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3일 화요일

영체 / 영혼체

네 개의 영체

네 개의 영체는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성자의 천안
으로만 볼 수 있는 에너지덩어리로서 의식과 기억을 가진 생명체
입니다. 그게 바로 나이며 여러분 자신입니다.

이것은 소립자보다 더 작은 초미립자로 되어 있습니다. 초미립
자는 입자와 파동의 이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파동으로 본다면
영체는 극히 파장이 짧은, 곧 진동수가 극히 많은 전자파에너지의
형태를 띤 생명체입니다.

육체와 1. 2. 3번 영체를 접합시키는 4번 영체는 육체보다 밀도
가 높은 반물질입니다. 우리가 죽으면 이 4번 영체가 지옥 아귀
축생계 그리고 무주고혼의 중음세계에서 살게 됩니다. 꼬부랑
노인으로 살다 죽어 악도에 떨어지면 그 입자의 모습도 꼬부랑
노인 그대로입니다.

착하게 살아 천상에 태어나거나, 당대에 불과를 이룰 대성자를
만나 천도되어 천상에 나는 영가는 3번 영체로 가서 태어납니다.
4번 영체는 하늘천상계에 적응이 안되어 죽고 말지만 3번 영체는
40대 초반의 젊음을 유지합니다. 2. 1번 영체는 이때 3번 영체 안
으로 겹쳐 듭니다. 1번 영체로 갈수록 밀도가 높아지고, 입자의 크
기는 더 작아집니다.

성중 하늘에는 2번 영체로 가서 태어납니다. 이때 3. 1번 영
체는 2번 영체 속으로 겹칩니다.

극락에는 1번 영체가 갑니다. 3. 2번 영체는 이 속으로 겹쳐 듭
니다. 1. 2. 3번 영체는 죽지 않고 뭉치며 항상 뭉친 상태로 있습
니다. 이 가운데 1번 영체가 인간의 본체입니다.

여자가 극락에 왕생할 때는 남자로 변신하여 가게 됩니다.
불가에서 말하는 진여자성, 일물, 법성은 우주의 근원이지, 영체
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존재자를 존재케 하는
'영체를 초월한 궁극의 실재' 입니다.
붓다를 이룬 이는 화신을 버리고 반열반에 들 때 1. 2. 3. 4번
모두 빛덩어리가 되어 무량광으로 된 자기의 불신 원만
보신과 계합하여 섞이게 됩니다.

삼명 오안을 갖추고 대적정삼매에 계시는 붓다만이 육도
와 중생의 윤회전생을 그대로 봅니다. 지옥의 실상과 극락세
계의 진상까지도 보십니다. 힌두교와 자이나교도 윤회를 말하고
있으며, 불교에 버금가는 훌륭한 철학을 지니고 있습니다.

선에서는 화두타파하면 견성했다거나, 깨쳤다고 말합니
다. 맞습니다. 깨달음이란 존재의 본성을 볼 때 오는 것이요,
공과 무아를 체험합니다.

그러나 잠깐 마음자리가 드러나는 깨달음 이라는 것은 이제 공부
의 시작일 뿐이며 보림을 잘해 들어가야 아라한의 자리에 드는
것입니다.



성중 --> 보살 --> 붓다

공부를 잘하고 수행을 잘 해서 깨달음을 얻었거나, 이미 깨달았
다면 이제부터가 더욱 중요합니다. 특히 여자관계를 주의해야 합
니다. 사음계를 파하는 것은 부처님과 법을 능멸하고 모독하는 대
망어의 과보만큼이나 무섭습니다.

또한 나 없는 수행, 곧 두타행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아
라한과를 증득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잘 수행해도 붓다 되는 데까지는 아직 천만리 거리가
남아 있습니다. 보살도를 완성해야 불과를 이룰 수 있기 때문입
니다.

보살지에 이르면 성불은 보장되어 있다고 보셔도 됩니다. 여기
까지 도달하면 불퇴전입니다. 마침내 붓다가 되면 우주와의 완전
무결한 계합을 이루니 대열반이요, 대해탈인 것입니다. 이것은 우
주아의 실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영원히 죽지 않는 무량수가
되는 것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무주고혼 영가

죄업을 많이 지은 사람들이 죽으면 상당수가 명부에 들어가지
못하고 무주고혼으로 지냅니다.

객사한 사람, 자살한 분들, 몹쓸 병을 얻어 대소변 가리지 못하
죽은 이들, 처자에게 착이 많은 영가들의 대부분은 윤회에 들
지 못하고 명부에도 들지 못합니다.

이런 영가들은 반은 사람, 반은 귀신이기에 춥고 배고픕니다. 이
런 고혼들은 식색등의 기본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해, 인연 있
는 자손의 몸에 빙의 합니다.

여기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런 조상의 영가가 빙의
된 자손은 객사하고, 자살하고, 몹쓸 병을 얻습니다.

이런 불행을 막기 위해서 천도재가 필요하지만 완벽한 천도재를
감당할만한 큰스님이 없는 게 문제입니다. 인간이나 하늘천상에
태어나도록 할 수 있는 길이 있는 데도 말입니다.

부처님 당시 10대 제자인 목건련은 당신의 어머니를 4번 천도해
드림으로써 하늘천상에 태어날 수 있게 했습니다. 이 일은 거룩하
신 부처님께서 주관하셨던 천도재였기에 가능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지은 업을 소멸시킬 수 없습니다. 어느 정도의 수
행이나 참회 보살행에 의해 정화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부처님의 위신력에 의해서만이 중생의 죄업이 소멸됩니다.

또한 부처님만이 지옥 축생의 중생을 건질 수 있습니다. 부처님
의 위신력, 우주적인 구원의 힘에 의해서만 중생이 제도되는
것입니다. 아라한도, 보살도 이 일만은 못합니다.



지옥 지장보살과 열시왕이 관장

지옥은 지장보살이 관장하는 곳으로, 남방의 지장궁 옆에 위치
해 있습니다.

상품보살 이상 붓다권 내에 든 대수행인은 삼매 속에서 지옥을
봅니다. 공을 깨친 후 무아 속 삼매에 들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착이 남아 있어서 망상을 떨치지 못하는 수행인이라면 선
정에 들어서도 지옥의 진상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런 수준의 선정으
로 보여지는 것은 요술쟁이의 마음이 그린 거짓 지옥 에 불과하
고, 진짜 지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장보살은 '붓다 중의 붓다' 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붓다
이십니다. 열시왕은 상품보살들이십니다. 무독귀왕, 도명
존자는 상품보살 이상의 불격을 갖춘 상수보살급이십니다.
무간지옥이나 극무간지옥에서 온 영가는 지옥의 옥졸이 쇠사슬
로 묶어서 데려옵니다.

보통 천도재의 결과는 수일 후에 나옵니다. 부처님들의 위신력
으로써 올리는 천도재는 영가 모두를 특별히 지장궁 별당으로 구
인해 갑니다. 그러나 죄업이 지중해 무간지옥에 떨어진 영가는 천
도가 거의 안 됩니다.

오직 부처님은 대자대비하시고 우주적인 무한한 능력을 구족하
시지만 사바세계 남섬부주의 당대에 붓다 이룰 그 제자의 집전 발
원에 의해서만이 악도에 빠진 중생을 건질 수 있습니다. 태양빛이
쨍쨍 내리 쬐더라도, 화경불록렌즈을 조정해야만 검정 헝겊을 태우
듯, 큰 제자라는 인연을 만나야 지옥중생이 구제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전제할 것이 있습니다. 먼저 영가의 이름으로 공덕을 짓
도록 많은 불 보살께 먼저 공양을 드리는 겁니다.

이런 천도재를 모셔드리는 공덕은, 그 어떤 공덕보다 수승합니
다. 영가 당사자들의 지은 업장이 씻어져서 보다 나은 세계로 천도
될 뿐 아니라, 천도재를 모신 이는 자손으로서 그만큼 큰 효를 해
드려서 더욱 좋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직도 중천을 떠도는 조상의
고혼들을 명부에 넣어줌으로써 후손이 나쁜 병을 얻지 않고, 자살
또는 횡사하지 않아서 다행인 겁니다.

물론 모든 나쁜 재액, 천병이 영가의 빙의에서 비롯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기본적으로는 우리들 사람이 전생에 지은 큰
악업으로 인해 여러 재앙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분명히 알아두셔야 할 점은, 천도재를 집전하는 스님이 최소한
청정한 비구스님이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째도 청정이고, 둘째
도 청정입니다.

이제 승려의 양심으로 돌아가 상업화 되어가는 천도재는 즉각
중단해야 할 것입니다. 더 이상의 죄업을 짓지 않기를 바랍니다.
능력 없이 천도재를 많이 하는 사찰은, 저급 영가들의 역겨운 냄
새와 사악한 기가 가득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귀신들이
꽉 차 있고, 귀신들이 득세하여 이미 성지가 아닙니다. 사찰은 청
정도량이어야 합니다. 절을 위해서도 상업화딘 천도재를 멈춰줄
것을 간절히 당부 드리는 바입니다.

적어도 아라한과에 증입할 때까지는 사생결단 외길을 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물 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나옹 혜근-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윤회설과 영혼체

중생이 육도(지옥, 아귀, 축생, 인간, 아수라, 천상)에 윤회하는 실
상을 보려면 붓다와 십지모살의 천안이라야 볼 수 있다. 힌두교, 자이
나교, 불교에서 업보윤회설을 말한다. 중생의 악업이 지옥을 만들었고
선업이 천상세계를 건립한 것은 사실이다. 힌두교의 교전 '바가바드기
타'에서는 인간의 윤회전생을 완벽하게 설명하고 있다. 윤회의 수레바
퀴는 산계소작(算計所作)으로서 사사로움이 없다. 윤회 안의 천상사람
들도 지은 복이 다하면 인간이나 악도로 떨어진다. 4개 영체의 소식
을 모르는 상태에서는 무아와 윤회에 대한 조화로운 이해가 불가능하
다. 4개의 영체는 성자의 천안으로만 볼 수 있는 에너지덩어리로서
의식과 기억을 가진 생명체이며 소립자보다 더 작은 초미립자로 되어
있고 입자와 파동의 이명성을 가진다. 이 영체는 영원히 죽지 않으며
육도를 윤회하는 주체이다. 1번 영체는 우리 인간의 본체이다.

출처/영산불교 종지및 사상/영산불교 사상 연구소






4가지 영체


큰스님께서 언급한 것처럼 힌두교에서는 4가지 영체설을 이
야기하였습니다. 이는 또한 신지학에서 말하는 에너지 체계와
비슷한 맥락을 갖고 있습니다. 신지학에서는 인간은 에텔체,
아스트럴체(감성체), 멘탈체(정신체), 토절체(예지체)등 다양한
에너지체들을 상정하고 있어, 초심자가 수련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에너지체를 골고루 마스터해 나가야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일반 불제자나 구도자가 견성을 얻기 전에는 육체에서 얻어지는
오감의 쾌락을 어는 정도 맛보는 것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
니다. 다만 견성을 하였다면 그 후에는 절대로 감각적 쾌락을 추구
해서는 안 됩니다.

유대교의 탈무드에도 어리석은 자는 감각적 쾌락에 한 번 빠
져서 영영 헤어 나오지 못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며, 보통 사
람은 감각적 쾌락을 즐기지 않고 항상 감각적 쾌락에 대해 관
심을 놓지 않고 정신 에너지를 낭비해 간다고 비유적으로 말합
니다. 그리고 현명한 재가자는 처음에 어는 정도 감각적 쾌락
을 맛본 후에는 감각적 쾌락의 문을 꽉 잠그고 청정한 삶을 살
아간다고 비유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청정한 마음의 소중함을 알기 위해서는 무릇 중생
심의 허망함을 확실하게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
다. 또한 큰스님 말씀대로 견성을 한 사람이 보임 중에 음계를
범하게 된다면 그것은 바로 부처님을 능멸하는 중죄임을 명각
해야 합니다. 그리고 중생심이 삼독심(탐, 진, 치)을 일으키기
때문에 중생심은 똥물이나 다름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하지
만 중생심의 삼독이 가져다주는 괴로움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결코 청정심의 소중함을 모릅니다. 따라서 영적 구도자들은 처
음에는 반드시 중생심의 허망함을 통렬하게 실감해야 할 것입
니다. 그 후 영적 추구의 길을 밟아 나가시면 높은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봅니다.

참고로 요가가 지금 전세계적으로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
은 매우 과학적이기 때문입니다. 요가의 비보 파탄잘리의 8가지
요가 행법은 매우 체계적(시스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양
문명은 컴퓨터 시스템처럼 정확하고 정묘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유기적 메카니즘과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철학사상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요가 철학과 요가 수행체계가 매우 서양 사회구조에 적합하
게 들어맞게 된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요가 시스템과 같은 체계적인 수행법을 지향해야
합니다. 체계적이란 분류와 범주를 잘 나누어서 이해하는 데
있습니다.

에너지체에 대한 분류에 따라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
합니다. 4가지 영체에 대한 큰스님의 사자후는 광오한 지
혜와 심오한 식견을 지니신 큰스님께서 얼마나 체계적으로 불
교 수행법을 가르치고 있는가를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교에 알파를 가미하신 것은 염불선으로의 회귀
만큼 또 하나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닙
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





인간 영혼의 실체


나는 인간 영혼의 실체를 깨달았습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네 영혼체가 하나로 겹쳐져 있습니다. 인간은 육체와 네 영혼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영혼체는 소립자보다 더 작은 미립자로 되어있습니다. 현지사에서는 이를 편의상 1·2·3·4번 영체라 부릅니다. 영체는 극피 파장이 짧은 에너지 생명체입니다.

인간 영혼의 실체에 대한 이해는 B.C 1000년경 브라만교힌두교에 의해서였습니다. 19세기 신지학은 이를 원용한 것일 뿐입니다. 불과를 이룬 붓다는 영혼체에 대한 진실을 브라만교에서 알아낸 것보다 훨씬 깊이 그리고 완벽하게 알고 있습니다.
육체보다 더 정묘한 파동을 나르는 미세한 몸이 있습니다. 이것을 생기체生氣體, 에테르체Ether라고 합니다. 나는 이것을 4번 영체라 합니다. 육체와 다른 영체1, 2, 3번 영체를 완벽하게 접합시키는 역할을 하면서 가시주파수를 넘어선 영역의 파동이기 때문에 보통 사람의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체보다 밀도가 높은 반물질입니다. 엑토플라즘Ectoplasm이라 불립니다. 음기陰氣가 성한 무당이나 천안을 얻은 아라한 이상의 성자가 이를 봅니다.

3번 영체 아스트랄Astral체는 4번 영체보다 더 미세한 입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54품 하늘세계에 적응합니다. 2번 영체는 멘탈Mental체는 욕심을 떠난 성중하늘에, 1번 영체 코살Causal체는 윤회를 벗어난, 삼계를 탈출한 극락정토에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늘 사람부터는 세 영체가 뭉쳐져 있습니다. 아라한·보살과를 이루고 입적하는 성자는 4번 영체를 버리고 가는 반면 붓다 이룬 성자는 네 영체 모두가 자기 불신 속으로 드는 겁니다.

불과나 보살과를 증득한 성자는 영체가 밖으로 나올 때 앞쪽에서 나오고 앞쪽으로 듭니다. 그러나 아라한과를 증한 사람이나 중생들의 영체는 옆쪽에서 나오고 옆쪽으로 들어갑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사람들은 이 몸을 버리고 죽을 때 영체라는 것이 빠져나옵니다. 마치 매미가 허물을 벗고 밖으로 나올 때 허물을 빠져나온 매미가 진짜인 것처럼, 이 몸뚱이를 빠져나온 영체가 진짜 생명체입니다. 바로 그 영체가 자기입니다.

그 영체는 네 개가 겹쳐진 상태로 있습니다. 몸뚱이와 영체를 접착시켜주는 4번 영체영혼체, 이 4번 영체 안에 3번, 2번, 1번 영체가 겹쳐져 있습니다.

4번 영체의 겉부분은 명부에 들 수 없습니다. 명부, 저 세상에 적응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세상에 유령으로 남습니다. 그 유령은 생명체가 아닙니다. 그래서 1~2년 안팎이 되면 자연 소멸되고 맙니다. 그러나 유령은 유족들을 놀라게 하므로 현지사에서는 천도재 때 이를 분해시켜버립니다
많은 사람이 죽어 명부저승에 못 들어갑니다. 이때는 4번 영체로 이승에 남아 자손에게 빙의하여 배고픔이나 성(性)의 욕구를 해결합니다. 이들을 법력 있는 큰스님이 천도해주지 않으면 자손은 영가의 장애로 편치 않습니다. 그 가정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명부에 들지 못한 이들이나, 지옥·아귀·축생으로 떨어질 이들의 영체 색깔은 거무튀튀합니다. 하늘 중 아래 하늘, 6하늘 사람은 회색 빛깔입니다. 5하늘 이상 1하늘 사람들의 영체 색깔은 하얀색입니다. 하늘에 날 사람들은 3번 영체로 갑니다. 이때 2번, 1번 영체는 그 속으로 겹칩니다. 4번 영체 모두는 소멸됩니다.

성자의 반열에 드는 수다원 이상 아라한의 세계에 가는 이들의 영체 색깔은 보름달 밝기입니다. 2번 영체로 갑니다. 이때 1번, 3번 영체는 순서대로 그 안에 겹칩니다. 보살의 성과聖果를 얻어 서방정토에 왕생하는 이들은 1번 영체로 갑니다. 이때 2번, 3번 영체는 그 안에 겹칩니다. 보살 영체의 밝기는 오전 햇빛과 같습니다.

1·2·3번 영체는 항상 뭉칩니다. 1번 영체는 중생의 본체이며 무량겁 이전부터, 아니 무시 이래로 살아왔습니다. 4번, 3번 영체는 초미립자의 입자, 극미립의 입자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1번 영체는 공空을 지나 이미 입자물질가 아닙니다. 빛입니다.

우리 인간의 영혼은 어떤 유일한 인격적인 절대자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다만 연기법에 의해서, 자연으로 생긴 것입니다. 물이 고인 시궁창 웅덩이에서 모기나 하루살이가 조건이 맞아 생기듯 청천 하늘에 갑자기 구름 한 점 생기듯 인간 영혼체 역시 그리 생긴 것입니다.
4번 영체 역시 1·2·3번 영혼체와 거짓 몸뚱이를 집착할 필요에 의해서 생긴 것입니다.

무시 이전에 조건 따라 인간 영혼체1번 영체가 생기고 다겁생으로 내려오면서 탐진 오욕 등 번뇌로 업을 지어 나머지 2개2, 3번 영체의 영체가 생깁니다. 다시 업의 찌꺼기비본질적인 것들이 더덕더덕 붙어 네 영체가 한뭉치로 된 것입니다.
진리의 수행과 복덕행으로 업장이 씻겨져 정화되면 다섯 손가락 거짓몸뚱이, 4번 영체, 3번 영체, 2번 영체, 1번 영체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하늘 54품을 벗어나는 수준입니다. 더욱 공부를 잘해서 업장이 벗겨지게 되면 비본질적인 것들이 제거되어 오리 손 정도로 분리되어 갈 수 있습니다. 여기가 인간 자력수행의 한계인 아라한입니다.

네 영체가 완전 분리된 법위가 보살입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가피, 영체 작업으로 가능합니다. 보살은 4번 영체를 버리고 1번 영체 그 속으로 2, 3번 영체가 겹침으로 맑고 깨끗한 정토의 빛이 되어 보살의 해탈신으로 서방 극락정토에 나는 것입니다.

붓다의 위位에서는 네 영체가 빛덩이 되어 각기 분리하여 개별 활동을 할 정도입니다. 네 영체 모두가 빛 자체가 되어 절대계에 있는 자기 불신 속으로 합일합니다.

인간 영체의 비밀은 부처님 뜻에 따라 이를 밀장으로 두었습니다. 보다 더욱 깊은 영혼의 실체를 알려면 불지에 올라야 합니다. 이는 불佛의 경계입니다.





영체 분리는 필수적 작업


보살과를 얻으려면 4영체를 분리해 놔야 합니다. 네 영체는 각기 끈끈한 막으로 싸여 있습니다. 영체 분리는 부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밀장이지만 부득이 이곳 현지사 어느 스님에게 불세존께서 영체 작업하신 사실을 간략히 공개합니다.

‘네 영체를 분리하신다. 영체들은 똑바로 서지 못한다. 부처님께선 금단부처님마다 지니신 불가사의한 약을 먹이시어 네 영체를 똑바로 서게 하신다. 영체가 일정하지 못한 것을 크기가 가지런하게 작업하신다.
업장을 씻어주시는 데 모속에서 크고 작은 지네들이 많이도 나온다. 위신력을 놓으사 업장 씻으시고 또 씻어주신다. 손끝, 발끝으로 나쁜 검은 기를 한없이 뽑아내신다.

3번 영체는 눈도 없고, 코도 없고 입도 없다. 2번 영체도 분명치 않다. 이 큰 영체의 장애를 정상으로 치유하지 아니하면 다음 생에 사람으로 와도 뇌성마비로 한 평생 누워 살 것이라 하시면서 한참동안 작업하신다.

어느 정도 정상으로 돌려놓으시고 하시는 말씀, “이 애의 축생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옥보는 끊어준다. 현지궁 만나지 못했으면 어찌 될 일인가?”하신다.’





수행이란 곧 영혼의 정화

다시 확언합니다. 인간 영혼의 실체에 대해서는 이곳 현지궁 두 큰스님만이 그 온전한 비밀을 알고 있습니다. 영체는 우리 육신 몸뚱이의 본체입니다. 이것은 영원히 죽을 수 없습니다. 때로는 인간이나 짐승 몸 속으로 들기도 하며, 이 몸뚱이를 벗어나 몸뚱이 없는 중음계무주고혼의 세계, 아귀세계, 하늘세계를 드나듭니다.

영혼의 정화, 곧 영체의 정화가 필요합니다. 수행은 영혼의 정화에 있습니다. 지중한 죄업을 지으면 영체가 쇠사슬로 묶입니다. 그 쇠사슬이 완전히 끊어지고 없어져버려야 업장이 소멸되는데 이 일은 어느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중생의 업장 소멸은 오직 석가모니부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것은 그 누구도 모르는 천고의 비밀이었습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14장 中





사람이 죽으면 가는 곳


사람이 죽으면 가는 곳이 있다더라. 죽으면 다 끝난다
는 것이 아니고 가는 곳이 있다더라. 뭐가 가? 몸뚱이
가 가나? 몸뚱이는 땅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화장해버
리면 잿더미가 되어버려.
요건 못가. 뭐가 가지요? 내 책을 많이 본 사람은 알지.
이 몸속에서 한 평생, 몸속을 의지하고 사는 죽지 않는
자기가 있어요. 그걸 나는 영혼체라고 했어요, 영혼체.
그걸 줄여서 영체라 했어. 매미가 허물을 벗을때 쏙 빠
져나와 버리잖아요? 그 허물, 그놈이요. 이 몸뚱이는요.
허물이요, 이것은 집이요 집. 집은 오래가면 어떻게 되
지요?

낡아서 폐가가 되어서 망가져 버립니다. 요것은 그거
야. 여기서 한평생 살다가 명이 다했거나, 또 비명 했거
나 간에 죽으면 쏙 빠져나온 놈이있어요.

그걸 영혼체라 그래. 요놈이 주인이야. 주인이란 표현도
많은 이야기를 해야 되지만, 자 주인이야 요놈이. 여러분
들이 깨끗이, 착하게, 바르게, 좋은 일 많이 하고 살았다
면 요놈이 깨끗해.

그렇지만 업을 많이지은 사람들의 영혼체는 안 그래, 스
님이 뭐라고 하던가? 아주 더러워. 아주 탁하고 아주 더
러워. 심지어 우리는 뭐라고 말하느냐? 어디서 막 건져
나온 것 같아.

그렇게 생겼어. 그러한 영혼체는 악도로 가게 되어있
어. 악도로 가. 악도라고 하면 지옥 있어, 짐승도 돼,
아귀도 되고, 또 거기도 못 들어가는 팔자가 된다고.
거기도 못 들어가는 경우가 있어.

비명에 죽을 때, 사람은 30%, 40%, 50%는 명부에 못
들어가더라고. 그 원인은 착, 집착, 자살했다든지 나
쁜 병을 얻어서 와병, 똥오줌 싸고 죽었다든지, 또 힁
사, 객사(집을 나가서죽었다든지) 하면 거의 명부에
못 들어가더라구요.

그러니까 그렇게 못 들어가는 것은 과거생에 그 사람이
지은 없이 지중하기 때문에 그래. 그런데 착하게 살았
으면 이 영혼체가 대단히 맑다고요.

깨끗하다고요 그래서 하늘로, 사람으로 나온다고요. 그
러나 대단히 적어. 100명이면 한 둘 셋, 그 이상은 안 되
더라구요.

출처/2007.1.21.일.(음12.3) 큰스님 춘천 법문



 
 
 
영체(영혼체)

처음으로 지금 때가 되어서 내가 이 세상에 영체설을 밝힙니다. 영혼체(영체)이론입니다. 영산불교에서 오늘 공식으로 이 세상을 향해서, 1,200만 불자를 향해서, 세계 3억~5억의 우리 불자들을 향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이걸 여러분들이 들으시면 정리가 됩니다.

(1) 영혼체는 4개로서 다중구조를 지니고 있다. 즉, 영혼체는 밀도와 진동수가 다른 4번, 3번, 2번, 1번의 네(4)체(몸뚱이)로 겹쳐져 있다. 단, 4번에서 1번 영혼체로 갈수록 밀도가 높아진다.

(2) 4번 영혼체는 육체와 1․2․3번 영혼체를 접합하는 구실을 한다.

(3)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덩어리이다.

(4) 영혼체를 줄여서 영체라 부르기도 한다. 자이나교에서, 힌두교의 어느 학파에서,《아함경》에서는 식신(識身, 業身)이라고도 하는 그런 기록을 봤습니다. 과거생 자기의 의식과 기억을 지닌 생명체이다.

5)물리학에서 말하는 소립자보다도 더 작은 초미립자로 되어있다. 초미립자이기에 입자와 파동의 양면성을 갖고 있다. 파동으로 보면 극히 파장이 짧은 전자파에너지 생명체이다.

이상 다섯 가지는 힌두교에서도 이미 BC1000년 경, 그러니까 3000년 전에 그들 최고의 수행자(대성자)가 이를 보았습니다. 이 정도를 알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아래와 같이 깊이 파헤치지는 못했다. 붓다의 경지로 올라야 우리 영혼의 실체를 완벽히 규명하게 된다. 19세기 신지학에서 힌두교의 이 영혼의 구조까지를 이해하고, 지금 이를 원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저것들이 모르는 영산불교의 영혼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들이 도저히 알 수 없었던 영혼체에 대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1) 인간에게는 누구나 행위의 주체요, 윤회의 주체인 영혼체라는 영적실체가(주인공이) 있다.

(2) 영혼체란 인간의식의 근거가(토대가) 되는 이 영혼을 담은 그릇이라는 말이다. 영적인 인간모습이다.

(3) 4번 영혼체는 이 몸뚱이와 100%닮았다. 3번, 2번, 1번 영체 역시 근간은 같은 닮은 형이다. 근간이 같다. 4번 영체의 수명은 한시적(限時的)이다. 이 몸이 명부로 들어가게 되면 그 4번 영체는 커트(cut)당합니다. 아시죠? 그 말이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 몸과 거의 같은 수명을 합니다. 그러나 비명(非命)에 죽게 되면 그 4번 영체로 살아가는데, 천도를 올린다든지 할 때 윤회의 주체이자 주인공인 1․2․3번 영혼체를 명부로 넣어주잖아요. 4번 영체(영혼체)는 그로부터 2, 3년 정도 있거나 화장(火葬)을 하게 되면 곧 소멸 됩니다만, 그렇지 않으면 그 4번 영혼체는 유령이 되어서 자기가 살던 집, 걸어 다녔던 낯익은 길, 자기의 묘지, 자기 위패가 기록된 영구위패로 모셔놓은 절을 왔다 갔다 합니다. 그렇게 되면 젊은 자식을 잃은 어머니가 그 유령을 보면 어떻게 됩니까? 그래서 우리 현지사 천도재에서는 그 유령을 산화시켜줍니다. 그런데 요즘은 별로 안 해줍니다. 그것은 부처님께서 해주셔야 되기 때문에 그런 수고까지는 청하지 않습니다.

(4) 인간, 동물의 태중(胎中)에 들 때에는 이제 4번 영체가 생깁니다. 1․2․3번 영혼체는 안 그럽니다. 이것은 반드시 뭉쳐 다니는데 죽지 않습니다. 영원히 불사(不死)입니다. 4번 영체만은 인간이나 동물의 뱃속으로 들어갈 때에는 그때부터 생겨서 자랍니다.

(5) 소위 12띠 동물이면 영혼체가 들어간다. 조류 어류의 일부에도 그들 영혼체가 든다. 여러분 아시죠. 곤충류 벼룩 이(louse)와 같은 해충, 거머리 등과 같은 미물들, 식물 광물, 그리고 지수화풍 공(空)에는 영혼체가 들 수 없다. 이들은 윤회의 대상이 아니다. 자연생 자연사한다. 그러나 자이나교에서는 다 들어간다고 했어요. 잘못 본 것이다.
(6) 1번 2번 3번의 영혼체는 항상 뭉쳐 다닌다. 이것이 중생들의 주인공이다. 그 중에서 1번의 영체는 인간의 본체다. 힌두교에서 이야기하는 아트만 정도이다. 힌두교에서는 아트만이 윤회의 주체라고 하지만, 여기 영산불교에서는 아니다 그럽니다. 윤회의 주체는 1․2․3번 영체가 생겨야 됩니다. 1․2․3번 영체하고 4번 영체가 생길 수 있는 업을 지어야 그것이(그 몸뚱이가) 윤회하는 주체가 됩니다. 1번 영체를 가지고는 절대로 윤회할 수가 없습니다. 1번은 본체계입니다. 본체계에 있는데 왜 윤회 합니까? 업이 있어야 윤회를 하지요. 그래서 업을 지어 감으로서 2번 영체가 생기고, 3번 영체가 생기고, 4번 영체가 생겨요. 이것이 윤회를 하는 거예요. 이것이 윤회를 해.

(7) 1번, 2번, 3번 영혼체의 수명은 무한하고 영원하다. 1번 영혼체의 수명은 무시로부터 있었고, 영원토록 불사(不死)한다. 이것은 엄청난 새로운 소식입니다. 이 영혼체는 바로 윤회의 주체이다. 즉, 이것은 다겁생을 내려오면서 지은 업 때문에 중생들의 영혼체 색깔은 대부분이 거무튀튀하다. 업장은 태산만하다. 마치 숯덩이와 같고, 진흙덩이와 같아서 영산불교에서는 이를 비아(非我)라고 한다. 비아(非我), 나(我)가 아니다. 비아(非我)라고 한다. 바로 이것이 윤회의 주체가 된다. 비아(非我)라야 윤회합니다. 아트만과 같이 지고지순하고 행위 하지 않는 것은 절대 윤회를 못합니다. 2번 3번 4번이 붙은 비아(非我), 숯 덩어리가 된 이놈, 이 업 때문에 육도를 윤회 하는 거예요.

(8) 이 영혼체 3번으로 하늘 천국에 가서 난다(하늘 천국에 갈 때에는 3번 영혼체가 간다). 이때는 2번 영혼체와 1번의 영혼체는 그 안으로 겹쳐든다. 성중하늘은 2번으로 간다. 이때도 3번 1번은 그 안으로 겹친다. 1번 영혼체로 극락에 왕생한다. 3번 2번의 영혼체는 그 안으로 겹친다.

(9) 영혼체는 그 사람의 영격에 따라 빛(색깔)을 띄우고 있다. 오라와는 다르다. 오라(aura)는 영혼체의 색깔이 그 사람의 몸뚱이를 거쳐나온 색깔이다. 지옥 등 악도로 떨어질 사람은 영혼체가 거무튀튀한 색깔이다. 하늘이나 인간의 몸을 받아 올 사람은 하얀색이다. 보살은 아침 햇빛깔이고, 불과를 증한 이는 눈이 부셔서 볼 수 없는 햇속 빛이다. 그러면서 안과 밖이 투명하고, 영롱하고 아름다운 무량억종광 빛이다.

(10) 부처님은 수행자의 다겁생의 업장을 씻어주시고, 또 그것을 소멸하실 수 있다. 그 영혼체에 더덕더덕 붙어있는 그런 업장들을 부처님만이 씻어주시고, 소멸도 하신다 그거예요. 유대 신비주의 카발라에서 자기 신의 애제자의 수행을 돕기 위해 그들의 하늘 최고신은 빛을 정수리에 쏟아 부어서 빛의 몸으로 만든다고 한다.

그래서 영원히 죽지 않는 자기의 천국으로 데려간다. 그러나 우리 불교의 교주이신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수행자의 영혼체를 꺼내어서(꺼내는 것부터는 그들은 할 수 없다. 영혼체를 끄집어내는 것은 오직 부처님만이 하신다) 끈끈이 막으로 각 영혼체가 붙어 있는 것을 무량광으로 씻고 닦아 4영혼체를 분리 한 후(그들은 분리도 못한다.

세계의 어떤 종교의 교주도 이 일은 못한다), 몸뚱이까지 다섯 개의 영혼체 각 정수리 위에 부처님이나 오여래부처님이 올라가서 억종무량광으로 쏟아 붓는다. 먹물 같은 업장의 찌꺼기가 내를 이룬다. 이 정도 되면 지옥은 가지 않습니다. 이건 순 타력이지요. 자력수행 갖고는 못합니다. 이러기를 여러 번 작업 함으로서 아라한을 보살로 만든다. 이러한 작업은 부처님과 오여래, 그리고 문수 보현 관음 지장 정도의 기라성 같은 붓다만이 할 수 있다.

또 영혼체를 감은 쇠토막 같은 업장은 아주 지중한 업을 짓게 되면 그렇게 되는데, 석가모니부처님 만이 이를 끊어 주시고, 그 끊겨진 쇠토막들은 삼매화라고 하는 불 속으로 던져 녹여버린다. 녹여 소멸시켜 주신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또 그 영혼체의 쇠토막이 다시 붙기 때문에 그렇게 까지 해주신다. 자력을 기반으로 하고, 타력 수행만이 보살과 붓다가 될 수 있다는 말의 뜻이 여기에 있다.
여기부터는 밀장이어서 여태 말을 못했지만, 지금 현재 이 불교에서 영혼체를 부정하기 때문에 오늘은 이 부분까지 과감하게 말씀을 해드립니다.

(11) 업이 지중한 이의 영혼체는 부처님도 몸에서 꺼내기 조차 어렵다. 그 영혼체는 다겁생으로 내려오면서 지은 업장이 두터워 태산만 하고, 숯검정 같고, 영혼체 끼리는 껌과 같이 달라붙어 있으며, 몸뚱이와도 하나로 붙어 있어서 꺼내어 씻는 것조차도 어렵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당신의 금단을 영체에게 먹인다(영체 속으로 믹스시킨다). 한의원에서 만드는 환약 같은 금단이라고 있어요. 각 부처님마다 이런 신비스러운 약이 있습니다. 영체 속으로 그걸 흡수시킴으로서 밖으로 꺼낼 수 있다. 꺼낸 다음 네(4)영체를 억종광명의 빛으로 분리하신다. 이런 과정을 거친 수행자는 지옥 등 삼악도를 면한다. 이때 빠져나가는 먹물 같은 오물은 도랑을 이룬다.

(12) 아까 말씀했지요. 보살의 법위부터는 영혼체를 꺼내어 놓으면 즐거워서 뛴다. 4영혼체를 분리해 놓으면 각각 즐거워서 환희용약한다.

(13) 불과를 이룬 대성자의 영혼체는 스스로 나와서 4개의 영혼체가 독립적으로 뛰어 놀고, 공중이나 물속에서 자유자재로 활동한다.

(14) 아라한까지의 영혼체는 그 사람 몸뚱이의 옆으로 나오고 들어가지만, 보살 이상의 영혼체는 앞으로 나오고 앞으로 들어간다.

(15) 불과를 이룰 수행자나, 불과를 이룬 이의 영혼체는 절대계 목욕탕의 가장 위의 탕인 (약사여래부처님이 계신 저 약사궁에는 삼탕이 있는데) 일탕에서 영혼체를 분리해서 목욕을 시킨다(목욕을 한다).

(16) 불과를 이룬 대성자가 잠을 잘 때,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오시면 곧 몸 밖으로 영혼체가 빠져나와 오체투지 인사를 한다.

(17) 불과를 이룬 이는 열반에 들 때 1번 2번 3번 4번 영혼체는 바람같이 몸을 빠져나와 절대계의 자기 불신으로 들어가 계합한다.

(18) 과거생에 불과를 이룬 붓다가 사람 몸을 받아 오실 때는 자기불신 속 4영혼체가 어머니 뱃속으로 든다.

(19) 불과를 이룬 붓다는 업이 없다. 악연도 모두 단절되어 있고, 원결도 없고, 갚아야할 빚도 없기 때문에 태어나면 그 용모가 32상을 갖추고, 지혜가 있고 자비스럽다.

(20) 어머니 뱃속에 있음을 알고, 이 세상에 나옴도 안다. 소위 생이지지한다.

이상 스무 가지입니다. 위의 다섯 가지는((1)~(5)) 자이나교나 힌두교에서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후 많지만 스무 가지는 우리 영산불교에서 이 세상에 처음 발표한 내용입니다.

이야기입니다. 여러분들이 영혼체에 대한 이해를 충분히 하시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두 가지 실화를 소개하겠습니다. 1924년이니까 약85년전입니다. 진주시 옥봉동에 사는 '김재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진주시 옥봉동이라는 동이 있는가 봐요. 그 김재이라는 노인은 80살을 먹었어요. 또한 진주시 비봉동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김재이라는 이름을 가진 38살 먹은 사람이 있었어요. 그런데 비봉동에 사는 38살 먹은 김재이라는 사람이 저녁에 잠을 잡니다. 꿈이라고 봐도 되지만 꿈이 아닙니다.
형사 같은 이가 와서 ‘좀 가야할 일이 있으니까 나를 따라 가자’그러더래요. 그래서 그 형사를 따라갔습니다. 어디만큼 갔는데, 어느 큰 관공서(경찰서)같은 곳으로 들어갔다 그거예요. 여기에 들어가라고 하면서 밀어 넣는데 보니까 이미 20여명이 와있더라 그거요. 그런데 한참 있으니 밖에서 소란스러운 말소리가 나서 가만히 들어보니까 비봉동에 사는 38살 먹은 김재이를 내보내라 그거예요. 왜 옥봉동80노인 김재이를 안 잡아 왔냐 그거라.

그래서 비봉동 38살 김재이가 석방되어 자기의 집으로 왔다 그거예요. 와서 시계를 보니까 새벽 2시예요. 그래서 아침 일찍 종을 시켜서 옥봉동 80노인 김재이씨 집을 가보라고 했어요. 가봤더니 거기에 초상이 났어. 그래서 ‘김재이라는 노인이 몇 시경에 운명하셨오’ 라고 물으니까 ‘새벽 3시쯤 됩니다’ 라고 하더래.

따라가고, 잡혀가고, 또 오고 한 놈이 뭐죠? 영혼체입니다. 4번 영혼체. 4번 영혼체 속에 3번 2번 1번이 겹쳐있습니다. 4번 영혼체는 우리 사람과 털구멍 하나 틀림없이 100% 닮았다고 했지요. 1․2․3번 영혼체도 닮아 있습니다. 사실은 1․2․3․4번 영혼체가 닮았습니다. 그런데 올라 갈수록 조금씩 모양이 다르지만 근간은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에 천도되어 가지고 올라간 어머니 아버지는 척 보면 알아요. 지옥에 있었는데도 알아. 그런데 천도를 몇 번 하니까 하늘에 올라가셨어요. 우리의 경우입니다. 아버지인지 어머니인지 그냥 알아. 또 우리 어머니가 성중하늘을 가고 극락세계에 이제 가셨잖아요. 아주 잘생기고 빛이 나고 하는데도 우리 어머니가 이렇게 아는 거예요.

그걸 근간이라고 하는데, 근간은 변하지 않습니다. 근간을 가지고 그냥 알아봐지더라. 그런데 대승불교쪽인 유식학, 부파불교에서는 무아설(無我說)하고 윤회의 주체 간에 모순이 없도록 이론을 창출하려고 굉장히 노력을 했습니다. 그 결과 심상속 이론이 나오고, 푸드갈라 이론이 나오고, 무슨 근본 식이 나오고... 많이 나오잖아요. 대승불교 쪽으로 와서도 역시 그렇습니다. 아까 스님이 말씀했던 것처럼 가령, 지옥이라든지, 윤회의 세계(육도의 세계)라든지, 또 적멸의 세계(해탈의 세계)라든지, 불보살님이라든지, 심지어 선불교에서는 삼보라든지 붓다의 삼신설이라든지 하는 그 전부를 마음차원에서 해석해버려요. 이래서는 안 된다 그거예요. 이렇게 되면 불교가 망한다는 것이지요. 그것을 누가 믿겠어요. 이렇기 때문에 인도에서 쫓겨나왔는데 말입니다.
그러면 영산불교에서 공식적(대내외적)으로 내가 '아난이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내말을 어떻게 합니까? 그런 사람이 아니고는 말할 수 없는 거예요. 그런 사람이 아니고는 저 적멸의 세계라든지, 대적정삼매에 들 수가 없는 거예요.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우리 신도 중에서 어떤 남편 이야기예요. 성명은 생략합니다. 어떤 모 사장이 50대에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어요. 그 부인 되는 분이 선근이 있어요. 그래서 우리 영산불교를 책자를 통해서 알고, 우리 신도가 된 지가 2, 3년 됩니다. 49재를 의뢰해왔어요. 그 부인되시는 신도분이(보살님이) 대단히 착하고 진실하고 전생에 선근이 있어요. 그래서 신경을 써서 천도재에 임했습니다.

그 남편의 49재는 그분이 살았을 당시에 다녔던 절에서 했으니까 아마 49재가 지나갔을 거예요. 우리 현지사에서 새로이 천도재를 하면서 보니까 무주고혼으로 있어요. 명부를 못 들어갔어요. 이런 이야기는 지금의 불교가 전혀 모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들어보지 못했으니까 돌았다든지, 묘한 말을 한다든지 해가지고 색안경을 쓰고 본다 그거예요.
지금의 불교가 이렇게 되어버렸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 무주고혼이 된 그 남편을 붙들어 왔지요. 붙들어 오는 것도 정말로 능력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아시죠? 그 남편 되시는 분은 자수성가를 해가지고 돈을 많이 벌었어요. 그러니까 사랑하는 처자가 있지, 돈이 있지 하니까 죽어서 무주고혼이 되는 거예요.

무주고혼이 되는 4가지 이유가 있다고 했지요. 어쨌든 무주고혼이 되어있어요. 그래서 잡아다 놓고 ‘당신, 명부를 들어가라. 명부로 들어가지 않으면 당신이 지금까지 지은 업이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죽으면 저 불바다 지옥으로 간다. 그러니 말을 들어라’ 하니까 말을 잘 안 들어. 이 몸뚱이가 그대로 가니까 자기가 죽은 줄도 몰라. 전혀 모릅니다. 모르는 거예요. ‘당신은 죽었다. 자, 봐라.’ 그래가지고 큰스님의 영혼체가 큰스님의 몸에서 쏙 빠져나와가지고 보여줍니다.
그 영혼체는 빛덩어리이기 때문에 눈이 부셔서 상하니까 빛을 흡수해버립니다. 그러면 빛이 아롱아롱해요. 보여주면서 이것이(영혼체가) 바로 내 몸속에서 나왔잖느냐. 당신도 그래. 지금 당신도 그랬어. 죽었는데 지금 죽었다는 것을 몰라. 나 들어간다 하고 쏙 들어가거든. 또 나가고 하니까 이제 알아.

그제야 ‘아! 그렇습니까’라고 한단 말이에요. ‘이 큰스님 말을 안 들으면 당신은 업이 지중하니까 저 불바다 지옥으로 간다’고 하니까, ‘아! 그러냐’고 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들어가거라. 들어가고, 저 사랑하는 처자를 위해서 네가 몰래 감춰두었던 돈, 모든 통장(사후에 형제들 끼리 재산다툼도 있잖아요. 그걸 막아주기 위해서입니다)등 모든 것을 갖다 줘라.

그러니까 그 사장이 모든 통장이며 도장, 자기의 통장이며 도장 등 모든 것을 갖다가 자기 부인한테 안겨주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지금 한 몇 십일 동안 부인 몸속에 들어가 있었는데 그 기를 빼라. 그것을 빼야 됩니다. 그래야 환영(幻影)이 없어집니다. 주~욱 빼가지고 한 짐 짊어지고 명부로 갔어요. 그 부인 되시는 분이 착하고, 신심이 있고, 선근이 있어서 그 남편의 천도재를 몇 번 해서 지금 제3하늘에 있습니다.

우리 신도분들, 이 법문을 듣고 계시는 우리 불자님들, 영혼체라는 것이 우리 인간 중생의 윤회 주체입니다. 윤회의 주체입니다. 이 윤회의 주체를 아무도 모릅니다. 앞에서도 말씀했듯이 깊이 공부를 많이 하고, 착실히 하고, 바르게 하고, 그리고 선근공덕을 지어야 현상세계에서 본체계로 들어갑니다. 윤회에서 벗어난다는 말이어요.

그런데 이 윤회에서 벗어나는 분들이 얼마나 됩니까? 혼자 공부해가지고는(자력으로는) 어렵습니다. 자력으로는 어려운 거예요. 자력의 한계가 윤회를 벗어나는 아라한 자리인데, 아라한 되기가 어려운 거예요.

다만, 부처님의 가피로(위신력으로)해서 저 본체세계(적멸의 세계)로 갑니다. 보살이 되고 그러는 것입니다. 우리 부처님의 능력은 정말 무한하더라 그거예요. 왜 그러느냐? 이제 적멸의 세계를 이야기할 때 말씀을 드리겠지만, 우리 부처님의 능력은 상상할 없습니다. 그래서 '우주적인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우주적인 능력을 지니고 계시더라. 지금 그 많은 붓다님들을 전부 없다고 하네. 상징으로 봐버려요. 비유로 봐버려. 그런 세상이 되어버렸어.

그런 불교가 어떻게 크겠습니까. 진리 아닌 것은 죽는 거예요. 진리는 반드시 살아나는 거예요. 우리 현지사 3, 4년 밖에 안 되었지만 사방에서 엄청나게 시기 질투가 심합니다. 이게 TV석상이라서 자세히 말을 못하는데, 외압이라고 할까 시기 질투가 너무도 심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성장해왔잖아요. 앞으로 정말 클 것입니다. 아무리 사방에서 우리가 잘 되는 것을 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성장할 것입니다. 우리 부처님 말씀이, 정말로 진짜 부처님 사상이 널리 포교 되어야 합니다. 널리 포교 되어야 됩니다.

우리 현지사 착한 우리 단월님들, 3년 5년 다녔잖아요. 그래서 업장을 많이도 씻었잖아요. 업장을 씻는 그 부분을 전혀 모릅니다. 저쪽에서는 부처님도 없다고 하는데, 무슨 업장을 씻는다고 해? 전혀 모릅니다. 이 방송, 이 말을 들으면 아마 의아해 하고, 어떤 선근이 없으면 욕하고 그러겠지요. 그러나 그런 업을 지으면 안 됩니다. 이것은 법을 능멸하고 모독하는 것입니다. 그 업은 오역죄보다도 더 무서운 거예요. 법을 능멸하고, 붓다를 모독하는 것은 무서운 업이랍니다.

무아(無我), 범어로는 아트만(atman) 앞에다가 an을 더 붙여줍니다. anatman그럽니다. 무아(無我, anatman), 현상계의 무상한 몸이 내가 아니라는 것이야.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이야. 우리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을 뿐이어. 그런데 왜 무아(無我)를 갖다가 단순하게 ‘내가 없다’라고 해석 해가지고 불교를 그 인도 땅에 설자리가 없도록 만들었느냐구요. 이 위대한 불교가(종교가) 이미 세계화 되어 있어야지요. 세계화 되었어야지. 그러나 이런 법문을 듣고, 깊이 스스로 반성하고 참회하고 한다면, 우주적인 종교인 진짜 불교가 원상대로 복원 될 것입니다.

심지어 저 사람들은 석가모니부처님 같은 위대한 부처님도 반열반에 드시면 공(空)과 계합한다 그래요.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공(空)과 하나로 되어버렸으면 어떻게 됩니까? 다시 오겠습니까? 올 수가 없지요. 공(空)과 하나로 되어버렸어. 인격적인 자아가 소멸되어 버린 거예요. 소멸되었다고 하면 어떻게 됩니까? 부처님께 다시 못 오십니다. 이렇게 해석하면 안 되지요. 큰일 날 해석이지요. 거듭 말씀을 드립니다. 본체세계(적멸세계)는 상락아정입니다.

상락아정이라고 해요. 거기는 무상(無常)하지 않아요. 상(常)이어요. 현상계인 여기는 실체가 없고, 인연이 모여서 이루어지고, 또 인연이 다해서 흩어지면 실체가 없지요. 그건 현상세계에서 이야기하는 말이어요. 그건 맞아. 그러나 적멸세계까지 들어가 봐. 거기는 아(我)입니다. 유아(有我)예요. 거룩한 보살님들이 계셔요. 부처님들은 정말로 절대계에 계시고요. 또 현상세계 윤회 안의 지옥도 영혼체가 가는 것이니까 가서 벌 받고, 또 하늘은 3번 영혼체가 간다고 했지요.
3번 영혼체가 하늘 천인으로 있단 말입니다. 그런데 유식에서는(대승불교에서의 유가행파인 법상종) 제8아뢰야식이 윤회의 주체가 된다고 합니다. 여러분, 전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식(識)은 절대로 윤회의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스님이 무슨 비유를 했느냐 하면, 식(識)이 극락을 간다? 식(識)은 느낌도 없고, 생각도 못하고, 판단도 못하고 그럽니다. 그 모양도 없는 식(識)이 떨어져 나가가지고 극락을 가서 산다? 식(識)이 행위 한다? 행위 하지도 못해. 식(識)은 과보를 받지도 않아. 다만 이 근(根)이 있어야 돼. 이 몸뚱이가 있어야 되는 거예요. 몸뚱이가 있고, 경계가 있어야 식(識)이 생기는 거예요. 식(識)이 활동을 하는 거요.

그런데 이 몸뚱이가 없다고 해버리면 영혼체(영혼을 담은 그릇, 영혼을 담은 몸뚱이)가 벌을 받고 또 극락에 가서 ‘햐! 여기는 정말로 환희로구나’한단 말이에요. 붓다가 되면 아까 무아속 환희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힌두교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브라만은(梵은) 100^7(100의 7승)의 환희 속에 있다 그러거든요. 그러니까 인간들이 누릴 수 있는 최고 쾌락의 100배에다가 지수 7승을 해줘요. 그런데 우리가 볼 때에는 그게 참 우스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붓다는 그럽니다. 범(梵)은 붓다가 아닙니다. 자기들의 말로 하자면 범(梵)은 이 현상계를 낸 소위 창조주이지요. 창조주는 없습니다. 힌두교 식으로 말하면 현상계를 낸 창조주입니다. 이 범(梵)은 공(空)입니다. 공(空)을 인격화 시킨 것이 범(梵)이어요. 범(梵)은 인간이 누리는 최고 행복, 최고 쾌락의 100^7이다라는 것입니다. 붓다의 무아속 절대세계에 들어가는 대적정삼매의 환희가 그 정도입니다. 무아(無我)를 잘못 해석 했지요.
다시 여러분들한테 바른 정의를 말씀드립니다. 현상계의 존재인 나는 무상하고, 실체가 없는 오온으로 이루어진 집합체에 불과해. 그렇지요. 무아(無我)는 실체로서의 진정한 나(我)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현상계의 나(我)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으로 무아를 이야기하신 거예요. 그러지, 나(我)라는 것은 완전히 없는 것이다. 실체가 없는 것으로 현상계의 시각에서 보지말라 그거예요. 현상계의 시각에서 불교를 다루지 마라 그거요. 적멸세계와 본체계와 현상세계를 아우르는 시각에서 불교를 다루어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이해하시겠습니까?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무아(無我)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승경전에 나오는 그 수많은 불보살을 어떻게 해석 합니까? 어떻게 해석하는 줄 아십니까?《화엄경》《법화경》이 진짜 법문인데 상징, 비유로 해석합니다. 부처님 반열반 후에 두 세 사람의 학승을 꼽으라면 용수, 무착, 세친 같은 분들을 꼽을 거예요. 무착 같은 분이 윤회의 주체를 알려고 하면서 무아(無我)를 갖다 놓기도 했지만, 윤회의 주체가 있어야 되겠거든요. 그런데 없다고 하니까 이거 도저히 알아낼 수가 없어서 자살을 결심했답니다. 자살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친구의 권유로 계속 공부를 해가지고 삼매에 들어 도솔천에 가서 미륵부처님한테 유식의 이론을 공부해가지고 왔어요.
이분을 유식학의 조(祖,鼻祖)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8아뢰야식 갖고는 윤회를 못합니다. 식(識)으로는 윤회가 안 됩니다. 식(識)은 윤회의 주체가 안 됩니다. 몸뚱이가 있어야 됩니다. 이걸 몰랐어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지금의 불교는 이대로 가면 안 됩니다. 이대로 가면 안 됩니다. 크게 공부해서 대선지식이라는 분이 출세했다고 하면 법상에 올려놔야지요. 왜 내려 버리려고 합니까? 그분의 말씀을 경청해야지요. 들어봐야지요. 정말로 한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불자들은 앞으로 모두모두 삼악도를 벗어나야 됩니다. 최소한 하늘을 가야 됩니다. 최소한 하늘, 그리고 인간세계를 왔다 갔다 하다가 부처님 회상을 만나서 윤회를 벗어나야 됩니다. 여러분, 그걸 잘 아시죠. 그런데 종래의 불교는 안 그럽니다. 붓다도 없고, 보살도 없고, 극락도 없고, 지옥도 없고, 귀신도 없어요. 영혼이 없다고 딱 성명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교화할 수가 없습니다. 도덕 윤리를 주장할(선창할) 기반을 잃어버렸는데, 어떻게 그 윤리 도덕이 가치가 있습니까? 이렇게 되면 안 되지요.

출처/2010.5.6.목요일 자재 만현 큰스님 춘천법문 (BBS불교방송 제2회)중에서 발췌








인간의 실체 그리고

육도윤회하는 업덩어리 중생


(1) 영체는 인간의 실체본체이며 윤회의 주체
인간의 실체는무엇일까요? 이 문제 대해서도
동서고금을 통해 많은 문제 제기와 다양한 논의와 논란이
있어왔습니다. 힌두교에서 비교적 정답에 가까운 해답을 내
놓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 인간의 행위 주체로서의 실체본체와
존재 이전의 차원인 본성의 문제를 혼동하고 있는 것 같습
니다. 여기 영산불교에서 한 점 의혹 없이 인간의 실체를
밝혀 드립니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육체와 영체영혼체로 되어 있습니다.
육체는 지수화풍의 4대 요소로 이루어져 있고 영체는 4개
로 겹쳐진 상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영체의 집이 바로 육
체라고 보면 됩니다.

사람이 죽으면 영체는 육신으로 부터 빠져나오게 됩니다.
착하게 산 사람이 죽으면 심장부터 머리 쭉으로 식어갑니
다. 반대로 악업을 지은 사람은 머리에서부터 심장 쪽으로
식어갑니다. 영체는 우리 일반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성자의 혜안으로는 볼 수 있습니다.

영체는 일종의 에너지덩어리로서, 의식과 기억을 가진 생
명체입니다. 원자핵 같은 소립자 보다 더 작은 초미립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입자와 파동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파동의 성질로 보면 영체는 파장이 극히 짧고 진동수가 극
히 많은 전자파 에너지의 형태를 띤 생명체인 것입니다.

네 개의 영체는 계단식으로 겹친 형태로 존재하
는데 가장 심층부의 질적 수준이 높은 영체부터 차례로 1,
2, 3, 4번 영체로 부르고자 합니다. 1번 영체가 가장 고급
영체이고, 4번이 가장 저급 영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번 영체는 감정의 영역으로서, 육체와 다른 영체를
연결하는 안테나 구실을 합니다. 저승에 못 들어가고 중음
계에서 떠도는 무주고혼의 주체로서 죽어 명부에 들어가게
되면 죽어버립니다. 음기가 성한 무당이나 천안을 얻은 아
라한 이상 성자가 봅니다. 에테르체Ether라고도 합니다.

3번 영체는 4번 영체보다 더 미세한 입자로 이루어져 있
으며 윤회세계의 주체가 됩니다. 아스트랄체Astral라고도 합
니다. 2번 영체는 윤회를 벗어난 성중해탈세계의 주체가 되
어 살아갑니다. 멘탈체Mental라고도 합니다.

가장 심층부에 있는 1번 영체는 보살8지 이상이 가는 극락
정토의 주체가 됩니다. 코잘체Causal라고도 합니다. 붓다는
네 개의 영체 모두가 빛덩어리가 되어 절대계의 불신과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합일됩니다. 아라한과나 보살과를 이루
고 입적하는 성자가 4번 영체를 버리고 가는 것과는 대조
적입니다.

붓다와 보살은 영체가 몸 밖으로 나올 때 앞쪽에서 나오
고 앞쪽으로 들어가지만, 아라한이나 중생의 영체는 옆쪽에
서 나오고 옆쪽으로 들어갑니다.

여기서 또 중대한 선언을 합니다. 그 동안 불교계에서 많
은 논란이 되어왔던 윤회의 주체에 대해 결론을 내려드립
니다. 영체 중 1, 2, 3번 영체는 영원히 죽지 않고 윤회의
주체가 되고, 동시에 해탈세계의 주체가 됩니다.
업덩어리가 붙어 있는 영체는 윤회의 주체가 되고, 업이
떨어져 나간 청정한 영체는 해탈세계의 주체가 되는 것입
니다. 이 3개의 영체 중 가장 내면의 고급 영체인 1번 영
체가 바로 나의 실체, 나의 본체입니다.

(2) 스스로 윤회의 업덩어리를 짊어진 중생
이 몸은 매미의 허물과 같이 죽어 없어지는 '거
짓 나'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거짓 나'에게 속아 한평
생 속박 속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100년도 못살고 없어
질 이 몸뚱이에 온갖 정성을 다 바쳐 호사시키려고 애쓰고
있는 것입니다.

탐내는 마음,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 이 탐 진
치의 세 마리 독사가 죄를 짓는 주범입니다. 그 중에서도
탐심이 왕독사입니다.

살생을 하고, 도적질을 하고, 사음을 하고, 망녕된 말을
하는 등 온갖 악행을 저지르게 만듭니다. 심지어 부모에 대
한 패륜과 불교, 불 법 승 삼보에 대한 훼방과 능멸 등
용서 받을 수 없는 증죄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몸이 원하는
온갖 욕구를 다 채워줘야 되니까 많은 업을 짓게 되고, 이
업은 바로 윤회의 원인이 됩니다.
중생은 이 죄업을 다겁생 동안 지어왔습니다. 자기 스스
로가 자기를 윤회의 수레바퀴를 타게 만듭니다.
중생의 어리석음은 극을 치닫습니다. 100년도 못
살고 배반할 이 몸뚱이에 대해서는 그렇게 많은 죄업을 지
어 가면서까지 호강시키려고 하면서, 영원히 죽지 않는, 우
리의 실체인 영체에 대해서는 그 존재조차 인정하지 않으
려고 합니다. 설사 인정하더라도 무관심하게 내버려두고 전
혀 돌보지를 안습니다. 그러면 영체는 어떻게 될까요?

사람이 살아가면서 죄를 짓고 업을 지으면 모두 영체에
반영이 됩니다. 몸에도 떼가 있듯이 영체에도 업의 떼가 쌓
이게 됩니다. 온갖 더러운 죄업의 쓰레기며 오물들이 덕지
덕지 달라붙습니다. 몸의 떼는 보통 자주자주 씻어주지만
게으른 거지들처럼 안 씻고 오래두면 떼가 굳어 단단해지
고 나중에는 피부의 일부를 이루게 됩니다. 그래서 벗셔 내
려면 피를 흘리는 고통을 감수해야 합니다.

영체의 떼도 마찬가지입니다. 탐욕과 집착으로 죄업을 지
어 영체의떼가 자꾸 자꾸 쌓이다 보면 굳어지고 단단해져
영체의 일부를 이루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업덩어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여러분이 이 업덩어리를 떼어
내는 것은 육체가 피를 흘리는 고통과는 비교도 안 되는
훨씬 큰 고통을 받아야 됩니다.

그 하나가 삼악도라는 고통의 세계에 가서 과보를 청산
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면 과보를 받은 만큼만 업덩이가 줄
어들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현생에서 수행하여 업장을 씻
어내는 방법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부처님의 '업장소멸'이라
는 우주적 구원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런데 육체의 때는 평생 한 번도 안 씻어봤자 기껏해야
100년 분도 안 쌓이지만 영체의 때는 수억겁을 윤회전생하
면서 수천만생의 죄업이 쌓이고 쌓여 중생은 태산만한, 지
구만한 업덩어리를 달고 다닙니다. 이 업력으로 중생은 육
도윤회를 끝없이 반복하는 것입니다. 이 무거운 업덩어리를
달고 어찌 윤회의 수레바퀴를 벗어날 생각을 할 수 있겠습
니까? 이것이 우리 중생들의 실상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요해
펴낸곳/현지사-영산불교사상연구소






영체는 업과 윤회의 주체

지옥 중생에서 붓다까지 가는 주인공
우리가 행한 선악의 행위는 업력으로 모두 영체에
기록됩니다. 동영상으로 촬영되어 보존된다고 보면 됩
니다. 내가 아무리 그 누구도 모르게 좋은 일이든 나
쁜 일이든 했다고 하면 자신의 영체에는 그 일이 기록
으로 보존되기 때문에 언젠가는 그것이 인연을 만나
밖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비밀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 말에'하
늘이 알고 땅이 안다'고 하는 말도 이런 의미입니다.
이것은 우주이법인 인연법의 인과응보적 성격입니다.
이런 불교의 가르침만 정확히 알고 있어도 우리는
죄를 지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업을
짓는 주체는 우리의 영체입니다. 영체는 항상 이 업보
따리를 가지고 다닙니다.

유식학에서는 이 업이 아뢰야식에 저장된다고 합니
다. 그러나 아뢰야식은 어디까지나 식의 개념입니다.
그러므로 업을 가지고 있는 업식으로 봐야 합니다.

식은 어떤 경우에도 주체로서의 기능을 할 수가 없
습니다. 이 부분은 나중에 상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영체를 볼 수 있는 대성자는 어느 사람의 영체만 보
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 됨됨이
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무속인들이 귀신을
보는 그런 차원이 아님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죽어서 명부에 들어가면 열시왕은 바로 우리
의 영체를 업경대에 비추어보고 심판을 하는 것입니
다. 그래서 필자는 이 영체에 기록된 우리의 모든 행
위를 인생성적표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무량의 세월을 윤회전생하면서 살아온 인
생의 총체적 성적표입니다. 우리말에 마음씨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의 인생성적표를 말합니
다. 우리의 모든 업력이 담겨 있어 인연을 만나면 언
제나 밖으로 표출될 수 있는 이 잠재적 힘을 우리는
마음씨이라고 합니다. 업의 종자씨앗가 심어져 있다는
의미입니다.

마음이 좋다고 하는 것은 전체적으로 착한 업력이
나쁜 업력에 비해 우세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
니다. 보통 우리가 마음이라고 할 때에는 때가 많이
묻은 현재의 영체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마음을 본성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것은 때가 하나도 묻지 않은 청정무구한 영
체를 말합니다.
하여튼 우리는 각자의 성적표에 따라, 죽어서 지옥
도 가고 짐승의 몸을 받기도 하며 천상에 태어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죽어서 과거생의 성적
표에 따라 가게 되는 세계는 지옥 . 아귀 . 축생 . 인
간 . 아수라 . 천상의 여섯 세계인데, 윤회를 벗어나지
않는 한 우리는 영원히 이 여섯 세계를 돌면서 살아가
게 됩니다. 이것을 육도윤회라고 합니다. 모든 중생이
지은 업력이 합해진 공동업력이 동인이 되어 바로
여섯 윤회세계를 창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생들이 지금부터 하나도 죄를 짓지 않고 착한 일만
하게 된다면 지옥이나 아귀, 축생의 3악도는 없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섯 세계를 살아가는 경로는 업
에 따라 다양하게 정해집니다. 여섯 세계 중 몸과 영
체가 함께 살아가는 경우는 인간과 축생이고 나머지
네 세계는 영체만으로 살아갑니다.

동물 중에는 영체가 들어가는 동물만 윤회를 합니
다. 영체는 12띠류 동물용은 제외에 들어갑니다. 일반적
으로 포유류에 들어간다고 보면 됩니다. 그 외에도 조
류 . 어류 . 양서류의 일부에 들어갑니다. 곤충류에는
영체가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모기 . 벼룩 . 하
루살이와 같이 영체가 들어가지 않는 미물은 자연생
자연사합니다.

사람이 죽어 지옥을 가고 축생도 되고 천상세계도
가는 것은 내 마음 차원의 문제가 결코 아닙니다. 닥
쳐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아주 먼 나라의 이야기도 결
코 아닙니다. 우리가 죽으면 닥쳐올 가까운 미래의 현
실입니다. 우리의 삶의 지평선을 육도윤회세계와 해탈
계로 넓히는 것이 인간 생사관의 핵심입니다. 이것이
바로 불교 생사관의 출발이고 끝입니다. 이 육도윤회
의 고통을 벗어나 해탈을 하는 것이 바로 불교 수행의
목표입니다.

그 목표의 종착역은 최고의 해탈계인 무아속 절대계
의 주인공 - 바로 붓다가 되는 것입니다. 종착역에
도달했으면 다시 되돌아와 무명에 빠져 허덕이고 있는
중생들의 손을 잡아 붓다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 보살
행입니다. 세상을 구하는 것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입
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사바세계에 오신 뜻입니다.
일대사 인연의 의미입니다. 부처님을 대신하여 이 사
바세계에서 보살행을 하고 계시는 네 분의 붓다님이
바로 문수보살님 . 보현보살님 . 관세음보살님 . 지장보
살님입니다. 이 네 붓다님들은 우리 중생들을 위해 너
무나 큰 보살행을 하고 계시므로 실제로 큰 붓다님들
이지만 우리가 보살님으로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불교는 이렇게 세상을 구하는 위대한 종교입니다.
그리고 그 정점에 우리 불세존께서 계십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업을 짓는 주체는 영체이고
과보를 받는 주체도 영체이며, 윤회를 하는 주체도 영
체이고 해탈을 하는 주체도 영체이므로, 영체는 아래
로는 지옥 중생에서부터 위로는 붓다에 이르기까지 가
야 하는 머나먼 여정의 주인공이라는 것입니다.



출처/영산불교와 본문묘법연화경
펴낸곳/현지사-영산불교사상연구소

2010년 7월 30일 금요일

무주고혼 영가

무주고혼 영가


죄업을 많이 지은 사람들이 죽으면 상당수가 명부에 들어가지
못하고 무주고혼으로 지냅니다.
객사한 사람, 자살한 분들, 몹쓸 병을 얻어 대소변 가리지 못하
고 죽은 이들, 처자에게 착이 많은 영가들의 대부분은 윤회에 들
지 못하고 명부에도 들지 못합니다.

이런 영가들은 반은 사람, 반은 귀신이기에 춥고 배고픕니다. 이
런 고혼들은 식색등의 기본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해, 인연 있
는 자손의 몸에 빙의 합니다.

여기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런 조상의 영가가 빙의
된 자손은 객사하고, 자살하고, 몹쓸 병을 얻습니다.
이런 불행을 막기 위해서 천도재가 필요하지만 완벽한 천도재를
감당할만한 큰스님이 없는 게 문제입니다. 인간이나 하늘천상에
태어나도록 할 수 있는 길이 있는 데도 말입니다.

부처님 당시 10대 제자인 목건련은 당신의 어머니를 4번 천도해
드림으로써 하늘천상에 태어날 수 있게 했습니다. 이 일은 거룩하
신 부처님께서 주관하셨던 천도재였기에 가능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지은 업을 소멸시킬 수 없습니다. 어느 정도의 수
행이나 참회 보살행에 의해 정화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부처님의 위신력에 의해서만이 중생의 죄업이 소멸됩니다.

또한 부처님만이 지옥 축생의 중생을 건질 수 있습니다. 부처
님의 위신력, 우주적인 구원의 힘에 의해서만 중생이 제도되는 것
입니다. 아라한도, 보살도 이 일만은 못합니다.



지옥 지장보살과 열시왕이 관장


지옥은 지장보살이 관장하는 곳으로, 남방의 지장궁 옆에 위치
해 있습니다.
상품보살 이상 붓다권 내에 든 대수행인은 삼매 속에서 지옥을
봅니다. 공을 깨친 후 무아 속 삼매에 들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착이 남아 있어서 망상을 떨치지 못하는 수행인이라면 선
정에 들어서도 지옥의 진상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런 수준의 선정으
로 보여지는 것은 요술쟁이의 마음이 그린 거짓 지옥 에 불과하
고, 진짜 지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장보살은 '붓다 중의 붓다' 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붓다
이십니다. 열시왕은 상품보살들이십니다. 무독귀왕, 도명
존자는 상품보살 이상의 불격을 갖춘 상수보살급이십니다.
무간지옥이나 극무간지옥에서 온 영가는 지옥의 옥졸이 쇠사슬
로 묶어서 데려옵니다.

보통 천도재의 결과는 수일 후에 나옵니다. 부처님들의 위신력
으로써 올리는 천도재는 영가 모두를 특별히 지장궁 별당으로 구
인해 갑니다. 그러나 죄업이 지중해 무간지옥에 떨어진 영가는 천
도가 거의 안 됩니다.

오직 부처님은 대자대비하시고 우주적인 무한한 능력을 구족하
시지만 사바세계 남섬부주의 당대에 붓다 이룰 그 제자의 집전 발
원에 의해서만이 악도에 빠진 중생을 건질 수 있습니다. 태양빛이
쨍쨍 내리 쬐더라도, 화경불록렌즈을 조정해야만 검정 헝겊을 태우
듯, 큰 제자라는 인연을 만나야 지옥중생이 구제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전제할 것이 있습니다. 먼저 영가의 이름으로 공덕을 짓
도록 많은 불 보살께 먼저 공양을 드리는 겁니다.
이런 천도재를 모셔드리는 공덕은, 그 어떤 공덕보다 수승합니다.
영가 당사자들의 지은 업장이 씻어져서 보다 나은 세계로 천도
될 뿐 아니라, 천도재를 모신 이는 자손으로서 그만큼 큰 효를 해
드려서 더욱 좋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직도 중천을 떠도는 조상의
고혼들을 명부에 넣어줌으로써 후손이 나쁜 병을 얻지 않고, 자살
또는 횡사하지 않아서 다행인 겁니다.

물론 모든 나쁜 재액, 천병이 영가의 빙의에서 비롯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기본적으로는 우리들 사람이 전생에 지은 큰
악업으로 인해 여러 재앙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분명히 알아두셔야 할 점은, 천도재를 집전하는 스님이 최소한
청정한 비구스님이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째도 청정이고, 둘째
도 청정입니다.
이제 승려의 양심으로 돌아가 상업화 되어가는 천도재는 즉각
중단해야 할 것입니다. 더 이상의 죄업을 짓지 않기를 바랍니다.
능력 없이 천도재를 많이 하는 사찰은, 저급 영가들의 역겨운 냄
새와 사악한 기가 가득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귀신들이
꽉 차 있고, 귀신들이 득세하여 이미 성지가 아닙니다. 사찰은 청
정도량이어야 합니다. 절을 위해서도 상업화딘 천도재를 멈춰줄
것을 간절히 당부 드리는 바입니다.

적어도 아라한과에 증입할 때까지는 사생결단 외길을 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물 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나옹 혜근-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2010년 7월 28일 수요일

선불교의 한계

선 불교의 한계


선 불교에서는 인연을 멸하여 생각의 생멸까지 쉬게 하
는 것을 수행의 요체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의
생멸을 그치게 하는 것은 큰스님께서 말씀하신 바 아라한위나
잘해야 보살위에 지나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더욱 아쉬운 사실
은 오늘날의 간화선 수행법으로는 아라한 이상으로 높이 올라
갈 수 없는 것이 현실적인 수행자들의 실정임을 여실지견으로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화두선은 자력으로 자신을 구원해 나가는 수행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화두선 또는 간화선을 통해
서 많은 부작용이 발생해서 정신병, 주화입마, 상기병 등에 걸
린 수행자들이 적지 않다고 수행자들 간에 은밀히 회자되고 있
다고 합니다.

선 불교의 폐단은 너무 편협하고 독선적인 아성을 구축
하고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또 넌센스식의 화두를 제시하여
수행자들의 마음을 너무 많은 시간 동안 미로 속에서 헤메게
만드는 폐단을 지니고 있습니다. 결국 얻는 것은 흔히 말하는
대오각성, 즉 견성의 완성을 통해 얻은 아라한위까지입니다. 무
엇보다도 오늘날의 선사들의 가르침에는 원시불교를 아름답게
수놓은 석가모니부처님의 자비심을 찾아보기가 참으로 어렵다
는 것입니다.

반면 염불은 실제로 부처님의 칭호를 염송하는 것으로서 직
접 부처님의 위신력과 가피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칭호를 염송하는 염불 수행이 선 수행법 보다 못하다면 부처님
의 위신력에 우리는 회을 가져야할 것입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것이 사실이며 실재로 과거에도 수행승들께서 아미타부처
님을 30년 간 지극 정성으로 염불하여 절 천장을 뚫고 날아서
극락 왕생했다는 이야기까지 전해오고 있습니다.

지금도 아미타불을 찾는 염불선이 많은 영험이 있다고 네티
즌 수행자들 간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염불선의 위신력
이 선 수행보다 우월함은 당연한 일입니다. 물론 염불선도 큰
스님의 지도에 따라 제대로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염불
선도 외도 기운의 영향을 받아 잘못된 길을 걸을 수 있기 때문
닙니다.

2500년 전 부처님이 이 세상에 몸을 입고 오셔서 전해주
신 위빠사나 수행이나 아나파니사띠 수행법도 좋은 효험이 있
음을 인정합니다. 다만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에서 설파한
대로 부처님의 칭호를 염송하는 칭명염불이 무엇보다도 중요함
을 강조하는 바입니다. 앞으로 큰스님께서 주창하신 칭명염불선
은 새로운 불교 수행의 중흥을 이루고 새로운 불교 문화를 꽃
피우고 창당하는데 크게 이바지할 것이라 확신합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



 
 

비아 윤회설

영산불교는
비아非我윤회설이 부처님의 정법임을 선언한다




-2500년간 잘못해석된 '무아無我'를 비판하면서




1. 무엇이 문제인가?

부파불교시대부터 지금까지 불교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논란을 불러일으켜 오고 있는 주제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무아와 윤회주체"의 문제입니다.

학자들이 주장하는 논점의 요지는 '윤회의 주체를 인정하는 것은 고정불변하는 실체적인 나를 인정하는 것이 되므로 이것은 무아이론과 양립할 수 없다' 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윤회를 하려면 항상 동일성을 유지하는 주체(실체,본체)가 있어야 하는데 불교의 무아이론은 “나라고 하는 고정불변하는 주체”가 없다고 하니 무아와 윤회주체이론은 서로 모순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논리라면 두 가지 중에 하나를 포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무아이론과 윤회는 불교의 근간이 되는 것으로서 한 가지라도 포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무아를 잘못 이해했다는데 있습니다.

어떤 학자는 이러한 잘못된 무아론을 전제로 윤회이론을 포기해야 된다는 이론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윤회이론을 포기하면 그것은 불교가 아닙니다. 이 문제는 더 이상 언급할 가치조차 없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불교학자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무아와 윤회주체이론을 양립시키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그래서 부파불교시대에서부터 논사들은 두 가지가 양립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윤회의 주체가 없으면서도 윤회가 가능하다는 여러가지 이론들을 개발하여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른 바 무아윤회이론입니다. 이에 비해 윤회의 주체가 있다고 주장하면 유아윤회이론 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무아윤회를 주장하는 이론들은 대부분 윤회의 주체가 아니라고 하면서도 심식류(心識類)의 어떤 존재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부파불교시대의 근본식 사상(대중부), 푸드갈라 이론(독자부), 유분식 사상(상좌부), 세의식 사상(경량부) 등이 그러한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후에 대승불교에 이르러 무착,세친을 중심으로 전개된 유식이론에서는 아뢰야식을 윤회의 주체로 보는 것으로 대체적인 결론이 나게 되고 이것이 지금 불교계의 대세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두는 잘못된 이론입니다. 심식류(心識類)는 어떠한 경우에도 결코 윤회의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2. 무엇이 잘못 되었나?

(1) 무아에 대한 잘못된 해석-무아(無我)의 정확한 의미는 비아(非我)

무아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상계의 모든 존재는 항상 변하기 때문에 영원히 변하지 않는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나”라는 존재도 오온이라는 다섯 가지 요소가 결합되어 이루어진 것으로서, 이 몸은 결국 늙고 병들고 죽어 없어지기 때문에 나의 실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진정한 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를 현상계에는 ”나의 실체(진정한 나)가 없다” 라고 말하면 “무아(無我)”가 되고, 이를 “나의 실체(진정한 나)가 아니다”고 하면 “비아(非我)”가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무아라고 하게 되면 나의 주체가 아예 없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지금 불교계의 무아에 대한 해석도 이런 오류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비아”라고 하는 것이 현실적인 나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또 다른 나의 진짜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에 보다 이해하기 쉬운 용어로 생각 됩니다. 그러면 부처님께서 왜 무아라고 가르쳤을까요? 이는 부처님께서 중생들이 너무나도 “나”에 집착하여 온갖 탐욕을 일으키고 그 결과 생로병사와 윤회전생의 고통을 겪어야 하기 때문에, 무아란 가르침으로 “나”라는 집착에서 벗어나게 하여 고통에서 구제해주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부처님의 가르침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2) 현상계에 국한된 무아 개념을 본체계까지 잘못 적용- 본체계는 아(我)

무아란 개념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상계에 국한된 이야기입니다. 우주법계는 현상계와 본체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윤회세계는 현상계입니다. 이에 대해 완전한 해탈을 이룬 세계를 본체계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보살이나 붓다의 세계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무아라는 개념은 현상계에 국한된 말입니다. 이를 본체계까지 확장해서 적용하면 안 됩니다. 지금 불교계에서 무아를 잘못 해석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부분입니다.

우리는 보통 현상계에 대한 본체계의 특징을 한 마디로 상락아정(常樂我淨)으로 표현합니다. 열반에 따르는 네 가지 덕(涅槃四德)이라고도 말합니다.


현상계 본체계

제행무상(諸行無常) ⇒ 상(常)
일체개고(一切皆苦) ⇒ 락(樂)

제법무아(諸法無我) ⇒ 아(我)

번뇌오염(煩惱汚染) ⇒ 정(淨)


이렇게 서로가 대비되는 현상계와 본체계인데 지금의 불교계는 현상계에 한해 적용되어야할 “무아”개념을 본체계까지 적용하여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엄연히 존재하는 실체인 본체계의 “아(我)” 까지 부정해 버린 크나큰 과오를 범하고 있습니다. 이는 불교의 존재이유를 부정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지금의 세계 불교계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리도 왜곡해 왔으니 크게 반성하고 참회해야할 것입니다.

3. 무아 해석의 잘못으로 어떤 문제가 발생하게 되나?

(1) 윤회의 주체가 없어도 된다는 무아윤회이론은 우주 이법인 인과법에 위배됩니다. 진리의 불교가 우주이법을 위반할 수 있습니까?

인연법(인과법)은 우주이법입니다. 그리고 중생은 육도윤회를 한다고 하는 것 또한 인생의 진리입니다. 사람은 착한 일 많이 하면 천상 등의 즐거운 세계로 가고 악한 일 많이 하면 지옥, 축생 등의 악도로 가게 됩니다. 그러면 당연히 행위를 한 자가 과보를 받아야 합니다. 행위를 한 자와 과보를 받는 자가 확실하게 같아야 함은 가장 기본적이고도 핵심적인 요건입니다. 이것은 우주법칙입니다.

그러므로 동일성이 항상 보장되는 윤회의 주체 또는 본체가 반드시 있어야 하며 그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윤회의 주체가 없어도 된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우주이법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입니다. 윤회의 주체 없이 연기적 흐름으로 윤회가 가능하다는 의견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이론입니다. 우주이법은 칼날같이 명쾌하고 분명하게 적용되는 자연법칙입니다. 그러므로 애매모호한 윤회주체이론은 있을 수 없습니다.

(2) 식(識)은 윤회의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생각하고 판단하는 기능이 없는 식이 어떻게 윤회의 주체가 된단 말입니까?

부파불교에서나 대승불교에서 주장하는 식(識)은 명칭여하를 불문하고 결코 윤회의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윤회의 주체가 되려면 눈·귀·코·두뇌 등을 가지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기능을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식(識)자체는 그러한 기능을 가질 수 없습니다. 식(識)은 우리가 신체적 기관을 가졌기 때문에 그들 기관과 객관적 대상이 만나 상호 작용하여 생기는 것이지 신체기관과 독립된 식(識)이 따로 주체로서 존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사람이 죄를 지어 감옥에 간다면 내 몸에서 식(識)을 따로 떼어 감옥에 보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유식학에서 말하는 아뢰야식도 아뢰야식을 가지고 있는 어떤 주체가 있어야지 아뢰야식 자체가 주체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식(識)을 가지고 있는 주체가 바로 영혼체입니다.

(3) 윤회주체를 부정하면 영혼체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영혼체가 없다고 한다면 인간문제 해결을 본질로 하는 불교의 존립기반이 무너지지 않을까요?

식(識)을 가진 영혼체가 윤회의 주체입니다. 그런데 무아윤회는 윤회주체인 이 영혼체를 부정합니다. 영혼체는 영원히 죽지 않는 인간의 실체로서 본체계의 존재입니다. 인간문제 해결이 불교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데 이 인간의 실체인 영혼체를 부정해 버린다면 불교의 존립기반이 완전히 무너지고 수많은 문제가 파생됩니다. 이 중차대하고 많은 문제들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요?

(4) 무아라고 영혼체를 부정하면 육도윤회도 해탈론도 사실상 성립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불교의 존재이유가 있을까요?

불교 수행의 목적은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 고통이 없는 해탈계로 가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윤회하는 주체인 영혼체도 해탈계로 가는 주체인 영혼체도 없다면 결국 육도윤회도 부정하고 해탈도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를 위해 무엇 때문에 수행하고 해탈을 이루려고 합니까? 대상주체도 없는데 말입니다. 나의 주체인 영혼체가 있어야 윤회를 하든지 해탈을 이루든지 할 수 있을 것 아닙니까? 부처님께서 중생의 고통을 구제하기 위해 6년 동안 그렇게도 혹독한 고행·난행을 하여 위없는 깨달음을 이루신 것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영혼체를 부정하면 불교가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5) 영혼체를 부정하면서 천도재는 무슨 이유로 지내는지요? 천도재를 지낼 때만 영혼체가 존재하나요?

최근 한국 불교계를 대표하고 있다고 하는 어느 종단에서 발간한 금강경 표준해설집에서도 인간의 영혼체를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습니다. 금강경에 나오는 4상(四相)인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중 수자상을 영혼으로 해석하고 이 4상을 모두 극복해야할 관념이라고 말함으로써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영혼을 부정하면서도 대부분의 사찰에서 천도재를 지내고 있습니다.

영혼체가 없다면 지옥 가는 주체도 짐승이 되는 주체도 없는데 무엇 때문에 천도재를 지냅니까? 누구를 천도시키기 위한 천도재인지요? 천도재를 지낼 때는 영혼체가 있고 그 외의 경우는 영혼체가 없는 것입니까? 필요할 때는 있고 필요 없을 때는 없는 그런 것이 영혼체인가요? 돌아가신 분을 위해 극락왕생하라고 염불은 왜 합니까? 부처님께서 영산 당시에 목련존자 등 여러 제자의 어머니를 천도시켜 준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이런 모순들에 대한 명쾌한 해명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6) 영혼체를 부정하면 불보살의 존재도 부정하는 것입니다. 왜 불교를 믿어야 하는지요?

영혼체를 부정하면 본체계에 존재하는 실체를 부정하게 되므로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계로 간 성자들의 존재마저 부정하게 됩니다. 불교 경전에 나오는 그 수많은 부처님, 보살님들을 부정하고 어떻게 불교를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법화경과 화엄경에 나오는 부처님의 엄청난 위신력은 모두 소설이나 비유로 본다는 말입니까? 특히 붓다가 되면 생기는 세 가지 몸 중 보신불은 네 개의 영체가 들어간 빛의 인격체로서 우리가 믿고 의지해야하는 본불입니다. 이런 부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 불교는 불교가 아닙니다. 불공을 드릴 필요도 없고 예불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7) 영혼체가 없다면 제사를 지낼 필요가 있을까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조상을 잘 섬기는 미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하나의 예가 돌아가신 조상에 대해 제사를 지내는 일입니다. 제사는 돌아가신 분의 영혼에게 음식을 공양하고 예를 올리는 의식입니다. 제사 때 오는 영혼은 불교에서 말하면 저승에 못 들어간 영혼입니다. 무주고혼(귀신)이라고 합니 다. 따라서 영혼체를 부정한다면 제사를 지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8) 영혼체가 없다면 부모의 수정시 무엇이 육신을 받는지요?.

영혼체는 인연에 따라 부모를 찾아 수정시 들어가게 됩니다. 이 때 식(識)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식(識)을 가진 영혼체가 들어갑니다. 영혼체가 육신을 받는 것입니다. 네 개의 영혼체 중 세 개의 영혼체가 들어가고 가장 바깥 쪽에 있는 4번 영혼체는 모태 안에서 생깁니다. 태교의 대상도 영혼체이지 식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영혼체가 없다고 하면 안됩니다.
(9) 영혼체가 없다면 어떻게 업의 주인을 찾을 수 있나요?

영혼체는 업을 가지고 다니는 주인입니다. 영혼체가 없다면 업(業)을 가지 고 다녀야할 주인이 없어집니다. 업은 어디에 보관이 되고 그 주인은 어떻 게 찾을수 있나요? 부처님은 주인도 없는데 누구를 위해 업장소멸을 해 주시나요?
(10) 무아라 하여 열반하면“나”란 인격주체마저 완전히 없어진다면 누가 열반을 원할까요? 다음 세상에 어떻게 육신을 받나요?

열반하면 우주 본성인 공(空)에 “나의 실체”까지 완전히 녹아버리고 아무것도 없는 것이 무아이론이라면 과연 그런 열반을 하고 싶고 해야할 이유가 있을까요?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데 다음 세상에 어떻게 육신을 받아올 수 있을까요? 영혼체가 없다고 하니까 이런 골치 아픈 문제가 자꾸 생기는 것이 아닐까요?

(11) 본체계의 아(我)를 부정하면 불교의 위대성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불교가 다른 종교와 같은 차원이기를 진정 원하는 것은 아니겠죠?

무아라 해서 본체계의 아(我)까지 부정해 버리면 불교는 왜소화 되고 다른 종교보다 위대하다고 주장할 수가 없습니다. 불교는 육도윤회세계 뿐만아니라 아(我)의 세계인 해탈계에 대해서도 완벽한 지식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단순히 우주본성인 공(空)을 깨친 차원인 견성의 단계는 다른 종교도 다 말할 수 있고 체험할 수 있는 차원입니다. 그러나 거기서도 백천만리 더 들어간 정토계, 정토세계에서도 백천만리 더 들어간 절대계는 불교의 위대성을 주장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차원의 본체계입니다. 다시 말하면 불교는 이런 차원의 보살을 내고 붓다를 내는 종교이기에 위대한 것입니다. 공(空)과 100% 계합한 붓다의 차원에서만 창조주적 능력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12) 영혼체는 해탈을 이룬 대성자가 볼 수 있습니다. 하다못해 무속인도 볼 수 있는 영혼체를 없다고 하면 되겠습니까?

인간의 영혼체는 우리들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해탈을 이룬 대성자들은 영혼체를 직접 볼 수가 있습니다. 물론 영혼체와 대화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다고 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이런 성자들의 말씀을 믿고 영혼체의 존재를 믿어야 합니다.

하다못해 무속인도 볼 수 있고 빙의된 사람도 볼 수 있는 이런 영혼체를 없다고 하면 되겠습니까?


4. 힌두교와 기독교의 비판에 바르게 대응하지 못한 불교

(1) 힌두교측의 “무아” 비판에 잘못 대응한 것이 불교 쇠퇴의 한 원인

① 힌두교의 불교 무아이론에 대한 비판과 대응

힌두교측에서 불교를 비판할 때의 관점은 불교는 무아를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윤회의 주체나 해탈을 성취하는 주체는 무엇이냐고 질문하면서 무아사상과 윤회주체와의 모순을 지적하고 비판합니다.

이러한 힌두교의 비판에 대해 불교는 이 두 가지를 양립시키려고 온갖 이상한 논리를 동원해서 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누가 봐도 궁색하기만 합니다. 한 마디로 엉터리 논리를 개발하여 대답한 것입니다. 이것은 이후 인도에서 불교가 쇠퇴한 주요한 원인의 하나로 작용합니다.

무아는 현상계에 국한된 이론이라는 것과 윤회의 주체는 본체계의 영역에 속하는 영혼체라는 사실을 명쾌하게 제시하고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었더라면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영원한 안락을 누리는 해탈의 세계로 갈 수 있는 “나의 주체”가 없다면 누가 불교를 믿으려 하겠습니까? 이는 오늘날 불교가 서구로 뻗어나가 활성화 되지 못한 이유 중의 하나가 되기도 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② 힌두교의 아트만과 불교의 영혼체

힌두교에서는 범(梵)에서 우주만물이 나온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범이 다시 개별적인 주체 속으로 들어간 것을 아트만(Atman)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범과 아트만은 하나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아트만이 윤회의 주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아트만은 범과 같으면서 개아(個我)이기도 한 것입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아트만이 범(우주 본성)과 같다면 아트만은 행위를 할 수도 없고 업을 지을 수도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트만은 개별적인 자아로서 업을 짓기도 하고 과보를 받기도 하는 윤회의 주체라고 합니다. 상당히 이중적이고 모호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의 윤회주체인 영혼체는 매우 구체적이고 확실한 개념입니다. 네 개의 영혼체 중 가장 바깥 쪽에 있는 영혼체(4번)를 제외한 세 개의 영혼체(1·2·3번)는 영원히 죽지 않고 윤회의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안 쪽에 있는 높은 차원의 영혼체(1번)가 인간의 본체라고 확실하게 말합니다. 그리고 영체와 우주 본성과는 다른 개념임을 밝힙니다.

그리고 힌두교에서는 육신에 존재하는 아뜨만을 바로 자신이라고 깨닫게 되면 이는 곧 범과 하나가 되어(梵我一如) 해탈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공을 깨친 수준으로 해탈의 수준과는 또 다른 경지라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해탈의 차원도 상당히 다른 차원이 있다는 것을 명확히 모르고 있다는 점은 힌두교의 한계라고 하겠습니다. 또한 사람을 행위(業)에 의해 판단하지 않고 출신성분에 따라 고착화 시켜버린 사성제(四姓制)는 큰 잘못이라고 보겠습니다. 아울러 동물의 피로 제사를 지내는 것도 잘못된 의식입니다.

(2)“영혼은 없다”라는 당시의 잘못된 불교교리를 가지고 논쟁을 벌인 기독교측과 영혼체 없음을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고 잘못 대응한 불교

19세기 후반 스리랑카에서 있었던 “불교와 기독교의 역사적 대논쟁”에서 기독교측이 '영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불교의 교리로 전제하고 공격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이 당시 기독교측에서 윤회문제와 직접 관련지어 이 문제를 거론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역사적 사건에서 불교의 교리상에 영혼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당당하게 세상에 알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점이 못내 아쉽습니다. 이 영혼체 논쟁에서의 우문우답(愚問愚答)에 대하여는 실소를 금할 수가 없습니다. 기독교측에서야 당시의 불교교리대로 질문한 것이니까 우문이라고까지 할 것은 없지만 정법불교의 입장에서 보면 결과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불교의 부끄러운 한 단면입니다.




5. 무아와 윤회주체 문제에 대한 결론

(1) 무아의 바른 정의는 “현상계의 존재인‘나’는 오온의 집합체에 불과하여 실체로서의‘진정한 나’가 아니다”라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무아를 바르게만 이해한다면 무아이론과 윤회주체 간에 모순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비아(非我)의 개념에 보다 적합하지만 무아의 용어 속에는 현상계의‘나’에 집착하지 말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담겨져 있습니다.

(2) 무아를 잘못 해석하여 본체계영역에 해당하는 영혼체까지 없다고 하는 것은 불교의 존립기반을 흔드는 외도의 교설(敎說)이나 마찬가지입니다.

(3) 윤회의 주체가 없어도 된다고 하는 것이 무아윤회설이라면 이는 우주이법인 인과법을 무시하는 대망언입니다. 그러므로 유아윤회설이 맞습니다.

(4) 생각과 판단을 하는 기능이 없는 심식류(心識類)는 어떠한 경우에도 윤회의 주체가 될 수 없으며 식(識)의 주인인 영혼체 만이 윤회의 주체이고 동시에 해탈의 주체가 됩니다.






무아설(無我說)

여러분들이 아시는 바와 같이 불교는 삼법인(三法印), 혹은 사법인(四法印), 이러한 종래에 없었던(인도 철학계에 없었던) 새로운 사상을 내놨습니다. 그 중에서 특색이 무아(無我)입니다. 제법무아(諸法無我), 여기에서 이제 무아(無我)가 나옵니다. 얼마 전에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이 있습니다.

“무아(無我)가 잘못 해석 되었느니라. 자재 만현이 맞느니라. 자재 만현은 법왕자로서 이것을 바로 잡아야 하느니라. 이것이 불교가 망한 원인이 되느니라.”

2600년이 흐르도록 그 어떤 종파(교파)에서 큰스님들이(학승들이) 무아(無我)를 ‘그저 내(我)가 없다 하는 식(단순히 내가 없다 하는 식)’으로 해석을 하고, 심지어 그런 맥락에서 육도윤회를, 그러니까 지옥 천상 아귀세계 중음세계 극락세계 그리고 불보살까지 외부현상으로 보지 않고 마음속에서(의식차원에서) 이것을 해석해왔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알아듣기 쉽게 말하자면, ‘고민 번민 고통스러운 그 자리가 지옥이고, 그 번뇌 고민이 다 사라진 자리가 극락이다’ 하는 식으로 모두 유심화 시켰습니다.

지금까지의 불교가 그래왔습니다. 이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불교의 확실한 견해이고 주장입니다. 나는 여기서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자 합니다. 현지사 영산불교 교단이 탄생 된지가 지금 3, 4년밖에 안 됩니다. 이제 BTN TV에서 말하려고 했는데 1년 계약을 했기 때문에 다 말을 못했지요.

이제 TV나 라디오가 전 국민 1,200만 명 우리 불자들에게 시청이 되고 청취가 되기 때문에 이런 문제점을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이 다음번에는 이보다도 더 중량감 있는, 정말로 중요한 불보살의 적멸세계를 들고 나올 것입니다. 이 적멸의 세계도 2600년 동안 전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것은 다음 시간에 하기로 하겠습니다.

오늘은 전번시간에 이어서 무아설(無我說)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무아설(無我說)은 너무도 중요한 문제이자 불교의 몸통입니다. 이것을 바로 잡아야 됩니다. 그래야 불교가 살아납니다. 그렇지 않으면 위빠사나든, 밀교든, 선불교든 어느 나라 불교를 막론하고 불교는 사양길에 들것입니다. 말이 안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무아(無我), 단순히 내가 없다 하는 것은 말이 안 되어요. 부처님께서는 그런 생각에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그 생각이 아니고, 현상세계의 이 몸뚱이는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오온(五蘊)이라고 하는 크나큰 요소로 인연 따라 이루어진 거예요. 이건 확실합니다. 이 몸뚱이는 인연이 다하면 오온(五蘊)은 제각기 돌아갑니다.

그러면 공(空)이죠. 실체가 없지요. 현상세계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큰스님이(자재 만현) 그 심의식, 그 생각(사람 마다마다 생각을 지니고 있잖아요)의 뿌리를 관해보니까 엄청난 소식이 있어요. 본체가 있어요. 본체가 없으면 이 현상세계, 또 이 몸뚱이는 한번 생겨났다가 없어져버립니다. 그러나 본체가 있기 때문에 우주는 성주괴공을 반복하고, 우리 사람은 생로병사를 반복하면서 윤회를 하는 것입니다. 뿌리가(본체가)있어요. 기체(基體)가 있다고요. 이걸 모릅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 ‘바로 그것이 영혼체다’하고 '영혼체 이론'을 세상에 내놨습니다. 많은 반발이 있었지요. 그러나 그 누구하나라도 당당하게 나선 사람이 없지요.

학자들은 한계가 있습니다. 과학이나 철학을 하는 사람들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 한계를 넘어야 되는데, 그 한계를 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해석에 그칩니다. 무아(無我)이기 때문에 윤회의 주체를 부정하지요. 윤회의 주체를 부정하는 2600년 동안의 불교는 육도는 맞다고 해. 그러나 지옥이라든지, 천국이라든지, 아수라, 아귀세계라든지, 중음세계라든지, 또 해탈의 저 적멸세계인 극락세계라든지, 또 보살님이라든지, 부처님이라든지 하는 이것을 객관적으로 실재한 것으로 말하지 않고, 무아설(無我說)을 내가 없다고 해석을 하니까 그것도 전부 없는 것이고, 지금까지 이 불교가 그것들을 마음차원에서(의식차원에서) 파악을 해왔다 그거예요. 이것이 문제예요.

그러니까 그러한 사상이 불교라면 인도국민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거예요. 말이 되느냐 그거예요. 무아(無我), 아무것도 없다. 이게 말이 됩니까? 현상세계에서는 무아(無我)입니다. 현상세계는 실체가 없지요. 그러나 이 생각의 근원은(토대는) 있더라 그거요. 본체가 엄연히 있더라 그거요. 그런데 왜 이것을 몰랐느냐?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학승들이 이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한계라는 것은 현상세계와 본체계입니다. 현상세계에서 본체계를 뚫고 들어가 봐야 되는데, 그런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부족하지요.

이 다음시간에 적멸의 세계를 들춰낸다고 했습니다. 눈을 떠서 적멸의 세계까지를 봐야 되는데 그러지를 못했어요. 그러지를 못하고, 부처님의 이 무아설(無我說)을 잘못해석 해버렸다고요. 잘못 해석했어. 여러분, 이게 엄청나게 중요한 문제입니다. 엄청난 문제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뭣 때문에 살아요? 나(我)가 없으면 행위 하는 주체도 없고, 생각하는 주체도 없고, 감정을 느끼는 주체도 없다고 하면 말이 됩니까? 이건 말이 안 됩니다.

그러면 죽어서 갈 놈도 없어요.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다시피, 다시 사람 몸을 받아 올 때는 부모가 교합할 때(수정할 때) 영혼체가 들어가야 되어요. 영혼체가 안 들어가면 안 됩니다. 본체가 안 들어가면 안 되어요. 여러분에게 말씀드렸지요. 지금 그것을 모릅니다. 이 핵폭탄을 능가하는 엄청난 발언인 이 선지식의 말씀을 뭉개버린다고 하면, 그런 사람들은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마땅히 무간지옥행입니다. 무간지옥에 가지요. 왜 그렇게 불교를 훼손합니까? 당초 그렇게 위대한 불교를 왜 그렇게 짓밟아 버립니까?

이런 현지사 영산불교의 사상을 우리 불자들뿐만 아니라 세계의 많은 불자들이 들어야 됩니다. 나는 그러한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불교와 인연 있는 수많은 착한 우리 단월들이 살아납니다. 악도에 가지 않습니다. 무아(無我)를 잘못 해석해 가면, 이거 적당히 살아야지요. 나(我)라는 실체가 없다면, 나(我)라는 자아(自我)가 없다면, 주체가 없다면, 죽어서 가는 것(곳)도 없고 오는 것(곳)도 없으니 뭐 적당히 살아야지요.

그런데 지금 불교가 제사(천도재)는 왜 합니까? 부처님, 보살님한테 공양은 왜 드립니까? 앞뒤가 맞지 않잖아요. 그러면 안 됩니다. 이건 불교가 아닙니다. 내가 바른말을 한다고 거부감을 가지고 도저히 방영을 못한다고 하는데, 그러면 안 되지요. 한번 들어봐야지요. 지난시간에 ‘비아(非我)가 윤회의 주체다’하고 결론을 냈습니다. ‘비아(非我)가 윤회의 주체다. 영혼체가 윤회의 주체다.’

오늘은 스님이 영혼체설에 대해서 이 세상을 향해 처음으로 자상하게 말씀드릴 것입니다. 여러분들한테는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보다 먼저 우리 부처님께서 나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간단하게 받아 적은 것을 여러분한테 읽어드리겠습니다.

“무아(無我)는 잘못 해석한 것이니라. 나는 무아(無我)를 이야기했지만 저세상이 없다고 아니했다. 살아있는 것, 언젠가 죽는다.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것이라 생각하는 것을 말했다. 하늘에 태어나거나 인간으로 오길 말했노라(처음 법문을 그렇게 했었어요. 그걸 생천설이라고 합니다). 태어나는 것도 고통이고, 죽는 것도 고통이다.

육도윤회에 돌면서 고생하는 것을 끊어주기 위해 무아(無我)를 이야기 했노라. (전번시간에 스님이 부연설명을 했을 거예요. 또 의미가 다른 말씀을 하셨습니다) 있다 없다를 확실하게 알면서 있다 없다를 초월한 자리, 더 나아가서 대적정삼매에 들어 무아(無我)의 환희는 붓다의 경계이니라. 여기까지 공부 못하고 법을 모독 능멸하여 중생을 오도한 죄는 무간지옥에 가느니라. 붓다와 법은 영원히 멸도하지 않느니라.”

출처/2010.5.6.목 자재 만현 큰스님 춘천법문 (BBS불교방송 제2회) 중에서 발췌






비아설(非我說) - 비아(非我)가 윤회한다


불교의 역사가 2600년이지요. 깊은 선정에서, 더 깊은 고요에서 볼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무량겁 전이죠? 그건 우리가 다 아셔요. 이 점만 해도 대단하십니다. 어쨌든 우리가 이 인간세계에 사람 몸을 받아와가지고 지금 살고 있잖아요. 그 2600년의 불교역사가 너무도 왜곡 되었다는 말입니다. 뭐가 왜곡 되었느냐? 여러분, 이제는 이 노래를 자꾸 불러야 되겠어요.

뭐가 왜곡 되었느냐? 이 왜곡된 부분을 그 어떤 석학도, 그 어떤 큰스님도, 그렇게도 많이 출세했던 큰스님도, 이것을 이야기 못했습니다. 이건 사실입니다. 부처님에 버금간다고 하는 인도의 '용수보살'도, '마명'이라고 하는 그 보살도(그 큰스님도), 그 다음에 200~300년 후에 출세했던 '무착', '세친'이라는 엄청난 논사도, '고법'이라는 분도 이걸 몰랐습니다. 정말 몰랐습니다.
뭘 몰랐느냐? ‘비아(非我)가 윤회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비아(非我)가 윤회하는 거예요. 무아(無我)는 윤회할 수가 없어요. 무아(無我)는 윤회의 주체가 없습니다. 무아(無我)라는 것은 나(我)가 없다는 거예요. 내가 없는데, 말할 놈도 없고 ․ 말할 주인도 없고 ․ 행위 할 주인도 없는데, 여러분들은 지금 말하고 행위를 하고 있잖습니까?

저 지금 비아(非我)를 모르는 우리 불쌍한 불교계 인사들, 생각하고 말하고 행위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그 본체를 부인한다는 것은 이건 상식이 아닌 거예요. 여러분, 나(我)가 없으면 어떻게 됩니까? 죽어서 나갈 놈도 없습니다. 태어날 때 반드시 그 식신(識身)이 와야(영혼체가 와야) 잉태(수태)가 되는 거예요. 이걸 모르면 이건 불교도 아니고, 종교도 아니고, 자격이 없는 거예요. 불교는 정말 위대한 종교입니다. 우리 영산불교, 정말로 위대한 종교올시다.

스님이 TV나, 라디오나, 세계적인 매스컴이 오면 터뜨리려고 한 거예요. 놔둔 거예요.《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권에는 싹만 보인 거예요. 2600년 동안 무아설(無我說)이 너무너무도 고착화 되어버렸어요. 이걸 때려 부숴버려야 되요. 그래야 정말로 불교가 사는 거예요. 21세기를 불교가 향도할 수 있는 거예요. 모든 불교와 모든 종교를 통합할 수 있는 거예요.

진리 앞에는 모두 다 무릎을 꿇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Ⅱ》탄에는 한 장(章)을 다루었습니다. 무아설(無我說)과 윤회의 주체에 대한 언급을 했지요. 그리고 이제 기회를 본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자기들의 걸음으로 왔어. 자기들이 온 거예요.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그걸 자르지도 말고 그대로 방영하겠느냐? 그대로 내보내겠느냐?

 두 번 세 번 내가 다짐 받은 거예요. 그러면 계약을 하자. 그래서 도장을 찍었습니다. 자세한 기록은 자기들이 해오지 않고 도장만 찍어왔더라고. 그래서 내가 웃고 말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비아설(非我說)이 나가고, 무아설(無我說)을 부정하고, 이걸 때려 부수니까 교계가 발칵 뒤집힌 거예요.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교수들이 난리난 거예요. 그럴 만도 한 것이 무아설(無我說)은 불교의 생명이올시다. 이 무아설(無我說)은 그 동안의 생명입니다.

이런 무아설(無我說)을 부정하니까 난리가 난 것이지요. 여러분, 내가 인터넷을 보니까 여러분들이 그분들 보다 더 낫더라고요. 정말입니다. 유식의 권위자라고 하는 모 교수, 어느 큰스님의 말은 이렇답니다. 그리고 모 종단의 공식 성명은 이렇습니다. ‘영혼체가 없다’하는 것이 공식 성명입니다. 본분입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야 되요. 그 사람, 소위 한국을 대표할 만한 석학이라고 하는 교수가 하는 말인 즉, ‘의식이라는 것은(심식이라는 것은, 식이라는 것은) 이 근(根)과 경(境)이 반연(攀緣)이 되어가지고 생기는 것이다.

근(根, 六根)이 없어져버리면(죽어버리면 그 말이어) 따라서 식(識)도 없어져 버린다.’ 이게 그 사람들의 생각과 주장이고, 지금까지 불교의 생각이었습니다. 이것은 정말 사설(邪說)이고, 사마외설입니다. 이 몸뚱이가 죽어버리면 영혼도 죽어버린다는 그 말이 맞습니까? 여러분, 이건 유물론적인 인식(관념)입니다. 이것은 유물론자들의 생각이올시다. 유물론에서는 생각이라는 것은 뇌의 산물이다 그럽니다. 그러니까 이 육신, 뇌가 죽어버리면 그 산물인 것은 당연히 없다(죽어버린다). 이게 유물론자들의 생각이어요. 그런데 불교의 그 생각이 그 유물론적인 생각이라고 하면, 이건 말이 안 되는 거예요. 이 불교는 더 클 수가 없는 거요.
이 무아설(無我說), 윤회설이 2600년 되었습니다. 우리 불교의 사상은 확실합니다. 그런데 이 무아(無我), ‘무아(無我)인데 어떻게 윤회하느냐’ 하고 힌두교의 여러 학파에서 막 포화를 뿜은 거예요(공격한 거예요). 거기에 대해서 부파불교의 석학들이 그걸 대답하려고(무아설(無我說)이면서 윤회 한다는 것을 양립하려고, 어느 하나를 포기해 버리면 되는데 이 두 사상은 불교의 양축이니까 이걸 둘 다 양립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연구하고 연구한 것 들이 전번 시간에 이야기 했던 경량부의 심상속 이론, 독자부의 푸드갈라 이론, 그리고 여러 부파불교에서 이야기 했던 소위 여러 식(識)이론, 대승으로 넘어와 유식에서 제8아뢰야식을 내놨어요.

이건 안 되는 거요. 식(識)이 어떻게 윤회합니까? 전번에도 이야기했지만,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가 대단히 불심이 장하고, 좋은 일도 많이 했다면 그 영전 앞에 무릎을 꿇고 합장하시고 이러실 거예요. ‘우리 어머니는 좋은 일 많이 하시고, 불교를 돈독하게 믿으셨기에 부처님 나라로 혹은 극락세계에 왕생하소서’ 하실 거예요. 안 그러겠습니까? 저 사람들의 말대로라면 극락세계에 왕생할 주체가 없는데, 누가 가느냐 그 말이어요. 식(識)이 갑니까?

식(識)은 추상적인 개념입니다. 식(識)이 가는 것이 아니어. 식신(識身)이 가는 거예요. 식(識)의 몸뚱이가 가는 거예요. 식(識)이 들어있는 몸뚱이, 그것을 영혼체라고 해요. 지금까지 영혼이라는 말은 했지만 영혼체라는 말은 그 어느 종교에서도, 철학에서도 나오지를 않았어. 다만, 몇 명의 힌두교 성자들이 영혼체라는 말을 했어. 기원전 그 사람들은 영혼체도 봤어요. 힌두교의 상키아학파의 이론을 들어보면 영혼체 이야기가 나옵니다.

붓다의 경계에서 영혼체를 자세히 압니다. 보살의 경계는 영혼체가 있는 것을 알아요. 영혼체를 봐요. 상품보살의 경계에서 영혼체를 봅니다. 그러나 영산불교에서 처럼 여러분이 영혼체에 대해서 잘 알지만 더욱 정리를 해드릴 거예요. 이렇게 자세히 보는 것은 붓다의 경계에서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의 무아설(無我說)을 바로 잡지 못했어요. 비아(非我)로 잡아야 되는데, 바로 잡지를 못했어. 2600년이 흐른 오늘, 이제 우리가 이것을 내놓는 거예요.

인도 땅에 세계적인 종교가 셋이 나왔습니다. 힌두교, 불교, 자아나교입니다. 자이나교도 대단합니다. 그 자이나교에서도 '업신' 정도를 봤어요. 그 사람들은 그것을 영혼체라고 안 하고 '업신'이라고 했어. 보기는 했습니다. 자이나교의 바르다마나(마하비라, 기원전 559~527년)교주는 그 정도 수준이 되었어요. 그러나 우리 현지사에서 말하는 그 자상한 영체의 내용은 몰랐습니다. 알 도리가 없지.

우리는 너무도 자세히 알기 때문에《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Ⅱ》권에서도 그렇게 해왔지만, 보는 사람들은 우리 학자들도, 석학들도, 큰스님들도 이게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를 못해. 그게 당연해요. 그렇다면 적어도 '가섭이다', '아난이다'하고 나온 사람이 법문하고, 쓴 책이라면 정말인지 아닌지를 봐야지. 그런 분들이 아니면 이걸 쓸 수도 없는 거예요.

이것은 내놓을 수가 없어요. 힌두교(힌두이즘) 여러 학파의 석학들한테 무아설(無我說)이 완전히 깨어져버린 거예요. 사상적으로 눌려 버렸어. 논쟁에서 완전히 패배해버린 거예요. 그래서 아쇼카 대왕이나 칸슈카 대왕, 그후 300~400년 후에 출세했던 그런 분들이 전 인도를 통일해가지고 불교화 했는데 밀려나와 버린 거예요. 여러분, 얼마나 억울합니까? 그것을 지금 내가 들고 일어난 거예요. 이건 역사적인 사실이어요. 내가 지어서 한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 코페르니쿠스라는 분을 알지요. 코페르니쿠스, 지동설을 세상에 선포한 사람입니다. 그 당시는 중세였어요. 이태리 로마 교황권이 막강한 세력을 거머쥐고, 심지어 서구 열강들의 왕권을 쥐고 있었던 시대였습니다. 거슬리면 종교재판에 회부하고, 기독교 성서에 어긋난 발언을 했다든지, 또는 그런 행위를 하면 신의 이름을 빌어 마구 처단했습니다. 스님이 언제 여러분에게 마녀사냥을 이야기 했나요? 기독교가 서구를 꽉 쥐고 있었을 때예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신대륙의 섬 쪽을 발견하고, 나중에 신대륙을 발견했는데, 그 신대륙에 진출하기 위하여 종교라는 미명으로 북미 중미 남미 원주민들을 마구 학살한 거예요. 자기들은 신의 군대다, 신의 교도다 그거예요. 얼마나 많이 죽인 줄 압니까? 여러분, 알아야 됩니다. 스님이 남의 종교이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나, 알아야 됩니다. 원주민을 죽인 수가 1,000만명, 아니 1억도 더 되요. 지금의 통계를 보면 2억이어요.

이렇게 많이 원주민을 죽여 버린 거예요. 그리고 땅을 뺏고, 부녀자를 강간 약탈하고, 방화하고, 정부 재산을 전부 도적질한 거예요. 그것도 모자라 아프리카로 가서 죄 없는 원주민들을 마구 죽이고, 노동력이 될 만한 청년들을 갖다가 노예로 팔아먹은 거예요. 죄 없는 원주민들은 아버지가 잡혀가니까 부인과 애기는 서럽게 살지. 당초에 노예도 아닌데 강제로 노예의 신분으로 만들어 미주로 데리고 가서 노예로 팔아먹은 거예요. 그 광활한 땅을 그렇게 해서 경작하여 돈을 벌어먹은 거예요. 이러한 죄악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러한 때에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부르짖은 거예요. 성경에 기록 되어 있는 것은 글자 한자, 한 획도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진리다 그거예요. 한 글자, 한 획이라도 절대 고치지 못해. 그런데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발표 했어. 그 성경에 적혀 있는 것은 천동설이어. 하늘의 별이나 지구의 주위를 태양이 돈다고 하는 거예요. 그것을 천동설이라고 해. 그런데 지동설을 가지고 나오니까 어떻게 됩니까? 발칵 뒤집힌 거지.

그러나 코페르니쿠스는 발표하고 수 십 년 만에 저 세상으로 갔지만, 그 다음에 천문학자들이 천체를 관찰하고 실험해 보니까 코페르니쿠스가 한 말이 맞거든. '부르노'가 그래서 화형에 처해진 것 아닙니까? 지동설을 부르짖는다고 불에 태워서 죽여 버린 거예요.

나중에 그 유명한 갈릴레오가 잡혀가 공개재판에 회부 되었어. ‘너도 지동설을 주장하는데, 이 자리에서도 주장할 것이냐, 아니면 승복하겠느냐’고 했거든. 그러니까 갈릴레오는 지동설을 주장하지 않겠다고 해버렸어요. 그래서 살았습니다. 살아가지고 법정을 나오면서 혼자 투덜거리는 말이 있지요.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했어. 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너무도 유명하기 때문에, 어떤 사상과 정반대되는 사상을 ‘코페르니쿠스적이다’라고 표현합니다. ‘코페르니쿠스적인’이라는 말을 씁니다. 그것도 아실 겁니다.

인도 남쪽의 섬나라 스리랑카를 아시죠. 19세기 후반에 스리랑카에서도 기독교와 불교의 대논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불교는 무아설(無我說)을 바탕으로 한 이론이고, 기독교의 철학은 유일신을 바탕으로 한 이론이죠. 여러분, 기독교의 철학을 아시죠? 양측에서 서로 논쟁한 것들은 지금의 영산불교 현지사에서 보면 둘 다 바보예요. 그걸 우문우답(愚問愚答)이라고 해. 그렇게 끝났습니다.

전번에 스님이 이야기했나? 이 과학계, 특히 물리학계에서 ‘진공이 있다 없다’하는 두 파가 2000년 전부터 싸웁니다. 아리스토텔레스를 정점으로 하는 흐름은 없다고 하고, 원자론을 내놓은 데모크리토스를 정점으로 하는 그 흐름은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2000년 동안의 논쟁으로 끌어 온 거예요. 끌어왔는데, 아인슈타인이라고 하는 세계적인 거두가 나와서 특수상대성이론을 내놓습니다. 특수상대성이론을 알지요? 전번에 스님이 말했지요.

에너지는 곧 질량이라는 것(E=mc^2). 1g의 질량을 가지고 완전히 연소해서 열량으로 빼면(열로, 에너지로 빼면) 10만㎾의 발전소가 250시간 쓸 수 있는 양이어요. 그런 세상이 되면 어쩐다고 했지요? 살기 편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석유가 없어도 되지요. 그렇잖습니까? 이인슈타인은 이런 위대한 발견을 한 사람이어요. 그리해서 그 분이 통일장이론을 내놓았는데, 그 통일장이론을 완성은 못했지만 그분의 업적에 의해서(물론, 그 앞뒤 과학자들의 업적으로 해서) '있다 없다'가 잠재워져 버립니다.

봉합되어 버립니다. 그걸 아십니까? 봉합이 되었어요. 그러니까 이 두 논쟁이(있다 없다하는 논쟁이) 어떤 위대한 분에 의해서 이론 제기는커녕, 반론을 제기치 못할 정도로 되어버립니다. 그러면 이제 그 두 논쟁은 잠자고, 새로운 이론이 힘을 얻게 되는 거예요(세계화 되는 거예요).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코페르니쿠스적인 지동설은 두 논쟁이 아니고, 확고하게 믿었던 천동설, 그 기독교 세력 하에 있었던 그 당시에 새로운 설을 내놓는 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거예요. 어마어마한 위험이 따른 거요. 코페르니쿠스가 살았다면 화형 감이었지요. 그걸 아십시오.
그 다음, 선불교에서도 돈점논쟁(頓漸論爭)이 있습니다. 돈점논쟁(頓漸論爭)을 아시는 분은 아실 거예요. 선불교에서 돈점논쟁(頓漸論爭)이 있습니다. 선불교는 어떤 종교냐? '심즉시불'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마음이 부처다'하는 거예요. 마음이 부처다, 마음을 깨치면 부처다 하는 사상을 들고 나온 것이 선불교입니다. 돈오돈수(頓悟頓修)와 돈오점수(頓悟漸修)의 돈(頓)자와 점(漸)자를 합해서 돈점논쟁(頓漸論爭)이라고 하는데, 돈오돈수(頓悟頓修)라는 말은 무슨 말이냐?

최근 우리나라에서 입적했지만, 돈오돈수(頓悟頓修)를 주창한 그 어떤 큰스님이라는 분이 계셨죠? 돈오점수(頓悟漸修)를 주창한 분은 돈오돈수(頓悟頓修)를 주장한 스님보다도 몇 백 년 전 인물입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스님인데, 그 인물을 아십니까? 한번 말해 보세요. 고려때 스님인 '보조국사 지눌'이예요. 보조는 돈오점수(頓悟漸修)를 주창했어요. 돈오점수(頓悟漸修)는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다겁생으로 내려온 우리 중생들은 번뇌망상 삼독번뇌 업장 습 등 이런 것이 있단 말이에요.

이것이 다 녹아야 되니까 충분히 보림을 해야 된다 하는 것입니다. 돈오돈수(頓悟頓修)는 그것이 아니고, 그저 신문도 보지 말고, 라디오도 듣지 말고, 오직 화두일념으로 가라. 오직 화두일념으로 가라. 그래서 크게 깨쳐버리면 닦을 것, 무슨 번뇌망상, 업장, 이런 것이 전부 떨어져 버린다. 그냥 여래지에 든다 하는 것이 돈오돈수(頓悟頓修)입니다. 그분은 가셨지만, 이 큰스님에 의해서 돈점논쟁(頓漸論爭)이 주창되니까 이것은 매스컴에 조명을 받으면서 다룰만한 깜이거든(다룰만한 기사거리거든). 그래서 한참 많이 다루었습니다. 그런데요 선불교는 불교의 한 지파입니다. 그렇잖습니까? 여러분이 또 아셔야 돼.

그러면 우리가 본단 말이어요. 영산불교에서 봅니다. 돈오돈수(頓悟頓修), 돈오점수(頓悟漸修), 돈점(頓漸)에서 돈(頓)이 맞느냐 점(漸)이 맞느냐? 둘 다 아닙니다. 내가 이 법상이 아니고, 여러분 몇 사람하고 앉아서 이야기한다면 참 웃기는 이야기를 해버릴 것입니다. 그것은 둘 다 아닌 거예요. 인간의 한계는 잘 수행해야 어느 정도 간다고? 아라한입니다. 그런데 자력으로 어떻게 불과(佛果)를 증합니까? 보살과(菩薩果)도 어렵습니다.

왜 어려운지 아는 사람? 혼자 힘으로(자력으로) 보살과를 이루기가 왜 어려운줄 아십니까? 네 가지, 다섯 가지 이유가 있다고 했지요. 이거 기가 막힙니다. 여러분이 이 정도를 아니까, 우리 현지사 신도 분들의 수준은 상당하지요. 내가 그분들을 다 알거든요. 나한테 오면 내가 그렇게 법문을 해줍니다. 그러면 아무 말 없이 듣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알아. 그 수준을 알거든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훨씬 낫지요. 훨씬 낫지.

정토보살이 자력으로는 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첫째, 거기에 아기보살을 만들 수 없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붓다의(부처님의) 우주적인 능력이 아니면 정말로 안 됩니다.

������둘째, 변녀성남(變女成男)입니다. 여자 분들이 정토에 갈 경우 4영체 모두 다 고추를 달아줘야 돼. 누가 답니까? 자기혼자는 절대 안 돼. 그 변녀성남의 어려움입니다.

������셋째, 영체분리입니다. 이건 정말로 부처님 아니면 안 됩니다. 자이나교 교주인 '마하비라', 그분은 영체를 보기는 했지만 어떻게 영체를 꺼냅니까? 못 끄집어내. 영체를 끄집어내려면 붓다의 힘이 있어야 됩니다. 딱 꺼내려면 부처님이라야 돼. 그래서 분리를 딱․딱해 놓거든요(가지런히 해놓거든요). 우리 스님들 모두 다 보살을 만들려고 그 절차를 밟아줘요. 여러분도 해주는 사람 있어요. 영체분리까지 해준단 말이에요.

영체분리를 다해주고 정화해 주는 거예요. 씻어 줘. 빛으로 부어줍니다. 그래야 4영체가 밖으로 나와가지고... 4영체가 모두 다 막으로 싸여있기 때문에, 또 막으로 간격이 다 엉켜있기 때문에, 껌과 같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이 분리작업을 하고 그 무량억종광으로 퍼부어(씻어) 주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다시 하나로 해서 딱 넣어줍니다. 그러면서 또 이제 빛으로 해주는 거예요. 보살이 되려면. 그러니까 영체분리가 안 되죠? 그 어떤 성자도 못합니다. 여러분, 부처님 다음가는 성자들도 못합니다. 스님이 거명을 하고 싶지만 이 석상에서 말하기 곤란합니다.

어쨌든 다른 종교의 교주도 안 됩니다. 그 작업을 못해요. 우선 영혼체의 내용도 모르는데, 어떻게 끄집어 낼 실력이 있습니까? 또, 어떻게 분리할 실력이 있습니까? 어떻게 무량억종광으로 퍼부어 줍니까? 자기의 몸뚱이는 무량억종광이 아닌, 차원이 낮은 빛으로 이루어져 있는 데요.(※한 삶 정리는 그 속에 포함이 안 돼. 물론 나쁜 원결이(그 사람하고 아주 상극의 원결이)태어났다? 그런데 그 사람이 벌써 30대다 하면 만날 시간이 되잖아요. 만날 시간이 되면 저 사람이 이 사람한테 맞아 죽을 수도 있잖아요. 전생에 죽였으니까. 그 상극의 원결을 지었다면 말이에요. 그러면 그때 한 삶 정리를 해줘버립니다. 그러면 안 만납니다.)

������넷째, 마장(魔障)입니다. 잘 아시네요. 마장(魔障), 내마와 외마가 있는데, 내마는 색신이라는 것을 아시죠. 외마는 천마, 용신, 이매망량 등등인데, 자세히 보면 많아요. 어쨌든 이런 등등의 내․외마를 막아줄 사람이 없으면 아라한이 되고, 보살이 되려면 이거 엄청나. 도고마성이어요. 그 말이 맞는 거예요. 도고마성.

이거 막아줄 사람이 없어. 그렇기 때문에 보살을 하나 만들려면 보살이 함께 와줘야 되는 거예요. 그러거나 영적으로 그 진짜 몸뚱이(보살 몸, 보신)를 가진 관음․지장․문수․보현 같은 불과(佛果)를 이룬 그 보살이 와서 그 사람을 공부시켜야 돼. 마장(魔障)을 딱 막아줘야 돼. 외마를 막아주고. 그리고 문제가 있으면 전부 제거해 주고. 빙의가 되어 있으면 제거해 주고. 업장이 크다면 씻어주고, 소멸해 주고. 그렇잖으면 안 돼.

������다섯째, 사중죄(四重罪)정도는 소멸해줘야 돼. 극락정토에 가려면 사중죄 정도는 반드시 소멸이 되어야 돼. 그런데 우리는 많은 과거생에 사중죄를 지었거든. 이 사중죄를 가지고, 이 업을 가지고는 극락을 못 가. 문수보살님의 사중죄 소멸은 그분의 고유권한으로 주어져 있어요. 고유권한, 아시죠?

그런데 선불교에서는 '심즉시불이다'라고 하거든. 여러분, 이게 1300년 동안 내려왔습니다. 깨치면 불(佛)이다 그거예요. 마음이 곧 불(佛)이니까 마음을 깨치면 불(佛)이다 그거예요. 마음을 깨치면 불(佛)이다? 돈오점수(頓悟漸修)에서는 그건 아니다. 돈오돈수(頓悟頓修)에 반론을 제기 하는 것은, 깨쳐가지고 업장 ‧ 탐진 삼독 등등을 다 씻어버려야 한다. 보림이 필요하다. 보림이 다 잘 되어 버리면 부처이다. 여러분, 그게 부처입니까?

아니지요. 그건 아라한으로 보는 거예요. 그러면 아라한이지. 그래서 우리 입장에서 볼 때는 돈(頓)도 아니고, 점(漸)도 아니어요.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더 참고 될 말씀을 많이 해주는 거예요. 안 그렇습니까? 지금 아인슈타인이 유(有)다, 무(無)다(진공이 있다, 없다)하는 것을 거의 종식시킨 것 같이 되었는데, 나보고(우리보고) 물어보면 여러분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유(有)도 아니고, 무(無)도 아닌 거예요. 진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거예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 영산불교에서 말하는 비아설(非我說)이 나옵니다. 비아(非我)라야 윤회합니다. 힌두교(브라만교)의 아트만 갖고는 윤회를 못합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설명할 수 있어야 돼. 내가 가만히 보니까 이것을 몇 사람이 알더라고요. 아트만 가지고는 윤회가 안 된다. 아트만은 범(梵)과 본질이 똑같습니다. 그 범(梵)이 만물을 만들어서, 다시 범(梵)이 낱낱의 개아(個我)‧개물(個物)에 들어가 버렸다고 했지요. 그것이 아트만이어요.

그러니까 우리 사람도 아트만을(실체를) 지니고 있다 그거예요. 그런데 그것 가지고는 윤회가 안 된다고요. 그 아트만은 우리 영산불교에서 말하는 1번 영체(본체)예요. 본체 갖고는 윤회를 못하는 거예요. 그건 순수히 지고지선 하니까. 그것 갖고는 안 되는 거예요. 그것은 윤회 밖에 무시무종(無始無終)으로 있었어요. 윤회하려면 2번 영체, 3번 영체, 4번 영체까지 생겨야 이 사람 몸을 받아가지고 악도로도 가고, 육도를 윤회하는 거예요. 여러분, 스님의 말을 꼭 알아들어야 됩니다. 이해해야 됩니다. 업을 지으면 인연 따라서 2번 영체, 3번 영체가 생긴 다고요.
그래서 1‧2‧3번이 생겼어. 우주법칙에 의해서 생겼어요. 그거 3번까지 생기면 어떻게 되느냐? 3번까지 생겨서 자그마한 업을 지으면 하늘과 성중으로 왔다 갔다 하지. 육도윤회는 못하지. 그러나 4번 영체가 생길 정도로 업을 지어 놓으면 1‧2‧3번 영체가(본체가) 엄마 뱃속에 탁 들어가잖아요. 4번이 이제 3번 영체에 딱 붙어가지고 똑같이 자라. 자라되, 이 몸하고 영체하고 딱 중간에 서서 접착 구실을 한다고.
그렇기 때문에 몸뚱이와 이 4번 영체는 털구멍하나도 틀리지 않아. 90살 먹은 꼬부랑 할머니가 죽으면 4번 영체가 어쩐다고? 무주고혼으로 있을 때에는 그대로 꼬부랑 할머니로 돌아다녀. 19살 먹은 애가 곱사(곱추)였으면 그 죽은 놈도 곱사예요. 그럽니다. 그런데 그 4번 영체는 어쩐다고? 이것이 이 사바세상의 조건에 맞아서 생기는 거예요. 물리학적으로 말하면 밀도가 맞아야 돼. 밀도가 맞아서 여기에서 사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저승을 가게 되면, 지옥을 가게 되면 지옥하고 이 사바세상의 기가(조건이) 다르잖아요. 그러니까 4번 영체는 들어갈 수가 없어요. 그러나 4번 영체의 안쪽 것은 따라가요. 안쪽 것은 따라가기 때문에 대성자가 볼 때는 ‘아! 저 엄마가 다섯 살 먹은 놈하고 같이 물에 빠져 죽었구나. 혹은 어떻게 횡사해서 죽었구나’하고 아는 것은 지옥에서 엄마가 애기를 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알겠습니까?

하늘을 갈 때에는 1‧2‧3번이 가되, 바깥 몸뚱이인 3번 안에 1번 2번이 그 속으로 겹쳐있어요. 밀도가 다르기 때문에 탁 겹쳐져요. 알았습니까? 3번 2번 1번 영체는 올라갈수록 입자가 적어져요. 이 정도는 이해할 거예요. 알아듣기 어려워도 이 정도는 알아야 돼. 그래서 1‧2‧3번 영체는 하나로 꽉 뭉쳐있습니다. 하나로 영원히 뭉쳐져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1번은 본체이고, 주인공이어요. 부처님께서 이것이(1번이) 주인공이라고 하셔요. 그래서 우리도 ‘아하! 이것이(1번이) 주인공이구나’하고 안다고. 선(禪)에서 말하는 주인공은 이것이(1번이) 아닌 이것의 본체, 소위 일심진여라든지, 불성이라든지, 우주본체, 이것을 주인공이라고 하잖아요. 진아(眞我)라고도 하고요. 이건 말이 안 됩니다.

이것은(불성은) 나의 진아(眞我)도 되고, 여러분의 진아(眞我)도 되고, 저기 우리 땡삐의 진아(眞我)도 되고, 저기 산의 진아(眞我)도 되고 해. 그 진아(眞我)와의 용어가 틀린 거예요. 그때는 본체라고 해야 돼. 주인공은 1‧2‧3번 영체입니다. 선(禪)에서는 이걸(일심진여, 불성, 우주본체) 주인공이라고 해. 그 주인공이라는 용어가 틀리는 거예요.

3번 영체가 하늘을 갈 때에는 관문이 있습니다. 하늘의 그 안락하고 평안한 것 등에 의해서 3번 영체가 활짝 핍니다. 어떻게 피느냐? 미스코리아보다도 더 예쁘게 핀다고요. 알았습니까? 지옥을 갈 때에는 1‧2‧3번 영체가 어떻게 되는 줄 압니까? 그 4번 영체 안부분이 지옥의 조건에 맞게 되고, 아귀세계에 갈 때에는 그 세계의 조건에 맞게 되는데, 배가 풍만하고 목구멍이 아주 가늘어요. 그렇게 탈이 바뀌어 진다는 말이어요. 그러나 1‧2‧3번 영체는 그대로 뭉쳐있다 그거예요. 이것이 본체입니다.

사람 몸을 받아 올 때에는, 수정할 때 본체가 들어가야 사람이 됩니다. 윤회의 주인공이 됩니다. 이것까지 알았지요? 아귀세계나, 하늘세계나, 성중세계나, 보살세계나, 붓다의 세계는 몸뚱이가 없는 세계입니다. 알지요? 3번 영체가 성중하늘을 갈 때에는 2번 영체가 탁 와가지고 3번 1번이 그 속에 딱 겹쳐있단 말이에요. 입자가 적은 3번 영체부터, 무주고혼부터는 초미립자로 되어 있습니다. 소립자를 더 지나가서 초미립자로 되어있는 거예요.

그러니 이것은 볼 사람이 없어. 삼매에 들어가서 지혜의 눈으로 보살, 상품보살, 붓다가 보는 거예요. 천인을 봤다는 사람이 있습니까? 거의 없지요. 기독교에서 한 사람 있었어요. ‘돈 모드코비’인가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이름이 그 사람뿐입니다. 그래서 천국의 생활에 관한 책을 썼잖아요. 그러니까 '칸트'가 그걸 부인(부정)했어요. 사람의 오성(悟性,감성·이성과 구별되는 인식능력)은 한계가 있어. 형이상의 세계는 못 보는 거예요. 칸트에 의하면 볼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건 맞아. 그러니까 보려면 이 한계를 벗어나야 돼. 벗어나서 불보살의 가피를 입어야 비로소 보는 거예요.

극락은 1번 영체가 갑니다. 그때 2번 3번은 속으로 들어갑니다. 1번 영체가 가지만 그 속에 2번 3번이 겹쳐있다. 그런데 극락은 너무너무도 여기에서 머잖아요. 우선 여러분이 이해하기 쉽게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렇게 표현하면 또 반박할 사람이 있어요. 거기는 적멸의 세계인데, 시공을 초월한 세계인데, 차별세계를 벗어나 버렸는데 뭘 멀고 가깝고 하느냐고 할 거예요. 그걸 몰라서 하는 것은 아니어. 여러분이 이해하기 쉽게 하는 거예요.

저 극락세계, 서방으로 십 만억 불국토를 넘어서 있잖아요. 영적인 개념에서 보면 그 말이 맞습니다. 거기의 조건은 여기의 사바세상하고, 하늘세계하고, 성중세계의 여건하고 아주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당신의 큰 위신력으로 여러분의 꼬마 아기를 만들어 놓은 거예요. 그 놈은 거기의 여건에 충분히 살 수 있어요. 1‧2‧3번 영체가 그 꼬마 속으로 쏙 들어가 버리는 거예요. 믹스가 되어버려요.

그러면서 정말로 해탈신이 되어버리는 거예요. 앞에서 말한 하늘신이 문제가 아니어요. 성중 몸뚱이가 문제가 아니어. 정말로 경에는 32상을 갖춘다고 하지. 그러나 32상은 붓다만이(붓다의 저 보신들이) 갖추어요. 이 보살들의 얼굴은 하늘 천인들하고는 비교가 안 될 만큼 기가 막히지. 그리고 몸에서 방광을 하니까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여러분, 방광을 상상해 보세요. 전번에 어느 TV에서 빛의 축제를 보여준 것 같은데, 한번 보세요. 현란할 거예요.

그러나 미타정토의 그 부처님 몸에서 나오는 이 빛들, 그 많은 보살들에게서 나오는 빛들이 어우러져 가지고(빛들이 서로 교합해서), 그 분위기가 극치를 이루는 아름다움입니다. 여러분, 여름 한 낮에 다이아몬드를 밖에다가 놔두고 보세요. 이것이 발산해가지고 어떻게 됩니까? 참 아름답지요. 그 다이아몬드가 천만가지 색깔을 지닌 투명한 다이아몬드라고 합시다.

그때 나오는 빛깔이 또 어떠하겠습니까? 아까 그것보다도 훨씬 더 수승하겠지요? 그런 다이아몬드가 천개 만개가 있어서 어우러져서 스스로 발산하면 어떠하겠습니까? 이 광경은 말로 표현이 안 되는 거예요. 그렇게 아십시오.

붓다의 세계는 또 어떠한 줄 압니까? 여러분들이 꼭 아셔야 할 것은 미타국토의 꼬마는 영원히 꼬마예요. 그걸 알아야 됩니다. 저기 붓다 세계의 불신(佛身)은 어떠한 줄 알아요? 애기가 커. 그래서 완전히 사람 몸을 갖추고 있어요. 그것이 달라. 그 몸하고 1‧2‧3‧4번 영체가 계합이 되어버리는 거예요. 불신(佛身)을 가지고 있는 이 수행자의 1‧2‧3‧4번 영체가 어찌나 빛과 같이 깨끗하든지. 무량광하고 털끝만큼 틀려도 계합이 안 돼.

그러니까 우리가 땡삐를 만져도 씻어주는 거예요. 바깥에만 갔다 와도 그 무량광 빛덩어리로 영체를 씻어 주는 거예요. 그걸 유지 하려고 하니까. 그래서 그 나하고 이것하고 믹스가 아닙니다. 이때는 그것이 들어가 버립니다. 그 불신(佛身)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그 불신(佛身)의 위력은 우주적이어요. 왜 우주적이냐? 붓다는 대적정삼매에 들어가서 우주 본체와 하나가 되어 버립니다. 자기의 법신불이 생긴다고 했지요. 그 법신불이 구체화 된 것이 불신(佛身)입니다. 아셔야 돼. 그래서 4영체까지 합해진 이 법신불은 우주적인 힘을 행사할 수 있는 거예요.
여기서 지금 우주라는 말이 나오는데, 지금의 천체물리학에서는 이 우주가 어찌나 넓던지, 끝도 갓도 없이 넓어요. 지구도 하나의 별이거든요. 지구만한 별 덩어리가 얼마나 많으냐? 여러분 아실 거예요. 2,000억 정도 지니고 있는 그 한 집단을 섬우주라고 해요. 그 섬우주가 수 천 개라고 해요.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별이 얼마나 많지요? 물리학자들은 이걸 우주라고 봅니다.
그런데 영산불교에서는 그것은 현상계이고, 적멸 묘유 해탈오계가 또 그만큼 있어. 그래서 우리 영산불교의 어느 학자는 '우주정법계'라고 했단 말이어요. 그건 자기가 지은 주인 이름입니다. 그렇게 하더라고. '우주정법계'를 주관하시는 왕이 붓다의 붓다이신 석가모니부처님이셔요. 이거 기가 막힌 거예요. 지금 천문학자, 물리학자들이 아는 우주만 해도 이건 수수께끼라고 했어요. 아인슈타인도 수수께끼라고 했어.
공부하면 할수록 이건 오리무중이라. 뉴턴은 뭐라고 했느냐? 뉴턴(Newton, Sir Isaac 영국의 물리학자·천문학자·수학자(1642~1727). 광학 연구로 반사 망원경을 만들고, 뉴턴 원무늬를 발견하였으며, 빛의 입자설을 주장하였다.)이라고 하면 대단한 분입니다. 고전물리학에서 최고의 자리를 찾으신 분인데, 그분은 자기가 아는 것은 저 강변의 모래 한 알 정도라고 했어요.

그런데 아인슈타인에 와서는 ‘역시 우주는 수수께끼다. 나로서는 수수께끼이다. 그러나 이 수수께끼가 영원히 수수께끼일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라고 말한 거예요. 아인슈타인은 굉장한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이지만 이 불교의 화엄사상을 접했습니다. 여러분, 화엄사상을 접했어요. 그래서 무릎을 친 거예요. 오직 불교만이 진정 미래의 세대를 리더할(이끌) 만한 종교로구나. 그래가지고 종교를 3단계로 구분한 분이 그 분이어요. 세 종류로 말한 거예요. 여러분, 그거 아시는지 모르겠어.

▸첫 번째, 원시시대의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가지고 종교를 만들었다는 거예요. 원시의 애니미즘(정령신앙(精靈信仰)이라고도 함)이 있지요. 태양신을 믿는 다든지, 혹은 전쟁신도 믿고 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공포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습니다. 어떤 공포냐? 그 당시는 기술도 떨어졌고, 지금처럼 이렇게 비옥한 땅도 개간할 능력도 없고 해서 하루하루의 삶이 참 고단했지요. 그런데다가 무서운 질병이 오잖아요. 오면 죽으니까 이것이 두려웠어. 전쟁 질병 천재지변 등은 지금의 사람들도 무서워하지. 지진 화산폭발도 무서워하지. 이런 것들 로 인한 죽음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 그런 원시 신앙을 만들어 놓은 거예요. 이것을 원시종교라고 합니다.

▸둘째, 아리스토텔레스가 분류한 거예요. 이제 사회생활을 하잖아요. 사람들의 수가 많이 불어나기 때문에 서로서로 교류한단 말이에요. 우리나라 같으면 각 도의(각지의) 사람들이 서로 교류하고, 문물을 바꾸고, 사고팔고 해서 편하게 살아가잖아요. 국가 간에도 서로 교역을 하고, 교류도 하잖아요. 이것을 사회적이라고 해요. 이 사회적인 윤리종교가 나온 거예요. 이 사회가 안정되고 잘살려면, 선을 권장하고 악을 징계해야 돼. 어떻든 이 두 번째 단계의 종교는 이런 것을 포함하되, 반드시 유일신(唯一神)이 나와요. 유일신(唯一神). 범(梵)과 같은, 그래도 힌두교의 범(梵)은 의인화했지만, 범(梵)보다도 더 심하게 인격화한 그런 종교가 나와요. 그렇게 인격화를 심하게 하는 것이 아니어. 그걸 내가 ‘어떤 종교입니까’라고 묻지 않아도 알겠지요.

▸셋째, 아인슈타인이 그 우수한 두되로 연구를 하고 불교를 접해 보니까 '원리', '어떤 원리'를 알게 되어요. 무슨 원리인지 아시는 분? 연기의 원리(緣起의 原理)입니다. 좀 달리 말하면 인연의 도리(因緣의 道理), 인과법(因果法, 업의 법칙, 카르마의 법칙)등 이런 것이 나와요. 불교는 절대자를 인정하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연기(緣起), 인연(因緣)에 의해서 전부 진화해가지고 된 거예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너무도 깊고 깊기 때문에 이것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야 됩니다.

여러분,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없다. 연기(緣起) 안에는 의식적인 동인, 효율적인 동인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필요 없어요.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있어야지. 저 절대 신을 믿는 사람들은 거기까지만 본 거예요. 지휘자가 있어야 되지 않나? 그러니 이 원리 안에, 그걸 의식적 동인이라고 해. 의식적 동인(意識的 動因). 뜻 의(意), 알음알이 식(識), 의식적 동인이라고 그래. 저 하늘을 봐라. 별들이 저렇게 많은데, 다 각기 궤적을 따라서 운동(운행)을 하는데, 그 수억이 문제가 아니라 앞에서 말한 2천억×2천억을 해도 더 되어. ‘저 충돌하지 않고 정밀하게 돌아가는 저 별들을 봐라.
하나님 아니고는 누가 저런 것을 만들었단 말이야’하는 것이 저 종교야. 조물주가 아니고서야 누가 만들었단 말이야. 그러나 이것을 '효율적 동인'이라고 해. 효율적 조화, 효율적 동인이 있기 때문에, 또 '의식적 동인'이 있기 때문에 이 영혼체는 사람을 보면 오른쪽 눈하고 왼쪽 눈하고 구도가 똑 같아요. 안 그럽니까? 눈이 하나 있고 한쪽 눈이 세로로 있으면 어떻게 되나? 그건 아니어. 딱 지선을 그어놓고 양쪽을 보면 아주 정교하게 조화가 되어있어. 이걸 효율적 동인이라고 해. 그러니까 이 연기(緣起), 연기(緣起)에 대한 내용을 모르고 저 사람들이 우리 불교를 얕잡아 보는데, 그 깊은 철학사상을 들어야지.

그리고 이제 TV에 나가게 되면, 스님이 대 여섯 가지 엄청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할 것입니다. 처음 무아설(無我說)을 가지고 비아(非我)다 하고 나가는 거예요. 이것도 지금 핵폭탄이어. 그러니까 발칵 뒤집히지. 이 모든 종교를 포괄하고, 선도하고, 과학을 선도하고, 철학을 선도하는 것은 불교뿐이어요. 여러분, 불교뿐이어. 이런 고도의 철학과 과학을 지닌 종교가 없어. 불교밖에 없어. 어떻게 해서 이 불교가 이렇게 조그랑 망태기가 되었습니까?

이거 슬픈 일인 거예요. 정말 슬픈 일인 거요. 우리 불교에서만이 보살이 나오고, 붓다가 나오는 거예요. 위대한 불교에서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어떻게 보살이 나오느냐고. 보살이 나오는 종교가 어디에 있느냐고. 없어. 그래서 때가 왔기 때문에 앞으로 스님이 하나씩 하나씩 터뜨릴 거예요. 그러면 나는 이 사상만 이렇게 전하고 가면 돼. 몫은 여러분한테 있어. 여러분이 수준을 높이라고. 현지사에서 나온 책, 이건 세상에 없는 책이어요. 이 책을 정독 했으면 좋겠습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Ⅱ》,〈관음태교〉,〈관음태교에서 부처님천도재까지〉등등. 이러한 천도재가 없고, 이런 태교가 없는 거예요. 이런 것을 여러분이 숙지해야 되겠어. 그래서 부지런히 공부해서 수준을 향상시켜 주시오. 현재 여러분들이 인터넷에 올린 글을 보고 ‘아이구! 이거 어느 교수보다 났네’라고 했다고요.

무아(無我)인데 뭣 하러 천도를 해. 어느 종단에서 우리를 따라서 천도바람이 불었어. 우리를 따라서 한 술 더 떠가지고 49일×7일을 하네. 343일을 천도한다든가? 이거 웃기는 일이지. 여러분, 사람은 양심이 있어야 됩니다. 자기 소신에 살아야 됩니다. 자기의 철학이 무아(無我)이면, 하나도 없다고 하면, 가는 놈도 없고 엄마 뱃속으로 들어가는 놈도 없다고 하면, 그 철학을 바탕으로 해서 하루를 살더라도 바르게 살아야 양심이 있고 그게 사람이지 어떻게 변절 합니까? 이게 우리 영산불교의 주장이고 생각입니다.

무아설(無我說)은 윤회설과 양립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무아설(無我說)은 윤회설과 양립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 만유는 인연 따라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오. 인연소생(因緣所生). 인연 따라 진화합니다. 인연생기(因緣生起). 이건 진리예요. 이건 자기들보다도 더 강하게 주장해. 그래서 지금 제법무아(諸法無我)라고 합니다. 그러나 제법무아(諸法無我)가 '용수'때 와서는 제법개공(諸法皆空)이 되어버렸어. 참말로 공(空)이 되어버렸어. 이게 큰일입니다. 사람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이라는 오온(五蘊)으로 이루어졌어요.

색(色)은 지수화풍으로 구성된 물질이어. 수상행식(受想行識)은 정신적인 것, 그러니까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으로 이루어졌어. 이 정신적인 것을 스님이 삼매에 들어서 관해보니까, 이인슈타인도 선정정도에 들어간 분이 아니면 그 물리학이 안 나옵니다. 보니까 영혼체가 있어. 영혼체가 있더라 그거예요. 이 몸뚱이는 죽어도 나가는 본체가 있습니다. 1․2․3․4번 영체가 있습니다. 1․2․3번 영체는 영원히 죽지 않기 때문에 하늘을 가고, 어디를 가고, 사람 될 때가 되어도 요놈이(1․2․3번 영체가)와.

요놈이 와야 복사체인 몸뚱이가 나오는 거예요. 내가 금생에 사람을 죽였으면 금생에 징역 가지. 그래도 그 업은 너무도 무겁기 때문에 지옥을 가요. 그러다가 언젠가 옵니다. 언젠가 오는 놈하고 나하고 같아야지. 내가와야지 보살이 오겠습니까? 보살이 온다고 하면 말이 되겠소? 무아(無我)라고 하면 그거예요. 그러나 본체가 있기 때문에 언제나 행위 하는 놈하고, 업보를 받는 놈하고 같아야 되는 거예요. 안 그렇습니까? 그런데 무아설(無我說)은 그것이 아니어. 이러한 무아(無我)해석을, 또 부처님께서 왜 무아(無我)라고 하셨느냐? 그걸 몰라. 이 상대세계(현상세계)에 사는 우리 인간은 고해(苦海)에서 산다고 하잖아요.

이 현상세계는 고해(苦海), 고(苦)가 충만 되어 있어. 그냥 고통이어요 고통. 하늘세계도 죽을 때 오쇠(五衰)현상이 있어. 그것까지는 이야기할 수 없고, 어쨌든 하늘도 죽어야 할 때가 있어. 거기서 영원히 살면 좋지. 죽는 고통이 있어. 그 서러움이 있어. 어쨌든 간에 육도는(현상세계는) 고통이 있어. 이 고통의 세계에서 건져 주려고 하는 분이 부처님이어요. 이게 부처님의 자비야. 정토보살부터 자기라는 생각이 없어. 자비야. 아상이 없어. 내 것도 없어.《금강경》의 말씀이 맞는 거예요. 불쌍한 중생을 건질 생각이어요.

그래서 나(我)라는 생각을 하지 말라. 나의 몸뚱이에 대해서 집착하지 말라. 이 몸뚱이는 가짜니까(비아니까). 이 몸뚱이는 언젠가 죽어버릴 것이어. 이것은 가짜니까 여기에 집착하지 말라. 집착하고 보니까 죄를(업을)짓더라 그거예요. 업을 짓는 원인이 집착이어요. 집착의 원인은 욕심(탐욕)이어. 그러니까 그것을 끊어주기 위해서 무아(無我)를 말씀하신 거예요. 그리고 현상계의 고통에서 건져주기 위해서 무아(無我)를 말씀하신 거예요.
그러니까 현상세계에 적용되는 것이 무아(無我)예요. 그 무아(無我)를 저기 본체계까지 연결해 버리면 큰일나버려. 본체계에는 엄연히 그 아름다운 상호를 가지신 보살님이 계셔요. 지금 그걸 없다 한다고요. 그 보살도 없고, 부처도 없고, 극락도 없고, 지옥도 없고, 그 지옥에 가서 벌 받는 것을 일체 부인(否認)해버려. 영혼체도 없다고 해버려. 귀신도 없어. 제사지낼 필요도 없어. 그러려면 뭣 하러 살아? 뭣 하러 먹으려고 해? 뭣 하러 공부해?

저 유물론자들처럼 쾌락을 생의 목표로 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멋지게 살아야지. 도덕이 필요 없는 거예요. 무아설(無我說)은 도덕의 기반이 무너져 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무아설(無我說)을 잘 해석해야 됩니다. 비아(非我)로 대체해야 됩니다. 비아윤회(非我輪廻)인 거예요. 아셨지요?

이렇게 말을 해도 여러분들이 다는 이해 못할 거예요. 며칠 전에 온 사람은 참말로 모르고. 한 5년 다닌 분도 그 일부가 조금 알아들을 거야. 그렇잖습니까? 그래서 여러분들이 다 알 때까지 스님이 노래를 부를 거예요. 스님이 내 놓은 영산불교 비아(非我)의 사상, 이건 핵폭탄입니다. 그래서 지금 종단에서 야단 났는 거예요. 교수들이 야단나고. 앞에서 말한 것처럼 최고의 학승이라는 사람, 석학이라는 사람들의 ‘근(根)이 없어져 버리면 식(識)도 없어진다’는 이야기, 이건 참 희한한 이야기이지. 여러분의 본체가 있는데 이걸 아예 모르니까 그러지요.

식(識)은 왜 윤회의 주체가 될 수 없느냐? 몸이 있어야 배경을 반연해서 식(識)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느낌 이후 생각을 하는 거예요. 몸이 없어 버리면 이 식(識)의 활동이 안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몸체가 윤회의 주체가 되어야 되는 거요. 비아(非我)라는 것은 어찌나 많이 업을 지었던지 숯검정이 되어버렸어. 부처님께서 볼 때 진흙덩어리가 되었단 이에요. 여러분, 진흙덩어리가 되었는데 저것이 나(我)라고 하겠소?

‘저건 나(我)가 아니야’라고 말하겠지. 씻고씻고 씻으면, 다 정화가 되면, 자기의 몸뚱이인 1․2․3번 영체가 순수하고 깨끗하게 드러나. 이건 유아(有我)인 거예요. 이제 본체계부터는 유아(有我)인 거예요. 알았습니까? 지금 부처님께서 보실 때에는 정말 한심한 일입니다. 정말 한심한 일이지.

지금 이 주제를 가지고 나왔는데, 이게 아니라고 해가지고 방영금지 한 거예요. 저들이 죽으니까. 현지사를 얕잡아 본 거예요. 영산불교를 얕잡아 본 거예요.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는데, 천마나 섭해 가지고 무슨 아는 소리나 하는 줄 알았는데, 이론이 논리 정연한 엄청난 철학을 들고 나오거든. 이번에 우리 홈페이지에 게재된 성명을 봤지요. 그걸 보세요. 얼마나 논리정연 합니까? 모두 집에 가시면 빼보십시오.



출처/2010.4.21.수(음3.8) 큰스님 춘천 법문중 발췌

2010년 7월 27일 화요일

[불교---2]왜곡되고 왜소하된 오늘날의 불교

왜소화된 오늘날의 종교


2600여 년 전 영산 당시 이후로 불신관佛身觀, 불佛의 삼신설三身設은 두터운 장막 속으로 가려져 버렸습니다. 사람 사람 마음 속 자성에서 삼신三身이 해석되고 있습니다. 크게 왜곡된 것으로, 눈 먼 선량한 중생을 오도誤導하고 있습니다.

우주적인 불교는 여기서부터 왜소화矮小化돼 버렸습니다. 축소화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오늘날의 여러 나라 불교, 특히 한국의 선禪불교는 깨달음만을 소중히 하고 있습니다.

선불교에서는 깨달음이 목표요, 수행의 종착지입니다. 이제부터가 중요한데도 말입니다. 음계‧중계를 철저히 지키면서 나없는 공부, 두타행으로 공성空性을 증득하여 아라한과를 증해야 합니다.

나아가 자·타력수행으로 정토업을 닦아 삼계를 완전히 탈출하여 보살이 되어 서방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영원히 불퇴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보살도를 완성하여 절대계에 빛으로 이루어진 자기 부처를 이뤄야하고, 상적광세계에 자기의 청정법신불을 두어야 비로소 수행은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실로 위대한 우주적인 메타 불법佛法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2권





왜곡된 부처님의 가르침

오늘의 한국불교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많이도 왜곡되어 있습니다.
생사관生死觀 하나 뚜렷하지 않고 불교수행의 기본은 철저한 지계持戒에
있는 데도 승려들의 승행僧行은 심각할 정도로 타락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지만 크게 눈뜬 성자가 없어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으려고 하는 것은 모래를 쪄서 밥을 구하는 것과
같다고 지금의 불교에서는 말합니다.

이 마음이 부처요, 마음자리가 극락이라고 합니다.
지옥과 극악을 마음 안에서만 찾으며 "지옥과 극락은 따로 존재하고
있는 실재가 아니라, 우리 마음의 산물에 불과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마음 밖의 지옥 극락, 불 보살 등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과연 눈을 뜨고 나서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인지요? 불안佛眼이나
오안五眼을 갖추고 나서 하는 말인지요? 실제로 지옥과 극락이 안
보입니까? 정말로 마음에도 안팎이 있다는 말입니까? 공空에도
안팎이 있습니까?

마음眞如自性은 수긍삼제竪亘三際요, 횡변시방이며 불생불명不生不滅입니다.
일심一心 혹은 법성法性은 시방법계 어디에도, 심지어 티끌이나
먼지 속에도 주변하여 뻗쳐 있습니다.

동시에 시공時空을 초월超越해 있습니다. 영원히 경계에 물들지
않습니다.
자성自性은 청정무구요, 여여如如부동不動입니다.
그런데 이 마음자기를 깨친 정도로는 아직 지옥과 극락이 안보입니다.
이 경지에 이르러서는 결코 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려분! 지옥과 극락은 실제로 있습니다. 불 보살도 계십니다.
윤회도 사실입니다. 200여 불교 경전에서 지옥 등을 분명히 말씀
하신 부처님이 거짓말쟁이란 말입니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부터 공空을 지나, 무아 속 삼매에
들어 그동안 보고 들은 것을 간략히 줄여 전합니다. 공부해서 뚫은
바를 수행인의 양심으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왜소화된 불교

붓다님들이 계신 절대계 - 여기를 공空에 못 미치는 세계로 보고, 따라서 마경‧환영으로 보고 또는 천마의 소작所作으로 보고 비방한다면 법法을 모독‧능멸하는 대망어로서 무간지옥행 한다는 것을 확실히 해둡니다. 천마는 하늘1~6하늘의 외도 마魔일 뿐입니다.

붓다는 하늘天上을 지나 성중하늘, 천녀정토, 서방극락, 약사정토를 지나서 연화장세계의 무아 속 삼매에 들어계십니다. 법‧보‧화 삼신을 구족하시며 상모 단엄하시고 백종오색광의 광휘光輝 속 32상의 불신佛身을 갖추시고 자비‧지혜‧삼매‧자재한 신통력이 있어서 실로 어느 존재神와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경스럽습니다.

붓다는 겁劫에 한 분 출세할까말까 하는 그런 어른입니다. 따라서 부처님의 실체 - 불신이나 덕성과 실제 능력에 대한 이야기는 세월이 지남에 따라 왜곡되거나 묻히기 마련입니다.

불멸 후 600년쯤 출현한 인도 대승불교의 거성이요, 제2의 석가라고 불리는 용수龍樹에 의해 이신설二身設_生身, 法性身이 제기되었습니다. 이 이신설에는 보신의 개념이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의 법성신법신 개념 속에는 색상 단정, 상호 장엄, 엉ㄱ종광명 등 보신의 개념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불멸 후 900년쯤 가서 유식의 조사 무착Asnga보살이 불신을 삼신설三身設로 자리매김합니다. 그것도 당시 잠깐 왔다 간 미륵Maitreya불의 가르침에 따라 부처님은 법신, 보신, 화신을 구족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이 사실인데도 먼 훗날 선불교에 와서는 자성불自性佛을 말하고 심즉시불心卽是佛을 주장합니다. 부처는 사람이 지닌 마음자리 이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곧 부처라고 보는 것입니다. 지옥도 극락도 없어져 버렸습니다. 행복을 느끼는, 고통 떠난 자리가 극락이요, 고민이 있으면 무간지옥이라고 합니다.

부처님은 한낱 마음 깨친覺 이로 전락하여 이해되고 급기야 저 우주적 메타종교인 불교는 심교心敎로 왜소화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왜소화된 불교/삼신


우리 불교는, 위대한 우리 불교는 왜소화 되어버렸습니다. 현재 아라한이 목표입니다. 아라한도 아닌 깨달음을 종착지로 하고 있습니다. 대단히 슬픈 일입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공부한 바로는 이거 안 되겠다 싶어서 책을 썼고,
70여회에 거쳐서 이 문제에 대해서 법문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래의 불교로 올려줘야 됩니다. 불교는 위대합니다. 본래 불교는 아라한을 넘어서 보살, 보살을 넘어서 붓다 이루는 것입니다. 붓다를 이루었다고 하는 것은 우주 진리․ 우주 본체와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 합니다.

우주 본체와 하나가 된 것을 법신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법신불이라고 하는 개념을 학자들도, 그 어떤 스님들도 모릅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법신불에서 보신불이 나옵니다. 불과를 증한 분은 유․무를 초월한‘무아 속 절대계’에 자기 불신을 두는 겁니다. 이건 대단히 엄청나고 매력적인 이야기입니다.

그 불신에서 천백억 화신을 냅니다. 천백억 화신을 내어서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중생 국토에 가서 그들을 교화 합니다. 그리고 그 보신에서 이 사바세상에 사람 몸을 받아 옵니다. 인신을 받아 옵니다. 그 인신을 응신, 응화신, 화신 그럽니다. 이렇게 불과를 이룬 어른은 세 몸을 둡니다. 법신불․보신불․화신불. 이제 조금 더 깊이 이야기 해드립니다.

보신불은 상대세계(경험세계)를 초월해서 저 절대계에 몸을 둡니다. 그 절대계에 몸을 두는 그 보신의 모습은 32상80종호를 갖춥니다. 그 이상입니다. 그 몸뚱이는 부처님의 개끗하고 청정한 광명의 빛입니다. 무량광입니다. 그 무량광으로 이루어집니다. 무량광은 소위 모든 존재의 근원인 빛, 그것을 자성광명이라고 하는데 그 자성의 광명보다도 훨씬 더 깊이 들어가야 정토(극락세계의 빛)세계의 빛이 나오고,

거기서 한없이 수행하고 보살행을 완성해서 절대계에 이르는데 그 절대계는 무량광의 세계입니다. 그 무량광으로 붓다의 몸이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몸뚱이를 원만보신(줄여서 보신불)이라고 합니다. 빛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미래제가 다하도록 영원히 멸도 할 수 없습니다. 죽을 수 없습니다. 그 절대세계는 환희의 세계입니다. 환희의 세계. 여러분, 극락을 표현 할 수 없어서 극락(즐거움의 극치)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절대계의 부처님 세계는 극락을 백 천 만 배 보다도 훨씬 뛰어 넘어서 환희 자체입니다. 빛으로 이루어져 있지, 환희 자체입니다.

환희 자체인 그 세계는 대적정삼매(대적광삼매)를 통과해야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원만보신(보신불)의 세계는 그러합니다. 이 지구가, 이우주가 완전히 파괴되어도 거기는 미칠 수 없습니다.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수행자는 목표를 붓다 이루는데 두어야 됩니다. 원만보신이 필요에 따라서 자기 몸뚱이를 백 천 만억의 몸으로 동시에 나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는 우주의 수많은 중생국토에 가서 교화를 합니다. 인간 몸으로 받아 온 이 몸뚱이를 화신불(화신, 응화신)이라고 합니다.

이 자리를 빌어 여러분한테 스님이 간곡히 말씀해 드릴 바가 있는데, ‘광명 만덕 ․ 자재 만현’을 우리 입으로 부처님이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내 책<21세기 붓다의 메시지>이 나가고 해서 여러분들이 그렇게 부르는데, 앞으로 부처님․ 붓다라고 부르지 마시길 바랍니다. 여기 화신은 어디까지나 화신입니다. 저기 절대계에 있는 불신(원만보신)은 부처님이올시다. 여기 와서 처음으로 깨달았건, 어떤 겁 전에 불과를 이룬 분이 사람으로 와서(인신을 받아와서) 다시 불과를 이루었던 간에 이 몸뚱이는 화신입니다.

화신과 보신은 대단히 차이가 있습니다. 화신과 보신은 한 몸이지마는 유한한 물질로 이루어진 이 육신의 능력과 지혜는 저 보신의 능력과 지혜를 따를 수 없습니다. 저 보신이 이 육신(화신)속으로 들어와도 그 무량한 지혜와 능력을 주지 않습니다. 내가 받으면 이것이 가루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받을 수 없습니다.

죽을 때 이 네 개의 영체가 자기 불신과 합일이 됩니다. 계합이 되어버려요. 그 때의 그 불신의 능력은 무한하지요. 합일이 안 된 상태의 그 절대계에 있는 보신불의 능력은 무한합니다. 능력이 무한합니다.

자, 삼신을 갖추고 있지요, 소승이나 대승에서 이야기하는 18불공법이 있는데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무한한 능력이 있습니다. 붓다라고 하면 엄청난 능력이 있습니다. 내가 한 70여회를 두고 가끔 가끔 부처님세계의 이야기를 하는데 여러분들도 어느 정도 이해를 하실 겁니다.

2008. 9. 7. 토(음8.8)큰스님 춘천법문중 발췌






왜곡되고 왜소화된

세계 불교의실상을 안타까워하며
무량겁 전에 우주 법계 최초로 불과를 이루시고, 다
시2600여 년 전에 사바세계에 몸 받아오셔서 위없는
가르침을 주시고 대열반에 드신 후, 무아 속 절대계에
빛의 인격체로 여여히 살아계신 거룩하신 우리 교주
불세존께 백천만 번의 오체투지로 예경 드리옵니다.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우주적 진리의 불교가 2600
여 년의 오랜 세월을 거쳐 오면서 너무도 많이 왜곡
되고 왜소화 되어 위대한 불교 본래의 진면목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
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 왜곡된 우리 불교의 실상을 반성
적 차원에서 냉철하게 파악하고 왜곡의 원인을 정확히
밝혀, 진정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토대로 새로운 불교
의 방향을 정립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위대한 우리 불교의 진면목을 드러내어 정법을 세상에 널
리 알려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불교는
환골탈태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우리 불교도들이 깨어나야 합니
다. 긴긴 잠에서 깨어나, 훌훌 털고 일어나야 합니다.
눈을 똑바로 뜨고 귀를 크게 벌리고 마음을 활짝 열고
진리의 말씀 - 정법의 사자후를 드러야 합니다.

한구절 진리의 게송을 듣기 위해 흉악한 나찰에게 한 몸
을 기꺼이 던지는 설산동자와 같이 진리를 갈구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귀 기울여야 합니다.

수천 년 간 많은 훌륭한 학자들이 해설하고 주석을
해놓은, 그래서 불교의 정설로 굳어진 교설조차도 때
로는 과감하게 버릴 줄 아는 용기와 지혜를 가져야 합
니다. 이제까지 나의 분신처럼 가지고 있던 불교에 대
한 지식도 버릴 줄 아는 아픔도 감수해야 합니다.

지금 세계불교는 남방불교, 북방불교, 티베트불교라
는 세 갈래의 큰 흐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중 어느 불교도 부처님의 법통을
이어받지 못하고, 왜곡되거나 왜소화되어 있습니다.
정법불교의 위대한 면면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
다. 이제 우리 불교의 실상을 아주 포괄적으로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불자로서 현행 불교
를 비판할 목적은 추호도 없음을 미리 밝혀 드립니다.
오로지 우리 불교의 앞날을 위해서라는 것이 유일한
이유입니다.

고대 인도의 마가다국 아쇼카왕 때 스리랑카로 전해
져 꽃을 피운 동남아시아 중심의 남방 상좌부불교는
스스로의 틀에 갇혀 감히 그 틀을 깨고 밖으로 나올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계율을 엄격히 지키는것은 높이 사줄만합니다. 위빠사나
수행법도 불교 경론에 있는 수행법입니다.

그러나 그 수행법에만 집착하다 보니 부처님의 위신
력을 받는, 보다 수승한 수행법을 알려고 하지 않습니
다. 아라한이 수행 목표이고 해탈신을 갖는 보살이나
불신을 두는 붓다의 경지는 감히 생각하지 못하고 있
습니다.

부처님의 어마어마한 위신력과 심원한 적멸의 해탈
세계를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방불교는 이런 한계가 있지만 그래도 크게 왜곡
되지 않은 것만이라도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북방으로 전해진 중국불교와 한국불교는 소위 선불
교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으나, 태동 초기부터
외도사상과 혼합되어 불교의 본질에서 많이 벗어나 있
습니다.

심즉시불이니 견성성불이니 하면서 그럴듯한 교설을
내세우고 있지만, 부처님의 참 경계를 이해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불교를 왜소화시키고 부처님을 격하
시키고 있습니다.

한국의 간화선도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화두를 들
려면 부처님의 성호가 가장 좋은 화두가 되어 밤낮
으로 불러야지, 왜 경전에도 없는 조사 스님의 말씀을
화두로 들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큰 성과도 없고 본격적인 수행의 시작단계인
견성,즉 공을 깨치는 수준에 이르는 것이 고작입니다. 그것
을 위해 고생스럽게 오랜 기간 수행을 해야 하는지 이제 한
번쯤은 되돌아볼 시점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래도 최후의 보루로서 티베트불교가 있지 않느냐
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랬으면 참 좋겠
습니다. 티베트불교는 수행체계가 잘 갖추어져 있긴
합니다.

그러나 수행의 어는 단계에서 하고 있는, 힌두교 요가
수행이 가미된 밀교 수행법은 정법이 아닙니다. 또한 티베
트불교의 지도자는 신통을 사용하여 환생을 함으로써
정법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티베트불교를 위한다고 하지만 정법에 반하
는 것은 하면 안 됩니다. 티베트불교의 우수성으로 주
장하고 있는 즉신성불의 교설은 불자들의 안목을
흐리게 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불신보신불이 얼마나 거룩하고 위대하고 차원
높은 존재인지도 모른 채, 중음계에서 우주 본성의 빛인
정광명을 받은 의생신을 보신불이라 여기는 어처구니
없는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세계 불교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
점을 몇 가지로 요약해서 정리해봅니다.

1. 세계 불교는 부처님의 실존과 위신력을 믿지 않
는 부처님 없는 불교가 되어버렸습니다.

2. 세계 불교는 인간의 실체인 영혼체을 부정하고 윤회
주체마저 없다고 하는 주인공 없는 불교가 되어버렸
습니다.

3. 우리 불교는 붓다가 되고 보살이 되는 완전한 생사
해탈을 이루는 수행법이 없는 불교가 되어버렸습니다.

4. 우리 불교는 해탈법위와 해탈의 적멸세계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지 못하는 차원 낮은 불교가 되어버렸습
니다.

불교는 우주 법계의 법왕이신 부처님을 교주로 모시
고 있으며 완벽한 교리체계와 구원사상을 갖추고 있습
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신도 수로 보면 기독교
천주교 포함, 이슬람교, 힌두교 다음으로 겨우 네 번
째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신도 수가 종교 평가의절대적인 지표가 되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이것은 오늘날 불교의 위상을 보여주는
단적인 하나의 지표가 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입니다.

그리고 불교의 고향 인도에서는 불교가 사라져 버렸
습니다. 불교가 세계로 뻗어나가 널리 정착되지 못하
고, 아시아 일원에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을 정도로 쇠
퇴했습니다.
불교 교리의 위대함과 우주 법계영역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불교의 위상을 감안한다면 이는 초라하
기 그지없는 성적표인 것입니다. 그럼 불교가 왜 이런
모습이 되었을까요? 이제 그 이유를 한 번 찾아보겠
습니다

출처/2천년간 무아윤회 논쟁에 종지부
영혼체 윤회론
펴낸곳/현지사-영산불교사상연구소





대승불교 경전을 쓴 붓다의 화신들


대승경전들을 보면 상당 부분이 붓다가 아니고서는 쓸 수 없는
부분들이 발견됩니다. 따라서 붓다의 소설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
다. 석가모니부처님이 아닌 다른 어느 붓다님들께서 경전 편찬의
대임을 띄고, 이 땅에 화신으로 오셔서 여러 대승경전들을 기록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을 학자들이 첨삭, 보정, 가필, 윤문해 오늘 날 우리가
보는 대승불전이 되었음을 이 자리에서 천명합니다.

(1) 화엄경 열반경 반야경 법화경 능가경 능엄경 지장십륜경
 등에서, 부처님의 미간 등 불신의 여러 부분에서 빛을 방사
함이 나오는데, 이것은 사실입니다. 불과를 증함이 없는 학자
가 필요에 따라 부처님께서 방광하시는 것을 절대로 볼 수
없습니다.

(2) 부처님 화신불의 설법이 바른 가르침임을 증명하기 위해
하늘과 땅이 육종으로 진동하는데, 대승경전 곳곳에 '육종
진동'이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3) 수많은 보살들과 성중, 하늘 사람들이 설법의 장에 운집
한 것 역시 사실입니다.

(4)법화경 여래수량품의 말씀은 거의 사실인 바, 불과
를 증하지 못하고서는 이를 알 수 없습니다.

(5) 법화경 신력품에 부처님의 혀가 삼천대천세계를 덮
는다는 부분도 사실입니다.

(6) 백천만억 화신을 붓다께서 나투신다는 말씀 등은 붓다 이
루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대목들입니다.

(7)화엄경에 나오는 수많은 신들은 붓다가 아니고서는 말
할 수 없습니다.

(8) 32상 80종호는 불신원만보신의 거룩한 점인 바 붓다만이 알
수 있습니다.

(9) 다보탑의 다보불을 알 수 있는 이는 오직 붓다뿐입니다.

(10) 법화경 종지용출품에서 볼 수 있는 항하사수의 불
격을 갖춘 보살의 존재도 붓다가 아니고서는 알 수 없습니다.

(11) 지옥의 수와 그 소름이 오싹할 정도의 형벌 받는 상황을
어떻게 꾸며낼 수 있겠습니까?

(12) 극락을 누가 그토록 자세히 그려냈겠습니까? 윤회 안과
밖, 모두 가볼 수 있는 붓다 아니면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13) 백천삼매, 해인삼매, 적정삼매 등은 오직 붓다만이 알
수 있습니다.

(14) 법 보 화 삼신을 어찌 알았을까요?

(15) 유마경의 부사의품의 내용 등도 사실입니다.

(16) 사음이 무서운 계율이라는 것도 불과를 증한 이만이 그
이유를 압니다.

(17) 불마다 인행시에 세운 서원이 있다는 말씀도 맞습니다.

(18) 법당 탱화에 있어서도 가령 관음보살의 아미타불을 정대
한 관, 여러 불 보살의 영락 등 장신구, 지장보살의 석장, 문수
보살의 지혜의 칼 등 이 모두는 진정 불과를 이뤄 원만보신의 변
화신을 보았기에 말할 수 있는 사실들입니다.

나는 거듭 선언합니다. 대승경전들은 붓다의 화신들이 쓴 것을
불교학자들이 증보, 윤문해서 편집한 것이라고!
남섬부주에 부처님 이후로 오셨던 다른 붓다님들의 후신을 소
게하겠습니다. 인도의 유마힐 거사 아쇼카왕, 중국의 구마라즙
삼장, 한국의 이차돈 성사, 일본의 성덕태자는 석가모니부처님 후
신이 아닌 다른 붓다들의 화신으로서 보살행만 하고 가셨습니다.

소승의  아함경   대승의  금강경,   법화경,  화엄경
등은 대부분 붓다께서 직접 말씀하신 내용이거나, 진실을 담은 경
전입니다. 동서고금 아니 시공을 뛰어넘어 가장 심오하고 위대
한 종교는 불교뿐입니다. 불교는 희유하고 거룩하신 부처님의 가
르침을 전하는 위대한 종교입니다.

중생들은 과거 도인들이 신통을 부린 행적에 대하여 흥미를
느끼고 도인, 기인들이 행한 기사이적에 대해 특별한 존경심을
가집니다.

신통은 우리들 범부로서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신기하고
불가사의한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그마한 영통이나 신통만 있어도 그 사람을 따르고,
그 주변에 구름 떼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입니다. 많이 배워 학문
이 있는 분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신통을 약간이라도 가진 자는 일부러 자기를 과대 포장합니다.
이를 따르는 눈 먼 인간들은 무조건 그의 말을 믿고 추종합니
다. 우리는 신통의 실체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영통 신통이 왜, 어떻게 오는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영통 신통을 믿고 따르면 무엇이 이롭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파
헤쳐 여러분이 참고하시도록 하겠습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부처님의 본 뜻을 왜곡한 대승불전



아육왕의 비문 등에 따르면 우리 부처님께서 대열반에 드
신지도 약 3000년이나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정법
의 상당 부분이 땅에 묻히고, 불법이 적잖게 왜곡되었습니다.

부처님 말씀은 불멸 후 약 1~2백여 년 간은 합송 형태로 전승
되어 오다가, 제3회 결집 때 구전되어 오던 부처님 말씀을 비로
소 문자화하기에 이릅니다.

특히 대승경전은 대략 기원 전 2세기 후박~1세기 혹은 서기 1
세기부터 약 1,000여 년 사이에 부처님의 삼법인 사상에 입각
하여, 대승불교 학자들이 편찬한 이후 증광, 보정, 첨삭을 거듭하
여 완성되었다는 것이 학계의 유력한 정론입니다.

그래서 '대승비불설'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약
200년 전까지만 해도 불교신도들은 대승경전이 '부처님께서 친히
설하신 경전'이라고 믿어왔습니다. 그러나 실증적 역사학이 소개
돼 불전의 성립 시점 등을 여러 학자들이 연구한 결과 대승경
전에 기록된 내용을 부처님이 모두 말씀하신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2500여 년 전에 출세하신 우리 부처님의
행적도 처음 20년과 마지막 2년 정도 밖에 추적할 수 없다고 합
니다.

분명히 지금의 대 소승 경전의 말씀 모두가 그대로 불설이라
고 믿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아난 존자는 암기의 천재였지만
어찌 부처님께서 45년 동안 법문하신 모두를 정확히 송출해 낼
수 있었겠습니까? 상과 집착에서 벗어나 이미 보살과 성과를 얻
었다고 하지만 '붓다 중 붓다'이신 부처님의 깊은 뜻을 분명하게
헤아린다는 것도 무리였고, 더구나 아난은 부처님을 25년 밖에
시봉하지 못한 처지였습니다.

산스트리크 문자 역시 당시로서는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으며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의 인도에는 수백의 방언들이 있어서
기록의 정확성 역시 의심받기도 합니다.

이 밖에 경전의 최초 결집 때 참여하지 못한 비구들에 의해서
칠엽굴 밖에서 별도로 결집이 있었다는 사실, 구어체가 문어체로
바뀔 때의 문제, 산스크리트 등으로 기록된 불교 원전이 약 서기
2세기에서 12~13세기 사이에 1~2백 명의 번역사에 의해 한자 등
으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오역의 문제 등 이런저런 이유로
대승견전의 원전에서 적잖은 왜곡이 불가피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불교 내부에서도 불멸 100여 년 경, 제2차 결집을 계기로
근본분열에 뒤이어 지말분열을 거듭해 18~20부파가 생겼고, 여러
부파들은 각각의 소의삼장을 두었습니다. 이 역시 왜곡
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특히 지금의 대승불전에 기록된
말씀 가운데는 본래 부처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부분이 많이 눈
에 뜁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더구나 이러한 경전을 소의경전으로 결정한 많은 종파불교에
의해 해석의 차이가 생기고, 또 불교가 세계화하는 과정에서 상당
히 이질적인 다른 나라의 토속 종교와 접목해서 생긴 불교도 있
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선불교의 가르침에는 부처님의 본 뜻과 많은 괴
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머지않아 부처님 이후 4번째로 출세할
불에 의해서 대 소승 불전은 재조명되어질 것입니다. 과거
장엄겁 동안 수많은 붓다들이 출세하여 설한 법설이 고스란히 용
궁에 차례로 소장되어 있습니다. 그 비장된 법보를 곧 출현할 붓
다산해혜자재통왕불가 공부하여 진정한 정법을 사자후할 것입니다.

또한 영산 당시의 저 유명한 마하가섭 존자는 지금 여인의 몸
을 받아와 불과를 증하고 삼신을 구족하여 출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수보리 사리불 존자처럼 조용히 떠날 확률도 있으나,
21세기의 세계불교를 위해 우리 모두 간절히 원한다면 보살행을
하기 위해 출세할 것입니다.

나는 여기서 다시 확실하게 말씀드립니다. 불교학자들이 깊은
삼매에 들어 구전되어 내려온 여러 부처님 말씀인 삼법인사상에
기초해 대승경전들을 편찬해냈다고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청정한 계율의 용맹전진에 따라 깊은 삼매에 들 수 있고, 깊은
삼매를 통해서 불경을 펴낼 만한 지혜가 생기는 데 학문을 하는
학자들로서는 무리입니다.

공를 깨쳐 무아가 되어야 삼매다운 삼매에 듭니다. 나와 대
상이 없고 동시에 '나'라는 생각까지 없으면서 성성적적해야 비로
소 아라한 삼매입니다.
더욱이 불전을 쓰려면 최소한의 진정한 삼매인 상품보살 삼매
인 해인삼매에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수행인이 여자를 안다면 절
대로 삼매에 들 수 없습니다. 또한 학승들도 전정사유를
해야만 간경으로서도 미생전의 본성을 깨칠 수 있으나 이
수준으로는 경을 쓸 수 없습니다.

상품보살의 삼매 정도에는 들어야 하는데 실천궁행 염불선이라
야 됩니다. 그것도 필요조건일 뿐이요, 몇 가지 조도행을 더
해야 충분하다 할 것입니다.

학문하는 이들은 평생 어구에만 천착하므로 정토보살이 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보살의 깊은 삼매에 들기란 불가능한 것입니
다. 다만 구마라즙 삼장은 붓다의 화신이셨음에도 불과를 증하지
못해 대승경전은 제작하지 않으시고 역경만 하셨습니다. 보살행만
하고 가신 것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불교의 대승경전


불교의 대승경전 - ≪법화경≫ ≪화엄경≫ ≪대반열반경≫ 등의 부처님 말씀이 많은 방편과 비유火宅喩 窮子喩……, 상징을 들어가며 설하셨다 해서 다분히 픽션허구으로, 한낱 문학작품으로 보는 경향이 있음을 보고, 사실을 진실하게법문하고 싶어 나의 ≪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Ⅱ≫에서는 직설법을 썼음을 강조해 두는 바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대반야경≫ ≪법화경≫ ≪화엄경≫ ≪대반열반경≫같이 큰 법을 설하실 때는 먼저 깊은 삼매에 드신다는 것과 하늘에서는 여러 아름다운 꽃비를 내리고, 대지는 육종으로 진동하고, 머리 정수리에서, 입 속 치아에서, 미간에서, 몸 전체에서…… 억종광명을 놓으셔서 무량 아승기 국토 저쪽의 소천세계 모두를 비추시기도 합니다.

이때 많은 보살, 호법성중104위, 하늘 왕등, 용왕…… 그 서열 높은 권속들이 구름같이 몰려와서 저쪽 세계의 광경을 보면서 놀라 부처님께 예배 공경하고 찬탄합니다.

바야흐로 감로의 법문은 시작이 됩니다. 32상 거룩하신 상호의 부처님께서는 백천억의 화신을 내시고 자재와 신통…… 미묘, 최승의 음성으로 법을 설하십니다. ≪화엄경≫과 ≪법화경≫ 등의 말씀을 허구라고 생각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방편과 비유를 드는 것은 반드시 사실에 근거한다는 것을 재확인합니다. 법을 모독, 능멸하는 대망어를 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부처님은 거룩하시고 희유하십니다.

바라고 원하는 것名利_쾌락에 대한 집착을 다 놓아버리면, 자신의 소유가 아닌 것자아에 대한 것까지도에 집착하지 말고 다 버릴 때 드러나는 반야 지혜반야공는 화엄의 세계를 열기 위한 과정인 것입니다.

화엄의 세계로 깨쳐 들어가면오입悟入 붓다 이룬 이들은 탄성을 지르면서
“아-. 이거다! 옳지, 그래…….”합니다.

공空을 깨치고, 곧 마음자리를 보고 보림保任을 잘해서 공성空性을 증득하여 무루 대아라한이 된 후 실로 ≪법화경≫ 말씀처럼 백천만겁을 두고 삼천대천세계 부처님들께 모두 공양드리면서 보살도를 완성해야 삼신을 갖춘 붓다가 될 수 있습니다.

무아 속 절대계 연화장세계에 천억 나유타 갖가지 빛깔로 이루어진 자기의 불신佛身을 얻습니다. 유형이며 지복의 몸입니다. 32상 80종호 이상을 갖춥니다. 붓다의 눈빛은 때 묻지 아니한 선정삼매의 빛입니다. 지계․인욕․정진․반야․자비의 빛입니다.

붓다의 거동 거동 일거수일투족은 태산이 움직이는 듯 하면서도 해탈, 무애, 자비, 지혜덩어리이십니다. 붓다의 음성은 미묘음으로서 어느 때는 단보시바라밀음 때로는 시라계율바라밀음, 인욕․정신․선정․반야․자비․해탈음이십니다.

사자후음․운뢰雲雷음을 내실 때도 있습니다. 불신을 이루는 백종오색광명이 몸 여러 군데에서 방광하며 분사될 때의 그 붓다의 빛은 청정, 적정, 지혜, 환희, 청량, 단엄……합니다.

삼천대천세게의 일부 혹은 전부를 비추실 때 그 빛들 모임은 마치 삼매의 구름, 길상․원만․지혜․자비의 구름이 됩니다. 향香구름, 꽃․보배․의복의 구름도 됩니다.

향 구름에서 향비香雨가 내리고, 꽃 구름에서 꽃비가 내립니다. 그 향과 꽃과 보배……에서 갖가지 미묘한 법法의 소리를 냅니다. 그 부처님 광명으로 인하여 병든 자 병이 낫고, 근심 고통 있는 이는 그 번뇌의 고에서 떠납니다. 10악의 마음도 부처님의 억 가지 빛깔 광명을 만나면 악심이 떠납니다.

부처님의 손가락, 입과 입속 치아, 코, 눈매…… 어느 부분이든 그 아름다움에 취합니다. 8고리 석장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을 보면 불가능이란 없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천상천하의 지존의 느낌이 듭니다. 깨끗하고 청정한 부처님 광명의 기능은 밀장이어서 모두 소개할 수 없습니다. 다만 중생의 업장을 씻어주고, 소멸해줄 수도 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붓다는 절대계에 여여히 계십니다. 원만보신은 거룩하고 희유하십니다. 부처님의 위대한 점은 보살이 지니지 못하는 삼신과 대적정삼매와 부사의한 억종무량광명에 있습니다. 불교는 위대합니다. 대승경전의 장면들은 사실입니다.

마음이 곧 부처라고 불교를 왜소화시키지 않기를 바랍니다.
자력수행으로 우주의 본체, 마음자리를 보는 소위 견성은 경계가 뒤집혀서 모두가 공空입니다. 공을 깨친 후 두타행을 하여 나에 대한 착을 완전히 떼어야 공을 증득합니다. 아라한의 깨달음 보살이 되면 수행자의 네 영체가 완전 분리되어서 1번 영체 안으로 겹치고 그 1번 영혼체가 서방 극락세계 아미타부처님 앞으로 나아가 극락세계 옷을 하사받고 극락 정토보살 인가증을 받습니다.


보살의 깨달음 처음으로 불과를 증하는 무상 정각을 이룰 때는 자기의 불신이 이미 절대계에 존재합니다. 그 불신과 거짓 몸뚱이가 계합이 되면서 부처님으로부터 불의 인가를 선언받고 인가증을 받으며, 삼천대천세계 부처님 대장에 오르게 됩니다. 붓다의 깨달음_無上正覺

≪화엄경≫의 서품격인 세주묘엄품 같은 일들이 현실로 등장하게 됩니다. 광명 만덕‧자재 만현에게는 부처님의 아버님 정반, 어머님 마야가 와서 배알하고 축하의 말씀을 남겼습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2권 중 발췌
펴낸곳/현지사-영산불교사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