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6일 일요일

우물 안 개구리 井底之蛙

 우물 안 개구리 井底之蛙


붓다의 경지에 오른 분은 마치 높은 산의 정상에 우뚝 선 것과 같습니다. 산 정상에 오른 이는 그 밑 중턱과 아래 모두를 보고 압니다. 그러나 산 중턱까지만 오른 이들은 그 위쪽과 산정山頂을 모릅니다. 상품보살도 무아 속 절대계에 계시는 깊은 적멸의 부처님들의 빛 세계를 알지 못합니다.


하물며 외도의 신들이, 설사 하늘 신神 가운데 왕이라 할 수 있는 그들의 수장首長들이라 해도 부처님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습니다. 절대 알 수 없습니다.


영성에 관한 책들 중에 히말라야 깊은 산에서 몇 백 년을 수행하고 있는 이들이 예수를 만나고 붓다부처님를 만나 뵙는 장면이 나옵니다. 나는 여기서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절대계에 계시는 부처님은 원만보신 노사나불이십니다. 그 분은 항상 108쪽 빨강 가사에 황금색 장삼, 말끔히 머리 깎으시고 8고리 석장을 드십니다.

부처님의 변화신경험세계에 나투시는 몸 역시 그러하십니다. 삼계의 왕이시기에 항상 위엄을 갖추십니다. 화신불 역시 그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그 책자에 나오는 붓다는 천마의 변화신일 뿐인 것입니다. 나의 이 말씀은 진실임을 강조합니다. 천마의 변화신을 붓다인 줄 알고 거룩하신 우리 부처님을 낮추어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우리 중생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하십니다.


1975년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종교지도자대회에서 힌두교의 성인이 기조 연설한 내용 중의 일부입니다


“A라는 개구리는 어떤 우물 속에서 태어나 쭉 거기서만 살고 있었답니다. 어느 날 바다에서만 살던 B라는 다른 개구리가 육지에 기어 올라왔다가 그 우물에 빠졌습니다.


A: 너는 어디에서 왔니?


B: 바다에서.

A: 바다는 얼마나 크냐? 이 우물과 같으냐?


B: 바다를 이런 좁은 우물과 비교한단 말이냐?


A: 이 우물보다 더 큰 세상은 있을 수 없다. 이 거짓말쟁이야. 어서 썩 나가지 못해!“


우리 사람들은 모두가 자기 나름대로의 우물 속에서 살고 있으면서 그 우물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종교인은 종교인대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며, 무종교인은 무종교인대로 그러합니다. 기독교는 기독교대로 자신의 우물에 빠져있으며, 선불교는 선불교대로 자신만의 우물에 빠져있습니다. 과학은 과학대로 그러합니다.


몇 사람의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들이 코끼리를 만져보고 평을 합니다. 코끼리 다리를 만져본 맹인은 기둥 같다 합니다. 코를 만져본 이는 밧줄 같다 하고, 귀를 만져본 사람은 큰 부채 혹은 키곡식 따위를 까부르는 도구 같다 하고, 배를 만진 이는 벽과 같다고 우깁니다. 부분만을 접촉하고, 그 전체를 파악할 수 없는 것인데 그들은 각자 자기들의 견해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여러 종교들 역시 다른 종교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일부분만을 알고 자기들이 제일이요, 남의 종교는 모두 이단이요 사탄이라 합니다.


장자莊子 추수편秋水篇에 우물 안 개구리를 찾은 동해거북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개구리가 자신을 찾은 동해바다의 거북을 만나 말합니다. “나의 우물 안 생활은 너무도 즐겁다네. 나는 우물 난간에 폴짝거리며 노닐다가 피곤하면 깨진 우물 벽에 들어가 쉬고, 물속에서는 겨드랑이께로 헤엄치다 피곤하면 턱을 물 위에 내놓고 쉰다네. 우물을 독차지한 즐거움이란 더할 나위 없는 것. 자네도 이리 와서 한 번 둘러보게나.”


그 권유에 따라 동해의 거북이가 우물 속으로 왼쪽 발을 내려놓았지만, 채 내려오기도 전에 오른쪽 무릎이 걸려버렸다. 발을 빼낸 거북이는 미안해하며 바다에 대해 이렇게 들려줍니다.


“바다는 천 리로도 그 넓이를 재지 못하고, 천 길로도 그 깊이를 가늠하지 못한다네. 9년 동안 홍수가 쏟아졌지만 물이 불어나지 않았고, 7년 동안의 가뭄에도 물이 줄어들지 않았지. 시간이 흘러도 그만, 물이 들어오고 나가도 그만이라. 이것이 바다의 큰 즐거움이라네.”


이 말을 듣고 우물 안 개구리는 깜짝 놀라 얼이 빠져버렸습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2권

부처님 회상_ 백천만겁 난조우百千萬劫難遭遇

 부처님 회상_

백천만겁 난조우百千萬劫難遭遇

사랑하는 현지궁 현지사 불자 여러분!

다겁생을 내려오면서 우리는 가끔 지중한 죄업을 짓습니다. 업장이 될 큰 죄를 지으면 다섯 가지 과보인 무주고혼보, 지옥·아귀·축생의 보를 받고, 인간이 되어 와서도 그 습기과習氣果 때문에 낫기 어려운 업병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로 고통을 받습니다.

죄업을 더 이상 지어서는 안 됩니다. 업을 짓는 것을 무서워해야 합니다. 과거 생에 지은 업이 두터우면 가지가지 마장 때문에 부처님 공부도 진척이 없습니다.

설사 학문이 깊고 고관대작으로 살아 당대에 명성을 드날린다 해도 깨끗이 살지 못하여 청정하지 못하고, 오히려 십악을 짓고 살아 그 영혼이 깨끗하지 못하다면 우리는 이런 사람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사람의 미래는 없습니다. 악도에 떨어져 길이 윤회할 것입니다.

출가한 승려들이 승려 본분에 충실하게 살아야합니다. 승려답게 살아야합니다. 자력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업장을 일부 정화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소멸할 수는 없습니다. 열심히 공부하면서 보살도를 실천해가야 합니다.

절대계에 계신 부처님을 믿고, 그 위신력을 믿고 부처님을 공경하고 공양드리면서 염불하며 팔정도로 살아야합니다. 이 좋은 기회, 백천만겁 난조우입니다. 

붓다 회상을 만났을 때 선근 공덕을 짓고 다겁생의 업장을 소멸 받아 무주고혼을 면하고 지옥보와 축생보도 끊고 아귀보에서도 벗어나 최소한 하늘 천상에 나야합니다.

그곳만 해도 중생계에서 볼 때는 극락입니다. 그러나 더 나아가 성중하늘에 나고 아라한이 되어 윤회를 벗어나고, 그리고 왕생정토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2권 15장 中

화엄 용신_108번째로 불법에 귀의하다/화엄 인비인신人非人身




화엄 용신_108번째로 불법에 귀의하다



우리 부처님 교단에 108번째로 불법에 귀의한 용신에 대해서 대강 설명을 하겠습니다. 태국이나 아프리카에는 서까래와 같이 길고 크기가 한 아름되는 구렁이가 많습니다. 그들 구렁이는 수백 년을 사는데 몇몇 구렁이는 도중에 신통을 얻어 마음대로 자기 몸을 감추어두고, 영체가 몸뚱이 속을 빠져나가 중음계에서 하나의 인격체로 활동하는 의생신意生身을 얻습니다. 이들 의생신들은 둔갑하는 신통 조화가 있습니다.
이 용신이 사람들에게 들어갈 때 여자는 자궁으로, 남자에게는 입으로 빙의해 들어갑니다. 한 번 빙의하면 떨어지질 않습니다. 놀라운 일은 용신에게 빙의된 사람들은 죽으면 뱀독사, 구렁이 지옥을 가고, 축생으로 올 때도 구렁이가 됩니다.

사람 몸을 받아와도 그 사람이 영체에 표식을 해놓기 때문에 용신이 또 빙의하게 됩니다. 미래제가 다하도록 그렇다 합니다. 특히 용신에게 빙의되면 몸 여러 부분이 이상하게 아픕니다. 몸뚱이가 근질근질하고 몸이 차갑고 정신이 몽롱하며 신기 있는 사람처럼 무언가 눈에 보여 아는 소리, 헛소리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우리 현지사에서는 조상 천도재를 통해 이런 여러 명의 환자를 낫게 한 바 있습니다. 여기 한 실례를 들겠습니다.

2008년 O월, 50대의 한 여인이 입술이 톡톡 쏘듯이 따끔거리고 입과 코가 조이며, 목 앞쪽, 양 귀밑에 무엇이 무겁게 붙어서 열이 날 때가 있고, 목 뒤쪽도 화끈거리며 조인다고 호소해왔습니다.
가슴, 명치끝도 터질듯 아프며 눈도 침침하고 머리도 아프고 손발이 저려오기도 하고, 자궁에서 무엇이 움직이며 밑으로 빠질 듯 하다합니다. 목 안엔 작년부터 염증이 자주 생긴다고 하면서 살려달라 애원해왔습니다.

이 여인은 현지사에서만 조상 천도재를 5번이나 올렸습니다. 천도재란 중음계와 삼악도에 떨어진 조상영가를 보다나은 영계로 천도해 주는 의식입니다.
그래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대개 어떤 이상한 아픔이 계속되는 경우 천도재로서는 안 되는 무슨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현대 의학으로도 안 됩니다. 지독한 원결 영가라든가 용신, 사신의 빙의라든가, 못된 하늘 천마가 빙의돼 있든가 여타 고약한 신의 무리가 붙어있는 것입니다. 혹은 과거 생에 지중한 죄업으로 무간지옥에 있다 나온 이들은 몇 생을 다병多病하거나 불구의 몸으로 삽니다.

붓다 회상을 만나지 못하면 그 업을 소멸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선 우리는 부처님 공양을 올려보자 하고, 삼매에 들어 부처님과 함께 살폈습니다. 과연 자궁에 크나큰 구렁이가 들어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무량광 빛으로 그 여인의 뱃속 이물질 즉 구렁이, 뱀의 새끼와 알까지도 모두 아래로 씻어 내리시고 약사여래부처님께서는 약사궁의 깨끗한 피로 교체해주셨습니다.

다시는 그들이 빙의하지 못하도록 조처이것은 밀장임도 하셨습니다. 이제 괜찮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 여인은 남편과 함께 공양에 참석하였는데 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그동안 병원이며 한의원이며 큰 절에 가서 천도재, 기도를 많이도 했다 합니다. 이제 이 단월은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화엄 인비인신人非人身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 청중의 일원으로서 여러 대승경전에 인비인人非人이 나옵니다. 영산 당시 부처님께 귀의한 인비인 말고도 수많은 인비인 중에서 얼마 전에 우리 현지궁 현지사로 귀의한 절대 다수의 인비인人非人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며칠 전 삼매에 들어 우리 교주 불 세존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안보에 대해 크나큰 변괴의 조짐을 감지하고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과연 영적으로 심각한 일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크나큰 신통을 지니고 있는 오만五萬의 인비인들이 남북관계를 위험한 상황으로 몰고 가기 위한 음모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중략

진실로 우주적인 능력과 힘을 지니신 부처님께서는 그들 모두를 삼매화三眛火로 포위, 그 삼매화의 화력을 수억 도數億度로, 강도를 수백억 볼트Volt로 더해가며 조여들어갔습니다. 부처님께선 이러한 불교 역사에 알려지지 아니한 우주적인 힘이 있으십니다.

그런데 저들 인비인들의 신통 중에는 바다를 옮기고, 태산을 던질 수 있는 그런 힘이 있습니다. 여타의 비장한 무서운 신통도 있지만 부처님께서는 천상천하에 견줄 수 없는 지존으로서 저들의 무서운 파괴력을 무력화시키고 저들 모두와 외도하늘 전부를 잿더미로 만들 수도 있는 그런 부사의한 삼매화로 서서히 조여 들어갔습니다.

인간 세상의 전쟁의 원인은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그 시대를 사는 민족, 인류의 공업에 따라 일어나지만, 보이지 않는 배후에 주로 전쟁을 좋아하는 무주고혼귀신들이나 신들의 다툼 혹은 계략에 기인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104위 화엄성중, 신중을 부리는 부처님의 위신력을 이끌 수만 있다면 전쟁은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때 급히 절대계의 광명불께서 부처님 앞에 현신 부복하면서,
“부처님, 왜 저 수만의 생령을 죽이려 하시옵니까?”
하고 이유를 물을 때였습니다. 여기 광명 만덕 큰스님의 화신육신속에서 튀어나온 영체가 자기 본신本身인 광명불로 계합하려 하는 찰나, 저 5만의 인비인들이 일제히 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 가섭님이시다, 우리들의 절을 받으소서!”

순간 모든 의혹은 사라졌습니다. 어느 전생에 5만의 인비인 모두가 가섭의 은혜로 사지死地에서 살아나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보은報恩의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린 그들이었습니다.

3개월 전, 경기도 어느 40대 여인의 5번째 천도재에 친히 그 여인의 소망을 해결해주기 위해 삼매에 드신 큰스님 - 천도재를 4번이나 올렸어도 무엇 하나 되는 일 없고 매사가 꼬여간다 하여, 혹 원결 영가나 고약한 하늘신천마이 빙의되지 아니했나 싶어 그 날 천도재 때 삼매 속에서 살펴보기로 하신 것입니다.

과연 그 집은 눈雪과 얼음으로 완전 뒤덮여 있었습니다. 눈을 모두 치우고 나서 다시 살펴보니 이 여인에게 붙어있는 사람인 듯 귀신인 듯 어찌 보면 짐승말의 형상을 한 사람 모습인 듯 묘하게 생긴 사람 키보다 더 크고 건장한 하늘 신그들의 절하는 모습은 마치 개구리가 납작콩 달라붙는 모양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를 해코지 한다고 느꼈던지 만덕 큰스님께 공격해옵니다. 입으로 불을 뿜더니 안 되겠다 싶어 독가루를 날리다 그것도 소용없다는 걸 알고 독침으로 공격을 해옵니다.

큰스님은 그 모두를 무량광을 내어 방어한 후, 잽싸게 그놈을 물건 집듯 집어 지옥 불에 던졌습니다.

지장보살님께서는, 광명 만덕 큰스님께서 일처리하시는 것을 가만히 보고 계시다가 번개같이 그 인비인을 받아 지장궁 대기실에 구금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천 년에 하나, 만 년에 하나, 겁에 하나 출세하는 붓다를 지키기 위해 제자의 앞을 가로막거나, 죽이려드는 자가 있다며 이때만큼은 절대 용서치 않습니다.

화광삼매로 조여 들어갈 그 당시에는 인비인들은 모조로 태워 죽일 것만 같은 기세였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겁만 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죽일 수는 없습니다. 불교의 첫째 계명은 불살생이기 때문입니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몇 가지 우주적인 불가사의한 힘을 지니십니다. 물론 우주 법계의 외도 전부를 잿더미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그 5만의 인비인 모두가 미래제가 다하도록 부처님 법에 귀의할 것을 서약하고, 우리 영산불교의 교단을 위해 몸을 가루로 만들어 바칠 것을 부처님 앞에서 서원했습니다. 109번째 화엄 신중으로 편입이 된 것입니다.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그들 모두 머리가 깨끗이 깎여지고 부처님께 직접 하사받은 밤색 옷을 입고서는 무척 좋아라합니다.

오늘 아침 새벽 예불공양시간에 화엄 인비인신을 초대하니 너무도 좋아하며 그들 특유의 춤을 추는 것이었습니다. 지장보살님께서는 그 15번째 상급자 인비인을 풀어 주셨습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2권



용신, 인비인신人非人身/104위 화엄성중

  용신, 인비인신人非人身


사람인 듯 귀신인 듯 어찌 보면
말馬의 형상을 한 듯 묘하게 생긴
사람 키보다 더 크고 건장하며
절하는 모습은 납작콩 달라붙어 하는 하늘 신 -
바다를 옮기고 태산을 던질 수 있는
그런 큰 신통력을 지닌 5만의 동아리들이
109번째로 현지궁에 귀의하다.

수백 년을 산 구렁이가 신통을 얻어
의생신으로 활동하다,
둔갑하여 신통 조화를 부리는 용신의 집단들이 현지궁에 108번째로 귀의하다.
우리 교주 불 세존의 진실한 정법을 외호하는 104위 화엄성중·신중이 있어, 이 호위 군단으로만 보아도 불교는 대단히 힘 있는 종교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을 이해하고 믿는 수효가 극소수임을 감안해 볼 때 오늘 날의 불교는 건강하다 볼 수 없습니다. 기껏 수박의 겉만을 핥아 본 자가 오히려 그 맛을 다 아는 것처럼 행세합니다. 불교의 문턱에도 들지 못한 이들이, 불교를 아는 것 같이 행동합니다.

인간 영혼의 실체를 잘 모르고, 윤회의 주체를 모르고, 그리고 공空·무아無我에 대한 잘못된 해석으로, 인과를 부정하고 육도 윤회를 믿지 않고 따라서 윤회 밖 정토를 부인하고, 절대계에 계시는 붓다들을 부정합니다.
여기에서 비롯된 일부 불교인들의 행동이 건전한 상식을 가진 일반인보다 못함을 볼 때 슬픔을 금할 수 없습니다.


104위 화엄성중

경에 나오는 여러 종류의 신들은 모두 대상으로서 존재합니다. 팔부신장도 있고 제석천왕과 사천왕도 있고, 용왕들과 염마왕도 있습니다. 이들은 보살과 성중들입니다. 가루라, 긴나라 등 팔부중도 있고 주방신, 주해신, 주풍신, 토지신, 주조신조왕신, 오행신금목수화토…… 이들은 하늘 신들입니다.

이들은 부처님 법에 귀의하여 104위 화엄성중·신중으로서 불법을 외호하고 있습니다. 유유상종이라는 말같이 이들 각 위位)는 수많은 같은 류類 혹은 수하 신들로 뭉쳐진 세력 집단입니다. 년 전年前에 우리 영산불교 현지궁 현지사에 귀의한 용신만 해도 집단의 동지들이 360만을 넘는다 합니다. 그러고도 꾸준히 자기들 세력을 확장하고 있답니다.

이렇듯 법계에는 주인이란 없습니다. 굳이 공空의 주인을 들자면 부처님이 주主이시오 법왕이십니다.

천지 이전의 소위 한 물건一物, 공 I AM은 비인격적 이법입니다. 그 비인격의 이법·공과 하나로 완전 계합한 인격체가 바로 부처님이십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우주적 능력이 있으십니다.



출처/영산불교 현지사 




왜 영산불교인가?

 왜 영산불교인가?


-21세기의 대안은 영산불교다!
현지궁 현지사는 절대계 부처님 나라의 기운과
지기地氣가 맞닿는 사바세계 유일한 성지입니다.
영산 당시 부처님의 두 상수제자가
이 땅에 와서 불과를 증하고
정법을 펴나가고 있습니다.

삼계의 왕 남섬부주 교주이신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상주하시고,
약사부처님, 문수보살, 관음보살,
지장보살, 준제보살이 상주하십니다.

영산불교 현지궁에서는 사람들 모두가 금생에 더 잘 살고, 다음 생도 잘 살며 죽어서 지옥, 축생 등 악도에 떨어지지 않으며 윤회생사에서 벗어나고 나아가 정토보살이 되고, 붓다가 되도록 이끌어 교화합니다.

이곳 현지궁 현지사는 절대계 부처님 나라의 기운과 지기地氣가 맞닿는 사바세계에서 유일한 성지입니다. 불과를 증득할 대성자가 날 터전이라는 것입니다.

과연 2600여 년 전 영산 당시 부처님의 상수제자 대가섭과 아난이 이 땅에 와서 불과를 증하고 정법을 펴나가고 있습니다. 삼계의 왕 남섬부주 교주이신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상주하시고, 약사부처님, 문수보살, 관음보살, 지장보살, 준제보살……이 상주, 현신하십니다.
매일 아침 네시 반경 많은 불 보살님들이 이곳에서 공양을 드십니다. 부처님 이래 처음 있는 희유한 일입니다. 어느 누가 이 경천동지할 사실을 꿈엔들 이해하겠습니까? 그러나 필자는 이 책 처음도 중간도 마지막도 진실만을 말하고 있음을 강조해 둡니다.

절대계에 불과를 이룬 부처님들이 여여히 계심을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서 설파한 바 있습니다. 이는 역사상 처음 있는 파천황적 선언인 것입니다.
불과를 이룬 모든 부처님들은 진리의 몸을 상적광 절대계에 두십니다. 이 몸을 법신불이라 합니다. 무형이라고 말할 수 있으면서 우주적인 빛덩이 몸입니다. 분별을 떠난 지혜의 몸입니다.
동시에 무아 속 절대계에 부처님들은 각기 32상의 유형의 몸을 두십니다. 보신불이라고 하는 지복의 불신입니다. 보신불은 상모 거룩하시고 빛의 빛인 무량억종광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법신불이 육체적인 형태를 띠고 있는 것입니다.

신神은 천千의 머리를 지녔다 합니다. 그러나 보신불이라는 불신佛身은 필요하다면 백이고 천이고 억이나 되는 자기의 화신불을 나툽니다. 그래서 항하사의 신통 묘용으로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불연국토佛緣國土 인연 중생을 교화하십니다. 이는 백천삼매를 넘어선 대적정삼매라고 하는 삼매의 힘으로 되는 것입니다. 보신불은 지혜와 자비 그리고 공덕을 구족하고 있습니다.

부처님들은 인간 사바세계에 응화신으로 오시기도 합니다. 사람 몸을 받아 시들어가는 정법을 일으켜 바른 불교를 선설宣設하시고, 많은 제자를 양성하며 삼악도의 중생을 건지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고, 반열반에 들어 그 심의식心意識은 자기 보신불과 하나로 흡수 계합하시는 것입니다.
인간, 만물, 하늘, 땅 등 이 우주가 생성되고 진화하다가 소멸되는 것은 자연의 섭리 때문입니다. 힘과 자연의 법칙입니다. 다시 불교적으로 말하자면 인과의 법칙, 소위 카르마Karma의 법칙입니다. 인과와 인연의 도리인 것입니다.

이 우주의 이법을 노자는 도道라고 했고, 공자는 천天, 힌두교에서는 범梵, 기독교 등 일신교에서는 창조주 하느님여호와, 알라, 불교에서는 공, 마음이라 합니다. 그런데 이 법은 어디까지나 비인격적입니다. 이것을 인격으로 하여우상화하다 보면 수백 수천 가지의 모순이 생깁니다. 법을 왜곡하게 됩니다. 이 이법, 공, 마음을 기독교 등에서는 영원불멸하고 우주에 편만한 스스로 있는 자존자, I AM이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여기서 확실히 해둡니다. 이 우주의 이법은 하느님 이전에, 부처님 나기 이전에 이미 있었던 것입니다. 이 이법은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변괴 될 수도 없는 영원한 것입니다. 우주가 생성되고 소멸되는 것과는 상관없이 시공 이전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시공을 초월해 있습니다. 또한 이것은 생각 이전입니다. 생각이 없습니다. 분별이 없습니다.

따라서 우주를 창조하고 모든 것은 기획하는 그런 뜻 - 의자라는 것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조화와 사랑, 힘, 지혜, 완전, 절대의 기氣입니다. 기氣이면서 이법理法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2권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