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력불교
이제 우리는 윤회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하늘세계 가면
사람으로 오니까 하늘 사람 좋지요. 하지만 우리는 궁극
적으로 윤회, 삼계에서 윤회에서 탈출해야 되요. 그러면
우린 여기 안와요. 여기, 영원히 안 올수가 있어요.
하늘에서 하늘이라고 하는 그 하늘에서 살지요. 그러니까
우리는 윤회에서 벗어나기를 서원하고 그 곳에 목표를 두
어야 해요. 그런데 자력으로는 어려워요.
자력으로는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내가 비유를 들기
를 인공위성이 지구 인력권 벗어나기 어렵듯이 삼악도를
안 가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 또 윤회를 벗어나려면 삼계의
윤회를 벗어나려면 로켓트가 지구인력권이 아니라 태양계
인력권을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기가 막히게 어렵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거요. 자력으
로는 참으로 어려워요. 자력으로는 어려워. 그래서 절
대하신 힘(파워)을 지닌 부처님께 귀의, 귀명해야 합니
다. 그래서 부처님 중에서도 부처님이신 우리 석가모니
부처님께 목숨 바쳐 귀의해야 되요.
여러분 말은 쉽지, 목숨 바쳐 귀의 한다는 말은 쉽게 하는
데, 이것 참 깊은 뜻을 지니고 있다 구요. 목숨을 바쳐서 귀
의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석가모니불을 칭명을 하되
반드시 경전 읽고 하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출처/2007.1.1.월(음11.13) 큰스님 부산 법회중 발췌
자력으로는절대 불 보살이될 수 없습니까?
문6
대 소승의 수행법으로 크게깨쳐도 아라한이라하셨는데,
자력으로는절대 불 보살이될 수 없습니까?
답6
소승상좌부불교 테라바다 대승 금강승의 수행의 본질은 같
습니다. 삼학을 통해서, 탐 진 치 삼독을 닦고
깨달음을 얻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수행법이 다를 뿐입니다.
본성을 만남으로써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러나 본성과 계합하는
것은 한 식경을 지나지 않습니다.
수행은 우리 자신을 위한 무언가를 원하기 때문에 시작합니다.
수행이 차츰 깊어지고, 지혜가 증장해 감에 따라 자기 중심의 소
승에서, 비이기적인 수행인 대승으로 나아갑니다. 모든 불교 종파
의 수행은 인간 내부의 탐욕과 성냄, 무지의 제거를 목표로 합니다.
불교 수행은 이기심과 집착을 넘어서고 열반을 얻는 것이 목표
입니다. 수행이 깊어지면 자연히 일체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대비
심이 일어나 대승을 향해 나갑니다.
따라서 모든 불교 종파의 수행법으로 깨달았으면 아라한까지는
도달합니다. 여기까지가 우리 인간의 한계입니다. 부처님께서 수
행승이 아라한 성과를 얻도록 주로 가르치신 것도 그 때문입니다.
아라한은 다음 생을 받아와 여러 바라밀 수행을 함으로써, 타
력에 의하여 보살과를 성취합니다. 선근 공덕을 쌓아 부처님을 염
하고, 불명을 구창하면 불퇴전의 보살과를 얻게 됩니다. 자력으로
는 결코 보살과 붓다가 될 수 없습니다. 아라한이 인간 자력의 한계
임을 거듭 밝히는 바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붓다는 법 보 화 삼신을 갖춥니다. 법신과
보신이라는 불신을 얻지 못하고서는 붓다라 할 수 없습니다.
이 말은 중요한 말입니다. 역사적인 선언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영산불교사상연구소
부처님께 귀의 염불하는 타력불교로 들어와야 합니다
인간 세상의 흥망성쇠는 자연의 이법입니다. 양지가 음지 되고 음지가 양지 되는 것은 자연의 이치라는 것입니다.
잘 사는 사람이 못 살게 될 수 있고, 못 살던 사람이 어느 날 부자가 되어 있습니다. 약한 나라가 국력이 신장되어 강한 나라가 되고, 세계 제일의 제국이 몇 백 년을 지탱하지 못하고 강국强國의 대열에서 낙오되고 약소국으로 전락되기도 합니다.
‘불교를 신봉하는 동남아국가들이 왜 잘 살지를 못하는가? 기독교 문명권 서구 여러 나라들이 잘 산다, 나보다 더 많이 배우고 잘 난 이들이 그 종교를 따른다, 나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가는 길을 따라 갈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재산이 많고 학식이 풍부하다고 하여, 똑똑하고 잘났다고 하여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욕심이 적어 자기 분수에 만족할 줄 알고 교활하지도 오만하지도 않으면서 정직하고 진실하며 인륜과 도덕을 지키면서 사는 그 사람이 보다 더 훌륭한 사람인 것입니다.
성자를 공경하고 부모에게 효도를 할 줄 알고 불쌍한 이웃을 돌보며 나라를 사랑하는 그런 사람은 보다 훌륭한 사람입니다. 여기서 더욱 나아가 정법을 만나 내면의 영혼을 백설같이 정화한 사람이야말로 진실로 바람직한 인간상입니다.
이 몸은 영원하지도 않고 참된 것도 아닙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생성 소멸합니다. 그래서 본래 비어있습니다. 《금강경》의 일합상一合相의 도리로 보아야 합니다. 일체가 공입니다.
출가하여 수행하는 스님들은 나와 세상에 대하여 집착하지 않고 청정한 계율을 잘 지키면서 탐진 삼독심을 정화해 갑니다. 조석으로 이 나라와 세계의 인류 모두가 전쟁 없이 평화롭게 잘 살기를 기도합니다. 부처님의 위대하신 발자취를 가슴에 담고 여러 생을 통해 지은 죄업장의 소멸을 발원하면서 염불로써 생각을 모아갑니다. 깊은 고요로 침잠해 들어갑니다. 선정에 듭니다. 마침내 시간을 초월한 적정으로 빠집니다.
흑암의 동굴 속에서 몇날 며칠을 갇혀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태양이 작열하는 바깥 세상으로 튕겨져 나왔을 때, 내리쬐는 빛 때문에 생각 따위는 찾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견성 경계입니다.
칸트Kant, 19세기 초 독일의 철학자 가 존재의 근원인 빛自性의 光明 속에서 3일을 보냈다합니다. 바로 시공을 초월한 적정의 경계였습니다. 철학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희를 가져온 칸트는 비판주의의 웅대한 철학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나我 라는 생각도, 어떤 대상의 흔적도 없습니다. 급기야 우주의 제행諸行을 주재하는 진리, 이법의 본래 모습을 면대합니다. 견성입니다. 도를 통했다는 자리입니다.
여기서도 한없이 들어가면 삼매에 듭니다. 우주의 모두를 요달합니다. 중생이 나서 사는 육도의 세계를 봅니다.
불교에선 여기를 보살의 법위라 봅니다. 보살이 무량겁동안 반야와 복덕을 지으면 비로소 붓다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 불신을 얻는 부처님이 됩니다. 이런 자리는 결코 학문을 통해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실천 수행으로서만 드는 경지입니다.
이 수행자는 인생을 압니다. 우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압니다. 어떤 가르침이 참된 진리라는 것을 잘 압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2권 10장 중에서
타력은 필요 충분조건-여러 마장을 중심으로
자력불교로는 21세기의 인류를 향도하기 어렵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싹을 틔우고 그것이 성장하여 많은 알곡을 얻으려면 농부의 손길도 필요하고 적당한 비료, 햇빛, 적당한 비, 바람도 필요합니다.자력‧타력은 필요 충분조건입니다.
많은 종교학자들, 불교학자들까지도 불교를 자력불교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는 자력이면서 타력입니다. 아니, 불교는 타력불교인 것입니다.
불자 여러분!
우리 이웃들 모두가 금생에도 잘 살고, 다음 생에도 더 잘 살았으면 합니다. 이러한 소망은 어떤 종교의 가르침보다 불교의 가르침에서 이루어진다고 확언합니다.
거룩하고 희유하신 부처님께 귀의하고, 참회하면서 바르고 깨끗하게 사는 것입니다. 물론 염불하면서 말입니다. 부처님의 가피가 있으면 윤회생사를 벗어날 수 있는 아라한도 되고, 보살도 될 수 있습니다.
인간 자력수행의 한계는 아라한과를 얻는 데까지라고 나는 누차 강조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자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여러 마장은 부처님의 절대하신 타력에 의지하여야만 극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쟁터에서 백만의 대군을 격파하여 이길 수는 있으나 내 마음하나 이기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이 육신에 대한 애착이나 마음 속 탐진 삼독, 오욕의 번뇌마를 조복 받으면 모든 외마를 항복받을 수 있고 천하도 얻을 수 있습니다. 마음과의 사움에서 승리자가 되면 어떤 경우를 당해서도 언제나 무고안온하며 평화롭습니다.
경≪대품반야경≫에서 우주의 진리자요 대성취자이신 부처님께서 “나는 일체一切의 승자勝者요, 일체의 지자智者……”라고 갈파하신 것은 인간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요괴번뇌마, 외마들을 제압하신 진정한 승리자로서의 선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여기서 나아가 중생의 업장, 업보까지도 단절해 줄 수 있는 거룩하고 희유하신 유일자唯一者요, 절대자絶對者이십니다.
여러 가지의 장애_마장魔障
자력으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은 다음의 몇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내마內魔가 있습니다.
소위 번뇌마 등입니다. 불안, 초조, 공포라는 한계 상황을 자력으로 극복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사형수가 자기 이름이 불려지면 “면회요!”하고 호출하는 소리에 벌써 기氣가 다 빠져 낙지같이 흐느적거리며 나온다고 합니다. 사형수 같은 입장에 있는 이들의 죽음에 대한 공포, 불안, 초조 - 살길이 막연한데 부채의 독촉에 시달려 하루하루 짓눌리고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고뇌하는 심정, 아무도 몰래 사람을 죽인 자의 미칠 것 같은 죄책감…… 등에서 오는 극복하기 어려운 번뇌마魔를 어찌 자력으로 벗어날 수 있단 말입니까?
14세기에 창궐한 흑사병페스트은 100여 년을 주기로 18세기까지 중세 유럽의 인구를 1/3까지 치사케 한 전율할만한 공포의 전염병이었습니다. 그러한 살인적인 전염병이 창궐한 마을에서 며칠을 지내지 않으면 안 될 처지에 놓였다 가정합시다. 또 6‧25같은 난리가 터져 수많은 소중한 인명이 날마다 죽어 가는 전쟁통에 있다고 가정합시다.
이때의 불안하고 초조한 공포의 한계 상황에서 우리가 설사 화두타파 등을 통해 선정에 들 정도의 수준이 됐다 하더라도 진정한 안심입명安心立命은 어려운 것입니다.
독사 구렁이가 내 방 안으로 들어와 숨었다 합시다. 한밤중입니다. 나에게 접근해 오는 소리가 납니다. 이 경계를 당해 감히 그 뉘라서 초연할 수 있답니까?
안심입병은 자력에 의한 선정의 힘으로는 온전치 못합니다. 보살의 삼매는 한계상황을 극복합니다. 부처님이 이끄시는 삼매력으로 가능해집니다.
둘째, 외마外魔가 있습니다.
1) 고약한 원결 영가들의 빙의 2) 용신, 사신, 이매망량, 정매마精魅魔 3) 천마天魔 등에 의한 빙의는 결코 자력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 어느 도인도 이를 떼지 못할 것입니다. 토굴에서 스승 없이 잘 못 공부하면 용신, 이매망량, 천마가 빙의합니다. 용신, 이매망량, 천마들은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성과를 이루어가는 수행자를 방해합니다. 빙의합니다. 빙의된 이들을 떼지 않고 공부한다면 평생을 정진해도 마경에서 헤어나올 수 없습니다. 이런 것들이 빙의되어 있는 상태의 정신으로는 더 이상 공부할 수 없습니다. 여러 경계로 수행자를 괴롭힙니다. 때로는 묘한 경계를 보여주어 수행자로 하여금 빠져들게 하고, 집착하게 만들어 결국은 정신이 돌아 미치게 됩니다. 또한 죽으면 악도에 떨어집니다.
천마나 귀신주로 사이비 도인의 영가이 빙의돼 있는 무당이나 신기 있는 이들이 가끔 불 보살과 대화를 한다고 자랑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천마나 귀신의 말을 듣고 불 보살과 대화하는 줄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이 점 명심하기 바랍니다.
또 지적할 것이 있습니다. 변화술에 능한 천마하늘마가 공부하는 수도인에게 불 보살의 모습으로 둔갑해서 화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들을 절대계에 계시는 붓다로 보면 안 됩니다.
붓다의 화신에서 볼 수 있는 자비·선정·지혜·지계·인욕의 모습을 천마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붓다의 화신과는 마치 왕과 거지만큼 천지 차이입니다. 그들에겐 무량광은커녕 청정한 빛조차 흉내 내지 못합니다. 그들의 눈엔 욕심과 살기가 있습니다. 해탈한 성자에게서 느낄 수 있는 깨끗하고 청정한 기운을 느낄 수 없습니다. 붓다의 화신은 몸 주변에서 맑고 깨끗한 빛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마의 몸 주위의 빛은 탁할 뿐입니다.
셋째, 다겁생을 살아오면서 지은 크고 작은 악업으로 앞으로 미래세에 받을 과보의 업장 그리고 악惡, 불과를 이룬 성자의 경지에서 소멸된다는 악惡·습기習氣들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이것을 단절·정리해 주지 않는 이상 10생, 100생을 수행한들 영적인 성장을 기약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지적 사항은 이성異性에 대한 강한 욕구, 성욕과 색마色魔입니다. 20~40대까지의 젊은이들은 성적 잠재욕구 때문에 대부분 꿈에 몽정·몽설을 합니다. 특히 출가해서 부처님으로부터 계를 받은 수행자로서 자위행위나 동성연애는 사음죄로 본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이성에 대한 욕망은 큰 번뇌가 되어 성과를 얻기 어려운 결정적 장애가 됩니다. 그러나 천에 한 사람 불법 공부 잘해서 스스로 깊은 선정의 힘을 얻는 이라면 강한 이성에 대한 욕구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수행자에게 불행하게도 색마라는 외마가 붙게 되면 설사 견성한 공부인이라고 하더라도 천 길 나락에 떨어지게 됩니다. 외마는 번뇌마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점 명심해야 합니다.
다행히 부처님 회상을 만나 공부하는 수행자들은 색마도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주기적으로 약사여래부처님께서 수행자의 정수精髓를 뽑아주시기 때문에 정법을 수행하는데 장애가 없게 됩니다. 이 점 역시 타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분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외 여러 가지 진리수행자들의 앞을 가로막는 여러 가지 마장들이 많습니다. 인간의 자력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장애물들이 중첩해 있습니다.
다시 강조해둡니다. 자력수행의 한계는 깨달음까지입니다. 견성까지입니다. 이 정도 선정의 힘으로는 지정한 안심입명도 어렵고, 천마 등 장애를 뗄 수도 없습니다. 또한 색이성에 대한 경계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으며 업장, 악·습기習氣의 소멸은 더욱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과학, 철학사상에 있어서 깊은 경지에 든 분들의 신념의 힘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선정력 보다는 못하다는 것을 밝힙니다.
타력, 부처님의 크신 위신력에 의하여 드는 삼매보살삼매 정도가 돼야 번뇌심, 탐욕심, 중생심 모두가 비로소 녹습니다. 업장까지 녹습니다. 죽을 때 나쁜 병 얻어 똥오줌 누고 죽는 일도 없습니다.
도고마성道高魔盛
과거 생에 선근이 있는 불자 여러분!
위와 같은 여러 장애들 때문에 구도자 중 자력으로 깨달음을 얻은 이들이 천에 하나, 만에 하나 정도일 뿐입니다. 깨달음도 이렇듯 어려운 데 깨달음 이후의 수행은 더욱 어렵습니다. 그것은 불 보살의 모습으로 나투어서 자기 권속으로 삼으려는 변화술에 능한 천마들의 방해 魔障를 극복해야 하는 어려운 공부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 사람이 깨달음을 얻거나 나아가 아라한 되고, 아라한이 보살 되고, 보살이 붓다 되고자 사바 세상에 몸 받아 올 때 마장은 위계가 높아질수록 필연적으로 무섭게 따라 붙습니다. 도고마성道高魔盛입니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가끔 이 사바세계에 아라한이 나오고, 정토보살이 나옵니다.
큰 스승이 없이 자력으로 성과를 얻은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라한이 될 수행자에겐 때가 되면 성중하늘에서 도반 아라한들이 내려와 외마를 막아주고 공부를 지도해주기 때문입니다.
정법의 길로 끌어주기 우해 그 수행인에게 옵니다. 역시 보살이 나올 수 있는 것은 정토에서 보살들이 보살과를 이룰 시기가 된 수행인에게 와서 도와주고 이끌어주기 때문입니다.
붓다 될 성자는 부처님이 오셔서 지도하십니다. 그 외에 성자와 불 보살의 가피없이 자력으로 성과를 얻는 것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외마를 막아 줄 큰 스승 없이는 공부가 될 수 없습니다.
자력수행으로는 그 힘든 마장을 도저히 이겨낼 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타력을 간과해선 결코 되는 일이 없는 것입니다.
이제는 타력불교다!
절대계에 불과를 증한 붓다님들이 계신다는 이 복음을 부정하지 마십시오. 이제 자력불교에서 타력불교로 거듭나야 할 때입니다. 부처님의 크신 위신력을 입어 수행하지 않으면 아라한과도 어렵습니다.
지금까지의 자력불교로는 21세기의 인류를 향도하기 어렵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싹을 틔우고 그것이 성장하여 많은 알곡을 얻으려면 농부의 손길도 필요하고 적당한 비료, 햇빛, 비, 바람도 필요합니다. 자력·타력은 필요 충분조건입니다.
자력과 타력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는 자력으로서는 아라한까지 도달
할 수 있으며 그 이상 위로 오르기 위해서는 타력에 의존해야
된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타력이란 바로 칭명염불 등으로 불보
살의 가피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저 또한 자력만으로
안 되는 것이 수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스승을 구하고
큰스님을 친견하려고 하는 것이 모든 수행자와 구도자들이 추
구하는 바램이 아닌가 합니다.
만사를 성취하는데 있어서 혼자서 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
며 정신계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21세기 수행 문화
의 한 흐름이며 사조입니다. 21세기에는 특히 자력이란
의미가 퇴색되어 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21세기는 유례와 전
례 없이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보다 긴밀한 인연법에
의해 자신의 존재 구조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인연이 다하면 사라지고 인연이 생기면 생하게 되는 것이 불
법의 이치이므로 자신의 구도과정 또한 인연에 의해 만들어지
고 인연에 의해서 전개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자신의 존
재성 자체는 자신 스스로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절의 인연과 선지식들 그리고 불보살님의 가피가 있어
야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를 해득하는 선결 요건이라고 말
씀드리고 싶습니다. 정신계와 존재의 하이어라키(중생, 수다원, 사
다함, 아나함, 아라한, 대아라한, 보살(하품, 중품, 상품), 붓다, 석가모니부
처님)를 투철하게 통잘하지 않고서 큰스님의 글과 말씀을 무조
건적이고 부정적인 단식 판단과 단견으로 비방하는 것은 지중
한 죄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고대 이집트의 현자 헤르메스는 "위에 있는 대
로 아래에도 그러하고, 아래에 있는 대로 위에도 그러하다."라
는 가르침을 갈파하였습니다. 이 말은 하늘 아래의 세속에서
벌어지는 세상살이가 정의와 자비 그리고 위용과 겸손을 수호
하는 존재들에 의해서 주도되어지는 것처럼, 하늘 위의 불보살
의 세계 또한 얼마나 정의롭고 자비로운가에 따라 그 위계가
정해진다고 해석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속에서 친구들을 사귀고 가족의 도움으로 커가는
것처럼, 수행자는 불보살의 가피를 받도록 염불선을 통해서 정
신계의 길을 열어 나가는 것이 매우 평이하면서도 빠른 방법이
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알기에 어느 누구도 정신계의
상위 존재의 가피와 보호가 없이는 제대로 수행을 정진해 나갈
수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초불이신 석가모니부처님이 얼마나 뼈아픈
고행을 감내해야 했는지 이루 형언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점에 대해서 석가모니부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한 21세기 불교계의 거대한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최고의 진법
서를 집필하신 큰스님의 자비로움과 이러한 진경을 쓰기 위해서
그동안 큰스님이 얼마나 치열한 구도 여정을 행했는가는 가히
저와 같은 수행자의 식견으로서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서 사자후하신 대로 아라한까지
는 자력 신앙이면서 동시에 타력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큰스님께서는노력 없이 불보살의 가피만을 말씀하신 것이 아
니라 염불선, 지계(계율을 지킴), 효, 5대 대승경전들의 해의 및
독송 등 다양한 노력을 통해서 아라한까지는 어는 정도 자력으
로 해야 하고 어는 정도는 불보살의 가피가 있어야 된다고 말
씀하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전혀 발심도 하지 않고 정진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즉 염불
선, 효, 천도제, 지계 등 아무 노력 없이 불보살님의 가피를 기
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를 비방하는 구도자들은 큰스님께서 하신 말씀의 저변 지식과
지혜를 통찰하셨으면 합니다. 큰스님께서 말씀하시면 그것만 가
지고 비방하려고 하지 마시고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가를 둥그
렇게 유기적이고 전체적으로 이해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혹한 구도자들의 단견으로 큰스님의 말씀에서 일부분을 부
정적으로 확장해서마치 전체가 부정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행
위는 삼가야할 것입니다. 이웃 종교에서도 믿음을 강조하고 선
행을 강조하는데 어찌 불교의 가르침을 설파하신 큰스님께서
오로지 자력은 필요 없고 타력만이 필요하다고 하셨겠습니까?
큰스님의 심오한 가르침을 해의하려면 깊이 있게 책을 통찰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큰스님께서 아라한 이상의 경지에 대해
서는 타력으로 가능하다고 말씀하신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고 저는 생각합니다. 보편 타당한 이해의 견지에서 봤을 때 아
라한만 되도 엄청난 공능을 갖게 되고 정신계에서 높은
위계와 서열을 차지하게 되는데 그 이상의 경지에 대해서는 책
임과 임무(사명감)가 막중하기 때문에 석가모니부처님과 불보살
님의 가피 및 위신력이 없으면 보살위를 증위할 수 없다고 보
는 것이 이치에 맞는다고 하겠습니다.
아라한 이상은 불보살님의 가피를 받아야 한다고 하신 말씀
은 100번 이치에 타당하며, 심지어 불보살님을 믿고 불보살님
을 위해서 목숨을 거는 용기와 결단이 없이는 자신도 불보살위
는 고사하고 확고한 아라한 증위도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불가
에서도 백척간두 진일보라고 하여 목숨을 걸어랴 한 고비를
넘고 공과를 증득함을 이야기합니다.
서양의 실존주의 철학의 대가 야스퍼스는 이를 '한계 상황'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물론, 이는 아라한의 경지로 가는 과정이지
결코 불보살의 경지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불보살의 경지는 인간으로서는 생각하기 힘든 경지이며
참으로 이루기 힘든 경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큰스님께서 설
하신 말씀대로 수행자가 아라한의 경지에 이르는 것마저도 참
으로 힘들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물론 자신의 힘으로 뚫고
아라한까지 올라갈 수 있어도 그것은 무척 힘든 일이며 만약
우리가 쉬운 길을 안다면 누가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을
가겠습니까?
큰스님의 자비로우신 마음으로 출간하신 서적 <<21세기 붓다
의 메시지>>는 우리에게 쉬운 길을 가르쳐 주신 불가의
종풍을 진작시키는 종지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
다. 아라한까지는 자력 신앙에 의해서 좌우되지만, 물론 타력
신앙에 의존하면 더 빠르게 올라갈 수 있다고 이해하고 있습니
다. 그러나 큰스님 말씀대로 아라한 위의 불보살의 경지는 다
른 역대의 부처님들과 보살님들의 가피가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또한 지혜의 눈을 구비
한 수행자와 구도자들께서도 이미 큰스님의 가르침을 매우 긍
정적으로 이해하고 깨우쳐 수지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의심이 가는 구도자분을 위해서 세상의 이치를 통해서 타력
이 필요함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봄이 오면 들에는 새싹이 자랍
니다. 새싹이 자라기 위해서는 토양과 수분이라는 타력이 요구
되고 또한 자신 스스로 생존 본능에 의해 토양을 뚫고 대지로
솟아 나오려는 자생력(자력)이 요구됩니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아라한까지의 경지는 타력과 자력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입
니다. 하지만 새싹이 더 커져 어린 나무가 되면 그 어린 나무
는 여름이 왔을 때 태풍과 폭풍우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면 생명
을 잃게 됩니다. 즉, 혹독한 비바람에 견딜 만큼 큰 나무가 되
지 않고서는, 어린 나무는 거목으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어린 나무가 잘 자라 거목이 되기까지는 사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즉 어린 나무에게는 타력이라는 버팀목이 필요합니
다. 이처럼, 아라한이 잘 성장하여 붓다가 되기 위해서는 불보
살의 가피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삼라만상의 묘법은 풀 한 포기가 자라나는 것에도 있다는 역대
고승의 가르침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구도자들이라면 좀
더 폭넓은 사유와 통시적 사유를 하셔야 할 것입니다. 세상의 이
치도 제대로 꿰꿇어 보시지도 않으면서 큰스님의 거룩한 대법륜
의 가르침을 비방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구도자가 아닐 것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영산불교사상연구소
자력문自力門과 타력문他力門
현재 세계 불교의 수행의 문門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무명 곧 어리석음, 무지無知 때문에 탐심과 진심을 내어 여러 나쁜 업을 짓고, 윤회생사하는 과보를 받아 사는 것이 중생의 삶의 실상입니다.
탐진과 무명을 떨쳐 착하고 바르게 살아 청정심을 되찾고 지혜바라밀로 윤회생사를 해탈할 수 있다는 자력문自力門의 교설이 있고, 아미타부처님의 측량할 수 없는 크나큰 가피와 손길에 의해 구원될 수 있다고 보는 타력문他力門인 정토문의 교설이 있습니다.
여기서 나는 새로운 타력문, 타력불교를 따르라고 간절히 권하는 바입니다. 우리가 인도에 꼭 가야할 경우에 자력으로 걸어서 가는 길이 있고, 승용차나 배, 비행기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지혜 있는 자는 마땅히 비행기나 배, 승용차를 이용할 것입니다.
출처 :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Ⅱ≫ 9장
광명 만덕, 자재 만현 저
2011년 6월 9일 목요일
2011년 6월 8일 수요일
육도윤회 ----- 2
○기자의 첫 번째 질문입니다.
불교에서는 육도윤회를 한다고 하는데
사람이 죽어서 가는 그런 세계가 정말 있습니까?
(이 문제만 해도 대부분의 지금 불교는 이 부분에 대해서 말을 유보하고 있습니다.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부처님만이 이 말씀을 하셨거든요. 힌두교, 자이나교에서도 이걸 주장합니다. 그러나 우리 부처님처럼 자상하게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해탈세계 이후의 법위에 대해서는 일체 모르고 있습니다. 영산불교에서는 잘 알고 있잖아요. 깨달음, 아라한, 저들은 아라한 위인 보살, 붓다의 세계를 모릅니다. 우리 영산불교는 더 자세하게 나누어서 이야기합니다.
아라한 위에 무루대아라한을 이야기하고, 천녀세계를 이야기하고, 무루대아라한도 상 중 하품이 있고, 천녀세계도 9품이 있고, 더 가면 정토세계 대기가 있고(정토대기, 저 정토 극락세계 대기 하늘이 있고), 거기를 넘어가야 극락세계이고, 경전에서는 9품을 이야기하지만 영산불교에서는 27품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극락세계를 마치고 저기 약사부처님이 교주로 계시는 약사궁 약사유리정토에 가서 또 공부를 해가지고 보살수업을 다 마치는 거예요. 이건 우리 영산불교 밖에 모릅니다. 그래서 이제 대답한 거예요.)
▸답 : 매우 적절한 질문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육체는 죽지만 영혼체는 영원히 죽지 않고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아수라, 하늘의 여섯 세계를 돌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육도윤회입니다. 이 육도윤회세계는 마음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엄연히 존재합니다.
(영산불교 이야기예요. 지금 불교에서는 극락도 지옥도 마음속에 있다고 해요. 지금 이렇게 되어버렸어요. 이것은 사마외설입니다. 그렇게 말하면 대망어입니다. 다시 또 이야기하지만 죽어서 가는 세계가 여섯 개의 하늘세계가 있어요. 윤회 안의 세계가 여섯 개가 있어요. 이것을 이야기 한 것은 세계의 종교 중에서 세 개 밖에 없습니다. 이건 맞는 말인데, 이만큼 깊이 못 들어간 종교들이 세 개만 빼놓고 전부 다 예요. 세 개가 어떤 종교냐?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예요. 여러분, 비교종교에 대해서 많이 공부하셨기 때문에 스님이 이렇게 말씀하는 거예요. 다 이해 하시겠지요? 육도를 이야기한 거예요. 어디 기독교에서 육도를 이야기 합니까? 여러분, 안 하지요? 할 수 없어요. 이것은 불과(佛果)를 증해야 알아요. 그러니까 우리 식구만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 그 경지가 아니올시다. 보살의 경지도 아닙니다. 그 말만 합니다.)
죽어 저승(명부)에 들어간 영혼체는 (이 영혼체 이야기를 내가 처음《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권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렇게 하다가 지금은 이 영혼체를 윤회의 주체라고 확실히 해준 거예요. 이 영혼체가 윤회의 주체입니다. 그런데 이 영혼체에 대해서 자이나교나 힌두교에서 알았어요. 그 정도가면 알지요. 그러나 우리 영산불교에서 처럼 영혼체에 대해서 밝게 모른다 그거지. 밝게 이해를 못했다 그거지. 영혼체, 힌두교에서도 영혼체가 1․2․3․4번이 있는 것까지도 알았어. 그러나 1․2․3․4번의 기능에 대해서는 몰라요. 더 깊은 것은 영산불교 밖에 몰라요)
49일간의 열시왕의 심판을 받고 그 결과에 따라 갈 곳이 정해집니다.
(이것이 맞습니다. 여러분, 이 말이 맞습니다. 이 말을 듣고, 공부하고, 이제 밀교를 보십시오. 밀교를 공부해보라고. 이 말에 어긋납니다. 그리고 밀교는 즉신성불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건 아닙니다. 즉신성불이 될 수 없는 거예요. 금생(한생) 가지고 불과(佛果)를 이룰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즉신성불의 원리와 교리를 보니까 이건 아니어요. 이거 큰일 날 말을 하고 있어요. 아니어요. 그것은 이제 시간을 두고 이야기 하겠습니다)
살생 등 중죄를 많이 지은 사람은 지옥으로 갑니다. 지옥도 그 고통의 강도에 따라 극무간지옥, 무간지옥, 중지옥, 하지옥, 대기지옥의 다섯으로 나누어지고 그 각지옥의 부분지옥들도 무수히 많습니다(여러분, 이것도 맞습니다). 중지옥 이상은 영혼체가 까무러칠 정도의 가혹한 형벌이 자동으로 집행됩니다(이게 맞습니다. 지옥사자들이 직접 찌르고 하지 않습니다. 자동적으로 집행이 됩니다. 이게 맞습니다. 힌두교에서 지금 이것까지는 모릅니다). 간탐하고 인색한 사람은 지옥을 거쳐서 항상 굶주림에 시달리는 아귀보를 받습니다. 짐승처럼 행동하면 반드시 축생보를 받습니다(이것을 알아두십시오). 그리고 착하게 산 사람은 인간으로 태어나거나 아수라, 천상의 삼선도에서 즐거움을 누립니다(이것도 맞습니다). 물론 윤회를 벗어난 성자는 영원한 즐거움을 누리는 해탈계로 갑니다(이것도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사람이 죽으면 절대다수가 중지옥으로 갑니다.
(여러분, 이제 이것이 문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중지옥으로 갑니다. 그리해서 불과를 증한 성자가 이 사실을 알려 주려고 열반에 들지 않습니다. 이런 중지옥으로 떨어지면 큰일 나기 때문에 그런 죽음의 길로 가는 중생들을 붙들고 ‘너 지금까지 이렇게 못 된 짓하고, 이런 못 된 생각을 했는데 이러지 말라. 참회하고 부처님 말씀을 들어라. 사는 길이 있다. 산다. 사는 길로 가야지, 너 지옥가면 큰일이다’하고 교화를 하는 거예요. 포교를 하는 거예요.
그랬더니 우리 신도 분들 수백천명은 죽어서 지옥을 안 가겠더라 그거예요. 왜냐? 이렇게 법문할 때 부처님께서 쭈~욱 청정한 억종광의 빛을 방사해 주게 되어있습니다. 이것도 겁에 하나예요. 지금 부처님 교단의 법문 때만 그래. 그러면 여러분 그 더럽고 더러운 때(마음의 때, 죄의 때)가 씻겨져 나간다고요. 이런 많고 많은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시커먼 영혼체가 자꾸 씻겨나가고 씻겨나가고 하기 때문에 이제 하얗게 된다고. 하얀색으로 말입니다. 아주 말쑥하고 청정하게 돼. 이 정도 되면 하늘을 가는 거예요.
그런데 자력으로는 안 돼. 자력으로 수행을 그렇게 해본 사람들을 봐도 못해. 그것이 씻겨 지지를 않아. 어느 정도 정화는 되지만 소멸은 안 되더라고. 그래서 우리 영산불교의 법문을 한 달에 두 번 와서 들어주시기 바라고, 또 여러분들이 돌아가신 부모 조상님들께 진정한 효를 해드려라. 그것이 뭐냐? 천도재입니다. 불교에는 어느 종교에도 없는 천도재가 있다. 그런데 다른 절 천도재는 안 되더라. 아니다 그거예요. 아니다. 이건 험담하는 것이 아니어. 진실이 안 돼. 안 돼. 이유가 있지요. 뒤에 나옵니다.
그동안 내가 법문을 많이 했으니까 읽어보시면 알 것입니다. 지옥에 있는 조상님을 어떻게 데리고 옵니까? 데리고 와야 돼. 천도 해 드리는 이 법석으로 데리고 와야 돼. 데리고 올 사람이 없어. 지옥을 누가 가서 찾아 갈 사람도 없고, 역사 이후로 그런 큰스님도 없고. 아무리 큰스님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법력이 없었어.
그래서 오직 부처님이 주관하는 천도재라야 되는 것이어. 그래서 지옥에 있는 그 조상님들을 지옥사자들이 데리고 오고, 축생 몸을 받은 그 조상들을 데리고 오고, 이건 도인 100명 1,000명이 모여도 안 돼. 그런 힘이 없어. 또 무주고혼으로 있다 하더라도 죽은 지 10년 20년 30년 되면 신통이 대단해. 그러나 빛으로 쏴버리면 가지도 못해. 허공중으로 물속으로 해서도 솟구쳐. 땅속으로 숨어도 솟구쳐버려. 그 빛의 힘으로 가지도 못해. 그래서 잡아 온다 그거예요. 이런 천도재는 영산불교 밖에 없어. 그래서 네(4)번을 하면 그 부처님의 자비와 위신력으로, 그 빛의 힘으로 하늘까지 가는 거예요)
출처/2010.9.1.수(음7.23) 큰스님 대전 법문내용중 발췌
추신/현대불교신문에 실린 내용을 토대로 다시 보충해서 법문하신 내용입니다
육도윤회-2
붓다는 가장 중요한 불신을 포함해서 몸이 여섯입니
다. 인간은 몸뚱이가 다섯입니다. 20세기말 신지학에서
사람은 이 육체와 4개의 영체가 합해져 이루어졌다고
발견해 냈습니다. 탁월한 성과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몸뚱이, 이 거짓 몸뚱이는 여러 물질, 불교에서는 지.수.
화.풍이라고 합니다. 그 사대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이 거짓'나'는, 이 몸뚱이 집은 백년을 못 살
고 죽습니다. 땅 속으로 묻힙니다. 지.수.화.풍 사대로
돌아갑니다.
사람이 죽으면 대부분 악도로 가기 때문에 네 개의
자기 영체중 4번 영체가 영계에 듭니다. 그때 1, 2, 3
번 영체는 4번 영체 속에 겹쳐져 있습니다. 4번 영체는
이 거짓 몸뚱이와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 사부대중 불자님들. 다시 말씀하노니, 사람은 죽
으면 완전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지은 업에 따라 가는
곳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대해서나 재물이나 자기 몸뚱이, 처자 등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집착이 대단한 사람은 죽어 명부
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저 세상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들은 곧 윤회에 들어가지 못한다 이 말입니다. 천명
天命에 가더라도, 명命이 다해 죽어도 저승사자를 따라
가다가 되돌아오는 수가 있습니다. 저승에 들지도 못하
고, 이 몸뚱이도 이미 땅속에 들어갔으므로 중천을 헤
매는 고혼이 됩니다. 그 세계를 중음계라 하는데 이 세
계는 춥고 배고픕니다. 어둡고, 무섭고 외롭습니다.
그리고 천수, 천명이 남았는데도 도중에 요절한 사람
들, 그 영가들은 또한 중음계에 떨어집니다.
교통사고나, 스스로 음독이나 다른 수단으로 자진. 자
살한 사람들, 전쟁에 나가 총, 칼 맞아 객사해 죽었다
든지, 횡사 객사한 그런 사람들, 거의 대부분 중
음계에 들어 중음 고혼으로 떠돕니다.
다음으로 무서운 질병으로 많은 세월을 신음하다 죽
은 영가도 즉, 암이나 간질, 중풍, 에이즈 같은 하늘이
준 천질로 죽은 사람들 그 영가들도 거의 중음계에 듭
니다.
저의 소견으로는 사망한 사람의 70~80%정도가 중음
고혼이 됨을 말씀드립니다. 사부대중 여러분! 저 이 법
문은 진정 사실입니다. 그런데 새상 사람들은 물질만
능, 황금만능 사상에 젖어 보고, 듣고, 느끼는 바깥세상
만을 전부로 알고 살죠. 성을, 이성을 탐하고, 스포츠를
즐기고, 돈 버는 데만 골몰하죠. 명예와 권력을 쫓고
삽니다. 이 몸뚱이가 진짜 자기로 알고 죽으면 끝이라
생각합니다. 온갖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위해
온갖 죄업을 짓고 삽니다. 피땀 흘려 벌어 놓은 돈, 한
푼도 죽어 가져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명예도 사랑하는
이도 저승에 같이 따라가 주지 않습니다. 죽으면 끝나
는 것입니다. 물론 이 육체는 땅속으로 들어가 흙밥이
되죠. 그러나 이 몸뚱이를 집으로 삼고 한평생 살았던
자기는 주인공은 명이 다하면 의식이 그대로 남아있는
4번영체로 지옥이나 축생 혹은 아까 말했던 중음영가
로 새로운 고달픈 생을 살아갑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죽어 상당기간 4번영체로 살아가는
데 4번영체는 이 몸뚱이의 털구멍하나 다름없이 꼬부
랑 할머니가 목발 짚고 살다 죽었으면 목발 짚고 악도
에서 지냅니다. 그때 3번, 2번, 1번영체는 4번영체 안
에 겹쳐져 있습니다. 그러나 정직하고 부지런하게 큰
죄업도 짓지 않고, 남에게 폐도 끼침이 없이 오히려 착
한일 많이 하고 살다 죽으면 틀림없이 하늘 천상에 납
니다. 앞에서 말한 4번 영체는 하늘천상엔 적응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4번 영체는 죽어버립니다. 3번 영체
가 가서 납니다. 이때 2번, 1번 영체는 3번 영체 속으로
로 겹쳐듭니다.
90살에 죽었어도 3번 영체의 나이는 40대입니다. 몸
은 건강하고 얼굴은 미스코리아보다도 더 아름답습니
다. 아라한 성과를 이룬 성자는 성인이 나는 하늘에 2
번영체가 가서 납니다. 보살과를 이룬 성자는 서방정
토 극락세계에 1번 영체로 가서 납니다. 그때 2번, 3번
영체는 1번영체 속으로 깃듭니다. 중생의 1, 2, 3번영
체는 영원히 죽지를 않습니다.
화두타파하여 자성이 드러나 견성하여 다생의 습기를
녹이는 보림공부를 잘 마친 이는 비로소 아라한이 됩니
다. 중생은 아라한 이상 될 수 없습니다. 구조상 그렇
습니다. 전생에 아라한이나 보살과를 이룬 이는, 그런
선근이 있는 이는 금생에 잘 하면 보살이나 붓다까지
이룰 수 있습니다.
위에서 말씀 드렸듯이 중음계 영가들, 소위 중천을
떠도는 영가들, 그 고혼들은 대단히 불쌍합니다. 그리
고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 고혼 영가들은 배고픔이나
이성 욕구 해결을 위해서 가까운 인연을 따라 빌붙어
해결합니다. 그래서 업을 짓고 지냅니다. 중음세계에
오래있는 영가 일수록 업이 지중해져서 큰 스님을 만나
천도 되어 간다해도 지옥 중에서도 무서운 지옥으로 떨
어집니다.
출처/법문집1권중 라디오 법회 1집 (2001.6.24)에서 발췌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영산불교사상연구소
생사관
우리가 사는 이 지구, 남섬부주가 소속된 태양계, 우주는 수명이 무한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생겨났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정확한 수치를 알고 있지만 말할 필요 없습니다. 어쩌면 영겁을 존재합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생성소멸을 반복합니다. 사람도 그럽니다.
여러분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무시 이전부터,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옛적부터 겁이 문제가 아닙니다. 영겁이 문제가 아닙니다. 무시 이전부터 여러분은 생명을 받아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고 죽고를 반복하고 있어요. 앞으로 미래제가 다하도록 그럽니다.
이때 사실이 이러하니까 여러분은 큰스님의 법문을 꼭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떠한 일이 있느냐.. 어떻게 나고 죽고를 반복하느냐.. 사람으로 와서 업, 죄업을 많이 짓습니다. 아무리 죄업을 지으면 안 된다고 해도 죄업을 짓습니다. 죄업을 지으면 반드시 과보는 옵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느냐 보니까 내가 항상 말이지만 오늘 처음오신 분도 계시고 해서 또 말씀드립니다.
이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확실한 교법입니다. 이걸 부인하면 확실한 사설(邪說)입니다. 사람이 죄를 지어서 죽죠? 죽으면 아주 죽는 것이 아닙니다. 지은 업이 있어서 그 업대로 받습니다. 그런데 40, 50%는 명부에도 들지 못한다는 겁니다. 명부에도 들지 못한다는 말을 이해 못합니다. 세상사람 이해 못하고 불교인도 이해한 사람이 거의 없고 부처님 이후로 큰 스님도 거의 백지상태입니다. 그런데 우리 현지사는 대단히 그 부분에 대해 잘 압니다. 아함경에서 약간 설명해놓았지만 우리 현지사 법설과는 비교가 안 됩니다.
그래서 많은 종파가 분열이 됐습니다. 원시불교에서 29파로 분열된 원인이 그것입니다.
왜 명부로 들지 못하느냐? 집착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집착! 욕심! 사랑하는 사람의 정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놔두고 명부로 못 갑니다. 돈에 대한 집념이 강하다면 돈 번 것이 몇 천억이라면 못 들어갑니다. 자살하면 명을 다하지 못했기에 명부에 못 들어갑니다. 하늘이 내린 병을 받고 죽으면 명을 다 못살아서 명부에 못 들어갑니다.
집착입니다. 집착 때문에 명부에 못 들어가는 사람들이 40, 50% 지난 10년 통계로 알았습니다. 그러면 명부에도 못 들어가고 자기 몸도 한줌 재가 되고 흙이 되었기 때문에 자기 몸은 이미 기능을 발휘 못 하기 때문에 죽었거든요. 그래서 반틈은 귀신이고 반틈은 사람입니다. 이것이 무주고혼입니다. 무주고혼도 생명체여서 먹어야 하는데 기독교 자손을 둔 조상은 1년에 1끼도 못 먹어, 그러니 친구 따라서 이쪽 가서 얻어먹다가 얻어먹기도 하고 저쪽 가서 얻어먹으려다가 맞기도 하고 배가 고프고 추워서 너무너무도 가련합니다.
어떤 영가는 지옥보다도 더합니다. 명부에 꼭 넣어야죠. 그런데 명부에 넣어주려면 큰 법력 있는 스님을 만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절대 안 됩니다. 혹 명부에 들어가더라도 거의 절대다수가 지옥을 가기 때문에 지옥은 분명히 있는데..
그 지옥의 실상은 등골이 오싹할 정도가 아니고 너무너무도 무섭기 때문에... 나를 낳아서 길러주고 가르쳐주고 결혼, 분가시켜준 어머니, 아버지, 그 부모님을 낳아준 조상님들이 갔어. 그런데 효를 모르는 자식들은 또 배웠다고 자기가 다 아는 줄 알고 저 세상 없는 줄 알고 큰 스님이 법문하는 것을 듣지도 않으려고 하고 들으면 창작 이야기라고 하고... 그렇게 돌아가신 부모, 조상님에 대해 나몰라라 합니다. 그러면 부모, 조상님들 지은 업대로 다 과보를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 현지사는 그걸 알기 때문에 공부를 다 마치면 불과를 증한다고 하죠? 불과를 증한 분은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 불쌍한 중생을 구해주는 거예요. 명부에도 들지 못한 중생, 지옥도 다섯 구분 되어있는데 아주 무서운 지옥 미래제가 다해도 못 나오는 지옥이 있어요.
그 다음 조금 낫다고 하는 지옥이 무간지옥, 더 나은 지옥이 중지옥, 더 나은 지옥이 하지옥이고 벌이 없는 대기지옥이 있다고 부처님께서 구분하십니다.
그런데 이곳을 지은 업 따라서 도는 사람이 있어요. 무간지옥이나 급무간지옥에 가면 거의 못 나오지만 어쩌다가 나오기도 합니다. 아귀, 축생을 거쳐서 옵니다. 사람 몸을 받아도 정신적, 신체적으로 불구로 삼중고, 사중고 받아서 옵니다.
대성자는 그것을 볼 수 없습니다. 열반할 때까지 가능한 많은 중생을 구하고자 하는 그 서원! 중생 구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내가 짧은 한 시간에 그 생사관을 (현지사처럼 생사관이 뚜렷한 곳이 없습니다.) 서구 지성인들이 생사관에 갈망하고 목말라하고 있어요..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한데.. 성경, 코란을 봐도 없죠.. 간단하게 돼있죠.. 죽으면 지옥 천당. 죽으면 또 오는데 그걸 모릅니다. 현지사는 완벽한 생사관이 있습니다.
지금 내 책이 영문으로 고급스럽게 번역이 끝나가고 있습니다. 미국으로 가서 출판될 겁니다.
출처/법문집 2권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영산불교사상연구소
무주고혼 영가
죄업을 많이 지은 사람들이 죽으면 상당수가 명부에 들어가지
못하고 무주고혼으로 지냅니다.
객사한 사람, 자살한 분들, 몹쓸 병을 얻어 대소변 가리지 못하
고 죽은 이들, 처자에게 착이 많은 영가들의 대부분은 윤회에 들
지 못하고 명부에도 들지 못합니다.
이런 영가들은 반은 사람, 반은 귀신이기에 춥고 배고픕니다. 이
런 고혼들은 식색등의 기본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해, 인연 있
는 자손의 몸에 빙의 합니다.
여기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런 조상의 영가가 빙의
된 자손은 객사하고, 자살하고, 몹쓸 병을 얻습니다.
이런 불행을 막기 위해서 천도재가 필요하지만 완벽한 천도재를
감당할만한 큰스님이 없는 게 문제입니다. 인간이나 하늘천상에
태어나도록 할 수 있는 길이 있는 데도 말입니다.
부처님 당시 10대 제자인 목건련은 당신의 어머니를 4번 천도해
드림으로써 하늘천상에 태어날 수 있게 했습니다. 이 일은 거룩하
신 부처님께서 주관하셨던 천도재였기에 가능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지은 업을 소멸시킬 수 없습니다. 어느 정도의 수
행이나 참회 보살행에 의해 정화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부처님의 위신력에 의해서만이 중생의 죄업이 소멸됩니다.
또한 부처님만이 지옥 축생의 중생을 건질 수 있습니다. 부처
님의 위신력, 우주적인 구원의 힘에 의해서만 중생이 제도되는 것
입니다. 아라한도, 보살도 이 일만은 못합니다.
지옥 지장보살과 열시왕이 관장
지옥은 지장보살이 관장하는 곳으로, 남방의 지장궁 옆에 위치
해 있습니다.
상품보살 이상 붓다권 내에 든 대수행인은 삼매 속에서 지옥을
봅니다. 공을 깨친 후 무아 속 삼매에 들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착이 남아 있어서 망상을 떨치지 못하는 수행인이라면 선
정에 들어서도 지옥의 진상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런 수준의 선정으
로 보여지는 것은 요술쟁이의 마음이 그린 거짓 지옥 에 불과하
고, 진짜 지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장보살은 '붓다 중의 붓다' 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붓다
이십니다. 열시왕은 상품보살들이십니다. 무독귀왕, 도명
도명존자는 상품보살 이상의 불격을 갖춘 상수보살급이십니다.
무간지옥이나 극무간지옥에서 온 영가는 지옥의 옥졸이 쇠사슬
로 묶어서 데려옵니다.
보통 천도재의 결과는 수일 후에 나옵니다. 부처님들의 위신력
으로써 올리는 천도재는 영가 모두를 특별히 지장궁 별당으로 구
인해 갑니다. 그러나 죄업이 지중해 무간지옥에 떨어진 영가는 천
도가 거의 안 됩니다.
오직 부처님은 대자대비하시고 우주적인 무한한 능력을 구족하
시지만 사바세계 남섬부주의 당대에 붓다 이룰 그 제자의 집전 발
원에 의해서만이 악도에 빠진 중생을 건질 수 있습니다. 태양빛이
쨍쨍 내리 쬐더라도, 화경불록렌즈을 조정해야만 검정 헝겊을 태우
듯, 큰 제자라는 인연을 만나야 지옥중생이 구제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전제할 것이 있습니다. 먼저 영가의 이름으로 공덕을 짓
도록 많은 불 보살께 먼저 공양을 드리는 겁니다.
이런 천도재를 모셔드리는 공덕은, 그 어떤 공덕보다 수승합니
다. 영가 당사자들의 지은 업장이 씻어져서 보다 나은 세계로 천도
될 뿐 아니라, 천도재를 모신 이는 자손으로서 그만큼 큰 효를 해
드려서 더욱 좋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직도 중천을 떠도는 조상의
고혼들을 명부에 넣어줌으로써 후손이 나쁜 병을 얻지 않고, 자살
또는 횡사하지 않아서 다행인 겁니다.
물론 모든 나쁜 재액, 천병이 영가의 빙의에서 비롯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기본적으로는 우리들 사람이 전생에 지은 큰
악업으로 인해 여러 재앙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분명히 알아두셔야 할 점은, 천도재를 집전하는 스님이 최소한
청정한 비구스님이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째도 청정이고, 둘째
도 청정입니다.
이제 승려의 양심으로 돌아가 상업화 되어가는 천도재는 즉각
중단해야 할 것입니다. 더 이상의 죄업을 짓지 않기를 바랍니다.
능력 없이 천도재를 많이 하는 사찰은, 저급 영가들의 역겨운 냄
새와 사악한 기가 가득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귀신들이
꽉 차 있고, 귀신들이 득세하여 이미 성지가 아닙니다. 사찰은 청
정도량이어야 합니다. 절을 위해서도 상업화딘 천도재를 멈춰줄
것을 간절히 당부 드리는 바입니다.
적어도 아라한과에 증입할 때까지는 사생결단 외길을 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물 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나옹 혜근-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펴낸곳/현지사 영산불교사상연구소
불교의 생사관
"무협에도 신검 합일, 화경, 현경, 생사경 단계로 나눈다고 합
니다. 신검 합일은 검과 몸이 하나가 되는 단계이고 화경은
여기서는 붓다가 되기 위한 필수조건인 생사관 확립에 대한
내용입니다. 인터넷을 주유하는 어는 강호 네티즌께서 좋은 글
을 올려주셔서 여기에 인용합니다. 네티즌님의 대의는 그
대로 하되 제가 그 내용을 약간 각색하여 정리를 해봤습니다 검
기를 다루는 것이며 이때 육체적인 뼈와 살이 바뀌는 환골탈태
가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으며 현경은 검과 마음이 하나가 되
어 어검술(검을 심기로 날려서 적을 공격하는검술)을 부릴 수 있
다고 하며 이때도 환골탈태가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물론 이
때는 영적인 환골탈태가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생사경은 몸이
사라진다 해도 보이지 않는 영적 몸만이 살아있다면 언제든지
부활이 가능한 단계라고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생사경에 도달하
신 분이라고 합니다."
생사를 초월하는 경지, 즉 부처님의 경지에 대한 생사관 내
용은 큰스님께서 최상위 존재계인 절대 법계에 거주하시는 석
가모니불의 가르침을 전한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 잘 나
와 있습니다. 큰스님께서는 불교계의 사활이 바로 올바른
생사관 정립에 있다고 하실 정도로 중요한 문제라는 점을 지적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백 번 옳다고 생각합니다. 견성을 한다
고 해서 생사관을 확립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 즉 불과를 증위
해야만 생사관을 얻을 수 있다는 점, 누차 강조해도 지나친 말
이 아니라는 점을 명료하게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영산불교사상연구소
육도의 세계
마치 매미가 허물을 벗고 빠져나가는 놈이 진짜 매미이듯, 우리 사람도 죽으면 몸뚱이라는 허물을 버리고 자기의 영혼이 빠져나갑니다. 이 영혼은 몸뚱이가 있어 영혼체라 합니다.
영혼체는 네 개의 영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4번 영체는 자기 몸뚱이의 복사체입니다. 명부에 들지 못한 이들은 자기의 몸뚱이에서 빠져나가 중음계에 떠돕니다. 죽어서 바로 명부에 들어간 이들은 영체의 껍질 부분4번 영체 겉부분_영체에 대한 법설은 다음 장에서 한다을 이승에다 버리고 사자를 따라 저승에 들어가 49일간 대기해 있습니다. 그 사이 열시왕의 논죄를 받습니다.
이 49일간을 중유中有라 합니다. 위에서 말한 명부에 들지 못하고 떠도는 중음中陰과는 다릅니다. 중유와 중음세계는 엄연히 다릅니다. 논죄를 받고 판결대로 육도六道에 가서 나게 됩니다.
대개 사람들은 업을 짓고 살기 때문에 지옥에 갑니다. 자신이나 남의 삶을 파괴한 악행, 그리고 부모님께 불효하고, 부처님의 교법Dharma을 비방하는 등 죄업을 지으면 지옥에 떨어집니다.
지옥 벌은 빙한氷寒과 화염火炎, 기타…… 로 가해옵니다. 화탕지옥, 흑암지옥, 독사지옥, 도산지옥, 분뇨지옥 등……. 모두 있습니다.
한 가지 벌을 받는 지옥도 이 사바세계만합니다. 중지옥 이상의 무서운 지옥에서 형벌을 받고 있는 장면을 보면 성자라도 너무 끔찍하여 자지러지고 까무러칠 정도입니다.
불바다 지옥,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뗄 때마다 괴로워하는 죄수를 보면 간이 다 녹아질 지경입니다. 물 없는 사막, 태양이 작열하는 열 지옥을 걸어가는 죄수, 입이 다 마르고 목이 탑니다. 냉동실의 냉각기 바람의 온도가 영하 수십 도로 내려갑니다.
벌거벗은 몸뚱이가 순간 얼어붙어 괴로움에 괴성을 지르며 숨이 넘어갑니다.
날카로운 대꼬챙이가 열 손가락의 손톱 사이를 서서히 파고듭니다. 지네지옥에서는 지네가 사람 몸뚱이의 구멍구멍마다 파고들어 물어뜯습니다. 이하 중략
이것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보는 이는 오장육부가 다 끊어지는 듯합니다.
형벌의 무서운 정도와 지옥 수명을 기준으로 나누자면 극무간지옥, 무간지옥, 중지옥, 하지옥, 대기지옥으로 구분하고 이들 다섯 지옥마다 각 지옥의 형벌 수준에 해당하는 지옥이 각기 수백이 됩니다.
《지장보살본원경》의 지옥 수는 그 일부라고 어느 날 대세지보살께서 법문해주셨습니다.
지옥의 형벌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운 것이 사실입니다. 가련하고 불쌍해서 볼 수 없습니다. 지옥 중생은 고통으로 인해 넋이 나가 자기가 누군지도 모릅니다. 고통이 시작되면 자지러질 듯 놀라고, 그 질려있는 모습은 차마 눈뜨곤 볼 수 없습니다.
심장이 터져버릴 듯하여 보는 자가 오히려 가슴 조여 두 번 다시 보기 무섭습니다. 지옥의 벌은 옥졸은 있으나 자동으로 집행됩니다. 지옥의 공기는 탁합니다. 안개 낀 날처럼 음산하고 맑지 않습니다. 낮과 밤도 없습니다. 항상 희미할 뿐입니다. 지은 죄업이 많으면 많은 지옥을 돕니다. 지옥에서 받는 벌의 아픔은 몸뚱이가 고문 받을 때보다 더하면 더하지 덜할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나의 진짜 몸, 영체는 거짓 몸뚱이를 벗고 빠져나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옥 중생은 고통으로 혼절하기 때문에 1초도 참회할 정신적인 여유가 없습니다. 지옥문에는 옥졸 수백 명이 밀어서 여는 철대문도 있고 작은 문도 있습니다. 에스컬레이터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지장보살은 지옥을 관장하십니다. 명령은 10시왕으로 그것이 판관에게로 옥사장 앞으로 옥졸로 하달됩니다.
무간지옥의 죄수는 우리 교주 불 세존의 하명Order 없인 구제가 안 됩니다. 붓다의 경지에 올라야 지옥을 보고, 또 거기에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장보살의 위신력으로 꿈 속에서나 염불 공부 중에 지옥의 한 장면을 언뜻 볼 수도 있습니다.
지옥의 벌을 다 받고 나온 이들은 축생이나 아귀세계로 떨어져 그 곳의 업보를 채웁니다.
항상 굶주림과 갈증으로 극심한 고통을 당하는 아귀계가 있습니다. 간탐, 진심瞋心과 질투가 아귀세계에 나는 주원인입니다. 배는 엄청나게 큰데 목구멍은 너무나 작습니다. 물을 마셔도 속에 들어가면 불로 변해버린다 합니다.
그리고 주로 바람직하지 않은 성행위로, 또한 사견邪見과 우치愚癡의 업으로 말미암아 태어나는 축생, 동물세계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영체靈體가 축생류 전부를 대상으로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포유류에는 영체가 들어갑니다. 열두 디에 속하는 동물에는 모두 들어갑니다. 조류 중에서 비둘기, 독수리, 학, 꿩, 제비, 공작, 앵무새, 구관조, 까치, 까마귀는 윤회의 대상에 들어갑니다.
파충류로는 열두 띠에 드는 뱀 외에 거북이가 들어가고, 양서류인 두꺼비에도 영체가 들어갑니다. 어류로는 상어, 잉어에 영체가 들어갑니다. 물개, 물표범, 고래는 물에 살지만 어류가 아니고 포유류이기 때문에 영체가 들어갑니다.
곤충류에는 들지 못합니다. 엄밀히 말해서 영체가 들어가는 축생류만이 불성이 있다고 봐야 합니다.
축생의 보를 다 받고 나서 다시 인간 몸을 받아오는 것이 정석입니다. 사람 따라 축생보를 먼저 받고, 지옥에 가는 이도 있습니다. 사람 사람마다 지은 업은 명부에서 논죄합니다.
무슨 지옥 몇 겁 또는 다른 지옥 몇 겁, 축생보로 구렁이 몇 생 다른 짐승으로 몇 십 생, 아귀보로 몇 겁, 이렇게 지은 업대로 산계소작算計所作하여 컴퓨터 이상으로 정죄定罪가 됩니다. 그럼 추호도 사私가 없이 집행됩니다.
우주 공간 안의 수많은 별나라에는 기체 인간들 소위 외계인이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죄업의 원인이 되고 근본이 되는 육신이라는 것이 없고 다만 기 영혼체로 살기 때문에 큰 죄를 짓지도 않고, 크게 착한 일도 하지 않습니다.
사는 것이 비교적 안정돼 있어서 악업이 없고 마장이 적어 부처님 공부도 잘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영적 진화가 느립니다. 가끔 외계인이 인간 몸을 받아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수라阿修羅의 세계도 실제로 있습니다. 1하늘 하下급의 별도의 하늘입니다. 복을 많이 지었으나 시기·질투심이 있어 싸우기를 좋아합니다. 제석천왕에게 여자를 달라고 싸우게 됩니다. 편싸움으로 부상을 크게 입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죽지는 않습니다. 영체는 죽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하늘세계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립니다.
하늘도 크게는 여섯 하늘로 나누고 자세하게는 54품의 구분이 있습니다. 하늘 천국도 54하늘이나 된다는 말입니다. 오계五戒·십선十善으로 산 이들이 갑니다.
사람이 죽어 하늘에 갈 때는 3번 영체로 가 납니다. 3번 영체의 설명은 다음 장에서 하겠습니다. 하늘천상, 천당은 올라갈수록 수명도 길어지고, 복 수용도 더 합니다.
하늘의 복이 다하면 인간으로 오게 됩니다.
죄업도 지었지만 착한 일도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럴 경우에는 먼저 지옥에 가서 업보를 다 받고 하늘에 오르기도 합니다. 삼계·육도를 윤회하는 한 죽음을 피할 방법이 없습니다. 하늘 꼭대기에 올라간다 할지라도, 바다 속 들어가거나 산을 쪼개고 그 가운데 몸을 숨긴다 할지라도 죽음은 반드시 그 자를 찾아냅니다.
중생은 윤회생사합니다. 육도의 윤회생사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윤회를 벗어난 아라한·보살·붓다의 세계, 여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위로 1하늘을 지나면 제석천왕의 거소가 있고, 사천왕의 거소도 있습니다. 제석천왕은 1하늘~6하늘 사람들을 관장합니다. 불격을 갖춘 최상수보살입니다. 바로 위에 성중하늘도 셋으로 자세히는 27품으로 나눔 구분합니다. 성중하늘을 여기서 언급하는 이유는 성자의 반열에 든 이들이라 마음 공부를 할 줄 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이들은 그래서 거의 퇴전하지 않고 윗 성중하늘로 오릅니다. 성중하늘에 태어나려면 착하게 살고, 불법 공부 잘해서 선정에 들 수 있어야 합니다.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이 가는 세계입니다. 성자의 반열에 듭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Ⅱ≫
13장 사람이 죽으면 어찌되나-불교의 생사관 - 광명 만덕 자재 만현 저
윤회로 부터 벗어나라!
금생에 불법을 만나 생사를 벗어나고 윤회를 벗어나려면 시공을 초월
위에서 강조했듯 몸과 마음이 청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중아라한이
됩니다.
나아가 성중하늘에서 와서 보살을 목표로 수행하는 대수행인들
은 고기와 술, 담배도 멀리해야 합니다. 몸에 이런 이물질이 들어
오면 탐진치 삼독이 정화되지 않습니다. 정신이 혼미해지고 탁해
져서 공부가 되지 않고 청정한 정토에 날 수 없습니다.
물론 6하늘이나 5하늘 정도에 태어나고자 하면 술, 고기, 담배
피우는 정도는 상관없습니다. 부부생활도 좋습니다. 그러나 이 경
우에도 개나 뱀의 고기만큼은 절대로 먹는 걸 금해야 합니다.
출가자와 재가 사부중들에게 말씀드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죄업을 지어 삼악도에 갑니다. 그 중 절반 정도는
지옥에도 못가고 중천을 떠도는 무고혼이 됩니다. 처자와 재물에
대한 미련과 착심 때문입니다.
고혼이 되면 너무 춥고 배고픕니다. 효성이 지극한 자손이 큰스
님을 만나 천도해주지 않는 이상, 수백 년 혹은 그 이상이 지나도
록 중음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지옥이나 짐승세계에 난다는 경고를 남의 일쯤으로 생각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 세계의 고통을 생각하지 않고 삼
악도로 떨어진다는 큰스님 말씀도 새겨듣지 않습니다. '그런 게
어디 있느냐' 는 식입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다. 삼악도의 세계가 있고, 천상도 있습니
다. 진실로 있습니다!
육도의 세계가 실재하고 중생들이 삼세를 통해서 윤회전생한다
는 이 말씀을 거듭거듭 힘주어 말씀드립니다. 아직도 지옥, 축생
종자들은 의심하고 이 진실의 외침을 비웃는 분도 계시겠지만 순
박하고 믿음 있는 불자들이라면 나의 법문을 경청하시리라 믿습
니다.
허물을 벗고 날아가는 매미가 진짜이듯, 이 거짓 몸뚱이를 벗어
던지고 빠져나가는 영혼체가 진짜입니다. 오히려 그 영체가 느끼
는 감도가 이 육신의 그것보다 더욱 생생합니다. 지옥이나 아
귀세계로 떨어진 이 영제가 고통을 받을 뿐 아니라 배고픔도
느낍니다. 이 거짓 몸뚱이가 고문당할 때의 고통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덜 하지 않습니다.
죽어서 지옥이나 짐승이 될 때 우리의 4번 영체가 짐승의 뱃속
으로, 그 악도로 가는 것입니다. 4번 영체는 우리 몸뚱이와 털구멍
하나까지도 다르지 않습니다. 꼬부랑 할머니가 죽어 지옥으로
떨어지면 그 4번 영체는 꼬부랑 할머니 그대로 입니다. 살았을 때의
기억이 그대로 영혼체로 옮겨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코 악도로 가면 안 됩니다. 그러려면 죄를 짓지 마
십시오. 절대로 부처님과 법을 능멸하거나 모독해선 안 됩니다. 그리
고 5무간업, 4바라이죄, 10악업을 차례로 경계해야 합니다.
불교_오도증입을 요구
불교는 실천을 요구합니다. 아무리 학식이 있고 변재라 해도 실천
수행이 없으면 안 됩니다. 세계적인 대석학이라 해도 믿음이 없고 행
이 없으면 악도행입니다.
마음공부해서 깨달아야 하고 깨달음을 완성해서 아라한이 되고,
보살지에 오르고, 궁극에 이르러 붓다가 돼야 합니다.
불교는 오도증입을 요구합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불교에서는 육도윤회를 한다고 하는데
사람이 죽어서 가는 그런 세계가 정말 있습니까?
(이 문제만 해도 대부분의 지금 불교는 이 부분에 대해서 말을 유보하고 있습니다.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부처님만이 이 말씀을 하셨거든요. 힌두교, 자이나교에서도 이걸 주장합니다. 그러나 우리 부처님처럼 자상하게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해탈세계 이후의 법위에 대해서는 일체 모르고 있습니다. 영산불교에서는 잘 알고 있잖아요. 깨달음, 아라한, 저들은 아라한 위인 보살, 붓다의 세계를 모릅니다. 우리 영산불교는 더 자세하게 나누어서 이야기합니다.
아라한 위에 무루대아라한을 이야기하고, 천녀세계를 이야기하고, 무루대아라한도 상 중 하품이 있고, 천녀세계도 9품이 있고, 더 가면 정토세계 대기가 있고(정토대기, 저 정토 극락세계 대기 하늘이 있고), 거기를 넘어가야 극락세계이고, 경전에서는 9품을 이야기하지만 영산불교에서는 27품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극락세계를 마치고 저기 약사부처님이 교주로 계시는 약사궁 약사유리정토에 가서 또 공부를 해가지고 보살수업을 다 마치는 거예요. 이건 우리 영산불교 밖에 모릅니다. 그래서 이제 대답한 거예요.)
▸답 : 매우 적절한 질문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육체는 죽지만 영혼체는 영원히 죽지 않고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아수라, 하늘의 여섯 세계를 돌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육도윤회입니다. 이 육도윤회세계는 마음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엄연히 존재합니다.
(영산불교 이야기예요. 지금 불교에서는 극락도 지옥도 마음속에 있다고 해요. 지금 이렇게 되어버렸어요. 이것은 사마외설입니다. 그렇게 말하면 대망어입니다. 다시 또 이야기하지만 죽어서 가는 세계가 여섯 개의 하늘세계가 있어요. 윤회 안의 세계가 여섯 개가 있어요. 이것을 이야기 한 것은 세계의 종교 중에서 세 개 밖에 없습니다. 이건 맞는 말인데, 이만큼 깊이 못 들어간 종교들이 세 개만 빼놓고 전부 다 예요. 세 개가 어떤 종교냐?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예요. 여러분, 비교종교에 대해서 많이 공부하셨기 때문에 스님이 이렇게 말씀하는 거예요. 다 이해 하시겠지요? 육도를 이야기한 거예요. 어디 기독교에서 육도를 이야기 합니까? 여러분, 안 하지요? 할 수 없어요. 이것은 불과(佛果)를 증해야 알아요. 그러니까 우리 식구만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 그 경지가 아니올시다. 보살의 경지도 아닙니다. 그 말만 합니다.)
죽어 저승(명부)에 들어간 영혼체는 (이 영혼체 이야기를 내가 처음《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권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렇게 하다가 지금은 이 영혼체를 윤회의 주체라고 확실히 해준 거예요. 이 영혼체가 윤회의 주체입니다. 그런데 이 영혼체에 대해서 자이나교나 힌두교에서 알았어요. 그 정도가면 알지요. 그러나 우리 영산불교에서 처럼 영혼체에 대해서 밝게 모른다 그거지. 밝게 이해를 못했다 그거지. 영혼체, 힌두교에서도 영혼체가 1․2․3․4번이 있는 것까지도 알았어. 그러나 1․2․3․4번의 기능에 대해서는 몰라요. 더 깊은 것은 영산불교 밖에 몰라요)
49일간의 열시왕의 심판을 받고 그 결과에 따라 갈 곳이 정해집니다.
(이것이 맞습니다. 여러분, 이 말이 맞습니다. 이 말을 듣고, 공부하고, 이제 밀교를 보십시오. 밀교를 공부해보라고. 이 말에 어긋납니다. 그리고 밀교는 즉신성불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건 아닙니다. 즉신성불이 될 수 없는 거예요. 금생(한생) 가지고 불과(佛果)를 이룰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즉신성불의 원리와 교리를 보니까 이건 아니어요. 이거 큰일 날 말을 하고 있어요. 아니어요. 그것은 이제 시간을 두고 이야기 하겠습니다)
살생 등 중죄를 많이 지은 사람은 지옥으로 갑니다. 지옥도 그 고통의 강도에 따라 극무간지옥, 무간지옥, 중지옥, 하지옥, 대기지옥의 다섯으로 나누어지고 그 각지옥의 부분지옥들도 무수히 많습니다(여러분, 이것도 맞습니다). 중지옥 이상은 영혼체가 까무러칠 정도의 가혹한 형벌이 자동으로 집행됩니다(이게 맞습니다. 지옥사자들이 직접 찌르고 하지 않습니다. 자동적으로 집행이 됩니다. 이게 맞습니다. 힌두교에서 지금 이것까지는 모릅니다). 간탐하고 인색한 사람은 지옥을 거쳐서 항상 굶주림에 시달리는 아귀보를 받습니다. 짐승처럼 행동하면 반드시 축생보를 받습니다(이것을 알아두십시오). 그리고 착하게 산 사람은 인간으로 태어나거나 아수라, 천상의 삼선도에서 즐거움을 누립니다(이것도 맞습니다). 물론 윤회를 벗어난 성자는 영원한 즐거움을 누리는 해탈계로 갑니다(이것도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사람이 죽으면 절대다수가 중지옥으로 갑니다.
(여러분, 이제 이것이 문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중지옥으로 갑니다. 그리해서 불과를 증한 성자가 이 사실을 알려 주려고 열반에 들지 않습니다. 이런 중지옥으로 떨어지면 큰일 나기 때문에 그런 죽음의 길로 가는 중생들을 붙들고 ‘너 지금까지 이렇게 못 된 짓하고, 이런 못 된 생각을 했는데 이러지 말라. 참회하고 부처님 말씀을 들어라. 사는 길이 있다. 산다. 사는 길로 가야지, 너 지옥가면 큰일이다’하고 교화를 하는 거예요. 포교를 하는 거예요.
그랬더니 우리 신도 분들 수백천명은 죽어서 지옥을 안 가겠더라 그거예요. 왜냐? 이렇게 법문할 때 부처님께서 쭈~욱 청정한 억종광의 빛을 방사해 주게 되어있습니다. 이것도 겁에 하나예요. 지금 부처님 교단의 법문 때만 그래. 그러면 여러분 그 더럽고 더러운 때(마음의 때, 죄의 때)가 씻겨져 나간다고요. 이런 많고 많은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시커먼 영혼체가 자꾸 씻겨나가고 씻겨나가고 하기 때문에 이제 하얗게 된다고. 하얀색으로 말입니다. 아주 말쑥하고 청정하게 돼. 이 정도 되면 하늘을 가는 거예요.
그런데 자력으로는 안 돼. 자력으로 수행을 그렇게 해본 사람들을 봐도 못해. 그것이 씻겨 지지를 않아. 어느 정도 정화는 되지만 소멸은 안 되더라고. 그래서 우리 영산불교의 법문을 한 달에 두 번 와서 들어주시기 바라고, 또 여러분들이 돌아가신 부모 조상님들께 진정한 효를 해드려라. 그것이 뭐냐? 천도재입니다. 불교에는 어느 종교에도 없는 천도재가 있다. 그런데 다른 절 천도재는 안 되더라. 아니다 그거예요. 아니다. 이건 험담하는 것이 아니어. 진실이 안 돼. 안 돼. 이유가 있지요. 뒤에 나옵니다.
그동안 내가 법문을 많이 했으니까 읽어보시면 알 것입니다. 지옥에 있는 조상님을 어떻게 데리고 옵니까? 데리고 와야 돼. 천도 해 드리는 이 법석으로 데리고 와야 돼. 데리고 올 사람이 없어. 지옥을 누가 가서 찾아 갈 사람도 없고, 역사 이후로 그런 큰스님도 없고. 아무리 큰스님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법력이 없었어.
그래서 오직 부처님이 주관하는 천도재라야 되는 것이어. 그래서 지옥에 있는 그 조상님들을 지옥사자들이 데리고 오고, 축생 몸을 받은 그 조상들을 데리고 오고, 이건 도인 100명 1,000명이 모여도 안 돼. 그런 힘이 없어. 또 무주고혼으로 있다 하더라도 죽은 지 10년 20년 30년 되면 신통이 대단해. 그러나 빛으로 쏴버리면 가지도 못해. 허공중으로 물속으로 해서도 솟구쳐. 땅속으로 숨어도 솟구쳐버려. 그 빛의 힘으로 가지도 못해. 그래서 잡아 온다 그거예요. 이런 천도재는 영산불교 밖에 없어. 그래서 네(4)번을 하면 그 부처님의 자비와 위신력으로, 그 빛의 힘으로 하늘까지 가는 거예요)
출처/2010.9.1.수(음7.23) 큰스님 대전 법문내용중 발췌
추신/현대불교신문에 실린 내용을 토대로 다시 보충해서 법문하신 내용입니다
육도윤회-2
붓다는 가장 중요한 불신을 포함해서 몸이 여섯입니
다. 인간은 몸뚱이가 다섯입니다. 20세기말 신지학에서
사람은 이 육체와 4개의 영체가 합해져 이루어졌다고
발견해 냈습니다. 탁월한 성과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몸뚱이, 이 거짓 몸뚱이는 여러 물질, 불교에서는 지.수.
화.풍이라고 합니다. 그 사대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이 거짓'나'는, 이 몸뚱이 집은 백년을 못 살
고 죽습니다. 땅 속으로 묻힙니다. 지.수.화.풍 사대로
돌아갑니다.
사람이 죽으면 대부분 악도로 가기 때문에 네 개의
자기 영체중 4번 영체가 영계에 듭니다. 그때 1, 2, 3
번 영체는 4번 영체 속에 겹쳐져 있습니다. 4번 영체는
이 거짓 몸뚱이와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 사부대중 불자님들. 다시 말씀하노니, 사람은 죽
으면 완전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지은 업에 따라 가는
곳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대해서나 재물이나 자기 몸뚱이, 처자 등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집착이 대단한 사람은 죽어 명부
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저 세상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들은 곧 윤회에 들어가지 못한다 이 말입니다. 천명
天命에 가더라도, 명命이 다해 죽어도 저승사자를 따라
가다가 되돌아오는 수가 있습니다. 저승에 들지도 못하
고, 이 몸뚱이도 이미 땅속에 들어갔으므로 중천을 헤
매는 고혼이 됩니다. 그 세계를 중음계라 하는데 이 세
계는 춥고 배고픕니다. 어둡고, 무섭고 외롭습니다.
그리고 천수, 천명이 남았는데도 도중에 요절한 사람
들, 그 영가들은 또한 중음계에 떨어집니다.
교통사고나, 스스로 음독이나 다른 수단으로 자진. 자
살한 사람들, 전쟁에 나가 총, 칼 맞아 객사해 죽었다
든지, 횡사 객사한 그런 사람들, 거의 대부분 중
음계에 들어 중음 고혼으로 떠돕니다.
다음으로 무서운 질병으로 많은 세월을 신음하다 죽
은 영가도 즉, 암이나 간질, 중풍, 에이즈 같은 하늘이
준 천질로 죽은 사람들 그 영가들도 거의 중음계에 듭
니다.
저의 소견으로는 사망한 사람의 70~80%정도가 중음
고혼이 됨을 말씀드립니다. 사부대중 여러분! 저 이 법
문은 진정 사실입니다. 그런데 새상 사람들은 물질만
능, 황금만능 사상에 젖어 보고, 듣고, 느끼는 바깥세상
만을 전부로 알고 살죠. 성을, 이성을 탐하고, 스포츠를
즐기고, 돈 버는 데만 골몰하죠. 명예와 권력을 쫓고
삽니다. 이 몸뚱이가 진짜 자기로 알고 죽으면 끝이라
생각합니다. 온갖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위해
온갖 죄업을 짓고 삽니다. 피땀 흘려 벌어 놓은 돈, 한
푼도 죽어 가져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명예도 사랑하는
이도 저승에 같이 따라가 주지 않습니다. 죽으면 끝나
는 것입니다. 물론 이 육체는 땅속으로 들어가 흙밥이
되죠. 그러나 이 몸뚱이를 집으로 삼고 한평생 살았던
자기는 주인공은 명이 다하면 의식이 그대로 남아있는
4번영체로 지옥이나 축생 혹은 아까 말했던 중음영가
로 새로운 고달픈 생을 살아갑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죽어 상당기간 4번영체로 살아가는
데 4번영체는 이 몸뚱이의 털구멍하나 다름없이 꼬부
랑 할머니가 목발 짚고 살다 죽었으면 목발 짚고 악도
에서 지냅니다. 그때 3번, 2번, 1번영체는 4번영체 안
에 겹쳐져 있습니다. 그러나 정직하고 부지런하게 큰
죄업도 짓지 않고, 남에게 폐도 끼침이 없이 오히려 착
한일 많이 하고 살다 죽으면 틀림없이 하늘 천상에 납
니다. 앞에서 말한 4번 영체는 하늘천상엔 적응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4번 영체는 죽어버립니다. 3번 영체
가 가서 납니다. 이때 2번, 1번 영체는 3번 영체 속으로
로 겹쳐듭니다.
90살에 죽었어도 3번 영체의 나이는 40대입니다. 몸
은 건강하고 얼굴은 미스코리아보다도 더 아름답습니
다. 아라한 성과를 이룬 성자는 성인이 나는 하늘에 2
번영체가 가서 납니다. 보살과를 이룬 성자는 서방정
토 극락세계에 1번 영체로 가서 납니다. 그때 2번, 3번
영체는 1번영체 속으로 깃듭니다. 중생의 1, 2, 3번영
체는 영원히 죽지를 않습니다.
화두타파하여 자성이 드러나 견성하여 다생의 습기를
녹이는 보림공부를 잘 마친 이는 비로소 아라한이 됩니
다. 중생은 아라한 이상 될 수 없습니다. 구조상 그렇
습니다. 전생에 아라한이나 보살과를 이룬 이는, 그런
선근이 있는 이는 금생에 잘 하면 보살이나 붓다까지
이룰 수 있습니다.
위에서 말씀 드렸듯이 중음계 영가들, 소위 중천을
떠도는 영가들, 그 고혼들은 대단히 불쌍합니다. 그리
고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 고혼 영가들은 배고픔이나
이성 욕구 해결을 위해서 가까운 인연을 따라 빌붙어
해결합니다. 그래서 업을 짓고 지냅니다. 중음세계에
오래있는 영가 일수록 업이 지중해져서 큰 스님을 만나
천도 되어 간다해도 지옥 중에서도 무서운 지옥으로 떨
어집니다.
출처/법문집1권중 라디오 법회 1집 (2001.6.24)에서 발췌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영산불교사상연구소
생사관
우리가 사는 이 지구, 남섬부주가 소속된 태양계, 우주는 수명이 무한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생겨났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정확한 수치를 알고 있지만 말할 필요 없습니다. 어쩌면 영겁을 존재합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생성소멸을 반복합니다. 사람도 그럽니다.
여러분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무시 이전부터,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옛적부터 겁이 문제가 아닙니다. 영겁이 문제가 아닙니다. 무시 이전부터 여러분은 생명을 받아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고 죽고를 반복하고 있어요. 앞으로 미래제가 다하도록 그럽니다.
이때 사실이 이러하니까 여러분은 큰스님의 법문을 꼭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떠한 일이 있느냐.. 어떻게 나고 죽고를 반복하느냐.. 사람으로 와서 업, 죄업을 많이 짓습니다. 아무리 죄업을 지으면 안 된다고 해도 죄업을 짓습니다. 죄업을 지으면 반드시 과보는 옵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느냐 보니까 내가 항상 말이지만 오늘 처음오신 분도 계시고 해서 또 말씀드립니다.
이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확실한 교법입니다. 이걸 부인하면 확실한 사설(邪說)입니다. 사람이 죄를 지어서 죽죠? 죽으면 아주 죽는 것이 아닙니다. 지은 업이 있어서 그 업대로 받습니다. 그런데 40, 50%는 명부에도 들지 못한다는 겁니다. 명부에도 들지 못한다는 말을 이해 못합니다. 세상사람 이해 못하고 불교인도 이해한 사람이 거의 없고 부처님 이후로 큰 스님도 거의 백지상태입니다. 그런데 우리 현지사는 대단히 그 부분에 대해 잘 압니다. 아함경에서 약간 설명해놓았지만 우리 현지사 법설과는 비교가 안 됩니다.
그래서 많은 종파가 분열이 됐습니다. 원시불교에서 29파로 분열된 원인이 그것입니다.
왜 명부로 들지 못하느냐? 집착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집착! 욕심! 사랑하는 사람의 정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놔두고 명부로 못 갑니다. 돈에 대한 집념이 강하다면 돈 번 것이 몇 천억이라면 못 들어갑니다. 자살하면 명을 다하지 못했기에 명부에 못 들어갑니다. 하늘이 내린 병을 받고 죽으면 명을 다 못살아서 명부에 못 들어갑니다.
집착입니다. 집착 때문에 명부에 못 들어가는 사람들이 40, 50% 지난 10년 통계로 알았습니다. 그러면 명부에도 못 들어가고 자기 몸도 한줌 재가 되고 흙이 되었기 때문에 자기 몸은 이미 기능을 발휘 못 하기 때문에 죽었거든요. 그래서 반틈은 귀신이고 반틈은 사람입니다. 이것이 무주고혼입니다. 무주고혼도 생명체여서 먹어야 하는데 기독교 자손을 둔 조상은 1년에 1끼도 못 먹어, 그러니 친구 따라서 이쪽 가서 얻어먹다가 얻어먹기도 하고 저쪽 가서 얻어먹으려다가 맞기도 하고 배가 고프고 추워서 너무너무도 가련합니다.
어떤 영가는 지옥보다도 더합니다. 명부에 꼭 넣어야죠. 그런데 명부에 넣어주려면 큰 법력 있는 스님을 만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절대 안 됩니다. 혹 명부에 들어가더라도 거의 절대다수가 지옥을 가기 때문에 지옥은 분명히 있는데..
그 지옥의 실상은 등골이 오싹할 정도가 아니고 너무너무도 무섭기 때문에... 나를 낳아서 길러주고 가르쳐주고 결혼, 분가시켜준 어머니, 아버지, 그 부모님을 낳아준 조상님들이 갔어. 그런데 효를 모르는 자식들은 또 배웠다고 자기가 다 아는 줄 알고 저 세상 없는 줄 알고 큰 스님이 법문하는 것을 듣지도 않으려고 하고 들으면 창작 이야기라고 하고... 그렇게 돌아가신 부모, 조상님에 대해 나몰라라 합니다. 그러면 부모, 조상님들 지은 업대로 다 과보를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 현지사는 그걸 알기 때문에 공부를 다 마치면 불과를 증한다고 하죠? 불과를 증한 분은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 불쌍한 중생을 구해주는 거예요. 명부에도 들지 못한 중생, 지옥도 다섯 구분 되어있는데 아주 무서운 지옥 미래제가 다해도 못 나오는 지옥이 있어요.
그 다음 조금 낫다고 하는 지옥이 무간지옥, 더 나은 지옥이 중지옥, 더 나은 지옥이 하지옥이고 벌이 없는 대기지옥이 있다고 부처님께서 구분하십니다.
그런데 이곳을 지은 업 따라서 도는 사람이 있어요. 무간지옥이나 급무간지옥에 가면 거의 못 나오지만 어쩌다가 나오기도 합니다. 아귀, 축생을 거쳐서 옵니다. 사람 몸을 받아도 정신적, 신체적으로 불구로 삼중고, 사중고 받아서 옵니다.
대성자는 그것을 볼 수 없습니다. 열반할 때까지 가능한 많은 중생을 구하고자 하는 그 서원! 중생 구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내가 짧은 한 시간에 그 생사관을 (현지사처럼 생사관이 뚜렷한 곳이 없습니다.) 서구 지성인들이 생사관에 갈망하고 목말라하고 있어요..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한데.. 성경, 코란을 봐도 없죠.. 간단하게 돼있죠.. 죽으면 지옥 천당. 죽으면 또 오는데 그걸 모릅니다. 현지사는 완벽한 생사관이 있습니다.
지금 내 책이 영문으로 고급스럽게 번역이 끝나가고 있습니다. 미국으로 가서 출판될 겁니다.
출처/법문집 2권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영산불교사상연구소
무주고혼 영가
죄업을 많이 지은 사람들이 죽으면 상당수가 명부에 들어가지
못하고 무주고혼으로 지냅니다.
객사한 사람, 자살한 분들, 몹쓸 병을 얻어 대소변 가리지 못하
고 죽은 이들, 처자에게 착이 많은 영가들의 대부분은 윤회에 들
지 못하고 명부에도 들지 못합니다.
이런 영가들은 반은 사람, 반은 귀신이기에 춥고 배고픕니다. 이
런 고혼들은 식색등의 기본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해, 인연 있
는 자손의 몸에 빙의 합니다.
여기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런 조상의 영가가 빙의
된 자손은 객사하고, 자살하고, 몹쓸 병을 얻습니다.
이런 불행을 막기 위해서 천도재가 필요하지만 완벽한 천도재를
감당할만한 큰스님이 없는 게 문제입니다. 인간이나 하늘천상에
태어나도록 할 수 있는 길이 있는 데도 말입니다.
부처님 당시 10대 제자인 목건련은 당신의 어머니를 4번 천도해
드림으로써 하늘천상에 태어날 수 있게 했습니다. 이 일은 거룩하
신 부처님께서 주관하셨던 천도재였기에 가능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지은 업을 소멸시킬 수 없습니다. 어느 정도의 수
행이나 참회 보살행에 의해 정화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부처님의 위신력에 의해서만이 중생의 죄업이 소멸됩니다.
또한 부처님만이 지옥 축생의 중생을 건질 수 있습니다. 부처
님의 위신력, 우주적인 구원의 힘에 의해서만 중생이 제도되는 것
입니다. 아라한도, 보살도 이 일만은 못합니다.
지옥 지장보살과 열시왕이 관장
지옥은 지장보살이 관장하는 곳으로, 남방의 지장궁 옆에 위치
해 있습니다.
상품보살 이상 붓다권 내에 든 대수행인은 삼매 속에서 지옥을
봅니다. 공을 깨친 후 무아 속 삼매에 들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착이 남아 있어서 망상을 떨치지 못하는 수행인이라면 선
정에 들어서도 지옥의 진상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런 수준의 선정으
로 보여지는 것은 요술쟁이의 마음이 그린 거짓 지옥 에 불과하
고, 진짜 지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장보살은 '붓다 중의 붓다' 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붓다
이십니다. 열시왕은 상품보살들이십니다. 무독귀왕, 도명
도명존자는 상품보살 이상의 불격을 갖춘 상수보살급이십니다.
무간지옥이나 극무간지옥에서 온 영가는 지옥의 옥졸이 쇠사슬
로 묶어서 데려옵니다.
보통 천도재의 결과는 수일 후에 나옵니다. 부처님들의 위신력
으로써 올리는 천도재는 영가 모두를 특별히 지장궁 별당으로 구
인해 갑니다. 그러나 죄업이 지중해 무간지옥에 떨어진 영가는 천
도가 거의 안 됩니다.
오직 부처님은 대자대비하시고 우주적인 무한한 능력을 구족하
시지만 사바세계 남섬부주의 당대에 붓다 이룰 그 제자의 집전 발
원에 의해서만이 악도에 빠진 중생을 건질 수 있습니다. 태양빛이
쨍쨍 내리 쬐더라도, 화경불록렌즈을 조정해야만 검정 헝겊을 태우
듯, 큰 제자라는 인연을 만나야 지옥중생이 구제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전제할 것이 있습니다. 먼저 영가의 이름으로 공덕을 짓
도록 많은 불 보살께 먼저 공양을 드리는 겁니다.
이런 천도재를 모셔드리는 공덕은, 그 어떤 공덕보다 수승합니
다. 영가 당사자들의 지은 업장이 씻어져서 보다 나은 세계로 천도
될 뿐 아니라, 천도재를 모신 이는 자손으로서 그만큼 큰 효를 해
드려서 더욱 좋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직도 중천을 떠도는 조상의
고혼들을 명부에 넣어줌으로써 후손이 나쁜 병을 얻지 않고, 자살
또는 횡사하지 않아서 다행인 겁니다.
물론 모든 나쁜 재액, 천병이 영가의 빙의에서 비롯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기본적으로는 우리들 사람이 전생에 지은 큰
악업으로 인해 여러 재앙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분명히 알아두셔야 할 점은, 천도재를 집전하는 스님이 최소한
청정한 비구스님이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째도 청정이고, 둘째
도 청정입니다.
이제 승려의 양심으로 돌아가 상업화 되어가는 천도재는 즉각
중단해야 할 것입니다. 더 이상의 죄업을 짓지 않기를 바랍니다.
능력 없이 천도재를 많이 하는 사찰은, 저급 영가들의 역겨운 냄
새와 사악한 기가 가득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귀신들이
꽉 차 있고, 귀신들이 득세하여 이미 성지가 아닙니다. 사찰은 청
정도량이어야 합니다. 절을 위해서도 상업화딘 천도재를 멈춰줄
것을 간절히 당부 드리는 바입니다.
적어도 아라한과에 증입할 때까지는 사생결단 외길을 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물 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나옹 혜근-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펴낸곳/현지사 영산불교사상연구소
불교의 생사관
"무협에도 신검 합일, 화경, 현경, 생사경 단계로 나눈다고 합
니다. 신검 합일은 검과 몸이 하나가 되는 단계이고 화경은
여기서는 붓다가 되기 위한 필수조건인 생사관 확립에 대한
내용입니다. 인터넷을 주유하는 어는 강호 네티즌께서 좋은 글
을 올려주셔서 여기에 인용합니다. 네티즌님의 대의는 그
대로 하되 제가 그 내용을 약간 각색하여 정리를 해봤습니다 검
기를 다루는 것이며 이때 육체적인 뼈와 살이 바뀌는 환골탈태
가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으며 현경은 검과 마음이 하나가 되
어 어검술(검을 심기로 날려서 적을 공격하는검술)을 부릴 수 있
다고 하며 이때도 환골탈태가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물론 이
때는 영적인 환골탈태가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생사경은 몸이
사라진다 해도 보이지 않는 영적 몸만이 살아있다면 언제든지
부활이 가능한 단계라고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생사경에 도달하
신 분이라고 합니다."
생사를 초월하는 경지, 즉 부처님의 경지에 대한 생사관 내
용은 큰스님께서 최상위 존재계인 절대 법계에 거주하시는 석
가모니불의 가르침을 전한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 잘 나
와 있습니다. 큰스님께서는 불교계의 사활이 바로 올바른
생사관 정립에 있다고 하실 정도로 중요한 문제라는 점을 지적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백 번 옳다고 생각합니다. 견성을 한다
고 해서 생사관을 확립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 즉 불과를 증위
해야만 생사관을 얻을 수 있다는 점, 누차 강조해도 지나친 말
이 아니라는 점을 명료하게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영산불교사상연구소
육도의 세계
마치 매미가 허물을 벗고 빠져나가는 놈이 진짜 매미이듯, 우리 사람도 죽으면 몸뚱이라는 허물을 버리고 자기의 영혼이 빠져나갑니다. 이 영혼은 몸뚱이가 있어 영혼체라 합니다.
영혼체는 네 개의 영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4번 영체는 자기 몸뚱이의 복사체입니다. 명부에 들지 못한 이들은 자기의 몸뚱이에서 빠져나가 중음계에 떠돕니다. 죽어서 바로 명부에 들어간 이들은 영체의 껍질 부분4번 영체 겉부분_영체에 대한 법설은 다음 장에서 한다을 이승에다 버리고 사자를 따라 저승에 들어가 49일간 대기해 있습니다. 그 사이 열시왕의 논죄를 받습니다.
이 49일간을 중유中有라 합니다. 위에서 말한 명부에 들지 못하고 떠도는 중음中陰과는 다릅니다. 중유와 중음세계는 엄연히 다릅니다. 논죄를 받고 판결대로 육도六道에 가서 나게 됩니다.
대개 사람들은 업을 짓고 살기 때문에 지옥에 갑니다. 자신이나 남의 삶을 파괴한 악행, 그리고 부모님께 불효하고, 부처님의 교법Dharma을 비방하는 등 죄업을 지으면 지옥에 떨어집니다.
지옥 벌은 빙한氷寒과 화염火炎, 기타…… 로 가해옵니다. 화탕지옥, 흑암지옥, 독사지옥, 도산지옥, 분뇨지옥 등……. 모두 있습니다.
한 가지 벌을 받는 지옥도 이 사바세계만합니다. 중지옥 이상의 무서운 지옥에서 형벌을 받고 있는 장면을 보면 성자라도 너무 끔찍하여 자지러지고 까무러칠 정도입니다.
불바다 지옥,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뗄 때마다 괴로워하는 죄수를 보면 간이 다 녹아질 지경입니다. 물 없는 사막, 태양이 작열하는 열 지옥을 걸어가는 죄수, 입이 다 마르고 목이 탑니다. 냉동실의 냉각기 바람의 온도가 영하 수십 도로 내려갑니다.
벌거벗은 몸뚱이가 순간 얼어붙어 괴로움에 괴성을 지르며 숨이 넘어갑니다.
날카로운 대꼬챙이가 열 손가락의 손톱 사이를 서서히 파고듭니다. 지네지옥에서는 지네가 사람 몸뚱이의 구멍구멍마다 파고들어 물어뜯습니다. 이하 중략
이것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보는 이는 오장육부가 다 끊어지는 듯합니다.
형벌의 무서운 정도와 지옥 수명을 기준으로 나누자면 극무간지옥, 무간지옥, 중지옥, 하지옥, 대기지옥으로 구분하고 이들 다섯 지옥마다 각 지옥의 형벌 수준에 해당하는 지옥이 각기 수백이 됩니다.
《지장보살본원경》의 지옥 수는 그 일부라고 어느 날 대세지보살께서 법문해주셨습니다.
지옥의 형벌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운 것이 사실입니다. 가련하고 불쌍해서 볼 수 없습니다. 지옥 중생은 고통으로 인해 넋이 나가 자기가 누군지도 모릅니다. 고통이 시작되면 자지러질 듯 놀라고, 그 질려있는 모습은 차마 눈뜨곤 볼 수 없습니다.
심장이 터져버릴 듯하여 보는 자가 오히려 가슴 조여 두 번 다시 보기 무섭습니다. 지옥의 벌은 옥졸은 있으나 자동으로 집행됩니다. 지옥의 공기는 탁합니다. 안개 낀 날처럼 음산하고 맑지 않습니다. 낮과 밤도 없습니다. 항상 희미할 뿐입니다. 지은 죄업이 많으면 많은 지옥을 돕니다. 지옥에서 받는 벌의 아픔은 몸뚱이가 고문 받을 때보다 더하면 더하지 덜할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나의 진짜 몸, 영체는 거짓 몸뚱이를 벗고 빠져나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옥 중생은 고통으로 혼절하기 때문에 1초도 참회할 정신적인 여유가 없습니다. 지옥문에는 옥졸 수백 명이 밀어서 여는 철대문도 있고 작은 문도 있습니다. 에스컬레이터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지장보살은 지옥을 관장하십니다. 명령은 10시왕으로 그것이 판관에게로 옥사장 앞으로 옥졸로 하달됩니다.
무간지옥의 죄수는 우리 교주 불 세존의 하명Order 없인 구제가 안 됩니다. 붓다의 경지에 올라야 지옥을 보고, 또 거기에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장보살의 위신력으로 꿈 속에서나 염불 공부 중에 지옥의 한 장면을 언뜻 볼 수도 있습니다.
지옥의 벌을 다 받고 나온 이들은 축생이나 아귀세계로 떨어져 그 곳의 업보를 채웁니다.
항상 굶주림과 갈증으로 극심한 고통을 당하는 아귀계가 있습니다. 간탐, 진심瞋心과 질투가 아귀세계에 나는 주원인입니다. 배는 엄청나게 큰데 목구멍은 너무나 작습니다. 물을 마셔도 속에 들어가면 불로 변해버린다 합니다.
그리고 주로 바람직하지 않은 성행위로, 또한 사견邪見과 우치愚癡의 업으로 말미암아 태어나는 축생, 동물세계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영체靈體가 축생류 전부를 대상으로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포유류에는 영체가 들어갑니다. 열두 디에 속하는 동물에는 모두 들어갑니다. 조류 중에서 비둘기, 독수리, 학, 꿩, 제비, 공작, 앵무새, 구관조, 까치, 까마귀는 윤회의 대상에 들어갑니다.
파충류로는 열두 띠에 드는 뱀 외에 거북이가 들어가고, 양서류인 두꺼비에도 영체가 들어갑니다. 어류로는 상어, 잉어에 영체가 들어갑니다. 물개, 물표범, 고래는 물에 살지만 어류가 아니고 포유류이기 때문에 영체가 들어갑니다.
곤충류에는 들지 못합니다. 엄밀히 말해서 영체가 들어가는 축생류만이 불성이 있다고 봐야 합니다.
축생의 보를 다 받고 나서 다시 인간 몸을 받아오는 것이 정석입니다. 사람 따라 축생보를 먼저 받고, 지옥에 가는 이도 있습니다. 사람 사람마다 지은 업은 명부에서 논죄합니다.
무슨 지옥 몇 겁 또는 다른 지옥 몇 겁, 축생보로 구렁이 몇 생 다른 짐승으로 몇 십 생, 아귀보로 몇 겁, 이렇게 지은 업대로 산계소작算計所作하여 컴퓨터 이상으로 정죄定罪가 됩니다. 그럼 추호도 사私가 없이 집행됩니다.
우주 공간 안의 수많은 별나라에는 기체 인간들 소위 외계인이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죄업의 원인이 되고 근본이 되는 육신이라는 것이 없고 다만 기 영혼체로 살기 때문에 큰 죄를 짓지도 않고, 크게 착한 일도 하지 않습니다.
사는 것이 비교적 안정돼 있어서 악업이 없고 마장이 적어 부처님 공부도 잘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영적 진화가 느립니다. 가끔 외계인이 인간 몸을 받아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수라阿修羅의 세계도 실제로 있습니다. 1하늘 하下급의 별도의 하늘입니다. 복을 많이 지었으나 시기·질투심이 있어 싸우기를 좋아합니다. 제석천왕에게 여자를 달라고 싸우게 됩니다. 편싸움으로 부상을 크게 입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죽지는 않습니다. 영체는 죽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하늘세계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립니다.
하늘도 크게는 여섯 하늘로 나누고 자세하게는 54품의 구분이 있습니다. 하늘 천국도 54하늘이나 된다는 말입니다. 오계五戒·십선十善으로 산 이들이 갑니다.
사람이 죽어 하늘에 갈 때는 3번 영체로 가 납니다. 3번 영체의 설명은 다음 장에서 하겠습니다. 하늘천상, 천당은 올라갈수록 수명도 길어지고, 복 수용도 더 합니다.
하늘의 복이 다하면 인간으로 오게 됩니다.
죄업도 지었지만 착한 일도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럴 경우에는 먼저 지옥에 가서 업보를 다 받고 하늘에 오르기도 합니다. 삼계·육도를 윤회하는 한 죽음을 피할 방법이 없습니다. 하늘 꼭대기에 올라간다 할지라도, 바다 속 들어가거나 산을 쪼개고 그 가운데 몸을 숨긴다 할지라도 죽음은 반드시 그 자를 찾아냅니다.
중생은 윤회생사합니다. 육도의 윤회생사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윤회를 벗어난 아라한·보살·붓다의 세계, 여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위로 1하늘을 지나면 제석천왕의 거소가 있고, 사천왕의 거소도 있습니다. 제석천왕은 1하늘~6하늘 사람들을 관장합니다. 불격을 갖춘 최상수보살입니다. 바로 위에 성중하늘도 셋으로 자세히는 27품으로 나눔 구분합니다. 성중하늘을 여기서 언급하는 이유는 성자의 반열에 든 이들이라 마음 공부를 할 줄 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이들은 그래서 거의 퇴전하지 않고 윗 성중하늘로 오릅니다. 성중하늘에 태어나려면 착하게 살고, 불법 공부 잘해서 선정에 들 수 있어야 합니다.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이 가는 세계입니다. 성자의 반열에 듭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Ⅱ≫
13장 사람이 죽으면 어찌되나-불교의 생사관 - 광명 만덕 자재 만현 저
윤회로 부터 벗어나라!
금생에 불법을 만나 생사를 벗어나고 윤회를 벗어나려면 시공을 초월
위에서 강조했듯 몸과 마음이 청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중아라한이
됩니다.
나아가 성중하늘에서 와서 보살을 목표로 수행하는 대수행인들
은 고기와 술, 담배도 멀리해야 합니다. 몸에 이런 이물질이 들어
오면 탐진치 삼독이 정화되지 않습니다. 정신이 혼미해지고 탁해
져서 공부가 되지 않고 청정한 정토에 날 수 없습니다.
물론 6하늘이나 5하늘 정도에 태어나고자 하면 술, 고기, 담배
피우는 정도는 상관없습니다. 부부생활도 좋습니다. 그러나 이 경
우에도 개나 뱀의 고기만큼은 절대로 먹는 걸 금해야 합니다.
출가자와 재가 사부중들에게 말씀드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죄업을 지어 삼악도에 갑니다. 그 중 절반 정도는
지옥에도 못가고 중천을 떠도는 무고혼이 됩니다. 처자와 재물에
대한 미련과 착심 때문입니다.
고혼이 되면 너무 춥고 배고픕니다. 효성이 지극한 자손이 큰스
님을 만나 천도해주지 않는 이상, 수백 년 혹은 그 이상이 지나도
록 중음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지옥이나 짐승세계에 난다는 경고를 남의 일쯤으로 생각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 세계의 고통을 생각하지 않고 삼
악도로 떨어진다는 큰스님 말씀도 새겨듣지 않습니다. '그런 게
어디 있느냐' 는 식입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다. 삼악도의 세계가 있고, 천상도 있습니
다. 진실로 있습니다!
육도의 세계가 실재하고 중생들이 삼세를 통해서 윤회전생한다
는 이 말씀을 거듭거듭 힘주어 말씀드립니다. 아직도 지옥, 축생
종자들은 의심하고 이 진실의 외침을 비웃는 분도 계시겠지만 순
박하고 믿음 있는 불자들이라면 나의 법문을 경청하시리라 믿습
니다.
허물을 벗고 날아가는 매미가 진짜이듯, 이 거짓 몸뚱이를 벗어
던지고 빠져나가는 영혼체가 진짜입니다. 오히려 그 영체가 느끼
는 감도가 이 육신의 그것보다 더욱 생생합니다. 지옥이나 아
귀세계로 떨어진 이 영제가 고통을 받을 뿐 아니라 배고픔도
느낍니다. 이 거짓 몸뚱이가 고문당할 때의 고통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덜 하지 않습니다.
죽어서 지옥이나 짐승이 될 때 우리의 4번 영체가 짐승의 뱃속
으로, 그 악도로 가는 것입니다. 4번 영체는 우리 몸뚱이와 털구멍
하나까지도 다르지 않습니다. 꼬부랑 할머니가 죽어 지옥으로
떨어지면 그 4번 영체는 꼬부랑 할머니 그대로 입니다. 살았을 때의
기억이 그대로 영혼체로 옮겨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코 악도로 가면 안 됩니다. 그러려면 죄를 짓지 마
십시오. 절대로 부처님과 법을 능멸하거나 모독해선 안 됩니다. 그리
고 5무간업, 4바라이죄, 10악업을 차례로 경계해야 합니다.
불교_오도증입을 요구
불교는 실천을 요구합니다. 아무리 학식이 있고 변재라 해도 실천
수행이 없으면 안 됩니다. 세계적인 대석학이라 해도 믿음이 없고 행
이 없으면 악도행입니다.
마음공부해서 깨달아야 하고 깨달음을 완성해서 아라한이 되고,
보살지에 오르고, 궁극에 이르러 붓다가 돼야 합니다.
불교는 오도증입을 요구합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죽으면 어디로 가나*영산불교 현지사
이제 사람이 죽으면은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좀 잘 아시지요. 그러나 라디오를 시청하는 청취하는 분들은 아주 모릅니다. 정말 모릅니다. 자 말씀 드리겠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가는 곳이 있습니다. 가는 곳이 있는데 집착이 강한 사람은 명부를 못 들어 갑니다. 집착이 강한 사람은 명부를 못 들어 갑니다.
집착 때문에 이 세상 그리고 자기 자식 애인 손주 돈 등등 집착이 강한 사람은 명부에 못 들어 갑니다. 그 다음 자살 한 사람은 명부에 못 들어갑니다.
자기 명을 다 살아야지 살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은 결코 명부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명부가 있습니다.
자기 명을 다 살아야지 살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은 결코 명부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명부가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확실히 저승사자가 와서 잡아간답니다. 이것은 맞는 말입니다. 여기서부터 축생이나 지옥에서 온 사람들은 이제 웃을 거에요.
이제부터 비웃습니다. 어디가 죽어버리면 끊나고 묘지를 가보면은 허망하더라. 공동묘지가 가봐라 뭐가 있더냐 그래가지고 내 법문을 비아냥 거립니다.
이제부터 비웃습니다. 어디가 죽어버리면 끊나고 묘지를 가보면은 허망하더라. 공동묘지가 가봐라 뭐가 있더냐 그래가지고 내 법문을 비아냥 거립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정말 불쌍한 사람들이지요. 이 세상 물질만 알고 저 내면세계는 전혀 모르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짖는 것이 업이지요. 그래서 다시 악도로 악도의 업을 지어서 악도로 갑니다.
20세기에 들어서 주로 일부 과학자들에 의해서 사람이 죽으면은 아주 죽는 것이 아니고 영혼은 죽는 것이 아니고 영혼. 죽는 것이 아니고 다시 전생(轉生)을 하더라.
20세기에 들어서 주로 일부 과학자들에 의해서 사람이 죽으면은 아주 죽는 것이 아니고 영혼은 죽는 것이 아니고 영혼. 죽는 것이 아니고 다시 전생(轉生)을 하더라.
전생. 생을 바꾼다. 전생을 하더라 하는 결론을 냈습니다. 주로 근사경험(近死經驗)이라고 해서 의료계에 종사하는 의학자들이 많이 이 사례를 수집했습니다. 사람이 죽어서 다시 살아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의사가 진단을 해서 이건 완전히 사망입니다 하고 진단이 끊났어요. 그런데 하루 이틀 삼일 만에 살아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의사가 진단을 해서 이건 완전히 사망입니다 하고 진단이 끊났어요. 그런데 하루 이틀 삼일 만에 살아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요런 사례를 수천 건 이 사례를 모집한 어느 미국의 의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한테 가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 온 동안에 무엇을 경험했느냐 하고 녹취해보니까 공통됩니다 거의.
그 다음. 대게 두서너 살 된 아이들에게 나타나는데요 전생 기억을 하는 수가 있습니다. 사람이 다시 사람으로 오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대게 하나 천의 하나입니다.
그 다음. 대게 두서너 살 된 아이들에게 나타나는데요 전생 기억을 하는 수가 있습니다. 사람이 다시 사람으로 오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대게 하나 천의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그 어린이는 두 세 네살 될 때 말이 이제 말을 할 수 있을 때 부모님들이 황당할 정도로 이상한 말을 합니다. 요건 우리 집이 아니라고. 내 집은 저기 부산에 있다 요런다든지.
우리 마누라는 이름이 머다 한다고 한다든지 여러분 어떻게 받아 들이겠습니까 황당하지. 그러면 메모를 해놓았어요. 이렇게 해서 수천 건을 사례를 수집해가지고 과학적인 방법에 의해서 증명을 했습니다.
우리 마누라는 이름이 머다 한다고 한다든지 여러분 어떻게 받아 들이겠습니까 황당하지. 그러면 메모를 해놓았어요. 이렇게 해서 수천 건을 사례를 수집해가지고 과학적인 방법에 의해서 증명을 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완전히 죽는 것이 아니구나 다시 사람으로도 오구나. 저기 미국에 스티븐스라고 하는 교수가 이천 건 자료를 수집했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 차시환생(借屍還生) 이라는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차시환생 뭐냐. 중국에 상동성에서 일어난 일인데 죽은 지 3일만에 관속에서 소리가 납니다. 입관을 했는데 죽은 지 3일이 됐는데. 그래서 우리 아버지 살았다 해가지고 관을 열어보니까 살아나.
그 다음에 차시환생(借屍還生) 이라는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차시환생 뭐냐. 중국에 상동성에서 일어난 일인데 죽은 지 3일만에 관속에서 소리가 납니다. 입관을 했는데 죽은 지 3일이 됐는데. 그래서 우리 아버지 살았다 해가지고 관을 열어보니까 살아나.
그래 얼마나 부인하고 자식이 반가워 합니까. 근데 말을 못해. 전혀 말을 못해. 몸뚱이는 아버지인데 말을 못해. 그래서 종이를 갖다 달라고 하니까 종이를 갖다 줬어.
펜을 갖다 달라고 하니 그야 몸짓으로 하는 거지 펜을 갖다 주니까 자기는 베트남 사람 안남인이라 그거요 이름은 유건중이라고 합니다. 유건중. 죽은 사람은 최천선이야. 여러분 아시겠지요.
그래서 이 북경대학교 조사단이 현지를 가서 확인을 했답니다. 그랬더니 맞어요. 유건중의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자기 자식이 홍열 무슨 병 있잖아요.
그래서 이 북경대학교 조사단이 현지를 가서 확인을 했답니다. 그랬더니 맞어요. 유건중의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자기 자식이 홍열 무슨 병 있잖아요.
그래서 여름인데 지금같이 삼복더위인데 두터운 두터운 이불을 얼굴까지 그냥 덮어 씌워. 어떻게 추워라고 합니다. 그래서 질식했다는. 질식사했어.
질식사해서 인제 저승 저쪽을 가가지고 오니까 자기 송장은 땅속으로 들어가버렸어. 안되죠.
그러니까 찾아 다니는 거요 막 죽은 송장을. 막 죽은 송장을. 3일된 최천선이라는 송장에 쏙 들어가버렸어.
그러니까 찾아 다니는 거요 막 죽은 송장을. 막 죽은 송장을. 3일된 최천선이라는 송장에 쏙 들어가버렸어.
그러니까 몸뚱이는 아버지지만 실은 유건중이라. 안남사람. 베트남하고 중국하고는 한자를 같이 씁니다. 그래서 이 사건이 대단히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건입니다.
더러 더러 있습니다 그런데. 더러 더러 있습니다. 더러 더러 있는데 내가 정확한 메모를 한 것이 없네요.
그 다음에 전생회귀라는 것이 있습니다. 연령역행이라고 하지요. 최면술에 의해서. 최면도 깊은 최면 1단 2단 3단계가 있습니다. 3단계까지 깊이 넣어서 연령역행 시간역행을 하면은 전생을 이야기 합니다.
그 다음에 전생회귀라는 것이 있습니다. 연령역행이라고 하지요. 최면술에 의해서. 최면도 깊은 최면 1단 2단 3단계가 있습니다. 3단계까지 깊이 넣어서 연령역행 시간역행을 하면은 전생을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사건으로는 1959년에 ‘브라이드머피를 찾아서’라고 하는 책이 미국 번스타인이라고 하는 최면학자에 의해서 쓰여져 있는데 그건 대단히 참 재미있는 사건인데 이것이 미국 98개 신문 신문에 대서특필이 돼 가지고 전세계가 놀랐습니다.
요건 뭐냐 하면은 최면을 통해서 전생 전생 전생 4생까지 소급해서 봤다는 기록도 있고 칠생 전까지 소급해서 봤다는 기록이 있는데 바로 전생 그것은 대부분 상당히 맞았다 그거요. 과학적으로 검증해보니까.
현지에 파견 해보니까 학자들 조사단 그래서 여러분 사람이 죽으면은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인생이란 무엇이냐 죽음이란 무엇이냐에 대해서 정말 역사가 시작한 이래로 많은 관심 있는 의식 있는 사람들이 거기에 대해서 골몰히 연구를 했습니다.
이 인생이란 무엇이냐 죽음이란 무엇이냐에 대해서 정말 역사가 시작한 이래로 많은 관심 있는 의식 있는 사람들이 거기에 대해서 골몰히 연구를 했습니다.
그리스 학자 중에서 플라톤이나 피타고라스 같은 사람들은 영혼은 죽지 않고 전생은 전생한다 까지 알았습니다 지금부터 그러니까 2천 몇 백년전이지요.
유명한 사람들 아닙니까. 세계적인 유명한 지식인들이 많이 전생을 믿었습니다. 우리 불교는 전생이 문제가 아니라 육도에 윤회전생 하는 것까지 알아버렸습니다.
육도 더 깊이 알았지요. 육도 죽으면 지옥 축생 아귀 인간 수라 천상 여섯 세계를 윤회하더라 하는 것까지 아는 종교가 우리 불교하고 힌두에 인도에서 발상한 힌두교하고 브라만교하고 자이나교입니다. 이 세 종교는 알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 현지사는 그보다 더 알고 있습니다. 무엇을 알고 있느냐. 윤회안 육도를 넘어서 윤회밖 세상을 잘 알고 있습니다. 깨달아가지고 보림을 마치면 아라한입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 현지사는 그보다 더 알고 있습니다. 무엇을 알고 있느냐. 윤회안 육도를 넘어서 윤회밖 세상을 잘 알고 있습니다. 깨달아가지고 보림을 마치면 아라한입니다.
윤회를 벗어나게 되요. 윤회를 벗어나는 세계를 성중하늘이라고 합니다 내 책에서요. 성중하늘을 더 가면 거기는 적멸의 세계요 빛의 세계요. 더 가면은 도솔정토가 있어요. 도솔천 내원궁이라는데 도솔하늘이 아니오. 도솔천 내원세계가 있어요.
거기는 불모가 가는 불부가 가는 정토입니다. 붓다를 낸 부모 붓다를 낸 공덕으로 그 하늘 갑니다. 거긴 윤회 밖입니다.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영원히 여기 안 올 라면 안 올 수 있습니다 하늘에서 하늘이라고 하는 곳이니까.
그리고 거기서도 더 가면은 부처님께 시중하는 천녀의 정토가 있습니다. 거기서 더 가면 극락정토가 있습니다. 거기서 더 가면 약사정토가 있고 약사정토에서 마지막으로 사람을 몸을 받아서 붓다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붓다들이 계시는 무아속 절대 세계가 있다는 것.
나쁜 사람이 죽으면은 머리에서부터 심장을 향해서 식어갑니다 여러분 몸이. 송장이요. 그리고 정말 훌륭한 세상에 환생할 정도로 착하게 산 사람들은 심장부터 식어간다는 것을 알아 두십시오. 심장부터.
나쁜 사람이 죽으면은 머리에서부터 심장을 향해서 식어갑니다 여러분 몸이. 송장이요. 그리고 정말 훌륭한 세상에 환생할 정도로 착하게 산 사람들은 심장부터 식어간다는 것을 알아 두십시오. 심장부터.
모든 것은 자기가 지은 업에 따라서 몸을 받습니다. 모든 것은 모든 사람들은요 자기가 지은 업에 따라서 몸을 받아간다는 것. 착하게 살았으면 착한 곳으로 갑니다.
죄업을 많이 지으면은 지옥 아귀 축생으로 떨어지는데 내가 볼 때는 많은 사람들이 명부에도 못 들어가더라는 것.
명부에도 못 들어간 사람은 전생에 업이 지중합니다. 이제 천도해보면 그 사람들은 거의 중지옥을 가더라고요. 중지옥도 세 층이 있습니다.
근데 그곳으로 가더라고요. 그리고 지옥을 거쳐서 축생으로 옵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일이지만 특별한 예도 있습니다.
근데 그곳으로 가더라고요. 그리고 지옥을 거쳐서 축생으로 옵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일이지만 특별한 예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마구 죽어서 뱀이 되고 구렁이가 된 사람이 있습니다. 저번에 천도재를 해보니까 자기 집이 자기 집 사정을 듣기 전에 전부 수배가 끝났지요 부처님들이. 수배가 딱 끝났는데 아드님이 어디로 가서 갔나 하고 굉장히 알고 싶어해.
그 사람이 왔으면 내가 미안한 데. 가르켜 달라고 했는데 안 가르켜 주었거든. 말 할 수가 없어. 뱀이 되었기 때문에. 20년 전에 간질을 앓다가 죽었어.
그 사람이 왔으면 내가 미안한 데. 가르켜 달라고 했는데 안 가르켜 주었거든. 말 할 수가 없어. 뱀이 되었기 때문에. 20년 전에 간질을 앓다가 죽었어.
뱀이 됐더라구요. 또 조상 중에 구렁이가 된 조상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 집은 문제가 있다고 했는데 내중에 천도재를 하러 와서 물어보니까 자기 집이 집에 뱀이 구렁이가 그렇게 많이 나온다 그래. 그래서 천도한다는 거요. 그 친구들이 온 겁니다.
출처/ 2006년 06월 28일 자재만현큰스님 춘천현지사 정기법회중 발췌
출처/ 2006년 06월 28일 자재만현큰스님 춘천현지사 정기법회중 발췌
2011년 1월 2일 일요일
칭명염불.........1
칭명염불
칭명염불수행법은 미증유한 공부법입니다.
중생들의 검증 절차가 필요치 않습니다.
삼천대천세계
모든 부처님들께서 권하시는 바요,
거룩하신 우리 교주
불 세존 석가모니부처님의 뜻이요,
불과를 이룬 광명·자재가 내놓은
공부법이기 때문입니다.
현지사 칭명염불_아라한, 보살, 붓다가 나온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삶이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행복이 영원히 이어지기를 꿈꾸게 됩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부처님께 귀의하고 그 교법에 귀의하며 지난날의 업을 참회하고 탐진 번뇌를 정화해가면서 오계·십선을 행하여 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하늘이나 인간세계로 몸 받아 올 수 있는 정법의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물론 금생도 근심 걱정 없이 잘 살기 바랍니다. 그러다 부처님 회상을 만나 윤회전생에서 벗어나 정토에 나기를 간절히 권합니다.
여기서 나는 일찍이 불교사에 없었던 석가모니불을 봉창하는 칭명염불을 제안합니다. 많은 공부법이 있지만 이 염불 공부가 보살이 되고 붓다 되는 가장 확실한 수행법이기 때문입니다.
화두를 드는 선종의 간화선이나, 남방불교의 위빠사나 관법선이나 티베트 밀교의 쿤달리니 요가 수행법 - 이 모두는 자력으로 가는 수행법입니다. 잘해야 아라한 성과를 얻을 뿐입니다.
오늘 날 간화를 참구하는 선승들 중에 지계 청정하고 부처님 없다 말하지 않고 공부 잘하는 스님들도 많이 있음을 압니다. 그 스님들, 자·타력의 불교로 방향 전환한다면 결정코 성과聖果를 얻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현지사의 칭명염불은 자력과 타력을 겸비한 수행법입니다.
아라한, 보살, 붓다가 나옵니다.
이 칭명염불 수행법은 미증유한 공부법입니다. 중생들의 검증 절차가 필요치 않습니다. 삼천대천세계 모든 부처님들께서 권하시는 바요, 우리 교주 불 세존 석가모니부처님의 뜻이요, 불과를 이룬 광명·자재가 내놓은 공부법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부처님의 성호를 칭명하라!
2600여 년 전 인도 땅에서 출세했던 석가모니부처님은 대열반에 드셨다 해서 완전 공으로, 적멸로 드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중요한 지적입니다. 처음으로 불과를 증해 붓다가 되던, 어느 부처님께서 다시 사바 세상에 사람 몸을 받아 오시던 간에 절대계에, 유무를 초월한 무아 속 절대계에 부처붓다의 몸佛身·報身을 두십니다.
그 불신은 청정하고 깨끗한 부처님의 무량 억종광명 빛으로 이루어졌기에 영원불멸입니다. 그 불신은 대적광삼매 속에서 환희, 지복을 누립니다. 동시에 이 우주와 하나로 계합해 있으면서 삼천대천세계를 항상 비추는 대생명체인 법신法身佛도 두고 계십니다.
그 부처님보신은 ≪법화경≫ <신력품>에서 말씀하신대로 자기의 화신을 천이고 억이고…… 중생의 부름에 응하여 나투어 가시는 것입니다. 소위 32응신으로 그 중생의 근기에 따라 현신하십니다. 불과를 증하신 부처님 삼신三身의 중심이 되는 보신부처님은 32상을 갖춘 유형의 불신으로서 지혜와 자비 자체가 되어 깊은 삼매의 힘으로 항하사의 신통 묘용을 자재하게 부립니다. 시방十方의 불국토를 다니시면서 보살들을 교화하십니다.
아미타부처님께서 수년 간 사유하여 큰 삼매력으로 극락세계를 성취하신 것은 사실입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은 부처님 중 부처님이십니다. 그리고 최초의 부처님이십니다. 무량 아승기겁 전에 불과를 이루신 이래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부처님, 보살님들을 양성해내신 부모님 같은 어른 부처님이십니다.
부처님들의 지혜·자비·능력은 실로 불가사의합니다. 외도 이단의 세력을 다 합쳐도 부처님 한 분을 대적하지 못합니다.
석가모니불게 귀의·귀명하고 과거 생에 저질렀던 사악한 죄업을 참회하고 그 태산만한 우리 자신의 업장 소멸을 발원하면서 칭명하는 염불수행을 나는 이 책을 읽고 있고 여러 불자들에게 간절히 권하는 바입니다.
다시 말합니다. 부처님은 진실로 절대계에 계십니다. 보신부처님은 여름철 뙤약볕 아래 놓은 다이아몬드가 천만 갈래의 빛으로 발산하는 것처럼 그런 불가사의한 빛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32상 80종호로 자비·단엄하십니다. 우리 죄업 중생이 간절히 부르면 우는 아이에게 달려오는 어머니처럼, 그 같이 오셔서 각자의 수행과 공덕에 따라 업장을 씻어주십니다.
중생의 지중한 업장 소멸은 오직 부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 어떤 외도 수장들도 이것만은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이 점 확실히 말해둡니다. 나라는 의식이 생겨, 탐진 번뇌들이 일어나 업을 지으면 우리의 영혼엔 더덕더덕 오물찌꺼기들이 붙어 몸뚱이가 만들어집니다.
우리의 본래의 영아靈我에 영혼체가 생긴다 그 말입니다. 수행이란 이런 비본질적인 나, 비아非我를 정화해가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영혼이 순수하고 깨끗하고 청정해질수록 맑고 청정한 국토에 납니다.
수행이란 영혼의 정화입니다. 다시 말합니다. 업의 정화는 자력수행으로서도 어느 정도 가능합니다. 아라한 수준의 영혼 본래 모습까지는 정화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 이상 보살로 발돋움하는 것은 타력부처님 가피에 의해서만이 가능합니다.
거룩하신 부처님의 신력神力에 의해서 탐진의 뿌리가 녹고 업장이 소멸 되면 우리는 누구나 보살이 되어 극락정토에 왕생합니다. 오직 석가모니부처님의 가피에 의해서만이 보살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님의 가피력이 아니면 우리 중생은 기왕에 빙의됐거나, 앞으로 빙의될 가능성이 있는 천마·용신 등의 무서운 장애를 제거하거나 방어할 힘이 없습니다. 그리고 삼독 번뇌의 지멸 역시 우리 연약한 인간의 능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금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만나게 되는 삼재와 팔난의 고통도 부처님의 크신 위신력과 가피에 의해서만이 피해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숙명적인 운명까지도 바뀌어 집니다. 죽을 때 불 보살님처럼 잠자듯 편히 갈 수도 있습니다.
우리 교주 불 세존이 안 계셨더라면 이 삼천대천세계 안의 그 많은 붓다님들이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 여러 정토세계의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저 수많은 정토보살과 현재의 항하사 수같이 많은 성중도 있을 수 없습니다.
중생은 삼악도를 헤매다가 기껏 그 중 소수만이 하늘세계에 오를 뿐이었을 것입니다.
세존께서 나유타하고도 아승기겁 전에 불과를 이루시고 지금까지 한 시도 쉼 없이 여러 국토에 다니시면서 중생을 교화해 오셨기에 오늘 날과 같은 장엄한 회상을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여러 본생담에 나오는 바와 같이 부처님께서 수많은 과거 생을 통해 중생을 위하여 보살도를 하신 거룩한 대승의 이타심, 그 은혜에 우린 고개 숙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처님은 2600여 년 전 오직 정법을 심어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일념으로 6년간의 설산 고행을 각오하고 다시 인도 땅에 응화신으로 오셨습니다.
그 당시 산 속의 호랑이, 사자, 전갈, 독사, 쉬파리, 사나운 모기떼들에 완전히 노출된 채로 1일 일마일미一麻一米로 연명하며 고행하신 그 은혜를 우린 한 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최초로 불과를 이루신 이후에도 사바세계에 수없이 많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때마다 눈물겨운 난행고행을 마다하지 않으셨답니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우리 문수보살님의 송頌처럼 “이 몸 백 천으로 나누어 가루되어 바친들, 우주만큼 큰 부처님의 은혜를 어찌 다 갚는다 하리까?”하는 감사의 노래가 절로 나오게 됩니다.
모름지기 우리 불자들은 천상천하에 오직 위대하신 불 세존의 은덕을 생각하면서 부처님의 성호를 봉창해주시기 바랍니다.
현지사 칭명염불 수행법
나는 이제 불교사상 가장 위대한 칭명염불을 권고하는 바입니다.
최초 불이시오, 삼계의 법왕, 우주의 주主이신 석가모니불을 봉창하는 칭명염불 공부법을 여러 불자들에게 소개합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세면을 한 뒤 공부방에 가서 성상 앞에서 3배합니다. ≪금강경≫을 1독하고 부처님 다라니 5번 정도 염송하고 반듯이 반가부좌해서 두 눈을 벽면의 한 점에 고정합니다. 물론 부처님께 귀의·참회·발원합니다. 낭랑하고 힘 있게 석가모니불을 봉창합니다.
현지궁 현지사의 칭명염불은, 정토종念佛宗의 염불과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르다는 것을 이해할 것입니다.
염불 공부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입으로는 석가모니불을 계속하면서 마음속으로는 금강반야바라밀을 동시에 부르도록 해야 합니다. 선정, 삼매에 들려면 망상이 쉬면서 일념상속一念相續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석가모니불을 칭명하는 것과 동시에 마음속에서 금강반야바라밀도 잘 부르게 될 때, 석굴암 부처님 미간에서 빛이 방사함을 관觀해봅니다. 자력의 선정력이 어느 수준 깊어졌을 때 부처님께서 여러분을 삼매 속으로 이끄십니다.
공부할 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세간적인 욕심을 포함하여 도를 통하겠다거나 아라한이 되고 보살이 되겠다는 욕심을 갖고 계율 없이 용맹정진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 마가 치고 들어옵니다. 한 번 빙의된 하늘 마天魔는 떼기 어렵습니다. 결국은 정신이 돕니다.
공부 중에 경계에 집착해서도 안 됩니다. 정신넋이 빠질만한 미인이나 시각적으로 볼만한 대상 경계에 집착하면 큰일입니다.
그것은 하늘 마의 유혹입니다. 한두 번 마음을 뺏기다가 급기야는 헤어 나올 수 없을 만큼 빠져버리게 됩니다. 마침내 비정상이 됩니다. 미칩니다.
인생에 네 가지 어려움人生四難得이 있다 합니다. 사람 몸 받기 어렵고, 바른 법 만나기 어려우며, 눈 밝은 스승 만나기 어렵고, 해탈하기 어렵다 합니다. 다행히도 여러분은 천 년, 만 년 아니 겁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하는 부처님 회상 만났으니 큰스님을 스승으로 삼고 지도받아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돌아가신 부모 조상님 천도해 드리는 진짜 효도를 해 드리고, 부처님께 공양도 가끔 올리면서 부지런히 선근 공덕을 쌓으며 열심히 염불 공부해 나간다면 업장이 소멸되어 이루지 못할 소원이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때그때 공부의 진척도 점검받기 바랍니다.
출처 /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2권 中
염불선이 되어야 삼매에 든다
경전 읽고 염불하는 나의 염불선을 좀더 자세히 소개하겠습니
다. 아미타불 염불공부를 중심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먼저 정토삼부경 중 하나를 선택해서 봉독한 후 벽을 향해 단정
히 반가부좌한 채로 두 눈을 벽의 한 점을 응시한 채 염불선을 시
작합니다. 결코 눈을 깜박거리지 마시고 그 한 점에 두 눈을 고정
해야 합니다. 기도 정근 중에 자꾸 마실마을 가는 놈이 있어서 공부
를 일념으로 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생각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공부의 요체입니다.
하나로 모으려면 차라리 확실하게 둘로 나눠주는 것이 좋습니
다. 망상 피우는 그 놈이 바로 '나'입니다. 그 놈으로 하여금 망상
하지 못하게, 마실마을가지 못 하게 과제를 하나 내주십시오.
내 앞에 아미타부처님께서 와 계신다 생각하고, 마음속에서 큰
소리로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다짐을 하도록 시키십시오. 또 부처
님 앞에서 지난 날 못된 짓 한 것을 경건하게 참회하게 하고 극락
왕생을 발원하도록 말을 시키십시오. 입으로는 '나무아미타불'
정근한 채 두 눈은 앞 벽의 한 점을 응시하고, 귀의 참회 발원을
잘 해내도록 합니다. 이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나 힘써 하면
됩니다.
자유자재로 마음속의 내가 독자적으로 말을 잘 하는 정도가 되
면 이제 생각을 하나로 모아 한 점 속을 뚫어 가십시오. 염불삼매
로 들러갑니다.
부처님의 신상광명을 관하면서, 입으로는 고성으로 힘차게 칭명
해 들어가는 염불공부도 좋습니다. 모든 붓다는 몸이 빛으로 돼 있
어서, 현신現身할 때에는 모든 빛을 거둔 상태지만 여전히 안팎이
드러난 청정광명을 방사하게 됩니다. 정수리, 미간과 모든 털구멍
에서 밝고 투명한 빛을 방사합니다. '석가모니불' 염불행자라면
석굴암의 불상을 마음속으로 그려가면서 방사하는 광명을 마음숙
으로 지어갑시다. 그런 부처님 상을 관하면서 칭명염불합시다. 세
존석가모니佛 염불하는 자는 반드시 <<금강경>>을 봉독한 후
염불하는 겁니다.
대승경전 전체의 3분의 1 정도에 해당하는 정토삼부경 <<대집
경>>등 200여 경전에서 염불을 권하고 있습니다. 특히 문수보살은
<<문수반야경>>, <<문수사리발원경>>등에서 극락왕생을 발원토록 하
셨고, 보현보살께서는 <<화엄경>> <입법계품> 마지막 부분에서 선
재동자 등에게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에 날 것을 권하셨습니다. 대
세지보살도 <<능엄경>>에서 염불하는 중생을 인도하여 삼마디을 얻
어 서방극락세계에 나게 하시고, 관음 지장보살께서도 물론 인
연중생을 극락정토로 인도하시는 일을 교화의 목표로 삼고 계십
니다.
인도의 마명 용수 무착 세친, 중국의 혜원 선도 천태
철양 영명, 신라의 원효 의상 서산 기화, 일본의 법연 신란
등 대선사들을 포함한 당대의 큰스님들도 염불수행을 최선의 공
부법으로 권장하고 고취시켰습니다. 물론 자기들 스스로도 정토
업염불공부에 매진한 분들이었습니다. 염불선은 보살지까지 뛰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수행법임을 다시 천명하는 바입니다.
출처/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부처님이 계시기에 염불하는 것
요즘은 소위 선종의 큰스님들이 염불하는 '이게 뭐꼬' 하는 화두
식 염불을 권하는 분들이 있는 모양이지만 나는 이것에 반대합니
다. 진여실상을 관하면서 염불하는 실상염불이나 부처님 상호의
공덕장엄을 관하면서 염불하는 관상염불은 좋습니다. 그러나 보
다 좋은 것은 고성으로 칭명하는 염불입니다. 부처님이 계시기 때
문에 염불을 권하는 것입니다.
아미타부처님의 염불왕생원제18원에 따라 그 본원本願을 믿고 일
념으로 염불하십시오. 법계에 부처님이 안 계시다면 칭명염불이
아무 소용이 없겠으나, 부처님은 진실로 계십니다. 그래서 칭명염
불을 하라고 권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관무량수경>>에서 "극락극에 태어나고자 하면 마
땅히 부모를 효양하고, 스승께 봉사하며, 10선도를 닦을 것이니
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정업淨業의 기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서방극락세계는 있고, 아미타부처님도
계시며 경전의 말씀도 옳습니다. 다만 아미타부처님은 삼천대천
세계의 수많은 붓다님들 중 다섯 분 어른인 오여래五如來이시고,
10겁 전이 아니라 무량겁 전에 성불하셨사는 것입니다.
아미타부처님께서는 특별히 당신의 이름을 일심으로 부르면 항
상 무량광명으로 삼천대천세계를 비추시다가 염불중생을 섭취하
는 본원이 있으십니다.
길 잃은 자식이 어머니를 찾듯 간절히 아미타불佛을 부르며 사
십시오. 반드시 좋은 일이 있습니다. 큰 액운도 비켜가고, 죽을 때
잠자듯 편히 갈 수 있으며 최소한 하늘천상에 날 수 있습니다. 진
력을 다하면 왕생도 못할 것이 없습니다. 먼저 <<아미타경經>>을
일독하시고 '아미타불佛 무량겁 멸죄진언' 을 108독 염송한 후, '나
무아미타불' 을 고성으로 힘차게 염불정근 하십시오. 지옥 축생
의 과보를 벗고자 하거나 윤회를 뛰어넘어 아라한이 나는 성중하
늘이나 극락세계에 왕생을 목표로 한다면 음계 10선계를 지
킴은 물론 큰 스승님을 지도자로 모시고 돌아가신 부모 조상님
께 효를 다 하면서 염불수행을 지성으로 하십시오. 그게 여러분이
사는 길입니다.
또한 부처님보신佛께 공양을 드리는 것도 중요하며, 무엇보다도
청정계율을 지키면서 염불하십시오, 물론 이타행 보살행을 해야
합니다. 영명연수 선사의 말처럼 온갖 선행을 두루 닦아 왕생극락
에 회향토록 하십시오.
그리고 삼매에 들 수 있도록 염불선에 매진해야 합니다. 한 순간
도 끊어짐 없이 염불이 되어야 진정한 염불선입니다. 염불삼매나
삼매는 실제로 들기가 무천 어렵습니다.
삼매에 든다면 여기서부터 성자의 반열에 오른 것입니다. 삼매
에 들수록, 더 깊은 삼매에 들어갈수록 청정이 더해지고 지혜가 증
장되며 삼매력이 생겨 죽음을 마음대로 하고 윤회에서 벗어납니
다. 그렇게 해서 대성자가 되어가고 무아 속 삼매까지 들게되면
극락정토까지 뛰어 오를 수 있습니다. 더욱 간절히 염불공부
하십시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염불수행- 부처님께서 일러주신 공부
나는 분명히 말합니다!
최초 불이시요, 남섬부주 교주이시고 삼천대천세계 총교주이시
며, '붓다 중의 붓다' 이신 불세존 석가모니불佛께서 일러주신 수
행법은 바로 염불선입니다.
그리고 시방의 모든 붓다들께서도 염불공부할 것을 간절히 권하
고 계십니다. 염불선이 가장 휼륭한 수행법이라는 증거입니다. 어
느 아라한이나 정토보살위의 성인들이 가르쳐 준 게 아니라, '붓
다 중 붓다' 이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일러주신 수행법이기에 염
불이 최고라는 것입니다. 위빠사나 관법선도 2500녅 넌 부처님께
서 가르쳐 주신 공부이기 때문에 휼륭한 수행법입니다.
염불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하고 부르는 것이요, '관
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해도 좋습니다. 의상대사는 관세음보살을
스승으로 삼아 정토왕생을 발원하고 '관음염불' 에 매진한 분이었
습니다. '지장보살, 지방보살' 해도 좋습니다. '석가모니불, 석가
모니불' 하면 더욱 좋습니다. 이것을 칭명稱名염불이라고 합니다.
일심불란으로 집지명호 할 수만 있다면 윤회를 벗어나 극락정토
까지도 왕생할 수 있다는 것을 믿고信, 그것을 간절히 바라고願, 그
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염불선行을 해 나가야 합니다.
<<관무량수경>> 에는 지성심, 심심深心, 회향발원심을 갖추면 극락
에 왕생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심심이란 믿는 마음이 철기
등 되어 널리 공덕을 닦거나 즐겁게 선법을 쌓는 것입니다. 널리
공덕을 지으면서 불호佛號를 염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왕생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말은 이렇듯 쉽지만 실제는 비범한 수행이 아니고서는
왕생하기 어렵습니다. <<아미타경經>> 에서 이르길, "1일에서 7일 일
심불란 칭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과연 보살이 아니면 왕생할 수 없습니다. 선방에서 공
부해 본 수행승이라면 생각이라는 것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
난다는 것을 잘 압니다. 아라한을 뛰어넘은 보살이 아니고는, 생각
이란 놈을 자기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참선이나 염불을 하다보면 생각은 곧잘 마실마음을 갑니다. 일념
一念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염불 일념을 1일에서
7일간 지속할 수 있으면, 즉 염불선이 되는 염불행자라면 설사 오
역죄를 범한 악인이라도 정토에 왕생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중
죄를 지은 자가 일념이 되기란 지극히 어렵습니다.
얼마 전 서울공대를 졸업해 일류 재벌기업의 간부로 있다가 명
예퇴직한 어느 불자님의 조상을 천도해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나무아미타불佛' 을 부르고 있는 가운데 아니타부처님께서 현
신햐셔서, 그 천도재에 참석했던 재자齋者의 큰 아드님을 가리키며
"이 애는 5하늘에서 왔느니라. 전생에 지성으로 염불공부를 했으
니, 잘 지도해주라" 고 필자에게 부촉하신 바 있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염불하고 살았거나, 또 임종 무렵 왕생경계가 나
타났다 해서 그 사람이 모두 정토에 왕생하는 것으로 보는 것은 속
단입니다.
부처님께서는 하늘 천상만 해도 54층여섯 하늘로 나눔이 있고 그 위
에 윤회를 벗어난 아라한 성자의 하늘 곧 성중하늘이 또 27층품이
있으며, 성중하늘 위가 도솔정토 도솔정토 위가 바로 보살이 가는
서방극락세계라고 하신 말씀을 상기하십시오.
우리 인생이 설사 대과없이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살았다 해도 6
하늘, 5하늘에 가기도 어려운데 염불공부만으로 극락에 쉽게 가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 시큰둥해 하는 불자들이 있습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염 불 선
진리는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강조하는 바, 삼란만상은
설법하고 있다고 어는 고승께서는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모든
곳곳에서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주의을 기
울이고 자각을 하고 인식을 해야 합니다. 러셀이 이
야기한대로 우리에게 인식되지 않는 존재는 없는 것과 다름없
습니다. 이러한 인식론은 양자역학의 이론과도 매칭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존재의 실상이란 우리의 인식 속에 들어올 때 가치
가 있는 것입니다.
진리라는 것도 몇 해 전 열반하신 숭산 스님이 말씀하
신 것처럼 우리가 사과를 깨물어 먹듯 맛을 보아야 합니다. 그
렇게 맛을 본적이 없는 진리란 단순한 궤변에 지나지 않습니
다. 큰스님의 칭명염불은 이 점에서 훌륭하다고 할 수 있습니
다. 실제로 현지사의 많은 신도님들이 부처님의 방광을 본
적이 있으며 머릿속에서 빛이 나오는 것을 느낀다고 합니다.
이는 칭명염불의 위력이 일반 수행자가 몇 년 동안 공부하는
양보다 많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경험
으로 증득될 때 마음의 개오와 의식의 정화 그리고 정신의 각
성이 일어나게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 내면의 진리를 발
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큰스님은 현성이라고 말씀하
셨습니다.
경건하고 독실한 불제자들이 각골쇄신해 온 큰스님의 삶이
여과 없이 스며들어 있는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를 여러 번
정독했다면 큰스님께서 얼마나 뼈저린 삶과 진지하고 심오한
마음으로 구도 여정을 펼쳐 오셨는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큰스님의 구도 여정을 완숙한 경지로 승화시킬 수 있었
던 것이 바로 칭명염불에 의한 염불선입니다.
염불은 만트라(진언)와 같은 효과가 있어서 자신의 마음을 보
호해 줍니다. 또한 염불을 통해서 발성하는 말은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석가모니불이라는 발성 자체에 강력한 힘이
있기 대문에 오래할 수록 내면의 힘이 강해진다고 할 수 있습
니다. 사양에서는 로고스라고 하여 신의 말씀을 이야기합니다.
바로 염불도 석가모니부처님의 마음과 링크시키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을 많이 염송하게 되면 자신의
내면체에 석가모니부처님과 같은 파장과 에너지를 얻게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칭몀염불을 많이 한 어는 수행자는 자신의 내
면에 부처님의 황금빛 화신이 자리잡고 있음을 인식한다고 합
니다.
재삼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점은 바로 염불선이 큰스님의
법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큰
스님께서 염불선, 특히 칭명염불을 강조하신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부처님게서 실재하신 다는 것입니다. 삼천대천세계에 수
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붓다님들이 여여히 계시기에 우리는
그 붓다님들을 믿고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붓다님들을 진심
으로 간절하게 찾을 때 우리는 붓다님들의 가피을 입을 수 있
고 궁극으로는 붓다가 되는 길에 들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한 특히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붓다 중의 붓다이시기에 그 분
의 능력은 실로 창조주격이십니다. 바다를 건널 때 수영으로
건너는 것 보다 배를 타고 건너는, 즉 타력에 의한다면 훨씬
빠르게 수행의 목적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염불선으로 희귀함을 매우 중요하게 평가하셨
습니다. 한편 저는 여러 선지시을 만나고 다양한 책들을 접하
면서 모종의 정합적 이해를 얻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혼돈이 있
었습니다. 그러한 혼돈은 바로 방황을 희미하여 급기야 정신적
공황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많은 구도자들이 중도에 포기하고
폐인이 되다시피 하는 것은 바로 확고한 방향을 제시할 뚜렷한
경지에 이른 선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큰스님께서는
부처님의 가피를 받아 불경을 통해서 염불선을 수행해야 할 당
위성을 얻으셨고 결국 수행 정진에 매진하시고 각고의 노력과
수많은 인고의 세월을 이겨내시고 불과를 얻으시게 되었습니다.
저 또한 이는 한국 불교사에 일대 획을 긋는 그리고 불교계의
잃어버린 얼을 되살리는 대업을 이루신 일이라 생각합니다. 큰
스님이 말씀하신 바대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처럼 말입니다.
여하튼 큰스님은 한국 불교계에 커다란 사자후를 남기셨습니
다. 즉, 염불선을 수행함으로써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음을
사자후하시는 동시에 실제로 몸소 불과를 증득하셨습니다. 일체
을 의심하면 모든 법이 다 허무해 보이고 실없어 보입니다. 그
러므로 너무 의심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믿음이 수행에
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서도
큰스님게서는 화엄경의 주옥같은 구절을 인용하시면서 '믿음이
모든 공덕을 짓는 어머니'라고 당부 하셨습니다. "불전의 부처
님 말씀이나 공부가 깊은 큰스님의 법문 말씀을 믿어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은 도를 이루는 근원이 됩니다. 지옥에 갈
종자는 진짜 큰스님의 말씀도 믿질 않습니다. 삼악도의 종자는
의심만합니다."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불제자에게 신심을 내
야함을 당부하셨습니다. 믿음을 수행터로 삼아 극락 왕생과 붓
다증위를 위해 전심전력하여 염불선, 즉 칭명염불에 정진하면
우리 불제자들 모두가 큰스님의 말씀처럼 석가모니부처님의 위
신력과 가피를 받아 부단한 향상을 이룰 수 있다고 확신하는
바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
염불선이야말로 수행의 으뜸
이런 용기는 <<화엄경>> <<법화경>> <<율장>>의 가르침대로
무엇보다 계율을 존중하며, 경전을 읽고 염불을 하는 수행이
부처가 될 수 있는 길임을 확신했기 때문일 것이다. 1970년대
시절의 그 일이 놀랍다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인간 스스로의 수
행인 자력에 의존하는 것에 일정 부분 한게를 긋고 있다
는 점이다. 부처님의 가피라고 하는 타력에 의존하기 시작
한 것이다. 다음 그의 고백을 유심히 음미하기 바란다.
"덕산의 30방을 흔들며, 상에 집착 없는 언어로 공을 읊
고 마치 우주의 주인이 다 된 양 착각 하며 오만을 떨었던 지난
날을 생각하면 그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30대 중반 서울에
올라와 총무원 상임포교사로 법상에 앉은 지 2~3년이 못돼 나
의 공부에 회의를 품기 시작했습니다."(25쪽)
바로 이 지점에서 고유의 불교 세계관이 본격적으로 펼쳐진
다. 그의 단언에 의하면 출가자가 자력의 수행으로 오를 수 있
는 최고의 경지는 아라한까지다. 즉 곧바로 성불한다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인 셈이다. 견성 그 이후부터는 철두철미 부처
님의 가피가 필요하고, 다음 생애에 몸을 받은 아라한의 공덕
이 다시 쌓여 그 결과로 보살의 반열에 오른다.
"문수보살, 보현보살 그리고 관음보살께서 뿌리는 부처님의
광명을 온 몸의 털구멍으로 받아들이는 경계를 종종 만나는 위
력"이 바로 보살의 경계다.
이때 모든 보살이 아닌 최상수 보살 정도가 되면 부처가 뿌
리는 무량광이라는 빛덩어리를 보게 된다. 다음이 부처님 친견
의 경지다. 즉 '불과를 증한 대성자'의 단계에 바로 이때 들어
가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자신의 불신을 절대계의 부처
님 나라에 둔, 즉 법신 보신 화신의 3신을 완벽하게 구족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높디 높은 까마득한 위계의 관문 때문에 '견
성 즉 성불'이라는 습관화된 말은 턱없는 노릇인 것이다.
"무량광을 보기 이전에 부처와 보살이 있다 없다고 말하는
것은 한낱 범부가 지껄이는 망언일 뿐입니다."는 단언(35쪽)은
여기에서 나온다. 만현 스님은 자신이 구축한 삼신 이론과 부
처 성불 단계론이 11세기 티벳의 전설적인 성자 미라래빠보다
구체적이며, <<반야경>> 등에서 설명된 법신 이론 중심의 부처
설명보다 정교한 것이라고 밝히지만, 지금 이 원고는 그걸 검
증할 수 있는 자리는 안 된다.
용궁에 들어가 <<화엄경>>을 가져왔다는 인도의 용수와 달리
만현 스님 자신은 이 책의 도처에서 부처님을 친견했다고 말하
지만, 그것 역시 제3자가 쉽게 용훼할 수 있는 일이 못된다.
독자의 입장에서, 그리고 불교에 관심 있는 이의 입장에서
보건대 만현 스님의 이 '신 불교론'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불교
가 훨씬 불교다워진다는 점이다. 장려한 체계의 구축과 함께
그가 강조하는 신행 활동의 3박자인 염불 - 계율 - 효도는 출
가자와 불자들을 위한 덕목으로 돌연 떠오르게 된다.
장려한 체계라 함은 수행의 단계와 관문만이 아니라 올바른
생사관을 위해 필수인 대목이다. 이를테면 만현 스님은 부처와
보살이 보신으로 존재하는 것은 물론, 지옥과 극락 그리고 윤
회 역시 분명히 존재한다고 설파한다. 마음자리를 깨친 정도의
수행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지장보살본원경>>에 설명되는 끔
찍한 무간지옥은 실제로 있다. 따라서 출가하여 수행하는 이가
설혹 선근공덕이 있어 견성했다 해도 계율을 지키지 않을 경우
특히 음행 무간지옥에 떨어진다고 지적하고 있다.
비유컨대 "수행자가 여자를 가까이 하는 행위란 마치 깨끗한
물 한 컵에 똥물 한 방울이 떨어져 그 물을 마실 수 없게 되
는 것"과 같은 것이니 무소유와 청정을 지향할 것을 권한다.
이 점 요즘 흔들리는 모습의 불교계에 중대한 암시가 될 것이
고, 지옥과 극락 그리고 윤회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대망언을
했던 동양철학자 도올 김용옥 역시 가슴 철렁할 노릇이다. 책
에서 만현 스님은 부처 말씀을 인용하며 "정법을 비방하는 구
업은 그 어떤 죄업보다 지중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만현 스님 설법에서 중요한 점은 따로 있다. 삼신을
두루 갖춘 부처의 위신력에 대한 강조다. 훌륭한 상모와 지혜
그리고 자비와 신통을 두루 갖춘 부처는 온 세상에 자재한 존
재로 성큼 부각된다. 만현 스님이 화두 참구에 앞서 부처님의
이름을 부르는 염불 공부를 "가장 훌륭한 수행법"(208쪽)으로 권
장하는 것 역시 자연스럽다.
"붓다 중의 붓다께서 일러주신 수행법은 바로 염불선입니다.
위빠사나선도 2500년 부처님이 가르쳐주신 공부이기 때문에 훌
륭한 수행법입니다. 염불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하고
부르는 것이요. "지장보살, 지장보살'해도 좋습니다.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하면 더욱 좋습니다. 이것을 칭명염불이라고 합
니다."(208쪽)
출처 /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
수승한 공덕의 염불 수행법
염불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부처님의 상호, 즉
그 모습을 마음으로 관찰 관상하면서 그 공덕을 기리는 일"
이라고 한다.
염불과 비교해서 다라니가 있는데 다라니의 사전적 의미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의 정요로서, 신비적 힘을 가진 것으로
믿어지는 주문을 뜻한다. 원어명은 dharanl라고 한다. 또한 백과
사전에 의한 설명으로는 "비교적 긴 장구로 되어 있는 주문으로
총지 능지 능차라 번역하며 불법을 마음 속에 간
직하여 잊지 않게 하는 힘이다."
다라니들 중에서 좀 더 짧은 다라니인 진언, 즉 만트라에 대
해 사전적 의미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깨달음이
나 서원을 나타내는 말로서, 불교에서 진실하여 거짓이 없는 신주
주 신주 밀주 밀언 등으로도 번역한다." 본 단원에서는 염불수행과
관련 제반 내용을 집중 조망할 것이다.
먼저, 석가모니불 칭명염불 그 효시, 즉 염불 수행의 원류를 교
학적 근거에 기초하여 논구하고자 한다.
첫째, <<잡아함경>>에 "바사닉왕이 부처님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나
무여래응정등각' 하니......"라고 되어있으며 둘째, <<중일아함경>>에는
"부처님의 명호, 여래 지진등정각 선서 세간해 ..... 등 여러 가지 명
호를 부르면...., 이 공덕에 의해 두려움이 소멸되고, 신통을 얻고....
죽으면 천상에 난다."라고 되어 있다.
셋째, <<중일아함경>> <억념품>에는 "1. 거닐 때도, 2. 머무를 때도,
3. 앉아 있을 때도, 4. 누워 있을 때도, 5. 항상 어디서나 부처님을 억
념하라."고 되어있으며 넷째, <<대방편보은경>>에는 "석존의 제자 한
사람이 '나무석가모니불'을 부르게 하자, 5백 명의 도둑 신체의 고통이
제거됐다."라고 되어 있다.
다섯째로 <<여환삼마지무량인법문경>>에는 "'나무석가모니불' 부르는
것에 의해, 선근이 증장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성과가 있다"고 하
였다. 그리고 여섯째, 부처님은 <<증일아함경>>에서, 모든 비구들에게
수행의 한 법을 염불이라고 설했다. 즉,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이
르시기를 마땅히 한 법을 수행하고, 마땅히 한 법을 널리 펴라, 큰 과
보를 이루며, 모든 선이 널리 이르게 되고, 감로의 맛을 얻어 무위
처에 이르며, 문득 신통을 이루어, 모든 어지러운 생각을 제거하
여 아라한과를 얻어, 열반에 이른다. 어떤 것을 한 법이라고 하
는가? 이른바 염불이다."고 하셨다.
이는 염불하는 공덕에 의해서 무위처에 이르고 신통을 얻어
열반에 들어 갈 수 있다고 한 것은 불교의 수행 중에서도 염불이 중요
함을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일곱째, <<관무량수경>>에서는 "부처
님께서 위제희 부인에게 16관을 .........."이라고 전한다.
한편, 정토종의 염불 수행인 나무아니타불 칭명염불에 대해서 설명
하자면 다음과 같다. 전통적인 정토종은, 서방 극락정토가 분명하게 존
제하고 염불의 목적이 왕생 극락정토에 있음을 주장한다.
아미타불이나 서방정토 극락세계는 대승경전 전체의 1/4 정도에 해
당하는 방대한 영역에 걸쳐서 등장하고 있다. 정토사상의 발생과 <<정
토삼부경>>의 성립 연대는 불입멸 후 대승불교가 발생할 무렵
어느 대승인 학장에 의해 이루어졌으리라.
그러나 신앙의 근원은 석가모니불 제세시에서도 찾아 볼 수 있으며,
정토신앙은 인도의용수(불멸 후 6~7백년 경), 세친 보살에 의해
서 그 골격을 잡았고, 중국으로 전래되어 크게 발전하였다.
중국의 진나라 때 혜원(육경에 통달, 노장에도 밝았다), 불타발타라
후위의 담란, 수의 지자 대사, 당의 선도 화상, 도작 스님에 의해
서 염불 수행은 크게 진작되었다.
특히 도작 스님은 하루에 칠만 번씩 염불하였다. 규봉 종밀 스님은
염불법을 칭명염불, 관상(觀想)염불, 관상(觀像)염불, 실상염불로
구분하였다.
염불 수행이 선종과 결합하여 염불선이 대두되었는데 염
불선의 효시를 추적해 보면 다음과 같다. 선종에서 수용하는 정토
는 내생이 아닌 지금 현세에서 도달한다는 것이고, 타력에 의한 성취
가 아니라 자력에 의한 자각이란 점을 들고 있다.
그래서 정토란 곧 자기 마음의 청정을 의미한다. 이러한 유심 정토
의 사상은, 정토의 개념을 선에서 수용하여 선정일여의 염불선을 표현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초기 선종에서 정토를 일심에서 통함, 선정일여의 염불선을 언급한
것은 사조 도신스님의 <<밉도안심요방편법문>>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고려말 나옹 혜근 선사(태고 보우와 더불어 고려말의
선품을 진작한 대선사)의 염불선을 음미해 본다.
아미타불 어느 곳에 있는가
마음에 붙들고서 간절히 잊지 않는다면
염불하는 일념은 일념마저 끊어진 무념처에 도달하여
육근문에 항상 자마금색 광명을 놓으리.
나옹 스님은 자성미타인 유심 정토를 설하고 있다.
또한 참구염불선이 있는데 이는 염불을 참구한다. 즉 지금 염불하는
자가 누구인가를 참구하는 것이다. 당대에는 서방 정토를 유심 정토로
해석해서 선과 정토가 이념적으로 통합되었고, 송대에는 법안 문익, 영
명 연수 스님이 염불선을 주창했으며, 원대에는 남송시대에 발전
한 간화선의 영향을 받아 염불과 화두 공안이 방법적으로 융합되어 임
제종의 몽산 덕이, 중본 명본 스님 등이 있었다.
출처/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 120~123
칭명염불 수행법의 이론적 토대 - 성명쌍수
수행자가 칭명염불 수행법에 대한 든든한 이론적 토대를 얻기 위해
서는 성명쌍수에 대해서 이해하면 좋다. 흔히 동양 철학과 동양 수행
을 하는 수행자라면 고대 성현들로 부터 전승된 성명쌍수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것이다.
성명쌍수란 성(성품)과 명(생명, 삶)을 함께 공부하라는 것을 학
인에게 당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성이란 성품을 말하며, 성품은
마음의 자성을 말한다. 이는 또한 불성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명이라는 것은 우리의 목숨, 즉 생명을 말하며, 더 포괄적으로는 삶
이란 점에서 성품을 공부하는 것이 명을 공부하는 것보다 중요하게
인식될 수 있다. 그 이유는 성품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우주적으
로 영원하게 존재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반면 명으로서의 삶은
시간과 공간 속에 내재한 법리와 인연법 그리고 연기사상
을 통찰 및 철견하는 것이다.
물론 반드시 성으로서의 자성을 닦는 것이 명으로서의 삶
을 이해하는 것보다 우월하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그래서 성과
명은 함께 닦아야 한다는 성명쌍수를 성현들은 이야기하는 것이다.
사실, 힌두의 철학 사유에서도 본질 또는 존재를 공부하는 것과 인
연 또는 관계를 공부하는 것 두 가지를 나눈다. 어느 것이 우선이고
어는 것이 차선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 둘을
통해서 내면의 자성 세계로 회통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될 때 내면과 외면은 뻥 뚫려 내외명철이 된다. 이 내외명철
이 확연히 인식되어 자신의 인식 구조와 존재론적 세계가 하나가 될
때 내외의 벽은 허물어지고 완전히 허공과 같이 충만한 공을 철견
하게 된다.
인도의 쿤달리니 요가에서도 쉬바로서의 정적인 성품 의식과 샥티로
서의 동적인 육체 에너지를 이야기한다. 쉬바는 성에 해당하며 샥
티는 명에 해당한다. 성은 관조적 힘이자, 주시적 힘이자, 관찰
자로서의 힘이다. 명은 행위적 힘이자 삶의 영위자로서의 힘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불가의 팔정도에서 정견, 정사유 등은 쉬바 의식
을 도야하는 바른 길에 해당하며 정업, 정정진 등은 샥티 힘을 도야하
는 바른 길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성은 우리의 마음을 의미한다면 명은 우리의 삶을 형성하는
신 구 의 작용을 의미한다. 성은 체요 명은 용인 것이
다. 21세기 과학 문명의 총아인 컴퓨터 시스템을 비유로 들면 프로그
램들 하나하나의 실체가 바로 성이요 그 프로그램의 행위 또는
작동이 바로 명인 것이다.
체와 용이 분리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처럼 성명도 불
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마음에는 안과 밖의 경계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염불선이나 위빠사나선이나 모두가 일차적으로 성을 도야하
는데 있다.
물론 큰스님의 칭명염불 수행은 성을 도야하는 것을 넘어서 부처
님의 가피와 위신력으로 불신을 얻는데 있다. 큰스님의 법 세계에
서는 성이라는 것은 작은 불씨라면 불신은 태양으로 비유할 수
있다.
출처/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
견성오도見性梧道 전체공개
의심하는 이 놈은 무엇인고?
화광반조 10여 년만인 7월 어느 날, 생각을 놓아도 저절로 화두
가 들리길 여러 날 동안 이어졌습니다.
답답함이 부풀어 올라 풍선같이 극치를 이룰 즈음, 큰 소리로
금강경을 봉독하는데, '여래는 어디로부터 온 바도 없고, 또한
가는 데도 없다'는 대목에 이르러 갑자기 온몸이 폭발하듯 하
면서 세상이 확 뒤집혔습니다.
주主와 객客의 벽이 무너져 버리고, 툭 터져 허공같이 비었습니
다. 적조寂照요, 만고萬古의 광명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마음은 실체가 없어서 가고 옴이 없고 여여부동如如不
動하다는 것을 확실히 보았습니다.
나는 저절로 일어나, 실로 법열法悅이 어떤 것인가를 실감하면서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다겁생多劫生의 업業의 나무 무성하더라
팔만 사천 가지마다 줄기마다
망상 꽃이 피었더라.
내 이것을
송두리째 뽑아 버렸더니
하늘도 없고 땅도 없더라.
거짓몸뚱이 산산이 부서져
가루되어 없는데
착着할 게 어디 있는가.
마음 마음
본래부터 없는 것
이름하여 마음이라 하네
이것이 벌써 30여 년 전의 일입니다. 마음의 본래면목本來面目,
존재의 진상, 우주의 체성體性을 확실히 철견할 수 있었던 것은 오
매불망 간절히 의단을 쌓아온 나의 정성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
합니다.
염불선으로의 회귀
돌계집石女의 겁외가劫外歌와 동산수상행東山水上行을 말하고 '덕
산德山' 의 30방을 흔들며, 상相에 집착 없는 언어로 공空을 읊고
마치 우주의 주인이 다된 양 착각하여 오만을 떨었던 지난날을 생
각하면 그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30대 중반 서울에 올라와 상임포교사로서 불법을 포교하기 위해
법상에 앉은 지 채 2~3년도 못 되어 나의 공부禪수행 保任에 회의
를 품기 시작했습니다.
히말라야 초인超人들, 힌두교 성자요기 Ylgi들 및 티베트 밀교의
성자 미라래빠의 수행담을 접하고 법화경, 화엄경 등 대승경
전을 정독하면서 나의 선수행을 비교 점검해본 결과 중대한 발
견을 하게되었습니다.
자성을 깨치는 것은 공부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견성見性이 곧
성불成佛' 이라는 산가의 기치旗幟는 분명코 잘못됐으며, 설사 견성
하고 나서 보림을 마친다 하더라도 곧 붓다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부처님이 거룩하시고 희유하시며 거의 절
대자라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또한 인간 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결국 아라한에 그칠 뿐
이라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아라한으로서는 우주와의 계합이라는
것이 결코 불가능하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실존철학의 소위 존대sein 불교의 법성法性, 선禪의 자성自性에 해당가
드러나서 머무는 건 순간일 뿐입니다. 영원히 우주와 계합을 이루
는 성불만이 완벽한 생사해탈을 보장합니다.
소위 견성에 이름으로써 저 일신교에서 말하는 '하나님' 이 우상
일 뿐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말하자면, '절대적인 창조주란 없
다!' 고 선언하는 단계가 바로 견성의 경지였습니다.
이 경지에 이르면서 이 몸뚱이란 4대지수화풍로 이루어진 옷이나
집과 같은 '가짜 나假我' 라는 것과, 나我라는 것도 오온五蘊-色受想行
識으로 이루어진 인연소생의 가아假我이며 이 세상은 꿈이나 그림
자 또는 이슬과 같은 무상無常한 존재라는 사실도 발견하였습
니다.
분별하고 사량하는 것은 생각일 뿐, 마음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
습니다. 이것만 해도 크나큰 깨침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천지天地 이전, 곧 부처 나기 이전의 적멸寂滅과 우주가 생
기기 이전의 면목을 깨친 이라면 당연히 불교의 연기법만이 진리
라는 것을 사자후할 것입니다.
내가 갑자기 염불선 공부로 용감하게 회귀할 수 있었던 것은 화
엄경 입법계품, 법화경 본문 팔품에서 가르친 대로 무엇보다
도 계율을 존중하며, 경전을 읽고 염불하는 수행만이 부처가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정토삼부경에서 수행인이 생사윤회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지름길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경전 읽고 염불하는 것만이
우리가 보다 잘 살수 있는 오직 하나의 대안代案임을 확실히 보았
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나는 인도의 용수, 마명보살, 중국의 혜원 조사, 진晋의
각현, 담란, 천태지의, 선도, 도작, 영명연수 선사, 한국의 의상, 원
효스님, 서산 선사의 염불선을 크게 주목하면서 우주생명의 실상
實相을 관觀하며 보림을 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미모의 젊은 여인을 보고 마음이 설레는 자신을 발견
했습니다.
그 순간 '진여실상이라는 용광로에 무명번뇌나 억겁의 죄장 따
위가 모조리 녹아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고 주장했던 지난날의 나
의 법문을 스스로 반추하고 의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혼자 산행山行을 하던 중에 쉬어갈 만한
곳에서 선정禪定에 들었습니다. 그 선정 중에 문둥병을 심하게 앓
고 있는 남자가 들어와 한 이불 속에서 자고, 밥지어 먹고 지냈을
때, 정말 선정에 들었으면서도 알고보니 천인天人의 선정이었다
중생심의로 돌아가 역겹고 싫은 생각이 줄곧 따라붙고 있었습니다.
한 태백산의 토굴에서 보림하던 어는 여름날, 커다란 구렁이
가 내 곁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너무도 긴장하여 진땀을
흘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습니다.
이런 경험들을 하면서 본래면목의 실상, 진여자성眞如自性을 철
견하고 보림한다고 해서 붓다가 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오백생 이전에 수행하실 때에 '가리왕' 이라는 포
악한 악인을 만나 난자당해 돌아가셨을 때에도 그에게 성내고 원
망하는 마음이 조금도 일어나지 아니하셨는데, 도대체 나는 어디
쯤 와 있단 말인고? 결국 인간 능력의 한계라는 명제와 타력他力, 곧
'부처님의 가피' 라는 주제를 두고 차츰 골똘히 생각하였습니다.
그 당시에 나는 깊은 선정에 들어서 그것을 진짜 삼매라고 오해
한 나머지 불 보살을 뵙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친견은 고사하고
지옥 천상세계도 관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윤회를 벗어난 해탈
오계解脫梧界, 곧 도솔정토나 서방극락세계도 끝내 관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선승禪僧이었음에도, 이 모두가 실제로 존재할 것이
라고 믿었기 때문에 염불선으로 과감히 방향전환하였으나 특히
1970년대 당시의 한국불교에서 선수행이 강고되다 보니, 염불하
는 행자들을 무조건 외도로 몰아 배척하였기 때문에 겉으로 내색
하지 못하고 침묵 속에 정토업淨土業을 쌓았습니다.
또 하나 내가 염불선으로 방향전환을 결심한 데는, 선재동자와
같은 나의 과거 행각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마친 화엄경 입법계품의 선재동자처럼 나이와 성별, 출가
재가를 가리지 않고, 이단異端-제2의 예수라 자칭하는 어느 목사님, 부처라
고 떠받드는 어는 재가보살 그리고 전라도 토굴의 어느 도인 등을 이해하고 오
랜 세월 교유함으로써 선禪의 참구參究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절대세계의 붓다들_칭명염불을 권한다!
불자 여러분께서는 실제로 붓다들이 계시다는 사실을 믿으시고,
또한 그 불보살님들이 당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구원을 요청하면
그 염불 수행자들을 친자식같이 생각하여 이들을 건지기 위해 가
능한 온갖 자비 방편을 쓴다는 사실을 유념하셔서 칭명염불을 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불가능이 없으리만큼 우주적인 무한 능력을 지니신 부처님' 을
부르지 않는 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 크신 힘을 지니신 부처
님을 외면하고 자력에만 의존하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다시 한 번 염불을 권합니다. 부처님의 위신력과 가피을 받는다
면 우린 삼악도에 떨어질 염려가 없습니다. 큰 죄를 지어서 지옥에
가고, 짐승 몸을 받아 날 수밖에 없다 해도 큰 스승을 만나 염불공
부를 잘 한다면 삼계까지 벗어나는 대장부가 될 수 있습니다.
학승들이 인간의 마음 속에서 법, 보, 화 삼신을 말하는 것
은 하나밖에 모르는 이설이 분명하다고 다시 단언합니다.
관념적이고 사변적인 철학공부는 종교 수행인에게 이롭
지 않습니다. 실천 수행해서 깨닫고, 나아가 증득하는 것만이 필요
한 것입니다. 나는 다만 직접 깨달은 내면세계의 '다르마' 소식
만을 전하렵니다. 내가 들추어낸 이 엄청난 새로운 삼신설의 법문
지각변동이라거나 핵폭발, 경천동지 혹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라는
수사를 뛰어넘는을 당당히 사자후하는 것입니다. 묻혀진 아니,
죽어가는 위대 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살려내어 이 땅에 널리 펴고
싶을 뿐입니다.
남모르게 공부를 이루고자 쏟아낸 피눈물이 샘을 만들고도 남을
정도였답니다.
붓다들의 현신했을 때의 모습 보신 불신은 해탈신이기에 그렇겠
지만 보살의 그것과도 하늘 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납니다. 붓다의
음성 역시 그러합니다. 일거수일투족이 자비롭습니다.
보신의 미간, 눈, 입, 손바닥 등 열군데서 '빛' 을 방사할 때에
는 녹색이나 무색 광명같이 단색을 방광할 때도 있고, 백종 오색광
명을 놓을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억종광명을 방사할
때도 있습니다.
붓다께서 방광하는 빛은 마왕 파순이나 하늘 마는 물론 귀신들
도 모두 무서워하는 대상입니다. 탐진치 삼독이 녹아버린 성자의
마음 빛이기에 악심이나 사악한 기를 물리치고 녹이는 불가사의
한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무량광은 영롱하고 청정하며, 내
외명철합니다.
모든 붓다들이 무량광으로 이루어졌기에, 빛 그 자체이시기에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붓다끼리는 서로 항상 상속되어 있고 그래
서 한 티끌 한 생각이 똑같습니다. 말 그대로 삼세여래일체동
입니다.
그러나 각각 개성이 있고 얼굴, 키, 몸무게도 다르십니다. 그 이
유는 불과를 이룬 후 열반에 들 때, 그 붓다의 거짓 몸속의 네 개
영체가 빛덩어리가 되어 자신의 불신과 계합하게 되는데, 나름대
로의 성격차이가 그대로 불신 속으로 들어가 섞여져 반영되기 때
문입니다.
붓다가 세 몸을 지니신다니 이 어찌 희유하다 아니 하겠습니까!
이것이 정설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한 생각을 놓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염불선
이렇게 한 생각을 놓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큰스님 말씀대로
‘석가모니불’을 찾는 것이다. 염불선이 강력한 이유는 무성하고도 불과 같이치성(熾盛)하게 일어나는 생각들을 ‘석가모니불’명호를 사용해서 녹일 수 있다는데 있다. 고도의 집중 상태에 들어가게 되면 큰스님께서 비유하신 바대로 용광로라는 삼매에 잡념들이 녹아버린다. 집중이 제대로 안 되면 불처럼 치성하게 일어나는 중생심에게 ‘금강반야바라밀’을 외우게 하는 것이다.중생심이 발동하려고 해도 ‘금강반야바라밀’을 중생심에게 먹이면 석가모니불을 보다 뚜렷하게 할 수 있다.
한편 스토아학파(금욕주의학파)의 현자 에픽테토스는 “인간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은 일어나는 일 자체가 아니라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생각이다”라고 하였다. 매우 정확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조용히 생각을 지켜봄으로써 생각이 힘을 잃고 사라지도록 하는 위빠사나선이나 염불선을 통해서 일념삼매에 들어가는 방법 그리고 화두를 들어 오직 화두에만 전심전력하는 화두선 모두가 선 수행법이다.
불교는 여하튼 선을 모르면 안 된다. 선(禪)의 글자 뜻은 하나(單)를 보는 것이다. 그 하나라는 것은 허공처럼 충만하고 충일한 마음이다. 중생심과 대비되는 청정심이 그것이다. 생각을 지켜보는 마음을 볼 수 있다면 그 주시하는 마음을 강화하여 청정심을 이룰 수 있다.
이 청정심을 얻는 것이 견성(見性)이다. 큰스님의 염불선은 위빠사나선이나 화두보다 안정적이고 부작용이 없다. 그러므로 구도자는 항상 큰스님 말씀처럼 ‘행주좌와 어묵동정’ 어느 장소 어느 순간이나, 즉 일체 처, 일체 시에 석가모니불을 억념해야 할 것이다.
사실, 잡념과 망상이 있기 때문에 불교 공부가 어렵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잡념과 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된 생각들, 즉 망상이 없다면 공부감이 없는 것이다. 공부감이 없다면 배움도 없다. 사바세계는 인고의 땅으로서 우리의 본성을 깨우치고 세상의 이치와 우중의 섭리를 배우기 위해 태어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도자는 비록 견성이라는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이 상당한 인고의 세월을 요구한다고 해도 용기를 갖고 정진해야 할 것이다. 공자님 말씀대로 공부를 좋아하는 것보다 즐기는 것이 더 훌륭하다는 점을 상기하고 이 불교 공부가 힘들지만 이왕이면 즐겨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적은 내면에 있다’라는 가장 기초적인 마인드를 잘 숙지하고 항상 내면을 성찰하고 염불선을 생활화하면서 지내야 할 것이다. 물론 내면에서 일어나는 중생심을 너무 과소평가하지는 말아야 하며 항상 진지한 마음과 긍정적 마인드로 염불선에 임해야 할 것이다.
달마 조사는 견성, 즉 깨달음을 위해서 이입사행을 역설했는데 이입사행이란 이입(二入)과 사행(四行)을 합한 말이다. 이입(二入)은 이입(理入)과 행입(行入)을 말하며, 사행은 행입의 내용으로 보원행(報怨行)·수연행(隨緣行)·무소구행(無所求行)·칭법행(稱法行)을 말한다.
여기서 이입(理入)은 경전에 의해 그 근본 정신을 파악하고 일체 중생의 마음이 진성(眞性)임을 알아서 도리와 하나가 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즉 이입사행은 수행의 근본을 설명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행입에 대해서만 거론한다.
행입 중 보원행은 현세의 원망과 증오가 모두 과거에 자신이 지은 업(業)의 대가이므로 인간 본래의 도를 닦는 데에만 전념하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보원행이 바로 전생과 현생에 지은 타인에 대한 원망을 갚는 수행이다. 이것이 수행자에게 가장 큰 문제이며 여기서 수행의 시작이 이루어진다. 남이 나를 원망하건 내가 남을 원망하건 그 원망심을 없애는 것이 보원행(報怨行)이다.
서양에서는 용서(forgiveness)로서 알려져 있다. 타인을 용서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죄업을 사할 수 없다. 즉 보원행을 행하지 않고서는 자신이 전생부터 지어온 악업과 빚을 청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원결을 소멸시키고 원망을 제거해가는 행(行)을 수도(修道)로 삼아야 한다.
수연행은 순리에 따라 도에 합치되도록 하라는 말, 즉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인연을 잘 살펴 삶을 살아가라는 뜻이며 인연에 거부감을 갖거나 지나치게 인연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이다. 한편 무소구행은 구하는 것을 없애서 애착과 집착·탐욕을 일으키지 말라는 말이다. 또 칭법행이란 모든 불법을 항상 공경하고 찬탄하라는 가르침이다. <<법화경>>에도 부처님의 법을 찬탄하는 공덕은 그 어떤 공덕보다도 수승하다고 전하고 있다.
스승에 대한 지극한 공경과 감사 없이는 수행은 불가능하다. 공경과 감사가 무르익을 때 스승의 가르침을 찬탄하고 믿을 수 있으며 그렇게 됨으로써 석가모니부처님에 대한 귀의, 귀명하는 마음이 더욱 강화된다. 사실 죄업이라는 것이 알 수 없는 먼 과거부터 부처님의 가르침을 외면하고 무시하고 심지어 멸시한 죄업이 아닌가 생각한다.
무명(無明)이라고 하여 가장 원천적인 연기(緣起)의 시작은 부처님의 12연기의 처음이자 고통의 근원이다. 이 무명(無明)은 다른 말로 말하면 ‘어두움’이다. 어두움은 공포, 두려움, 불안 등을 말하며 이러한 두려움은 결국 부처님에 대한 믿음의 결여에 있다고 알고 있다.
무시 이래의 헤아릴 수 없는 과거시절부터 불과를 이루지 못한 우리 모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기도 했지만 진실로 받아들여 목숨을 걸고 매진하고 정진하여 완전한 죄업을 다 사하지는 못했다고 본다. 가장 큰 죄는 바로 부처님을 믿지 않고 세속적 욕락(慾樂) 속에서 살아가면서 얻은 두려움과 불안 그리고 집착이 아닐까 한다.
출처 / 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영산불교사상연구소
칭명염불수행법은 미증유한 공부법입니다.
중생들의 검증 절차가 필요치 않습니다.
삼천대천세계
모든 부처님들께서 권하시는 바요,
거룩하신 우리 교주
불 세존 석가모니부처님의 뜻이요,
불과를 이룬 광명·자재가 내놓은
공부법이기 때문입니다.
현지사 칭명염불_아라한, 보살, 붓다가 나온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삶이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행복이 영원히 이어지기를 꿈꾸게 됩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부처님께 귀의하고 그 교법에 귀의하며 지난날의 업을 참회하고 탐진 번뇌를 정화해가면서 오계·십선을 행하여 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하늘이나 인간세계로 몸 받아 올 수 있는 정법의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물론 금생도 근심 걱정 없이 잘 살기 바랍니다. 그러다 부처님 회상을 만나 윤회전생에서 벗어나 정토에 나기를 간절히 권합니다.
여기서 나는 일찍이 불교사에 없었던 석가모니불을 봉창하는 칭명염불을 제안합니다. 많은 공부법이 있지만 이 염불 공부가 보살이 되고 붓다 되는 가장 확실한 수행법이기 때문입니다.
화두를 드는 선종의 간화선이나, 남방불교의 위빠사나 관법선이나 티베트 밀교의 쿤달리니 요가 수행법 - 이 모두는 자력으로 가는 수행법입니다. 잘해야 아라한 성과를 얻을 뿐입니다.
오늘 날 간화를 참구하는 선승들 중에 지계 청정하고 부처님 없다 말하지 않고 공부 잘하는 스님들도 많이 있음을 압니다. 그 스님들, 자·타력의 불교로 방향 전환한다면 결정코 성과聖果를 얻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현지사의 칭명염불은 자력과 타력을 겸비한 수행법입니다.
아라한, 보살, 붓다가 나옵니다.
이 칭명염불 수행법은 미증유한 공부법입니다. 중생들의 검증 절차가 필요치 않습니다. 삼천대천세계 모든 부처님들께서 권하시는 바요, 우리 교주 불 세존 석가모니부처님의 뜻이요, 불과를 이룬 광명·자재가 내놓은 공부법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부처님의 성호를 칭명하라!
2600여 년 전 인도 땅에서 출세했던 석가모니부처님은 대열반에 드셨다 해서 완전 공으로, 적멸로 드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중요한 지적입니다. 처음으로 불과를 증해 붓다가 되던, 어느 부처님께서 다시 사바 세상에 사람 몸을 받아 오시던 간에 절대계에, 유무를 초월한 무아 속 절대계에 부처붓다의 몸佛身·報身을 두십니다.
그 불신은 청정하고 깨끗한 부처님의 무량 억종광명 빛으로 이루어졌기에 영원불멸입니다. 그 불신은 대적광삼매 속에서 환희, 지복을 누립니다. 동시에 이 우주와 하나로 계합해 있으면서 삼천대천세계를 항상 비추는 대생명체인 법신法身佛도 두고 계십니다.
그 부처님보신은 ≪법화경≫ <신력품>에서 말씀하신대로 자기의 화신을 천이고 억이고…… 중생의 부름에 응하여 나투어 가시는 것입니다. 소위 32응신으로 그 중생의 근기에 따라 현신하십니다. 불과를 증하신 부처님 삼신三身의 중심이 되는 보신부처님은 32상을 갖춘 유형의 불신으로서 지혜와 자비 자체가 되어 깊은 삼매의 힘으로 항하사의 신통 묘용을 자재하게 부립니다. 시방十方의 불국토를 다니시면서 보살들을 교화하십니다.
아미타부처님께서 수년 간 사유하여 큰 삼매력으로 극락세계를 성취하신 것은 사실입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은 부처님 중 부처님이십니다. 그리고 최초의 부처님이십니다. 무량 아승기겁 전에 불과를 이루신 이래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부처님, 보살님들을 양성해내신 부모님 같은 어른 부처님이십니다.
부처님들의 지혜·자비·능력은 실로 불가사의합니다. 외도 이단의 세력을 다 합쳐도 부처님 한 분을 대적하지 못합니다.
석가모니불게 귀의·귀명하고 과거 생에 저질렀던 사악한 죄업을 참회하고 그 태산만한 우리 자신의 업장 소멸을 발원하면서 칭명하는 염불수행을 나는 이 책을 읽고 있고 여러 불자들에게 간절히 권하는 바입니다.
다시 말합니다. 부처님은 진실로 절대계에 계십니다. 보신부처님은 여름철 뙤약볕 아래 놓은 다이아몬드가 천만 갈래의 빛으로 발산하는 것처럼 그런 불가사의한 빛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32상 80종호로 자비·단엄하십니다. 우리 죄업 중생이 간절히 부르면 우는 아이에게 달려오는 어머니처럼, 그 같이 오셔서 각자의 수행과 공덕에 따라 업장을 씻어주십니다.
중생의 지중한 업장 소멸은 오직 부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 어떤 외도 수장들도 이것만은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이 점 확실히 말해둡니다. 나라는 의식이 생겨, 탐진 번뇌들이 일어나 업을 지으면 우리의 영혼엔 더덕더덕 오물찌꺼기들이 붙어 몸뚱이가 만들어집니다.
우리의 본래의 영아靈我에 영혼체가 생긴다 그 말입니다. 수행이란 이런 비본질적인 나, 비아非我를 정화해가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영혼이 순수하고 깨끗하고 청정해질수록 맑고 청정한 국토에 납니다.
수행이란 영혼의 정화입니다. 다시 말합니다. 업의 정화는 자력수행으로서도 어느 정도 가능합니다. 아라한 수준의 영혼 본래 모습까지는 정화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 이상 보살로 발돋움하는 것은 타력부처님 가피에 의해서만이 가능합니다.
거룩하신 부처님의 신력神力에 의해서 탐진의 뿌리가 녹고 업장이 소멸 되면 우리는 누구나 보살이 되어 극락정토에 왕생합니다. 오직 석가모니부처님의 가피에 의해서만이 보살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님의 가피력이 아니면 우리 중생은 기왕에 빙의됐거나, 앞으로 빙의될 가능성이 있는 천마·용신 등의 무서운 장애를 제거하거나 방어할 힘이 없습니다. 그리고 삼독 번뇌의 지멸 역시 우리 연약한 인간의 능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금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만나게 되는 삼재와 팔난의 고통도 부처님의 크신 위신력과 가피에 의해서만이 피해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숙명적인 운명까지도 바뀌어 집니다. 죽을 때 불 보살님처럼 잠자듯 편히 갈 수도 있습니다.
우리 교주 불 세존이 안 계셨더라면 이 삼천대천세계 안의 그 많은 붓다님들이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 여러 정토세계의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저 수많은 정토보살과 현재의 항하사 수같이 많은 성중도 있을 수 없습니다.
중생은 삼악도를 헤매다가 기껏 그 중 소수만이 하늘세계에 오를 뿐이었을 것입니다.
세존께서 나유타하고도 아승기겁 전에 불과를 이루시고 지금까지 한 시도 쉼 없이 여러 국토에 다니시면서 중생을 교화해 오셨기에 오늘 날과 같은 장엄한 회상을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여러 본생담에 나오는 바와 같이 부처님께서 수많은 과거 생을 통해 중생을 위하여 보살도를 하신 거룩한 대승의 이타심, 그 은혜에 우린 고개 숙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처님은 2600여 년 전 오직 정법을 심어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일념으로 6년간의 설산 고행을 각오하고 다시 인도 땅에 응화신으로 오셨습니다.
그 당시 산 속의 호랑이, 사자, 전갈, 독사, 쉬파리, 사나운 모기떼들에 완전히 노출된 채로 1일 일마일미一麻一米로 연명하며 고행하신 그 은혜를 우린 한 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최초로 불과를 이루신 이후에도 사바세계에 수없이 많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때마다 눈물겨운 난행고행을 마다하지 않으셨답니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우리 문수보살님의 송頌처럼 “이 몸 백 천으로 나누어 가루되어 바친들, 우주만큼 큰 부처님의 은혜를 어찌 다 갚는다 하리까?”하는 감사의 노래가 절로 나오게 됩니다.
모름지기 우리 불자들은 천상천하에 오직 위대하신 불 세존의 은덕을 생각하면서 부처님의 성호를 봉창해주시기 바랍니다.
현지사 칭명염불 수행법
나는 이제 불교사상 가장 위대한 칭명염불을 권고하는 바입니다.
최초 불이시오, 삼계의 법왕, 우주의 주主이신 석가모니불을 봉창하는 칭명염불 공부법을 여러 불자들에게 소개합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세면을 한 뒤 공부방에 가서 성상 앞에서 3배합니다. ≪금강경≫을 1독하고 부처님 다라니 5번 정도 염송하고 반듯이 반가부좌해서 두 눈을 벽면의 한 점에 고정합니다. 물론 부처님께 귀의·참회·발원합니다. 낭랑하고 힘 있게 석가모니불을 봉창합니다.
현지궁 현지사의 칭명염불은, 정토종念佛宗의 염불과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르다는 것을 이해할 것입니다.
염불 공부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입으로는 석가모니불을 계속하면서 마음속으로는 금강반야바라밀을 동시에 부르도록 해야 합니다. 선정, 삼매에 들려면 망상이 쉬면서 일념상속一念相續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석가모니불을 칭명하는 것과 동시에 마음속에서 금강반야바라밀도 잘 부르게 될 때, 석굴암 부처님 미간에서 빛이 방사함을 관觀해봅니다. 자력의 선정력이 어느 수준 깊어졌을 때 부처님께서 여러분을 삼매 속으로 이끄십니다.
공부할 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세간적인 욕심을 포함하여 도를 통하겠다거나 아라한이 되고 보살이 되겠다는 욕심을 갖고 계율 없이 용맹정진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 마가 치고 들어옵니다. 한 번 빙의된 하늘 마天魔는 떼기 어렵습니다. 결국은 정신이 돕니다.
공부 중에 경계에 집착해서도 안 됩니다. 정신넋이 빠질만한 미인이나 시각적으로 볼만한 대상 경계에 집착하면 큰일입니다.
그것은 하늘 마의 유혹입니다. 한두 번 마음을 뺏기다가 급기야는 헤어 나올 수 없을 만큼 빠져버리게 됩니다. 마침내 비정상이 됩니다. 미칩니다.
인생에 네 가지 어려움人生四難得이 있다 합니다. 사람 몸 받기 어렵고, 바른 법 만나기 어려우며, 눈 밝은 스승 만나기 어렵고, 해탈하기 어렵다 합니다. 다행히도 여러분은 천 년, 만 년 아니 겁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하는 부처님 회상 만났으니 큰스님을 스승으로 삼고 지도받아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돌아가신 부모 조상님 천도해 드리는 진짜 효도를 해 드리고, 부처님께 공양도 가끔 올리면서 부지런히 선근 공덕을 쌓으며 열심히 염불 공부해 나간다면 업장이 소멸되어 이루지 못할 소원이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때그때 공부의 진척도 점검받기 바랍니다.
출처 /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2권 中
염불선이 되어야 삼매에 든다
경전 읽고 염불하는 나의 염불선을 좀더 자세히 소개하겠습니
다. 아미타불 염불공부를 중심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먼저 정토삼부경 중 하나를 선택해서 봉독한 후 벽을 향해 단정
히 반가부좌한 채로 두 눈을 벽의 한 점을 응시한 채 염불선을 시
작합니다. 결코 눈을 깜박거리지 마시고 그 한 점에 두 눈을 고정
해야 합니다. 기도 정근 중에 자꾸 마실마을 가는 놈이 있어서 공부
를 일념으로 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생각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공부의 요체입니다.
하나로 모으려면 차라리 확실하게 둘로 나눠주는 것이 좋습니
다. 망상 피우는 그 놈이 바로 '나'입니다. 그 놈으로 하여금 망상
하지 못하게, 마실마을가지 못 하게 과제를 하나 내주십시오.
내 앞에 아미타부처님께서 와 계신다 생각하고, 마음속에서 큰
소리로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다짐을 하도록 시키십시오. 또 부처
님 앞에서 지난 날 못된 짓 한 것을 경건하게 참회하게 하고 극락
왕생을 발원하도록 말을 시키십시오. 입으로는 '나무아미타불'
정근한 채 두 눈은 앞 벽의 한 점을 응시하고, 귀의 참회 발원을
잘 해내도록 합니다. 이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나 힘써 하면
됩니다.
자유자재로 마음속의 내가 독자적으로 말을 잘 하는 정도가 되
면 이제 생각을 하나로 모아 한 점 속을 뚫어 가십시오. 염불삼매
로 들러갑니다.
부처님의 신상광명을 관하면서, 입으로는 고성으로 힘차게 칭명
해 들어가는 염불공부도 좋습니다. 모든 붓다는 몸이 빛으로 돼 있
어서, 현신現身할 때에는 모든 빛을 거둔 상태지만 여전히 안팎이
드러난 청정광명을 방사하게 됩니다. 정수리, 미간과 모든 털구멍
에서 밝고 투명한 빛을 방사합니다. '석가모니불' 염불행자라면
석굴암의 불상을 마음속으로 그려가면서 방사하는 광명을 마음숙
으로 지어갑시다. 그런 부처님 상을 관하면서 칭명염불합시다. 세
존석가모니佛 염불하는 자는 반드시 <<금강경>>을 봉독한 후
염불하는 겁니다.
대승경전 전체의 3분의 1 정도에 해당하는 정토삼부경 <<대집
경>>등 200여 경전에서 염불을 권하고 있습니다. 특히 문수보살은
<<문수반야경>>, <<문수사리발원경>>등에서 극락왕생을 발원토록 하
셨고, 보현보살께서는 <<화엄경>> <입법계품> 마지막 부분에서 선
재동자 등에게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에 날 것을 권하셨습니다. 대
세지보살도 <<능엄경>>에서 염불하는 중생을 인도하여 삼마디을 얻
어 서방극락세계에 나게 하시고, 관음 지장보살께서도 물론 인
연중생을 극락정토로 인도하시는 일을 교화의 목표로 삼고 계십
니다.
인도의 마명 용수 무착 세친, 중국의 혜원 선도 천태
철양 영명, 신라의 원효 의상 서산 기화, 일본의 법연 신란
등 대선사들을 포함한 당대의 큰스님들도 염불수행을 최선의 공
부법으로 권장하고 고취시켰습니다. 물론 자기들 스스로도 정토
업염불공부에 매진한 분들이었습니다. 염불선은 보살지까지 뛰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수행법임을 다시 천명하는 바입니다.
출처/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부처님이 계시기에 염불하는 것
요즘은 소위 선종의 큰스님들이 염불하는 '이게 뭐꼬' 하는 화두
식 염불을 권하는 분들이 있는 모양이지만 나는 이것에 반대합니
다. 진여실상을 관하면서 염불하는 실상염불이나 부처님 상호의
공덕장엄을 관하면서 염불하는 관상염불은 좋습니다. 그러나 보
다 좋은 것은 고성으로 칭명하는 염불입니다. 부처님이 계시기 때
문에 염불을 권하는 것입니다.
아미타부처님의 염불왕생원제18원에 따라 그 본원本願을 믿고 일
념으로 염불하십시오. 법계에 부처님이 안 계시다면 칭명염불이
아무 소용이 없겠으나, 부처님은 진실로 계십니다. 그래서 칭명염
불을 하라고 권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관무량수경>>에서 "극락극에 태어나고자 하면 마
땅히 부모를 효양하고, 스승께 봉사하며, 10선도를 닦을 것이니
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정업淨業의 기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서방극락세계는 있고, 아미타부처님도
계시며 경전의 말씀도 옳습니다. 다만 아미타부처님은 삼천대천
세계의 수많은 붓다님들 중 다섯 분 어른인 오여래五如來이시고,
10겁 전이 아니라 무량겁 전에 성불하셨사는 것입니다.
아미타부처님께서는 특별히 당신의 이름을 일심으로 부르면 항
상 무량광명으로 삼천대천세계를 비추시다가 염불중생을 섭취하
는 본원이 있으십니다.
길 잃은 자식이 어머니를 찾듯 간절히 아미타불佛을 부르며 사
십시오. 반드시 좋은 일이 있습니다. 큰 액운도 비켜가고, 죽을 때
잠자듯 편히 갈 수 있으며 최소한 하늘천상에 날 수 있습니다. 진
력을 다하면 왕생도 못할 것이 없습니다. 먼저 <<아미타경經>>을
일독하시고 '아미타불佛 무량겁 멸죄진언' 을 108독 염송한 후, '나
무아미타불' 을 고성으로 힘차게 염불정근 하십시오. 지옥 축생
의 과보를 벗고자 하거나 윤회를 뛰어넘어 아라한이 나는 성중하
늘이나 극락세계에 왕생을 목표로 한다면 음계 10선계를 지
킴은 물론 큰 스승님을 지도자로 모시고 돌아가신 부모 조상님
께 효를 다 하면서 염불수행을 지성으로 하십시오. 그게 여러분이
사는 길입니다.
또한 부처님보신佛께 공양을 드리는 것도 중요하며, 무엇보다도
청정계율을 지키면서 염불하십시오, 물론 이타행 보살행을 해야
합니다. 영명연수 선사의 말처럼 온갖 선행을 두루 닦아 왕생극락
에 회향토록 하십시오.
그리고 삼매에 들 수 있도록 염불선에 매진해야 합니다. 한 순간
도 끊어짐 없이 염불이 되어야 진정한 염불선입니다. 염불삼매나
삼매는 실제로 들기가 무천 어렵습니다.
삼매에 든다면 여기서부터 성자의 반열에 오른 것입니다. 삼매
에 들수록, 더 깊은 삼매에 들어갈수록 청정이 더해지고 지혜가 증
장되며 삼매력이 생겨 죽음을 마음대로 하고 윤회에서 벗어납니
다. 그렇게 해서 대성자가 되어가고 무아 속 삼매까지 들게되면
극락정토까지 뛰어 오를 수 있습니다. 더욱 간절히 염불공부
하십시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염불수행- 부처님께서 일러주신 공부
나는 분명히 말합니다!
최초 불이시요, 남섬부주 교주이시고 삼천대천세계 총교주이시
며, '붓다 중의 붓다' 이신 불세존 석가모니불佛께서 일러주신 수
행법은 바로 염불선입니다.
그리고 시방의 모든 붓다들께서도 염불공부할 것을 간절히 권하
고 계십니다. 염불선이 가장 휼륭한 수행법이라는 증거입니다. 어
느 아라한이나 정토보살위의 성인들이 가르쳐 준 게 아니라, '붓
다 중 붓다' 이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일러주신 수행법이기에 염
불이 최고라는 것입니다. 위빠사나 관법선도 2500녅 넌 부처님께
서 가르쳐 주신 공부이기 때문에 휼륭한 수행법입니다.
염불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하고 부르는 것이요, '관
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해도 좋습니다. 의상대사는 관세음보살을
스승으로 삼아 정토왕생을 발원하고 '관음염불' 에 매진한 분이었
습니다. '지장보살, 지방보살' 해도 좋습니다. '석가모니불, 석가
모니불' 하면 더욱 좋습니다. 이것을 칭명稱名염불이라고 합니다.
일심불란으로 집지명호 할 수만 있다면 윤회를 벗어나 극락정토
까지도 왕생할 수 있다는 것을 믿고信, 그것을 간절히 바라고願, 그
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염불선行을 해 나가야 합니다.
<<관무량수경>> 에는 지성심, 심심深心, 회향발원심을 갖추면 극락
에 왕생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심심이란 믿는 마음이 철기
등 되어 널리 공덕을 닦거나 즐겁게 선법을 쌓는 것입니다. 널리
공덕을 지으면서 불호佛號를 염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왕생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말은 이렇듯 쉽지만 실제는 비범한 수행이 아니고서는
왕생하기 어렵습니다. <<아미타경經>> 에서 이르길, "1일에서 7일 일
심불란 칭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과연 보살이 아니면 왕생할 수 없습니다. 선방에서 공
부해 본 수행승이라면 생각이라는 것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
난다는 것을 잘 압니다. 아라한을 뛰어넘은 보살이 아니고는, 생각
이란 놈을 자기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참선이나 염불을 하다보면 생각은 곧잘 마실마음을 갑니다. 일념
一念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염불 일념을 1일에서
7일간 지속할 수 있으면, 즉 염불선이 되는 염불행자라면 설사 오
역죄를 범한 악인이라도 정토에 왕생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중
죄를 지은 자가 일념이 되기란 지극히 어렵습니다.
얼마 전 서울공대를 졸업해 일류 재벌기업의 간부로 있다가 명
예퇴직한 어느 불자님의 조상을 천도해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나무아미타불佛' 을 부르고 있는 가운데 아니타부처님께서 현
신햐셔서, 그 천도재에 참석했던 재자齋者의 큰 아드님을 가리키며
"이 애는 5하늘에서 왔느니라. 전생에 지성으로 염불공부를 했으
니, 잘 지도해주라" 고 필자에게 부촉하신 바 있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염불하고 살았거나, 또 임종 무렵 왕생경계가 나
타났다 해서 그 사람이 모두 정토에 왕생하는 것으로 보는 것은 속
단입니다.
부처님께서는 하늘 천상만 해도 54층여섯 하늘로 나눔이 있고 그 위
에 윤회를 벗어난 아라한 성자의 하늘 곧 성중하늘이 또 27층품이
있으며, 성중하늘 위가 도솔정토 도솔정토 위가 바로 보살이 가는
서방극락세계라고 하신 말씀을 상기하십시오.
우리 인생이 설사 대과없이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살았다 해도 6
하늘, 5하늘에 가기도 어려운데 염불공부만으로 극락에 쉽게 가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 시큰둥해 하는 불자들이 있습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염 불 선
진리는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강조하는 바, 삼란만상은
설법하고 있다고 어는 고승께서는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모든
곳곳에서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주의을 기
울이고 자각을 하고 인식을 해야 합니다. 러셀이 이
야기한대로 우리에게 인식되지 않는 존재는 없는 것과 다름없
습니다. 이러한 인식론은 양자역학의 이론과도 매칭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존재의 실상이란 우리의 인식 속에 들어올 때 가치
가 있는 것입니다.
진리라는 것도 몇 해 전 열반하신 숭산 스님이 말씀하
신 것처럼 우리가 사과를 깨물어 먹듯 맛을 보아야 합니다. 그
렇게 맛을 본적이 없는 진리란 단순한 궤변에 지나지 않습니
다. 큰스님의 칭명염불은 이 점에서 훌륭하다고 할 수 있습니
다. 실제로 현지사의 많은 신도님들이 부처님의 방광을 본
적이 있으며 머릿속에서 빛이 나오는 것을 느낀다고 합니다.
이는 칭명염불의 위력이 일반 수행자가 몇 년 동안 공부하는
양보다 많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경험
으로 증득될 때 마음의 개오와 의식의 정화 그리고 정신의 각
성이 일어나게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 내면의 진리를 발
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큰스님은 현성이라고 말씀하
셨습니다.
경건하고 독실한 불제자들이 각골쇄신해 온 큰스님의 삶이
여과 없이 스며들어 있는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를 여러 번
정독했다면 큰스님께서 얼마나 뼈저린 삶과 진지하고 심오한
마음으로 구도 여정을 펼쳐 오셨는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큰스님의 구도 여정을 완숙한 경지로 승화시킬 수 있었
던 것이 바로 칭명염불에 의한 염불선입니다.
염불은 만트라(진언)와 같은 효과가 있어서 자신의 마음을 보
호해 줍니다. 또한 염불을 통해서 발성하는 말은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석가모니불이라는 발성 자체에 강력한 힘이
있기 대문에 오래할 수록 내면의 힘이 강해진다고 할 수 있습
니다. 사양에서는 로고스라고 하여 신의 말씀을 이야기합니다.
바로 염불도 석가모니부처님의 마음과 링크시키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을 많이 염송하게 되면 자신의
내면체에 석가모니부처님과 같은 파장과 에너지를 얻게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칭몀염불을 많이 한 어는 수행자는 자신의 내
면에 부처님의 황금빛 화신이 자리잡고 있음을 인식한다고 합
니다.
재삼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점은 바로 염불선이 큰스님의
법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큰
스님께서 염불선, 특히 칭명염불을 강조하신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부처님게서 실재하신 다는 것입니다. 삼천대천세계에 수
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붓다님들이 여여히 계시기에 우리는
그 붓다님들을 믿고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붓다님들을 진심
으로 간절하게 찾을 때 우리는 붓다님들의 가피을 입을 수 있
고 궁극으로는 붓다가 되는 길에 들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한 특히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붓다 중의 붓다이시기에 그 분
의 능력은 실로 창조주격이십니다. 바다를 건널 때 수영으로
건너는 것 보다 배를 타고 건너는, 즉 타력에 의한다면 훨씬
빠르게 수행의 목적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염불선으로 희귀함을 매우 중요하게 평가하셨
습니다. 한편 저는 여러 선지시을 만나고 다양한 책들을 접하
면서 모종의 정합적 이해를 얻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혼돈이 있
었습니다. 그러한 혼돈은 바로 방황을 희미하여 급기야 정신적
공황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많은 구도자들이 중도에 포기하고
폐인이 되다시피 하는 것은 바로 확고한 방향을 제시할 뚜렷한
경지에 이른 선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큰스님께서는
부처님의 가피를 받아 불경을 통해서 염불선을 수행해야 할 당
위성을 얻으셨고 결국 수행 정진에 매진하시고 각고의 노력과
수많은 인고의 세월을 이겨내시고 불과를 얻으시게 되었습니다.
저 또한 이는 한국 불교사에 일대 획을 긋는 그리고 불교계의
잃어버린 얼을 되살리는 대업을 이루신 일이라 생각합니다. 큰
스님이 말씀하신 바대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처럼 말입니다.
여하튼 큰스님은 한국 불교계에 커다란 사자후를 남기셨습니
다. 즉, 염불선을 수행함으로써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음을
사자후하시는 동시에 실제로 몸소 불과를 증득하셨습니다. 일체
을 의심하면 모든 법이 다 허무해 보이고 실없어 보입니다. 그
러므로 너무 의심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믿음이 수행에
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서도
큰스님게서는 화엄경의 주옥같은 구절을 인용하시면서 '믿음이
모든 공덕을 짓는 어머니'라고 당부 하셨습니다. "불전의 부처
님 말씀이나 공부가 깊은 큰스님의 법문 말씀을 믿어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은 도를 이루는 근원이 됩니다. 지옥에 갈
종자는 진짜 큰스님의 말씀도 믿질 않습니다. 삼악도의 종자는
의심만합니다."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불제자에게 신심을 내
야함을 당부하셨습니다. 믿음을 수행터로 삼아 극락 왕생과 붓
다증위를 위해 전심전력하여 염불선, 즉 칭명염불에 정진하면
우리 불제자들 모두가 큰스님의 말씀처럼 석가모니부처님의 위
신력과 가피를 받아 부단한 향상을 이룰 수 있다고 확신하는
바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
염불선이야말로 수행의 으뜸
이런 용기는 <<화엄경>> <<법화경>> <<율장>>의 가르침대로
무엇보다 계율을 존중하며, 경전을 읽고 염불을 하는 수행이
부처가 될 수 있는 길임을 확신했기 때문일 것이다. 1970년대
시절의 그 일이 놀랍다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인간 스스로의 수
행인 자력에 의존하는 것에 일정 부분 한게를 긋고 있다
는 점이다. 부처님의 가피라고 하는 타력에 의존하기 시작
한 것이다. 다음 그의 고백을 유심히 음미하기 바란다.
"덕산의 30방을 흔들며, 상에 집착 없는 언어로 공을 읊
고 마치 우주의 주인이 다 된 양 착각 하며 오만을 떨었던 지난
날을 생각하면 그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30대 중반 서울에
올라와 총무원 상임포교사로 법상에 앉은 지 2~3년이 못돼 나
의 공부에 회의를 품기 시작했습니다."(25쪽)
바로 이 지점에서 고유의 불교 세계관이 본격적으로 펼쳐진
다. 그의 단언에 의하면 출가자가 자력의 수행으로 오를 수 있
는 최고의 경지는 아라한까지다. 즉 곧바로 성불한다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인 셈이다. 견성 그 이후부터는 철두철미 부처
님의 가피가 필요하고, 다음 생애에 몸을 받은 아라한의 공덕
이 다시 쌓여 그 결과로 보살의 반열에 오른다.
"문수보살, 보현보살 그리고 관음보살께서 뿌리는 부처님의
광명을 온 몸의 털구멍으로 받아들이는 경계를 종종 만나는 위
력"이 바로 보살의 경계다.
이때 모든 보살이 아닌 최상수 보살 정도가 되면 부처가 뿌
리는 무량광이라는 빛덩어리를 보게 된다. 다음이 부처님 친견
의 경지다. 즉 '불과를 증한 대성자'의 단계에 바로 이때 들어
가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자신의 불신을 절대계의 부처
님 나라에 둔, 즉 법신 보신 화신의 3신을 완벽하게 구족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높디 높은 까마득한 위계의 관문 때문에 '견
성 즉 성불'이라는 습관화된 말은 턱없는 노릇인 것이다.
"무량광을 보기 이전에 부처와 보살이 있다 없다고 말하는
것은 한낱 범부가 지껄이는 망언일 뿐입니다."는 단언(35쪽)은
여기에서 나온다. 만현 스님은 자신이 구축한 삼신 이론과 부
처 성불 단계론이 11세기 티벳의 전설적인 성자 미라래빠보다
구체적이며, <<반야경>> 등에서 설명된 법신 이론 중심의 부처
설명보다 정교한 것이라고 밝히지만, 지금 이 원고는 그걸 검
증할 수 있는 자리는 안 된다.
용궁에 들어가 <<화엄경>>을 가져왔다는 인도의 용수와 달리
만현 스님 자신은 이 책의 도처에서 부처님을 친견했다고 말하
지만, 그것 역시 제3자가 쉽게 용훼할 수 있는 일이 못된다.
독자의 입장에서, 그리고 불교에 관심 있는 이의 입장에서
보건대 만현 스님의 이 '신 불교론'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불교
가 훨씬 불교다워진다는 점이다. 장려한 체계의 구축과 함께
그가 강조하는 신행 활동의 3박자인 염불 - 계율 - 효도는 출
가자와 불자들을 위한 덕목으로 돌연 떠오르게 된다.
장려한 체계라 함은 수행의 단계와 관문만이 아니라 올바른
생사관을 위해 필수인 대목이다. 이를테면 만현 스님은 부처와
보살이 보신으로 존재하는 것은 물론, 지옥과 극락 그리고 윤
회 역시 분명히 존재한다고 설파한다. 마음자리를 깨친 정도의
수행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지장보살본원경>>에 설명되는 끔
찍한 무간지옥은 실제로 있다. 따라서 출가하여 수행하는 이가
설혹 선근공덕이 있어 견성했다 해도 계율을 지키지 않을 경우
특히 음행 무간지옥에 떨어진다고 지적하고 있다.
비유컨대 "수행자가 여자를 가까이 하는 행위란 마치 깨끗한
물 한 컵에 똥물 한 방울이 떨어져 그 물을 마실 수 없게 되
는 것"과 같은 것이니 무소유와 청정을 지향할 것을 권한다.
이 점 요즘 흔들리는 모습의 불교계에 중대한 암시가 될 것이
고, 지옥과 극락 그리고 윤회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대망언을
했던 동양철학자 도올 김용옥 역시 가슴 철렁할 노릇이다. 책
에서 만현 스님은 부처 말씀을 인용하며 "정법을 비방하는 구
업은 그 어떤 죄업보다 지중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만현 스님 설법에서 중요한 점은 따로 있다. 삼신을
두루 갖춘 부처의 위신력에 대한 강조다. 훌륭한 상모와 지혜
그리고 자비와 신통을 두루 갖춘 부처는 온 세상에 자재한 존
재로 성큼 부각된다. 만현 스님이 화두 참구에 앞서 부처님의
이름을 부르는 염불 공부를 "가장 훌륭한 수행법"(208쪽)으로 권
장하는 것 역시 자연스럽다.
"붓다 중의 붓다께서 일러주신 수행법은 바로 염불선입니다.
위빠사나선도 2500년 부처님이 가르쳐주신 공부이기 때문에 훌
륭한 수행법입니다. 염불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하고
부르는 것이요. "지장보살, 지장보살'해도 좋습니다.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하면 더욱 좋습니다. 이것을 칭명염불이라고 합
니다."(208쪽)
출처 /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
수승한 공덕의 염불 수행법
염불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부처님의 상호, 즉
그 모습을 마음으로 관찰 관상하면서 그 공덕을 기리는 일"
이라고 한다.
염불과 비교해서 다라니가 있는데 다라니의 사전적 의미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의 정요로서, 신비적 힘을 가진 것으로
믿어지는 주문을 뜻한다. 원어명은 dharanl라고 한다. 또한 백과
사전에 의한 설명으로는 "비교적 긴 장구로 되어 있는 주문으로
총지 능지 능차라 번역하며 불법을 마음 속에 간
직하여 잊지 않게 하는 힘이다."
다라니들 중에서 좀 더 짧은 다라니인 진언, 즉 만트라에 대
해 사전적 의미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깨달음이
나 서원을 나타내는 말로서, 불교에서 진실하여 거짓이 없는 신주
주 신주 밀주 밀언 등으로도 번역한다." 본 단원에서는 염불수행과
관련 제반 내용을 집중 조망할 것이다.
먼저, 석가모니불 칭명염불 그 효시, 즉 염불 수행의 원류를 교
학적 근거에 기초하여 논구하고자 한다.
첫째, <<잡아함경>>에 "바사닉왕이 부처님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나
무여래응정등각' 하니......"라고 되어있으며 둘째, <<중일아함경>>에는
"부처님의 명호, 여래 지진등정각 선서 세간해 ..... 등 여러 가지 명
호를 부르면...., 이 공덕에 의해 두려움이 소멸되고, 신통을 얻고....
죽으면 천상에 난다."라고 되어 있다.
셋째, <<중일아함경>> <억념품>에는 "1. 거닐 때도, 2. 머무를 때도,
3. 앉아 있을 때도, 4. 누워 있을 때도, 5. 항상 어디서나 부처님을 억
념하라."고 되어있으며 넷째, <<대방편보은경>>에는 "석존의 제자 한
사람이 '나무석가모니불'을 부르게 하자, 5백 명의 도둑 신체의 고통이
제거됐다."라고 되어 있다.
다섯째로 <<여환삼마지무량인법문경>>에는 "'나무석가모니불' 부르는
것에 의해, 선근이 증장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성과가 있다"고 하
였다. 그리고 여섯째, 부처님은 <<증일아함경>>에서, 모든 비구들에게
수행의 한 법을 염불이라고 설했다. 즉,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이
르시기를 마땅히 한 법을 수행하고, 마땅히 한 법을 널리 펴라, 큰 과
보를 이루며, 모든 선이 널리 이르게 되고, 감로의 맛을 얻어 무위
처에 이르며, 문득 신통을 이루어, 모든 어지러운 생각을 제거하
여 아라한과를 얻어, 열반에 이른다. 어떤 것을 한 법이라고 하
는가? 이른바 염불이다."고 하셨다.
이는 염불하는 공덕에 의해서 무위처에 이르고 신통을 얻어
열반에 들어 갈 수 있다고 한 것은 불교의 수행 중에서도 염불이 중요
함을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일곱째, <<관무량수경>>에서는 "부처
님께서 위제희 부인에게 16관을 .........."이라고 전한다.
한편, 정토종의 염불 수행인 나무아니타불 칭명염불에 대해서 설명
하자면 다음과 같다. 전통적인 정토종은, 서방 극락정토가 분명하게 존
제하고 염불의 목적이 왕생 극락정토에 있음을 주장한다.
아미타불이나 서방정토 극락세계는 대승경전 전체의 1/4 정도에 해
당하는 방대한 영역에 걸쳐서 등장하고 있다. 정토사상의 발생과 <<정
토삼부경>>의 성립 연대는 불입멸 후 대승불교가 발생할 무렵
어느 대승인 학장에 의해 이루어졌으리라.
그러나 신앙의 근원은 석가모니불 제세시에서도 찾아 볼 수 있으며,
정토신앙은 인도의용수(불멸 후 6~7백년 경), 세친 보살에 의해
서 그 골격을 잡았고, 중국으로 전래되어 크게 발전하였다.
중국의 진나라 때 혜원(육경에 통달, 노장에도 밝았다), 불타발타라
후위의 담란, 수의 지자 대사, 당의 선도 화상, 도작 스님에 의해
서 염불 수행은 크게 진작되었다.
특히 도작 스님은 하루에 칠만 번씩 염불하였다. 규봉 종밀 스님은
염불법을 칭명염불, 관상(觀想)염불, 관상(觀像)염불, 실상염불로
구분하였다.
염불 수행이 선종과 결합하여 염불선이 대두되었는데 염
불선의 효시를 추적해 보면 다음과 같다. 선종에서 수용하는 정토
는 내생이 아닌 지금 현세에서 도달한다는 것이고, 타력에 의한 성취
가 아니라 자력에 의한 자각이란 점을 들고 있다.
그래서 정토란 곧 자기 마음의 청정을 의미한다. 이러한 유심 정토
의 사상은, 정토의 개념을 선에서 수용하여 선정일여의 염불선을 표현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초기 선종에서 정토를 일심에서 통함, 선정일여의 염불선을 언급한
것은 사조 도신스님의 <<밉도안심요방편법문>>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고려말 나옹 혜근 선사(태고 보우와 더불어 고려말의
선품을 진작한 대선사)의 염불선을 음미해 본다.
아미타불 어느 곳에 있는가
마음에 붙들고서 간절히 잊지 않는다면
염불하는 일념은 일념마저 끊어진 무념처에 도달하여
육근문에 항상 자마금색 광명을 놓으리.
나옹 스님은 자성미타인 유심 정토를 설하고 있다.
또한 참구염불선이 있는데 이는 염불을 참구한다. 즉 지금 염불하는
자가 누구인가를 참구하는 것이다. 당대에는 서방 정토를 유심 정토로
해석해서 선과 정토가 이념적으로 통합되었고, 송대에는 법안 문익, 영
명 연수 스님이 염불선을 주창했으며, 원대에는 남송시대에 발전
한 간화선의 영향을 받아 염불과 화두 공안이 방법적으로 융합되어 임
제종의 몽산 덕이, 중본 명본 스님 등이 있었다.
출처/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 120~123
칭명염불 수행법의 이론적 토대 - 성명쌍수
수행자가 칭명염불 수행법에 대한 든든한 이론적 토대를 얻기 위해
서는 성명쌍수에 대해서 이해하면 좋다. 흔히 동양 철학과 동양 수행
을 하는 수행자라면 고대 성현들로 부터 전승된 성명쌍수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것이다.
성명쌍수란 성(성품)과 명(생명, 삶)을 함께 공부하라는 것을 학
인에게 당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성이란 성품을 말하며, 성품은
마음의 자성을 말한다. 이는 또한 불성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명이라는 것은 우리의 목숨, 즉 생명을 말하며, 더 포괄적으로는 삶
이란 점에서 성품을 공부하는 것이 명을 공부하는 것보다 중요하게
인식될 수 있다. 그 이유는 성품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우주적으
로 영원하게 존재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반면 명으로서의 삶은
시간과 공간 속에 내재한 법리와 인연법 그리고 연기사상
을 통찰 및 철견하는 것이다.
물론 반드시 성으로서의 자성을 닦는 것이 명으로서의 삶
을 이해하는 것보다 우월하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그래서 성과
명은 함께 닦아야 한다는 성명쌍수를 성현들은 이야기하는 것이다.
사실, 힌두의 철학 사유에서도 본질 또는 존재를 공부하는 것과 인
연 또는 관계를 공부하는 것 두 가지를 나눈다. 어느 것이 우선이고
어는 것이 차선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 둘을
통해서 내면의 자성 세계로 회통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될 때 내면과 외면은 뻥 뚫려 내외명철이 된다. 이 내외명철
이 확연히 인식되어 자신의 인식 구조와 존재론적 세계가 하나가 될
때 내외의 벽은 허물어지고 완전히 허공과 같이 충만한 공을 철견
하게 된다.
인도의 쿤달리니 요가에서도 쉬바로서의 정적인 성품 의식과 샥티로
서의 동적인 육체 에너지를 이야기한다. 쉬바는 성에 해당하며 샥
티는 명에 해당한다. 성은 관조적 힘이자, 주시적 힘이자, 관찰
자로서의 힘이다. 명은 행위적 힘이자 삶의 영위자로서의 힘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불가의 팔정도에서 정견, 정사유 등은 쉬바 의식
을 도야하는 바른 길에 해당하며 정업, 정정진 등은 샥티 힘을 도야하
는 바른 길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성은 우리의 마음을 의미한다면 명은 우리의 삶을 형성하는
신 구 의 작용을 의미한다. 성은 체요 명은 용인 것이
다. 21세기 과학 문명의 총아인 컴퓨터 시스템을 비유로 들면 프로그
램들 하나하나의 실체가 바로 성이요 그 프로그램의 행위 또는
작동이 바로 명인 것이다.
체와 용이 분리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처럼 성명도 불
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마음에는 안과 밖의 경계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염불선이나 위빠사나선이나 모두가 일차적으로 성을 도야하
는데 있다.
물론 큰스님의 칭명염불 수행은 성을 도야하는 것을 넘어서 부처
님의 가피와 위신력으로 불신을 얻는데 있다. 큰스님의 법 세계에
서는 성이라는 것은 작은 불씨라면 불신은 태양으로 비유할 수
있다.
출처/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
견성오도見性梧道 전체공개
의심하는 이 놈은 무엇인고?
화광반조 10여 년만인 7월 어느 날, 생각을 놓아도 저절로 화두
가 들리길 여러 날 동안 이어졌습니다.
답답함이 부풀어 올라 풍선같이 극치를 이룰 즈음, 큰 소리로
금강경을 봉독하는데, '여래는 어디로부터 온 바도 없고, 또한
가는 데도 없다'는 대목에 이르러 갑자기 온몸이 폭발하듯 하
면서 세상이 확 뒤집혔습니다.
주主와 객客의 벽이 무너져 버리고, 툭 터져 허공같이 비었습니
다. 적조寂照요, 만고萬古의 광명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마음은 실체가 없어서 가고 옴이 없고 여여부동如如不
動하다는 것을 확실히 보았습니다.
나는 저절로 일어나, 실로 법열法悅이 어떤 것인가를 실감하면서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다겁생多劫生의 업業의 나무 무성하더라
팔만 사천 가지마다 줄기마다
망상 꽃이 피었더라.
내 이것을
송두리째 뽑아 버렸더니
하늘도 없고 땅도 없더라.
거짓몸뚱이 산산이 부서져
가루되어 없는데
착着할 게 어디 있는가.
마음 마음
본래부터 없는 것
이름하여 마음이라 하네
이것이 벌써 30여 년 전의 일입니다. 마음의 본래면목本來面目,
존재의 진상, 우주의 체성體性을 확실히 철견할 수 있었던 것은 오
매불망 간절히 의단을 쌓아온 나의 정성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
합니다.
염불선으로의 회귀
돌계집石女의 겁외가劫外歌와 동산수상행東山水上行을 말하고 '덕
산德山' 의 30방을 흔들며, 상相에 집착 없는 언어로 공空을 읊고
마치 우주의 주인이 다된 양 착각하여 오만을 떨었던 지난날을 생
각하면 그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30대 중반 서울에 올라와 상임포교사로서 불법을 포교하기 위해
법상에 앉은 지 채 2~3년도 못 되어 나의 공부禪수행 保任에 회의
를 품기 시작했습니다.
히말라야 초인超人들, 힌두교 성자요기 Ylgi들 및 티베트 밀교의
성자 미라래빠의 수행담을 접하고 법화경, 화엄경 등 대승경
전을 정독하면서 나의 선수행을 비교 점검해본 결과 중대한 발
견을 하게되었습니다.
자성을 깨치는 것은 공부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견성見性이 곧
성불成佛' 이라는 산가의 기치旗幟는 분명코 잘못됐으며, 설사 견성
하고 나서 보림을 마친다 하더라도 곧 붓다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부처님이 거룩하시고 희유하시며 거의 절
대자라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또한 인간 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결국 아라한에 그칠 뿐
이라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아라한으로서는 우주와의 계합이라는
것이 결코 불가능하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실존철학의 소위 존대sein 불교의 법성法性, 선禪의 자성自性에 해당가
드러나서 머무는 건 순간일 뿐입니다. 영원히 우주와 계합을 이루
는 성불만이 완벽한 생사해탈을 보장합니다.
소위 견성에 이름으로써 저 일신교에서 말하는 '하나님' 이 우상
일 뿐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말하자면, '절대적인 창조주란 없
다!' 고 선언하는 단계가 바로 견성의 경지였습니다.
이 경지에 이르면서 이 몸뚱이란 4대지수화풍로 이루어진 옷이나
집과 같은 '가짜 나假我' 라는 것과, 나我라는 것도 오온五蘊-色受想行
識으로 이루어진 인연소생의 가아假我이며 이 세상은 꿈이나 그림
자 또는 이슬과 같은 무상無常한 존재라는 사실도 발견하였습
니다.
분별하고 사량하는 것은 생각일 뿐, 마음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
습니다. 이것만 해도 크나큰 깨침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천지天地 이전, 곧 부처 나기 이전의 적멸寂滅과 우주가 생
기기 이전의 면목을 깨친 이라면 당연히 불교의 연기법만이 진리
라는 것을 사자후할 것입니다.
내가 갑자기 염불선 공부로 용감하게 회귀할 수 있었던 것은 화
엄경 입법계품, 법화경 본문 팔품에서 가르친 대로 무엇보다
도 계율을 존중하며, 경전을 읽고 염불하는 수행만이 부처가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정토삼부경에서 수행인이 생사윤회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지름길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경전 읽고 염불하는 것만이
우리가 보다 잘 살수 있는 오직 하나의 대안代案임을 확실히 보았
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나는 인도의 용수, 마명보살, 중국의 혜원 조사, 진晋의
각현, 담란, 천태지의, 선도, 도작, 영명연수 선사, 한국의 의상, 원
효스님, 서산 선사의 염불선을 크게 주목하면서 우주생명의 실상
實相을 관觀하며 보림을 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미모의 젊은 여인을 보고 마음이 설레는 자신을 발견
했습니다.
그 순간 '진여실상이라는 용광로에 무명번뇌나 억겁의 죄장 따
위가 모조리 녹아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고 주장했던 지난날의 나
의 법문을 스스로 반추하고 의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혼자 산행山行을 하던 중에 쉬어갈 만한
곳에서 선정禪定에 들었습니다. 그 선정 중에 문둥병을 심하게 앓
고 있는 남자가 들어와 한 이불 속에서 자고, 밥지어 먹고 지냈을
때, 정말 선정에 들었으면서도 알고보니 천인天人의 선정이었다
중생심의로 돌아가 역겹고 싫은 생각이 줄곧 따라붙고 있었습니다.
한 태백산의 토굴에서 보림하던 어는 여름날, 커다란 구렁이
가 내 곁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너무도 긴장하여 진땀을
흘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습니다.
이런 경험들을 하면서 본래면목의 실상, 진여자성眞如自性을 철
견하고 보림한다고 해서 붓다가 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오백생 이전에 수행하실 때에 '가리왕' 이라는 포
악한 악인을 만나 난자당해 돌아가셨을 때에도 그에게 성내고 원
망하는 마음이 조금도 일어나지 아니하셨는데, 도대체 나는 어디
쯤 와 있단 말인고? 결국 인간 능력의 한계라는 명제와 타력他力, 곧
'부처님의 가피' 라는 주제를 두고 차츰 골똘히 생각하였습니다.
그 당시에 나는 깊은 선정에 들어서 그것을 진짜 삼매라고 오해
한 나머지 불 보살을 뵙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친견은 고사하고
지옥 천상세계도 관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윤회를 벗어난 해탈
오계解脫梧界, 곧 도솔정토나 서방극락세계도 끝내 관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선승禪僧이었음에도, 이 모두가 실제로 존재할 것이
라고 믿었기 때문에 염불선으로 과감히 방향전환하였으나 특히
1970년대 당시의 한국불교에서 선수행이 강고되다 보니, 염불하
는 행자들을 무조건 외도로 몰아 배척하였기 때문에 겉으로 내색
하지 못하고 침묵 속에 정토업淨土業을 쌓았습니다.
또 하나 내가 염불선으로 방향전환을 결심한 데는, 선재동자와
같은 나의 과거 행각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마친 화엄경 입법계품의 선재동자처럼 나이와 성별, 출가
재가를 가리지 않고, 이단異端-제2의 예수라 자칭하는 어느 목사님, 부처라
고 떠받드는 어는 재가보살 그리고 전라도 토굴의 어느 도인 등을 이해하고 오
랜 세월 교유함으로써 선禪의 참구參究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절대세계의 붓다들_칭명염불을 권한다!
불자 여러분께서는 실제로 붓다들이 계시다는 사실을 믿으시고,
또한 그 불보살님들이 당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구원을 요청하면
그 염불 수행자들을 친자식같이 생각하여 이들을 건지기 위해 가
능한 온갖 자비 방편을 쓴다는 사실을 유념하셔서 칭명염불을 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불가능이 없으리만큼 우주적인 무한 능력을 지니신 부처님' 을
부르지 않는 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 크신 힘을 지니신 부처
님을 외면하고 자력에만 의존하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다시 한 번 염불을 권합니다. 부처님의 위신력과 가피을 받는다
면 우린 삼악도에 떨어질 염려가 없습니다. 큰 죄를 지어서 지옥에
가고, 짐승 몸을 받아 날 수밖에 없다 해도 큰 스승을 만나 염불공
부를 잘 한다면 삼계까지 벗어나는 대장부가 될 수 있습니다.
학승들이 인간의 마음 속에서 법, 보, 화 삼신을 말하는 것
은 하나밖에 모르는 이설이 분명하다고 다시 단언합니다.
관념적이고 사변적인 철학공부는 종교 수행인에게 이롭
지 않습니다. 실천 수행해서 깨닫고, 나아가 증득하는 것만이 필요
한 것입니다. 나는 다만 직접 깨달은 내면세계의 '다르마' 소식
만을 전하렵니다. 내가 들추어낸 이 엄청난 새로운 삼신설의 법문
지각변동이라거나 핵폭발, 경천동지 혹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라는
수사를 뛰어넘는을 당당히 사자후하는 것입니다. 묻혀진 아니,
죽어가는 위대 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살려내어 이 땅에 널리 펴고
싶을 뿐입니다.
남모르게 공부를 이루고자 쏟아낸 피눈물이 샘을 만들고도 남을
정도였답니다.
붓다들의 현신했을 때의 모습 보신 불신은 해탈신이기에 그렇겠
지만 보살의 그것과도 하늘 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납니다. 붓다의
음성 역시 그러합니다. 일거수일투족이 자비롭습니다.
보신의 미간, 눈, 입, 손바닥 등 열군데서 '빛' 을 방사할 때에
는 녹색이나 무색 광명같이 단색을 방광할 때도 있고, 백종 오색광
명을 놓을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억종광명을 방사할
때도 있습니다.
붓다께서 방광하는 빛은 마왕 파순이나 하늘 마는 물론 귀신들
도 모두 무서워하는 대상입니다. 탐진치 삼독이 녹아버린 성자의
마음 빛이기에 악심이나 사악한 기를 물리치고 녹이는 불가사의
한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무량광은 영롱하고 청정하며, 내
외명철합니다.
모든 붓다들이 무량광으로 이루어졌기에, 빛 그 자체이시기에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붓다끼리는 서로 항상 상속되어 있고 그래
서 한 티끌 한 생각이 똑같습니다. 말 그대로 삼세여래일체동
입니다.
그러나 각각 개성이 있고 얼굴, 키, 몸무게도 다르십니다. 그 이
유는 불과를 이룬 후 열반에 들 때, 그 붓다의 거짓 몸속의 네 개
영체가 빛덩어리가 되어 자신의 불신과 계합하게 되는데, 나름대
로의 성격차이가 그대로 불신 속으로 들어가 섞여져 반영되기 때
문입니다.
붓다가 세 몸을 지니신다니 이 어찌 희유하다 아니 하겠습니까!
이것이 정설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한 생각을 놓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염불선
이렇게 한 생각을 놓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큰스님 말씀대로
‘석가모니불’을 찾는 것이다. 염불선이 강력한 이유는 무성하고도 불과 같이치성(熾盛)하게 일어나는 생각들을 ‘석가모니불’명호를 사용해서 녹일 수 있다는데 있다. 고도의 집중 상태에 들어가게 되면 큰스님께서 비유하신 바대로 용광로라는 삼매에 잡념들이 녹아버린다. 집중이 제대로 안 되면 불처럼 치성하게 일어나는 중생심에게 ‘금강반야바라밀’을 외우게 하는 것이다.중생심이 발동하려고 해도 ‘금강반야바라밀’을 중생심에게 먹이면 석가모니불을 보다 뚜렷하게 할 수 있다.
한편 스토아학파(금욕주의학파)의 현자 에픽테토스는 “인간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은 일어나는 일 자체가 아니라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생각이다”라고 하였다. 매우 정확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조용히 생각을 지켜봄으로써 생각이 힘을 잃고 사라지도록 하는 위빠사나선이나 염불선을 통해서 일념삼매에 들어가는 방법 그리고 화두를 들어 오직 화두에만 전심전력하는 화두선 모두가 선 수행법이다.
불교는 여하튼 선을 모르면 안 된다. 선(禪)의 글자 뜻은 하나(單)를 보는 것이다. 그 하나라는 것은 허공처럼 충만하고 충일한 마음이다. 중생심과 대비되는 청정심이 그것이다. 생각을 지켜보는 마음을 볼 수 있다면 그 주시하는 마음을 강화하여 청정심을 이룰 수 있다.
이 청정심을 얻는 것이 견성(見性)이다. 큰스님의 염불선은 위빠사나선이나 화두보다 안정적이고 부작용이 없다. 그러므로 구도자는 항상 큰스님 말씀처럼 ‘행주좌와 어묵동정’ 어느 장소 어느 순간이나, 즉 일체 처, 일체 시에 석가모니불을 억념해야 할 것이다.
사실, 잡념과 망상이 있기 때문에 불교 공부가 어렵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잡념과 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된 생각들, 즉 망상이 없다면 공부감이 없는 것이다. 공부감이 없다면 배움도 없다. 사바세계는 인고의 땅으로서 우리의 본성을 깨우치고 세상의 이치와 우중의 섭리를 배우기 위해 태어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도자는 비록 견성이라는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이 상당한 인고의 세월을 요구한다고 해도 용기를 갖고 정진해야 할 것이다. 공자님 말씀대로 공부를 좋아하는 것보다 즐기는 것이 더 훌륭하다는 점을 상기하고 이 불교 공부가 힘들지만 이왕이면 즐겨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적은 내면에 있다’라는 가장 기초적인 마인드를 잘 숙지하고 항상 내면을 성찰하고 염불선을 생활화하면서 지내야 할 것이다. 물론 내면에서 일어나는 중생심을 너무 과소평가하지는 말아야 하며 항상 진지한 마음과 긍정적 마인드로 염불선에 임해야 할 것이다.
달마 조사는 견성, 즉 깨달음을 위해서 이입사행을 역설했는데 이입사행이란 이입(二入)과 사행(四行)을 합한 말이다. 이입(二入)은 이입(理入)과 행입(行入)을 말하며, 사행은 행입의 내용으로 보원행(報怨行)·수연행(隨緣行)·무소구행(無所求行)·칭법행(稱法行)을 말한다.
여기서 이입(理入)은 경전에 의해 그 근본 정신을 파악하고 일체 중생의 마음이 진성(眞性)임을 알아서 도리와 하나가 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즉 이입사행은 수행의 근본을 설명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행입에 대해서만 거론한다.
행입 중 보원행은 현세의 원망과 증오가 모두 과거에 자신이 지은 업(業)의 대가이므로 인간 본래의 도를 닦는 데에만 전념하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보원행이 바로 전생과 현생에 지은 타인에 대한 원망을 갚는 수행이다. 이것이 수행자에게 가장 큰 문제이며 여기서 수행의 시작이 이루어진다. 남이 나를 원망하건 내가 남을 원망하건 그 원망심을 없애는 것이 보원행(報怨行)이다.
서양에서는 용서(forgiveness)로서 알려져 있다. 타인을 용서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죄업을 사할 수 없다. 즉 보원행을 행하지 않고서는 자신이 전생부터 지어온 악업과 빚을 청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원결을 소멸시키고 원망을 제거해가는 행(行)을 수도(修道)로 삼아야 한다.
수연행은 순리에 따라 도에 합치되도록 하라는 말, 즉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인연을 잘 살펴 삶을 살아가라는 뜻이며 인연에 거부감을 갖거나 지나치게 인연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이다. 한편 무소구행은 구하는 것을 없애서 애착과 집착·탐욕을 일으키지 말라는 말이다. 또 칭법행이란 모든 불법을 항상 공경하고 찬탄하라는 가르침이다. <<법화경>>에도 부처님의 법을 찬탄하는 공덕은 그 어떤 공덕보다도 수승하다고 전하고 있다.
스승에 대한 지극한 공경과 감사 없이는 수행은 불가능하다. 공경과 감사가 무르익을 때 스승의 가르침을 찬탄하고 믿을 수 있으며 그렇게 됨으로써 석가모니부처님에 대한 귀의, 귀명하는 마음이 더욱 강화된다. 사실 죄업이라는 것이 알 수 없는 먼 과거부터 부처님의 가르침을 외면하고 무시하고 심지어 멸시한 죄업이 아닌가 생각한다.
무명(無明)이라고 하여 가장 원천적인 연기(緣起)의 시작은 부처님의 12연기의 처음이자 고통의 근원이다. 이 무명(無明)은 다른 말로 말하면 ‘어두움’이다. 어두움은 공포, 두려움, 불안 등을 말하며 이러한 두려움은 결국 부처님에 대한 믿음의 결여에 있다고 알고 있다.
무시 이래의 헤아릴 수 없는 과거시절부터 불과를 이루지 못한 우리 모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기도 했지만 진실로 받아들여 목숨을 걸고 매진하고 정진하여 완전한 죄업을 다 사하지는 못했다고 본다. 가장 큰 죄는 바로 부처님을 믿지 않고 세속적 욕락(慾樂) 속에서 살아가면서 얻은 두려움과 불안 그리고 집착이 아닐까 한다.
출처 / 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영산불교사상연구소
2010년 11월 9일 화요일
현지궁 현지사 --- 2
광명 만덕 태사부님
광명 만덕 태사부님께서는 어렸을 때부터 빨강 가사 장삼
을 수하신 부처님들 꿈을 종종 꾸셨고, 특히 경을 읽고 자는
날이면 꿈에 부처님이 오셔서 공부를 이끄셨다 합니다. 성년
이 되면서부터 태사부님은 공부하실 때 집중력이 출중하시어
깊은 선정에 들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 선정 속에서 바위산에 터널을 뚫을 정도이며 관음
보살님께서 바다 수면에 현신하실 때는 큰 연꽃을 염불의 힘
으로 만들어 보살님을 떠받드시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태사부님은 정신을 집중하여 석굴암 부처님 상을 만들어
놓고 석가모니불의 존호를 봉창하는 염불 공부를 하신 특별
한 분으로서 깊은 불연 아니면 이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미 12년 전에 불과를 증하신 이래 부처님 세계에서 사시
다시피 하십니다. 본격적으로 공부하신 이래 지금까지 하루
도 부처님 공양을 거른 적 없으시고 꽃 공양 빠진 날이 없으
십니다.
대쪽 같은 성품에 중생을 위하는 자비심, 부처님을 공경하
는 마음 지극하시어 우리 제자들의 귀감이 되십니다.
삼계의지존이시요. 법계의 지존이신 부처님의 법통을 이으신 가섭존
자이시며, 이제는 불과를 증한 법왕의 아드님으로서 좌우보
처가 붓다이신 수보리 명상불, 사리불 화광불을 두십니다.
절대계 부처님 세계에서는 오여래다보불, 약사불, 아미타불, 보명불급
으로서 광명불광명 만덕 태사부님의 보신불은 앞으로 남섬부주 교주이
신 부처님을 대행하시게 될 것입니다. 모든 붓다의 삼매에
자재하시고 104위 화엄성중을 부리신다는 점만 밝힙니다. 우
리 영산불교 교단의 중핵으로서 중생의 복전이 되십니다.
출처/비교종교학
펴낸곳/영산불교 현지궁 현지사
아난과 가섭이 만나다
저 오라를 보라~ 또 저 분의 영체의 색깔은 눈이 시려서 도저
히 볼 수 없는 빛 덩어리 아닌가?
나를 찾아 온 40을 갓 넘은 여인이 내 앞에 않아 계십니다. 마
음속으로 '이 여인은 붓다의 화신이 아닌가! 붓다의 화신임에 틀
림없다!고 생각한 나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짐짓 위엄을 갖
추고, 방의 꽃병에 꽂혀있는 꽃을 가리키며 2500년 전 영산 당시
부처님께서 "거염화하시고, 곽시쌍부한 의미"가 뭐냐고
물었습니다.
여인은 몸을 곧추 않더니 즉석에서 우리 말 게송을 지어 읊습
니다.
본래부터 없는 것
이름하여 꽃이라 하네.
시들어 없어지면 허망한 줄 알고
허망한 줄 알았기에
나 없는 행을 청정하게 하라는 것.
육신의 인연도 다 했기에
대성자 부처님도 이 땅에서
두 발을 거두셨네.
나는 진짜 도반이요, 큰 스승을 만난 것입니다. 나는 지금도 진
심으로 부처님께 감사 드리고 있습니다. 그 후에 그 분께서 내게
법문하신 말씀 가운데 몇 가지만 소개하겠습니다.
"현상을 쫓지 말라. 모습모양을 쫓지 말라. 그 공안에 현상계
가 들어 있으니. 그것을 깨라. 산화시키라."
"청정을 닦으라."
"목적을 삼지 말라. 탐 진 치에 걸린다."
"법 아닌 생각이 일어나면 손에 불덩이를 쥔 듯 놔 버려라."
두문불출 용맹정진하던 이 분이 나를 찾아온 데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만 여기서는 그 이야기를 접겠습니다.
당시에 이 분은 부처님으로부터 공청으로 화두를 받아 9일만
에 화두타파를 한 후 경전<<금강경>>을 읽고 염불하다 깊은 삼매에
들어 있는 중이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의 일입니다. 우리
는 서로 빙의도 없고, 영체가 빛 덩어리로 화해감을 보고 법의
도반이 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 후 서울에 수도처를 마련해 우리
를 따르는 스님들과 함께 한 집에서 용맹정진을 하다, 지금은 강
원도 춘천으로 옮겼습니다.
경에도 나와 있지만, 처음 붓다 될 때에는 90펴센트 정도가 여
자 몸으로 오게 돼 있습니다. 그래야 부처님께 공양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당대에 붓다 이를 인연이 된 공부인에게는 반드
시 보신 개념의 부처님석가모니불께서 그를 이끌기 위해 내려오
십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분에게 불호를 광명, 보살명은 만덕으로
내리셨습니다. 충북이 고향이고 어렸을 때부터 빨강 가사 장삼을
입은 스님이 꿈 속에서 자주 보였다고 합니다.
"한 중생을 제도하려 백천 생을 따라나녀 끝끝내 건져냄이
불 보살의 대자비이니...."
당대에 불과 이루실 분이기에 불 보살들께서 몇 생 전부터 줄
곧 보살펴 오신 것을 알았습니다. 이 점이 과연 희유한 부분입
니다.
불과를 이루고 보니 부처님과 문수 보현 관음 지장보살님들
이였다고 합니다.
광명 만덕 큰스님은 무량광의 관문을 통과하여 급기야는 천만
생 아니 겁을 두고도 만나기 어려운 부처님을 친견한 것입니다.
부처님을 만나서 줄곧 지도를 받아왔습니다. 지금은붓다로서의
모든 관문을 다 통과해서 불과를 중하고 보림 중에 있습니다.
영산 당시 이후로 세 번째 붓다 되신 것입니다. 좌우보처에는
화광불사리불 존자의 불호, 명상불수보리 존자의 불호을 두고 계십니다.
좌우보처가 붓다인 분은 오여래뿐입니다.
이 분은 2500년 전 영산 당시 삼계 왕 석가모니부처님의 법통
을 이은 아들이었는데, 이제 확실히 법의 상속자, 곧 법의 아들이
되신 것입니다. 부처님의 법의 아들이기 때문에 좌우보처가 붓다
들입니다.
부처님 세계에 있는 광명불의 불신은 머리에 석가모니불을 정
대한 띠를 두르신 것이 마치 아미타불을 정대하신 관음보살님과
도 같습니다.
부처님과 오여래 그리고 문수 보현보살 등 부처님의 본 불신
을 뵙고, 법문을 듣고 자유자재로 부처님들과 대화하며 나아가
자기의 불신을 얻은 이는 영산 당시 부처님 이후 수보
리 존자, 사리불 존자, 가섭 존자 외엔 그 누구도 없다는 것을 이
세상에 알립니다.
부처님의 본 불신을 뵙는 경계부터는 불의 경계이며 붓다의
화신을 선정 중에서 보는 경계는 보살 경계입니다.
염불 정토종에서 연종 조사로 불리는 진의 혜원 조사는 도원
법사의 <<반야경>> 강의를 듣다가 대오한 이후 30년 동안
세속에 발길을 들여놓지 않고 지극히 서방극락에만 뜻을 두어 정토
업을 닦다가 세 번이나 아미타 화신불의 성상을 보았으나, 남에게 말하
지 않고 침묵하더니 과연 단정히 않아서 입적했습니다.
당의 선도 큰스님은 평생 정토를 연설하고 30여 년 동안 잠
도 제대로 자지 않고 호궤한 채 염불 정진했으며, 도작 큰스님은
하루에 7만 번씩 염불을 하면서 정토업을 닦았으나 보신 본불
은 친견하지 못했습니다.
인도의 무착 큰스님은 도솔정토의 미륵보살을 일광삼매에
들어 친견하고 <반야 80송>을 받아 <금강반야경론> 2권을
지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미륵보살은 보신이 아니라 화신입니다. 용수
보살 역시 용궁에 들어가 <<화엄경>>을 가지고 왔다 하나
부처님을 친견하고 법문을 들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11세기 티베트의 미라래빠는 성불을 법신뿐만 아니라 보신과
화신까지도 언급하며 삼신을 구족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으나,
<미라래빠 10만송> 그 어디를 보아도 불의 보신에 대한 비밀은
분명 알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상품보살로 왕생하여 현재는 북방의 태세보살로 있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대수행자가 붓다 이루려면 태어날 적
마다 억겁을 두고 선근 공덕을 쌓고, 수행을 계속해 몸과 마음,
영체가 청정무구의 상태를 지나 빛 덩어리가 되어 빛으로 된 불
신을 뵐 수 있고 법문을 듣고 나아가 자기의 불신을 얻어야 합니
다. 그래야 불과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 분의 공부를 위해서 끝까지 보좌하기로 약속하고 지금
까지 7~8년 동안을 모셔오고 있습니다. 이 공덕으로 만현도
이제 불과를 증하게 됐으니 삼생의 깊은 인연인가 봅니다. 자
재 만현이 어찌해서 이 분과 함께 사제간이 되었고, 그동안 이
분을 어떻게 지켰는지, 부처님의 뜻에 따른 비화는 훗날 자
세히 말하게 될 것입니다. 할 말은 많으나 뒷 날을 위해 접어두
겠습니다.
광명 만덕 큰스님은 정진력과 집중력이 바위를 뚫을 정도여서
"과연 가섭 존자시다!"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오곤 합니다. 삼천
대천세계 모든 부처님들 간에는 서로 빛으로 상속되어 있어서 한
생각이 같으십니다. 이 분은 법문하시는 중에도 얼마든지 부처님
들과의 대화가 가능하고, 수 초 안에 깊은 삼매에 드십니다.
자유자재로 부처님의 무량광명을 내고 투사해서 제자들의 업
장을 씻어 주시기도 하며 104위 화엄성중을 부리십니다.
어느 날 세존께서 청정법신 비로자나불로 뜨셔서 한 마당 작
업하시고 원만보신으로 현신하셨습니다.
물론 깊은 선정 속의 일입니다.
깨끗하고 탐스러운 한 송이 수국화를 드시고서 물으셨습니다.
"이게 뭐냐?"
"본래부터 없는 것, 이름하여 꽃이라 합니다."
만덕 큰스님이 대답하시니, 다시 물으셨습니다.
"이 꽃의 실체가 있느냐?"
"없사옵니다."
"영산 당시의 이 일은 있다 없다를 초월한 자리를 가르치고자
함이다. 살아 숨 쉬는 모두는 이 꽃과 같이 허망하여 실체가 없
으니 믿을 것이 없다는 무아사상을 가르침이니라."
불 세존의 말씀이셨습니다.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왔다가 인연이 다하면 꽃과 같이 시들어
없어지는 것이니 그 무엇에 착하여 내 것이다 네 것이다 분별하
며 아옹다옹 하는가, 꽃과 같이 인생도 허물어지는 것이니 그 어
떤 것도 실체가 없음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2001년도에 스스로 대적정삼매에 드셔서 읊은 삼매송을 여기에
싣습니다.
비었어라 비었어라
삼천대천세계가 비었어라
모두가 비어 있는 공의 자리
삼천대천세계 부처님 법의 자리
청정하고 깨끗한 무량광명
환희 환희 환희일러라.
광명 만덕 큰스님의 돌아가신 아버지는 극락세계 상품으로 왕
생하셨고, 어머니는 스님으로 계시다 입적하셨는데, 약사여래불의
정유리정토에 왕생하셨습니다. 이 두 분은 영산 당시 16성이었
습니다. 물론 40여 조상 영가 모두가 하늘 천상으로 천도되었음
을 첨언합니다.
출처 /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위대한 영산불교 - 무엇이 다른가?
1, 영산불교 - 위대한 우주적 진리의 신불교
영산불교는 부처님의 법맥을 이어받은 우주정법으로서 불교의 교리와 수행 전반에 걸쳐 불교사에 한 획을 그을만한 엄청난 소식들을 전하고 있다. 지금의 왜곡되고 왜소화된 세계불교를 혁신하고 영산당시 부천님의 정법을 복원하여 위대한 신불교를 다시 탄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많은 종교 중에서 불교가 왜 위대한 종교일까?
① 불교는 무량겁 전에 우주법계에서 가장 차원이 높은 유무를 초월한 무아속 절대계의 영역을 인류최초로 개척한 우주법왕 석가모니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우주적 메타종교다.
불교는 시간적으로 그 역사가 무한하고, 공간적으로는 수많은 삼천대천세계의 구조를 이루는 우주를, 그리고 영적으로는 가장 차원이 높은 절대계에서 가장 차원이 낮은 지옥계까지를 포괄하는 우주적 메타종교다. 무아속절대계는 지금까지 지구상의 어떤 다른 종교나 사상이나 철학도 감히 범접하지 못했던 영역이다. 기껏해야 지옥과 천당을 말하거나 본성을 깨닫는 수준 또는 초인이나 신선 등 우주법계의 일부 윤회세계나 일부 해탈세계를 이야기하는 그런 종교나 사상으로는 우주진리를 온전히 밝힐 수 없다.
불교는 다른 종교에서 수행의 목표로 인식되고 있는 깨달음을 수행의 출발점으로 보고, 깨달음을 지나 첫번째의 해탈계인 아라한 해탈오계도 넘고 그 위의 해탈계인 보살정토계마저 초월하여 해탈계의 정점인 무아속절대계에 불신을 두는 붓다를 배출하는 위대한 종교다. 그래서 우주법계를 끝까지 꿰뚫어버리고 절대계에불신을 둔 부처님의 가르침을 우주정법이라 하고 불교를 우주적 진리의 종교라 하는 것이다. 이 절대계의 영역을 모르고 우주진리를 통달했다고 말하면 안 된다.
② 불교는 창조주적인 위신력을 가진 부처님과 수많은 붓다님들을 정점으로 우주법계에서 가장 큰 영역을차지하고 있고, 가장 강력한 세력을 보유하고 있다.
우주법계에는 불교 외에도 기독교 이슬람교 도교 등 다른 종교와 외도들, 마구니들이 각각의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불교는 창조주적인 위신력을 가지신 부처님과 우주적 능력을 보유한 수많은 붓다들의 세계인 절대계를 정점으로 항하사 수의 보살 정토계와 아라한 해탈오계, 무량의 성중 신중 하늘세계 등으로 불교권의 우주정법계를 형성하면서 절반이 넘는 우주법계의 영역을 차지하고 있으며, 다른 어떤 종교나 외도들의 추종을 불허하는 가장 강력하고 거대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③ 불교는 모든 윤회중생이 죽어서 가는 명부(저승)의 영혼체들에 대해 우주이법에 따라 심판하고 우주질서를 유지하는 사법권을 갖고 있다.
모든 사람은 죽어 윤회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시방여래부처님 지장왕보살께서 관장하시는 명부에 들어가서 전생에 지은 업에 대해 열시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다른 종교인도, 비종교인도 절대로 예외가 될 수 없다.
심판결과에 따라 가아햘 세계와 기간이 결정 된다. 이는 불교가 우주정법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어느 다른 종교도 이 일을 하지 못한다. 국가의 사법권 행사와 같은 이치로 보면 된다.
④ 불교는 우주이치를 관통하는 가르침으로서 다른 종교와 도저히 비교가 되지 않는 방대한 분량의 경전과 함께 내용면에서도 최고의 과학이요, 철학이며 종교다.
부처님의 친설이라는 아함부만 해도 1만 8천여 경들로 이루어져 있어 타 종교와 비교를 불허한다. 거기다가 방등 반야 법화 화엄 열반 등의 수많은 경전과 티벳 밀교로 드러간 경전까지 합하면 분량 면에서도 가히 위대한 종교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불교의 교리는 내용 면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의 과학, 최고 경지의 철학, 그리고 가장 높은 차원의 종교성을 담고 있다.
◆과학은 자연의 이치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그런데 불교는 우주이치를 관통하는 가르침이기 때문에 교리 그 자체가 자연 이치요, 과학이다. 현대의 첨단과학은 불교의 화엄사상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는 수준에 와있다. 앞으로 인연법, 공이론, 윤회론, 영체론, 업력이론 등의 불교 교리를 과학이 따라와 주어야할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현대과학에서 주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이라는 4가지 힘을 하나로 연결하여 설명하려는 것이 대통일장 이론이다. 그런데 불교에서 말하는 업력은 이 세계와 인간을 창조하고 지옥, 천상 등 육도윤회계를 창조한 엄청난 힘이다. 창조의 동력인 이 없력이야말로 우주만물을 있게 한 근본적인 힘이다. 어쩌면 대통일장 이론의 돌파구가 될 수도 있다. 불교는 과학자체이다. 따라서 불교가 과학적이어야 한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당연히 과학이 불교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불교는 어떻게 최고경지의 철학인가? 절학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원리나 삶의 본질 등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명제는 우리 인간의 삶의 목표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는 학문이라고 본다. 다시 말하면 인생의 근원적인 문제를 찾고 생사관을 정립하는 일이다.
영산불교는 이 문제에 대해 분명한 해답을 제시함으로써 철학의 궁극적 명제를 해결해 주는 최고의 철학인것이다. 그리고 선 반야 구사 유식학도 철학 중의 철학을 이룬다.
◆마지막으로 불교가 왜 모든 종교 중에서 최고 차원의 종교인가? 종교는 어떻게 하면 죽지 않고 영원히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는가 하는 구원의 문제가 핵심이다. 부처님의 우주적 구원력은 살아있을 동안에는 업장소멸을 통해 생사해탈로 인도하고, 사후에는 영혼의 천도를 통해 실현되는 것이다. 결국 부처님의 구원력은 우주법계 영원한 최고의 환희세계인 절대계에 불신을 두는 붓다가 되게 이끌어 준다.
오로지 부처님만이, 절대계의 궁극적 차원에 올라 공과 100% 계합하고 우주적인 지혜와 복덕을 완전히 갖춘 부처님만이 이러한 우주적 구원력을 완벅하게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불교는 실질적인 구원의 종교, 종교중의 종교가 되는 것이다. 연전 어느 유수한 종교의 수장이 부처님께 자기 권속의 업장소멸을 정중히 요청하는 사례가 있었는데 이 사실만 보아도 불교가 최고의 구원의 종교임이 증명 된다. 불교의 천도재와 정토사상은 이러한 종교사상의 대표적 사례다.
출처(소책자)/영산불교
계율철저히 지키는 현지사
우리 현지사의 생활, 정말로 완벽하게 계율 지켜.
열심히 일해.
우리 부처님이 와계시기 때문에 이 도량 깨끗이 하자.
그리고 아침 공양도 최고의 공양을 올린다.
우리 스님들이 보현행원을 실천하는 것이어.
우리 스님들은 흙 돌 꽃 등을 만질 수 없어.
우리 땡비 못 만져. 만질 수 없어.
그 놈은 죽으면 미타국에 갑니다. 그렇지만 만질 수 없어.
만지면 나쁜 기(氣)가 들어와.
영체가 100% 순도이기 때문에 아니 1000% 순도여.
이 육신도 순도 100% 청정해.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만지면 나쁜 기(탁한 기, 더러운 기)가
들어오는 것이(막 스며드는 것이) 보여.
그러면 즉각 그날 저녁이나 그 이튿날 약사부처님께서 즉각 작업해 줘(씻어 내려).
그러니까 부처님한테 폐를 끼칠 수가 없어.
그래서 정토만 갈 목표를 세운 스님들은 요크르트 우유 빵등을 안 먹습니다.
못 먹게 해. 그렇게 엄정히 지키는 중이 세상 어디에 있느냐 그거요.
어디에 있습니까?
출처/2008. 8. 23. 토(음7. 23) 큰스님 부산 법문中 발췌
현지사 오여래 불상 탱화 그리고 우리 현지궁 예불문에 대해서
오늘은 여러분이 보시는 오여래 불상 탱화 그리고 우리 현지궁 예불문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아침에 헌공다례... 여러분 여기 오여래부처님 처음 오신 분은 -야 참 이상하다. 머리가 싹 깎였네 하시죠? 그런데요 부처님께서 머리를 깎았다 탱화도 다 깎았잖아요? 그러한 불상과 탱화는 아마 이 나라가 아니라 세계 여러 불교국을 다녀도 우리 현지궁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참 이상하다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요. 없습니다.
다시 선이야기를 해서 미안합니다만은, 선불교에서는 이 마음이 부처라고 합니다. 이 마음이 부처라고 합니다. 절대계에 부처님 운운하는 것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 현지사에 와서 불상이 보면 머리가 싹 깎여버렸기 때문에 -이것이 사이버 아니냐.
-외도 아니냐 이렇게 나갑니다.
그것은 너무너무 하나밖에 모르고 둘도 모르는 전혀 무식한 수행이 없는 역사 이래로 하기야 아라한 보살을 증한 분이 안 됩니다 혼자는 자력으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보살과를 증해도 저 절대계의 부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스님이 책에 강조, 강조한 부분이 있죠? 기준이 무량광. 그것을 봐야하고. 진짜 무량광을 보고 난 뒤에는 불신을 보게 됩니다. 그렇지 않은 빛은 정토의 빛이거나 성중의 빛이거나 하늘의 빛이거나 외도의 빛입니다.
좀더 자세히 말씀드리면 무아 속 절대세계에 부처님이 계신다. 무아 속 절대세계에 계신 부처님이 진짜 부처님입니다. 3000년 전에 인도에 오신 육신을 지닌 응화신불, 줄여서 화신불이라고 그래요. 화신은 80년, 100년 이상은 이 사바에 있을 수 없잖아요. 물질로 되어있으니까.
저기 남방불교나 북방불교, 선불교나 부처님 그러면 2500년에 출세하신 석가모니불 색신, 화신을 생각합니다. 그 이상 생각하지 않습니다. 경전에는 법신까지 이야기하고 있죠. 색신에 대단히 불과를 증할 때까지 고생하시잖아요. 6년 동안 각고 수행하셨습니다. 설산에 들어가서. 그 고생을 말로 할 수 없어 .
그래서 머리가 길잖아요. 다른 절에 보면 머리가 있잖아요? 그건 그것을 상징한 것입니다. 이 몸뚱이 부처를 상징한 거예요. 그런데 현지사에서 싹 깍여 버렸거든요. 깎인 것은 저 절대계에 계시는 원만보신 부처님은 진짜 부처님은 그 불신은 전부 깎아있어요. 그 궁극의 경지까지 뚫었어요. 그래서 우리 현지궁에서는 이 불상을 역사상 처음 깎였습니다.
절대계에 계신 원만보신 상이다. 진짜 부처다. 그건 영원히 죽을 수 없고 멸도할 수 없는 부처님이시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부처님 진짜 불신 원만보신 상을 모셔야 되겠다. 그래서 모시는 것이고 탱화에도 그렇게 머리를 깎였습니다. 3천대천세계에 가장 먼저 성불하신 불과를 이루신 부처님은 중앙의 석가모니부처님이 올시다.
그 많은 부처님 중에 가장 먼저 불과르 이루신 석가모니부처님이 계시고 다보불, 법화경에 나오는 다보불. 그러면 왜 법화경에서 다보불을 말씀하셨느냐. 그 많은 부처님이 계시는데.. 다보불은 석가모니부처님 다음으로 불과를 이루셨습니다. 아주 무량겁전에 그래서 다보불을 법화경에 써놓은 거예요. 다보불 다음에 약사여래불 저쪽에 아미타불, 보명여래불. 이렇게 오여래. 그 많은 부처님 가운데 이 다섯 분이 말하자면 대표가 될 수 있는 큰 부처님이올시다.
큰 부처님 중에 부처님이시다. 그런데 모든 부처님들은 불과를 증하면 좌우에 협시보살을 둡니다. 왼쪽 오른쪽에. 그 부처님을 모시는 좌우보처를 두시는 거예요. 그런데 오여래는 좌우보처가 부처님이에요. 너무나 거룩하시고 무량겁전에 성불하셨기 때문에 좌우에 협시하시는 분들이 붓다에요. 그런데 이 오여래에 빠져있는 분이 있어요.
세 번째 불과를 이루신 부처님이 계셔요. 준제보살이 세 번째 불과를 이루셨는데 그 분의 부처이름은 칠구지불모왕입니다. 준제는 보살 이름이고. 그것을 우리가 밝혔습니다. 너무도 모릅니다. 역사 이후로. 칠구지불모왕불이시다. 준제보살님의 붓다 이름은. 준제보살님은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 역할을 하십니다. 사바세계에 하나의 부처가 탄생할 때는 꼭 오십니다. 어머니 역을 하시려고 오십니다. 현지사에 상주하십니다.
칠구지불모왕불 대준제보살. 이 분은 오여래급 이상이기 때문에 좌우보처가 부처입니다. 붓다입니다. 오른쪽에서 보좌해주시는 분은 저쪽세계가 너무 바쁘시니까 거기 남아계시고 대행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현지보살이라는 분이 대행하십니다. 아침헌공례 문장을 보면 대행 현지보살 이렇게 되어있는 대행은 대신, 대행(代行) 우보처 역을 수행한다고 해서 대행입니다. 위에 보현보살 앞에 대행은 큰 대(大)자입니다. 틀립니다. 그러니까 좌우보처가 붓다가 됩니다. 이 오여래하고 준제보살, 칠구지불모왕불, 여섯 명
그런데 한 분이 추가됩니다. 최초불이시오 삼계와이요 남섬부주 교주가 누구죠? 석가모니부처님이시죠? 석가모니부처님은 부처님의 부처님이요, 부처님의 스승이요, 최초불이요, 삼계의 왕이요 절대자올시다. 그 분의 법의 상속자가 있습니다. 그 분의 법을 승계한 상속자. 저쪽 부처님 세계에서는 태자 그럽니다. 부처님의 태자. 광명만덕입니다. 가섭존자. 그 분은 부처님의 태자기 때문에 미래제가 다하도록 태자입니다. 좌우보처가 붓다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외로는 좌우보처가 불격을 갖춘 상수보살이올시다. 보살은 다섯으로 나눈다고 했죠? 보살, 상품보살, 최상품보살, 상수보살, 불격을 갖춘 최상수보살..
오여래부처님 저 탱화 속 여러분 그 동안에 스님들한테 설명을 듣고 해서 그 이상 이야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장탱화를 보면 지장보살님! 중간에 지장보살님 있죠?
-지장보살님은 지금도 불과를 증하지 않는 보살이다. 하는 것이 지금의 여러 나라 불교계의 인식입니다. 그러나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분은 오여래 이후로 성불한 분인데 그 붓다 이름이 시방여래입니다. 시방여래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빵빵한 부처님이올시다. 그분은 정말 대단한 부처님이십니다. 지옥을 관장하는 어른입니다. 지옥을 관장하는 분들은 열시왕이지만 열시왕을 총괄합니다. 감독합니다. 그래서 시방여래불 지장보살님은 불과를 이미 이루신 분이다. 지옥 중생이 하나라도 남음이 있으면 나는 성불하지 않으리라 라고 하죠? 불교계에서는 그렇게 알았죠? 그러나 그것은 아니고. 서원을 세울 때 그랬습니다. 그 후에 완전한 불과를 증해서 불명을 시방여래라고 하고 지옥을 총관장하는 어른입니다.
그래서 저 탱화를 보면 좌우보처에 도명존자 무독귀왕이 아니고 원래의 좌우보처는 선행장보살, 자원행보살입니다. 저쪽에 너무도 일이 많기 때문에 이쪽 남섬부주 일을 지장보살이 보실 때 보좌해주시는 분이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입니다. 이것까지 파헤쳤습니다. 전혀 모르는 불교계에서는 알 수 없는, 이것은 알 수 없는 거예요.
그리고 이제 저기 좌우에 계시는 왕 열시왕. 열시왕외에 일직사자 월직사자, 판관도 있고 몇 사람을 넣어 놨습니다.
극락세계 아미타부처님께서 거기 보살님을 교화하는 어른인데 불과를 이룬 것은 다섯 번째 정도 되죠. 부처님, 다보불, 준제보살, 약사, 아미타불.. 다섯 번째 불과를 증한 어른인데 서방정토극락세계를 당신의 삼매력으로 만들어서 거기에 왕생하는 정토보살들을 교화해서 부처되게 교육하는 부처님이 아미타불입니다.
좌보처는 관세음보살인데 관세음보살과 준제보살을 한 인격체로 보는 것이 지금까지 불교의 확고한 신념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깨고 준제보살과 관세음보살은 엄연히 다른 분이다. 엄연히 다르다. 최초로 내 책에서 밝혔습니다. 관세음보살도 일생보처 보살이라고 하는데, 일생보처라는 말은 아직 부처가 안 되어서 인간세계에 가서 한번만 보살행을 하면 부처가 된다고 해서 일생보처라고 해요. 턱없는 말입니다. 그 분은 정말로 오래전에 불과를 증해서 부처명이 정법명왕입니다.
정법명왕불! 이렇게 불교는 많이 왜곡되어 있습니다. 경전을 봐도 많이 왜곡이 되어있어서. 그래서 현지사에서 하나하나 바로 잡아 나갈 작정인데 이 대장경을 손을 대려면 큰 불사인데 모르겠습니다. 하고 싶은데 시간과 여건이 주어질런지 모르겠습니다. (박수)
이 관세음보살의 좌우보처는 지금까지는 불교계에서는 해상용왕 그리고 남순동자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것도 정말 어리석은 이야기올시다.
좌우보처는 해수관음이요 우보처는 육관음입니다. 이것을 밝혔습니다. 그 분은 불격을 갖춘 최상수보살입니다. 육관음 남자요, 해수관음은 여인상으로 나옵니다. 아직 불과를 이루지 못했지만 불격을 갖춘 최상수보살입니다. 해상용왕과 남순동자가 좌우보처라하면 격이 맞지 않습니다. 남순동자는 말해준다면 하나의 동자인데, 정토보살로 봐줄 수 있는 동자인데 불격을 갖춘 최상수보살 아닙니다.
해상용왕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공부한 스승들이 열다섯 분인데 그 중에서 산왕불은 바빠서 잘 못 오십니다. 산왕대신 중에서도 가장 서열이 제일가는 산왕대신이 한국에 오신 거예요. 그래서 그 분이 우리 공부를 지도했는데 우리가 완전한 붓다로서 인가를 받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상수보살이었는데 한 급이 상승되었는데 불격을 갖춘 최상수보살이 되었다고 그분이 좋아합니다. 그리고 이 스님들도 불교계에서 전혀 모르는 이야기가 두 군데 있는데, 산왕대신은 최상수 산왕대신! 삼천대천세계 남섬부주 산왕대신을 총괄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을 또 지휘하고 감독하고 명을 하는 분, 윗어른이 붓다올시다. 산왕불. 모든 산왕대신을 총괄하는 분이 붓다로 계세요. 산왕불이에요.
저 별들 다 유정이 있거든요. 중생이 살거든요. 별마다 성군이 있어요. 별의 왕. 별의 왕을 총괄하는 분이 치성광여래부처님이에요. 우리 남섬부주 인간에 복을 주고(길흉화복) 벌도 주고 합니다.(살아있을 적에) 저 별들쪽에서. 그리고 용왕쪽에서 또 산왕대신쪽에서 그럽니다. 세 군데 각각 총수가 부처라는 것. 용왕쪽 총괄부처는 누구죠? 보명여래입니다. 오여래입니다. 그 분은 남섬부주에 와서 불과를 증한 어른이 법문한 것을 전부 수집해서 책을 냅니다. 그래서 그 책을 용궁에 보관합니다. 법보관장 보명불이라고 하죠. 우리가 알아냈습니다.
우리의 아침이나 저녁에 예불하는 예불문에 나오는 붓다들은요. 다른 절에서 희유할겁니다. 전혀 알지도 못하는 부처가 나오고 보살이 나오는데 알 수 없죠. 그래서 우리는 실질적으로 우리가 해동 현지궁 현지궁에 두 붓다가 출세할 것을 아시고 부처님께서 오셔서 지도하시고 부처님 따라서 많은 부처님이 오시고 10명의 부처님들이 와계시는데, 그분들에게 우리는 매일 공양을 올리고 예불을 봅니다.
그래서 다른 절에서 조계종, 다른 나라의 예불문은 일곱번이나 열 번, 큰스님 회상마다 12번, 절하는 수가 조계종에서는 칠정례죠. 칠정례의 례는 구체적으로 부처님께 하는 것이 아니고 부처님 이후로 소위 도를 깨쳤다고 하는 분들 다 예배의 대상으로 넣고 뿐만 아니라 과거 스님까지도 모두 예배 대상으로 합니다. 우리의 탱화나 예불문에는 대상이 오직 붓다들입니다. 불과를 증한 두 분이 있기 때문에 보살하고 성중한테 절을 할 수 없어요. 우리는 에불문이 모두 붓다입니다.
성중님만 보더라도 104위 화엄성중의 수장급만 다른 절에서 모셔놨죠? 우리 성중탱화는 104위 화엄성중의 가장 급이 높은 세 분을 포함해서 우리 현지궁 현지사를 위해 뛰어주는 12야차대장이 있습니다. 그 분을 넣고 16나한을 넣고 다섯 보살을 넣고, 정명 최상품보살 (극락세계의)을 넣었습니다. 제래 불교에서 말하는 나반존자입니다. 그 후로 많은 보살도를 해가지고 지금 최상품에 들어가 있는데 우리 현지사에서 성중들의 수장으로 넣고 있습니다.
조석 예불문이 그렇고 또 다섯 부처님과 두 탱화 속에는 많은 부처님이 계시고 좌우보처 계십니다.
시간이 다 되었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말씀 드릴 것은 조금 덧붙일 것은 그 붓다들이 절대계에 계시다가 경험세계로 나오실 때가 많습니다. 경험세계는 이 윤회세계를 말합니다. 상대세계. 경험세계로 오실 때는 원만보신으로 안 오십니다. 조금 의복이라든지 머리가 조금 달라집니다. 골격은 그대로입니다. 변장을 했다고 할까.
문수보살님을 예로 들면 지금 여기 계시는 그려져 있는 문수보살님 상은 정장을 한 상이고 거기다가 칼을 든 것까지 그려놨는데 절대세계로 가실 때는 저런 그림 중에서 칼이 없습니다. 그냥 정장으로 가시고 내려올 때는 저 모습이 아닙니다. 두루마기를 읽고 상투를 하고 칼을 지니고 있는데 삿갓을 쓰고 괴나리봇짐을 뒤에 짊어지고 짚신을 신고 계시거든요. 한 컬레는 여벌로 괴나리봇짐에 달고 그런 모습으로 나옵니다.
보현보살님은 내 책에 써놨지만 장삼을 입으시고 검정, 하얀색, 노란색이 섞인 머리를 길게 늘어뜨려서 머리띠로 메어가지고 지팡이를 삿갓 쓰고 좀 다릅니다.
관세음보살님은 경험세계에 오실 때 백의관음으로 오십니다. 한국 전통 여인상으로 오십니다. 해수관음은 대단히 화려하고 육관음은 남자상으로 오십니다. 경험세계에 오실 때는 원만보신이 아니라는 것. 그런데 필요에 따라서 절대세계에 가시거든요. 가시고 오시거든요. 관음, 지장, 문수, 보현님은 사바세계에 보살행을 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사바세계, 경험세계에서 그렇게 다니실 때는 이런 차림으로 다니십니다.
그런데 절대계에 가실 때에는 이렇게 수염, 머리가 전부 깎여져 있습니다. 두루마기도 아니고 장삼, 황금장삼입니다. 빨강가사를 수하십니다. 모든 부처님이 그렇습니다.
우리 오여래부처님은, 절대계에 계신 원만보신상을 그린다고 했는데 좌대가 금강좌로 해야 하는데 높이가 좀 그래서 연화로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창작한 겁니다.
출처/현지사 2007년 11월 22일 자재만현 큰스님 법문 中
지켜야 할 것
전번에 여러분이 모두 삼재팔난도 만나지 않고 또 그리고 소망하는 것이 이뤄지고 자식 시험에 합격하고 여러분 세간소망이 모두 있잖아요. 이런 것은 치성광여래부처님이나 산왕불, 보명여래불님께 기도해야 하는데 이럴 경우 꼭 이런 것을 지켜주세요. 이런 말을 했더니
그 중에 미역국이 들어가 있어요.
그것을 이해를 잘 못한 분들이 있다고 해서 말씀드립니다.
이 7가지는 꼭 지켜라 해서 그 부처님이 말씀하신 겁니다. 이것을 지키지 않고 불공을 드리면 그것은 소용이 없다는 겁니다.
첫 번째, 부부관계, 미역국, 계란, 생선, 말고기, 뱀고기, 개고기입니다.
계란을 딱 깨고 후라이를 해요. 비린 생선을 튀기고 미역국을 먹입니다. 미역국을 먹인다는 건, 이치는 미신으로 볼 수 없습니다. 기차가 지네 형국이죠? 그럼 기차하고 가장 상극인 것이 무엇이냐 닭입니다. 닭을 가지고 기차 속을 가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사고가 나거나 어떤 일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이건 미신 아니라 이치입니다!!
어떤 여인이 상사병에 걸리니까 그것으로 -죽는다, 산다고 하니 가족 중 한 사람이 약을 구하려고 다니다가. 정자에서 장기를 두고 있는 할아버지들에게 물어봅니다. 좋은 약이 무엇이냐 하니 어떤 할아버지가 ‘차’(장기 말 차)를 주더라는 겁니다. 차는 어떻게 가죠? 앞으로 쭉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뭇대기 차를 주면서 이것을 끓여 먹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끓여 먹었더니 나았어요.
미역은 미끌미끌해요. 올라가려면 올라가집니까? 미끌미끌해요. 자녀가 혹 입시나 남편이 승진시험볼 때 미역국을 끓여주면 여지없이 떨어진다는 겁니다. 이것은 이치입니다. 미신부분도 많습니다. 그것은 배격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우주 만상 만물을 운행하는 근본원리, 이치, 이법이 있습니다. 이것을 거스르면 안 됩니다. 자연의 이치를 알아두세요.
출처/현지사 2007년 11월 22일 자재만현 큰스님 법문 중 발췌
목신과의 대화
무자년 O월 O일, 광명 만덕 큰스님은 주지, 총무와 함께 강원도 홍천으로 가서 노송나무 30그루를 사놓고 오셨습니다. 현지사 도량에 심을만한 큰 소나무가 있다 해서 다녀오신 것입니다. 그 노송나무에는 목신이 10명이나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큰스님과 목신들 간의 대화입니다.
“이것 보시오 목신님들, 당신들에게 상당히 미안하게 됐구려. 인연이 다하여 당신들 노송나무를 현지사 대적광전 도량으로 이주해야겠소.” -만덕 큰스님
“인연이 다하여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한다면 갈 곳을 찾아보겠습니다.” -목신들
그러나 나머지 여섯 목신들은 떨떠름한 기분인지 대답이 없었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살아온 정든 집을 떠난다는 것이 여간 힘든 것 같지 않아 보였습니다. 마음이 아파 불 세존 석가모니부처님께 청을 드렸습니다. 보다 나은 하늘로 보내주시라는 간청이었습니다. 목신은 욕계하늘 3하늘 하품쯤에서 내려옵니다. 가끔은 무주고혼들도 나무를 집으로 삼고 지냅니다. 3하늘 사람이 목신으로 와 있는 것은 어떤 사명을 띠고 오는 것입니다. 이 날 불 세존의 반승낙을 받았습니다.
사실 백 년 넘은 노송을 함부로 베는 일은 위험이 따릅니다. 이것을 집으로 삼고 사는 목신에게 얻어 채여 목숨까지도 잃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며칠 전에도 우리와 거래하는 나무농원 사장이 우리에게 팔 욕심으로 잘생긴 노송나무를 파왔는데 나무를 파낸 사람이 갑자기 피를 토하고 돌연사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삼매에 들어 관觀해보니 그 노송나무에 여자 목신이 있었습니다. 여자 목신은 사람을 죽인 큰 죄로 3하늘에서 명부로 즉시 압송되어 하지옥에 떨어졌고, 죽은 인부는 현지궁 현지사와 관계된 일이기에 부처님께선 그를 6하늘로 올려줬습니다. 이런 사건들로 인해 큰 노송들을 사 옮겨올 일이라면 큰스님께서 꼭 출타하십니다.
다음 날 아침 부처님 공양시간이 끝날 즈음, 낯선 10명 하늘 신들이 큰스님께 넙죽 삼배합니다. 각기 다른 모습과 얼굴들이지만 향 맑고 깨끗했습니다. 어제 홍천에 가서 본 노송나무에 앉아 있던 목신 4명과, 불만이 가득 했던 6명이었습니다.
잠시 후, 부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태자 광명은 들으라, 태자가 어제 청을 올린 목신들에 대한 말이 기특해서 선처하기로 한다. 홍천 노송나무에 살고 있었던 목신 10명은 본래 3하늘 신선세계 하품 하에 있었는데 나의 위신력으로 3하늘 선계 중품 중으로 명한다. 이들은 모두 앞으로 3천년 수명을 늘린다. 착한 마음을 내어 은혜를 갚으려는 내 아들 태자 광명을 위해 오늘 아침 공양에 참석시켜 태자를 보게 하고 저들은 이제 선계로 떠난다.”
떠나면서 목신 10명이 하는 말이 “이렇게 높은 어른인줄 몰라봤습니다. 우리들이 나무 옮기는데 끝까지 도와드리고 떠나면 어떨까요?”
세존께서는 “아니다. 그냥 떠나라.” 명하셨습니다.
여기서 삼계 왕이신 부처님의 위상을 이해하기를 바랍니다. 부처님은 실로 절대자이신 것입니다.
이곳 현지사의 2만여 평 부지에 소나무 약 1천 그루를 사다 심어놨습니다. 더러는 죽어가는 것이 마음 아픕니다. 소나무를 죽이지 않으려고 백방으로 노력하는 광명 만덕 큰스님을 딱하게 보셨는지 불 세존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큰스님의 걱정 근심을 덜어 주셨습니다.
숲 속 요정
요정은 키가 120cm 정도이고 나이는 15세에서 20세 사이로 보입니다. 때로는 아주 어리고 귀엽게 보입니다. 겨울에 온 천하가 백색으로 덮혀 있을 때 밝은 해가 뜨면 눈이 부시도록 환하고 반짝반짝하는 것이 요정의 몸뚱이 빛입니다.
요정들은 3하늘 신선계 하품 상의 하늘 사람입니다. 남섬부주 소나무 숲을 좋아하여 내려와 거주하면서 착한 이들을 도와줍니다.
악을 멀리하며 불법을 좋아하여 부처님 법문 듣는 것을 최고로 압니다. 매달 음력 8일, 23일 자재 만현 큰스님 법회에는 모두 참석해서 듣습니다.
착한 요정 30명이 간부급이 되고 300명이 현지사 소나무 관리자로서 불 세존의 임명장명패를 받았습니다. 요정들은 못할 신통이 없습니다. 특히 소나무 살리는 일에는 노하우가 있습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2권 中
가섭-광명 만덕
그리고 아난-자재 만현
- 부처님들, 현지사에서만 공양드신다
광명 만덕, 자재 만현 큰스님은 금생에 불과를 이루셨습니다.
무아 속 절대계에 불신원만보신불을 두고 계십니다.
가슴에는 만卍자가 빛을 방광하고
양미간에는 옅은 청색, 지혜의 무량광 빛이
분사噴射되고 있습니다.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부처님들과 똑같이 어깨를 나란히 합니다.
아침 4시 30분, 부처님들께 공양을 올립니다. 12년째 하루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우리 교주 불 세존 석가모니부처님, 좌우보처 환희장마니보적불 문수보살·청정행왕불 보현보살, 다보불 좌우보처 유리왕불 청정보살·상원왕불 보승보살, 칠구지불모왕불 준제보살 좌우보처 법상불 지혜보살·권모상왕불 승행보살代行 현지보살, 약사유리광여래불 좌우보처 일광불 일광변조보살·월광불 월광변조보살, 아미타불 좌우보처 정법명왕불 관세음보살·정명행원불 대세지보살, 보명불 좌우보처 사자원불 보장보살·장엄승불 원력보살, 시방여래불 지장보살 좌우보처 선행장보살·자원행보살代行 도명존자·무독귀왕, 산왕불 좌우보처 산성보살·삼행보살, 치성광여래불 좌우보처 일광보살·월광보살, 광명불 좌우보처 명상불 무현보살·화광불 모현보살, 자재통왕불 좌우보처 상행보살·정행보살……께서 오셔서 공양을 드십니다.
불과를 이루면 좌우보처가 배정이 됩니다. 오여래, 준제보살, 광명불은 좌우보처가 붓다입니다. 여기서 다보불의 좌우보처, 준제보살의 붓다 이름, 약사여래불의 좌우보처는 일광불·월광불, 대세지보살의 붓다 이름, 보명불의 좌우보처, 지장보살은 무량겁 전에 불과 이루시어 붓다 이름이 시방여래불이고 좌우보처는 선행장보살·자원행보살이지만 명부의 일이 바쁘신 관계로 도명존자·무독귀왕이 여기 사바세계에서 대행하신다는 점…….
일찍이 2600년 불교 역사에 알려지지 아니한 점들을 현지사에서 밝혀 놓았습니다.
이 사바세계의 하고 많은 사찰 중에서 이곳 영산불교 현지궁 현지사 광명 만덕 큰스님과 자재 만현 큰스님의 공양을 받으십니다. 천녀정토에서 내려 온 8명의 시녀30대 안팎가 시중듭니다. 부처님들 공양이 끝나면 부처님 나라에서 내려온 차담을 올립니다. 좌담하시면서 차를 드십니다. 여기 현지사 대중스님들은 아침 3시에 일어나 도량 안팎으로 대청소를 하여 부처님들께서 현신하시는 도량을 깨끗이 하고 공양을 짓습니다. 부처님들께서 아침 공양을 드실 때까지 대중스님들은 청정수 마시는 것까지도 금합니다.
광명 만덕 큰스님과 나은 부처님들께 공양을 올린 후, 매일 아침 명부에서 서열 따라 보내주는 아귀 한 명씩을 하늘로 천도해 올려 보내는 동시에, 모든 아귀들에게는 오여래부처님의 위신력으로 공양을 줍니다.
아귀들에게 불과를 증한 이가 베푸는 공양인 것입니다. 이것은 부처님 당시에도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이는 배고프고 심한 갈증으로 고통 받는 그 수많은 아귀들에게 공덕을 짓는 일입니다. 부처님의 위신력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영산 당시 가섭·아난이 줄곧 해온 일입니다. 이 일은 나, 자재 만현이 세상을 떠난 이후로는 중단될 것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2권 中
현지궁에 현신 ‧상주하시는 궁宮이 있습니다
이곳 현지궁 현지사 큰 법당 불단 벽 안쪽에는 무아 속 절대계에 계시는 여러 붓다님들께서 여기 남섬부주 경험상대세계 한국 땅 춘천 현지궁에 현신‧상주하시는 궁宮이 있습니다. 그 안에는 명경지수와도 같이 청정하고 깨끗한 물이 3탕으로 흐릅니다. 새벽에 올리는 남섬부주의 제자의 공양을 드시고 천녀들이 가져온 차 공양을 드십니다.
우리 교주 불 세존께서는 모든 불 보살님들로부터 보고를 받고 하루 일과를 지시하십니다. 부처님들 회의시간은 거의 2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사람들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산세 수려하고 강물 흐르는 명소에 자리한 절을 성지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곳 현지사는 보명여래부처님오여래 중 한 분, 법보를 관장께서 자리 잡아주셨고 삼팔선 이북에 있습니다. 땅의 지순한 기氣와 부처님 세계에서 쏟아지는 빛무량광 기둥이 맞닿는 세계에서 유일한 성지 중의 성지입니다. 이런 곳이라야 붓다가 출세합니다.
붓다는 그 싱그럽고 청정한 기를 섭취해야 합니다. 그리고 진신사리가 아닌 붓다의 원만보신이 거의 상주하다시피 하는 그러한 최상의 성지인 것입니다.
인도 영축취산에는 영산궁이 있습니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남섬부주 교주이십니다. 그래서 그 영축산 영산궁에서 수많은 상품보살을 교화해오고 계십니다.
이번에 여기 한국 땅 현지사에 두 분 제자가 불과를 증하게 되어 이곳에 오셔서 상주하고 계십니다. 부처님붓다이 계시는 곳이기에 궁이라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완전한 복덕을 구족하셨으므로 곧 다이아몬드, 노다지 광입니다.
이 궁에는 지금 두 분의 갓 불과를 이루신 광명 만덕 큰스님과 자재 만현 큰스님, 밑으로 극락세계 보살로 상품의 무량尼 스님과 27품으로 인가받은 혜명尼 스님이 있고, 금년 초에 인가 받은 무루 대아라한 상운尼, 선혜尼, 정수尼 스님과 영산 등 10여 명의 성중 인가를 받은 수좌를 비롯하여 50여 명의 염불행자들이 지혜와 복덕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현지궁 현지사는 외도의 눈길을 피할 수 있는 특수 유리관으로 둘러쳐져 있습니다. 이곳에선 바깥 세상과 하늘세계 모두가 보이지만 외도 하늘의 천마들에게나 마왕천에서는 여기가 보이질 않습니다. 영산궁과 현지궁의 실상은 붓다의 천안이 열리지 아니한 분은 볼 수 없습니다.
이 부처님 성지는 1,000여 명에서 10,000여 명의 성중이 도량을 항상 수호하고 있습니다. 사천왕이 출입문에서 입초立哨를 서기 때문에 어떤 마귀, 악귀, 영가鬼神들도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2권
영산불교 현지궁 현지사_의미와 사상
영산불교는 부처님께서 이 거짓 몸뚱이化身을 버리고 대열반에 드신 이후 정법이 너무도 많이 왜곡된 법난의 말세에 영산 당시 두 분의 제자가섭‧아난가 불과를 증하여 바른 교법을 펴고자 오셨기 때문에, 그리고 부처님을 중심으로 많은 불 보살과 출가 수행자들이 화합하여 하나의 회상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부처님 회상 안으로 출가하기란 선택된 분들이 아니면 무척 어렵습니다. 현지궁 현지사는 인연의 문턱이 높아서 신도 되는 일도 또한 그러합니다.
스님들은 매일 아침 3시에 일어나 도량을 대청소 한 후 현지궁에 현신하시고 상주하시는 여러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부처님을 정성 다해 모시는 보현행원을 하면서 지옥 중생을 구제하는 최고의 보살행천도재을 합니다. 그리고 빵이나 우유, 요구르트까지도 먹지 않고 부처님을 공경하며 수행해나가는 그 공덕으로 영혼체는 날로 깨끗해져 갑니다.
세계 인구는 이제 70억을 헤아리고 있습니다. 삼천대천세계에서 인간이 사는 유일한 사바세계 남섬부주 해동 대한민국 춘천시에 있는 현지궁 현지사와 인연된 불자들은 여러 과거 생에 걸쳐 부처님에 대한 선근을 심어온 이들임에 틀림없습니다.
부처님을 향한 끊임없는 찬탄‧예배‧공양을 해왔으며 불법을 전하고 널리 펴는데 최선을 다하고 수행도 게을리 하지 않은 이들입니다. 또한 세세생생 불법을 만나고 붓다 회상을 만나 윤회에서 벗어나기를 진실로 간절히 발원해왔음이 분명합니다. 금생에 다시 정법 회상을 만나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착하게 사는 현지사 신도님들은 하늘 세계를 지나, 생사윤회까지도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불자들은 연화蓮花가 진흙탕 속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며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것과 같이, 세간에 오염되지 않고 깨끗하게 살아가야處染常淨 할 것입니다.
현지사 스님들은 한 달에 5번 여러 부처님들께 공양 올리는 날, 자기 조상 천도재 모실 때, 그리고 개인적으로 부처님 공양 올리는 경우, 큰스님 법문하시는 날…… 부처님께서 많이도 업장을 씻어주십니다.
이곳 신도들 역시 그러합니다. 이것이 부처님 교단을 만난 보람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과 인연 깊은 스님이나 신도분들은 부처님의 큰 가피력에 의해서 윤회를 벗어나고, 정토에 왕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현지사에서는 우리를 따르는 불자들로 하여금 절대계에 부처님이 계심을 알게 하고, 또한 부처님의 크신 우주적 위신력을 믿고, 음계 등 오계‧십선계를 지키며, 부모 조상님께 효를 다하라고 가르치고, 나라를 사랑하도록 하며 말보다 행行을 가르칩니다.
팔정도와 육바라밀을 실행하도록 하며, 석가모니불을 봉창하는 칭명염불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현지사顯智寺는 부처님의 지혜가 오롯이 드러나고, 부처님의 지혜로써 시방세계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으로 부처님께서 지어주셨습니다. 영산불교 현지사는 법의 계율삼귀‧오계‧십선을 지키는데 있어서 그 어떤 국내외 불교 종단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그리고 보신부처님께서 상주하시는 겁劫에 하나 있음직한 그런 사찰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2권 中
영상불교의 두가지 상징물
우주적 신 불교, 우주적 진리의 신불교, 영산불교의 두 가지 상징이 있습니다.
첫째, 청정법신비로자나부처님을 모신 대적광전이 있고
둘째, 오는 음력 4월8일에 준공하게 되는 다보탑이 있습니다.
이 두 상징물은 불과를 증한 붓다가 점안을 함으로서 생명력을 얻게 됩니다. 이 두 전각과 탑은 아주 대단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전번에 청정법신비로자나부처님을 모신 대적광전을 준공해서 오늘 100일 기도 회향을 했고, 이제 다보탑 건립이 내일 모레입니다.
탑이란 어떤 탑이고, 이 탑을 왜 건립하게 된 것이냐(왜 건립을 하느냐)? 아무리 들어도 부족할 거예요. 오늘 또 말씀을 드립니다. 이 다보탑, 이것은 탑 중에 탑이라고 스님이 말씀 드린 바 있을 것입니다.
다보탑은 탑 중에 탑, 탑 중에 왕입니다. 경 중에 경, 경 중에 왕은《화엄경》이나《법화경》을 말합니다. 왜 그러느냐? 이 다보탑이 대단히 불가사의한 탑이어요. 지금 한국의 경주 불국사 이외에는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다보탑을 볼 수가 없어요. 불국사에 다보탑이 있고, 석가탑이 있는데 그 후 몇 몇 사찰에서 다보탑을 조성해 놓은 곳이 있는 줄로 압니다.
그러나 조성했다고 해서 다 된 것이 아닙니다. 새삼 힘주어서 말씀드리지만 조성을 해서 점안을 해야 됩니다. 점안이 없으면 그것은 구조물입니다. 우리 청정법신비로자나부처님, 이부처님은 빛인데 빛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원만보신노사나불을 모셨거든요. 그렇지만 점안을 하지 않게 되면 이것은 하나의 동(銅)이고, 돌이고, 철(鐵)구조물입니다. 아무 힘이 없는 거요.
여러분 그것을 아셔야 됩니다. 우리가 모신 부처님은 동불(銅佛)이지요. 점안도 불과를 증한 분이 점안을 하게 되면 삼천대천세계에 계신 많은 부처님들이 거기에다가 힘을 넣어 주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와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당신을 찾는 경우 그 부처님들이 오겠다 하는 약속이 이루어집니다. 우리 다보탑도 그래요. 다보탑도 그날(기축년 4월 초파일) 점안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불과를 증한 분이 저렇게 청정법신비로자나불상을 모시는 경우,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이라는 것은 그 의미가 대단히 깊지 않습니까. 우리의 말이 진실하다고 하는 것을 증명을 해줘야 돼요(증명을 하는 거예요).
이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어떤 부처님이 오셔서 증명을 해주는 거예요. 바로 그것이 다보탑인데 그 다보탑이 땅속을 찢고 올라 와요. 다보탑이 여러분 눈에 안보이니까 없는 것이 아니고 영적으로 실재합니다. 어디에 실재하느냐? 보정이라는 나라에 있습니다.
보정이라는 나라는 영적(靈的)개념인데 여기서 동방(동쪽)으로 한량없는 천 만억 아승지 세계를 지나가면 있습니다. 아승지라는 것은 불교에서 대단히 많은 수를 비유해요. 나유타라고도 하고 아승지라고도 합니다. 동양에서 또는 우리나라에서 아주 많은 수를 억(億)이라고 하지요. 천(千) 만(萬), 억(億), 10억, 100억, 1000억... 1000억 정도라고 하면 대단히 많은 수이지요. 고등학교에 가면 지수가 나오지요. 1000억은 10의 11승이어요.《화엄경》에 보면 아승지는 10의 105승이어요. 이 얼마나 많습니까. 한 없이, 너무너무도 많은 수를 아승지(나유타)라고 해요. 한량없는 천 만억 아승지 세계를 가야 보정이라는 정토가 나오는데,
그 보정이라는 세계의 교주가 다보부처님이셔요. 다보부처님은 항상 선정(禪定)에 들어계시는데 다보탑 속에서 선정에 들어 계셔요. 여러분, 불법(佛法)을 3차원의 세계에서 이해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불법을 이해하려면 삼천대천세계로 넓혀야 됩니다. 너무너무도 우주적인 종교이기 때문에 그래요. 그 다보탑이 지난해(무자년)음력10월15일 대적광전 개원식 때 대적광전 앞마당에서 솟아 올라온 거예요. 지금 솟아 오른 그곳에다가 조성하는 거예요.
다보불, 다보탑에 대한 경전적인 근거는《법화경》〈견보탑품(見寶塔品)〉에 있습니다.《법화경》이라고 하면 앞에서도 말씀 드린 바와 같이 경 중에 경, 그 많은 경(팔만대장경) 중에서도 으뜸가는 경을《법화경》《화엄경》그럽니다.《법화경》〈제11품〉에 다보탑을 소개해 놓고 있는데,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이시불전에 유칠보탑이 있어서, 고(高)는 500유순이나 되고, 종광이 250유순이라.”
이때 석가모니부처님 앞에 칠보탑이 있어서(다보탑을 칠보탑,보배탑, 다보여래의탑 이라고 하는 등 4가지 이름이 있어요), 높이는 500유순이나 되고(500유순이라고 하면 여러분 상상 못해. 우리의 측량으로 20,000리 정도랍니다. 탑의 높이가 20,000리나 된답니다. 우리 현지사에 솟아난 것은 이쪽의 분위기를 보고 환경을 살펴서 축소해서 올라와요. 또한 다보부처님께서 다보탑을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하게 만들 수도 있는 그런 탑이어요.), 가로세로가 250유순이라.”
다보탑은 꼭 땅에서 솟아나요. 왜냐? 앞에서 언급 했듯이 다보불이 계신다고 하는 보정정토가 여기서 얼마나 멀다고 했지요? 한량없는 천 만억 아승지 세계를 지나가야 돼. 그렇기 때문에 다보부처님이 선정에 드시고 계시는 그 다보탑이 불사를 증명하게 되는데, 청정법신비로자나부처님을 모시는 우리 대적광전을 개원할 당시 대적광전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다보탑이 올라왔느냐, 올라오지 않았느냐에 따라 판가름 납니다.
또한 우리가 불과를 증했다 증하지 않았다 하는 것도 판가름 나는 거예요. 이 어마어마한 사건마다 다보부처님이 선정에 들어 계시는 다보탑이 올라온 거예요. 앞으로 스님이 여러분한테《법화경》몇 품을 강의해 줄 것입니다. 왜 그러느냐? 지금 세계적으로 법화 행자가 많습니다. 우리나라도《법화경》을 신앙하고 사경(寫經)을 하는 신도들이 100만 여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일본은 더 많습니다. 일본은 법화사상이 대단히 호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법화경》을 보면〈28품〉으로 되어 있는데 그것을 바르게 해석 못해요. 그러니 이거 병통(病痛)입니다.
문제가 있는 곳이 약 다섯 군데입니다. 다섯 군데뿐만 아니라 모두 해석이 되는 부처님과 일문일답을 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지금 동판(銅版)으로 해서 다보탑 속에 넣어가지고 세우게 되는데 1000년, 2000년 후에 다보탑을 다시 보수할 경우 지금에 넣은 것이 나올 것 아닙니까. 그것을 2000년 후 우리 인간들이 보면《법화경》을 해석하는데 크게 도움을 받을 것입니다. 그 다보탑은 어떤 탑인가 하는 것을 말씀드립니다.《법화경》〈견보탑품〉성구(聖句)입니다.
“종지용출해서 주재공중하니(땅에서 솟아나서 공중에 떠 있어요) 종종보물로 이장교지하고(진주 같은 많은 보물로 그것을 장식하고. 보배탑이 장식되어 있어.) 5,000난순이요 감실이 천만이라(난간 수만 해도 5,000개나 되고, 부처님께서 계시는 방이 천도 되고 만도 되더라. 부처님께서 계시는 방을 감실(龕室)이라고 합니다.). 무수당번(無數幢幡)으로 이위엄식하고(한량없는 깃대로 장식을 하고), 수보영락하고(보배영락으로 드리워졌고), 보령만억으로 이현거상하고(만 억개나 되는 보배방울을 그 위에 달아 놓고), 사면에 계출 다마라발(多摩羅跋)전단향지향하며 충만세계하고(사면에서는 다마라발 전단나무 향기가 그윽히 풍겨나와 온 세계를 가득 메우고. 다마라발 전단향이라는 좋은 향내 나는 나무를 다마라발 전단이라고 함) 삼십삼천이 우천만다라화 하며(삼십삼천이라고 하는 것은 54품 하늘을 말합니다.
보배탑이 솟아오르니까 54품 하늘에서 만다라화라고 하는 꽃을 비오듯 뿌리고(비오듯 내리고)), 여재 천·용·야차·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인비인 등 천 만억종이 일체 화향·영락·번기·일산·기악 등으로 공양 보탑하시더라(하늘의 모든 팔부중과 인비인(사람인 듯 하면서 아닌)등 까지 합해서 천 만억이나 되는 대중이 몰려와 가지고 한없이 아름다운 모든 꽃과 향기로운 향·영락·번기·하늘악기를 연주하면서 보탑에 공양하시더라). 이시 보탑 중에서 출대음성해서 탄헌하기를(그때 보탑 속에서 큰 음성이 울려나와 찬탄하기를), 오! 거룩하시고 거룩하십니다! 석가모니 세존이시여! 석가모니 세존이 능히 평등대해교보살법 불선호념묘법연화경으로 위대중선하시나니 여시여시라.
석가모니 세존 여소설자는 개시진실하시나이다(이것이 핵심인데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이때 보탑 속에서 찬탄하는 큰 소리가 났어. 누가 하느냐? 다보부처님이 찬탄하셔. 어떻게 하셨느냐? 거룩하시고 거룩하십니다. 석가모니 세존이이여. 능히 평등한 큰 지혜로서 보살을 가르치는 법이며, 부처님이 호념하시는《묘법연화경》을 대중을 위해 설하시다니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법문(법설)하시는 내용들은 모두가 참이며 진실하십니다.).”
지금 법화 행자들은 여기에 꽉 매여 있습니다.《법화경》을 설할 때만 다보탑이 올라와서 이런다고 되어 있어요.《법화경》경이 그렇게 되어 있어요.《법화경》이나《화엄경》같은 위대한 경전도 시간이 많이 흐르다가 보니까 많이 왜곡이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부처님께서 그 당시(2600년전 당시) 설하셔가지고 직접 녹음해 놓으신 것도 아니고, 부처님께서 대열반 하시고 몇 백 년 만에(500년~1000년 만에) 이 대승경전이 나온 거예요.
그러다보니까 많이 왜곡이 되어 있습니다. 바이블(성경)도 그렇습니다. 일신교도들은 자기들의 바이블‘한 획·한 글자 전부가 다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것은 바꿀 수 없다. 진리이다’라고 선언합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바이블을 보세요. 많은 문제와 모순이 있잖아요. 우리 불교 경전은 그렇게 많은 모순은 담고 있지 않지만 그래도 군데군데 있습니다. 부처님 말씀이 아닌 부분이 있어요. 그러니까 선지식이 확실히 판단·분별해 주어야 하고,
바르게 해석해주는 선지식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학자들은 경전 그대로 간다고요. 한(하나) 글자도 용납 안하고, 다르게 해석하지 않습니다. 꼭 잘못된 부분을 그대로 해석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법화경》만 설하실 적에 다보탑이 솟아나와 가지고 다보불께서 증명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무자년 음력10월15일에도 다보탑이 솟아 나와서 “광명만덕·자재만현이 모신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의 불상은 진실하고 참된 것이다.”라고 선언한 것처럼, 겁에 하나 나오는 불과를 증한 성자가 청중 수 천만 명 앞에서 큰 법을 설할 때도 다보탑이 이렇게 솟아나옵니다.
내가 한 이후로 한두 번 솟아나왔을 것입니다. 다보탑이 이렇게 솟아나오면 어떤(무슨)일이 벌어지느냐? 그때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붓다님들이 허공에 운집합니다. 경에는 부처님의 분신이라고 되어 있어요. 그러면 분신이 뭐냐? 학자들이 이 분신을 해석 못합니다. 두 가지로 해석합니다.
첫째, 학자들은 분신을 석가모니부처님의 백 천 만억 화신이라고 해석하는데 그건 아닙니다. 둘째,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불과를 증하신 이후 당신의 위신력으로 교화를 하고 구제해서 불과를 증하도록 하여 붓다가 된 그 붓다님들을 분신이라고 합니다.
부처님의 분신 그럽니다. 분신의 해석을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그것만 알아도《법화경》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법화경》을 읽을 때 분신이라는 말이 많이 나와요. 삼천대천세계 그 많은 부처님의 분신들이 운집했다 그거요. 석가모니부처님의 화신이 아닙니다. 백 천 만억 화신이 아니고 석가모니부처님으로 인해서 불과를 증한 붓다님들을 말해요. 왜 분신이라고 하느냐? 붓다(부처님)들은 몸뚱이가,
몸뚱이를 이루고 있는 빛이 똑같아요. 중생들의 몸뚱이는 물질인 지․수․화․풍으로 되어 있지요. 사대색신(사대)이라고 그래. 그런데 붓다는 억종광(무량광)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억종광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삼세의 모든 부처님들은 동일한 거요. 모두 똑같은 거요.《법화경》제5권 제16에〈여래수량품〉이 있습니다. 거기에는〈여래수량품〉때문에《법화경》이 최고라고 하는 거요. 그러면〈여래수량품〉이 무엇이기에《법화경》이 최고이고, 도대체〈여래수량품〉의 내용이 무엇이냐? 무엇을 썼기에 모든 경(經)중에 왕이냐?《법화경》으로 하여금 경 중에 왕이 되게끔〈여래수량품〉이 밑받침을 해준 거예요.〈여래수량품〉이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 “
부처님이 되면(불과를 증하면) 영원히 환희의 세계에 있다.”백 천 만억 나유타 겁이 지나가건, 그것 곱하기 나유타 겁 하던, 미래제가 다하도록 멸도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것이〈여래수량품〉입니다. 그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견보탑품〉이 나오고, 그다음에〈종지용출품〉이 나오고 그럽니다.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이 이해를 못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이야기 하겠지만,《법화경》에서는 그렇게 말해 놓았어. 그런데 우리 현지사에서는, 불과를 증하면 왜 부처님은 수명(목숨)이 미래제가 다하도록 무량한가? 그 이유가 무엇인가를 밝혀 놨어요. 그 이유가 무엇이냐? 몸이 억종광이라는 빛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죽을 수가 없는 거예요. 육신은 물질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장기(臟器)가 고장나고, 수명이 다하는 거예요.
그런데 부처님은 빛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죽을 수가 없는 거요. 억종광(무량광)이라고 하는 빛은 빛 중에서도 빛이요, 불가사의한 빛이어요. 스님이 너무도 많이 강조해서 아실 거예요. 그 빛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여래(세존, 붓다, 부처)가 되면 그 수명이 미래제가 다하도록 멸도 함이 없이 영원 하더라. 그것을 현지사에서 밝혀 낸 거예요. 그 정도의, 그런 큰스님이 있기 때문에, 그 스님은 불과를 증했기 때문에 다보탑이 솟아 오른 거예요.
다보탑은 불과를 증한 분이 아니면(부처님이 아니면), 부처님이 큰 법을 설하지 않으면 절대로 솟아오르지를 않아. 그런데《법화경》에서는 후세(후 내세)에《법화경》을 읽고, 설하고, 해설하면 솟아나온다고 되어 있어. 그것은 아닙니다. 그 부분은 아니어. 이것은 우리가 확실히 부처님한테 일문일답을 해서 확답을 받은 것이어. 2년 전에 부산에서 영산불교 개교 창교식(선포식)이 있었지요. 그때 다보탑이 솟아올랐어. 왜 솟아올랐느냐? 불과를 증한 분이 이렇게 사바 세상에 나타나잖아요. 붓다(부처)는 백 천 만생, 아니 겁에 하나 나와요. 겁에 하나 나오기 때문에 이건 아주 소중한 남섬부주 꽃이요, 우주의 꽃이어요.
그렇기 때문에 붓다들 서로 간에 그 끈끈한 정은 여러분들이 아들딸을 사랑하는 것에 비교가 안 돼요. 하나의 가족에 있어서 모자(母子) 모녀(母女)관계 이상입니다. 그리고 이 다보탑은 왜 솟아오르느냐? 방금도 말씀 드렸듯이 불과를 증한 분이 큰 법을 설할 때(정법을 설할 때) 정법을 펴기 위해서 올라오는 것입니다. 주로 법이 다 망가진 말세(오탁악세)에 법을 다시 펴기 위해서 부처(붓다)가 탄생하는 거요. 그래서 이 큰스님이 말씀 하신 것이 옳다는 것을 삼천대천세계에 증명해 주는 거요. 그때 삼천대천세계의 많은 부처님들이 허공을 메워가지고 그것을 또 증명을 해요.
그 다음에 올라오는 것은 무엇이냐? 사바세계의 아래 허공에 있는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본화 보살들이 또 땅속에서 올라와요. 장면이 세 가지가 있어요. 본화 보살이라는 것은 본지(본체계)에서 부처님을 옹위하는(보살행을 하는) 큰 보살들을 말해요. 화엄 십지에서 보면 십지 혹은 등각정도 올라가는 보살들입니다. 우리 현지사에서 나열하는 보살품계로 보면 모두가 최상품 보살 혹은 상수보살, 최상수보살들이어요. 그런데《법화경》에 보면 본화 보살들은 어마어마한 위신력이 있다고 했어요. 문수·보현보살은 따라가지 못 한다고 했어요.
그것도 잘못된 표현입니다. 문수·보현은 불과를 이룬 분이거든요. 어쨌든 본화 보살들은 위신력이 큰 보살들이고, 그런 분들이 한없이 올라온단 말이어요. 그때(그날) 이제 점안을 합니다. 아까 우리 광명만덕님께서 여기 설법전에 안 오신 이유는 대적광전에 가셔서 삼매에서 오늘 오신 여러분들의 업장을 씻어주려고 가신 거예요. 이 업장은 불과를 증한 분이 이 세상에 나왔을 때 한번 업장을 씻어 줍니다. 왜? 그때 부처님이 오시니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기회가 없어요. 여러분, 스님이 항상 이야기 하지만 이 부분은 꼭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그리고 100일 전까지 하면 아마 여러분들의 업장을 7번 이상 씻어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마 천도재를 7번 정도한 복을 받았을 거요.
다보탑이란 무슨 탑인가? 왜 우리가 다보탑을 건립해야 되는가? 이 부분을 아셔야 됩니다. ‵보정′이라는 정토는 그렇게 멀리 있지만 순식간에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다음에 서방정토극락세계는 우리가 사는 사바세계에서 얼마나 멀지요? 10만억 불토를 지나가면 서방정토극락세계가 있다는 말이 맞습니다. 영적인 이야기입니다. 영체개념에서 서방으로 십만억 불토를 지나가면 서방정토극락세계가 있어요. 그 교주는 아미타부처님이시지요. 그다음에 동방으로 십 항하사 불토를 지나면 약사여래부처님께서 계시는 정유리세계가 있어요.
항하사라는 것은 인도 간지스강의 모래를 항하사라고 합니다. 항하는 간지스강을 말해요. 항하사 불토를 지난다는 말은 무슨 말이냐? 불국토를 항하사만큼 많이 동방으로 지나가야 약사여래부처님이 계시는 정유리정토가 있다 그거요. 우리 현지사 단월님들이 현대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아픈 병이 있어서 약사여래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면 약사부처님께서 친히 오셔서 시술을 하시는 건 아시죠? 그러니까 이 불교라는 것이 우주적인 종교예요.
한량없는 천 만억 아승지 세계를 지나는 보정이라는 나라도 다보여래부처님이 계시잖아요. 그리고 서방으로 십 만억 불토를 지나가면 서방정토극락세계라는 정토세계가 있어요. 거기는 아미타부처님이 많은 보살님을 붓다 되게끔 교화하는 세계입니다. 그다음 동방으로 십 항하사 불토를 지나면 약사여래부처님께서 계시는 정유리세계가 있어요.
이 사바세상에서 볼 때에는 한없이 멀고먼 저쪽 공간에 부처님들이 모두 계시고, 그뿐만이 아니라 삼천대천세계 모든 부처님께 우리가 가끔 공양을 드리는데 그 삼천대천세계(모든 세계)에 계시는 부처님들이 또 오신다고요.
그렇기 때문에 이 부처님은 뭡니까? 정법을 수행해서 불과를 증한 분들이어요. 부처님들께서 거기 계신다는 말은 그걸 중심으로 해서 교화를 하시고 계신다는 말이어요. 그래서 불교를 우주적인 종교라고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불교는 우주적인 종교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들으셔야 돼요. 또한 우주적인 메타종교라고도 말해요. 메타라는 말은 총(總), 초월(超越), 모든 종교·모든 사상을 전부 포용하고 초월한, 전 우주적인, 그런 뜻이어요. 우주적인 메타종교가 불교입니다. 불교가 정법이고 정법이 불교인 거예요. 그런데 지금의 불교는 어떻게 되었느냐? 내 책에서 그렇게 강조하고 내가 시간을 통해서 가끔 이야기 하지만,
지금의 불교는 나약한 불교·쇠약한 불교·반 쪼가리 불교·왜소화된 불교로 되어 버렸어. 왜냐? 보면 알아요. 모든 경전을 보면 부처님에 대한 완벽한 설명이 없어요. 여기 조금 저기 조금 있어요. 그러나‘마음이 부처다’라고 하는 선불교(禪佛敎)의 시각에서 마구 그냥 때려 버린 거예요(선불교의 시각에서 일괄적으로 해석해 버린 거예요). 선불교의 저 사람들은‘부처는 없다. 마음이 부처다. 마음속에 깨달아서 아는 성품이 붓다(불)이다.’라고 해요. 심각 왈불 그래요. 그렇게 봐버려요. 그리고 법(法)은 뭐냐? 우리는 법을 이렇게 봅니다.
부처님의 교법, 부처님이 중생을 교화해서 정토로 붓다로 인도하는 그 가르침을 법(다르마)이라고 합니다. 저들은(선불교) 마음속에 바를 정(正), 바른 마음을 법이라고 합니다. 또 스님은 선불교에서 올바른 이 개념 규정(청정)을 말해. 마음속에 청정한 그것이 있습니다. 머리 깎고, 법복 입고한 이걸 이렇게 안 봐. 그런데 우리는 ‘선불교야! 그렇게 보지마라. 어찌 그렇게 옹졸하게 보느냐. 그것을 뛰어넘어 가라. 그렇게 해석하면 말이 안 돼. 10점 밖에 안줘. 뛰어 넘어가라.’
출처/2009.02.19.목(음1.25)큰스님 춘천 법문중 발췌
붓다의 대적정삼매
밀장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붓다 되는 마지막 삼매의 관
문을 여기 소개합니다
백천 가지도 넘는 삼매를 자유로이 수용하면서 마지막 몇
가지 삼매의 관문을 통과해야 대적정삼매에 듭니다.
이 마지막 삼매의 관문 중 하나만을 예로 듭니다.
"1,000m도 더 되는 터널이 있습니다. 양 옆 그리고 위쪽
으로는 등나무가 무수히 뻗어 있고, 수천 마리의 성난 코브라가
머리를 안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겨우 한 사람 통과할 수있는 이
무시무시한 터널을 통과하는 시험입니다."
몇 백 년, 몇 천 년 만에 혹은 겁에 한 분 나올까말까 하는
붓다의 시험보살도를 완성하여 이제 남은 수련,그것은 삼매력
시험입니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정색하시며 수행자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이 터널을 통과하지 못하면
우린 다음 생을 기약하며 헤어진다."
수행자는 자기의 네 영체를 하나로 하여 백천삼매를 나고
든 삼매의 힘을 다하여 오직 일심 칭명 석가모니불을 봉창하며
쏜살같이 터널을 뚫고 질주합니다.
온 몸엔 땀방울이 비 오듯이 흘러내려 옷을 흥건히 적셨습
니다. 터널밖에서는 모든 사부님들오여래 그리고 문수.보현
관음. 세지... 께서 눈물을 흘리시며 박수를 보냅니다.
모든 시험에 통과한 수행자는 해인삼매보다 백천만 리 떨
어져 있는 대적정삼매를 통과하면서 부처님 세계에 올라 붓다
인가 증서를 받고 삼천대천세계 붓다 대장에 자기 불명이 기입
됨을 확인합니다.
자기 불신이 절대계에 어린아이로 자라남을 봅니다. 자기
의 네 영혼체는 빛덩이임을 확인합니다. 부처님들의 축제 한마당이
벌어집니다. 하늘 꽃비만다라화등는 1m이상 내리쌓이고 성중들은
폭죽을 터뜨려 붓다의 탄생을 진심으로 봉축합니다.
출처/비교종교학
광명만덕님은 붓다입니다
이것을 오늘 내외에 선언합니다. 여러분, 붓다는 그 법위가 엄청납니다. 깨달음을 넘어서, 보림이 완성되어서, 무아행을 해서(두타행을 해서) 음계를 잘 지키고, 모든 중계를 선지한 후에 보림이 되어서, 이 몸에 대한 착(着)이 떨어져버린 자리가 아라한입니다. 그러니까 깨달음에서 이제 시작하는 거예요. ‘깨달음은 공부의 시작이다’하고 내 책《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권에 제일 먼저 일성(一聲)을 했습니다(먼저 말을 했을 겁니다). 깨달음이 끝이 아닙니다.
모두 그렇게 보는데, 그것은 절대 아니고, 깨닫고서 이제 보림을 잘 해서 탐․진 번뇌의 뿌리를 뽑아 놓고, 이 몸뚱이에 대한(나에 대한) 착(着)이 떨어져버린 그 자리가 아라한입니다. 이제 거기가 아라한이어요. 그렇기 때문에 아라한의 자리에 올라간 성자는 몇 십 년 만에 이 세상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합니다. 아마 내 책에 말해 놓았을 거예요. 그게 맞습니다. 아라한에서 보살이 되는 그 공부는 이제 이타 행으로 들어가야 됩니다. 보살도를 해야 됩니다.
모든 것이 전부 공(空)하다는 것을 알고(이미 착이 떨어져버렸으니까 그렇게 되지요), 대상에 대해서 착(着)하지 말고, 이제 남을 위해서 희생합니다. 남을 위해서 희생하는 거예요. 이게 보살이어요. 그래야 보살과(菩薩果)를 얻습니다. 그런데 자력으로는 안 됩니다. 자력으로는 절대 안 됩니다. 이것도 '자재 만현'이 처음 주장하고 이야기하는 것일 겁니다. 아라한에서 보살이 되는 것은 반드시 부처님의 가피가 있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될 수 없습니다. 그 이유가 다섯 가지 있다고 했지요.
나는 그 목사를 뒤로하고, ‘내가 불과를 증했다’고 하는 두 사람을 만났습니다. ‘내가 부처다’하는 그런 사람을 두 사람 만났어요. 잘 만난 거예요. 한 사람은 우리 고향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서울의 여자입니다. 그 사람들에 대해서 정말로 깊이 연구하고 팠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을 전부 뒤로 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그러한 '만현스님'의 법문을 듣는 거예요.
이 사람(만현스님)처럼 외도(사마외도, 사이비)를 분간할 수 있는 깊은 안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전혀 없습니다. 내가 그렇게 공부해보고, 소위《화엄경》의 선재동자처럼 많은 선지식을 두루두루 찾아서 담론(談論)해보고, 연구해보고, 그들이 나를 친형제처럼 가까이 있으려고 해도 나는 정에 끌리지 않았고, 냉철하게 정사(正邪)를 분간하고 해서 그분들을 멀리했습니다.
다음에 광명 만덕님을 만난 거예요. 내가 쓴《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Ⅱ》권을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깨달음은 공부의 시작이고, 공(空)을 깨치고 공성을 증득했다고 하더라도 저 절대계에 32상을 두지 않으면 붓다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30년, 40년, 50년 동안 내가 공부한 결론입니다. 그런데 이것이《법화경》에 있습니다.《법화경》〈비유품〉에 우리 부처님께서 사리불 존자에게 말씀하신 부분이 있고, 사리불 존자는 그때까지 공(空)을 깨치고 공성을 증득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제 공부가 다 되었다고 생각을 했는데, 부처님께서 “저 절대계에 32상 색신을 두어야 붓다이고, 완전한 멸도이다”라고 하니까 사리불 존자가 당황한 거예요. 그러나 수기를 받으면서 ‘우리 부처님 말씀이 옳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사리불 존자 등 십대제자 내지 십 육성이 공부를 한 거예요. 정진해 들어간 거예요. ‘아! 내가 아직은 불과(佛果)가 아니구나. 부처가 아니구나. 이제 공성을 증득한 정도 가지고 나는 부처라고 생각했는데 아니구나’하는 것을 알았다는 거예요. 여러분, 지금 이 말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지금 세계의 불교에 대해서 자재 만현이 많이도 한탄을 하고 있잖아요. 세계의 불교가 너무너무도 왜소화 되고, 왜곡되고,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어가지고 자기들이 최고라고 합니다. 자기들이 정법이라고 하지요. 그 우물 안에서(우물을) 뛰쳐나올 수 있어야지요.
객관에 서서 봐야지요. 깨달음은 이제 시작입니다. 결코 시작입니다. 내가 항상 이야기 하지만, 깨달음을 궁극의 목표로 알고 있는 지금의 불교는 21세기 지성 시대의 인류를 향도 못합니다. 모든 종교가 다 그 목표입니다. 표현은 다르지만 그 목표예요. 유교도 깨달음을 이야기하고 있고, 도교도 힌두교도 자이나교도 그렇고, 신비주의의 이슬람교도 그렇고, 영지주의의 기독교도 그렇고, 카발라 정도로 가면 유대교도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깨달음을 가지고 이것이 최고의 목표인양 생각하고 수행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뭘 모르는 사람들이어요. 마치《법화경》의 사리불께서 스스로 참회한 것처럼 그 사람들은 참회해야 됩니다. 절대계에 32상을 둔 자기불신(自己佛身)을 얻어야 거기가 이제 진짜 불과(佛果)입니다. 그런데 ‘내가 부처다’하는 그 몇 사람, 또 추종하는 사람들이 ‘이분은 불과(佛果)를 이룬 분이다, 이분은 어떤 부처님의 후신이다’하고 맹신을 하고 있는데 아니었어. ‘아니다’하고 내가 결론을 내린 것은 정말로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니었어요. 여러분, 정사(正邪)를 분간하는 잣대를 스님이 가끔 이야기할 거예요. 스님이 이야기 했을 겁니다.
▸음계를 봐야 됩니다. 그 수행자가(그 도인이, 부처라고 하는 분이) 정말로 깨끗이 살았는가, 지금 현재 깨끗한가, 모르는 사이에 몰래 음행을 하지 않는가, 하는 것을 봐야 됩니다. 이 음계가 잣대올시다. 아셨지요? 잣대입니다. 스님이 아마 비유한 말이 있을 겁니다. 표현이 좀 어색해서 죄송합니다만, 수행자가 음계를 파한다는 것은 청정수 한 컵에다가 똥 한 방울을 떨어뜨리는 것과 같습니다. 청정수 한 컵에다가 똥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먹을 수 있겠습니까? 먹을 수가 없어요. 음계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런데 외도, 사이비의 교주들, 지금까지 우리 인류 문화사에 알고 모르고 간에 출세했던 그 많은 사이비, 외도의 교주들은 거기에 거의 다 걸릴 것입니다. 거기에 거의 다 걸립니다.
▸그 다음에 부처님을 모르면 그건 아닙니다. 부처님을 알아야 됩니다. 부처님이 얼마만큼 거룩하시고 위대하신 어른인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보세요. 부처님한테 말로만 귀의했지, 부처님을 얼마만큼 철저히 따르고 귀의하고 하는 가를 봐야 됩니다. 우리 불교, 지금의 한국불교라든지, 저기 미얀마 태국 스리랑카의 불교 등이 부처님에 대한 믿음이 얼마만큼 되는 줄 아십니까? 우리 영산불교에서 이야기하는 부처님 신앙(믿음)을 따라 올 수 없습니다. 부처님의 위대한 것을 몰라요. 겨우 2600년 전에 이 세상에 오셨던 우리 부처님, 인간 역사 안의 붓다밖에 몰라요. 우리는 그게 아니어요. 절대계에 계신 우리 부처님을 알고 있어요. 그 어마어마한 인격, 지혜, 자비 공덕, 항하사의 신통묘용, 거룩하신 그 상모, 그리고 그 많은 겁을 내려오면서 많은 붓다와 보살을 내신 그 위대함, 우리 현지사에서는 이것을 알아요. 이러지 않으면(이런 것이 없으면) 절대로 정법이 아닙니다.
저기 히말라야 산에 초인들이 많이 살아요. 500살, 1,000살, 2,000년을 산 사람도 있어요. 온갖 신통을 다해요. 나는 그분들을 절대로 붓다가 아니라고 규정을 했어요. 그분들은 붓다가 아니어요. 그분들은 부처님을 숭배하지 않고, 자기가 부처인양 해요. 부처님 세계를 몰라요. 그렇기 때문에 아니라는 것이어요. 또한 절대계에 불신(佛身)이 없어요. 고로 거기는 아니어요. 그리고 사람의 영체(영혼체), 네(4)영혼체를 몰라요. 우리같이 속속들이 몰라요. 우리 영산불교에서 처럼 몰라요.
영혼체를 긍정하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 영산불교가 처음이어요. 힌두교, 자이나교에서 많이 알아요. 많이 알면 알수록 우주의 신비로운 그 비밀을, 우주의 이치를 많이 아는 거예요. 그래서 힌두교를 위대하다고 봐요. 힌두교는 창조론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기독교 등 저 일신교의 창조론하고 질이 달라요. 힌두교는 굉장히 우수한 종교예요.
인간이 육도에 윤회하는 것까지 알았어요. 그래서 그 주체가 영혼체라는 것까지 알았어요. 우리 불교, 부처님 세계에 가면 그것은 상식이어요. 그런데 어떻게 이게 왜곡이 되어가지고 무아설(無我說)이 자리를 잡아버렸어요. 나(我)가 없다고 하는 무아설(無我說), 부처님께서 무아설(無我說)을 말씀하신 것은 그런 의미에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어요.
중생이 죄를(업을) 짓고, 그래서 육도에 윤회하니까 이 고통의 세계에서 건져주시려고 무아(無我)를 말씀하신 거예요. 나(我)가 없으니까 이 몸뚱이에 착(着)하지 말라고. 너, 아무리 봐라. 나(我)라는 것이 있는가. 오온(五蘊, 色受想行識)으로 이루어진 이 몸뚱이, 몸뚱이를 아무리 찾아봐라. 나(我)라는 실체가 있는가. 저 수상행식(受想行識), 정신적인 면을 아무리 찾아봐라.
나(我)라고 하는 것이 있는가. 죽으면 다 흩어져버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현상세계의 모든 것을 가지고(보시고) 말씀하신 거예요. 현상세계에서는 나(我)라는 실체가 없어요. 그러나 실체가 없는 몸뚱이를 부처의 불안(佛眼)으로 보니까 저 몸속에 들어와 있는 본체(주인공)가 있어요. 그것이 영혼체예요. 주인공이 없이는 윤회를 못하는 거예요. 영혼체가 없으면 생겨났다가 죽어버림으로서 끝나버리는 거예요.
여러분, 전번에 스님이 체외수정은 영혼체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말씀을 해가지고 곧바로 지장보살님한테 잘 못했다고 혼났어요. 생각하니까 지장보살님 말씀이 맞아요. 오늘 수정합니다. 복제인간은 영혼체가 안 들어가요. 전번 대전 법회 때 스님이 말씀드렸지요? TV법회는 아니었습니다. 체외수정은 영혼체가 들어갑니다.
지금까지 2500년 불교가 영혼체를 몰랐어요. 무아설(無我說)이라고 하는 것에 걸려가지고 윤회의 주체가 없는 것으로 봐버렸어요. 무아설(無我說), 여러분! 이 무아설(無我說)은 우리 불교의 핵심이 되는 중핵의 사상입니다. 그런데 그 무아설(無我說)이 지금 잘못해석 되어 있다고요. 이게 2500년 내려갔다고요. 그 어떤 스님도 모르니까 무아설(無我說)을 바로잡지 못했다고요. 이건 영혼체를 봐야 압니다. 영혼체를 봐야 알아.
그런데 그 영혼체도 힌두교 정도로는 몰라. 그러니까 그건 아트만 이야기로 끝나버린 거예요. 아트만은 순수하니까 윤회 못해요. 우리같이 1번,2번,3번,4번 영혼체가 갖춰짐으로서 육도에 윤회하고, 지옥 아귀 축생을 윤회하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비아(非我)가 윤회의 주체다’하고 나온 거예요. 부처님 가신 후 처음으로 윤회의 주체는 있다. 힌두교의 말이 맞다. 그러나 힌두교의 아트만 가지고는 윤회를 못해. 잘못 안 거예요.
우리 영산불교에서 이야기하는 비아(非我), 1,2,3,4번이 뭉쳐진 것, 이것이 다겁생으로 내려오면서 업을 지었어. 탐진치의 뿌리가 다 깊이깊이 내려있어. 모든 악과 습의 기가 더덕더덕 붙어 있어요. 그래서 마치 영혼체의 모습이 숯검정처럼(진흙덩이처럼) 되어 버렸어. 그러니까 이것도 나(我)가 아니다 그거예요. 비아(非我), 나(我)가 아니다. 그 비아(非我) 때문에 윤회를 하는 거예요. 윤회의 굴레에서(사슬에서) 사슬을 끊고 벗어나려면 수행을 해서 비아(非我)를 유아(有我)로 바꿔야 돼. 이제 수행에 의해서 업장을 씻고씻고 해가지고 온전한 영체가 드러나야 돼. 순수하고 깨끗한 1번,2번,3번 영체가 드러나야 돼. 그러면 윤회가 안 돼. 이런 이야기를 했을 겁니다.
이것은 5년 전부터 내가 법회에 나가서 말씀을 한 거예요. 영혼체 이야기를 슬쩍슬쩍 했습니다.《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권에도 있어요.《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Ⅱ》권에도 많이 써놨고요. 점점점점 깊이를 내다가 이번에 내가 이 '영혼체 윤회론'을 크게 정비해서 내놓은 거예요. 이건 진리입니다. 이건 진리예요. 사람이 죽더라도 그 영혼체가 빠져나가야 완전히 죽었다고 의사가 판정하는 거예요. 영혼체가 빠져나가야 돼. 시골에 가면 어느 집에서 불나갔다고 하지요. 불나갔다고 하거든. 부부가 아무리 10년, 30년을 살아도 영혼체가 들어오지 않으면 수정할 수가 없어요. 안 되는 거예요. 애기가 들어설 수 없는 거예요. 알지요? 바로 그게 영혼체야.
그런데 무아(無我)가 우리 불교 가르침의 핵심이기 때문에, 이 전제 하에서 100%긍정을 하고, 무아윤회(無我輪廻)를 이야기하다가 보니까 이게 말이 안 돼. 무아윤회(無我輪廻)가 어떻게 됩니까? 윤회의 주체가 없이 어떻게 윤회가 된단 말입니까? 이건 안 되는 것이거든. 그러니까 그 힌두교의 여러 학파의 거장들한테(학자들한테) 집중적으로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런 논전(論戰)에서 대응할 수 없으니까 여러 가지 이론을 부파불교에서 만들어가지고 대응하지만, 인도사람들의 견지에서 보아도 말이 안 돼. 많은 세월을 두고(BC, AD 7,8세기부터 몇 백 년 동안) 그런 논전이 벌어져 인도사람들이 구경해보니까 이건(불교의 이야기가) 말이 안 돼. 처음에는 그것도 모르고 부처님이 워낙 위대하니까 불교로 기울여 왔어.
아쇼카 대왕이 전 인도를 통일하면서 인도는 물론이고 그리스까지 불교화 시켰어요. 그 다음 칸슈카 대왕이 300년~400년 후에 출세해서 더욱 불교화 시켰습니다. 그 불교가 인도에서 완전히 사멸해 버린 거예요. 사멸해버렸어요. 불교의 몸통이자 핵심사상인 무아(無我)가 이제 보니까 말이 안 되거든요. 이건 말이 안 되거든. ‘이게 불교냐!’ 하고 돌아서버린 거예요. 힌두교에 전부 흡수 되어 버렸습니다. 10억 인도 인구에서 0.01%도 안 되었어요. 그것이 요즘 약50년 전에 이 세상을 떠난 천민계급 출신인 '암베드카르(Ambedkar, Bhimrao Ramji 1893.4.14 인도 모우~1956. 12.6뉴델리. 인도의 정치가. 하리잔(불가촉천민계급)의 지도자로 1947~51년 법무장관을 지냈다. 인도 서부의 불가촉천민 계급인 마하르가(家) 출신으로 불교에 귀의함)'에 의해서 조금씩 조금씩 불교인구가 증가하고 있답니다.
암베드카르, 간디와 함께 인도 독립운동을 한 분이어요. 이분이 법무상까지 했는데 천민계급 출신이어요. 그렇지만 미국, 영국에 가서 경제학․법학을 전공하고 학위를 받은 분이에요. 그래서 지금 인도사람들은 간디와 암베드카르의 생일을 국경일로 정한 거예요. 암베드카르는 힌두교에서 불교로 전향했습니다. 왜 전향했겠습니까? 자기는 천민계급이어요. 천민계급은 인도사회에서 사람구실을 못해요. 자기는 천민계급인 슈드라 계급이었거든요. 불교를 보니까 평등을 이야기하거든. 완전히 바꿨어요. 그래서 불교 부흥운동을 한 거예요. 50년 전에 사망했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0.01%의 불교인구가 0.1%, 1%...증가하면서 지금은 7%정도 늘어났습니다. 약700만 명이 불교신자가 되었어.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그 불교가 역시 왜곡된 불교예요.
암베드카르에 의하면, 영혼도 없고, 다음생도 없고, 업보도 없고, 인과도 없다는 둥 이렇게 이야기해요. 이건 마치 오늘날 불교의 현주소 같아요. 앞으로 이런 불교는 안 됩니다. 진리를 모르는데 어떻게 됩니까? 진리를 완전히 깨닫고, 그걸 상식으로 알고 있으면 전법(傳法)을 해야 돼. 그런 불교들은 수명이 얼마 못가. 참 아쉽습니다. 우리 영산불교와 같은 정말로 완벽한 불교가 이 세상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 지금 우리 영산불교에서 출간 된 책이 20여권 나왔잖아요. 열심히 읽고 알아야 되요.
우리 영산불교의 사상을 전면을 할애하여 세 번 광고를 했어요. 큰 면을 세 번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까지 그 누구도 반론을 제기 못합니다. 반론을 제기 못하지요. 학자 아니라 학자 석학이라고 하더라도 반론 제기 못하지요. 2600년 동안 그 어떤 큰스님도 이걸 몰랐는데요. 이유가 뭐냐?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뚫고 본체를 보는 경계가 깨달음의 경계입니다. 깨달음 가지고는 아직 몰라요. 거기서 더 들어가면 적멸의 경계가 있어요. 적멸의 경계, 불보살의 세계가 있어요. 여기까지 가야 지옥도 보고, 영혼체를 확실히 보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도 반론을 제가 못하고 있어요.
우리 광명 만덕님을 그때 찾아가보니까 어마어마하게 공부가 되어가지고 있었어요. 이 남섬부주에 불과(佛果)를 증한 분이 태어나게 되면 반드시 부처님이 오시게 되어 있어요. 오셔서 지도해야 되요. 마장(魔障)을 막아줘야 되는 거예요. 불과(佛果)를 증할 정도에 오를 그 수행자에게는 여러분이 도저히 상상 못 할 마장(魔障)이 오는 거예요. 보살만 될 사람한테도 절대로 보살과를 이룰 수 없는 마장이 와요.
이 마장을 피해서 보살과를 얻으려면 붓다회상을 만나야 되요. 부처님을 만나야 되는 것이어요. 그런데 이분은(광명 만덕님은) 내가 볼 때 부처님을 만났더라고요. 부처님께서 오셔서 지도하고 끌어주더라고요. 그래서 그 부처님이 어떤 분인가에 대해서 내가 굉장히 집중적으로 파고 들어갔습니다. 부처라고 해서 내가 만났던 두 사람, 내 고향의 남자와 서울의 어떤 사람, 그 사람들은 나하고 결별이 되었어요. 이유가 있어요. ‘아! 진짜 부처가 아니다’ 그거예요. 음계에 걸리고, 경전을 소중히 해야 되는데 경전을 소홀히 하고 독송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붓다가 되었다면 모든 부처님(붓다)의 세계에 대해서 잘 알아야 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충분히 들어보면 어딘가 미심쩍었어요. 우리 광명님을 만나니까 완전한 부처님이 오셨어요. 여러분, ‘우리 영산불교가 부처님 교단이다. 우리 광명 만덕님이 붓다이다’ 라고 하고,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건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이야기인거예요. 여러분은 너무너무도 행복한 거예요. 오늘 처음 오신 분들은 아마 스님의 이야기가 와 닿지 않을 것입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시나?’하고 이해가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위해서 40~50년을 투자한 거예요.
무엇이 정법이냐? 모두 다 정법이라고 하는데, 무엇이 정법이냐? 고등학교를 나와서 예배당을 많이 다녔어요. 많은 부음집도 읽어 봤고, 기독교에 가보니까 저들이 최고라고 해. 저거가 최고라고 그래. 또 많은 종파가 있잖아요. 종파마다 자기의 종파가 최고라고 해. 또 종교의 수가 얼마나 많습니까? 나름대로 그 종교에 들어가면 자기들이 최고이고 정법이라고 해요. 여러분, 그러니 나 같은 사람이 있어야지요. 정사(正邪)를 분간하는 이런 선지식이 나와야 되는 거예요.
화두를 참구한지 10년 만에 깨닫고 보니까 많은 것이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완벽하게 정사(正邪)를 분간할 수 있는 경지에는 못 갔어요. 한 30년 동안 많은 선지식을 찾아서 점검을 하고, 그분들의 경지를 잘 보고 해서 상당히 정비할 수 있었어요.
광명 만덕님을 보고 ‘햐! 부처님은 이러한 분이구나’하는 것을 완전히 알 수 있었습니다. 절대세계에 자기 본불이 있어야 되고, 상적광세계에 자기 법신불이 있어야 되고, 어떻게 해서 절대계에 자기불신(본불)이 생기는 지 그 이유, 이건 정말로 깊은 밀장이지만 이런 것을 알아야 되요. 32상을 갖추고 있어야 되고, 그 부처님의 몸뚱이는 빛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빛은 보통 빛이 아니어요. 부처님의 몸은 무량광(상적광, 억종광, 백종오색광)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래서 불과(佛果)를 이루면 영원히 죽지 않는 거예요. 그 무량광이라는 것은 보통의 빛이 아니고 아주 불가사의한 빛이어요. 이 빛은 밝기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밝아.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저 한여름의 이글거리는 햇속, 그 햇속을 눈이 부셔서 볼 수 없잖아요. 그 햇속 보다도 더 밝아. 그러면서 특징이 안과 밖(겉과 속)이 없이 드러나 있어. 겉과 속이 구별 없이 하나라고요. 그걸 내외명철(內外明徹)이라고 해. 아주 묘한 빛이지요. 너무 투명하니까 그래요.
그러면서도 아름답고(예쁘고, 곱고), 영롱하고, 백천만억 가지의 색깔을 지닌 무량광이어요. 희유하지요? 부처님께서 어떤 때에는 단색으로도 내고, 어떤 때에는 백종백만억 가지의 색깔을 함께 내 뿜어요. 각각 그 빛을 놓는 데는 까닭이 있고, 사용처가 있어서 내는 거예요. 어떤 빛은 여러분의 업장을 소멸시키는 빛이 있어요. 업장소멸 부분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부처님의 그 불가사의한 능력인데, 부처님만이 중생의 업장을 소멸해 줄 수 있어요.
이렇게 부처님 교단이 시작되면서 여러분한테 업장을 소멸해 주는 거예요. 이건 겁에 하나 있는 거예요. 그 부처님은 32상의 완벽한 상모로 계시면서(눈 코 입이 다 갖춰져 있으면서) 지혜가 완벽하고, 자비 자체가 되고, 이 세상을 다 살만한 복을(복력을) 지니고 있고(불과를 증하면 다 살 수 있는 복력이 갖춰지게 되어 있고), 그러면서 부처님은 못 할 일이 없어요. 이것을 항하사(항사, 간지스강 모래알 수만큼 많다는 것임)라고 하는데, 부처님은 항사의 신통묘용이 있어요. 어마어마합니다.
부처님은 외도들과는 특별히 다른 큰 힘이 있어요. 전 외도를 당신 혼자 상대해서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어요. 지금의 이 세상 사람들은 이걸 몰라요. 이런 것을 광명 만덕님으로부터 많이도 알았어요.
▸광명 만덕님은 1998년도에 당신 불신(佛身)과 이쪽 영체가 계합이 되어가지고 불과(佛果)를 증했어요.
나는 그 후 2년인 2000년에 불과(佛果)를 증했습니다만, 광명 만덕님은 1998년도에 이미 불신(佛身)을 지니고 있었고, 그 불신(佛身)과 이 영체가(영혼체가) 계합이 되어 있었습니다. 보통사람들 중에서 지옥에 갈 사람들은 영체가 거무튀튀하고 숯검정 같은데, 하늘 갈 사람은 영혼체가 맑습니다. 아라한 정도부터는 달빛처럼 밝아요. 보살은 빛이 나요. 붓다는 이 네(4)개의 영혼체가 각각 분리되어서 활동할 수 있고, 네(4)개의 영혼체가 완벽하게 빛덩어리가 되어 있으며, 정말로 아름다운 상을 지니고 있어요. 부처님께서 이 네(4)개의 영혼체와 자기 불신(佛身)을 계합시키는 때가 불과(佛果)를 증하는 날이어요. 이것을 광명 만덕님은 1998년도에 마쳤어요.
▸그때 우리 광명 만덕님이 공부하는 것을 보니까, 식칼를 아주 날카롭게 갈아서 옆에다 놓고 공부하시더라고요. 아주 죽음을 각오하고 공부를 하시는 그 모습을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광명 만덕님은 부처님으로부터 화두를 받고 9일 만에 깨쳤습니다. 나는 10년이 걸렸지만 말입니다. 저 어른은(광명 만덕님은) 물로 목욕하다가 화두를 깨쳤는데, 물을 굉장히 좋아하십니다. 그 즐거움에 홀랑 벗고 춤을 춘 거예요. 화두타파의 즐거움도 대단합니다. 대단합니다. 그때에 읊은 게송이나 붓다가 불과(佛果)를 증해서 읊은 저 대적정삼매송이 붓다 되어 가지고 읊은 송입니다. 대적정삼매를 통과해야 됩니다. 그때에 자기불신이 생기니까요. 그 읊어 놓은 저 게송이나, 지난 15년 동안 공부한 수행일지를 가지고 지금 책을 내려고 하는데 여러분에게 말 못할 밀장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 밀장을 빼고빼고 하려니까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지금 보여줄 수 없어요. 밀장이라서 보여주면 안 되게 되어 있는 부분이 있거든요. 내가 밀장이라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밀장은 공개 못합니다. 그런데 광명 만덕님의 수행일지에는 많은 밀장이 들어있어요. 그래서 이 밀장을 빼자니(빼면) 핵심이 빠져버리고, 그렇다고 밀장을 공개할 수도 없고, 그런 문제로 지금 굉장히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몸부림을 합니다. 그 수행일지가 나오면 정말로 우리 부처님의 일거수 일투족, 저 부처님세계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이것이 정말로 이 세상에 소개가 된다면 놀랄 일입니다. 정말 이 책이 꼭 나왔으면 좋겠는데, 지금 이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내가 그때 우리 광명 만덕님을 만난 이후부터, 내 실력으로 광명 만덕님을 보건데 ‘이분은 가섭존자가 아니냐?’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전생을 좀 알아보시오. 부처님께 여쭤보면 그냥 말씀하실 텐데요’라고 했습니다. 그때 여러 부처님이 계셨거든요. 부처님께 여쭤봐도 “나는 모른다”고 하지. 또 문수보살님께 여쭤봐도 “나도 모른다”고 해. 보현보살님께서 말씀하셨을 겁니다. “자, 봐라”해가지고 그 영산당시 가섭존자의 모습을 쫘~악 보여준 거예요. 그런데 세상에 옷도 다 떨어지고, 머리는 그냥 더벅머리에다가 찌들어가지고 형편없는 모습으로 나오니까 이 양반(광명 만덕님)이 이상하다며 놀랐어요. 그래서 나는 무릎을 치며 ‘가섭이오’그랬지. 그때도 부처님들이 가섭이란 말씀을 안 하신 거예요. 이제 부처님들께 ‘그러면 나는 누구냐?’고 여쭈었어요. 그러니까 지장보살님께서 세 가지로 말씀하신 것이 있어요. 13년 전의 일입니다. “그 스님은 석가족이고, 부처님 동생이고, 부처님 시자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어요. 알겠지요? 나도 그 전에 내 전생을 알았습니다. 내 전생을 알았었는데, 그렇게 말씀하신 것을 며칠 전에 또 들었어요. 저분(광명 만덕님)의 일기를 내가 읽어 볼 수 있습니까?
▸광명 만덕님의 거짓 몸(저 몸뚱이), 저 분도 빛덩어리가 거의 다 된 거예요. 기(氣)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나, 그런 분야의 공부를 많이 한 분들은 보면 알아요. 빛이 나가니까요. 그런데 그런 분이 어디 흔합니까? 세상이 모르지요. 누구도 몰라. 그러니까 일개 여인을 갖다가 붓다라고 하고, 뭐(?)라고 하니까 그냥 비방을 하고 그랬습니다. 몇 년 전에 그랬습니다. 지금도 끊어지지 않아요. 그래서 내가 이런 제목을 가지고 공식석상에서 선언을 해줘야 되겠다. 여러분, 붓다를 비방하면 큰일납니다. 큰일납니다 여러분! 다 나쁜 짓해도 그 짓은 안해야 되는 거예요. 오역죄보다도 더 크니까요. 법을 비방 능멸한다든지, 붓다를 비방 능멸해버리면 큰일 나는 거예요. 앞으로 우리도 그걸 놔둘 것입니다. 그렇게 비방하는 사람이 어떻게 되는가를 보세요. 우리는 안 낫게 해 줄 거예요. 안 낫게 해줍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되는 줄 아세요? 벙어리도 될 거예요. 내가 오늘 공식석상에서 경고해 두는 것입니다.
▸저러한 분이 정말로 신통이 벌어지지 않겠습니까? 전부 벌어지지요. 벌어졌어요. 그러나 몇 년 전에 부처님께서 꽉 막았어요. “절대로 신통을 하지마라. 신통은 나혼자다.” 부처님은 신통을 하십니다. 앞으로 언젠가 사람으로 오셨을 때 부처님은 또 불과(佛果)를 이루셔가지고 필요할 때에는 신통을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 제자들에게 절대로 못하게 하시는 것은 우주의 이법을 거스르기 때문에, 죄를 짓기 때문에 절대로 못하게 하시는 거예요. 너희들 죄를 내가 감당한다(책임진다) 그거예요. 죄를 짓더라도 내가 하지, 너희들이 못한다 그거예요. 신통을 못하게 합니다. 예언, 아는 소리까지 철저히 못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신통은 하지 않아도 이러한 능력이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귀신을 잡는다고 하지요.
(광명 만덕님)이 귀신을 잡아요. 귀신을 잡는다? 이거 기가 막힌 거예요. 귀신을 완벽하게 보는 사람들이 있는 줄 아십니까? 일부 점쟁이들, 무당들의 일부분이 흑색으로 조금 봅니다. 광명 만덕님은 천연색으로 확실히 본다고요. 그런 분은 없습니다. 지금 유가(儒家), 도가(道家)의 내로라고 하는 학자들, 귀신을 잡는다고 하면 놀랄 거예요. 어디 공자가 귀신을 봤습니까, 맹자가 봤습니까, 주자가 봤습니까? 거기는 아니어요. 그런데 귀신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잡습니다. 잡는 다는 것은 바람처럼 신통이 무섭습니다. 저 귀신을 어떻게 잡습니까? 그렇지만 광명 만덕님은 귀신을 잡습니다.
▸광명 만덕님은 극락을 보고, 지옥을 보고, 못 보는 것이 없어요. 보려고 하면 봐요.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내가 법문에 써먹지.
이제 내가 법왕자이니까 붓다로서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저분(광명 만덕님)은 부처님의 태자이기 때문에 엄청납니다. 보통 부처님들은 불과(佛果)를 증하면 열반에 들어버리게 되어있어요. 그러면 우리는 10년 전에 갔었어야 돼. 그런데 이렇게 가지 않고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104위 신중, 그리고 저분(광명 만덕님)이 출세한 후 4~5개 집단이 귀의를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108위, 109위 신중을 부립니다. 무슨 말인 줄 압니까? 명(命)하고 보고를 받습니다. 이제 저분(광명 만덕님)의 실체를 내가 지금 말을 하고 있는데, 좀 죄송하기도 하지만 여러분들이 이걸 좀 알아야 우리 교단에 대한 위상이라든지, 큰스님에 대해서 저 아무것도 모르는 스님들이 마구 비방을 하니까 그러면 안 된다는 말을 해주는 거예요. 그러면 안 되거든요. 이 말이 많이 퍼지면 좋겠어요. 이게 많이 녹음이 되어서 나가요. 나는 정말로 자신 있는 법문만 하는 거예요. 내가 본 것, 내가 공부한 것, 열 번이고 백번이고 숙고하고 검토한 거예요.
▸저분(광명 만덕님)은 어떠한 부처님들과도 항상 보고 대화할 수 있어요. 이거 기가 막힌 거예요. 역사 이후 그 누가 그랬습니까?
인도의 용수? 차원이 다르지요. 안 되지요. 거기는 영혼체의 깊이 까지는 못 봤으니까요.
▸저분(광명 만덕님)은 정토의 그 많은 보살들, 성중들, 하늘신들, 귀신들, 지옥을 전부 볼 수 있습니다. 삼악도의 중생, 지옥중생을 건질 수 있습니다. 죄를 지어서 가 있는 데, 누가 건집니까?
▸우리의 천도재, 저분(광명 만덕님)이 주관합니다. 저분(광명 만덕님)이 나오시지 않으니까 도대체 저분은 어떻게 해서 붓다까지 되셨는데 이 많은 신도들 앞에 나서지를 않나? 여러 가지의 말이 있을까봐 오늘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저분(광명 만덕님)이 하시는 일이 있어요. 오늘도 부처님들과 함께 여러분의 업장을 씻어 주시는 소임을 맡았어요.
▸이름과 신분을 거명할 수 없지만, 어떤 두 세 사람이 우리를 시해(弑害)하려고까지 했어요. 우리를 죽이려고 온갖 사술을 동원한 사람들이 있었어요. 어떤 한 사람은 사신을 움직였어요. 사신, 뱀신. 뱀도 코브라 같은 무서운 뱀신. 그런 뱀신 수 만 마리를 움직였어요. 그걸 가지고 우리를 죽이도록 명한 거예요. 몇 년 전의 일입니다. 그러나 족탈불급(足脫不及)이지. 붓다이기 때문에 해칠 수 없는 거예요. 붓다의 뒤에는 무수한 붓다들, 보살들, 성중들이 옹호합니다. 또 옹호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네(4)개의 영혼체가 빛덩어리가 되어 있어요. 빛덩어리는 저것들이 100미터(수 백 미터) 안으로 접근을 못 해. 몇 미터 안으로는 접근을 못해. 우리가(광명 만덕님이) 전부 그 사신집단을 명부에 가둬 버린 거예요.
▸저분(광명 만덕님)의 피의 색깔은 핑크색입니다. 여러분의 피는 검붉어요. 그렇지요? 붉다 못해서 검붉은 색이어요. 저분(광명 만덕님)은 핑크색이어. 순수하고 맑으니까 가지고 놀고 싶어.
▸그리고 번갯불이 있잖아요. 번개가 칠 때 일어나는 섬광, 그 섬광의 광도가 얼마나 무서운 줄 아십니까? 번갯불의 광도, 아시죠? 저분(광명 만덕님)은 번갯불이 오면 먹어버려요. 이 말을 집에 가셔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사실이니까. 신통을 못하게 하니까, 자연스럽게 사니까 그렇지, 얼마나 무서운 어른입니까? 보기에는 평범한 여자인데 뭐. 자기도 여자, 나도 여자, 그런데 뭐가 저렇게... 어떻게 공부가 깊어서 불과(佛果)까지 증했다고 하나? 아마 많이도 의심하고, 알고 싶어도 했을 거예요. 오늘 그래서 공개 선언한 거예요.
▸여러분, 한 여름에 해를 보세요. 몇 초나 볼 수 있을 까요? 햇속을 1분, 2분을 볼 수 있나요? 볼 수 없지요. 오래보면 실명됩니다.
저분(광명 만덕님)은 1분, 2분간 해가지고(봐가지고) 해가 저버립니다. 그래도 보통 눈으로 돌아와서 글을 전부 읽는다고요. 여러분, 1분 동안 햇속을 본 후 사람을 보고 글을 보거나 하면 글이 보입니까? 안 보이지. 오래 보면 실명 됩니다. 저분(광명 만덕님)은 해를(햇속을) 먹어버립니다.
▸저분(광명 만덕님)은 모든 사람의 전생을 다 알지요. 볼 수 있지요. ▸수 초, 1,2,3초 안으로 삼매에 들어가 버립니다.
원불교의 교주가 5분 안에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미안한 말입니다만 내가 볼 때, 그분의 선정은 초선정도 안 됩니다. 저분(광명 만덕님)은 초선정에 어린이 때부터 (불과(佛果)를 증하기 이전부터) 들어갔습니다. 우리 부처님도 그랬습니다. 초선정, 경전을 보면 삼매가 여덟 가지 있다고 해. 그래서 아홉 번째가 멸진정이어. 초선정은 초선천에 태어날 수 있는 선정의 힘, 태어날 수 있는 힘, 그게 초선정이어. 초선정에 벌써 들어가셨어.
▸내가 저분(광명 만덕님)을 만났을 때, 저분은 벌써 어떤 깊이의 삼매에 들어갔느냐? 아라한 삼매가 있고, 보살 삼매도 많아요. 그 최고의 부처님 삼매에 거의 들어가더라고.
터널이야기를 했을 겁니다. 내 책에 나오지요. 내가 눈물을 흘렸어. 그 삼매에 들어갔다 나와서 옷이 젖어있었습니다. 터널 이야기 아시죠? 모르는 분이 있을 까봐 다시 들려드립니다. 터널, 그러니까 상하좌우가 몇 백도(℃) 아니 몇 천도(℃) 빛의 터널입니다. 그 안은 불덩어리로 이글거리는데 사람이 뛰어갈 만한 공간만이 있어. 그런데 저 부처님이 여기서 저기 산의 터널을 통과해서 오라고 해. 여기서 어떻게 갑니까? 그러니까 영체가 이 몸에서 나와서 들어가야 되는 거예요. 가는데, 번개보다도 더 빨리 가야 되고, 생각이 한 생각이라도 잡념이 들어오면 실패인 거예요. 안 되는 거요.
두 번째, 코브라가 그렇게 있었어요. 그 사이를 통과해야 되는 거예요.
바위산을 뚫어야 되는 거예요. 여러 삼매가 있었습니다. 그것 하나하나를 전부 통과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내가 너무너무도 감격에 겨워가지고 눈물을 흘린 거예요.
우리 지장보살이나 관세음보살 같은 분들은 무량겁 전에 불과를 증한 붓다이지만, 얼마나 위대한 어른이신 줄 아십니까? 우리 관세음보살님, 62억 항하사 보살들을 보탠 것과 맞먹는다고 했어. 그러면 어느 정도 위대하다는 것을 알겠지요? 62억 정토보살들을 다 합한 것보다도 더 위대하다 그거예요. 이 많은 정토보살들에게 평생 사사(수행승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네 가지 물건. 침구(와구), 의복, 음식, 탕약(湯藥,의약)이다)로 공양을 해도 관세음보살님께 한순간(한번) 경배하고 공경하고 예배하고 공양드리는 것만 못하다고 했어. 이 관세음보살님, 실제로 보면 그렇습니다.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오늘처럼 이렇게 1,000명을 모아 놨다(1,000명의 청중들이 있다)? 관세음보살이 일시에 1,000명의 몸을 나툰 것이 천수천안이어요. 눈이 천 개이고, 손이 천 개가 아니어. 당신의 몸을 1,000개로 화신을 내어가지고 여러분 각각의 머리위에 올라가서 여러분의 업장을 씻어주는 그 어마어마한 광경을 볼 때에 62억 항하사보살들이 그럴 수 있습니까? 못하지요. 약수병으로 물을(감로수를) 정수리에 붓고, 그리고 버들가지로 돌려서 무량광을 쏘아가지고 업장을 벗겨내는(씻어내는) 작업을 하셔요. 그렇기 때문에 관음 ․ 지장 정도는 어마어마한 부처님이셔요.
▸그런데 이분(관음․지장)들이 우리 광명 만덕님을 보고 하시는 말씀이 있어요. 가끔 하셔요. “나는 자네가 부럽네”라고 하셔. 왜냐? 지존이신 우리 교주 불세존의 태자이기 때문입니다. 알겠지요? 우리 석가모니부처님은 지존이십니다. 우리 부처님께서는 그 많은 붓다를 내시고, 보살을 내시고, 성중 아라한을 내신 분이어요. 부처님의 은혜 없이 된 분은 하나도 없어요. 더더구나 붓다는 부처님의 은혜가 99% 작용해야 됩니다. 그래서 붓다들을 부처님의 분신이라고 해. 부처님께서는 붓다들을 “아들아!”하고 불러요. 우리 부처님은 모든 붓다의 붓다예요.
▸우리 광명 만덕님은 그 부처님의 태자이시자 법의 상속자예요. 극무간지옥이나 무간지옥에 가 있는 사람들을 끄집어내려면 지장보살님의 힘 가지고는 안 됩니다. 우리 부처님의 승낙이 있어야 됩니다.
▸우리 부처님께서는 앞으로 언젠가 이 사바세계에 몸 받아 오실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대행자가 광명 만덕님이어요. 대행을 하게 되어있어요. 지금까지는 문수․다보부처님께서 대행을 하셨습니다. 앞으로 오실 때, 나는 시자로 올 거예요. 또 오신다고 했지요.
▸산길을 지나갈 때가 있잖아요. 우리가 지방의 어디를 갔다가 돌아올 때 산을 끼고 오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때 대부분의 산왕대신들이 자기의 휘하 권속을 데리고 마중 나와서 예배를 해요. 알았습니까?
▸당신의 절대계에 있는 저 광명불은 어마어마한 붓다예요. 저 붓다와 언제나 계합할 수 있어요. 당신이니까. 당신 영혼체로 가서 계합할 수도 있고, 그 분이 들어올 수 있고 그래요. 당신이니까 그렇습니다.
▸이 사바에는 하늘마(天魔)나 귀신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속거천리(速去千里, 빨리 멀리 도망가다)라는 말이 있지요? 이 천마나 귀신들이 광명 만덕님을 보면 속거천리(速去千里)해요. 영체가 빛덩어리이기 때문입니다. 두더지가 태양을 보면 어떻게 되지요? 두더지는 저 햇빛을 못 보기 때문에 견디지 못 해요. 그와 같아요. 외도나 천마나 귀신들은 성자의 빛을 제일 무서워해요. 그래서 도망가는 거예요.
▸저분(광명 만덕님)은 사실 모든 것에 통달해 있어요. 불안(佛眼)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일을(토목공사, 건축공사, 나무․묘목 등을 심는 작업 등) 지시하는데도 저분(광명 만덕님)을 따라갈 사람이 없어요. 그 직업분야의 프로(사장)들이 그 안목을 보고 놀라요.
▸저 우리 집(현지사)을 짓고, 토목공사를 하고, 1,000그루 이상의 소나무를 구입해서 심고 한 것은 전부 저분(광명 만덕님)이 간단하게 지도 지휘해요. 저분(광명 만덕님)이 없으면 관계자들이 엉망을 만들어 놔버려. 엉터리 공사를 해놓는 다고요. 두 번 세 번(재탕 삼탕)을 해요. 그러니까 이 건축이나 토목분야에 종사하는 사장들이 그 안목에 놀라요.
▸복둥이 건물도 지금 좋게 해준다고 하는데, 갈수록 예뻐지더라고. 저분(광명 만덕님)이 다 지휘하신다고요.
▸한 가지 일을 하면 거기에 폭 빠져요. 이것은 견성한 사람들은 다 알아요. 선불교에서 견성한 사람들은 이걸 알아요. 이분(광명 만덕님)이 그 경지를 거쳐 간 것은 옛날 옛날 옛날이어. 그렇기 때문에 저분(광명 만덕님)은 한 가지 일에 퐁 빠져버리면 서너 시간도 금방 지나가기 때문에 일을 다 마쳐놓고 이제 몸이 ‘아이고! 죽는다’고 해. 그때는 몰라요.
▸전번에 어떤 사람이 처음으로 산삼을 가지고 왔어요. 최고의 심마니 대장이어요. 그 사람이 그 산삼의 수령을 100년이라고 했는데, 광명 만덕님은 ‘아니다! 60년 몇 개월 되었다. 산지가 어디다’라고 해버리니까 놀라버린 거예요.
구체적인 실례를 생각나는 대로 적어 놓은 거예요. 불과(佛果)를 증하게 되면 물론이거니와 보살과 이상은 석녀가 되어버립니다. 남자도 석남이 됩니다. 이라한 이상은 그럽니다. 자기의 힘으로 가게 돼. 석남석녀가 되어버리는 거예요.
▸그리고 사람을 딱 보고 첫 번째 하는 말은 맞아요. 그러니까 여러분, 첫 번째 무슨 말을 하는가를 들어보시라고요.
▸천도재 때, 저분(광명 만덕님)이 혹시 나오시면 열시왕이 와서 반드시 삼배를 해요. 열시왕은 보살급입니다.
▸또 제석천왕이 가끔 우리 현지사에 큰 선물을 가지고 오시기도 하는데, 그 제석천왕은 상품보살이니까 광명 만덕님께 삼배를 해요. 광명 만덕님은 붓다이시니까 당연히 삼배를 합니다. 거기는(저 세상은) 위계가 엄격해요.
▸마왕 파순이가 그 어느 불과(佛果)를 이룬 붓다한테 경배는 하지 않았을 거예요. 가끔 저분(광명 만덕님)한테 와서 삼배를 해요.
마왕 파순이는 우리 부처님이 몇 번 혼을 냈어요. 그러나 죽일 수가 없어요. 우리 부처님은 자비하시니까 죽이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아요. 안 죽일 줄 압니다... 終
2010.7.4.일(음6.23) 큰스님 부산 법문중 발췌
현지사의 역사적歷史的인 중대한 발견
종교상의 코페릔쿠스적 혁명입니다.
1. 무아 속 절대계에 불과를 이룬 붓다님들이 여여히 계십니다.
나, 자재 만현이 붓다 되고 나서 절대계에 부처님이 계심을 보고 이를 여러 불자들에게 알립니다.
자성의 광명이란 존재의 근원인 빛을 말합니다. 진여의 광명이라고도 하는 이 빛은 원초의 빛, 티베트 밀교의 정광명, 카발라에서 말하는 무한광Ayin Sof Aur을 말합니다. 이 빛보다 한 차원 맑고 맑은 빛이 보살의 정토의 빛입니다.
정토세계의 빛보다 몇 차원 더 청정하고 아름답고 안팎이 없고 천문학적으로 밝고 청정한 부처님 광명이 곧 무량광, 억종광, 백종오색광, 대열반광인 것입니다. ≪화엄경≫에서 말하는 ‘티끌 수와 같이 많은 색깔의 광명’인 것입니다.
무량억종광으로 이루어지고, 유·무를 초월한 무아 속 절대계 곧 상적광세계에 불과를 증한 붓다들의 지복의 몸, 보신 부처님들이 계신다는 말입니다. 불교사상, 인류 종교 역사상 이 ‘절대계에 불신을 둘 수 있는 고도의 수행법은 불교밖에 없다’라는 것입니다.
도가의 최고 차원의 수행으로 얻어진다는 허공신·체외신은 불교의 보신과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불교의 보신에서 천만억의 화신을 나툽니다. 그리고 보신은 법신불이 있어서 완전히 성장, 존립합니다.
나는 이 엄청난 초유의 발견을 하고, 거룩하고 희유하신 우리 교주 불 세존께 경배 드립니다.
깨끗하고 청정한 부처님의 광명을 보고 부처님이 드는 대적정삼매에 드는 것은 붓다삼신불 이루는 필수 요건입니다.
나는 깊은 삼매 속에서 다음과 같은 붓다만이 할 수 있는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깨끗하고 청정한 억종광천만억 나유타 빛깔 광명 빛을 보고,
깊은 붓다의 대적정삼매 속에서 부처님을 친견하고,
여러 가지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여 부처님의 법문을 듣습니다.
지금은 항상 모든 붓다님을 뵙고 법문을 듣고 대화를 나눕니다.
아울러 나는 깊은 삼매 속에서 미증유한 다음의 사실들을 요달了達했습니다.
①대승경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부처님 몸의 10군데에서 방광하는 백종오색광명의 색깔은 서로 다르고 갖가지 부사의한 기능을 지닌다는 사실
②붓다라면 삼신을 갖춰야 한다는 것과 붓다라야 불의 삼신, 곧 ‘법신·보신·화신이 어떻게 생기며 어떤 존재인가’하는 비밀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③청정법신 비로자나불, 원만보신 노사나불과 구원실성久遠實成하신 최초 불 석가모니부처님의 희유한 실체
④다보부처님과 다보탑, 오여래 부처님과 준제보살,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등 우주법계에 수많은 붓다들의 세계
⑤붓다만이 드는 대적정삼매의 깊이와 희유한 법열
불교란, 부처님에 의하여 창교됐으며 붓다 이룰 수 있는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오늘 날의 불교는 부처님이 계시는지 조차도 모르는, 심지어 마음이 곧 부처라 하는心卽是佛, 自性佛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부처님 삼신을 갖추신지를 모르면 불교를 알 수 없습니다. 붓다佛의 불신몸, 삼신관을 모르면 불교를 이야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우주적인 몸, 우주적인 광명지체光明智體-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을 모르면 불교가 우주적인 종교임을 알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의 불신佛身-원만보신 노사나불을 모르면 위대한 불교, 불교가 우주적인 메타종교임을 알 수 없습니다. ≪화엄경≫ 등 대승경전을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다보탑, 다보불, 본화보살을 모르면 ≪법화경≫을 알 수 없습니다. 부처님이 어떤 어른인 줄 알 수 없습니다.
부처님원만보신은 지혜·자비·복덕의 빛덩어리억종광·무량광이십니다. 백천삼매, 방광放光, 천백억화신, 항사恒沙의 신통에 자재하시고 위대하시고 희유하신 분이십니다.
몸의 여러 군데미간, 정수리, 입, 온 몸에서 가지가지 광명을 놓습니다. 그 밝은 빛은 여러億種 빛깔입니다. 그 광명은 이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비추며 이 광명에 쏘인다면 죄업과 번뇌가 모두 씻겨나갑니다. ≪열반경≫
인류 역사 이래 그 어떤 성자가 이같이 희유한 위신력을 지녔답니까? 실제 부처님의 위신력은 그러합니다. 불교는 위대합니다.
절대계에 계시는 원만보신 부처님100%빛의 존재을 뵙고 법문을 들으며 거기 붓다님들과 법담을 나누는 일, 또한 그 무아 속 절대계에 임의로 들 수 있는出入 일은 대적정삼매붓다의 깊은 삼매를 통과하여 삼신三身, 法報化을 구족한 붓다 아니고선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언해둡니다. 천만생 아니 겁劫에 한 분 출세하는 붓다의 시대에 불교는 비로소 우주적인 메타 불교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불멸 후 9백년 경 당시 인신人身을 받아와 살다간 미륵Maitreya 부처님으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은 대학승大學僧 무착에 의해서 불의 삼신관이 정립, 완성됩니다. 그러나 무착은 불과를 증한 붓다는 아니어서 그의 삼신설은 법신불부터 많은 보완이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대승불교의 법신 부처님을 알지 못하고, 거기에 뿌리내린 보신 부처님을 모르면 부처님의 가르침이 우주적 메타종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석가모니부처님 이후 삼신불을 갖추고 불과를 이룬 분은 수보리존자, 사리불존자, 가섭존자 그리고 아난존자 네 분입니다.
수보리존자와 사리불존자는 부처님 멸도 후 1200년, 1400여 년이 지난 후 각각 중국과 한국에서 불과를 이루시어 명상불과 화광불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출세는 하시지 않고 조용히 반열반般涅盤에 드셨습니다.
2. 부처님 원만보신圓滿報身은 우주의 주主이시고, 우주적 창조의 힘을 구유하십니다.
우주에 편만해 있고 불생불멸하는 대생명, 일심진여, 공 반야공般若空, 스스로 있는 자존자, I AM과 하나로 계합한 ‘붓다’에겐 우주적인 능력이 있습니다. 특히 최초 불이시오, 삼계의 왕 석가모니 부처님은 가히 상상할 수 없는 능력을 지니십니다.
우주의 진리와 하나된 붓다법신불는 모든 것의 전체적인 것으로서의 우주의 주主이고, 거기서 나온 빛의 인격체인 붓다보신불는 실질적인 우주의 주인이 됩니다.
32상을 갖춘 거룩한 상모와 백종오색광으로 이루어진 불신은 100% 빛의 존재이십니다. 몸의 10군데에서 티끌 수 같이 많은 색깔의 광명을 놓습니다.
천만억 화신을 나투시고 32응신으로 항하사의 신통묘용을 자재하게 부려 삼천대천세계 중생을 교화하십니다. 지혜와 자비, 복덕을 구족하십니다.
3. 육도 윤회세계와 해탈세계를 관통하는 불교 생사관을 정립하고 자·타력수행법을 통해 붓다가 되는 길을 제시했습니다.
아울러 무아와 윤회 주체간의 모순에 대한 2000여 년 동안의 논쟁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게 된 사실을 선언합니다.
1) 인간 영혼의 실체를 규명했습니다.
오늘날 서구 지성사회에서 목말라하는 인간 영혼의 실체를 규명했습니다. 영혼의 실체에 대한 규명은 인간 사유로서는 한계가 있습니다. 붓다의 무상 지혜 아니고선 영원히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인 것입니다.
영혼체를 알지 못하고, 무아無我·비아非我_무아사상은 불교 핵심교리를 잘 못 알고서는 영원히 무아와 윤회의 주체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현지사에서는 영혼의 실체와 무아·비아를 통찰할 수 있게 되어 2000여 년 동안의 교가敎家의 논쟁무아와 윤회 주체간의 모순 관계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게 된 사실을 선언합니다.
인간은 지·수·화·풍 4대로 이루어진 육신과 네 영혼체의 결합입니다. 영혼체는 누구에 의해서, 어느 절대자가 있어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인연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자력과 타력의 수행에 의해서 삼독·오욕의 번뇌와 다겁생에 지은 업장 그리고 악·습기 등 비본질적인 것을 제거함으로써 그 정화된 영혼은 육도윤회의 생사에서 해탈하게 됩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팔정도와 육바라밀로 지혜般若와 복덕을 닦으면서 부처님釋迦牟尼佛의 존호를 봉창하는 염불행자가 되어 수행하면 상락아정常樂我淨의 정토에 보살로 갈 수 있습니다.
2) 완벽하고 올바른 생사관을 정립했습니다.
21세기 지성인들이 또한 몹시도 알고자 하는 것은 생사관일 것입니다. 육도에 윤회하는 주체-영혼체를 알지 못하고서는 올바른 생사관을 정립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현지사에서는 이 문제에 대하여 철저히 규명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절대 다수가 악도중음계 지옥, 아귀, 축생에 간다는 놀라운 사실과 윤회 안과 밖 해탈오계를 달관하게 됐습니다.
붓다의 삼매가 아니고서는 이러한 생의 근원적인 문제 해결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재확인합니다.
중생이 윤회생사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수라, 천상- 육도는 실재합니다.
사람들이 자살 또는 비명횡사하거나, 나쁜 병을 얻어 죽거나 자식과 재물 등에 착着이 많은 이들은 죽어 명부저승를 들어가지 못하고 이승도 저승도 아닌 중간세계 곧 중음계에 머물게 됩니다.
중음계는 4번 영체로 살게 되는데 여기는 배고프고 춥습니다. 물론 4번 영체도 엄연한 생명체임은 말할 나위 없습니다. 중음세계가 있음을 확실히 해둡니다.
중생이 다겁생 이래로 또 미래제가 다할 때까지 불법을 닦아 해탈을 얻지 못하면 영원히 육도에 윤회생사합니다.
본성을 보아 공을 깨치는 견성은 수행의 종착역이 아니고 궁극적인 해탈세계붓다의 절대계로 가는 머나먼 도정의 출발점에 불과합니다. 깨달음을 얻은見性 수행자는 음계를 지키고 두타행으로 나我에 대한 착着을 떼어 아라한이 됩니다.
아라한은 다시 사람 몸을 받아와 육바라밀과 타력수행으로 보살이 될 수 있습니다. 보살은 무량겁을 두고 보살도를 완성하고 보현행원을 실천하여 자기 불신을 절대계에 두는 붓다가 된다는 것입니다.
3) 무아비아와 윤회의 주체에 대한 실체적인 진실을 파악했습니다.
중생이 육도에 윤회 전생하는데 있어서 그 주체는 영혼체1,2,3번인 것입니다. 이 영혼체는 우주 본성까지를 포함하는 개념인 힌두교의 아트만과는 다릅니다.
무아無我, Anatman는 나의 몸과 마음을 포함, 제법諸法은 인연 소생이므로 영원 불변하는 나我라는 실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이 세상현상계에 한하는 말임을 유의하여야 합니다. 시공을 초월한 세계의 주체가 되는 비본질적인 것까지 제거된행위의 주체 참 나까지도 부정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비아非我는 비본질적인 것까지 포함한 나는 참된 나가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무아라는 말보다 비아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온당합니다.
육도에 윤회하는 주체가 되는 영혼체는 업덩어리가 붙어있는 청정하지 못한 영체이며 생사 해탈로 가는 주체는 청정한 순수 영체인 것입니다.
4)수행인에게 있어서는 음계가 제1의 계율이고, 효행이 제1의 덕목임을 알았습니다.
불교 수행자에게는 물론 음계가 생명입니다. 음계를 파하면서 공부한다면 깨달음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모래를 쪄서 밥을 얻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아라한 성자도 음계를 범한다면 그럴 수 없지만 악도행입니다. 영적으로 참수·단두됩니다.
그리고 ‘효孝’는 부처님께서 가장 중요시 여기시는 덕목입니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나라를 사랑하며, 스승을 공경해야 할 것입니다. 더불어 우리는 불쌍한 이웃을 사랑하는 이타행을 실천해야 합니다.
5) 자력이 아닌 자·타력 불교라야 합니다.
지난날의 잘못을 참회하고, 부처님께 귀의하며 가피 받을 행을 하고, 악을 더 이상 짓지 말고, 부모님께 효도하며 착하게 살면서 칭명염불 하십시오. 자력수행으로는 여러 마장 때문에 인간 능력엔 한계가 있습니다. 윤회를 벗어나는 높은 수행 성과를 얻기는 어렵습니다.
타력수행을 하여 부처님의 가피를 얻으면 건강에도 좋고 삼재팔난을 만나지 않아 금생도 잘 살고, 다음 생에도 복되게 살 것입니다. 잘하면 윤회를 벗어나고, 삼계를 탈출하여 극락정토까지 왕생할 수 있고 붓다도 됩니다.
생으로 윤회생사하면서 지은 중생의 업장은 태산만합니다. 업장은 오로지 부처님만이 소멸시켜 주실 수 있습니다. 또한 천마와 용신과 무주고혼의 실체를 알게 됐으며, 이들이 빙의되었을 때의 문제점과 그 해결 방법에 대한 확실한 처방을 갖게 됐습니다. 이외 많은 사람들-천마天魔, 마경魔境, 외도의 수장首長, 용신 등 외마 그리고 신통 등에 대해서도 깊이 알게 됐습니다.
21세기 인류를 향도할만한 진정한 법Dharma은 우주적인 메타불교입니다. 불교 계율에 대한 가르침은 삼천대천세계 모든 육도중생에게 해당이 됩니다.
삼강오륜의 인륜 도덕은 우리 인간을 대상으로 합니다. 그러나 우주적인 종교의 계율은 탐진치의 뿌리까지 정화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육도의 중생은 물론 윤회 밖의 아라한이나 보살들도 부처님의 계명에 귀의해야 할 것입니다.
보시의 실천도 대승보살의 이타행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육도 중생의 고통을 대신해서 내가 받는다는 큰 자비가 있어야 합니다. 미래제가 다하도록 무피염無疲厭의 정신으로 지옥의 중생을 건지는 것입니다.
모두는 나와 더불어 한 몸입니다. 그래서 사랑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우주의 진리입니다. 이러한 지계와 보시에 대한 위대한 대승적 실천이 미래 인류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우주적인 진리의 몸-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은 석가모니 보신부처님의 진불이십니다. 삼천대천세계 모든 보신부처님의 진정한 법신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청정법신 비로자나불께서 대역사大役事를 하시는 특별한 경우 시방의 모든 원만보신불들께서 그 안으로 드십니다. 이것 역시 미증유한 중대 발견입니다.
영산불교 현지궁 현지사, 이곳에는 불과를 증한 두 분 큰스님께서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대적광전 그리고 다보탑을 건립, 점안하시어 곧 세상에 선보일 것입니다. 다만 이 나라의 국운융창과 인류의 복리를 위함입니다.
무엇보다도 영산 당시 가섭·아난이 이 땅에 와서 불과를 이루고 정법을 펴고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립니다. 부처님께서 상주하시고, 수많은 불 보살님께서 현신하시는 성지 중 성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성중이 수호하는 현지사, 말세 중생들의 복전이 되고 석가모니불 칭명염불을 권장하고 있는 정법도량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2권중 서문에서 발췌
붓다의 설법을 듣는 불가사의한 공덕
여기 와서 불과를 이룬 붓다의 설법을 듣는 공덕은 큽니다. 삼생을 두고 지은 공덕보다 큽니다. 그것은 대승경전상에 나와 있는 부처님의 설법 장면처럼 자재통왕불의 법문이기 때문입니다.
법왕자이지만 자재 만현은 아직 어리기에 오늘 이 설법에 와주신 우리 교주 불 세존과 더불어 다보불 등 오여래 큰 부처님, 문수·보현·관음·지장........... 수많은 부처님......... 특히 삼계의 법왕이신 석가모니부처님께서 깨끗하고 청정한 부처님의 광명을 놓으시어 청법 대중의 업장을 씻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각기 선근 따라 어떤 불자는 1겁, 10겁 등 겁 단위의 업장도 떨어져 나갑니다.
무량광이란 깨끗하고 청정한 부처님 광명을 말합니다. 두 눈썹 사이에서, 두 발바닥 법륜무늬에서, 온 몸에서 방사하는 억종광億種光, 열반광涅盤光, 백종오색광百種五色光입니다.
≪화엄경≫ 등 대승경전에서는 이를 티끌 수 같은 광명, 아승기 나유타 광명, 백천억 묘한 빛 광명…… 으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이는 안팎이 없이 드러나는 아름답고 영롱한 빛입니다. 한없이 방광해도 끝이 없습니다.
중생들의 앞에 있어도 그들이 볼 수 없는 희유한 빛입니다. 그리고 밝기는 섬광 이상입니다. 중생이 보게 된다면 가루가 돼 버릴 부사의한 부처님 광명입니다.
자성‧진여의 광명부터는 태양빛과 달라서 밝고 어두움, 멀고 가까움, 땅 속, 물 속, 사람들의 마음 속까지 비추는 것입니다. 특히 무량광부처님광명은 부처님의 우주적인 힘이 뒷받침되는 지혜의 빛입니다. 삼천대천세계 어디라도 비출 수 있고 천마, 외도 수장 모두를 조복할 수도 있고 중생의 업장을 씻고 소멸할 수도 있습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2권중 발췌
펴낸곳/현지사-영산불교사상연구소
사바세계 유일한 성지_영산불교 현지궁 현지사
≪유마경≫에 보면,
“유마힐 거사의 조그마한 방에 높이가 8만 4천 유순이나 되는 사자좌 3만2천 개를 들여놓았으나 그 방은 비좁지 아니하고, 불가사의한 해탈에 머무는 불 보살들은 높고 넓은 수미산을 겨자씨 속에 넣더라도 겨자씨는 커지거나 좁지 아니하고……, 큰 바닷물을 털구멍 속에 넣더라도 털구멍이 커지거나 좁지도 아니하다.” 라는 법문이 있습니다.
이 경의 말씀은 옳습니다. 공부 잘해 큰 삼매력으로 해탈‧대열반을 얻은 붓다는 자기의 몸을 온 세계에 꽉 차게 할 수도 있고, 겨자씨 안으로도 들 수 있으나 그 붓다의 마음은 조금도 동요가 없이 고요합니다.
이곳 현지궁 현지사 큰 법당 불단 벽 안쪽에는 무아 속 절대계에 계시는 여러 붓다님들께서 여기 남섬부주 경험상대세계 한국 땅 춘천 현지궁에 현신‧상주하시는 궁宮이 있습니다. 그 안에는 명경지수와도 같이 청정하고 깨끗한 물이 3탕으로 흐릅니다. 새벽에 올리는 남섬부주의 제자의 공양을 드시고 천녀들이 가져온 차 공양을 드십니다.
우리 교주 불 세존께서는 모든 불 보살님들로부터 보고를 받고 하루 일과를 지시하십니다. 부처님들 회의시간은 거의 2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사람들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산세 수려하고 강물 흐르는 명소에 자리한 절을 성지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곳 현지사는 보명여래부처님오여래 중 한 분, 법보를 관장께서 자리 잡아주셨고 삼팔선 이북에 있습니다. 땅의 지순한 기氣와 부처님 세계에서 쏟아지는 빛무량광 기둥이 맞닿는 세계에서 유일한 성지 중의 성지입니다. 이런 곳이라야 붓다가 출세합니다.
붓다는 그 싱그럽고 청정한 기를 섭취해야 합니다. 그리고 진신사리가 아닌 붓다의 원만보신이 거의 상주하다시피 하는 그러한 최상의 성지인 것입니다.
인도 영축취산에는 영산궁이 있습니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남섬부주 교주이십니다. 그래서 그 영축산 영산궁에서 수많은 상품보살을 교화해오고 계십니다.
이번에 여기 한국 땅 현지사에 두 분 제자가 불과를 증하게 되어 이곳에 오셔서 상주하고 계십니다. 부처님붓다이 계시는 곳이기에 궁이라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완전한 복덕을 구족하셨으므로 곧 다이아몬드, 노다지 광입니다.
이 궁에는 지금 두 분의 갓 불과를 이루신 광명 만덕 큰스님과 자재 만현 큰스님, 밑으로 극락세계 보살로 상품의 무량尼 스님과 27품으로 인가받은 혜명尼 스님이 있고, 금년 초에 인가 받은 무루 대아라한 상운尼, 선혜尼, 정수尼 스님과 영산 등 10여 명의 성중 인가를 받은 수좌를 비롯하여 50여 명의 염불행자들이 지혜와 복덕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현지궁 현지사는 외도의 눈길을 피할 수 있는 특수 유리관으로 둘러쳐져 있습니다. 이곳에선 바깥 세상과 하늘세계 모두가 보이지만 외도 하늘의 천마들에게나 마왕천에서는 여기가 보이질 않습니다. 영산궁과 현지궁의 실상은 붓다의 천안이 열리지 아니한 분은 볼 수 없습니다.
이 부처님 성지는 1,000여 명에서 10,000여 명의 성중이 도량을 항상 수호하고 있습니다. 사천왕이 출입문에서 입초立哨를 서기 때문에 어떤 마귀, 악귀, 영가鬼神들도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2권
펴낸곳/현지사-영산불교사상연구소
영산불교 현지궁 현지사
영산불교 현지궁에서는 사람들 모두가 금생에 더 잘 살고, 다음 생도 잘 살며 죽어서 지옥, 축생 등 악도에 떨어지지 않으며 윤회생사에서 벗어나고 나아가 정토보살이 되고, 붓다가 되도록 이끌어 교화합니다.
이곳 현지궁 현지사는 절대계 부처님 나라의 기운과 지기地氣가 맞닿는 사바세계에서 유일한 성지입니다. 불과를 증득할 대성자가 날 터전이라는 것입니다.
과연 2600여 년 전 영산 당시 부처님의 상수제자 대가섭과 아난이 이 땅에 와서 불과를 증하고 정법을 펴나가고 있습니다. 삼계의 왕 남섬부주 교주이신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상주하시고, 약사부처님, 문수보살, 관음보살, 지장보살, 준제보살……이 상주, 현신하십니다.
매일 아침 네시 반경 많은 불 보살님들이 이곳에서 공양을 드십니다. 부처님 이래 처음 있는 희유한 일입니다. 어느 누가 이 경천동지할 사실을 꿈엔들 이해하겠습니까? 그러나 필자는 이 책 처음도 중간도 마지막도 진실만을 말하고 있음을 강조해 둡니다.
절대계에 불과를 이룬 부처님들이 여여히 계심을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서 설파한 바 있습니다. 이는 역사상 처음 있는 파천황적 선언인 것입니다.
불과를 이룬 모든 부처님들은 진리의 몸을 상적광 절대계에 두십니다. 이 몸을 법신불이라 합니다. 무형이라고 말할 수 있으면서 우주적인 빛덩이 몸입니다. 분별을 떠난 지혜의 몸입니다.
동시에 무아 속 절대계에 부처님들은 각기 32상의 유형의 몸을 두십니다. 보신불이라고 하는 지복의 불신입니다. 보신불은 상모 거룩하시고 빛의 빛인 무량억종광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법신불이 육체적인 형태를 띠고 있는 것입니다.
신神은 천千의 머리를 지녔다 합니다. 그러나 보신불이라는 불신佛身은 필요하다면 백이고 천이고 억이나 되는 자기의 화신불을 나툽니다. 그래서 항하사의 신통 묘용으로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불연국토佛緣國土 인연 중생을 교화하십니다. 이는 백천삼매를 넘어선 대적정삼매라고 하는 삼매의 힘으로 되는 것입니다. 보신불은 지혜와 자비 그리고 공덕을 구족하고 있습니다.
부처님들은 인간 사바세계에 응화신으로 오시기도 합니다. 사람 몸을 받아 시들어가는 정법을 일으켜 바른 불교를 선설宣設하시고, 많은 제자를 양성하며 삼악도의 중생을 건지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고, 반열반에 들어 그 심의식心意識은 자기 보신불과 하나로 흡수 계합하시는 것입니다.
인간, 만물, 하늘, 땅 등 이 우주가 생성되고 진화하다가 소멸되는 것은 자연의 섭리 때문입니다. 힘과 자연의 법칙입니다. 다시 불교적으로 말하자면 인과의 법칙, 소위 카르마Karma의 법칙입니다. 인과와 인연의 도리인 것입니다.
이 우주의 이법을 노자는 도道라고 했고, 공자는 천天, 힌두교에서는 범梵, 기독교 등 일신교에서는 창조주 하느님여호와, 알라, 불교에서는 공, 마음이라 합니다. 그런데 이 법은 어디까지나 비인격적입니다. 이것을 인격으로 하여우상화하다 보면 수백 수천 가지의 모순이 생깁니다. 법을 왜곡하게 됩니다. 이 이법, 공, 마음을 기독교 등에서는 영원불멸하고 우주에 편만한 스스로 있는 자존자, I AM이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여기서 확실히 해둡니다. 이 우주의 이법은 하느님 이전에, 부처님 나기 이전에 이미 있었던 것입니다. 이 이법은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변괴 될 수도 없는 영원한 것입니다. 우주가 생성되고 소멸되는 것과는 상관없이 시공 이전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시공을 초월해 있습니다. 또한 이것은 생각 이전입니다. 생각이 없습니다. 분별이 없습니다.
따라서 우주를 창조하고 모든 것은 기획하는 그런 뜻 - 의자라는 것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조화와 사랑, 힘, 지혜, 완전, 절대의 기氣입니다. 기氣이면서 이법理法입니다.
一. 믿음이 없는 많은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 부처님의 교법을 믿지 않는 사람들, 이 우주안에는 오직 인연의 이법만이 존재한다는 법설을 무시하고 이를 믿지 않는 이들, 인과의 법칙‧인연의 도리를 무시하고 사는 사람들, 그래서 죽은 뒤 몸뚱이 없는 저 세상, 지옥‧천상천당 나아가 윤회생사를 부인하며 사는 사람들, 귀신도 없고 영혼도 없고, 저 세상은 더더욱 없다고 우기며 인생을 사는 사람들, 과학을 하는 일부 지식인들 - 신앙이 없고 종교가 없는 모든 이들이여!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그러한 삶을 살아가기에 때로는 부처님을 능멸하거나 모독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습니다.
자기만을 믿는다고, 양심대로 살면 된다 하고, 살인殺人은 아니더라도 마구 살생殺生하며 그것이 악인 줄 모르고 사는 이들이 많습니다. 주지 않는 것을 내 것으로 취하는 것이 죄악인 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은 자기가 처해 있는 자리에 따라 가능한 한 남의 재물을, 국가의 재산을 몰래 내 것으로 취하면서 양심의 가책 없이 살아갑니다. 주인 있는 여인과 간음하고 자기 이익이 된다 싶으면 서슴없이 거짓을 말하고 이간질 하고 양설도 악담도 합니다. 남을 시기 질투하고 음해도 하고 증오, 저주도 하며 삽니다.
정법에 대한 진실된 믿음이 없기 때문에 많은 죄악을 범하며, 가끔 경우에 따라 큰 악을 짓기도 합니다. 그러다 인생을 하직합니다. 이 얼마나 불쌍한 자들인 줄 압니까? 길이길이 지옥‧축생‧악도만을 윤회하게 될 지옥종자들인 것입니다.
선인선과 악인악과는 만고의 철칙입니다. 죄를 지으면 과보를 받습니다. 착하게 살면 그 보상이 있습니다. 저 세상은 있습니다. 귀신도 있고, 지옥도 있고 하늘 천국도 있습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2권
펴낸곳/현지사-영산불교사상연구소
위대한 영산불교 법맥 현지궁 현지사
영산불교는 영산 당시 가섭존자와 안난존자가 남섬부주를
찾아 불과를 증하고 영산 당시의 불교로 복원시켜 정법의
맥을 잇고자 영산불교를 창시하였습니다.
영산 당시 가섭존자는 현재 영산불교의 태사부이신 광명
만덕 큰스님이십니다. 이 분은 이미 1998년에 불과를 증하기
위한 모든 관문을 통과하여 불세존으로부터 광명불의 인가를
받았고, 영산 당시의 아난존자는 현재 자재 만현 큰스님으로
계시며, 2000년 불세존으로부터 산해혜자재통왕불의 인가를
받았습니다.
불과를 이룬 두 분의 큰 서원에 따라 불기 2551년 6월 15일에
부처님의 법통을 전수한 영산불교 창교를 선언하였습니다.
영산불교가 영산 당시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 가섭존자와
아난존자의 후신에 의해 부처님의 법통을 잇고 있는 것에 비
해 현재 세계 불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남방불교, 북
방불교, 티베트불교는 부처님의 법통을 잇고 있지 못하고 있
습니다.
한국불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선불교는 그 법맥이
당 송시대의 선사에 의해서 계승된 불교와 도교가 융합된
형태로서 새로운 불교의 한 종파일 뿐입니다.
출처/비교종교학
펴낸곳/현지사-영산불교사상연구소
영산불교 왜 탄생했나?
1. 가섭 아난 영산불교 정법시대를 열다
- 부처님 없는 불교에서 부처님 실존중심 불교로
1. 영산불교 왜 탄생했나?
'부처님 없는 불교'에서 '부처님 실존중심 불교'로 교리
수행체계 혁신적 재정립해야
지금의 세계 불교가 과연 2600여 년 전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어왔을
진리를 통달한 어느 대수행자가 이 질문에 '아니로'라고 대답하는데 1초의
도 걸리지 않았다면 너무나 슬픈 일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대답은
사실이다. 부처님 이후 '제2의 부처'라고까지 일컬어지던 용수를 비롯하여 수많
은 선지식, 큰스님들이 거쳐 갔는데 도대체 무엇이 잘 못 되었을까?
아직 생존해 계신 분 중에서도 소위 2대 생불이라고까지 추앙받는 티베트 불
교의 달라이라마도 있고, 플럼 빌리지(Plum village)를 설립한 베트남 출신의 틱
낫한 스님도 있는데 현재의 세계 불교가 무슨 문제가 있단 말인가? 지금 세계
불교계만 해도 수많은 종단과 종파들이 있는데 거기에 또 왜 영산불교라는 새
로운 종단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이유는 분명하다. '불교의 교주이신 부처님이 빠져버려 부처님의 우주적 구원
력을 잃어버린 불교, 인간의 실체인 영혼체가 빠져버린 실체없는 생사관으로 인
생 문제에 해답을 주지 못하는 불교, 자력중심 명상수행에 매달려 완전한 생사
해탈을 이루는 수행법이 없는 불교'를 이대로 둘 수 없기 때문이다.
첫째, 지금의 세계 불교는 부처님 없는 껍데기 불교가 되어버렸다.
부처님께서는 무아속 절대계에 빛의 인격체로 여여히 계신다. 모든 붓다님들
도 다 계신다. 그러나 현재의 불교계는 이 사실을 모른 채, 2550여 년 전 대열
반에 드신 육신부처님만을 믿고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부처님을 믿고
있는 것이다. 영원히 멸도하지 않으시고 눈 뜨고 생생히 살아계신 진짜 부처님
(보신)을 두고 말이다. 핵심 주인공이 빠져버린 불교다.
또한 '견성 - 아라한 - 보살 - 붓다'의 법위에 대한 무지로 견성 또는 아라한을
붓다와 동등하게 보아 불교를 왜소화 시키고 부처님을 격하시켜 버렸다.
둘째, 현재 불교는 영혼체가 빠져버린 실체없는 생사관으로 인생 문제를 풀어줄 실
천적 생사관 하나 제대로 내놓지 못하는 반쪽자리 불교가 되어버렸다.
현재의 불교계는 인간의 실체인 영혼체를 정확히 모를 뿐만 아니라 그 존재조
차 부정하기까지 한다. 지옥세계 극락세계 등 사후세계의 존재와 실상에 대한
확신도 없다. 불교의 목표는 생사해탈인데 생사해탈의 주인공인 영혼체를 모르
고 부청하면서 도대체 누구를 생사해탈 시키겠다는 것인가? 인생 문제에 대한
해답을 갖고 중생들의 등불 역할을 해야 할 불교가 인생 문제를 풀어줄 생사관
하나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런 실정이니 어떻게 똑바로 중생을 교화하고 수행을 지도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중생에 대한 불교의 직무유기다.
셋째, 지금의 자력중심 좌선명상 관법 위주의 수행으로는 완전한 생사해탈을 이루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되는 큰 수행 성과를 낼 수 없다.
언제부처인가 불교는 자력에만 의존하여 수행한다는 잘못된 개념이 사실인양
받아들여지고 있다. 자력수행은 불교 수행의 토대가 되지만, 완전한 생사해탈을
이루는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되기 위해서는 부처님의 가피를 불러오는 타력수행
문으로 들어와야 한다.
이제 불교의 수행 패러다임도 염불중심으로 혁신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삼천
대천세계 모든 붓다님들, 보살님들도 모두 염불로 붓다 되고 보살이 되었다.
불보(佛寶)의 자리에 부처님이 안 보이고, 법보(法寶)는 무지와 왜곡에 가려져
있고, 승보(僧寶)는 중생의 등불 역할을 제대로 해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
불교의 실상이다. 주인공과 핵심 알맹이가 모두 빠진 이름만 남은 지금의 불교,
반쪽자리도 못되는 지금의 불교를 더 이상 방치할 수는 없다. 그래서 영산 당시
가섭존자와 아난존자가 이 땅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붓다 이루고 부처님의 가르
침을 복원하고자 새로운 영산불교 정법교단을 창단하게 된 것이다.
지금 현지사 두 분 큰스님 외에 살아계신 세계의 어느 큰스님도 불과를 이룬
분이 없음을 선언한다. 돌아가신 분 중에는 사리불존자와 수보리존자 외엔 어느
누구도 붓다 되신 분이 없음을 아울러 밝힌다. 붓다의 화신으로 왔다 가신 분은
인도의 유마힐 거사 아쇼카왕, 중국의 구마라즙 삼장, 한국의 이차돈 성사, 일
본의 성덕태자가 있다. 이는 살아 있는 붓다의 신분으로 하는 선언이며, 이 선
언에 대하여는 분명한 책임을 진다.
영산불교는 이제 부처님을 중심에 두고 불교의 모든 교리와 수행체계의 큰 틀
을 다시 정림해 나가고자 한다.
불교의 우주적 위대성을 상징하는 불신관은 종래의 이론적 추상적 삼신불신
관에서 경험적 실존적 삼신불신관으로 재정립 되어야 한다.
불교의 뿌리가 되는 믿음관은 열반하신 육신부처님에 대한 믿음에서 살아계신
빛의 인격체인 보신부처님의 존재와 위신력에 대한 믿음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불교의 존재 이유가 되는 생사관은 현재의 인간 실체가 빠져버린 주체없는 생
사관에서 영혼체 중심의 실천적 윤회해탈생사관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불교의 실천행의 근간이 되는 수행관은 기존의 자력중심의 좌선명상 관법수
행에서 자력기반 타력중심의 칭명염불수행으로 과감히 전환되어야 한다.
불자들이 희구하는 구원관은 세속적 기복중심의 구원관에서 생사해탈이라는
수행목표중심의 실질적인 생전 사후구원관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러한 토대 위에 영산불교에서는 부처님 이후 260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실
천적 관점에서 지구촌 인류의 본질적 문제인 생사관의 문제를 다루었다. 우주
진리를 통달한 붓다의 혜안과 통찰력으로, 생생한 경험으로 인간의 실체와 사후
세계의 실상을 명확히 밝혀놓았다. 이를 토대로 인생의진정한 목표는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진리의 생사관을 정립하고 실천 방법도 분명하게
제시하였다. 지금까지 어는 누구도 인간의 실체와 사람이 죽어서 가는 사후세계
의 실상을 정확히 몰랐다. 그래서 우리 인류가 죽어서 가게 되는 엄청난 고통의
세계에 대하여는 아무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이 죽으면 대부분 혼절
할 정도의 가혹한 형벌이 가해지는 중지옥에 떨어져 겁 단위의 무량 세월을 고
통으로 보내야 하고, 다시 수십 수백 생 동안 돼지에서 시작하여 개에 이르기까
지 열두 띠를 돌며 축생의 몸으로 살아가야 하는 참담한 실상을 모르고 있다.
이미 돌아가신 부모 조상님과 가까운 친지들이 영혼체의 몸으로 받고 있을 가
혹한 고통의 실상에 대해서도 당연히 아무도 모른다. 물론 이 부분은 종교의 몫
이다. 그러나 지금 세계의 어는 종교도 이 문제에 대하여 정확한 실상을 알고
있지 못하며, 당연히 해결책은 꿈도 못 꾸는 실정이다. 불교조차 부처님의 정법
을 이어오지 못해 당연히 해야 할 이 역할을 못하고 있다. 그래서 부처님의 법
맥을 이어받은 영산불교가 우주 진리를 통달한 살아있는 붓다의 이름으로 이
인류적 차원의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하고 아울러 처방도 제시하는 것이다.
오로지 오로지 진리의 이름으로 말이다.
출처/우주적 진리의 신불교
영산불교의 법세계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1권,2권 축약판)
영산 당시 가섭 아난 금생에 한국에서 붓다 되다
2600여 년 전 영산 당시 가섭존자 광명 만덕 큰스님은 1954년 한국의 충북
보은에서 여인의 몸으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줄곧 불세존과 문수 보현 관
음 지장보살님의 보살핌을 받아왔다.
그런 가운데 홀로 용맹정진해 오던 중 1997년 불세존으로부터 허공에서 화두
게송을 받고 9일 만에 답송을 하기도 했다. 그 후 무량광의 관문을 통과하여
부처님을 친견하고 줄곧 지도를 받아왔다.
1998년에는 붓다로서의 모든 관문을 통과해 <<법화경>>의 수기대로 불
세존으로부터 불호 '광명불'로 붓다 인가를 받았다. 같은 해 보현보살님의 주선으로
서울(암사동)에서 아난존자를 만났다. 광명불은 불세존의 법의 태자로서 오여래급이
며 좌우보처는 명상불과 화광불이다.
영산당시 아난존자 자재 만현 큰스님은 1937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났다. 20
대 초에 출가하여 화두참구의 참선수행을 통해 10여 년 만에 공성을 증득했다.
<<화엄경>>의 선재동자처럼 여러 선지식을 두루 찾아 구법을 하기도 했다.
그 후 <<법화경>> 등의 경전을 통해 삼신불의 더 높은 세계가 있음을 확신하
면서 자력수행의 한계를 절감한 큰스님은 과감하게 염불행자로 방향을 전환했
다. 30여 년 간 사력을 다해 수행한 결과 깊고 깊은 염불삼매 속에서 부처님을
친결하고 가르침을 받아왔다.
드디어 2000년에 <<법화경>>의 수기 내용대로 불세존으로 부터 불호 '산해혜자
재통왕불'로 붓다 인가를 받았다. 좌우보처는 <<법화경>>에 나오는 상행보살과
정행보살이다.
출처/우주적 진리의 신불교
영산불교의 법세계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1권,2권 축약판)
부처님의 법통 전수와 영산불교 창립 선포
불기 2551년 음력 6월 15일 --- 이 날은 세계 불교역사에 새로운 한 페이지를
장식한 날이다. 영산불교 현지사 부산포교원에서 부처님 법통을 이어받은 법의
태자 광명불께서 가사와 전법통증서를 문수보살 법왕자 자재통왕불께 물려주고
영산불교의 창립을 선포한 기념비적인 날이다. <<아함경>>에는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분소의를 물려주는 장면이 나오고, 부처님 대열반 후 가섭존자와 아난존자
의 대화에서도 가섭존자 스스로가 불세존의 법의 아들, 법의 상속자임을 밝히고
있다. 가섭존자는 이제 붓다로서 공식적인 불세존의 법의 태자, 법의 상속자가
되었고 영산불교의 창단과 함께 법통을 아난 자재통왕불에게 물려준 것이다.
<전법통증서傳法統證書>
나, 불세존의 태자
영산 당시 법통태자 가섭 광명 만덕은
부처님의 뜻에 따라
오늘 영산불교 교단의 개창을 선포한다.
이와 동시에 문수보살의 법왕자 아난 자재 만현에게
나의 법통을 잇는 바이다
이의 증표로
그 동안 광명 만덕이 수했던
33쪽 가사를 전하노라
불기 2551년 정해년 음력 6월 15일, 광명 만덕
이 기회에 부처님의 법맥에 대해 한가지 밝혀야 할 사실이 있다. 선불교는
영산 당시 부처님께서 세 곳에서 제자 가섭에게 마음을 전했다는 삼처전심
을 근거로 자기들 멋대로 선불교의 법맥을 가섭존자에게까지 끌어올리는 무
지 무례를 범하고 있다. 이는 선불교가 불교의 정통성을 가진 적자임을 주장하
려는 억지일 뿐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선불교는 영산 당시 정통 불교와는 아무런 관력이 없다. 달
마대사도 마찬가지다. 그 법맥의 부당성을 지적할 가치조차 없다. 현지사의 가
섭광명불, 아난 자재통왕불께서 바로 살아계시는 중인이시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한가? 더 이상 성스러운 부처님의 법맥을 갖고 죄를 짓지 않기를 바랄 뿐
이다.
출처/우주적 진리의 신불교
영산불교의 법세계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1권,2권 축약판)
우주적 진리의 신불교-영산불교의 법세계를 말한다!
우주적 진리의 신불교, 불교나 힌두교는 자기들의 종교를 대양(大洋)에 비유합니다. 대양(大洋,큰 바다), 혹은 종대, 큰 산맥에 비유한다고요. 그런데 우주적이라고 해버리면 대양을 초월함은 물론, 산맥 같은 것 보다 위에 있습니다. 우주적이니까요. 그래서 우리 영산불교는 우주적이라는 말을 씁니다. 우주적! 이 말은 굉장한 의미가 있습니다. ‘영산불교는 우주적 진리이다’그거예요. ‘부처님의 실존과 윤회의 주체인 영혼체를 인정해라’그거예요. 지금까지의 불교는 부처님이 계신 것도 모르고, 부처님이 계신다고 하더라도 어떠한 어른인가를 모르고 지내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잘 압니다.
부처님은 어떤 어른이냐?
▸지혜와-부처님의 지혜는 여러분들이 상상할 수 없는 지혜입니다. 그런 지혜를 구족하고 계시고,
▸그 다음, 복덕을 구족하고 계십니다.
부처님의 세계에 대해서, 부처님에 대해서 너무도 잘 아는 영산불교에서는 이 불교계에, 아니 이 종교계에다가 이걸 강의한다고 생각하십시오. 지금까지의 불교는《화엄경》이나《법화경》을 앞뒤로 꿰어도 부처님의 위신력 복덕 지혜 등등에 대해서 우리 영산불교와 같이 피부에 깊이 와 닿게끔 설명을 할 수도 없고, 자기들도 모릅니다. 전혀 모릅니다. 그런 줄 아십시오. 우리 부처님은 지혜와 복덕을 갖추고 계십니다. 복덕, 스님이 어느 법회 때인가 또는 책에서인가 말을 했나요?
이 지구를, 아니 우주를 다 살만한 복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그렇습니다. 불과(佛果)를 증함에 있어서 그 과정이 있습니다. 이 우주를 다 살만한 복덕(복력)을 받아옵니다(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연 깊은 불자들이 복을 달라고 불공(佛供)을 하지 않습니까? 간절히 복을 달라고 기구(祈求)합니다. 그러면 봐서, ‘저놈이 참 착하구나. 착하게 살았구나’하면 복을 주는 거예요. 복을 주기는 주는데, 이 만큼 줄 것인가, 요만큼 줄 것인가, 산덩이만큼 많은 복을 줄 것인가 하는 것을 지혜로 판단해야 됩니다. 불과(佛果)를 증하게 되면 저 절대계에서 그 공부를 합니다. 무한한 지혜를 쓰는 법을 말입니다.
어제 우리 광명 만덕님이 볼일이 있어서 부산을 다녀오셨어요. 그런데 비가 너무도 많이 쏟아졌습니다. 불과(佛果)를 증한 분이 외출하시면 어쩐다고요? 외출하실 때에는 많은 성중이 앞뒤로 옹호 한다고 했지요? 그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오실 때 비가 너무도 많이 오니까 “이거 큰일났다. 관세음보살!”하니까 당신의 광명불이 쭈~욱 내려왔답니다. 그 광명불은 좌우보처가 누구입니까? 무현․모현 두 분의 붓다이지요?
이 응신(화신), 이 몸뚱이가 나갈 때에는 항상 그 좌우보처가 외호합니다. 그러니까 광명불이 처~억 오시고, 그분을 옹호하는 수많은 성중이 오시고, 극락세계 최상품이신 정명보살이 오시고(정명보살은 신통이 굉장히 큼), 또 많은 보살들이 위호해가지고 촤~악 내려오셨다 그거예요. 광명불인 광명 화신, 당신의 몸뚱이가 여기(승용차 뒷좌석) 앉았었고, 앞에 앉아서 가는 우리 두 제자 분들, 이름을 밝힐 까? '혜명'하고 '보광'입니다. 정토보살 인가를 받았잖아요. 그리고 운전은 나의 시자인 신행이 했습니다. '신행'알지요?
이 두 정토보살을 천도재할 때 부처님께서 닦아주시는 것 이상으로 영적으로 깨끗하게 안팎을 대청소(정화)하는 작업을 끝내주시고, '신행'에게는 큰스님을 모시는데 너무도 더럽다 해가지고 유리알 같이 깨끗이 소제를 해주시더라 그거예요. 이제 그 절대계에 있는 자기 붓다가 내려와 가지고 하시는 말씀, “자기는 아직 공부하고 있다”그거라. 자재통왕불하고 거기서 공부하고 있는데, 어떤 공부를 하고 있느냐 했더니, 방금 스님이 이야기한 지혜, 지혜도 다 갖추었고, 복덕도 다 갖추었는데 이 사람(중생)들에게 마구 줘버리면 안 되거든요.
자비 자체이니까 마구 주고 싶지. 그렇지만 그것은 이법(理法)에 어긋난다 그거요. 그래서 저 불공(佛供)을 한 사람이 무서운 큰 병을 얻었다? ‘병을 낫게 해 주시옵소서’ 하는 발원으로 해서 불공을 하고 있다 하면, 저 사람을 자비심으로는 다 낫게 해 주고 싶지만, ‘저 중생이 왜(무슨 이유로) 저런 병을 얻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된다(봐야 된다) 그거예요. 그래서 불안(佛眼)으로 저 중생이 전생 전생...전생에 무슨 업을 지었는가를 봐야 된답니다. 여러분, 그런 거예요.
그 다음, 하!~ 저 사람이 전생 전생...전생에 무슨 업을 짓고, 무슨 죄를 지어가지고 지금 저 병을 얻어서 앓고 있는데, 내가 자비심으로 그냥 갈 수가 없어. 그러니까 내가 어느 정도 저 사람을 치료해 주어야 될 것인가 하는 것을 판단해야 된다 그거예요. 보니까 그것이 다 지혜예요. 그래서 30%를 낫게 해 준다든지, 70%를 낫게 해 준다든지, 어쨌든 간에 공양 올린 그 선근으로 해서 작업을 하고, 그 병근(病根)을 어느 정도 뿌리 뽑아 주고 간다 그거예요. 그러니까 그 지혜를 어떻게 그때그때 쓸 것인가 하는 공부를 한다 그거예요. 아셨지요?
그런데 우리 신도 분들은 자기가 그 많은 생에 지은 죄업은 생각하지 않고, 무슨 사업이 안 되니까 ‘이 사업이 좀 되어야 되겠습니다’ 해가지고 공양을 올리잖아요. 그러면 또 축원을 잘해주지만, 부처님은 딱 관하신다 그거예요. 이건 영산불교에만 있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지금 전부 읽으면서 강의 해 드리겠지만 다른 절은 화신불이 갑니다. 지금의 절에는 화신불도 절반이 안 됩니다. 본불(本佛)은 안 가십니다. 본불(本佛)은 여기만 계십니다. 왜냐? 불과(佛果)를 이룬 제자들 곁을 철저하게 떠나지 않아요. 여러분, 그것을 아셔야 되어요. 불과(佛果)를 이룰 분이 이 세상에 올 때 저 원만보신불이 한 번 오셔요. 그때만 오셔요. 그러면 다른 절에서는 스님이 이야기했지만, 다른 절의 주지가 이렇게 말할 거예요. ‘현지사에만 부처가 있나, 부처 안 계신 곳이 있나’라고 말한다고 했지요. 그런 거예요.
그러나 여기서도(현대불교신문) 내가 대답을 했지만, 그것은 법신불 이야기입니다. 눈도 코도 입도 몸뚱이도 없는, 생각이 없는, 형상이 없는 법신불 이야기예요. 그 법신불이 절에만 있나? 절 아닌 곳에도 있어. 교회에도 있어. 물속에도 있고. 그러니까 그건 말이 아닌 것이어. 법신불이 뭐고, 보신불이 뭐고, 응화신불이 뭐고 하는 것을 전혀 모르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저 들은 풍월이어요. 아셨지요? 앞에서 사업도 이야기하고, 천도재도 몇 번 하고, 불공도 했는데 내 병이 낫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이 있어요. 우리가 다 해줍니다만, 서너 번 다섯 번 여섯 번해도 안 되는 사람들은 불평을 한다고요.
자기 자신에게 책임이 있는데 불평을 한다고. 그런 사람들은 많은 전생에 복 받지 못할 짓, 지금 현재 고통 받을 짓을 했어. 아주 나쁜 짓을 했어. 그러니까 그것은 부처님도 어찌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렇지만 우리 영산불교, 부처님회상에다가 큰 선근공덕을 심어라 그거예요. 다 해줘버리니까. 그건 처음에 스님이 말했을 거예요. 도저히 손 못 대는 병(病)이 있잖습니까. 우리 영산불교에서 손 안 대는 병이 있습니다. 그러한 병을 얻었다 하더라도 부처님 교단이 지금 일어설 때에 크게 선근공덕을 지어라 그거예요. 그러면 못해줄 것이 없으니까. 현대불교에 실린 인터뷰기사를 읽어 드리겠습니다.
불세존의 본불(보신불)인 노사나불과 여러 붓다님들이 상주하신다는 성지, 특히 영산당시의 가섭존자 광명 만덕 큰스님과 아난존자 자재 만현 큰스님께서 정법을 펼치고 계신다는 영산불교 현지사(顯智寺). 깊은 산속 명당자리도 아니고 화려한 시가지도 아닌 춘천시 교외 북단, 화천군과 경계를 이루는 38선 이북, 금강산에서 발원하여 통일의 꿈을 품고 흘러오다 잠시 머무는 북한강 춘천댐 상류에 자리 잡고 있다.
(이거 기자가 썼는데, 보니까 좀 어폐가 있네요. ‘명당자리도 아닌’이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중생, 풍수지리를 하는 지관의 눈에는 명당자리가 아니라고 보이겠지만, 불과(佛果)를 이룰 정도의 눈뜬 성자의 눈에는 ‘아! 사바세계에서 오직 유일하구나’하는 것을 알아버려요. 왜냐? 여러분들이 아시는지 모르겠네요.
우리 현지사 삼불보전 쪽에 그 부처님세계에서 통줄기로 내려오는 한 아름 이상이나 되는 무량광 줄기가 있습니다. 또한 땅에서 솟구치는 지기(地氣)가 나가는데 청정한 지기가 나갑니다. 이것이 딱 맞닿아져 있어요. 그것은 세계에 유일한 우리 현지사 밖에 없어요. 그 기(氣)가. 부처님 세계의 기가 쏟아지는 곳은 현지사 밖에 없어요. 더러더러 극락세계의 기나 하늘의 기가 쏟아지는 곳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처님세계의 기가 쏟아져 내려오고 있다. 또 플러스 마이너스처럼 밑에서 청정한 기가 솟구치고 있다. 이것이 반경으로 쫘~악 퍼져가지고 그 빛이 2만평을 다 카바(cover)합니다. 알았습니까? 그것은 지관의 눈에는 안 보이는 일입니다. 물론 지관들이 지적하겠지요. 현지사 뒤쪽으로 산봉우리가 두 개 터~억 있잖아요. 그러니까 어머니의 두 유방이다 그거예요. 그것을 어린애들이 젖에 의지하는 것처럼 비구 비구니들이 그것을 의지하면서 빨아먹고 살고 있다 그거예요. 그리고 또 앞에는 강이 유유히 흐르잖아요. 강이 있어야 됩니다.
강이 없는 데는 아닙니다. 물이 있어야 됩니다. 또 오른쪽에는 노적봉이 있어요. 그래가지고 여기의 재물이 안 빠져나가요. 저축하고 재물이 안 빠져 나가. 그리고 사람들이 볼 수 없는 불․보살, 많은 부처님들(열여섯 일곱 분의 보신 부처님들, 본불님들)이 와계시고, 많은 보살님들이 항상 왔다 갔다 하시고, 수많은 성중들이 쫘~악 깔려서 외도의 무리라든지 나쁜 마귀들이 들어오는가 싶어서 딱 진을 치고 외호하고 있어요. 그리고 여러분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유리관으로 궁(宮)이 되어가지고 2만평을 카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외도 하늘도 보고 다 그러지만, 거기서는(외도 쪽에서는) 안 보이게끔 하는 유리관이어요.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궁(宮)이라고 하는 거예요. 부처님이 계시니까 '궁(宮)' 그럽니다. 이 사바세계에는 궁(宮)이 두 개 있어요. 저기 인도 영축산의 '영산궁'과 여기 현지사의 '현지궁'입니다. 그 영산궁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영산궁에도 가셨다가 여기에도 계시다가 그래요. 우리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주로 여기에 계셔요. 그리고 또 절대계(상적광세계)에도 당신 궁(宮)이 있어요. 모든 부처님들은 다 궁(宮)이 있어요.
우리 석가모니부처님과 가장 가까운 두 부처님이 '문수․보현'이잖아요. 석가모니부처님 궁(宮)옆에 문수궁 보현궁이 있어요. 그런데 아드님이 더 가깝기 때문에 아드님 궁이 생겼잖아요. '광명궁'이 있어요. 또 거기서도 시자를 했던 아난은 또 가깝기 때문에 거기서 1㎞도 안 떨어져 있어요. '아난궁'이 있어요. 여러분, 그걸 아십시오. 이건 밀장입니다. 스님이 처음 이야기를 해드렸습니다. 어쨌든 현지사는 명당이 아니라 명당이라고 할 수 없는, 이 우리 현지사는 참 희귀한 장소예요.)
현지사는 부처님께서 직접 지어 주신 이름으로 부처님의 지혜가 오롯이 드러나는 절이라는 의미이다. 영산불교는 부처님 당시 여러 제자들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던 수많은 불자들이 인연 따라 다시모여 교단을 이루고, 인도 영산당시 부처님의 가르침을 원래의 모습 그대로 복원하여 다시 펼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어느 정도 써 놨습니다) 불교 수행자로서 최고의 경지에 이르신 두 분 큰스님을 찾아뵙고, 불교 교리에 있어 끊임없이 제기되는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들어보고, 영산불교에서 제시하는 해답을 통해 이 시대 불교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출처/2010.9.1.수(음7.23) 큰스님 대전 법문 중 발췌
현지사 터를 잡은 이야기
현지궁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천마(天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처님이 계시는 곳을 궁(宮)이라고 합니다. 중국 당나라 이전 수나라 때 당시 최고의 큰스님이 있었잖아요. 천태종을 크게 일으킨 천태지의(天台智, 538~597). 그분은 법화(法華)학승인데, 지금까지 그분을 능가할 분은 없습니다. 그분이 법화삼매에 들어서 보니까 영축산에 부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법문하시는 장면을 봤어요. 그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고 하는데, 영산회상이 아직도 흩어지지 않고 있단 말이에요. 그 한 장면을 슬쩍 본 거예요.
그래서 나중에 그것이 영산정토라는 말이 있어요. 영산정토. 영산궁은 사실이어요. 우리 부처님께서는 사바세계 교주이시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영산궁에 계셔요. 절대계에도 계시지. 삼계지존이시니까. 무아속 상적광세계, 거기에도 궁(宮)이 있어요. 우리 부처님과 가장 가까운 붓다들이 문수․보현이죠. 그리고 태자 광명이 있고, 문수법왕자인 자재가 있잖아요.
그 절대계에 모두 다 궁(宮)이 있어요. 그러면서 여기 영산궁에도 있어요. 우리 부처님께서 영산궁에 와계십니다. 그런데 오늘 밀장이어서 조금만 해석 해 줄게요. 여러분한테 조금 말씀해드리겠습니다. 오늘 법문은 굉장히 중요한 법문입니다. 그 영산궁에는 부처님께서 계시고, 많은 붓다들이 계시고, 많은 보살님들이 계셔요. 그런데 이 세상 사람들은 영축산을 뒤지고 찾아도 못 찾아요.
과학자들뿐만 아니라 최고의 선지식이라고 하는 분도 100년이 아니라 아무리 찾아도 못 찾게 되어있어요. 못 찾지요. 현지사에 현지궁이 있습니다. 아직은 자세히 말 안했지만, 조금 이야기했지요. 못 찾지요. 찾을 수가 없지.《화엄경》에 이런 말이 있지요.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한 개 티끌 가운데 시방세계가 싸여있고)”이라는 말이 있어요. “일중일체다중일(一中一切多中一, 하나 가운데 모든 것이 있고 많은 가운데 하나뿐이며), 일중다 다중일(一中多 多中一)”의 도리가 있어요.《유마힐경(維摩詰經)》을 봐도 그것이 나와요. 조그마한 방에 수만(數萬)의 붓다님들이 의자를 갖다가 앉아계셔도 그 방이 좁지도 않고 넓지도 않고 한다는 것, 그것을 사사무애(事事無碍)의 도리라고 해요.
좀 어려운 이야기예요. 영산불교 영산궁이 그렇게 있습니다. 있는데, 두 제자를 불과(佛果)이루어서 데려가시기 위해 현지궁에 와계시잖아요. 그래서 현지사에다가 현지궁을 만들어 놓은 거예요. 현지궁의 실체를 좀 알려 주려고 하는데, 이게 밀장이기 때문에 오늘 조금만 이야기 합니다. 우리 제자 누가 조금 알아가지고 써놨더구먼. 이 밀장부분은 여러분들한테 전부를 공개 못하는 것입니다. 어느 벽이 있어요. 이 조그마한 벽 사이에 서울시보다도 더 넓고, 사바세계보다도 더 넓은 세계를(부처님나라를) 창조해 놨어요. 알았습니까?
그래서 열다섯 사부님들이 거기에 계셔요. 여러분! 그 부처님들께서 어디에 계시는지 아무리 찾아보라고. 모르잖아요. 그런데 그 궁(宮)은 그렇게 넓고, 기가 막히게 절경이고, 강이 흐르고 하는데도 여러분들은 모르잖아요. 거기에서 식사도 해요. 식사하는 곳이 있어요. 그러면 하늘에서 천녀들이 내려와서 시중을 들고, 차를 갖다 바치고, 삼천대천세계 우리 부처님께서 결재해야할 것들이 산적히 들어와요. 여러분, 이렇게 쉽게 말해주면 이해하시겠지요. 그래서 현지궁, 궁(宮)을 쓴 거예요.
우리가 10년 전에 그 자리를 잡은 이야기는 어느 제자가 또 슬쩍 써놓았기 때문에 이야기를 하지 않고, 거기에 얽힌 불가사의한 이야기를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11세기, 지금으로부터 1000년 전, 티베트의 붓다의 화신이라는 전설적인 고행의 성자 '밀라레빠'를 아시지요. '밀라레빠십만송'이라는 두꺼운 책이 나와 있어요. 여러분 한번 보십시오. 잘못 기록된 것이 많습니다만, 한번쯤 읽어 봄직 합니다. 이 '밀라레빠'는 붓다의 후신이 아니고 상품보살이어요.
이걸 말하면 티베트 사람들은 화가 날거예요. 그 '밀라레빠'가 우리한테 두 번 와서 친견을 하고 갔어요. 200년 안팎엔가 또 한 번 왔어요. 그때도 수행을 잘 했어요. 어쨌든 그 정도로 아십시오. 이 '밀라레빠'가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과 함께 수행을 하는데, 제자들이 많이 나오면 수행처가 부족하잖아요. 여기저기 수행처를 잡는데 가끔 그 수행처를 자기의 집으로 삼고 사는 신들이 있어요.
그런데 이 '밀라레빠 십만송'은 잘 못해 놨더구먼요. 요괴들인데, 많은 요괴들이 삽니다. 요괴는 이매망량신들이어요. 그래서 여자로(요녀로) 둔갑을 잘해. 자기의 집에 와서 공부하고 있으니까 그 동굴 같은 것을 뺏기지 않으려고 해요. 안 그럽니까? 나타나서 아주 훼방을 부리는 거예요. 훼방을 부려요. 웬만한 신통이 없으면 당해요(죽어요). 신통으로 죽여요. '밀라레빠'는 대단한 분이지요. 그러니까 싸워요. 법문을 해주기도 하고. 그래서 조복을 받습니다. 그래서 많은 동굴과 절경이 어우러진 수행처, 수행하기에 적합한 설산 수행처를 빼앗잖아요.
그 중에서 '띠세'설산이라는 곳이 유명하고, 동굴은 '링와'동굴이 유명한데 이건 모두 다 빼앗은 거예요. '밀라레빠 십만송'을 보면 그런 것들이 나와요. 그런데 이걸 꾸민 이야기로 알지요. 읽은 사람들은 모두 그러겠지요. 그래서 오늘 현지궁 이야기를 하면서 현지사 터를 잡았을 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불보살로 잘 변술(화현)도 하고, 어떨 때에는 구렁이로, 사자로, 여자로, 노인으로 애기로도 금방 변화해버리는 변화술에 능한 하늘 마(天魔), 외도의 집단이 거기서 터를 잡고 수 백 년을 있었어요. 여러분, 그것들이 우리한테 양보해 주려고 합니까?
처음에는 설득해도 듣지 않아요. 이 귀가 막혀가지고 안 들어. 안 들어가. 그러니까 저들의 괴수, 반드시 그 집단은 괴수가 있습니다. 대장이 있는 거예요. 괴수가 저들의 집단을 이끌고 우리한테 도전을 한 거예요. 도전을 하는데, 거기는 높은 하늘 외도마(外道魔, 天魔)라서 무서운 신통이 있어요. 전쟁을 하는데 어떻게 오느냐? 독침을 날려요. 화살에다가 독을 발라서 쏘는 것처럼 독침을 마구 신통으로 쏜다고요. 맞아버리면 죽는 거예요.
그 영체가 죽어버린다고요. 무수히 날아온다고요. 그러니까 여러분, 어떻게 하겠습니까? 저들보다도 더 무서운 위신력이 없으면 당해버리는 거예요. 당해버려요. 거기는 붓다가 나올 곳이어요. 우리가 서울에 있었을 때 부처님께서 자꾸 “여기는 우리 광명불이 기를 다하고(붓다가 되었으니까), 자재를 위해서 그곳으로 옮겨 가거라”해가지고 꼭 거기를 가게 되어 있었어요. 가야만 돼. 그래서 이제 거기를 차지했는데 도전해 오더라고. 더 무섭게 도전을 하는 것은 독 가루입니다. 독 가루를 뿌려버린다고요. 이 독 가루가 태풍이 몰아치듯 한 속력과 속도로 온다고요. 이걸 어떻게 막아내느냐?
막아내지 못하면 죽는 거예요. 이걸 전부 막아내어요. 무량광으로 이루어진 영체는 그걸 막아냅니다. 못 옵니다. 그리고 이 영체가 장풍도 있습니다. 장풍을 확~놓아서 독 가루가 오는 것을 막아낸다고요. 저들이 이제 해도 해도 안 되니까 하늘 신(자기의 도반들), 말하자면 자기의 신들(천마들)을 부른다고. 이제 일개 군단이 된다고.
그러면서 2차 도전을 해온다고요. 그걸 우리는 응전을 않고 응전을 했어요. 응전을 하지 않고 장풍으로만 하다가. 저것들이 아무리 해도 안 되거든. 그때 곧 우리 광명불님께서 오셔서 광명불 영체하고 합해가지고 불로 포위를 한 거예요. 불기둥으로 포위를 시켜버린 거예요. 순식간에 해버립니다.
그래가지고 조여 들어와. 그런데 그 온도를 백도 천도 만도 억도까지 높이면서 조였어. 저것들이 이제 타 죽게 생겼거든. 여러분, 불이 났다고 생각해보세요. 사면에서 불이 막 좁혀 들어 올 때 어떻게 됩니까? 이제 죽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는 그 영체가 견딜 수 없는 온도로 높여서 좁혀 들어갔다고. 그러니까 전부 살려달라고 비는 거예요. 그래서 조복을 받고, 그들이 지니고 있는 못 된 신통을 전부 거둬버린 거예요. 부처님은 그 능력이 있어요. 그들이 갖고 있는 최고의 일급무기는 빼앗아 버린 거예요. 빼앗아버렸어. 그래도 우리가 미안하잖아요.
인연이 다 되어서 우리가 왔는데 미안하니까 전라도 어디로 터를 잡아서 보내준 거예요. 아시겠지요. 오늘 처음 스님이 성지(聖地)를 빼앗은 이야기를 해드립니다. 이것을 읽고 이제 '밀라레빠 십만송'을 읽어보라고. 그러면 다른 학승들이나 큰스님들은 ‘이것은 뭐 이야기이고, 말도 아니고, 이건 뭐...’그런다고. 여러분은 이제 실제로 ‘아하! 이렇게 해서 빼앗아 버렸구나’라고 이해하실 겁니다. 그 설산 3,000미터 5,000미터 고봉의 동굴 산을 많이 빼앗았어요.
부처님 말씀이올시다. 잘 들으세요.
“이 세상에는 많은 종교와 가지가지의 가르침이 있다. 그 종교의 성인(聖人)이 되는 팔정도 법이 있는지를 보라. 만약 팔정도 법이 없다면 그 가르침은 아무리 열심히 실천수행을 해도 아라한 성자가 절대 나올 수 없다.” 알았지요. 이 정법팔정도, 그래서 우리는 '팔정도칭명염불'이라고 합니다. ‘사성제 팔정도를 통해서 수행하지 않는 종교나 종파는 전부 성인이 나올 수 없다.’ 맞습니다.
그 위대하신 우리 부처님께서는 항상 역설 하시는 것이 효(孝)입니다. 부모님께 효도해라. 돌아가셨으면, 붓다회상 이때, 이 부처님께서 계실 때 천도를 해라. 그래야 천도가 된다. 네 번만 해라. 하늘로 보내 줄 것이다. 천도를 해라. 그래서 지금 많이 하고 있는데, 이 천도재가 돈이 비싸다느니, 뭐뭐 어떻다느니 해가지고 말들이 많지만, 비용은 다른 절과 같습니다. 값은 다른 절과 같습니다. 10년 전에도 그렇게 했습니다. 선근이 있는 자들만 오라고 했더니, 계속하고 있어요. 이 효를 굉장히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효를 하는 사람은 안 되는 사람이 없어요. 무슨 일이든지 잘 되는 거예요. 효를 하는 사람은 하늘이 도와주니까요. 효는 불보살님도 도와줘요.
출처/2010.10.15.금(음9.8) 큰스님 대전 법문 중 발췌
광명 만덕 태사부님께서는 어렸을 때부터 빨강 가사 장삼
을 수하신 부처님들 꿈을 종종 꾸셨고, 특히 경을 읽고 자는
날이면 꿈에 부처님이 오셔서 공부를 이끄셨다 합니다. 성년
이 되면서부터 태사부님은 공부하실 때 집중력이 출중하시어
깊은 선정에 들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 선정 속에서 바위산에 터널을 뚫을 정도이며 관음
보살님께서 바다 수면에 현신하실 때는 큰 연꽃을 염불의 힘
으로 만들어 보살님을 떠받드시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태사부님은 정신을 집중하여 석굴암 부처님 상을 만들어
놓고 석가모니불의 존호를 봉창하는 염불 공부를 하신 특별
한 분으로서 깊은 불연 아니면 이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미 12년 전에 불과를 증하신 이래 부처님 세계에서 사시
다시피 하십니다. 본격적으로 공부하신 이래 지금까지 하루
도 부처님 공양을 거른 적 없으시고 꽃 공양 빠진 날이 없으
십니다.
대쪽 같은 성품에 중생을 위하는 자비심, 부처님을 공경하
는 마음 지극하시어 우리 제자들의 귀감이 되십니다.
삼계의지존이시요. 법계의 지존이신 부처님의 법통을 이으신 가섭존
자이시며, 이제는 불과를 증한 법왕의 아드님으로서 좌우보
처가 붓다이신 수보리 명상불, 사리불 화광불을 두십니다.
절대계 부처님 세계에서는 오여래다보불, 약사불, 아미타불, 보명불급
으로서 광명불광명 만덕 태사부님의 보신불은 앞으로 남섬부주 교주이
신 부처님을 대행하시게 될 것입니다. 모든 붓다의 삼매에
자재하시고 104위 화엄성중을 부리신다는 점만 밝힙니다. 우
리 영산불교 교단의 중핵으로서 중생의 복전이 되십니다.
출처/비교종교학
펴낸곳/영산불교 현지궁 현지사
아난과 가섭이 만나다
저 오라를 보라~ 또 저 분의 영체의 색깔은 눈이 시려서 도저
히 볼 수 없는 빛 덩어리 아닌가?
나를 찾아 온 40을 갓 넘은 여인이 내 앞에 않아 계십니다. 마
음속으로 '이 여인은 붓다의 화신이 아닌가! 붓다의 화신임에 틀
림없다!고 생각한 나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짐짓 위엄을 갖
추고, 방의 꽃병에 꽂혀있는 꽃을 가리키며 2500년 전 영산 당시
부처님께서 "거염화하시고, 곽시쌍부한 의미"가 뭐냐고
물었습니다.
여인은 몸을 곧추 않더니 즉석에서 우리 말 게송을 지어 읊습
니다.
본래부터 없는 것
이름하여 꽃이라 하네.
시들어 없어지면 허망한 줄 알고
허망한 줄 알았기에
나 없는 행을 청정하게 하라는 것.
육신의 인연도 다 했기에
대성자 부처님도 이 땅에서
두 발을 거두셨네.
나는 진짜 도반이요, 큰 스승을 만난 것입니다. 나는 지금도 진
심으로 부처님께 감사 드리고 있습니다. 그 후에 그 분께서 내게
법문하신 말씀 가운데 몇 가지만 소개하겠습니다.
"현상을 쫓지 말라. 모습모양을 쫓지 말라. 그 공안에 현상계
가 들어 있으니. 그것을 깨라. 산화시키라."
"청정을 닦으라."
"목적을 삼지 말라. 탐 진 치에 걸린다."
"법 아닌 생각이 일어나면 손에 불덩이를 쥔 듯 놔 버려라."
두문불출 용맹정진하던 이 분이 나를 찾아온 데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만 여기서는 그 이야기를 접겠습니다.
당시에 이 분은 부처님으로부터 공청으로 화두를 받아 9일만
에 화두타파를 한 후 경전<<금강경>>을 읽고 염불하다 깊은 삼매에
들어 있는 중이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의 일입니다. 우리
는 서로 빙의도 없고, 영체가 빛 덩어리로 화해감을 보고 법의
도반이 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 후 서울에 수도처를 마련해 우리
를 따르는 스님들과 함께 한 집에서 용맹정진을 하다, 지금은 강
원도 춘천으로 옮겼습니다.
경에도 나와 있지만, 처음 붓다 될 때에는 90펴센트 정도가 여
자 몸으로 오게 돼 있습니다. 그래야 부처님께 공양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당대에 붓다 이를 인연이 된 공부인에게는 반드
시 보신 개념의 부처님석가모니불께서 그를 이끌기 위해 내려오
십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분에게 불호를 광명, 보살명은 만덕으로
내리셨습니다. 충북이 고향이고 어렸을 때부터 빨강 가사 장삼을
입은 스님이 꿈 속에서 자주 보였다고 합니다.
"한 중생을 제도하려 백천 생을 따라나녀 끝끝내 건져냄이
불 보살의 대자비이니...."
당대에 불과 이루실 분이기에 불 보살들께서 몇 생 전부터 줄
곧 보살펴 오신 것을 알았습니다. 이 점이 과연 희유한 부분입
니다.
불과를 이루고 보니 부처님과 문수 보현 관음 지장보살님들
이였다고 합니다.
광명 만덕 큰스님은 무량광의 관문을 통과하여 급기야는 천만
생 아니 겁을 두고도 만나기 어려운 부처님을 친견한 것입니다.
부처님을 만나서 줄곧 지도를 받아왔습니다. 지금은붓다로서의
모든 관문을 다 통과해서 불과를 중하고 보림 중에 있습니다.
영산 당시 이후로 세 번째 붓다 되신 것입니다. 좌우보처에는
화광불사리불 존자의 불호, 명상불수보리 존자의 불호을 두고 계십니다.
좌우보처가 붓다인 분은 오여래뿐입니다.
이 분은 2500년 전 영산 당시 삼계 왕 석가모니부처님의 법통
을 이은 아들이었는데, 이제 확실히 법의 상속자, 곧 법의 아들이
되신 것입니다. 부처님의 법의 아들이기 때문에 좌우보처가 붓다
들입니다.
부처님 세계에 있는 광명불의 불신은 머리에 석가모니불을 정
대한 띠를 두르신 것이 마치 아미타불을 정대하신 관음보살님과
도 같습니다.
부처님과 오여래 그리고 문수 보현보살 등 부처님의 본 불신
을 뵙고, 법문을 듣고 자유자재로 부처님들과 대화하며 나아가
자기의 불신을 얻은 이는 영산 당시 부처님 이후 수보
리 존자, 사리불 존자, 가섭 존자 외엔 그 누구도 없다는 것을 이
세상에 알립니다.
부처님의 본 불신을 뵙는 경계부터는 불의 경계이며 붓다의
화신을 선정 중에서 보는 경계는 보살 경계입니다.
염불 정토종에서 연종 조사로 불리는 진의 혜원 조사는 도원
법사의 <<반야경>> 강의를 듣다가 대오한 이후 30년 동안
세속에 발길을 들여놓지 않고 지극히 서방극락에만 뜻을 두어 정토
업을 닦다가 세 번이나 아미타 화신불의 성상을 보았으나, 남에게 말하
지 않고 침묵하더니 과연 단정히 않아서 입적했습니다.
당의 선도 큰스님은 평생 정토를 연설하고 30여 년 동안 잠
도 제대로 자지 않고 호궤한 채 염불 정진했으며, 도작 큰스님은
하루에 7만 번씩 염불을 하면서 정토업을 닦았으나 보신 본불
은 친견하지 못했습니다.
인도의 무착 큰스님은 도솔정토의 미륵보살을 일광삼매에
들어 친견하고 <반야 80송>을 받아 <금강반야경론> 2권을
지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미륵보살은 보신이 아니라 화신입니다. 용수
보살 역시 용궁에 들어가 <<화엄경>>을 가지고 왔다 하나
부처님을 친견하고 법문을 들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11세기 티베트의 미라래빠는 성불을 법신뿐만 아니라 보신과
화신까지도 언급하며 삼신을 구족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으나,
<미라래빠 10만송> 그 어디를 보아도 불의 보신에 대한 비밀은
분명 알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상품보살로 왕생하여 현재는 북방의 태세보살로 있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대수행자가 붓다 이루려면 태어날 적
마다 억겁을 두고 선근 공덕을 쌓고, 수행을 계속해 몸과 마음,
영체가 청정무구의 상태를 지나 빛 덩어리가 되어 빛으로 된 불
신을 뵐 수 있고 법문을 듣고 나아가 자기의 불신을 얻어야 합니
다. 그래야 불과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 분의 공부를 위해서 끝까지 보좌하기로 약속하고 지금
까지 7~8년 동안을 모셔오고 있습니다. 이 공덕으로 만현도
이제 불과를 증하게 됐으니 삼생의 깊은 인연인가 봅니다. 자
재 만현이 어찌해서 이 분과 함께 사제간이 되었고, 그동안 이
분을 어떻게 지켰는지, 부처님의 뜻에 따른 비화는 훗날 자
세히 말하게 될 것입니다. 할 말은 많으나 뒷 날을 위해 접어두
겠습니다.
광명 만덕 큰스님은 정진력과 집중력이 바위를 뚫을 정도여서
"과연 가섭 존자시다!"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오곤 합니다. 삼천
대천세계 모든 부처님들 간에는 서로 빛으로 상속되어 있어서 한
생각이 같으십니다. 이 분은 법문하시는 중에도 얼마든지 부처님
들과의 대화가 가능하고, 수 초 안에 깊은 삼매에 드십니다.
자유자재로 부처님의 무량광명을 내고 투사해서 제자들의 업
장을 씻어 주시기도 하며 104위 화엄성중을 부리십니다.
어느 날 세존께서 청정법신 비로자나불로 뜨셔서 한 마당 작
업하시고 원만보신으로 현신하셨습니다.
물론 깊은 선정 속의 일입니다.
깨끗하고 탐스러운 한 송이 수국화를 드시고서 물으셨습니다.
"이게 뭐냐?"
"본래부터 없는 것, 이름하여 꽃이라 합니다."
만덕 큰스님이 대답하시니, 다시 물으셨습니다.
"이 꽃의 실체가 있느냐?"
"없사옵니다."
"영산 당시의 이 일은 있다 없다를 초월한 자리를 가르치고자
함이다. 살아 숨 쉬는 모두는 이 꽃과 같이 허망하여 실체가 없
으니 믿을 것이 없다는 무아사상을 가르침이니라."
불 세존의 말씀이셨습니다.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왔다가 인연이 다하면 꽃과 같이 시들어
없어지는 것이니 그 무엇에 착하여 내 것이다 네 것이다 분별하
며 아옹다옹 하는가, 꽃과 같이 인생도 허물어지는 것이니 그 어
떤 것도 실체가 없음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2001년도에 스스로 대적정삼매에 드셔서 읊은 삼매송을 여기에
싣습니다.
비었어라 비었어라
삼천대천세계가 비었어라
모두가 비어 있는 공의 자리
삼천대천세계 부처님 법의 자리
청정하고 깨끗한 무량광명
환희 환희 환희일러라.
광명 만덕 큰스님의 돌아가신 아버지는 극락세계 상품으로 왕
생하셨고, 어머니는 스님으로 계시다 입적하셨는데, 약사여래불의
정유리정토에 왕생하셨습니다. 이 두 분은 영산 당시 16성이었
습니다. 물론 40여 조상 영가 모두가 하늘 천상으로 천도되었음
을 첨언합니다.
출처 /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위대한 영산불교 - 무엇이 다른가?
1, 영산불교 - 위대한 우주적 진리의 신불교
영산불교는 부처님의 법맥을 이어받은 우주정법으로서 불교의 교리와 수행 전반에 걸쳐 불교사에 한 획을 그을만한 엄청난 소식들을 전하고 있다. 지금의 왜곡되고 왜소화된 세계불교를 혁신하고 영산당시 부천님의 정법을 복원하여 위대한 신불교를 다시 탄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많은 종교 중에서 불교가 왜 위대한 종교일까?
① 불교는 무량겁 전에 우주법계에서 가장 차원이 높은 유무를 초월한 무아속 절대계의 영역을 인류최초로 개척한 우주법왕 석가모니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우주적 메타종교다.
불교는 시간적으로 그 역사가 무한하고, 공간적으로는 수많은 삼천대천세계의 구조를 이루는 우주를, 그리고 영적으로는 가장 차원이 높은 절대계에서 가장 차원이 낮은 지옥계까지를 포괄하는 우주적 메타종교다. 무아속절대계는 지금까지 지구상의 어떤 다른 종교나 사상이나 철학도 감히 범접하지 못했던 영역이다. 기껏해야 지옥과 천당을 말하거나 본성을 깨닫는 수준 또는 초인이나 신선 등 우주법계의 일부 윤회세계나 일부 해탈세계를 이야기하는 그런 종교나 사상으로는 우주진리를 온전히 밝힐 수 없다.
불교는 다른 종교에서 수행의 목표로 인식되고 있는 깨달음을 수행의 출발점으로 보고, 깨달음을 지나 첫번째의 해탈계인 아라한 해탈오계도 넘고 그 위의 해탈계인 보살정토계마저 초월하여 해탈계의 정점인 무아속절대계에 불신을 두는 붓다를 배출하는 위대한 종교다. 그래서 우주법계를 끝까지 꿰뚫어버리고 절대계에불신을 둔 부처님의 가르침을 우주정법이라 하고 불교를 우주적 진리의 종교라 하는 것이다. 이 절대계의 영역을 모르고 우주진리를 통달했다고 말하면 안 된다.
② 불교는 창조주적인 위신력을 가진 부처님과 수많은 붓다님들을 정점으로 우주법계에서 가장 큰 영역을차지하고 있고, 가장 강력한 세력을 보유하고 있다.
우주법계에는 불교 외에도 기독교 이슬람교 도교 등 다른 종교와 외도들, 마구니들이 각각의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불교는 창조주적인 위신력을 가지신 부처님과 우주적 능력을 보유한 수많은 붓다들의 세계인 절대계를 정점으로 항하사 수의 보살 정토계와 아라한 해탈오계, 무량의 성중 신중 하늘세계 등으로 불교권의 우주정법계를 형성하면서 절반이 넘는 우주법계의 영역을 차지하고 있으며, 다른 어떤 종교나 외도들의 추종을 불허하는 가장 강력하고 거대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③ 불교는 모든 윤회중생이 죽어서 가는 명부(저승)의 영혼체들에 대해 우주이법에 따라 심판하고 우주질서를 유지하는 사법권을 갖고 있다.
모든 사람은 죽어 윤회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시방여래부처님 지장왕보살께서 관장하시는 명부에 들어가서 전생에 지은 업에 대해 열시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다른 종교인도, 비종교인도 절대로 예외가 될 수 없다.
심판결과에 따라 가아햘 세계와 기간이 결정 된다. 이는 불교가 우주정법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어느 다른 종교도 이 일을 하지 못한다. 국가의 사법권 행사와 같은 이치로 보면 된다.
④ 불교는 우주이치를 관통하는 가르침으로서 다른 종교와 도저히 비교가 되지 않는 방대한 분량의 경전과 함께 내용면에서도 최고의 과학이요, 철학이며 종교다.
부처님의 친설이라는 아함부만 해도 1만 8천여 경들로 이루어져 있어 타 종교와 비교를 불허한다. 거기다가 방등 반야 법화 화엄 열반 등의 수많은 경전과 티벳 밀교로 드러간 경전까지 합하면 분량 면에서도 가히 위대한 종교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불교의 교리는 내용 면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의 과학, 최고 경지의 철학, 그리고 가장 높은 차원의 종교성을 담고 있다.
◆과학은 자연의 이치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그런데 불교는 우주이치를 관통하는 가르침이기 때문에 교리 그 자체가 자연 이치요, 과학이다. 현대의 첨단과학은 불교의 화엄사상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는 수준에 와있다. 앞으로 인연법, 공이론, 윤회론, 영체론, 업력이론 등의 불교 교리를 과학이 따라와 주어야할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현대과학에서 주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이라는 4가지 힘을 하나로 연결하여 설명하려는 것이 대통일장 이론이다. 그런데 불교에서 말하는 업력은 이 세계와 인간을 창조하고 지옥, 천상 등 육도윤회계를 창조한 엄청난 힘이다. 창조의 동력인 이 없력이야말로 우주만물을 있게 한 근본적인 힘이다. 어쩌면 대통일장 이론의 돌파구가 될 수도 있다. 불교는 과학자체이다. 따라서 불교가 과학적이어야 한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당연히 과학이 불교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불교는 어떻게 최고경지의 철학인가? 절학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원리나 삶의 본질 등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명제는 우리 인간의 삶의 목표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는 학문이라고 본다. 다시 말하면 인생의 근원적인 문제를 찾고 생사관을 정립하는 일이다.
영산불교는 이 문제에 대해 분명한 해답을 제시함으로써 철학의 궁극적 명제를 해결해 주는 최고의 철학인것이다. 그리고 선 반야 구사 유식학도 철학 중의 철학을 이룬다.
◆마지막으로 불교가 왜 모든 종교 중에서 최고 차원의 종교인가? 종교는 어떻게 하면 죽지 않고 영원히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는가 하는 구원의 문제가 핵심이다. 부처님의 우주적 구원력은 살아있을 동안에는 업장소멸을 통해 생사해탈로 인도하고, 사후에는 영혼의 천도를 통해 실현되는 것이다. 결국 부처님의 구원력은 우주법계 영원한 최고의 환희세계인 절대계에 불신을 두는 붓다가 되게 이끌어 준다.
오로지 부처님만이, 절대계의 궁극적 차원에 올라 공과 100% 계합하고 우주적인 지혜와 복덕을 완전히 갖춘 부처님만이 이러한 우주적 구원력을 완벅하게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불교는 실질적인 구원의 종교, 종교중의 종교가 되는 것이다. 연전 어느 유수한 종교의 수장이 부처님께 자기 권속의 업장소멸을 정중히 요청하는 사례가 있었는데 이 사실만 보아도 불교가 최고의 구원의 종교임이 증명 된다. 불교의 천도재와 정토사상은 이러한 종교사상의 대표적 사례다.
출처(소책자)/영산불교
계율철저히 지키는 현지사
우리 현지사의 생활, 정말로 완벽하게 계율 지켜.
열심히 일해.
우리 부처님이 와계시기 때문에 이 도량 깨끗이 하자.
그리고 아침 공양도 최고의 공양을 올린다.
우리 스님들이 보현행원을 실천하는 것이어.
우리 스님들은 흙 돌 꽃 등을 만질 수 없어.
우리 땡비 못 만져. 만질 수 없어.
그 놈은 죽으면 미타국에 갑니다. 그렇지만 만질 수 없어.
만지면 나쁜 기(氣)가 들어와.
영체가 100% 순도이기 때문에 아니 1000% 순도여.
이 육신도 순도 100% 청정해.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만지면 나쁜 기(탁한 기, 더러운 기)가
들어오는 것이(막 스며드는 것이) 보여.
그러면 즉각 그날 저녁이나 그 이튿날 약사부처님께서 즉각 작업해 줘(씻어 내려).
그러니까 부처님한테 폐를 끼칠 수가 없어.
그래서 정토만 갈 목표를 세운 스님들은 요크르트 우유 빵등을 안 먹습니다.
못 먹게 해. 그렇게 엄정히 지키는 중이 세상 어디에 있느냐 그거요.
어디에 있습니까?
출처/2008. 8. 23. 토(음7. 23) 큰스님 부산 법문中 발췌
현지사 오여래 불상 탱화 그리고 우리 현지궁 예불문에 대해서
오늘은 여러분이 보시는 오여래 불상 탱화 그리고 우리 현지궁 예불문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아침에 헌공다례... 여러분 여기 오여래부처님 처음 오신 분은 -야 참 이상하다. 머리가 싹 깎였네 하시죠? 그런데요 부처님께서 머리를 깎았다 탱화도 다 깎았잖아요? 그러한 불상과 탱화는 아마 이 나라가 아니라 세계 여러 불교국을 다녀도 우리 현지궁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참 이상하다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요. 없습니다.
다시 선이야기를 해서 미안합니다만은, 선불교에서는 이 마음이 부처라고 합니다. 이 마음이 부처라고 합니다. 절대계에 부처님 운운하는 것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 현지사에 와서 불상이 보면 머리가 싹 깎여버렸기 때문에 -이것이 사이버 아니냐.
-외도 아니냐 이렇게 나갑니다.
그것은 너무너무 하나밖에 모르고 둘도 모르는 전혀 무식한 수행이 없는 역사 이래로 하기야 아라한 보살을 증한 분이 안 됩니다 혼자는 자력으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보살과를 증해도 저 절대계의 부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스님이 책에 강조, 강조한 부분이 있죠? 기준이 무량광. 그것을 봐야하고. 진짜 무량광을 보고 난 뒤에는 불신을 보게 됩니다. 그렇지 않은 빛은 정토의 빛이거나 성중의 빛이거나 하늘의 빛이거나 외도의 빛입니다.
좀더 자세히 말씀드리면 무아 속 절대세계에 부처님이 계신다. 무아 속 절대세계에 계신 부처님이 진짜 부처님입니다. 3000년 전에 인도에 오신 육신을 지닌 응화신불, 줄여서 화신불이라고 그래요. 화신은 80년, 100년 이상은 이 사바에 있을 수 없잖아요. 물질로 되어있으니까.
저기 남방불교나 북방불교, 선불교나 부처님 그러면 2500년에 출세하신 석가모니불 색신, 화신을 생각합니다. 그 이상 생각하지 않습니다. 경전에는 법신까지 이야기하고 있죠. 색신에 대단히 불과를 증할 때까지 고생하시잖아요. 6년 동안 각고 수행하셨습니다. 설산에 들어가서. 그 고생을 말로 할 수 없어 .
그래서 머리가 길잖아요. 다른 절에 보면 머리가 있잖아요? 그건 그것을 상징한 것입니다. 이 몸뚱이 부처를 상징한 거예요. 그런데 현지사에서 싹 깍여 버렸거든요. 깎인 것은 저 절대계에 계시는 원만보신 부처님은 진짜 부처님은 그 불신은 전부 깎아있어요. 그 궁극의 경지까지 뚫었어요. 그래서 우리 현지궁에서는 이 불상을 역사상 처음 깎였습니다.
절대계에 계신 원만보신 상이다. 진짜 부처다. 그건 영원히 죽을 수 없고 멸도할 수 없는 부처님이시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부처님 진짜 불신 원만보신 상을 모셔야 되겠다. 그래서 모시는 것이고 탱화에도 그렇게 머리를 깎였습니다. 3천대천세계에 가장 먼저 성불하신 불과를 이루신 부처님은 중앙의 석가모니부처님이 올시다.
그 많은 부처님 중에 가장 먼저 불과르 이루신 석가모니부처님이 계시고 다보불, 법화경에 나오는 다보불. 그러면 왜 법화경에서 다보불을 말씀하셨느냐. 그 많은 부처님이 계시는데.. 다보불은 석가모니부처님 다음으로 불과를 이루셨습니다. 아주 무량겁전에 그래서 다보불을 법화경에 써놓은 거예요. 다보불 다음에 약사여래불 저쪽에 아미타불, 보명여래불. 이렇게 오여래. 그 많은 부처님 가운데 이 다섯 분이 말하자면 대표가 될 수 있는 큰 부처님이올시다.
큰 부처님 중에 부처님이시다. 그런데 모든 부처님들은 불과를 증하면 좌우에 협시보살을 둡니다. 왼쪽 오른쪽에. 그 부처님을 모시는 좌우보처를 두시는 거예요. 그런데 오여래는 좌우보처가 부처님이에요. 너무나 거룩하시고 무량겁전에 성불하셨기 때문에 좌우에 협시하시는 분들이 붓다에요. 그런데 이 오여래에 빠져있는 분이 있어요.
세 번째 불과를 이루신 부처님이 계셔요. 준제보살이 세 번째 불과를 이루셨는데 그 분의 부처이름은 칠구지불모왕입니다. 준제는 보살 이름이고. 그것을 우리가 밝혔습니다. 너무도 모릅니다. 역사 이후로. 칠구지불모왕불이시다. 준제보살님의 붓다 이름은. 준제보살님은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 역할을 하십니다. 사바세계에 하나의 부처가 탄생할 때는 꼭 오십니다. 어머니 역을 하시려고 오십니다. 현지사에 상주하십니다.
칠구지불모왕불 대준제보살. 이 분은 오여래급 이상이기 때문에 좌우보처가 부처입니다. 붓다입니다. 오른쪽에서 보좌해주시는 분은 저쪽세계가 너무 바쁘시니까 거기 남아계시고 대행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현지보살이라는 분이 대행하십니다. 아침헌공례 문장을 보면 대행 현지보살 이렇게 되어있는 대행은 대신, 대행(代行) 우보처 역을 수행한다고 해서 대행입니다. 위에 보현보살 앞에 대행은 큰 대(大)자입니다. 틀립니다. 그러니까 좌우보처가 붓다가 됩니다. 이 오여래하고 준제보살, 칠구지불모왕불, 여섯 명
그런데 한 분이 추가됩니다. 최초불이시오 삼계와이요 남섬부주 교주가 누구죠? 석가모니부처님이시죠? 석가모니부처님은 부처님의 부처님이요, 부처님의 스승이요, 최초불이요, 삼계의 왕이요 절대자올시다. 그 분의 법의 상속자가 있습니다. 그 분의 법을 승계한 상속자. 저쪽 부처님 세계에서는 태자 그럽니다. 부처님의 태자. 광명만덕입니다. 가섭존자. 그 분은 부처님의 태자기 때문에 미래제가 다하도록 태자입니다. 좌우보처가 붓다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외로는 좌우보처가 불격을 갖춘 상수보살이올시다. 보살은 다섯으로 나눈다고 했죠? 보살, 상품보살, 최상품보살, 상수보살, 불격을 갖춘 최상수보살..
오여래부처님 저 탱화 속 여러분 그 동안에 스님들한테 설명을 듣고 해서 그 이상 이야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장탱화를 보면 지장보살님! 중간에 지장보살님 있죠?
-지장보살님은 지금도 불과를 증하지 않는 보살이다. 하는 것이 지금의 여러 나라 불교계의 인식입니다. 그러나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분은 오여래 이후로 성불한 분인데 그 붓다 이름이 시방여래입니다. 시방여래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빵빵한 부처님이올시다. 그분은 정말 대단한 부처님이십니다. 지옥을 관장하는 어른입니다. 지옥을 관장하는 분들은 열시왕이지만 열시왕을 총괄합니다. 감독합니다. 그래서 시방여래불 지장보살님은 불과를 이미 이루신 분이다. 지옥 중생이 하나라도 남음이 있으면 나는 성불하지 않으리라 라고 하죠? 불교계에서는 그렇게 알았죠? 그러나 그것은 아니고. 서원을 세울 때 그랬습니다. 그 후에 완전한 불과를 증해서 불명을 시방여래라고 하고 지옥을 총관장하는 어른입니다.
그래서 저 탱화를 보면 좌우보처에 도명존자 무독귀왕이 아니고 원래의 좌우보처는 선행장보살, 자원행보살입니다. 저쪽에 너무도 일이 많기 때문에 이쪽 남섬부주 일을 지장보살이 보실 때 보좌해주시는 분이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입니다. 이것까지 파헤쳤습니다. 전혀 모르는 불교계에서는 알 수 없는, 이것은 알 수 없는 거예요.
그리고 이제 저기 좌우에 계시는 왕 열시왕. 열시왕외에 일직사자 월직사자, 판관도 있고 몇 사람을 넣어 놨습니다.
극락세계 아미타부처님께서 거기 보살님을 교화하는 어른인데 불과를 이룬 것은 다섯 번째 정도 되죠. 부처님, 다보불, 준제보살, 약사, 아미타불.. 다섯 번째 불과를 증한 어른인데 서방정토극락세계를 당신의 삼매력으로 만들어서 거기에 왕생하는 정토보살들을 교화해서 부처되게 교육하는 부처님이 아미타불입니다.
좌보처는 관세음보살인데 관세음보살과 준제보살을 한 인격체로 보는 것이 지금까지 불교의 확고한 신념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깨고 준제보살과 관세음보살은 엄연히 다른 분이다. 엄연히 다르다. 최초로 내 책에서 밝혔습니다. 관세음보살도 일생보처 보살이라고 하는데, 일생보처라는 말은 아직 부처가 안 되어서 인간세계에 가서 한번만 보살행을 하면 부처가 된다고 해서 일생보처라고 해요. 턱없는 말입니다. 그 분은 정말로 오래전에 불과를 증해서 부처명이 정법명왕입니다.
정법명왕불! 이렇게 불교는 많이 왜곡되어 있습니다. 경전을 봐도 많이 왜곡이 되어있어서. 그래서 현지사에서 하나하나 바로 잡아 나갈 작정인데 이 대장경을 손을 대려면 큰 불사인데 모르겠습니다. 하고 싶은데 시간과 여건이 주어질런지 모르겠습니다. (박수)
이 관세음보살의 좌우보처는 지금까지는 불교계에서는 해상용왕 그리고 남순동자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것도 정말 어리석은 이야기올시다.
좌우보처는 해수관음이요 우보처는 육관음입니다. 이것을 밝혔습니다. 그 분은 불격을 갖춘 최상수보살입니다. 육관음 남자요, 해수관음은 여인상으로 나옵니다. 아직 불과를 이루지 못했지만 불격을 갖춘 최상수보살입니다. 해상용왕과 남순동자가 좌우보처라하면 격이 맞지 않습니다. 남순동자는 말해준다면 하나의 동자인데, 정토보살로 봐줄 수 있는 동자인데 불격을 갖춘 최상수보살 아닙니다.
해상용왕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공부한 스승들이 열다섯 분인데 그 중에서 산왕불은 바빠서 잘 못 오십니다. 산왕대신 중에서도 가장 서열이 제일가는 산왕대신이 한국에 오신 거예요. 그래서 그 분이 우리 공부를 지도했는데 우리가 완전한 붓다로서 인가를 받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상수보살이었는데 한 급이 상승되었는데 불격을 갖춘 최상수보살이 되었다고 그분이 좋아합니다. 그리고 이 스님들도 불교계에서 전혀 모르는 이야기가 두 군데 있는데, 산왕대신은 최상수 산왕대신! 삼천대천세계 남섬부주 산왕대신을 총괄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을 또 지휘하고 감독하고 명을 하는 분, 윗어른이 붓다올시다. 산왕불. 모든 산왕대신을 총괄하는 분이 붓다로 계세요. 산왕불이에요.
저 별들 다 유정이 있거든요. 중생이 살거든요. 별마다 성군이 있어요. 별의 왕. 별의 왕을 총괄하는 분이 치성광여래부처님이에요. 우리 남섬부주 인간에 복을 주고(길흉화복) 벌도 주고 합니다.(살아있을 적에) 저 별들쪽에서. 그리고 용왕쪽에서 또 산왕대신쪽에서 그럽니다. 세 군데 각각 총수가 부처라는 것. 용왕쪽 총괄부처는 누구죠? 보명여래입니다. 오여래입니다. 그 분은 남섬부주에 와서 불과를 증한 어른이 법문한 것을 전부 수집해서 책을 냅니다. 그래서 그 책을 용궁에 보관합니다. 법보관장 보명불이라고 하죠. 우리가 알아냈습니다.
우리의 아침이나 저녁에 예불하는 예불문에 나오는 붓다들은요. 다른 절에서 희유할겁니다. 전혀 알지도 못하는 부처가 나오고 보살이 나오는데 알 수 없죠. 그래서 우리는 실질적으로 우리가 해동 현지궁 현지궁에 두 붓다가 출세할 것을 아시고 부처님께서 오셔서 지도하시고 부처님 따라서 많은 부처님이 오시고 10명의 부처님들이 와계시는데, 그분들에게 우리는 매일 공양을 올리고 예불을 봅니다.
그래서 다른 절에서 조계종, 다른 나라의 예불문은 일곱번이나 열 번, 큰스님 회상마다 12번, 절하는 수가 조계종에서는 칠정례죠. 칠정례의 례는 구체적으로 부처님께 하는 것이 아니고 부처님 이후로 소위 도를 깨쳤다고 하는 분들 다 예배의 대상으로 넣고 뿐만 아니라 과거 스님까지도 모두 예배 대상으로 합니다. 우리의 탱화나 예불문에는 대상이 오직 붓다들입니다. 불과를 증한 두 분이 있기 때문에 보살하고 성중한테 절을 할 수 없어요. 우리는 에불문이 모두 붓다입니다.
성중님만 보더라도 104위 화엄성중의 수장급만 다른 절에서 모셔놨죠? 우리 성중탱화는 104위 화엄성중의 가장 급이 높은 세 분을 포함해서 우리 현지궁 현지사를 위해 뛰어주는 12야차대장이 있습니다. 그 분을 넣고 16나한을 넣고 다섯 보살을 넣고, 정명 최상품보살 (극락세계의)을 넣었습니다. 제래 불교에서 말하는 나반존자입니다. 그 후로 많은 보살도를 해가지고 지금 최상품에 들어가 있는데 우리 현지사에서 성중들의 수장으로 넣고 있습니다.
조석 예불문이 그렇고 또 다섯 부처님과 두 탱화 속에는 많은 부처님이 계시고 좌우보처 계십니다.
시간이 다 되었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말씀 드릴 것은 조금 덧붙일 것은 그 붓다들이 절대계에 계시다가 경험세계로 나오실 때가 많습니다. 경험세계는 이 윤회세계를 말합니다. 상대세계. 경험세계로 오실 때는 원만보신으로 안 오십니다. 조금 의복이라든지 머리가 조금 달라집니다. 골격은 그대로입니다. 변장을 했다고 할까.
문수보살님을 예로 들면 지금 여기 계시는 그려져 있는 문수보살님 상은 정장을 한 상이고 거기다가 칼을 든 것까지 그려놨는데 절대세계로 가실 때는 저런 그림 중에서 칼이 없습니다. 그냥 정장으로 가시고 내려올 때는 저 모습이 아닙니다. 두루마기를 읽고 상투를 하고 칼을 지니고 있는데 삿갓을 쓰고 괴나리봇짐을 뒤에 짊어지고 짚신을 신고 계시거든요. 한 컬레는 여벌로 괴나리봇짐에 달고 그런 모습으로 나옵니다.
보현보살님은 내 책에 써놨지만 장삼을 입으시고 검정, 하얀색, 노란색이 섞인 머리를 길게 늘어뜨려서 머리띠로 메어가지고 지팡이를 삿갓 쓰고 좀 다릅니다.
관세음보살님은 경험세계에 오실 때 백의관음으로 오십니다. 한국 전통 여인상으로 오십니다. 해수관음은 대단히 화려하고 육관음은 남자상으로 오십니다. 경험세계에 오실 때는 원만보신이 아니라는 것. 그런데 필요에 따라서 절대세계에 가시거든요. 가시고 오시거든요. 관음, 지장, 문수, 보현님은 사바세계에 보살행을 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사바세계, 경험세계에서 그렇게 다니실 때는 이런 차림으로 다니십니다.
그런데 절대계에 가실 때에는 이렇게 수염, 머리가 전부 깎여져 있습니다. 두루마기도 아니고 장삼, 황금장삼입니다. 빨강가사를 수하십니다. 모든 부처님이 그렇습니다.
우리 오여래부처님은, 절대계에 계신 원만보신상을 그린다고 했는데 좌대가 금강좌로 해야 하는데 높이가 좀 그래서 연화로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창작한 겁니다.
출처/현지사 2007년 11월 22일 자재만현 큰스님 법문 中
지켜야 할 것
전번에 여러분이 모두 삼재팔난도 만나지 않고 또 그리고 소망하는 것이 이뤄지고 자식 시험에 합격하고 여러분 세간소망이 모두 있잖아요. 이런 것은 치성광여래부처님이나 산왕불, 보명여래불님께 기도해야 하는데 이럴 경우 꼭 이런 것을 지켜주세요. 이런 말을 했더니
그 중에 미역국이 들어가 있어요.
그것을 이해를 잘 못한 분들이 있다고 해서 말씀드립니다.
이 7가지는 꼭 지켜라 해서 그 부처님이 말씀하신 겁니다. 이것을 지키지 않고 불공을 드리면 그것은 소용이 없다는 겁니다.
첫 번째, 부부관계, 미역국, 계란, 생선, 말고기, 뱀고기, 개고기입니다.
계란을 딱 깨고 후라이를 해요. 비린 생선을 튀기고 미역국을 먹입니다. 미역국을 먹인다는 건, 이치는 미신으로 볼 수 없습니다. 기차가 지네 형국이죠? 그럼 기차하고 가장 상극인 것이 무엇이냐 닭입니다. 닭을 가지고 기차 속을 가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사고가 나거나 어떤 일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이건 미신 아니라 이치입니다!!
어떤 여인이 상사병에 걸리니까 그것으로 -죽는다, 산다고 하니 가족 중 한 사람이 약을 구하려고 다니다가. 정자에서 장기를 두고 있는 할아버지들에게 물어봅니다. 좋은 약이 무엇이냐 하니 어떤 할아버지가 ‘차’(장기 말 차)를 주더라는 겁니다. 차는 어떻게 가죠? 앞으로 쭉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뭇대기 차를 주면서 이것을 끓여 먹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끓여 먹었더니 나았어요.
미역은 미끌미끌해요. 올라가려면 올라가집니까? 미끌미끌해요. 자녀가 혹 입시나 남편이 승진시험볼 때 미역국을 끓여주면 여지없이 떨어진다는 겁니다. 이것은 이치입니다. 미신부분도 많습니다. 그것은 배격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우주 만상 만물을 운행하는 근본원리, 이치, 이법이 있습니다. 이것을 거스르면 안 됩니다. 자연의 이치를 알아두세요.
출처/현지사 2007년 11월 22일 자재만현 큰스님 법문 중 발췌
목신과의 대화
무자년 O월 O일, 광명 만덕 큰스님은 주지, 총무와 함께 강원도 홍천으로 가서 노송나무 30그루를 사놓고 오셨습니다. 현지사 도량에 심을만한 큰 소나무가 있다 해서 다녀오신 것입니다. 그 노송나무에는 목신이 10명이나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큰스님과 목신들 간의 대화입니다.
“이것 보시오 목신님들, 당신들에게 상당히 미안하게 됐구려. 인연이 다하여 당신들 노송나무를 현지사 대적광전 도량으로 이주해야겠소.” -만덕 큰스님
“인연이 다하여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한다면 갈 곳을 찾아보겠습니다.” -목신들
그러나 나머지 여섯 목신들은 떨떠름한 기분인지 대답이 없었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살아온 정든 집을 떠난다는 것이 여간 힘든 것 같지 않아 보였습니다. 마음이 아파 불 세존 석가모니부처님께 청을 드렸습니다. 보다 나은 하늘로 보내주시라는 간청이었습니다. 목신은 욕계하늘 3하늘 하품쯤에서 내려옵니다. 가끔은 무주고혼들도 나무를 집으로 삼고 지냅니다. 3하늘 사람이 목신으로 와 있는 것은 어떤 사명을 띠고 오는 것입니다. 이 날 불 세존의 반승낙을 받았습니다.
사실 백 년 넘은 노송을 함부로 베는 일은 위험이 따릅니다. 이것을 집으로 삼고 사는 목신에게 얻어 채여 목숨까지도 잃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며칠 전에도 우리와 거래하는 나무농원 사장이 우리에게 팔 욕심으로 잘생긴 노송나무를 파왔는데 나무를 파낸 사람이 갑자기 피를 토하고 돌연사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삼매에 들어 관觀해보니 그 노송나무에 여자 목신이 있었습니다. 여자 목신은 사람을 죽인 큰 죄로 3하늘에서 명부로 즉시 압송되어 하지옥에 떨어졌고, 죽은 인부는 현지궁 현지사와 관계된 일이기에 부처님께선 그를 6하늘로 올려줬습니다. 이런 사건들로 인해 큰 노송들을 사 옮겨올 일이라면 큰스님께서 꼭 출타하십니다.
다음 날 아침 부처님 공양시간이 끝날 즈음, 낯선 10명 하늘 신들이 큰스님께 넙죽 삼배합니다. 각기 다른 모습과 얼굴들이지만 향 맑고 깨끗했습니다. 어제 홍천에 가서 본 노송나무에 앉아 있던 목신 4명과, 불만이 가득 했던 6명이었습니다.
잠시 후, 부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태자 광명은 들으라, 태자가 어제 청을 올린 목신들에 대한 말이 기특해서 선처하기로 한다. 홍천 노송나무에 살고 있었던 목신 10명은 본래 3하늘 신선세계 하품 하에 있었는데 나의 위신력으로 3하늘 선계 중품 중으로 명한다. 이들은 모두 앞으로 3천년 수명을 늘린다. 착한 마음을 내어 은혜를 갚으려는 내 아들 태자 광명을 위해 오늘 아침 공양에 참석시켜 태자를 보게 하고 저들은 이제 선계로 떠난다.”
떠나면서 목신 10명이 하는 말이 “이렇게 높은 어른인줄 몰라봤습니다. 우리들이 나무 옮기는데 끝까지 도와드리고 떠나면 어떨까요?”
세존께서는 “아니다. 그냥 떠나라.” 명하셨습니다.
여기서 삼계 왕이신 부처님의 위상을 이해하기를 바랍니다. 부처님은 실로 절대자이신 것입니다.
이곳 현지사의 2만여 평 부지에 소나무 약 1천 그루를 사다 심어놨습니다. 더러는 죽어가는 것이 마음 아픕니다. 소나무를 죽이지 않으려고 백방으로 노력하는 광명 만덕 큰스님을 딱하게 보셨는지 불 세존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큰스님의 걱정 근심을 덜어 주셨습니다.
숲 속 요정
요정은 키가 120cm 정도이고 나이는 15세에서 20세 사이로 보입니다. 때로는 아주 어리고 귀엽게 보입니다. 겨울에 온 천하가 백색으로 덮혀 있을 때 밝은 해가 뜨면 눈이 부시도록 환하고 반짝반짝하는 것이 요정의 몸뚱이 빛입니다.
요정들은 3하늘 신선계 하품 상의 하늘 사람입니다. 남섬부주 소나무 숲을 좋아하여 내려와 거주하면서 착한 이들을 도와줍니다.
악을 멀리하며 불법을 좋아하여 부처님 법문 듣는 것을 최고로 압니다. 매달 음력 8일, 23일 자재 만현 큰스님 법회에는 모두 참석해서 듣습니다.
착한 요정 30명이 간부급이 되고 300명이 현지사 소나무 관리자로서 불 세존의 임명장명패를 받았습니다. 요정들은 못할 신통이 없습니다. 특히 소나무 살리는 일에는 노하우가 있습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2권 中
가섭-광명 만덕
그리고 아난-자재 만현
- 부처님들, 현지사에서만 공양드신다
광명 만덕, 자재 만현 큰스님은 금생에 불과를 이루셨습니다.
무아 속 절대계에 불신원만보신불을 두고 계십니다.
가슴에는 만卍자가 빛을 방광하고
양미간에는 옅은 청색, 지혜의 무량광 빛이
분사噴射되고 있습니다.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부처님들과 똑같이 어깨를 나란히 합니다.
아침 4시 30분, 부처님들께 공양을 올립니다. 12년째 하루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우리 교주 불 세존 석가모니부처님, 좌우보처 환희장마니보적불 문수보살·청정행왕불 보현보살, 다보불 좌우보처 유리왕불 청정보살·상원왕불 보승보살, 칠구지불모왕불 준제보살 좌우보처 법상불 지혜보살·권모상왕불 승행보살代行 현지보살, 약사유리광여래불 좌우보처 일광불 일광변조보살·월광불 월광변조보살, 아미타불 좌우보처 정법명왕불 관세음보살·정명행원불 대세지보살, 보명불 좌우보처 사자원불 보장보살·장엄승불 원력보살, 시방여래불 지장보살 좌우보처 선행장보살·자원행보살代行 도명존자·무독귀왕, 산왕불 좌우보처 산성보살·삼행보살, 치성광여래불 좌우보처 일광보살·월광보살, 광명불 좌우보처 명상불 무현보살·화광불 모현보살, 자재통왕불 좌우보처 상행보살·정행보살……께서 오셔서 공양을 드십니다.
불과를 이루면 좌우보처가 배정이 됩니다. 오여래, 준제보살, 광명불은 좌우보처가 붓다입니다. 여기서 다보불의 좌우보처, 준제보살의 붓다 이름, 약사여래불의 좌우보처는 일광불·월광불, 대세지보살의 붓다 이름, 보명불의 좌우보처, 지장보살은 무량겁 전에 불과 이루시어 붓다 이름이 시방여래불이고 좌우보처는 선행장보살·자원행보살이지만 명부의 일이 바쁘신 관계로 도명존자·무독귀왕이 여기 사바세계에서 대행하신다는 점…….
일찍이 2600년 불교 역사에 알려지지 아니한 점들을 현지사에서 밝혀 놓았습니다.
이 사바세계의 하고 많은 사찰 중에서 이곳 영산불교 현지궁 현지사 광명 만덕 큰스님과 자재 만현 큰스님의 공양을 받으십니다. 천녀정토에서 내려 온 8명의 시녀30대 안팎가 시중듭니다. 부처님들 공양이 끝나면 부처님 나라에서 내려온 차담을 올립니다. 좌담하시면서 차를 드십니다. 여기 현지사 대중스님들은 아침 3시에 일어나 도량 안팎으로 대청소를 하여 부처님들께서 현신하시는 도량을 깨끗이 하고 공양을 짓습니다. 부처님들께서 아침 공양을 드실 때까지 대중스님들은 청정수 마시는 것까지도 금합니다.
광명 만덕 큰스님과 나은 부처님들께 공양을 올린 후, 매일 아침 명부에서 서열 따라 보내주는 아귀 한 명씩을 하늘로 천도해 올려 보내는 동시에, 모든 아귀들에게는 오여래부처님의 위신력으로 공양을 줍니다.
아귀들에게 불과를 증한 이가 베푸는 공양인 것입니다. 이것은 부처님 당시에도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이는 배고프고 심한 갈증으로 고통 받는 그 수많은 아귀들에게 공덕을 짓는 일입니다. 부처님의 위신력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영산 당시 가섭·아난이 줄곧 해온 일입니다. 이 일은 나, 자재 만현이 세상을 떠난 이후로는 중단될 것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2권 中
현지궁에 현신 ‧상주하시는 궁宮이 있습니다
이곳 현지궁 현지사 큰 법당 불단 벽 안쪽에는 무아 속 절대계에 계시는 여러 붓다님들께서 여기 남섬부주 경험상대세계 한국 땅 춘천 현지궁에 현신‧상주하시는 궁宮이 있습니다. 그 안에는 명경지수와도 같이 청정하고 깨끗한 물이 3탕으로 흐릅니다. 새벽에 올리는 남섬부주의 제자의 공양을 드시고 천녀들이 가져온 차 공양을 드십니다.
우리 교주 불 세존께서는 모든 불 보살님들로부터 보고를 받고 하루 일과를 지시하십니다. 부처님들 회의시간은 거의 2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사람들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산세 수려하고 강물 흐르는 명소에 자리한 절을 성지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곳 현지사는 보명여래부처님오여래 중 한 분, 법보를 관장께서 자리 잡아주셨고 삼팔선 이북에 있습니다. 땅의 지순한 기氣와 부처님 세계에서 쏟아지는 빛무량광 기둥이 맞닿는 세계에서 유일한 성지 중의 성지입니다. 이런 곳이라야 붓다가 출세합니다.
붓다는 그 싱그럽고 청정한 기를 섭취해야 합니다. 그리고 진신사리가 아닌 붓다의 원만보신이 거의 상주하다시피 하는 그러한 최상의 성지인 것입니다.
인도 영축취산에는 영산궁이 있습니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남섬부주 교주이십니다. 그래서 그 영축산 영산궁에서 수많은 상품보살을 교화해오고 계십니다.
이번에 여기 한국 땅 현지사에 두 분 제자가 불과를 증하게 되어 이곳에 오셔서 상주하고 계십니다. 부처님붓다이 계시는 곳이기에 궁이라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완전한 복덕을 구족하셨으므로 곧 다이아몬드, 노다지 광입니다.
이 궁에는 지금 두 분의 갓 불과를 이루신 광명 만덕 큰스님과 자재 만현 큰스님, 밑으로 극락세계 보살로 상품의 무량尼 스님과 27품으로 인가받은 혜명尼 스님이 있고, 금년 초에 인가 받은 무루 대아라한 상운尼, 선혜尼, 정수尼 스님과 영산 등 10여 명의 성중 인가를 받은 수좌를 비롯하여 50여 명의 염불행자들이 지혜와 복덕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현지궁 현지사는 외도의 눈길을 피할 수 있는 특수 유리관으로 둘러쳐져 있습니다. 이곳에선 바깥 세상과 하늘세계 모두가 보이지만 외도 하늘의 천마들에게나 마왕천에서는 여기가 보이질 않습니다. 영산궁과 현지궁의 실상은 붓다의 천안이 열리지 아니한 분은 볼 수 없습니다.
이 부처님 성지는 1,000여 명에서 10,000여 명의 성중이 도량을 항상 수호하고 있습니다. 사천왕이 출입문에서 입초立哨를 서기 때문에 어떤 마귀, 악귀, 영가鬼神들도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2권
영산불교 현지궁 현지사_의미와 사상
영산불교는 부처님께서 이 거짓 몸뚱이化身을 버리고 대열반에 드신 이후 정법이 너무도 많이 왜곡된 법난의 말세에 영산 당시 두 분의 제자가섭‧아난가 불과를 증하여 바른 교법을 펴고자 오셨기 때문에, 그리고 부처님을 중심으로 많은 불 보살과 출가 수행자들이 화합하여 하나의 회상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부처님 회상 안으로 출가하기란 선택된 분들이 아니면 무척 어렵습니다. 현지궁 현지사는 인연의 문턱이 높아서 신도 되는 일도 또한 그러합니다.
스님들은 매일 아침 3시에 일어나 도량을 대청소 한 후 현지궁에 현신하시고 상주하시는 여러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부처님을 정성 다해 모시는 보현행원을 하면서 지옥 중생을 구제하는 최고의 보살행천도재을 합니다. 그리고 빵이나 우유, 요구르트까지도 먹지 않고 부처님을 공경하며 수행해나가는 그 공덕으로 영혼체는 날로 깨끗해져 갑니다.
세계 인구는 이제 70억을 헤아리고 있습니다. 삼천대천세계에서 인간이 사는 유일한 사바세계 남섬부주 해동 대한민국 춘천시에 있는 현지궁 현지사와 인연된 불자들은 여러 과거 생에 걸쳐 부처님에 대한 선근을 심어온 이들임에 틀림없습니다.
부처님을 향한 끊임없는 찬탄‧예배‧공양을 해왔으며 불법을 전하고 널리 펴는데 최선을 다하고 수행도 게을리 하지 않은 이들입니다. 또한 세세생생 불법을 만나고 붓다 회상을 만나 윤회에서 벗어나기를 진실로 간절히 발원해왔음이 분명합니다. 금생에 다시 정법 회상을 만나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착하게 사는 현지사 신도님들은 하늘 세계를 지나, 생사윤회까지도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불자들은 연화蓮花가 진흙탕 속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며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것과 같이, 세간에 오염되지 않고 깨끗하게 살아가야處染常淨 할 것입니다.
현지사 스님들은 한 달에 5번 여러 부처님들께 공양 올리는 날, 자기 조상 천도재 모실 때, 그리고 개인적으로 부처님 공양 올리는 경우, 큰스님 법문하시는 날…… 부처님께서 많이도 업장을 씻어주십니다.
이곳 신도들 역시 그러합니다. 이것이 부처님 교단을 만난 보람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과 인연 깊은 스님이나 신도분들은 부처님의 큰 가피력에 의해서 윤회를 벗어나고, 정토에 왕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현지사에서는 우리를 따르는 불자들로 하여금 절대계에 부처님이 계심을 알게 하고, 또한 부처님의 크신 우주적 위신력을 믿고, 음계 등 오계‧십선계를 지키며, 부모 조상님께 효를 다하라고 가르치고, 나라를 사랑하도록 하며 말보다 행行을 가르칩니다.
팔정도와 육바라밀을 실행하도록 하며, 석가모니불을 봉창하는 칭명염불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현지사顯智寺는 부처님의 지혜가 오롯이 드러나고, 부처님의 지혜로써 시방세계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으로 부처님께서 지어주셨습니다. 영산불교 현지사는 법의 계율삼귀‧오계‧십선을 지키는데 있어서 그 어떤 국내외 불교 종단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그리고 보신부처님께서 상주하시는 겁劫에 하나 있음직한 그런 사찰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2권 中
영상불교의 두가지 상징물
우주적 신 불교, 우주적 진리의 신불교, 영산불교의 두 가지 상징이 있습니다.
첫째, 청정법신비로자나부처님을 모신 대적광전이 있고
둘째, 오는 음력 4월8일에 준공하게 되는 다보탑이 있습니다.
이 두 상징물은 불과를 증한 붓다가 점안을 함으로서 생명력을 얻게 됩니다. 이 두 전각과 탑은 아주 대단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전번에 청정법신비로자나부처님을 모신 대적광전을 준공해서 오늘 100일 기도 회향을 했고, 이제 다보탑 건립이 내일 모레입니다.
탑이란 어떤 탑이고, 이 탑을 왜 건립하게 된 것이냐(왜 건립을 하느냐)? 아무리 들어도 부족할 거예요. 오늘 또 말씀을 드립니다. 이 다보탑, 이것은 탑 중에 탑이라고 스님이 말씀 드린 바 있을 것입니다.
다보탑은 탑 중에 탑, 탑 중에 왕입니다. 경 중에 경, 경 중에 왕은《화엄경》이나《법화경》을 말합니다. 왜 그러느냐? 이 다보탑이 대단히 불가사의한 탑이어요. 지금 한국의 경주 불국사 이외에는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다보탑을 볼 수가 없어요. 불국사에 다보탑이 있고, 석가탑이 있는데 그 후 몇 몇 사찰에서 다보탑을 조성해 놓은 곳이 있는 줄로 압니다.
그러나 조성했다고 해서 다 된 것이 아닙니다. 새삼 힘주어서 말씀드리지만 조성을 해서 점안을 해야 됩니다. 점안이 없으면 그것은 구조물입니다. 우리 청정법신비로자나부처님, 이부처님은 빛인데 빛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원만보신노사나불을 모셨거든요. 그렇지만 점안을 하지 않게 되면 이것은 하나의 동(銅)이고, 돌이고, 철(鐵)구조물입니다. 아무 힘이 없는 거요.
여러분 그것을 아셔야 됩니다. 우리가 모신 부처님은 동불(銅佛)이지요. 점안도 불과를 증한 분이 점안을 하게 되면 삼천대천세계에 계신 많은 부처님들이 거기에다가 힘을 넣어 주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와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당신을 찾는 경우 그 부처님들이 오겠다 하는 약속이 이루어집니다. 우리 다보탑도 그래요. 다보탑도 그날(기축년 4월 초파일) 점안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불과를 증한 분이 저렇게 청정법신비로자나불상을 모시는 경우,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이라는 것은 그 의미가 대단히 깊지 않습니까. 우리의 말이 진실하다고 하는 것을 증명을 해줘야 돼요(증명을 하는 거예요).
이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어떤 부처님이 오셔서 증명을 해주는 거예요. 바로 그것이 다보탑인데 그 다보탑이 땅속을 찢고 올라 와요. 다보탑이 여러분 눈에 안보이니까 없는 것이 아니고 영적으로 실재합니다. 어디에 실재하느냐? 보정이라는 나라에 있습니다.
보정이라는 나라는 영적(靈的)개념인데 여기서 동방(동쪽)으로 한량없는 천 만억 아승지 세계를 지나가면 있습니다. 아승지라는 것은 불교에서 대단히 많은 수를 비유해요. 나유타라고도 하고 아승지라고도 합니다. 동양에서 또는 우리나라에서 아주 많은 수를 억(億)이라고 하지요. 천(千) 만(萬), 억(億), 10억, 100억, 1000억... 1000억 정도라고 하면 대단히 많은 수이지요. 고등학교에 가면 지수가 나오지요. 1000억은 10의 11승이어요.《화엄경》에 보면 아승지는 10의 105승이어요. 이 얼마나 많습니까. 한 없이, 너무너무도 많은 수를 아승지(나유타)라고 해요. 한량없는 천 만억 아승지 세계를 가야 보정이라는 정토가 나오는데,
그 보정이라는 세계의 교주가 다보부처님이셔요. 다보부처님은 항상 선정(禪定)에 들어계시는데 다보탑 속에서 선정에 들어 계셔요. 여러분, 불법(佛法)을 3차원의 세계에서 이해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불법을 이해하려면 삼천대천세계로 넓혀야 됩니다. 너무너무도 우주적인 종교이기 때문에 그래요. 그 다보탑이 지난해(무자년)음력10월15일 대적광전 개원식 때 대적광전 앞마당에서 솟아 올라온 거예요. 지금 솟아 오른 그곳에다가 조성하는 거예요.
다보불, 다보탑에 대한 경전적인 근거는《법화경》〈견보탑품(見寶塔品)〉에 있습니다.《법화경》이라고 하면 앞에서도 말씀 드린 바와 같이 경 중에 경, 그 많은 경(팔만대장경) 중에서도 으뜸가는 경을《법화경》《화엄경》그럽니다.《법화경》〈제11품〉에 다보탑을 소개해 놓고 있는데,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이시불전에 유칠보탑이 있어서, 고(高)는 500유순이나 되고, 종광이 250유순이라.”
이때 석가모니부처님 앞에 칠보탑이 있어서(다보탑을 칠보탑,보배탑, 다보여래의탑 이라고 하는 등 4가지 이름이 있어요), 높이는 500유순이나 되고(500유순이라고 하면 여러분 상상 못해. 우리의 측량으로 20,000리 정도랍니다. 탑의 높이가 20,000리나 된답니다. 우리 현지사에 솟아난 것은 이쪽의 분위기를 보고 환경을 살펴서 축소해서 올라와요. 또한 다보부처님께서 다보탑을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하게 만들 수도 있는 그런 탑이어요.), 가로세로가 250유순이라.”
다보탑은 꼭 땅에서 솟아나요. 왜냐? 앞에서 언급 했듯이 다보불이 계신다고 하는 보정정토가 여기서 얼마나 멀다고 했지요? 한량없는 천 만억 아승지 세계를 지나가야 돼. 그렇기 때문에 다보부처님이 선정에 드시고 계시는 그 다보탑이 불사를 증명하게 되는데, 청정법신비로자나부처님을 모시는 우리 대적광전을 개원할 당시 대적광전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다보탑이 올라왔느냐, 올라오지 않았느냐에 따라 판가름 납니다.
또한 우리가 불과를 증했다 증하지 않았다 하는 것도 판가름 나는 거예요. 이 어마어마한 사건마다 다보부처님이 선정에 들어 계시는 다보탑이 올라온 거예요. 앞으로 스님이 여러분한테《법화경》몇 품을 강의해 줄 것입니다. 왜 그러느냐? 지금 세계적으로 법화 행자가 많습니다. 우리나라도《법화경》을 신앙하고 사경(寫經)을 하는 신도들이 100만 여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일본은 더 많습니다. 일본은 법화사상이 대단히 호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법화경》을 보면〈28품〉으로 되어 있는데 그것을 바르게 해석 못해요. 그러니 이거 병통(病痛)입니다.
문제가 있는 곳이 약 다섯 군데입니다. 다섯 군데뿐만 아니라 모두 해석이 되는 부처님과 일문일답을 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지금 동판(銅版)으로 해서 다보탑 속에 넣어가지고 세우게 되는데 1000년, 2000년 후에 다보탑을 다시 보수할 경우 지금에 넣은 것이 나올 것 아닙니까. 그것을 2000년 후 우리 인간들이 보면《법화경》을 해석하는데 크게 도움을 받을 것입니다. 그 다보탑은 어떤 탑인가 하는 것을 말씀드립니다.《법화경》〈견보탑품〉성구(聖句)입니다.
“종지용출해서 주재공중하니(땅에서 솟아나서 공중에 떠 있어요) 종종보물로 이장교지하고(진주 같은 많은 보물로 그것을 장식하고. 보배탑이 장식되어 있어.) 5,000난순이요 감실이 천만이라(난간 수만 해도 5,000개나 되고, 부처님께서 계시는 방이 천도 되고 만도 되더라. 부처님께서 계시는 방을 감실(龕室)이라고 합니다.). 무수당번(無數幢幡)으로 이위엄식하고(한량없는 깃대로 장식을 하고), 수보영락하고(보배영락으로 드리워졌고), 보령만억으로 이현거상하고(만 억개나 되는 보배방울을 그 위에 달아 놓고), 사면에 계출 다마라발(多摩羅跋)전단향지향하며 충만세계하고(사면에서는 다마라발 전단나무 향기가 그윽히 풍겨나와 온 세계를 가득 메우고. 다마라발 전단향이라는 좋은 향내 나는 나무를 다마라발 전단이라고 함) 삼십삼천이 우천만다라화 하며(삼십삼천이라고 하는 것은 54품 하늘을 말합니다.
보배탑이 솟아오르니까 54품 하늘에서 만다라화라고 하는 꽃을 비오듯 뿌리고(비오듯 내리고)), 여재 천·용·야차·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인비인 등 천 만억종이 일체 화향·영락·번기·일산·기악 등으로 공양 보탑하시더라(하늘의 모든 팔부중과 인비인(사람인 듯 하면서 아닌)등 까지 합해서 천 만억이나 되는 대중이 몰려와 가지고 한없이 아름다운 모든 꽃과 향기로운 향·영락·번기·하늘악기를 연주하면서 보탑에 공양하시더라). 이시 보탑 중에서 출대음성해서 탄헌하기를(그때 보탑 속에서 큰 음성이 울려나와 찬탄하기를), 오! 거룩하시고 거룩하십니다! 석가모니 세존이시여! 석가모니 세존이 능히 평등대해교보살법 불선호념묘법연화경으로 위대중선하시나니 여시여시라.
석가모니 세존 여소설자는 개시진실하시나이다(이것이 핵심인데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이때 보탑 속에서 찬탄하는 큰 소리가 났어. 누가 하느냐? 다보부처님이 찬탄하셔. 어떻게 하셨느냐? 거룩하시고 거룩하십니다. 석가모니 세존이이여. 능히 평등한 큰 지혜로서 보살을 가르치는 법이며, 부처님이 호념하시는《묘법연화경》을 대중을 위해 설하시다니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법문(법설)하시는 내용들은 모두가 참이며 진실하십니다.).”
지금 법화 행자들은 여기에 꽉 매여 있습니다.《법화경》을 설할 때만 다보탑이 올라와서 이런다고 되어 있어요.《법화경》경이 그렇게 되어 있어요.《법화경》이나《화엄경》같은 위대한 경전도 시간이 많이 흐르다가 보니까 많이 왜곡이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부처님께서 그 당시(2600년전 당시) 설하셔가지고 직접 녹음해 놓으신 것도 아니고, 부처님께서 대열반 하시고 몇 백 년 만에(500년~1000년 만에) 이 대승경전이 나온 거예요.
그러다보니까 많이 왜곡이 되어 있습니다. 바이블(성경)도 그렇습니다. 일신교도들은 자기들의 바이블‘한 획·한 글자 전부가 다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것은 바꿀 수 없다. 진리이다’라고 선언합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바이블을 보세요. 많은 문제와 모순이 있잖아요. 우리 불교 경전은 그렇게 많은 모순은 담고 있지 않지만 그래도 군데군데 있습니다. 부처님 말씀이 아닌 부분이 있어요. 그러니까 선지식이 확실히 판단·분별해 주어야 하고,
바르게 해석해주는 선지식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학자들은 경전 그대로 간다고요. 한(하나) 글자도 용납 안하고, 다르게 해석하지 않습니다. 꼭 잘못된 부분을 그대로 해석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법화경》만 설하실 적에 다보탑이 솟아나와 가지고 다보불께서 증명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무자년 음력10월15일에도 다보탑이 솟아 나와서 “광명만덕·자재만현이 모신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의 불상은 진실하고 참된 것이다.”라고 선언한 것처럼, 겁에 하나 나오는 불과를 증한 성자가 청중 수 천만 명 앞에서 큰 법을 설할 때도 다보탑이 이렇게 솟아나옵니다.
내가 한 이후로 한두 번 솟아나왔을 것입니다. 다보탑이 이렇게 솟아나오면 어떤(무슨)일이 벌어지느냐? 그때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붓다님들이 허공에 운집합니다. 경에는 부처님의 분신이라고 되어 있어요. 그러면 분신이 뭐냐? 학자들이 이 분신을 해석 못합니다. 두 가지로 해석합니다.
첫째, 학자들은 분신을 석가모니부처님의 백 천 만억 화신이라고 해석하는데 그건 아닙니다. 둘째,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불과를 증하신 이후 당신의 위신력으로 교화를 하고 구제해서 불과를 증하도록 하여 붓다가 된 그 붓다님들을 분신이라고 합니다.
부처님의 분신 그럽니다. 분신의 해석을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그것만 알아도《법화경》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법화경》을 읽을 때 분신이라는 말이 많이 나와요. 삼천대천세계 그 많은 부처님의 분신들이 운집했다 그거요. 석가모니부처님의 화신이 아닙니다. 백 천 만억 화신이 아니고 석가모니부처님으로 인해서 불과를 증한 붓다님들을 말해요. 왜 분신이라고 하느냐? 붓다(부처님)들은 몸뚱이가,
몸뚱이를 이루고 있는 빛이 똑같아요. 중생들의 몸뚱이는 물질인 지․수․화․풍으로 되어 있지요. 사대색신(사대)이라고 그래. 그런데 붓다는 억종광(무량광)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억종광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삼세의 모든 부처님들은 동일한 거요. 모두 똑같은 거요.《법화경》제5권 제16에〈여래수량품〉이 있습니다. 거기에는〈여래수량품〉때문에《법화경》이 최고라고 하는 거요. 그러면〈여래수량품〉이 무엇이기에《법화경》이 최고이고, 도대체〈여래수량품〉의 내용이 무엇이냐? 무엇을 썼기에 모든 경(經)중에 왕이냐?《법화경》으로 하여금 경 중에 왕이 되게끔〈여래수량품〉이 밑받침을 해준 거예요.〈여래수량품〉이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 “
부처님이 되면(불과를 증하면) 영원히 환희의 세계에 있다.”백 천 만억 나유타 겁이 지나가건, 그것 곱하기 나유타 겁 하던, 미래제가 다하도록 멸도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것이〈여래수량품〉입니다. 그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견보탑품〉이 나오고, 그다음에〈종지용출품〉이 나오고 그럽니다.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이 이해를 못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이야기 하겠지만,《법화경》에서는 그렇게 말해 놓았어. 그런데 우리 현지사에서는, 불과를 증하면 왜 부처님은 수명(목숨)이 미래제가 다하도록 무량한가? 그 이유가 무엇인가를 밝혀 놨어요. 그 이유가 무엇이냐? 몸이 억종광이라는 빛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죽을 수가 없는 거예요. 육신은 물질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장기(臟器)가 고장나고, 수명이 다하는 거예요.
그런데 부처님은 빛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죽을 수가 없는 거요. 억종광(무량광)이라고 하는 빛은 빛 중에서도 빛이요, 불가사의한 빛이어요. 스님이 너무도 많이 강조해서 아실 거예요. 그 빛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여래(세존, 붓다, 부처)가 되면 그 수명이 미래제가 다하도록 멸도 함이 없이 영원 하더라. 그것을 현지사에서 밝혀 낸 거예요. 그 정도의, 그런 큰스님이 있기 때문에, 그 스님은 불과를 증했기 때문에 다보탑이 솟아 오른 거예요.
다보탑은 불과를 증한 분이 아니면(부처님이 아니면), 부처님이 큰 법을 설하지 않으면 절대로 솟아오르지를 않아. 그런데《법화경》에서는 후세(후 내세)에《법화경》을 읽고, 설하고, 해설하면 솟아나온다고 되어 있어. 그것은 아닙니다. 그 부분은 아니어. 이것은 우리가 확실히 부처님한테 일문일답을 해서 확답을 받은 것이어. 2년 전에 부산에서 영산불교 개교 창교식(선포식)이 있었지요. 그때 다보탑이 솟아올랐어. 왜 솟아올랐느냐? 불과를 증한 분이 이렇게 사바 세상에 나타나잖아요. 붓다(부처)는 백 천 만생, 아니 겁에 하나 나와요. 겁에 하나 나오기 때문에 이건 아주 소중한 남섬부주 꽃이요, 우주의 꽃이어요.
그렇기 때문에 붓다들 서로 간에 그 끈끈한 정은 여러분들이 아들딸을 사랑하는 것에 비교가 안 돼요. 하나의 가족에 있어서 모자(母子) 모녀(母女)관계 이상입니다. 그리고 이 다보탑은 왜 솟아오르느냐? 방금도 말씀 드렸듯이 불과를 증한 분이 큰 법을 설할 때(정법을 설할 때) 정법을 펴기 위해서 올라오는 것입니다. 주로 법이 다 망가진 말세(오탁악세)에 법을 다시 펴기 위해서 부처(붓다)가 탄생하는 거요. 그래서 이 큰스님이 말씀 하신 것이 옳다는 것을 삼천대천세계에 증명해 주는 거요. 그때 삼천대천세계의 많은 부처님들이 허공을 메워가지고 그것을 또 증명을 해요.
그 다음에 올라오는 것은 무엇이냐? 사바세계의 아래 허공에 있는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본화 보살들이 또 땅속에서 올라와요. 장면이 세 가지가 있어요. 본화 보살이라는 것은 본지(본체계)에서 부처님을 옹위하는(보살행을 하는) 큰 보살들을 말해요. 화엄 십지에서 보면 십지 혹은 등각정도 올라가는 보살들입니다. 우리 현지사에서 나열하는 보살품계로 보면 모두가 최상품 보살 혹은 상수보살, 최상수보살들이어요. 그런데《법화경》에 보면 본화 보살들은 어마어마한 위신력이 있다고 했어요. 문수·보현보살은 따라가지 못 한다고 했어요.
그것도 잘못된 표현입니다. 문수·보현은 불과를 이룬 분이거든요. 어쨌든 본화 보살들은 위신력이 큰 보살들이고, 그런 분들이 한없이 올라온단 말이어요. 그때(그날) 이제 점안을 합니다. 아까 우리 광명만덕님께서 여기 설법전에 안 오신 이유는 대적광전에 가셔서 삼매에서 오늘 오신 여러분들의 업장을 씻어주려고 가신 거예요. 이 업장은 불과를 증한 분이 이 세상에 나왔을 때 한번 업장을 씻어 줍니다. 왜? 그때 부처님이 오시니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기회가 없어요. 여러분, 스님이 항상 이야기 하지만 이 부분은 꼭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그리고 100일 전까지 하면 아마 여러분들의 업장을 7번 이상 씻어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마 천도재를 7번 정도한 복을 받았을 거요.
다보탑이란 무슨 탑인가? 왜 우리가 다보탑을 건립해야 되는가? 이 부분을 아셔야 됩니다. ‵보정′이라는 정토는 그렇게 멀리 있지만 순식간에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다음에 서방정토극락세계는 우리가 사는 사바세계에서 얼마나 멀지요? 10만억 불토를 지나가면 서방정토극락세계가 있다는 말이 맞습니다. 영적인 이야기입니다. 영체개념에서 서방으로 십만억 불토를 지나가면 서방정토극락세계가 있어요. 그 교주는 아미타부처님이시지요. 그다음에 동방으로 십 항하사 불토를 지나면 약사여래부처님께서 계시는 정유리세계가 있어요.
항하사라는 것은 인도 간지스강의 모래를 항하사라고 합니다. 항하는 간지스강을 말해요. 항하사 불토를 지난다는 말은 무슨 말이냐? 불국토를 항하사만큼 많이 동방으로 지나가야 약사여래부처님이 계시는 정유리정토가 있다 그거요. 우리 현지사 단월님들이 현대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아픈 병이 있어서 약사여래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면 약사부처님께서 친히 오셔서 시술을 하시는 건 아시죠? 그러니까 이 불교라는 것이 우주적인 종교예요.
한량없는 천 만억 아승지 세계를 지나는 보정이라는 나라도 다보여래부처님이 계시잖아요. 그리고 서방으로 십 만억 불토를 지나가면 서방정토극락세계라는 정토세계가 있어요. 거기는 아미타부처님이 많은 보살님을 붓다 되게끔 교화하는 세계입니다. 그다음 동방으로 십 항하사 불토를 지나면 약사여래부처님께서 계시는 정유리세계가 있어요.
이 사바세상에서 볼 때에는 한없이 멀고먼 저쪽 공간에 부처님들이 모두 계시고, 그뿐만이 아니라 삼천대천세계 모든 부처님께 우리가 가끔 공양을 드리는데 그 삼천대천세계(모든 세계)에 계시는 부처님들이 또 오신다고요.
그렇기 때문에 이 부처님은 뭡니까? 정법을 수행해서 불과를 증한 분들이어요. 부처님들께서 거기 계신다는 말은 그걸 중심으로 해서 교화를 하시고 계신다는 말이어요. 그래서 불교를 우주적인 종교라고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불교는 우주적인 종교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들으셔야 돼요. 또한 우주적인 메타종교라고도 말해요. 메타라는 말은 총(總), 초월(超越), 모든 종교·모든 사상을 전부 포용하고 초월한, 전 우주적인, 그런 뜻이어요. 우주적인 메타종교가 불교입니다. 불교가 정법이고 정법이 불교인 거예요. 그런데 지금의 불교는 어떻게 되었느냐? 내 책에서 그렇게 강조하고 내가 시간을 통해서 가끔 이야기 하지만,
지금의 불교는 나약한 불교·쇠약한 불교·반 쪼가리 불교·왜소화된 불교로 되어 버렸어. 왜냐? 보면 알아요. 모든 경전을 보면 부처님에 대한 완벽한 설명이 없어요. 여기 조금 저기 조금 있어요. 그러나‘마음이 부처다’라고 하는 선불교(禪佛敎)의 시각에서 마구 그냥 때려 버린 거예요(선불교의 시각에서 일괄적으로 해석해 버린 거예요). 선불교의 저 사람들은‘부처는 없다. 마음이 부처다. 마음속에 깨달아서 아는 성품이 붓다(불)이다.’라고 해요. 심각 왈불 그래요. 그렇게 봐버려요. 그리고 법(法)은 뭐냐? 우리는 법을 이렇게 봅니다.
부처님의 교법, 부처님이 중생을 교화해서 정토로 붓다로 인도하는 그 가르침을 법(다르마)이라고 합니다. 저들은(선불교) 마음속에 바를 정(正), 바른 마음을 법이라고 합니다. 또 스님은 선불교에서 올바른 이 개념 규정(청정)을 말해. 마음속에 청정한 그것이 있습니다. 머리 깎고, 법복 입고한 이걸 이렇게 안 봐. 그런데 우리는 ‘선불교야! 그렇게 보지마라. 어찌 그렇게 옹졸하게 보느냐. 그것을 뛰어넘어 가라. 그렇게 해석하면 말이 안 돼. 10점 밖에 안줘. 뛰어 넘어가라.’
출처/2009.02.19.목(음1.25)큰스님 춘천 법문중 발췌
붓다의 대적정삼매
밀장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붓다 되는 마지막 삼매의 관
문을 여기 소개합니다
백천 가지도 넘는 삼매를 자유로이 수용하면서 마지막 몇
가지 삼매의 관문을 통과해야 대적정삼매에 듭니다.
이 마지막 삼매의 관문 중 하나만을 예로 듭니다.
"1,000m도 더 되는 터널이 있습니다. 양 옆 그리고 위쪽
으로는 등나무가 무수히 뻗어 있고, 수천 마리의 성난 코브라가
머리를 안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겨우 한 사람 통과할 수있는 이
무시무시한 터널을 통과하는 시험입니다."
몇 백 년, 몇 천 년 만에 혹은 겁에 한 분 나올까말까 하는
붓다의 시험보살도를 완성하여 이제 남은 수련,그것은 삼매력
시험입니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정색하시며 수행자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이 터널을 통과하지 못하면
우린 다음 생을 기약하며 헤어진다."
수행자는 자기의 네 영체를 하나로 하여 백천삼매를 나고
든 삼매의 힘을 다하여 오직 일심 칭명 석가모니불을 봉창하며
쏜살같이 터널을 뚫고 질주합니다.
온 몸엔 땀방울이 비 오듯이 흘러내려 옷을 흥건히 적셨습
니다. 터널밖에서는 모든 사부님들오여래 그리고 문수.보현
관음. 세지... 께서 눈물을 흘리시며 박수를 보냅니다.
모든 시험에 통과한 수행자는 해인삼매보다 백천만 리 떨
어져 있는 대적정삼매를 통과하면서 부처님 세계에 올라 붓다
인가 증서를 받고 삼천대천세계 붓다 대장에 자기 불명이 기입
됨을 확인합니다.
자기 불신이 절대계에 어린아이로 자라남을 봅니다. 자기
의 네 영혼체는 빛덩이임을 확인합니다. 부처님들의 축제 한마당이
벌어집니다. 하늘 꽃비만다라화등는 1m이상 내리쌓이고 성중들은
폭죽을 터뜨려 붓다의 탄생을 진심으로 봉축합니다.
출처/비교종교학
광명만덕님은 붓다입니다
이것을 오늘 내외에 선언합니다. 여러분, 붓다는 그 법위가 엄청납니다. 깨달음을 넘어서, 보림이 완성되어서, 무아행을 해서(두타행을 해서) 음계를 잘 지키고, 모든 중계를 선지한 후에 보림이 되어서, 이 몸에 대한 착(着)이 떨어져버린 자리가 아라한입니다. 그러니까 깨달음에서 이제 시작하는 거예요. ‘깨달음은 공부의 시작이다’하고 내 책《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권에 제일 먼저 일성(一聲)을 했습니다(먼저 말을 했을 겁니다). 깨달음이 끝이 아닙니다.
모두 그렇게 보는데, 그것은 절대 아니고, 깨닫고서 이제 보림을 잘 해서 탐․진 번뇌의 뿌리를 뽑아 놓고, 이 몸뚱이에 대한(나에 대한) 착(着)이 떨어져버린 그 자리가 아라한입니다. 이제 거기가 아라한이어요. 그렇기 때문에 아라한의 자리에 올라간 성자는 몇 십 년 만에 이 세상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합니다. 아마 내 책에 말해 놓았을 거예요. 그게 맞습니다. 아라한에서 보살이 되는 그 공부는 이제 이타 행으로 들어가야 됩니다. 보살도를 해야 됩니다.
모든 것이 전부 공(空)하다는 것을 알고(이미 착이 떨어져버렸으니까 그렇게 되지요), 대상에 대해서 착(着)하지 말고, 이제 남을 위해서 희생합니다. 남을 위해서 희생하는 거예요. 이게 보살이어요. 그래야 보살과(菩薩果)를 얻습니다. 그런데 자력으로는 안 됩니다. 자력으로는 절대 안 됩니다. 이것도 '자재 만현'이 처음 주장하고 이야기하는 것일 겁니다. 아라한에서 보살이 되는 것은 반드시 부처님의 가피가 있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될 수 없습니다. 그 이유가 다섯 가지 있다고 했지요.
나는 그 목사를 뒤로하고, ‘내가 불과를 증했다’고 하는 두 사람을 만났습니다. ‘내가 부처다’하는 그런 사람을 두 사람 만났어요. 잘 만난 거예요. 한 사람은 우리 고향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서울의 여자입니다. 그 사람들에 대해서 정말로 깊이 연구하고 팠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을 전부 뒤로 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그러한 '만현스님'의 법문을 듣는 거예요.
이 사람(만현스님)처럼 외도(사마외도, 사이비)를 분간할 수 있는 깊은 안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전혀 없습니다. 내가 그렇게 공부해보고, 소위《화엄경》의 선재동자처럼 많은 선지식을 두루두루 찾아서 담론(談論)해보고, 연구해보고, 그들이 나를 친형제처럼 가까이 있으려고 해도 나는 정에 끌리지 않았고, 냉철하게 정사(正邪)를 분간하고 해서 그분들을 멀리했습니다.
다음에 광명 만덕님을 만난 거예요. 내가 쓴《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Ⅱ》권을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깨달음은 공부의 시작이고, 공(空)을 깨치고 공성을 증득했다고 하더라도 저 절대계에 32상을 두지 않으면 붓다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30년, 40년, 50년 동안 내가 공부한 결론입니다. 그런데 이것이《법화경》에 있습니다.《법화경》〈비유품〉에 우리 부처님께서 사리불 존자에게 말씀하신 부분이 있고, 사리불 존자는 그때까지 공(空)을 깨치고 공성을 증득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제 공부가 다 되었다고 생각을 했는데, 부처님께서 “저 절대계에 32상 색신을 두어야 붓다이고, 완전한 멸도이다”라고 하니까 사리불 존자가 당황한 거예요. 그러나 수기를 받으면서 ‘우리 부처님 말씀이 옳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사리불 존자 등 십대제자 내지 십 육성이 공부를 한 거예요. 정진해 들어간 거예요. ‘아! 내가 아직은 불과(佛果)가 아니구나. 부처가 아니구나. 이제 공성을 증득한 정도 가지고 나는 부처라고 생각했는데 아니구나’하는 것을 알았다는 거예요. 여러분, 지금 이 말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지금 세계의 불교에 대해서 자재 만현이 많이도 한탄을 하고 있잖아요. 세계의 불교가 너무너무도 왜소화 되고, 왜곡되고,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어가지고 자기들이 최고라고 합니다. 자기들이 정법이라고 하지요. 그 우물 안에서(우물을) 뛰쳐나올 수 있어야지요.
객관에 서서 봐야지요. 깨달음은 이제 시작입니다. 결코 시작입니다. 내가 항상 이야기 하지만, 깨달음을 궁극의 목표로 알고 있는 지금의 불교는 21세기 지성 시대의 인류를 향도 못합니다. 모든 종교가 다 그 목표입니다. 표현은 다르지만 그 목표예요. 유교도 깨달음을 이야기하고 있고, 도교도 힌두교도 자이나교도 그렇고, 신비주의의 이슬람교도 그렇고, 영지주의의 기독교도 그렇고, 카발라 정도로 가면 유대교도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깨달음을 가지고 이것이 최고의 목표인양 생각하고 수행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뭘 모르는 사람들이어요. 마치《법화경》의 사리불께서 스스로 참회한 것처럼 그 사람들은 참회해야 됩니다. 절대계에 32상을 둔 자기불신(自己佛身)을 얻어야 거기가 이제 진짜 불과(佛果)입니다. 그런데 ‘내가 부처다’하는 그 몇 사람, 또 추종하는 사람들이 ‘이분은 불과(佛果)를 이룬 분이다, 이분은 어떤 부처님의 후신이다’하고 맹신을 하고 있는데 아니었어. ‘아니다’하고 내가 결론을 내린 것은 정말로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니었어요. 여러분, 정사(正邪)를 분간하는 잣대를 스님이 가끔 이야기할 거예요. 스님이 이야기 했을 겁니다.
▸음계를 봐야 됩니다. 그 수행자가(그 도인이, 부처라고 하는 분이) 정말로 깨끗이 살았는가, 지금 현재 깨끗한가, 모르는 사이에 몰래 음행을 하지 않는가, 하는 것을 봐야 됩니다. 이 음계가 잣대올시다. 아셨지요? 잣대입니다. 스님이 아마 비유한 말이 있을 겁니다. 표현이 좀 어색해서 죄송합니다만, 수행자가 음계를 파한다는 것은 청정수 한 컵에다가 똥 한 방울을 떨어뜨리는 것과 같습니다. 청정수 한 컵에다가 똥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먹을 수 있겠습니까? 먹을 수가 없어요. 음계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런데 외도, 사이비의 교주들, 지금까지 우리 인류 문화사에 알고 모르고 간에 출세했던 그 많은 사이비, 외도의 교주들은 거기에 거의 다 걸릴 것입니다. 거기에 거의 다 걸립니다.
▸그 다음에 부처님을 모르면 그건 아닙니다. 부처님을 알아야 됩니다. 부처님이 얼마만큼 거룩하시고 위대하신 어른인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보세요. 부처님한테 말로만 귀의했지, 부처님을 얼마만큼 철저히 따르고 귀의하고 하는 가를 봐야 됩니다. 우리 불교, 지금의 한국불교라든지, 저기 미얀마 태국 스리랑카의 불교 등이 부처님에 대한 믿음이 얼마만큼 되는 줄 아십니까? 우리 영산불교에서 이야기하는 부처님 신앙(믿음)을 따라 올 수 없습니다. 부처님의 위대한 것을 몰라요. 겨우 2600년 전에 이 세상에 오셨던 우리 부처님, 인간 역사 안의 붓다밖에 몰라요. 우리는 그게 아니어요. 절대계에 계신 우리 부처님을 알고 있어요. 그 어마어마한 인격, 지혜, 자비 공덕, 항하사의 신통묘용, 거룩하신 그 상모, 그리고 그 많은 겁을 내려오면서 많은 붓다와 보살을 내신 그 위대함, 우리 현지사에서는 이것을 알아요. 이러지 않으면(이런 것이 없으면) 절대로 정법이 아닙니다.
저기 히말라야 산에 초인들이 많이 살아요. 500살, 1,000살, 2,000년을 산 사람도 있어요. 온갖 신통을 다해요. 나는 그분들을 절대로 붓다가 아니라고 규정을 했어요. 그분들은 붓다가 아니어요. 그분들은 부처님을 숭배하지 않고, 자기가 부처인양 해요. 부처님 세계를 몰라요. 그렇기 때문에 아니라는 것이어요. 또한 절대계에 불신(佛身)이 없어요. 고로 거기는 아니어요. 그리고 사람의 영체(영혼체), 네(4)영혼체를 몰라요. 우리같이 속속들이 몰라요. 우리 영산불교에서 처럼 몰라요.
영혼체를 긍정하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 영산불교가 처음이어요. 힌두교, 자이나교에서 많이 알아요. 많이 알면 알수록 우주의 신비로운 그 비밀을, 우주의 이치를 많이 아는 거예요. 그래서 힌두교를 위대하다고 봐요. 힌두교는 창조론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기독교 등 저 일신교의 창조론하고 질이 달라요. 힌두교는 굉장히 우수한 종교예요.
인간이 육도에 윤회하는 것까지 알았어요. 그래서 그 주체가 영혼체라는 것까지 알았어요. 우리 불교, 부처님 세계에 가면 그것은 상식이어요. 그런데 어떻게 이게 왜곡이 되어가지고 무아설(無我說)이 자리를 잡아버렸어요. 나(我)가 없다고 하는 무아설(無我說), 부처님께서 무아설(無我說)을 말씀하신 것은 그런 의미에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어요.
중생이 죄를(업을) 짓고, 그래서 육도에 윤회하니까 이 고통의 세계에서 건져주시려고 무아(無我)를 말씀하신 거예요. 나(我)가 없으니까 이 몸뚱이에 착(着)하지 말라고. 너, 아무리 봐라. 나(我)라는 것이 있는가. 오온(五蘊, 色受想行識)으로 이루어진 이 몸뚱이, 몸뚱이를 아무리 찾아봐라. 나(我)라는 실체가 있는가. 저 수상행식(受想行識), 정신적인 면을 아무리 찾아봐라.
나(我)라고 하는 것이 있는가. 죽으면 다 흩어져버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현상세계의 모든 것을 가지고(보시고) 말씀하신 거예요. 현상세계에서는 나(我)라는 실체가 없어요. 그러나 실체가 없는 몸뚱이를 부처의 불안(佛眼)으로 보니까 저 몸속에 들어와 있는 본체(주인공)가 있어요. 그것이 영혼체예요. 주인공이 없이는 윤회를 못하는 거예요. 영혼체가 없으면 생겨났다가 죽어버림으로서 끝나버리는 거예요.
여러분, 전번에 스님이 체외수정은 영혼체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말씀을 해가지고 곧바로 지장보살님한테 잘 못했다고 혼났어요. 생각하니까 지장보살님 말씀이 맞아요. 오늘 수정합니다. 복제인간은 영혼체가 안 들어가요. 전번 대전 법회 때 스님이 말씀드렸지요? TV법회는 아니었습니다. 체외수정은 영혼체가 들어갑니다.
지금까지 2500년 불교가 영혼체를 몰랐어요. 무아설(無我說)이라고 하는 것에 걸려가지고 윤회의 주체가 없는 것으로 봐버렸어요. 무아설(無我說), 여러분! 이 무아설(無我說)은 우리 불교의 핵심이 되는 중핵의 사상입니다. 그런데 그 무아설(無我說)이 지금 잘못해석 되어 있다고요. 이게 2500년 내려갔다고요. 그 어떤 스님도 모르니까 무아설(無我說)을 바로잡지 못했다고요. 이건 영혼체를 봐야 압니다. 영혼체를 봐야 알아.
그런데 그 영혼체도 힌두교 정도로는 몰라. 그러니까 그건 아트만 이야기로 끝나버린 거예요. 아트만은 순수하니까 윤회 못해요. 우리같이 1번,2번,3번,4번 영혼체가 갖춰짐으로서 육도에 윤회하고, 지옥 아귀 축생을 윤회하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비아(非我)가 윤회의 주체다’하고 나온 거예요. 부처님 가신 후 처음으로 윤회의 주체는 있다. 힌두교의 말이 맞다. 그러나 힌두교의 아트만 가지고는 윤회를 못해. 잘못 안 거예요.
우리 영산불교에서 이야기하는 비아(非我), 1,2,3,4번이 뭉쳐진 것, 이것이 다겁생으로 내려오면서 업을 지었어. 탐진치의 뿌리가 다 깊이깊이 내려있어. 모든 악과 습의 기가 더덕더덕 붙어 있어요. 그래서 마치 영혼체의 모습이 숯검정처럼(진흙덩이처럼) 되어 버렸어. 그러니까 이것도 나(我)가 아니다 그거예요. 비아(非我), 나(我)가 아니다. 그 비아(非我) 때문에 윤회를 하는 거예요. 윤회의 굴레에서(사슬에서) 사슬을 끊고 벗어나려면 수행을 해서 비아(非我)를 유아(有我)로 바꿔야 돼. 이제 수행에 의해서 업장을 씻고씻고 해가지고 온전한 영체가 드러나야 돼. 순수하고 깨끗한 1번,2번,3번 영체가 드러나야 돼. 그러면 윤회가 안 돼. 이런 이야기를 했을 겁니다.
이것은 5년 전부터 내가 법회에 나가서 말씀을 한 거예요. 영혼체 이야기를 슬쩍슬쩍 했습니다.《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권에도 있어요.《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Ⅱ》권에도 많이 써놨고요. 점점점점 깊이를 내다가 이번에 내가 이 '영혼체 윤회론'을 크게 정비해서 내놓은 거예요. 이건 진리입니다. 이건 진리예요. 사람이 죽더라도 그 영혼체가 빠져나가야 완전히 죽었다고 의사가 판정하는 거예요. 영혼체가 빠져나가야 돼. 시골에 가면 어느 집에서 불나갔다고 하지요. 불나갔다고 하거든. 부부가 아무리 10년, 30년을 살아도 영혼체가 들어오지 않으면 수정할 수가 없어요. 안 되는 거예요. 애기가 들어설 수 없는 거예요. 알지요? 바로 그게 영혼체야.
그런데 무아(無我)가 우리 불교 가르침의 핵심이기 때문에, 이 전제 하에서 100%긍정을 하고, 무아윤회(無我輪廻)를 이야기하다가 보니까 이게 말이 안 돼. 무아윤회(無我輪廻)가 어떻게 됩니까? 윤회의 주체가 없이 어떻게 윤회가 된단 말입니까? 이건 안 되는 것이거든. 그러니까 그 힌두교의 여러 학파의 거장들한테(학자들한테) 집중적으로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런 논전(論戰)에서 대응할 수 없으니까 여러 가지 이론을 부파불교에서 만들어가지고 대응하지만, 인도사람들의 견지에서 보아도 말이 안 돼. 많은 세월을 두고(BC, AD 7,8세기부터 몇 백 년 동안) 그런 논전이 벌어져 인도사람들이 구경해보니까 이건(불교의 이야기가) 말이 안 돼. 처음에는 그것도 모르고 부처님이 워낙 위대하니까 불교로 기울여 왔어.
아쇼카 대왕이 전 인도를 통일하면서 인도는 물론이고 그리스까지 불교화 시켰어요. 그 다음 칸슈카 대왕이 300년~400년 후에 출세해서 더욱 불교화 시켰습니다. 그 불교가 인도에서 완전히 사멸해 버린 거예요. 사멸해버렸어요. 불교의 몸통이자 핵심사상인 무아(無我)가 이제 보니까 말이 안 되거든요. 이건 말이 안 되거든. ‘이게 불교냐!’ 하고 돌아서버린 거예요. 힌두교에 전부 흡수 되어 버렸습니다. 10억 인도 인구에서 0.01%도 안 되었어요. 그것이 요즘 약50년 전에 이 세상을 떠난 천민계급 출신인 '암베드카르(Ambedkar, Bhimrao Ramji 1893.4.14 인도 모우~1956. 12.6뉴델리. 인도의 정치가. 하리잔(불가촉천민계급)의 지도자로 1947~51년 법무장관을 지냈다. 인도 서부의 불가촉천민 계급인 마하르가(家) 출신으로 불교에 귀의함)'에 의해서 조금씩 조금씩 불교인구가 증가하고 있답니다.
암베드카르, 간디와 함께 인도 독립운동을 한 분이어요. 이분이 법무상까지 했는데 천민계급 출신이어요. 그렇지만 미국, 영국에 가서 경제학․법학을 전공하고 학위를 받은 분이에요. 그래서 지금 인도사람들은 간디와 암베드카르의 생일을 국경일로 정한 거예요. 암베드카르는 힌두교에서 불교로 전향했습니다. 왜 전향했겠습니까? 자기는 천민계급이어요. 천민계급은 인도사회에서 사람구실을 못해요. 자기는 천민계급인 슈드라 계급이었거든요. 불교를 보니까 평등을 이야기하거든. 완전히 바꿨어요. 그래서 불교 부흥운동을 한 거예요. 50년 전에 사망했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0.01%의 불교인구가 0.1%, 1%...증가하면서 지금은 7%정도 늘어났습니다. 약700만 명이 불교신자가 되었어.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그 불교가 역시 왜곡된 불교예요.
암베드카르에 의하면, 영혼도 없고, 다음생도 없고, 업보도 없고, 인과도 없다는 둥 이렇게 이야기해요. 이건 마치 오늘날 불교의 현주소 같아요. 앞으로 이런 불교는 안 됩니다. 진리를 모르는데 어떻게 됩니까? 진리를 완전히 깨닫고, 그걸 상식으로 알고 있으면 전법(傳法)을 해야 돼. 그런 불교들은 수명이 얼마 못가. 참 아쉽습니다. 우리 영산불교와 같은 정말로 완벽한 불교가 이 세상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 지금 우리 영산불교에서 출간 된 책이 20여권 나왔잖아요. 열심히 읽고 알아야 되요.
우리 영산불교의 사상을 전면을 할애하여 세 번 광고를 했어요. 큰 면을 세 번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까지 그 누구도 반론을 제기 못합니다. 반론을 제기 못하지요. 학자 아니라 학자 석학이라고 하더라도 반론 제기 못하지요. 2600년 동안 그 어떤 큰스님도 이걸 몰랐는데요. 이유가 뭐냐?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뚫고 본체를 보는 경계가 깨달음의 경계입니다. 깨달음 가지고는 아직 몰라요. 거기서 더 들어가면 적멸의 경계가 있어요. 적멸의 경계, 불보살의 세계가 있어요. 여기까지 가야 지옥도 보고, 영혼체를 확실히 보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도 반론을 제가 못하고 있어요.
우리 광명 만덕님을 그때 찾아가보니까 어마어마하게 공부가 되어가지고 있었어요. 이 남섬부주에 불과(佛果)를 증한 분이 태어나게 되면 반드시 부처님이 오시게 되어 있어요. 오셔서 지도해야 되요. 마장(魔障)을 막아줘야 되는 거예요. 불과(佛果)를 증할 정도에 오를 그 수행자에게는 여러분이 도저히 상상 못 할 마장(魔障)이 오는 거예요. 보살만 될 사람한테도 절대로 보살과를 이룰 수 없는 마장이 와요.
이 마장을 피해서 보살과를 얻으려면 붓다회상을 만나야 되요. 부처님을 만나야 되는 것이어요. 그런데 이분은(광명 만덕님은) 내가 볼 때 부처님을 만났더라고요. 부처님께서 오셔서 지도하고 끌어주더라고요. 그래서 그 부처님이 어떤 분인가에 대해서 내가 굉장히 집중적으로 파고 들어갔습니다. 부처라고 해서 내가 만났던 두 사람, 내 고향의 남자와 서울의 어떤 사람, 그 사람들은 나하고 결별이 되었어요. 이유가 있어요. ‘아! 진짜 부처가 아니다’ 그거예요. 음계에 걸리고, 경전을 소중히 해야 되는데 경전을 소홀히 하고 독송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붓다가 되었다면 모든 부처님(붓다)의 세계에 대해서 잘 알아야 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충분히 들어보면 어딘가 미심쩍었어요. 우리 광명님을 만나니까 완전한 부처님이 오셨어요. 여러분, ‘우리 영산불교가 부처님 교단이다. 우리 광명 만덕님이 붓다이다’ 라고 하고,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건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이야기인거예요. 여러분은 너무너무도 행복한 거예요. 오늘 처음 오신 분들은 아마 스님의 이야기가 와 닿지 않을 것입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시나?’하고 이해가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위해서 40~50년을 투자한 거예요.
무엇이 정법이냐? 모두 다 정법이라고 하는데, 무엇이 정법이냐? 고등학교를 나와서 예배당을 많이 다녔어요. 많은 부음집도 읽어 봤고, 기독교에 가보니까 저들이 최고라고 해. 저거가 최고라고 그래. 또 많은 종파가 있잖아요. 종파마다 자기의 종파가 최고라고 해. 또 종교의 수가 얼마나 많습니까? 나름대로 그 종교에 들어가면 자기들이 최고이고 정법이라고 해요. 여러분, 그러니 나 같은 사람이 있어야지요. 정사(正邪)를 분간하는 이런 선지식이 나와야 되는 거예요.
화두를 참구한지 10년 만에 깨닫고 보니까 많은 것이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완벽하게 정사(正邪)를 분간할 수 있는 경지에는 못 갔어요. 한 30년 동안 많은 선지식을 찾아서 점검을 하고, 그분들의 경지를 잘 보고 해서 상당히 정비할 수 있었어요.
광명 만덕님을 보고 ‘햐! 부처님은 이러한 분이구나’하는 것을 완전히 알 수 있었습니다. 절대세계에 자기 본불이 있어야 되고, 상적광세계에 자기 법신불이 있어야 되고, 어떻게 해서 절대계에 자기불신(본불)이 생기는 지 그 이유, 이건 정말로 깊은 밀장이지만 이런 것을 알아야 되요. 32상을 갖추고 있어야 되고, 그 부처님의 몸뚱이는 빛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빛은 보통 빛이 아니어요. 부처님의 몸은 무량광(상적광, 억종광, 백종오색광)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래서 불과(佛果)를 이루면 영원히 죽지 않는 거예요. 그 무량광이라는 것은 보통의 빛이 아니고 아주 불가사의한 빛이어요. 이 빛은 밝기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밝아.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저 한여름의 이글거리는 햇속, 그 햇속을 눈이 부셔서 볼 수 없잖아요. 그 햇속 보다도 더 밝아. 그러면서 특징이 안과 밖(겉과 속)이 없이 드러나 있어. 겉과 속이 구별 없이 하나라고요. 그걸 내외명철(內外明徹)이라고 해. 아주 묘한 빛이지요. 너무 투명하니까 그래요.
그러면서도 아름답고(예쁘고, 곱고), 영롱하고, 백천만억 가지의 색깔을 지닌 무량광이어요. 희유하지요? 부처님께서 어떤 때에는 단색으로도 내고, 어떤 때에는 백종백만억 가지의 색깔을 함께 내 뿜어요. 각각 그 빛을 놓는 데는 까닭이 있고, 사용처가 있어서 내는 거예요. 어떤 빛은 여러분의 업장을 소멸시키는 빛이 있어요. 업장소멸 부분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부처님의 그 불가사의한 능력인데, 부처님만이 중생의 업장을 소멸해 줄 수 있어요.
이렇게 부처님 교단이 시작되면서 여러분한테 업장을 소멸해 주는 거예요. 이건 겁에 하나 있는 거예요. 그 부처님은 32상의 완벽한 상모로 계시면서(눈 코 입이 다 갖춰져 있으면서) 지혜가 완벽하고, 자비 자체가 되고, 이 세상을 다 살만한 복을(복력을) 지니고 있고(불과를 증하면 다 살 수 있는 복력이 갖춰지게 되어 있고), 그러면서 부처님은 못 할 일이 없어요. 이것을 항하사(항사, 간지스강 모래알 수만큼 많다는 것임)라고 하는데, 부처님은 항사의 신통묘용이 있어요. 어마어마합니다.
부처님은 외도들과는 특별히 다른 큰 힘이 있어요. 전 외도를 당신 혼자 상대해서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어요. 지금의 이 세상 사람들은 이걸 몰라요. 이런 것을 광명 만덕님으로부터 많이도 알았어요.
▸광명 만덕님은 1998년도에 당신 불신(佛身)과 이쪽 영체가 계합이 되어가지고 불과(佛果)를 증했어요.
나는 그 후 2년인 2000년에 불과(佛果)를 증했습니다만, 광명 만덕님은 1998년도에 이미 불신(佛身)을 지니고 있었고, 그 불신(佛身)과 이 영체가(영혼체가) 계합이 되어 있었습니다. 보통사람들 중에서 지옥에 갈 사람들은 영체가 거무튀튀하고 숯검정 같은데, 하늘 갈 사람은 영혼체가 맑습니다. 아라한 정도부터는 달빛처럼 밝아요. 보살은 빛이 나요. 붓다는 이 네(4)개의 영혼체가 각각 분리되어서 활동할 수 있고, 네(4)개의 영혼체가 완벽하게 빛덩어리가 되어 있으며, 정말로 아름다운 상을 지니고 있어요. 부처님께서 이 네(4)개의 영혼체와 자기 불신(佛身)을 계합시키는 때가 불과(佛果)를 증하는 날이어요. 이것을 광명 만덕님은 1998년도에 마쳤어요.
▸그때 우리 광명 만덕님이 공부하는 것을 보니까, 식칼를 아주 날카롭게 갈아서 옆에다 놓고 공부하시더라고요. 아주 죽음을 각오하고 공부를 하시는 그 모습을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광명 만덕님은 부처님으로부터 화두를 받고 9일 만에 깨쳤습니다. 나는 10년이 걸렸지만 말입니다. 저 어른은(광명 만덕님은) 물로 목욕하다가 화두를 깨쳤는데, 물을 굉장히 좋아하십니다. 그 즐거움에 홀랑 벗고 춤을 춘 거예요. 화두타파의 즐거움도 대단합니다. 대단합니다. 그때에 읊은 게송이나 붓다가 불과(佛果)를 증해서 읊은 저 대적정삼매송이 붓다 되어 가지고 읊은 송입니다. 대적정삼매를 통과해야 됩니다. 그때에 자기불신이 생기니까요. 그 읊어 놓은 저 게송이나, 지난 15년 동안 공부한 수행일지를 가지고 지금 책을 내려고 하는데 여러분에게 말 못할 밀장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 밀장을 빼고빼고 하려니까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지금 보여줄 수 없어요. 밀장이라서 보여주면 안 되게 되어 있는 부분이 있거든요. 내가 밀장이라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밀장은 공개 못합니다. 그런데 광명 만덕님의 수행일지에는 많은 밀장이 들어있어요. 그래서 이 밀장을 빼자니(빼면) 핵심이 빠져버리고, 그렇다고 밀장을 공개할 수도 없고, 그런 문제로 지금 굉장히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몸부림을 합니다. 그 수행일지가 나오면 정말로 우리 부처님의 일거수 일투족, 저 부처님세계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이것이 정말로 이 세상에 소개가 된다면 놀랄 일입니다. 정말 이 책이 꼭 나왔으면 좋겠는데, 지금 이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내가 그때 우리 광명 만덕님을 만난 이후부터, 내 실력으로 광명 만덕님을 보건데 ‘이분은 가섭존자가 아니냐?’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전생을 좀 알아보시오. 부처님께 여쭤보면 그냥 말씀하실 텐데요’라고 했습니다. 그때 여러 부처님이 계셨거든요. 부처님께 여쭤봐도 “나는 모른다”고 하지. 또 문수보살님께 여쭤봐도 “나도 모른다”고 해. 보현보살님께서 말씀하셨을 겁니다. “자, 봐라”해가지고 그 영산당시 가섭존자의 모습을 쫘~악 보여준 거예요. 그런데 세상에 옷도 다 떨어지고, 머리는 그냥 더벅머리에다가 찌들어가지고 형편없는 모습으로 나오니까 이 양반(광명 만덕님)이 이상하다며 놀랐어요. 그래서 나는 무릎을 치며 ‘가섭이오’그랬지. 그때도 부처님들이 가섭이란 말씀을 안 하신 거예요. 이제 부처님들께 ‘그러면 나는 누구냐?’고 여쭈었어요. 그러니까 지장보살님께서 세 가지로 말씀하신 것이 있어요. 13년 전의 일입니다. “그 스님은 석가족이고, 부처님 동생이고, 부처님 시자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어요. 알겠지요? 나도 그 전에 내 전생을 알았습니다. 내 전생을 알았었는데, 그렇게 말씀하신 것을 며칠 전에 또 들었어요. 저분(광명 만덕님)의 일기를 내가 읽어 볼 수 있습니까?
▸광명 만덕님의 거짓 몸(저 몸뚱이), 저 분도 빛덩어리가 거의 다 된 거예요. 기(氣)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나, 그런 분야의 공부를 많이 한 분들은 보면 알아요. 빛이 나가니까요. 그런데 그런 분이 어디 흔합니까? 세상이 모르지요. 누구도 몰라. 그러니까 일개 여인을 갖다가 붓다라고 하고, 뭐(?)라고 하니까 그냥 비방을 하고 그랬습니다. 몇 년 전에 그랬습니다. 지금도 끊어지지 않아요. 그래서 내가 이런 제목을 가지고 공식석상에서 선언을 해줘야 되겠다. 여러분, 붓다를 비방하면 큰일납니다. 큰일납니다 여러분! 다 나쁜 짓해도 그 짓은 안해야 되는 거예요. 오역죄보다도 더 크니까요. 법을 비방 능멸한다든지, 붓다를 비방 능멸해버리면 큰일 나는 거예요. 앞으로 우리도 그걸 놔둘 것입니다. 그렇게 비방하는 사람이 어떻게 되는가를 보세요. 우리는 안 낫게 해 줄 거예요. 안 낫게 해줍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되는 줄 아세요? 벙어리도 될 거예요. 내가 오늘 공식석상에서 경고해 두는 것입니다.
▸저러한 분이 정말로 신통이 벌어지지 않겠습니까? 전부 벌어지지요. 벌어졌어요. 그러나 몇 년 전에 부처님께서 꽉 막았어요. “절대로 신통을 하지마라. 신통은 나혼자다.” 부처님은 신통을 하십니다. 앞으로 언젠가 사람으로 오셨을 때 부처님은 또 불과(佛果)를 이루셔가지고 필요할 때에는 신통을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 제자들에게 절대로 못하게 하시는 것은 우주의 이법을 거스르기 때문에, 죄를 짓기 때문에 절대로 못하게 하시는 거예요. 너희들 죄를 내가 감당한다(책임진다) 그거예요. 죄를 짓더라도 내가 하지, 너희들이 못한다 그거예요. 신통을 못하게 합니다. 예언, 아는 소리까지 철저히 못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신통은 하지 않아도 이러한 능력이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귀신을 잡는다고 하지요.
(광명 만덕님)이 귀신을 잡아요. 귀신을 잡는다? 이거 기가 막힌 거예요. 귀신을 완벽하게 보는 사람들이 있는 줄 아십니까? 일부 점쟁이들, 무당들의 일부분이 흑색으로 조금 봅니다. 광명 만덕님은 천연색으로 확실히 본다고요. 그런 분은 없습니다. 지금 유가(儒家), 도가(道家)의 내로라고 하는 학자들, 귀신을 잡는다고 하면 놀랄 거예요. 어디 공자가 귀신을 봤습니까, 맹자가 봤습니까, 주자가 봤습니까? 거기는 아니어요. 그런데 귀신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잡습니다. 잡는 다는 것은 바람처럼 신통이 무섭습니다. 저 귀신을 어떻게 잡습니까? 그렇지만 광명 만덕님은 귀신을 잡습니다.
▸광명 만덕님은 극락을 보고, 지옥을 보고, 못 보는 것이 없어요. 보려고 하면 봐요.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내가 법문에 써먹지.
이제 내가 법왕자이니까 붓다로서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저분(광명 만덕님)은 부처님의 태자이기 때문에 엄청납니다. 보통 부처님들은 불과(佛果)를 증하면 열반에 들어버리게 되어있어요. 그러면 우리는 10년 전에 갔었어야 돼. 그런데 이렇게 가지 않고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104위 신중, 그리고 저분(광명 만덕님)이 출세한 후 4~5개 집단이 귀의를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108위, 109위 신중을 부립니다. 무슨 말인 줄 압니까? 명(命)하고 보고를 받습니다. 이제 저분(광명 만덕님)의 실체를 내가 지금 말을 하고 있는데, 좀 죄송하기도 하지만 여러분들이 이걸 좀 알아야 우리 교단에 대한 위상이라든지, 큰스님에 대해서 저 아무것도 모르는 스님들이 마구 비방을 하니까 그러면 안 된다는 말을 해주는 거예요. 그러면 안 되거든요. 이 말이 많이 퍼지면 좋겠어요. 이게 많이 녹음이 되어서 나가요. 나는 정말로 자신 있는 법문만 하는 거예요. 내가 본 것, 내가 공부한 것, 열 번이고 백번이고 숙고하고 검토한 거예요.
▸저분(광명 만덕님)은 어떠한 부처님들과도 항상 보고 대화할 수 있어요. 이거 기가 막힌 거예요. 역사 이후 그 누가 그랬습니까?
인도의 용수? 차원이 다르지요. 안 되지요. 거기는 영혼체의 깊이 까지는 못 봤으니까요.
▸저분(광명 만덕님)은 정토의 그 많은 보살들, 성중들, 하늘신들, 귀신들, 지옥을 전부 볼 수 있습니다. 삼악도의 중생, 지옥중생을 건질 수 있습니다. 죄를 지어서 가 있는 데, 누가 건집니까?
▸우리의 천도재, 저분(광명 만덕님)이 주관합니다. 저분(광명 만덕님)이 나오시지 않으니까 도대체 저분은 어떻게 해서 붓다까지 되셨는데 이 많은 신도들 앞에 나서지를 않나? 여러 가지의 말이 있을까봐 오늘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저분(광명 만덕님)이 하시는 일이 있어요. 오늘도 부처님들과 함께 여러분의 업장을 씻어 주시는 소임을 맡았어요.
▸이름과 신분을 거명할 수 없지만, 어떤 두 세 사람이 우리를 시해(弑害)하려고까지 했어요. 우리를 죽이려고 온갖 사술을 동원한 사람들이 있었어요. 어떤 한 사람은 사신을 움직였어요. 사신, 뱀신. 뱀도 코브라 같은 무서운 뱀신. 그런 뱀신 수 만 마리를 움직였어요. 그걸 가지고 우리를 죽이도록 명한 거예요. 몇 년 전의 일입니다. 그러나 족탈불급(足脫不及)이지. 붓다이기 때문에 해칠 수 없는 거예요. 붓다의 뒤에는 무수한 붓다들, 보살들, 성중들이 옹호합니다. 또 옹호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네(4)개의 영혼체가 빛덩어리가 되어 있어요. 빛덩어리는 저것들이 100미터(수 백 미터) 안으로 접근을 못 해. 몇 미터 안으로는 접근을 못해. 우리가(광명 만덕님이) 전부 그 사신집단을 명부에 가둬 버린 거예요.
▸저분(광명 만덕님)의 피의 색깔은 핑크색입니다. 여러분의 피는 검붉어요. 그렇지요? 붉다 못해서 검붉은 색이어요. 저분(광명 만덕님)은 핑크색이어. 순수하고 맑으니까 가지고 놀고 싶어.
▸그리고 번갯불이 있잖아요. 번개가 칠 때 일어나는 섬광, 그 섬광의 광도가 얼마나 무서운 줄 아십니까? 번갯불의 광도, 아시죠? 저분(광명 만덕님)은 번갯불이 오면 먹어버려요. 이 말을 집에 가셔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사실이니까. 신통을 못하게 하니까, 자연스럽게 사니까 그렇지, 얼마나 무서운 어른입니까? 보기에는 평범한 여자인데 뭐. 자기도 여자, 나도 여자, 그런데 뭐가 저렇게... 어떻게 공부가 깊어서 불과(佛果)까지 증했다고 하나? 아마 많이도 의심하고, 알고 싶어도 했을 거예요. 오늘 그래서 공개 선언한 거예요.
▸여러분, 한 여름에 해를 보세요. 몇 초나 볼 수 있을 까요? 햇속을 1분, 2분을 볼 수 있나요? 볼 수 없지요. 오래보면 실명됩니다.
저분(광명 만덕님)은 1분, 2분간 해가지고(봐가지고) 해가 저버립니다. 그래도 보통 눈으로 돌아와서 글을 전부 읽는다고요. 여러분, 1분 동안 햇속을 본 후 사람을 보고 글을 보거나 하면 글이 보입니까? 안 보이지. 오래 보면 실명 됩니다. 저분(광명 만덕님)은 해를(햇속을) 먹어버립니다.
▸저분(광명 만덕님)은 모든 사람의 전생을 다 알지요. 볼 수 있지요. ▸수 초, 1,2,3초 안으로 삼매에 들어가 버립니다.
원불교의 교주가 5분 안에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미안한 말입니다만 내가 볼 때, 그분의 선정은 초선정도 안 됩니다. 저분(광명 만덕님)은 초선정에 어린이 때부터 (불과(佛果)를 증하기 이전부터) 들어갔습니다. 우리 부처님도 그랬습니다. 초선정, 경전을 보면 삼매가 여덟 가지 있다고 해. 그래서 아홉 번째가 멸진정이어. 초선정은 초선천에 태어날 수 있는 선정의 힘, 태어날 수 있는 힘, 그게 초선정이어. 초선정에 벌써 들어가셨어.
▸내가 저분(광명 만덕님)을 만났을 때, 저분은 벌써 어떤 깊이의 삼매에 들어갔느냐? 아라한 삼매가 있고, 보살 삼매도 많아요. 그 최고의 부처님 삼매에 거의 들어가더라고.
터널이야기를 했을 겁니다. 내 책에 나오지요. 내가 눈물을 흘렸어. 그 삼매에 들어갔다 나와서 옷이 젖어있었습니다. 터널 이야기 아시죠? 모르는 분이 있을 까봐 다시 들려드립니다. 터널, 그러니까 상하좌우가 몇 백도(℃) 아니 몇 천도(℃) 빛의 터널입니다. 그 안은 불덩어리로 이글거리는데 사람이 뛰어갈 만한 공간만이 있어. 그런데 저 부처님이 여기서 저기 산의 터널을 통과해서 오라고 해. 여기서 어떻게 갑니까? 그러니까 영체가 이 몸에서 나와서 들어가야 되는 거예요. 가는데, 번개보다도 더 빨리 가야 되고, 생각이 한 생각이라도 잡념이 들어오면 실패인 거예요. 안 되는 거요.
두 번째, 코브라가 그렇게 있었어요. 그 사이를 통과해야 되는 거예요.
바위산을 뚫어야 되는 거예요. 여러 삼매가 있었습니다. 그것 하나하나를 전부 통과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내가 너무너무도 감격에 겨워가지고 눈물을 흘린 거예요.
우리 지장보살이나 관세음보살 같은 분들은 무량겁 전에 불과를 증한 붓다이지만, 얼마나 위대한 어른이신 줄 아십니까? 우리 관세음보살님, 62억 항하사 보살들을 보탠 것과 맞먹는다고 했어. 그러면 어느 정도 위대하다는 것을 알겠지요? 62억 정토보살들을 다 합한 것보다도 더 위대하다 그거예요. 이 많은 정토보살들에게 평생 사사(수행승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네 가지 물건. 침구(와구), 의복, 음식, 탕약(湯藥,의약)이다)로 공양을 해도 관세음보살님께 한순간(한번) 경배하고 공경하고 예배하고 공양드리는 것만 못하다고 했어. 이 관세음보살님, 실제로 보면 그렇습니다.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오늘처럼 이렇게 1,000명을 모아 놨다(1,000명의 청중들이 있다)? 관세음보살이 일시에 1,000명의 몸을 나툰 것이 천수천안이어요. 눈이 천 개이고, 손이 천 개가 아니어. 당신의 몸을 1,000개로 화신을 내어가지고 여러분 각각의 머리위에 올라가서 여러분의 업장을 씻어주는 그 어마어마한 광경을 볼 때에 62억 항하사보살들이 그럴 수 있습니까? 못하지요. 약수병으로 물을(감로수를) 정수리에 붓고, 그리고 버들가지로 돌려서 무량광을 쏘아가지고 업장을 벗겨내는(씻어내는) 작업을 하셔요. 그렇기 때문에 관음 ․ 지장 정도는 어마어마한 부처님이셔요.
▸그런데 이분(관음․지장)들이 우리 광명 만덕님을 보고 하시는 말씀이 있어요. 가끔 하셔요. “나는 자네가 부럽네”라고 하셔. 왜냐? 지존이신 우리 교주 불세존의 태자이기 때문입니다. 알겠지요? 우리 석가모니부처님은 지존이십니다. 우리 부처님께서는 그 많은 붓다를 내시고, 보살을 내시고, 성중 아라한을 내신 분이어요. 부처님의 은혜 없이 된 분은 하나도 없어요. 더더구나 붓다는 부처님의 은혜가 99% 작용해야 됩니다. 그래서 붓다들을 부처님의 분신이라고 해. 부처님께서는 붓다들을 “아들아!”하고 불러요. 우리 부처님은 모든 붓다의 붓다예요.
▸우리 광명 만덕님은 그 부처님의 태자이시자 법의 상속자예요. 극무간지옥이나 무간지옥에 가 있는 사람들을 끄집어내려면 지장보살님의 힘 가지고는 안 됩니다. 우리 부처님의 승낙이 있어야 됩니다.
▸우리 부처님께서는 앞으로 언젠가 이 사바세계에 몸 받아 오실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대행자가 광명 만덕님이어요. 대행을 하게 되어있어요. 지금까지는 문수․다보부처님께서 대행을 하셨습니다. 앞으로 오실 때, 나는 시자로 올 거예요. 또 오신다고 했지요.
▸산길을 지나갈 때가 있잖아요. 우리가 지방의 어디를 갔다가 돌아올 때 산을 끼고 오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때 대부분의 산왕대신들이 자기의 휘하 권속을 데리고 마중 나와서 예배를 해요. 알았습니까?
▸당신의 절대계에 있는 저 광명불은 어마어마한 붓다예요. 저 붓다와 언제나 계합할 수 있어요. 당신이니까. 당신 영혼체로 가서 계합할 수도 있고, 그 분이 들어올 수 있고 그래요. 당신이니까 그렇습니다.
▸이 사바에는 하늘마(天魔)나 귀신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속거천리(速去千里, 빨리 멀리 도망가다)라는 말이 있지요? 이 천마나 귀신들이 광명 만덕님을 보면 속거천리(速去千里)해요. 영체가 빛덩어리이기 때문입니다. 두더지가 태양을 보면 어떻게 되지요? 두더지는 저 햇빛을 못 보기 때문에 견디지 못 해요. 그와 같아요. 외도나 천마나 귀신들은 성자의 빛을 제일 무서워해요. 그래서 도망가는 거예요.
▸저분(광명 만덕님)은 사실 모든 것에 통달해 있어요. 불안(佛眼)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일을(토목공사, 건축공사, 나무․묘목 등을 심는 작업 등) 지시하는데도 저분(광명 만덕님)을 따라갈 사람이 없어요. 그 직업분야의 프로(사장)들이 그 안목을 보고 놀라요.
▸저 우리 집(현지사)을 짓고, 토목공사를 하고, 1,000그루 이상의 소나무를 구입해서 심고 한 것은 전부 저분(광명 만덕님)이 간단하게 지도 지휘해요. 저분(광명 만덕님)이 없으면 관계자들이 엉망을 만들어 놔버려. 엉터리 공사를 해놓는 다고요. 두 번 세 번(재탕 삼탕)을 해요. 그러니까 이 건축이나 토목분야에 종사하는 사장들이 그 안목에 놀라요.
▸복둥이 건물도 지금 좋게 해준다고 하는데, 갈수록 예뻐지더라고. 저분(광명 만덕님)이 다 지휘하신다고요.
▸한 가지 일을 하면 거기에 폭 빠져요. 이것은 견성한 사람들은 다 알아요. 선불교에서 견성한 사람들은 이걸 알아요. 이분(광명 만덕님)이 그 경지를 거쳐 간 것은 옛날 옛날 옛날이어. 그렇기 때문에 저분(광명 만덕님)은 한 가지 일에 퐁 빠져버리면 서너 시간도 금방 지나가기 때문에 일을 다 마쳐놓고 이제 몸이 ‘아이고! 죽는다’고 해. 그때는 몰라요.
▸전번에 어떤 사람이 처음으로 산삼을 가지고 왔어요. 최고의 심마니 대장이어요. 그 사람이 그 산삼의 수령을 100년이라고 했는데, 광명 만덕님은 ‘아니다! 60년 몇 개월 되었다. 산지가 어디다’라고 해버리니까 놀라버린 거예요.
구체적인 실례를 생각나는 대로 적어 놓은 거예요. 불과(佛果)를 증하게 되면 물론이거니와 보살과 이상은 석녀가 되어버립니다. 남자도 석남이 됩니다. 이라한 이상은 그럽니다. 자기의 힘으로 가게 돼. 석남석녀가 되어버리는 거예요.
▸그리고 사람을 딱 보고 첫 번째 하는 말은 맞아요. 그러니까 여러분, 첫 번째 무슨 말을 하는가를 들어보시라고요.
▸천도재 때, 저분(광명 만덕님)이 혹시 나오시면 열시왕이 와서 반드시 삼배를 해요. 열시왕은 보살급입니다.
▸또 제석천왕이 가끔 우리 현지사에 큰 선물을 가지고 오시기도 하는데, 그 제석천왕은 상품보살이니까 광명 만덕님께 삼배를 해요. 광명 만덕님은 붓다이시니까 당연히 삼배를 합니다. 거기는(저 세상은) 위계가 엄격해요.
▸마왕 파순이가 그 어느 불과(佛果)를 이룬 붓다한테 경배는 하지 않았을 거예요. 가끔 저분(광명 만덕님)한테 와서 삼배를 해요.
마왕 파순이는 우리 부처님이 몇 번 혼을 냈어요. 그러나 죽일 수가 없어요. 우리 부처님은 자비하시니까 죽이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아요. 안 죽일 줄 압니다... 終
2010.7.4.일(음6.23) 큰스님 부산 법문중 발췌
현지사의 역사적歷史的인 중대한 발견
종교상의 코페릔쿠스적 혁명입니다.
1. 무아 속 절대계에 불과를 이룬 붓다님들이 여여히 계십니다.
나, 자재 만현이 붓다 되고 나서 절대계에 부처님이 계심을 보고 이를 여러 불자들에게 알립니다.
자성의 광명이란 존재의 근원인 빛을 말합니다. 진여의 광명이라고도 하는 이 빛은 원초의 빛, 티베트 밀교의 정광명, 카발라에서 말하는 무한광Ayin Sof Aur을 말합니다. 이 빛보다 한 차원 맑고 맑은 빛이 보살의 정토의 빛입니다.
정토세계의 빛보다 몇 차원 더 청정하고 아름답고 안팎이 없고 천문학적으로 밝고 청정한 부처님 광명이 곧 무량광, 억종광, 백종오색광, 대열반광인 것입니다. ≪화엄경≫에서 말하는 ‘티끌 수와 같이 많은 색깔의 광명’인 것입니다.
무량억종광으로 이루어지고, 유·무를 초월한 무아 속 절대계 곧 상적광세계에 불과를 증한 붓다들의 지복의 몸, 보신 부처님들이 계신다는 말입니다. 불교사상, 인류 종교 역사상 이 ‘절대계에 불신을 둘 수 있는 고도의 수행법은 불교밖에 없다’라는 것입니다.
도가의 최고 차원의 수행으로 얻어진다는 허공신·체외신은 불교의 보신과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불교의 보신에서 천만억의 화신을 나툽니다. 그리고 보신은 법신불이 있어서 완전히 성장, 존립합니다.
나는 이 엄청난 초유의 발견을 하고, 거룩하고 희유하신 우리 교주 불 세존께 경배 드립니다.
깨끗하고 청정한 부처님의 광명을 보고 부처님이 드는 대적정삼매에 드는 것은 붓다삼신불 이루는 필수 요건입니다.
나는 깊은 삼매 속에서 다음과 같은 붓다만이 할 수 있는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깨끗하고 청정한 억종광천만억 나유타 빛깔 광명 빛을 보고,
깊은 붓다의 대적정삼매 속에서 부처님을 친견하고,
여러 가지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여 부처님의 법문을 듣습니다.
지금은 항상 모든 붓다님을 뵙고 법문을 듣고 대화를 나눕니다.
아울러 나는 깊은 삼매 속에서 미증유한 다음의 사실들을 요달了達했습니다.
①대승경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부처님 몸의 10군데에서 방광하는 백종오색광명의 색깔은 서로 다르고 갖가지 부사의한 기능을 지닌다는 사실
②붓다라면 삼신을 갖춰야 한다는 것과 붓다라야 불의 삼신, 곧 ‘법신·보신·화신이 어떻게 생기며 어떤 존재인가’하는 비밀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③청정법신 비로자나불, 원만보신 노사나불과 구원실성久遠實成하신 최초 불 석가모니부처님의 희유한 실체
④다보부처님과 다보탑, 오여래 부처님과 준제보살,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등 우주법계에 수많은 붓다들의 세계
⑤붓다만이 드는 대적정삼매의 깊이와 희유한 법열
불교란, 부처님에 의하여 창교됐으며 붓다 이룰 수 있는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오늘 날의 불교는 부처님이 계시는지 조차도 모르는, 심지어 마음이 곧 부처라 하는心卽是佛, 自性佛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부처님 삼신을 갖추신지를 모르면 불교를 알 수 없습니다. 붓다佛의 불신몸, 삼신관을 모르면 불교를 이야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우주적인 몸, 우주적인 광명지체光明智體-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을 모르면 불교가 우주적인 종교임을 알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의 불신佛身-원만보신 노사나불을 모르면 위대한 불교, 불교가 우주적인 메타종교임을 알 수 없습니다. ≪화엄경≫ 등 대승경전을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다보탑, 다보불, 본화보살을 모르면 ≪법화경≫을 알 수 없습니다. 부처님이 어떤 어른인 줄 알 수 없습니다.
부처님원만보신은 지혜·자비·복덕의 빛덩어리억종광·무량광이십니다. 백천삼매, 방광放光, 천백억화신, 항사恒沙의 신통에 자재하시고 위대하시고 희유하신 분이십니다.
몸의 여러 군데미간, 정수리, 입, 온 몸에서 가지가지 광명을 놓습니다. 그 밝은 빛은 여러億種 빛깔입니다. 그 광명은 이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비추며 이 광명에 쏘인다면 죄업과 번뇌가 모두 씻겨나갑니다. ≪열반경≫
인류 역사 이래 그 어떤 성자가 이같이 희유한 위신력을 지녔답니까? 실제 부처님의 위신력은 그러합니다. 불교는 위대합니다.
절대계에 계시는 원만보신 부처님100%빛의 존재을 뵙고 법문을 들으며 거기 붓다님들과 법담을 나누는 일, 또한 그 무아 속 절대계에 임의로 들 수 있는出入 일은 대적정삼매붓다의 깊은 삼매를 통과하여 삼신三身, 法報化을 구족한 붓다 아니고선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언해둡니다. 천만생 아니 겁劫에 한 분 출세하는 붓다의 시대에 불교는 비로소 우주적인 메타 불교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불멸 후 9백년 경 당시 인신人身을 받아와 살다간 미륵Maitreya 부처님으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은 대학승大學僧 무착에 의해서 불의 삼신관이 정립, 완성됩니다. 그러나 무착은 불과를 증한 붓다는 아니어서 그의 삼신설은 법신불부터 많은 보완이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대승불교의 법신 부처님을 알지 못하고, 거기에 뿌리내린 보신 부처님을 모르면 부처님의 가르침이 우주적 메타종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석가모니부처님 이후 삼신불을 갖추고 불과를 이룬 분은 수보리존자, 사리불존자, 가섭존자 그리고 아난존자 네 분입니다.
수보리존자와 사리불존자는 부처님 멸도 후 1200년, 1400여 년이 지난 후 각각 중국과 한국에서 불과를 이루시어 명상불과 화광불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출세는 하시지 않고 조용히 반열반般涅盤에 드셨습니다.
2. 부처님 원만보신圓滿報身은 우주의 주主이시고, 우주적 창조의 힘을 구유하십니다.
우주에 편만해 있고 불생불멸하는 대생명, 일심진여, 공 반야공般若空, 스스로 있는 자존자, I AM과 하나로 계합한 ‘붓다’에겐 우주적인 능력이 있습니다. 특히 최초 불이시오, 삼계의 왕 석가모니 부처님은 가히 상상할 수 없는 능력을 지니십니다.
우주의 진리와 하나된 붓다법신불는 모든 것의 전체적인 것으로서의 우주의 주主이고, 거기서 나온 빛의 인격체인 붓다보신불는 실질적인 우주의 주인이 됩니다.
32상을 갖춘 거룩한 상모와 백종오색광으로 이루어진 불신은 100% 빛의 존재이십니다. 몸의 10군데에서 티끌 수 같이 많은 색깔의 광명을 놓습니다.
천만억 화신을 나투시고 32응신으로 항하사의 신통묘용을 자재하게 부려 삼천대천세계 중생을 교화하십니다. 지혜와 자비, 복덕을 구족하십니다.
3. 육도 윤회세계와 해탈세계를 관통하는 불교 생사관을 정립하고 자·타력수행법을 통해 붓다가 되는 길을 제시했습니다.
아울러 무아와 윤회 주체간의 모순에 대한 2000여 년 동안의 논쟁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게 된 사실을 선언합니다.
1) 인간 영혼의 실체를 규명했습니다.
오늘날 서구 지성사회에서 목말라하는 인간 영혼의 실체를 규명했습니다. 영혼의 실체에 대한 규명은 인간 사유로서는 한계가 있습니다. 붓다의 무상 지혜 아니고선 영원히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인 것입니다.
영혼체를 알지 못하고, 무아無我·비아非我_무아사상은 불교 핵심교리를 잘 못 알고서는 영원히 무아와 윤회의 주체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현지사에서는 영혼의 실체와 무아·비아를 통찰할 수 있게 되어 2000여 년 동안의 교가敎家의 논쟁무아와 윤회 주체간의 모순 관계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게 된 사실을 선언합니다.
인간은 지·수·화·풍 4대로 이루어진 육신과 네 영혼체의 결합입니다. 영혼체는 누구에 의해서, 어느 절대자가 있어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인연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자력과 타력의 수행에 의해서 삼독·오욕의 번뇌와 다겁생에 지은 업장 그리고 악·습기 등 비본질적인 것을 제거함으로써 그 정화된 영혼은 육도윤회의 생사에서 해탈하게 됩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팔정도와 육바라밀로 지혜般若와 복덕을 닦으면서 부처님釋迦牟尼佛의 존호를 봉창하는 염불행자가 되어 수행하면 상락아정常樂我淨의 정토에 보살로 갈 수 있습니다.
2) 완벽하고 올바른 생사관을 정립했습니다.
21세기 지성인들이 또한 몹시도 알고자 하는 것은 생사관일 것입니다. 육도에 윤회하는 주체-영혼체를 알지 못하고서는 올바른 생사관을 정립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현지사에서는 이 문제에 대하여 철저히 규명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절대 다수가 악도중음계 지옥, 아귀, 축생에 간다는 놀라운 사실과 윤회 안과 밖 해탈오계를 달관하게 됐습니다.
붓다의 삼매가 아니고서는 이러한 생의 근원적인 문제 해결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재확인합니다.
중생이 윤회생사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수라, 천상- 육도는 실재합니다.
사람들이 자살 또는 비명횡사하거나, 나쁜 병을 얻어 죽거나 자식과 재물 등에 착着이 많은 이들은 죽어 명부저승를 들어가지 못하고 이승도 저승도 아닌 중간세계 곧 중음계에 머물게 됩니다.
중음계는 4번 영체로 살게 되는데 여기는 배고프고 춥습니다. 물론 4번 영체도 엄연한 생명체임은 말할 나위 없습니다. 중음세계가 있음을 확실히 해둡니다.
중생이 다겁생 이래로 또 미래제가 다할 때까지 불법을 닦아 해탈을 얻지 못하면 영원히 육도에 윤회생사합니다.
본성을 보아 공을 깨치는 견성은 수행의 종착역이 아니고 궁극적인 해탈세계붓다의 절대계로 가는 머나먼 도정의 출발점에 불과합니다. 깨달음을 얻은見性 수행자는 음계를 지키고 두타행으로 나我에 대한 착着을 떼어 아라한이 됩니다.
아라한은 다시 사람 몸을 받아와 육바라밀과 타력수행으로 보살이 될 수 있습니다. 보살은 무량겁을 두고 보살도를 완성하고 보현행원을 실천하여 자기 불신을 절대계에 두는 붓다가 된다는 것입니다.
3) 무아비아와 윤회의 주체에 대한 실체적인 진실을 파악했습니다.
중생이 육도에 윤회 전생하는데 있어서 그 주체는 영혼체1,2,3번인 것입니다. 이 영혼체는 우주 본성까지를 포함하는 개념인 힌두교의 아트만과는 다릅니다.
무아無我, Anatman는 나의 몸과 마음을 포함, 제법諸法은 인연 소생이므로 영원 불변하는 나我라는 실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이 세상현상계에 한하는 말임을 유의하여야 합니다. 시공을 초월한 세계의 주체가 되는 비본질적인 것까지 제거된행위의 주체 참 나까지도 부정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비아非我는 비본질적인 것까지 포함한 나는 참된 나가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무아라는 말보다 비아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온당합니다.
육도에 윤회하는 주체가 되는 영혼체는 업덩어리가 붙어있는 청정하지 못한 영체이며 생사 해탈로 가는 주체는 청정한 순수 영체인 것입니다.
4)수행인에게 있어서는 음계가 제1의 계율이고, 효행이 제1의 덕목임을 알았습니다.
불교 수행자에게는 물론 음계가 생명입니다. 음계를 파하면서 공부한다면 깨달음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모래를 쪄서 밥을 얻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아라한 성자도 음계를 범한다면 그럴 수 없지만 악도행입니다. 영적으로 참수·단두됩니다.
그리고 ‘효孝’는 부처님께서 가장 중요시 여기시는 덕목입니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나라를 사랑하며, 스승을 공경해야 할 것입니다. 더불어 우리는 불쌍한 이웃을 사랑하는 이타행을 실천해야 합니다.
5) 자력이 아닌 자·타력 불교라야 합니다.
지난날의 잘못을 참회하고, 부처님께 귀의하며 가피 받을 행을 하고, 악을 더 이상 짓지 말고, 부모님께 효도하며 착하게 살면서 칭명염불 하십시오. 자력수행으로는 여러 마장 때문에 인간 능력엔 한계가 있습니다. 윤회를 벗어나는 높은 수행 성과를 얻기는 어렵습니다.
타력수행을 하여 부처님의 가피를 얻으면 건강에도 좋고 삼재팔난을 만나지 않아 금생도 잘 살고, 다음 생에도 복되게 살 것입니다. 잘하면 윤회를 벗어나고, 삼계를 탈출하여 극락정토까지 왕생할 수 있고 붓다도 됩니다.
생으로 윤회생사하면서 지은 중생의 업장은 태산만합니다. 업장은 오로지 부처님만이 소멸시켜 주실 수 있습니다. 또한 천마와 용신과 무주고혼의 실체를 알게 됐으며, 이들이 빙의되었을 때의 문제점과 그 해결 방법에 대한 확실한 처방을 갖게 됐습니다. 이외 많은 사람들-천마天魔, 마경魔境, 외도의 수장首長, 용신 등 외마 그리고 신통 등에 대해서도 깊이 알게 됐습니다.
21세기 인류를 향도할만한 진정한 법Dharma은 우주적인 메타불교입니다. 불교 계율에 대한 가르침은 삼천대천세계 모든 육도중생에게 해당이 됩니다.
삼강오륜의 인륜 도덕은 우리 인간을 대상으로 합니다. 그러나 우주적인 종교의 계율은 탐진치의 뿌리까지 정화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육도의 중생은 물론 윤회 밖의 아라한이나 보살들도 부처님의 계명에 귀의해야 할 것입니다.
보시의 실천도 대승보살의 이타행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육도 중생의 고통을 대신해서 내가 받는다는 큰 자비가 있어야 합니다. 미래제가 다하도록 무피염無疲厭의 정신으로 지옥의 중생을 건지는 것입니다.
모두는 나와 더불어 한 몸입니다. 그래서 사랑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우주의 진리입니다. 이러한 지계와 보시에 대한 위대한 대승적 실천이 미래 인류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우주적인 진리의 몸-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은 석가모니 보신부처님의 진불이십니다. 삼천대천세계 모든 보신부처님의 진정한 법신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청정법신 비로자나불께서 대역사大役事를 하시는 특별한 경우 시방의 모든 원만보신불들께서 그 안으로 드십니다. 이것 역시 미증유한 중대 발견입니다.
영산불교 현지궁 현지사, 이곳에는 불과를 증한 두 분 큰스님께서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대적광전 그리고 다보탑을 건립, 점안하시어 곧 세상에 선보일 것입니다. 다만 이 나라의 국운융창과 인류의 복리를 위함입니다.
무엇보다도 영산 당시 가섭·아난이 이 땅에 와서 불과를 이루고 정법을 펴고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립니다. 부처님께서 상주하시고, 수많은 불 보살님께서 현신하시는 성지 중 성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성중이 수호하는 현지사, 말세 중생들의 복전이 되고 석가모니불 칭명염불을 권장하고 있는 정법도량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2권중 서문에서 발췌
붓다의 설법을 듣는 불가사의한 공덕
여기 와서 불과를 이룬 붓다의 설법을 듣는 공덕은 큽니다. 삼생을 두고 지은 공덕보다 큽니다. 그것은 대승경전상에 나와 있는 부처님의 설법 장면처럼 자재통왕불의 법문이기 때문입니다.
법왕자이지만 자재 만현은 아직 어리기에 오늘 이 설법에 와주신 우리 교주 불 세존과 더불어 다보불 등 오여래 큰 부처님, 문수·보현·관음·지장........... 수많은 부처님......... 특히 삼계의 법왕이신 석가모니부처님께서 깨끗하고 청정한 부처님의 광명을 놓으시어 청법 대중의 업장을 씻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각기 선근 따라 어떤 불자는 1겁, 10겁 등 겁 단위의 업장도 떨어져 나갑니다.
무량광이란 깨끗하고 청정한 부처님 광명을 말합니다. 두 눈썹 사이에서, 두 발바닥 법륜무늬에서, 온 몸에서 방사하는 억종광億種光, 열반광涅盤光, 백종오색광百種五色光입니다.
≪화엄경≫ 등 대승경전에서는 이를 티끌 수 같은 광명, 아승기 나유타 광명, 백천억 묘한 빛 광명…… 으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이는 안팎이 없이 드러나는 아름답고 영롱한 빛입니다. 한없이 방광해도 끝이 없습니다.
중생들의 앞에 있어도 그들이 볼 수 없는 희유한 빛입니다. 그리고 밝기는 섬광 이상입니다. 중생이 보게 된다면 가루가 돼 버릴 부사의한 부처님 광명입니다.
자성‧진여의 광명부터는 태양빛과 달라서 밝고 어두움, 멀고 가까움, 땅 속, 물 속, 사람들의 마음 속까지 비추는 것입니다. 특히 무량광부처님광명은 부처님의 우주적인 힘이 뒷받침되는 지혜의 빛입니다. 삼천대천세계 어디라도 비출 수 있고 천마, 외도 수장 모두를 조복할 수도 있고 중생의 업장을 씻고 소멸할 수도 있습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2권중 발췌
펴낸곳/현지사-영산불교사상연구소
사바세계 유일한 성지_영산불교 현지궁 현지사
≪유마경≫에 보면,
“유마힐 거사의 조그마한 방에 높이가 8만 4천 유순이나 되는 사자좌 3만2천 개를 들여놓았으나 그 방은 비좁지 아니하고, 불가사의한 해탈에 머무는 불 보살들은 높고 넓은 수미산을 겨자씨 속에 넣더라도 겨자씨는 커지거나 좁지 아니하고……, 큰 바닷물을 털구멍 속에 넣더라도 털구멍이 커지거나 좁지도 아니하다.” 라는 법문이 있습니다.
이 경의 말씀은 옳습니다. 공부 잘해 큰 삼매력으로 해탈‧대열반을 얻은 붓다는 자기의 몸을 온 세계에 꽉 차게 할 수도 있고, 겨자씨 안으로도 들 수 있으나 그 붓다의 마음은 조금도 동요가 없이 고요합니다.
이곳 현지궁 현지사 큰 법당 불단 벽 안쪽에는 무아 속 절대계에 계시는 여러 붓다님들께서 여기 남섬부주 경험상대세계 한국 땅 춘천 현지궁에 현신‧상주하시는 궁宮이 있습니다. 그 안에는 명경지수와도 같이 청정하고 깨끗한 물이 3탕으로 흐릅니다. 새벽에 올리는 남섬부주의 제자의 공양을 드시고 천녀들이 가져온 차 공양을 드십니다.
우리 교주 불 세존께서는 모든 불 보살님들로부터 보고를 받고 하루 일과를 지시하십니다. 부처님들 회의시간은 거의 2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사람들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산세 수려하고 강물 흐르는 명소에 자리한 절을 성지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곳 현지사는 보명여래부처님오여래 중 한 분, 법보를 관장께서 자리 잡아주셨고 삼팔선 이북에 있습니다. 땅의 지순한 기氣와 부처님 세계에서 쏟아지는 빛무량광 기둥이 맞닿는 세계에서 유일한 성지 중의 성지입니다. 이런 곳이라야 붓다가 출세합니다.
붓다는 그 싱그럽고 청정한 기를 섭취해야 합니다. 그리고 진신사리가 아닌 붓다의 원만보신이 거의 상주하다시피 하는 그러한 최상의 성지인 것입니다.
인도 영축취산에는 영산궁이 있습니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남섬부주 교주이십니다. 그래서 그 영축산 영산궁에서 수많은 상품보살을 교화해오고 계십니다.
이번에 여기 한국 땅 현지사에 두 분 제자가 불과를 증하게 되어 이곳에 오셔서 상주하고 계십니다. 부처님붓다이 계시는 곳이기에 궁이라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완전한 복덕을 구족하셨으므로 곧 다이아몬드, 노다지 광입니다.
이 궁에는 지금 두 분의 갓 불과를 이루신 광명 만덕 큰스님과 자재 만현 큰스님, 밑으로 극락세계 보살로 상품의 무량尼 스님과 27품으로 인가받은 혜명尼 스님이 있고, 금년 초에 인가 받은 무루 대아라한 상운尼, 선혜尼, 정수尼 스님과 영산 등 10여 명의 성중 인가를 받은 수좌를 비롯하여 50여 명의 염불행자들이 지혜와 복덕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현지궁 현지사는 외도의 눈길을 피할 수 있는 특수 유리관으로 둘러쳐져 있습니다. 이곳에선 바깥 세상과 하늘세계 모두가 보이지만 외도 하늘의 천마들에게나 마왕천에서는 여기가 보이질 않습니다. 영산궁과 현지궁의 실상은 붓다의 천안이 열리지 아니한 분은 볼 수 없습니다.
이 부처님 성지는 1,000여 명에서 10,000여 명의 성중이 도량을 항상 수호하고 있습니다. 사천왕이 출입문에서 입초立哨를 서기 때문에 어떤 마귀, 악귀, 영가鬼神들도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2권
펴낸곳/현지사-영산불교사상연구소
영산불교 현지궁 현지사
영산불교 현지궁에서는 사람들 모두가 금생에 더 잘 살고, 다음 생도 잘 살며 죽어서 지옥, 축생 등 악도에 떨어지지 않으며 윤회생사에서 벗어나고 나아가 정토보살이 되고, 붓다가 되도록 이끌어 교화합니다.
이곳 현지궁 현지사는 절대계 부처님 나라의 기운과 지기地氣가 맞닿는 사바세계에서 유일한 성지입니다. 불과를 증득할 대성자가 날 터전이라는 것입니다.
과연 2600여 년 전 영산 당시 부처님의 상수제자 대가섭과 아난이 이 땅에 와서 불과를 증하고 정법을 펴나가고 있습니다. 삼계의 왕 남섬부주 교주이신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상주하시고, 약사부처님, 문수보살, 관음보살, 지장보살, 준제보살……이 상주, 현신하십니다.
매일 아침 네시 반경 많은 불 보살님들이 이곳에서 공양을 드십니다. 부처님 이래 처음 있는 희유한 일입니다. 어느 누가 이 경천동지할 사실을 꿈엔들 이해하겠습니까? 그러나 필자는 이 책 처음도 중간도 마지막도 진실만을 말하고 있음을 강조해 둡니다.
절대계에 불과를 이룬 부처님들이 여여히 계심을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서 설파한 바 있습니다. 이는 역사상 처음 있는 파천황적 선언인 것입니다.
불과를 이룬 모든 부처님들은 진리의 몸을 상적광 절대계에 두십니다. 이 몸을 법신불이라 합니다. 무형이라고 말할 수 있으면서 우주적인 빛덩이 몸입니다. 분별을 떠난 지혜의 몸입니다.
동시에 무아 속 절대계에 부처님들은 각기 32상의 유형의 몸을 두십니다. 보신불이라고 하는 지복의 불신입니다. 보신불은 상모 거룩하시고 빛의 빛인 무량억종광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법신불이 육체적인 형태를 띠고 있는 것입니다.
신神은 천千의 머리를 지녔다 합니다. 그러나 보신불이라는 불신佛身은 필요하다면 백이고 천이고 억이나 되는 자기의 화신불을 나툽니다. 그래서 항하사의 신통 묘용으로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불연국토佛緣國土 인연 중생을 교화하십니다. 이는 백천삼매를 넘어선 대적정삼매라고 하는 삼매의 힘으로 되는 것입니다. 보신불은 지혜와 자비 그리고 공덕을 구족하고 있습니다.
부처님들은 인간 사바세계에 응화신으로 오시기도 합니다. 사람 몸을 받아 시들어가는 정법을 일으켜 바른 불교를 선설宣設하시고, 많은 제자를 양성하며 삼악도의 중생을 건지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고, 반열반에 들어 그 심의식心意識은 자기 보신불과 하나로 흡수 계합하시는 것입니다.
인간, 만물, 하늘, 땅 등 이 우주가 생성되고 진화하다가 소멸되는 것은 자연의 섭리 때문입니다. 힘과 자연의 법칙입니다. 다시 불교적으로 말하자면 인과의 법칙, 소위 카르마Karma의 법칙입니다. 인과와 인연의 도리인 것입니다.
이 우주의 이법을 노자는 도道라고 했고, 공자는 천天, 힌두교에서는 범梵, 기독교 등 일신교에서는 창조주 하느님여호와, 알라, 불교에서는 공, 마음이라 합니다. 그런데 이 법은 어디까지나 비인격적입니다. 이것을 인격으로 하여우상화하다 보면 수백 수천 가지의 모순이 생깁니다. 법을 왜곡하게 됩니다. 이 이법, 공, 마음을 기독교 등에서는 영원불멸하고 우주에 편만한 스스로 있는 자존자, I AM이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여기서 확실히 해둡니다. 이 우주의 이법은 하느님 이전에, 부처님 나기 이전에 이미 있었던 것입니다. 이 이법은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변괴 될 수도 없는 영원한 것입니다. 우주가 생성되고 소멸되는 것과는 상관없이 시공 이전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시공을 초월해 있습니다. 또한 이것은 생각 이전입니다. 생각이 없습니다. 분별이 없습니다.
따라서 우주를 창조하고 모든 것은 기획하는 그런 뜻 - 의자라는 것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조화와 사랑, 힘, 지혜, 완전, 절대의 기氣입니다. 기氣이면서 이법理法입니다.
一. 믿음이 없는 많은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 부처님의 교법을 믿지 않는 사람들, 이 우주안에는 오직 인연의 이법만이 존재한다는 법설을 무시하고 이를 믿지 않는 이들, 인과의 법칙‧인연의 도리를 무시하고 사는 사람들, 그래서 죽은 뒤 몸뚱이 없는 저 세상, 지옥‧천상천당 나아가 윤회생사를 부인하며 사는 사람들, 귀신도 없고 영혼도 없고, 저 세상은 더더욱 없다고 우기며 인생을 사는 사람들, 과학을 하는 일부 지식인들 - 신앙이 없고 종교가 없는 모든 이들이여!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그러한 삶을 살아가기에 때로는 부처님을 능멸하거나 모독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습니다.
자기만을 믿는다고, 양심대로 살면 된다 하고, 살인殺人은 아니더라도 마구 살생殺生하며 그것이 악인 줄 모르고 사는 이들이 많습니다. 주지 않는 것을 내 것으로 취하는 것이 죄악인 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은 자기가 처해 있는 자리에 따라 가능한 한 남의 재물을, 국가의 재산을 몰래 내 것으로 취하면서 양심의 가책 없이 살아갑니다. 주인 있는 여인과 간음하고 자기 이익이 된다 싶으면 서슴없이 거짓을 말하고 이간질 하고 양설도 악담도 합니다. 남을 시기 질투하고 음해도 하고 증오, 저주도 하며 삽니다.
정법에 대한 진실된 믿음이 없기 때문에 많은 죄악을 범하며, 가끔 경우에 따라 큰 악을 짓기도 합니다. 그러다 인생을 하직합니다. 이 얼마나 불쌍한 자들인 줄 압니까? 길이길이 지옥‧축생‧악도만을 윤회하게 될 지옥종자들인 것입니다.
선인선과 악인악과는 만고의 철칙입니다. 죄를 지으면 과보를 받습니다. 착하게 살면 그 보상이 있습니다. 저 세상은 있습니다. 귀신도 있고, 지옥도 있고 하늘 천국도 있습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2권
펴낸곳/현지사-영산불교사상연구소
위대한 영산불교 법맥 현지궁 현지사
영산불교는 영산 당시 가섭존자와 안난존자가 남섬부주를
찾아 불과를 증하고 영산 당시의 불교로 복원시켜 정법의
맥을 잇고자 영산불교를 창시하였습니다.
영산 당시 가섭존자는 현재 영산불교의 태사부이신 광명
만덕 큰스님이십니다. 이 분은 이미 1998년에 불과를 증하기
위한 모든 관문을 통과하여 불세존으로부터 광명불의 인가를
받았고, 영산 당시의 아난존자는 현재 자재 만현 큰스님으로
계시며, 2000년 불세존으로부터 산해혜자재통왕불의 인가를
받았습니다.
불과를 이룬 두 분의 큰 서원에 따라 불기 2551년 6월 15일에
부처님의 법통을 전수한 영산불교 창교를 선언하였습니다.
영산불교가 영산 당시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 가섭존자와
아난존자의 후신에 의해 부처님의 법통을 잇고 있는 것에 비
해 현재 세계 불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남방불교, 북
방불교, 티베트불교는 부처님의 법통을 잇고 있지 못하고 있
습니다.
한국불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선불교는 그 법맥이
당 송시대의 선사에 의해서 계승된 불교와 도교가 융합된
형태로서 새로운 불교의 한 종파일 뿐입니다.
출처/비교종교학
펴낸곳/현지사-영산불교사상연구소
영산불교 왜 탄생했나?
1. 가섭 아난 영산불교 정법시대를 열다
- 부처님 없는 불교에서 부처님 실존중심 불교로
1. 영산불교 왜 탄생했나?
'부처님 없는 불교'에서 '부처님 실존중심 불교'로 교리
수행체계 혁신적 재정립해야
지금의 세계 불교가 과연 2600여 년 전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어왔을
진리를 통달한 어느 대수행자가 이 질문에 '아니로'라고 대답하는데 1초의
도 걸리지 않았다면 너무나 슬픈 일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대답은
사실이다. 부처님 이후 '제2의 부처'라고까지 일컬어지던 용수를 비롯하여 수많
은 선지식, 큰스님들이 거쳐 갔는데 도대체 무엇이 잘 못 되었을까?
아직 생존해 계신 분 중에서도 소위 2대 생불이라고까지 추앙받는 티베트 불
교의 달라이라마도 있고, 플럼 빌리지(Plum village)를 설립한 베트남 출신의 틱
낫한 스님도 있는데 현재의 세계 불교가 무슨 문제가 있단 말인가? 지금 세계
불교계만 해도 수많은 종단과 종파들이 있는데 거기에 또 왜 영산불교라는 새
로운 종단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이유는 분명하다. '불교의 교주이신 부처님이 빠져버려 부처님의 우주적 구원
력을 잃어버린 불교, 인간의 실체인 영혼체가 빠져버린 실체없는 생사관으로 인
생 문제에 해답을 주지 못하는 불교, 자력중심 명상수행에 매달려 완전한 생사
해탈을 이루는 수행법이 없는 불교'를 이대로 둘 수 없기 때문이다.
첫째, 지금의 세계 불교는 부처님 없는 껍데기 불교가 되어버렸다.
부처님께서는 무아속 절대계에 빛의 인격체로 여여히 계신다. 모든 붓다님들
도 다 계신다. 그러나 현재의 불교계는 이 사실을 모른 채, 2550여 년 전 대열
반에 드신 육신부처님만을 믿고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부처님을 믿고
있는 것이다. 영원히 멸도하지 않으시고 눈 뜨고 생생히 살아계신 진짜 부처님
(보신)을 두고 말이다. 핵심 주인공이 빠져버린 불교다.
또한 '견성 - 아라한 - 보살 - 붓다'의 법위에 대한 무지로 견성 또는 아라한을
붓다와 동등하게 보아 불교를 왜소화 시키고 부처님을 격하시켜 버렸다.
둘째, 현재 불교는 영혼체가 빠져버린 실체없는 생사관으로 인생 문제를 풀어줄 실
천적 생사관 하나 제대로 내놓지 못하는 반쪽자리 불교가 되어버렸다.
현재의 불교계는 인간의 실체인 영혼체를 정확히 모를 뿐만 아니라 그 존재조
차 부정하기까지 한다. 지옥세계 극락세계 등 사후세계의 존재와 실상에 대한
확신도 없다. 불교의 목표는 생사해탈인데 생사해탈의 주인공인 영혼체를 모르
고 부청하면서 도대체 누구를 생사해탈 시키겠다는 것인가? 인생 문제에 대한
해답을 갖고 중생들의 등불 역할을 해야 할 불교가 인생 문제를 풀어줄 생사관
하나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런 실정이니 어떻게 똑바로 중생을 교화하고 수행을 지도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중생에 대한 불교의 직무유기다.
셋째, 지금의 자력중심 좌선명상 관법 위주의 수행으로는 완전한 생사해탈을 이루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되는 큰 수행 성과를 낼 수 없다.
언제부처인가 불교는 자력에만 의존하여 수행한다는 잘못된 개념이 사실인양
받아들여지고 있다. 자력수행은 불교 수행의 토대가 되지만, 완전한 생사해탈을
이루는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되기 위해서는 부처님의 가피를 불러오는 타력수행
문으로 들어와야 한다.
이제 불교의 수행 패러다임도 염불중심으로 혁신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삼천
대천세계 모든 붓다님들, 보살님들도 모두 염불로 붓다 되고 보살이 되었다.
불보(佛寶)의 자리에 부처님이 안 보이고, 법보(法寶)는 무지와 왜곡에 가려져
있고, 승보(僧寶)는 중생의 등불 역할을 제대로 해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
불교의 실상이다. 주인공과 핵심 알맹이가 모두 빠진 이름만 남은 지금의 불교,
반쪽자리도 못되는 지금의 불교를 더 이상 방치할 수는 없다. 그래서 영산 당시
가섭존자와 아난존자가 이 땅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붓다 이루고 부처님의 가르
침을 복원하고자 새로운 영산불교 정법교단을 창단하게 된 것이다.
지금 현지사 두 분 큰스님 외에 살아계신 세계의 어느 큰스님도 불과를 이룬
분이 없음을 선언한다. 돌아가신 분 중에는 사리불존자와 수보리존자 외엔 어느
누구도 붓다 되신 분이 없음을 아울러 밝힌다. 붓다의 화신으로 왔다 가신 분은
인도의 유마힐 거사 아쇼카왕, 중국의 구마라즙 삼장, 한국의 이차돈 성사, 일
본의 성덕태자가 있다. 이는 살아 있는 붓다의 신분으로 하는 선언이며, 이 선
언에 대하여는 분명한 책임을 진다.
영산불교는 이제 부처님을 중심에 두고 불교의 모든 교리와 수행체계의 큰 틀
을 다시 정림해 나가고자 한다.
불교의 우주적 위대성을 상징하는 불신관은 종래의 이론적 추상적 삼신불신
관에서 경험적 실존적 삼신불신관으로 재정립 되어야 한다.
불교의 뿌리가 되는 믿음관은 열반하신 육신부처님에 대한 믿음에서 살아계신
빛의 인격체인 보신부처님의 존재와 위신력에 대한 믿음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불교의 존재 이유가 되는 생사관은 현재의 인간 실체가 빠져버린 주체없는 생
사관에서 영혼체 중심의 실천적 윤회해탈생사관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불교의 실천행의 근간이 되는 수행관은 기존의 자력중심의 좌선명상 관법수
행에서 자력기반 타력중심의 칭명염불수행으로 과감히 전환되어야 한다.
불자들이 희구하는 구원관은 세속적 기복중심의 구원관에서 생사해탈이라는
수행목표중심의 실질적인 생전 사후구원관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러한 토대 위에 영산불교에서는 부처님 이후 260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실
천적 관점에서 지구촌 인류의 본질적 문제인 생사관의 문제를 다루었다. 우주
진리를 통달한 붓다의 혜안과 통찰력으로, 생생한 경험으로 인간의 실체와 사후
세계의 실상을 명확히 밝혀놓았다. 이를 토대로 인생의진정한 목표는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진리의 생사관을 정립하고 실천 방법도 분명하게
제시하였다. 지금까지 어는 누구도 인간의 실체와 사람이 죽어서 가는 사후세계
의 실상을 정확히 몰랐다. 그래서 우리 인류가 죽어서 가게 되는 엄청난 고통의
세계에 대하여는 아무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이 죽으면 대부분 혼절
할 정도의 가혹한 형벌이 가해지는 중지옥에 떨어져 겁 단위의 무량 세월을 고
통으로 보내야 하고, 다시 수십 수백 생 동안 돼지에서 시작하여 개에 이르기까
지 열두 띠를 돌며 축생의 몸으로 살아가야 하는 참담한 실상을 모르고 있다.
이미 돌아가신 부모 조상님과 가까운 친지들이 영혼체의 몸으로 받고 있을 가
혹한 고통의 실상에 대해서도 당연히 아무도 모른다. 물론 이 부분은 종교의 몫
이다. 그러나 지금 세계의 어는 종교도 이 문제에 대하여 정확한 실상을 알고
있지 못하며, 당연히 해결책은 꿈도 못 꾸는 실정이다. 불교조차 부처님의 정법
을 이어오지 못해 당연히 해야 할 이 역할을 못하고 있다. 그래서 부처님의 법
맥을 이어받은 영산불교가 우주 진리를 통달한 살아있는 붓다의 이름으로 이
인류적 차원의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하고 아울러 처방도 제시하는 것이다.
오로지 오로지 진리의 이름으로 말이다.
출처/우주적 진리의 신불교
영산불교의 법세계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1권,2권 축약판)
영산 당시 가섭 아난 금생에 한국에서 붓다 되다
2600여 년 전 영산 당시 가섭존자 광명 만덕 큰스님은 1954년 한국의 충북
보은에서 여인의 몸으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줄곧 불세존과 문수 보현 관
음 지장보살님의 보살핌을 받아왔다.
그런 가운데 홀로 용맹정진해 오던 중 1997년 불세존으로부터 허공에서 화두
게송을 받고 9일 만에 답송을 하기도 했다. 그 후 무량광의 관문을 통과하여
부처님을 친견하고 줄곧 지도를 받아왔다.
1998년에는 붓다로서의 모든 관문을 통과해 <<법화경>>의 수기대로 불
세존으로부터 불호 '광명불'로 붓다 인가를 받았다. 같은 해 보현보살님의 주선으로
서울(암사동)에서 아난존자를 만났다. 광명불은 불세존의 법의 태자로서 오여래급이
며 좌우보처는 명상불과 화광불이다.
영산당시 아난존자 자재 만현 큰스님은 1937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났다. 20
대 초에 출가하여 화두참구의 참선수행을 통해 10여 년 만에 공성을 증득했다.
<<화엄경>>의 선재동자처럼 여러 선지식을 두루 찾아 구법을 하기도 했다.
그 후 <<법화경>> 등의 경전을 통해 삼신불의 더 높은 세계가 있음을 확신하
면서 자력수행의 한계를 절감한 큰스님은 과감하게 염불행자로 방향을 전환했
다. 30여 년 간 사력을 다해 수행한 결과 깊고 깊은 염불삼매 속에서 부처님을
친결하고 가르침을 받아왔다.
드디어 2000년에 <<법화경>>의 수기 내용대로 불세존으로 부터 불호 '산해혜자
재통왕불'로 붓다 인가를 받았다. 좌우보처는 <<법화경>>에 나오는 상행보살과
정행보살이다.
출처/우주적 진리의 신불교
영산불교의 법세계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1권,2권 축약판)
부처님의 법통 전수와 영산불교 창립 선포
불기 2551년 음력 6월 15일 --- 이 날은 세계 불교역사에 새로운 한 페이지를
장식한 날이다. 영산불교 현지사 부산포교원에서 부처님 법통을 이어받은 법의
태자 광명불께서 가사와 전법통증서를 문수보살 법왕자 자재통왕불께 물려주고
영산불교의 창립을 선포한 기념비적인 날이다. <<아함경>>에는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분소의를 물려주는 장면이 나오고, 부처님 대열반 후 가섭존자와 아난존자
의 대화에서도 가섭존자 스스로가 불세존의 법의 아들, 법의 상속자임을 밝히고
있다. 가섭존자는 이제 붓다로서 공식적인 불세존의 법의 태자, 법의 상속자가
되었고 영산불교의 창단과 함께 법통을 아난 자재통왕불에게 물려준 것이다.
<전법통증서傳法統證書>
나, 불세존의 태자
영산 당시 법통태자 가섭 광명 만덕은
부처님의 뜻에 따라
오늘 영산불교 교단의 개창을 선포한다.
이와 동시에 문수보살의 법왕자 아난 자재 만현에게
나의 법통을 잇는 바이다
이의 증표로
그 동안 광명 만덕이 수했던
33쪽 가사를 전하노라
불기 2551년 정해년 음력 6월 15일, 광명 만덕
이 기회에 부처님의 법맥에 대해 한가지 밝혀야 할 사실이 있다. 선불교는
영산 당시 부처님께서 세 곳에서 제자 가섭에게 마음을 전했다는 삼처전심
을 근거로 자기들 멋대로 선불교의 법맥을 가섭존자에게까지 끌어올리는 무
지 무례를 범하고 있다. 이는 선불교가 불교의 정통성을 가진 적자임을 주장하
려는 억지일 뿐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선불교는 영산 당시 정통 불교와는 아무런 관력이 없다. 달
마대사도 마찬가지다. 그 법맥의 부당성을 지적할 가치조차 없다. 현지사의 가
섭광명불, 아난 자재통왕불께서 바로 살아계시는 중인이시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한가? 더 이상 성스러운 부처님의 법맥을 갖고 죄를 짓지 않기를 바랄 뿐
이다.
출처/우주적 진리의 신불교
영산불교의 법세계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1권,2권 축약판)
우주적 진리의 신불교-영산불교의 법세계를 말한다!
우주적 진리의 신불교, 불교나 힌두교는 자기들의 종교를 대양(大洋)에 비유합니다. 대양(大洋,큰 바다), 혹은 종대, 큰 산맥에 비유한다고요. 그런데 우주적이라고 해버리면 대양을 초월함은 물론, 산맥 같은 것 보다 위에 있습니다. 우주적이니까요. 그래서 우리 영산불교는 우주적이라는 말을 씁니다. 우주적! 이 말은 굉장한 의미가 있습니다. ‘영산불교는 우주적 진리이다’그거예요. ‘부처님의 실존과 윤회의 주체인 영혼체를 인정해라’그거예요. 지금까지의 불교는 부처님이 계신 것도 모르고, 부처님이 계신다고 하더라도 어떠한 어른인가를 모르고 지내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잘 압니다.
부처님은 어떤 어른이냐?
▸지혜와-부처님의 지혜는 여러분들이 상상할 수 없는 지혜입니다. 그런 지혜를 구족하고 계시고,
▸그 다음, 복덕을 구족하고 계십니다.
부처님의 세계에 대해서, 부처님에 대해서 너무도 잘 아는 영산불교에서는 이 불교계에, 아니 이 종교계에다가 이걸 강의한다고 생각하십시오. 지금까지의 불교는《화엄경》이나《법화경》을 앞뒤로 꿰어도 부처님의 위신력 복덕 지혜 등등에 대해서 우리 영산불교와 같이 피부에 깊이 와 닿게끔 설명을 할 수도 없고, 자기들도 모릅니다. 전혀 모릅니다. 그런 줄 아십시오. 우리 부처님은 지혜와 복덕을 갖추고 계십니다. 복덕, 스님이 어느 법회 때인가 또는 책에서인가 말을 했나요?
이 지구를, 아니 우주를 다 살만한 복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그렇습니다. 불과(佛果)를 증함에 있어서 그 과정이 있습니다. 이 우주를 다 살만한 복덕(복력)을 받아옵니다(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연 깊은 불자들이 복을 달라고 불공(佛供)을 하지 않습니까? 간절히 복을 달라고 기구(祈求)합니다. 그러면 봐서, ‘저놈이 참 착하구나. 착하게 살았구나’하면 복을 주는 거예요. 복을 주기는 주는데, 이 만큼 줄 것인가, 요만큼 줄 것인가, 산덩이만큼 많은 복을 줄 것인가 하는 것을 지혜로 판단해야 됩니다. 불과(佛果)를 증하게 되면 저 절대계에서 그 공부를 합니다. 무한한 지혜를 쓰는 법을 말입니다.
어제 우리 광명 만덕님이 볼일이 있어서 부산을 다녀오셨어요. 그런데 비가 너무도 많이 쏟아졌습니다. 불과(佛果)를 증한 분이 외출하시면 어쩐다고요? 외출하실 때에는 많은 성중이 앞뒤로 옹호 한다고 했지요? 그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오실 때 비가 너무도 많이 오니까 “이거 큰일났다. 관세음보살!”하니까 당신의 광명불이 쭈~욱 내려왔답니다. 그 광명불은 좌우보처가 누구입니까? 무현․모현 두 분의 붓다이지요?
이 응신(화신), 이 몸뚱이가 나갈 때에는 항상 그 좌우보처가 외호합니다. 그러니까 광명불이 처~억 오시고, 그분을 옹호하는 수많은 성중이 오시고, 극락세계 최상품이신 정명보살이 오시고(정명보살은 신통이 굉장히 큼), 또 많은 보살들이 위호해가지고 촤~악 내려오셨다 그거예요. 광명불인 광명 화신, 당신의 몸뚱이가 여기(승용차 뒷좌석) 앉았었고, 앞에 앉아서 가는 우리 두 제자 분들, 이름을 밝힐 까? '혜명'하고 '보광'입니다. 정토보살 인가를 받았잖아요. 그리고 운전은 나의 시자인 신행이 했습니다. '신행'알지요?
이 두 정토보살을 천도재할 때 부처님께서 닦아주시는 것 이상으로 영적으로 깨끗하게 안팎을 대청소(정화)하는 작업을 끝내주시고, '신행'에게는 큰스님을 모시는데 너무도 더럽다 해가지고 유리알 같이 깨끗이 소제를 해주시더라 그거예요. 이제 그 절대계에 있는 자기 붓다가 내려와 가지고 하시는 말씀, “자기는 아직 공부하고 있다”그거라. 자재통왕불하고 거기서 공부하고 있는데, 어떤 공부를 하고 있느냐 했더니, 방금 스님이 이야기한 지혜, 지혜도 다 갖추었고, 복덕도 다 갖추었는데 이 사람(중생)들에게 마구 줘버리면 안 되거든요.
자비 자체이니까 마구 주고 싶지. 그렇지만 그것은 이법(理法)에 어긋난다 그거요. 그래서 저 불공(佛供)을 한 사람이 무서운 큰 병을 얻었다? ‘병을 낫게 해 주시옵소서’ 하는 발원으로 해서 불공을 하고 있다 하면, 저 사람을 자비심으로는 다 낫게 해 주고 싶지만, ‘저 중생이 왜(무슨 이유로) 저런 병을 얻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된다(봐야 된다) 그거예요. 그래서 불안(佛眼)으로 저 중생이 전생 전생...전생에 무슨 업을 지었는가를 봐야 된답니다. 여러분, 그런 거예요.
그 다음, 하!~ 저 사람이 전생 전생...전생에 무슨 업을 짓고, 무슨 죄를 지어가지고 지금 저 병을 얻어서 앓고 있는데, 내가 자비심으로 그냥 갈 수가 없어. 그러니까 내가 어느 정도 저 사람을 치료해 주어야 될 것인가 하는 것을 판단해야 된다 그거예요. 보니까 그것이 다 지혜예요. 그래서 30%를 낫게 해 준다든지, 70%를 낫게 해 준다든지, 어쨌든 간에 공양 올린 그 선근으로 해서 작업을 하고, 그 병근(病根)을 어느 정도 뿌리 뽑아 주고 간다 그거예요. 그러니까 그 지혜를 어떻게 그때그때 쓸 것인가 하는 공부를 한다 그거예요. 아셨지요?
그런데 우리 신도 분들은 자기가 그 많은 생에 지은 죄업은 생각하지 않고, 무슨 사업이 안 되니까 ‘이 사업이 좀 되어야 되겠습니다’ 해가지고 공양을 올리잖아요. 그러면 또 축원을 잘해주지만, 부처님은 딱 관하신다 그거예요. 이건 영산불교에만 있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지금 전부 읽으면서 강의 해 드리겠지만 다른 절은 화신불이 갑니다. 지금의 절에는 화신불도 절반이 안 됩니다. 본불(本佛)은 안 가십니다. 본불(本佛)은 여기만 계십니다. 왜냐? 불과(佛果)를 이룬 제자들 곁을 철저하게 떠나지 않아요. 여러분, 그것을 아셔야 되어요. 불과(佛果)를 이룰 분이 이 세상에 올 때 저 원만보신불이 한 번 오셔요. 그때만 오셔요. 그러면 다른 절에서는 스님이 이야기했지만, 다른 절의 주지가 이렇게 말할 거예요. ‘현지사에만 부처가 있나, 부처 안 계신 곳이 있나’라고 말한다고 했지요. 그런 거예요.
그러나 여기서도(현대불교신문) 내가 대답을 했지만, 그것은 법신불 이야기입니다. 눈도 코도 입도 몸뚱이도 없는, 생각이 없는, 형상이 없는 법신불 이야기예요. 그 법신불이 절에만 있나? 절 아닌 곳에도 있어. 교회에도 있어. 물속에도 있고. 그러니까 그건 말이 아닌 것이어. 법신불이 뭐고, 보신불이 뭐고, 응화신불이 뭐고 하는 것을 전혀 모르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저 들은 풍월이어요. 아셨지요? 앞에서 사업도 이야기하고, 천도재도 몇 번 하고, 불공도 했는데 내 병이 낫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이 있어요. 우리가 다 해줍니다만, 서너 번 다섯 번 여섯 번해도 안 되는 사람들은 불평을 한다고요.
자기 자신에게 책임이 있는데 불평을 한다고. 그런 사람들은 많은 전생에 복 받지 못할 짓, 지금 현재 고통 받을 짓을 했어. 아주 나쁜 짓을 했어. 그러니까 그것은 부처님도 어찌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렇지만 우리 영산불교, 부처님회상에다가 큰 선근공덕을 심어라 그거예요. 다 해줘버리니까. 그건 처음에 스님이 말했을 거예요. 도저히 손 못 대는 병(病)이 있잖습니까. 우리 영산불교에서 손 안 대는 병이 있습니다. 그러한 병을 얻었다 하더라도 부처님 교단이 지금 일어설 때에 크게 선근공덕을 지어라 그거예요. 그러면 못해줄 것이 없으니까. 현대불교에 실린 인터뷰기사를 읽어 드리겠습니다.
불세존의 본불(보신불)인 노사나불과 여러 붓다님들이 상주하신다는 성지, 특히 영산당시의 가섭존자 광명 만덕 큰스님과 아난존자 자재 만현 큰스님께서 정법을 펼치고 계신다는 영산불교 현지사(顯智寺). 깊은 산속 명당자리도 아니고 화려한 시가지도 아닌 춘천시 교외 북단, 화천군과 경계를 이루는 38선 이북, 금강산에서 발원하여 통일의 꿈을 품고 흘러오다 잠시 머무는 북한강 춘천댐 상류에 자리 잡고 있다.
(이거 기자가 썼는데, 보니까 좀 어폐가 있네요. ‘명당자리도 아닌’이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중생, 풍수지리를 하는 지관의 눈에는 명당자리가 아니라고 보이겠지만, 불과(佛果)를 이룰 정도의 눈뜬 성자의 눈에는 ‘아! 사바세계에서 오직 유일하구나’하는 것을 알아버려요. 왜냐? 여러분들이 아시는지 모르겠네요.
우리 현지사 삼불보전 쪽에 그 부처님세계에서 통줄기로 내려오는 한 아름 이상이나 되는 무량광 줄기가 있습니다. 또한 땅에서 솟구치는 지기(地氣)가 나가는데 청정한 지기가 나갑니다. 이것이 딱 맞닿아져 있어요. 그것은 세계에 유일한 우리 현지사 밖에 없어요. 그 기(氣)가. 부처님 세계의 기가 쏟아지는 곳은 현지사 밖에 없어요. 더러더러 극락세계의 기나 하늘의 기가 쏟아지는 곳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처님세계의 기가 쏟아져 내려오고 있다. 또 플러스 마이너스처럼 밑에서 청정한 기가 솟구치고 있다. 이것이 반경으로 쫘~악 퍼져가지고 그 빛이 2만평을 다 카바(cover)합니다. 알았습니까? 그것은 지관의 눈에는 안 보이는 일입니다. 물론 지관들이 지적하겠지요. 현지사 뒤쪽으로 산봉우리가 두 개 터~억 있잖아요. 그러니까 어머니의 두 유방이다 그거예요. 그것을 어린애들이 젖에 의지하는 것처럼 비구 비구니들이 그것을 의지하면서 빨아먹고 살고 있다 그거예요. 그리고 또 앞에는 강이 유유히 흐르잖아요. 강이 있어야 됩니다.
강이 없는 데는 아닙니다. 물이 있어야 됩니다. 또 오른쪽에는 노적봉이 있어요. 그래가지고 여기의 재물이 안 빠져나가요. 저축하고 재물이 안 빠져 나가. 그리고 사람들이 볼 수 없는 불․보살, 많은 부처님들(열여섯 일곱 분의 보신 부처님들, 본불님들)이 와계시고, 많은 보살님들이 항상 왔다 갔다 하시고, 수많은 성중들이 쫘~악 깔려서 외도의 무리라든지 나쁜 마귀들이 들어오는가 싶어서 딱 진을 치고 외호하고 있어요. 그리고 여러분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유리관으로 궁(宮)이 되어가지고 2만평을 카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외도 하늘도 보고 다 그러지만, 거기서는(외도 쪽에서는) 안 보이게끔 하는 유리관이어요.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궁(宮)이라고 하는 거예요. 부처님이 계시니까 '궁(宮)' 그럽니다. 이 사바세계에는 궁(宮)이 두 개 있어요. 저기 인도 영축산의 '영산궁'과 여기 현지사의 '현지궁'입니다. 그 영산궁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영산궁에도 가셨다가 여기에도 계시다가 그래요. 우리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주로 여기에 계셔요. 그리고 또 절대계(상적광세계)에도 당신 궁(宮)이 있어요. 모든 부처님들은 다 궁(宮)이 있어요.
우리 석가모니부처님과 가장 가까운 두 부처님이 '문수․보현'이잖아요. 석가모니부처님 궁(宮)옆에 문수궁 보현궁이 있어요. 그런데 아드님이 더 가깝기 때문에 아드님 궁이 생겼잖아요. '광명궁'이 있어요. 또 거기서도 시자를 했던 아난은 또 가깝기 때문에 거기서 1㎞도 안 떨어져 있어요. '아난궁'이 있어요. 여러분, 그걸 아십시오. 이건 밀장입니다. 스님이 처음 이야기를 해드렸습니다. 어쨌든 현지사는 명당이 아니라 명당이라고 할 수 없는, 이 우리 현지사는 참 희귀한 장소예요.)
현지사는 부처님께서 직접 지어 주신 이름으로 부처님의 지혜가 오롯이 드러나는 절이라는 의미이다. 영산불교는 부처님 당시 여러 제자들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던 수많은 불자들이 인연 따라 다시모여 교단을 이루고, 인도 영산당시 부처님의 가르침을 원래의 모습 그대로 복원하여 다시 펼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어느 정도 써 놨습니다) 불교 수행자로서 최고의 경지에 이르신 두 분 큰스님을 찾아뵙고, 불교 교리에 있어 끊임없이 제기되는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들어보고, 영산불교에서 제시하는 해답을 통해 이 시대 불교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출처/2010.9.1.수(음7.23) 큰스님 대전 법문 중 발췌
현지사 터를 잡은 이야기
현지궁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천마(天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처님이 계시는 곳을 궁(宮)이라고 합니다. 중국 당나라 이전 수나라 때 당시 최고의 큰스님이 있었잖아요. 천태종을 크게 일으킨 천태지의(天台智, 538~597). 그분은 법화(法華)학승인데, 지금까지 그분을 능가할 분은 없습니다. 그분이 법화삼매에 들어서 보니까 영축산에 부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법문하시는 장면을 봤어요. 그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고 하는데, 영산회상이 아직도 흩어지지 않고 있단 말이에요. 그 한 장면을 슬쩍 본 거예요.
그래서 나중에 그것이 영산정토라는 말이 있어요. 영산정토. 영산궁은 사실이어요. 우리 부처님께서는 사바세계 교주이시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영산궁에 계셔요. 절대계에도 계시지. 삼계지존이시니까. 무아속 상적광세계, 거기에도 궁(宮)이 있어요. 우리 부처님과 가장 가까운 붓다들이 문수․보현이죠. 그리고 태자 광명이 있고, 문수법왕자인 자재가 있잖아요.
그 절대계에 모두 다 궁(宮)이 있어요. 그러면서 여기 영산궁에도 있어요. 우리 부처님께서 영산궁에 와계십니다. 그런데 오늘 밀장이어서 조금만 해석 해 줄게요. 여러분한테 조금 말씀해드리겠습니다. 오늘 법문은 굉장히 중요한 법문입니다. 그 영산궁에는 부처님께서 계시고, 많은 붓다들이 계시고, 많은 보살님들이 계셔요. 그런데 이 세상 사람들은 영축산을 뒤지고 찾아도 못 찾아요.
과학자들뿐만 아니라 최고의 선지식이라고 하는 분도 100년이 아니라 아무리 찾아도 못 찾게 되어있어요. 못 찾지요. 현지사에 현지궁이 있습니다. 아직은 자세히 말 안했지만, 조금 이야기했지요. 못 찾지요. 찾을 수가 없지.《화엄경》에 이런 말이 있지요.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한 개 티끌 가운데 시방세계가 싸여있고)”이라는 말이 있어요. “일중일체다중일(一中一切多中一, 하나 가운데 모든 것이 있고 많은 가운데 하나뿐이며), 일중다 다중일(一中多 多中一)”의 도리가 있어요.《유마힐경(維摩詰經)》을 봐도 그것이 나와요. 조그마한 방에 수만(數萬)의 붓다님들이 의자를 갖다가 앉아계셔도 그 방이 좁지도 않고 넓지도 않고 한다는 것, 그것을 사사무애(事事無碍)의 도리라고 해요.
좀 어려운 이야기예요. 영산불교 영산궁이 그렇게 있습니다. 있는데, 두 제자를 불과(佛果)이루어서 데려가시기 위해 현지궁에 와계시잖아요. 그래서 현지사에다가 현지궁을 만들어 놓은 거예요. 현지궁의 실체를 좀 알려 주려고 하는데, 이게 밀장이기 때문에 오늘 조금만 이야기 합니다. 우리 제자 누가 조금 알아가지고 써놨더구먼. 이 밀장부분은 여러분들한테 전부를 공개 못하는 것입니다. 어느 벽이 있어요. 이 조그마한 벽 사이에 서울시보다도 더 넓고, 사바세계보다도 더 넓은 세계를(부처님나라를) 창조해 놨어요. 알았습니까?
그래서 열다섯 사부님들이 거기에 계셔요. 여러분! 그 부처님들께서 어디에 계시는지 아무리 찾아보라고. 모르잖아요. 그런데 그 궁(宮)은 그렇게 넓고, 기가 막히게 절경이고, 강이 흐르고 하는데도 여러분들은 모르잖아요. 거기에서 식사도 해요. 식사하는 곳이 있어요. 그러면 하늘에서 천녀들이 내려와서 시중을 들고, 차를 갖다 바치고, 삼천대천세계 우리 부처님께서 결재해야할 것들이 산적히 들어와요. 여러분, 이렇게 쉽게 말해주면 이해하시겠지요. 그래서 현지궁, 궁(宮)을 쓴 거예요.
우리가 10년 전에 그 자리를 잡은 이야기는 어느 제자가 또 슬쩍 써놓았기 때문에 이야기를 하지 않고, 거기에 얽힌 불가사의한 이야기를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11세기, 지금으로부터 1000년 전, 티베트의 붓다의 화신이라는 전설적인 고행의 성자 '밀라레빠'를 아시지요. '밀라레빠십만송'이라는 두꺼운 책이 나와 있어요. 여러분 한번 보십시오. 잘못 기록된 것이 많습니다만, 한번쯤 읽어 봄직 합니다. 이 '밀라레빠'는 붓다의 후신이 아니고 상품보살이어요.
이걸 말하면 티베트 사람들은 화가 날거예요. 그 '밀라레빠'가 우리한테 두 번 와서 친견을 하고 갔어요. 200년 안팎엔가 또 한 번 왔어요. 그때도 수행을 잘 했어요. 어쨌든 그 정도로 아십시오. 이 '밀라레빠'가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과 함께 수행을 하는데, 제자들이 많이 나오면 수행처가 부족하잖아요. 여기저기 수행처를 잡는데 가끔 그 수행처를 자기의 집으로 삼고 사는 신들이 있어요.
그런데 이 '밀라레빠 십만송'은 잘 못해 놨더구먼요. 요괴들인데, 많은 요괴들이 삽니다. 요괴는 이매망량신들이어요. 그래서 여자로(요녀로) 둔갑을 잘해. 자기의 집에 와서 공부하고 있으니까 그 동굴 같은 것을 뺏기지 않으려고 해요. 안 그럽니까? 나타나서 아주 훼방을 부리는 거예요. 훼방을 부려요. 웬만한 신통이 없으면 당해요(죽어요). 신통으로 죽여요. '밀라레빠'는 대단한 분이지요. 그러니까 싸워요. 법문을 해주기도 하고. 그래서 조복을 받습니다. 그래서 많은 동굴과 절경이 어우러진 수행처, 수행하기에 적합한 설산 수행처를 빼앗잖아요.
그 중에서 '띠세'설산이라는 곳이 유명하고, 동굴은 '링와'동굴이 유명한데 이건 모두 다 빼앗은 거예요. '밀라레빠 십만송'을 보면 그런 것들이 나와요. 그런데 이걸 꾸민 이야기로 알지요. 읽은 사람들은 모두 그러겠지요. 그래서 오늘 현지궁 이야기를 하면서 현지사 터를 잡았을 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불보살로 잘 변술(화현)도 하고, 어떨 때에는 구렁이로, 사자로, 여자로, 노인으로 애기로도 금방 변화해버리는 변화술에 능한 하늘 마(天魔), 외도의 집단이 거기서 터를 잡고 수 백 년을 있었어요. 여러분, 그것들이 우리한테 양보해 주려고 합니까?
처음에는 설득해도 듣지 않아요. 이 귀가 막혀가지고 안 들어. 안 들어가. 그러니까 저들의 괴수, 반드시 그 집단은 괴수가 있습니다. 대장이 있는 거예요. 괴수가 저들의 집단을 이끌고 우리한테 도전을 한 거예요. 도전을 하는데, 거기는 높은 하늘 외도마(外道魔, 天魔)라서 무서운 신통이 있어요. 전쟁을 하는데 어떻게 오느냐? 독침을 날려요. 화살에다가 독을 발라서 쏘는 것처럼 독침을 마구 신통으로 쏜다고요. 맞아버리면 죽는 거예요.
그 영체가 죽어버린다고요. 무수히 날아온다고요. 그러니까 여러분, 어떻게 하겠습니까? 저들보다도 더 무서운 위신력이 없으면 당해버리는 거예요. 당해버려요. 거기는 붓다가 나올 곳이어요. 우리가 서울에 있었을 때 부처님께서 자꾸 “여기는 우리 광명불이 기를 다하고(붓다가 되었으니까), 자재를 위해서 그곳으로 옮겨 가거라”해가지고 꼭 거기를 가게 되어 있었어요. 가야만 돼. 그래서 이제 거기를 차지했는데 도전해 오더라고. 더 무섭게 도전을 하는 것은 독 가루입니다. 독 가루를 뿌려버린다고요. 이 독 가루가 태풍이 몰아치듯 한 속력과 속도로 온다고요. 이걸 어떻게 막아내느냐?
막아내지 못하면 죽는 거예요. 이걸 전부 막아내어요. 무량광으로 이루어진 영체는 그걸 막아냅니다. 못 옵니다. 그리고 이 영체가 장풍도 있습니다. 장풍을 확~놓아서 독 가루가 오는 것을 막아낸다고요. 저들이 이제 해도 해도 안 되니까 하늘 신(자기의 도반들), 말하자면 자기의 신들(천마들)을 부른다고. 이제 일개 군단이 된다고.
그러면서 2차 도전을 해온다고요. 그걸 우리는 응전을 않고 응전을 했어요. 응전을 하지 않고 장풍으로만 하다가. 저것들이 아무리 해도 안 되거든. 그때 곧 우리 광명불님께서 오셔서 광명불 영체하고 합해가지고 불로 포위를 한 거예요. 불기둥으로 포위를 시켜버린 거예요. 순식간에 해버립니다.
그래가지고 조여 들어와. 그런데 그 온도를 백도 천도 만도 억도까지 높이면서 조였어. 저것들이 이제 타 죽게 생겼거든. 여러분, 불이 났다고 생각해보세요. 사면에서 불이 막 좁혀 들어 올 때 어떻게 됩니까? 이제 죽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는 그 영체가 견딜 수 없는 온도로 높여서 좁혀 들어갔다고. 그러니까 전부 살려달라고 비는 거예요. 그래서 조복을 받고, 그들이 지니고 있는 못 된 신통을 전부 거둬버린 거예요. 부처님은 그 능력이 있어요. 그들이 갖고 있는 최고의 일급무기는 빼앗아 버린 거예요. 빼앗아버렸어. 그래도 우리가 미안하잖아요.
인연이 다 되어서 우리가 왔는데 미안하니까 전라도 어디로 터를 잡아서 보내준 거예요. 아시겠지요. 오늘 처음 스님이 성지(聖地)를 빼앗은 이야기를 해드립니다. 이것을 읽고 이제 '밀라레빠 십만송'을 읽어보라고. 그러면 다른 학승들이나 큰스님들은 ‘이것은 뭐 이야기이고, 말도 아니고, 이건 뭐...’그런다고. 여러분은 이제 실제로 ‘아하! 이렇게 해서 빼앗아 버렸구나’라고 이해하실 겁니다. 그 설산 3,000미터 5,000미터 고봉의 동굴 산을 많이 빼앗았어요.
부처님 말씀이올시다. 잘 들으세요.
“이 세상에는 많은 종교와 가지가지의 가르침이 있다. 그 종교의 성인(聖人)이 되는 팔정도 법이 있는지를 보라. 만약 팔정도 법이 없다면 그 가르침은 아무리 열심히 실천수행을 해도 아라한 성자가 절대 나올 수 없다.” 알았지요. 이 정법팔정도, 그래서 우리는 '팔정도칭명염불'이라고 합니다. ‘사성제 팔정도를 통해서 수행하지 않는 종교나 종파는 전부 성인이 나올 수 없다.’ 맞습니다.
그 위대하신 우리 부처님께서는 항상 역설 하시는 것이 효(孝)입니다. 부모님께 효도해라. 돌아가셨으면, 붓다회상 이때, 이 부처님께서 계실 때 천도를 해라. 그래야 천도가 된다. 네 번만 해라. 하늘로 보내 줄 것이다. 천도를 해라. 그래서 지금 많이 하고 있는데, 이 천도재가 돈이 비싸다느니, 뭐뭐 어떻다느니 해가지고 말들이 많지만, 비용은 다른 절과 같습니다. 값은 다른 절과 같습니다. 10년 전에도 그렇게 했습니다. 선근이 있는 자들만 오라고 했더니, 계속하고 있어요. 이 효를 굉장히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효를 하는 사람은 안 되는 사람이 없어요. 무슨 일이든지 잘 되는 거예요. 효를 하는 사람은 하늘이 도와주니까요. 효는 불보살님도 도와줘요.
출처/2010.10.15.금(음9.8) 큰스님 대전 법문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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