에 넣어 줍니다. 한 번만 해도요. 어느 집안이나 명부에 못 들어간 그 집안의 무주고혼이 보통 30명, 40~50명 됩니다. 이 무주고혼이라는 말도 다른 데는 모릅니다. 경전에도 중유(中有)하고 중음(中陰)을 분명히 알도록 기록을 했어야 하는데, 분명치 않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가려줍니다.
사람이 자살했거나, 타살 당했거나, 나쁜 병을 얻어 죽었거나, 집을 나가서 사고사 당했거나, 또는 집안에서 사고사 당했거나, 집착이 강한 그런 사람들은 죽어서 명부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한번 명부에 못 들어가면 10년 50년 100년 1000년도 갑니다. 명부에 못 들어가 버리면 배가 고프고 추우니까 자손들한테 갑니다. 친구한테도 간다든지 합니다. 그것까지 아시죠?
여기의 천도재는 부처님과 큰스님이 합동해서 그 전날까지 수배를 마쳐버립니다. 가령, 70명 100명의 영가들을 써오지요. 그러면 그 낱낱 돌아가신 분들이 지금 죽어서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을 밝힙니다. 그러면서 데려옵니다. 잘 들어야 되요. 그런데 직계(直系) 방계(傍系) 중에서 여러분들이 전혀 모르는 관심 밖의 무주고혼 조상 영가 분들이 많습니다. 부처님께서 꼭 “이 집안을 깨끗이 하려면, 자손이 깨끗하려면 그 중에서 20명, 30명 정도는 천도해줘야 된다.
이 정도는 전생에 지은 업이 괜찮으니까 해줘라” 해가지고, 그 낱낱 조상님들이 죽을 때의 장면을 전부 보여 줍니다. 어떻게 해서 죽고,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해서 죽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요. 그걸 '선대 영가님' 해가지고 1, 2, 3번... 쭈~욱 적잖아요. 어느 집안 치고 적어도 30명~50명 정도의 무주고혼들이 있더라고. 그 무주고혼들, 그러니까 명부에 들어가지 못한 분들을 다 명부로 넣어줘 버리기 때문에 그로 인한 장해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러지 않았다면, 무주고혼을 정리해 주지 않았다면, 그 무주고혼이 빙의도 하기 때문에 그 자손이 반드시 그렇게 자살해 죽고, 그런 병을 얻고 하게 됩니다. 그런 불행을 막아 줘버려요. 그러니까 현지사 천도재는 어마어마한 거예요. 이걸 알아야 되요. 여러분, 이해하겠습니까? 질문하신 우리 거사님, 이해하시겠어요?
그러니까 조상 중에 절벽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조상이 있다고 합시다. 그건 절대로 명부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아셨지요? 무주고혼이 됩니다. 그 조상이 자손한테 빙의했다고 합시다. 이 자손은 개인 차이는 있지만 빙의 시간이 오래 걸리면 꼭 그렇게 죽습니다. 자기의 본정신으로, 정상적인 사람 정신으로 그렇게 못 뛰어 죽는 거예요.
또 가령, 나쁜 병을 앓다가 죽은 조상님이 있단 말이에요. 그건 명을 다 살지 못했기 때문에 무주고혼이 되는 거예요. 그 조상님이 빙의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꼭 그 병을 얻습니다. 물론 인연 따라서 오지요. 이 사람이 전생에 그런 업을 지었지요. 그러나 결정적인 것은 이 영가가 빙의해버렸기 때문에 그런다고요. 빙의만 떼어버리면 모든 현대 약으로 할 수 있습니다.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천도재, 현지사 천도재는 낱낱이 TV에 나가서 이야기를 하면 정말로 구름같이 올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소화할 수 없지. 하루에 네 집 밖에 못 하는데요. 지금도 어려운데요. 우리가 그렇게 안 하는 거지요. 정말로 복이 있는 자손들 집안들은 와요. 이건 큰 복을 받으니까. 조상님 70명을 네 번해서 하늘로 올렸다고 합시다. 네 번 하면 거의 가요. 이치상으로도 그렇고 부처님 약속에 그렇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 하늘에 누가 갑니까? 못 갑니다.
이렇게 살아가지고는 하늘에 못 갑니다. 세상 사람들, 저렇게 업을 지으면 못가는 거예요. 하늘 가려면 오계십선을 지켜야 되요. 좋은 일 해야 되요. 그런데 그렇게 사는 분들이 적더라고. 100명을 보면 하나 있을까 말까 하더라고. 그것도 아래 하늘인 6하늘. 그런데 부처님의 타력으로 해서 하늘을 모두 올려 주잖아요. 넣어 주잖아요. 업장을 쏴~악 씻어주고 올려줘요.
그러면 다른 사람이, 다른 절에서 현지사 흉내 내어가지고 그러는데 그러면 안 되어요. 큰 죄를 지어요. 죄를 지어서 지옥에 있는데, 어떻게 천도재 해가지고 하늘로 올려줘? 이것은 이법에 맞지 않아요. 분명히 맞지 않아요.
그러나 붓다는 그 이법 자체예요. 우주 이법과 계합이 되어버린 분이어요. 이걸 법신불(法身佛)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우주의 진리를 구현하는 분이어요. 구현자예요. 성취자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저 사람으로부터 공양을 받았다 해서, 저 사람이 무슨 업을 지어가지고 저 병을 얻었는데 저 병을 어느 정도 낫게 해줄까, 완전히 낫게 해줄까 하는 것은 과거생에 지은 그 업이 얼마만큼 중한 죄를 지었느냐, 가벼운 죄를 지었느냐, 얼마만큼 지었느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부처님 공양을 올렸어도 내 병은 치유가 안 되더라 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건 전생에, 과거생에 지은 업이 너무 지중하기 때문에 그래요. 또 천도재하고, 또 공양 올리고, 또 공양 올리고 해서 다섯 여섯 일곱 번이면 대부분 큰 죄업도 씻어지고, 병도 낫고 그럽니다. 그렇게 되더라고. 한 5년 동안 10년 동안 해보니까 거의 엄청난 효과를 봐요. 그래서 첫 번만 해도 무주고혼은 전부 명부에 넣어줘요. 문제는 무주고혼을 정리해야 되어요.
그 묘를 봅시다. 무주고혼이 명부로 가버렸으니까 거기에 없어요. 무주고혼으로 있을 때에는 가끔 가요. 자기 몸뚱이한테 들어가요. 여기를 집으로 알고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영혼체가 의지하고 있는 묘를 갖다가 파묘(破墓)하면 큰일 나요. 그러나 이건 이미 명부에 넣어버렸기 때문에 문제가 없어요. 여러분, 한번만 하지 마시고요. 한번 하게 되면 무주고혼은 가는 데가 보니까 대부분 중지옥이어요.
그동안 지은 업이 있어서요. 중지옥은 그 벌이 상상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조상님을 갖다가 진정으로 효하고, 사랑하고 그런다면 두 번 세 번은 해야 돼. 또 두 번 세 번 했는데, 한번만 더하면 사람으로나 하늘로 모시는데요. 그래서 모두 네 번을 하게 됩니다. 또 ‘하품의 하’는 하늘의 노동자예요. 그렇기 때문에 한 품만 더 올려주면 또 되어요. 다섯 번 여섯 번 하는 분도 있어요. 그건 좋지요.
질문②
스님 뵙게 되어서 너무 반갑습니다. 저는 31살 된 딸이 있는데, 몇 년 동안 시험을 보고 있습니다. 실기에는 합격되었는데 면접에서 떨어집니다. 본인 스스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이번 5월14일 날 재도전을 하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합격할 수 있는지 스님께서 좋은 방법이 있으시면 가리켜 주십시오.
(큰스님) : 스님이 법문을 이렇게 해드렸데. 답이 다 나왔는데..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습니다.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어요. 자꾸 시험에 떨어진다? 혹은 필기시험은 합격했는데 면접시험에 떨어진다? 다 원인이 있지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결국 그만큼 세간의 복이 적어. 관운 복이. 그렇기 때문에 타력으로 가야 돼. 타력이란 말은 부처님의 위신력, 가피입니다. 그러려면 천도재라든지, 공양이라든지, 불사에 동참한다든지, 착하게 살아야 돼. 그러면서 발원을 해야 돼. 그래야 됩니다.
마지막으로 또 한 분 질문 받겠습니다.
질문③
저는 조계종 쪽에 다니면서 천도재를 수없이 많이 했습니다. 스님께서 천도재를 말씀하셨는데, 저가 지금까지 이해를 못한 부분이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다른데서는 천도가 안 된다는 식으로 말씀하시고, 왜 영산불교에서 지내는 천도재만이 천도가 되는지요? 그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큰스님) : 거기에 대해서 말씀드릴게요. 좋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스님이 영산불교를 이끌고 가는 스님이기 때문에 영상불교를 칭찬 안합니다. 그래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한테 물을게요. 어느 절 천도재가, 어느 절 천도재가 조상님 70명을 써내는데 그 70명 각각의 조상님이 현재 어디에 계신가를 밝히는, 밝히고 천도재하는 그런 절을 봤습니까? 들었습니까? 지옥에 있다면 데려와야 되고, 짐승 몸을 받았다면 그 짐승 몸에서 끄집어내 와야 되고, 무주고혼으로 있으면서 도망치면 잡아와야 되어요.
그렇게 잡아오고, 데려오고 할 수 있는 실력을 지닌 그런 절, 그런 스님이 있었답디까? 이것은 없어요. 이건 단연코 이야기 합니다. 역사이후로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주관하시기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여기는 붓다회상이어요.
이제 앞으로 붓다회상에 대해서 당당하게 이야기할 거예요. 많은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지금은 우리가 텃세에 밀려가지고, 텃세의 그 힘에 할 말을 않고 조용히 가는 거예요. 이제 당당하게 진리를, 법을 펼 거예요. 할 말을 하는 거예요. 보면 알아요. 이건 수 십 번을 해도 하나도 안 된 것을 알아요. 밥 한끼 준 것 뿐이에요. 그것도 무주고혼한테 밥 한끼 준 것 뿐인 거예요.
천도재를 감히 어떻게 해요? 못하는 거예요. 못하면서 영산불교에서 천도재를 하기 때문에 그냥 여기서도 저기서도 지금 천도재를 하는데, 이건 중들이 큰 업을 짓는 거예요. 불러다 놓고 천도 못시켜 주면 그 영가들이 가지 않습니다. 책임지라고 하면서 안 가요. 그러면 그 절은 귀신 소굴이 되어버리는 거예요. 귀신소굴이 되는 거예요. 음침해지고, 음산해요. 현지사 와보세요. 얼마나 깨끗한지. 싱그럽고, 청정 청정입니다.
초파일 대성황을 이루도록 도와주십시오. 합장하시고, 부처님 칭명합니다.
나무 영산불멸 학수쌍존 시아본사 구원실성 석가모니불...
천상천하무여불 시방세계역무비 세간소유아진견 일체무유여불자
고아일심귀명정례
오늘 법회에 일본에서 오셨습니다. 일본의 우리 신도분들이. 저기 일본에서 오신 분 일어서서 박수 받으셔요. 일본국에서 까지 오셨습니다. 그리고 스님이 권합니다. 이〈비교종교학〉은《21세기 붓다의 메시지 Ⅰ․Ⅱ․Ⅲ》권외에 권해드립니다. 여러분, 이 책은 가보(家寶)입니다. 꼭 한권씩 구입해 두시고, 가끔 읽어보십시오. 그래서 부처님에 대한 믿음을, 정법에 대한 믿음을 더욱 키우십시오. 아셨지요? 終
자재 만현 큰스님 정기법문
현지사 춘천편
신불기14년(불기2554년 신묘년 음력2.16(2011.3.20.일)
열반 후의 부처님은 어디로 가시는가/위대한 영산불교의 시각에서 본 개정 비교종교학/ 영산불교의 성기설(性起說)/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여기 여래전에 모셨던 세 분의 부처님이 계시지 않지요? 큰 흠이 있어서 다시 만들고 있습니다. 곧 모십니다. 먼저 지난 11일, 일본국을 강타한 진도 9.0의 지진을 비롯해서 일본에서는 쓰나미 해일 그리고 원전 방사능 누출의 대참화(大慘禍)가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피해를 크게 보고 있는 일본국과 그 일본인을 위해서 스님이 법문하기 전에 여러분과 더불어서 부처님께 간곡히 발원 기도하겠습니다. 합장을 해주세요.
『부처님! 거룩하시고 희유하신 우리 부처님! 크신 능력을 지니시고 계신 절대계에 계시는 우리 부처님을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부처님 입멸하신 후 2600년이 흐른 지금 영산불교에서 마음속도 아니고 마음 밖도 아니고 유무를 초월한, 거기서 더 나아가서 무아속, 또 더 나아가서 절대계, 상적광세계에 여여히 계시는 우리 부처님, 계심을 만방에 선언했고, 그 부처님의 크신 구원력(능력), 그리고 거룩하신 상호, 무량광으로 이루어진 그 불가사의한 32상의 단엄한 상호, 아름다운 상호..등등을 자재 만현은 이 세상에 출세하면서 선언을 했습니다.
우리 부처님! 대자대비하신 우리 부처님! 지난 11일 진도 9.0의 대지진이 일본국을 강타했습니다. 이어서 15미터 내외의 쓰나미 해일이 덮쳤습니다. 잦은 여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5.0을 넘는 지진들이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제1원전은 몇 군데가 폭발 내지 사고로 인해서 그 무서운 방사능이 유출되고 있습니다. 대 화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공식 집계된 사망 실종자가 1만2천~1만3천명이 된다고 합니다. 그 외 소식을 알 수 없는 이들이 수만을 헤아린다고 합니다. 부처님! 자재 만현은 엎드려서 간절히 일본 국민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깊은 위로를 보내드립니다.
부처님! 더 이상의 참화가 없도록, 피해가 없도록 가피주소서. 특히 그 원전 방사능 누출을 막기 위해서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정신으로 180명 정도가 자원해서 죽음을 무릅쓰고 원전으로 들어가서 그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신명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 훌륭한 보살정신, 우리는 배울 것입니다. 그분들, 거룩한 그 정신을 우리는 배울 것입니다. 부디 훌륭한 마음씨를 지닌 그 사람들, 한 사람도 사고 당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 살려 주소서!
그리고 오늘, 춘천시내에서도 30분을 와야 우리 영산불교 현지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법회에 동참해주신 우리 착한 1,000명 넘는 오늘의 불자님들에게 부처님!《열반경》에 있는 대열반광, 무량억종광, 부처님의 청정한 그 빛을 쏘아서 업장을 많이많이 씻어주소서. 우리 착한 불자들, 현지사 단월들, 신묘년 새해에 보다 더 잘 살 수 있도록, 그리고 부처님 믿는 마음을 보다 돈독히 할 수 있도록 업장 많이 많이 씻어주소서. 설법한 지 이제 5년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 현지사 단월님들은 보다 더 잘 살 수 있고, 또 많은 업장이 벗겨져 나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가피주소서. 삼재팔난 관재구설 만나지 않도록 가피주소서 부처님.. 자재 만현 오늘을 맞아 간절히 부처님께 기도 발원을 드립니다.』
일본국 피해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말씀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다만 위로를 보낼 뿐입니다. 광명 만덕님, 또 이 사람 자재 만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지난 음력 2월8일은 부처님 출가재일이었고, 또 어제 2월15일은 부처님 열반재일이었습니다. 우리 불자들은 이날을 꼭 잊지 마시고 출가 정신을 본받아야 됩니다. 또 열반(涅槃)의 의미를 알아야 됩니다.
우리 부처님께서 음력2월8일 출가를 하지 않으셨더라면, 그리고 무량겁 전에 출가를 않으셨더라면 불교, 그 위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이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삼계의 그 많은 붓다들과 보살들이 나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날의 부처님 출가정신을 본받아 몸과 마음을 다해서 정말로 정직하고 깨끗하게 살아야 됩니다. 지혜와 공덕을 짓는 일에 매진해야 됩니다. 부처는 못 이루더라도 모두 보살이 되어서 삼계를 탈출해서 영원히 극락에 살기 바랍니다.
또 우리 성직자들 스님들은 부처님의 정법을 널리 펴서 고통 받는 윤회중생을 많이 건져야 합니다. 어제 2월 보름은 열반재일(涅槃齋日)이었습니다. 열반재일. 부처님께서 반열반 하신 날입니다. 열반에 드신 날입니다. 부처님의 돌아가심을 그렇게 표현합니다. 죽었다고 하지 않습니다. 열반에 드신 날입니다.
그 불과(佛果)를 증한 분이 열반에 들면, 그 후의 소식을 지금까지 아무도 모릅니다. 2600년 전, 또는 2500년~3000년 전 사이 그 열반에 드신 부처님은 어떻게 된 것이냐? 이것에 대해서 거의 모릅니다. 이것도 영산불교에서 자세하게 파헤치고 있습니다. 그 소식을 많이 내놨습니다. 불과(佛果)를 증한 이가 다시 사람 몸을 받아 온다면 그 사람의 몸을 응화신(應化身)이라고 합니다. 화신(化身)이라고도 하고, 응신(應身)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이 몸뚱이를 응화신이라고 하는 것이 옳습니다. 응화신이 35살 때 불과(佛果)를 증하시고 45년 동안 법을 펴셨지요. 80세에 돌아가셨습니다. 45년 동안 중생구제를 다하시고, 큰일을 다 마치시고 이제 열반에 드셨습니다. 이제 열반에 들었다는 말을 하는데, 좀 자세하게 말씀드립니다. 무슨 말이냐? 불과(佛果)를 증한 이는 다시 사람 몸을 받아 올 때 당신의 진짜 본불은 절대계에 놔두고 오십니다. 보신불(報身佛)은 놔두고 오십니다.
여기서 할 일을 다 마치고 열반에 드시면 응화신의 생명 실체인 네 영혼체이지요. 영혼체 4개, 그 네 개가 뭉쳐서 하나가 되어가지고 곧바로 절대계에 있는 당신의 본불(本佛, 보신불)에 계합이 됩니다. 물론 그때는 많은 붓다님들이 금의환향(錦衣還鄕)하신 부처님에 대해서 열렬히 열렬히 환영합니다. 대 축제가 벌어집니다. 45년 동안 할 일을 다 하시고 돌아오신 우리 부처님에 대해서 정말로 정중하고 반갑게 맞이합니다. 부처님의 진불(본불)을 ‘원만보신 노사나불’이라고 합니다. 당신의 진불이신 그 불신(佛身)과 계합이 됩니다.
《아함경》등을 보면 4정려(精慮)를 넘어서, 4선정(禪定)을 넘어서 멸진정(滅盡定)으로 들어와 가지고 그 곳으로 간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곧바로 번개같이 갑니다. 그걸 말씀드립니다. 그 세계는 고(苦)라는 것이 없습니다. 고통이라는 것이 없지요. 보살이 가는 극락세계도 고통이 없는데, 그 상적광세계(常寂光世界)는 극락세계 중의 극락세계입니다. 그 세계의 당신 몸속으로 합일이 됩니다.
지금도 우리 광명 만덕 광명불이나 자재통왕불의 그 위신력, 대단하지요. 그렇지만 응화신의 네 영혼체가 합일이 된 그 부처님은 정말로 우주적인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우주적인 능력을 갖추게 되요. 또 그분이 당신의 법신불과 합일이 되어버리면 우주법계의 힘을 쓸 수 있습니다. 우리 부처님, 어제가 바로 열반재일입니다. 음력 2월15일 날 열반에 드셨어요. 응화신의 영적실체인 네 개의 영혼체가 무량광덩어리가 되어가지고 당신의 불신(佛身, 원만보신 노사나불)으로 회귀해서 합일이 되었다고 했지요.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것은 2500년, 3000년 동안 그 큰스님들이 이 부분에 대해서 정말로 모르기 때문에 전혀 법문이 없습니다. 그래서 영산불교가 위대하다고 합니다. 말로만 영산불교가 위대한 종교철학과 사상을 지니고 있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스님이 벌써 150여 차례의 법문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비교종교학〉이 나왔습니다. 그동안 동서고금의 철학 종교 사상을 총망라해서 정말로 객관에서, 중도에서, 그 모든 철학과 종교 사상을 면밀히 검토해서 그 깊이를 진단하고, 우리 영산불교와의 차이를 감히 비교 논증한 이〈비교종교학〉이 개정증보판으로 이번에 나왔습니다. 그 철학사상이 심오하다고 하는 힌두교, 그들의 육파(六派)철학이라든지, 인도의 육사외도(六師外道)의 철학이라든지, 그리고 지구상에는 그 많은 교파가 있다고 했지요.
수 천 수 만을 헤아리는 종교단체가 있다고 했지요. 그것의 대표 종교라고 하는, 대 종교라고 하는, 그러니까 적어도 학자들의 검증을 마친 대 종교라고 하는 여덟 개의 세계적인 종교, 그래도 건강하다고 하는 우리 한국의 네 개의 민족종교, 이런 것을 전부 내놓고 우리 영산불교의 입장에서, 그러니까 본체관(本體觀), 좀 어려운 이야기예요. 현상관, 또 우주관의 입장에서, 또 생사관의 입장에서, 구원관의 입장에서, 모든 측면에서 비교하여 우리 영산불교가 이렇게 위대하다는 것을 써놓은 것이〈비교종교학〉입니다. 이번에 이 책을 써주신 우리 법장 김중섭, 오늘 오셨습니까? 지하에 있다고?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 영산불교가 태어난 지 5년 밖에 안 되었지요. 감히 동서고금의 철학사상들, 서양이나 동양이나, 또 종교에 있어서 힌두교라든지, 그 힌두교의 다양한 철학사상, 우리 동양 쪽에 와서 도교의 노자사상, 또 저기 일신교 쪽에서도 유대의 카발라, 이슬람의 수피즘 쪽으로 전부 망라하고, 또 서구 지성인들이 지금 대단하게 매력을 느끼고 있는, 퐁 빠져 있는 그 부분을 드러내었는데, 그런데 영산 불교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이것은 너무도 차원이 낮은, 이 정도 갖고는 21세기 우리 인류를 향도할 수 없다는 거예요. 우리 불교 쪽에서도 티베트의 밀교라든지, 남방 쪽의 위빠사나라든지, 한 때 중국과 한국을 풍미했던 선불교라든지, 그것까지 전부 드러내 놓고 해부한 거예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어요. 학문적으로 검토한 거예요.
말이 나와서 더 말씀드리지요. 어떠한 종교 사상에서도 지니고 있지 못하는 상락아정(常樂我淨)의 니르바나의 세계에 대해서, 여기 영산불교에서는 그것을 완전히 통달이라고 할까, 그것을 완전히 깨쳤습니다. 이것은 감히 어떤 종교에서도, 그 어~떤 종교에서도 니르바나의 세계에 대해서는 모릅니다. 다만 본체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 힌두교하고 몇몇이 있지요. 본체를 넘어서, 니르바나의 세계에 대해서는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 영산불교의 위대한 사상이라고 할까, 많이 열거할 수 있지만 이 우주론에 대해서도, 우주관에 대해서도 가장 고둥종교라는 힌두교보다도 훨씬 자세하고 깊습니다. 따라서 생사관이라든지, 구원관 등은 정말로 완벽합니다. 그 사상이 심오하고 깊고 완벽하다는 것은 모든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실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구원할 수 있는 실력이 있습니다. 이것을 여러분들도 깊이 생각해 보고, 더 알려고 해서 ‘나도 우리 부처님 정법을 이 세상에 펴는데 일조를 해야 되겠다’ 하는 노력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부처님께서 열반 후 다시 삼계의 지존 자리로 복귀하셨습니다. 남섬부주 대교주의 자리로 복귀하십니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대적정삼매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극락보다 더 극락인 상적광세계, 환희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우리 부처님은 너무도 대자대비 하셔서 그 대로 환희의 세계에 스스로 안주하시지 않으시고 중생제도에 임하십니다. 원만보신불로서도 많은 일을 하십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두 아들을 붓다 만들어서 데려가기 위해서 지금 현지사에 와계십니다. 남섬부주에서 우리 부처님께서 항상 계시는 곳, 절대계에도 계시지만 남섬부주 어디에 계시느냐? 영축산 약간 허공에 ‘영산궁’이 있습니다. 거기에 계셔요.
그런데 지금은 여기 현지사에 계셔요. 지존이 여기에 계시기 때문에 좌우보처 문수 ․ 보현 두 보살님이 여기 계시고 두 분은 큰 부처님이시지요, 사바세계에서 보살행을 하시는 관음 ․ 지장 두 보살님역시 두 분은 큰 부처님이시지요, 모두 여기에 계시고, 그리고 오여래부처님 중에 한 분이신 약사여래부처님이 와 계셔. 약사부처님의 좌우보처 일광․월광 양대 보살님이 오셔. 그분들도 붓다들이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아시죠? 그분이 치유하시는데 부족하면 그 무량광 빛 신호에 의해서 약사정토의 상수보살들인 의사들이 또 내려 오셔요. 특별기로 많은 의료 기구를 싣고 오셔요. 참 희유하지요. 이런 부처님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어디에서도 못들었을 거예요.
지금 2500년 동안 불교가 내려왔지만 이런 것을 전혀 모릅니다. 이런 것을 자세히 말씀드리려고 해도 너무나도 이 소식을 모르는 사람들한테 갑자기 이야기를 하면 ‘저 사람이 이야기를 하나, 소설을 쓰나’ 하고, 그렇게 평가 받기 싫습니다. 이 논제는 밀장은 아니지만 밀장과 같이 가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약사정토의 그 약사궁을 조성하는 불사를 저기 화진포에다가 다음 달부터 착수합니다.
그러니까 그 약사부처님께서 이제 거기에 상주하실 거예요. 아마 도저히 나을 수 없는 병까지... 전생에 과거생에 흉기로 부모를 무자비하게, 정말로 극패륜아로서 부모를 시해했다든지, 부처님과 그 법을 모독하고 능멸했다든지, 이런 분들은 금생에 와서 도저히 나을 수 없는, 치료해줘서는 안 될 그런 병을 가지고 옵니다. 그러니까 그런 병은 놔두고, 그 외의 많은 병을 치유할 겁니다. 이제 화진포 약사전이 개원 되면 정말로 많은 신도들이 찾을 겁니다. 그걸 말씀드립니다.
우리 부처님은 열반 후에 완전히 당신의 불신(佛身)과 계합되어 가지고 많은 불국토를 다니시면서 법문을 하시고, 그 수많은 불국토의 보살들을 교화하시고, 여러 붓다님들을 독려하십니다. 대단히 바쁘십니다. 백 천 만억 당신의 화신이 성실하게 교화에 잘 임하는가의 여부를 삼매에 들어서 관하시고, 힘을 부어주십니다. 이 말을 알아듣겠습니까?
붓다들은 당신의 화신을 100이고, 1,000이고, 필요에 따라서 냅니다. 중생은 못하지요? 몸이 하나거든요. 붓다만이 그럽니다. 그런데 우리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삼천대천세계, 그 무수한 삼천대천세계에 당신의 몸(화신)을 많이도 많이도 보냅니다. 그래서 그 화신이 10년도 100년도 그 바운다리에서 교화활동을 하시는 거예요. 그걸 잘 하시느냐, 못하시느냐 하는 것을 선정(禪定)에서 보시고, 어떤 화신이 좀 부족하다 싶으면 더 힘을 넣어주시고. 이런 일도 하십니다.
우리 부처님께서 여러 가지로 자비하시고 해서 우리한테 가피를 주시고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대단히 우리 현지사 스님들의 말과 행동에 대해서 준엄하게 꾸짖고 계십니다. 현지사 스님들이야 100명도 안 되지만, 세 군데에 나뉘어져 있잖아요. 이 스님들의 말과 행동에 대해서 준엄하게 꾸짖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침마다 이 좌우명을 만들어서 읽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현지사를 사랑하는 단월님들이기 때문에 들어보시라고 스님이 읽어드리겠습니다.
『우리 출가제자들은 부처님의 뜻과 여망에 따라 오늘부터 영원한 스승인 거룩하신 우리 교주 불세존과 오여래부처님, 열여섯 사부님, 삼계의 붓다님을 항상 지극한 마음으로 예경하고, 언제나 마음속으로 공경 찬탄하고, 그리고 광수공양 드리는데 있어서 게을리 하지 않고 최선을 다할 것니다.
두 번째, 여러 과거 생에 지은 지중한 죄업을 참회하면서 이 이상 업을 짓지 않고 붓다 회상에 들어온 우리는 신구의(身口意) 삼업을 맑고 바르고 청정하게 지어갈 것입니다.
몸과 마음, 주변은 청정 청정 청정하도록 챙길 것이고(우리 현지사 깨끗하지요), 자기가 한번 한 말과 약속은 목숨처럼 지킬 것이며, 거짓말 아닌 바른 말을, 저속한 언사를 떠난 아름답고 품격있는 말을, 그리고 꼭 필요할 때만 말하는 제자가 될 것입니다.
일거수 일투족이 붓다 회상의 스님으로서 존경받는 처신을 다할 것입니다. 부처님 믿는 마음을 더욱 돈독히 해가면서 생각은 언제나 착하고 성스러운 보살심만을 지니도록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 매사에 교단의 주인이라는 주인 의식을 갖고, 맡은 바 소임에 철저하고 최선을 다 할 것입니다.
나로 인해 상대에게 누가 되는 일이 없는지 조심할 것이며, 서로 존경하고 사랑함으로서 화합하는 교단으로 만들어 가겠습니다. 등등입니다.』
이건 지금 부처님과 약속한 거예요. 이렇게만 하면 존경받겠지요. 한국의 부처님 제자들이, 특히 출가한 제자들이 일거수 일투족 안과 밖으로 존경받을 행을 하면 정말로 우리 한국의 불교는 희망이 있고, 발전에 발전을 할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불교가 가끔 지탄을 받고, 또 어떤 때에는 국가의 권력이 불교를 짓밟는 그런 법난(法難)도 가끔 당합니다.
한국 불교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우리 영산불교처럼 부처님의 출가 정신에 충실하지 않으면, 이 국가의 국운(國運)도 국가의 미래도 보장할 수 없습니다. 건전한 불법(佛法)이, 정법이 힘을 얻어야 그 국가가 부강해집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늘이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선신이 도와줍니다. 더 자세하게 말하면 불보살, 성중, 하늘 사람들이 음으로 양으로 도와줍니다. 그리해서 그 나라의 국운은 융창해지는 겁니다. 불법(佛法)이 우주의 정법이기 때문입니다.
〈비교종교학〉책을 보면 성기설(性起說)이 나올 것입니다. 이 세상 만물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도대체 하느님이 만들었는가? 아니면 어떻게 해서 이렇게 전개되었는가 하는 문제. 이것을 현상관이라고 해요.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그 종교의 현상관, 그리고 그 본체관(本體觀)을 들여다보면 그 깊이를 그냥 알 수 있는 거예요. 그냥 알 수 있어요. 이 책에서는 상당히 줄여서 써놨습니다. 써놨는데, 지금까지의 스님 법문이 점점 더 깊숙이 들어간다고 했지요. 1년, 2년 전 법문보다도 상당히 깊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이 중요한 현상관에 대해서, 영산불교의 현상관, 그 어떤 종교도 감히 알 수 없는 그 깊이를 여러분한테 간단하게 말씀드립니다. 이 부분은 너무 어렵습니다. 그러나 내 말에 대해서 적어도 오늘 오신 분의 1%~5%정도는 알아들을 거예요. 우리 신도 분들은 수준이 상당히 높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학부를 나오고 또 대학교수 분들도 많고 해서 그분들한테 좀 말씀을 드려줘야 되겠다 해서, 오늘은 조금 깊이 말씀을 드리려고 생각해 왔습니다. 이게 이해가 안되는 우리 신도 분들한테는 죄송합니다만 그러나 듣고만 계셔도 감(感)은 올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부터 판단이 됩니다.
우주의 본체라고 하는 이것을 공(空)이라고 했지요. 공(空), 하나의 큰 생명체가 무시(無始) 이전부터 있어왔지요. 여기서부터 이것을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비인격(非人格)으로 보는 거예요. 비인격체(非人格體)로. 인격체(人格體)로 보는 것이 일신교(一神敎)예요. 기독교라든지, 이슬람교라든지, 일신교에서는 하나님 그러잖아요. 우리는 비인격으로 봐요. 이것을 이법(理法)으로 봐요. 이것을 ‘스스로 있는 자존자’라고도 해요. 이건 ‘스스로 있는 자존자’예요. 그러나 눈도 없고, 귀도 없고, 코도 없고, 입도 없고, 몸뚱이도 없어요.
생각도 없고 의지도 없고 그렇기 때문에 비인격인 거예요. 이런 비인격체가 무엇을 창조할 수 없는 거예요. 창조하려면 의지도, 지혜도 있어야 되고 주체가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것이 공(空)과 함께 있는, 공(空)이전에 있어야 되요. 그래야 그 무서운 지혜와 능력으로 질료(質料)를 가지고 우주를 창조하는 것이지, 무시 이전에는 공(空)뿐이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건 아니어요. 공은우주에 두루해 있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실상이어요. 이것을 공(空)이라고도 하고, 본체(本體)라고도 해요. 그 진리의 이법은 연기법(緣起法)이어요. 모든 것이 연기(緣起)로 되는 것이어요.
자연은 자연법칙으로 진화하는 거예요. 모든 것은 자연법칙이어요. 지진이 터지고 화산이 터지고 하는 것은 전부 자연법칙이어요. 이건 자연의 이법이어요. 이 공(空)의 체(體), 체성(體性)은 지혜요 조화요 사랑이요 빛이어요.
본래 하나의 큰 우주생명체였기 때문에 그 속에는 모든 물질의 근원(根源), 궁극적인 근원, 질료인(質料因), 그리고 에너지가 충만해 있어요. 이게 성겁(成劫)으로 들어가면, 성주괴공(成住壞空)의 성겁으로 들어가면, 이 비인격적(非人格的)인 이법(理法)에서, 이 공(空)에서 세상 만물이 벌어져 나오는데, 이게 무량한 시간이 걸려가지고 된 거예요. 수~수 겁이 흐르고 중중무진(重重無盡) 진화해가지고 이렇게 된 거예요.
이 동력(動力)은 중생의 업력이어요. 그 많은 중생들의 업력,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의 업력에 의해서 인연 따라 공(空)에서, 공대(空大)에서 현상, 현상의 처음, 현상의 최초라 할까 이게 이루어져요. 그리고 의지를 지닌 수많은 영혼이 각기 1․2․3번 영체를 형성하고요. 우주만법은 우주의 구조, 법도에 따라 드러나고요. 우주는 자연법칙에 따라서 빅뱅이 일어나 시공이 벌어지고, 곧 우리 인간 유정 등 열두 띠 중생은 진여(眞如), 순수의식, 우주의식에서 1․2․3번 영체가 곧 드러나면서 성기(性起)하면서 과거생의 업이 붙어요.
그래서 이제 습이 생기고, 천천히 기가 생겨요. 각자의 기, 모든 것은 기가 있잖아요. 사대의 거짓 몸뚱이가 생기고. 이건 아주 후(後)의 일인데 운명이 정해져요. 다시 말하면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 물질적인 것도 아니고 정신적인 것도 아닌 세력으로 에너지에 의해서 공(空)의 충만한 에너지(힘)에 의해서 수많은 생명체의 종자들이 생겨나요.
물질적 원질(原質)인 원자들이 생겨나요. 지수화풍(地水火風)이 형성되어요. 많은 시간이 흘러가면 구산팔해(九山八海)가 성립되고, 음양이 오행으로 나아가고, 인드라망의 구슬처럼 상호 중중무진연기가《화엄경》에서는 이를 상즉상입(相卽相入)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겁이라는 시간을 통해서 우주 만법이 만들어져요. 물론 여기서 사람의 마음이 주인이 되요. 내가 업을 지어 내가 받아요.
신구의(身口意)로 지은 각자의 업은 영체에 보존이 되어요. 그 영혼체 1․2․3번은 영원히 죽지 않아요. 인간을 비롯해서 열두 띠 중생은 생사전생(生死轉生)을 하면서 이미 만들어진 육도를 윤회해요. 이렇듯 무수겁을 자연 법칙으로, ‘카르마 법칙’으로 우주 만법은 유전(流轉)을 계속하다가 공겁(空劫)에 들어서면 지구나 저 하늘의 달이나 태양이나 별들까지도 삼재(三災)로 망가져요. 그러다가 자체 핵폭발해버려요. 한편 영적인 것도 욕계 색계의 영적인 그 중생들은, 중생 업파에 의해서 자연이법을 따라 초선천 이선천까지 다 파괴되어 버려요. 그런 다음 공대(空大)로 돌아가 버려요. 공(空)으로 돌아가요.
다시 성겁(成劫)이 되면 이를 반복해요. 미래제가 다하도록.
이러한 윤회에서 우리가 벗어나려면, 삼계를 탈출하려면 삼계의 지존이신 부처님 법을 따르는 길밖에 없어요. 절대계에 계신 부처님을 믿고, 그 대자비하신 구원력에 의지해서 ‘팔정도칭명염불’을 하는 수밖에 없어요. 붓다 회상을 만나 선근공덕 많이 짓는 길 밖에 없어요. 이렇게 해서 아라한이 되고, 무루 대아라한이 되고, 천녀가 되고, 보살대기로 가고, 보살이 되고, 약사정토로 가고, 나아가서 붓다가 되어야 되요. 그래야 상락아정(常樂我淨)의 니르바나 세계에 가서 영원히 죽지 않고, 그 극락의 극락에서 사는 거예요.
이 성기설(性起說)을 아주 줄여서 이야기 했는데, 다시 말씀드리자면 힌두교 육파철학의 그 심원한 철학, 일신교의 창조론이라든지, 과학에서 이야기한 E=mc2이라든지, 노자의 <도덕경>에 연유하는 도가(道家)의 우주론이라든지, 선불교의 우주론 등을 뛰어넘습니다. 훨씬 위에 있어요.
영산불교의 성기설(性起說), 현상관을 오늘 말씀드립니다.
이게 너무 어려워서 본체관(本體觀)을 또 이야기해야 되는데, 어렵습니다. 접으려 했지만, 기왕에 말씀드렸으니까 오늘 대충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여러분들의 눈초리를 보니까 꼭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인 것 같습니다. 이게 지금 너무도 깊은 철학 사상이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거 알아듣지 못하겠지요. 그러나 감(感)은 오겠지. 그렇기만 해도 되요.
이 우주 이전에, 소위 본체(本體) 안에는 모든 것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파워가 있어요. 희유해요. 그리고 질료(質料)가 있어요. 또 지혜가 있어요. 불과(佛果)를 얻게 되면 이 붓다가 이 본체(本體)와 계합이 되어 버려요. 그러면 우주의 주인이 되는 거예요. 주인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이것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거예요. 그러나 아라한부터는 제한적으로 제한적으로만 쓸 수 있어요. 외도의 수장들도 대단해요. 우리 부처님 능력의 90%정도까지 가요.
그러나 외도는 영원히 멸도하지 않는 법을 몰라요. 대적정삼매, 그리고 무량광으로 이루어진 삼신(三身)을 갖출 수 있는 실력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의 그 무서운 힘 앞에서는 전 외도가 굴복해요. 비밀은 무량광, 무량억종광에 있어요. 무량억종광으로 붓다의 몸은 이루어져요. 그 무량억종광을 봐야 거기서부터 붓다의 경지이며, 붓다로 들어가는 거예요. 세상에 나도 붓다이고, 너도 붓다이고... 지금 그러는 사람들이 많은데 무량억종광이라고 하니까 자기들이 빛을 본 그것이 무량억종광인 줄 알아요.
무량억종광은 그게 아니어요. 마치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반딧불만 봐도 밝지요. 전깃불을 만나봐요. 이건 엄청난 거예요. 무량억종광이라는 그 빛을 보려면 정말로 과거생에 ‘불격(佛格)을 갖춘 최상수보살’의 수행이 있어야 되요. 그리고 부처님께서 붓다를 만들 생각이 있어서 오셔서 그 지도에 의해서 외마(外魔)를 막아주고 많은 삼매로 끌어가면서 그 빛을 보는 거예요. 그 외에는 볼 수가 없어요.
이 공(空)안에는, 본체(本體)안에는 정말로 무진장한 보물이 있어요. 이건 동양에서 알았어요. 동양 사상가들이 알아냈어요. 그러나 그 무진장한 보물을 완전히 쓸 수 있는 분은 붓다예요. 외도의 수장들도 무진장한 보물을 상당히 알아요. 그러나 붓다만큼 완전히 쓰지 못하고 제한적으로 쓸 수 있어요.
▸공(空), 본체(本體)안에는, 빛 ․ 힘이 충만해 있다는 것.
▸공(空)은 살아 있는 우주 생명체라는 것
▸공(空)은 영원히 불생불멸 한다는 것.
▸공(空)의 성품은 지혜요, 조화요, 사랑이요, 힘이라는 것. 자연이라는 것.
▸우주 구조나 메카니즘, 이런 것은 이법(理法)이라는 것. 우주의 이법은 연기법(緣起法)이라는 것.
우주의 이법은 부처님 이전에 있었기 때문에 부처님도 어찌하지 못해요. 이걸 잘 알아들어야 돼. 이에 대한 설명은 스님이 안 해줘요.
부처님이 계시는데 왜 일본에서 대지진이 터져버리는 것을 놔두셨을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그 부분은 스님이 설명 안해요. 이법은 부처님 이전에 있었어요. 그건 어쩌지 못하는 거예요. 부처님은 그 이법을 역행하지 않아요, 항상. 그러나 스님이 부처님께 발원하고 기도한 것은 이후 방사능 누출이 더 이상 되면 안 되니까. 이후에 또 바람이 우리 쪽으로 불면 안 되지요. 아까 우리가 취한 조치가 있었다고 했지요? 우주의 이법은 연기법(緣起法)이라는 것.
하나님이 있어가지고 6일 만에 만물을 창조했다는 이것은 초등학생에게도 믿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혜 있는 우리 지성인들이 그 교리를 옳다고 믿고 따르는 것을 보면, 이건 어처구니가 없지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대의 이야기예요. 인류의 문명이 미개한 시대, 미개한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종교예요. 그건 원시종교의 신이어요. 고등종교는 그렇지 않아요.
우리 영산불교의 사상 중에서 모든 종교 사상을 훨씬 능가한 것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주 본체관과 방금 말씀드린 현상관도 아주 중요한 부분이어요. 상락아정(常樂我淨)의 니르바나 세계에 대해서 지금 아무도 몰라요. 이것을 알아야 미래의 온 인류를 끌고 가는, 향도할 수 있는, 구원할 수 있는 자격을 지닌, 실력을 지닌 우주적 메타종교가 될 수 있는 거예요. 부처님에 대해서 지금 아무것도 몰라요. 아무도 몰라요. 우리 인간의 영적 실체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아무도 몰라요. 현재까지도. 물질문명은 나름대로 고도로 발달하고 있다고 하지만 인류의 정신문명은 아직도 걸음마 수준이라고나 할까요?
그리고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효’를 주장하지요. 제일 효를 주장한데가 유교예요. 유교에서 효를 이야기한 것 하고, 영산불교에서 효를 이야기한 것은 천지차이예요. 유교에서는 이 몸뚱이, 살아생전에 우리 부모님 잘 봉양해 드리고, 마음 편하게 지내도록 잘 봉양해 드리고, 돌아가시면 이 몸뚱이, 이 송장 잘 싸서 안장해주고 하는 이것을 효로 알아요. 그러나 그건 형식이어요. 그 유가(儒家)의 사람들은 이 몸뚱이에 대한 주인을 몰랐어요. 여러분 아시죠? 돌아가신 고인(故人)의 실체가 지금 나가서 무주고혼으로 있는데 몰라요.
실체가 명부에 들어가서 논죄를 받아가지고 지옥에 있는데 몰라요. 지옥을 모르니까요. 명부가 있다는 것은 도교쪽에서 좀 알아냈어요. 그런데 아무도 실제의 지옥을 본 사람이 없어요. 다만, 지장보살의 위신력에 의해서 꿈에 잠깐 볼 수는 있어요. 또 외도들의 수장급들은 지옥을 좀 볼 수 있어요. 그러나 영산불교만큼 정확히 볼 수는 없어요. 계율이 영산불교만큼 엄정한 데가 지금까지 없어요. 한 바가지의 청정수가 있는데 똥물 한 방울 떨어뜨린다면 어떻겠습니까?
마실 수 없다고 했지요. 여기는 그렇게 엄해요. 윤회 안의 세계와 윤회 밖의 세계에 대해서 잘 알아요. 지금까지는 아는 사람이 없었어요. 윤회 밖에 대해서 아라한, 무루 대아라한, 보살, 붓다, 이렇게까지 깊이 안 종교는 세계역사상 없었어요.
오는 음력 4월8일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석가불탑(석가탑)을 점안해서 봉안하는, 부처님 오신 날을 봉축하는 뜻 깊은 행사를 합니다. 이 석가탑, 전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이 석가탑은, 저기 인도의 영축산 약간 위의 허공에 ‘영산궁’이 있는데, 그곳에 부처님 탑이 있어요. 그걸 갖다가 재현한 거예요. 이것도 우리 현지사에서 처음으로 재현해 놓은 거예요. 다보탑도 그래요. 그러면서 그날 점안을 해요. 점안을 할 거예요. 생명력을 불어넣을 거예요. 영산궁의 석가탑과 링크를 시킬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은 탑돌이를 잘 해야 되요. 엄청난 복을 받아요. 법문을 하면 그날은 탑돌이를 하지. 그 외에는 또 하지 않으셔.
어느 학자가 우리 영산불교 현지사를 무슨 노다지광이라고 했지요? 다이아몬드 광(鑛)이라고 했지. 다아아몬드 광. 여러분들이 와서 법문만 들어도 부처님께서 꼭 업장을 씻어주시는데,《열반경》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지금 처음이어요. 부처님의 그 무서운 위신력으로 씻어주시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과거생에, 또 금생에 와서 지은 그 악업을 씻을 길이 없는 거예요. 죄를 지으면 그것이 정업이 되어버려요. 과거가 딱 정해져 버려요. 이건 씻을 수가 없는 거예요. 이〈비교종교학〉서문을 스님이 이번에 또 썼는데, 나올 거예요. 부처님 아니고는 안 되는 거예요. 업장소멸, 부처님 아니고는 안돼.
그런데 지금 그 부처님이 없다고 해요. 부처님도 없고, 우리 몸뚱이의 영적 실체, 이것이 있기 때문에 윤회를 하는 것인데, 기체(基體)라고도 하는 본체, 본체 없이 윤회할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 인간영혼의 실체를 이야기 하는데 사람들이나 스님들이나 모든 학자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어요. ‘저 소리가 무슨 소리인가’ 하고 말입니다. 보지 못하면 차라리 가만히 있어야 하는데 엉뚱한 비판을 해요. 아니 비난이라고 해야지.
영혼체를 못 봤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불교 교리를 많이 수정해야 되고 새로 조명해야 돼. 그래서 지금까지의 불교 교학을 다시 써야 돼. 많이 다시 써야 돼. 우리는 이제 정말 부처님의 훌륭한 가르침이 더 이상 사장되지 않고 힘있고 위대한 불교로 거듭나도록 해야 돼.
그 석가탑, 정말로 우리 부처님께서도 상당히 만족하신답니다. 보셨지요? 작년에 10만2천등이었어요. 오늘 현재 10만등에 상당히 근접해갑니다. 세상이 놀랄 일이어요. 다른 절에서는 가족 당 한두 등을 켜잖아요. 여러 등 안 켜요. 현지사에 와서는 나도 한 등, 우리 아버지도 한 등, 우리 아들도 한 등,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 앞으로도 한 등을 켭니다. 이렇게 해서 많이 켜요. 그만큼 믿기 때문에 그리고 그만큼 체험하기 때문에 그래요. 여기는 부처님 회상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데 하고 달라요.
법문할 때의 그 장면. 이것은 정말 이야기 못할 엄청난 성스러운 장면이 벌어져요. 붓다만 그래요. 내가 가끔씩 얘기했죠?
어떤 사람의 법문, 삼생의 공덕보다도 그 법문 듣는 게 더 수승하다고 하는데, 그렇게 거짓말 하면 안 되어요. 큰일 나요.
여기 현지사의 천도재(薦度齋) 보세요. 이런 천도재를 역사상 어느 세상에서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없어요. 붓다가 주관하시기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그래도 어떤 사람은 안 믿어요. 눈에 안 보이니까. 그런데 천도재 하면 큰 소원이 이루어 져요. 온갖 소원이 이루어져요. 그러니까 마구 몰려와요. 그런 소원이 이루어졌다는 것도 안 믿는 사람은 복이 없는 사람이어요. 그건 복이 없는 사람이어요. 그렇다고 소원을 이루기 위해 천도재를 지내지는 마세요. 효심으로 지내야 되요.
여러분들이 효도하라고, 진짜 효를 할 수 있도록 부처님께서 자비를 베푸는 거예요.
금년에 11만등이 훨씬 넘을 것 같아요. 작년보다 1만등만 더하려고 했는데. 그래서 어느 정도 다 되면 스톱(stop)할거예요. ‘이제 끝입니다’라고 선포할 거예요. 등은 청사초롱으로 할 것입니다. 작년보다 옷감의 질이 더 좋아요. 우리 부처님 등이기 때문에 최고의 질 좋은 옷감으로 해요. 그래서 우리 부처님께 발원을 하라고 했잖아요. 거기에다가 적으라고 했지요. 많이 들어주신다고 했어요. 들어주신다고 했어. 그러나 커다란 죄를 지어놓고는 등하나 켜놓고 ‘그 죄업 소멸하기를 발원한다’고 해서는 들어주기 어렵지. 그 때는 제한적으로 들어 주는 것이지요. 그걸 아시길 바랍니다.
우리 사람은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바르고, 정직하고, 깨끗하게 살아야 된다. 부처님께 귀의하고 부처님을 따라서 배워야 되겠다. 항상 부처님을 생각하고 염불해야 되겠다. 이게 사는 길이에요. 이렇게 살아야 되요.
나는 가끔 우리 주변에서 50살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 사람을 봐요. 똑똑한 사람이 죽는 것도 보고, ‘정말로 인물이다, 나라의 동량이다’하는 사람들이 죽는 것을 봐요. 그럴 때마다 나는 ‘어떻게 하나’ 그럽니다. 저렇게 죽어서 어떡하나! 왜 그런 생각을 한 줄 압니까? 어떡하나! 여러분, 사람 몸 받기 어려워요.
그런데 사람으로 와가지고 착하게 살지 못했다면, 정말로 보람 있게 살지 못했다면, 그리해서 성과(聖果)를 얻지 못했다면, 그리고 죽는다면 이건 슬픈 일이어요. 정말 슬픈 일이어요. 우리 현지사 스님들이나 단월님들은 지금 좋은 기회를 만난 거예요. 물실호기(勿失好機),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만난 거예요. 이때를 놓치지 말고 여러분들이 과거생에 지은 죄업, 금생에 와서 지은 죄업을 전부 털어야 되요. 빚도 갚아버려야 되요. 과거생에 지은 빚, 금생에 와서 지은 빚, 은혜도 갚아야 돼. 그래야 돼. 그래서 여러분들이 몇 년 후에 ‘스님! 내 법위를 좀 알고 싶습니다.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싶습니다’ 하면, ‘아! 그럽시다’ 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보면 ‘아! 우리 보살님은 지금 죽어도 성중7품이오, 혹은 성중2품이오’ 한단 말이에요. 성중 2품이면 벌써 아라한이어요. 아라한 정도 되면 성주괴공(成住壞空)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아라한이 되면 받지 않아요. ‘다시 사람 몸을 받아와서 보살이 되련다’해서 와가지고 함정에 빠져서 그러지, 안 오려면 안 와요. 영원히 안 오려면 안 와요. 생사윤회로부터 해탈한 그런 자유로운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스님 말씀 알아듣겠습니까?
전혀 배운 것도 없고, 그렇다 하더라도 이렇게 나오셔서 들으십시오. 부처님 말씀을 들으면 지혜가 생겨요. 정말 들을 말을 들어야 되요. 그래서 경전을 읽으라는 거예요. 경전을 읽으면 스스로 듣잖아요. 지혜가 생기는 거예요. 지혜가 생긴다는 말은 업장이 많이 씻어간다는 거예요. 그래야 지혜가 생겨요. 업장이 씻어지면 씻어질수록 우리는 보다 더 잘 살 수 있어요. 금생도 잘 살 수 있고요, 다음 생도 지옥 아귀 축생에 안 떨어져요. 무주고혼 안 되어요. 여러분, 오직 여기밖에 없습니다.
이 길밖에 없어요.
스님 말씀을 아주 경청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스님이 여러분한테 거듭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죄를 지어서는 안 되어요. 더 이상 죄업을 지어서는 안 되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잘못 산 것에 대해서 정말로 반성하고 참회해야 되요. 그 업을 씻으려면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면서 칭명염불을 열심히 해야 되요. 또 천도재를 모셔야 되요. 조상님께 효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지만 부처님께서 여러분의 업장을 씻어줘. 부처님께서 조상을 더 높은 좋은 세계로 천도해 주면서 2부에 가서 보너스를 주셔요. 그러지요?
씻어주신다고. 참회한다고 해서 지은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어요. 그렇지만 다시는 악업을, 못된 짓을 않하는 효과가 있어요. 앞으로 부처님을 항상 생각하고 본받아서 살 줄 알아야 되요. 늦었지만, 나도 이제 생각해 보면 한 5년, 10년을 살까? 좋아요. 부처님을 본받아야 되요. 부처님, 왕의 자리를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설산에 가서 구도(求道)하셨잖아요. 그 무서운 수행을 했잖아요.
그러지는 못할망정, 스님 말씀대로 살아야 되요. 지금 여러분들한테 그 문을 열어놨잖아요. 천도재, 부처님 공양, 기도, 불사 등 많이 열어놨습니다. 이때에 여러분들이 스님말씀 따라서 살아야 됩니다. 그랬으면 좋겠어. 죽어버리면 못가지고 가요. 가져가는 것은 업이여. 착하게 산사람은 선업을 못된 짓 한 사람은 악업을 가지고 간다고요. 재물은 가져가는 것이 아니어. 자식한테 줘봤자 더 나쁜 습(버릇)을, 자립정신이 아니고 의지하는 버릇을, 그것만 남겨줄 수도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사회복지단체에 준다고 하는데, 그것도 좋은 일이지만 그건 부처님의 정법 회상에다가 주는 것에 비하면 비교가 안 되어요. 비교가 안 됩니다. 가장 수승한 선근공덕이 되는 게 부처님이나 부처님교단에 시주를 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지혜가 좀 있어야 되고, 그러려면 법문도 잘 들어야 됩니다. 앞으로 계속 할 테니까 꼭 나오셔야 돼. 개근한 사람들, 스님이 볼 때 참 반갑고 기쁘고 복이 많은 분들이에요.
이제 시간이 다 되었으니까 한 두 분의 질문 받겠습니다. 두 사람만 스님이 답변해 주겠습니다.
질문①
제가 2주 있으면 조상 천도재를 지내게 됩니다. 저희 조상님이 있는 산소에 국가적인 사업으로 조상님 묘를 이장해야 되는데, 제가 알기로는 조상 천도재를 지내고 나면 명부에 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산소를 이장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 지, 그것을 알고 싶습니다.
(큰스님) : 많이 말씀드렸는데, 우리 거사님이 우리 현지사에 나온 지 얼마 안 되지요? (예, 부산은 몇 번 갔었고, 춘천은 처음입니다) 여기의 천도재는 첫 번째 천도재에서 그 집안의 무주고혼을 모두 명부에 넣어 줍니다. 한 번만 해도요. 어느 집안이나 명부에 못 들어간 그 집안의 무주고혼이 보통 30명, 40~50명 됩니다. 이 무주고혼이라는 말도 다른 데는 모릅니다. 경전에도 중유(中有)하고 중음(中陰)을 분명히 알도록 기록을 했어야 하는데, 분명치 않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가려줍니다.
사람이 자살했거나, 타살 당했거나, 나쁜 병을 얻어 죽었거나, 집을 나가서 사고사 당했거나, 또는 집안에서 사고사 당했거나, 집착이 강한 그런 사람들은 죽어서 명부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한번 명부에 못 들어가면 10년 50년 100년 1000년도 갑니다. 명부에 못 들어가 버리면 배가 고프고 추우니까 자손들한테 갑니다. 친구한테도 간다든지 합니다. 그것까지 아시죠?
여기의 천도재는 부처님과 큰스님이 합동해서 그 전날까지 수배를 마쳐버립니다. 가령, 70명 100명의 영가들을 써오지요. 그러면 그 낱낱 돌아가신 분들이 지금 죽어서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을 밝힙니다. 그러면서 데려옵니다. 잘 들어야 되요. 그런데 직계(直系) 방계(傍系) 중에서 여러분들이 전혀 모르는 관심 밖의 무주고혼 조상 영가 분들이 많습니다. 부처님께서 꼭 “이 집안을 깨끗이 하려면, 자손이 깨끗하려면 그 중에서 20명, 30명 정도는 천도해줘야 된다.
이 정도는 전생에 지은 업이 괜찮으니까 해줘라” 해가지고, 그 낱낱 조상님들이 죽을 때의 장면을 전부 보여 줍니다. 어떻게 해서 죽고,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해서 죽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요. 그걸 '선대 영가님' 해가지고 1, 2, 3번... 쭈~욱 적잖아요. 어느 집안 치고 적어도 30명~50명 정도의 무주고혼들이 있더라고. 그 무주고혼들, 그러니까 명부에 들어가지 못한 분들을 다 명부로 넣어줘 버리기 때문에 그로 인한 장해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러지 않았다면, 무주고혼을 정리해 주지 않았다면, 그 무주고혼이 빙의도 하기 때문에 그 자손이 반드시 그렇게 자살해 죽고, 그런 병을 얻고 하게 됩니다. 그런 불행을 막아 줘버려요. 그러니까 현지사 천도재는 어마어마한 거예요. 이걸 알아야 되요. 여러분, 이해하겠습니까? 질문하신 우리 거사님, 이해하시겠어요?
그러니까 조상 중에 절벽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조상이 있다고 합시다. 그건 절대로 명부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아셨지요? 무주고혼이 됩니다. 그 조상이 자손한테 빙의했다고 합시다. 이 자손은 개인 차이는 있지만 빙의 시간이 오래 걸리면 꼭 그렇게 죽습니다. 자기의 본정신으로, 정상적인 사람 정신으로 그렇게 못 뛰어 죽는 거예요.
또 가령, 나쁜 병을 앓다가 죽은 조상님이 있단 말이에요. 그건 명을 다 살지 못했기 때문에 무주고혼이 되는 거예요. 그 조상님이 빙의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꼭 그 병을 얻습니다. 물론 인연 따라서 오지요. 이 사람이 전생에 그런 업을 지었지요. 그러나 결정적인 것은 이 영가가 빙의해버렸기 때문에 그런다고요. 빙의만 떼어버리면 모든 현대 약으로 할 수 있습니다.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천도재, 현지사 천도재는 낱낱이 TV에 나가서 이야기를 하면 정말로 구름같이 올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소화할 수 없지. 하루에 네 집 밖에 못 하는데요. 지금도 어려운데요. 우리가 그렇게 안 하는 거지요. 정말로 복이 있는 자손들 집안들은 와요. 이건 큰 복을 받으니까. 조상님 70명을 네 번해서 하늘로 올렸다고 합시다. 네 번 하면 거의 가요. 이치상으로도 그렇고 부처님 약속에 그렇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 하늘에 누가 갑니까? 못 갑니다.
이렇게 살아가지고는 하늘에 못 갑니다. 세상 사람들, 저렇게 업을 지으면 못가는 거예요. 하늘 가려면 오계십선을 지켜야 되요. 좋은 일 해야 되요. 그런데 그렇게 사는 분들이 적더라고. 100명을 보면 하나 있을까 말까 하더라고. 그것도 아래 하늘인 6하늘. 그런데 부처님의 타력으로 해서 하늘을 모두 올려 주잖아요. 넣어 주잖아요. 업장을 쏴~악 씻어주고 올려줘요.
그러면 다른 사람이, 다른 절에서 현지사 흉내 내어가지고 그러는데 그러면 안 되어요. 큰 죄를 지어요. 죄를 지어서 지옥에 있는데, 어떻게 천도재 해가지고 하늘로 올려줘? 이것은 이법에 맞지 않아요. 분명히 맞지 않아요.
그러나 붓다는 그 이법 자체예요. 우주 이법과 계합이 되어버린 분이어요. 이걸 법신불(法身佛)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우주의 진리를 구현하는 분이어요. 구현자예요. 성취자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저 사람으로부터 공양을 받았다 해서, 저 사람이 무슨 업을 지어가지고 저 병을 얻었는데 저 병을 어느 정도 낫게 해줄까, 완전히 낫게 해줄까 하는 것은 과거생에 지은 그 업이 얼마만큼 중한 죄를 지었느냐, 가벼운 죄를 지었느냐, 얼마만큼 지었느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부처님 공양을 올렸어도 내 병은 치유가 안 되더라 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건 전생에, 과거생에 지은 업이 너무 지중하기 때문에 그래요. 또 천도재하고, 또 공양 올리고, 또 공양 올리고 해서 다섯 여섯 일곱 번이면 대부분 큰 죄업도 씻어지고, 병도 낫고 그럽니다. 그렇게 되더라고. 한 5년 동안 10년 동안 해보니까 거의 엄청난 효과를 봐요. 그래서 첫 번만 해도 무주고혼은 전부 명부에 넣어줘요. 문제는 무주고혼을 정리해야 되어요.
그 묘를 봅시다. 무주고혼이 명부로 가버렸으니까 거기에 없어요. 무주고혼으로 있을 때에는 가끔 가요. 자기 몸뚱이한테 들어가요. 여기를 집으로 알고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영혼체가 의지하고 있는 묘를 갖다가 파묘(破墓)하면 큰일 나요. 그러나 이건 이미 명부에 넣어버렸기 때문에 문제가 없어요. 여러분, 한번만 하지 마시고요. 한번 하게 되면 무주고혼은 가는 데가 보니까 대부분 중지옥이어요.
그동안 지은 업이 있어서요. 중지옥은 그 벌이 상상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조상님을 갖다가 진정으로 효하고, 사랑하고 그런다면 두 번 세 번은 해야 돼. 또 두 번 세 번 했는데, 한번만 더하면 사람으로나 하늘로 모시는데요. 그래서 모두 네 번을 하게 됩니다. 또 ‘하품의 하’는 하늘의 노동자예요. 그렇기 때문에 한 품만 더 올려주면 또 되어요. 다섯 번 여섯 번 하는 분도 있어요. 그건 좋지요.
질문②
스님 뵙게 되어서 너무 반갑습니다. 저는 31살 된 딸이 있는데, 몇 년 동안 시험을 보고 있습니다. 실기에는 합격되었는데 면접에서 떨어집니다. 본인 스스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이번 5월14일 날 재도전을 하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합격할 수 있는지 스님께서 좋은 방법이 있으시면 가리켜 주십시오.
(큰스님) : 스님이 법문을 이렇게 해드렸데. 답이 다 나왔는데..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습니다.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어요. 자꾸 시험에 떨어진다? 혹은 필기시험은 합격했는데 면접시험에 떨어진다? 다 원인이 있지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결국 그만큼 세간의 복이 적어. 관운 복이. 그렇기 때문에 타력으로 가야 돼. 타력이란 말은 부처님의 위신력, 가피입니다. 그러려면 천도재라든지, 공양이라든지, 불사에 동참한다든지, 착하게 살아야 돼. 그러면서 발원을 해야 돼. 그래야 됩니다.
마지막으로 또 한 분 질문 받겠습니다.
질문③
저는 조계종 쪽에 다니면서 천도재를 수없이 많이 했습니다. 스님께서 천도재를 말씀하셨는데, 저가 지금까지 이해를 못한 부분이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다른데서는 천도가 안 된다는 식으로 말씀하시고, 왜 영산불교에서 지내는 천도재만이 천도가 되는지요? 그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큰스님) : 거기에 대해서 말씀드릴게요. 좋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스님이 영산불교를 이끌고 가는 스님이기 때문에 영상불교를 칭찬 안합니다. 그래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한테 물을게요. 어느 절 천도재가, 어느 절 천도재가 조상님 70명을 써내는데 그 70명 각각의 조상님이 현재 어디에 계신가를 밝히는, 밝히고 천도재하는 그런 절을 봤습니까? 들었습니까? 지옥에 있다면 데려와야 되고, 짐승 몸을 받았다면 그 짐승 몸에서 끄집어내 와야 되고, 무주고혼으로 있으면서 도망치면 잡아와야 되어요.
그렇게 잡아오고, 데려오고 할 수 있는 실력을 지닌 그런 절, 그런 스님이 있었답디까? 이것은 없어요. 이건 단연코 이야기 합니다. 역사이후로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주관하시기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여기는 붓다회상이어요.
이제 앞으로 붓다회상에 대해서 당당하게 이야기할 거예요. 많은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지금은 우리가 텃세에 밀려가지고, 텃세의 그 힘에 할 말을 않고 조용히 가는 거예요. 이제 당당하게 진리를, 법을 펼 거예요. 할 말을 하는 거예요. 보면 알아요. 이건 수 십 번을 해도 하나도 안 된 것을 알아요. 밥 한끼 준 것 뿐이에요. 그것도 무주고혼한테 밥 한끼 준 것 뿐인 거예요.
천도재를 감히 어떻게 해요? 못하는 거예요. 못하면서 영산불교에서 천도재를 하기 때문에 그냥 여기서도 저기서도 지금 천도재를 하는데, 이건 중들이 큰 업을 짓는 거예요. 불러다 놓고 천도 못시켜 주면 그 영가들이 가지 않습니다. 책임지라고 하면서 안 가요. 그러면 그 절은 귀신 소굴이 되어버리는 거예요. 귀신소굴이 되는 거예요. 음침해지고, 음산해요. 현지사 와보세요. 얼마나 깨끗한지. 싱그럽고, 청정 청정입니다.
초파일 대성황을 이루도록 도와주십시오. 합장하시고, 부처님 칭명합니다.
나무 영산불멸 학수쌍존 시아본사 구원실성 석가모니불...
천상천하무여불 시방세계역무비 세간소유아진견 일체무유여불자
고아일심귀명정례
오늘 법회에 일본에서 오셨습니다. 일본의 우리 신도분들이. 저기 일본에서 오신 분 일어서서 박수 받으셔요. 일본국에서 까지 오셨습니다. 그리고 스님이 권합니다. 이〈비교종교학〉은《21세기 붓다의 메시지 Ⅰ․Ⅱ․Ⅲ》권외에 권해드립니다. 여러분, 이 책은 가보(家寶)입니다. 꼭 한권씩 구입해 두시고, 가끔 읽어보십시오. 그래서 부처님에 대한 믿음을, 정법에 대한 믿음을 더욱 키우십시오. 아셨지요? 終
2011년 12월 7일 수요일
[영혼체 윤회론]불교가 망한 원인 무아의 잘못된 해석
영혼체 윤회론을 선언하며!
나 자재만현은 비아非我인 영혼체가 윤회의 주체임을 선언합니다!지난 2000여년 간 왜곡되어온 무아설無我設을 바로 잡고, 윤회의 주체가 없어도 윤회할 수 있다는 무아윤회설無我輪廻設을 완전한 사설邪設로 단정하고 영원히 폐기 처분합니다.
영산불교 정법의 이름으로 유아윤회설有我輪廻設 - 영혼체 윤회론을 공식적으로 불교의 교설로선언합니다.우리 영혼체는 인간의 실체로서 원래 본체계의 존재입니다. <<열반경>>에서 말하는 상락아정常樂我靜의 아我가 바로 청정무구한 영혼체입니다.
그러나 무량 세월을 지내오는 동안 분별이 일어나고 욕심이 생기고죄업을 지어 우리 영혼체에는 업장 등 비본질적인 것들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습니다. 이렇게 오염된 상태의 영혼체를 우리는 비아非我라고합니다.
그래서 유아윤회설은 성격상으로는 비아윤회설이 되고 내용적으로는 영혼체 윤회론이 됩니다.우리 불교가 고향인 인도에서도 사라지고 전세계로활발히 뻗어나가지 못한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이 잘못 해석되어온 무아설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도 무아설이 잘못 해석되었다고 하시면서 이것이 불교가 망한원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부처님의 뜻을 받들어 잘못해석된 무아설을 바로잡고 '영혼체 윤회설을선언하여 정법의 새 시대를 열어가고자 합니다.
무아설이 바로서야 부처님의 실존도, 윤회 . 해탈계의 존재도 그 근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무아설의 바른 해석은 정법불교의 출발점입니다.무아설에대한 새로운 교설로 인하여, 그 동안 잘못해석된 무아설을 너무나 오랜 기간 동안 인정해온 기존 불교계는 물론 학계, 종교계 전반에 걸쳐 만만찮은파장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정법의 산고産苦를 위한 아픔으로 감수해야 할 부분입니다. 이를계기로 불교 정법으로의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을 하루 빨리 마무리 지어야 할 것입니다.이에 불자 여러분의 이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이 책자을 발간하오니, 우리 불교계 모두가 '잘못해석된 무아설의 포로'에서 벗어나, 깨어있는 불교도로서 정법의 길에 적극 동참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끝으로 바쁜 가운데서도 이 책을 집필하느라 노고를아끼지 않은 혜운 법사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불자 여러분에게 부처님의 가피가 늘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불기 2554년 사월 초파일
영산불교 현지사
자재 만현
책을 펴내며
참으로 길고긴 어둠의 터널이었습니다.'무아설의왜곡'이 정법의 햇빛을 받기까지, 몇 십 년도 몇 백 년도 아니고무려2000여 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그 부끄러움의 긴 세월 동안 내로라하는 학자, 선지식, 큰스님들이 많이도오셨다 가셨지만, 그 지혜의빛이 어둠을 밝히기에는 역부족이었나 봅니다. 부처님의 법통 태자와 문수보살 법왕자의 인연을 위해 남겨두었던 것일까요?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이 땅 대한민국에서 사랑하는 두 분 제자 가섭존자 광명 만덕 큰스님과 아난존자 자재 만현 큰스님을 보내주시어 정법의 새 시대를 열게 해주신 거룩하신 우리 교주 불세존께 오체투지로감사와 예경을 올리옵니다.
불교의 위대한 점은 인연법과 3법인, 4성제를 토대로 업- 윤회 - 해탈로 이어지는 인간 구원에 대한 정연한 진리체계와 실천증득에 있습니다. 여기에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부처님의 우주적 구원력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업-윤회-해탈의 주인공으로중생이있으며, 이 중생의 업장을소멸시켜주는 부처님의 우주적 구원력이라는 대자비가 실질적인 알맹이를 이루고있습니다.그런데 잘못 해석되어온 '왜곡된 무아설'은 중생의실체도 부처님의 존재도 부정하는 논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불교의 두 주체인 핵심 알맹이를 모두 빼고껍데기만 남겨놓은 꼴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위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인 우리 불교가전 세계로 활발하게 뻗어나가지 못하고 탄생지인 인도에서도 사라진 채 아시아 일원에서 생명을 유지하고있는 정도로 쇠잔해 있습니다.우주접계의 절반이 훨씬 넘는 영역을 차지하면서 우주 정법계를 이루고 있는 불교의 법계 위상을 감안할때 이것은 정말 초라하기 그지없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알맹이가 빠진 껍데기 불교만 가지고도 이만큼이라도 살아남았다는 것은 불교의 위대성을 반증해주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그러므로 불교가 본래의 진면목을 보여주기만 한다면전 세계로 확산되리라는 것은 긴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이제 이 역사적인 일을 시작하려고 법통 태자이신가섭존자 광명만덕 큰스님과 문수보살 법왕자이신 아난존자 자재 만현 큰스님께서 신불교인 영산불교를 개창하고 정법의 새 시대를 열어가고자 하는 것입니다.무아설은 원래 부처님께서 중생들의'나'에 대한 집착을 끊어주기 위해 늙고 병들어 죽어버리는 '현상계의 나'가 없다고한 것인데, 이를 잘못 확장하여본체계의 실체인 영혼체마저 없는 것으로왜곡하여지금까지 불교의 올바른 교설로 행세해왔습니다.
이제 영산불교는 부처님의 뜻을 받들고 이 시대 걸출하신 대선지식인 두 분 큰스님의 가르침을 받아 왜곡된 무아설과 이를 토대로 한 '무아윤회설'을 영원히불교 교설에서 없애는 위대한 폐기를 단행하고, 올바른 무아설의 해석을 통해'영혼체 윤회론'을 정립하여신불교의 정법시대를 열어가고자 합니다.
위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인 불교의 진면목을 세계에 널리 보여주고자 합니다.그 오랜 세월 동안 '왜곡된 무아설'이라는 깊은 늪에빠져있던 우리 불교계와 전 세계 불자들이 하루 빨리정법의 손길을 잡고 늪에서빠져나와 우리 불교를 살리고정법을 널리 펼치는데 함께 참여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에 영산불교에서는 우리 불교계와 불자님들이 무아설을 바로이해하고 새로운 '영혼체 윤회론'을 받아들이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그 동안 자재 만현 큰스님의 법설을 중심으로 이 책을펴네게 되었습니다.이 책을 펴 낼 수 있도록 가르침을 주시고 격래해주신 큰스님께 오체투지로 감사의 예경을 올립니다.
행여 큰스님의 가르침을 잘못 이해하고 쓴 부분이 있다면 모두 필자의 짧은 지식과 부족함 때문이오니 독자여러분의 넓은 이해가 있으시기 바랍니다.그리고 이 기회에 불교에 관한 글을 쓰시거나 강의하시는 학자님께 특별히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우리 부처님은 우주의 대성자이시고 인류의 대스승이십니다.
그런데 필자가 글을 읽다보면 자주 "석가가....."라는 문구를 접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안쓰러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불교도이건 아니건 대성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어 존칭으로 표현해주었으면 참고맙겠다는 생각이 듭니다.아무쪼록 이 책이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널리 알리고 독자 여러분이 정법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여러분에게 부처님의 가피가 항상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불기 2554년
사월 초파일
혜 운 합장
불세존 말씀
무아가 잘못 해석되었느니라.
자재 만현이 맞느니라.
자재 만현은 법왕자로서 이것을 바로 잡아야하느니라.
이것이 불교가 망한 원인이니라.
무아無我는 잘못 해석한 것이니라.
나는 무아無我를 이야기했지만, 저 세상이 없다고 아니했다.
살아있는 것, 언젠가 죽는다.
내것이 아닌 것을 내 것이라 생각하는 것을 말했다.
하늘에 태어나거나 인간으로 오길 말했노라.
태어나는 것도 고통이고, 죽는 것도 고통이다.
육도윤회에 돌면서 고생하는 것을끊어주기 위해
무아無我를 이야기 했노라.
'있다 없다'를 확실하게알면서 '있다 없다'를 초월한 자리,
더 나아가서 대적정삼매에 들어 무아無我의 환희는
붓다의 경계이니라.
여기까지 공부 못하고 법을 모독 능멸하여
중생을 오도한 죄는무간지옥에 가느니라.
붓다와 법은 영원히 멸도하지 않느니라.
왜곡되고 왜소화된
세계 불교의 실상을 안타까워하며
무량겁 전에 우주 법계 최초로 불과를 이루시고, 다시 2600여 년 전에 사바세계에 몸 받아오셔서 위없는가르침을 주시고 대열반에 드신 후, 무아 속 절대계에빛의 인격체로 여여히 살아계신 거룩하신 우리 교주불세존께 백천만 번의 오체투지로 예경 드리옵니다.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우주적 진리의 불교가 2600여 년의 오랜 세월을 거쳐 오면서 너무도 많이 왜곡되고 왜소화 되어 위대한 불교 본래의 진면목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그래서 지금은 이 왜곡된 우리 불교의 실상을 반성적 차원에서 냉철하게 파악하고 왜곡의 원인을 정확히밝혀, 진정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토대로 새로운 불교의 방향을 정립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위대한 우리 불교의 진면목을 드러내어 정법을 세상에 널리 알려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불교는환골탈태해야 합니다.그러기 위해선 먼저 우리 불교도들이 깨어나야 합니다. 긴긴 잠에서 깨어나, 훌훌 털고 일어나야 합니다.눈을 똑바로 뜨고 귀를 크게 벌리고 마음을 활짝 열고진리의 말씀 - 정법의 사자후를 드러야 합니다.
한구절 진리의 게송을 듣기 위해 흉악한 나찰에게 한 몸을 기꺼이 던지는 설산동자와 같이 진리를 갈구하는간절한 마음으로 귀 기울여야 합니다.수천 년 간 많은 훌륭한 학자들이 해설하고 주석을해놓은, 그래서 불교의 정설로 굳어진 교설조차도 때로는 과감하게 버릴 줄 아는 용기와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이제까지 나의 분신처럼 가지고 있던 불교에 대한 지식도 버릴 줄 아는 아픔도 감수해야 합니다.지금 세계불교는 남방불교, 북방불교, 티베트불교라는 세 갈래의 큰 흐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중 어느 불교도 부처님의 법통을 이어받지 못하고, 왜곡되거나 왜소화되어 있습니다. 정법불교의 위대한 면면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불교의 실상을 아주 포괄적으로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불자로서 현행 불교를 비판할 목적은 추호도 없음을 미리 밝혀 드립니다.
오로지 우리 불교의 앞날을 위해서라는 것이 유일한 이유입니다.고대 인도의 마가다국 아쇼카왕 때 스리랑카로 전해져 꽃을 피운 동남아시아 중심의 남방 상좌부불교는스스로의 틀에 갇혀 감히 그 틀을 깨고 밖으로 나올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계율을 엄격히 지키는것은 높이 사줄만합니다. 위빠사나 수행법도 불교 경론에 있는 수행법입니다.그러나 그 수행법에만 집착하다 보니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는, 보다 수승한 수행법을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라한이 수행 목표이고 해탈신을 갖는 보살이나불신을 두는 붓다의 경지는 감히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어마어마한 위신력과 심원한 적멸의 해탈세계를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방불교는 이런 한계가 있지만 그래도 크게 왜곡되지 않은 것만이라도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북방으로 전해진 중국불교와 한국불교는 소위 선불교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으나, 태동 초기부터외도사상과 혼합되어 불교의 본질에서 많이 벗어나 있습니다.
심즉시불이니 견성성불이니 하면서 그럴듯한 교설을 내세우고 있지만, 부처님의 참 경계를 이해하지못해 결과적으로 불교를 왜소화시키고 부처님을 격하시키고 있습니다.한국의 간화선도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화두를 들려면 부처님의 성호가 가장 좋은 화두가 되어 밤낮으로 불러야지, 왜 경전에도 없는 조사 스님의 말씀을 화두로 들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큰 성과도 없고 본격적인 수행의 시작단계인 견성,즉 공을 깨치는 수준에 이르는 것이 고작입니다. 그것을 위해 고생스럽게 오랜 기간 수행을 해야 하는지 이제 한번쯤은 되돌아볼 시점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그래도 최후의 보루로서 티베트불교가 있지 않느냐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랬으면 참 좋겠습니다.
티베트불교는 수행체계가 잘 갖추어져 있긴합니다. 그러나 수행의 어는 단계에서 하고 있는, 힌두교 요가 수행이 가미된 밀교 수행법은 정법이 아닙니다. 또한 티베트불교의 지도자는 신통을 사용하여 환생을 함으로써 정법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티베트불교를 위한다고 하지만 정법에 반하는 것은 하면 안 됩니다. 티베트불교의 우수성으로 주장하고 있는 즉신성불의 교설은 불자들의 안목을 흐리게 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불신보신불이 얼마나 거룩하고 위대하고 차원 높은 존재인지도 모른 채, 중음계에서 우주 본성의 빛인 정광명을 받은 의생신을 보신불이라 여기는 어처구니없는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세계 불교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몇 가지로 요약해서 정리해봅니다.
1. 세계 불교는 부처님의 실존과 위신력을 믿지 않는 부처님 없는 불교가 되어버렸습니다.
2. 세계 불교는 인간의 실체인 영혼체을 부정하고 윤회주체마저 없다고 하는 주인공 없는 불교가 되어버렸습니다.
3. 우리 불교는 붓다가 되고 보살이 되는 완전한 생사해탈을 이루는 수행법이 없는 불교가 되어버렸습니다.
4. 우리 불교는 해탈법위와 해탈의 적멸세계에 대해제대로 알려주지 못하는 차원 낮은 불교가 되어버렸습니다.
불교는 우주 법계의 법왕이신 부처님을 교주로 모시고 있으며 완벽한 교리체계와 구원사상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신도 수로 보면 기독교 천주교 포함, 이슬람교, 힌두교 다음으로 겨우 네 번째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신도 수가 종교 평가의절대적인 지표가 되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이것은 오늘날 불교의 위상을 보여주는 단적인 하나의 지표가 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그리고 불교의 고향 인도에서는 불교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불교가 세계로 뻗어나가 널리 정착되지 못하고, 아시아 일원에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을 정도로 쇠퇴했습니다.불교 교리의 위대함과 우주 법계영역의 절반 이상을차지하고 있는 불교의 위상을 감안한다면 이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성적표인 것입니다.
그럼 불교가 왜 이런모습이 되었을까요? 이제 그 이유를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
무아설의 왜곡을 통탄한다
불교 쇠퇴의 주범
불교가 태어난 고향인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졌다는 것은 우리 불자들이 깊이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아야 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는 불교가 세계로 널리 뻗어 나가지 못한 원인을 제공해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와 지금의 환경이 많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지금 세계 어느 지역, 어느 나라에서나 인도에서와 유사한 이유로 불교가 사라지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아무리 환경이 다르고 시대가 바뀌어도 불교가 사라지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필경 불교 자체에서 찾아야 할 일이지 외적 환경과 여건을 구실 삼아 면책 받을 수 있는 성질이 결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진 원인에 대하여 학자들은 대체적으로 세 가지 정도의 이유를 듭니다.
첫째는 이슬람 세력이 침공하여 큰 사원들을 파괴하고 많은 스님들을 학살함으로써 교단을 붕괴시켰다는 것이고,
둘째는 불교가 밀교화 되면서 힌두교에 흡수되었다는 것이며,
셋째는 불교의 심원한 철학적 교리때문에 일반 민중에게 뿌리내리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여기에 더하여 불교 내부의 부패와 분파주의 등을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불교는 힌두교의 막강한 영향하에서도 180년 이상 쌍벽을 이루면서, 인도의 사상과 문화의 한 축으로서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위에서 본 이유들만으로 불교가 인도에서 짧은 기간 내 완전히 사라져 버린 원인을 밝히기에는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불교가 처해있는 것과 대등한 조건 속에서, 어쩌면 불교보다 더욱 심한 탄압을 받았다고 생각되는 힌두교나 자이나교가 살아남은 것만 보아도 뭔가 보다 본질적인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제 그 이유를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 대개 어떤 종교가 얼마나 생명을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그종교가 사회와 민중 속에 얼마나 뿌리를 깊이 내릴 수 있는가에 죄우된다고 생각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종교는 사회적으로 유익한 역할을 담당하면서, 그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본질적 가치가 민중들에게 호소력 있게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당시 불교가 과연 불교로서의 고유한 본질적 가치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민중들을 향해, 사회를 향해 제시해 줄 수 있었느냐 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그러나 당시 그 누구도 이러한 불교의 가치를 완벽히 이해하고, 대외적으로 매력적인 것으로 보이도록 설명해주지 못했던 것입니다.
종교의 사회적 역할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불교가 민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알맹이인 '고유한 본질적 가치'는 불교가 튼튼히 뿌리내리기 위한 일차적이고도 근원적인 요소가 된다고 하겠습니다.
그럼 불교의 종교로서의 고유한 본질적 가치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인연법과 사성제와 삼법인을 토대로 '업-윤회-해탈과 부처님의 구원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부처님의 구원력을 제외한 '업-윤회-해탈사상'은 일찍부터 힌두전통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교는 힌두교가 미처 알지 못하는 훨씬 정교하고 깊은 차원에서 '업과 윤회'의 진실을 밝혀주고 '적멸의 해탈세계'를 그려주며, 부처님의 업장소멸이라는 '우주적 구원력'을 제시해줄 수 있는 수승한 교리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얼마든지 차원 높게 힌두교와의 차별을 시도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질적인 차별화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논리입니다.
그런데 불교는 '고유한 본질적 가치'를 제시해주기는커녕 오히려 불교의 핵심적 교리인 '무아설'을 왜곡하여 힌두교의 아트만이론과의 잘못된 차별화를 시도하면서 '업-윤회-해탈'의 주인공은 없다고 떠들고 다님으로써 허무적 성격의 종교라는 인식을 확산시켰습니다. 영혼체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우겼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위대하신 실체를 몰라 구원사상도 제대로 설명해 주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왜곡된무아설의 실체'입니다.
아무리 윤회하는 삶이 고통이라고 외쳐봐야 고통 받는 '나의 실체'와 '나의 영혼체'가 없는데 미래의 그 고통이 얼마나 절실하게 와 닿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우리 인간은 모두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영원한 즐거움을 누리는 해탈의 주인공이없다고 하는데, 나라는 '해탈의 주체'가 없는데 그런 불교를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고 깊이 믿을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정말 구원을 해주시는 것인지, 어떻게 구원을 해주시는지도 모르는데, 누구를 믿고 불교를 믿는단 말입니까? 그리고 이런 소재는 힌두교를 비롯한 외도들에게 얼마나 좋은 공격거리가 되었겠습니까?
무려 2000여 년 간이나 힌두교와 외도들에게 발목이 잡히고 스스로 잘못된 논리에도 묶여 갈팡질팡하고 있는데 어떻게 불교가 전 세계에 퍼져나가기를 기대할 수 있단 말입니까?
불교의 위대한 점은 인연법과 3법인, 4성제를 토대로 업-윤회-해탈로 이어지는 인간 구원에 대한 정연한 진리체계와 실천증득에 있으며, 여기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부처님의 우주적 구원력입니다.
다시말하면 업-윤회-해탈의 주인공인 중생이 있고, 이 중생의 업장을 소멸시켜주는 부처님의 우주적 구원력이라는 대자비가 실질적인 알맹이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잘못 해석되어온 '왜곡된 무아설'은 중생의 실체도 부처님의 존재도 부정하는 논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불교의 두 주체인 알맹이를 모두 빼고 껍데기 만 남겨놓은 꼴이 되었습니다.
이런 껍데기 불교, 반쪽도 안 되는 낙제점짜리 불교를 가지고도 그래도 아시아에서 이 정도의 교세를 유지하고있는 것만 해도 너무아 고마운 일입니다.
달리 생각하면 이것은 불교의 위대성을 반증해주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너무나, 너무나 위대하신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불교가 본래의 진면목을 보여주기만 한다면 전 세계로 확산되리라는 것은 긴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필자는 이 모든 엄청난 사태의 주범을 '무아설의 왜곡'으로 보고 싶습니다. '무아설의 왜곡'이 밉습니다. 그냥 밉습니다. 한 방 크게 먹여주고 싶습니다. 아니 때려누여서 실컷 두들겨 패주고 싶습니다. 그래도 분이 안 풀립니다.
그래도 살생은 하면 안 되니까 죽이지는 못하고 이'무아설의 왜곡'을 열시왕의 심판을 받도록 만들어 세세생생 극무간지옥으로 보내버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이 주범 '무아설의 왜곡'의 동조자가 여기저기 도처에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이 많이 있습니다.
부처님 도와주시옵소서! 이 많은 선량한 동조자들을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부처님! 이렇게 사정하면 되올는지요?
전 세계 고명하신 불교학자 여러분! 제발 과거의 잘못된 논리를 반성하시고 더 이상 '무아설의 왜곡'의 동조자가 되는 주장을 펴지 마시기를 간절히 애원합니다.
전 세계 학덕이 높으신 큰스님, 선지식들이시여! 고요한 선정에 들어 부처님의 진실한 가르침을 되새겨보면서 "무아설의 왜곡'의 동조자가 되지 마시고 중생들에게 바른 가르침을 펼쳐주시옵소서!
사랑하고 존경하는 전 세계 사부대중 여러분! 오랜세월을 불자로 살아오면서 나도 모르게 '왜곡된 무아설의 포로'가 되었다면 하루 속히 깨어있는 불자가 되어 정법에 귀를 기울여주소서!
정법을 외면하고 정법이 아닌 법을 펼치는 것는 큰 죄업을 짓는 일입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절제된 표현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세계 불교사의 새로운 장을 열며
고맙게도, 너무나 고맙게도 거룩하신 우리 교주 불세존께서는 아끼고 사랑하는 두 제자, 가섭존자 광명만덕 큰스님과 아난존자 자재 만현 큰스님을 이 땅 대한민국에 내려 보내시어 '영산불교'라는 신불교의 정법으로 무아설의 바른 교의를 설하여 정법의 새 시대를 열어가게 해주셨습니다.
부처님! 오체투지 감사드리옵니다.!
'무아설의 왜곡'으로 2000여 년 간 우리 불교계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해왔던 '무아와 윤회 주체' 문제에 대하여 영산불교 현지사의 자재 만현 큰스님께서는 BBS 불교방송 TV법회2010. 4 를 통해 "비아인 영혼체가 윤회의 주체"라고 쾌도난마의 사자후를 해주셨습니다.
물론 큰스님께서는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Ⅰ. Ⅱ>>를통해 이미 부처님의 실존과 영혼체영체 윤회론을 세계 불교계에 선언한 바 있습니다. 이번 큰스님의 법설은, 천동설이 지동설로 코페르니쿠스적 대반전을 하여 진리가 세상에 밝혀지고 인류문명사의 새로운 한 페이지를 장식했듯, 종교상의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을 알리는 역사적 대선언입니다.
아마 이 선언은 세계 불교계나 불교 교학에 엄청난 회오리를 몰고 올 것이 틀림없습니다. 무아와 윤회 주체의 논쟁에 관한 수많은 논서가 한낱 휴지조각이 될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영산불교는 우리 불교계가 이 문제에 대해 정말로 대성적인 차원에서 대응해 주시기를 진심으로바랍니다. "윤회 주체는 비아인 영혼체"라는이 경천동지할 선언으로 오랜 기간 '왜곡된 무아설'을 주장하고 믿어왔던 기존의 학계나 종교계, 특히 불교계에 큰 파장이 오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정법의산고를 위해 겪어야 할 아픔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로지 우리 불교계의 앞날을 생각하고,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 세상에 널리 펼칠 수 있는가 하는 관점에서 생각하고 처신해야 할 것입니다.
인도의 대논객인 용수도, 무착이나 세친도 이 무아설에 대해 올바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무아설이나 영체론은 최소한 상품보살 이상이 되어야 그 실체를 어느 정도 알 수 있고, 붓다의 수준에 가서야 완벽하게 체득할 수 있는 심오한 차원의 교설입니다. 따라서 이론 연구를 중심으로 하는 불교학자들이 접근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곡된 무아설이 2000여 년 간이나 고쳐지지 않고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 됩니다. 그렇더라도 이 '무아설의 왜곡'은 우리 불교계의 한 치부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자재 만현 큰스님이라는 걸출한 선지식이 탄생하셔서 부처님을 친견하고 가르침을 받으시면서 일생일대의 희원을 이루시고, 우리 불교가 많이도 왜곡되었다는 사실을 이론적, 체험적으로 알게되었습니다.
그래서 영산불교라는 신불교 교단을 창립하여 영산당시의 불교를 복원하고 왜곡된 불교를 바로잡아 정법의 새 시대를 열어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교왜곡의 가장 핵심주제를 '무아설의 왜곡'으로 보고 전세계 불교계를 향해 정법의 사자후를 하신 것입니다.
이는 분명 세계 종교사에 큰 획을 긋는 종교상의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이 될 것이고 세계 불교사에 새로운 지평을 여는 역사적 대선언이 될 것입니다.
무아설이 바로 서야 부처님의 실존론이 자연스럽게도출되고, 실체적인 삼신설을 이해함으로써 부처님에대한 깊은 믿음을 갖게 됩니다.
이는 부처님의 가피를 찾는 칭명염불로 연결되어 붓다회상을 만나게 되고, 그러면 생사해탈의 지름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붓다회상이 지금 한국땅, 춘천 현지사에서 열리고 있다는 엄청난 소식을 아울러 전해드립니다. 믿고 안 믿고는 모두 인연에 맡기겠습니다.
무아와 윤회 주체 문제의 불교사적 개관
초기불교의 무아론 개관
초기불교는 부처님 재세 시와 불멸 후 100년경까지의 불교를 말합니다. 근본불교 또는 원시불교라고도합니다.
초기불교시대의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장 충실하게 전승하고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은 <<아함경>>입니다. <<아함경>>은 팔리어로 된 <<5니까야>>와 한역 <<4아함경>>이 있습니다.이 팔리어 <<5니까야>>는 한역 <<아함경>>의 내용과 유사하지만 한역 <<아함경>>에 없는 소부<<쿳다까 니까야>>가 있어 <<법구경>>이나 부처님 전생을 다룬 본생담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아함경>>에는 불교의 4성제, 3법인또는 4법인, 8정도, 12연기, 5온, 12처 등 불교의 기본 교리가 담겨져 있습니다. 3법인 관련 내용도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본 주제와 관련이 있는 경전내용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물론 팔리어 <<니까야>>에도 한역 <<아함경>>과 유사한 내용이 많이 나옵니다.
우선 무아의 내용을 포함한 3법인4법인을 말씀하신 경전의 내용을 보겠습니다.
네 가지 진리란 어떤 것이냐? 모든 존재와 현상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니 이것이 첫 번째 근본 진리이다. 모든 존재와 현상은 괴롭다는 것이니 이것이 두번째 근본 진리이다. 모든 존재와 현상에는 실체로서의 '나'가 없다는 것이니 이것이 세 번째 근본 진리이다. 번뇌가 다 멸하면 열반이라는 것이니 이것이 네번째 근본 진리이다.
여기서는 우리에게 친숙한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 열반적정의 네 가지 진리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모든 존재와 현상에는 실체로서의'나'가 없다는 것"이 바로 무아의 개념인데 번역에 따라 약간씩 다르게 표현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글대장경>>에는 "일체의 법은 나라고 할 만한것이 없다"로 되어 있는데 내용상의 큰 차이는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모든 존재와 현상'이나 '일체의 법'의 개념을 가지고 현상계의 존재를 넘어 존체계의 '나'까지 부정하는 근거로 삼을 수는 없다고 봅니다.
이는 첫 번째부터 세 번째까지의 진리는 무상 . 고 . 무아라는 현상계의 속성을, 그리고 네 번째의 '열반적정'은 현상계로 넘어선 본체계의 속성을 나타내는 것이란 점을 볼 때, 여기서의 무아 개념은 현상계에 한정하여 보는 것이 자연스런 흐름이라 하겠습니다.
이어서 경의 내용을 몇 가지 더 보도록 하겠습니다. <<잡아함경/염리경1권>>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색은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요. 괴로움은 곧 나가 아니며 나가 아니면 또한 내 것도 아니다. 이와 같이 수 . 상 . 행 . 식도 또한 무상하다. 이렇게 관찰하는 것을 진실한 바른 관찰이라 하느니라.
또 <<잡아함경무상경 8권>>에는 모든 것은 무상하다. 모든 것은 괴롭다. 모든 것은 공하다.
모든 것은 나가 아니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잡아함경비아경2권>>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나옵니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색은나가 아니다. 만일 색이 나라면 응당 색에서 병이나 괴로움이 생기지 않아야 하며, 또한 색에 대하여 '이렇게 되었으면....' 한다든가,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지 않아야 할 것이다. 색에는 '나'가 없기 때문에 색에는 병이 있고 괴로움이 생기는 것이며, 또한 색에 대하여 '이렇게 되었으면...' 한다든가,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것이다. 수 . 상 . 행 . 식도 이와 같으니라."
"비구들아,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색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비구들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아, 만일 무상하다면 그것은 괴로운 것인가?"
"그것은 괴로운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곳은 변하고 바
뀌는 법이니라."
마갈다국 사람들이 부처님으로부터 색 . 수 . 상 .행 . 식의 오온이 모두 무상하다는 가르침을 받고나서, "그렇다면 누가 활동하고 누가 고락을 받을 것인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부처님께서 이를 아시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중아함경빈비사라왕영불경 11권>>에 나와 있는 내용입니다.
어리석은 범부는 가르침을 들은 것이 없어 '나'를'나'라고 보아 '나'에 집착한다.
그러나 필경 '나'도 없고 '내 것'도 없나니, '나'를 비우고 '내 것'을 비워야 하느니라.
법이 생기면 생기고, 법이 멸하면 멸하여, 다 인연을 따라 모이어 괴로움이 생기는 것이니, 만일 인연이 없으면 도는 괴로움은 곧 멸하느니라.
이상 견정에서 살펴 본 무아와 관련된 내용을 종합해보면 부처님께서는 "색 . 수 . 상 . 행 . 식의 오온으로 구성된 인간의 존재는 무상하며, '나'가 아니다. 무상한 것은 괴로운 것이고 변하는 것이다"라고 현상계의 무상 . 고 . 무아 개념을 강조하시면서 중생들의 '나'에 대한 집착을 떼어주기 위해 고심하고 계시는 흔적을 역력히 읽어볼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경전상의 맥락으로 보면 무아보다는 비아의 개념으로 많이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팔리어 경전상의 용어로 사용된 아나트만anatman이 아트만atman이라는 단어에 부정을 의미하는 접두어 an이붙어 이루어진 단어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있다. 없다'의 존재론적 의미보다는 '이다. 아니다'의 서술적 의미가 강하다고 생각되는 것도 한 이유가 됩니다. 무아
를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 원어는 niratman이라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무아냐 비아냐 하는 것보다도 경에서는 모두 '현상계의 나'를 부정하고 있다는 사실이고, '본체계의 나의 실체'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는 사실입니다<<대승열반경>>에는 본체계의 '나의 실체인 아'에 대한 내용이 많이 나옵니다. 이는 '무아설'을 '본체계의 나의 실체까지 없는 것'으로 확대하여 해석할 타당한 근거가 되지 못함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무아'를 말씀하셨다 하더라도 그것은 중생의 아상을 떼어주기 위한 방편적 차원이지 본체계의 존재인 '나의 실체'까지를 부인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는 나중에 상론하겠습니다.
초기불교의 무아설과 관련하여 일본의 히라카와 아키라는 아주 정확한 관점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초기불교의 무아설은 진아의 적극적 부정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요, 오히려 진정한 아가 아닌 것을 아라고 잘못 알아서 이에 대해 집착하는 그릇된 아견을 제거하기 위함이다."
부파불교시대
무아설의 이해와 윤회 주체
부처님께서 대열반에 드신 후 100년 쯤 지나자 그동안 통일적으로 운영 되었던 교단은 교리, 계율, 교단 운영규범 등에 관한 승려들 사이의 의견 차이로 분열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보수파인 상좌부와 진보파인 대중부로 갈라지더니 이후 분열을 거듭하여 결국 20여 부파가 생기게 됩니다. 이렇게 갈라진 각 부파들은 저마다 불교교리를 연구하여 부파들 나름대로 논서를 내놓음으로써 불교 교리가 학문적으로 발달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불멸 후 100년경부터 약 1000년 간 지속된 이 시대를 부파불교시대라고 합니다. 부파불교는 아비달마Abhidharma불교라고도 합니다. 부파불교에서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는 크게 두
가지로보입니다. 하나는 불신관의 이론을 정립하는 일이고 또 하나는 무아와 윤회 주체간의 모순을 해결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두가지 문제는 학자들이 이론적으로 정립하고 해결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과제였다고 보여집니다. 최고의 수행 경지에 가서야 알 수 있는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불교의 가장 핵심이 되는 이 두가지 문제에 대해 정확한 교설을 정립하지 못한 것은 천주의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이것은 필자가 불자이기 때문에 하는 말만은 결코아닙니다. 중생 구원을 표방하는 종교는 많이 있지만 실질적으로 중생을 고통에서 구원해줄 진리의 종교는 불교밖에 없기 때문에 그 아쉬움이 더욱 크다는 것입니다.
당시 불교의 위대한 교설을 제대로 알려주지 못했기 때문에 불교가 힌두교에 밀려 인도에서 사라졌고, 오늘 날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왜곡되고 왜소화된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무아와 윤회 주체간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하여 부파불교의 내노라하는 논사들이 온갖 있는 지식, 없는 지식을 다 동원하여 다양한 이론을 내놓습니다. 물론 이것은 힌두교의 공격에 대한 대응이기도 합니다.
부파불교가 내놓은 의견들의 방향을 보면 고정 불변하는 윤회 주체는 아니지만 심식류의 그 무엇인가가 있어서 윤회를 한다는 입장입니다.
대중부는 윤회의 주체로서 근본식사상을 주장합니다. 이 근본식은 우리의 육체와 마음 작용의 의지처가 되는 식으로 사후에도 존속하여 몸을 받는 근본이 된다는 것입니다.
상좌부는 유분식사상을 주장하여 모든 업력의 인을 간직한 식인 유분식이 윤회의 주체가 된다고 합니다.
독자부는 푸드갈라를 윤회의 주체라고 봅니다. 푸드갈라는 어원적으로는 신체, 영혼, 개인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그 본성은 오온과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어떻든 푸드갈라는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저 세계에서 이 세계로 윤회하는 생명의 주체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보겠습니다. 설일체유부는 오온상속석를 주장합니다. 오온으로 이루어진 인간 존재는 실체가 없는 무상한 것이지만, 그 궁극적인 구성 요소는 실재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모든 법은 찰나에 생하고 찰나에 멸하지만, 그 법은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실재한다고 하는 것이 바로 유부의 삼세실유설입니다. 이렇게 유부에서 삼세실유설을 주장한 것은 업과 윤회를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 설은 오온의 모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일견 무아윤회처럼 보이나 궁극적 실재인 구성요소가 있다고 보기 때문에 유아윤회적 성격이 있다고 보겠습니다.
경량부에서는 일미온이라는 미세한 의식이 죽음 이후에도 소멸되지 않고 다음 생을 이어간다고 합니다.
화지부에서는 윤회의 주체로서 궁생사온을 주장합니다. 궁생사온은 삶과 죽음을 연결해주는 궁극적인 것으로서 부단히 상속되는 인과 주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무아와 윤회 주체에 대한 여러 부파의 주장을 살펴보았습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무아윤회를 대전제로 하고 있지만 독자부의 푸드갈라 이론과 설일체유부의 오온상속설은 유아윤회적 성격이 있다고 볼수 있겠습니다. 나머지 심식류가 윤회한다고 보는 이론도 식류를 윤회의 존재로 내세우기 때문에 순수무아윤회론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부파불교가 무아설에 발목이 잡혀 윤회 주체에 대한 명확한 논리를 제시하지 못하고 푸드갈라나 심식류 같은 애매한 이론을 내세운 부분은 참으로 궁색한 발상입니다.
우리가 아무런 선입견 없이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고정적인 실체를 갖지 않는 존재가 윤회를 한다는 것은 얼른 납득이 될 수 없는 그런 논리입니다. 그러니 이런 이론들이 대외적으로 설득력을 가지기가 힘든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대승불교시대
무아와 윤회 주체에 대한 이해
대승불교는 부파불교의 학문적이고 출가자 중심 불교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대중 중심의 새로운 불교사상으로서 중생 구제자로서의 부처님에 대한 믿음과 보살사상이 강조된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기원 전후로부터 8세기까지를 대승불교시대로 보고 있습니다. 대승불교의 주요철학사상은 용수(나가르쥬나)의 중관.공사상과, 미륵보살의가르침을 받은 무착(아상가)세친(바스반두)이 정립한 유식사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승불교의 선구적 경전이라고 볼 수 있는 <<반야심경>>을 통해 공사상이 전개되었고, 용수는 <중론>에서 연기하는 모든 존재는 자성이 없기 때문에 공하다고 이론적으로 뒷받침하였습니다.
이는 부파불교설일체유부에서 '나'라는 존재의 무상성을 강조하면서도 우주 만물의 실체성을 인정한 법 유아무 사상에 대해 대승불교가 비판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 용수의 공사상은 무아 대신 존재의 개념을 초월한 공의 개념을 도입하여 무아와 윤회의 모순을 극복하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무아설의 허무주의적 성격을 더 심화시킨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대승불교의 또 다른 한 축인 유식사상은 일체만유는 식에 의한 현현에 불과하다고 보는 관점을 말합니다.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유식 이론에서는 우리의 마음을 8단계로 나누어 안 . 이 . 비 . 설 . 신의 전5식과 6식인 의식, 7식인 말나식, 8식인 아뢰야식으로 구분합니다.
그리고 이 아뢰야식이 업의 종자를 보관하는 저장소로서 장식이라고도 하며 이것이 윤회의 주체가 된다고 합니다. 이는 부파불교시대에 윤회의 주체로 상정하고 있었던 여러 심식류를 아뢰야식이라는 하나의 식으로 통일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아뢰야식 윤회 주체설은 부파불교의 심식류에 비해 그 성격이 보다 분명하고 업의 저장소도 명확히 밝혔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이론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윤회 주체라고 하기에는 식으로서의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점은 나중에 상술하겠습니다.
힌두교의 불교 교리 비판,
대응과 아트만 이론에 대해
힌구교의 불교교리 비판과 대응
(김형준. 인도 정통사상과 불교의 대립/이거룡. 윤회의 주체를 둘러싼 논쟁)참조.
불교는 태동 당시부터 사성계급제인 카스트제도와 동물희생제에 반대를 하면서 베다전통의 바라문교(고대 힌두교)에 도전하는 한편, 육사외도로 불리는 자유사상가들의 유물론,쾌락주의, 단멸론, 회의론 등을 비판 하면서 독자적인 사상과 교설로 민중 속에 파고들었습니다.
불교의 교세가 확장됨에따라 힌두사상과 대립은 불가피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힌두교의 불교에 대한 비판은 초기에는 주로 생활과 관련된 현실적인 문제로부터 출발했으나, 점차 교리 논쟁으로 확대되어 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불교와 힌두교는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교리체계를 발달시켜왔습니다.
본격적인 힌두교의 관점에서 불교 교리를 비판한 것은 부파불교의 논장이 성립된 이후인 7~8세기경 또는 그 이후라고 보고 있습니다.(김현준, 상게논문.)
힌두 전통사상의 불교에 대한 비판은 주로 미망사, 나야야, 베단타학파에서 나타났습니다(김현준,상게논문.) 힌두교와 불교간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였던 이론 논쟁의 핵심은 불교의 무아설과 힌두교의 유아석이었고, 이에 따른 윤회 주체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무르띠(T.R.V. Murti)의 견해에 따르면 인도철학사에서의 유아설과 무아설의 대립은 금세 유럽철학에서의 합리론과 경험론 사이의 갈등 이상으로 첨예한 논쟁거리였다고 합니다. (이거룡, 상게논문.)
당시 힌두교는 아트만이라는 영원불멸하는 자아를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당시의 인도불교는 어떤 경우에도 상주불멸하는 자아를 인정할 수 없다는 무아론을 내세우고 있었습니다.(물론 이무아론의 해석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렇게두 종교간의 교리가 정반대가 되다보니 논쟁은 불가피 했다고 보입니다.
특히 윤회 주체의 문제에들어가면 더욱 첨예하게 대립하게 됩니다. 힌두교에서 봤을 때 무아이면서 윤회를 한다는 불교의 교리는 참 좋은 공격거리였을 것입니다. 반면에 불교의 입장에서는 이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가 참으로 곤혹스러웠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계시기라도 했다면당장 달려가서 여쭈어 보았을 터인데 그러지도 못하고 참 답답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무아론이나 윤회론은 어는 것도 포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불교를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불교 비판론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베단타학파의 상까라는 부파불교의 오온과 찰나이론, 유식학파의 관념론적 경향과 중관학파의 허무주의를 비판했습니다. 이중 무아설과 무아윤회의 근저가 되고 있다고 보는 오온과 찰나이론에 대한 비판 내용을 잠간 살펴보겠습니다.
그는 찰나설에 대해서는 찰나멸, 찰나생은 후생존재가 발생하기 전에 선행존재가 소멸해버림으로써 인과 관계가 성립할 수 없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또한 찰나설과 설일체유부의 실재론을 묶어 순간적인 실체가 생성과 소멸을 지닌다는 주장은 자기모순이라고 비판합니다. 그리고 윤회의 실체적 주체가 없다고 하는 무아윤회에 대하여는 오온이론과 윤회를 엮어서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당신(불교도)은 영원한 윤회 속에서 오온의 집합은 끊임없이 하나에서 다른 곳으로 이어지고, 그렇기 때문에 무명 등은 그 오온 속에 머문다고 말할지모른다. 그러나 그 경우 당신은 각각의 오온이 필연적으로 같은 종류의 오온을 낳거나, 아니면 어떤 정혜진 규칙없이 같거나 다른 종류를 생성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서 전자의 경우라면 인간은 결코 신이나 동물 또는 지옥의 존재로 변할 수 없을 것이다. 꼬한 후자의 경우라면 지금 이 순간에도 코끼리나 신이 되었다 가 다시 인간으로 변할 수 있을 것이다.(김형준, 상게논문.)
영혼체를 인정하지 않는 불교에 대한 상카라의 비판은
다음과 같이 이어집니다.
불교에 따르면 몸과 마음의 합성체는 그 합성체를 욕구하고 즐거움을 경험하기 위하여 그것을 사용하는 영혼을 지니지 않는다.이와 마찬가지로열반을 욕구하는 자도 없다.
설사 어떤 자가 열반을 용구한다 해도 그가 바로 열반을 얻는 자는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열반의 순간에 그것은 완전히 다른 합성체가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만일 동일인이 그것을 욕구하고 그것을 얻는 다면 이는 영원한 영혼을 인정하는 결과가 된다.(이거룡, 상게논문.)
사실 이러한 힌두교의 비판은 충분히 예상될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비판이 없더라도 불교는 무아와 윤회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문제를 두고 부파불교시대의 각 부파는 윤회 주체 대신 여러 가지 애매한 심식류를 동원하여 이를 해결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이것은 이미앞에서 본 바와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해결이 아닌 또 하나의 모순된 논리를 개발한 것일 뿐입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인과법이라는 불교의 기본 교리를 도외시하고 우주이법을 위반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당연한 결과로 불교의 무아윤회에 대한 힌두교의 비판에 대해서도 불교는 왜곡된 무아설의 태생적 한계로 인해 정확한 논리를 내세워 설득력 있게 대등할 수 없었습니다. 부파불교의 수준 이상으로 대응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미 앞에서도 본 바와 같이 왜곡된 무아설로 인해 불교는 윤회와 해탈의 주체도 없는 허무한 종교의 성격으로 인식되어 민중 속에 재대로 뿌리를 내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당시에 불교가 무아설과 윤회 . 해탈사상, 그리고 부처님의 구원사상 등을 저왁하게 설명해주고 한 단계 높은 차원에서 힌두교와의 차별성을 강조했더라면 상황은 지금과 많이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불교가 인도에서 쇠퇴하지도 않았고, 12세기경이슬람의 침입으로 불교가 인도 땅에서사라지는 운명을 맞이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마가다국 마우리아 왕조의 아쇼카왕 시대에 불교가 인도 전역으로확산되었고 스리랑카와 미얀마, 이집트, 그리스 등의 지역까지 전파된 것을 감안하면불교는 오히려힌두교를 흡수하면서 지금쯤 유럽을 포함하여 전 세계에 전파되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이 위대한 진리의 종교가 그 진면목을 찾지 못하고 왜곡된 채 너무나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2) 힌두교의 아트만 이론에 대해
힌두교에서는 우주 만물은 법,브라흐만으로부터 나왔다고 합니다. 이 법이 개별 주체에 들어간 것이 아트만atman으로서, 아트만은 영원불멸하는 자아라고 합니다. 그리고 수행을 통해 이 아트만이 범과 하나임을 깨닫는 범아일여의 경지가 되면 영원한 즐거움을 누리는 해탈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교리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힌두교에서는 이 아트만이 윤회의 토대가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윤회의 주체가 구체적으로 무엇이고 어떻게 윤회를 하는지에대하여는 명확한 설명을 못하고 있습니다.
아트만은 범과 같으면서 개아이기도 한 것입니다. 아트만이 범우주 본성과 같다면 아트만은 행위를 할 수도 없고 업을 지울 수도 없어야 합니다. 그것은 순수의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아트만 자신은 윤회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럼 윤회를 하는 실체는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트만과 윤회 주체는 어떤 관계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베단타학파에서는 윤회하는 미세신(이거룡, 상게논문.)을 말하고 있지만, 그 미세신 역시 애매한 개념이고 그 성격에 대하여는 또 다른 설명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불교의 윤회 주체인 영혼체는 매우 구체적이고 확실한 개념입니다. 그리고 네 개의 영혼체에 대한 설명을 통해 윤회 주체는 구체적으로 무엇이고 어떻게 윤회를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할 수가 있습니다.
사실 힌두교는 일찍부터 업과 윤회와 해탈을 주장한 수준 높은 종교입니다. 그러나 힌두교에 대해 몇 가지만 더 지적해 보겠습니다.
힌두교에서는 육신에 존재하는 아트만을 바로 자신이라고 깨닫게 되면 이는 곧 범과 하나가 되어 해탈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공을 깨친 수준으로 해탈의 수준과는 또 다른 경지라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힌두교에서는 불교의 육도윤회세계, 해탈계의 차원 높은 세계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없습니다.
또한 사람을 행위에 의해 판단하지 않고 출신성분에 따라 고착화시켜버린 사성제의 문화는 크게 잘못된 전통이라고 보겠습니다. 아울러 동물을 희생시켜 제의식에 사용하는 것도 잘못된일입니다.
불교와 기독교의 파아나두라 논쟁
영혼체 관련 부분
이 글은 불교평론38호, 2009년 봄호에 발표된 <불교와기독교의 역사적 대논쟁석오진>의 내용을 인용하고 참고하였음을 미리 밝혀 둡니다.
상기 자료에 의하면, 19세기 후반1873년스리랑카에서 있었던 '불교와 기독교의 역사적 대논쟁'인 '파아나두라 논쟁'은 불교와 기독교라는 세계적 두 종교를 대표하는 지식인들이 각자가 신앙하는 종교의 위신을 걸고 공개적인 장소에서 승패를 걸고 행했던 종교대론입니다.
이 논쟁에는 불교 측에서 모호티와테 구나아난다Mohottiwatte Gunananda 비구가 참가했고, 기독교 측에서는 첫째 날에는 데이비드 데 실바David De Silva 목사가, 둘째 날에는 시리만나Sirimanna 전도사가 토론자로서 참가했다고 합니다. 청중은 첫 날에 5천 명, 둘째 날은 1만 명을 넘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논쟁의 결과에 대한 평가를 보면 대체로 기독교측의 열세로 끝났다는 평이 많았다고 이 자료는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서 그 평가에 대해 말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아설을 잘못 해석하여 영혼체가 없다는 것이 불교의 교리인 양 굳어졌고, 그 잘못된 교리를 두고 공방을 벌여 결과적으로 우문우답이 되어버린 이 사태에 대해 우리 불교계가 진정으로 반성하고 정법을 세워 널리 알리는 계기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논쟁의 영혼체 관련부분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자료에 의하면 기독교측의 실바목사는 "불교 교리에서는 영혼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인간의 윤리도덕이 성립될수 없지 않은가?"라고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이에대해 불교측의 구나아난다 스님은 "만약 기독교가 설하는 것과 같이 영원불멸의 영혼이 존재한다면 살인을 범했다 해도 별 문제가 없다는데 귀결 된다.
예컨대 사람을 죽인 것으로 말미암아 육체가 파괴되어 버린다 해도 영혼은 불멸하기에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인간들에게 불멸의 생명 또는 영혼이 존재한다고 생각함으로써 거꾸로 윤리도덕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논리가 성립되는 것"이라고 되받아졌다고 합니다.
참 실소가 나오는 장면입니다. 영혼이 없다고 전제한 것도 물론 잘못이지만, 영원불멸의 영혼이 있다고 해서 살인을 해도 별 문제가 없다고 보는 시각에 놀라음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스님의 신분으로 부처님께서 대표적인 네 가지 중한죄라고 정하신 4중죄 중의 첫 번째 계율인 살생중죄를 그렇게 가벼이 볼 수 있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않습니다.
특히, 이 4중죄는 4바라이죄라고 해서 출가스님이 어길경우 자격을 박탈당하는 무서운 죄인데도 말입니다. 만약 그 당시에 기독교측의 실바목사가 영혼체가 없다는 것에 대해 여러 가지 많은 모순점들을 예리하게 비판했더라면 불교측은 아마 상당히 곤혹스러워했을 것입니다.
어떻든 이 '파아나두라 논쟁'은 불교의 교리가 '영혼체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전 세계에 확인시킨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왜곡된교리가 바로 잡히기까지는 다시 일백 수십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나마 이 논쟁이 스리랑카 불교의 회생에 공헌하는 등의 긍정적 성과가 있었다는 것으로 약간의 위안을 삼고자 합니다.
무아설의 바른 의미
무아는 현상계에 국한된 개념
이제 문제가 되고 있는 무아설의 바른 개념을 알아보겠습니다. 그렇게도 오랜 세월을 잘못 알려져 왔지만 개념은 매우 간단하게 정의할 수 있습니다.
무아는 불교의 3법인의 하나로서 그바른 의미는 "현상계에는 영원불멸하는 '나의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조금 풀어서 표현해 보면"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나'라는 존재는 오온이라는 다섯 가지 요소가 인연으로 화합되어 이루어졌기 때문에 늙고 병들고 죽어 없어지므로 영원불멸하는 '나의
실체'는 현상계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현상계의 모든 사물에도 적용되는 개념입니다. 여기서 "현상계에는 영원불멸하는 '나의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 무아가 됩니다. 그리고 "현상계의 나는 '나의 실체'가 아니다"라고 하면 비아가 됩니다.
이 비아의 개념에는 우리의 육체는 물론 오염된 마음도 포함됩니다. 따라서 업장 등 모든 비본질적인것이 붙어있는 우리의 영혼체까지 이 비아의 개념에 포함됩니다. 여기서 비아인 영혼체가 윤회 주체가 되는 논리적 근거가 나옵니다. 그리고 위에서 본 '나의 실체'는 진아가 됩니다.
여기서 '현상계'를 강조한 사실에 주목해주시기 바랍니다. 무아나 비아의 의미는 바로 이 현상계를 두고 정립된 개념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현상계에는 나의 실체가 없다'라고 하거나 '현상계의 나는 나의 실체가 아니다'라고 하거나 두 가지 모두 본체계에 존재하는 나의 실체까지 부정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학자들은 이 '현상계'에 국한된 개념을 '본체계'까지 확대 적용하여 본체계의 실체까지 부정하는 큰 실수를 저지른 것입니다. '무아'를 어떤 경우에도 '나'라는 존재가 아주 없는 절대무아의 개념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무아설의 왜곡'입니다. 반면 '비아'라고 하게 되면 은연 중 진아의 존재를 상정하고 있는 개념입니다. '무아설의 왜곡'은 결과적으로 육도윤회와 생사해탈이라는 불교의 근간이 되는 교리를 부정하고, 불교의 존립 자체를 흔드는 이론적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무아의 개념과 관련하여 자재 만현 큰스님의 관련 법설2010. 4, 현지사 대전분원 법회을 일부 인용해보겠습니다설법 취지를 바꾸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구어체를 문어체로 바꿔서 표현합니다.
부처님께서 무아라고 하신 것은 유라는 것있다 고 하는 것에 너무 집착을 하기 때문에 그 집착심을 떼어 주기 위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무아라고 해서 행위의
주체까지 없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소아적인이기적인그 생각을 딱 잘라야 되겠기에, 여러분 자신만 아는 소아적인 중생심을 잘라야 나쁜 업을 짓지 않고 좋은 업을 지어서 하늘을 가고, 사람으로 와서 부처님회상을 만나서 윤회를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소아적인이기적인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나라는 생각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무아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라는 생각을 하지마라 그것입니다. 나만 아는생각은 소아적인 것입니다. 그 나라고 하는 생각,그 생각이 없는 나 무아, 그것은 정토에만 가도 보살들은 나라는 생각이 없습니다.
<<금강경>>에서 말하는 이치가 맞습니다. 그 정토에는 무아상 . 무인상 . 무중생상 . 무수자상입니다. 보살들 부처는 나라고 하는 생각이 없습니다. 다만, 다른사람의 어려움을 보고, 즉 중생의 괴로움을 보고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주기 위해 정말로 자비 자체로 살아가는 분, 그런 분이 보살입니다.
그러니까 '나라는 생각이 없는 나', '그 나'는 있습니다.
우리 불세존께서 가끔 아주 중대한 말씀을 발표하실 때에는 모든 삼천대천세계 부처님들 앞에서 "나 불세존은 삼천대천세계 여러 붓다님들 앞에서 무엇 무엇을 선언하노라"이러신단 말입니다.
'나 불세존은..............' 이렇게 나가신단 말입니다.우리 불세존, 나라는 생각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중생만 생각합니다. 불세존께서 말씀하신 무아의 의미는 '나라고 하는 생각을 하지 마라, 나라고 하는 생각을 갖지 마라' 그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무아를 말씀하신 것이지 '나라는 것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무아를 '나라는 것이 없다'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는데 마다 불교가 두들겨 맞는 것입니다. 인도에서 불교가 쫓겨난 것입니다.
만약에 부처님 말씀의 진위를 지금처럼 이해를 했다면, 우리 부파불교나 기타 대승불교의 하승들이 그 인도 석학들한테 이렇게 대응했더라면, 이 위대한 붓다를 낸 불교가 오히려 힌두교를 흡수했을 것입니다.
불교가 힌두교에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불교가 힌두교를 흡수해왔을 것입니다.
영산 당시의 '영산회상거염화'는
무아와 본체계에 대한 가르침
영산 당시 부처님께서 대중들 앞에 금색 바라화를들어 보이시자 가섭존자가 홀로 그 뜻을 알아차리고 미소를 지었다는 이야기는 염화시중의 미소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자재 만현 큰스님께서 쓰신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 의하면 영산당시의 이 이야기는 현상계의 모든 존재는 허망하여 실체가 없다는 무아사상을 가르쳐 주기 위한 방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보신불과 현지사 광명 만덕 큰스님가섭존자 간의 현대판 영산회상 거염화 이야기는, 부처님께서 탐스런 수국화 한 송이를 들고 가섭존자에게 묻고 대답하는 내용입니다.
영산 당시에는 꽃을 들어 보이시기만 했는데 지금은 직접 대화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책의 관련 내용을 인용해 봅니다.
어느 날 세존께서 청정법신 비로자나불로 뜨셔서 한 마당 작업하시고 원만보신으로 현신하셨습니다. 물론 깊은 선정 속의 일입니다.
깨끗하고 탐스러운 한 송이 수국화를 드시고 물으셨습니다.
'"이게 뭐냐?"
"본래부터 없는 것, 이름하여 꽃이라 합니다."
"이 꽃의 실체가 있느냐?"
"없사옵니다."
"영산 당시의 이 일은 있다 없다를 초월한 자리를 가르치고자 함이다.
살아 숨 쉬는 모두는 이 꽃과 같이 허망하여 실체가 없으니 믿을 것이 없다는 무아사상을 가르침이니라."
부처님의 이 말씀은 현상계 존재의 실체 없음과 함께 현상계를 초월한 본체계가 있음을 동시에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자재 만현 큰스님께서는 불세존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설명해주고 계십니다.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왔다가 인연이 다하면 꽃과같이 시들어 없어지는 것이니 그 무엇에 착하여 내것이다 네 것이다 분별하며 아옹다옹 하는가. 꽃과같이 인생도 허물어지는 것이니 그 어떤 것도 실체가 없음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부처님의 무아에 대한 가르침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처님께서 무상한 현상계의 세계와 함께 '있다 없다'를 초월한 자리본체게, 진제의 존재를 분명히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본체계에서는 무상이 아닌 상인 어떤 실체적 존재, 무아나 비아가 아닌 진아의 존재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맙게도 부처님께서는 대열반에 드시기 전, <<대반열반경>>에서 진아의 존재를 나타내는 교설을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출처/2천년간 무아윤회 논쟁에 종지부
영혼체 윤회론
펴낸곳/현지사-영산불교사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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