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22일 수요일

무량광_억종광, 백종오색광, 대열반광

무량광이란

무량광이란 깨끗하고 청정한 부처님 광명을 말합니다. 두 눈썹 사이에서, 두 발바닥 법
륜무늬에서, 온 몸에서 방사하는 억종광億種光, 열반광涅盤光, 백종오색광百種五色光입니다.

≪화엄경≫ 등 대승경전에서는 이를 티끌 수 같은 광명, 아승기 나유타 광명, 백천억 묘
한 빛 광명…… 으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이는 안팎이 없이 드러나는 아름답고 영롱한
빛입니다. 한없이 방광해도 끝이 없습니다.

중생들의 앞에 있어도 그들이 볼 수 없는 희유한 빛입니다. 그리고 밝기는 섬광 이상입
니다. 중생이 보게 된다면 가루가 돼 버릴 부사의한 부처님 광명입니다.

자성‧진여의 광명부터는 태양빛과 달라서 밝고 어두움, 멀고 가까움, 땅 속, 물 속, 사람
들의 마음 속까지 비추는 것입니다. 특히 무량광부처님광명은 부처님의 우주적인 힘이
뒷받침되는 지혜의 빛입니다. 삼천대천세계 어디라도 비출 수 있고 천마, 외도 수장
모두를 조복할 수도 있고 중생의 업장을 씻고 소멸할 수도 있습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Ⅱ 中에서 발췌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무량광을 보고 붓다를 이루는 과정

이뿐이랴! 큰스님께서는 더 상세하고 자상하게 무량광을 보고 붓다
을 이루는 과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이 수행승은 공부 중에 무량광을 봅니다. 그런 다음 또 하나의 큰
관문을 거쳐서 자기를 찾아온 많은 부처님들을 뵙고 직접 법문을 듣게
됩니다. 거룩하신 부처님들의 법문을 듣고 공부를 지도 받는 것입니다.
보다 자주 깊은 삼매에 들어가서 붓다로서의 공부를 마치게 됩니다."

큰스님께서 법회에서 설법하신 바에 의하면 또 하나의 큰 관문은 바
로 육종진동을 맞아야 된다고 하신다. 그래야 부처님의 법문을
들을 수 있으며 지도를 받아 보다 깊은 삼매에 자주 들게 된다고 말씀
하신다.

여기서의 가르침은 서양의 신지학에서도 거론되는 이야기이다.
즉, 서양의 뉴에이지 문명과 신비주의 학파의 구심축을 이루는 신지학
에서도 수행자가 정신계의 스스로부터 공부를 배워야 수행이 무르익고
열매를 맺는다고 하였다.

큰스님의 법 세계는 이미 서양의 정신 세계의 흐름과 위상을 근원적
인 측면에서 포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불교는 전 세계의 모
든 수행 문화의 지조이자 원류라고 할 수 있다.

큰스님의 불신사상에 대한 법 세계가 얼마나 원대하고 통합적인지는
다음의 가르침을 보면 잘 해의할 수 있다. 즉 큰스님께서는 "불과를
이룬 이의 4개의 영체는 각기 독립해서 분리하여 활동합니다. 바람과
도 같이 이 거짓몸뚱이에서 빠져 나와서 말입니다. 죽을 때는 4개의
영체가 자기 불신, 부처님 세계에 있는 자기 불신과 하나로 계합합니
다. '지복의 몸'과 하나가 됩니다. 그 불신원만보신은 무아 속 절대세
계, 즉 상적광토에 청정 법신을 둡니다. 자기의 법신, 곧 '우주적인 몸'
을 둡니다. 이제 우주 자체시공을 자체화함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원만보신의 세계를 밝히신다.

신지학에서 에텔체, 아스트럴체, 멘탈체, 코절체로 일컫는 4대 영체
의 존재 의미를 그 어떤 문헌이나 서적보다도 극명하게 설하신다. 즉
4대 영체의 존재 의미는 불신과의 계합을 위해서이며, 4대 영체가 경
험한 모든 인생 도정의 공부 내용이 불신 속으로 녹아든다는 사실이다.

이 얼마나 미증유의 사실이며 심오한 법 세계인가 말이다. 우리의
영혼체는 사바세계를 통해서 리모털(재운명화)의 과정을 겪어가
면서 새로운 배움과 체험을 얻는다. 하지만 그러한 배움과 체험이
죽음으로써 모두 허망하게 끝난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 수행자
들의 세계이다.

하지만 큰스님의 법문을 잘 해의하면 그렇지 않음을 여실히 알 수
있다. 즉, 불과를 이루게 되면 배운 내용을 가지고 간다는 것이다. 바
로 지복의 몸인 원만보신에 보존된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휼륭한 가르침이 아닌가 말이다! 이는 정말 가히 큰스님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경천동지의 사자후가 아닐 수 없다.

하이테거가 이야기한 바처럼 인류의 무수히 많은 역사를 통해서 면
면히 내려오면서 우리는 끊임없는 내적 투쟁을 해왔다. 무엇을 위해서
내적 투쟁을 해왔단 말인가?

만약 큰스님이 안 계셨다면 우리는 불신사상, 즉 붓다의 삼신불에
대해서 알 수도 없고 제대로 파악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인류가 유구한 역사 이래로 내적 투쟁을 해온 이유를 몰랐을 것이다.

아니 전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답은 나왔다.
인류가 유구한 역사를 통해서 내적 투쟁을 해 온 것은 다름 아닌
영원한 생명으로서의 우주적인 몸을 구현하기 위함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이다.

재삼 강조하는 바, 이는 가히 큰스님이 친히 증험한 붓다의 경지가
아니고서는 어는 누구도 친히 설할 수 있는 법문이 아님을 우리는 명
각해야 할 것이다.

무량광은 본원광이요, 부처님 광 다음의 불신에 대한 말씀은 법성으
로서의 자성광과 구별하여 무량광을 밝히고 계신다.

"불신보신은 '지복의 몸'이라 하겠습니다. 지혜와 복덕을 완전 구족
하기에미래제가 다하도록 진락을 누리기에그런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청정법신 곧 '전우주적인 몸'이 육체적인 형태를 띠고 경험세계 속에
반영된 몸이 바로 불신입니다.

부처님의 몸, 곧 불신은 거듭 말씀드리지만 엄청난 광도를 지닌
무량광으로 이루어집니다. 무량광은 우주의 근원인 빛(성광)이 아
니라 그것의 본원(엑기스)광이요, 부처님 광입니다."

자세히 이 말씀을 해의해 보면 상당히 심원한 가르침들이 녹아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원만보신은 유시무종으로서 미래제가 다하도록 진락을 누린다는 점,
둘째 원만보신은 청정법신의 육화된 형태로 경험 세계에 반영된 몸이라는 점,
셋째 견성이나 깨달음을 얻은 후 드러나는 자성광이 아니라 자성광의 본원광인
부처님 광이 바로 불신이 발하는 무량광이라는 점이다. 자성광이 나무의 한 조각
잎파리라고 하면 무량광은 바로 나무의 중심 줄기가 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큰스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불신을 얻지 못하면
붓다가 아니며 사바세계에 한 분의 붓다가 나오려면 삼계왕이신 석가
모니부처님의 선택이 있어야 합니다. 주로 선근 보따리가 붓다 되기에
충분한 수행승이 낙점됩니다. 선택된 이가 바로 상품상의 보살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사항은 첫째, 불신을 얻어야 붓다가 된다
는 사실이다. 기존 선불교에서는 부처는 마음이고 마음이 부처
라고 한다. 그렇게 불교의 위상을 격하시키고 실추시켰다. 또한 선불교
는 위빠사나 명상, 안반수의(아나파나시띠), 염불선 등 다양한 불교 수행
체계를 외면하고 오로지 간화선으로 불교 수행체계를 정형화시키고
박제화함으로써 불교의 지고지순한 생명감을 멸실시키고 말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에 큰스님께서는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서 분연히 붓을 들으신 것이다. 우리는 이 점 큰스님께 깊은
감사를 드려야 할 것이다.

둘째, 붓다가 되기 위해서는 선근 보따리가 중요함을 여실히 강조하
고 계신다. 수행자가 우주적으로 무한한 선근을 지었을 때 붓다가 될
수 있다는 점, 매우 합리적이고 보편 타당한 가르침이다.

하지만 큰스님이 아니 계셨다면 우리는 이 점을 명료하게 알지는 못
했을 것이다.

셋째, 상품상의 보살이 붓다 되기 위한 후보가 된다는 점이다.
큰스님 말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는 하나 수행 비결 내지
수행 요결이 아닌 것이 없다.

출처/ 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영산불교사상연구소



부처님의 깨끗하고 청정한 무량광명 빛_억종광,
백종오색광, 대열반광

≪10만송 반야바라밀다경≫에는 여러 페이지Pages에 걸쳐 붓다보신불 몸의 각 부분들에 대한 묘사가 등장합니다. 그의 머리, 양손, 두 발 심어지 열 손가락에서 빛이 방사되어 세계 구석구석까지 도달한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이 경에서는 전 우주적인 몸이 육체적인 형태를 띠고, 절대계에 반영된 32상 80종호를 갖추고 있는 지복의 몸보신불을 그리고 있습니다.

보신부처님에 대한 신체상의 거룩한 특징과 깨끗하고 청정한 억종광명 빛으로 이루어진 불신에서 대적정삼매의 힘으로 빛을 방사하시는 희유하신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무를 초월한 무아 속 절대계에 여여히 계시는 붓다님들의 불신은 무량광명‧억종광명‧대열반광명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누차 법문한 바 있습니다.

붓다는 그 티끌 수 같이 많은 색깔의 광명을 마음대로, 가령 단색으로든 오색으로든 억종의 색깔로든 필요한 용도에 따라 방사할 수 있음은 물론입니다. 안팎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투명하고 영롱한 광휘를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원광圓光과 배광背光 - 신광身光 역시 임의로 크게도 작게도 하며 광도를 천문학적 수준으로 밝게 할 수도 있습니다. 불신 그대로가 억종광명의 빛덩이가 되기도 합니다. 어떠한 외도의 수장들도 붓다의 억종광은 흉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도 원광, 배광, 신광을 냅니다. 그러나 외도의 빛은 투명하지도 않고 단색일 뿐입니다.
붓다는 완전한 빛의 존재이십니다. 그것도 투명하여 예쁘고 청정한 백종오색광명 자체인 것입니다.

외도의 수장首長들이 인신을 받아와서 그들의 최고 수행을 통해 허공에다 빛으로 된 자기의 체외신體外身_허공신, 양신을 둘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체외신은, 밀교 바르도의 보신정광명과 화합한 의생신과도 같이 정법佛法의 진정한 보신은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허공이나 바르도 중음계中間界는 시공時空 안의 공간입니다.

시공을 초월한 무아 속 절대계, 곧 연화장세계에 두는 무량억종광명으로 이루어진 붓다의 지복의 보신과는 천지 차이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주에 편만해 있는 대생명, 공, I AM - 과 계합, 합일한 붓다는 그 공空 속에 있는 우주의 무진장한 보물을 내 것으로 했기 때문에 항하사의 신통 묘용으로 이를 화학적으로 조합해서 무엇이든지 만들어낼 수 있으십니다.

이번 음력 7월 칠석절에 치성광여래부처님께서 우리 현지궁 현지사 1,000여 명 신도분들에게 감로수 병에 위신력으로 만드신 안팎이 투명한 알약 한 알씩을 넣어주셨습니다. 번뇌를 줄이고 몸의 병을 치유하는 약을 그곳 정토의 감로수에 넣어주셨습니다.

부처님 세계는 100% 내외명철內外明徹_안팎이 없음한 억종광명의 세계이기에 거기 존재하는 붓다의 궁宮, 금강좌, 컵과 같은 기물, 알약 등 모두가 안팎이 없이 투명합니다. 그대로 상적광의 세계인 것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불 보신 _억종광의 불신, 지복의 몸
 
나는 이제 부처님에 대해 법문을 하고자 합니다.
모두들 '마음이 곧 부처'라고 말하는 세상이 됐습니다. 이 말은
문제를 안고 있는 말입니다. 나는 위대한 부처님의 소식을 세상에
알림으로써 정법을 바르게 세우고 싶습니다. 그래서 불의 삼신
설을 바르게 법설하겠습니다.

우선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아라한
성중은 보살과를 증득하고자 남섬부주에 원력 수생하고 극락정토
의 보살들은 붓다가 되기 위해 선근공덕을 쌓고자 스스로 사람 몸
을 받아 온다는 것입니다.

상품보살도 삼신을 갖추지 못합니다. 삼신을 말씀하신 경으로
는 <<금광명 최승왕경>>등이 있습니다. 제2권 <불별삼신품>에서
"모든 부처님에게 세 가지 몸이 있다. 화신, 응신, 법신
이니라", "법신은 화신, 응신의 근본이 되는 것" 이라고 했습니다.

일찍이 삼신설은 인도의 무착, 천친 큰스님들에 의해서 확립되
었습니다.

다음에는 보성론의 삼신법신, 보신, 화신을 들 수 있습니다.
삼신설은 불교의 핵심 중 핵심이 되는 부분입니다. 나는 <보성론>
의 삼신개념을 원용합니다.

여기서는 불신 곧 원만보신에 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무량
광을 몇몇 대승경전에선 억종광, 백종오색광, 열반광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불신은 무량광으로 이루어집니다.

불신을 얻지 못하면 붓다가 아닙니다. 사바세계에 한분의 붓다
가 나오려면 삼계왕이신 석가모니부처님의 선택이 있어야
합니다. 주로 선근보따리가 붓다 되기에 충분한 수행승이 낙점됩
니다. 선택된 이가 바로 상품상의 보살입니다.

이 수행승은 공부 중에 무량광을 봅니다. 그런 다음 또 하나의
큰 관문을 거쳐서 자기를 찾아 온 많은 부처님들을 뵙고 직접 법문
을 듣게 됩니다. 거룩하신 부처님들의 법문을 듣고 공부를 지도 받
는 것입니다. 보다 자주 깊은 삼매에 들어가서 붓다로서의 공부를
마치게 됩니다.

이 경지에 도달하면 이미 자신의 네 개의 영체는 수정같이 맑은
상태를 지나서 빛덩어리 자체가 됩니다. 햇빛의 백천 배와도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밝은 빛덩어리입니다. 이것은 청정의 극치입니
다. 그래서 불과를 증한 어른의 마음은 수정보다 청정합니다.

<유마힐경>의 "심정이면 불토정" 이라는 표현처럼, 생각정신은
청정하고 깨끗하다 못해 눈이 뒤집힐 정도의 깨끗함 그 자체가
되는 것입니다. 더러운 것을 보아도 깨끗하고, 똥을 보아도
깨끗합니다. 온 천하가 다 깨끗합니다.
어떤 생각도 일어나지 않고 모든 생각이 깨끗합니다. 더러움과
깨끗함을 초월한 절대적인 깨끗함이요, 불이의 실상입니다.

일행삼매가 되어 잠들지 않고 늘 선정으로 깨어 있습니다.

또한 <금강경>의 '응무소주'가 됩니다. 마음은 머묾이없어서
그 자리를 떠나면 잊습니다. 마음에 애증이 없고 털끝
만큼의 착도 없습니다.

불과를 이룬 이의 4개의 영체는 각기 독립해서 분리하여 활동합
니다. 바람과도 같이 이 거짓몸뚱이에서 빠져 나와서 말입니다.

죽을 때는 4개의 영체가 자기 불신, 부처님 세계에 있는 자기 불
신과 하나로 계합합니다. '지복의 몸'과 하나가 됩니다. 그 불
신은 무아 속 절대세계, 즉 상적광토에 청정법신을
둡니다. 자기의 법신, 곧 '우주적인 몸' 을 둡니다. 이제 우주 자
체'시공을 자체화함'인 것입니다.


불 법신 _즉 '우주적인 몸'

사실은 부처님의 법신이야말로 진불입니다. 거래도 없고
머묾도 없습니다. 법계를 비추는 대지의 광명체로서 초월이요 평
등입니다. 초월적 인격적 실존이신 보신의 근본이 되어 이미 인
격이 아닙니다. 대우주아입니다.

전생에 이미 불과를 이룬 붓다가 이 사바세계에 사람 몸을 받아
오실 경우가 있습니다. 그 몸을 응화신이라 합니다. 붓다는 원력
수생하기 때문에 주로 왕궁으로 몸을 받아 나십니다.

이때에도 자기의 불신은 거기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한번 얻
은 불신은 그 생명이 영원합니다. 보신은 유시무종합니다.

붓다세계에 계신 불신이 보신입니다. 보신은 무아 속 절대계
에 자기의 법신을 둡니다. 그래서 법신은 보신과 화신의 근본체입
니다. 삼차원 세계에 사는 우리들의 의식구조로서는 이해하기가
다소 어려울 지도 모르겠습니다.

몇 마디 더 부연해서 해설해 보겠습니다.

아미타불은 지금 서방극락세계의 교주이시며,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한 보살들을 붓다 될 수 있도록 교화하고 계십니다. 아미타불
의 불신을 <보성론>의 개념으로 보면 보신이라는 것으로, 원만보
신입니다. 색상이 단엄한 32상 80종호를 구족 하시고 광휘가
현란합니다.

그런데 그 부처님은 10겁 전이 아니고 실로 무량겁 전에 불과를
이루신 오여래 부처님 가운데 한 분이십니다. 당신의 법신을
무아 속 절대계에 두고 계십니다.

관세음보살은 무량겁 전에 불과를 이루셨고 붓다 이름이 '정법
명왕' 입니다. 무아 속 절대계에 법신을 두시고 원만보신을 나투어
극락세계에서 아미타부처님의 좌보처로 계십니다.
관세음보살이 남섬부주 중생을 교화하시려 변화신으로 오실 때
는 자모의 모습이십니다. 머리엔 아미타불을 정대한 화관을
쓰시고, 목엔 영락을 두르시고 하얀 실크드레스 같은 옷에 가끔은
버들가지를 드신 백의관음의 모습이십니다. 남선부주에 와서 불
과를 이룬 붓다의 대법회에 가끔 현신하셔서 천수천안1천의 화신을
나투실 때도 종종 있으며 이때에는 백종오색광명을 놓아 축복해
주십니다. 32응신을 나투시어 불법과 인연 있는 불자들을 교화해
서방극락정토로 인도하시기도 합니다.

관세음보살의 좌우보처는 해상용왕과 남순동자가 아닙니다. 큰
부처님이시기에 불격을 갖추신 상수보살인 해수관음과 육관음이
좌우 보처가 됩니다. 해수관음은 여인상이지만, 육관음은 때에 따
라 여섯 몸으로 나투시는 남자상입니다.

불정심 관세음보살 모다라니 진언은 해수관음 진언이며, 육관음
진언은 "옴 마하 가로니가 사바하"로서 부사의한 힘이 있음을 전
합니다.

따라서 관세음보살은 지금 불가에서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일생보처 보살이 아니라 이미 붓다를 이른 부처님
으로 바로 잡습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무량광을 보다

조사선을 공부하는 이는 의단이 자리 잡아 화두타파하는
순간 경계가 확 뒤집히는 과정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때 드러나는 것은 자성광명뿐, 내 앞의 모든 게 공이
되어 나도 없고 나라는 생각까지도 사라집니다. 아공, 법공,
구공입니다. 생각 이전의 본래 면목, 진여자성입니다. 태양
광과 달라서 여여하면서도 신령스런 빛이요, 공정 영지
입니다. 법계를 비추는,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정화된 마
음의 빛' 입니다.

여기가 견성경계입니다. 이후에 보림을 마치면 아라한의 반
열에 듭니다.

이제 보살의 경지부처는 타력, 곧 부처님의 절대하신 가피력
이 없이 자력만으로는 결코 오를 수 없는 경지라는 것을 선언
합니다!

<<열반경>> (여래성품)의 '대열반광명이 중생의 털구명으로 들어
가는 자는 반드시 불도를 이루리라'는 말씀대로, 수행인이 공부하
는 중에 선정에 들어 빨강가사, 장삼을 수하신 문수 보현보살 그
리고 관음 세지보살께서 방사하시는 부처님의 광명대열반광명
을 온몸의 털구명 속으로 받아들이는 경계를 종종 만나면 보살의
위에든 것으로 봅니다.

부처님의 광명으로 씻겨진, 보살영체의 빛은 자성광명과는 차원
이 다릅니다. 자성광명이 보름달의 하얀 은백색이라면 보살의 빛
은 아침에 떠오르는 햇살 정도이니 비교할 수조차 없습니다.

그래서 보살의 마음은 그지 없이 청정합니다. 상품의 보살이
붓다의 경계에 들 때에는 무량광이라는 수백 수천의 태양
을 합한 것 이상의 광도를 띤 빛덩어리를 보게 됩니다.

무량광은 부처님의 본원엑기스광 입니다. 경계에 오염되지
않고, 영원히 손상되지 않습니다. 내외명철이 특징입니다.

안팎이 수정처럼 드러나 영롱하기 그지없습니다. 백종오색광
이요, 억종광입니다. 햇빛에 반짝이는 금강석의 빛과 같습니다.

무량광이라는 빛덩어리는 붓다만이 볼 수 있기 때문에 불의
경계입니다. 붓다 되는 관문이 바로 무량광입니다. 보살에서 붓다
로 뛰어 오르는 유일한 관문입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따라서 공을 깨친 후 무량광을 보기 이전에 불 보살이 있다
없다 말하는 것은 한낱 범부가 지껄이는 망언일 뿐입니다. 무량광
은 불과를 등하는 관문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분명히 만고에 공부인의 발길이 닿지 않은 처녀림
이지만, 이 경계를 발견한 수행자는 2500년전 부처님 이후
오직 수보리 사리불 존자뿐입니다.

부처님께서 스스로 깨달은 법이 매우 깊고 미묘해 알기 어렵
고 들어가기 어렵다 생각하셔서 전도를 포기하려 하셨지만, 범
천의 강력한 권청에 따라 법을 설하기 시작하셨던 것처럼, 나
는 이땅에 부처님의 정법을 세우기 위하여 그동안 부처님들을 친
견하고 들은 여러 소식을 조심스레 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무량광의 경계를 지나면 드디어 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습니다.
중생과 성중아라한이나 보살은 절대로 불신이나 부처님을 뵐 수 없
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온몸이 천문학적인 광도를 띈 무량광으로
이루어젺기 때문입니다.

불과를 증한 대성자는 이런 엄청난 빛으로 이루어진 자기의
불신을 무아 속의 절대계, 곧 상적광토인 부처님 나라에 둡
니다. 그분의 불신이 있다는 것은 곧 그분이 불과를 증했다는 의미
입니다.

불신을 교가에서는 원만보신 또는 보신 이라고 하거나
지복의 몸 이라고도 합니다. 여기서 나는 불신을 종래의 법신
개념에서 벗어나 보신 개념으로 과감히 대치하고자 합니다.

'이 마음이 곧 부처' 라는 가르침이 보편화되어 있는 오늘날의
불교계에서 부처님들이 '무아 속 절대세계에 빛으로 계신다'는
이 법설은 일대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소폭탄과도 같을 것입니다.

이 엄청난 발견으로 수없이 왜곡된 부처님의 가르침들이 재조명
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부처님들은 모두 무량광으로 이뤄진 몸을 지니셔서 무량수가
되므로, 삼세의 여래가 똑 같습니다. 무량광으로 이루어진 불신에서
백천만 억의 화신이 현현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거짓몸뚱이와 그 안에 불성이라는 보물창고를 가지고 있
습니다.
하이데거는 그의 존재와 시간 이라는 저술에서, '인간존재' 를
존재해명의 실마리로 삼았습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만이
인간존재 안에서 본각심체의 진상을 구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분이야말로 진여 곧 존재를 깨우친 몇 안 되는 철학자 가
운데 한 분입니다. 자성광을 보왔으나, 열반광이나 무량광을
알지 못한 것은 못내 안타까운 일입니다.

무량광으로 이루어진 불신에서 법보화삼신, 부처님의
8만4천 신통, 백천 삼매, 지혜와 자비, 복덕이 우러나옵니다. 바로
무량광이 지혜 자비 복덕 삼매 신통능력 자체인 불가사의한 빛덩
어리기 때문입니다.

무량광을 꿈에도 모르는 무당이나 공부수행인이 부처님을 뵙고
부처님과 대화한다고 말한다면, 하늘 마에 속아 그리 말하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하늘 마가 얼마든지 불 보살님의 모습으로나투어
현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량광명만은 절대로 방광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빛을
거둬들이고 난 이후에 현신한 부처님이라도 두광, 배광, 신광의
광휘가 나타나기 때문에 변화술에 능한 천마라도 그 것만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것입니다. 안팎이 드러나는 억종광명
백종오색광명 그리고 눈과 몸에서 방사하는 자비 선정의 빛도
만들어 낼 수가 없습니다.

내 가진 것 일체를

다 버렸더니

일체를 소유했더라

하나가 여럿 되고

여럿이 하나 되어

하나까지도 없는 것

무아 속 절대세계는

청정하고 깨끗하고

영롱한 빛무량광명 뿐~

출처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