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30일 수요일

공을 체험하면 반드시 두타행으로 나가야 됩니다./진 참회

 공을 체험하면 반드시 두타행으로 나가야 됩니다.



공을 체험하면 반드시 두타행으로 나가야 됩니다.

이 수행의 순서가요. 부처님 말씀입니다.

두타행이라는 것은 저기 미얀마나 태국 같은 나라에서

그 기후 환경 조건이 참 두타행하기 좋습니다.

자 어떠한 삶을 두타행이라고 하느냐?

어떤 수행을. 여러분 모르실 꺼에요.

두타행 두타행. 내 책에도 두타행이라고 써놨는데

각주에 다는 좀 간단히 해석을 해놨지마는. 자, 정글 정글

정글속 숲속 그 다음 공동묘지 근방 귀신이 드글거리지요.

공동묘지 근방 그 다음 독사 구렁이가 드글거리는 그런 전

갈이 드글거리는 습한 지대. 호랑이 사자가 출몰하는 그러

한 위험스러운 지역에 토굴을 지어야 됩니다. 토굴 그대로

 움막 움막 하나만 똑 지어놓고 탁발행을 해야 됩니다. 걸

식행을 해야 됩니다. 그렇게 수행을 하는 것을 두타행 수

행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 몸에 대한 착을 끊

을 수 있습니다. 탐진을 털어버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수행

법입니다 두타행이요. 그러니까 화두타파가 됐단 말이에

요. 공을 체험했단 말이요. 다 같은 표현입니다. 견성을 했

단 말이에요. 이후에는 반드시 두타행에 의해서 착을 떼 버

려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착 안 떨어집니다. 그러지 않

으면 안 떨어집니다. 그래서 떨어져 떨어진 자리가 아라한

입니다. 아라한이 되면 이제 이 몸에 대한 애착이 없어요.

이 몸에 대한 애착이 없으니 성욕이 있을 수 없고 기타 모

든 욕심 명예 권력 따위 없습니다.


출처/2006년 07월 08일 자재만현큰스님 부산현지사 정기법회





진 참회 


참회해야 되요. 참회. 아까도 말씀했는데 참회. 잘못을 참회해야 돼. 참회도 진심으로 해야 돼. 진심으로 참회해야 돼. 진심으로 참회하면은요 다시는 그 짓 안 해. 근데 정말 참회합니다 해놓고 한 닷새 후에나 한 달 후에 또 저지른다면 그건 진정한 참회가 아닙니다.



여러분 진정한 참회를 하시기 바래.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해서. 그러면 여러분은 이 죄라는 것을 생각 안 했기 때문에 도대체 죄라는 것은 무엇을 죄라고 하나. 요렇게 인제 또 반문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 정도 수준이면 참 곤란하지 스님이. 알겠죠. 뭐가 죄인지 알지.



그러니까 죄 될 일은 안 해야 돼. 죄 될 짓은 안 해야 돼. 그래서 요런 말을 합니다. 하루 죽 한끼를 먹고 산다 하더라도 하루 죽 한끼를 먹고 사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남이 주지 않는 것을 훔치지 않는 거요. 고런 사람이 여러분 되야 되요. 이거 어려워요. 속담에 삼일 굶으면 울 안 넘어가는 사람 없다고 하지. 고런 사람이 되면 안되지. 죽어버려도 죄를 안 지어야 되는 것이요. 왜 그러냐? 죄를 지으면 반드시 과보가 와요. 반드시 과보가 와요. 과보가 하나만 오면 좋은데 다섯 가지로 와요 여러분.



자 훔쳤다 훔친 것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어. 사기 횡령 절도 강도 많아요. 따라서 과보도 다 달라요. 아무리 저 사람이 밉고 밉고 미워도 저 사람이 안 죽여야 되요. 절대 저 사람 생명 끊으면 안 되요. 상대방. 그런데 내가 많은 세월을 천도 대제를 집전하면서 보면은요. 큰 부인이 작은 부인을 작은 부인이 큰 부인을 질투 때문에 죽이는 수가 가끔 있더라고요. 그렇게 되면 과보가 오더라고. 과보가 와. 다섯 가지로 옵니다 여러분.



사중죄를 지으면 반드시 과보가 다섯 가지가 와요. 살인 절도(투도 강도 도둑) 사음 망어 요걸 사중죄라고 합니다. 이 사중죄를 범하면 각기 사중죄를 범하면 꼭 과보가 한번으로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자 지옥이 기다라고 있고 지옥. 짐승 세계에 가서 태어날 원인이 되고요. 또 사람으로 오더라도 명이 짧거나 자식이 없거나 하체를 쓰지 못하거나 또 살아 생전에도 지옥을 가야 되고요.



자 지옥 가야 되고 지옥 가야 되고 짐승 되야 되고 사람으로 오더라도 그에 맞는 상응한 과보를 받아야 되고 그래요. 또 그 다음에 다섯 번째는 명예가 실추되고. 그러기 때문에 절대로 이 네 가지 죄는 우리가 지어서는 안 된다 절대로 지어서는 안 되요. 그래서 참회를 할 라면 진심으로 해야 된답니다. 진심으로 참회해야 돼.



삼천배가 능사가 아니요. 절대 부처님은 그렇게 고렇게 하는 것을 칭찬하지 않습니다. 않습디다. 백팔참회를 하더라도 백팔참회도 여러분 이미 몸이 늙으셨으니까 좀 무리야 또. 여러분 나이만큼 육십을 먹었으면 육십번. 좀 그렇게 어려우면 단 열번이라도.



열번이라도 부처님 앞에서 진심으로 진심으로 지난 날을 참회하면서 단 열 자리를 하더라도 진짜로 하라구요. 진짜로. 삼천배 하면요 그 참회가 아닙니다. 여러분 보세요. 뒤에서 한번 봐봐. 저게 참회의 절인가.



이건 운동이지 이건 참회가 아니다. 절대 그렇게 하는 법 아니오. 백팔참회는 할 만해. 백팔참회는 20분으로 잡지 말고 한 시간 정도 잡어. 그래가지고 한 한번씩 할 때 다른 사람이 볼 때 참 저 사람 진짜 참회를 하는 구나. 기가 나오니까 알아. 고렇게 해야 돼. 그렇게 해서 재범하지 않도록 다시는 범하지 않도록 마음에 새기고 새기고 새겨라 그거요. 그게 진짜 참회에요.


출처/2006년 07월 08일 자재만현큰스님 부산현지사 정기법회중 발췌




나 없는 공부의 의미

나 없는 공부의 의미



삼천대천세계 모든 붓다들께서 입을 모아 하신 말씀이 바로 '나

없는 공부'입니다.  이기심을 버리고, '나'라는 생각을 버리도록 무아

를 가르치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나'가 있음으로 인해 탐욕이 일어나고 그러다 보니

끄달림  집착  산란심  불별심  머묾이 일어나며 마침내 그 속박에

서 벗어날 수 없기에 세상의 허망함을 말씀하셨습니다.



태어나면 늙고, 늙으면 병들고, 병들면 죽는 생로병사를 말씀하

시고, 세상 모든 것에 집착헐 것이 못 된다 하셨습니다.  이 육신은

언젠가는 죽어 없어지므로 세상 명예와 부귀가 다 소용없으니 오직

나 없는 공부를 가르쳐, 죄 짓지 말고 착하게 살라 이르셨습니다.



부처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비우는 작업, 나를 없

애는 작업을 끝까지 해내라!  모두가 생멸함에 이름만이 있을 뿐,

초월 세계에 가면 이름마저 없다!  중스님이 사음하면 그 양과

정상에 따라 처해지는 형이 다르나 화탕지옥행 한다!   거사나 선

여인, 일반 속인의 경우에도 역시 개인의 사정에 따라 다르나 중지

옥행을 피할 수 없다!  모두 깊은 삼매 중에 부처님께서 직접 일러

주신 메시지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수다원과에 도달하는 것만도 이는 현세의

정복자나 세계의 대통령 자리와도 바꿀 수 없는 성취라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화두 타파의 수준입니다.  천인이나 신요정이나 팔부중 등

들도 윤회하지만, 수다원과에 도달하면 인간 이하로는 환생하지 않

으며 항상 향상할 수만 있다면 몇 생 안으로 아라한의 지위에 올

라 윤회에서 벗어납니다.



아라한의 마음은 맑고 청정해서 그 영체의 색깔은 한가위 보름

달의 은백색 빛깔이라고 다시 한번 분명히 밝힙니다.



대 소승불교의 여러 수행 방식으로도 윤회를 뛰어넘는 성중

으로의 진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자기 근기에 맞는 수행법으로 지

도자를 만나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수행의 요체는 마음을 맑게 하

고, 스스로를 제어하는 것에 있습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견성 후 아라한이 되기 위해서는 두타행이 필수

 견성 후 아라한이 되기 위해서는 두타행이 필수



 큰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견성 후 아라한이 되기 위해서는 ‘나 없는 수행’인 두타행이 필수적이며, 두타행을 하게 되면 삼독심이 녹고 집착에서 벗어나며 아라한 과를 얻으면 성중 윗하늘에 태어난다.” 고 말이다. 이 얼마나 자상하신 법문이 아니겠는가?

 사실, 어느 누가 두타행을 그렇게 강조한 선사들이나 선지식이 있단 말인가? 미얀마, 태국, 스리랑카 등의 남방불교에서 위빠사나선을 중심으로 수행하는 선지식들을 제외하고는 이제 두타행의 의미가 불가(佛家)에서 퇴색해 버렸다.

 하지만 그러한 쇠락의 길에 놓여있는 불교 고유의 가르침인 두타행을 오늘날에 다시 사자후하심으로써 불제자들이 새로운 마음으로 정진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었다. 사실, 말로만 깨달음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지만 어떻게 실천궁행(實踐躬行)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단초를 제시하지 못하는 선지식들이 많다. 하지만 큰스님은 다르시다.

 정확하고 명료하게 지난 날의 참회, 부처님에 대한 찬탄과 귀의, 귀명, 두타행, 육바라밀, 염불선, 효(천도대재) 그리고 계, 정, 혜 삼학(三學), 팔정도(八正道), 이타행, 선근 공덕 쌓고 회향하기 등등을 자상하게 법문해 주셨다. 참고로, 아라한과의 경지는 윤회를 벗어나서 2번 영체로 성중 윗 하늘에 가 난다는 점이며 몸뚱이의 감옥인 탐, 진, 치로부터 자유로우며 탐욕의 경계를 만나거나 또 성낼 수밖에 없는 경계를 당해서도 자유로우며 공포의 경계로부터 자유롭다. 영체의 색깔은 보름달 속 밝은 은백색이고, 아라한 삼매(금강삼매)에 든다 한다.

 또한 큰스님의 가르침을 해의해 보면 음계를 선지하여 나 없는 수행, 즉 두타행으로 나아가 보림을 잘 하면 깨달음을 완성하고 인간으로서 궁극의 깨달음, 즉 완전한 깨달음을 얻어야 아라한의 성과를 증득하게 되며 아라한이야말로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최고의 극과이며 아라한에서 보살로 올라가려면 타력이 필요하다고 하신다.

 중요한 것은 선불교에서 일방적으로 말하는 대오철저, 확철대오는 모두 아라한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선불교의 한계를 여실지견으로 살펴서 아라한과에만 머물지 말고 더욱 분발하고 정진하여 보살과로 나가야 할 것이다.

출처 / 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

두타행은 착을 떼어 가는 수행

 


[두타행] 



두타행은 착을 떼어 가는 수행

 이것이 바로 무아(無我)적 체험이다. 그렇다면, 이타행과 보살행으로 자신보다는 남을 위해서 살아가는 삶을 살고, 병행으로 두타행을 수행 하면 무아적 체험을 더 실재적으로 하게 된다는 것이다. 두타행에 대해서는 성서(聖書)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 여실히 설명되어 있다. 즉, 구렁이와 독사가 나오는 숲 속에서 고행을 하는 것도, 그리고 무덤가 유령과 귀신이 나오는 곳에서 수행을 하는 것도 더 나아가 나병환자와 함께 있는 곳에서 수도를 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이 ‘나를 죽여 가는’두타행인 것이다.

 큰스님 말씀대로 두타행은 착(着)을 떼어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의 착(着)은 또한 석가모니부처님께서 근본불교에서 말하는 12연기의 구도(構圖)와 연관을 맺으며 실제로 이타행, 보살행, 두타행을 수행함으로써 12연기의 구조에 대한 안목과 식견을 향상시킬 수 있다.

 사실, 부처님의 가르침과 큰스님의 가르침을 여실히 관조하고 목도해 보면 황홀할 만큼 유기적이고 체계적(시스템적)으로 잘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부처님의 법 세계에서는 여기서의 진실이 저기서의 진실이고 이 가르침이 저 가르침과 상호융섭(相互融攝)하고 상호회통(相互會通) 더 나아가 원융무애(圓融無碍)함을 알 수 있다. 만약 부처님과 큰스님의 가르침들 하나 하나가 모두 개별적이고 독립적이라면 부처님 법 세계(法世界)의 전체성(全體性)은 빛을 발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과 큰스님의 가르침은 보석처럼 영롱하게 서로를 반사시켜 황홀하게 우리 시야에 현전시켜 주신다.

  그 다음으로 아라한이 보살이 되기 위해서는 대승경전을 정독(精讀), 다독(多讀), 열독(熱讀) 해야 한다. 이것이 부처님과 큰스님의 가르침이요 말씀이다. <<아함경>>과  <<금강경>>  <<법화경>>  <<화엄경>>  <<부모은중경>> 등의 대승경전을 읽지 않고서는 근본불교 당시의 부처님께서 설하신 가르침을 해의(解義)할 수 없다.

물론 대승경전이 왜곡되어 다소간의 외도 기운이 들어있기는 하다. 하지만 큰스님의 가르침을 따라  외도적인 오류들을 잘 걸러내 가면서 대승경전에 전해오고 있는 부처님의 친설만을 배우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과(科)를 얻기 위해서는 믿음이라는 것이 중요한데 믿음을 내면에 구축하고 증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부처님의 가르침과 말씀을 많이 듣고 배워야 한다고 하셨다.

따라서 부처님의 성심(聖心)이 담겨있는 대승경전을 독송하는 것이 무엇보다 보살과를 증위하고자 열망하는 아라한들에게 소중하다고 하겠다.

그 다음으로 염불선(念佛禪)이 ‘행주좌와 어묵동정(行住坐臥 語黙動靜)’이 되도록 해야 한다. 즉, 걷거나 서거나 앉거나 눕거나 그리고 말하거나 침묵하거나 움직이거나 머무르거나 항상 마음이 염불선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래야 아라한이 보살과를 증위할 수 있다고 하셨다. 

 물론 여기서의 염불선은 부처님께서 하사하시고 큰스님께서 일러주신 칭명염불선을 말한다.  또한

부모님께 효를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신다.


 큰스님께서도 친히 불보살님들은 부모님께 효를 다하는 선남자 선여인을 그렇게 좋아한다고 하셨다.

출처 / 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 

선근 보따리

 선근 보따리

 

큰스님께서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서 재차 역설하신 내

용은 바로 선근 보따리입니다.  선근 보따리를 얼마나 크게 이

루느냐가 바로 불제자가 아라한, 보살, 붓다의 존재 위계를 어

느 지점까지 상향해 나갈 수 있느냐를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수행자가 무주상의 보시(상에 걸림없는

육바라밀)를 통해서 많은 선근과 복을 지어야만 영적 진화가 가

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부단한 선근 공덕과 마음이 머무

르지 않는 보시를 통해 복밭을 가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처님께서도 최고의 복을 짓는 것은 부처님께 귀의 공양하

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큰스님께서도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를 통해서 사자후하신 것처럼 부처님을 공경, 찬탄, 공

양(보현행원)드리는 것이 불제자에게는 매우 수승한 공덕이라 하

셨습니다.  선근 보따리를 키우는 길은 큰스님의 심혼이 담긴

법경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 설명되어 있으므로 꼭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큰스님의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서

강조한 수많은 가르침들은 오늘날 세계 불교가 걸어가야 할 전

도양양한 비전과 명료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세

계 불교에 괄목할 만한 공헌을 하셨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

다.  그리고 큰스님의 불교사에 대한 일대공헌이 언젠가

만호중생에게 현시되는 날을 기대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우리 불제자들은 명지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인연 따라 맺어지는 세상은 현재 우리 자신

의 의식 상태의 반영이라고 흔히 이야기합니다.  또 타아

라는 것은 <<화엄경>>에서 시사하는 실재의 거울

처럼 우리의 의식을 반사시켜 준다고 할 수 있

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삶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자신과 깊은

인연이 되는 주변 사람들과 친구들 그리고 가족들을 잘 살펴보

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과 인연이 된 사람

들을 주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의식의 흐름은 모종의 패턴을 가지고있다는 인식의 차원에

서 심오한 통찰을 할 때 새로운 지혜가 발현됩니다.  즉 유구한

역사적 시원으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의식은 광

대한 변전과 진화를 이루어왔습니다.  인간 의식의 진화는 무수

히 많은 안 좋은 의식 상태들을 경험하고 그러한 의식 상태를

좋은 의식 상태 그리고 상향된 의식 상태 다시 말해서 긍정적

의식 상태로 탈바꿈시켜 놓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서는 불제자의 구도 과정을 선근

종자와 선근 보따리를 키워나가는 과정으로서 나타내 주고 있

습니다.  선근 종자를 키워나가 전생에서 금생으로 그리고 금생

에서 후생으로 이어나가는 것이 바로 올바른 정신과 마음을 증

득해 나가는 진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선근 종자와 선근 보

따리의 개념은 우리가 어렴풋이 알고 언뜻 알고 있지만 <<21세

기 붓다의 메시지>>를 통해서 보다 깊이 우리의 두뇌 속에 각

인시키고 동시에 의식의 지저분한 편린들과 파편들을 불사르는

위대한 법문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




부처님께 드리는 공양은 최대의 공덕

 [선근공덕]





부처님께 드리는 공양은 최대의 공덕

 

                 경에서 부처님거의 절대적인 능력을 지닌 초월적 인격체,

곧 원만보신께 공양 드리는 공덕은 무한하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대승경전들에 보이는 어떠한 공덕보다 진짜 부처님 불신께 드리는

공덕은 수승합니다.



그런데 그런 공양을 드린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공양

을 청할 때 반드시 붓다 이룬 이가 발원해야 그 공양을 받으

러 강림하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부처님은 물론 보신 개념으로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부처님 불신은 초월해 있으나 인격적 실존이기

때문에 법  보  화 삼신 가운데 중심입니다.



모든 유위의 세계 신들 중 왕인 옥황상제님도 일본에 있는

자기 제자의 공양만 매일 아침 받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아무나 부른다 해서 다 가시는 것이 아닙니다. 화

신천백억 화신이 가십니다.  본 불신원만보신은 붓다 이룬 이 혹은 불과

를 당대에 이룰 이가 청해야만 공양을 받습니다.  부처님세존, 석가모

니불은 겁에 한 번쯤 남섬부주 사바세계에서 붓다 될 이가 불과를

이루는 기간 동안에만 거기에 와 계십니다.



다시 말합니다.  부처님은 붓다 될 이가 불과를 이룰 때까지 그

분의 수행처에 상주하십니다.  부처님 가시는 곳엔 꼭 좌우보처가

바늘과 실처럼 모십니다.  문수  보현 두 보살님들이 함께 하십니

다.  뿐만 아니고 남섬부주에서 보살행하시는 관음, 지장보살이 그

곳에 함께 상주하십니다.  그리고 준제보살이 와 계시게 됩니다.



건강을 보살펴 주실 약사부처님이 와 계십니다.  준제보살님은 붓

다 출세할 때는 그 어머님 역을 담당하기 위해 와 계십니다.  준

제보살은 관세음보살이 아닌 별개의 인격체이심을 확언합니다.



부처님께 한 끼 공양만이라도 드릴 수만 있다면 그 중생이 받

는 복은 무척이나 큽니다.  어떤 이의 이름으로 공양을 올려드렸는

데 그 사람이 조만간 중풍을 맞을 죄보가 씻어진 것도 보았습니

다.  중생이 악업을 지으면 그 사람의 영체에 그가 지은 죄업이

대못이나 족쇄, 쇠사슬이 되어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박히거나 옥

죕니다.  과보 받을 때가 되어 식물인간이 되거나 중풍 맞을 때가

되면 꽁꽁 묶인 쇠사슬 망이 영체의 피부 밖으로 드러납니다.  이

것은 부처님의 위신력으로만 끊을 수 있습니다.



부처님만이 나쁜 인연, 악연도 잘라주시고, 탁하고 사악한 기도

씻어주십니다.  악습도 뽑나주십니다.  영체를 깨끗하게 닦아주십니

다.  중요한 말입니다.



지옥이나 짐승 몸을 받아갈 사람의 영체의 빛깔은 거무튀튀합

니다.  마치 똥통에서 막 건져낸 사람과도 같이 그동안 지은 지중

한 죄업의 오물이 더덕더덕 붙어 있습니다.



부처님은 선근 공덕을 크게 지은 사람의 더러운 영체를 깨끗이

닦아주십니다.  그러면 악도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본불인 원만

보신부처님께 공양드리는 공덕은 진실로 희유합니다.  부처님은 그

토록 위대한 지존이십니다.



우리 중생은 지은 죄업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것이고, 갚지 못한

빚 때문에 축생 몸을 받는 것입니다.  돌아가신 부모, 조상님을 천

도해 드리고, 큰스님이 세상에 나셨을 때 부처님께 공양드리는 큰

복을 짓는다면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지난 날의 은혜와 빚

을 갚고 지은 악업이 씻어져 악도에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당대에 붓다 이룰 큰스님 회상의 대작불사에 크게 시주하는 이

는 다음 생 혹은 세세생생 정법의 큰 스승을 만나 윤회에서 해탈

을 이룰 수 있습니다.  전생에 지은 지중한 업장을 씻고 과거생

의 빚을 갚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초월해 계신 인격적 실존이신 보신부처님께 공

양을 드림은 과거에 지은 죄와 업장을 씻는 것입니다.



또한 돌아가신 부모와 조상을 천도해 드리면 전생의 빚을 갚게

되어 다음 생도, 그 다음 생도 오래오래 수승한 공덕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 역시 비밀장이긴 하나, 독자 여러분을 위해 은밀히

알려드립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