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2일 화요일

[전생사례-2]천도재 지내고 사례 씨받이, 왕양명,한산 습득 外

 

천도재 하면 이런 사람 있어요.(씨받이) 


자기가 자식이 없으니까 씨받이 여인을 들여와요. 그래서 아들을 딸을 볼 때까지 씨받이와 삽니다. 아들 낳아주니까 논 열마지기 준다고 약속합니다.



나중에 아들을 낳았어. 열 마지기를 줘요. 정실부인은 안 그래도 눈에 가시였는데 돈까지 줄 수 있나 해서 보통 여자쪽에서 청부살인합니다.



거의 다 죽습니다. 돈 보퉁이를 안고 가다가 한적한 곳에서 죽습니다.



돈도 뺏기고 목숨도 뺏기고... 이렇게 죽으면 그 한이 하늘을 찔러요. 무주고혼입니다. 명부 절대 못 들어갑니다.



그 마음이 어려요. 물이 얼듯이. 그래서 백 겁, 천 겁이 흘러도 안 움직입니다. 복수심만 있어요. 그 마음만 있어요.

 

그래서 오직 기회만봅니다. 상대만 죽이나, 그 집 자식 전부입니다. 줄초상 만듭니다. 그런데 그 대에 자기 뜻을 못 이루면 자기가 무주고혼으로 있을 때 저 사람이 사람 몸을 받으면 그 사람 몸에 들어갑니다.



간이나 ,폐, 위, 쓸개에 들어가서 살과 피와 하나가 됩니다. 언젠가 도인이 천도재하면 여자 몸에서 제거, 제령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완전히 그 사람 피, 살이 되어버립니다. 그 빙의된 것 끄집어내기 힘들어요. 여간 작업해야 합니다.

 

그런데 발버둥 칩니다. 나를 왜 잡아가냐고, 나는 이렇게 죽었는데 왜 공평하지 않나 그겁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그렇죠.



그래도 여러분이 현지사를 믿고 그렇게 해서 천도재를 의뢰하면 할 수 없이 명부에 넣습니다. 명부에 들어가기 전에 부처님께 발버둥을 쳐요.



그런 사람들은 하늘로 올려줘야 합니다. 하늘가면 풀이지지만 안 그러면 안 풀어집니다. 그 여자 죽이면 또 아들로, 남편으로... 다 잡아갑니다. 그래서 줄초상납니다.

어쨌든 우리는 그런 죄를 지으면 안 됩니다.



하나의 실례를 든 겁니다.
 

출처/법문집2권중 - 현지사 2007년 4월 29일 자재 만현 큰스님 법문중 발췌




옛날 당나라 시대 때 

옛날 당나라 시대 때, 1200~1300년 전쯤 되죠. 어느 선비가 군인으로 징발되어 갔습니다. 그래서 싸우다가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선비가 포로의 신세가 되어서 강제 노역을 당하니까 살 수가 없습니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 처자가 그립습니다.



차라리 내가 탈출하다 죽을망정 내가 탈출해야 산다고 하여 기회를 벼르다가 탈출합니다. 산을 건너고 강을 건너길 며칠, 밤으로, 밤으로 탈출합니다. 자기 고국을 향해서. 이제 며칠이 됐어요. 한적 강을 만나서 발을 담그고 이제 휴식을 취합니다. 한참 휴식을 취하는데 저기 산 쪽에서 어느 여인이 걸어옵니다.



그래서 유심히 보니 몽매(夢寐)에도 그리워했던 자기 부인입니다. 자기 부인이 자기 쪽으로 걸어옵니다. 그래서 쏜살같이 달려가서 부둥켜 웁니다. 이제 고국을 향해 걸어갑니다. 날이 어두워 주막을 찾아서 방을 하나 얻습니다. 그래서 3일 밤낮을 지냈습니다.

 

고국의 소식을 듣고 새로 사랑하는 그 감정, 회포를 풀고 이제 집으로 가자. 고향을 향해 걸어오는데 그 부인 하는 말이 ‘꼭 내가 할 말이 있습니다. 서방님, 사실 나는 인간이 아닙니다. 너무나도 당신이 그리워서 당신 있는 곳을 기도하며 찾아왔습니다. 나는 죽은 지 사실 3년이 됐습니다. 우리 고향도 적국에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적국에 끌려가다가 도망을 쳤습니다. 그러다 도저히 붙잡힐 것 같아서 깊은 강물 속으로 정절을 지키기 위해 뛰어내려 자살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3일후에는 우리 고향 어느 마을 어떤 사람의 따님으로 태어날 거예요.



3일 후에 찾아오세요.’ 하더니 홀연히 사라졌어요. 이 선비가 너무너무도 부사의하고 믿기지 않고 분명히 자기 무릎을 꼬집어도 아프고 현실이고... 그래서 3일이 있다가 부인이 일러준 그 사람 집을 찾았습니다.



찾았는데 그 아이가 태어난 지 3일이 됐어요. 계집이 태어났어요. 그 집에 후손이 없어요. 자손이 귀했어요. 그래서 자초지종을 주인을 찾아서 말했습니다. 주인도 놀랄 수밖에.



그런데 그 아이가 태어나서 3일간 울더니 그 남자가 가서 이야기하니 전말을 이야기할 때 울음을 그칩니다. 그 꼬마 아저씨가 이상한 일이라고 ‘당신 어디 가지 말고 데릴사위로 사시오.’ 그러자고.. 데릴사위로 16년을 삽니다. 꼬마 아이가 16살이 되어 날을 받아 결혼을 합니다. 그래서 결혼을 해서 해로(偕老)했다고 합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왜 하느냐하면 사람이 죽으면 끝이 아니다하는 것을 일러주기 위해서입니다. 나이 많은 할머니분들 스님 법문, 격이 높은 법문 많이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스님 말씀 이해하십시오.

 

여러분은 얼마 안가면 죽지요. 몸뚱이 입장에서는 없어지고 죽지만 몸뚱이에서 몸뚱이를 의지하고 사는 그 영혼체는 죽지 않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명이 다하건 다하지 않던 간에 그 영혼체는 나옵니다. 이 집에서 살 수 없으면 나옵니다. 나와서 요 놈이 두 길을 가는데 명부로 들어가느냐 못 들어 가느냐입니다.

 

착이 많으면 못 들어갑니다. 착이 많다는 것.. 우리 할머니들은 여자 분들은 정이 많아요. 달리 말해 착이 많아요. 외동아들이나 남편이 걸려서 어디 놀러가도 제대로 놀지도 못해요. 착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착이 강하면 명부에 못 들어갑니다. 명부에 못 들어가는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

 

여러분 자기를 생각할 시간입니다. 여러분은 혼자 갑니다. 남편, 자식이 아무리 잘해주어도 나 혼자 가거든요. 그러니까 이제 정리, 생각을 수습할 때에요.


출처/법문집2권중  2007년 6월 27일 자재 만현 큰스님 법문중 발췌





이조 선조대왕 때 '권율'이라는 재상이 있었습니다

 선조대왕 때 '권율'이라는 재상이 있었습니다. 이 분은 '이순신'장군하고 라이벌이었던 장군이기도 했습니다.   '권율'장군에게는 두 사위가 있었어요. '신립'이라고 하는 장군이 있었고, 오성(鰲城) 이항복(李恒福)과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을 알지요? 오성(鰲城) 이항복(李恒福), 이분이 '권율'장군의 사위였어요.



이 두 사람이 자기의 장인인 '권율'장군을 만났는데 '권율'장군이 사람을 보는 안목이 있었어요. '신립'장군은 당초에 그 상(얼굴 모양)이 원만했답니다. 원만하고 부귀를 누릴 만한 상이었어요. 그런데 자기의 큰사위인  '신립'을 보니까 요귀(妖鬼)와 사기(邪氣)가 끼어있어요. 그래서 저 사위가 근래에 무슨 짓을 했을까 하고 궁금해 했단 말이어요. 그래서 '신립'에게 물어 봅니다. ‘자네는 요즘 특별히 무슨 일이 있는가?’하고 물어보니까, '신립'이 대답하기를

‘예, 장인어른, 제가 강원도 산속에 달포 전에 사냥을 갔었습니다. 실제로 일어났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을 만났습니다. 산중에서 길을 잃고 하룻밤 머물 집을 찾고 있었는데, 뜻 밖에도 집 한 채를 발견하고 그 집에서 하룻밤을 머문 적이 있습니다. 그 집을 찾아가서 주인을 찾으니까 아무도 없고, 소복을 입은 젊은 여자가 나오더군요.



그 소복을 한 젊은 여자가 '신립'장군을 보고 울면서 근래에 일어났던 자초지종을 주~욱 이야기 하는데 이런 이야기였습니다. 자기 아버지가벼슬을 높이 살았는데 어떻게 당쟁에 휘말려가지고 세상이 싫어서 낙향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산골에다가 집을 지어가지고 전부 이사를 했습니다.



이사를 하면서 그 많은 식솔(종)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종들 가운데는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센 사내종이 있었는데, 그 사내종이 자기의 아버지한테 딸을 달라고(딸한테 장가를 들겠다고)하니 아버지가 펄쩍 뛰었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노발대발해가지고 여러 종들에게 ‘저 못되고 힘센 종놈을 나무에다가 묶어 놔라’ 해가지고 나무에다가 묶어 놨답니다.



그런데 그 종놈이 어찌나 힘이 세던지 저녁에 묶은 밧줄을 풀고 나와서 아버지 어머니 종들을 다 죽여 버렸습니다. 장군님! 나를 좀 보호해 주소서. 어쩌면 오늘 저녁이나 혹은 내일 저녁에 나타나서 나를 죽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를 살려 주소서 하고 청하더라 그거요.



그래서 '신립'장군이 가만히 들어보니까 너무도 해괴한 일이고 동정이 가고 해서 ‘아! 그러냐. 알았다.’고 대답을 하고 그날 저녁에 그 집에서 자게 되었습니다. 예측한 대로 그 못된 종놈이 칼을 들고 들어오는데 그것을 보고 '신립' 장군이 어렵잖게 종놈을 처치해버렸습니다. '신립'은 장군이잖아요. 몇 십 명도 문제가 아닌 거예요.



그 종놈을 처치하고, 이튼 날 이제 나는 갈 길을 가야 되는 몸이어서 떠난다고 하니까, 그 처녀가 '신립'장군한테 매달리면서 ‘나를 보호해 주소서. 나를 살려 주시옵소서. 나를 책임져 주세요.’하고 그렇게 애원하더라 그거요. 그런데 그 '신립'이 도덕적으로 상당히 깨끗했던 모양이에요. 자기 부인이 있는데 허락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갈 길도 바쁘고, 또 집이 있고, 그러니까 다른 인연을 찾으십시오. 내가 그 못된 놈을 처치했으니까 나는 가야 된다’고 하면서 붙들고 사정하는 그 여자를 뿌리치고 왔답니다. 이제 상당히 길을 걸어 왔는데 그 처녀의 비명소리가 산천을 흔들더라 그거예요. 그 비명소리가 나서 돌아보니까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어요. 다시 그 처녀의 집에 가보니까 그 여자가 자기 집에다가 불을 놓고 죽어 버렸다 그거예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라고 장인인 '권율'장군한테 말씀을 드렸습니다.’



'권율'장군이 잘 봤지. 이 '신립'장군은 평소에 원만하고 부귀를 갖춘 상이야. 그런데 지금 요귀가 끼어 있거든. 그래서 '권율'장군이 ‘아! 그랬었구나’ 하는 것을 짐작을 했습니다.



오성(鰲城) 이항복(李恒福)한테는 또 무슨 일이 있었느냐? 오성이라는 사람은 귀인의 상은 아니지만 얼굴에 사기(邪氣)가 있었어요. 그런데 사기(邪氣)가 없어져 버렸어. 오성을 보니까 얼굴에 나타났던 요귀(妖鬼)없어져버렸단 말입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났나 하고 물어보니까 오성이 대답하기를,

‘장인어른, 저는 충청도 천안 지방을 주~욱 돌아다녔었는데, 하루는 날이 저물어 가지고 어느 주막집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요 잠이든 한밤중에 방문이 부스스 열리더니 30살 넘어 보이는 처녀가 다짜고짜로 달려듭디다. 너무도 엉겁결에 벌어진 일이라 꼼짝을 못하고 당했습니다. 그 처녀가 ‘아! 됐다’ 하면서 그 자리에서 참 기묘하게도 나뒹굴더니 기막히게도 급살을 해서 죽어버렸습니다. 그 추녀(醜女)는 그 지방에서 소문난 추녀였었는데 아무도 데려가는 사람이 없었답니다. 그래서 가끔 저녁이면 그 주막에 나타나서 손님들한테 소원을 풀어달라고 애원을 했던 추녀입니다.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장인은 ‘아! 그랬었구나. 그러니까 자네 얼굴에 평소 사기(邪氣)가 돌았었는데 그 사기(邪氣)가 싹 없어져버렸어.’라고 말했습니다. 오성(鰲城) 이항복(李恒福)의 얼굴에 사기(邪氣)가 돌았었는데 그 사기(邪氣)가 전부 없어져 버렸어. 여러분, 왜 없어졌겠습니까? 그 여자(추녀)가 가져가는 거예요. 여러분! 이치가 있습니다.



남자들이 함부로 처녀나 유부녀를 강제로 추행을 하면 그 당사자의 액운을 가져갑니다. 그런 과보가 있습니다. 그 처녀를 그냥 무정하게도 떼어 버리고 자기 길로 왔던 '신립'은 임진왜란 당시 탄금대에서 전사를 했고, 이항복은 나중에 정승까지 올라갔습니다. 일생을 잘살았다는 거예요.



우리 신도 분들, 우리는 기어이 윤회를 벗어나야 돼요. 지옥이나 짐승 몸을 받아 가면 큰일입니다. 그러면 절대로 안 됩니다. 여러분, 지금이 정말로 좋은 기회입니다. 이 기회를 살려야 됩니다. 석가모니불을 간절하게 염하면서 발원을 해야 됩니다. 욕심을 가지고 하면 안 됩니다. 세간적인 욕심을 가지고 하면 안 됩니다. 

출처/현지사 2009.6.30.화 큰스님 춘천 법문 중에서 발췌





조선조 제22대 정조대왕 때의 이야기

조선조 제22대 정조대왕 때의 이야기입니다. 이씨 조선 제22대가 정조왕인데, 그 정조대왕 때의 일입니다. 정조대왕이 후사(後嗣)가 없었어요. 아드님(원자, 세자)이 없었어. 그래서 이 분이 항상 아드님 갖기를 원했습니다. 하루는 우리나라 백성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 미복(微服)을 하고 민정을 나갔습니다. 왕의 복장이 아닌 보통사람들 옷으로 갈아입고 내관 한 사람을 대동하여 밤늦게 까지 서울 장안을 주~욱 돌아다니면서 살피다가 남산을 올라갔답니다.



남산에서 보니까 바로 앞 초가삼간집에서 서기광명(瑞氣光明)이 뿜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정조대왕이 볼 때에 무지개 색깔 비슷한 서기(瑞氣)가 뻗쳐있어요. 그래서 예삿일이 아니다 해가지고 내관을 시켜서 ‘그 초가삼간을 방문하도록 하고, 그리고 그 서기(瑞氣)가 뻗친 그 방에 누가 머물고 있는 가를 알아보고 오너라’ 했더니, 내관이 살펴보고 와서 아뢰기를 ‘대구 동화사에서 수행을 하고 있는 '용파'라는 스님이 한양에 올라와서 그 집주인이 신도였든지 방 하나를 얻어서 주무시고 있습니다.’ 라는 거예요. 그래서 왕이 그 스님을 불렀습니다.



그 스님을 딱 보니까 한 눈에 ‘아! 큰스님이구나.’ 할 정도로 기품이 당당하고, 눈이 공부한 맑은 눈이었습니다. 그리해서 그 스님에게 ‘아무 날 입궐을 해서 나를 찾아라’ 하고 입궐하도록 했어요. 그 스님이 무슨 일인가 하고 약조한 날짜에 입궐을 해서 왕을 배알(拜謁)하게 되었어요. 왕이 ‘내가 후사가 없으니까 고민이다. 후사가 없으면 안 되니까 당신의 법력으로 내 고민을 풀어 줄 수 없겠소?’ 하니까, '용파'스님이 자기의 능력 가지고는 안 되겠어. 그런데 자기가 잘 아는 큰스님이 있었어요.



그 큰스님 법명이 '농산'이어. '농산'이라고 하는 큰스님을 자기가 잘 알고 있어. 그래서 왕한테 말씀드리기를 ‘제가 이것을 숙제로 알고, 저에게는 도반이 있는데 나보다도 법력이 출중하니까 만나서 상의를 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농산'스님은 그때 한양 장안의 '금선암'이라고 하는 암자에서 수행을 하고 있었어요. 이 '농산'이라고 하는 큰스님은 어떤 분이냐? 금강산 '만행암'에서 평생을 주력(다라니)으로 득도를 했어요.



그 후 전라도 장흥에 있는 고금도라는 섬에 가서 천일기도를 목표로 하고 공부를 했답니다. 쌀은 물론 아무것도 없이 무인도인 고금도에 들어가서 천일 동안 공부를 하는 거예요. 다만 부처님에 대한 믿음만 가지고 고금도를 갔지요. 석화를 따고, 산딸기를 따먹고 하면서 천일기도를 하는데 한 해가 지났어요. 한 해가 지나고 보니까 뜻 밖에도 배 한척이 표류하다가 고금도에 기착을 했어요.



가서 보니까 뱃사공은 없고 쌀가마니가 배에 가득 실려 있어요. 아무리 기다려도 주인이 나타나질 않았답니다. 그래서 그 쌀을 양식으로 삼아 천일을 다라니 주력을 했습니다. 그 결과 도통을 했어요. 크게 신통을 얻었답니다. 신통을 얻어가지고 배도 없이 육지를 나올 수 있었어요. 바다 위를 걸어가지고  육지로 나온 스님이어요. 그 분이 '농산'스님이어요. '용파'스님은 '농산'스님하고 잘 알아요. 도반이었습니다.



그래서 '용파'스님이 '농산'스님에게 찾아갔습니다. '용파'스님이 한양의 수락산 내원사에다가 방 하나를 얻어 놓고, 한양의 세금동에 있는 금선암에서 주석하고 있는 '농산'스님을 찾아가 상의를 했어요. ‘나라에 후사가 없으니까 우리가 100일 기도를 합시다. 정조대왕의 후사를 이을 아드님을 낳을 수 있도록 우리가 100일 기도를 해드립시다.’ 하니까 '농산'스님도 쾌히 승낙을 했어요. 그래서 '농산'스님은 세금동 금선암에서 100일기도를 입재 했고,   '용파'스님은 수락산 내원사에서 100일 기도 입재를 했습니다. 100일이 되어 회향을 했는데 왕궁에서는 잉태 소식이 없어요.



그러니까 중전이나 후궁들한테 잉태 소식이 없었답니다. 그래서 다시 '농산'스님하고 '용파'스님이 만나서 ‘100일 기도를 한 번 더 하자’고 하여 또 100일 기도를 더 했습니다. 또 100일 기도를 했지만 200일이 지나가도 아무 소식이 없어요. 그래서 아주 괴로워하다가 '농산'스님이 '용파'스님을 앉혀놓고 결심을 했어요.



‘내가 정조대왕 다음 대를 이을 아드님으로 태어날 것이다.’ 그렇게 결심을 하고 '용파'스님에게 자기의 결심을 편지로 적어서 왕한테 올려주라고 하고, 어느 날 기도를 마치고 목욕재계한 후 옷을 갈아입고 좌탈입망을 했습니다. 앉아서 가버렸다고요. 그러니까 정조대왕의 후사가 되려고 좌탈입망한 것이지요.



그 영혼체가 이제 들어가려고 하는 거예요. 정조대왕이 중전 혹은 후궁하고 합방하는 날 입태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좌탈입망 할 때 정조대왕의 후궁이 있었는가 봐요. 원빈 박씨라고 그래요. 원빈 박씨의 꿈에 '농산'대사가 연을 타고 입궐하는 꿈을 꾸었어요. 그리고 자기 방으로 드는 꿈을 꾸었어. 그러면서 입태(入胎)를 하였고, 10달이 차서 아기가 태어났는데 그 아기가 조선조 제23대 순조대왕입니다.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이야기를 왜 하느냐 하면, 여러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인연으로 되어가는 거예요. 인연으로 되어가요. 또 업이 모든 것을 창조 하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모든 사람들은 생각이 있잖아요. 생각이 있는 사람들은 한 생각이 중요한 거예요. 한 생각, 가령 ‘내가 정조대왕의 후사가 되어서 다음 생에 태어나 이 세상을 잘 다스리는 왕이 되리라’ 하는 한 생각, 이 한 생각이 중요한 거예요.



한 생각이 천당도 만들고, 지옥도 만드는 거예요. 이게 불교입니다. 생각 있는 사람들의 그 한 생각이 중요한 거예요. 저놈을 내가 죽여야 되겠다고 하는 한 생각, 이 생각을 잘못하면 사람을 죽이는 거예요. ‘나는 기어이 윤회생사를 벗어나야 되겠다. 부처님 회상을 만났을 때 윤회생사를 벗어나야 되겠다.’ 이 한 생각이 윤회생사를 벗어날 수 있도록 여러분을 이끄는 거예요.



그 한 생각이 대단히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이것을 ‵일체유심조′라고 합니다. 일체유심조,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요. 인연 따라 모든 것은 되어갑니다. 업이 모두를 만들어요. 똑같은 이야기입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연기법(연기론)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것을 알아 두어야 됩니다. 이게 불교입니다.


출처/현지사 2009.6.30.화 자재 만현 큰스님 춘천 법문중에서 발췌





 조선시대 선조대왕 때 일어난 실화

조선시대 선조대왕 때 일어난 실화입니다. 선조대왕은 임진왜란(1592~1598년)이 일어났던 그 당시를 살았던 왕입니다. 선조대왕은 덕이 있는 대왕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역사에서도 명군으로 기록됩니다. 상당히 덕이 있고, 지혜도 있는 명군으로 인정해 주는데, 그 당시 동인·서인이라고 하는 당쟁(黨爭)이 심한 때인지라 어진 정치를 펼치지 못했습니다.



그 때 전라도 진도 군수로 발령을 받아 부임해 간 ‵이응′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이름이 외자이지요. 이분은 대단히 선정(善政)을 베풀었습니다. 어느 날 일본 선박 한 척이 조선의 수군에게 나포(拿捕)되었어요. 조선의 관리들이 그 선박 속의 일본 사람들을 묶어가지고 데려왔어요. 그런데 진도 관아의 아전들은 일본 선박 뱃사공들의 수괴(수장)를 죽이려고 해요. 이 사람만은 죽여야 된다 그거요. 말도 통하지 않고, 왜 우리나라에 왔느냐 그거요.



‘이건 필시 무슨 뜻이 있다. 스파이가 아니냐. 이 못된 놈들. 이 중에서 한 놈은 죽여야 된다’

하면서 참수(斬首)할 찰나입니다. 진도군수 ‵이응′이 그 사실을 보고 받고 곧 명령을 내렸어요.

‘절대로 참수하지 마라. 심한 풍랑이나 태풍을 만나가지고 불시에 기착했을 것이다. 죽이지 마라. 내가 지령한다.’

하고 명령했습니다. 그런 후에 오히려 10일 동안 융숭한 대접을 해서 일본으로 돌려보냈답니다. 진도군수 ‵이응′에게는 ‵창해′라고 하는 손자가 있었어요. ‵창해′는 머리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기골이 남자답고, 지혜 총명하고, 빼어난 용모를 갖추었답니다. 어느 날 ‵창해′라는 분이 제주도 목사로 발령을 받아 관속 20여명을 거느리고 부임하는 길에 태풍을 만나 조난을 당하여 ‵이 창해′등 관속 3사람만이 겨우 목숨을 건졌습니다.



한참을 표류하다가 ‵지마도′라고 하는 일본 땅에 기착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 일본 섬의 도주(島主, 섬을 다스리는 어른)앞에 끌려가 가지고 심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아서 손짓 발짓으로 의사소통을 했지만, 도주가 볼 때는 죄인(스파이)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난날 자기들처럼 한때 조난을 당하여 조선의 진도 땅으로 표류해서 그렇게 고생을 한 사람들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도주가 바로 진도군수 ‵이응′이 살려 보낸 일본 선박의 수장이었습니다. 그 도주가‘너희들 ‵이응′이라는 사람을 아느냐?’라고 묻더랍니다. ‵이응′이 누구죠? 진도군수로 살았던 ‵창해′의 할아버지이지요. 그러니까 ‵창해′라는 사람이‘우리 할아버지입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도주는 너무도 반가워하며 융숭한 대접을 합니다. 그 창해라는 사람이 머리도 총명하고, 용모도 잘생기고, 남자답고 하니까 도주가 정을 붙입니다.



도주는 아들이 없고 딸만 하나 있었습니다. 가끔은 자질구레한 심부름을 시키다가, 차츰 상당한 어느 직책을 맡겨봅니다. 맡기는 쪽쪽 착실하게 일을 잘 처리했답니다. 그러니까 도주의 눈에 들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창해′를 불러가지고‘우리 딸하고 네가 평생 가약을 맺고 살아라. 부부인연을 맺고 살아라.’라고 말했습니다.



그 당시는 적어도 300~400년 전이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민주사회는 아니었습니다. 그 섬의 도주이면 그 섬에서는 완전히 삼권을 쥐고 있는 거요. 그런데 ‵이창해′는 그 당시 나이가 아마 30세 정도 되었습니다. 일찍이 12살 때 18살 처녀와 결혼해 가지고 살다가 19살 때 상처(喪妻)했어요. 일본여인들은 일반적으로 남편을 대단히 공경하고 예절이 분명해요. ‵이창해′는 도주의 딸과 결혼을 하여 사는데 이름도 성도 바꿉니다. ‵창해′는 놔두고 그 도주의 성을 따서 ‵모찌모또 창해′가 되었어요. 나중에는 도주가 모든 도의 정사(政事)를 ‵창해′한테 맡겨 버립니다. 그래서 30년을 삽니다. 슬하에는 아들 딸 12명의 자녀를 두었답니다. 그 중 큰아들 이름이   ‵의충′이었어요. ‵의충′은 자기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닮아가지고 도량이 넓고, 잘생기고, 아주 용맹스러웠어요.



이렇게 30년이 흘러갔습니다. 한편 고국에서는, ‵창해′어머니가 오씨인데 강원도 고성사람이어. 불교 신자였는데 관음 행자(관음 신자)였습니다. 자기 아들 제주 목사   ‵창해′일행이 바다를 건너다가 조난을 당했다는 비보를 듣고 실신했어요. 그래서 가까운 낙산사를 다니면서 아들 명복을 비는 것이 일과가 되고 습관이 되었답니다. 강원도 양양 낙산사는 지금도 유명한 곳이죠.



낙산사를 다니면서 아들이 조난당한 그날을 기일로 꼭 알고 해마다 천도재를 모십니다. 30년이 흘렀습니다. ‵창해′의 어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창해′의 어머니 곁에는 ‵남향′이라는 ‵창해′의 남동생이 있었습니다. 돌아가시면서 ‵남향′을 불러놓고 유언을 하기를‘너의 형이 떠난 날(조난당한 날)이 아무 달 아무 날이니까 이날만은 반드시 낙산사에 가서 천도를 해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창해′의 어머니가 신심이 있는 분이었어요.



고국에서는 그랬고, 일본에서의 창해는 이제 아들도 그렇게 많이 낳았고, 또 자기 아들이 대단히 남자답고 지성스럽고 일처리도 잘하기 때문에 모든 정사를 아들한테 물려주었습니다. ‵창해′가 하는 것이라고는 날마다 낚시질이나 하면서 소일 했답니다. 하루는 바다에 나가서 낚시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일진광풍이 일더니 무서운 파도가 ‵창해′의 낚시 배를 휘몰아 이끌고 어디로 달려가 버렸습니다. 어디에 도착했느냐하면 강원도 통천에 도착했답니다. 기절을 했다가 깨어나 눈을 떠보니까 조선 사람들이 구경을 하고 있었어요. 고국의 사람들이어요. 낯익은 땅이었습니다.



일본과 한국이 얼마나 먼 바다 거리입니까. 자기가 승선했던 배는 낚시 배였는데 옷만 좀 적셨더라 그거요. 정신을 수습해서 물어보니까 강원도 통천이라는 거요. 그렇다면 낙산사가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도 낙산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또 자기 있는 곳에서 가까우니까‘낙산사를 한번 구경해 보자. 가서 부처님께 기도나 올리자’하며 낙산사에 가서 기도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자기 동생을 만납니다.



그날이 자기가 조난당했던 날인지 동생 ‵남향′이 천도재를 마치고 귀가하는 중이었고, 형 ‵창해′도 낙산사에서 기도를 마치고 낙사사를 구경하면서 나오는 중이었는데 뜻밖에 동생을 만났어. 마주쳤는데 30~40년의 세월이 흐르다가 보니 동생(남향)이 형(창해)을 못 알아 봤습니다. 그런데 일본 복장을 한 남자가 지나가니까 동생이‘참 묘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다가가 묻습니다.



‘당신 일본 사람이오, 조선사람이오’라고 하니까 ‵창해′가‘사실 나는 조선 사람입니다.’‵남향′이‘그러면 당신이 혹시 ‵창해′가 아닙니까’라고 물었어. 30~40년 흘렀다고 해도 동생을 몰라보겠습니까? 알 수 있지요. 그래가지고 서로를 알아보고‘아이구 형님!’하면서 붙들고 뒹굴고 얼싸안고 울었다는 거요. 고국에 계시는 부모와 조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통곡을 했답니다. 이이야기는 실화입니다.



이렇게 인과는 분명한 것입니다. 표류하던 일본인 도주(島主)에 대하여 자기 할아버지가 따뜻하고 융숭하게 대접해서 돌려보냈기 때문에 손자인 ‵창해′도 뜻밖의 태풍으로 인한 조난을 당해가지고 일본 지마도 땅에서 그 도주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고, 도주의 사위가 되고 한 그 결과는 인과의 선인선과인 것입니다. 인연의 도리인 거요. 왜 하필 조선 땅으로 태풍이 몰아쳐 버렸어. 인연의 도리인 거요.



그래서 모든 인간사는 하나님이 만들고 하나님이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전생에 사람을 죽였다? 반드시 죽입니다. 눈을 떠서 보니까 반드시 인과가 있어요. 하나님은 없어. 붓다까지 올라가서 보니까 절대로 하나님은 없어. 이 법계의 주인은 없어. 그러나 다만 부처님은 계셔. 왜? 부처님은 본래 중생으로 해서 수행을 했거든요. 여러분들도 모두 다 붓다가 될 수 있습니다.


출처/현지사 2009. 02. 17. 화(음1.23) 자재 만현 큰스님 부산 법문중 발췌





 

 오계중 사음에 대한 중국 명나라때 


중국 명나라 때의 이야기입니다. '갑'이라는 한 선비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명나라의 수도는 '남경'이었는데, 그 선비는 과거시험에 응시하기 위해서 남경으로 올라갔습니다.



남경으로 가는 도중에 날이 저물어 어떤 객점(지금의 여관)을 정해가지고 묵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묘한 인연이지요. 그 건너 집에 어떤 여인이(과부인지, 처녀인지는 밝히지 않았음) 그 선비를 보고 한 눈에 빠졌답니다.



시험이 다 끝난 줄 알고 그 여인이 '갑'선비에게 몸종을 보내서 만나기를 청했습니다. 그러나 '갑'선비는 저녁에 청하는데, 자신의 인격과 음덕에 행여 누가 될까 싶어서 그 청을 거절했습니다. 이 '갑'선비는 아주 기개가 있고 청렴한 선비였습니다. 이런 사람은 참 드물겠지요? 그렇지요? 그런데 이 '갑'선비와 같이 묵고 있던 '을'이라는 선비가 있었는데, 이 '을'선비가 그것을 눈치채버렸어요.



그래가지고 자기가 '갑'인척 하고 밤에 그 여인을 찾아갑니다. 가니까 그 여인의 몸종이 나옵니다. ‘내가 '갑'이라는 선비오’하니까 문을 열어 주거든. 그래서 들어가 가지고 그 여인과 동침을 했답니다. 그런데 이 몸종이 깜빡 잊어버리고 대문을 잠그지 않고 들어와서 잠을 잔 까닭으로 그 여인의 아버지가 밖에 나갔다가 새벽에 들어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 아버지가 보니까 자기 딸이 어떤 놈하고 자고 있거든. 그래서 눈이 뒤집혀가지고 부엌에 가서 칼을 가져다가 딸과 함께 자던 '을'이라는 선비의 목을 잘라버리고 이어서 자기 딸의 목을 베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난 후 관청에 가서 자수를 했답니다. 그런데 '갑'이라는 선비는 그 이튿날 과거시험에 합격했는데 장원급제를 했습니다. 이 기록도 나옵니다.



그런데 이 범행(梵行), 사음(邪淫)하지 않고 청정하게 몸을 간수해야 됩니다. 속인들도 그래야 됩니다. 그저 곁눈질하고 외도하면 안 됩니다. 절대로 안  되요. 우리 스님들은 이 사음(邪淫)인 음계(淫戒)가 제일 무서운 계인데, 이 음계는 용서가 안 됩니다.



세간에 사는 여러분들도 이것은 정말 생각해 봐야 되고, 몸을 헤프게 놀리면 안 됩니다. 여러 경전이 있습니다. 여러 경전이 있는데, 이 음계를 지키면 하늘신이 보살펴 줍니다. 반드시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늘신이 보살펴 줍니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 복을 내려 줍니다.



그렇지 않고 수행자가 음계를 파하면, 또한 우리 신도 분들이(남자들이) 음계를 계율로 생각하지 않고 마구 이 여자·저 여자를 상대하면 사마(邪魔)가 붙습니다. 사마가 붙는데, 이 사마는 하늘의 사특한 마(魔)와 사특한 귀신과 용신과 이매망량입니다.



이것들이 붙게 되어 있습니다. 붙게 되면 그때부터 남은 생은 그저 고(苦, 고통, 괴로움)의 연속이고, 자기가 봤던 그 어떤 여자 때문에 여러 가지 번민·괴로움·불운까지 겹칩니다(옵니다).



하늘과 불·보살이 징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음계를 비롯해서 살생·투도하는 그 계율, 망어(妄語)·음주(飮酒)계도 있어요. 오늘 다 말씀 못 드리겠네요. 여러분들, 불자라면 이런 계율은 지켜야 됩니다.


출처/현지사 2010. 3. 8. 월 자재 만현 큰스님 대전 법문중 발췌





절개 높은 진씨 이야기
16세기, 그러니까 지금부터 500년 전 중국 명나라 때의 이야기입니다. 절개 높은 '진씨'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절개를 지키는, 정조를 소중히 생각하는 '진씨'라는 성을 가진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그 여인은 자색이 뛰어났습니다. 잘 생겼어요. 미인이어. 그러니까 이웃에 사는 목상(木商, 나무 재목상, 나무장사)이 그 여자를 보고 항상 일방적으로 침만 삼키고 살았어요.



이 여자에 대한 욕정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백방으로 방법을 강구했지만 이 여자가 넘어 오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의 계략(計略)을 꾸몄답니다. 어떤 계략이냐?



한밤중에 그 '진씨' 여인 집에 나무를 쌓아 놨어요. 그렇게 해놓고는 관가(官家)에다가 고발을 했어. ‘저 여자 집에 우리 나무가 많이 쌓여 있는데 그 여자가 도둑질 해갔다’는 내용으로 고발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도둑질을 해간 것처럼 꾸며놓고 관(官)에 들키게 했습니다. 물론 관리에게 뇌물을 주었습니다. 그 목상의 목표는 '진씨'여인이 자기 말을 듣도록(자기의 욕정에 따르도록)하는 거예요. 그러나 '진씨'여인은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징역을 살망정 그 목상한테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 절개가 있는 '진씨'여인은 억울한 일이니까 무사하기만을 빌고 빌었습니다. 어떤 날 저녁 꿈에 신(神)이 나타났어요. 신(神)이라는 것은 하늘 사람을 신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알아야 됩니다. 귀(鬼)는 죽은 무주고혼을 귀(鬼)라고 해요. 하늘 신이 나타나서 말하기를 ‘이미 검은 호랑이에게 명하였느니라.’하고 없어졌어. 이미 검은 호랑이에게 내가 명을 내렸느니라 그 말이어요.



꿈을 꾸고 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재목상이 산에 들어갔는데, 검은 호랑이가 바위 속에 숨어 있다가 뛰쳐나와 가지고 그 목상을 잡아 먹어버렸어요. 하늘 신, 그런 하늘신이 있습니다. 지금 이 육도세계를, 특히 하늘과 인간세계를 주관하는 하나님이 있습니다.



우리 제석천왕이지요. 또 도가(道家)에서는 옥황상제이지요. 실제로 그럽니다. 그 밑에 많고 많은 고위직이 있고, 중간 계급이 있고 그렇잖아요. 이 국가처럼 똑 같아요. 그래서 명해 놓은 거예요. ‘그 목상이라는 놈, 아주 못된 놈이니까 처단해.’하고 아랫사람에게 명한 거예요.



아마 제석천왕인지, 혹은 옥황상제님이 그러셨는지, 또는 그분을 보필하는 높은 관리가 명했습니다. ‘나쁜 짓을 하니까 처단해라’라고 명했지요. 호랑이 속에 뭣이 있습니까?



영혼체가 있지요. 그놈은 사람이라고요. 모든 생각을 한다고요. 그 영혼체에게 딱 명령해 놓은 거예요. ‘죽여라. 목상이 오거든 잡아먹어버려라.’ 그러니까 잡아먹어버렸다 그거야.


출처/현지가 2010. 3. 8. 월(음1.23) 자재 만현 큰스님 대전 법문중 발췌





값을 많이 받고 소가 된 이야기가 있습니다. 


값을 많이 받고 소가 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을 적어서 어떤 기록에 남겨 두었기 때문에 우리가 이걸 읽어 볼 수가 있는데, 이런 사례가 수 백 천만 개가 있지요. 지금으로부터 1200년 전, 그러니까 중국 당나라 때의 이야기입니다. '원씨'의 처 '사씨'가 있었습니다.



남편이 '원씨'이고, 부인의 성이 '사씨'입니다. '사씨'가 술장사를 하면서 생계를 꾸려 갔는데, 그 '사씨'는 딸이 하나 있어서 시집을 보내고 말년에 죽었습니다. '사씨'가 죽었는지 6년쯤 되었어요. 어느 날 밤 그 딸의 꿈에 어머니가 현몽을 합니다. 어머니가 뭐라고 하느냐?



‘내가 생시에 술은 적은 되로 팔고, 값은 큰 되 값을 받은 죄로 소가 되었다. 지금 너의 집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아니한 북산(산 이름이 북산임)아래 어느 인가에 있다가, 그 후로 법계사 옆의 '하우사'라고 하는 사람 집에 팔려와 있다. 그런데 이 주인인 '하우사'가 너무 혹독해가지고 내가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단다.



날마다 그 고통이, 고된 삶이 형언할 수가 없고 하루도 편히 살 수가 없어. 이른 새벽부터 저녁까지 밭을 가느라 모진 고통을 겪고 있으니, 사랑하는 딸아! 나를 좀 그 집에서 풀려나오게 해다오.’ 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여러분, 이해하겠지요? 딸이 잠에서 깨어나 그 꿈이 너무도 생생하기 때문에 울면서 남편을 깨워 그 꿈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듬해 정월달에 마침 법계사의 여승이 탁발을 하러왔어요. 그래서 그 여승을 붙잡고 그 법계사 근처 마을에 사는 '하우사'라는 사람 집까지 알아놨습니다. 이 사람도 농부의 딸인데 소살 돈이 쉽게 마련이 되겠습니까.



남편한테 말을 해서 그저 둘이 열심히 일을 하고 저축을 해가지고 소살 돈을 풍족히 마련했습니다. 그런 후에 '하우사'라고 하는 사람 집에 소를 사러갔습니다.



그곳에는 과연 어미 소가 있었어요. 그 소를 사가지고 오니 소가 딸을 보고 한 없이 울더랍니다. 딸이 지극한 마음으로 이렇게 소를 보호하고 있다는 소문이 당나라 전역에 퍼졌어요.



그때 왕의 후비들이 이 소식을 (소문을)듣고 이 사실이 맞는가 싶어서 '사씨'의 딸을 불러들였어요.   '사씨'의 딸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정말 사실이거든. 그래서 많은 돈과 비단을 내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여기서 스님이 조금 더 각주를 할게요(보충해서 설명을 할게요). ‘생시에 술을 적은 되로 팔고, 값은 큰되 값을 받고 살다가 그 죄로 소의 몸을 받았다. 나는 지금 어느 집에 와서 모진 고통을 받으면서 살고 있으니 나를 살려다오.’ 하는 이 꿈의 선몽은 어머니 꿈이 아닙니다.



지장보살님 올 시다. 그 소가 된 어머니가 무슨 신통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들 그런 꿈을 꾸지요. 천도재 하기 전에 부모님 꿈도 꾸고 하는 것은 전부 지장보살님의 위신력으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장보살님은 정말로 관세음보살님 못지않게 우리가 잊을 수 없는 위대한 붓다입니다. 그래서 그 공덕은 '항하사겁설난진'이어요. 다 말할 수 없어. 그 딸이 지금의 우리 신도라면, 1200년 전이 아니고 지금 나한테 와서 꿈 이야기를 했다면, 우리 현지사는 그렇게 놔두지 않습니다. 그 어머니 소를 천도시켜줘야 되지요.



축생보가 끝나면 이 분은 지옥으로 갑니다. 이 분은 먼저 소의 몸을 받았어요. 지옥을 갑니다. 지옥을 가면 나올 기약이 없어요. 그러니 우리 현지사 신도라면 그 당사자 소는 물론이고, 그 따님의 친정집 조상님, 남편의 시가집 조상님, 두 양가의 외갓집 조상님, 그리고 선대 영가님을 포함해서 50명이든 100명이든 4번 정도 천도재를 지내라.



천도재 1회 비용은 다른 절 천도재 비용이다. 10년 전 천도재 비용이다. 그런데 이런 공덕이 없으면 안 돼. 자동차가 기름이 떨어지면 갈 수 있습니까?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렇게 권했을 거예요.



그래서 따님의 말대로 천도재를 올렸다면 그 어머니는 그냥 죽습니다. 영체를 쏴악 빼오면 소는 죽습니다. 1·2·3번 영체 있지요? 그 영체를 쏙 빼면 죽는 거예요. 그래서 지옥보를 잘라놓고 하늘로 올려 줄 거예요. 이게 우리 현지사의 천도재입니다.


출처/ 현지사 2010. 3. 8. 월(음1.23) 자재 만현 큰스님 대전 법문중 발췌





시골 어느 집에서 일어난 일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보니까 담장에 큰 구렁이가

얹혀 있어. 그래서 그놈을 잡아가지고 와서 형제들이

모여서 잘 먹었어요.



또 며칠 있으니까 자기 형님 집마루 대들보에 꼭 그만한

구렁이가 딱 걸쳐져 있어. 이구렁이라든지, 노루라든지

는 아주 복수심이 강합니다.



반드시 수놈이 있으면 암놈이 있습니다. 전날에 죽었던

놈이 수놈이었던 암놈이었던 간에 고놈이 죽으니까 그

속에 있는 영체는 사람이니까 알아요. 자기 형님 집 마

루 대들보에 딱 걸쳐 있으니까 또 그것을 잡아서 형제

간에 다 포식을 했어.



바로 먼저 죽었던 남자의 부인이 임신을 했었어요. 애를

낳는데 그 애가 성 불구자였습니다. 반벙어리였습니다.

그 다음에 먹으 사람의 형제들은 목 암으로 죽고 골수암

으로 죽었습니다.  



그 형, 마루 대들보에 걸쳐 있던 구렁이는 형이 죽였는데

그 사람은 골수암으로 죽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용신이

빙의합니다. 



앞으로, 빙의되면 축생 으로 떨어지면 반드시 구렁이가 됩

니다. 사람으로만 와도 용신이 빙의합니다. 많이 이야기했

죠. 어쨌든 죽이는 죄는 제일로 무섭다는 것.


출처/ 현지사 2007.1.1.월(음11.13) 자재 만현 큰스님 부산 법회 중에서





천도재 지내고 사례


목련존자처럼 어머니 천도만 바라야 하는데 그리고 병도 전생에 지중한 죄를 지어서 병이 있는데 부처님도 나아줄 수는 있지만 공덕이 없으면 안 해줍니다.

 

세 번째, 지중한 업보로 오는 병은 복덕을 짓고 참회해야 합니다. 그래서 전생에 지중한 죄업을 상쇠해 주어야 합니다. 가령 전생에 어머니를 도끼로 머리를 찍어 죽인 사람이 있어요. 이 사람을 어떻게 나아줍니까? 천도재 2, 3,4번 한다고 나아주나요? 안 된다고 하십니다. 다만 우리 현지궁 대작불사를 해준다면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런 큰 복을 지으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런 큰 병을 가지고 나아달라고 합니다. 3, 4번 했는데 안 나아준다고 난리거든요.

 

대세지보살님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지칠 대로 지쳐있건만 아기는 배고프다 울어댄다네, 귀여워라 내 아기 착하기도 하지. 젖꼭지를 입에 물리니 아기는 양이 차지 않는다고 젖꼭지를 물고 잡아당긴다. 어머니는 배고픔과 아픔을 참으며 당신의 배고픔보다 아기의 배고픔을 더 안쓰러워 하네.

 

이것이 부처님 마음입니다. 나아주고 싶지만 공덕이 안 된다고 하십니다. 그때 이런 말씀을 대세지보살께게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절에서 이렇게 아픈 사람은 미안하지만 받아줄 수 없다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몰래 들어와서 몇 번째 가서는 그걸 탁 내놓는다고요. 그것 참.. 전번에 부산에 전철에서 떨어져 죽은 남편, 우리가 공부중이어서 조치를 못해줬습니다. 그 후로 즉각 해줬습니다. 보니 전생에 남편이 몰래 본 작은 부인이에요. 아주 예쁘고 42살이에요. 근데 그 예쁜 첩에 정신이 팔려서 조강지처를 외면했어요. 조강지처를 나중에 광에 가둬서 아프니까 굶어죽였어요.



그 조강지처가 빙의되어서 잡아간 거에요. 그런데 그 때 어떤 분이 복위자였느냐? 여자분, 위암을 가진 분, 그래서 암도 우리가 환영 안 해줍니다. 그런데 만족스럽게 되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남편이 죽어버리니까 우리에게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전생을 보니 전생의 원결, 부인을 명부에 압송시켰습니다.



그런데 그 남편이 지금 집으로 들어왔어요. 또 큰일나겠다! 싶어서 또 조치했습니다...

 

그리고 복을 받으려면.. 잘 사는 사람이 아무 이유없이 잘 사는 것 아닙니다. 전생에 이렇게 복 받을 만한 복을 지어서 잘 사는 거예요.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습니다. 그래서 전생에 지은 빚을 갚아야 합니다.



그리고 복을 지어야 합니다. 그러면 잘 살 수 있어요. 이치는 이러합니다.

 

우리의 천도재는 그 분의 업장까지 씻어주십니다. 천도해주고 업장 씻어주고 그 집까지 성중이 가도록 해서 그 집에 숨어있는 영가를 명부로 보내고요, 그 집까지 영적으로 청소까지 해줍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눈에 안 보이니까 아버지가 하늘에 갔는지 그걸 아예 모르니까 그저 소원 안 이뤄졌다고 그러는데 소원, 그래도 하도 사정을 하니까 스님들이 후속조치를 한다고요. 그걸 알아두시고. 사실 우리 집에서 천도한 단월님들은 그렇게 축복한 겁니다. 부처님께서 업장을 씻어주십니다!!!


출처/ 현지사 2007년 3월 21일 자재 만현 큰스님 법문내용중





한산.습득

지금부터 1200년쯤 전 중국의 당나라 때 실화입니다. 그 나라에 국청사라는 절이 있었어요. 아주 유명한 절이어요. 왜 유명 하느냐? 삼성(三聖, 세분의 성자)이 살고 있다고 해서 유명했어요. 세분의 성자가 누구냐? 여러분 아실런지 몰라. 풍간이라는 스님(더벅머리스님, 그림을 보면 머리칼이 눈썹까지 내려오고, 항상 베옷을 입은 더벅머리 스님 있지요), 그 다음에 한산, 습득이 있었어. 이 세분을 후세에 내려오면서 문수 · 보현의 화현 아니냐 이렇게 말할 정도로 큰 스님이란 말이어요.



  한산이라는 스님은 보기에 미친 사람 같았지만 하는 말은 부처님 말씀하고 상당히 맞아. 그리고 시(詩)를 잘 지었어. 그래서 한산스님이 쓴 많은 시를 추려서 한산 시집(詩集)이 지금 나오고 있습니다.



습득이라는 사람은 풍간이라는 스님이 산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주은(얻은)아이라 해서 습득이라고 했습니다. 주웠다는 말입니다. 국청사에는 풍간 · 한산 · 습득 세분이 살고 있었는데, 한산 · 습득은 부엌일을 봤습니다. 풍간은 스님이었지만 한산 · 습득은 행자로서 주방 일을 봤습니다.



  하루는 국청사의 큰 신도인 장자가 와가지고 주지스님한테 '저 주방에서 일하는 두 분을 우리 자식이 장가가는 날에 좀 데려다가 일을 좀 시키겠습니다.' 했단 말이어요.



  그러니까 주지스님이 '그러시오' 했단 말이어요. 그래서 한산 · 습득이 장자의 자식 결혼식에 가서 일을 봐주게 되었습니다.



  그 신부감(장자의 며느리 될 사람)을 한산 · 습득이 보니까 햐! 이것 참 우스울 일이야. 뭐가 이상 하느냐? 삼생전(三生前)에 장자의 할머니여. 그러니까 어떻게 되지요? 삼생 전에 그 부자 집 장자의 할머니가 사람으로 태어나가지고 지금 장자의 며느리 감으로 시집간단 말 이예요.



이제 장자의 며느리로 들어간단 말 이예요. 여러분 인간사는 그렇습니다. 여러분한테 내가 그 많은 조상님들을 천도해주라고, 부모님을 천도해 드릴 때 많은 조상님들을 함께 천도해 주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우리 절에서는 조상님들을 포함해서 50명 100명 해주지요. 이유가 있습니다.



저 조상님들은 모두 전생에 나하고 가까운 인연들입니다. 내 부인, 내 아들, 내 어머니도 있고 그런다고요. 그래서 은혜를 갚도록 하기 위해서 해주라는 거요. 한산 · 습득은 소위 숙명통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딱 보면 안다고요. 그래서 장자의 며느리를 보고 '햐! 정말로 이상한 일이다. 우스운 일이구나' 해서 웃음이 나온다고요. 두 사람이 장자의 잔칫날 주방 일을 보면서 그 말을 하면서 킥킥대고 웃는다고.



  이제 며느리가 남자 집으로 왔습니다. 장자가 며느리를 데리고(며느리는 삼생 전에 장자의 할머니지요) 사당(祠堂)앞에 가서 절을 시킨다고요. (중국의 큰 부자들은 집에 사당을 모시고 있다 해요) 조상님들 영정에 절을 시켜야지. 절을 시키면서 북을 친다고 그래요. 이제 그것을 알리는 거지요. 북을 치는데 한산 ·



습득이 그 북을 보니까 그 북은 전생에 장자의 고모할머니여. 고모할머니가 소로 태어났는데 무지한 장자는 고모할머니인줄도 모르고 잡아먹어버렸어. 그래가지고 그 고모할머니인 소가죽으로 북을 만든 거요. 그래서 한산 · 습득이 또 한바탕 웃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사람(구경꾼)들은 그 웃는 깊은 의미를 몰랐습니다.



  (한산 · 습득이 며느리 있는데서 킥킥거리고 웃었지, 또 여기 와서 킥킥거리고 웃었지, 그렇지 않아도 미친 사람 같이 행세를 하는데 웃는다고 완전히 돈 사람으로 여기고 아주 비하했습니다)

  이 웃는 부분에 대해서 한산 · 습득이 써놓은 시가 있습니다.



   당 위에 치는 북은

  그대 고모할머니의 껍질이고

  삼생 전 그대 할머니를 며느리로 데려오니

  내가 지금 웃지 않고 어느 때 웃겠는가?



  이런 시가 있습니다. 장자는 이튿날 주지스님한테 와가지고 항의를 합니다. '두 미친 행자가 온종일 웃음으로 무례한 짓을 했으니까 저 행자들을 절에서 내보내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이제 여기 신도를 안 하겠습니다. 시주도 이제 그만이오.' 라고 해서 주지스님이 한산 · 습득을 보냈습니다. 그 뒤 산으로 들어갔다는 말은 있으나 어디서 죽었는지 지금까지 모른답니다.



  여기에서 여러분이 주목할 것은 인연이라는 것, 모든 것은 인연으로 된다는 것, 그 다음에 여기서 인과의 도리를 알아야 돼. 고모할머니가 소로 태어나게 된 이유가 있어. 하나님이 있어서 그렇게 한 것 아니어.



고모할머니가 잘못을 범해서 소로 태어나는 거요. 소는 동물(축생)이지요. 축생으로 오는 데는 원인이 있습니다. 여러분 아시려나. 스님이 그 법문 안 해 주었나요? 축생 몸을 받게 되는 데는 원인이 있습니다.



  사견(邪見, 삿된 소견)을 따른 그런 업, 우치(愚癡,지혜롭지 못한 업)를 지었다는 것, 그 다음에 바람직하지 못한 성행위, 이것이 주입니다. 그렇게 되면 지옥을 거쳐서 반드시 동물의 몸을 받게 되는데, 소로 오게 된 것은 그 주인한테 갚지 못한 빚이 있으면 옵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은 인연으로 된다는 불교의 인연도리와, 착하게 살았으면 좋은 곳으로 태어나게 되고 상을 받고 좋은 일이 있지만, 악한 짓을 하고 살았으면 반드시 그에 상응한 갚음이 있다 이것이어요. 이걸 알아야 돼. 그래서 이것을 '선인선과 악인악과 (善人善果 惡人惡果)' 라고 그래. 이건 철칙이어.



인과의 법칙이어. 이 고모할머니는 소로 태어나지 않으면 안 될 업을 지었어. 그러니까 소로 태어나는 거요. 소로 태어나는데 그 장자하고 인연이 깊어. 또 장자의 은혜를 입은 적이 있어. 그러니까 장자 집으로 오는 거요.



  동물세계에 많은 동물들이 있지만 영체가 들어가는 것이 있고 안 들어가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 이야기 끝에 말씀을 해 드립니다. 곧 윤회의 대상이 전부는 아니어. 12띠는 들어가. 사람이 죽어서 동물의 몸을 받게 될 업을 지었으면 지옥을 거쳐서, 혹은 지옥을 거치기 전에 먼저 들어가기도 하는데 12띠는 영체가 들어가. 윤회의 대상이란 그 말이어요.



그런데 어류는(물고기는) 모두 영체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어. 들어가는 것이 있어. 고래, 물개, 물표범...이런 큰 동물은 들어가. 잉어도 들어가. 그렇지만 사소한 피라미, 빙어...이런 것들은 안 들어갑니다.



  조류(날짐승)도 전부 들어가는 것이 아니어. 학, 까마귀, 까치, 제비, 앵무새, 공작, 비둘기...이건 들어가. 그 외에는 안 들어갑니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이걸 아는 사람이 없어. 이건 부처님 말씀이니까 여러분에게 들려 드리는 거요. 그 다음에 곤충류는 안 들어가.



그렇지만 영체가 안 들어가는 곤츙류, 조류, 어류, 포유류 등을 안 죽이는 거요. 그것들은 자연생(自然生) 자연사(自然死)해. 그렇지만 생명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함부로 죽이는 것이 아니어. 영체가 들어가는 것은 절대로 죽이면 안 돼. 뱀, 닭도 영체가 들어가. 이것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출처/ 현지사  2008.6.26.목(음5.23) 자재 만현 큰스님 부산 법문





왕양명


‘사람은 죽으면 죽지 않는다. 윤회한다.’는 가르침을 확실히 인식해야 합니다. 중요합니다.
 

중국 명나라 당시, 명나라를 대신할만한 대유학자가 있었습니다. 왕양명이라는 대석학이 있었습니다. 명나라, 중국을 대신할 만한 왕양명, 이 사람은 지행합일을 주장했습니다. ‘알았으면 행하라!’는 겁니다.



학행일치(學行一致)라고 그러죠? 같은 말입니다. 이건 왕양명에서 나왔습니다. 지행합일을 창도한 달인입니다.

 

이 사람 전생이 스님이었어요. 도통한 스님이었어요. 얼마만큼 도를 이루었느냐...

스님은 대장경을 정리해줄 수 있고 정리해놓은 것이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 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점안을 해놓고 이것이 세월이가면 보물이 될 겁니다. 여러분 읽으십시오. 이 사상을 여러분 사상으로 하면서 사세요. 이제 경전을 보세요. 그건 그렇고..

 

어느 정도 큰 스님이냐, 참선을 많이 해서 소위 마음자리를 깨쳤다, 화두를 타파했다. 그 정도로 가고 더 갔습니다. 마음자리를 깨치면 이제부터 시작인 겁니다!!! 어찌해야 하느냐. 스님이 이 선불교에 충고하는 거예요. 이제 정말 음계를 지키고 여자를 멀리하라.



중계를 지키고(입으로 3가지 업을 짓지 말고, 몸으로 4가지 짓지 말고 뜻으로 3가지 짓지 말고) 두타행 공부를 하여 너도 없고 나도 없는 그 경지로 올라가야 거기가 아라한입니다. 색계, 무색계를 벗어날 수 있어요. 윤회를 벗어나요. 깨달아서는 이제 시작이요 문은 열었어요!!

 

이 분이 선을 많이 해서 근본을 깨쳤어요. 전생에 스님이 되었어.. 이름은 금산대사! 쇠 금(金)자 ,메 산(山)자. 근본자리를 깨치고 여기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잘못하면 외도가 잡아가기 때문에 정말 중요해요. 스님이 말한 대로 가야지 외도로 빠집니다.



이 사람이 정법으로 못 가고 외도로 갑니다. 하루는 목욕재계를 하고 큰 절 조그만 법당으로 들어가면서 주지이하 삼직들에게 명하면서 내가 들어간 이후 절대 문을 열지마라. 10년, 50년이 되든 유훈으로 수지할 수 있도록 명심하고 명심해라!! 강하게 유언을 하고 들어갔습니다. 안 나왔지만 큰스님 명이라 열 수가 없어요.

 

10년, 50년이든 누가 오든 열 수가 없어요. 연 사람은 자기가 열어요. 후신인 금산대사가 아니면 열 수 없는 거예요. 그리 작정을 해놓고 문을 걸어 잠궜죠. 벽에다가 한 시 구절을 써놓고 앉아서 좌탈해 버렸어. 서서죽으면 입망이라고 합니다. 도인은 그럴 수 있어요. 좌탈, 입망한다고 해도 보살, 붓다라고 할 수 없어요. 보살, 붓다는 어떤 조건을 갖춰야 되요.

 

50년이 흘렀습니다. 왕양명이라고 한 분이 그러한 큰 유학자가 당대의 석학이죠. 100여명 제자를 데리고 중국 절강성에 있는 금산사에서 경내를 둘러보더니 바로 그 법당 앞으로 가서 법당문을 혹 열어요. 대중이 놀라요. 50년간 안 열었던 법당인데 법당문이 확 열어지거든 더 놀란 것은 스님이 앉아서 입적해 죽었는데 미라가 되었어. 그래서 모든 100명의 제자와 그 대중이 와서 육신만 남아있는 금산대사에게 와서 무수히 예배합니다.

 

그런데 벽에 글씨가 적혀있어. 50년 전 왕수인이(금산대사 속명) 개문인시 폐문인이라. 문을 연 사람은 문을 닫은 사람이라. 정령방락환개복, 비로소 선가에 무너지지 않는 불사신이 있음을 믿겠네. 전생, 후생, 윤회 이것이 사실임을 믿겠네.

 

이걸 50년 전에 써놓고 갔어요. 대단한데,,, 이 금산대사가 명나라 때라서 참선하는 세력이 대단했습니다. 참선해서 깨쳤으면 보림으로 나가야지 그렇게 유학자로 가면 안 돼요 .외도로 빠진 거예요. 더 정진하고 정진해서 보살로 나아가야 해요. 지금 티벳 밀교가 세계를 먹습니다. 달라이 라마는 지금 15대 라마교 교주이면서 티벳의 왕입니다. 미국 지식인들이 대단히 좋아합니다. 세계의 지식인들이 대단히 좋아합니다. 그 품행이 대단히 자애스럽고 덕스럽고...

 

그러나 현지사에서는 지적합니다. 다 좋고 수행도 잘 합니다. 그러나 자연의 이법을 왜 거스르느냐. 왜 삼계에서 윤회에서 벗어나는 공부를 왜 중도에서 포기하느냐? 왜 사람으로만 오느냐? 티벳 불교, 국민을 위해 오는 것이지만 하지만 우주 이법을 거스르는 것이다. 이것은 대단한 업이다. 열시왕이 논죄할 것이다. 만나면 이야기해 줄 것이지만 나는 그 사람 만나기 위해 가지 않습니다.

 

금산대사도 잘못한 것이지. 올곧게 윤회에서 벗어나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은 금산대사와 같은 경지가 아닙니다. 그저 아들, 남편에 시달려서 그저 죽으면 이제 사람으로 안 오리. 70, 80%로 지겨워해요.

 

스님이 칭명염불이 최고의 수행법이니까 경전 읽고 석가모니불 염불하면서 점하나 찍어서 마음을 모아가시오 합니다. 나중에는 마음의 점을 찍고 하시오. 이런 공부를 시키죠. 여러분이 순서를 밟아야 하는데 스님이 갑자기 나타나서 공부를 지도하니까 문제가 있죠. 모든 생각을 놓고 나라고 하는 생각을 놓고 공부를 해야 하는 건데 금강경이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데 여러분은 욕심이 많아서 도를 이루려고 악착같이 하는데 나는 염려가 되요. 공부는 그러면 안 돼요. 큰일 날 수가 있어요. 머리가 돌 수가 있어요. 욕심을 버리고 해야 합니다. 그것은 문제가 됩니다.

 

금산대사,, 왕양명으로 발전했으니 처자를 거느렸으니..하나의 사상을 이 세상에 남겼는데 불교와 거의 맥이 같아 큰 허물을 묻지 않으나.. 다음 생에 사람으로 오더라도 그 동안 업연이 너무 얽히고 설켰기로 어쩌면 거의 90% 외도로 빠질 것이니 아깝다는 겁니다. 본바탕을 봤으면 (만물의 근원자리) 두타행을 하면서 계율을 지키며 계속 나없는 수행을 하여 공과 계합하여야 하는데 착을 떼어 내야 윤회를 벗어나는 건데 가야할 길을 가지 않고 옆길로 갔으니 안타깝다는 겁니다.


출처/법문집2권 중 2007년 6월 27일 자재 만현 큰스님 법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