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15일 수요일

부처님께 귀의 염불하는 타력불교로 들어와야 합니다

 

 




부처님께 귀의 염불하는 
타력불교로 들어와야 합니다


인간 세상의 흥망성쇠는 자연의 이법입니다. 양지가 음지 되고 음지가 양지 되는 것은 자연의 이치라는 것입니다.

 

잘 사는 사람이 못 살게 될 수 있고, 못 살던 사람이 어느 날 부자가 되어 있습니다. 약한 나라가 국력이 신장되어 강한 나라가 되고, 세계 제일의 제국이 몇 백 년을 지탱하지 못하고 강국强國의 대열에서 낙오되고 약소국으로 전락되기도 합니다.

 

‘불교를 신봉하는 동남아국가들이 왜 잘 살지를 못하는가? 기독교 문명권 서구 여러 나라들이 잘 산다, 나보다 더 많이 배우고 잘 난 이들이 그 종교를 따른다, 나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가는 길을 따라 갈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재산이 많고 학식이 풍부하다고 하여, 똑똑하고 잘났다고 하여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욕심이 적어 자기 분수에 만족할 줄 알고 교활하지도 오만하지도 않으면서 정직하고 진실하며 인륜과 도덕을 지키면서 사는 그 사람이 보다 더 훌륭한 사람인 것입니다.

 

성자를 공경하고 부모에게 효도를 할 줄 알고 불쌍한 이웃을 돌보며 나라를 사랑하는 그런 사람은 보다 훌륭한 사람입니다. 여기서 더욱 나아가 정법을 만나 내면의 영혼을 백설같이 정화한 사람이야말로 진실로 바람직한 인간상입니다.

 

이 몸은 영원하지도 않고 참된 것도 아닙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생성 소멸합니다. 그래서 본래 비어있습니다. 《금강경》의 일합상一合相의 도리로 보아야 합니다. 일체가 공입니다.

 

출가하여 수행하는 스님들은 나와 세상에 대하여 집착하지 않고 청정한 계율을 잘 지키면서 탐진 삼독심을 정화해 갑니다. 조석으로 이 나라와 세계의 인류 모두가 전쟁 없이 평화롭게 잘 살기를 기도합니다. 부처님의 위대하신 발자취를 가슴에 담고 여러 생을 통해 지은 죄업장의 소멸을 발원하면서 염불로써 생각을 모아갑니다. 깊은 고요로 침잠해 들어갑니다. 선정에 듭니다. 마침내 시간을 초월한 적정으로 빠집니다.

 

흑암의 동굴 속에서 몇날 며칠을 갇혀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태양이 작열하는 바깥 세상으로 튕겨져 나왔을 때, 내리쬐는 빛 때문에 생각 따위는 찾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견성 경계입니다.

 

칸트Kant, 19세기 초 독일의 철학자 가 존재의 근원인 빛自性의 光明 속에서 3일을 보냈다합니다. 바로 시공을 초월한 적정의 경계였습니다. 철학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희를 가져온 칸트는 비판주의의 웅대한 철학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라는 생각도, 어떤 대상의 흔적도 없습니다. 급기야 우주의 제행諸行을 주재하는 진리, 이법의 본래 모습을 면대합니다. 견성입니다. 도를 통했다는 자리입니다.

 

여기서도 한없이 들어가면 삼매에 듭니다. 우주의 모두를 요달합니다. 중생이 나서 사는 육도의 세계를 봅니다.

 

불교에선 여기를 보살의 법위라 봅니다. 보살이 무량겁동안 반야와 복덕을 지으면 비로소 붓다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 불신을 얻는 부처님이 됩니다. 이런 자리는 결코 학문을 통해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실천 수행으로서만 드는 경지입니다.

 

이 수행자는 인생을 압니다. 우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압니다. 어떤 가르침이 참된 진리라는 것을 잘 압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2권 10장 중에서




타력은 필요 충분조건

- 여러 마장을 중심으로

 

자력불교로는

21세기의 인류를 향도하기 어렵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싹을 틔우고

그것이 성장하여 많은 알곡을 얻으려면

농부의 손길도 필요하고

적당한 비료, 햇빛, 적당한 비, 바람도 필요합니다.

자력‧타력은 필요 충분조건입니다.

 

 

많은 종교학자들, 불교학자들까지도 불교를 자력불교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는 자력이면서 타력입니다. 아니, 불교는 타력불교인 것입니다.

 

불자 여러분!

우리 이웃들 모두가 금생에도 잘 살고, 다음 생에도 더 잘 살았으면 합니다. 이러한 소망은 어떤 종교의 가르침보다 불교의 가르침에서 이루어진다고 확언합니다.


거룩하고 희유하신 부처님께 귀의하고, 참회하면서 바르고 깨끗하게 사는 것입니다. 물론 염불하면서 말입니다. 부처님의 가피가 있으면 윤회생사를 벗어날 수 있는 아라한도 되고, 보살도 될 수 있습니다.

 

인간 자력수행의 한계는 아라한과를 얻는 데까지라고 나는 누차 강조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자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여러 마장은 부처님의 절대하신 타력에 의지하여야만 극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쟁터에서 백만의 대군을 격파하여 이길 수는 있으나 내 마음하나 이기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이 육신에 대한 애착이나 마음 속 탐진 삼독, 오욕의 번뇌마를 조복 받으면 모든 외마를 항복받을 수 있고 천하도 얻을 수 있습니다. 마음과의 사움에서 승리자가 되면 어떤 경우를 당해서도 언제나 무고안온하며 평화롭습니다.

 

≪대품반야경≫에서 우주의 진리자요 대성취자이신 부처님께서 “나는 일체一切의 승자勝者요, 일체의 지자智者……”라고 갈파하신 것은 인간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요괴번뇌마, 외마들을 제압하신 진정한 승리자로서의 선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여기서 나아가 중생의 업장, 업보까지도 단절해 줄 수 있는 거룩하고 희유하신 유일자唯一者요, 절대자絶對者이십니다.

 

여러 가지의 장애_마장魔障

 

자력으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은 다음의 몇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내마內魔가 있습니다.

소위 번뇌마 등입니다. 불안, 초조, 공포라는 한계 상황을 자력으로 극복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사형수가 자기 이름이 불려지면 “면회요!”하고 호출하는 소리에 벌써 기가 다 빠져 낙지같이 흐느적거리며 나온다고 합니다. 사형수 같은 입장에 있는 이들의 죽음에 대한 공포, 불안, 초조 - 살길이 막연한데 부채의 독촉에 시달려 하루하루 짓눌리고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고뇌하는 심정, 아무도 몰래 사람을 죽인 자의 미칠 것 같은 죄책감…… 등에서 오는 극복하기 어려운 번뇌마를 어찌 자력으로 벗어날 수 있단 말입니까?

 

14세기에 창궐한 흑사병페스트은 100여 년을 주기로 18세기까지 중세 유럽의 인구를 1/3까지 치사케 한 전율할만한 공포의 전염병이었습니다. 그러한 살인적인 전염병이 창궐한 마을에서 며칠을 지내지 않으면 안 될 처지에 놓였다 가정합시다. 또 6‧25같은 난리가 터져 수많은 소중한 인명이 날마다 죽어 가는 전쟁통에 있다고 가정합시다.


이때의 불안하고 초조한 공포의 한계 상황에서 우리가 설사 화두타파 등을 통해 선정에 들 정도의 수준이 됐다 하더라도 진정한 안심입명安心立命은 어려운 것입니다.

독사 구렁이가 내 방 안으로 들어와 숨었다 합시다. 한밤중입니다. 나에게 접근해 오는 소리가 납니다. 이 경계를 당해 감히 그 뉘라서 초연할 수 있답니까?


안심입병은 자력에 의한 선정의 힘으로는 온전치 못합니다. 보살의 삼매는 한계상황을 극복합니다. 부처님이 이끄시는 삼매력으로 가능해집니다.

 

둘째, 외마外魔가 있습니다.

1) 고약한 원결 영가들의 빙의 2) 용신, 사신, 이매망량, 정매마精魅魔 3) 천마天魔 등에 의한 빙의는 결코 자력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 어느 도인도 이를 떼지 못할 것입니다. 토굴에서 스승 없이 잘 못 공부하면 용신, 이매망량, 천마가 빙의합니다. 용신, 이매망량, 천마들은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성과를 이루어가는 수행자를 방해합니다. 빙의합니다. 


빙의된 이들을 떼지 않고 공부한다면 평생을 정진해도 마경에서 헤어나올 수 없습니다. 이런 것들이 빙의되어 있는 상태의 정신으로는 더 이상 공부할 수 없습니다. 여러 경계로 수행자를 괴롭힙니다. 때로는 묘한 경계를 보여주어 수행자로 하여금 빠져들게 하고, 집착하게 만들어 결국은 정신이 돌아 미치게 됩니다. 또한 죽으면 악도에 떨어집니다.


천마나 귀신주로 사이비 도인의 영가이 빙의돼 있는 무당이나 신기 있는 이들이 가끔 불 보살과 대화를 한다고 자랑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천마나 귀신의 말을 듣고 불 보살과 대화하는 줄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이 점 명심하기 바랍니다.

 

또 지적할 것이 있습니다. 변화술에 능한 천마하늘마가 공부하는 수도인에게 불 보살의 모습으로 둔갑해서 화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들을 절대계에 계시는 붓다로 보면 안 됩니다.


붓다의 화신에서 볼 수 있는 자비·선정·지혜·지계·인욕의 모습을 천마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붓다의 화신과는 마치 왕과 거지만큼 천지 차이입니다. 그들에겐 무량광은커녕 청정한 빛조차 흉내 내지 못합니다. 


그들의 눈엔 욕심과 살기가 있습니다. 해탈한 성자에게서 느낄 수 있는 깨끗하고 청정한 기운을 느낄 수 없습니다. 붓다의 화신은 몸 주변에서 맑고 깨끗한 빛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마의 몸 주위의 빛은 탁할 뿐입니다.

 

셋째, 다겁생을 살아오면서 지은 크고 작은 악업으로 앞으로 미래세에 받을 과보의 업장 그리고 악, 불과를 이룬 성자의 경지에서 소멸된다는 악·습기習氣들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이것을 단절·정리해 주지 않는 이상 10생, 100생을 수행한들 영적인 성장을 기약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지적 사항은 이성異性에 대한 강한 욕구, 성욕과 색마色魔입니다. 20~40대까지의 젊은이들은 성적 잠재욕구 때문에 대부분 꿈에 몽정·몽설을 합니다. 특히 출가해서 부처님으로부터 계를 받은 수행자로서 자위행위나 동성연애는 사음죄로 본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이성에 대한 욕망은 큰 번뇌가 되어 성과를 얻기 어려운 결정적 장애가 됩니다. 그러나 천에 한 사람 불법 공부 잘해서 스스로 깊은 선정의 힘을 얻는 이라면 강한 이성에 대한 욕구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수행자에게 불행하게도 색마라는 외마가 붙게 되면 설사 견성한 공부인이라고 하더라도 천 길 나락에 떨어지게 됩니다. 외마는 번뇌마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점 명심해야 합니다.


다행히 부처님 회상을 만나 공부하는 수행자들은 색마도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주기적으로 약사여래부처님께서 수행자의 정수精髓를 뽑아주시기 때문에 정법을 수행하는데 장애가 없게 됩니다. 


이 점 역시 타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분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외 여러 가지 진리수행자들의 앞을 가로막는 여러 가지 마장들이 많습니다. 인간의 자력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장애물들이 중첩해 있습니다.

 

다시 강조해둡니다. 자력수행의 한계는 깨달음까지입니다. 견성까지입니다. 이 정도 선정의 힘으로는 지정한 안심입명도 어렵고, 천마 등 장애를 뗄 수도 없습니다. 또한 색이성에 대한 경계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으며 업장, 악·습기習氣의 소멸은 더욱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과학, 철학사상에 있어서 깊은 경지에 든 분들의 신념의 힘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선정력 보다는 못하다는 것을 밝힙니다.


타력, 부처님의 크신 위신력에 의하여 드는 삼매보살삼매 정도가 돼야 번뇌심, 탐욕심, 중생심 모두가 비로소 녹습니다. 업장까지 녹습니다. 죽을 때 나쁜 병 얻어 똥오줌 누고 죽는 일도 없습니다.

 

도고마성道高魔盛

 

과거 생에 선근이 있는 불자 여러분!

위와 같은 여러 장애들 때문에 구도자 중 자력으로 깨달음을 얻은 이들이 천에 하나, 만에 하나 정도일 뿐입니다. 깨달음도 이렇듯 어려운 데 깨달음 이후의 수행은 더욱 어렵습니다. 그것은 불 보살의 모습으로 나투어서 자기 권속으로 삼으려는 변화술에 능한 천마들의 방해 魔障를 극복해야 하는 어려운 공부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 사람이 깨달음을 얻거나 나아가 아라한 되고, 아라한이 보살 되고, 보살이 붓다 되고자 사바 세상에 몸 받아 올 때 마장은 위계가 높아질수록 필연적으로 무섭게 따라 붙습니다. 도고마성道高魔盛입니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가끔 이 사바세계에 아라한이 나오고, 정토보살이 나옵니다.

큰 스승이 없이 자력으로 성과를 얻은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라한이 될 수행자에겐 때가 되면 성중하늘에서 도반 아라한들이 내려와 외마를 막아주고 공부를 지도해주기 때문입니다.


정법의 길로 끌어주기 우해 그 수행인에게 옵니다. 역시 보살이 나올 수 있는 것은 정토에서 보살들이 보살과를 이룰 시기가 된 수행인에게 와서 도와주고 이끌어주기 때문입니다.


붓다 될 성자는 부처님이 오셔서 지도하십니다. 그 외에 성자와 불 보살의 가피없이 자력으로 성과를 얻는 것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외마를 막아 줄 큰 스승 없이는 공부가 될 수 없습니다.


자력수행으로는 그 힘든 마장을 도저히 이겨낼 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타력을 간과해선 결코 되는 일이 없는 것입니다.

 

이제는 타력불교다!

 

절대계에 불과를 증한 붓다님들이 계신다는 이 복음을 부정하지 마십시오. 이제 자력불교에서 타력불교로 거듭나야 할 때입니다. 부처님의 크신 위신력을 입어 수행하지 않으면 아라한과도 어렵습니다.


지금까지의 자력불교로는 21세기의 인류를 향도하기 어렵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싹을 틔우고 그것이 성장하여 많은 알곡을 얻으려면 농부의 손길도 필요하고 적당한 비료, 햇빛, 비, 바람도 필요합니다. 자력·타력은 필요 충분조건입니다.

 

출처 : 영산불교 현지궁 현지사


















2021년 12월 13일 월요일

 


청정법신비로자나불


<<화엄경>> 을 보면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이라고 하면서 노사나불의 모습으로 시현합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화엄경>> 이나 <<법화경>> 은 경중에 왕입니다. 불교는 수많은 경이 있습니다. <<아함경>>만 해도 2만 가까이 됩니다. 남방불교 쪽으로 내려간 <<아함경>> 이 1만8천을 헤아립니다. 이렇게 가면 우리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설하신 경의 수효는 참 많습니다. 불교가 이렇게 법장이 무궁무진 합니다. 


그 많은 경중에서 최고의 경이라고 하는 경전이 <<화엄경>>과 <<법화경>> 입니다. 그래서 <<화엄경>> 과 <<법화경>> 은 경중에 경 혹은 경중의 왕 그럽니다. 그런데 진실이 대단히 많이 담겨진 경전임에도 불구하고 이 <<화엄경>> 과 <<법화경>> 을 하나의 문학작품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진실한 부처님의 말씀, 부처님의 자재하신 그 신통, 부처님의 위대한 삼매의 힘, 거동 거동이 삼천위와 팔만 수행을 갖추신, 그러면서도 지혜와 자비가 뚝뚝 흐르는 그런 부처님의 모습, 그리고 백천만억의 몸으로 당신의 화신을 나투어서 불국토로 가서 계시는(활동하시는) 그 모습 등등 붓다의(여래, 부처님의) 경계를 잘도 그려 놓은 것이 <<화엄경>> 입니다. 그 <<화엄경>> 은 불과를 증하지 않으면 절대로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의 문학작품으로 보는 것이 슬픕니다.


  거기를 보면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은 우주적인 몸뚱이 임에도 불구하고 노사나불과 똑같이 그려 놨습니다. 노사나불과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을 혼동하고 있는 것을 볼 때에(그러그러하기 때문에) 학자들이 갈피를 못 잡는 거예요. 정리할 수가 없어. 노사나불의 진불이 청정법신비로자나불입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의 법신불 명칭이 청정법신비로자나불입니다. 

그리고 절대계에 계시는 석가모니부처님의 이름이 원만보신노사나불입니다. 그걸 아십시오. 그리고 나서 <<화엄경>> 을 보십시오. 사실은 청정법신비로자나부처님이 원만보신노사나불입니다.청정법신비로자나불은 본체이고, 원만보신노사나불은 눈 · 코 · 귀 · 입을 모두 갖추고 이 몸뚱이를 지니고 있지만 능력에 있어서는 똑 같습니다. 능력에 있어서는 원만보신노사나불은 청정법신비로자나불 그대로입니다. 이런 상식위에서 <<화엄경>> 을 봐주시면 이해도 빠를 것입니다.

  우리 현지사에서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을 모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전각 이름이 대적광전입니다. 왜 대적광전(대적광, 적광)이냐?

  그 절대계의 절대계는 빛의 세계입니다. 상적, 항상 현란한 빛이 차있는 세계입니다. 현란한 빛으로, 그 현란한 빛은 스님이 항상 이야기하는 무량광, 그것의 엑기스 광입니다. 그 세계에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이 계시는 거예요. 그러면서도 전 우주를 싸안고 있어요. 

그래서 전 우주적인 몸이면서 빛으로 계시는 거예요. 우주적인 몸이라서 모양이 없다고 하지만 불과를 증해서 대적정삼매에 들어간 스님은 봅니다. 그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을 보는 거예요. 그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은 우리 석가모니부처님의 법신불 이름이기도 하지만 우리 석가모니부처님 이후로 출세한 그 많은 붓다(부처님)들이 청정법신비로자나불 속으로 흡수되는 때가 있습니다. 그걸 계합이라고 그래요. 합일 되는 때가 있습니다.

  그 청정법신비로자나불도 하나의 큰 생명체이지요. 우주적인 생명체이지요. 우주본체와 하나가 된, 우리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우주본체와 하나가 된 그 부처이름이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이요. 그것을 알아야 돼. 그 청정법신비로자나불, 모든 부처님이 원만보신으로 해서 자기 청정법신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그 청정법신비로자나불 속으로 들어간단 말이에요. 모든 붓다들은 자기 청정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절대계에 자기 원만보신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니까 청정법신비로자나불로 뭉칠 때가 있어요. 합일 할 때가 있어. 큰 우주적인 역사를 할 때. 그때 모든 부처님이 청정법신비로자나불 속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그럴 때 이 세상에는 아무 부처님도 없어요. 극락세계에 가도 아미타부처님도 없고, 사바세계에 그 보살행을 하시는 관세음보살님, 문수, 보현, 지장보살님도 안 계셔요. 다 청정법신비로자나불로 들어가 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건 우주적인 대 역사를 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그런다 그거요. 그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을 현지사에서 모셔야 되겠다는 생각을 몇 년 전에 한 것입니다. 왜? 그것은 여러번 여러분들에게 이야기를 했지요. 그런데 그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은 빛 자체이기 때문에 어떻게 형상화 시켜야 되겠는데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어. 그래서 부득이 청정법신비로자나불에서 이렇게 역사가 끝나면 원만보신이 나오게 됩니다. 

석가모니부처님 원만보신노사나불도 나오고, 아미타부처님도 거기서 원만보신이 나오고, 전부 또 이제 자기 맡은바 분야로 가요. 원만보신으로 가요. 그런데 관세음이라든지, 문수, 보현, 지장 같은 분들은 또 본불의 변화신으로 또 사바세계에 와요. 원만보신이 몸 · 옷 · 머리만 싹 갖춰 여기 사바세상 대한민국에 근기에 맞게 바꾸어 온다고요. 이걸 현지사에서는 본불의 변화신 그럽니다. 

본불의 변화신으로 오는데 우리 현지사에서는 원만보신노사나불을 모시기로 했습니다. 원만보신노사나불은 우리 석가모니부처님의 절대계 몸입니다. 이분은 형상이 있으니까 이분을 모셔야 되겠어. 이분이 이분이어. 원만보신노사나불이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이어.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원만보신노사나불을 모시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똑같은 이런 부처님인데 그 원만보신노사나불은 여러분에게 스님이 항상 이야기했지요. 

부처님은 무량광으로 이루어졌다고. 모든 붓다들은 절대계에 무량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32상이 갖추어져 있다고. 그렇기 때문에 한없이 거룩하고 거룩한 얼굴에다가, 몸뚱이에다가, 능력은 지혜와 자비를 갖추고 있어서 이 몸뚱이로 백천만억 당신의 몸뚱이를 나투어서 중생을 교화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그렇게 나가는 정도, 그러니까 불가사의 하지요. 

하나의 몸이 백천만억의 당신의 몸뚱이를 이 우주 삼천대천세계안의 중생국토에 뿌려낸다고요(나툰다고요). 나가셔서 보살행을 하도록 그렇게 확 뿌리고, 백천삼매에 능하고, 자재한 신통은 정말로 불가사의할 정도이고, 능력에 있어서 그렇다 그거요. 그런 원만보신부처님상을 우리가 지금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빛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이것을 형상화해야 되겠다해서 머리에 두광, 배광, 신광을 지금 합니다. 그러니까 아! 저것은 머리에서 나가는 빛, 몸에서 나가는 빛, 아! 그 빛을 상징하는 것이구나 라고 알아두십시오. 딱 들어가면 그렇게 되어있으니까.

출처/2008.10.6  현지사 자재만현큰스님 법문 중 발췌





 저 지금 적광전에 들어가서 이제 음력 10월15일날 여러분들이 예배할 수 있는 부처님이 다 만들어져가지고 봉안이 되었습니다. 이 대적광전, 왜 대적광전이라고 했느냐 하면 청정법신비로자나부처님을 모시기 때문에 대적광전이라고 한거요. 청정법신비로자나부처님은 적광의 세계에 계시기 때문에 대적광전이라고 한 거예요. 우리가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을 모시려고 아주 많이 염원을 했습니다. 


그 결과 이제 모시게 되었습니다. 왜 모시려고 했느냐? 이 청정법신비로자나부처님은 석가모니부처님의 법신 이름이지만 삼천대천세계 모든 부처님들의 법신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이 대역사를 하기 위해서 뜨실 때에는 이 우주 안(삼천대천세계안)의 모든 부처님들이 전부 청정법신비로자나불 속으로 들어갑니다. 


 이 소식은 대단한 선언인데 이 조그마한 500명 앞에서 이런 어마어마한 의미의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을 설명한다는 것이 좀 아쉽습니다. 이것은 어느 경전을 봐도 이러한 해석이 없습니다. 우리 현지사에서만이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의 실체를 완벽하게 알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을 모십니다. 다른 절에도 대적광전이 있습니다. 청정법신비로자나불상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부처님은 이 결인이 잘못되었다고 하십니다. 부처님께서는 항상 선정에 들어계시기 때문에 결인법이 있어요. 다 결인이 있는데 청정법신비로자나불상을 보면 왼손의 시지를 오른손으로 잡은 모양의 결인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 보셨는지 모르겠어. 그런데 부처님께서 "아니다" 라고 하십니다. 그건 아니다 그거요. 도중에 잘못 전해져온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을 모시려고 우리가 고심을 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이제 말씀을 해주셨는데,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은 빛입니다. 빛이어요. 저런 자연 태양광이 아니어요. 여러분 마음의 자성광도 아니어요. 그보다도 훨씬 차원이 높은 밝은 빛이어요. 중생이 그 빛을 보면 너무너무도 광도가 강해서 가루가 되어버릴 수가 있어요. 분명히 그러합니다. 


그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은 그런 빛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러면서 삼천대천세계를 항상 비춥니다. 여러분 알아두셔야 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대적광전을 모시고 있으니까 알아두어야 돼요. 그 어떤 학승도 이것을 모르니까 이제 알려주는 것이어요.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은 형상이 없어. 사람같이 눈 · 코 · 귀 · 입 · 몸뚱이가 없단 말이어요. 빛이어요. 


그러면서 삼천대천세계를 한시도(1초도) 끊어짐이 없이 비춥니다. 항상 비춘다고요. 그건 빛 덩어리, 아니 빛 자체이어요. 안 계신 곳이 없어요. 삼천대천세계 땅속 물속 허공 할 것 없이 항상 비추고 계신단 말이에요. 저 태양은 항상 대지를 비추지만 저녁(밤)은 어떻습니까? 


밤은 안 되지요. 한 쪽만 비추지요. 저 태양이 어느 사람 마음이나 땅속 물속을 비춥니까? 안되지요. 저건 안 됩니다. 그러나 청정법신비로자나부처님의 깨끗하고 청정한 그 빛은,


  
- 삼천대천세계를   1초도 끊어짐이 없이 비친다는 것.
- 땅속 · 물속 · 여러분 마음속도 항상 비추고 있다는 것.
- 이런 불가사의한 빛이라는 것.
- 그 불가사의한 빛으로 이루어진 것이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이라는 것.
-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은 우리 석가모니부처님의 법신 이름이라는 것.
- 불과를 이룬 모든 붓다는 청정법신(법신불)을 둔다는 것.
- 그다음에 원만보신을 둔다는 것.
- 백천만억 화신을 둘 수 있다는 것.
- 최초불인 우리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법신불을 두셨는데 그 이름이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이다 하는 것.
-모든 붓다의 청정법신불은 우리 부처님의 비로자나부처님 속에 겹쳐져 있다는 것.
-대역사를 하실 때에는 모든 부처님들이 다 청정법신비로자나부처님 속으로 흡수 된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그 훕수되었을 때 그 빛 그 능력은 우주적이라는 것.

  내가 지금 2권을 탈고 해가지고 2, 3일 있으면 책자가 나옵니다. 거기에는 종교상 대단한 혁명적인 발견들이 있습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1권은 개론서(槪論書)적으로 썼기 때문에 여러 종파에서, 여러 나라 불교에서 트집을 잡고 비판을 했지만 2권은 그렇지 않습니다. 완결판입니다. 그래서 지금 항상 우리 신도 분들한테 말씀을 했는데 어느 나라 불교든, 또 한국안의 여러 종파 불교든, 부처님이 절대계에 여여히 계신다고 선언한 그런 불교 및 종파는 역사적으로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절대계에 계신다' 하게 되면 이상한 눈으로 본다고요. 개론서(槪論書)가 나오니까 그랬어요. 그래서 2탄에는 자세하게 다루었습니다. 지금 대학자라는 분들이 이 책에 대해서 '정말로 위대한' '역사적인' 말을 붙입니다. 그게 이제 음력10월15일 안으로 나와서 우리가 점안을 해가지고 세상에 나갈 것입니다. 우리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은 점안을 하지 않으면 생명력이 없습니다.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의 점안은 다보탑도 그렇지만 불과를 이루지 못하면 점안을 못합니다.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날 점안이 이루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저 대적광전이 삼천대천세계의 그 많은 부처님들의 별장이라고 전번에 내가 말했는데 거소(居所)가 될 수 있어요. 별장이 될 수 있어. 별장이라고 봐야 됩니다. 우리가 38선 이북에 와서 터를 잡은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여러분한테 아직 말 안했어. 의미가 있어요. 

적어도 한 세기를 이끌고 갈 정도의 종교라고 하면 그 나라의 안녕평화, 세계평화를 담보 할 수 있어야 돼요. 그래야 진짜 종교다운 종교인 것입니다. 그런 힘과 실력이 있어야 됩니다. 우리가 38선 이북에다가 자리를 잡았고, 대적광전 또 다음에 다보탑, 다보탑도 대단한 의미가 있습니다. 다보탑을 모르면 <<법화경>> 을 모릅니다. 저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을 모르면 <<화엄경>> 을 모릅니다. <<화엄경>> 을 못 읽습니다.

  우리 책이 나가면 여러분들이 이제 여러번 Ⅰ권, Ⅱ권을 정독하고 법사들한테 많은 강의를 들으면 그 경의 왕이라고 하는 <<법화경>> <<화엄경>>을 읽을 수 있습니다. 현지사가 이렇게 생겼어도 불보 · 법보 · 승보를 갖춘 정말로 세계 유일의, 국내 유일의 절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아십시오.

  그리고 저 대적광전, 돈으로 따지면 50억 안팎, 그렇지만 천배 만배 차원이 다른,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값어치입니다. 그래서 어느 학자는 내 2탄의 종합 완결편을 읽어보고 '저것(대적광전)은 세계 제일의 문화재'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청정법신비로자나부처님은 방금 말씀 했듯이 빛이시기 때문에 어떻게 빛을 조성할 수가 없어. 그래서 부처님께서 "원만보신노사나불을 조성해서 모셔라" 그랬습니다. 원만보신노사나불은 우리 석가모니부처님의 보신(불신) 이름입니다. Ⅰ권을 많이 공부하셨으니까 이렇게 말하면 알거예요. 그렇게만 알아도 <<화엄경>> 의 잘못된 부분을 딱 지적 할 것입니다. '여기가 틀렸습니다' 라고 딱 지적할 것입니다. 

<<화엄경>> 에서는 원만보신노사나불과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을 혼동하고 있습니다. 2탄에서 불교학계에다가 지적하고 나갑니다. 대적광전에 원만보신노사나불, 석가모니부처님의 그 보신(불신)을 모셨습니다. 그래서 들어가 보시면 알겠지만 두광이 있고(원광이라고도 하지요), 배광이 있고 신광이 있습니다. 스님이 이렇게 어려운 이야기를 하는데 여러분이 적어도 이 정도는 이해를 해줘야 되고, 이렇게 정리를 해줘야 여러 불교 경전을 읽을 수 있고, 그래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출처/2008.11.5  현지사 자재만현큰스님 법문 중 발췌




 오늘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을 지금 점안(點眼)을 했거든요.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이라고 하면 무슨 부처님을 말하느냐 하면 우리 석가모니부처님의 진불을 말합니다. 진짜 석가모니부처님의 몸, 그걸 일러서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이라고 해요. 공부를 많이 해서 백생 천생 몇 겁을 수행해서 부처가 됩니다. 불과를 이룹니다. 불과를 이룬 사람은 청정법신을 둡니다. 


그리고 '무아 속 절대세계' 에 자기 불신을 둔답니다. 여러분, 상상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불(佛)의 삼신(三身), 불(佛)의 불신관(佛身觀) 그럽니다. 부처님의 삼신, 부처님의 불신관 그럽니다. 2500년 전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셨죠. 열반에 드시긴 드셨는데 과연 어디로 가셨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2500년 이후 그 많은 학자 학승들이 출세 했지만 그걸 모릅니다. 그걸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 부처님께서 80세(歲)를 일기로 해서 열반에 드셨는데, 그러면 우리 부처님은 어디로 가셨느냐. 아주 간 곳도 없고 없어져 버렸느냐. 혹은 공(空) · 적멸, 완전히 삼의식(생각)이 녹아버린 공(空) · 적멸, 그 우주 생명으로 계합을 해버렸느냐. 녹아버렸느냐. 학승들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불생불멸하고 우주에 편만(遍滿) 한 우주의 생명, 그걸 공(空)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려운 말로 공(空)이라고 합니다. 공(空), 적멸이라고도 합니다. 그것은 생각이 없습니다. 생각이 녹아버린 곳입니다. 


녹아버린 그런 생명입니다. 그 공(空)으로 돌아가 버렸다 이렇게 봅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팔만대장경을 정밀하게 공부하고 수행을 많이 한 학승들이 '그것이 아닐 것이다. 부처님은 열반하시면 열반하신 후에 가는 곳이 있을 것이다. 대장경을 보니까 그럴 것 같다. 


맞는 말이다' 해서 지금까지 부처님의 거룩하고 위대하신 면, 불신관에 대해서 많이 연구를 하고 해답을 내놨습니다. 그러나 완벽하게 부처님의 열반이후, 그러니까 부처님의 불신 · 삼신관에 대해서 정말로 완벽하게 내놓은 학승은 아직까지 없습니다.

  부처님의 삼신 · 불신에 대해서 모르면, 부처님을 모르면 진짜 불교를 모릅니다. 알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을 모르면 정법을 모릅니다. 무엇이 정법인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을 알아야, 부처님의 불신 · 삼신관, 부처님이 열반한 이후 어디로 가셨느냐에 대한 그 실체의 규명, 이것을 완벽하고 철저히 규명함으로써 진짜 불교가 탄생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불교는 온전한 불교가 아닙니다. 부처님이 어떤 분인 줄 몰라요. 부처님이 계시는 줄 몰라요. 계시는지 안 계시는지 전혀 모릅니다. 

이건 맞습니다. 지금 어느 나라 불교든 부처님에 대해서 모릅니다. 이런 사정에 있는데 우리 현지사에서 부처님의 삼신설을, 불신관을 완벽하게 세상에 밝혀 놓았습니다. 불과를 증하면 청정법신을 두고 '무아 속 절대세계' 에 빛으로 이루어진 자기 불신을 둔다. 우리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열반한 후 공(空)으로 계합한 것이 아니라 이 우주 진리와 완전히 하나가 된(계합한) 몸을 하나 두었고, 그걸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이라고 합니다. 

내 책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에 무량광 억종광 백종오색광 등 여러 표현을 했습니다. <<화엄경>> <<법화경>> 등의 대승경전에서는 달리 말을 하지요. 억 가지나 되는 빛깔의 광명, 깨끗하고 청정한 부처님 광명 등 이렇게 풀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마는 어쨌든 너무 청정하고 밝아서 우리 사람들이 보면 가루가 되어버릴 만한 그런 빛, 그런 빛을 무량광이라고 합니다. 

그런 빛으로 이루어진 몸뚱이로서 '무아 속 절대세계' 에 계시더라 그 말이어요. 우리 부처님께서 처음 불과를 이루신 때가 3000년 전이 아닙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무량겁 전에 불과를 이루셨답니다. 무량겁 전에 불과를 이루셔가지고 도중에 또 도중에 중생을 구제하시기 위해서 사바세계에 오시고 또 오시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무량겁 전에 불과를 이루신 그 부처님께서 '무아 속 절대세계' 에 그대로 계시더라 그 말이어요. '무아 속 절대세계' 에 빛으로 계시더라 그 말이어요. 그 모습은 32상을 갖추고 한 없이 거룩하고 아름답고, 청정하고 맑고, 능력은 말로 할 수가 없어. 우주와 계합을 했기 때문에, 우주의 진리(우주의 본체)와 계합을 하셨기 때문에 그 능력은 우주적인 능력을 행사하시더라 그 말이어요. 그것을 현지궁 현지사에서 발견한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책에 썼습니다. 지금의 불교는 원래의 불교와 부처님의 말씀이 땅에 묻혀 지고 왜곡이 되어서 왜소화(矮小化) 되어버렸다. 아주 조그마하게 되어버렸다. 원래의 불교는 너무너무도 위대했다. 그 위대한 불교가 왜소화 되어버렸다. 

본래의 불교로 복원해야 되겠다. 그러려면 부처님을 알아야 된다. 부처님이 어떤 분인 줄 알아야 된다. 부처님의 불신, 삼신관을 모르면 우주적인 불교가 아닙니다. 우주적인 불교가 될 수 없습니다. 부처님을 모르면 불교를 알 수 없습니다. 지금 현재의 불교는 그렇습니다. 부처님을 모릅니다. 부처님이 어떤 분인지, 계시는지, 안 계시는지 확신이 없습니다. 지금의 불교는 그러합니다. 대단히 통탄할 일입니다. 

그래서 불교가 세계 여러 종교의 반열로 내려가 버렸어요. 떨어져버렸어요. 다시 복원을 해야 돼. 위대한 불교로 복원을 해야 돼. 그러려면 부처님이 어떤 분이다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부처님의 불신, 삼신을 알아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을 모셔야 되겠다.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은 어떤 부처님인가를 지금부터 세상에 알려야 되겠다. <<화엄경>> <<법화경>> 을 봐도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을 적나라하게 그려놓지 못했습니다. 

 지금 원만보신노사나불하고 혼동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하나 정리를 해줘야 되겠다. 이 발견, 이 불교의 발견, 종교상의 발견은 내가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II >>에서 우리 현지사 큰스님들의 이 위대한 발견을 '코페르니쿠스적인 종교의 혁명' 이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부처님이 계시는 줄도, 안 계시는 줄도 모르는 이 불교, 부처님이 어떤 분인 줄도 모르는 이 불교, 그래서 왜소화 되어버린 이 불교를 복원해야 되겠다. 복원을 해놓으면 어떤 효과가 있느냐? 

이제 수많은 중생이 구원을 받을 수 있어. 수많은 중생이 구원을 받아. 지금까지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어디로 가는지, 거기서 또 어디로 가는지, 큰 성자가 출세하지 않아 올바른 진리를 설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저 감정대로 살았어. 업대로 살았어. 그러다가 죄를 지어. 그래서 저승도 들어가지 못하고 무주고혼이 되어서 살아. 무주고혼의 세계에 대해서도 현지사 만큼 밝혀놓은 경전도 없습니다. 스님이 이러한 근원적인 문제부터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수 백 시간도 필요합니다만 오늘 40분 여러분한테 이야기를 해야 돼.

  그래서 전부 막설(莫說)하고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을 모시는 우리 대적광전은 무슨 뜻이냐? 간단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지금 우리 석가모니부처님의 진불이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이라고 했습니다. 또 다시 말씀드립니다. 이렇게도 말합니다. 

우리 석가모니부처님 이후로 시방에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불과를 증하신 부처님들이 청정법신비로나자불 속으로 뭉쳐요.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이란 부처님은 희유한 부처님이어요. 

우리 석가모니부처님의 법신불인데 모든 부처님들이 청정법신비로자나불로 뭉칠 때가 있습니다. 하나가 되어버려요. 그 불상을 조성해야 되겠다 그거요. 그러면 어떤 일이 있느냐? 

하나의 불과를 증한 부처님의 능력은 어마어마합니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부처님들이 하나로 되어버린 청정법신비로자나부처님을 모실 경우 정말로 대단합니다. 여기는 38선 이북이지요. 우리가 38선 이북에 자리 잡은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현재 분단이 되어 있지요. 만약에 두 번 다시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전쟁이 일어나면 큰일입니다. 큰일이어요. 또 세계도 불안 합니다. 세계 3차 대전이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이때에 38선 이북으로 가서 절을 짓는데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을 모시는 대적광전을 짓자.

  그 다음, <<법화경>> 말씀을 내가 자주하는데 다보불탑을 모셔야 된다. 그러함으로써 우리 세대에 동족상잔이 없고, 이 나라 국운이 융창 되고, 세계가 평화롭고, 공부를 끝낸 우리로서 이 큰일을 하고 가자 한 것입니다. 그래서 대적광전을 돈 한 푼 없이 시작해 가지고 오늘날 이렇게 준공을 본 것입니다. 

돈으로 따지면 수십억에 불과하지요. 그러나 이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을 모시는 대적광전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습니다. 수 천 배도 더되고 만 배도 더 됩니다. 이 대적광전을 일러 어느 학자가 '지구촌 보물1호' 라고 했습니다. '지구촌의 보물 1호'.

  청정법신비로자나부처님께서는 항상 상적광세계에서 삼천대천세계 안팎을 항상 비추고 계십니다. 항상 비추고 계셔. 큰 해와 같다고 해서 대일(大日)이라고 하는 거요. 청정법신비로자나부처님을 '대일여래' 라고도 합니다. 

해(날) 일(日)자, 대일, 큰 해. 해와 같은 빛 덩어리라고 해서 '대일여래' 혹은 '비로자나불' 이라고 합니다. 비로자나라고 하는 것은 광명변조 그래. 빛 덩어리가 비춘다 그 말이어요. 삼천대천세계 안팎을 비춘다 그거요. 그걸 광명변조라 그래. 그래서 바이로자나 또는 비로자나 그래.

  비로자나부처님, 모든 부처님이 저 비로자나부처님 안으로 합일이 된단 말이에요. 뭉쳐버려. 흡수가 되어버려. 그럴 때가 있어. 그렇기 때문에 우리 집 대적광전에 들어가면 좌우보처도 없고, 후불탱화도 없고, 성중탱화도 없어. 우리 부처님 한 분만 덩실 계셔. 비로자나부처님이기 때문에 그래. 비로자나부처님께서 뜨실 때에는 극락세계 아미타부처님도 비로자나부처님 속으로 흡수해 들어가 버리고, 사바세계를 보살행하고 계시는 문수 · 보현 · 관음 · 지장부처님도 비로자나부처님 속으로 흡수되어 들어가 버리기 때문에 그 때는 없어. 지금 다보탑 속에 계시는 다보부처님도 우리 석가모니부처님 다음으로 두 번째 불과를 이루신 지존이시어. 저 분도 부처님 아들이어. 

그렇기 때문에 청정법신비로자나부처님 속으로 들어가셔. 이렇게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은 모든 부처님이 속으로 들어와서 녹아버린 우주적인, 모양이 없는 부처님이다 그거요. 모양이 없지만 생명력은 우주적인 능력을 다 쓰고도 남아. 그런 부처님이셔. 그런 부처님을 우리가 모셨어. 그런데 점안을 안 하면 아무 효용이 없어. 

우리나라에도 대적광전이 많아. 대본산마다 대적광전이 있을 것이고, 아마 상당수의 본사에서 건립하고 있어. 다 모시고 있어. 

그러나 점안(點眼)이 안 되어 있어. 점안은 불과를 증한 분외에는 할 수가 없어. 벌써 오늘 아침8시~9시 사이에 점안을 훌륭하게 마쳤습니다. 그래서 다보탑이 땅속에서 솟아난 거요. 지금 <<법화경>> 법화학자들은 <<법화경>> 을 설할 때만 다보탑이 땅속에서 솟아났다 그럽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남섬부주뿐만 아니라 다른 불국토에 가서 큰 법을 설하실 적에 다보탑이 솟아나는 거요. 그래서 증명합니다. 우리 부처님께서 설하신 진리의 말씀은 옳다고 증명하는 거요. 그래서 다보부처님은 보살 이름이 '증명보살' 입니다. 

법을 설하시고 할 때만 솟아나신 것이 아니어. 이 남섬부주에 새로이 불과를 증한 분이 나오면 솟아 나와서 "불과를 증한 것은 확실하다" 하고 증명을 하셔. 오늘은 우리 현지사에서 대적광전을 짓고 대적광전에서 청정법신비로자나불 점안을 딱 했어.

  "이제 됐다. 나 다보불이 증명한다. 진짜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이 맞느니라" 하고 증명하신 거요.

출처/2008.11.12.수 현지사 자재만현큰스님 법문 중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