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29일 수요일

염불선이 되어야 삼매에 든다*영산불교 현지사

염불선이 되어야 삼매에 든다


경전 읽고 염불하는 나의 염불선을 좀더 자세히 소개하겠습니

다.  아미타불 염불 공부를 중심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먼저 <정토삼부경>중 하나를 선택해서 봉독한 후 벽을 향해

단정히 반가부좌한 채로 두 눈은 벽의 한 점을 응시한 채 염불선

을 시작합니다.  결코 눈을 깜박거리지 마시고 그 한 점에 두 눈

을 고정해야 합니다.  기도 정근 중에 자꾸 마실마을가는 놈이 있어

서 공부를 일념으로 하기사 어려울 것입니다.  생각을 하나로 모으

는 것이 공부의 요체입니다.


하나로 모으려면 차라리 확실하게 둘로 나눠주는 것이 좋습니

다.  망상 피우는 그 놈이 바로 '나'입니다.  그 놈으로 하여금 망상

하지 못하게, 마실마을가지 못 하게 과제를 하나 내주십시오.


내 앞에 아미타부처님께서 와 계신다 생각하고, 마음 속에서

큰 소리로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다짐을 하도록 시키십시오.  또 부

처님 앞에서 지난 날 못된 짓 한 것을 경건하게 참회하게 하고

극락왕생을 발원하도록 말을 시키십시오.  입으로는 '나무아미타불'

정근하는 채로 두 눈은 앞 벽의 한 점을 응시하고, 귀의 참회

발원을 잘해내도록 합니다.  이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나 힘써

하면 됩니다.


자유자재로 마음 속의 내가 독자적으로 말을 잘하는 정도가 되

면 이제 생각을 하나로 모아 한 점 속을 뚫어 가십시오.  염불 삼

매로 들어갑니다.


부처님의 신상 광명을 관하면서, 입으로는 고성으로 힘차게 칭

명해 들어가는 염불 공부도 좋습니다.  모든 붓다는 몸이 빛으로

돼 있어서, 현신할 때에는 모든 빛을 거둔 상태지만 여전히

안팎이 드러난 청정 광명이 방사하게 됩니다.  정수리, 미간과 모

든 털구멍에서 밝고 투명한 빛을 방사합니다.


'석가모니불' 염불 행자라면 석굴암의 불상을 마음 속으로 그려

가면서 방사하는 광명을 마음 속으로 지어갑니다.  그 부처님 상을

관하면서 칭명염불합시다.  세존  염불하는 자는 반드시

<금강경>을 봉독한 후 염불하는 겁니다.


대승경전 전체의 3분의 1전도에 해당하는 <정토삼부경> <대

집경> 등 200여 경전에서 염불을 권하고 있습니다. 특히 문수보

살은 <문수반야경> <문수사리발원경> 등에서 극락왕생을 발원

토록 하셨고, 보현보살께서는 <화엄경> <입법계품> 마지막 부

분에서 선재동자 등에게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에 날 것을 권하셨

습니다.  대세지보살도 <능엄경>에서 염불하는 중생을 인도하여

삼마디를 얻어 서방극락세계에 나게 하시고, 관음 지장보살께서

도 물론 인연 중생을 극락정토로 인도하시는 일을 교화의 목표로

삼고 계십니다.


인도의 마명 용수 무착 세친 큰스님, 중국의 혜원 선도 천

태 청량 영명 큰스님, 신라의 원효 의상 서산 기화 큰스님,

일본의 법연 친란 큰스님 등을 포함한 당대의 큰스님들도 염불

수행을 최선의 공부법으로 권장하고 고취시켰습니다.  물론 자기들

스스로도 정토업염불공부에 매진한 분들이었습니다.  염불선은 보살

지까지 뛰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수행법임을 다시 천명하는 바

입니다.


출처 /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불교의 위계 품계

위계 - 아라한, 보살, 붓다


20세기 서양철학의 태산북두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

헤드는 실재는 과정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실

재의 특성은 하나의 흐름이라는 것입니다.  불가의 가르침

을 응용하면 인연법에 의거한 연기적 구도에 의해서 공

간적 시간 프에임을 통해 펼쳐지는 의

식의 진화 과정을 의미합니다.  요가에서도 의식의 확장, 의식의

진화, 의식의 변형, 의식의 각성 등에서부터 다양한 의식적 상

태(바이수바나라, 타이자샤, 프라주나, 튜리야

를 상정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서양의 선구적인 초인격 심리학을 개척하고 동서양을 관통하

는 종교 철학에 대한 견고한 반석을 미련한 켄 위러라는 현자

도 의식의 스펙트럼을 주창하였습니다.  의식의 스펙트럼은 인간

의 의식은 다양한 계층과 차원으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큰스님께서 견성에서 성불에 이르는 도정

을 여러 계위로 장정하고 계신 것은 부처님의 정법

종지임을 아셔야 합니다.  미혹한 구도자들이 알고 있는 초

견성, 견성, 재견성이라는 것은 견성적 차원에 불과합니다.  미

혹한 구도자들은 단편적 지식으로 큰스님의 영혼의 위계와 영

성계의 하이러라키를 허황된 이야기로, 치부하고 마음

대로 재단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신지학에서도 영혼의 세계가 '위계'로 구성되어 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 위계는 바로 의식의 점진적 진화와 과정

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중생,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 보살, 붓다, 석가모니부처님이라는 위계는 불경에 역력

하게 아로새겨진 위대한 계시적 가르침으로 엄존하

며, 세상이 존재하는 한 우주적 진화를 위한 세계 변전의

연기 구조는 끊임없이 진행되고 비로자나불의 현현은 우주

적으로 미래제가 다하도록 모든 선남자와 선여인이 붓다가 될

때까지 진행될 것이라고 사료됩니다.  한편, 유가에서도 장유유

서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것은 웃어른을 존경하라는 이야기

인데 이 이야기는 영혼의 세계에서의 위계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미혹한 구도자들은 우주적 존재의 하이어라키(위계)와 의식

진화의 도정에 대해서는 일말의 언급

도 없이 견성, 재견성만을 논의하면서 큰스님을 비방하시는 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더 공부하시고 더 수행하신 후 큰스님의

글을 비방이 아닌 비평 차원에서 논의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

리고 솔직히 큰스님의 글이 옳다고 생각하시면 배우는 자세로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구도자라면 대장부답게 떳떳

하게 옳은 것은 옳다 그른 것은 그르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한다고 봅니다.  물론 그 옳고 그름에 대해 식별하고 판

단할 수 있는 명료한 통각을 구족해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힌두의 고대 철학에 의하면 우주라는 것은 우주 물질

프라크리티)과 우주 정신(푸루샤)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

합니다.  저는 이 둘의 사상적 프레임워크는 큰 차이

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질들이 상호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

는 것처럼, 영혼들의 세계도 상호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태양이 중심이 되고 행성들이 그 주위를 돌고

있듯이 물질적인 우주 구조에도 어떤 법칙이 있고 상위-하위

계층구조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고목에서 꽃피운다."처럼, 늙

은 나무에서 새싹이 자라서 작은 묘목이 생겨나듯이, 우주의

물질 세계는 전승이라는 흐름을 통해서 물질적 생명들을

잉태시켜 나가며 하이어라키를 형성합니다.  만물에도 조상이 있

기 때문에 후손이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라한에서 붓다에 이르기까지 불제자들이 걸어가는

도정 상의 불보살 위계에 대한 큰스님의 세계관은 실재적이라

는 사실을 우리 불제자는 대견명안으로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불보살의 위계를 불교계에 널리 공포한 큰스

님의 대자대비하심에 우리는 크게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영산불교사상연구소




윤회를 벗어난 아라한·보살·붓다의 세계 

아라한은 성중하늘종래의 색계·무색계 하늘을 지나, 색구경천 4무색계 하늘을 지납니다. 아라한의 경지에 오르면 이제 마음은 주인이 되어 생각을 부립니다. 탐진의 경계에 끌려가질 않습니다. 업을 짓지 않습니다. 이 몸뚱이에 대한 애착이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수처작주隨處作主가 됩니다. 언제 어디에 있든 끄달림, 집착이 없이 마음이 주인이 돼 있다는 말입니다.

그럼 더 이상 생사를 받지 않습니다. 삼계 윤회를 벗어납니다.

아나함, 아라한은 인간 몸을 받아오고 싶지 아니하면 안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라한이 되고, 아라한은 보살이 되고자 인간세계에 몸을 받아옵니다. 그런데 사바세계에는 마장이 그물처럼 퍼져있어 어쩌다 실수하면 수렁에 빠져 퇴전하기도 합니다. 지옥도 가고 축생도 됩니다. 하늘도 갑니다. 이렇게 오랜 기간 윤회의 늪에 빠져 있다가 큰 스승을 만나거나 부처님 회상을 만나서 자기가 온 데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아라한은 타력문에 들어 공부 잘하고, 선근 많이 심으면 보살이 되어 삼계를 탈출하게 됩니다.

보살은 공을 체험하여 만유의 모든 현상을 공空, 무상無常, 무생無生, 무멸無滅로 보아 집착을 끊고, 아상我相 등 사상四相이 없이 무피염無疲厭으로 중생을 교화합니다. 부처님의 청정한 계율을 지키면서 이행利行, 동사同事로 고통세계의 중생을 불도로 이끌어 들입니다. 보살은 서방극락정토에 왕생합니다.

욕계 여섯 하늘, 천상天上은 높은 하늘로 올라갈수록 묘한 즐거움이 더합니다. 수명도 더 길어집니다. 의식衣食은 생각대로 이루어집니다. 사랑하는 부부사이는 끌어안는 등 뜻으로 만족을 느낍니다. 애는 낳지 못합니다. 온갖 아름다운 꽃들과 주택들이 있습니다. 병도 없고 고통도 없습니다.

이에 반해 성중하늘부터는 여자가 없습니다. 하늘 사람보다 탐심, 진심이 훨씬 적고 보다 묘한 즐거움이 있으며 불법을 공부하고자 하는 세계입니다.

그리고 윤회를 벗어난 극락정토는 우선 깊은 고요, 적정감寂靜感이나 부드럽고 청정함을 느낍니다. 하늘세계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무량한 즐거움, 진락眞樂을 흠뻑 느낍니다. 하늘세계에선 느낄 수 없는 미묘한 향기, 싱그러운 공기, 온화한 기후, 감로와 같은 물 맛, 시원하고 깔끔합니다. 먼지 하나 티끌 하나 안 붙어 있는 흙, 모래가 있습니다.

천상의 수백천 배 밝은 광명의 세계를 만납니다. 나무나 누각이나 연못이 정토의 광명으로 인해 금, 은, 칠보로 되어있는 것 같습니다. 정토의 인민은 모두가 보살입니다. 아라한도 없습니다.

보살들의 몸에선 신광身光이 빛납니다. 옷은 모두가 엷은 아이보리색 하늘하늘한 예쁜 천으로 된 통바지 차림에 윗몸 쪽은 천으로 감겨져 있습니다. 꽃에서도 아름다운 빛이 아른거려 장관을 이룹니다.

극락세계나 지옥·천상을 보려면 또는 직접 가려면 절대계의 불신을 둔 붓다가 아니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서방극락정토도 9품이 아니라 27품의 품계가 있습니다. 서방극락 위의 정토가 약사정토입니다. 여기도 27품입니다. 그 위가 불격을 갖춘 최상수보살입니다.  

보살이 인신을 받아 올 때는 거의 죄업을 짓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업을 짓는다 하더라도 정토로 갑니다. 거기에 자기의 분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업을 지었다면 정토淨土대기待期에서 참회해야 합니다.

붓다가 되기 위하여 보살은 인간 몸을 받아옵니다. 보살행을 하고, 한편으로는 열심히 마음 공부합니다. 거의 염불문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무량겁 동안 보살행을 닦아왔기에 급기야 붓다가 됩니다. 법·보·화 삼신을 갖춘 부처님이 됩니다.

붓다는 청정무구해서 적멸, 공과 완전 계합합니다. 우주와 하나가 됩니다. 우주의 주主가 되는 것입니다. 붓다는 미래제가 다하도록 죽음이 없습니다. 빛의 빛으로 이루어진 몸이어서 멸도할 수 없습니다. 항상 대적정삼매에 있습니다. 환희의 세계입니다. 극락 중 극락인 것입니다.

붓다는 거의 사바세계에 안 오지만, 다만 중생 구제의 자비심 때문에 올 수도 있습니다. 말세에 대임大任_一大事因緣을 띠고 오기도 합니다. 불과를 이루었으면 공부는 다 마쳤으므로 보살행을 할 뿐입니다. 미래제가 다하도록 중생 교화에 진력합니다.

우리는 무량겁 전에 생을 받아 살아왔습니다. 중생의 업이 육도를 만든 것입니다. 수없이 육도를 윤회하면서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우리의 영체는 억겁을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중생은 윤회생사를 벗어나고 삼계를 탈출한 정토보살이 되지 못하는 이상 업이 다할 때까지 이 거짓 몸뚱이 속을 드나들 것입니다. 

우리는 크게 각성하여 경각심을 갖고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삿된 가르침이나 사악한 사람들과 인연을 맺어 어리석게도 우주의 이법을 거스르는 행위와 악업을 저지른다면, 다시 말해서 부모님께 불효하고 시해하고, 아라한 이상 보살·붓다인 성자를 죽이거나 가슴에 대못을 치는 악행을 하거나, 붓다 회상을 비방, 파멸하는 등 중한 죄를 범한다면 극무간지옥에 가서 미래제가 다하도록 나올 기약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해둡니다.

부처님을 상대로 모독·능멸하거나 불상·탱화를 손괴·방화·훼멸하거나 부처님의 거룩한 교법을 능멸한다면 무간지옥행입니다. 과거 생의 복력이 있어서 어쩌다 사람 몸을 받아 난다 해도 삼중고, 사중고로 태어납니다.

불과를 증한 대성자를 만나서 구원받지 못하면 다시 그 지중한 업보가 계속됩니다. 나의 이 진실한 증언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불교는 우주적 종교입니다. 우주의 이법입니다.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 듯 무지無知한 중생은 윤회생사의 쇠사슬을 끊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삼계의 불난 집三界火宅에서 동서로 뛰고 달리며 놀이하는데 빠져있어 비록 괴로움을 만날지라도 근심하지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해탈을 구하려 하지 않습니다. 마치 《법화경》화택유火宅喩에 나오는 장자의 아들들처럼 말입니다.

우리 모두는 불법 - 정법을 만나 악도에 떨어지지 말고 하늘천당·성중·아라한으로 뛰어야 합니다. 완전히 삼계를 탈출하는 보살이 돼야 합니다. 정법을 만나고 큰 스승을 만나면 가능성의 열쇠Key를 얻을 수 있습니다. 붓다도 될 수 있습니다. 중생은 여래장如來藏이기 때문입니다.  

윤회생사를 벗어나 우주 본성과 하나 되는 완전한 해탈의 몸을 얻는 것, 아라한도 보살도 뛰어넘어 붓다 되는 것이 우리 생의 궁극적 목표가 되어야 함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부처님의 실존과 위신력을 믿고 부처님께 절대적으로 귀의·귀명해야 합니다.

청정 계율을 목숨같이 지키고 효행과 보살행을 앞장서서 하면서 칭명염불로 부처님의 가피를 입는 타력불교의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불교 수행의 지름길이요 사는 길입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Ⅱ≫ 13장 사람이 죽으면 어찌되나-불교의 생사관
 광명 만덕 자재 만현 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서방정토 극락세계가 실제로 있는 것입니까?


 
선에서는 유심을 정토라고 합니다만, 서방정토 극락세

계가 실제로 있는 것입니까?  그리고 오역죄인이라도 임종

때 아미타불 십념만으로 왕생할 수 있습니까?




중요한 질문입니다.

천 년도 넘게 선종이 한국불교를 지배해오고 있기 때문에

나의 법문은 먼 훗날에야 제대로 평가받을 것입니다.  하고 싶은 말

다하면 부작용이 따를 것 같아 1/3정도만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

다.  그러나 구도자로서의 양심에 따라 법을 위해 해야 할 말은

하겠습니다.

나는 여말선초의 함허당 기화 스님이나, 서산 휴정 스님의

'자성미타, 유심정토'의 결해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그들은 대선사이면서도 미타정토의 신행자들이셨습니다.이 부분

에 대하여는 고맙게 생각하고 있으며, 실제로 두 분은 서방극락에

왕생한 분들입니다.


그러나 자성이 곧 미타가 아닙니다.  자성과 미타는 엄연히

차원이 다릅니다.  또한 유심이 곧 정토인 것도 아닙니다.


자성을 깨쳐 보림을 잘해 마쳐야 겨우 아라한인데, 자성이 곧 (미

타)불이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맞지 않습니다.


아미타불은 '붓다 중에서도 붓다'이십니다.  아미타불이 계신 정토

가 극락인데 이 극락세계에 왕생하려면 보살이 되어야 합니다.  따

라서 자성 자리인 유심이 저 극락세계의 정토일 수 없음을 거듭

밝힙니다.


<<관무량수경>>에는 무간지옥으로 떨어질 오역 중죄인도 극락 하

품으로 왕생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물론 누구나 지극한 마음으로

십념을 구족하여 아미타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면 극락에 왕생할

수 있습니다.  <<미타경>>에서 "한결같이 1~7일을 염불할 수만 있

다면 누구나 왕생할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은 분명히 맞습니다.  그

러나 실제로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이런 질문을 전화로 많이 받기

에 여기서 명확히 해두고자 합니다.


나는 하늘 천상을 54품으로 나눈다고 했습니다. 하늘 천상 위에

윤회를 벗어날 수 있는 성중하늘이 있습니다. 이 성자의 하늘도 27

품입니다.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이 나는 하늘입니다.


성중하늘 위가 도솔정토도솔천 내원궁, 도솔정토 위가 꽃비를 내리게

하는 천녀정토, 천녀정토 위가 극락세계입니다.  부처님은 이 극

락세계도 27품으로 나누십니다.  그리고 왕생하면 차례로 차츰차

츰 1품씩 올라갑니다.


왕생은 소위 코드식이 아니란 것을 아셔야 합니다.  가령 지구

에서 다른 혹성을 간다할 때 먼저 지구의 인력권을 벗어나는 게

어렵듯 우리가 사는 남섬부주에서 하늘 천상에 태어나는 일

도 어렵고, 극락정토에 나는 일은 부처님의 위신력이 아니고는 더

더욱 어렵습니다.  마음에서 삼독, 십악을 모두 여의고, 전생의

지중한 업장이 녹아 집착이 끊어진 수행인이 붓다의 위신력을

입어서 왕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부처님을 일심칭명하면서 왕생에 원을 세우고 불

자답게 산다면 극락도 가능하고, 극락은 아니라 해도 하늘 천상에

는 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건대, 아미타부처님은 부처님 중에서도 특별한 서원이

있으십니다.  바로 48원으로 중생을 극락세계에 인도하고자 하는 것

입니다.  모든 불 보살님들이 당신들의 칭명을 반기시지만, 아미타

부처님은 더더욱 기뻐하십니다.  항상 무량광명을 투사해서 삼천

대천세계 염불 행자를 섭취하고자 하시기 대문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아라한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최고의 극과  


음계를 철저히 지키면서 나 없는 수행, 곧 두타행으로 나가

보림을 잘해서 깨달음을 완성하여야 합니다.


인간으로서 궁극의 깨달음, 완전한 깨달음을 얻어야 아라한

의 성과를 증득합니다.  인간은 여기까지가 한계입니다.  아라한이

야말로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최고의 극과입니다.  부처님께서 그

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라한에서 보살부처님께서는 보살8지의 부동지 이상을 보살이라 하심로

올라가려면 타력이 필요합니다.  부처님의 절대한신 위신력, 곧 가

피력이 요구됩니다.  돌아가신 부모님, 형제, 가까운 직계 방계 영

가가 한 분이라도 지옥이나 축생계에 남아 있어도 보살과를 얻기

어렵습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성중 --> 보살 --> 붓다


공부를 잘 하고 수행을 잘 해서 깨달음을 얻었거나, 이미 깨달았

다면 이제부터가 더욱 중요합니다.  특히 여자관계를 주의해야 합

니다.  사음계를 파하는 것은 부처님과 법을 능멸하고 모독하는 대

망어의 과보만큼이나 무섭습니다.


또한 나 없는 수행, 곧 두타행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아

라한과를 증득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잘 수행해도 붓다 되는 데까지는 아직 천만리 거리가

남아 있습니다.  보살도를 완성해야 불과를 이룰 수 있기 때문입

니다.

보살지에 이르면 성불은 보장되어 있다고 보셔도 됩니다.  여기

까지 도달하면 불퇴전입니다.  마침내 붓다가 되면 우주와의 완전

무결한 계합을 이루니 대열반이요, 대해탈인 것입니다.  이것은 우

주아의 실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영원히 죽지 않는 무량수

가 되는 것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보살이 돼야 극락에 왕생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서방극락세계에는 보살지에 오른 성

자만이 왕생합니다.  이 법문 말씀은 관음보살님께서 일러주신 메시

지입니다.  모든 부처님들의 한결같은 말씀이기도 합니다.  또 실제

로 그렇습니다.


극락세계는 윤회를 벗어난 해탈오계이기 때문에 중생도 없고 여

자도 없습니다.  시공을 초월한 정토이기에 아라한도 없습니다.  보

살만의 세계입니다.


분명히 밝히는 것은 극락세계는 성중 곧 아라한이 염불 수행한

후 타력에 의하여 보살이 돼야 갈 수 있는 그런 높은 정토의 세계,

청정 국토라는 것입니다.  아라한 하늘의 위가 미륵부처님이 교주로

있는 도솔정토도솔천 내원궁이며, 도솔정토 위에 꽃비를 내리게 하는

천녀정토가 있고, 천녀정토 위가 바로 서방극락세계입니다.


다른 사람의 죽음을 대신할 사람, 자기가 대신 죽어 그를 살

릴 수만 있다면 흔쾌히 죽음까지도 불사하는 그런 사람을 불교에서

는 보살이라 합니다.  불교는 그런 보살 성자를 내고, 붓다를 내는

종교이기에 위대합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불교는 자력이면서 타력

타력은 필요 충분조건
- 여러 마장을 중심으로

 

자력불교로는

21세기의 인류를 향도하기 어렵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싹을 틔우고

그것이 성장하여 많은 알곡을 얻으려면

농부의 손길도 필요하고

적당한 비료, 햇빛, 적당한 비, 바람도 필요합니다.

자력‧타력은 필요 충분조건입니다.  

많은 종교학자들, 불교학자들까지도 불교를 자력불교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는 자력이면서 타력입니다. 아니, 불교는 타력불교인 것입니다. 

불자 여러분!

우리 이웃들 모두가 금생에도 잘 살고, 다음 생에도 더 잘 살았으면 합니다. 이러한 소망은 어떤 종교의 가르침보다 불교의 가르침에서 이루어진다고 확언합니다.

거룩하고 희유하신 부처님께 귀의하고, 참회하면서 바르고 깨끗하게 사는 것입니다. 물론 염불하면서 말입니다. 부처님의 가피가 있으면 윤회생사를 벗어날 수 있는 아라한도 되고, 보살도 될 수 있습니다. 

인간 자력수행의 한계는 아라한과를 얻는 데까지라고 나는 누차 강조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자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여러 마장은 부처님의 절대하신 타력에 의지하여야만 극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쟁터에서 백만의 대군을 격파하여 이길 수는 있으나 내 마음하나 이기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이 육신에 대한 애착이나 마음 속 탐진 삼독, 오욕의 번뇌마를 조복 받으면 모든 외마를 항복받을 수 있고 천하도 얻을 수 있습니다. 마음과의 사움에서 승리자가 되면 어떤 경우를 당해서도 언제나 무고안온하며 평화롭습니다.  

경≪대품반야경≫에서 우주의 진리자요 대성취자이신 부처님께서 “나는 일체一切의 승자勝者요, 일체의 지자智者……”라고 갈파하신 것은 인간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요괴번뇌마, 외마들을 제압하신 진정한 승리자로서의 선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여기서 나아가 중생의 업장, 업보까지도 단절해 줄 수 있는 거룩하고 희유하신 유일자唯一者요, 절대자絶對者이십니다.
 

여러 가지의 장애_마장魔障
 

자력으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은 다음의 몇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내마內魔가 있습니다.

소위 번뇌마 등입니다. 불안, 초조, 공포라는 한계 상황을 자력으로 극복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사형수가 자기 이름이 불려지면 “면회요!”하고 호출하는 소리에 벌써 기氣가 다 빠져 낙지같이 흐느적거리며 나온다고 합니다. 사형수 같은 입장에 있는 이들의 죽음에 대한 공포, 불안, 초조 - 살길이 막연한데 부채의 독촉에 시달려 하루하루 짓눌리고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고뇌하는 심정, 아무도 몰래 사람을 죽인 자의 미칠 것 같은 죄책감…… 등에서 오는 극복하기 어려운 번뇌마魔를 어찌 자력으로 벗어날 수 있단 말입니까? 

14세기에 창궐한 흑사병페스트은 100여 년을 주기로 18세기까지 중세 유럽의 인구를 1/3까지 치사케 한 전율할만한 공포의 전염병이었습니다. 그러한 살인적인 전염병이 창궐한 마을에서 며칠을 지내지 않으면 안 될 처지에 놓였다 가정합시다. 또 6‧25같은 난리가 터져 수많은 소중한 인명이 날마다 죽어 가는 전쟁통에 있다고 가정합시다.

이때의 불안하고 초조한 공포의 한계 상황에서 우리가 설사 화두타파 등을 통해 선정에 들 정도의 수준이 됐다 하더라도 진정한 안심입명安心立命은 어려운 것입니다.

독사 구렁이가 내 방 안으로 들어와 숨었다 합시다. 한밤중입니다. 나에게 접근해 오는 소리가 납니다. 이 경계를 당해 감히 그 뉘라서 초연할 수 있답니까?

안심입병은 자력에 의한 선정의 힘으로는 온전치 못합니다. 보살의 삼매는 한계상황을 극복합니다. 부처님이 이끄시는 삼매력으로 가능해집니다.
 

둘째, 외마外魔가 있습니다.

1) 고약한 원결 영가들의 빙의 2) 용신, 사신, 이매망량, 정매마精魅魔 3) 천마天魔 등에 의한 빙의는 결코 자력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 어느 도인도 이를 떼지 못할 것입니다. 토굴에서 스승 없이 잘 못 공부하면 용신, 이매망량, 천마가 빙의합니다. 용신, 이매망량, 천마들은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성과를 이루어가는 수행자를 방해합니다. 빙의합니다. 빙의된 이들을 떼지 않고 공부한다면 평생을 정진해도 마경에서 헤어나올 수 없습니다. 이런 것들이 빙의되어 있는 상태의 정신으로는 더 이상 공부할 수 없습니다. 여러 경계로 수행자를 괴롭힙니다. 때로는 묘한 경계를 보여주어 수행자로 하여금 빠져들게 하고, 집착하게 만들어 결국은 정신이 돌아 미치게 됩니다. 또한 죽으면 악도에 떨어집니다.

천마나 귀신주로 사이비 도인의 영가이 빙의돼 있는 무당이나 신기 있는 이들이 가끔 불 보살과 대화를 한다고 자랑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천마나 귀신의 말을 듣고 불 보살과 대화하는 줄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이 점 명심하기 바랍니다.  

또 지적할 것이 있습니다. 변화술에 능한 천마하늘마가 공부하는 수도인에게 불 보살의 모습으로 둔갑해서 화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들을 절대계에 계시는 붓다로 보면 안 됩니다.

붓다의 화신에서 볼 수 있는 자비·선정·지혜·지계·인욕의 모습을 천마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붓다의 화신과는 마치 왕과 거지만큼 천지 차이입니다. 그들에겐 무량광은커녕 청정한 빛조차 흉내 내지 못합니다. 그들의 눈엔 욕심과 살기가 있습니다. 해탈한 성자에게서 느낄 수 있는 깨끗하고 청정한 기운을 느낄 수 없습니다. 붓다의 화신은 몸 주변에서 맑고 깨끗한 빛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마의 몸 주위의 빛은 탁할 뿐입니다. 

셋째, 다겁생을 살아오면서 지은 크고 작은 악업으로 앞으로 미래세에 받을 과보의 업장 그리고 악惡, 불과를 이룬 성자의 경지에서 소멸된다는 악惡·습기習氣들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이것을 단절·정리해 주지 않는 이상 10생, 100생을 수행한들 영적인 성장을 기약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지적 사항은 이성異性에 대한 강한 욕구, 성욕과 색마色魔입니다. 20~40대까지의 젊은이들은 성적 잠재욕구 때문에 대부분 꿈에 몽정·몽설을 합니다. 특히 출가해서 부처님으로부터 계를 받은 수행자로서 자위행위나 동성연애는 사음죄로 본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이성에 대한 욕망은 큰 번뇌가 되어 성과를 얻기 어려운 결정적 장애가 됩니다. 그러나 천에 한 사람 불법 공부 잘해서 스스로 깊은 선정의 힘을 얻는 이라면 강한 이성에 대한 욕구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수행자에게 불행하게도 색마라는 외마가 붙게 되면 설사 견성한 공부인이라고 하더라도 천 길 나락에 떨어지게 됩니다. 외마는 번뇌마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점 명심해야 합니다.

다행히 부처님 회상을 만나 공부하는 수행자들은 색마도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주기적으로 약사여래부처님께서 수행자의 정수精髓를 뽑아주시기 때문에 정법을 수행하는데 장애가 없게 됩니다. 이 점 역시 타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분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외 여러 가지 진리수행자들의 앞을 가로막는 여러 가지 마장들이 많습니다. 인간의 자력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장애물들이 중첩해 있습니다.  

다시 강조해둡니다. 자력수행의 한계는 깨달음까지입니다. 견성까지입니다. 이 정도 선정의 힘으로는 지정한 안심입명도 어렵고, 천마 등 장애를 뗄 수도 없습니다. 또한 색이성에 대한 경계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으며 업장, 악·습기習氣의 소멸은 더욱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과학, 철학사상에 있어서 깊은 경지에 든 분들의 신념의 힘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선정력 보다는 못하다는 것을 밝힙니다.

타력, 부처님의 크신 위신력에 의하여 드는 삼매보살삼매 정도가 돼야 번뇌심, 탐욕심, 중생심 모두가 비로소 녹습니다. 업장까지 녹습니다. 죽을 때 나쁜 병 얻어 똥오줌 누고 죽는 일도 없습니다.
 

도고마성道高魔盛

과거 생에 선근이 있는 불자 여러분!

위와 같은 여러 장애들 때문에 구도자 중 자력으로 깨달음을 얻은 이들이 천에 하나, 만에 하나 정도일 뿐입니다. 깨달음도 이렇듯 어려운 데 깨달음 이후의 수행은 더욱 어렵습니다. 그것은 불 보살의 모습으로 나투어서 자기 권속으로 삼으려는 변화술에 능한 천마들의 방해 魔障를 극복해야 하는 어려운 공부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 사람이 깨달음을 얻거나 나아가 아라한 되고, 아라한이 보살 되고, 보살이 붓다 되고자 사바 세상에 몸 받아 올 때 마장은 위계가 높아질수록 필연적으로 무섭게 따라 붙습니다. 도고마성道高魔盛입니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가끔 이 사바세계에 아라한이 나오고, 정토보살이 나옵니다.

큰 스승이 없이 자력으로 성과를 얻은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라한이 될 수행자에겐 때가 되면 성중하늘에서 도반 아라한들이 내려와 외마를 막아주고 공부를 지도해주기 때문입니다.

정법의 길로 끌어주기 우해 그 수행인에게 옵니다. 역시 보살이 나올 수 있는 것은 정토에서 보살들이 보살과를 이룰 시기가 된 수행인에게 와서 도와주고 이끌어주기 때문입니다.

붓다 될 성자는 부처님이 오셔서 지도하십니다. 그 외에 성자와 불 보살의 가피없이 자력으로 성과를 얻는 것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외마를 막아 줄 큰 스승 없이는 공부가 될 수 없습니다.

자력수행으로는 그 힘든 마장을 도저히 이겨낼 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타력을 간과해선 결코 되는 일이 없는 것입니다.  

이제는 타력불교다! 

절대계에 불과를 증한 붓다님들이 계신다는 이 복음을 부정하지 마십시오. 이제 자력불교에서 타력불교로 거듭나야 할 때입니다. 부처님의 크신 위신력을 입어 수행하지 않으면 아라한과도 어렵습니다.

지금까지의 자력불교로는 21세기의 인류를 향도하기 어렵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싹을 틔우고 그것이 성장하여 많은 알곡을 얻으려면 농부의 손길도 필요하고 적당한 비료, 햇빛, 비, 바람도 필요합니다. 자력·타력은 필요 충분조건입니다.  

부처님께 귀의 염불하는 타력불교로 들어와야 합니다

인간 세상의 흥망성쇠는 자연의 이법입니다. 양지가 음지 되고 음지가 양지 되는 것은 자연의 이치라는 것입니다.

잘 사는 사람이 못 살게 될 수 있고, 못 살던 사람이 어느 날 부자가 되어 있습니다. 약한 나라가 국력이 신장되어 강한 나라가 되고, 세계 제일의 제국이 몇 백 년을 지탱하지 못하고 강국强國의 대열에서 낙오되고 약소국으로 전락되기도 합니다.

‘불교를 신봉하는 동남아국가들이 왜 잘 살지를 못하는가? 기독교 문명권 서구 여러 나라들이 잘 산다, 나보다 더 많이 배우고 잘 난 이들이 그 종교를 따른다, 나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가는 길을 따라 갈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재산이 많고 학식이 풍부하다고 하여, 똑똑하고 잘났다고 하여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욕심이 적어 자기 분수에 만족할 줄 알고 교활하지도 오만하지도 않으면서 정직하고 진실하며 인륜과 도덕을 지키면서 사는 그 사람이 보다 더 훌륭한 사람인 것입니다.

성자를 공경하고 부모에게 효도를 할 줄 알고 불쌍한 이웃을 돌보며 나라를 사랑하는 그런 사람은 보다 훌륭한 사람입니다. 여기서 더욱 나아가 정법을 만나 내면의 영혼을 백설같이 정화한 사람이야말로 진실로 바람직한 인간상입니다.

이 몸은 영원하지도 않고 참된 것도 아닙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생성 소멸합니다. 그래서 본래 비어있습니다. 《금강경》의 일합상一合相의 도리로 보아야 합니다. 일체가 공입니다.

출가하여 수행하는 스님들은 나와 세상에 대하여 집착하지 않고 청정한 계율을 잘 지키면서 탐진 삼독심을 정화해 갑니다. 조석으로 이 나라와 세계의 인류 모두가 전쟁 없이 평화롭게 잘 살기를 기도합니다. 부처님의 위대하신 발자취를 가슴에 담고 여러 생을 통해 지은 죄업장의 소멸을 발원하면서 염불로써 생각을 모아갑니다. 깊은 고요로 침잠해 들어갑니다. 선정에 듭니다. 마침내 시간을 초월한 적정으로 빠집니다.

흑암의 동굴 속에서 몇날 며칠을 갇혀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태양이 작열하는 바깥 세상으로 튕겨져 나왔을 때, 내리쬐는 빛 때문에 생각 따위는 찾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견성 경계입니다.

칸트Kant, 19세기 초 독일의 철학자 가 존재의 근원인 빛自性의 光明 속에서 3일을 보냈다합니다. 바로 시공을 초월한 적정의 경계였습니다. 철학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희를 가져온 칸트는 비판주의의 웅대한 철학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나我 라는 생각도, 어떤 대상의 흔적도 없습니다. 급기야 우주의 제행諸行을 주재하는 진리, 이법의 본래 모습을 면대합니다. 견성입니다. 도를 통했다는 자리입니다.

여기서도 한없이 들어가면 삼매에 듭니다. 우주의 모두를 요달합니다. 중생이 나서 사는 육도의 세계를 봅니다.

불교에선 여기를 보살의 법위라 봅니다. 보살이 무량겁동안 반야와 복덕을 지으면 비로소 붓다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 불신을 얻는 부처님이 됩니다. 이런 자리는 결코 학문을 통해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실천 수행으로서만 드는 경지입니다.

이 수행자는 인생을 압니다. 우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압니다. 어떤 가르침이 참된 진리라는 것을 잘 압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2권 10장 중에서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자력문自力門과 타력문他力門
 

현재 세계 불교의 수행의 문門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무명 곧 어리석음, 무지無知 때문에 탐심과 진심을 내어 여러 나쁜 업을 짓고, 윤회생사하는 과보를 받아 사는 것이 중생의 삶의 실상입니다.

탐진과 무명을 떨쳐 착하고 바르게 살아 청정심을 되찾고 지혜바라밀로 윤회생사를 해탈할 수 있다는 자력문自力門의 교설이 있고, 아미타부처님의 측량할 수 없는 크나큰 가피와 손길에 의해 구원될 수 있다고 보는 타력문他力門인 정토문의 교설이 있습니다.

여기서 나는 새로운 타력문, 타력불교를 따르라고 간절히 권하는 바입니다. 우리가 인도에 꼭 가야할 경우에 자력으로 걸어서 가는 길이 있고, 승용차나 배, 비행기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지혜 있는 자는 마땅히 비행기나 배, 승용차를 이용할 것입니다.

출처 :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Ⅱ≫ 9장
       광명 만덕, 자재 만현 저




자력과 타력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는 자력으로서는 아라한까지 도달

할 수 있으며 그 이상 위로 오르기 위해서는 타력에 의존해야

된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타력이란 바로 칭명염불 등으로 불보

살의 가피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저 또한 자력만으로

안 되는 것이 수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스승을 구하고

큰스님을 친견하려고 하는 것이 모든 수행자와 구도자들이 추

구하는 바램이 아닌가 합니다.


만사를 성취하는데 있어서 혼자서 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

며 정신계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21세기 수행 문화

의 한 흐름이며 사조입니다.  21세기에는 특히 자력이란

의미가 퇴색되어 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21세기는 유례와 전

례 없이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보다 긴밀한 인연법에

의해 자신의 존재 구조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인연이 다하면 사라지고 인연이 생기면 생하게 되는 것이 불

법의 이치이므로 자신의 구도과정 또한 인연에 의해 만들어지

고 인연에 의해서 전개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자신의 존

재성 자체는 자신 스스로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절의 인연과 선지식들 그리고 불보살님의 가피가 있어

야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를 해득하는 선결 요건이라고 말

씀드리고 싶습니다.  정신계와 존재의 하이어라키(중생, 수다원, 사

다함, 아나함, 아라한, 대아라한, 보살(하품, 중품, 상품), 붓다, 석가모니부

처님)를 투철하게 통잘하지 않고서 큰스님의 글과 말씀을 무조

건적이고 부정적인 단식 판단과 단견으로 비방하는 것은 지중

한 죄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고대 이집트의 현자 헤르메스는 "위에 있는 대

로 아래에도 그러하고, 아래에 있는 대로 위에도 그러하다."라

는 가르침을 갈파하였습니다.  이 말은 하늘 아래의 세속에서

벌어지는 세상살이가 정의와 자비 그리고 위용과 겸손을 수호

하는 존재들에 의해서 주도되어지는 것처럼, 하늘 위의 불보살

의 세계 또한 얼마나 정의롭고 자비로운가에 따라 그 위계가

정해진다고 해석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속에서 친구들을 사귀고 가족의 도움으로 커가는

것처럼, 수행자는 불보살의 가피를 받도록 염불선을 통해서 정

신계의 길을 열어 나가는 것이 매우 평이하면서도 빠른 방법이

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알기에 어느 누구도 정신계의

상위 존재의 가피와 보호가 없이는 제대로 수행을 정진해 나갈

수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초불이신 석가모니부처님이 얼마나 뼈아픈

고행을 감내해야 했는지 이루 형언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점에 대해서 석가모니부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한 21세기 불교계의 거대한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최고의 진법

서를 집필하신 큰스님의 자비로움과 이러한 진경을

쓰기 위해서 그동안 큰스님이 얼마나 치열한 구도 여정을 행했

는가는 가히 저와 같은 수행자의 식견으로서는 상상을 초월합

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서 사자후하신 대로 아라한까지

는 자력 신앙이면서 동시에 타력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큰스님께서는노력 없이 불보살의 가피만을 말씀하신 것이 아

니라 염불선, 지계(계율을 지킴), 효, 5대 대승경전들의 해의 및

독송 등 다양한 노력을 통해서 아라한까지는 어는 정도 자력으

로 해야 하고 어는 정도는 불보살의 가피가 있어야 된다고 말

씀하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전혀 발심도 하지 않고 정진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즉 염불

선, 효, 천도제, 지계 등 아무 노력 없이 불보살님의 가피를 기

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를 비방하는 구도자들은 큰스님께서 하신 말씀의 저변 지식과

지혜를 통찰하셨으면 합니다.  큰스님께서 말씀하시면 그것만 가

지고 비방하려고 하지 마시고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가를 둥그

렇게 유기적이고 전체적으로 이해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

혹한 구도자들의 단견으로 큰스님의 말씀에서 일부분을 부

정적으로 확장해서마치 전체가 부정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행

위는 삼가야할 것입니다.  이웃 종교에서도 믿음을 강조하고 선

행을 강조하는데 어찌 불교의 가르침을 설파하신 큰스님께서

오로지 자력은 필요 없고 타력만이 필요하다고 하셨겠습니까?


큰스님의 심오한 가르침을 해의하려면 깊이 있게 책을 통찰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큰스님께서 아라한 이상의 경지에 대해

서는 타력으로 가능하다고 말씀하신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고 저는 생각합니다.  보편 타당한 이해의 견지에서 봤을 때 아

라한만 되도 엄청난 공능을 갖게 되고 정신계에서 높은

위계와 서열을 차지하게 되는데 그 이상의 경지에 대해서는 책

임과 임무(사명감)가 막중하기 때문에 석가모니부처님과 불보살

님의 가피 및 위신력이 없으면 보살위를 증위할 수 없다고 보

는 것이 이치에 맞는다고 하겠습니다.


아라한 이상은 불보살님의 가피를 받아야 한다고 하신 말씀

은 100번 이치에 타당하며, 심지어 불보살님을 믿고 불보살님

을 위해서 목숨을 거는 용기와 결단이 없이는 자신도 불보살위

는 고사하고 확고한 아라한 증위도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불가

에서도 백척간두 진일보라고 하여 목숨을 걸어랴 한 고비를

넘고 공과를 증득함을 이야기합니다.


서양의 실존주의 철학의 대가 야스퍼스는 이를 '한계 상황'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물론, 이는 아라한의 경지로 가는 과정이지

결코 불보살의 경지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불보살의 경지는 인간으로서는 생각하기 힘든 경지이며

참으로 이루기 힘든 경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큰스님께서 설

하신 말씀대로 수행자가 아라한의 경지에 이르는 것마저도 참

으로 힘들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물론 자신의 힘으로 뚫고

아라한까지 올라갈 수 있어도 그것은 무척 힘든 일이며 만약

우리가 쉬운 길을 안다면 누가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을

가겠습니까?


큰스님의 자비로우신 마음으로 출간하신 서적 <<21세기 붓다

의 메시지>>는 우리에게 쉬운 길을 가르쳐 주신 불가의

종풍을 진작시키는 종지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

다.  아라한까지는 자력 신앙에 의해서 좌우되지만, 물론 타력

신앙에 의존하면 더 빠르게 올라갈 수 있다고 이해하고 있습니

다.  그러나 큰스님 말씀대로 아라한 위의 불보살의 경지는 다

른 역대의 부처님들과 보살님들의 가피가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또한 지혜의 눈을 구비

한 수행자와 구도자들께서도 이미 큰스님의 가르침을 매우 긍

정적으로 이해하고 깨우쳐 수지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의심이 가는 구도자분을 위해서 세상의 이치를 통해서 타력

이 필요함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봄이 오면 들에는 새싹이 자랍

니다.  새싹이 자라기 위해서는 토양과 수분이라는 타력이 요구

되고 또한 자신 스스로 생존 본능에 의해 토양을 뚫고 대지로

솟아 나오려는 자생력(자력)이 요구됩니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아라한까지의 경지는 타력과 자력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입

니다.  하지만 새싹이 더 커져 어린 나무가 되면 그 어린 나무

는 여름이 왔을 때 태풍과 폭풍우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면 생명

을 잃게 됩니다.  즉, 혹독한 비바람에 견딜 만큼 큰 나무가 되

지 않고서는, 어린 나무는 거목으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따라

서 어린 나무가 잘 자라 거목이 되기까지는 사람의 도움이 필

요합니다.  즉 어린 나무에게는 타력이라는 버팀목이 필요합니

다.  이처럼, 아라한이 잘 성장하여 붓다가 되기 위해서는 불보

살의 가피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삼라만상의 묘법은

풀 한 포기가 자라나는 것에도 있다는 역대 고승의 가르

침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구도자들이라면 좀 더 폭넓은

사유와 통시적 사유를 하셔야 할 것입니다.  세상의 이치도

제대로 꿰꿇어 보시지도 않으면서 큰스님의 거룩한 대법륜

의 가르침을 비방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구도자가 아닐 것입

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영산불교사상연구소






 자력으로는절대 불 보살이될 수 없습니까


 문6 

대 소승의 수행법으로 크게깨쳐도 아라한이라하셨는데,

자력으로는절대 불 보살이될 수 없습니까?


답6 

소승상좌부불교 테라바다 대승 금강승의 수행의 본질은 같

습니다.  삼학을 통해서, 탐 진 치 삼독을 닦고

깨달음을 얻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수행법이 다를 뿐입니다.


본성을 만남으로써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러나 본성과 계합하는

것은  한 식경을 지나지 않습니다.


수행은 우리 자신을 위한 무언가를 원하기 때문에 시작합니다.


수행이 차츰 깊어지고, 지혜가 증장해 감에 따라 자기 중심의 소

승에서, 비이기적인 수행인 대승으로 나아갑니다.  모든 불교 종파

의 수행은 인간 내부의 탐욕과 성냄, 무지의 제거를 목표로 합니다.


불교 수행은 이기심과 집착을 넘어서고 열반을 얻는 것이 목표

입니다.  수행이 깊어지면 자연히 일체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대비

심이 일어나 대승을 향해 나갑니다. 


따라서 모든 불교 종파의 수행법으로 깨달았으면 아라한까지는

도달합니다.  여기까지가 우리 인간의 한계입니다.  부처님께서 수

행승이 아라한 성과를 얻도록 주로 가르치신 것도 그 때문입니다.


아라한은 다음 생을 받아와 여러 바라밀 수행을 함으로써, 타

력에 의하여 보살과를 성취합니다.  선근 공덕을 쌓아 부처님을 염

하고, 불명을 구창하면 불퇴전의 보살과를 얻게 됩니

다.  자력으로는 결코 보살과 붓다가 될 수 없습니다.  아라한이 인

간 자력의 한계임을 거듭 밝히는 바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붓다는 법 보 화 삼신을 갖춥니다.  법신과

보신이라는 불신을 얻지 못하고서는 붓다라 할 수 없습니다.


이 말은 중요한 말입니다.  역사적인 선언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타력불교


이제 우리는 윤회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하늘세계 가면

사람으로 오니까 하늘 사람 좋지요. 하지만 우리는 궁극

적으로 윤회, 삼계에서 윤회에서 탈출해야 되요. 그러면

우린 여기 안와요. 여기, 영원히 안 올수가 있어요.


하늘에서 하늘이라고 하는 그 하늘에서 살지요. 그러니까

우리는 윤회에서 벗어나기를 서원하고 그 곳에 목표를 두

어야 해요. 그런데 자력으로는 어려워요.


자력으로는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내가 비유를 들기

를 인공위성이 지구 인력권 벗어나기 어렵듯이 삼악도를

안 가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 또 윤회를 벗어나려면 삼계의

윤회를 벗어나려면 로켓트가 지구인력권이 아니라 태양계

인력권을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기가 막히게 어렵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거요. 자력으

로는 참으로 어려워요. 자력으로는 어려워. 그래서 절

대하신 힘(파워)을 지닌 부처님께 귀의, 귀명해야 합니

다. 그래서 부처님 중에서도 부처님이신 우리 석가모니

부처님께 목숨 바쳐 귀의해야 되요.


여러분 말은 쉽지, 목숨 바쳐 귀의 한다는 말은 쉽게 하는

데, 이것 참 깊은 뜻을 지니고 있다 구요. 목숨을 바쳐서 귀

의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석가모니불을 칭명을 하되

반드시 경전 읽고 하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출처/2007.1.1.월(음11.13) 큰스님 부산 법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