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18일 토요일

마장과 신통/정법과 사이비, 정법과 사교집단, 정법과 사마외도

정법과 사이비, 정법과 사교집단, 정법과 사마외도,



이것을 분간할 줄 알아야 됩니다.


지난 시간에 박수, 무당, 점쟁이에 대한 실체를 규명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한 차원 높여서 사교집단(邪敎集團)에 대한 실체를 규명하겠습니다. 지금 이 사바세계, 우리가 사는 이 지구상을 보면 많은 종교집단들이 있습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교집단이 있습니다. 그들은 각기 자기네가 최고라고 합니다. 교주는 내가 최고라고 합니다. 세속을 살아가는 우리 남성들이 자기 집에 가면 자기 마누라, 자식새끼들 앞에서 자기가 똑똑하고 최고인 것처럼 과시 하지요.



그와 같이 교주들도 그럽니다. 이것을 객관적 입장에서 볼 수 있어야 됩니다. 많은 사교집단, 조금 분석해 들어가면 무속종교·신흥종교·민족종교... 아마 그 집단들은 수천, 수만을 헤아릴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거기에 빠지면 안 됩니다. 오늘은 그 기준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정법과 사이비, 정법과 사교집단, 정법과 사마외도, 이것을 분간할 줄 알아야 됩니다. 모든 종교 교주들은 자기의 견해(지견)를 가지고 있고, 그것이 기준이 되어 있어요. 아주 주관적이어요. 그래가지고 분별하니까 이것은 아닌 거요.



주관을 떠나서 객관에서 보자 그거요. 미국에만 해도 현재 5,000여개의 사교집단(邪敎集團)이 있습니다. 왜 그렇게 많은 사마외도가 생기는가. 여러분, 이 원인을 알아야 됩니다. 원인은 이렇습니다. 

이들의 상당수 교주들은 천마(天魔, 하늘 마)에 빙의 되어있고, 거의 대부분은 용신·사신·이매망량신·축생 내지 인간의 무주고혼들이 빙의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다소간의 신통은 있습니다. 예언을 한다든지, 병을 낫게 한다든지 하는 다소간의 신통이 옵니다.



그러나 천마, 용신, 이매망량 등이 빙의 되어 있기 때문에 대단히 불쌍한 존재이지요. 용신, 사신, 이매망량은 축생의 무주고혼들입니다. 우리 신도분들은 많이 알 것입니다. 그러나 천마(天魔)는 하늘사람입니다. 

외도 중에서도 아주 고약한 사마외도(邪魔外道)입니다. 하늘 마(魔)가 붙은 교주들은 신통도 더 있고, 거기다가 학식이 보태지고 나름대로 수행을 했으면 겉보기에는 대단합니다. 

그러나 내실을 들여다보면 대단히 불쌍한 존재이지요. 빙의된 천마는 대단히 떼기 어렵습니다. 어쨌든 그 사특하고 탁한 기 때문에, 그것들이 내 몸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박수·무당·점쟁이 등이 앓는 아주 고통스러운 무병(巫病) 비슷한 증상이 옵니다.

다른 인격체가 들어오니까 그렇습니다. 그 사악(邪惡)한 기 때문에 사이비집단(사교집단, 사마외도)의 교주들 절대다수가 음계를 지니고 있을 수 없습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 여자를 보면 음욕을 참을 수가 없어. 

그들은 음계를 중요시 하지 않습니다. 우리 정법에서는 음계가 생명입니다. 우선 그 스님이 옳으냐, 아니냐는 음계를 봐야 됩니다. 겉으로야 똑같은 스님이니까 모르죠. 내면으로 들어가서 이면(裏面)을 봐라. 만약에 도인이라 하면서 신통도 대단하다.


그러나 신통을 한다? 거기서부터 이제 우리는 살펴봐야 됩니다. 진짜 정사(正士, 보살)는 신통을 부리지 않습니다. 안 부립니다. 신통은 귀신(무주고혼을 귀신이라고 함), 천마, 용신(대단한 신통을 가지고 있음), 하늘 신(해신·미륵신등은 큰 신통을 가지고 있음)등이 부리는 거요. 그래서 몰래 들어가 이면(裏面)의 생활을 살펴봐라. 계행이 반듯하면 90%는 맞다. 

90%는‘아! 건전 하구나’라고 판단해도 좋다. 그런데 용신이 들어와 있거나 하면 상당한 신통을 부릴 수 있어서 여러분들의 안목을 흐리게 합니다. 신통을 부리면 사람들은 대단한 도인으로 알지요. 용신, 사신, 이매망량신이 들어와서 신통을 부리거나 교주 노릇을 하게 되면 거의가 음탕(淫蕩)합니다.

자기 신도들과 혼음(混淫)을 합니다. 이것이 특색입니다. 처신이 도덕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부모 조상님께 효를 하시오, 나라를 사랑하시오, 스승을 공경하시오, 불쌍한 이웃을 사랑하시오, 보살행을 하시오 하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주 간교(奸巧)한 교주들은 배웠기 때문에, 이것이 가르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겉으로나 법상에 나와서는 합니다. 하지만 이면(裏面)에서는 아니다 그거요. 그래서 사마외도들은 과보가 어떻게 오느냐? 100%가 중지옥, 무간지옥을 갑니다.

사마외도를 따르는 무리(신도)들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갈 확률이 많습니다. 이중인격이고 위선자인 그 사마외도에게서 무슨 교훈을, 무슨 배울 점이 있겠습니까? 여러분, 잘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한마디로 말할 수 있습니다.‘사마외도(邪魔外道)들은 악도로 간다.’정확합니다. 그러나 그런 교주 중에서도 착하게 살려고 하고, 자기의 비리(비행)를 대단히 통절하게 참회도 하고, 신도들에게 간절히 착하게 살아라고 권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하늘을 가되 외도하늘(외도천)로 갑니다. 

사람으로 올 때에는 지은 복이 많으니까 복 받은 현재로 보면, 복 많은 땅인 미국 같은 곳으로 사람 몸을 받아서 옵니다. 아니면 아프리카 같은 아주 가난하고 정말로 저주받은 땅에 태어납니다. 이것을 여러분한테 말씀드립니다.

사마외도(邪魔外道)를 취급하다가 보니까 격을 높입니다. 세계의 종교, 종교학자들이 인정할 수 있는 열손가락을 꼽을 수 있는 대종교가 있습니다. 역사가 깊고, 신도 수가 많고, 철학이 대단히 깊은 종교들을 스님이 열 개정도 꼽습니다.

기독교, 이슬람교(마호메트교, 회교), 유대교, 그것들에게 사상적으로 큰 영향을 준 조로아스터교(Zoroaster敎,아베스타(Avesta)를 경전으로 하며, 선신(善神) 아후라 마즈다와 악신(惡神) 아리만과의 대립 투쟁의 이원론으로 일체를 설명하는 종교. 기원전 6세기 무렵 페르시아의 예언자 조로아스터가 창시하였으며, 근검(勤儉) 역행(力行)의 노력에 의하여 악신을 극복하고 선신이 승리한다는 믿음을 근간으로 하며, 선신의 상징인 해·불·별 따위를 숭배한다.

배화교, 요교라고도 한다), 인도 쪽으로 와서 힌두교, 자이나교, 이슬람교와 힌두교의 장점만을 따 놓은 시크-교(Sikh-敎, 인도의 펀자브 지방을 중심으로 일어난 힌두교의 한 파. 

15세기 말경에 나나크(Nanak)가 시작한 것으로, 힌두교의 개혁을 꾀하고 우상 숭배와 카스트 제도를 부정하며 창조신에 대하여 열광적으로 숭배하는데, 19세기 중엽 두 차례에 걸쳐 영국에 대항한 시크 전쟁을 일으켰다.), 불교, 중국으로 와서 유교, 도교입니다. 

그런데 어떤 종교는 수천의 종파를 거느리고 있기도 하고, 중동지방에서 발상한 그 큰 종교, 서구종교인 어떤 종교는 지금의 통계로 2만5천여개의 종파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특색이 있습니다. 유일한 창조주를 믿습니다.

‘이 세상만사 모든 것은 창조주의 섭리 속에서 창조주의 섭리에 의해서 굴러간다. 사람의 운명도 모두 창조주가 미리 예정해 놓은 것이다. 일월성신(日月星辰), 우주,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만든 것이다. 유일한(오직 하나뿐인) 하나님이 혼자서 엿새 동안에 만들어 놓은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나는 이 시간에 이 종교들에 대해서 하나하나 정법차원에서 논파(論破)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다른 종교를 헐뜯는 것이 되기 때문에 여러분한테 이것을 말씀드리기가 대단히 조심스럽습니다. 다만, 우리 현지사를 따르는 여러 신도 분들한테 한마디로 잘라서 말씀드리자면“분명코 이들은, 유일신·창조신· 창조론을 주장하는 그 종교들은 사마외도들이다”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나 그들의 교리를 보고, 그들 교주의 일대 행적을 볼 때 이런 점은 있습니다. 사랑을 말하고, 사랑의 화신으로서 살다가 죽은 분도 있습니다.‘예수’입니다.‘예수’자신은 대단히 훌륭한 분입니다. 전번에 공자를 이야기 했지만 그만큼 훌륭한 분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단히 변질이 되어버렸습니다. 예수교는 너무너무도 왜곡되고, 불교이상으로 변질·쇠락(衰落)해져 버렸습니다. 사랑은 우주의 진리입니다. 이건 사실입니다. 사랑을 주장하는 것, 그건 아주 대단한 분인 거요. 그러나 진리는 사랑만이 아닙니다. 진리는 사랑이요, 조화요, 힘이요, 능력이요, 만물일체요, 인과법(因果法)입니다. 사랑만이 아니고 진리가 갖추고 있는 이러한 요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사랑을 말합니다. 그 차원에서는 평가합니다. 그러나 그 사랑도 불교의 사랑인 자비만 못합니다. 그들의 사랑을 볼 때 대단히 안타까운 점이 있습니다. 유일신을 믿는 저쪽 사람들, 한두 가지만 지적하겠습니다. 저쪽 사람들은 동물을 어쩌지요? 동물을 살생하지요. 우리 불교는 안 그럽니다. 우리 불교는 동물뿐만 아니라 생명체를 지니고 있는, 움직이는 모든 생명을 존중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다음, 저 사람들은 사탄이라고 합니다. 사탄은 영원히 구원 받을 수 없는 저주의 대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탄은 무엇이냐? 무주고혼(귀신)입니다. 저쪽에서는 귀신들은 구원의 대상이 안 됩니다. 불교에서는 무주고혼을 어떻게 하지요? 철저하고 똑같은 생각을 하지요. 육신이라고 하는 몸만 버렸지, 전생에 또 금생에 지은 업이 지중해서 명부만 못 들어갔지 영원히 무주고혼일 수가 없는 거요.



우리는 무주고혼의 그 장애에 대해서 잘 알지만, 그 무주고혼을 자비로 천도해 주는 거요. 천도를 해 줌으로서 그 무주고혼이 윤회에 들도록 해주는 거요. 윤회에 들도록 해주는데 그 무주고혼이 지은 업이 지중하면 지옥을 간다 그거요. 

그래서 자손 중에서 효심 있는 자가 정말로 보살이라든지, 불과를 증한 분한테 가서 천도재를 의뢰하면 천상(천당)까지도 갈 수 있게끔 올려준다 그거요. 저쪽은 천당이라고 하고, 불교에서는 천상이라고 하지요. 우리 정법불교에서는 모든 중생을 교화해서 구제해 주는 그 선(세계)까지 최선을 다합니다.

그리고 세계적인 종교의 공통점은 착하게 살 것을 권합니다. 죄악을 짓지 말라고 하지요. 이건 공통되므로 평가합니다. 그런데 이 계율이라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것인데, 기독교나 이슬람교에서는 계율(계명)의 첫 번째로‘나 이외의 다른 신을 두지 말라’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다른 신이나 다른 종교의 상징을 우상이라고 규정하여 파괴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스님이 여러분들에게 우상에 대해서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저쪽 사람들은 부처님·탱화·마애불 등을 전부 우상으로 봅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섬기는 유일신 같은 조각물은 우상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요 점안이 잘 된 우리 부처님 앞에서 못 된 짓을 하거나, 목을 치거나 하면 이것은 용서가 안 됩니다. 영원히 용서가 안 됩니다. 이때 이 부처님 상이 우상입니까? 저쪽 사람들은 보다 깊은 영계(靈界)로 들어가서 살펴 볼 줄 모릅니다. 인간의 영혼체도 모릅니다.


육신 밖에 모릅니다. 그래서 창조주가 육신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영혼체 말은 하나도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 현지사에서는 영혼체에 대한 상식이 많습니다. 현재의 우리 불교가 이렇게 까지 되어 버린 것은 부처님에 대한 부분과 영혼체에 대한 부분이 지금까지 쏙 빠져 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확실한 법문을 못 하는 거예요.



다 생활 법문이지요. 저쪽 사마외도의 교주들은 크고 작은 신통이 있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크고 작은 신통을 다 행사했습니다. 그런데 신통이라고 하는 본질을 알고 보면 정말로 버려야 됩니다. 신통을 부리는 사람 앞에 가지도 말아야 됩니다. 왜냐? 크고 작은 신통을 부리는 사람은 반드시 천마가 붙어 있든지, 용신·이매망량신 등의 축생 류가 빙의 되어 있는 거예요.



(용신이라고 하는 것은 굵기가 아름드리이고, 길이가 10미터 이상이나 되는 구렁이의 속에 사람의 영체가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것들이 지금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빙의 되어 있습니다. 

빙의 되어 있을 경우 그 용신을 떼어주는 큰스님이 없으면 영원히 죽어서 구렁이 지옥을 가고, 짐승이 되어도 구렁이가 되고, 사람이 되어도 표적을 해 놓았기 때문에 용신이 들어와 빙의하게 되어 자기권속으로 되어버립니다. 그런 것들이 들어오게 되니 정말 비참하고 저주스럽지요. 이매망량신이라고 하는 것은 명을 다 살지 못하고 죽은 구렁이, 독사, 학, 기린, 여우 등을 말합니다)



그래서 신통을 부리는 거예요. 또 하늘 신도 있어요. 앞에 말씀드린 3하늘 정도의 해신, 미륵신도 있어요. 인비인신도 3하늘이지요. 그런 하늘신도 와있어요. 그것들도 붙을 수 있어요. 

그러면 신통을 한다고요. 인비인 신통이 대단히 어마어마하다고 지난 시간에 이야기 했지요. 그러한 하늘 신들이 붙거나, 축생의 무주고혼들이나 귀신이 빙의 되어서 아는 소리를 해요. 딱 맞게, 틀림없이, 핀센트로 딱 집어내듯이 말하는 것은 귀신의 장난입니다. 전부 그렇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그렇게 말하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혹(惑)하게 됩니다. 그 사람 말이면 끝이야.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어 버립니다. 이게 문제이지요. 따르면 큰일 나지요. 

그 그룹 신들이 그룹으로 따라와 있거든요. 그래서 따르면, 여러분이나 가정, 식구들에게 반드시 빙의할 수 있습니다. 큰일 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예언을 하고, 병을 낫게 해준다고 해도 그것을 가지고 따르지는 마십시오. 그들은 대단히 독선적이고 배타적입니다. 그리고 천년, 삼천년, 수 천 년 전에 죽었어도 그 교주들의 오라, 혹은 영체를 볼 수 있습니다.



진짜 사마외도들의 교주 대부분, 그러니까 무속 사교집단의 대부분은 영체가 거무튀튀합니다. 지옥에 갈 사람들은 영체가 거무튀튀합니다. 그런데 높은 하늘 신(대체로 3하늘 신)이 붙어 있을 수가 있습니다. 주로 보니까 3하늘 신이 많이 와있고, 외도집단의 수장급들이 와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잘 들으십시오. 가령, 어느 때‘예수’같은 사람이 자기의 교세를 확장하기 위해서 사람 몸을 받아 올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그 외도의 총수장급들이 반드시 배후 지도력으로 와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통이며, 말이며, 여러 분야에 걸쳐 대단히 깊은 실력을 갖추지 못하고서는 분간할 수가 없지요. 그 사람들의 오라는 대단히 맑고 밝습니다.



심령학자들도‘햐! 진짜 성자이다.’하면서 휘둘리지요. 그런데 그들 오라의 빛은 억종광이 아닙니다. 보살이나 붓다의 빛은 안팎이 없는 억종광입니다. 지금 그쪽 서적을 보면 빛의 존재라고 합니다. 

그 빛의 존재는 존재이지만, 그 빛이 어떤 빛이냐? 외도의 빛이다 그거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보살, 붓다가 내 뿜는 영체의 색깔하고는 천지차이더란 말입니다. 불·보살 영체의 색깔은 빛덩어리이고 안팎이 없어. 햇속 빛 같으면서 안팎이 없지만, 저것들은 아니더라 그거요. 

저것들도 배광합니다. 배후광이 있습니다. 성자급, 그러니까 큰 외도의 수장급이 사람 몸을 받아와서 그 교리를 펴고 있을 때, 그 사람의 영혼체의 색깔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휘둘리기 십상이지요.



그들의 종교들은 불교와 같이 완벽한 계법이 없습니다. 계율, 불교는 계율이 얼마나 완벽합니까. 삼귀의 계로부터 오계, 십계, 보살계, 그리고 삼취정계(三聚淨戒), 붓다는 삼천위의팔만세행(三千威儀八萬細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많은 계율이 있습니다. 저쪽사람들은 기껏해야 오계입니다. 힌두교, 조로아스터교, 자이나교도 오계이지요. 계율의 서열을 보고, 계율을 보면 압니다. 계율이 불분명하고 엄정하지 않으면‘아! 이것은 아니다’입니다.

계율을 보면 우리 불교는 우주적인 종교이며, 우주 법칙입니다. 첫째가 불살생(不殺生)으로 나갑니다. 사람들이, 귀신들이 가장 존중히 생각하고 위하는 것은 자기의 생명입니다. 

자기의 생명을 빼앗길 것 같으면 있는 힘을 다해서 도망치거나 항거합니다. 자기의 생명이 최고인 거요. 안 그렇습니까. 그래서 이것은 우주의 이법(법칙)이요, 질서인 거요. 죽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첫째로 불살생을 주장한 종교는 대단히 건전한 종교입니다. 이건 사마외도급에 안 들어갑니다. 힌두교, 대단히 좋습니다. 첫째가 불살생입니다.



자이나교도 그렇고요. 그러나 그들은 정토(극락)세계를 모릅니다. 또 붓다(부처님)를 모릅니다. 없다고 합니다. 그들은 절대로 정토를 갈 수 없습니다. 사마외도는 절대로 정토를 못갑니다. 여러분 잘 들으세요. 정토를 가려고 하면 정말로 정업(淨業)만 쌓아야 됩니다. 맑을 정(淨), 정업(淨業)만 쌓아야 되는 거요. 계율 파하면 안 되는 거요. 먹는 것도 요쿠르트, 우유, 꿀도 안 먹어야 되는 거요. 그것은 왜냐? 그 내용물은 짐승한테서 나온 것 아닙니까.



짐승한테서 나온 것은 기(氣)가 달라. 정토(淨土)에 갈 사람들은 정말로 기가 맑아야 돼. 정토에 갈 사람의 영혼체는 대단히 순수하고, 청정하고, 맑고, 빛을 발광해. 외도의 수장급 빛하고는 다릅니다. 그 사람이 정토를 간다? 전번에 우리 현지사에서 정토에 갈 두 분의 수좌가 탄생했습니다. 여기 현지사에서는 부처님께서 인가를 합니다.

부처님께서 인가를 하였더니 정토에 두 세 살쯤 되는 그 사람(정토아기, 어린아이)이 태어납니다. 그래서 정토의 모든 것을 흡입하면서 성장해 가는 거요. 만약에 이 육신의 영체가 정토를 간다? 못 갑니다. 

근래 어느 중국의 어느 법사가 자기가 극락을 갔다 왔다고 써놓은 책을 봤어요. 아닙니다. 열 가지를 들라고 하면 열 가지 모두 다가 아닌 증거를 들 수 있어요. 정토는 구경도 못해요. 업장이 그래가지고는 구경 못해요. 그런 업장 가지고는 절대로 못 들어가는 거요.



성중 정도에 해당하는 아주 깨끗한 영혼체를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극락은 구경도 못해요. 불·보살님이 못 데려 가요. 데려가면 큰일 나요. 영혼체가 크게 손상을 입습니다. 거기와 여기는 차원이 다릅니다. 거기는 시공이 완전히 끊어져 버린 곳이어요. 여기의 이 영혼체가 적응할 수가 없어요. 그와 같은 의미로 4번 영체는 죽어서 명부에 못 들어갑니다. 4번 영체는 이 3차원세계에서만 적응을 했기 때문에 4번 영체는 명부를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4번 영체는 뚝 끊어집니다.



그래서 요놈(4번 영체)만 남은 놈을 유령이라고 했지요. 이 유령은 생명체가 아닙니다. 생명체가 아니기 때문에 1년~3년 있으면 죽어버립니다. 전번 시간에도 이야기 했지만, 사람들의 영혼체가 아무리 깨끗하다고 하더라도 극락을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극락에 갈 사람은 그 극락에 자기(자기 하나, 분신, 화신)가 태어나는(생기는) 거요. 그래가지고 죽으면 1·2·3번 영체가 뭉쳐져 가지고 자기한테로 들어가 버리는 거요. 그래서 극락에서 산다는 것입니다.



그 사마외도의 사람들은 지옥이 있는 줄 모르지요. 지옥을 이야기하지만 그 지옥은 아닙니다. 바이블(성경)을 보세요. 그것이 지옥입니까. 아니어요. 지옥의 종류가 수 천 만을 헤아립니다.《지장보살본원경》에 있는 것 이상입니다. 

그 지옥이 분명히 있는데, 그것을 적시한 세계의 대종교가 어디 있습니까. 힌두교는 좀 봤지요. 천당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슬람교에서 주장하는 천당, 숫처녀들이 많이 놀고 있는데 전부 내 것으로 할 수 있다 그거요. 그런 천당은 없습니다. 6하늘도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물며 삼신을 구족한 부처님 계신다? 그들은 상상을 못합니다.



그래서《법화경》〈여래수량품〉등을 보면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부분이 나오는데, 기독교학자들이 써놓은 것을 보면 이건 신화적이고 아주 신격화 했다고 매도를 해요. 아니어요. 부처님은 그 보다도 더 불가사의하고 어마어마한 능력을 지니고 있어요. 사마외도는 그렇고, 불교에도 여러 종파가 있습니다. 

보면 성중급으로 온 분들이 창종한 종파도 있고, 혹 보살급이 와서 창종한 종파도 있습니다. 이런 종파는 괜찮습니다. 괜찮기는 하지만 중생을 오도할 수 있습니다. 왜냐? 그들은 완벽한 진리를 현증 못했기 때문에 오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있습니다.


어느 종교라고 내가 지적은 않습니다. 그 교주는 극락세계 하품으로 갔습니다. 그분의 종교는 건전합니다. 하지만, 완벽한 종교가 아닙니다. 정말로 중생을 윤회에서 벗어나고 정토로 이끌만한 그런 가르침은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업이 만든 것입니다. 많이 들으셔서 아실 것입니다. 악인악과(惡因惡果), 선인선과(善因善果) 그럽니다. 나쁜 짓하면 벌이 오고, 착한일 하면 상이 옵니다. 이게 우주의 법칙입니다. 악인악과 선인선과, 이 인과의 법칙과 인연의 도리로 세상만사가 굴러갑니다. 이건 여러분들이 많이들은 이야기입니다.





출처/2009. 02. 17. 화(음1.23) 큰스님 부산 법문 中 발췌



무당, 점쟁이


무당, 점쟁이가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원인은 신(神)이 오기 때문에, 귀신이 들어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무고혼의 무당 조상신이 들어오거나, 다른 인연이 있는 무당신이 들어오거나, 용신·사신등이 들어오거나 할 때, 수행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이러한 신이 빙의하면 이제부터 조금씩 몸이 달라집니다. 어떻게 달라지느냐? 무병(巫病)을 앓게 됩니다. 의학상으로 볼 때는 아픈 곳을 찾을 수 없어요.

그러나 사람이 죽도록 두들겨 맞은 것 같이 색신이 녹아나고, 무겁고, 두통이 나고 이상합니다. 전신이 아파서 못 살 정도입니다. 이걸 무병(巫病)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할 수없이 물어보면‘너는 신을 받아야 된다’해서 신을 받잖아요. 그렇지요? 그러면 선생님을 정해가지고 천지일월성신이나, 장군이나, 산신, 용신, 신선, 선녀 등 일단의 신들을 받아 모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끝까지 안 모시는 사람도 있어요.

그러면 죽을 때까지 죽을 지경이요. 이걸 모셔야 안 아픈 거요. 이런 사람들을 무당, 박수, 혹은 점쟁이라고 합니다. 이제 정법에서 보는 거요. 이런 사람들의 인격상 특징은 변덕쟁이가 되어요. 하루에도 열두 번씩 마음이 변해요(변덕을 부려요). 인격이 둘, 셋이 되고 자기 몸속으로 들어오니까 그렇습니다.

욕설, 거짓말, 술, 담배, 고기, 오신채(마늘, 부추 ,파, 달래, 흥거(서역에서 나는 식물))를 잘 먹고, 탐심(욕심)이 많고, 그저 그 사람한테 어떻게든지 말을 교묘하게 해서 돈을 갈취 하려고 합니다. 

눈은 충혈이 되어있고, 기가 전부 사특한 기(氣)이지요. 그리고 특징이 음탕합니다. 저질 귀신 영가나 용신·사신들의 사특한 기 때문에 음탕해요. 아는 소리도 합니다. 그런데 귀신, 하늘 외도신이 도와가지고 찾아 온 문복(門僕)한테 집에 가서 궂을 하고, 기타 의식을 하면 소원이 이루어지기도 해. 그러니까 못 떠나.

세상 사람들은 모르기 때문에 그 무당, 박수, 점쟁이를 가까이 하는 거요. 여기까지 알아야 돼요. 그리고 그 사람들은 자기들이 인간구제 한다고 그래. 그 사람의 길흉(吉凶)을 미리 말해 주어 재앙을 막도록 하고, 오는 재앙을 돌려서 좋은 운을 불러 들여서 만사 대길토록 하니까 인간 구제아니냐 그럽니다. 그들은 현세 중심입니다.

이제 평(評)하겠습니다. 길흉을 말해 주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사주, 관상, 무당, 점집을 가면 모두 길흉을 이야기해요. 절대로 길흉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니어요. 부처님은 이것을 첫 번 째로 못하게 합니다. 

절대 못하게 합니다. 이건 천지 기밀에 속해요. 그래서 우주질서를 교란하는 큰 죄라고 그래요. 사실 그들 중에는 ‘사람이 어떻게 될 것이다’라고 알기는 아는 무당이 있어요. 영험이 대단한 무당은 알아요.

그렇지만 막을 방법은 모릅니다. 이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무당의 영체는 시커멓습니다. 죽으면 분명히 무간지옥을 갑니다. 축생으로 오면 늘매기(독이 없는 구렁이)가 된다고 부처님은 말씀 하십니다. 세세생생 지옥 종자입니다. 이제 신을 받아버리면 대를 잇습니다.

자식, 손자한테 물려준단 말입니다. 계속 대를 잇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절대로 가까이 마십시오. 만일 가까이 한다면 그 무당에 빙의된 그런 류의 그 많은 귀신들이 여러분과 인연이 있으면 여러분한테 또는 여러분의 식구한테 빙의됩니다. 그래서 그 권속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가지 말라는 거예요.

중요한 점이 그것입니다. 모든 것은 인연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그 사람들의 그 전생업과 그것은 대단히 안 좋습니다. 그런데는 가까이 해서는 안 됩니다. 그 사람들은 인과를 모릅니다. 윤회한다는 것도 모릅니다. 더더욱 삼매는 모릅니다. 계율도 없습니다. 업설이라고 하는 진리에서 볼 때, 업이 모든 것을 창조한다고 하는 관점에서 무당을 볼 때 그 직업은 대단히 좋지 않습니다.

죽으면 반드시 지옥을 가고, 축생으로 오면 구렁이가 되고 세세생생 삶의 궤적이 그러합니다. 그러니 그 직업이 좋겠습니까? 여러분, 왜 그런 사람을 가까이 합니까? 절대 가까이 해서는 안 됩니다. 그 무당, 점쟁이는 마땅히 업장을 닦아야 되고, 벗어야 되고, 업을 벗어야 될 것입니다. 그러려면 정법으로 들어와야 됩니다

이제 결론입니다. 선종에서는 깨달음을 목표로 둡니다. 선종(선불교)에서의 모든 수행은 깨달음을 위해서 있습니다. 알고 계시지요. 이제 우리 정법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걸 지지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되느냐?

우리는 윤회생사를 믿어야 됩니다. 지옥도 있고, 극락도 있음을 믿어야 되고, 짐승 되는 것도 믿어야 되고, 부처님이 절대계에 계심을 믿어야 되고, 빛으로 이루어진 부처님의 원만상을 믿어야 되고, 지혜·자비·복덕을 구족한 부처님을 믿어야 되고, 항하사겁을 두고도 다 말할 수 없는 위신력이 있음을 믿어야 되고, 부처님이 되면 삼신을 구족하는 것을 믿어야 되고, 백 천 만억 화신으로 중생을 구원 하심을 일단 믿어야 됩니다.

그래서 죄업을 지어서는 안 됩니다. 죄를 지으면 안 돼. 악인악과니까 나쁜 업을 지으면 반드시 과보가 따르는데 대단히 비참합니다. 앞서 말한 병신, 암, 불구자, 뇌성마비, 삼중고 등 이런 것으로 옵니다. 

죄를 짓지 말고 오계 십선을 행하면서 날 적마다 부처님 회상을 만나서 업장소멸을 받고, 그래서 탐·진 삼독의 뿌리도 뽑고 해서 삼계를 탈출하기를 발원하십시오. 나무 석가모니불을 봉창하고,《금강경》을 읽고, 계율, 효, 보살행, 부처님께 선근공덕을 짓기 바랍니다.

이렇게 살아야 됩니다. 오늘 처음 오신 분, 그리고 다음 시간에 이어 정법에서 본 신통, 도인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오늘 앞부분을 좀 길게 말씀드렸기 때문에 이단(異端), 외도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 부족할 것 같습니다만, 여러분들이 법문 테이프를 구입하셔서 꼭 들어 보십시오. 절대로 그러한 외도, 이단에게 가까이 하지 마십시오. 이익이 없습니다.


출처/2009.02.02.월(음1.8)큰스님 춘천 법문 中 발췌



도인은 무엇이든지 압니까?
과연 신통이라는 것이 있습니까?



문5
도인은 무엇이든지 압니까? 과연 신통이라는 것이 있습니까?



답5
"크게 좋은 일 있어도 좋다 말 못하고, 크게 나쁜 일 있어
도 나쁘다 말 못하는 것, 이것이 붓다의 가르침이니라"
삼매 속에서 직접 말씀해주신 부처님의 법어입니다.

붓다들은 절대로 구체적인 예언을 하시지 않습니다. 따라서 경
전 속에 나오는 숫자는 상징적인 의미일 뿐입니다. 따라서 불
과를 증해 가는, 삼매 공부하는 제자가 만일 어떤 신도의 앞일을
예언해 주면 호된 질책을 받습니다.


생사를 자재하는 생사 문제를 다루는 공부가 불교입니다. 아라
한 되고, 보살 되고, 붓다 되는 것이 불교 공부의 목표입니다.

아는 소리를 하는 것은 귀신이 빙의돼서 그러는 것입니다. 아라
한의 삼명 육통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신통에 대한 법문은 뒤편에
서 자세히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정법을 공부하는 수행인은 마음을 청정히 하고, 업장을 정화해
가는 공부가 우선이요, 핵심입니다. 마음이 청정해지면 빛이 납니
다. 결국에는 빛 자체가 됩니다. 수행이 극점에 이르면 억겁으로
내려오면서 지은 업이 녹습니다. 업장은 흔적 없이 제멸됩니다.

이 경지가 수행인의 목표요, 성불입니다. 그러면 자기 불신을 얻
습니다. 아라한을 견성도인이라 칭해도 무방하지만, 보살, 붓다를
도인이라 하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당대에 붓다 이를 수행 제자의 눈을 가려 아는 소리
못하도록 하십니다. 다만 생사의 해탈, 삼매 공부만을 하도록 하
십니다. 삼매의 힘 아니면 해탈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
는 소리하거나 신통을 행하는 일은, 큰 업을 짓기에 공부인은 이
를 기피해야 할 것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ㅇㅇ불의 화신이라는 분을 만났습니다. 

문7
ㅇㅇ불의 화신이라는 분을 만났습니다. 그 분도
불 보살을 뵙고, 말씀을 나눈다 합니다. 그 분의 말이
진실입니까?


답7
분명히 말합니다. 그 분은 사마 외도라고!
확실한 것은 불신도 얻지 못하고서 ㅇㅇ불의 후신이
라 말하는 이는 지옥 종자라는 사실입니다. 공부 중에 무량광
을 보지 못하고서는 절대로 불 보살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무
량광이라는 빛은 오직 붓다만의 경계입니다. 대보살도 알 수 없습
니다. 무량광은 붓다권으로 들어가는 관문입니다. 이 빛의 광도
와 불가사의한 점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법문한 바 있습니다.

이 사바세계에는 여러 종류의 외도가 있습니다. 변화술에 능한
외도 신, 하늘 마, 마왕 파순이도 불 보살로 나툽니다. 그들
을 불 보살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들 외도들은 부처님의 무량
광이라는 빛을 감히 흉내조차 내지 못합니다. 그 청정하고
안팎이 드러나며 영롱한 무량광을 알지도 못합니다. 산소 용접을
할때 튕겨 나오는 빛을 백천만 개 합쳐도 비교조차 안 되는 그
천문학적인 빛의 광도를, 그 무량광의 빛을 그 외도 신들은 절대
로 방광 방사 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들이 붓다나 보살의 모습으로 잠깐 변화해 보이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이때 빛을 낸다 해도 삼독을 여의지 못해서
탁한 한 가지 색깔만을 낼 뿐이니, 진짜 불 보살이 아님을 곧
판별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분명히 합니다. 붓다의 보신은 무량광으로 이루어
져 있습니다! 대적정삼매를 통과하여 자기의 불신을 얻어야 붓
다입니다. 불 세존 이후로 수보리 사리불 존자 밖에는 불과를
증한 자가 역사상 없습니다. 예수도, 공자도, 노자도 그 누구도
아닙니다. 나의 붓다에 대한 법문이 처음이기에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붓다들과 대화를 나누려면 또 하나의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이 부분은 말씀드릴 수 없으니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공을 깨치기 이전의 불 보살은 환화!

공을 깨치기 이전, 공부 중에 나타나는 불 보살의 모습들은
거짓이라 말했습니다. 이것은 환화입니다. 마음이라고 하는 마
술사요, 요술사의 작품인 환화입니다. 눈병이 만든 허공화입니다.

공을 깨쳐 모든 법뇌와 악습이 정화됐다면 보림을 마쳤다고 합
니다. 여기가 아라한이라고 부처님게서 확인하셨습니다.

여기서 보살정토보살, 보살8지 이상과를 증해서 정토에 왕생하는
데 까지는 마치 군인으로 말하자면 대령급 장교가 별을 따서 장
성으로 진급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워 그런 비유도 어울리지 않을
정도입니다.

아라한보다 훨씬 위가 보살임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해둡니다. 보
살은 영체의 색깔, 곧 오라부터 아라한과 크게 다릅니다. 그
청정하고 맑고 밝음에서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나고, 드는 삼매로
보아도 비교가 안 됩니다. 아라한은 퇴전할 수가 있으나, 보살
은 불퇴전입니다. 윤회에 떨어질 수 없다는 말입니다.

보살은 붓다 되고자 보살행하기 위해 다시 인간에 올 때, 그곳
정토에 자신의 분신붓다는 붓다의 세계에 자기의 본 불신을 두고 화신으로
오는 것이 보살과 차이 난다을 두고 옵니다. 그래서 보살은 불퇴전입니다.
여기까지만 이야기하겠습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천마

천마의 실체도 현지사는 정말 100%로 알아.
천마는 어떤 말을 말하느냐?

하늘에 불교를 싫어하는 하늘신을 천마라고 해.
공이고 아무것도 없는데 무슨 천마를 이야기해.

천마의 실체도 모르면서.
천마가 공부하는 공부인들한테 공부 중에 불보살로 화현을 잘 합니다.
둔갑(遁甲)을 잘 합니다.

선서에 쓰여 있습니다.
그래서 공부 중에 불보살이 나와도 절도 하지 말라 이렇게 나와있죠?
이걸 모르는 것 아니여.
이건 a, b, c여. 천마는 삼매에 들어가기 전에 아라한 삼매에 들어가기 전에 나와.
더 깊은 공부인에게는 나올 수 없어.
더 깊은 데를 몰라. 저 천마들은 몰라. 갈 수가 없어.

하늘이기 때문에, 그래서 부처님이나 보살님으로 둔갑을 하지만 하늘 존재이기 때문에 탐진치가 다 안 뽑혀졌어.

그래서 원만보신의 눈이나 백천만억 화신 부처님의 눈은 자비요 지혜인데 그런 것이 없어. 일체 삿되고 잡된 기가 없어.

그런데 이것들은 탐진치, 업장을 다 녹이지 못했기 때문에 삿된 기와 습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몸에서는 사특한 기, 사악한 눈빛이 나와. 뚫어보면 도망가버려. 이게 천마야.

천마의 실체도 모르고 천마의 섭했다는 등 마경에 빠졌다는 등 두 가지 이유지요.
1년 전에 천마의 실체를 밝혔지만 이거 보고도 모를 거요.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읽어 보려고도 안 하고. 그러면 발전이 없습니다.
그러면 정말 정법을 만날 수 없습니다.

선근공덕이 없으면 그런 사람에게는 희망이 없죠.

출처/법문집2권-2007년4월19일 법문중 발췌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영산불교사상연구소




신통의 과보

다른 사람의 운명을 보고 말해서 천기를 누설하거나, 영통 신
통을 부림으로써 큰스님으로 대접받고자 사이비 도인이 하는 법
문은 법문이 아닙니다. 듣는 이들과 따르는 신도들을 그릇되게 오
도하는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이 아닌 잡설을 법문이라 하여 중생을 크게 그르친
다면 이 사람은 반드시 무서운 지옥에 떨어지고 맙니다. 아무리 하
늘을 날고, 산을 가르거나 물 위를 걸어가는 신통이 있다 해도 생
사문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들은 보살이 아니요, 붓다도 아닙니다. 신통력으로는 아라한
이 될 수 없고, 보살이 될 수도 없습니다. 공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중생을 악도로 인도합니다.

탐심 진심 치심이 없어지고 마음이 백설같이 정화되어서 수
정같이 맑아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팔정도가 제일의 수행덕목
입니다. 청정, 지혜와 자비 그리고 삼매가 중요합니다. 오직 염불
공부만을 권장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신통의 긍정적인 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정법의
하늘 신이나 104위 신중의 도움으로 행하는 '미라래빠' 의 신통 같
은 것은 부정적인 것만도 아닙니다.

중생의 본성이 착하고 기이한 걸 좋아하기에, 정법으로 이끌어
들이는 방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신통은 영격이 갖춰지고
삼독이 다한 연후에 와야 합니다.
그렇지만 정법에서는 기본적으로 신통이란 것을 바람직하게 생
각하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신통을 못하게 하십니다. 영통 신통
의 과보는 무섭습니다. 죽을 때도 결코 곱게 죽지 못합니다. 지옥
으로 떨어지고, 다음 생에서 사람 몸을 받아 난다해도 불구가 됩니
다. 불치의 병을 얻게 됩니다.

바람직한 것은 지혜와 자비
수행이 깊어야 지혜가 완성되고, 깊은 자비에서만이 상대가 귀
의해 옵니다.

지혜와 자비 앞에서 중생들은 감명을 받아 신명을 다해 따라오
게 됩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영산불교사상연구소




성자에겐 빙의가 없다


성자에게는 일체 빙의가 없습니다.
아라한 성자만 되어도 몸에서, 특히 영체에서 보름달 같은 백색
광이 나옵니다. 보살 붓다의 경지에 오른 대성자는 햇빛 아래에
서 다이아몬드가 번쩍이듯 수정같이 맑은 빛 혹은 오색광명의 청
정한 빛을 방광합니다. 이 빛을 대하면, 모든 유類의 귀신이나 외
도의 하늘 신들이 혼비백산하여 도망칩니다.

그 빛을 보면 견딜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삼독을 여의고, 억겁의
습習과 탁한 기가 다한 안팎이 영롱한 빛이기 때문에 마치 두더지가
햇빛을 무서워하듯 달아납니다. 아라한 성자의 신통은 정법 신중
들의 도움으로 옵니다만, 신통의 부정적 측면때문에 부처님께선
일찌기 이를 금하셨습니다. 불자라면 오직 불교의 핵심인 청정,
지혜, 삼매를 지향해 야 할 것입니다.

큰스님에게는 조상의 영가나 명부에 들지 못한 수도인의 영가
든, 외도의 마魔든 빙의란 없습니다. 그런데 현재의 실정은 그렇지
않아 문제인 것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영산불교사상연구소




신통이 벌어지는 이유

우리들이 신기해서 눈을 부릅뜨고 대하는 영통통영이라고도 함
신통은 알고 보면 타기해야할 대상인 것입니다. 영통은 명부에 들
지 못한 여러 귀신영가들이 빙의해서 되는 것이고, 신통은 이매
망량이 빙의되거나 외도인 마魔나 신들의 도움을 받아 벌어지는
것입니다.

하늘 신만 되어도 누진통만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신통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성자 중에서도 보살 붓다의 대성자만은 모든
신통력과 삼매력을 지닙니다. 청정하기에 삼매를 얻어 삼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공부인은 '몸도 청정, 마음
도 청정' 을 지향합니다.
업이 지중하여 나쁜 병을 얻거나 횡사하거나 자살한 사람들은
명부저승에 들지 못합니다. 깊은 산 속이나 동굴에서 공부하는 수
도인들은 이러한 무주고혼들이나 이매망량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틈을 주면 이들 마魔들이 들어옵니다. 착심着心이나 음심이 이
들을 부르는 주범입니다.

인간의 앞날의 길흉을 말하고, 다소 간의 병을 낫게 해주는 영통
은 주로 저급영低級靈이 빙의돼서 생기는 것입니다. 구렁이, 학, 기
린, 거북 등이 수천 년 혹은 수만 년을 살다 죽어 명부에 못 들어가
서 정매精魅, 이매망량이 되어 수행자에게 빙의되면 상당한 기적이
나 신통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하늘 마나 외도의 목신, 외도의 산신, 신선 등의 무주고혼이 되
는 경우 마魔가 되어 혹은 사대四大의 정령이 수행자에게 빙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수행자는 빙의된 줄도 모르고 마음이 갑자기
밝아져 불 보살, 지옥 극락이 보이므로 도道가 터진 줄 압니다.

여기서 불 보살, 지옥 극락은 물론 환화입니다. 또 자기 몸에서
빛을 발하기도 하고, 인간사를 핀센트로 집어내듯 예언하며 온갖
타심통, 숙명통 등 신통력이 생기기 때문에 성과를 얻은 줄 착갈하
여 자기가 위없는 도를 깨쳤다 하고, 여자를 범하면서 법을 설합니
다. 막행막식하면서 말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여러 가지 신통

신통은 인간의 길흉을 말하고, 웬만한 병도 치유할 수 있습니다.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사람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천안통天眼通, 짐승들 혹은 지옥
아귀 천인들의 말을 듣고 보통의 귀로는 들을 수 없는 음성도
들을 수 있는 천이통天耳通,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것을 자재하게
아는 타심통他心通, 나와 다름 사람의 전생의 일들을 아는 숙명통宿
命通, 천리도 더 되는 타국을 순식간에 다녀오고, 땅 속이나 물 속,
공중을 자유롭게 다니고, 자기 몸뚱이를 두 셋이나 열, 스물로 나
누기도 하고 공중을 날기도 하는 신족통神足通, 임으로 번뇌를 끊
는 주진통漏盡通부터 이산도수移山渡水, 호풍환우呼風喚雨와 같은 큰
신통도 있습니다.



수행의 목표는 '생사 해탈'

 
그런데 여러분! 불교의 핵심 가르침은 불안이나 번민, 공포나 고
뇌 등 온갖 고통으로부터의 해탈, 즉 소위 분단생사에서 오는 여러
윤회생사의 괴로움苦에서 벗어남이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우리가 해탈을 성취하려면 자정기의自淨其意해야 합니다. 누진명
漏盡明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 욕심을 놓고 생각을 비우는 공부,
마음을 밝고 청정하게 씻는 일에만 정진하다 보면 해탈이 성취됩
니다.

거룩하신 부처님께 귀의하고, 참회하고, 윤회고에서 벗어날 것
을 발원하면서 청정계율을 지키고, 염불공부에 열중하는 불자가
되어야겟습니다. 이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입니다. 물론, 보살행도
멈추지 말아야겟습니다. 부처님은 우리가 바르게 불법을 믿어서
지혜와 자비를 배워 기어이 성중아라한이 되고, 보살이 되고, 붓다
되는 걸 바라실 뿐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신통은 생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자이나교, 힌두교, 유교, 유태교, 이슬람교 등의 수행법으로도 휼
륭하게 삼매에 들 수 있고, 윤회를 벗어나 초인이나 도인이 됩니
다. 다만 이들은 붓다와 그 법에 귀의하지 않기 때문에 외도에 속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외도 성자들의 신통을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신통은 생
사 문제의 해결에 보탬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신통이나 영통이란 기본적으로 명부에 들지 못한 영가귀신, 이매
망량들 그리고 정령들이 빙의돼서 옵니다. 또 중음 마가 된 산
속의 요정, 목신, 신성 등이 빙의되거나 외도 신, 하늘 마들의 도
움을 받아서도 옵니다. 그러기에 신통은 악도로 떨어질 업을 짓는
것입니다. 전생에 신통이 장한 도인들의 다음 생이 저주받았다

싶을 만큼 불행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나는 종종 불교가 위대하다고 힘주어 말하곤 합니다. 왜 불교가
위대한지 알려드리고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유교나 도교의 성인들 아니 힌두교,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의
초인들이 도달할 수 있는 영적 내면 세계는 생각이 끊어진 의식
이전의 마음 자리까지입니다. 우주의 근원인 법성, 곧 본래 면목
자성 자리까지는 나아갈 수 있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동굴 속에 갇혀 있다가 갑자기 태양 빛이 쏟아
지는 동굴 밖으로 풀려 나왔다고 가정합시다. 오직 강렬한 빛에,
무슨 사념 따위가 끼어 들 수 있겠습니까! 공부 중에 공을 참구
해 들어가는데, 이런 경계가 드러난다면 여기가 바로 마음 자리입
니다. 여기까지는 모든 종교의 수행방식으로도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라마크리슈나나 람티어쓰 같은 이들이 신비 체험을 하고
난 이후의 일성이 "모든 종교가 그 근본에 있어서는 하나"라는
것이었습니다. 우주 의식이 되어, 곧 삼매에 들어 노래한 것입니다.

여기까지 도달한 인도나 중국의 수행인들이 장생불사하는 기법,
인간으로의 환생법, 의식 전의법, 생열법, 분신불, 공중보행술
그리고 축지 둔갑술 등 온갖 신통술을 개발해냈습니다.

그들은 보다 깊은 배후에 우주 속에 변재한 비인격적인 창조
주우주적인 대원리를 파악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극락보살의 세계,
무아 속 붓다의 세계는 몰랐습니다. 아니 알 수 없었을 뿐더러 앞으
로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여기서 나는 말합니다. 무아 속 절대 초월의 세계가 있음을 밝힙
니다. 여기는 오직 불과를 이룬 붓다만이 들어갈 수 있는 세계이며
우리 교주 불 세존께서 최초로 발견하셨습니다.
붓다의 세계로 가는 징검다리가 보살입니다. 보살의 세계요, 청
정이요, 정토극락입니다. 여기서도 백천만리 깊이 들어가면 보살
과도 현격히 차이나는 붓다의 세계가 있습니다. 상적광토법신불의 세계
혹은 연화장세계보신불의 세계라고 합니다. 거기 무아 속 절대세계에
삼신을 구족한 붓다님들이 있습니다. 붓다님들은 각기 창조주의 반
열에 듭니다.

붓다는 빛입니다. 그 빛은 지혜이며 자비요, 신통이며 복덕
이요, 오염되거나 손상될 수도 없습니다. 우주에 뻗쳐있어 변재하
시며 동시에 초월하십니다. 보신으로 현신했을 때의 상모는 단엄하
시어 32상 80종호 이상이요, 광휘 현란합니다.

또한 보신불보신부처님은 지혜와 자비, 신통, 삼매, 복덕을 구족하시
며 백천만억 화신을 내십니다.

오직 불교에서만 보살이 나오고 붓다가 나옵니다. 보살은 자력과
타력, 곧 부처님들의 가피력에 의해서만 탄생합니다.

공부 중에 부처님을 뵙고 이른 아침 동녘에서 또오르는 햇빛같이 강렬한
부처님문수, 보현, 관음, 세지의 광명을 온몸으로 받는다면 그 경지
부터가 보살입니다. 안팎이 드러난 청정 영롱한 청색 지혜광명입니다.

보살지에 오른다면 붓다 되는 일은 보장됩니다. 보살부터는 불퇴
전이기 때문입니다. <<대반열반경>>에서 "대열반광부처님의 광명이 중생
의 털구멍으로 들어가는 자는 반드시 불도를 이루리라"이르신 대목
과, "만약에 부처님불신을 보는 자는 곧 일체 번뇌가 다 끊어지고
부처님 말씀을 듣는 자는 반드시 불도를 이루리라"하신 말씀을 주
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라한 성자는 청정 계율을 선지하면서, 나를 죽이는 공부 그
리고 바라밀 수행을 해 나가야 합니다. 염불선으로 들어가야 합니
다. 부모께 효를 다하고 보살행을 쌓아 가면, 자신의 영체는 아침
동산에 떠오르는 태양처럼 청정해져 갑니다. 모든 번뇌망상이 쉬어
서 뜨달림, 집착, 머묾 없는 경지에 들어 급기야 깊은 삼매에 자유
로이 듭니다. 그러면 보살과를 얻어 서방극락에 왕생합니다.

<<정토삼부경>>을 보면 불설이 아닌 대목이 많습니다. 학자들의
가필 때문으로 보입니다.
대승경전은 불교의 삼법인 사상에 따라 학자들이 삼매에 들어서
구전으로 내려온 부처님 말씀을 의지하여 쓴 작품이라고 합니다.

대승경전은 기원 전 2세기 후반에서 서기 6~7세기에 걸쳐 성립됐
다는 것이 학자들 간의 정설입니다. <<반야경>>은 기원 전 2세기
후반, <<금강경>>은 서기 150~200년, <<법화경>>은 기원 전 1세기
경, <<화엄경>>은 1~2세기 사이에 편집된 것으로 보이나, 지금 우
리가 보는 <<화엄경>>은 서기 4세기경에야 집대성됐다고 합니다.

대승비불설에 대하여는 다음 기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만 이
기회에 학자라는 사람들은 경을 제작할만한 깊은 삼매에 절대로 들
수 없다는 말씀만 해 둡니다.
어쨋든 지금은 중국에서 찬술됐다는 <<정토삼부경>> 중 <<관무량
수경>>의 구품 왕생에 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대목은 십념을 통해 하품하생으로 왕생하면 12대겁을 지
나 비로소 법설을 듣는다 했고, 중품중으로 왕생한 이는 1소겁을
지나 비로소 아라한 도를 이루며, 상품중으로 왕생한 이는 곧 아미
타불께서 관음, 세지 두 보살과 무수한 천인들을 대동하여 수행자
앞에 이르러 접인해 가는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펴낸곳/현지사 영산불교사상연구소





마구니에 대해서


미혹한 구도자들은 책을 통해서 아는 지식으로 큰스님께서
직접 불보살님의 실재를 경험해서 아시는 경지를 비방합
니다. 어찌 이런 통탄할 일이 있는지요? 지식이 중요합니까? 실
증적 경험과 지혜가 더 중요합니까? 그리고 큰스님에 대해서
마구니 우운하는데, 나무니가 억종광으로 발현하면서 크토록 영
험하고 자비롭다면 그게 마구니라고 할 수 있는지요? 상식적으
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영험하고 자비로운 마구니를 본적
이 있는지요?

마주니의 기본 개념과 의미에 대해서 올바로철견해야
할 것입니다. 왜 마구니가 존재하는지 그 존재의 기본 이유에
대해서 확실한 이해가 정립되지 않는 이상 큰스님의 법경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를 온전히 읽을 수 있는 지혜의 눈이
서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구니의 정의와 존재 의의를
모르고서는 큰스님의 글을 일방적으로 마구니의 글로 치부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금강경>>에서 설한 "색신이나 음성으로 나를 구하는
자는 사도를 행하는 것이다."라는 말씀은 그 당시 몸을 입으시
고 세간에 오신 석가모니부처님의 몸과 몸에서 나오는 소리로
서 부처님을 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금강경>>이 쓰여
질 당시 부처님의 몸과 음성을 보고, 저 몸과 음성이 바로 부
처님이구나 라고생각하는 의혹을 지닌 사람들을 경책하기 위
해서 설한 가르침이라고할 수 있습니다.

마구니는 신통력 같은 것에 의해 불보살로 둔갑할 수 있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수행승들이 그것을 보고 마치 진짜
불보살님으로 착각하여 속아넘어간다고 하였습니다. 큰스님께서
친견하시는 붓다님들이 진불이라는 증거는 환영으로서 나타나
는 마구니들이 말을 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마구니에 의한 마장으로서 나타나는 환영과 환상은 엄
연히 불보살의 현시와 차이가 있습니다. 환영이라면 당연히 말
을 할 수 없습니다. 또한 마구니가 둔갑한 경우라면 삼매 속에
들어올 수 없으므로 큰스님께서 삼매 속에서 친견하시는 붓다
님들은 진불이시라는 것입니다. 또한 부처님께서 내신 화신불과
마구니들이 둔갑한 모습은 그 상모면에서 천지 차이가 난다고
하였습니다. 마구니의 변화 모습은 자비스러움이 전혀 없으며
눈에 살기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큰스님의 서적에서도 나오지만 마구니가 형상화하는
부처들은 조잡하기에 이를 데 없습니다. 이러한 조잡한 부처의
형상은 바로 마구니가 환영으로 만들어낸 것을 의미하며 수행
과정 중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마구
니의 환영을 이해하려면 자신의 마음을 잘 관조해보면 됩니다.

자신에게 중생심으로서 오탁에 물들어 있는 마음이 조금이라
도 있다면, 그 중생심에 비추어지는 부처의 상은 가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극한 청정심을 얻게 되면 그 청정심으
로 비춰지는 불보살은 깨끗하고 아름답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탁에 물들은 중생심에는 마구니의 상이 비추어진다면, 깨끗이
정화되어 가는 청정심에는 진실된 불보살의 모습이 화현되어
나타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진실된 불보살의 모습을 친
견하기 위해서는 견성 후 보임을 통해 아라한을 얻고 최소한
보살위를 얻어 상품 보살지에 이르러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
는 제가 큰스님의 책을 일고 말씀드린 것이므로 꼭 큰스님의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를 자세히 읽어보실 것을 권합니다.

또한 마구니 식별은 큰 스승님과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을 통
해서 지혜와 반야의 눈으로 통찰해야 알 수 있는 문제이므로
얼마나 전생에 선근을 구족해 왔느냐에 따라 마구니와 불보살
의 에너지체를 인식하는 능력이 판가름납니다. 만약 누군가가
마구니의 상과 불보살의 화현 간의 구분에 대해 미심쩍어 한다

면 스스로의 모습을 견책해야지 섣부르게 큰스님의 책 내
용을 비방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저의 생각은 큰스님의 가르
침에 의문이 들면 개연성을 갖고 받아들여야지 그것을 비방해
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마구니란 거의 대부분이 마경으로 나타나는데 환상, 망상,
정신질환 그리고 색마등입니다. 이는 실경이 아니라 가경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마경들 중에서 가장 힘든 마경은 색마인데 색마를
끊으면 영원한 자유인에 가까이 도달 하게 된다고 대만 불광사의
성운 대사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 불도
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어려운 불도를 보다
쉽게 지름길로 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신 성전이 바로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입니다.

견성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지 않으면 색마를 제거할 수
없으며 마경을 초월할 수 없게 됩니다. 견성하고자 한다면
간절한 마음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간절함과 절실함은
절박함에서 얻어집니다.

현대 세속사회에서도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모면하는 방
법에 대한 글들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그러한 위기 관리의
핵심에는 마음을 견고하게 다르시는 힘이 자리하고 있다고 생
각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견고한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불제자
들에게는 불도를 간절하게 염원하는 마음이 토대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절박함이 없으면, 즉 위기의 순간이 없을 시에
는 결코 불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간절하고 또
간절하게 원해야 얻을 수 있다고 큰스님께서도 칭명염불을 언
급하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영산불교사상연구소





여러 가지의 장애_마장魔障

자력으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은 다음의 몇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내마內魔가 있습니다.
소위 번뇌마 등입니다. 불안, 초조, 공포라는 한계 상황을 자력으로 극복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사형수가 자기 이름이 불려지면 “면회요!”하고 호출하는 소리에 벌써 기氣가 다 빠져 낙지같이 흐느적거리며 나온다고 합니다. 사형수 같은 입장에 있는 이들의 죽음에 대한 공포, 불안, 초조 - 살길이 막연한데 부채의 독촉에 시달려 하루하루 짓눌리고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고뇌하는 심정, 아무도 몰래 사람을 죽인 자의 미칠 것 같은 죄책감…… 등에서 오는 극복하기 어려운 번뇌마魔를 어찌 자력으로 벗어날 수 있단 말입니까?
14세기에 창궐한 흑사병페스트은 100여 년을 주기로 18세기까지 중세 유럽의 인구를 1/3까지 치사케 한 전율할만한 공포의 전염병이었습니다. 그러한 살인적인 전염병이 창궐한 마을에서 며칠을 지내지 않으면 안 될 처지에 놓였다 가정합시다. 또 6‧25같은 난리가 터져 수많은 소중한 인명이 날마다 죽어 가는 전쟁통에 있다고 가정합시다.

이때의 불안하고 초조한 공포의 한계 상황에서 우리가 설사 화두타파 등을 통해 선정에 들 정도의 수준이 됐다 하더라도 진정한 안심입명安心立命은 어려운 것입니다.

독사 구렁이가 내 방 안으로 들어와 숨었다 합시다. 한밤중입니다. 나에게 접근해 오는 소리가 납니다. 이 경계를 당해 감히 그 뉘라서 초연할 수 있답니까?

안심입병은 자력에 의한 선정의 힘으로는 온전치 못합니다. 보살의 삼매는 한계상황을 극복합니다. 부처님이 이끄시는 삼매력으로 가능해집니다.

둘째, 외마外魔가 있습니다.
1) 고약한 원결 영가들의 빙의 2) 용신, 사신, 이매망량, 정매마精魅魔 3) 천마天魔 등에 의한 빙의는 결코 자력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 어느 도인도 이를 떼지 못할 것입니다. 토굴에서 스승 없이 잘 못 공부하면 용신, 이매망량, 천마가 빙의합니다. 용신, 이매망량, 천마들은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성과를 이루어가는 수행자를 방해합니다. 빙의합니다. 빙의된 이들을 떼지 않고 공부한다면 평생을 정진해도 마경에서 헤어나올 수 없습니다. 이런 것들이 빙의되어 있는 상태의 정신으로는 더 이상 공부할 수 없습니다. 여러 경계로 수행자를 괴롭힙니다. 때로는 묘한 경계를 보여주어 수행자로 하여금 빠져들게 하고, 집착하게 만들어 결국은 정신이 돌아 미치게 됩니다. 또한 죽으면 악도에 떨어집니다.

천마나 귀신주로 사이비 도인의 영가이 빙의돼 있는 무당이나 신기 있는 이들이 가끔 불 보살과 대화를 한다고 자랑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천마나 귀신의 말을 듣고 불 보살과 대화하는 줄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이 점 명심하기 바랍니다.

또 지적할 것이 있습니다. 변화술에 능한 천마하늘마가 공부하는 수도인에게 불 보살의 모습으로 둔갑해서 화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들을 절대계에 계시는 붓다로 보면 안 됩니다.

붓다의 화신에서 볼 수 있는 자비·선정·지혜·지계·인욕의 모습을 천마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붓다의 화신과는 마치 왕과 거지만큼 천지 차이입니다. 그들에겐 무량광은커녕 청정한 빛조차 흉내 내지 못합니다. 그들의 눈엔 욕심과 살기가 있습니다. 해탈한 성자에게서 느낄 수 있는 깨끗하고 청정한 기운을 느낄 수 없습니다. 붓다의 화신은 몸 주변에서 맑고 깨끗한 빛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마의 몸 주위의 빛은 탁할 뿐입니다.

셋째, 다겁생을 살아오면서 지은 크고 작은 악업으로 앞으로 미래세에 받을 과보의 업장 그리고 악惡, 불과를 이룬 성자의 경지에서 소멸된다는 악惡·습기習氣들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이것을 단절·정리해 주지 않는 이상 10생, 100생을 수행한들 영적인 성장을 기약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지적 사항은 이성異性에 대한 강한 욕구, 성욕과 색마色魔입니다. 20~40대까지의 젊은이들은 성적 잠재욕구 때문에 대부분 꿈에 몽정·몽설을 합니다. 특히 출가해서 부처님으로부터 계를 받은 수행자로서 자위행위나 동성연애는 사음죄로 본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이성에 대한 욕망은 큰 번뇌가 되어 성과를 얻기 어려운 결정적 장애가 됩니다. 그러나 천에 한 사람 불법 공부 잘해서 스스로 깊은 선정의 힘을 얻는 이라면 강한 이성에 대한 욕구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수행자에게 불행하게도 색마라는 외마가 붙게 되면 설사 견성한 공부인이라고 하더라도 천 길 나락에 떨어지게 됩니다. 외마는 번뇌마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점 명심해야 합니다.

다행히 부처님 회상을 만나 공부하는 수행자들은 색마도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주기적으로 약사여래부처님께서 수행자의 정수精髓를 뽑아주시기 때문에 정법을 수행하는데 장애가 없게 됩니다. 이 점 역시 타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분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외 여러 가지 진리수행자들의 앞을 가로막는 여러 가지 마장들이 많습니다. 인간의 자력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장애물들이 중첩해 있습니다.

다시 강조해둡니다. 자력수행의 한계는 깨달음까지입니다. 견성까지입니다. 이 정도 선정의 힘으로는 지정한 안심입명도 어렵고, 천마 등 장애를 뗄 수도 없습니다. 또한 색이성에 대한 경계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으며 업장, 악·습기習氣의 소멸은 더욱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과학, 철학사상에 있어서 깊은 경지에 든 분들의 신념의 힘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선정력 보다는 못하다는 것을 밝힙니다.

타력, 부처님의 크신 위신력에 의하여 드는 삼매보살삼매 정도가 돼야 번뇌심, 탐욕심, 중생심 모두가 비로소 녹습니다. 업장까지 녹습니다. 죽을 때 나쁜 병 얻어 똥오줌 누고 죽는 일도 없습니다.

출처 :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Ⅱ≫ 광명 만덕, 자재 만현 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영산불교사상연구소




도고마성道高魔盛

과거 생에 선근이 있는 불자 여러분!
위와 같은 여러 장애들 때문에 구도자 중 자력으로 깨달음을 얻은 이들이 천에 하나, 만에 하나 정도일 뿐입니다. 깨달음도 이렇듯 어려운 데 깨달음 이후의 수행은 더욱 어렵습니다. 그것은 불 보살의 모습으로 나투어서 자기 권속으로 삼으려는 변화술에 능한 천마들의 방해 魔障를 극복해야 하는 어려운 공부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 사람이 깨달음을 얻거나 나아가 아라한 되고, 아라한이 보살 되고, 보살이 붓다 되고자 사바 세상에 몸 받아 올 때 마장은 위계가 높아질수록 필연적으로 무섭게 따라 붙습니다. 도고마성道高魔盛입니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가끔 이 사바세계에 아라한이 나오고, 정토보살이 나옵니다.
큰 스승이 없이 자력으로 성과를 얻은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라한이 될 수행자에겐 때가 되면 성중하늘에서 도반 아라한들이 내려와 외마를 막아주고 공부를 지도해주기 때문입니다.

정법의 길로 끌어주기 우해 그 수행인에게 옵니다. 역시 보살이 나올 수 있는 것은 정토에서 보살들이 보살과를 이룰 시기가 된 수행인에게 와서 도와주고 이끌어주기 때문입니다.

붓다 될 성자는 부처님이 오셔서 지도하십니다. 그 외에 성자와 불 보살의 가피없이 자력으로 성과를 얻는 것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외마를 막아 줄 큰 스승 없이는 공부가 될 수 없습니다.
자력수행으로는 그 힘든 마장을 도저히 이겨낼 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타력을 간과해선 결코 되는 일이 없는 것입니다.

출처 :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Ⅱ≫ 광명 만덕, 자재 만현 저






외마의 종류

마魔 / 종래 불가에서는 3마, 4마, 8마, 10마를 들고 있으나 이것들은 거의
번뇌마 90%, 천마 10%에 비중을 두고 있다. 천태 지의 중국 수나라 때큰스님의
설은 1. 번뇌마 2.음입계마 3.사死마 4.귀신마를 열거하면서, 귀신마에
1.정매귀 2.퇴척귀 3.마라귀만을 말한다.
현지사에서는 마에 대해 1.내마 2.외마로 나누면서 외마에 천태 지의의
귀신마 외에 용신, 사신, 이매망량, 원결 영가 등 그리고 천마를 더하여
말하고 있다. 천마에서도 파순쪽 천마와 여러 외도 하늘 신마의 천변
만화하는 무서운 방해가 있는 것이다

마란 불법 수행자의 지혜, 공덕 쌓는 공부를 결사 방해한다. 자기들의 생존,
이익을 위해서 1.계음계를 파하거나 2.세간적인 욕심으로 공부하거나 3.경계에
잘 집착하는 수행자에게 빙의하여 도저히 공부할 수 없도록 질기게 방해한다.

그리고 윤회생사를 벗어나고자 불법 공부하는 수행자에게 마魔라고 할 수 없지만
공부에 장애되는 업장과 악 습의 기, 과거 생에 맺은 악연, 다겁생의 빚.... 등
법장法障이 있고, 부처님 아니시면 소멸할 수 없는 몸 속의 지네, 독사 등 그리고
그것의 알 새끼들의 업신다겁생을 살아오면서 업으로 지은 이 진리수행자들에게
결정적 장애 요소가 된다는 것을 밝혀둔다.

용신龍神 / 몇 백 년을 산 구렁이가 유체 이탈하는 신통을 얻어 마음대로 둔갑함.
의생신意生神-생각 따라 사람 등으로 몸을 나툼으로 인연 따라 사람의 몸 속으로
들어가 빙의함 신통이 대단함.

이매망량 / 몇 백 년, 몇 천 년을 산 구렁이, 거북, 학, 기린, 여우 등이 비명횡사하는
경우 그 무주고혼들은 동아리 집단을 이루어 다님. 신통이 있고 사람들에게 빙의하여
업을 짓기도 함.
정매마 / 열두 띠의 짐승이 무주고혼이 되어 남녀노소 등 여러 모양으로
나투어 수행자를 괴롭힌다. 각각 그때가 되어서 오는 것이니, 사시에 나타나는
것이면 반드시 뱀이나 구렁이 따위다. 물론 이것은 과거 생의 인연을 따라
괴롭히는 것이다.

천마 / 정법의 수행을 방해하는 마왕 등 그 졸개들과 하늘 외도의 신들.
그들은 변화술에 능하여 불 보살의 모습을 나투어 자기들을 따르는
권속으로 삼으려함.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2권 중 주석에서 발췌



신통

큰스님의 심법이 담긴 성전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에서는 진실된 삼매와 허위로 가장되고 신통에 의해 이루어진
거짓 삼매를 구별할 수 있는 지혜의 눈을 구도자에게 알려줍니
다. 어는 에너지체로 삼매에 드느냐가 중요합니다. 삿된 기운을
통해서 드는 삼매는 성에너지로 자신을 채워 명상 중에 외도
수행을 하는 것에 다르지 않습니다. 진실로 참된 삼매는 <<21
세기 붓다의 메시지>>에서 논급하고 있는 것처럼 무아 속
삼매가 진짜 삼매라고 저 또한 간접 경험으로 어렴풋이나마 알
고 있습니다.

만약 삼매 속에서 성적 카타르시스와 같은 희열을 얻는다면
그것은 가짜 삼매입니다. 진실된 삼매는 모든 것이 담백하고
청정하여 물과 같이 맑고 깨끗해야 합니다. 중생심과 청정심
그 중 어는 에너지체로 수행하느냐가 진실된 삼매와 가짜 삼매
를 구분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226쪽
에서 큰스님은 신통이 벌어지는 이유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
고 계십니다. 큰스님처럼 이렇게 자세하게 신통이 일어나는 경
우에 대해서 논급한 글은 과거에는 구하기 어려웠다는 것을 우
리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20세기 신비주의자이며 깨달은 이인 메허 바바
의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대가 참된 자유를 얻는
것은 기적을 통해서가 아니다. 진정한 자유는 이해를 통해서
온다."고 말입니다. 여기서 기적은 신통으로 바꿀 수 있으며
이해는 바로 깨달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큰스님께서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서 설파한
가르침대로 신통을 잘못 행하면 불구자가 되거나 비참한 최후
를 맞이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점을 불제자와 수행자는
반드시 명각해야 할 것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영산불교사상연구소

2011년 6월 16일 목요일

삼신설 ---- 2

색신의 수행과 공덕으로 불신이 생긴다


보신으로부터 응화신이 생깁니다. 응화신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나투시는 몸입니다. 백천만억화신은 지복의 보신에서 나옵니다. 보신불이 중생 앞에 바로 현신한다면 그 엄청난 광도 때문에 모두 가루가 될 것입니다. 다만 10지에 오른 보살이라면 부처님의 보신원만보신의 몸을 알아볼 수 있다는 중관中觀 논사들의 견해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불지에 올라야 붓다님들의 원만보신의 몸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붓다님들은 육도 중생의 영체가 빛으로 손상되지 않도록 그들의 근기에 맞게 응화신으로 현신하여 교화합니다.

법신·보신이 생길 때는 이 거짓 몸뚱이가 없으면 생길 수 없습니다. 색신의 수행과 공덕으로 인하여 법신, 보신의 불신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응신은 응화신이라고도 하는데 붓다가 중생 구제를 위해 인간으로 탁생한 육화肉化된 몸을 말합니다. 인간 세상으로 나투신 몸입니다. 2600여 년 전 부처님처럼 사바세계에 태어난 몸과 같습니다. 탐진과 업장이 모두 지멸된, 불과를 증한 이가 중생 구제를 하기 위해서 사바세계에 임의로 몸을 받아 옵니다. 주로 왕궁으로 탁생합니다.

여러 하늘세계의 천인 교화는 화신이 나투어 갑니다. 성중들이나 극락세계 보살들에게는 변화신이 갑니다. 변화신은 원만보신께서 두발‧의복…… 등 외형만 그 세계 사람들의 근기에 맞게 변신하여 나투는 몸입니다.

이 삼신설에 대하여 그간 3~4년 동안 설법하면서 종종 자세한 점을 이야기 한 바 있기에 여기서는 간략하게 짚고 가겠습니다.

1. 법신불, 법신과 우주의 진리인 진여의 이치 곧 여여의 이理, 법法을 서로 혼동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시 확인하지만 억겁을 수행하고 보살도를 완성한 이의 여여한 지智가 우주의 본체인 법과 계합할 법신, 법신불이 생긴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일체 중생은 법신으로부터 화생化生한 것으로 보면 안 되고 우주에 주변한 불생불멸의 대생명에서 화생한 것으로 보라는 것입니다.
2. 법신, 보신, 화신은 일체一體이기에 불과를 증한 이가 열반에 들면 자기의 네 영혼체는 곧 자기 불신, 절대계에 있는 자기 보신불 속으로 든다는 것입니다. 평소 중요한 법회 때 자기 보신佛은 이 거짓 몸뚱이에 들어와 계합합니다. 깊은 삼매에서 삼신三身이 하나가 됩니다.

화신으로 어느 나라, 어느 절에 나가 있으면서 10년이고 100년이고 그곳 중생을 접인接引하다가 본불인 자기 불신으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보신에서 백천만억의 자기 화신을 내어 시방十方에 나아가 교화 활동을 하는 실로 불가해한 경지가 붓다의 법위입니다.

3. 기독교의 성부‧성자‧성신의 삼위일체설, 힌두교의 브라흐마‧비슈누‧쉬바의 삼신일체설은 우리 불교의 삼신설과 크게 다릅니다. 불과를 증한 이는 누구나 상적광세계에 법신을 두고 절대계에 보신을 둡니다.

4. 깊은 삼매 속에서 백종오색광무량광, 억종광을 보고, 자기 불신을 갖고, 어떻게 해서 법신불이 생기고 보신불이 생기는지1급의 밀장임에 대한 그 이유를 알고 불 세존석가모니불으로부터 붓다로서 인가를 받는 일이 불과를 이룸에 있어 필요 충분조건인 것입니다.

법신부처님과 원만보신불을 친견할 수 있는 이는 불과를 증한 붓다라야 가능합니다. 무량광을 보고 안으로는 육종의 진동을 겪어야 합니다.

보신의 변화신이나 화신불은 최소한 아라한과 이상의 성과聖果를 이루어 부처님을 향한 청정한 믿음이 깊은 불자가 선정에 들어 뵙습니다. 하늘의 외도, 천마天魔들이 부처님을 흉내 내어 불보살로 나투는 일이 많기 때문에 말씀드리는 바이니 꼭 주의하기 바랍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보신불의 모습



≪화엄경≫ 등 대승경전에서 볼 수 있듯, 보신불은 그 신체의 양미간과 10군데의 신체 주요 부분에서 단색으로 혹은 억종광명으로 우주 어디에나, 지옥이든 천상 어느 세계든 비출 수 있습니다. 가슴 한가운데에선 만卍자를 방광합니다.

머리 쪽에서 나오는 빛은 원광을 띄고, 신체 각 부분에서 발광하는 빛은 신광을, 몸 전체에서 방사하는 빛은 후광을 - 그 광휘는 내와ㅣ가 드러나고 밝고 아름다우며 햇빛에 노출된 크리스털 다이아몬드처럼 휘황찬란한 빛을 내십니다.

보신은 원만보신이라고도 합니다. 절대계에 계시는 모든 보신부처님들은 머리를 깨끗이 깎으시고, 황금 장삼에 빨강 가사를 수하고 계십니다.

붓다들끼리는 빛으로 상속이 돼 있어서 원근에 관계없이 의사가 소통 되며, 모든 붓다들은 백종오색광으로 이루어졌기에 모두 같아 보이지만 깊은 삼매에서 보면 얼굴, 음성, 성격…… 등이 각각 다릅니다. 마지막 붓다 이룰 때의 성격, 얼굴, 키, 몸무게…… 모두가 절대계의 자기 불신에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보신의 변화신


부처님들께서는 여기 사바세계의 인연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 변화신으로 보살행을 하십니다. 영기서 말하는 보신변화신 - 진신眞身은 화신과 다릅니다. 사바세계의 중생의 근기에 따라 원만보신본불께서 머리나 의복 등으로 외형만 약간 변장하신 모습을 말합니다.

몇 분의 부처님의 변화신을 소개합니다.

1. 불 세존 : 삼계의 법왕이시고 남섬부주의 교주이시기에 항상 머리는 말끔히 백호친 모습에다 언제나 가사‧장삼을 수하시며 보통 때는 8고리 석장을 짚고 다니신다.

2. 문수보살 : 머리는 상투하시고 구레나룻 수염을 기르셨다. 삿갓 쓰시고, 백색 동정이 달린 짙은 회색 두루마기를 입으신다. 짚신을 신으시고, 바랑가사, 발우, 목탁, 경전이 들어 있음을 등에 메신다. 7색깔을 띤 칼 지팡이를 짚으신다. 눈빛이 날카로우시다.

3. 보현보살 : 머리를 풀어 둔부엉덩이까지 길게 늘어뜨리셨다. 머리카락은 갈색이며 수염을 기르시고 삿갓을 쓰신다. 노르스름한 백색 광목으로 된 장삼 비슷한 것 입으시고 앞에는 리본을 메어서 리본자락이 길게 내려온다. 속옷은 백색이다. 짚신을 신으시고 바랑을 메시고 7색깔을 띤 용머리 지팡이주장자를 짚으신다.

4. 약사여래불 : 아래는 백색 옷 입으시고 가슴 위는 가사만 두르신다. 투명한 몸이시다.

5. 준제보살 : 비녀 꽂으시고 보라색 바탕에 황금색 연꽃이 수놓아진 긴 저고리와 백색치마를 입으신다. 전형적인 왕비의 모습이시다.

6. 지장보살 : 이마에 띠를 두르신다. 회색 두루마기를 입으신다. 배가 볼록 나온 모습이 특징이다.

7. 다보불 : 짧은 수염이 많으시다.

8. 대세지보살 : 항상 깔끔한 차림에 머리도 불 세존처럼 언제나 말끔히 깎고 다니신다. 회색 두루마기를 입으신다.

9. 아미타불 : 언제나 황금색 장삼에 빨강가사55쪽를 수하신다.

10. 광명불 : 불 세존의 태자이기에 이마에 세존을 정대한 띠를 두르신다. 정수리 아래에 불 세존의 태자라는 인印이 찍혀있다. 하얀색 옷을 입으신다. 소매와 바지는 30cm 정도로 폭이 좁다.
11. 자재통왕불 : 문수보살의 법왕자이기에 이마에 문수보살을 정대한 띠를 두르신다. 정수리 아래에 문수보살 법왕자라는 인印이 찍혀있다. 회색 두르마기동정 역시 문수보살처럼 백색를 입으신다.
12. 관음보살 : 하얀 실크 한복을 입으신 전통적인 한국 여인상이시다. 낭자에 긴 칠보 비녀 꽂으시고, 이마에 아미타불을 정대한 띠를 두르신다. ※백의관음 한국의 주처 : 낙산 홍련암

13. 해수관음 : 관음보살의 좌보처. 길게 늘어뜨린 실크 옷을 입으시고 관을 쓰신다. 불단에 모셔진 관음상으로서 서구적인 얼굴 모습이다. ※해수관음 한국의 주처 : 남해 보리암

14. 육관음 : 관음보살의 우보처. 한 사람의 남자 모습이지만 필요에 따라 여섯으로 나투시기도 한다. 인도의 남자상으로서 머리를 수건 같은 것으로 두르고 계신다. ※육관음 한국의 주처 : 강화 보문사

모든 부처님의 눈은 대세지보살을 제외하고는 쌍꺼풀이시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불신에 대한 문헌학적 고증

큰스님께서는 <<대반열반경>>을 원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대열반광(부처님의 광명)이 중생의 털구멍으로 들어가는 자는 반드시 불
도를 이루리라' 이르신 대목과, '만약에 부처님(불신)을 보는 자는 곧 일
체 번뇌가 다 끊어지고 부처님 말씀을 듣는 자는 반드시 불도를 이루
이라'하신 말씀을 주목해주시기 바랍니다."

큰스님께는 부처님의 대승경전 외에도 수많은 기라성 같은 대선지식
께서 집필하신 불서와 논서를 인용하시면서 불신사상과 붓다 삼신
설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상세히 설하신다. 큰스님의 불신사상, 즉 붓
다의 삼신설에 대한 대의를 받아 정리한 내용을 소개한다.

첫째, <<금광명최승왕경>> 제 二 권 <3 분별삼신품> 을 보면, 부처님께
서 허공장 보살에게 " 모든 부처님에게 세 가지 몸이 있다. 화신
응신 법신이 그것이니라."고 말씀해 주셨고, 이러한 "세 가
지 몸이 구족하여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거두어준다"고 이르셨다.
"가지가지 몸을 나타내는 것이 응신이라 하고 오직 여여와 여여의 지
혜만이 있는 것 그것을 법신이라 한다"고 하셨다.

법신은 앞의 두 몸의 근본이 되며 "부처님은 큰 삼매의 힘으로 온
갖 선정, 대자대비, 온갖 다라니, 온갖 신통, 온갖 자재를 나타낸다. 큰
지혜의 힘으로 열 가지 힘, 사무소외, 네 가지 걸림없는 변재,
280(18)불공법.... 온갖 희유하고 생각할 수 없는 법을 모조리 나타낸
다."고 하셨다.

이러한 전거로 미루어보면 부처님께서 얼마나 위대한 분이신지
알 수 있다 하겠다. 견성한 도인과 깨달음을 얻은 수행승들은 과연 이
러한 부사의한 능력과 힘을 구족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용수의 이신관을 거론할 수 있다. 석존 재세시에는 인간
석가모니불 이외에는 아무런 불신관도 없다가, 석존께서 열반에 드신
후 경전이 결집되면서 <<아함경>>에는 육신불, 그의 교법을
뜻하는 정도의 법신불의 이신관이 나오게 된다. 불멸 후
6~7백년 경에 태어난 용수가 지은 것으로 알려진 <<대지도론>>
에는 부모생신과, 단순한 교법의 의미를 훨씬 벗어난,
언제 어디서나 여러 가지 몸, 여러 가지 방편을 내어 시방 중생을
제도하는 근원적 존재이며, 항상 광명을 내고, 항상 설법하는 존재인
무상의 혜인 법성신의 이신관이 나온다고 하셨다.

이 또한 큰스님의 지혜가 아니면 경전으로부터 감히 초출할 수 없다
하겠다. 사실 오늘날 견성이나 깨달음도 제대로 구족하지 못한 수행승
이나 불제자가 어디 이러한 지극히 미묘한 경전 내용을 알려고 하겠는
지 의문이 들기까지 한다.
이제 큰스님의 불신 사상과 붓다의 삼신설 사상은 복원
되어야 하고 불제자들 간에 크게 추앙되어야 할 사상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셋째, 유가행 학파 기타 논서..... 제 논사의 주창을 이야기할
수 있다. 무작은 <<섭대승론>>에서 모든 부처님들
은 진신 보신 응신 세 몸을 갖춘다라고 하였으며, 세친의 <<대
승장엄경론>>에서는 불과를 증한 모든 붓다님들은, 자수용신, 타
수용신, 변화신의 삼신을 구족한다고 하였다. 4C말 경 인
도의 논사 견해의 <<보성론>> 즉, <<구경일승보성론>>에는 모든
붓다님들은 법신 보신 화신의 삼신을 구족한다고 주찰하였다.

그러나 그 누구의 소론도 거룩하고 희유하신 붓다의 삼신 설명이 너
무 관념적일 수밖에 없어 불교학을 공부하는 이들로서는 이해하기 어
려운 게 사실이었다. 큰스님의 이 부분에 대한 법설은 체험하지 않고
이리 말할 수 없을 만큼 극명하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와 10회에 걸친 TV 법문, 현지사 그리고
부산분원에서 정기적으로 설법하신 내용 등을 들어보면, 불의 삼신에
대한 법설은 너무 구체적이고 자세하다.

영산 당시 아난이 아니고서는, 불과를 증하지 못하고서는, 자기 불신
이 없는 이로서 그 누가 만고에 비밀이요 부처님만이 알 수 있는 삼신
설에 대해 이리도 분명하게 자신 있게 설할 수 있겠는가?

11세기 티베트의 전설적인 수행자인 밀라레빠도 "붓다라면 삼신
을 구족해야 붓다"라고 했지만, 그의 <<밀라레빠 10만 송>> 어디를 보
아도 원만보신에 관해서 만은 실제로 보고 체험하여 법설한 것으로 보
이지 않는다.

참고로 선불교의 삼신 해석을 간략히 소개한다면 우리 인간 마음 가
운데 삼신을 갖추고 있다면서, 우리가 마음 속에 지니고 있는 본래 청
정한 마음, 성품을 법신불로 보고, 자성의 변화 한 생각 사량분별
을 화신불로, 생각 생각 자성을 보는 지혜를 보신불로 본다.

산심은 부처님에 한한 말인 것이다. 붓다의 삼신까지도
유심화, 관념화시켜 보는 것은 불의 경계를 전혀 모르는 소리다.

티베트 밀교에서는 공성의 증득만으로는 진실한 멸도, 성불일 수 없
고 무량한 선업으로 색신을 성취해야 대승의 진정한 성불이라면서 선
불교를 비판하다.

<<법화경>> <비유품>에서는 "공의 법을 증득하고, 32상의 색신을 성
취했을 때 성불"이라 한다. 이러한 밀교의 견해들은 전적으로 옳은 말
이지만 바르도에서 의생신을 얻어 보신불의 몸으로 성불한 다며, 육신
속에 삼신을 성취하는 위가 불이라 주창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견해라
사자후하신다.

진정한 불신은 티베트 밀교의 의생신 따위와는 차원이 다르다.
불신은 바르도가 아닌 상적광 세계의 정광명보다 몇 차원 높은
무량광으로 이루어진다. 영원히 멸도하지도 않고 자비와 지혜, 그리고
복덕을 구족한다. 또 항사의 신통 묘용을 쓰며, 대적정삼매에 자유로이
들어 백천만억 화신을 내어 삼천대천세계의 인연 중생을 구제하는 것
이다.
이같이 대승불교에 와서야 유가행 학파의 몇몇 논사들이 <<화엄>>
 <<법화>> <<능가>> <<열반>> <<반야>> 그리고 <<해심밀경>>등을
깊이 꿰꿇어 연구하여 부처님들은 중생이나 보살과 달리 세 몸(법.보.응)
을 지닌다는 결론에 따라 삼신설은 확립이 된다.

여러 경론 <<금광명최승왕경>> <<반야바라밀다경>> <<십지경론
>> <<금강반야바라밀경론>> <<장엄경론>> <<섭대승론>> <<보성
론>>에서 표현은 약간씩 다르나, 법신은 영겁토록 변치 않는 만유
의 본체를 법으로 보고 신은 이 본체에 인격적 의미를 붙여 법신이라 했다.

보신은 보살의 위에서 무량겁을 두고 어려운 수행을 한 결과로
얻는, 영구성이 있는 유형의 불신을 뜻한다(아미타불과 같이)고
되어 있다. 응신은, 보신불을 보지 못하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나타
나는 불신, 역사적 존재로 석가모니부처님과 같음으로 되어 있다.

출처/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영산불교사상연구소





모든 붓다님들은 삼신불의 모습으로 실제로 존재한다

사바세계 대수행자가 불과를 이루게 되면 세 가지 유형의 몸이 생기게 된다.
이것을 삼신불이라고 한다. 이 삼신불의 실체는 불교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최
고 차원의 영역으로서 붓다가 아니고서는 이론적으로 접근하는데 많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여러 경론상의 내용이나 학자들이 주장해온 삼신설은 정
확하지 못하고 심지어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그리고 티베트 밀교나 선불교에서
말하는 불신관을 보면 실체와 너무나 거리가 멀다.

이번 기회에 영산불교에서 부처님 이후 처음으로 삼신불에 대한 명확한 설명
을 해주고자 한다. 영산불교의 법신, 보신, 화신의 삼신불신관은 불과 이룬 현
지사 큰스님께서 몸소 경험하시고 직접 본 사실에 근거하므로 실체적 진실의
불신관이다.

법신불은 우주 본성과 붓다의 햇빛보다 밝은 지혜와 품성이 하나된
무형의 우주적 몸뚱이다

육신을 가진 수행자가 억겁의 수행을 통해 붓다를 이루면 몸 속에 있는 4개
의 영체는 무량의 지혜와 복덕과 자비를 구족한 빛덩어리가 된다. 법신불은 이
붓다된 수행자의 수행 결실인 우주적인 대지혜 복덕 자비가 우주 본성(공)의
빛인 자성광과 완전히 합치됨으로써 생기는 불신을 말한다.

즉, 붓다의 품성과 우주 본성이 완전히 하나 된 몸이 바로 우주적 광명체인
법신불이다. 법신불은 불신의 모체가 되는 근본 진불로서, 시공을 완전히 초월
한 무아속 절대계인 상적광세계에 그 불신을 둔다.

우주 만물에 내재해 있는 동시에 일체 처, 일체 시에 아니 계신 곳이 없다.
언제나 삼천대천세계를 섬광처럼 밝게 비추면서 우주 만물을 정화하고 있다. 햇
빛이 미치지 않는 땅 속도, 우리들 마음 속도 다 비쳐준다. 법신불은 분별과 사
량을 하지 않는 이불(理佛)이지만 공성과는 다른, 붓다의 살아있는 우주적 몸이
다. 그러나 보신불이 법신불에 들어갈 때는 판단도 하고 실질적인 우주적 능력
을 발휘할 수 있다. 비로자나불은 석가모니부처님의 법신불인 동시에 모든 붓다
들의 법신의 총합체이다.

보신불은 32상 80종호를 갖춘 빛의 인격체로서,
믿음의 대상이 되는 중심불이다

보신불은 생전에 억겁의 수행을 통해 우주적 지혜와 복덕을 완성한 불신이다.
무아속 절대계인 연화장세계에 그 불신을 둔다. 보신불은 그 모체인 자기의
법신불로부터 영양을 공급받아 성장, 존립한다. 보신불은 32상 80종호의 인격적
형상을 갖추고 적멸상으로 나투시는 몸으로서 지혜 자비 복덕을 구족하신다.

억종광이라는 무량광으로 이루어진 보신불은 창조주적인 능력을 갖는다. 머리
를 깎고 가사 장삼을 수하시고 눈을 뜨고 활동하신다. 가장 깊은 삼매인 대적정
삼매를 자유자재로 수용하시면서, 천백억 화신불을 내어 삼천대천세계의 인연
있는 중생들을 구제하신다. 보신불은 보살을 교화하시며, 중생의 업장을 씻어주
시고 우주 법계의 평화를 위해 활동하시는 실질적인 중심불이다.

모든 부처님들의 불국토에는 보신불이 상주하신다. 그러므로 우리 중생들이
믿고 귀의해야 할 부처님이 바로 보신불이다. 남섬부주는 석가모니부처님의 불
국토이므로 부처님의 보신불(원만보신 노사나불)이 상주하고 계신다. 바로 그 보신
불이 상주하고 계시는 궁이 영산불교 현지궁이다.

보신불은 도가에서 말하는 허공신 체외신이나 티베트 밀교에서 말하는 바르
도의 정광명과 화합한 의생신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차원임을 확실히 해
둔다. 보신불은 중생을 제도하기에 좋고 편안한 변화신의 모습으로 사바세계에
오신다.
화신불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백천만억 형상으로 나투시는 몸이다.
보신불이 중생 교화 등의 목적을 위해 삼매력으로 만들어낸 불신이 화신불이
다. 보신불이 허공의 달이라면 화신불은 물 속에 비친 달이라고 할 수 있다. 화
신이지만 몸에 청정하고 밝은 빛을 띠고 있으며, 모습은 자비의 상, 선정의 상,
인욕의 상, 계율의 상을 모두 갖추고 있다. 신통으로 만들어내는 것과는 질적으
로 다르다. 화신불은 각기 독립된 하나의 부처님으로 활동하실 수 있다.
붓다가 중생 구제 등의 사명을 띠고 사람 몸을 받아온 경우 그 분을 화신, 응
화신, 또는 응신이라고 한다. 사바세계에 육신을 받아 처음으로 불과 이룬 분도
화신이라고 한다. 화신불은 삼천대천세계의 수많은 하늘과 중생 국토의 최일선
에서 중생을 교화하신다. 삼매에 들 정도의 수행인에게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
타나시어 공부를 지도하고 이끌어주신다. 우리나라의 절에도 이 화신불이 계신
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화신불이 가시는 절은 전체 절의 절반 전도에 불과하다.

화신불 마저 가지 않는 절이라면 어찌 절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런 절에서
수행하는 스님이나 불자들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출처/우주적 진리의 신불교 영산불교의 법세계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1권,2권 축약판)




붓다는 삼신을 구족하고
절대계와 중생계를 넘나들면서 교화하는 분


그리고 부처님의 위신력은 천도대재 등을 통해서 중생을 천도하고
천도대재를 지낸 복위자의 업장을 녹여준다는 점에서 정말 희유하다는
사실을 명각해야 한다.

큰스님께서는 부처님의 위신력을 이렇게 설하신다. "명부에 들지 못
해서 떠도는 고혼 영가들을 찾아내서 붙들어 오는 일, 지금 지옥에서
형벌을 받고 있는 영가를 천도하는 법석으로 데려오는 일, 짐승 몸을
받아 난 영가의 영체를 빼내어 데려오는 일은 오직 붓다만이 할 수 있
습니다."

오늘날의 불교는 영체가 무엇인지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니 오죽하랴! 부처님께서 어떠한 위신력을 구족하시고
계시는지 전혀 알지도 못하며 마음이 붓다라고 하는 세태에서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말이다. 오호 통재라! 우리는 큰스님의 장엄하고 웅대한
법 세계를 통해서 하루빨리 쇠락해 가는 불교를 진작 및 중흥시켜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하게 된다면 인류는 숭고한 불교 문화의 광명과 그
종적을 망각하고 불교사에 천추의 한을 남기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어떻게 해서 이와 같은 위신력을 구비하시고 계
시는가? 그 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큰스님게서는 자상하게 설명해
주신다. "붓다 이룬 이는 법, 보, 화 삼신을 구족해서 평등적인 무아
속 절대세계와 차별적 중생세계를 자유로이 넘나들면서 중생을 교화하
는 분이라고 분명히 밝힙니다. 중생이 아라한과를 이룰 때까지는 반야
바라밀이 중요하지만, 보살이나 붓다 되기 위해서는 큰 삼매력이 아니
면 안됩니다. 백천 삼매, 대적정삼매에 자유로이 들 수 있어야 자기의
불신을 얻고, 그 깊은 삼매력으로 생사를 자재하며 14무외려과 지혜와
자비, 항사의 신통을 얻고 천백억 화신도 나툴 수 있는 것입니다."

큰스님의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삼매력을 얻는 것이 관건이라
고 할 수 있다. 얼마나 높은 삼매를 얻느냐가 자신의 불신을 얻고 생
사를 자재하고 다양한 권능을 갖게 된다고 할 수 있다.

부처님 위신력에 대한 해답의 황금열쇠는 바로 강한 삼매력에 있다
하겠다. 또한 큰스님께서는 붓다 중의 붓다라고 할 수 있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법신불인 비로자나불에 대한 감회를 이렇게 밝히신다.
"여름 한 낮의 햇살, 눈이 시려 볼 수 없는 그런 빛을 백천만 개 합친
것과도 비교가 안 될 만큼 엄청난 밝은, 수미산만한 대지의 빛덩어리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을 보고, 하나님이나 창조주 따위를 넘어서 우주
자체가 되어 버린 무서운 그 부처님의 능력과 지혜를 감득할 수만
있다면 불교의 위대함에 감읍하지 않고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이다.

과거 현지사와 인연된 공덕으로 두 분 큰스님의 불신들께서 전
해주신 메시지들 두뇌를 통해 원격으로 받은 적이 있었다. 그 체험은
참으로 밝고 밝아서 두뇌를 시원하게 정화하는 것 이상의 환희심을 가
져다 주었다.

너무나 깨끗한 광명의 에너지였다. 그렇다면 부처님 법신의 무량광명
체로부터 빛을 받는다면 그것은 정말 얼마나 거룩한지 통절히 절감하
지 않을 수 없을 것이리라.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감회, 아니 세상에
태어나 겪은 모든 인생에 있어서 가장 기쁜 최대의 희열을 경험하리라.




붓다 삼신의 경계는 붓다가 아니고서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부처님의 상모의 훌륭함을 큰스님께서는
상세히 설하신다.

"보신불의 능력은 무한합니다.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지혜, 자비를
갖추고 있어서 백천만억의 화신을 내어 중생을 교화할 수도 있습니다.

얼굴과 모습은 필설로 그릴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훌륭한 상모를 다
갖추십니다. 음성 역시 미묘하여 모든 붓다들은 그 거룩하고 희유하심
이 우리 인간들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붓다 삼신의 경계는 붓다가 아
니고서는 알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 부여되는 최고의 극찬이라 할 수 있는 진 선 미를 모두 구족
하신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하겠다. 큰스님의 법문을 들어보면 정말로
인간 중생이라는 존재는 얼마나 하찮으며 미물에 불과한지 여실히 통
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불제자들은 지저분한 사바세계로부터 벗어나 고원하고 거룩하
신 부처님 세계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발을 내딛어 결연한 마음으로
정진해 나가야 하리라.

부처님께서는 상모만이 아름다우신 것이 아니라 우주적인 모범을 보
이신다는 것을 또한 큰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붓다를 이룬 이는 법 보 화 삼신을 구족해서 평등적인 무아 속
절대세계와 차별적 중생세계를 자유로이 넘나들면서 중생을 교화하는
분이라 밝힙니다."라고 큰스님게서는 말씀하셨다.

우리 불제자들은 부처님께서 우리들을 위해서 힘써주고 계시는 것에
감사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큰스님께서는 우리에게
그토록 부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고 바르게 살아야 한
다고 말씀하신 것이리라. 또한 이와 같이 거룩하신 부처님께 귀의 귀
명하고 그동안에 지은 죄를 참회하고 발원하는 것이 필요하리라.




또 부처님의 위신력은 다음과 같다고 말씀하신다.


"중생이 불신을 본다면 즉시 가루가 되고 말 것입니다. 마치 100볼
트 전구에 수십억 볼트 고압이 들어와 산산이 부서지듯 말입니다. 그
래서 붓다들은 32응신으로 나투어 중생을 교화하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부처님의 중생들을 위해 베푸시는 한량없는 자비심에 감사히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하겠다.

<<법화경>>을 보면 독을 먹은 자녀들에 대해서 아버지가 방편으로
아이들에게 돌아가셨음을 알리는 구절이 나온다. 이와 같이 부처님은
방편으로 열반하셨지만 지금도 일체 시, 일체 처 우리들을 보이지 않
는 곳에서 알게 모르게 살펴보시고 우리들의 영혼의 질병을 치료해 주
시는 자비로운 의사와도 같으시다.

출처/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영산불교사상연구소





자재 만현 큰스님의 불의 삼신설



넷째, 자재 만현 큰스님의 '불의 삼신설'이다. 위에서 든 것
같이 불과를 증한 붓다만이 법 보 응 삼신을 구족한다는 경
전적 근거는 <<금광명최승왕경>> 등에 있다.

불교사적으로 보살이라 존칭을 부여받은 바 있는 인도의 마명, 용수
큰스님과 몇몇 중관의 논사들 그리고, 무착, 세친..... 등 유가행 학파
의 조사들의 연구 논문인 <<대지도론>> <<섭대승론>><<보성론>>등에
의해 불신관은 삼신설로 정립이 된다.

1) 자재 만현 큰스님은 다음 같이 불의 삼신설에 대해 법문하신다.
번신(불)은 만유의 본체인 여여한 이 (법신)에 우주의 본
질 실재에, 불지에 오른 수행자의 보신불의 여여의 지가 합일
한 우주적인 광명(자기 원만보신의)을 법신불이라 한다.

(원만)보신은, 보살의 위에서 무량겁을 두고 어려운 수행 (무주상 보신
-육바라밀, 보현행원)을 한 결과로 비아를 털어 버린 수행자의 영아
가 청정을 넘어선 빛(광도와 강도가 햇빛 섬광보다 더한 안팎이 드러나 하나
된 아름답고 영롱한 무량광)으로 자라면서, 이루어진 모든 영구성이 있는 유
형의 불신, 지복의 몸을 말한다(바로 보신에서 응화신, 분신, 변화신을 냅니다).

응(화)신은 중생의 마음이 탁하고 어두워 광명으로 이루어진 불신을
보지 못해 그들을 제도하기 위해 나타나는 불신으로 (a)역사적 존재인
석가모니부처님과 같음 (b)원만보신에서 신발이나 옷, 머리, 때로는
성별까지 바꾸고, 방사하는 빛을 흡수해서 사바세계에서 보살의
모습으로 활동하는 변화신을 말한다. 화신은 불신이 전제되고
따라서 불신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2) 큰스님은 법설하시기를 법신불은 우주적인 몸으로소 분별을 떠나
있고 삼천대천세계를 비추고 있는 광명 지로서의 존재이고, 보신불
(원만보신)은 불지에 오른 이만 볼 수 있으며 32상 80종호를 갖추고,
삼명, 육통, 삼신, 사지, 대자대비, 복덕..... 등 일체에 자재하는 삼매력
을 지닌 신격적인 지복의 존재라 하시고 인행시 서원에 따라 보품(계
인)을 지니신다 하신다 (문수보살-칼, 관세음보살-버들가지, 지장보살-
석장, 약사여래불-약병...등).


3)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은 나투실 때 모든 삼천대천세계의 부처님들
이 각기 법신불이 되어 이 비로자나불 하나의 부처님으로 흡수된다.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의 능력은 하늘 창조주(창조주란 없습니다)적
능력을 지니신다. 석가모지부처님의 청정법신 이름이기도 하다.
4) 불과를 증한 이는 불신(원만보신)을 지닌다는 것, 법 보 화 삼신
을 갖춘다. 법신 보신 응(화)신은 하나이지만 특별한 경우 외에는 각
각 달리 활동한다.

5) 화엄경에서 부처님은 염부제(남서부주) 보리수 밑을 떠나지 않고
수미산정에 올라 도리천 제석궁으로 가서 법을 설하고, 다시 보리수와
제석궁을 떠나지 않고 야마천궁으로 가서 법을 설하시고, 또 다시 위
여러 곳을 떠나지 않고 도솔천궁으로 가서 법을 설하신다.

독자들은 이 부분에서 부처님의 위대하시고 희유한 신력을 확인해야
한다. 이때는 부처님의 원만보신이 보리수 하 석가모니불 자기 색신으
로 합일해서 법을 설하시고, 그 색신(응화신)은 그 자리에 놔두고 수미
산정 제석궁으로 나아가신다.

이때 부천님은(원만보신)은, 물론 그 안에 4 영체를 흡수해 계합한 상
태이다. 제석궁에서 법문이 마쳐지고 다시 야마천궁으로 가서 법이 설
해질 때 역시 보리수 하 그리고 제석궁의 부처님(화신)은 그대로 놔둔
다. 붓다의(원만)보신은 이렇듯 백천만억의 화신을 낼 수 있다.

이 얼마나 부사의한 장관이 아니랴! 세계 어는 성인이 이러한 장면
을 연출한 적 있는가? 삼신을 구족한 붓다들은 이것이 가능하지만
최초 불이요 붓다 중 붓다이신 석가모니불의 위신력은 특히 괄목
하다 할 수 있다.

삼신을 두는 것은 기본적으로 대적정삼매를 자재하는 데서 오는 것
이지, 신통이 아니다(선불교의 육조 혜능 조사에 의해서 주장된 인간 정신 내면
자성 속, 마음의 채용을 불의 삼신으로 해석함은 붓다의 참 경계를 전혀 모르는
법설이라 는 것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다섯째, 기독교의 성부 성자 성신 삼위일체설과 힌두교의 브라마
비슈누 쉬바의 삼신일체설은 불가의 삼신설과 전혀 다르다. 우주
법신(부라마 비슈누 쉬바)에서 화신은 나올 수 없다. 원만보신에서 (응)화
신이 나온다는 것은 위에서 말한 바 있다.

의지가 있고, 욕구가 있다는 것은 중생이며 그곳 (보신, 하느님)은 대자
대비 원력과 지혜와 위신력만이 존재한다. 법신은 무시무종이니 우주
를 내고 유지 상속하는 이법일 뿐이다.

여섯째, <<화엄경>> 삼현위에서 보이는 불신은 화신(분신)불이
고, 초지에서 십지 보살이 볼 수 있는 것은 붓다의 변화신이
며, 불지에 든 붓다만이 원만보신을 친견할 수 있다는 말씀이 자재
만현 큰스님의 법문이다(오직 십지에 오른 보살들만이 보신불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몇몇 논사들 의견임을 철언한다).

앞에서 소상히 밝힌 바와 같이 만현 큰스님께서는 삼신설은 인도의
무착, 세친 큰스님에 의해 확립되었다고 하셨다. 그 다음으로는 <<보성
론>>의 삼신을 들 수 있다고 하시며 여기서는 불신 곧 원만보신은 무
량광, 즉 억종광, 백종 오색광, 열반광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이는 맞다
고 하셨다.

큰스님께서는 <<금광명최승왕경>> 제二권 <3 분별삼신품>, 용수의
삼신관, 인도의 마명과 용수 큰스님과 몇몇 중관의 논사들 그리
고 유가행 학파 기타 논서 등 붓다의 삼신설과 관련하여 무수히
많은 역대 불가의 최고의 큰스님들과 그 분들의 주저들을 모두
꿰뚫어 보시는 탁월한 안목과 식견을 겸비하셨다는 점에 필자는
크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중의 불서는 물론이거니와 많은 득도한 수행승들도 올바르게
삼신설과 불신사상에 대해서 논하는 바가 없다. 비록 논한다고 해도
메마른 지혜로서의 사변적 지식에 불과하다.

출처/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영산불교사상연구소




삼신을 구족한 붓다는 오직 불교에서만 출세


또한 큰스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사자후하셨다.
"붓다들의 현신했을 때의 모습은 해탈신이기에 그렇겠지만
보살의 그것과도 하는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납니다. 붓다의 음성 역시
그러합니다. 일거수일투족이 자비롭습니다. 보신의 미간, 눈, 입, 손바
닥 등 열 군데서 '빛'을 방사할 때에는 녹색이나 무색 광명같이 단색을
방광할 때도 있고, 백종 오색광명을 놓을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억종
광명을 방사할 때도 있습니다.

붓다께서 방광사히는 빛은 마왕 파순이나 하늘 마는 물론 귀신들도
모두 무서워하는 대상입니다. 탐 진 치 삼독이 녹아버린 성자의 마
음 빛이기에 악심이나 사악한 기를 물리치고 녹이는 불가사의한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무량광은 영롱하고 청정하며, 내외명철합니다."

중요한 점은 마왕과 마구니들도 부처님의 무량광 앞에서는 꼼짝도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 얼마나 고마운 사실이 아닌가. 마구니와 외도들
의 세력에 시달려봤던 수행자라면 부처님의 존재가 얼마나 큰 힘이 되
고 고마운지를 알 것이다.

부처님이 계심을 믿고 부처님의 위신력이 이렇게 희유하며 거룩하다
는 것을 절실히 인식하면 인식할수록 우리의 영혼은 그만큼 더 정화되
고 맑게 치유된다고 할 수 있다.
큰스님께서는 "불교의 위대한 점은, 불교에서는 이러한 붓다가 나온
다는 점입니다. 삼신을 구족한 붓다가 오직 불교에서만 출세합니다. 실
제로 어는 대성자라도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을 볼 수 있다면 감격의 눈
물을 흘릴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시고, 또한 "여기서 나는 말합니다. 무
아 속 절대 초월의 세계가 있음을 밝힙니다. 여기는 오직 불과를 이룬
붓다만이 들어갈 수 있는 세계이며 우리 교주 불세존께서 최초로 발견
하셨습니다."라고 사자후하신다.

우리는 석가모니 부처님께 정말 감사에 감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우주에 불교가 없고 부처님이 계시지 않다면, 얼마나 불행하고 어
두운 세력에 휘말리게 될지 감히 상상만 해도 두렵지 않을 수 없다.

큰스님께서는 법문 도중에 말씀하신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크게 다음과
같이 네 가지를 열거하셨다.

첫째 붓다를 내실 수 있는 큰 지혜와 힘, 둘째 중생의 지중한 업장
을 소멸할 수 있는 삼매력, 셋째 지옥, 아귀, 축생(악도) 중생을 건질
수 있는 위신력 넷째 땅의 일부, 전부까지도 여기에서 저기로 옮길 수
있는 부사의한 큰 힘 등을 지니신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힘이 있으나 밀장이라서 공개할 수 없다고 하
셨다. 큰스님 말씀대로 붓다가 나오는 종교는 불교밖에 없는 유일무이
한 종교라는 점을 감사히 생각하고 항상 부처님을 억념하면 그에 상응
하여 부처님께서 우리를 호념하신다는 것을 명각해야 할 것이다.

항상 부처님을 억념하면, 상응하여 우리를 호념
참고로, 큰스님의 성서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9판의 부록
에 '무량광! 불신을 이루는 빛'에 대한 서술 내용을 여기에 싣는다.

1. 미래제가 다해도 없어지지 않는, 따라서 일찍이 생긴 적도 없는
불생불멸의 빛 그래서 훼손 될 수 없다.

2. 그 빛은 오염될 수도 없다. 불구부정인 것이다.

3. 지극히 청정하고,

4. 한없이 예쁘고 아름답다.

5. 안팎이 드러나 영롱하기 그지없다.

6. 어던 빛보다 차원이 다르게 밝다. 중생이 본다면 가루가 될 것이
다. 일생 보처의 보살도 선정에서 보지만 실명할 정도다.

7. 천둥 번개 칠 때의 섬광과도 비교 안 되는 강도이다.

8. 천만억의 빛깔로 되어 있다. 그래서 경에서는 백종 오색광, 억종
광이라 한다.

9. 한량없이 방사(방광)해도 끝이 없어 무량광이라 하겠다. 삼천대천
세계를 감싸고도 남는다.

10. 땅 속이든 물 속이든 마음 속이든 삼천대천세계 어디든(지옥이든
천상이든, 윤회 안이든 밖이든) 비친다. 그러니 자연의 빛과도 다르다.
이미 이 빛은 입자가 아님은 물론이다.

11. 중생의 지중한 업장을 소멸도 하고,

12. 그래서 신통력을 지닌 빛이요.

13. 물 속 깊이, 땅 속 깊이 숨어버린 영악스런 무주 고혼을 잡아
낼 수 있기도 하는 그런 지혜 광명이요.

14. 백천삼매, 대적정삼매를 들 수 있는 부사의한 빛이요.

15. 중생이 그 앞에 있는 빛인데도 이를 볼 수 없는 신비스런 빛이요.

16. 일체 자재한 신력을 지닌 빛이요.

17. 사바세계를 들어 던져 버릴 수 있는 큰 힘을 지닌 빛이요.

18. 외도를 조복받는 빛이요(참 진이 남아 있는 외도는, 두더지와 같이 그들
은 햇빛무량광에 결정적으로 약하다)

19. 부처님들은 이러한 청정 무량광(모든 빛-자성광이나 극락정토의 빛의)
으로 불신이 이루어져 있으므로 부처님은 32상 80종호를 구족하고
삼신, 사지, 오안, 자비, 복덕 등 18불공법을 구족하게 됩니다.

출처/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영산불교사상연구소





삼신설에대한 문답



문1
'성인이라야 능지성인'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붓다
만이 삼신을 구족하신다고 말씀하셨는데, 육조단경이나 많은
불교학자들은 인간중생의 육신 속에 있는 자성 가운데서 삼신불
을 말하고 있습니다. 불의 삼신을 갈파하는 일은 불교사적으로 주
목할 만한 큰 사건임에 분명합니다.

불 삼신설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법문해 주십시오.




법신 보신 화신 삼신불이라는 용어는 부처님에게만 한정된
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따라서 범부들의 색신 가운데 있는
자성에 법 보 화 삼신불이 내재한다는 주장은 삼신불
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소치입니다.


삼신은 불성과 함께 불가사의한 붓다의 경계입니다. 나는 이 질
문에 대한 답을 한국 불교 아니, 세계 불교의 역사 앞에 드리고자
합니다.

붓다의 존재를 이해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
니다.



먼저 법신 보신 화신입니다.

관세음보살을 두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관세음보살
은 무량겁 전에 불과를 증득하여 불호가 '정법명왕' 입니다.
상품보살이 다겁생 동안 수행하여 마지막으로 남섬부주에 인신
을 받아와 대적정삼매를 통과하여 불과를 증하면 자기
불신의 몸을 얻습니다.

불신을 보신 또는 원만보신이라고 하는데 그 몸뚱이는 빛으로
이루어집니다. 그 빛을 무량광이라 하며, 햇빛 백천만 개를 더한
것보다 강한, 불가사의한 지혜의 빛입니다. 붓다를 뵙는 관문이 되
는 빛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몸은 사대라 하는 물질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유한
하지만, 불신은 불가사의한 빛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수
명이 무한합니다.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부처님 좌보처에 계시는
관세음보살 역시 보신불입니다.

법신불은 청정법신불이라고도 합니다. 무아 속 절대계에 두시
는 보신의 진불이라는 뜻입니다. 법신불은 보신의 체요, '우
주적인 몸' 입니다.

다음으로 붓다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나투는 몸을 화신 혹
은 응화신, 변화신이라 부릅니다.

주로 당대에 붓다 이룰 수행인에게 변화신으로 내려와 지도하며
32 응신으로 인천 중생을 교화하기도 합니다. 자기의 원만보
신을 붓다세계에 그대로 놔두고 사람 몸을 받아 오기도 하는데, 그
분을 화신 또는 응신이라고 하는것입니다.

보신불의 능력은 무한합니다.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지혜
자비를 갖추고 있어서 백천만억의 화신을 내어 중생을 교화할 수
도 있습니다. 얼굴과 모습은 필설로 그릴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훌륭한 상모를 다 갖추십니다. 음성 역시 미묘하여 모든 붓다들은
그 거룩하고 희유하심이 우리 인간들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붓다
삼신의 경계는 붓다가 아니고서는 알 수 없습니다.

불교 학자들의 삼신 해석은 실제를 접하지 못하고 다만 여러 경
전에 포함된 내용을 취합해서 설명하고 있기에 추상적입니다.

가령, 그들은 법신을 '진리의 몸' 이라고 관념적으로 정의합니
다. 소위 존재의 근원은 빛인데, 그 빛의 본원정수 엑기스으
로 보신불신이 이루어지고, 그것의 체가 법신이기 때문에 '진리
의 몸' 이라든가 혹은 '완전한 지혜의 몸', '궁극적인 실재'라고
법신을 해석하는 것까지는 들어줄 수 있으나, 법신의 의미를 시
공을 초월해 있고 동시에 시공에 변재해 있는 '우주 생기기 이전
의 면목', '사람의 마음 본체'라 하여 법성 혹은 자성과
같은 의미로 보는 것은 붓다의 경계를 모르는 말이요, 중생의 안목
을 흐리게 하는 잘못된 해석입니다.

심지어 도올 김용옥 같은 이는 법신 해석을 "진리의 구현체
로서의 존재성" 으로 규정하고, "먼 훗날 나 김용옥이 대학의 강사
로서,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추상적인 김용옥이 바로 법신" 이
라고 하는 둥 망언을 내뱉고 있습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자기가
깨달은 사람이라 전제하고 보신을 설명해 가고 있습니다.

"보신은 역사적 업보의 존재를 말하며, 곧 양무제 같은 이가 바
로 그 사적과 유적이 확실한 역사적 보신의 정형태" 라는 것입니
다. 이는 낙제점수는 고사하고, 아예 점수조차 줄 수 없는 답입
니다.

불교의 교가에서는 보신의 설명을 "보살위의 곤란한 수행
을 견디고, 정진 노력한 결과로 얻은 영구성이 있는 유형의 불신의
로 아미타불과 같다"고 대답합니다.

각설하고 처음 불과를 증한 수행인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오온이 녹아 억겁의 업장이 다하고, 탐진치 등 번뇌의 뿌리
가 온전히 뽑혀지고, 다생의 습이 녹고, 천만생 동안 익힌 악기
가 소멸되고, 악연이 단절되고, 전생의 빚이 다 청산되어서
삼천대천세계 모든 붓다들의 위신력으로 불과를 증한 이는 붓다
들의 세계에 저 태양 속의 눈이 시리도록 밝은 빛과도 비교가 안
되는 무량광으로 이루어진 자기 불신을 얻게 됩니다.

깨달음은 한 순간이지만, 자기 불신을 얻어 처음으로 붓다 되는
데까지는 상당한 기간이소요됩니다. 그 불신을 가리켜 보신이요,
원만보신이라고 합니다. 전지전능할 정도의 초월적 인격체입니다.

이것은 중생의 눈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습니다. 아라한이라 보
살과를 증득한 수행인의 그 청정한 눈으로도 그 불신의 엄청난 광
도 때문에 불신만은 볼 수 없습니다. 불과를 증해가는 이의 맑은
눈을 가진 자만이 불신을 봅니다.

보신에서 천백억 화신이 나옵니다. 인천의 알맞은 모습으로
각기 나투어 인연 중생을 교화, 구제하려는 것입니다.

불과를 증하면 그의 육체는 화신이 되면서 그 안에 깃들어
있던 네개의 영체가 빛덩어리가 됩니다. 자기 불신과 격을 같
이 해야 하므로 영체 모두는 빛덩어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육
체 역시 그 빛덩어리 영체를 담는 그릇이니까 청정해야 합니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생겁 동안 향상만 하는 오
랜 수행 기간이 소요됩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새로운 붓다가 출
세하는 데는 겁의 시간이 소요된다' 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
입니다.

붓다는 삼천대천세계 중생들 전부와도 바꿀 수 없는 우주의 보
물이라고 하십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에 와서 불과를 이룬 제
자를 '남섬부주의 꽃' 이라 받들어 아끼십니다. 따라서 '깨치면 곧
붓다' 라고 보는 견해는 옳지 않습니다. '삼신을 구족해야 붓다'라
고 다시 말해둡니다.

불과를 이룬 붓다가 죽거나 입적할 때는 이 몸뚱이 육체는 버리
고 그 안의 네 영체가 불계에 있는 자기 불신과 하나로 계합이
되고 다시 자기의 청정법신불과 합일 합니다. 또 모든 붓다님
들의 청정법신불은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안으로 뭉칩니다. 이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은 석가모니부처님의 법신체입니다. 청정법
신불은 원만보신의 빛보다 훨씬 광도가 높습니다. 석가모니부
처님의 보신을 원만보신 노사나불이라 합니다. 밀교에서는 청정
법신 비로자나불을 대일여래라고도 합니다.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은 삼천대천세계를 항상 두루 비추고 있습
니다. 저 태양은 비가 올 때 구름이 가리면 대지를 비추지 못하지
만,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은 온 법계를 언제나 섬광같이 비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일체처 일체시 아니 계신 곳이
없으십니다.

붓다의 삼신을 게송으로 노래하겠습니다. 아래 게송에 담긴 뜻
은 실로 미증유한 소식이요, 인식의 지각 변동입니다.



있다 없다를 초월하신 붓다님들!

무아 속 절대계에 청정법신 비로자나불로,

영원히 멸도하지 않는 빛으로 계신다네.

때에 따라 원만보신 나투시어

보살을 교화하고

제자를 양성하시고

결국에 붓다 만들어 내시네.



말세 중생 구원하실 적엔

남섬부주 땅에 태어나

응화신 나투시어

중생 교화하신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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