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11일 목요일

[현지사 천도재--1]부처님이 주관하시는 천도재


부처님께서 주관하시는
현지사 천도대재








영산불교 교조 아나존자 자재 만현 큰스님


영산 당시 아난존자의 후신이신 자재 만현 큰스님께서
는 1937년(정축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나셨습니다. 1960년
부산 선암사에서 석암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당대의 선
지식이던 통도사 경봉 큰스님의 문하에서 화두참구 수행
을 한 지 10년 만에 화두를 타파하고 공성을 증득했습니
다. 대한불교 조계종에서 상임포교사로 활동하셨고, 선재
동자처럼 선지식을 두루 찾아 구법을 하기도 했습니다.

큰스님께서는 화엄경 법화경 등을 통해 염불수행만이
붓다가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확신하면서 과감하게
염불행자로 전환했습니다.

그리고 30여년 간 생사를 넘나드는 염불수행에 정진하
여 2000년에 법화경의 수기 내용대로 불과를 증함으로써
일생일대의 희원을 이루셨습니다.

큰스님께서는 불과를 이루신 가섭존자 광명 만덕 큰스
님과 함께 현지사를 창건하시고, 영산불교를 개창하여 현
재 교조로 계십니다.


ⅰ 불교의 효孝 사상과 천도재
1. 효孝는 불교의 중심사상
불교는 어느 종교보다도 효를 중시하는 종교다.
효는 나라사랑과 이웃사랑의 근본이 되는 덕목으로서
부처님께서 가장 강조하시는 불교의 중심사상이다. 불교
에서 효행은 단순한 윤리적 개념을 넘어 인연으로 맺어진
부모.조상님의 은혜(빚)를 갚는 우주이법 차원의 개념이다.

부처님께서는 당신 스스로도 모범적인 효행을 보이셨다.
돌아가신 어머니 마야부인을 위해 어머니가 계시는 도리천에
가서 지장경을 설하셨고, 법화경 권지품에서는 길러주신
어머니(이모)께 수기를 주시는 장면도 나온다.

출가할 때는 부왕의 청에 따라 왕위를 이을 아들을 낳아주셨고,
깨달음을 얻은 후에는 다시 고향에 돌아가 아버지 정반왕을 불
도의 길로 인도하셨다.

또한 목련존자 등 효성이 지극한 제자들의 어머니를 천도시켜
줌으로써 효사상을 널리 기리기도 하셨다.

또한 부처님께서는 여러 경전을 통해서도 효사상을 중점적으로
가르치고 계신다.

장아함경 선생경 에서는 부모님을 헌신적으로 받들어 모시는 등
다섯 가지 일로써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대승본생심지관경 보은품 에서는 우리가 세간과 출세간에서
갚아야 할 은혜를 4은이라 하여 부모은, 국왕은, 중생은, 삼보은을 들고 있다.
이를 일반화하면 부모, 나라, 중생, 스승의 은혜를 알고 보답하는 것이 불교의
"효 윤리"라는 말이다.

불설연도속업경 에서는 가정경제 경영을 상재.중재.하재로 나누고부모에 대한 효행, 어른 공경, 자비이타행 중심의 경영을 상재라하여 최고의 경영으로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부모은중경 목련경은 경 전체가 효행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영산불교 현지사에서는 효행을 제일의 수행덕목으로 삼고 있으며, 나라와 이웃을 사랑하고 스승을 공경하는 것도 효행의 개념으로 보고 있다.




2. 효심에서 유래된 불교의 천도재

불교의 '효 사상'은 이론상으로만 강조되는 것이 아니다.
확실한 실천수단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바로 불교의 독 특한 영혼구제 의식인 천도재이다. 목련경 에 의하면 천도재는 효심이 지극한 목건련존자가 부처님의 도움으로 돌아가신 어머니가 지옥에 떨어져 벌 받고 있는 모습을 보고 어머니를 구제해 달라고 부처님께 간청한 데서 비롯되었다.

부처님께서는 제자의 효심을 가상히 여겨 네 번의 천도로 목건련존자의 어머니를 지옥에서 빼내어 아귀, 축생(개)을 거쳐 천상(도리천)에 태어나게 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천상으로 천도시키는 마지막 천도재는 부처님께서 하안거가 해제되는 7월 보름날을 택하여 스님들께 공양을 올리도록 했는데 이를 우란분재라고 하고, 이 날을 우란분절이라고 한다.

이것이 오늘날 천도재의 기원이고, 이러한 우란분절의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7월 백중날에 조상님들을 위해 천도재를 올리고 있다.




3. 천도재의 교리적 기반
천도재는 불교 교리상으로는 연기법(인과법)이 그 토대가 되고, 육도윤회론과 영체론이 그 근거가 되며, 실질적인 핵심은 불교의 구원론이다.

천도재는 연기법에 따라 나와 가까운 인연을 맺은 부모 조상 및 친지에 대한 빚(은혜)을 갚는 행위다. 연기법의 인과적 성격이다.

천도재는 또한 육도윤회론과 영혼체론에 근거하여 성립한다. 천도재가 성립하려면 사후세계가 있음을 인정해야 되고, 이 삶의 주인공인 나의본체, 곧 영혼체의 존재도 인정해야 된다.
사람이 죽으면, 나의 본체인 영혼체는 전생의 업보에 따라 지옥.아귀.축생.인간.아수라.천상(하늘)의 여섯 세계를 돌면서 살아가게 된다.

이를 육도윤회라고 한다. 문제는 사람이 죽으면 절대다수가 극심한 고통이있는 지옥.아귀.축생의 삼악도에서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천도재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천도는 부처님의 구원력에 의해서만 가능함을 알아야한다.



Ⅱ.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나-사후세계의 진실

1. 윤회하는 삶의 주체는 영혼체

 
사람은 육체와 네 개의 영혼체(영체)로 이루어져 있다.
네 개의 영체는 계단식으로 겹쳐져 있다.

네 개의 영체를 생긴 순서대로 1.2.3.4번 이라고 하며, 4번 영체는 가장바깥 쪽에 있으면서 육체와의 연결을 담당한다. 4번에서 1번으로 갈수록 차원이 높은 영체다.

이 중 가장 먼저 생긴 1번 영체가 인간의 본체다.
사람이 죽으면 끝이 아니다. 몸은 죽지만 영체는 육체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네 개의 영체중 1.2.3번 영체는 영원히 죽지 않고 윤회세 계와 해탈계를 살아가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지은 선업과 악업은 모두 이 영체에 자동적으로 입력이된다. 동영상을 찍어 저장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 모든 업은 바로 그 영체의 인생성적표다.
영체는 항상 이 인생성적표를 달고 다닌다. 그러므로 영체만 봐도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

이 인생성적표의 악업 때문에 사람은 고통스런 삶을 살게 되고 삼악도 중심의 윤회를 하게 된다.
육도윤회 세계를 다 볼 수 있는 것은 붓다의 경계다.

그래서 부처님 이후 어느 누구도 이 사후세계를 자신 있게 말한 사람이 없다.이제 영산불교에서 사후세계의 진실을 알려드린다.

앞으로 이야기 할 사후세계나 영체, 천도에 관한 이야기는 현지사 큰스님께서 사후세계를 실제로 본 내용과 천도시켜 본 경험 등 생생한 현장의 가르침을 토대로 한것이다.

유체이탈이나 영체이탈을 해가지고 별 세계나 낮은 하늘세계를 가 보고 사후세계의 전부인 양 함부로 이야기 한다면, 이는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격으로서 큰 죄업을 짓는 일이 될 것이다.
죽은 후 중생의 영체가 가는 세계는 크게 중음계와 육도윤회계로 나눌 수 있다. 물론 윤회를 벗어난 성자는 해탈계로 간다. 중음계는 죽어서 명부(저승)에 들어가지 못한 영체가 가는 세계다.

2. 중음계 - 명부(저승)에 못 들어간 무주고혼의 세계

사람이 죽으면 일단 저승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죽어
서 저승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이승도 저승도 아닌 중간
세계에서 떠도는 무주고혼, 즉 귀신이 있다. 이 세계를
중음계라고 한다.

생전에 가족.재물 등에 대한 집착이 강했거나 큰 병으
로 죽은 경우, 비명횡사나 자살한 경우도 저승에 못 들어
간다. 죽은 사람의 절반 가까이가 중음계로 간다고 한다.

중음계는 4번 영체로 가는데 늘 춥고 배고프다. 4번 영
체는 육체의 복사판으로서 생전의 의식을 그대로 갖고
있다. 그래서 식욕, 색욕 등 생전의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죄를 많이 짓게 된다. 일반적으로 현실에서 거지나 건달
생활보다 비참하다.

이런 생활이 싫어 자손에게 빙의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
면 그 자손은 심각한 영가 장애를 겪게 된다. 빙의된 영가
가 생전에 술을 좋아했다면 계속 술을 먹으러 다녀야 하고,
죽을 때도 조상영가가 갔던 비참한 길을 그대로 가게 된다.




3. 중생들이 가는 육도윤회의 세계

저승사자의 안내를 받아 명부에 들어온 영체는 전생에
지은 업에 대하여, 즉 인생성적표에 따라 49일간 열시왕
에게 심판을 받은 후 다양한 경로의 삶을 살게 된다. 이
49일 간을 중유(中有)라 한다.
업덩어리 중생은 지옥.아귀.축생.인간.아수라.하늘의 6도
를 윤회한다. 타 종교인도, 비종교인도 절대로 심판의
예외가 될 수 없다.

①지옥 세계
지옥은 관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엄연히 실재
한다. 중생들의 악업이 지옥을 만든 것이다.
지옥은 살생, 도둑질, 사음 등 죄업을 많이 지은 사람이
가는 곳이다. 3번 영체(4번 속부분 포함)로 간다. 지옥의
공기는 탁하고 안개 낀 날처럼 음산하다.

지옥은 지장보살님이 관장하며 명령은 열시왕-판관.옥
사장-옥졸로 하달된다. 지옥은 형벌의 중함과 지옥수명을
기준으로 극무간지옥, 무간지옥, 중지옥, 하지옥, 대기지옥
의 다섯 등급으로 구분한다.

지옥에는 옥졸 수백 명이 밀어서 여는 철대문도 있고
에스컬레이트도 있다. 지옥의 벌 받는 기간은 대개 겁 단
위로 정해진다. 형벌은 자동으로 집행되는데 중지옥 이상
의 지옥벌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하다. 넋이 나가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를 지경이다.

이 중 몇 가지 지옥의 모습 일부를 예시한다.
불바다 지옥 - 섭씨 수천도가 넘는 불바다 위를 한 발
자국 한 발자국 뗄 때마다 고통스러워하는 지옥 죄수를
보는 순간 간이 다 녹아날 지경이다.

한빙지옥 - 냉동실의 냉각기 바람의 온도가 영하수십~
수백도로 내려 간다. 벌거벗은 몸뚱이가 순간 얼어붙어
괴로움에 괴성을 지르며 숨이 넘어 간다.

물 없는 사막, 태양이 작열하는 열지옥을 걸어가는 죄
수, 입이 다 마르고 목이 탄다. 지네지옥에서는 지네가
사람 몸의 구멍마다 파고들어 물어뜯는다. 날카로운 대꼬
챙이가 열 손톱 사이를 서서히 파고드는 지옥도 있다. 무
간지옥 이상의 지옥죄수는 불세존의 하명 없이는 구제가
안 된다. 중한 죄업이 많으면 여러 지옥을 돈다. 지옥의
벌을 다 받고나면 축생이나 아귀세계로 떨어져 업보를
다 채우게 된다.

② 아귀 세계
아귀계는 생전에 인색하고 간탐이 많은 사람이 가는 곳
이다. 아귀는 배는 엄청나게 큰 데 식도는 아주 좁다. 항
상 기갈이 심하고 굶주린 상태다.

물을 먹어도 속에 들어가면 불덩이로 변해 버린다.

③축생 세계
보통 지옥.아귀의 과보를 다 받고나면 축생으로 가게
된다. 생전에 짐승같이 행동하면 영락없이 짐승으로 태어
난다. 우치하고 삿된 견해가 많은 자, 변태적인 음행을
하는 자가 간다. 원칙적으로 돼지부터 시작해서 열두 띠
의 순서로 돌게 되는데 개를 끝으로 사람의 몸을 받아오
는 것이 보통이다.

동물 중에는 영체가 들어가는 동물도 있고 그렇지 않
은 동물도 있다. 일반적으로 포유류와 12띠류 동물에 영
체가 들어간다. 파충류 중에는 뱀과 거북이에, 양서류 중
에는 두꺼비, 어류 중에는 상어와 잉어에, 조류 중에는
비둘기.독수리.학.꿩.제비.공작.앵무새.구관조.까치.까마
귀 등에 들어간다.

곤충에는 영체가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사람은 곤충으
로는 태어나지 않는다.


④ 인간세계
지구촌 사바세계, 남섬부주에 사는 우리들 세계다. 남섬
부주는 윤회세계 중 세 번째 등급이라고 볼 수 있지만,
지옥중생에서부터 붓다까지 사람 몸 받아와서 살 수 있
는 곳이다.

이 우주에서 인간과 같은 육신을 갖고 사는 곳은 지구가
유일하다. 그러니 지구도 인간도 매우 소중한 존재다. 남섬
부주는 마장이 많지만 역으로 그만큼 최고의 수행적지가
된다. 남섬부주는 불신(佛身)을 가진 붓다가 되는 관문이기
도 하다.
⑤아수라계
아수라계는 성내는 버릇을 버리지 못한 사람이 가는 곳
이다. 싸움이 많지만 인간세계보다 부유다복하다. 1하늘
하품정도의 별도하늘이다.

⑥하늘세계 - 욕계6하늘 / 성중하늘
아주 착하게 산 사람이 가는 곳이다. 3번영체로 가는데
40대의 나이로 보인다. 중생들에게는 극락이라 부를 만큼
가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하늘세계는 욕계6하늘과 성중3하늘로 나눈다.
욕계6하늘은 제석천왕이 관장한다. 욕계6하늘은 1~6하
늘마다 각 9품씩 모두 54품이 있다. 6하늘부터 차례로 종
래의 사왕천, 도리천, 야마천, 도솔천, 화락천, 타화자재천
에 해당한다.

하늘사람들은 용모가 수려하고 의식(依食)은 생각대로
이루어진다. 병과 고통이 없는 안락한 삶을 산다. 온갖
아름다운 꽃들과 주택들이 있다.

사랑행위는 뜻으로 만족하며 아기는 낳지 못한다.
하늘의 복력이 다하면 대개 인간세계로 온다.
성중하늘은 《금강경》에 나오는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이 가는 하늘이다. 여자는 없다.

성중하늘은 3하늘 27품이 있다. 이 중 1하늘 5품 이상
은 아라한으로서 윤회를 벗어난다.

영원한 해탈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곳이다.
성중하늘은 공성을 깨치거나 상당한 정도의 선정에 들
어야 갈 수 있는 하늘이다. 욕계6하늘 보다 모든 면에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승하다.

여기서부터 성인의 반열에 들어간다.

4. 윤회를 벗어난 성자들이 가는 해탈계
해탈계는 아라한이 가는 해탈오계가 있고 위로는 차례
로 도솔정토, 천녀정토, 극락정토, 약사정토가 있다. 그리
고 우주법계의 가장 높은 영역에 붓다의 무아속 절대계
가 있다. 상적광세계다.

해탈계는 천상세계와는 비교가 안 되는 큰 즐거움을 영
원히 누리는 세계다. 참고로 보살8지 이상이 가는 극락정
토의 모습을 몇 가지 묘사해 본다.

극락정토는 아미타부처님께서 큰 삼매력으로 성취한 세
계다. 깊은 고요의 세계, 천상의 수백천배 밝은 광명의 세
계다. 보살은 32상을 갖추고 있으며, 몸에서 신광(新光)이
빛난다. 수명이 무량하며 모두 보살의 6신통을 갖추고 있
다. 옷은 엷은 아이보리색 하늘하늘한 예쁜 천으로 되어
있고 통바지 차림이다.

하늘을 날아갈 때 미풍에 팔랑이는 모습은 황홀하다.
일체의 근심걱정 없이 의식(依食)은 마음대로 이루어지
며 무량한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는 환희의 세계다.
그리고 부처님세계는 극락 중에서도 극락이다. 필설로
표현할 수가 없다.




Ⅲ. 천도재의 진정한 의미와 중요성

1. 천도재는 진정한 최고의 효행

진정한 효도는 부모, 조상님들이 가장 절실하게 원하는
것을 해 주는 것이다. 내 부모, 내 조상이 죽어서 끔찍한
지옥세계의 고통, 축생의 고통을 겪고 있다고 생각해 보
면 해답이 나온다.

단언컨대, 만약 여러분들이 중지옥 이상에서 1분만 벌
을 받아 본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이 가진 재산 등 모든
것을 다 바쳐서라도 제발 그 지옥에서 빠져나가게 해 달
라고 애걸복걸할 것이 틀림없다. 그 곳은 상상을 초월하
는 고통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러분이 짐승으로
태어날 것을 대신 사람으로 태어나게 누가 해 준다고 하
면 여러분은 무엇인들 아끼겠는가?

그런데 그런 고통 속에 있는 부모, 조상님들을 구원해
서 안락한 하늘세계로 올려주었다면 그 부모, 조상님들이
얼마나 고마워할지 한번 상상해 보기 바란다.

그러므로 이런 천도재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최고의
효행이라고 할 수 있다.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효도해야 함은 너무도 당연하
다.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정성을 다해 효도하지 못하고
사후에야 비로소 이를 후회하는 표현으로 풍수지탄이란
말이 있다. 이는 효도를 하려해도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없어
효도할 수 없는 슬픔을 나무와 바람의 관계에 비유하여
표현한 말이다.
"나무가 고요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아니하고,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가 기다려 주지 않
는다"

樹欲靜而風不止 수욕정이풍부지
子欲養而親不待 자욕양이친부대
불교에서 보자면, 사실은 부모가 기다려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고통의 악도로부터
구해주기를 말이다. 돌아가신 부모님께 생전보다 수천 수
만 배의 효도를 할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이다. 천도를 시
켜드리면 되기 때문이다.

살아생전 기껏해야 100년도 못되게 효도하는 것과 죽어
서 수백 수천 년, 아니 몇 겁을, 어쩌면 세세 생생 극심
한 고통을 받고 있을 영혼을 구제해 주는 천도재의 효도
를 어찌 비교할 수 있으랴.

2. 천도재는 우주이법을 실천하는 중요한 수행과정

나의 부모, 조상님들은 나와의 깊은 인연으로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를 맺었다. 그 인연 따라 부모, 조상님은
나에게 한없는 은혜를 베풀었기에 이제 내가 부모 조상
님께 그 은혜를 갚아주어야 한다. 은혜를 갚은 것은 빚을
갚는 것이고 이는 우주이법을 실천하는 중요한 수행 과
정이다. 윤회를 벗어나 생사해탈을 이루고자 하는 수행자
는 당연히 빚을 갚아야 한다.

부모, 조상님들이 악도에서 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데 나
혼자만 해탈을 하겠다고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관무량수경》에는 "극락국에 태어나려고 하면 마땅히
부모를 효양하고, 스승께 봉사하며, 10선도를 닦을 것이니
라" 고 가르치고 있다.

또한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서문에서도 부처님께서
는 "..부모님께 효를 다함으로써 불보살의 가피를 입어야
보살의 성과를 얻어 정토에 가 나리라.."고 거듭 보살의
효행을 강조하신다. 따라서 부모, 조상님에 대한 천도는
필수적으로 거쳐야할 매우 중요한 수행과정인 것이다.

3. 천도재는 큰 복 짓는 행위이고 최고의 보살행
후손의 효심 덕분에 극심한 고통이 있는 지옥.축생의
삶을 벗어나 안락한 천상의 삶을 살게 된 부모, 조상님은
여러분에게 너무나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넙쭉 엎드려 한없이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일 것이
다. 그렇기 때문에 그 분들은 여러분을 도와줄 수 있는
위치에 있게 되면 절대로 그냥 있지 않고 보답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러분을 금생도 다음 생도 잘 살게 해
주고 닥쳐올 재난도 막아줄 것이다.

천도재로 인해 수십 명의 조상들이 여러분을 잘 살게
도와준다면 그 이상 큰 복을 짓는 행위가 없을 것이다.

또한 무주고혼을 천도시켜주면 영가장애로 인한 제반
고통을 막아주고 하는 일이 잘 풀리게 된다.

천도재를 모신 당사자에게는 효행과 보은의 의미가 크
겠지만, 당사자가 아니면서 천도에 기여한 사람에게는 삼
악도의 고통에 빠진 중생을 구제해 주는 최고의 보살행
이 될 것이다. 정법의 천도재를 집전하시는 스님이나 다
른 사람의 천도를 하는데 도움을 주신 분들이 이에 해당
할 것이다.


4. 천도재는 불교의 고유한 우주적 구원의식

삼악도에 떨어진 영가를 구제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지옥보, 아귀보, 축생보를 끊어주어야 한다.

이 과보를 끊어주는 것은 오로지 업장소멸 밖에 없다.
우리가 지은 죄업은 모두 영체에 씨앗이 되어 심어져 있
다가 때가 되면 과보로 나타난다. 업장소멸은 바로 이 죄업
의 종자를 뿌리 채 뽑아버리는 것이다.
업장소멸은 우주본성(空)과 완전히 하나가 되어야만 나
올 수 있는 능력이다. 우주본성과 하나가 되었다는 증거
는 무량광으로 된 불신(佛新)을 갖추는 것이다.

붓다 외에는 어느 누구도 이 불신을 갖추지 못했다.
그러므로 업장소멸은 부처님과 불교의 고유한 우주적
구원력이다. 다른 종교에서는 절대로 할 수 없다.
이런 구원력이 없는 종교가 구원을 말한다면 그것은 진
실이 아니다. 따라서 부처님의 업장소멸을 받는다는 것은
축복 중의 축복이고, 참으로 희유하고 소중한 인연이다.
붓다회상이 열리고 있는 지금, 큰스님 살아 생전에만 이
런 큰 축복을 받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ⅳ. 현행 불교계의 천도재 - 무엇이 문제인가?

1. 천도요건 갖추지 못해 천도 어려워
천도재는 대부분의 사찰에서 많이 지내고 있지만 실제
로 천도가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천도가 되기 위한 필수적인 요건은

① 천도할 영가(靈駕)를 천도법석에 데려와야 하고

② 지장보살님을 모셔 와서 천도허락을 받아야 되며

③복위자는 영가의 이름으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등 천도에 상응하는 공덕을 지어주어야 한다.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요건을 충족시키려면 천도재는 기
본적으로 부처님께서 주관해 주셔야 하고, 붓다 이루신
분이 집전해야 한다. 그러지 못한 현행 천도재를 영가를
데려올 수도, 천도시킬 수도 없다.

사정이 이와 같으니 지장보살님께서 천도재를 집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요건을 말씀해 주셨다.
"한 번도 마음이 다른 데로 가지 않고 일심으로 《지장
보살본원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정도의
청정 비구"라야 한다는 것이다.

(1) 현행 천도재는 영가를 수배하여 데려오지 못한다.

천도를 시키려면 천도할 영가를 법석에 데려와야 한다.
의사에게 환자를 데려 와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천도
의 대상이 되는 영가는 저승에 못들어가고 중음계를 떠
도는 무주고혼 영가와 삼악도(지옥, 아귀, 축생)에 떨어
진 영가로 나눌 수 있다.

중음계의 무주고혼(귀신) 영가는 죄를 많이 짓기 때문
에 천도재를 집전하는 스님들이 블러도 잘 오지 않는다.
오래된 영가일수록 신통이 늘어 도망을 잘도 다닌다. 아
주 땅 속이나 물 속 깊숙이 숨어 버린다.

지옥(아귀포함)에서 벌 받고 있는 영가는 지장보살님의
허락 없이는 불러올 수 없다.

축생영가의 경우, 지구 전체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축
생들 중에 내 부모 조상의 영체가 들어있는 축생을 찾아
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설령 찾았다 한들 무슨 수
로 영체를 끄집어내어 올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천도재를 집전하는 스님들이 엄두도 못 낼 일
이다. 영가수배가 이렇게 어려운 일이다.

중음계의 귀신영가를 몇 명 불러온다고 해서 영가 수배
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2) 천도 법석에 지장보살님을 모셔올 수 없어 천도를
시키지 못한다.

천도는 영가수배 보다 더 어렵다. 영체가 지닌 죄업의
과보를 끊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천도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명부를 관장하고 계시는 시방여래불 지장보살님의
허가가 있어야 하고 열시왕의 특별재심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천도재를 집전하는 스님은 지장보살님과 열시
왕을 법석에 모셔올 수 있는 법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장보살님은 무량겁 전에 붓다가 되신 큰부처
님이시다. 붓다의 반열에 들지 않고서는 지장보살님을 만
날 수 조차 없다.

그러므로 천도시킬 법력을 갖추지 못한 스님이 집전하
는 천도재에서 천도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모래
를 쪄서 밥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

드물긴 하지만 최소한의 천도자격을 갖춘 스님이 특별
히 지장보살님의 가피를 입을 경우 약간의 제한적인 효
과를 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천도는 부
처님께서 주관해 주시고 불과 이룬 큰스님이 집전해야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


2. 영혼체를 부정하면서 천도재를 지내는 논리적 모순
지금 불교계에서는 "무아(無我)"를 잘 못 해석하여 윤
회의 주체로서 영혼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윤회
의 주체가 없이도 윤회할 수 있다든가, 식(識)이 윤회한다
든가, 윤회를 오온의 흐름으로 본다든가 하는 등 온갖 희
한한 논리를 다 동원하고 있다.
윤회주체가 없어도 된다는 것은 불교를 부정하는 논리
다. 그리고 윤회주체가 애매모호해서도 안 된다.

윤회는 분명한 주체가 있어야 하고, 행위를 한 자와 과
보를 받는 자가 확실한 동일성을 가져야 한다. 이는 인과
법의 대원칙이다. 그 주체가 바로 영혼체다.

무아이론은 윤회주체가 없어야 한다는 논리가 결코 아
니다. 무아는 현상세계의 "실체 없음"과 해탈계의 "나라
는 생각" 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해탈적멸계의 진아를 부정한 개념은 결코 아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불교종단에서는 영혼체의
존재를 공식 부인하면서도 산하사찰에서는 천도재를 많
이도 지내고 있다. 무슨 논리로, 무엇을 천도시키려고 지
내는지 이해 할 수가 없다.

3. 천도재의 진정한 의미 변질 - 상업화 문제

근간 우리나라 어느 사찰의 343일 천도재(49재x7회)가
물의를 빚어 천도재의 상업화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
른 적이 있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이유는 천도재에 대한
인식이 잘못 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행 천도재는 단순히
비용을 받고 천도 의식만 해주면 되는 것으로 지나치게
형식화 되어 있다. 실제로 천도여부에 대해서는 진지한
고민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 천도재를 집전하는 스님도,
의뢰한 복위자도 아무도 모른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손쉽게 비용을 받고 얼마든지 천도
재를 지내줄 수 있는 상업화의 여건이 조성될 수 있는
것이다.

천도재의 본질은 부처님의 우주적 구원력으로 돌아가신
부모, 조상님의 영혼체를 고통의 세계에서 건져내어 안락
한 곳으로 보내주는 데 있다.

실질적인 천도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여기에는
효행이라는 불교의 중심사상이 자리하고 있다.
어찌 상업화의 문제가 끼어들 여지가 있겠는가?


4. 천도 못 시키면 죄업 짓고 사찰만 오염 될 뿐

천도재는 위에서 살펴본 대로 영가의 수배에서부터 천
도에 이르는 전 과정이 붓다의 법위가 아니고서는 실제
로 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많은 절에서 천도재의 실체를 모른 채, 너무나 쉽게
천도재를 지내고 있으니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첫째, 천도 능력 없이 천도재를 지내는 것은 죄업을 짓
는 일이다. 둘째, 영가(영혼체)들의 탁기로 인한 사찰의
오염문제다. 천도재를 많이 지내는 사찰의 경우 영가를
불러만 놓고(일부 무주고혼영가) 천도를 시키지 못하여
청정해야 할 사찰이 영가들의 탁기와 악취가 가득한 사
찰이 되어 버린다는 점이다. 셋째, 영가 장애의 우려다.

천도의 기대를 잔뜩 가지고 온 영가들이 천도되지 못하
면 감정이 좋을 리 없다.
그런 영가들이 절에 남아서 인연 있는 사람에게 영가장
애를 일으킬 우려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피해는 해당 사찰의 스님과 신도들에게 고스란
히 돌아간다.



ⅴ. 부처님께서 주관하시는 현지사의 천도재
영산불교 현지사 천도재의 특징은 부처님께서 주관해
주시는 천도재란 것이다. 부처님께서 바쁘실 때는 지장보
살님께서 주관해 주신다.

억겁을 두고도 만나기 어려운 희유한 천도재다.
부처님께서 주관해 주시는 이유는 불과 이룬 현지사 큰
스님께서 집전하시는 천도재이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는 가섭.아난 두 제자를 지도하여 붓다로 만들기 위해 현
지사에 상주해 오셨고, 이제 불과를 이룬 두 제자의 청을
받아들여 천도재를 주관해 주시는 것이다.

겁에 한 분 나온다는 붓다가 두 분이나, 그것도 같은 한
국 땅에서 한꺼번에 출세했다는 것은, 축복이라는 말로 표
현하시는 너무나 부족하고 어떤 비유로도 그 의미를 다
표현하기 어렵다.

두 분 제자가 떠나시면 부처님도 떠나신다.
그래서 현지사 두 분 큰스님 살아계실 때만 할 수 있는
부처님 천도재다.



1. 현지사 천도재의 특징과 좋은 점

①부처님께서 주관하시고 불과 이룬 큰스님께서 집전하
시는 지구촌 유일의 천도재로서 본인.배우자의 친가와 외
가 4가계 3대 조상까지 보통 50~100명을 동시에 천도한다.
유산 및 낙태영가도 포함된다.

특히, 복위자가 알지 못하는 윗대 조상 영가 중 영가장
애의 우려가 있는 조상영가들은 부처님께서 직접 찾아서
천도시켜 주신다. 이 때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그 조상들
이 마지막 죽는 모습을 TV화면처럼 큰스님께 생생하게
보여 주시기도 한다.

현지사 천도재는 큰스님의 발원으로 영가의 수배에서부
터 천도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이 부처님 주관으로 진
행되므로 확실하게 천도가 되는 천도재다. 보통 1회 천도
시마다 영가가 한 단계씩 올라간다. 어느 누가 돈을 아무
리 많이 준다 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중음계 무주고혼 천도 경우(4회 천도로 하늘 왕생)
중음계→중지옥(1회)→하지옥(2회)
→대기지옥(3회)→하늘54품(4회)

② 부처님께서는 천도시킨 효행을 가상히 여겨 복위자의
업장을 씻어주시거나 일부 소멸시켜 주신다.

효는 불교의 중심사상이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효행을
널리 기리기 위해 천도와 업장소멸이라는 엄청난 축복을
내려주시는 것이다. 너무나 고맙고 감사해야 할 일이다.

③성중들을 보내 복위자의 집을 영적으로 청소해 주시
기도 한다.

천도재를 몇 번 지내게 되면 부처님께서 성중을 집이나
사무실로 보내 숨어있는 귀신들이 있으면 잡아서 명부로
압송시킨다.

④영가들이 특별재심을 받아 어디로 천도되었는지 결
과를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큰스님께서 삼매를 통해 직
접 결과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⑤천도재가 끝나면 영가들이 남긴 탁기, 오물 등을 깨
끗이 청소해 주신다.
천도재 이후의 이 청소는 청정도량을 유지하는데 필수
적이고 중요한 마무리 과정이다. 주로 관세음보살님과 성
중들께서 청소해 주신다.



2. 현지사 천도재의 실제

현지사의 천도재는 불과 이룬 큰스님께서 석가모니부처
님과 지장보살님께 간청하여 사전에 허락을 받고 이루어
지는 것임을 밝혀 둔다. 1~3부로 나누어 진행된다.

《제1부》영가의 수배 및 신병 확보
영가의 수배와 신병 확보는 천도재 전일까지 완료하는
데, 큰스님께서 부처님들과 성중들의 도움을 받아서 하신
다. 지옥 영가는 지장보살님께서 열시왕, 옥사장쪽으로
명령을 하달하면 옥사장이 압송해온다. 축생으로 몸 받은
경우는 부처님과 지장보살님의 위신력으로 지장궁 신중
들이 그 축생을 찾아 영체를 빼내어 데려온다. 명부에 못
들어간 중음 영가 중 땅 속이나 물 속 깊이 숨어있는 영
가는 문수보살님께서 수배하시고, 허공과 지상에 숨어있
는 영가는 지장보살님께서 수배해주신다. 아주 영악한 영
가는 부처님께서 수배해 주시기도 한다. 수배된 영가는
지장궁 별궁에 감금시켜 놓는다.


《제2부》천도재 의식
천도재 당일 지장궁의 신중들이 지장궁에 감금되어 있
던 수십명의 영가를 구인하여 현지사로 데려온다. 천도재
의식 때는 변식진언을 통해 영가들을 목욕시키고 새 옷
을 갈아입힌다.

다음에는 지장보살님께 공양을 올리는데, 이 때 지장보
살님과 사바세계에서 좌우보처를 대행하고 있는 도명존
자, 무독귀왕과 명부의 판관인 열시왕께서 임석하신다.

그리고 나서 관음시식으로 영가들에게 음식을 베풀고 장
엄 염불을 들려준다. 장엄염불 시에는 아미타부처님께서
잠깐 다녀가신다. 장엄염불이 끝날 즈음 영가들은 지장보
살님께서 방사하시는 빛을 타고 지장궁으로 복귀, 열시왕
의 특별재심을 기다린다.


《제3부》복위자의 효행 장려
순수한 효심으로 천도재를 올리는 복위자에게는 업장을
씻어주시고 일부 세속적인 소원도 해결해 주신다. 빙의된
영가를 떼어 명부에 압송시키기도 하고 집안의 영적 청
소도 해 주신다.




ⅵ. 맺는 말
천도재는 불교의 중심사상인 효사상의 완결판이다. 그
리고 인연법과 육도윤회론, 영체론은 물론 구원론까지 불
교의 핵심교리가 다 녹아있다.

부처님의 구원력이 핵심을 이루며, 다른 종교에는 없는
불교 고유의 영혼구원 의식이다.

이제 부처님의 법통을 이어받은 영산불교에서 천도재의
실체를 세상에 드러내어 부처님의 정법과 효사상을 널리
펼치고자 한다. 우리 국민 모두가 진정한 효행의 의미를
알고 실천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결론적으로, 천도재는 부처님께서 주관하셔야만 천도가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마지막으로 한 말
씀 당부 드린다

「정말로 정말로 부처님의 진실한 제자이고자 하거든
여기 정법의 천도재를 믿고 따를 것을 간곡히 권해 드린
다. 그리고 스스로 과연 천도재를 집전할 최소한의 자격
요건이 되는지를 청정한 수행자의 양심으로 비추어 보길
바란다」


출처/현지궁 현지사 천도대재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영산불교사상연구소





칭명염불--1




칭명염불





칭명염불수행법은 미증유한 공부법입니다.

중생들의 검증 절차가 필요치 않습니다.

삼천대천세계

모든 부처님들께서 권하시는 바요,

거룩하신 우리 교주

불 세존 석가모니부처님의 뜻이요,

불과를 이룬 광명·자재가 내놓은

공부법이기 때문입니다.




현지사 칭명염불_아라한, 보살, 
붓다가 나온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삶이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행복이 영원히 이어지기를 꿈꾸게 됩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부처님께 귀의하고 그 교법에 귀의하며 지난날의 업을 참회하고 탐진 번뇌를 정화해가면서 오계·십선을 행하여 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하늘이나 인간세계로 몸 받아 올 수 있는 정법의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물론 금생도 근심 걱정 없이 잘 살기 바랍니다. 그러다 부처님 회상을 만나 윤회전생에서 벗어나 정토에 나기를 간절히 권합니다.



여기서 나는 일찍이 불교사에 없었던 석가모니불을 봉창하는 칭명염불을 제안합니다. 많은 공부법이 있지만 이 염불 공부가 보살이 되고 붓다 되는 가장 확실한 수행법이기 때문입니다.



화두를 드는 선종의 간화선이나, 남방불교의 위빠사나 관법선이나 티베트 밀교의 쿤달리니 요가 수행법 - 이 모두는 자력으로 가는 수행법입니다. 잘해야 아라한 성과를 얻을 뿐입니다.



오늘 날 간화를 참구하는 선승들 중에 지계 청정하고 부처님 없다 말하지 않고 공부 잘하는 스님들도 많이 있음을 압니다. 그 스님들, 자·타력의 불교로 방향 전환한다면 결정코 성과聖果를 얻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현지사의 칭명염불은 자력과 타력을 겸비한 수행법입니다.

아라한, 보살, 붓다가 나옵니다.

이 칭명염불 수행법은 미증유한 공부법입니다. 중생들의 검증 절차가 필요치 않습니다. 삼천대천세계 모든 부처님들께서 권하시는 바요, 우리 교주 불 세존 석가모니부처님의 뜻이요, 불과를 이룬 광명·자재가 내놓은 공부법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부처님의 성호를 칭명하라!



2600여 년 전 인도 땅에서 출세했던 석가모니부처님은 대열반에 드셨다 해서 완전 공으로, 적멸로 드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중요한 지적입니다. 처음으로 불과를 증해 붓다가 되던, 어느 부처님께서 다시 사바 세상에 사람 몸을 받아 오시던 간에 절대계에, 유무를 초월한 무아 속 절대계에 부처붓다의 몸佛身·報身을 두십니다.



그 불신은 청정하고 깨끗한 부처님의 무량 억종광명 빛으로 이루어졌기에 영원불멸입니다. 그 불신은 대적광삼매 속에서 환희, 지복을 누립니다. 동시에 이 우주와 하나로 계합해 있으면서 삼천대천세계를 항상 비추는 대생명체인 법신法身佛도 두고 계십니다.



그 부처님보신은 ≪법화경≫ <신력품>에서 말씀하신대로 자기의 화신을 천이고 억이고…… 중생의 부름에 응하여 나투어 가시는 것입니다. 소위 32응신으로 그 중생의 근기에 따라 현신하십니다. 불과를 증하신 부처님 삼신三身의 중심이 되는 보신부처님은 32상을 갖춘 유형의 불신으로서 지혜와 자비 자체가 되어 깊은 삼매의 힘으로 항하사의 신통 묘용을 자재하게 부립니다. 시방十方의 불국토를 다니시면서 보살들을 교화하십니다.



아미타부처님께서 수년 간 사유하여 큰 삼매력으로 극락세계를 성취하신 것은 사실입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은 부처님 중 부처님이십니다. 그리고 최초의 부처님이십니다. 무량 아승기겁 전에 불과를 이루신 이래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부처님, 보살님들을 양성해내신 부모님 같은 어른 부처님이십니다.



부처님들의 지혜·자비·능력은 실로 불가사의합니다. 외도 이단의 세력을 다 합쳐도 부처님 한 분을 대적하지 못합니다.



석가모니불게 귀의·귀명하고 과거 생에 저질렀던 사악한 죄업을 참회하고 그 태산만한 우리 자신의 업장 소멸을 발원하면서 칭명하는 염불수행을 나는 이 책을 읽고 있고 여러 불자들에게 간절히 권하는 바입니다.



다시 말합니다. 부처님은 진실로 절대계에 계십니다. 보신부처님은 여름철 뙤약볕 아래 놓은 다이아몬드가 천만 갈래의 빛으로 발산하는 것처럼 그런 불가사의한 빛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32상 80종호로 자비·단엄하십니다. 우리 죄업 중생이 간절히 부르면 우는 아이에게 달려오는 어머니처럼, 그 같이 오셔서 각자의 수행과 공덕에 따라 업장을 씻어주십니다.



중생의 지중한 업장 소멸은 오직 부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 어떤 외도 수장들도 이것만은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이 점 확실히 말해둡니다. 나라는 의식이 생겨, 탐진 번뇌들이 일어나 업을 지으면 우리의 영혼엔 더덕더덕 오물찌꺼기들이 붙어 몸뚱이가 만들어집니다.



우리의 본래의 영아靈我에 영혼체가 생긴다 그 말입니다. 수행이란 이런 비본질적인 나, 비아非我를 정화해가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영혼이 순수하고 깨끗하고 청정해질수록 맑고 청정한 국토에 납니다.



수행이란 영혼의 정화입니다. 다시 말합니다. 업의 정화는 자력수행으로서도 어느 정도 가능합니다. 아라한 수준의 영혼 본래 모습까지는 정화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 이상 보살로 발돋움하는 것은 타력부처님 가피에 의해서만이 가능합니다.



거룩하신 부처님의 신력神力에 의해서 탐진의 뿌리가 녹고 업장이 소멸 되면 우리는 누구나 보살이 되어 극락정토에 왕생합니다. 오직 석가모니부처님의 가피에 의해서만이 보살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님의 가피력이 아니면 우리 중생은 기왕에 빙의됐거나, 앞으로 빙의될 가능성이 있는 천마·용신 등의 무서운 장애를 제거하거나 방어할 힘이 없습니다. 그리고 삼독 번뇌의 지멸 역시 우리 연약한 인간의 능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금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만나게 되는 삼재와 팔난의 고통도 부처님의 크신 위신력과 가피에 의해서만이 피해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숙명적인 운명까지도 바뀌어 집니다. 죽을 때 불 보살님처럼 잠자듯 편히 갈 수도 있습니다.



우리 교주 불 세존이 안 계셨더라면 이 삼천대천세계 안의 그 많은 붓다님들이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 여러 정토세계의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저 수많은 정토보살과 현재의 항하사 수같이 많은 성중도 있을 수 없습니다.



중생은 삼악도를 헤매다가 기껏 그 중 소수만이 하늘세계에 오를 뿐이었을 것입니다.



세존께서 나유타하고도 아승기겁 전에 불과를 이루시고 지금까지 한 시도 쉼 없이 여러 국토에 다니시면서 중생을 교화해 오셨기에 오늘 날과 같은 장엄한 회상을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여러 본생담에 나오는 바와 같이 부처님께서 수많은 과거 생을 통해 중생을 위하여 보살도를 하신 거룩한 대승의 이타심, 그 은혜에 우린 고개 숙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처님은 2600여 년 전 오직 정법을 심어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일념으로 6년간의 설산 고행을 각오하고 다시 인도 땅에 응화신으로 오셨습니다.



그 당시 산 속의 호랑이, 사자, 전갈, 독사, 쉬파리, 사나운 모기떼들에 완전히 노출된 채로 1일 일마일미一麻一米로 연명하며 고행하신 그 은혜를 우린 한 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최초로 불과를 이루신 이후에도 사바세계에 수없이 많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때마다 눈물겨운 난행고행을 마다하지 않으셨답니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우리 문수보살님의 송頌처럼 “이 몸 백 천으로 나누어 가루되어 바친들, 우주만큼 큰 부처님의 은혜를 어찌 다 갚는다 하리까?”하는 감사의 노래가 절로 나오게 됩니다.



모름지기 우리 불자들은 천상천하에 오직 위대하신 불 세존의 은덕을 생각하면서 부처님의 성호를 봉창해주시기 바랍니다.





현지사 칭명염불 수행법



나는 이제 불교사상 가장 위대한 칭명염불을 권고하는 바입니다.



최초 불이시오, 삼계의 법왕, 우주의 주主이신 석가모니불을 봉창하는 칭명염불 공부법을 여러 불자들에게 소개합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세면을 한 뒤 공부방에 가서 성상 앞에서 3배합니다. ≪금강경≫을 1독하고 부처님 다라니 5번 정도 염송하고 반듯이 반가부좌해서 두 눈을 벽면의 한 점에 고정합니다. 물론 부처님께 귀의·참회·발원합니다. 낭랑하고 힘 있게 석가모니불을 봉창합니다.



현지궁 현지사의 칭명염불은, 정토종念佛宗의 염불과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르다는 것을 이해할 것입니다.



염불 공부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입으로는 석가모니불을 계속하면서 마음속으로는 금강반야바라밀을 동시에 부르도록 해야 합니다. 선정, 삼매에 들려면 망상이 쉬면서 일념상속一念相續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석가모니불을 칭명하는 것과 동시에 마음속에서 금강반야바라밀도 잘 부르게 될 때, 석굴암 부처님 미간에서 빛이 방사함을 관觀해봅니다. 자력의 선정력이 어느 수준 깊어졌을 때 부처님께서 여러분을 삼매 속으로 이끄십니다.



공부할 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세간적인 욕심을 포함하여 도를 통하겠다거나 아라한이 되고 보살이 되겠다는 욕심을 갖고 계율 없이 용맹정진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 마가 치고 들어옵니다. 한 번 빙의된 하늘 마天魔는 떼기 어렵습니다. 결국은 정신이 돕니다.



공부 중에 경계에 집착해서도 안 됩니다. 정신넋이 빠질만한 미인이나 시각적으로 볼만한 대상 경계에 집착하면 큰일입니다.



그것은 하늘 마의 유혹입니다. 한두 번 마음을 뺏기다가 급기야는 헤어 나올 수 없을 만큼 빠져버리게 됩니다. 마침내 비정상이 됩니다. 미칩니다.



인생에 네 가지 어려움人生四難得이 있다 합니다. 사람 몸 받기 어렵고, 바른 법 만나기 어려우며, 눈 밝은 스승 만나기 어렵고, 해탈하기 어렵다 합니다. 다행히도 여러분은 천 년, 만 년 아니 겁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하는 부처님 회상 만났으니 큰스님을 스승으로 삼고 지도받아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돌아가신 부모 조상님 천도해 드리는 진짜 효도를 해 드리고, 부처님께 공양도 가끔 올리면서 부지런히 선근 공덕을 쌓으며 열심히 염불 공부해 나간다면 업장이 소멸되어 이루지 못할 소원이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때그때 공부의 진척도 점검받기 바랍니다.


출처 /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2권 中




염불선이 되어야 삼매에 든다


경전 읽고 염불하는 나의 염불선을 좀더 자세히 소개하겠습니

다. 아미타불 염불공부를 중심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먼저 정토삼부경 중 하나를 선택해서 봉독한 후 벽을 향해 단정

히 반가부좌한 채로 두 눈을 벽의 한 점을 응시한 채 염불선을 시

작합니다. 결코 눈을 깜박거리지 마시고 그 한 점에 두 눈을 고정

해야 합니다. 기도 정근 중에 자꾸 마실마을 가는 놈이 있어서 공부

를 일념으로 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생각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공부의 요체입니다.



하나로 모으려면 차라리 확실하게 둘로 나눠주는 것이 좋습니

다. 망상 피우는 그 놈이 바로 '나'입니다. 그 놈으로 하여금 망상

하지 못하게, 마실마을가지 못 하게 과제를 하나 내주십시오.



내 앞에 아미타부처님께서 와 계신다 생각하고, 마음속에서 큰

소리로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다짐을 하도록 시키십시오. 또 부처

님 앞에서 지난 날 못된 짓 한 것을 경건하게 참회하게 하고 극락

왕생을 발원하도록 말을 시키십시오. 입으로는 '나무아미타불'

정근한 채 두 눈은 앞 벽의 한 점을 응시하고, 귀의 참회 발원을

잘 해내도록 합니다. 이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나 힘써 하면

됩니다.



자유자재로 마음속의 내가 독자적으로 말을 잘 하는 정도가 되

면 이제 생각을 하나로 모아 한 점 속을 뚫어 가십시오. 염불삼매

로 들러갑니다.



부처님의 신상광명을 관하면서, 입으로는 고성으로 힘차게 칭명

해 들어가는 염불공부도 좋습니다. 모든 붓다는 몸이 빛으로 돼 있

어서, 현신現身할 때에는 모든 빛을 거둔 상태지만 여전히 안팎이

드러난 청정광명을 방사하게 됩니다. 정수리, 미간과 모든 털구멍

에서 밝고 투명한 빛을 방사합니다. '석가모니불' 염불행자라면

석굴암의 불상을 마음속으로 그려가면서 방사하는 광명을 마음숙

으로 지어갑시다. 그런 부처님 상을 관하면서 칭명염불합시다. 세

존석가모니佛 염불하는 자는 반드시 <<금강경>>을 봉독한 후

염불하는 겁니다.



대승경전 전체의 3분의 1 정도에 해당하는 정토삼부경 <<대집

경>>등 200여 경전에서 염불을 권하고 있습니다. 특히 문수보살은

<<문수반야경>>, <<문수사리발원경>>등에서 극락왕생을 발원토록 하

셨고, 보현보살께서는 <<화엄경>> <입법계품> 마지막 부분에서 선

재동자 등에게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에 날 것을 권하셨습니다. 대

세지보살도 <<능엄경>>에서 염불하는 중생을 인도하여 삼마디을 얻

어 서방극락세계에 나게 하시고, 관음 지장보살께서도 물론 인

연중생을 극락정토로 인도하시는 일을 교화의 목표로 삼고 계십

니다.



인도의 마명 용수 무착 세친, 중국의 혜원 선도 천태

철양 영명, 신라의 원효 의상 서산 기화, 일본의 법연 신란

등 대선사들을 포함한 당대의 큰스님들도 염불수행을 최선의 공

부법으로 권장하고 고취시켰습니다. 물론 자기들 스스로도 정토

업염불공부에 매진한 분들이었습니다. 염불선은 보살지까지 뛰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수행법임을 다시 천명하는 바입니다.


출처/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부처님이 계시기에 염불하는 것



요즘은 소위 선종의 큰스님들이 염불하는 '이게 뭐꼬' 하는 화두

식 염불을 권하는 분들이 있는 모양이지만 나는 이것에 반대합니

다. 진여실상을 관하면서 염불하는 실상염불이나 부처님 상호의

공덕장엄을 관하면서 염불하는 관상염불은 좋습니다. 그러나 보

다 좋은 것은 고성으로 칭명하는 염불입니다. 부처님이 계시기 때

문에 염불을 권하는 것입니다.



아미타부처님의 염불왕생원제18원에 따라 그 본원本願을 믿고 일

념으로 염불하십시오. 법계에 부처님이 안 계시다면 칭명염불이

아무 소용이 없겠으나, 부처님은 진실로 계십니다. 그래서 칭명염

불을 하라고 권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관무량수경>>에서 "극락극에 태어나고자 하면 마

땅히 부모를 효양하고, 스승께 봉사하며, 10선도를 닦을 것이니

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정업淨業의 기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서방극락세계는 있고, 아미타부처님도

계시며 경전의 말씀도 옳습니다. 다만 아미타부처님은 삼천대천

세계의 수많은 붓다님들 중 다섯 분 어른인 오여래五如來이시고,

10겁 전이 아니라 무량겁 전에 성불하셨사는 것입니다.



아미타부처님께서는 특별히 당신의 이름을 일심으로 부르면 항

상 무량광명으로 삼천대천세계를 비추시다가 염불중생을 섭취하

는 본원이 있으십니다.



길 잃은 자식이 어머니를 찾듯 간절히 아미타불佛을 부르며 사

십시오. 반드시 좋은 일이 있습니다. 큰 액운도 비켜가고, 죽을 때

잠자듯 편히 갈 수 있으며 최소한 하늘천상에 날 수 있습니다. 진

력을 다하면 왕생도 못할 것이 없습니다. 먼저 <<아미타경經>>을

일독하시고 '아미타불佛 무량겁 멸죄진언' 을 108독 염송한 후, '나

무아미타불' 을 고성으로 힘차게 염불정근 하십시오. 지옥 축생

의 과보를 벗고자 하거나 윤회를 뛰어넘어 아라한이 나는 성중하

늘이나 극락세계에 왕생을 목표로 한다면 음계 10선계를 지

킴은 물론 큰 스승님을 지도자로 모시고 돌아가신 부모 조상님

께 효를 다 하면서 염불수행을 지성으로 하십시오. 그게 여러분이

사는 길입니다.



또한 부처님보신佛께 공양을 드리는 것도 중요하며, 무엇보다도

청정계율을 지키면서 염불하십시오, 물론 이타행 보살행을 해야

합니다. 영명연수 선사의 말처럼 온갖 선행을 두루 닦아 왕생극락

에 회향토록 하십시오.



그리고 삼매에 들 수 있도록 염불선에 매진해야 합니다. 한 순간

도 끊어짐 없이 염불이 되어야 진정한 염불선입니다. 염불삼매나

삼매는 실제로 들기가 무천 어렵습니다.



삼매에 든다면 여기서부터 성자의 반열에 오른 것입니다. 삼매

에 들수록, 더 깊은 삼매에 들어갈수록 청정이 더해지고 지혜가 증

장되며 삼매력이 생겨 죽음을 마음대로 하고 윤회에서 벗어납니

다. 그렇게 해서 대성자가 되어가고 무아 속 삼매까지 들게되면

극락정토까지 뛰어 오를 수 있습니다. 더욱 간절히 염불공부

하십시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염불수행- 부처님께서 일러주신 공부


나는 분명히 말합니다!

최초 불이시요, 남섬부주 교주이시고 삼천대천세계 총교주이시

며, '붓다 중의 붓다' 이신 불세존 석가모니불佛께서 일러주신 수

행법은 바로 염불선입니다.



그리고 시방의 모든 붓다들께서도 염불공부할 것을 간절히 권하

고 계십니다. 염불선이 가장 휼륭한 수행법이라는 증거입니다. 어

느 아라한이나 정토보살위의 성인들이 가르쳐 준 게 아니라, '붓

다 중 붓다' 이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일러주신 수행법이기에 염

불이 최고라는 것입니다. 위빠사나 관법선도 2500녅 넌 부처님께

서 가르쳐 주신 공부이기 때문에 휼륭한 수행법입니다.



염불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하고 부르는 것이요, '관

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해도 좋습니다. 의상대사는 관세음보살을

스승으로 삼아 정토왕생을 발원하고 '관음염불' 에 매진한 분이었

습니다. '지장보살, 지방보살' 해도 좋습니다. '석가모니불, 석가

모니불' 하면 더욱 좋습니다. 이것을 칭명稱名염불이라고 합니다.



일심불란으로 집지명호 할 수만 있다면 윤회를 벗어나 극락정토

까지도 왕생할 수 있다는 것을 믿고信, 그것을 간절히 바라고願, 그

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염불선行을 해 나가야 합니다.



<<관무량수경>> 에는 지성심, 심심深心, 회향발원심을 갖추면 극락

에 왕생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심심이란 믿는 마음이 철기

등 되어 널리 공덕을 닦거나 즐겁게 선법을 쌓는 것입니다. 널리

공덕을 지으면서 불호佛號를 염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왕생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말은 이렇듯 쉽지만 실제는 비범한 수행이 아니고서는

왕생하기 어렵습니다. <<아미타경經>> 에서 이르길, "1일에서 7일 일

심불란 칭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과연 보살이 아니면 왕생할 수 없습니다. 선방에서 공

부해 본 수행승이라면 생각이라는 것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

난다는 것을 잘 압니다. 아라한을 뛰어넘은 보살이 아니고는, 생각

이란 놈을 자기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참선이나 염불을 하다보면 생각은 곧잘 마실마음을 갑니다. 일념

一念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염불 일념을 1일에서

7일간 지속할 수 있으면, 즉 염불선이 되는 염불행자라면 설사 오

역죄를 범한 악인이라도 정토에 왕생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중

죄를 지은 자가 일념이 되기란 지극히 어렵습니다.



얼마 전 서울공대를 졸업해 일류 재벌기업의 간부로 있다가 명

예퇴직한 어느 불자님의 조상을 천도해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나무아미타불佛' 을 부르고 있는 가운데 아니타부처님께서 현

신햐셔서, 그 천도재에 참석했던 재자齋者의 큰 아드님을 가리키며

"이 애는 5하늘에서 왔느니라. 전생에 지성으로 염불공부를 했으

니, 잘 지도해주라" 고 필자에게 부촉하신 바 있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염불하고 살았거나, 또 임종 무렵 왕생경계가 나

타났다 해서 그 사람이 모두 정토에 왕생하는 것으로 보는 것은 속

단입니다.



부처님께서는 하늘 천상만 해도 54층여섯 하늘로 나눔이 있고 그 위

에 윤회를 벗어난 아라한 성자의 하늘 곧 성중하늘이 또 27층품이

있으며, 성중하늘 위가 도솔정토 도솔정토 위가 바로 보살이 가는

서방극락세계라고 하신 말씀을 상기하십시오.



우리 인생이 설사 대과없이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살았다 해도 6

하늘, 5하늘에 가기도 어려운데 염불공부만으로 극락에 쉽게 가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 시큰둥해 하는 불자들이 있습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염 불 선


진리는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강조하는 바, 삼란만상은

설법하고 있다고 어는 고승께서는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모든

곳곳에서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주의을 기

울이고 자각을 하고 인식을 해야 합니다. 러셀이 이

야기한대로 우리에게 인식되지 않는 존재는 없는 것과 다름없

습니다. 이러한 인식론은 양자역학의 이론과도 매칭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존재의 실상이란 우리의 인식 속에 들어올 때 가치

가 있는 것입니다.

진리라는 것도 몇 해 전 열반하신 숭산 스님이 말씀하

신 것처럼 우리가 사과를 깨물어 먹듯 맛을 보아야 합니다. 그

렇게 맛을 본적이 없는 진리란 단순한 궤변에 지나지 않습니

다. 큰스님의 칭명염불은 이 점에서 훌륭하다고 할 수 있습니

다. 실제로 현지사의 많은 신도님들이 부처님의 방광을 본

적이 있으며 머릿속에서 빛이 나오는 것을 느낀다고 합니다.



이는 칭명염불의 위력이 일반 수행자가 몇 년 동안 공부하는

양보다 많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경험

으로 증득될 때 마음의 개오와 의식의 정화 그리고 정신의 각

성이 일어나게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 내면의 진리를 발

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큰스님은 현성이라고 말씀하

셨습니다.



경건하고 독실한 불제자들이 각골쇄신해 온 큰스님의 삶이

여과 없이 스며들어 있는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를 여러 번

정독했다면 큰스님께서 얼마나 뼈저린 삶과 진지하고 심오한

마음으로 구도 여정을 펼쳐 오셨는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큰스님의 구도 여정을 완숙한 경지로 승화시킬 수 있었

던 것이 바로 칭명염불에 의한 염불선입니다.



염불은 만트라(진언)와 같은 효과가 있어서 자신의 마음을 보

호해 줍니다. 또한 염불을 통해서 발성하는 말은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석가모니불이라는 발성 자체에 강력한 힘이

있기 대문에 오래할 수록 내면의 힘이 강해진다고 할 수 있습

니다. 사양에서는 로고스라고 하여 신의 말씀을 이야기합니다.



바로 염불도 석가모니부처님의 마음과 링크시키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을 많이 염송하게 되면 자신의

내면체에 석가모니부처님과 같은 파장과 에너지를 얻게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칭몀염불을 많이 한 어는 수행자는 자신의 내

면에 부처님의 황금빛 화신이 자리잡고 있음을 인식한다고 합

니다.



재삼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점은 바로 염불선이 큰스님의

법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큰

스님께서 염불선, 특히 칭명염불을 강조하신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부처님게서 실재하신 다는 것입니다. 삼천대천세계에 수

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붓다님들이 여여히 계시기에 우리는

그 붓다님들을 믿고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붓다님들을 진심

으로 간절하게 찾을 때 우리는 붓다님들의 가피을 입을 수 있

고 궁극으로는 붓다가 되는 길에 들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한 특히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붓다 중의 붓다이시기에 그 분

의 능력은 실로 창조주격이십니다. 바다를 건널 때 수영으로

건너는 것 보다 배를 타고 건너는, 즉 타력에 의한다면 훨씬

빠르게 수행의 목적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염불선으로 희귀함을 매우 중요하게 평가하셨

습니다. 한편 저는 여러 선지시을 만나고 다양한 책들을 접하

면서 모종의 정합적 이해를 얻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혼돈이 있

었습니다. 그러한 혼돈은 바로 방황을 희미하여 급기야 정신적

공황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많은 구도자들이 중도에 포기하고

폐인이 되다시피 하는 것은 바로 확고한 방향을 제시할 뚜렷한

경지에 이른 선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큰스님께서는

부처님의 가피를 받아 불경을 통해서 염불선을 수행해야 할 당

위성을 얻으셨고 결국 수행 정진에 매진하시고 각고의 노력과

수많은 인고의 세월을 이겨내시고 불과를 얻으시게 되었습니다.



저 또한 이는 한국 불교사에 일대 획을 긋는 그리고 불교계의

잃어버린 얼을 되살리는 대업을 이루신 일이라 생각합니다. 큰

스님이 말씀하신 바대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처럼 말입니다.



여하튼 큰스님은 한국 불교계에 커다란 사자후를 남기셨습니

다. 즉, 염불선을 수행함으로써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음을

사자후하시는 동시에 실제로 몸소 불과를 증득하셨습니다. 일체

을 의심하면 모든 법이 다 허무해 보이고 실없어 보입니다. 그

러므로 너무 의심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믿음이 수행에

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서도

큰스님게서는 화엄경의 주옥같은 구절을 인용하시면서 '믿음이

모든 공덕을 짓는 어머니'라고 당부 하셨습니다. "불전의 부처

님 말씀이나 공부가 깊은 큰스님의 법문 말씀을 믿어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은 도를 이루는 근원이 됩니다. 지옥에 갈

종자는 진짜 큰스님의 말씀도 믿질 않습니다. 삼악도의 종자는

의심만합니다."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불제자에게 신심을 내

야함을 당부하셨습니다. 믿음을 수행터로 삼아 극락 왕생과 붓

다증위를 위해 전심전력하여 염불선, 즉 칭명염불에 정진하면

우리 불제자들 모두가 큰스님의 말씀처럼 석가모니부처님의 위

신력과 가피를 받아 부단한 향상을 이룰 수 있다고 확신하는

바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




염불선이야말로 수행의 으뜸


이런 용기는 <<화엄경>> <<법화경>> <<율장>>의 가르침대로

무엇보다 계율을 존중하며, 경전을 읽고 염불을 하는 수행이

부처가 될 수 있는 길임을 확신했기 때문일 것이다. 1970년대

시절의 그 일이 놀랍다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인간 스스로의 수

행인 자력에 의존하는 것에 일정 부분 한게를 긋고 있다

는 점이다. 부처님의 가피라고 하는 타력에 의존하기 시작

한 것이다. 다음 그의 고백을 유심히 음미하기 바란다.



"덕산의 30방을 흔들며, 상에 집착 없는 언어로 공을 읊

고 마치 우주의 주인이 다 된 양 착각 하며 오만을 떨었던 지난

날을 생각하면 그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30대 중반 서울에

올라와 총무원 상임포교사로 법상에 앉은 지 2~3년이 못돼 나

의 공부에 회의를 품기 시작했습니다."(25쪽)



바로 이 지점에서 고유의 불교 세계관이 본격적으로 펼쳐진

다. 그의 단언에 의하면 출가자가 자력의 수행으로 오를 수 있

는 최고의 경지는 아라한까지다. 즉 곧바로 성불한다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인 셈이다. 견성 그 이후부터는 철두철미 부처

님의 가피가 필요하고, 다음 생애에 몸을 받은 아라한의 공덕

이 다시 쌓여 그 결과로 보살의 반열에 오른다.



"문수보살, 보현보살 그리고 관음보살께서 뿌리는 부처님의

광명을 온 몸의 털구멍으로 받아들이는 경계를 종종 만나는 위

력"이 바로 보살의 경계다.



이때 모든 보살이 아닌 최상수 보살 정도가 되면 부처가 뿌

리는 무량광이라는 빛덩어리를 보게 된다. 다음이 부처님 친견

의 경지다. 즉 '불과를 증한 대성자'의 단계에 바로 이때 들어

가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자신의 불신을 절대계의 부처

님 나라에 둔, 즉 법신 보신 화신의 3신을 완벽하게 구족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높디 높은 까마득한 위계의 관문 때문에 '견

성 즉 성불'이라는 습관화된 말은 턱없는 노릇인 것이다.



"무량광을 보기 이전에 부처와 보살이 있다 없다고 말하는

것은 한낱 범부가 지껄이는 망언일 뿐입니다."는 단언(35쪽)은

여기에서 나온다. 만현 스님은 자신이 구축한 삼신 이론과 부

처 성불 단계론이 11세기 티벳의 전설적인 성자 미라래빠보다

구체적이며, <<반야경>> 등에서 설명된 법신 이론 중심의 부처

설명보다 정교한 것이라고 밝히지만, 지금 이 원고는 그걸 검

증할 수 있는 자리는 안 된다.



용궁에 들어가 <<화엄경>>을 가져왔다는 인도의 용수와 달리

만현 스님 자신은 이 책의 도처에서 부처님을 친견했다고 말하

지만, 그것 역시 제3자가 쉽게 용훼할 수 있는 일이 못된다.



독자의 입장에서, 그리고 불교에 관심 있는 이의 입장에서

보건대 만현 스님의 이 '신 불교론'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불교

가 훨씬 불교다워진다는 점이다. 장려한 체계의 구축과 함께

그가 강조하는 신행 활동의 3박자인 염불 - 계율 - 효도는 출

가자와 불자들을 위한 덕목으로 돌연 떠오르게 된다.



장려한 체계라 함은 수행의 단계와 관문만이 아니라 올바른

생사관을 위해 필수인 대목이다. 이를테면 만현 스님은 부처와

보살이 보신으로 존재하는 것은 물론, 지옥과 극락 그리고 윤

회 역시 분명히 존재한다고 설파한다. 마음자리를 깨친 정도의

수행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지장보살본원경>>에 설명되는 끔

찍한 무간지옥은 실제로 있다. 따라서 출가하여 수행하는 이가

설혹 선근공덕이 있어 견성했다 해도 계율을 지키지 않을 경우

특히 음행 무간지옥에 떨어진다고 지적하고 있다.



비유컨대 "수행자가 여자를 가까이 하는 행위란 마치 깨끗한

물 한 컵에 똥물 한 방울이 떨어져 그 물을 마실 수 없게 되

는 것"과 같은 것이니 무소유와 청정을 지향할 것을 권한다.



이 점 요즘 흔들리는 모습의 불교계에 중대한 암시가 될 것이

고, 지옥과 극락 그리고 윤회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대망언을

했던 동양철학자 도올 김용옥 역시 가슴 철렁할 노릇이다. 책

에서 만현 스님은 부처 말씀을 인용하며 "정법을 비방하는 구

업은 그 어떤 죄업보다 지중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만현 스님 설법에서 중요한 점은 따로 있다. 삼신을

두루 갖춘 부처의 위신력에 대한 강조다. 훌륭한 상모와 지혜

그리고 자비와 신통을 두루 갖춘 부처는 온 세상에 자재한 존

재로 성큼 부각된다. 만현 스님이 화두 참구에 앞서 부처님의

이름을 부르는 염불 공부를 "가장 훌륭한 수행법"(208쪽)으로 권

장하는 것 역시 자연스럽다.



"붓다 중의 붓다께서 일러주신 수행법은 바로 염불선입니다.

위빠사나선도 2500년 부처님이 가르쳐주신 공부이기 때문에 훌

륭한 수행법입니다. 염불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하고

부르는 것이요. "지장보살, 지장보살'해도 좋습니다.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하면 더욱 좋습니다. 이것을 칭명염불이라고 합

니다."(208쪽)



출처 /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






수승한 공덕의 염불 수행법



염불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부처님의 상호, 즉

그 모습을 마음으로 관찰 관상하면서 그 공덕을 기리는 일"

이라고 한다.



염불과 비교해서 다라니가 있는데 다라니의 사전적 의미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의 정요로서, 신비적 힘을 가진 것으로

믿어지는 주문을 뜻한다. 원어명은 dharanl라고 한다. 또한 백과

사전에 의한 설명으로는 "비교적 긴 장구로 되어 있는 주문으로

총지 능지 능차라 번역하며 불법을 마음 속에 간

직하여 잊지 않게 하는 힘이다."



다라니들 중에서 좀 더 짧은 다라니인 진언, 즉 만트라에 대

해 사전적 의미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깨달음이

나 서원을 나타내는 말로서, 불교에서 진실하여 거짓이 없는 신주

주 신주 밀주 밀언 등으로도 번역한다." 본 단원에서는 염불수행과

관련 제반 내용을 집중 조망할 것이다.



먼저, 석가모니불 칭명염불 그 효시, 즉 염불 수행의 원류를 교

학적 근거에 기초하여 논구하고자 한다.



첫째, <<잡아함경>>에 "바사닉왕이 부처님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나

무여래응정등각' 하니......"라고 되어있으며 둘째, <<중일아함경>>에는

"부처님의 명호, 여래 지진등정각 선서 세간해 ..... 등 여러 가지 명

호를 부르면...., 이 공덕에 의해 두려움이 소멸되고, 신통을 얻고....

죽으면 천상에 난다."라고 되어 있다.



셋째, <<중일아함경>> <억념품>에는 "1. 거닐 때도, 2. 머무를 때도,

3. 앉아 있을 때도, 4. 누워 있을 때도, 5. 항상 어디서나 부처님을 억

념하라."고 되어있으며 넷째, <<대방편보은경>>에는 "석존의 제자 한

사람이 '나무석가모니불'을 부르게 하자, 5백 명의 도둑 신체의 고통이

제거됐다."라고 되어 있다.



다섯째로 <<여환삼마지무량인법문경>>에는 "'나무석가모니불' 부르는

것에 의해, 선근이 증장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성과가 있다"고 하

였다. 그리고 여섯째, 부처님은 <<증일아함경>>에서, 모든 비구들에게

수행의 한 법을 염불이라고 설했다. 즉,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이

르시기를 마땅히 한 법을 수행하고, 마땅히 한 법을 널리 펴라, 큰 과

보를 이루며, 모든 선이 널리 이르게 되고, 감로의 맛을 얻어 무위

처에 이르며, 문득 신통을 이루어, 모든 어지러운 생각을 제거하

여 아라한과를 얻어, 열반에 이른다. 어떤 것을 한 법이라고 하

는가? 이른바 염불이다."고 하셨다.



이는 염불하는 공덕에 의해서 무위처에 이르고 신통을 얻어

열반에 들어 갈 수 있다고 한 것은 불교의 수행 중에서도 염불이 중요

함을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일곱째, <<관무량수경>>에서는 "부처

님께서 위제희 부인에게 16관을 .........."이라고 전한다.



한편, 정토종의 염불 수행인 나무아니타불 칭명염불에 대해서 설명

하자면 다음과 같다. 전통적인 정토종은, 서방 극락정토가 분명하게 존

제하고 염불의 목적이 왕생 극락정토에 있음을 주장한다.



아미타불이나 서방정토 극락세계는 대승경전 전체의 1/4 정도에 해

당하는 방대한 영역에 걸쳐서 등장하고 있다. 정토사상의 발생과 <<정

토삼부경>>의 성립 연대는 불입멸 후 대승불교가 발생할 무렵

어느 대승인 학장에 의해 이루어졌으리라.



그러나 신앙의 근원은 석가모니불 제세시에서도 찾아 볼 수 있으며,

정토신앙은 인도의용수(불멸 후 6~7백년 경), 세친 보살에 의해

서 그 골격을 잡았고, 중국으로 전래되어 크게 발전하였다.



중국의 진나라 때 혜원(육경에 통달, 노장에도 밝았다), 불타발타라

후위의 담란, 수의 지자 대사, 당의 선도 화상, 도작 스님에 의해

서 염불 수행은 크게 진작되었다.



특히 도작 스님은 하루에 칠만 번씩 염불하였다. 규봉 종밀 스님은

염불법을 칭명염불, 관상(觀想)염불, 관상(觀像)염불, 실상염불로

구분하였다.



염불 수행이 선종과 결합하여 염불선이 대두되었는데 염

불선의 효시를 추적해 보면 다음과 같다. 선종에서 수용하는 정토

는 내생이 아닌 지금 현세에서 도달한다는 것이고, 타력에 의한 성취

가 아니라 자력에 의한 자각이란 점을 들고 있다.



그래서 정토란 곧 자기 마음의 청정을 의미한다. 이러한 유심 정토

의 사상은, 정토의 개념을 선에서 수용하여 선정일여의 염불선을 표현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초기 선종에서 정토를 일심에서 통함, 선정일여의 염불선을 언급한

것은 사조 도신스님의 <<밉도안심요방편법문>>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고려말 나옹 혜근 선사(태고 보우와 더불어 고려말의

선품을 진작한 대선사)의 염불선을 음미해 본다.



아미타불 어느 곳에 있는가

마음에 붙들고서 간절히 잊지 않는다면

염불하는 일념은 일념마저 끊어진 무념처에 도달하여

육근문에 항상 자마금색 광명을 놓으리.



나옹 스님은 자성미타인 유심 정토를 설하고 있다.

또한 참구염불선이 있는데 이는 염불을 참구한다. 즉 지금 염불하는

자가 누구인가를 참구하는 것이다. 당대에는 서방 정토를 유심 정토로

해석해서 선과 정토가 이념적으로 통합되었고, 송대에는 법안 문익, 영

명 연수 스님이 염불선을 주창했으며, 원대에는 남송시대에 발전

한 간화선의 영향을 받아 염불과 화두 공안이 방법적으로 융합되어 임

제종의 몽산 덕이, 중본 명본 스님 등이 있었다.


출처/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 120~123




칭명염불 수행법의 이론적 토대 - 성명쌍수


수행자가 칭명염불 수행법에 대한 든든한 이론적 토대를 얻기 위해

서는 성명쌍수에 대해서 이해하면 좋다. 흔히 동양 철학과 동양 수행

을 하는 수행자라면 고대 성현들로 부터 전승된 성명쌍수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것이다.



성명쌍수란 성(성품)과 명(생명, 삶)을 함께 공부하라는 것을 학

인에게 당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성이란 성품을 말하며, 성품은

마음의 자성을 말한다. 이는 또한 불성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명이라는 것은 우리의 목숨, 즉 생명을 말하며, 더 포괄적으로는 삶

이란 점에서 성품을 공부하는 것이 명을 공부하는 것보다 중요하게

인식될 수 있다. 그 이유는 성품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우주적으

로 영원하게 존재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반면 명으로서의 삶은

시간과 공간 속에 내재한 법리와 인연법 그리고 연기사상

을 통찰 및 철견하는 것이다.



물론 반드시 성으로서의 자성을 닦는 것이 명으로서의 삶

을 이해하는 것보다 우월하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그래서 성과

명은 함께 닦아야 한다는 성명쌍수를 성현들은 이야기하는 것이다.



사실, 힌두의 철학 사유에서도 본질 또는 존재를 공부하는 것과 인

연 또는 관계를 공부하는 것 두 가지를 나눈다. 어느 것이 우선이고

어는 것이 차선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 둘을

통해서 내면의 자성 세계로 회통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될 때 내면과 외면은 뻥 뚫려 내외명철이 된다. 이 내외명철

이 확연히 인식되어 자신의 인식 구조와 존재론적 세계가 하나가 될

때 내외의 벽은 허물어지고 완전히 허공과 같이 충만한 공을 철견

하게 된다.



인도의 쿤달리니 요가에서도 쉬바로서의 정적인 성품 의식과 샥티로

서의 동적인 육체 에너지를 이야기한다. 쉬바는 성에 해당하며 샥

티는 명에 해당한다. 성은 관조적 힘이자, 주시적 힘이자, 관찰

자로서의 힘이다. 명은 행위적 힘이자 삶의 영위자로서의 힘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불가의 팔정도에서 정견, 정사유 등은 쉬바 의식

을 도야하는 바른 길에 해당하며 정업, 정정진 등은 샥티 힘을 도야하

는 바른 길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성은 우리의 마음을 의미한다면 명은 우리의 삶을 형성하는

신 구 의 작용을 의미한다. 성은 체요 명은 용인 것이

다. 21세기 과학 문명의 총아인 컴퓨터 시스템을 비유로 들면 프로그

램들 하나하나의 실체가 바로 성이요 그 프로그램의 행위 또는

작동이 바로 명인 것이다.



체와 용이 분리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처럼 성명도 불

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마음에는 안과 밖의 경계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염불선이나 위빠사나선이나 모두가 일차적으로 성을 도야하

는데 있다.



물론 큰스님의 칭명염불 수행은 성을 도야하는 것을 넘어서 부처

님의 가피와 위신력으로 불신을 얻는데 있다. 큰스님의 법 세계에

서는 성이라는 것은 작은 불씨라면 불신은 태양으로 비유할 수

있다.


출처/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




견성오도見性梧道 전체공개


의심하는 이 놈은 무엇인고?

화광반조 10여 년만인 7월 어느 날, 생각을 놓아도 저절로 화두

가 들리길 여러 날 동안 이어졌습니다.



답답함이 부풀어 올라 풍선같이 극치를 이룰 즈음, 큰 소리로

금강경을 봉독하는데, '여래는 어디로부터 온 바도 없고, 또한

가는 데도 없다'는 대목에 이르러 갑자기 온몸이 폭발하듯 하

면서 세상이 확 뒤집혔습니다.



주主와 객客의 벽이 무너져 버리고, 툭 터져 허공같이 비었습니

다. 적조寂照요, 만고萬古의 광명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마음은 실체가 없어서 가고 옴이 없고 여여부동如如不

動하다는 것을 확실히 보았습니다.



나는 저절로 일어나, 실로 법열法悅이 어떤 것인가를 실감하면서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다겁생多劫生의 업業의 나무 무성하더라


팔만 사천 가지마다 줄기마다






망상 꽃이 피었더라.






내 이것을






송두리째 뽑아 버렸더니






하늘도 없고 땅도 없더라.






거짓몸뚱이 산산이 부서져






가루되어 없는데






착着할 게 어디 있는가.






마음 마음


본래부터 없는 것






이름하여 마음이라 하네


이것이 벌써 30여 년 전의 일입니다. 마음의 본래면목本來面目,

존재의 진상, 우주의 체성體性을 확실히 철견할 수 있었던 것은 오

매불망 간절히 의단을 쌓아온 나의 정성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

합니다.






염불선으로의 회귀


돌계집石女의 겁외가劫外歌와 동산수상행東山水上行을 말하고 '덕

산德山' 의 30방을 흔들며, 상相에 집착 없는 언어로 공空을 읊고

마치 우주의 주인이 다된 양 착각하여 오만을 떨었던 지난날을 생

각하면 그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30대 중반 서울에 올라와 상임포교사로서 불법을 포교하기 위해

법상에 앉은 지 채 2~3년도 못 되어 나의 공부禪수행 保任에 회의

를 품기 시작했습니다.



히말라야 초인超人들, 힌두교 성자요기 Ylgi들 및 티베트 밀교의

성자 미라래빠의 수행담을 접하고 법화경, 화엄경 등 대승경

전을 정독하면서 나의 선수행을 비교 점검해본 결과 중대한 발

견을 하게되었습니다.



자성을 깨치는 것은 공부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견성見性이 곧

성불成佛' 이라는 산가의 기치旗幟는 분명코 잘못됐으며, 설사 견성

하고 나서 보림을 마친다 하더라도 곧 붓다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부처님이 거룩하시고 희유하시며 거의 절

대자라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또한 인간 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결국 아라한에 그칠 뿐

이라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아라한으로서는 우주와의 계합이라는

것이 결코 불가능하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실존철학의 소위 존대sein 불교의 법성法性, 선禪의 자성自性에 해당가

드러나서 머무는 건 순간일 뿐입니다. 영원히 우주와 계합을 이루

는 성불만이 완벽한 생사해탈을 보장합니다.



소위 견성에 이름으로써 저 일신교에서 말하는 '하나님' 이 우상

일 뿐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말하자면, '절대적인 창조주란 없

다!' 고 선언하는 단계가 바로 견성의 경지였습니다.





이 경지에 이르면서 이 몸뚱이란 4대지수화풍로 이루어진 옷이나

집과 같은 '가짜 나假我' 라는 것과, 나我라는 것도 오온五蘊-色受想行

識으로 이루어진 인연소생의 가아假我이며 이 세상은 꿈이나 그림

자 또는 이슬과 같은 무상無常한 존재라는 사실도 발견하였습

니다.



분별하고 사량하는 것은 생각일 뿐, 마음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

습니다. 이것만 해도 크나큰 깨침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천지天地 이전, 곧 부처 나기 이전의 적멸寂滅과 우주가 생

기기 이전의 면목을 깨친 이라면 당연히 불교의 연기법만이 진리

라는 것을 사자후할 것입니다.



내가 갑자기 염불선 공부로 용감하게 회귀할 수 있었던 것은 화

엄경 입법계품, 법화경 본문 팔품에서 가르친 대로 무엇보다

도 계율을 존중하며, 경전을 읽고 염불하는 수행만이 부처가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정토삼부경에서 수행인이 생사윤회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지름길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경전 읽고 염불하는 것만이

우리가 보다 잘 살수 있는 오직 하나의 대안代案임을 확실히 보았

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나는 인도의 용수, 마명보살, 중국의 혜원 조사, 진晋의

각현, 담란, 천태지의, 선도, 도작, 영명연수 선사, 한국의 의상, 원

효스님, 서산 선사의 염불선을 크게 주목하면서 우주생명의 실상

實相을 관觀하며 보림을 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미모의 젊은 여인을 보고 마음이 설레는 자신을 발견

했습니다.



그 순간 '진여실상이라는 용광로에 무명번뇌나 억겁의 죄장 따

위가 모조리 녹아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고 주장했던 지난날의 나

의 법문을 스스로 반추하고 의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혼자 산행山行을 하던 중에 쉬어갈 만한

곳에서 선정禪定에 들었습니다. 그 선정 중에 문둥병을 심하게 앓

고 있는 남자가 들어와 한 이불 속에서 자고, 밥지어 먹고 지냈을

때, 정말 선정에 들었으면서도 알고보니 천인天人의 선정이었다

중생심의로 돌아가 역겹고 싫은 생각이 줄곧 따라붙고 있었습니다.



한 태백산의 토굴에서 보림하던 어는 여름날, 커다란 구렁이

가 내 곁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너무도 긴장하여 진땀을

흘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습니다.



이런 경험들을 하면서 본래면목의 실상, 진여자성眞如自性을 철

견하고 보림한다고 해서 붓다가 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오백생 이전에 수행하실 때에 '가리왕' 이라는 포

악한 악인을 만나 난자당해 돌아가셨을 때에도 그에게 성내고 원

망하는 마음이 조금도 일어나지 아니하셨는데, 도대체 나는 어디

쯤 와 있단 말인고? 결국 인간 능력의 한계라는 명제와 타력他力, 곧

'부처님의 가피' 라는 주제를 두고 차츰 골똘히 생각하였습니다.



그 당시에 나는 깊은 선정에 들어서 그것을 진짜 삼매라고 오해

한 나머지 불 보살을 뵙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친견은 고사하고

지옥 천상세계도 관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윤회를 벗어난 해탈

오계解脫梧界, 곧 도솔정토나 서방극락세계도 끝내 관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선승禪僧이었음에도, 이 모두가 실제로 존재할 것이

라고 믿었기 때문에 염불선으로 과감히 방향전환하였으나 특히

1970년대 당시의 한국불교에서 선수행이 강고되다 보니, 염불하

는 행자들을 무조건 외도로 몰아 배척하였기 때문에 겉으로 내색

하지 못하고 침묵 속에 정토업淨土業을 쌓았습니다.



또 하나 내가 염불선으로 방향전환을 결심한 데는, 선재동자와

같은 나의 과거 행각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마친 화엄경 입법계품의 선재동자처럼 나이와 성별, 출가

재가를 가리지 않고, 이단異端-제2의 예수라 자칭하는 어느 목사님, 부처라

고 떠받드는 어는 재가보살 그리고 전라도 토굴의 어느 도인 등을 이해하고 오

랜 세월 교유함으로써 선禪의 참구參究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절대세계의 붓다들_칭명염불을 권한다!

불자 여러분께서는 실제로 붓다들이 계시다는 사실을 믿으시고,

또한 그 불보살님들이 당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구원을 요청하면

그 염불 수행자들을 친자식같이 생각하여 이들을 건지기 위해 가

능한 온갖 자비 방편을 쓴다는 사실을 유념하셔서 칭명염불을 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불가능이 없으리만큼 우주적인 무한 능력을 지니신 부처님' 을

부르지 않는 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 크신 힘을 지니신 부처

님을 외면하고 자력에만 의존하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다시 한 번 염불을 권합니다. 부처님의 위신력과 가피을 받는다

면 우린 삼악도에 떨어질 염려가 없습니다. 큰 죄를 지어서 지옥에

가고, 짐승 몸을 받아 날 수밖에 없다 해도 큰 스승을 만나 염불공

부를 잘 한다면 삼계까지 벗어나는 대장부가 될 수 있습니다.



학승들이 인간의 마음 속에서 법, 보, 화 삼신을 말하는 것

은 하나밖에 모르는 이설이 분명하다고 다시 단언합니다.



관념적이고 사변적인 철학공부는 종교 수행인에게 이롭

지 않습니다. 실천 수행해서 깨닫고, 나아가 증득하는 것만이 필요

한 것입니다. 나는 다만 직접 깨달은 내면세계의 '다르마' 소식

만을 전하렵니다. 내가 들추어낸 이 엄청난 새로운 삼신설의 법문

지각변동이라거나 핵폭발, 경천동지 혹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라는

수사를 뛰어넘는을 당당히 사자후하는 것입니다. 묻혀진 아니,

죽어가는 위대 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살려내어 이 땅에 널리 펴고

싶을 뿐입니다.



남모르게 공부를 이루고자 쏟아낸 피눈물이 샘을 만들고도 남을

정도였답니다.



붓다들의 현신했을 때의 모습 보신 불신은 해탈신이기에 그렇겠

지만 보살의 그것과도 하늘 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납니다. 붓다의

음성 역시 그러합니다. 일거수일투족이 자비롭습니다.

보신의 미간, 눈, 입, 손바닥 등 열군데서 '빛' 을 방사할 때에

는 녹색이나 무색 광명같이 단색을 방광할 때도 있고, 백종 오색광

명을 놓을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억종광명을 방사할

때도 있습니다.



붓다께서 방광하는 빛은 마왕 파순이나 하늘 마는 물론 귀신들

도 모두 무서워하는 대상입니다. 탐진치 삼독이 녹아버린 성자의

마음 빛이기에 악심이나 사악한 기를 물리치고 녹이는 불가사의

한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무량광은 영롱하고 청정하며, 내

외명철합니다.

모든 붓다들이 무량광으로 이루어졌기에, 빛 그 자체이시기에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붓다끼리는 서로 항상 상속되어 있고 그래

서 한 티끌 한 생각이 똑같습니다. 말 그대로 삼세여래일체동

입니다.



그러나 각각 개성이 있고 얼굴, 키, 몸무게도 다르십니다. 그 이

유는 불과를 이룬 후 열반에 들 때, 그 붓다의 거짓 몸속의 네 개

영체가 빛덩어리가 되어 자신의 불신과 계합하게 되는데, 나름대

로의 성격차이가 그대로 불신 속으로 들어가 섞여져 반영되기 때

문입니다.



붓다가 세 몸을 지니신다니 이 어찌 희유하다 아니 하겠습니까!

이것이 정설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한 생각을 놓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염불선


이렇게 한 생각을 놓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큰스님 말씀대로

‘석가모니불’을 찾는 것이다. 염불선이 강력한 이유는 무성하고도 불과 같이치성(熾盛)하게 일어나는 생각들을 ‘석가모니불’명호를 사용해서 녹일 수 있다는데 있다. 고도의 집중 상태에 들어가게 되면 큰스님께서 비유하신 바대로 용광로라는 삼매에 잡념들이 녹아버린다. 집중이 제대로 안 되면 불처럼 치성하게 일어나는 중생심에게 ‘금강반야바라밀’을 외우게 하는 것이다.중생심이 발동하려고 해도 ‘금강반야바라밀’을 중생심에게 먹이면 석가모니불을 보다 뚜렷하게 할 수 있다.



한편 스토아학파(금욕주의학파)의 현자 에픽테토스는 “인간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은 일어나는 일 자체가 아니라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생각이다”라고 하였다. 매우 정확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조용히 생각을 지켜봄으로써 생각이 힘을 잃고 사라지도록 하는 위빠사나선이나 염불선을 통해서 일념삼매에 들어가는 방법 그리고 화두를 들어 오직 화두에만 전심전력하는 화두선 모두가 선 수행법이다.



불교는 여하튼 선을 모르면 안 된다. 선(禪)의 글자 뜻은 하나(單)를 보는 것이다. 그 하나라는 것은 허공처럼 충만하고 충일한 마음이다. 중생심과 대비되는 청정심이 그것이다. 생각을 지켜보는 마음을 볼 수 있다면 그 주시하는 마음을 강화하여 청정심을 이룰 수 있다.



이 청정심을 얻는 것이 견성(見性)이다. 큰스님의 염불선은 위빠사나선이나 화두보다 안정적이고 부작용이 없다. 그러므로 구도자는 항상 큰스님 말씀처럼 ‘행주좌와 어묵동정’ 어느 장소 어느 순간이나, 즉 일체 처, 일체 시에 석가모니불을 억념해야 할 것이다.



사실, 잡념과 망상이 있기 때문에 불교 공부가 어렵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잡념과 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된 생각들, 즉 망상이 없다면 공부감이 없는 것이다. 공부감이 없다면 배움도 없다. 사바세계는 인고의 땅으로서 우리의 본성을 깨우치고 세상의 이치와 우중의 섭리를 배우기 위해 태어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도자는 비록 견성이라는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이 상당한 인고의 세월을 요구한다고 해도 용기를 갖고 정진해야 할 것이다. 공자님 말씀대로 공부를 좋아하는 것보다 즐기는 것이 더 훌륭하다는 점을 상기하고 이 불교 공부가 힘들지만 이왕이면 즐겨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적은 내면에 있다’라는 가장 기초적인 마인드를 잘 숙지하고 항상 내면을 성찰하고 염불선을 생활화하면서 지내야 할 것이다. 물론 내면에서 일어나는 중생심을 너무 과소평가하지는 말아야 하며 항상 진지한 마음과 긍정적 마인드로 염불선에 임해야 할 것이다.



달마 조사는 견성, 즉 깨달음을 위해서 이입사행을 역설했는데 이입사행이란 이입(二入)과 사행(四行)을 합한 말이다. 이입(二入)은 이입(理入)과 행입(行入)을 말하며, 사행은 행입의 내용으로 보원행(報怨行)·수연행(隨緣行)·무소구행(無所求行)·칭법행(稱法行)을 말한다.

여기서 이입(理入)은 경전에 의해 그 근본 정신을 파악하고 일체 중생의 마음이 진성(眞性)임을 알아서 도리와 하나가 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즉 이입사행은 수행의 근본을 설명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행입에 대해서만 거론한다.



행입 중 보원행은 현세의 원망과 증오가 모두 과거에 자신이 지은 업(業)의 대가이므로 인간 본래의 도를 닦는 데에만 전념하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보원행이 바로 전생과 현생에 지은 타인에 대한 원망을 갚는 수행이다. 이것이 수행자에게 가장 큰 문제이며 여기서 수행의 시작이 이루어진다. 남이 나를 원망하건 내가 남을 원망하건 그 원망심을 없애는 것이 보원행(報怨行)이다.



서양에서는 용서(forgiveness)로서 알려져 있다. 타인을 용서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죄업을 사할 수 없다. 즉 보원행을 행하지 않고서는 자신이 전생부터 지어온 악업과 빚을 청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원결을 소멸시키고 원망을 제거해가는 행(行)을 수도(修道)로 삼아야 한다.



수연행은 순리에 따라 도에 합치되도록 하라는 말, 즉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인연을 잘 살펴 삶을 살아가라는 뜻이며 인연에 거부감을 갖거나 지나치게 인연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이다. 한편 무소구행은 구하는 것을 없애서 애착과 집착·탐욕을 일으키지 말라는 말이다. 또 칭법행이란 모든 불법을 항상 공경하고 찬탄하라는 가르침이다. <<법화경>>에도 부처님의 법을 찬탄하는 공덕은 그 어떤 공덕보다도 수승하다고 전하고 있다.



스승에 대한 지극한 공경과 감사 없이는 수행은 불가능하다. 공경과 감사가 무르익을 때 스승의 가르침을 찬탄하고 믿을 수 있으며 그렇게 됨으로써 석가모니부처님에 대한 귀의, 귀명하는 마음이 더욱 강화된다. 사실 죄업이라는 것이 알 수 없는 먼 과거부터 부처님의 가르침을 외면하고 무시하고 심지어 멸시한 죄업이 아닌가 생각한다.



무명(無明)이라고 하여 가장 원천적인 연기(緣起)의 시작은 부처님의 12연기의 처음이자 고통의 근원이다. 이 무명(無明)은 다른 말로 말하면 ‘어두움’이다. 어두움은 공포, 두려움, 불안 등을 말하며 이러한 두려움은 결국 부처님에 대한 믿음의 결여에 있다고 알고 있다.



무시 이래의 헤아릴 수 없는 과거시절부터 불과를 이루지 못한 우리 모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기도 했지만 진실로 받아들여 목숨을 걸고 매진하고 정진하여 완전한 죄업을 다 사하지는 못했다고 본다. 가장 큰 죄는 바로 부처님을 믿지 않고 세속적 욕락(慾樂) 속에서 살아가면서 얻은 두려움과 불안 그리고 집착이 아닐까 한다.


출처 / 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영산불교사상연구소

[현지사 자재 만현 큰스님 2010년도 법문글 모음 - 3]

현지사 자재 만현 큰스님 부산 법문
2010.7.4일(음6.23)
정법,광명 만덕 큰스님 





오늘 법문은 30분 정도 앞당깁니다. 장소는 협소하고, 오시는 분들이 너무 많아 서서 계시는 분들도 많고 해서 30분을 앞당깁니다. 오늘도 저기 일본에서 10명의 우리 신도 분들이 오셨습니다. 우리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분들이기 때문에 동시통역 녹음을 합니다. 오늘 처음 오신 분들 손들어 보세요. 박수로 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스님의 법문은 TV법문이 아닙니다. 오늘은 TV녹화를 하지 않고 이다음에 합니다. 한 달에 한번씩 TV녹화를 합니다. 그렇지만 오늘의 법문도 대단히 중요한 제목을 가지고 법문을 하겠습니다. 잘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대단히 중요한 법문입니다.

나는 스님으로서 수행을 시작한지가 금년이 꼭 50년 됩니다. 내가 내 자신을 추켜세울 수도 없고, 되도록이면 객관에서 말을 하겠습니다. 스님이 되기 전, 그러니까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부터 인생을 깊이 생각하고, 특히 우리 불교에 대해서 굉장히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스님이 되기로 하였는데, 그 스님이 되던 해 내가 들어간 절은 여기 부산입니다. 부산의 당감동 아시죠? 거기에 '선암사'가 있지요? 거기의 스님입니다.

우리 스님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대단히 모범적인 스님이었습니다. 율사였으니까요. ‘석’자 ‘암’자(석암) 율사스님이었습니다. 그 스님은 계율이 청정하고, 또 성철스님과 함께 참선도 많이 하시고, 그리고 변재(辯才)이시고, 사람 잘 꿰뚫어 보시는 스님이신데, 내가 행자생활을 거기서 마치니까 여기 부산진구 소재 부산진경찰서 유치장 법문을 하도록 권유해서 스님이 된 해부터 법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까지 나는 모든 종교, 특히 기독교와 우리 불교가 어떻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막 중이 되어가지고 법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그 당시 통도사 극락암에서 수행하시던 우리 불교계에 유명한 큰 도인스님이신 '경봉스님'을 찾아가 공안(公案,화두)을 받고 화두를 참구했습니다. 그 화두와의 몸부림을 10년 하다가 어느 날 득력을 하면서 게송이 나옵니다. 여러분, 내 책《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권에 간단히 나오지요? 이 화두타파(깨달음, 견성), 이거 대단히 어렵습니다. 지금현재  이 화두타파를 한 분으로 공인된 분이 한 두 사람 되잖아요. 그렇게 득력을 하고 보니까 ‘아하! 내가 스님이 된 그 큰 뜻이 오늘로서 다 이루어진 줄 알았더니 아니구나’ 하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선불교에서는 화두타파가(깨달음이) 끝입니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우리의 본성이 드러나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주본체가 드러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나는 ‘이 깨달음이 결코 붓다의 자리는 아니구나. 부처는 아니구나. 나는 여기서 더 정진을 해야 된다. 그런데 이 선불교는 마음을 벗어나지 못하는 구나.《화엄경》을 봐도, 또 많은 내면세계를 이야기하는 그 서적들을 봐도 이것은 끝이 아니구나.

이것은 결코 불과(佛果)가 아니구나’ 하는 것을 알고 정말로 과감하게 염불로 돌아왔습니다. 염불로 돌아온 거예요. 그때 벌써 선불교의 맹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습니다. 그런지 30년 동안 나는 어떻게 수행을 했느냐? ‘정법을 찾아야 되겠구나. 정법을 찾아야 된다. 뭐가 진리인지, 정말 진리를 설한 종교, 혹은 교단, 혹은 큰스님을 찾아야 된다. 많은 마장(魔障)을 이길 수 있는 그런 능력은 인간에게는 부족하구나. 스승이 아니면 안 된다. 마장(魔障)을 막아주는 스승이 있어야 되고, 공부를 지도해주는 스승이 있어야 되겠구나’ 하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전생의 선근이 있으면 깨달음까지는 갈 수 있습니다. 깨달음까지는 갈 수 있어요. 그러나 그 깨달음도 전생의 큰 선근공덕이 없으면 할 수 없습니다. 그걸 알았습니다.


그리고 소위 창조론, 일신교에서 이야기하는 기독교라든지, 유대교라든지, 회교(마호메트교)라든지, 거기에서 이야기하는 창조론은 아니구나. 이것은 결정코 진리가 아니구나 하는 것을 그때 파악했습니다. 그것은 견성단계에서 알아집니다. 그러나 ‘나는 부처가 되지 않았구나. 부처는 아니구나’ 해가지고 염불로 돌아오면서 ‘나는 진정한 스승을 찾아야 된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여러분, 스승을 찾으면 공부의 반은 이루어진 거예요. 스승 없이 하는 공부는 위험한 것입니다. 그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많이도《화엄경》의 선재동자와 같이 돌아다니면서 스승을 구하고, ‘이 사람이 스승의 자격이 있다’ 싶으면 1년이고 2년이고 매달려서 뚫었습니다. 아니면 돌아서고 돌아서고 하기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광명만덕님을 지금부터 13년(14년)전에 만났습니다. ‘아! 이분은 어쩌면.., 어쩌면 우주적인 보물이구나.’ 그 당시 머리는 깎지 않은 어른이었지만 이분은 대단하구나.



그 많은 목사 ․ 신부가 있지만, 기독교에서 나는 걸출한 인물을 만났습니다. 정말로 걸출한 목사를 만났거든요. 여러분, 이건 정말로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합니다. 그분이 나를 보고 ‘우리 스님은 내가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우리 스님 같은 분은 없습니다. 내가 성철스님을 알고, 경산스님을 알고, 그 사람의 법위를 아는 사람인데 스님을 스승으로(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의 말로 ‘보통사람들이 1000년을 공부할 것을 했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신통도 장하고, 그러니까 영적인 내면세계를 무한히도 팠고, 불교도 잘 알고, 기독교는 물론이고, 다른 모든 종교에도 해박하고, 이분은 미국의 MIT공대를 나온 공학박사입니다. 그러면서 유대경제학을 해서 경제학 박사이고, 물리학 박사인 대단한 분이었습니다. 그 사람과 만나서 1~2년 법을 논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그쪽을 완전히 파악했습니다.



이분은 추종자들이 ‘제2의 예수’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아니다. 그건 아니다.’ 그분은 우리 부처님을 굉장히 숭배합니다. 그러나 ‘예수의 사랑을 보고, 나는 예수가 좋아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하는 사람이지만, 불교를 대단히 좋게 봅니다. ‘지금의 목사들 신부들, 정말로 미안한 말이지만 아니올시다’ 그럽니다. ‘그 많은 스님들이 있지만 아닙니다’라고 했거든요. ‘십리 가서 한 사람씩 발견합니다’하는 말을 해요. 그래도 나는 그 사람을 결별했습니다.



나 이 '만현'은 지난 40~50년동안, ‘정말로 무엇이 정법인가, 무엇이 올바른 길인가, 무엇이 진리의 길인가?’ 에 대해서 30년, 40년을 파고든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도 정사(正邪,옳고 그름을 분별․분간하는)의 안목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내가 왜 이런 말을 전제로 여러분들한테 말씀드리느냐 하면, 우리 영산불교가 창교된지 3~4년 됩니다. 지금까지의 내 책《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Ⅱ》권에 소개는 했지만, 내외(內外)에 선언을 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이냐?



‘광명만덕님은 붓다입니다.’

이것을 오늘 내외에 선언합니다. 여러분, 붓다는 그 법위가 엄청납니다. 깨달음을 넘어서, 보림이 완성되어서, 무아행을 해서(두타행을 해서) 음계를 잘 지키고, 모든 중계를 선지한 후에 보림이 되어서, 이 몸에 대한 착(着)이 떨어져버린 자리가 아라한입니다. 그러니까 깨달음에서 이제 시작하는 거예요. ‘깨달음은 공부의 시작이다’하고 내 책《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권에 제일 먼저 일성(一聲)을 했습니다(먼저 말을 했을 겁니다). 깨달음이 끝이 아닙니다.



모두 그렇게 보는데, 그것은 절대 아니고, 깨닫고서 이제 보림을 잘 해서 탐․진 번뇌의 뿌리를 뽑아 놓고, 이 몸뚱이에 대한(나에 대한) 착(着)이 떨어져버린 그 자리가 아라한입니다. 이제 거기가 아라한이어요. 그렇기 때문에 아라한의 자리에 올라간 성자는 몇 십 년 만에 이 세상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합니다. 아마 내 책에 말해 놓았을 거예요. 그게 맞습니다. 아라한에서 보살이 되는 그 공부는 이제 이타 행으로 들어가야 됩니다. 보살도를 해야 됩니다.



모든 것이 전부 공(空)하다는 것을 알고(이미 착이 떨어져버렸으니까 그렇게 되지요), 대상에 대해서 착(着)하지 말고, 이제 남을 위해서 희생합니다. 남을 위해서 희생하는 거예요. 이게 보살이어요. 그래야 보살과(菩薩果)를 얻습니다. 그런데 자력으로는 안 됩니다. 자력으로는 절대 안 됩니다. 이것도 '자재 만현'이 처음 주장하고 이야기하는 것일 겁니다. 아라한에서 보살이 되는 것은 반드시 부처님의 가피가 있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될 수 없습니다. 그 이유가 다섯 가지 있다고 했지요.



나는 그 목사를 뒤로하고, ‘내가 불과를 증했다’고 하는 두 사람을 만났습니다. ‘내가 부처다’하는 그런 사람을 두 사람 만났어요. 잘 만난 거예요. 한 사람은 우리 고향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서울의 여자입니다. 그 사람들에 대해서 정말로 깊이 연구하고 팠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을 전부 뒤로 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그러한 '만현스님'의 법문을 듣는 거예요.



이 사람(만현스님)처럼 외도(사마외도, 사이비)를 분간할 수 있는 깊은 안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전혀 없습니다. 내가 그렇게 공부해보고, 소위《화엄경》의 선재동자처럼 많은 선지식을 두루두루 찾아서 담론(談論)해보고, 연구해보고, 그들이 나를 친형제처럼 가까이 있으려고 해도 나는 정에 끌리지 않았고, 냉철하게 정사(正邪)를 분간하고 해서 그분들을 멀리했습니다.



다음에 광명 만덕님을 만난 거예요. 내가 쓴《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Ⅱ》권을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깨달음은 공부의 시작이고, 공(空)을 깨치고 공성을 증득했다고 하더라도 저 절대계에 32상을 두지 않으면 붓다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30년, 40년, 50년 동안 내가 공부한 결론입니다. 그런데 이것이《법화경》에 있습니다.《법화경》〈비유품〉에 우리 부처님께서 사리불 존자에게 말씀하신 부분이 있고, 사리불 존자는 그때까지 공(空)을 깨치고 공성을 증득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제 공부가 다 되었다고 생각을 했는데, 부처님께서 “저 절대계에 32상 색신을 두어야 붓다이고, 완전한 멸도이다”라고 하니까 사리불 존자가 당황한 거예요. 그러나 수기를 받으면서 ‘우리 부처님 말씀이 옳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사리불 존자 등 십대제자 내지 십 육성이 공부를 한 거예요. 정진해 들어간 거예요. ‘아! 내가 아직은 불과(佛果)가 아니구나. 부처가 아니구나. 이제 공성을 증득한 정도 가지고 나는 부처라고 생각했는데 아니구나’하는 것을 알았다는 거예요. 여러분, 지금 이 말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지금 세계의 불교에 대해서 자재 만현이 많이도 한탄을 하고 있잖아요. 세계의 불교가 너무너무도 왜소화 되고, 왜곡되고,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어가지고 자기들이 최고라고 합니다. 자기들이 정법이라고 하지요. 그 우물 안에서(우물을) 뛰쳐나올 수 있어야지요.



객관에 서서 봐야지요. 깨달음은 이제 시작입니다. 결코 시작입니다. 내가 항상 이야기 하지만, 깨달음을 궁극의 목표로 알고 있는 지금의 불교는 21세기 지성 시대의 인류를 향도 못합니다. 모든 종교가 다 그 목표입니다. 표현은 다르지만 그 목표예요. 유교도 깨달음을 이야기하고 있고, 도교도 힌두교도 자이나교도 그렇고, 신비주의의 이슬람교도 그렇고, 영지주의의 기독교도 그렇고, 카발라 정도로 가면 유대교도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깨달음을 가지고 이것이 최고의 목표인양 생각하고 수행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뭘 모르는 사람들이어요. 마치《법화경》의 사리불께서 스스로 참회한 것처럼 그 사람들은 참회해야 됩니다. 절대계에 32상을 둔 자기불신(自己佛身)을 얻어야 거기가 이제 진짜 불과(佛果)입니다. 그런데 ‘내가 부처다’하는 그 몇 사람, 또 추종하는 사람들이 ‘이분은 불과(佛果)를 이룬 분이다, 이분은 어떤 부처님의 후신이다’하고 맹신을 하고 있는데 아니었어. ‘아니다’하고 내가 결론을 내린 것은 정말로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니었어요. 여러분, 정사(正邪)를 분간하는 잣대를 스님이 가끔 이야기할 거예요. 스님이 이야기 했을 겁니다.



▸음계를 봐야 됩니다. 그 수행자가(그 도인이, 부처라고 하는 분이) 정말로 깨끗이 살았는가, 지금 현재 깨끗한가, 모르는 사이에 몰래 음행을 하지 않는가, 하는 것을 봐야 됩니다. 이 음계가 잣대올시다. 아셨지요? 잣대입니다. 스님이 아마 비유한 말이 있을 겁니다. 표현이 좀  어색해서 죄송합니다만, 수행자가 음계를 파한다는 것은 청정수 한 컵에다가 똥 한 방울을 떨어뜨리는 것과 같습니다. 청정수 한 컵에다가 똥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먹을 수 있겠습니까? 먹을 수가 없어요. 음계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런데 외도, 사이비의 교주들, 지금까지 우리 인류 문화사에 알고 모르고 간에 출세했던 그 많은 사이비, 외도의 교주들은 거기에 거의 다 걸릴 것입니다. 거기에 거의 다 걸립니다.



▸그 다음에 부처님을 모르면 그건 아닙니다. 부처님을 알아야 됩니다. 부처님이 얼마만큼 거룩하시고 위대하신 어른인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보세요. 부처님한테 말로만 귀의했지, 부처님을 얼마만큼 철저히 따르고 귀의하고 하는 가를 봐야 됩니다. 우리 불교, 지금의 한국불교라든지, 저기 미얀마 태국 스리랑카의 불교 등이 부처님에 대한 믿음이 얼마만큼 되는 줄 아십니까? 우리 영산불교에서 이야기하는 부처님 신앙(믿음)을 따라 올 수 없습니다. 부처님의 위대한 것을 몰라요. 겨우 2600년 전에 이 세상에 오셨던 우리 부처님, 인간 역사 안의 붓다밖에 몰라요. 우리는 그게 아니어요. 절대계에 계신 우리 부처님을 알고 있어요. 그 어마어마한 인격, 지혜, 자비 공덕, 항하사의 신통묘용, 거룩하신 그 상모, 그리고 그 많은 겁을 내려오면서 많은 붓다와 보살을 내신 그 위대함, 우리 현지사에서는 이것을 알아요. 이러지 않으면(이런 것이 없으면) 절대로 정법이 아닙니다.



저기 히말라야 산에 초인들이 많이 살아요. 500살, 1,000살, 2,000년을 산 사람도 있어요. 온갖 신통을 다해요. 나는 그분들을 절대로 붓다가 아니라고 규정을 했어요. 그분들은 붓다가 아니어요. 그분들은 부처님을 숭배하지 않고, 자기가 부처인양 해요. 부처님 세계를 몰라요. 그렇기 때문에 아니라는 것이어요. 또한 절대계에 불신(佛身)이 없어요. 고로 거기는 아니어요. 그리고 사람의 영체(영혼체), 네(4)영혼체를 몰라요. 우리같이 속속들이 몰라요. 우리 영산불교에서 처럼 몰라요.



영혼체를 긍정하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 영산불교가 처음이어요. 힌두교, 자이나교에서 많이 알아요. 많이 알면 알수록 우주의 신비로운 그 비밀을, 우주의 이치를 많이 아는 거예요. 그래서 힌두교를 위대하다고 봐요. 힌두교는 창조론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기독교 등 저 일신교의 창조론하고 질이 달라요. 힌두교는 굉장히 우수한 종교예요.



인간이 육도에 윤회하는 것까지 알았어요. 그래서 그 주체가 영혼체라는 것까지 알았어요. 우리 불교, 부처님 세계에 가면 그것은 상식이어요. 그런데 어떻게 이게 왜곡이 되어가지고 무아설(無我說)이 자리를 잡아버렸어요. 나(我)가 없다고 하는 무아설(無我說), 부처님께서 무아설(無我說)을 말씀하신 것은 그런 의미에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어요.



중생이 죄를(업을) 짓고, 그래서 육도에 윤회하니까 이 고통의 세계에서 건져주시려고 무아(無我)를 말씀하신 거예요. 나(我)가 없으니까 이 몸뚱이에 착(着)하지 말라고. 너, 아무리 봐라. 나(我)라는 것이 있는가. 오온(五蘊, 色受想行識)으로 이루어진 이 몸뚱이, 몸뚱이를 아무리 찾아봐라. 나(我)라는 실체가 있는가. 저 수상행식(受想行識), 정신적인 면을 아무리 찾아봐라.



나(我)라고 하는 것이 있는가. 죽으면 다 흩어져버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현상세계의 모든 것을 가지고(보시고) 말씀하신 거예요. 현상세계에서는 나(我)라는 실체가 없어요. 그러나 실체가 없는 몸뚱이를 부처의 불안(佛眼)으로 보니까 저 몸속에 들어와 있는 본체(주인공)가 있어요. 그것이 영혼체예요. 주인공이 없이는 윤회를 못하는 거예요. 영혼체가 없으면 생겨났다가 죽어버림으로서 끝나버리는 거예요.



여러분, 전번에 스님이 체외수정은 영혼체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말씀을 해가지고 곧바로 지장보살님한테 잘 못했다고 혼났어요. 생각하니까 지장보살님 말씀이 맞아요. 오늘 수정합니다. 복제인간은 영혼체가 안 들어가요. 전번 대전 법회 때 스님이 말씀드렸지요? TV법회는 아니었습니다. 체외수정은 영혼체가 들어갑니다.



지금까지 2500년 불교가 영혼체를 몰랐어요. 무아설(無我說)이라고 하는 것에 걸려가지고 윤회의 주체가 없는 것으로 봐버렸어요. 무아설(無我說), 여러분! 이 무아설(無我說)은 우리 불교의 핵심이 되는 중핵의 사상입니다. 그런데 그 무아설(無我說)이 지금 잘못해석 되어 있다고요. 이게 2500년 내려갔다고요. 그 어떤 스님도 모르니까 무아설(無我說)을 바로잡지 못했다고요. 이건 영혼체를 봐야 압니다. 영혼체를 봐야 알아.



그런데 그 영혼체도 힌두교 정도로는 몰라. 그러니까 그건 아트만 이야기로 끝나버린 거예요. 아트만은 순수하니까 윤회 못해요. 우리같이 1번,2번,3번,4번 영혼체가 갖춰짐으로서 육도에 윤회하고, 지옥 아귀 축생을 윤회하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비아(非我)가 윤회의 주체다’하고 나온 거예요. 부처님 가신 후 처음으로 윤회의 주체는 있다. 힌두교의 말이 맞다. 그러나 힌두교의 아트만 가지고는 윤회를 못해. 잘못 안 거예요.



우리 영산불교에서 이야기하는 비아(非我), 1,2,3,4번이 뭉쳐진 것, 이것이 다겁생으로 내려오면서 업을 지었어. 탐진치의 뿌리가 다 깊이깊이 내려있어. 모든 악과 습의 기가 더덕더덕 붙어 있어요. 그래서 마치 영혼체의 모습이 숯검정처럼(진흙덩이처럼) 되어 버렸어. 그러니까 이것도 나(我)가 아니다 그거예요. 비아(非我), 나(我)가 아니다. 그 비아(非我) 때문에 윤회를 하는 거예요. 윤회의 굴레에서(사슬에서) 사슬을 끊고 벗어나려면 수행을 해서 비아(非我)를 유아(有我)로 바꿔야 돼. 이제 수행에 의해서 업장을 씻고씻고 해가지고 온전한 영체가 드러나야 돼. 순수하고 깨끗한  1번,2번,3번 영체가 드러나야 돼. 그러면 윤회가 안 돼. 이런 이야기를 했을 겁니다.



이것은 5년 전부터 내가 법회에 나가서 말씀을 한 거예요. 영혼체 이야기를 슬쩍슬쩍 했습니다.《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권에도 있어요.《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Ⅱ》권에도 많이 써놨고요. 점점점점 깊이를 내다가 이번에 내가 이 '영혼체 윤회론'을 크게 정비해서 내놓은 거예요. 이건 진리입니다. 이건 진리예요. 사람이 죽더라도 그 영혼체가 빠져나가야 완전히 죽었다고 의사가 판정하는 거예요. 영혼체가 빠져나가야 돼. 시골에 가면 어느 집에서 불나갔다고 하지요. 불나갔다고 하거든. 부부가 아무리 10년, 30년을 살아도 영혼체가 들어오지 않으면 수정할 수가 없어요. 안 되는 거예요. 애기가 들어설 수 없는 거예요. 알지요? 바로 그게 영혼체야.



그런데 무아(無我)가 우리 불교 가르침의 핵심이기 때문에, 이 전제 하에서 100%긍정을 하고, 무아윤회(無我輪廻)를 이야기하다가 보니까 이게 말이 안 돼. 무아윤회(無我輪廻)가 어떻게 됩니까? 윤회의 주체가 없이 어떻게 윤회가 된단 말입니까? 이건 안 되는 것이거든. 그러니까 그 힌두교의 여러 학파의 거장들한테(학자들한테) 집중적으로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런 논전(論戰)에서 대응할 수 없으니까 여러 가지 이론을 부파불교에서 만들어가지고 대응하지만, 인도사람들의 견지에서 보아도 말이 안 돼. 많은 세월을 두고(BC, AD 7,8세기부터 몇 백 년 동안) 그런 논전이 벌어져 인도사람들이 구경해보니까 이건(불교의 이야기가) 말이 안 돼. 처음에는 그것도 모르고 부처님이 워낙 위대하니까 불교로 기울여 왔어.



아쇼카 대왕이 전 인도를 통일하면서 인도는 물론이고 그리스까지 불교화 시켰어요. 그 다음 칸슈카 대왕이 300년~400년 후에 출세해서 더욱 불교화 시켰습니다. 그 불교가 인도에서 완전히 사멸해 버린 거예요. 사멸해버렸어요. 불교의 몸통이자 핵심사상인 무아(無我)가 이제 보니까 말이 안 되거든요. 이건 말이 안 되거든. ‘이게 불교냐!’ 하고 돌아서버린 거예요. 힌두교에 전부 흡수 되어 버렸습니다. 10억 인도 인구에서 0.01%도 안 되었어요. 그것이 요즘 약50년 전에 이 세상을 떠난 천민계급 출신인 '암베드카르(Ambedkar, Bhimrao Ramji 1893.4.14 인도 모우~1956. 12.6뉴델리. 인도의 정치가. 하리잔(불가촉천민계급)의 지도자로 1947~51년 법무장관을 지냈다. 인도 서부의 불가촉천민 계급인 마하르가(家) 출신으로 불교에 귀의함)'에 의해서 조금씩 조금씩 불교인구가 증가하고 있답니다.



암베드카르, 간디와 함께 인도 독립운동을 한 분이어요. 이분이 법무상까지 했는데 천민계급 출신이어요. 그렇지만 미국, 영국에 가서 경제학․법학을 전공하고 학위를 받은 분이에요. 그래서 지금 인도사람들은 간디와 암베드카르의 생일을 국경일로 정한 거예요. 암베드카르는 힌두교에서 불교로 전향했습니다. 왜 전향했겠습니까? 자기는 천민계급이어요. 천민계급은 인도사회에서 사람구실을 못해요. 자기는 천민계급인 슈드라 계급이었거든요. 불교를 보니까 평등을 이야기하거든. 완전히 바꿨어요. 그래서 불교 부흥운동을 한 거예요. 50년 전에 사망했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0.01%의 불교인구가 0.1%, 1%...증가하면서 지금은 7%정도 늘어났습니다. 약700만 명이 불교신자가 되었어.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그 불교가 역시 왜곡된 불교예요.



암베드카르에 의하면, 영혼도 없고, 다음생도 없고, 업보도 없고, 인과도 없다는 둥 이렇게 이야기해요. 이건 마치 오늘날 불교의 현주소 같아요. 앞으로 이런 불교는 안 됩니다. 진리를 모르는데 어떻게 됩니까? 진리를 완전히 깨닫고, 그걸 상식으로 알고 있으면 전법(傳法)을 해야 돼. 그런 불교들은 수명이 얼마 못가. 참 아쉽습니다. 우리 영산불교와 같은 정말로 완벽한 불교가 이 세상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 지금 우리 영산불교에서 출간 된 책이 20여권 나왔잖아요. 열심히 읽고 알아야 되요.



우리 영산불교의 사상을 전면을 할애하여 세 번 광고를 했어요. 큰 면을 세 번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까지 그 누구도 반론을 제기 못합니다. 반론을 제기 못하지요. 학자 아니라 학자 석학이라고 하더라도 반론 제기 못하지요. 2600년 동안 그 어떤 큰스님도 이걸 몰랐는데요. 이유가 뭐냐?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뚫고 본체를 보는 경계가 깨달음의 경계입니다. 깨달음 가지고는 아직 몰라요. 거기서 더 들어가면 적멸의 경계가 있어요. 적멸의 경계, 불보살의 세계가 있어요. 여기까지 가야 지옥도 보고, 영혼체를 확실히 보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도 반론을 제가 못하고 있어요.



우리 광명 만덕님을 그때 찾아가보니까 어마어마하게 공부가 되어가지고 있었어요. 이 남섬부주에 불과(佛果)를 증한 분이 태어나게 되면 반드시 부처님이 오시게 되어 있어요. 오셔서 지도해야 되요. 마장(魔障)을 막아줘야 되는 거예요. 불과(佛果)를 증할 정도에 오를 그 수행자에게는 여러분이 도저히 상상 못 할 마장(魔障)이 오는 거예요. 보살만 될 사람한테도 절대로 보살과를 이룰 수 없는 마장이 와요.



이 마장을 피해서 보살과를 얻으려면 붓다회상을 만나야 되요. 부처님을 만나야 되는 것이어요. 그런데 이분은(광명 만덕님은) 내가 볼 때 부처님을 만났더라고요. 부처님께서 오셔서 지도하고 끌어주더라고요. 그래서 그 부처님이 어떤 분인가에 대해서 내가 굉장히 집중적으로 파고 들어갔습니다. 부처라고 해서 내가 만났던 두 사람, 내 고향의 남자와 서울의 어떤 사람, 그 사람들은 나하고 결별이 되었어요. 이유가 있어요. ‘아! 진짜 부처가 아니다’ 그거예요. 음계에 걸리고, 경전을 소중히 해야 되는데 경전을 소홀히 하고 독송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붓다가 되었다면 모든 부처님(붓다)의 세계에 대해서 잘 알아야 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충분히 들어보면 어딘가 미심쩍었어요. 우리 광명님을 만나니까 완전한 부처님이 오셨어요. 여러분, ‘우리 영산불교가 부처님 교단이다. 우리 광명 만덕님이 붓다이다’ 라고 하고,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건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이야기인거예요. 여러분은 너무너무도 행복한 거예요. 오늘 처음 오신 분들은 아마 스님의 이야기가 와 닿지 않을 것입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시나?’하고 이해가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위해서 40~50년을 투자한 거예요.



무엇이 정법이냐? 모두 다 정법이라고 하는데, 무엇이 정법이냐? 고등학교를 나와서 예배당을 많이 다녔어요. 많은 부음집도 읽어 봤고, 기독교에 가보니까 저들이 최고라고 해. 저거가 최고라고 그래. 또 많은 종파가 있잖아요. 종파마다 자기의 종파가 최고라고 해. 또 종교의 수가 얼마나 많습니까? 나름대로 그 종교에 들어가면 자기들이 최고이고 정법이라고 해요. 여러분, 그러니 나 같은 사람이 있어야지요. 정사(正邪)를 분간하는 이런 선지식이 나와야 되는 거예요.

화두를 참구한지 10년 만에 깨닫고 보니까 많은 것이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완벽하게 정사(正邪)를 분간할 수 있는 경지에는 못 갔어요. 한 30년 동안 많은 선지식을 찾아서 점검을 하고, 그분들의 경지를 잘 보고 해서 상당히 정비할 수 있었어요.



광명 만덕님을 보고 ‘햐! 부처님은 이러한 분이구나’하는 것을 완전히 알 수 있었습니다. 절대세계에 자기 본불이 있어야 되고, 상적광세계에 자기 법신불이 있어야 되고, 어떻게 해서 절대계에 자기불신(본불)이 생기는 지 그 이유, 이건 정말로 깊은 밀장이지만 이런 것을 알아야 되요. 32상을 갖추고 있어야 되고, 그 부처님의 몸뚱이는 빛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빛은 보통 빛이 아니어요. 부처님의 몸은 무량광(상적광, 억종광, 백종오색광)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래서 불과(佛果)를 이루면 영원히 죽지 않는 거예요. 그 무량광이라는 것은 보통의 빛이 아니고 아주 불가사의한 빛이어요. 이 빛은 밝기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밝아.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저 한여름의 이글거리는 햇속, 그 햇속을 눈이 부셔서 볼 수 없잖아요. 그 햇속 보다도 더 밝아. 그러면서 특징이 안과 밖(겉과 속)이 없이 드러나 있어. 겉과 속이 구별 없이 하나라고요. 그걸 내외명철(內外明徹)이라고 해. 아주 묘한 빛이지요. 너무 투명하니까 그래요.



그러면서도 아름답고(예쁘고, 곱고), 영롱하고, 백천만억 가지의 색깔을 지닌 무량광이어요. 희유하지요? 부처님께서 어떤 때에는 단색으로도 내고, 어떤 때에는 백종백만억 가지의 색깔을 함께 내 뿜어요. 각각 그 빛을 놓는 데는 까닭이 있고, 사용처가 있어서 내는 거예요. 어떤 빛은 여러분의 업장을 소멸시키는 빛이 있어요. 업장소멸 부분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부처님의 그 불가사의한 능력인데, 부처님만이 중생의 업장을 소멸해 줄 수 있어요.



이렇게 부처님 교단이 시작되면서 여러분한테 업장을 소멸해 주는 거예요. 이건 겁에 하나 있는 거예요. 그 부처님은 32상의 완벽한 상모로 계시면서(눈 코 입이 다 갖춰져 있으면서) 지혜가 완벽하고, 자비 자체가 되고, 이 세상을 다 살만한 복을(복력을) 지니고 있고(불과를 증하면 다 살 수 있는 복력이 갖춰지게 되어 있고), 그러면서 부처님은 못 할 일이 없어요. 이것을 항하사(항사, 간지스강 모래알 수만큼 많다는 것임)라고 하는데, 부처님은 항사의 신통묘용이 있어요. 어마어마합니다.



부처님은 외도들과는 특별히 다른 큰 힘이 있어요. 전 외도를 당신 혼자 상대해서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어요. 지금의 이 세상 사람들은 이걸 몰라요. 이런 것을 광명 만덕님으로부터 많이도 알았어요.



▸광명 만덕님은 1998년도에 당신 불신(佛身)과 이쪽 영체가 계합이 되어가지고 불과(佛果)를 증했어요.



나는 그 후 2년인 2000년에 불과(佛果)를 증했습니다만, 광명 만덕님은 1998년도에 이미 불신(佛身)을 지니고 있었고, 그 불신(佛身)과 이 영체가(영혼체가) 계합이 되어 있었습니다. 보통사람들 중에서 지옥에 갈 사람들은 영체가 거무튀튀하고 숯검정 같은데, 하늘 갈 사람은 영혼체가 맑습니다. 아라한 정도부터는 달빛처럼 밝아요. 보살은 빛이 나요. 붓다는 이 네(4)개의 영혼체가 각각 분리되어서 활동할 수 있고, 네(4)개의 영혼체가 완벽하게 빛덩어리가 되어 있으며, 정말로 아름다운 상을 지니고 있어요. 부처님께서 이 네(4)개의 영혼체와 자기 불신(佛身)을 계합시키는 때가 불과(佛果)를 증하는 날이어요. 이것을 광명 만덕님은 1998년도에 마쳤어요.

우선 우리 부처님 칭명을 하고 법문을 계속하겠습니다.



나무 영산불멸 학수쌍존 시아본사 구원실성 석가모니불...

천상천하무여불 시방세계역무비 세간소유아진견 일체무유여불자

고아일심귀명정례



▸그때 우리 광명 만덕님이 공부하는 것을 보니까, 식칼를 아주 날카롭게 갈아서 옆에다 놓고 공부하시더라고요. 아주 죽음을 각오하고 공부를 하시는 그 모습을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광명 만덕님은 부처님으로부터 화두를 받고 9일 만에 깨쳤습니다. 나는 10년이 걸렸지만 말입니다. 저 어른은(광명 만덕님은) 물로 목욕하다가 화두를 깨쳤는데, 물을 굉장히 좋아하십니다. 그 즐거움에 홀랑 벗고 춤을 춘 거예요. 화두타파의 즐거움도 대단합니다. 대단합니다. 그때에 읊은 게송이나 붓다가 불과(佛果)를 증해서 읊은 저 대적정삼매송이 붓다 되어 가지고 읊은 송입니다. 대적정삼매를 통과해야 됩니다. 그때에 자기불신이 생기니까요. 그 읊어 놓은 저 게송이나, 지난 15년 동안 공부한 수행일지를 가지고 지금 책을 내려고 하는데 여러분에게 말 못할 밀장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 밀장을 빼고빼고 하려니까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지금 보여줄 수 없어요. 밀장이라서 보여주면 안 되게 되어 있는 부분이 있거든요. 내가 밀장이라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밀장은 공개 못합니다. 그런데 광명 만덕님의 수행일지에는 많은 밀장이 들어있어요. 그래서 이 밀장을 빼자니(빼면) 핵심이 빠져버리고, 그렇다고 밀장을 공개할 수도 없고, 그런 문제로 지금 굉장히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몸부림을 합니다. 그 수행일지가 나오면 정말로 우리 부처님의 일거수 일투족, 저 부처님세계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이것이 정말로 이 세상에 소개가 된다면 놀랄 일입니다. 정말 이 책이 꼭 나왔으면 좋겠는데, 지금 이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내가 그때 우리 광명 만덕님을 만난 이후부터, 내 실력으로 광명 만덕님을 보건데 ‘이분은 가섭존자가 아니냐?’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전생을 좀 알아보시오. 부처님께 여쭤보면 그냥 말씀하실 텐데요’라고 했습니다. 그때 여러 부처님이 계셨거든요. 부처님께 여쭤봐도 “나는 모른다”고 하지. 또 문수보살님께 여쭤봐도 “나도 모른다”고 해. 보현보살님께서 말씀하셨을 겁니다. “자, 봐라”해가지고 그 영산당시 가섭존자의 모습을 쫘~악 보여준 거예요. 그런데 세상에 옷도 다 떨어지고, 머리는 그냥 더벅머리에다가 찌들어가지고 형편없는 모습으로 나오니까 이 양반(광명 만덕님)이 이상하다며 놀랐어요. 그래서 나는 무릎을 치며 ‘가섭이오’그랬지. 그때도 부처님들이 가섭이란 말씀을 안 하신 거예요. 이제 부처님들께 ‘그러면 나는 누구냐?’고 여쭈었어요. 그러니까 지장보살님께서 세 가지로 말씀하신 것이 있어요. 13년 전의 일입니다. “그 스님은 석가족이고, 부처님 동생이고, 부처님 시자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어요. 알겠지요? 나도 그 전에 내 전생을 알았습니다. 내 전생을 알았었는데, 그렇게 말씀하신 것을 며칠 전에 또 들었어요. 저분(광명 만덕님)의 일기를 내가 읽어 볼 수 있습니까?



▸광명 만덕님의 거짓 몸(저 몸뚱이), 저 분도 빛덩어리가 거의 다 된 거예요. 기(氣)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나, 그런 분야의 공부를 많이 한 분들은 보면 알아요. 빛이 나가니까요. 그런데 그런 분이 어디 흔합니까? 세상이 모르지요. 누구도 몰라. 그러니까 일개 여인을 갖다가 붓다라고 하고, 뭐(?)라고 하니까 그냥 비방을 하고 그랬습니다. 몇 년 전에 그랬습니다. 지금도 끊어지지 않아요. 그래서 내가 이런 제목을 가지고 공식석상에서 선언을 해줘야 되겠다. 여러분, 붓다를 비방하면 큰일납니다. 큰일납니다 여러분! 다 나쁜 짓해도 그 짓은 안해야 되는 거예요. 오역죄보다도 더 크니까요. 법을 비방 능멸한다든지, 붓다를 비방 능멸해버리면 큰일 나는 거예요. 앞으로 우리도 그걸 놔둘 것입니다. 그렇게 비방하는 사람이 어떻게 되는가를 보세요. 우리는 안 낫게 해 줄 거예요. 안 낫게 해줍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되는 줄 아세요? 벙어리도 될 거예요. 내가 오늘 공식석상에서 경고해 두는 것입니다.



▸저러한 분이 정말로 신통이 벌어지지 않겠습니까? 전부 벌어지지요. 벌어졌어요. 그러나 몇 년 전에 부처님께서 꽉 막았어요. “절대로 신통을 하지마라. 신통은 나혼자다.” 부처님은 신통을 하십니다. 앞으로 언젠가 사람으로 오셨을 때 부처님은 또 불과(佛果)를 이루셔가지고 필요할 때에는 신통을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 제자들에게 절대로 못하게 하시는 것은 우주의 이법을 거스르기 때문에, 죄를 짓기 때문에 절대로 못하게 하시는 거예요. 너희들 죄를 내가 감당한다(책임진다) 그거예요. 죄를 짓더라도 내가 하지, 너희들이 못한다 그거예요. 신통을 못하게 합니다. 예언, 아는 소리까지 철저히 못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신통은 하지 않아도 이러한 능력이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귀신을 잡는다고 하지요.



▸저분(광명 만덕님)이 귀신을 잡아요. 귀신을 잡는다? 이거 기가 막힌 거예요. 귀신을 완벽하게 보는 사람들이 있는 줄 아십니까? 일부 점쟁이들, 무당들의 일부분이 흑색으로 조금 봅니다. 광명 만덕님은 천연색으로 확실히 본다고요. 그런 분은 없습니다. 지금 유가(儒家), 도가(道家)의 내로라고 하는 학자들, 귀신을 잡는다고 하면 놀랄 거예요. 어디 공자가 귀신을 봤습니까, 맹자가 봤습니까, 주자가 봤습니까? 거기는 아니어요. 그런데 귀신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잡습니다. 잡는 다는 것은 바람처럼 신통이 무섭습니다. 저 귀신을 어떻게 잡습니까? 그렇지만 광명 만덕님은 귀신을 잡습니다.



▸광명 만덕님은 극락을 보고, 지옥을 보고, 못 보는 것이 없어요. 보려고 하면 봐요.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내가 법문에 써먹지.



이제 내가 법왕자이니까 붓다로서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저분(광명 만덕님)은 부처님의 태자이기 때문에 엄청납니다. 보통 부처님들은 불과(佛果)를 증하면 열반에 들어버리게 되어있어요. 그러면 우리는 10년 전에 갔었어야 돼. 그런데 이렇게 가지 않고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104위 신중, 그리고 저분(광명 만덕님)이 출세한 후 4~5개 집단이 귀의를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108위, 109위 신중을 부립니다. 무슨 말인 줄 압니까? 명(命)하고 보고를 받습니다. 이제 저분(광명 만덕님)의 실체를 내가 지금 말을 하고 있는데, 좀 죄송하기도 하지만 여러분들이 이걸 좀 알아야 우리 교단에 대한 위상이라든지, 큰스님에 대해서 저 아무것도 모르는 스님들이 마구 비방을 하니까 그러면 안 된다는 말을 해주는 거예요. 그러면 안 되거든요. 이 말이 많이 퍼지면 좋겠어요. 이게 많이 녹음이 되어서 나가요. 나는 정말로 자신 있는 법문만 하는 거예요. 내가 본 것, 내가 공부한 것, 열 번이고 백번이고 숙고하고 검토한 거예요.



▸저분(광명 만덕님)은 어떠한 부처님들과도 항상 보고 대화할 수 있어요. 이거 기가 막힌 거예요. 역사 이후 그 누가 그랬습니까?

인도의 용수? 차원이 다르지요. 안 되지요. 거기는 영혼체의 깊이 까지는 못 봤으니까요.



▸저분(광명 만덕님)은 정토의 그 많은 보살들, 성중들, 하늘신들, 귀신들, 지옥을 전부 볼 수 있습니다. 삼악도의 중생, 지옥중생을 건질 수 있습니다. 죄를 지어서 가 있는 데, 누가 건집니까?



▸우리의 천도재, 저분(광명 만덕님)이 주관합니다. 저분(광명 만덕님)이 나오시지 않으니까 도대체 저분은 어떻게 해서 붓다까지 되셨는데 이 많은 신도들 앞에 나서지를 않나? 여러 가지의 말이 있을까봐 오늘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저분(광명 만덕님)이 하시는 일이 있어요. 오늘도 부처님들과 함께 여러분의 업장을 씻어 주시는 소임을 맡았어요.



▸이름과 신분을 거명할 수 없지만, 어떤 두 세 사람이 우리를 시해(弑害)하려고까지 했어요. 우리를 죽이려고 온갖 사술을 동원한 사람들이 있었어요. 어떤 한 사람은 사신을 움직였어요. 사신, 뱀신. 뱀도 코브라 같은 무서운 뱀신. 그런 뱀신 수 만 마리를 움직였어요. 그걸 가지고 우리를 죽이도록 명한 거예요. 몇 년 전의 일입니다. 그러나 족탈불급(足脫不及)이지. 붓다이기 때문에 해칠 수 없는 거예요. 붓다의 뒤에는 무수한 붓다들, 보살들, 성중들이 옹호합니다. 또 옹호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네(4)개의 영혼체가 빛덩어리가 되어 있어요. 빛덩어리는 저것들이 100미터(수 백 미터) 안으로 접근을 못 해. 몇 미터 안으로는 접근을 못해. 우리가(광명 만덕님이) 전부 그 사신집단을 명부에 가둬 버린 거예요.



▸저분(광명 만덕님)의 피의 색깔은 핑크색입니다. 여러분의 피는 검붉어요. 그렇지요? 붉다 못해서 검붉은 색이어요. 저분(광명 만덕님)은 핑크색이어. 순수하고 맑으니까 가지고 놀고 싶어.



▸그리고 번갯불이 있잖아요. 번개가 칠 때 일어나는 섬광, 그 섬광의 광도가 얼마나 무서운 줄 아십니까? 번갯불의 광도, 아시죠? 저분(광명 만덕님)은 번갯불이 오면 먹어버려요. 이 말을 집에 가셔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사실이니까. 신통을 못하게 하니까, 자연스럽게 사니까 그렇지, 얼마나 무서운 어른입니까? 보기에는 평범한 여자인데 뭐. 자기도 여자, 나도 여자, 그런데 뭐가 저렇게... 어떻게 공부가 깊어서 불과(佛果)까지 증했다고 하나? 아마 많이도 의심하고, 알고 싶어도 했을 거예요. 오늘 그래서 공개 선언한 거예요.



▸여러분, 한 여름에 해를 보세요. 몇 초나 볼 수 있을 까요? 햇속을 1분, 2분을 볼 수 있나요? 볼 수 없지요. 오래보면 실명됩니다.

저분(광명 만덕님)은 1분, 2분간 해가지고(봐가지고) 해가 저버립니다. 그래도 보통 눈으로 돌아와서 글을 전부 읽는다고요. 여러분, 1분 동안 햇속을 본 후 사람을 보고 글을 보거나 하면 글이 보입니까? 안 보이지. 오래 보면 실명 됩니다. 저분(광명 만덕님)은 해를(햇속을) 먹어버립니다.



▸저분(광명 만덕님)은 모든 사람의 전생을 다 알지요. 볼 수 있지요. ▸수 초, 1,2,3초 안으로 삼매에 들어가 버립니다.

원불교의 교주가 5분 안에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미안한 말입니다만 내가 볼 때, 그분의 선정은 초선정도 안 됩니다. 저분(광명 만덕님)은 초선정에 어린이 때부터 (불과(佛果)를 증하기 이전부터) 들어갔습니다. 우리 부처님도 그랬습니다. 초선정, 경전을 보면 삼매가 여덟 가지 있다고 해. 그래서 아홉 번째가 멸진정이어. 초선정은 초선천에 태어날 수 있는 선정의 힘, 태어날 수 있는 힘, 그게 초선정이어. 초선정에 벌써 들어가셨어.



▸내가 저분(광명 만덕님)을 만났을 때, 저분은 벌써 어떤 깊이의 삼매에 들어갔느냐? 아라한 삼매가 있고, 보살 삼매도 많아요. 그 최고의 부처님 삼매에 거의 들어가더라고.

터널이야기를 했을 겁니다. 내 책에 나오지요. 내가 눈물을 흘렸어. 그 삼매에 들어갔다 나와서 옷이 젖어있었습니다. 터널 이야기 아시죠? 모르는 분이 있을 까봐 다시 들려드립니다. 터널, 그러니까 상하좌우가 몇 백도(℃) 아니 몇 천도(℃) 빛의 터널입니다. 그 안은 불덩어리로 이글거리는데 사람이 뛰어갈 만한 공간만이 있어. 그런데 저 부처님이 여기서 저기 산의 터널을 통과해서 오라고 해. 여기서 어떻게 갑니까? 그러니까 영체가 이 몸에서 나와서 들어가야 되는 거예요. 가는데, 번개보다도 더 빨리 가야 되고, 생각이 한 생각이라도 잡념이 들어오면 실패인 거예요. 안 되는 거요.

두 번째, 코브라가 그렇게 있었어요. 그 사이를 통과해야 되는 거예요.

바위산을 뚫어야 되는 거예요. 여러 삼매가 있었습니다. 그것 하나하나를 전부 통과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내가 너무너무도 감격에 겨워가지고 눈물을 흘린 거예요.



우리 지장보살이나 관세음보살 같은 분들은 무량겁 전에 불과를 증한 붓다이지만, 얼마나 위대한 어른이신 줄 아십니까? 우리 관세음보살님, 62억 항하사 보살들을 보탠 것과 맞먹는다고 했어. 그러면 어느 정도 위대하다는 것을 알겠지요? 62억 정토보살들을 다 합한 것보다도 더 위대하다 그거예요. 이 많은 정토보살들에게 평생 사사(수행승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네 가지 물건. 침구(와구), 의복, 음식, 탕약(湯藥,의약)이다)로 공양을 해도 관세음보살님께 한순간(한번) 경배하고 공경하고 예배하고 공양드리는 것만 못하다고 했어. 이 관세음보살님, 실제로 보면 그렇습니다.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오늘처럼 이렇게 1,000명을 모아 놨다(1,000명의 청중들이 있다)? 관세음보살이 일시에 1,000명의 몸을 나툰 것이 천수천안이어요. 눈이 천 개이고, 손이 천 개가 아니어. 당신의 몸을 1,000개로 화신을 내어가지고 여러분 각각의 머리위에 올라가서 여러분의 업장을 씻어주는 그 어마어마한 광경을 볼 때에 62억 항하사보살들이 그럴 수 있습니까? 못하지요. 약수병으로 물을(감로수를) 정수리에 붓고, 그리고 버들가지로 돌려서 무량광을 쏘아가지고 업장을 벗겨내는(씻어내는) 작업을 하셔요. 그렇기 때문에 관음 ․ 지장 정도는 어마어마한 부처님이셔요.



▸그런데 이분(관음․지장)들이 우리 광명 만덕님을 보고 하시는 말씀이 있어요. 가끔 하셔요. “나는 자네가 부럽네”라고 하셔. 왜냐? 지존이신 우리 교주 불세존의 태자이기 때문입니다. 알겠지요? 우리 석가모니부처님은 지존이십니다. 우리 부처님께서는 그 많은 붓다를 내시고, 보살을 내시고, 성중 아라한을 내신 분이어요. 부처님의 은혜 없이 된 분은 하나도 없어요. 더더구나 붓다는 부처님의 은혜가 99% 작용해야 됩니다. 그래서 붓다들을 부처님의 분신이라고 해. 부처님께서는 붓다들을 “아들아!”하고 불러요. 우리 부처님은 모든 붓다의 붓다예요.



▸우리 광명 만덕님은 그 부처님의 태자이시자 법의 상속자예요. 극무간지옥이나 무간지옥에 가 있는 사람들을 끄집어내려면 지장보살님의 힘 가지고는 안 됩니다. 우리 부처님의 승낙이 있어야 됩니다.



▸우리 부처님께서는 앞으로 언젠가 이 사바세계에 몸 받아 오실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대행자가 광명 만덕님이어요. 대행을 하게 되어있어요. 지금까지는 문수․다보부처님께서 대행을 하셨습니다. 앞으로 오실 때, 나는 시자로 올 거예요. 또 오신다고 했지요.



▸산길을 지나갈 때가 있잖아요. 우리가 지방의 어디를 갔다가 돌아올 때 산을 끼고 오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때 대부분의 산왕대신들이 자기의 휘하 권속을 데리고 마중 나와서 예배를 해요. 알았습니까?



▸당신의 절대계에 있는 저 광명불은 어마어마한 붓다예요. 저 붓다와 언제나 계합할 수 있어요. 당신이니까. 당신 영혼체로 가서 계합할 수도 있고, 그 분이 들어올 수 있고 그래요. 당신이니까 그렇습니다.



▸이 사바에는 하늘마(天魔)나 귀신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속거천리(速去千里, 빨리 멀리 도망가다)라는 말이 있지요? 이 천마나 귀신들이 광명 만덕님을 보면 속거천리(速去千里)해요. 영체가 빛덩어리이기 때문입니다. 두더지가 태양을 보면 어떻게 되지요? 두더지는 저 햇빛을 못 보기 때문에 견디지 못 해요. 그와 같아요. 외도나 천마나 귀신들은 성자의 빛을 제일 무서워해요. 그래서 도망가는 거예요.



▸저분(광명 만덕님)은 사실 모든 것에 통달해 있어요. 불안(佛眼)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일을(토목공사, 건축공사, 나무․묘목 등을 심는 작업 등) 지시하는데도 저분(광명 만덕님)을 따라갈 사람이 없어요. 그 직업분야의 프로(사장)들이 그 안목을 보고 놀라요.



▸저 우리 집(현지사)을 짓고, 토목공사를 하고, 1,000그루 이상의 소나무를 구입해서 심고 한 것은 전부 저분(광명 만덕님)이 간단하게 지도 지휘해요. 저분(광명 만덕님)이 없으면 관계자들이 엉망을 만들어 놔버려. 엉터리 공사를 해놓는 다고요. 두 번 세 번(재탕 삼탕)을 해요. 그러니까 이 건축이나 토목분야에 종사하는 사장들이 그 안목에 놀라요.



▸복둥이 건물도 지금 좋게 해준다고 하는데, 갈수록 예뻐지더라고. 저분(광명 만덕님)이 다 지휘하신다고요.



▸한 가지 일을 하면 거기에 폭 빠져요. 이것은 견성한 사람들은 다 알아요. 선불교에서 견성한 사람들은 이걸 알아요. 이분(광명 만덕님)이 그 경지를 거쳐 간 것은 옛날 옛날 옛날이어. 그렇기 때문에 저분(광명 만덕님)은 한 가지 일에 퐁 빠져버리면 서너 시간도 금방 지나가기 때문에 일을 다 마쳐놓고 이제 몸이 ‘아이고! 죽는다’고 해. 그때는 몰라요.



▸전번에 어떤 사람이 처음으로 산삼을 가지고 왔어요. 최고의 심마니 대장이어요. 그 사람이 그 산삼의 수령을 100년이라고 했는데, 광명 만덕님은 ‘아니다! 60년 몇 개월 되었다. 산지가 어디다’라고 해버리니까 놀라버린 거예요.



구체적인 실례를 생각나는 대로 적어 놓은 거예요. 불과(佛果)를 증하게 되면 물론이거니와 보살과 이상은 석녀가 되어버립니다. 남자도 석남이 됩니다. 이라한 이상은 그럽니다. 자기의 힘으로 가게 돼. 석남석녀가 되어버리는 거예요.



▸그리고 사람을 딱 보고 첫 번째 하는 말은 맞아요. 그러니까 여러분, 첫 번째 무슨 말을 하는가를 들어보시라고요.



▸천도재 때, 저분(광명 만덕님)이 혹시 나오시면 열시왕이 와서 반드시 삼배를 해요. 열시왕은 보살급입니다.



▸또 제석천왕이 가끔 우리 현지사에 큰 선물을 가지고 오시기도 하는데, 그 제석천왕은 상품보살이니까 광명 만덕님께 삼배를 해요. 광명 만덕님은 붓다이시니까 당연히 삼배를 합니다. 거기는(저 세상은) 위계가 엄격해요.



▸마왕 파순이가 그 어느 불과(佛果)를 이룬 붓다한테 경배는 하지 않았을 거예요. 가끔 저분(광명 만덕님)한테 와서 삼배를 해요.



마왕 파순이는 우리 부처님이 몇 번 혼을 냈어요. 그러나 죽일 수가 없어요. 우리 부처님은 자비하시니까 죽이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아요. 안 죽일 줄 압니다... 終




현지사 자재 만현 큰스님 대전 법문
2010. 6. 19. 토(음5.8)

칭명염불 수행법


오늘 처음 영산불교 현지사 법문을 청법하기 위하여 오신 분, 그리고 법문하는 날 이렇게 항상 전국 각지에서 찾아와 주신 우리 착한 단월님들, 사실은 엄청난 복을 받는 절이랍니다. 방금 말씀드린 스님의 말씀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불과(佛果)를 증한 큰스님의 법문을 듣는 공덕은 정말로 무한하답니다. 이 법문을 듣도록 해야지, 방해하거나 그 큰스님의 법문을 듣지 못하도록 한 사람은 큰 과보를 받습니다.



지난 시간에 2회에 걸쳐 각 두 시간을 할애해가지고 ‘유아(有我)와 무아(無我), 유아윤회(有我輪廻)와 무아윤회(無我輪廻), 윤회의 주체’ 등 이것을 제목으로 해서 두 시간을 썼고, 그 다음은 ‘부처님은 절대계에 계신다’ 하는 그 큰 선언을 가지고 두 시간을 썼습니다. 사실은 이 시간 가지고는 턱없이 모자랍니다. 여러분이 법문을 들으셔서 아시겠지만 이 두 가지는 너무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처음 듣는 분이나, 불교를 잘 모르는 분은 그 중요함을 모르지요. 그러나 2000년 동안 불교는 이 두 문제에 대해서 거의 몰랐습니다. 그걸 아셔야 됩니다. 이번에 다시 TV법문이 나간다고 해서 스님이 많은 우리 불자들에게, 가능한 한 전 세계의 불자들이 들었으면 해서 이런 소중한 제목을 가지고 법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불교는 현상세계(상대세계)만 잘 아는 3차원 세계에 사는 우리들에게 유익한 생활법문이 주종을 이루었지요.

그러나 우리 부처님은 과거 현재 미래를 두고 수많은 삼천대천세계를 무대로(배경으로) 해서 법문을 하시는 겁니다. 그 속에 생활법문이 끼어있지요. 그것을 인과의 법문, 혹은 삼론설법이라고 합니다. 지난번에 한 시간으로 해서 부처님의 위대함을 경전과 우리 영산불교에서 깨달아 알고 있는 것을 말씀드렸지만 태부족이었습니다. 남은 것은 다음에 인연 따라서 해드리기로 하고, 오늘은 칭명염불에 대한 법문을 해드리겠습니다. 스님이 쓴《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Ⅱ》권에 칭명염불에 대해서 한 장(章)씩 할애했습니다. 오늘은 그 외의 소식을 알려드립니다. 그러니까 잘 들어봐 주시기 바랍니다. 또 전제할 것이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불교, 그러니까 지금까지 그 많은 나라의 불교, 우리나라만 봐도 많은 종파가 있지요. 역사적으로 볼 때 많은 종파가 생겼다가 없어졌다가 생겼다가 없어졌다가 해왔습니다. 그 많은 종파 모두 다 수행법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선불교(禪佛敎)는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 저기 남방의 태국이나 미얀마 쪽은 위빠사나라 해가지고 지관수행(사념처수행), 그리고 티베트불교는 밀교로서 다라니(진언)를 위주로 하는 삼밀수행이 있습니다. 등등 지금까지 그 어떤 종파의 수행법도 자력입니다. 다만 정토종(염불종)에서는 아미타부처님의 본원력(원력)에 의지해서 칭명을 하지요. 그러나 우리 영산불교와 비교해 볼 때 상당히 다릅니다. 어쨌든 지금까지의 불교는 깨달음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 말도 대단히 중요한 말입니다. 깨달으면 곧 붓다가 된 줄로 압니다. 혹은 깨달아서 보림을 완성하면 붓다가 된 줄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거의 많은 불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산불교에서는 ‘그것은 시작이다’고 주장합니다. 시작입니다. 깨닫는 다는 것은 우주의 본성(본체)을 보는 것입니다. 마음자리를 보는 것입니다. 공(空), 그 본연의 모습을 보는 것을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깨닫는 것은 이제 시작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겁생으로 다겁생으로 살아오면서 지은 업이 있잖아요. 그것이 장이 되어서 업장이 됩니다. 업을 짓는 원인이 있잖아요. 탐진 삼독번뇌라든지, 또 지으면서 쌓인 탁한 기들이 있습니다. 악을 행하고, 그것이 또 습이 되어서 삼업으로 살아오는 도중에 그 많은 양의 탁한 기가 우리의 영혼체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 탁한 기와 탐진 삼독 번뇌의 뿌리인 업장을 털끝만큼도 남김없이 정화하고 진멸해야 거기가 붓다의 자리랍니다. 그래가지고도 안 됩니다. 거기까지 가도 붓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의 우주적인 구원력에 의해서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됩니다. 그러니까 깨달으면 다 되는 줄로 알고 있는데 절대로 그것이 아닙니다. 불행하게도 깨달은 사람들이 ‘이제 나는 궁극에 도달했다. 구경의 목표에 나는 왔구나’해가지고 법상에 올라 붓다(부처)인 양 법을 설하고, 이것을 모르는 눈먼 많은 신도 분들이 여불대접(부처대접)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인연에 빠져서 음계(婬戒)를 파하기도 합니다. 슬픈 일입니다. 내가《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권에 “청정수 한 컵에다가 똥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먹을 수 있겠습니까(이 말은 부처님께서 자주 쓰시는 말씀임). 그래서 깨달음은 이제 시작이오. 음계를 선지해야 됩니다” 하는 말을 대한일보, 현대불교신문 지상을 통해서, 또 책에다가 많이 강조했지요. 그런데 간과(看過)합니다. ‘깨달아버렸는데, 부처가 다 되어버렸는데 계율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 경전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라고 하거든요. 현실은 이렇습니다. ‘깨달은 후에 진짜 공부를 해야 된다. 나(我)없는 수행을 해야 된다. 나 없는 행을 해야 된다. 그래서 두타 행이 제일이니라. 그리해서 나(我)라고 하는 착(着), 이 몸뚱이에 대하여 나(我)라고 하는 착을 떼어버려야 거기가 이제 비로소 아라한이니라.’ 그런데 그 아라한까지 가는 길도 대단히 어렵습니다. 자력으로는 대단히 어려워. 깨달음까지도 가기 어려워. 우리 영산불교 신도 분들은 많은 법문을 들어서 아시겠지만, 오늘 처음 스님이 이 나라 불자를 향해, 세계 불자를 향해서 법문을 하기 때문에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성과(聖果)를 얻는 일은 말할 것도 없고, 깨달음을 얻는 일도 대단히 어렵습니다. 전생 과거생에 많은 수행공덕이 있고, 그리고 복덕과 자비를 쌓은 사람이라면 금생에 곧 깨달을 수도 있지요. 그러나 어렵다고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어디에 있느냐? 반드시 눈 밝은 스승을 만나 그 스승의 죽비아래서 공부를 해야 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우선 끓어오르는 내마(內魔)가 무섭습니다. 안의 마(내마, 번뇌 마),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적어도 성자의 반열에 올라가려면(성과를 얻으려면, 깨달으려면)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됩니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돼. 예를 들겠습니다.

▸자기와의 싸움, 20대 30대의 피가 펄펄 끓는 수도승이 내마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깨달음이 오고 아라한이 되는데, 그 내마 중에서 무서운 마(魔)가 탐심 마(탐심,욕심)입니다. 그 중에서도 무서운 것이 이 몸에 대한 애착, 정애(갈애, 사랑, 이성)에 대한 욕심(色心)이 무섭습니다. 여러분, 스님말씀을 다 긍정할 것입니다. 어떠한 색의 경계를 당해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아야 됩니다. 그래야 이긴 거예요. 그렇잖습니까? 그러나 백이면 구십아홉, 백하나는 거기에(그 경계에) 집니다. 스님 말씀에 동의하지요?

▸그 다음에 진심(嗔心), 성내는 경계를 당해서(화가 치밀어 오르는 경계를 당해서) 어떻게든지 품위를 지켜야 됩니다. 그러니까 그 경계를 당해서 그 번뇌마하고도 이겨야 돼. 이거 인욕 한다는 것은 어려운 거예요. 여러분, 쉽습디까? 어려운 거요. 저 사람이 공연히 나를 헐뜯고 사람 많은 데서 나의 자존심을 뭉개버리는데 이거 참을 수가 없지. 참고 있다는 것은 벌써 사람이 아니어. 성자이지. 안 그렇습니까? 그거 어려운 거예요.

▸그 다음, 이 몸뚱이에 대한 애착인데요. 스님이 책에도 써놨지만, 여자 분들이 가장 싫어하는 구렁이 독사, 이 긴 구렁이 독사가 공부할 때 방에 기어들어와 봐요. 상이잖습니까. 여기서 움직이지 않는 다는 것은 거짓말이어요. 안 그렇습니까? 이 공포로부터의 자유로움, 이거 어려운 거예요. 등등 안의 내마가 무섭습니다.

그래서 이 내마,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되는 거예요. 세상에서 말하는 자기와의 싸움은 스님이 지금 이야기하는 본질적인 내마와 틀립니다. 안 그렇습니까? 이 내마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되는 거예요. 깨달음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러한 내마가 치성(熾盛)하게 올라옵니다. 공부 중에 이런 경계가 옵니다. 이것을 이겨야 되요. 초연해야 되는데 그 누가 그러냐고요. 만약에 색심(色心), 색마(色魔)정도가 들어온다고 하면  이건 못 참고 하산하는 거요. 그래서 나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됩니다.



이제 깨달았다고 합시다. 깨달았다고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거예요. 왜냐? 다겁생으로 내려오면서 지은 업장이, 탐․진․치의 뿌리가 악과 습을 행함으로서(저지름으로서) 쌓인 그 탁한 기가 태산만 하다는 거예요. 범부들은 이 업장이 집체덩어리만 하다는 거예요. 이것이 소진되어야 됩니다. 그래야 이 몸에서 착이 떨어집니다. 그런데 그게 자력으로 안 된다는 것을 나는 확실히 압니다. 그래서 우리 영산불교 현지사에서는 타력수행인 칭명염불을 내놨습니다. 이것은 정말로 미증유한 공부법입니다. 이 칭명염불 수행법은 미증유한 공부법 올시다. 이것은 무아속 절대계에 그 어마어마한 능력, 자비와 지혜와 복덕 자체이시고, 우주적인 능력을 구유하신(능력 자체이신) 부처님, 벌써 우주와 계합을 해버렸기 때문에 법신을 둔 우주의 주인입니다. 부처님이 진짜 하나님인 거예요. 못 하실 일이 없어요. 그러한 분의 그 자비 능력을 왜 청하지 않느냐 말입니다. 지금까지는 그러한 사실을 몰랐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본체계(적멸계)를 몰랐습니다. 학자들이 어떻게 본체계를 압니까? 이 현상계만 알지요. 뚫지를 못했어. 뚫지를 못해가지고 이야기는 본체계 이야기를 하지만 적멸계의 소식은 깜깜 어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행법이 전부 자력수행법입니다. 자력수행으로는 내마도 이기기 어렵습니다. 어떤 절대자의 그 가피가 있어야 이깁니다. 그런데 깨달은 이후는 또 뭐가 있느냐? 깨달음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외마(外魔)가 달려듭니다. 여러분, 경전에서나 과거 많은 선지식들이 외마를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외마는 이야기하지 않았어. 이유가 있지요. 무아(無我)인데, 윤회의 주체가 반드시 있어야 윤회를 하는 거예요. 본체가 있어야 이 거짓 몸뚱이가 윤회를 하면서 생사를 반복하는 거예요. 이것은 상식인 거예요. 그런데 무아(無我)라는 그 뜻에 단순하게(순진하게) 집착해가지고 이것을 간과했어요. 절대계(본체계)를 모르고 현상세계만 알다가 보니까 2000년 동안 그렇게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저기 무아속 절대계에 계신 저 부처님, 여러분들이 칭명하면 너무너무도 반가이 여기시며(반가워하시며) 오시는 저 부처님을 몰랐어. 어머니를 잃어버린 아이가 어머니를 찾으며 운단 말이어요. 달려오지 않을 어머니가 있습니까? 부처님의 자비는 더해요. 그런데 거부했어요. 부처님 없다고 해요. 이건 정말 무서운 과보인 거예요. 그걸 알았습니다. 그건 눈 먼 중생을 오도하는 큰 망어인 거예요. 지금까지 ‘심즉시불, 즉 마음이 부처다’하고 이렇게 교육을 해왔어요. 우리나라는 이 교육이 1300년 되어요. 그래서 영산불교에서 출간한 책이 지금 20권 나왔는데 모두 다 어마어마한 책입니다. 이번에 나온 이 소책자를 여러분에게 한 권씩 드릴 거예요. 간단하지만 핵 폭발력이 있는, 핵이 문제가 아니라 그 이상이 되는 책입니다. 그냥 나눠드리겠습니다.



칭명염불(稱名念佛), 우리 부처님 성호를 구창하라 그거예요.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을 하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영산불교에서 말하는 칭명염불(稱名念佛)입니다. 이 공부를 해라 그거예요. 이 공부밖에 없더라 그거예요. 부처님께서 이 공부를 권하시고, 삼천대천세계의 제불세존께서 권하시더라 그거예요. 그러면 이 공부를 하면 뭐가 좋으냐? 뭐가 좋으냐? 이제 생활법문으로 들어갈게요. 뭐가 좋으냐?

▸업장이 씻겨집니다. 우리 부처님 교단에 와서 스님이 하라는 대로 여러분들이 수행을 하면 업장이 소멸되지요. 소멸되지요. 태산같은 업장이 하나 둘씩 떨어져나가지요. 업장이 소멸 되는 것, 사실 이것이 수행의 목표입니다. 그러면 그 업장은 어디에 달라붙어 있느냐? 지금까지의 불교는 대답할 수 없지요. 윤회의 주체인 영혼체에 달라붙어 있습니다. 우리가 신․구․의(身口意)로 지은 모든 업은 영혼체로 흘러들어갑니다. 유식에서는 아뢰야식이라고하지요. 아뢰야식을 지니고 있는 몸뚱이, 수상행식 혹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오온(五蘊)으로 이루어진 몸뚱이, 아뢰야식을 지니고 있는 몸뚱이라야 돼. 그것이 윤회의 주체입니다. 식(識)은 윤회의 주체가 될 수 없어요. 전번에도 스님이 말씀드렸지만, 식(識)이 윤회의 주체다? 여러분, ‘식(識)이 윤회의 주체다’라는 것이 말이 됩니까, 안 됩니까? 극락왕생 하소서! 한다고요. 식(識)이 극락왕생 했다고 합시다. 식(識)을 주장한다고 가정하면요. 식(識)은 이 몸뚱이를 떠나서 있을 수 없어. 이 몸뚱이, 눈이 있고 귀가 있고 코가 있고 몸뚱이가 있어야 저 극락세계의 장엄하고 장엄한 그 기막힌 즐거운 극락을 누릴 수 있는 거예요. ‘하!~ 좋다’고 하지. 눈도 없는데 누가 ‘아!~ 좋다’고 합니까? 식(識)이 좋다고 합니까? 식(識)은 몸뚱이를 떠나서 있을 수 없어요.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 이것이 분별하는 거예요. 이놈이 대상을 보고 분별합니다. 그래서 식(識)이 만들어지고, 식(識)이 계속 활동을 하는 거예요. 식(識)하나만 가지고는 안 돼. 이것은 형상도 없고, 관념적인 거예요.

업장이 떨어져 나간다고 했습니다. 중생의 영혼체의 모습은 이미 다겁생으로 내려오면서 업을 지어가지고 그 업이 더덕더덕 붙어있어서 숯검정 같이, 혹은 진흙덩이가 되어가지고 사람도 아니고, 눈도 코도 없으니까 비아(非我)입니다. 나(我)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나(我)가 아니다. 업을 다 씻고 씻고 씻으면 이제 나(我)가 드러난다 그거예요. 비아(非我)이기 때문에 윤회의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천상을 돌아다니지만, 순수하게 다 씻어버리면 나(我)가 드러나지 않겠습니까? 드러난단 말이에요. 그 드러난 것이 1,2,3번 영체예요. 이미 그렇게 드러나 버리면 그것은 윤회 밖 해탈세계로 갑니다. 그것은 이제 아(我)예요. 아(我). 그것이 이제 더 수행을 하고, 더 선근공덕을 쌓고, 보살행을 하게 되면 정토에 가는 거예요. 정토에 가면 32상의 그 거룩한 몸과 그 아름다운 옷을 입고 다니신단 말이에요. 삼명육통을 자재하는 거예요.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영원히 산단 말이에요. 거기는 삼계를 완전히 탈출한 곳이고, 항상 극락을 수용하는 곳이기에 우리는 거기를 가야 되는데, 거기는 타력이 아니면 갈 수가 없습니다. 자력의 한계는 아라한이고, 아라한을 넘어선 보살은 부처님의 가피가 아니면 절대로 갈 수가 없어요. 갈 수 없는 이유가 다섯 가지 있습니다. 그냥 갈 수 없다고 스님이 단언을 해버리면 의아해 할 테니까 말씀드리지요.

①업장이 소멸 되어야 돼. 업장 중에서도 사중죄(四重罪)가 소멸 되어야 돼. 다겁생으로 내려오면서 지은 업장이 태산 같습니다. 우리 부처님께서 붓다를 만드시는 과정을 스님은 압니다. 구간 구간 업장을 소멸해줍니다. 그러니까 극락세계 27품으로 올라가려면 이 정도의 사중죄는 소멸해줘야 돼. 문수보살님의 가피가 있어가지고 사중죄를 소멸 받아야 돼. 자력으로는 사중죄를 소멸할 수가 없어. 절대로 소멸할 수가 없어.



지난 음력 5월6일(2010.6.17.목) 여기 대전분원에서 관세음보살님께 공양을 올린 적이 있었지요. 그때 우리 단월님들 150여명이 오셨지요. 우리 관세음보살님께서 천수천안을 나투어가지고 참석하신 개개인의 업장을 많이도 씻어 주셨습니다. 여러분들이 미전에 가보면 천수천안도 팔이 천개고, 눈을 천개로 만들어 놓았는데 그러면 관세음보살님이 괴물이게요. 그것이 아닙니다. 손이 천개이고, 눈이 천개와 같은 그런 사람이 모였다고 하면 그 지혜와 능력이 어떻겠습니까? 그건 우리 관세음보살님의 능력을 그렇게 상징해 주는 것이지 실제로 관세음보살님은 그렇지 않아. 32상을 완전히 갖추시고, 너무너무도 거룩하다 못해서, 부처님은 어쩐다고요? 부처님은 빛으로 이루어진 32상을 갖춘 눈  코 귀가 달려야 돼. 몸이 32상의 거룩한 몸을 지녀야 돼. 중생의 업장을 씻어주고, 법문을 해주고, 제자들의 외마를 막아주고, 삼매에 이끌어 주고 하지. 저 법신불은 비인격이어요. 밀교에서는 대일여래의 다라니에 의해서 위신력을 받아가지고, 대일여래가 갖추고 있는 불덕을 갖춤으로서 즉신성불을 할 수 있다고 삼밀수행을 하는데 그건 아니야. 절대 안 돼. 그 대일여래는 법신불이어. 비로자나불을 대일여래라고 해. 우리 부처님의 진신(진불)입니다. 그 법신불은 비인격입니다. 인격이면서도 비인격이어. 그건 눈도 없고, 코도 없고, 입도 없고, 생각도 없고, 판단도 없어. 다만 빛으로 삼천대천세계를 비추고 있을 뿐이어. 그 법신이 인격화 되려면 반드시 당신의 보신이 들어가야 돼. 심의식을 가지고 있는 보신부처님(당신 부처님, 佛身)이 들어가야 돼. 그리함으로서 대일여래(비로자나부처님)의 위신력(가피, 힘)을 발휘할 수가 있는 거예요. 그런데 대일여래의 다라니가 있습니다. ‘다라니를 많이 읽음으로 해서 저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고, 삼밀수행을 하다가 보면 즉신성불을 할 수 있다. 금생에 불과를 이룰 수 있다’고 하는데 그건 아니어. 오늘 그 시간이 아니기 때문에 짚고만 넘어갑니다. 어떻게 태산같은 업장 투성이의 중생이 대일여래의 다라니를 하고, 삼밀을 (삼밀이라는 것은 입으로, 생각으로, 말로 부처님다워지는 수행을 말함)한다고 해서 즉신성불을 합니까? 그 태산같은 업장이 붙어있는데 말입니다. 거기서 한 소식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깨달은 수준이지요. 절대 성불할 수 없어. 즉신성불할 수 없어. 성불이라는 것은 요가에서 말하는 것처럼 2, 3대아승지겁이 걸린다는 말이 맞아.



지금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칭명염불을 하면 뭐가 좋으냐? 업장이 벗겨진다. 업장이 소멸된다. 여러분, 그러면 다 된 거예요. 다 되는 거예요.

지난 음력 5월6일(2010.6.17.목)대전분원에서 관세음보살님께 공양을 올릴 때 관음부처님께서 천수천안을 나투신 이야기를 해드릴게요. 그때 참석하신 150여명의 우리 단월님들 개개인의 머리위에 한 관세음보살님(한 부처님)이 천 분의 화신으로 나투어서 업장을 씻어주는 것이 있었어요. 그날 온 사람은 정말로 큰 복을 받은 거예요. 어마어마한 복을 받은 거요. 또 업장을 씻어주는데 어떤 사람은 죽어서 구렁이 지옥을 가야 되고, 축생이 되면 구렁이가 되어야 될 사람인데 그 구렁이를 빼어서 소각시켜준 사람도 있고, 정신이상이 될 사람이 부처님의 가피력에 의해서 본래상태로 돌아온 일이 있었습니다. 2, 3일 전에요.

이 붓다회상, 우리가 이 말을 공개할 수가 없기 때문에 가끔씩 공개를 하잖아요. 불과(佛果)를 이룬 분은 도대체 하루 종일 무엇을 하는가? 가끔 이야기를 하는데 그것은 밀장이기도 하고, 가끔 말을 하지 않을 수도 없고, 그래서 하긴 하는데... 이런 말도 했나요? 우리 광명만덕님이 태자이잖아요. 부처님으로부터 법의 상속을 이어받은 분이잖아요. 가령 스님이랑 저기 부산을 가게 된다고 하면, 이 차 밖의 좌우앞뒤로 금강역사를 비롯한 성중이 수천이 갈 겁니다. 요즘은 배가 더 불어났습니다. 위호(衛護)합니다. 우리가 또 어디를 간다? 부산분원이라든지, 대전분원 외에 어디를 가는 경우가 있잖아요? 어제도 모처를 다녀왔는데, 어디를 다녀온다고 하면 즉각 선발대가 갑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는 코스와 목적지를 삼엄하게 경계하고 청소합니다. 청소라는 것은 이 사바세계는 나쁜 기의 덩어리이니까 이것을 치우고, 또 군데군데 천마라든지 못된 마가 있거든요. 그 선발대가 나타나면 백리 천리 도망가니까 그런 영적인 것을 전부 깨끗이 정리해 놓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잖아요. 그러면 그 차를 앞뒤로 삼엄하게 경호한다고요. 경호, 대통령이 어디를 나가면 그렇게 하잖아요. 그것하고 비교가 안 되지만, 어쨌든 그러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염원은 그렇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포교를 해서 저 지옥에 갈 사람을 지옥 아귀 축생의 보를 접고 하늘에 태어나게 해주려고 하는 등 한 사람이라도 더 건지려고 합니다. 하늘에서 온 사람한테는 한 사람이라도 더 성중 아라한 만들도록 하는 그런 염원밖에 없습니다. 이 붓다의 교단 이야기를 하면 안 믿어줘요. 미쳤다고 하지요. 안 믿어줍니다. 몇 천 년, 몇 겁 동안을 그렇게 살아왔고, 이 상대세계에서만 살아왔는데 저 먼 이야기를 하면 들어주지를 않아. 믿지를 않아. 그렇기 때문에 말할 수도 없고, 부처님께서는 그 당시에는 사실 그 사람 그 사람을 상대해서 무슨 사람 만드는 작업, 나쁜 죄를 짓지 못하도록 말씀을 하시고(착하게 살도록 하시고), 이제 하늘이나 이런데서 온 사람은 윤회를 벗어나도록 가르치십니다. 그러니까《아함경》을 보면 아라한이 되는 공부가 있잖아요. 아라한이 되는 공부를 가르치는 거예요. 그러지 보살 ․ 붓다의 이야기는 상수제자들한테만 해주었지 그 외에는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상수제자들이 기록한 것이《법화경》이라든지《화엄경》이라든지《열반경》이라든지《반야경》의 원본이 되는 것이지요. 그 다음에 붓다가 와가지고 학승을 만나서 해놓은 것이 오늘날의 대승불교 교전입니다. 요즘 대승불교학자들은 그것을 모르고 ‘불교학자가 삼매에 들어갔다 나와서 쓴 것이다’라고 하는데, 어떻게 학자가 삼매에 듭니까? 삼매도 백천삼매입니다. 그러니까 2하늘, 1하늘도 선정에 듭니다. 성중하늘이 3하늘까지 있잖아요. 그 성중도 드는 삼매가 있고, 더 높은 아라한 삼매가 있고, 더 깊은 보살삼매가 있고, 정말로 완벽히 깊은 붓다가 드는 대적정삼매가 있잖아요. 적어도 상품보살이 드는 삼매에 들고 와야 경을 쓸 수도 있고, 경을 보는데, 어떻게 저《화엄경》《법화경》《열반경》을 학자가 썼다는 말입니까? 그건 말이 안 되는 거예요.



칭명염불의 공덕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다가 지금 다른 말씀을 해드리고 있네요. 우선 부처님(불과를 이룬 성자)이 어디를 가면 어떻다하는 한 면만 말씀을 해드렸는데, 우리 광명만덕님이 노래한 것을 오늘 소개해드립니다. 무아(無我)라든지 공(空)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세상 모든 것이 텅 비고 고요한데

(여러분들은 그렇게 안 보지요. 텅 비고 고요하다고 생각합니까?)

진실한 것 없거늘 이 몸으로 인하여 매달린다네.

(이 몸뚱이 때문에 집착을 하지요)

이 몸뚱이 실체 없어 물거품 같은데 나(我)라는 것이 어디 있는 가

(여기까지만 말해버리면 이제 무아이니까 또 그냥 큰일 나. 이 무아에 집착하면 큰일 나는데, 쭈~욱 들어보세요)

진실로 참된 것이 없거늘

(이 세상은 그런다 그거요)

환영과 환상에 쫓아다닌다.

오온이 덧없는 것임을 알아,

애욕을 떨치고 부처님 품안으로 돌아왔다네.

많은 것이 나를 부르며 쫓아오지만

(이것은 사랑하는 경계를 이야기해요)

진실한 마음 오직 하나, 부처님 찾아 염불하며 깊은 삼매 든다네.

세세생생 당신 찾아 앞만 바라보며 결국에는 붓다 되었네.

감사하는 마음 헤아리기 어려워 나도 같이 부처님따라 대자대비 바르게 행할 것이네.





그 다음 한 달 전엔가 문수보살님께서 하신 말씀을 여러분에게 소개해드립니다.



삼계의 붓다님 생각을 하면 하루 시간이 모자란다.

(이것은 문수보살님 말씀이 아닙니다)

고마움과 감사의 은혜 갚을 길이 없다.

있다면 부처님 가르침에 순종하며 진실하게 말하고, 성실하게 실천하는 것이다. 문수보살님 말씀이다.

(말씀하신 것을 이제 요약해서 적는 것입니다)

중생은 따지는 못된 습관이 있다.

너다 나다 분별심 일으켜 고통 속에 살며, 모든 잘못은 내가 아니라 상대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버리지 못하면 항상 슬픔과 괴로움 속에 산다고 하셨다. 분별심을 버리지 못하면 근심걱정 괴로움은 언제나 함께 동반된다 하시며 나(我)라는 생각을 버려라 하셨다.

(이것은 무아(無我)의 참뜻이어)

주옥같은 말이다.

어느 성자가 이토록 진실한 말씀으로 가르쳐 주시겠는가.



이제 칭명염불을 하면 무엇이 좋은가? 공부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공부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그 동안에 스님이 많은 법문을 했고, 또 내 책《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Ⅱ》권에 쓰여 있습니다. 오늘은 칭명염불을 더 부연해서 말씀드립니다.

▸칭명염불은 하루에 한30분에서 1시간 하라고 했습니다. 나머지 시간도 행주좌와, 그러니까 걸어 다닐 때나, 앉아 있을 때나, 누워서 잠잘 때나, 작업할 때나, 친구들과 대화할 때도 칭명염불을 해라 그럽니다. 여러분,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항상 석가모니불을 염(念)해라 그거예요. 한30분으로 하는 것, 그건 정식으로 하는 것이지요.

▸석가모니불을 칭명하기 전에《금강경》을 반드시 읽어라. 대승경전 중에서는《금강경》이 정말로 불교의 진수이니까요. 나를 떼어버려라, 나라고 하는 생각을 버려버려라 하는 가르침이기 때문에 이건 불교예요. 그렇기 때문에《금강경》을 반드시 한번 읽어라.

▸그리고 부처님 다라니를 최소한 다섯 번 이상해라.

▸그 다음에 벽을 향해 눈높이에 점을 하나 찍어서(마음의 점을 찍어서) 그 점 하나에다가 두 눈을 딱 고정시켜버려라.

▸눈을 뜨고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을 하되 30분을 하든, 1시간을 하든 해가면 눈물 콧물이 흐를 것이다. 닦지도 마라. 거기에 연연하지 마라. 계속해가라.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안으로는 '금강반야바라밀'을 해라. 입으로는 석가모니불을 찾고, 안으로는 금강반야바라밀을 해라. 동시에 해라. 이렇게 하도록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공부인 거예요. 다른 염불은 그것이 없어. 안 그렇습니까? 그저 ‘나무아미타불, 혹은 관세음보살, 혹은 지장보살’할 뿐이지 경전을 읽으라고 하는 가르침이 없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반드시 칭명염불에는 그 붓다님의 경전을 읽지 않으면 50점 밖에 안 준다” 그럽니다. 경전 읽고 다라니를 해야 플러스(+)50점을 준다 그거예요. 아셨지요?

▸두 번째 중요한 것은 안으로, 영혼체로 하여금(자기의 진짜 자기로 하여금) 금강반야바라밀을 동시에 하도록 해라.



이 공부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공부인 것입니다. 여러분, 어렵지요? 그런데 된 분들이 우리 현지사신도들 중에 두 자리 숫자가 된다는 것을 압니다. 되는 분이 있지요? 예~ 그 봐요. 이렇게 해가면 업장이 씻어지고, 지혜가 증장이 되고, 업장이 씻어지고 소멸되면 세간의 소원이 다 이루어집니다. 이루어지지 않을 수 없어요. 여러분, 업장이 벗겨지면 새롭게 태어나는 거예요. 업장이 더덕더덕 붙어 있으니까 막히는 거예요. 지난번 관세음보살님 공부할 때도 쇠사슬에 묶여 있는 사람을 끊어 주었고, 철판으로 덮어 씌어져 있는 사람도 끊어줬어. 이건 자력으로는 안 되는 거예요. 자기의 영체철판이 덮어씌워져 있으면 그 사람은 얼마 못가서 식물인간이 되며, 또 쇠사슬로 감겨져 있으면 그 사람은 얼마 못가서 중풍이 옵니다. 그래서 이 쇠사슬을 끊어줘야 되는데 자력으로 하겠습니까? 불가능한 거예요. 그래서 타력, 자력을 기반으로 한 타력수행인 칭명염불 수행법을 여러분에게 그렇게 권합니다. 이 공부법이 초유의 공부법이고, 미증유의 공부법입니다. 어떤 공부가 업장이 소멸되는 공부가 있습니까? 일부 씻겨 지지요. 소멸은 안 됩니다. 또한 절대로 악도에 나지 않습니다 여러분.《금강경》읽고, 우리 부처님 성호를 10년, 20년 공부했는데 어떻게 지옥 아귀 축생에 갑니까? 거기는 가지 않습니다. 죽을 때 똥오줌 안 누고, 늙어서 치매에 걸리지 않습니다. 이거 얼마나 좋습니까? 건강에도 좋고, 스트레스도 풀리고요. 선(禪)을 하면 건강에 좋고, 스트레스가 풀린다며 서구 사람들이 달려든다는데, 우리는 거기에다가 더해서(플러스) 업장이 씻어지고, 소멸이 되고, 악도에 나지 않고, 늙어서 치매 안 오고, 늙어서 똥오줌 안 누고, 죽을 때 바람같이 가는데, 칭명염불을 하지 않을 사람이 있습니까? 이것이 사실인데요. 이거 오늘 처음 여러분한테 이 TV를 통해서 우리 불자님들한테, 이 나라 불자님들한테 스님이 말씀드리는 거예요. 진심입니다. 가령, 칭명염불을 하는데 전쟁이 났다? 사람이 죽을 무서운 전염병이 돈다? 그 사람은 부처님의 가피로 사는 거예요. 그 수많은 붓다님들은 부처님의 분신들이어요(아들들이어요). 그 붓다님들 밑으로는 수많은 정토보살이 있어요. 정토보살 뒤에는 금강역사나 화엄성중이 버티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부처님의 뜻에 의해서 움직입니다. 그 사람이 칭명염불을 간절히 해서 사람이 되어가지고, 당신 공부를 참 잘하는데 도와주지 않습니까? 1,000% 도와줍니다. 삼재팔난 비켜가고, 속 썩이는 남편 혹은 속 썩이는 마누라의 마음을 고칩니다. 마음을 돌릴 수 있는 분은 부처님 밖에 없어. 마음을 돌리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로 안 돼. 여러분, 됩디까? 절대 안 돼. 칭명염불을 해서 할 수가 있어. 그래도 안 되면 우리 교단에 오라고요. 부처님께 공양 올리면 돼.



칭명염불 공부를 하는데 예비수행이 있습니다.

▸참회해야 됩니다. 과거생, 지난날의 잘못을 정말 참회해야 됩니다.

▸무간업을 지으면 안 됩니다. 무간지옥에 떨어질 업을 짓지 마라.

▸수행승들아! 사중죄를 짓지 마라. 여러분, 십 악업을 짓지 마라. 그리고 삼귀 오계 십선은 최소한 지켜라.

▸부모님 조상님들은 알고 보면 다 전생의 내 남편이요, 어머니요, 아들이니까 이 부모 조상을 위해서 효를 해라. 영혼을 구제하는 것이 최고의 효이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천도재이지요. 부처님 회상에 와서 천도재를 해라. 부처님 회상이 아니면 그 천도재는 아니다. 이 말만 합니다.

▸힘닿는 대로 불쌍한 이웃을 걱정해 주고 도와 줘라.

▸부처님 교단에, 부처님께 선근공덕 지어라. 이것이 핵입니다. 부처님교단에, 부처님께 선근공덕을 크게 지으면 곧바로 보살까지 뛰어 갈 수가 있어요. 이 자리에서 말씀드립니다.

자력으로는 견성, 도를 깨칠 수 있어요. 깨달음까지는 와. 그것도 어렵지만 옵니다. 어쨌든 자력불교에서 거둘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잖아요. 깨닫는 다는 것, 도를 통한다는 것, 영격이 높아진다는 것 등 말입니다. 그 외로 칭명염불은 이러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칭명염불 잘하고, 여러분들이 부처님 회상을 만났으니까 부처님 교단에서 잘 하면 누구나 윤회를 벗어날 수가 있다 그거예요. 이렇게 화두 참구를 하지 않아도 아라한까지 될 수가 있어요. 쭈~욱 칭명염불 해가면 되지요. 보살까지 되지요, 앞으로 우리 신도분들 중에 ‘아! 저분은 보살이 되겠다’ 하는 분이 지금 있어요. 되는 거예요.



앞에서 자력으로는 절대로 보살이 될 수 없다는 다섯 가지 이유를 말씀한다고 해놓고 다른 말을 했습니다.

▸첫째, 업장소멸이 되어야 됩니다. 사중죄 소멸이 되지 않고는 정토보살이 될 수가 없습니다.

▸둘째, 영체분리를 해야 됩니다. 영체 분리를 하지 않게 되면 안 됩니다. 저기 유대교의 카발라에서 자기의 사랑하는 애제자를 당신 곁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 빛을 쏟아 붓잖아요.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 부처님의 위대함은 저 신(神)하고 차원이 다릅니다. 비교가 안 돼. 그 빛도 달라요. 그분들이 쓰는 빛하고, 우리 부처님이 쏟아 붓는 빛은 천지차이어. 우리 부처님은 무량억종광이어요. 그렇지요? 저쪽 신은 몸뚱이에다가 그냥 빛을 쏟아 붓는데, 왜 그러느냐? 그 사람들은 영체를 못 끄집어내니까 그렇습니다. 영체를 끄집어내어서 분리한다는 것은 부처님 밖에 못합니다.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영혼체에 대해서 이렇듯 깊이 알아요. 그런데 영혼체윤회론에 대해서 그냥 과소평가하면 그건 지옥종자이지요. 우리는 영혼체를 분리해서 무량억종광으로 씻어냅니다. 그렇게 해야 그 달라붙은, 어떤 업은 껌이 달라붙듯 그렇게 진액이 되어 있는데 그런 업이 씻겨 나갑니다. 그것이 낫습니까 아니면, 무량억종광도 아닌 그 빛을 영체가 분리 되지 않은 몸뚱이에다가만 쏟아 붓는 카발라의 신의 사랑이 최고입니까? 그래서 업장을 씻어주는 데는, 사중죄를 소멸해 주는 데는 부처님의 그러한 작업이 있습니다.

▸셋째, 변녀성남을 해야 돼. 여자가 저기 극락에 가려면 반드시 남자로 만들어 줘야 돼. 4개의 영체 중에 4번 영체는 안가니까, 1․2․3번 영체를 반드시 고추를 달아 줘야 돼. 이 작업을 자기가 하겠습니까? 인간의 힘으로 하겠습니까? 그것은 안 돼.

▸넷째, 한 삶 정리를 할 때가 있어요. 저 사랑하는 제자가 꼭 극락을 가야 되겠는데(극락으로 보내주면 좋겠는데), 저 제자가 1년 후에, 과거생에 사람을 죽인 업이 있어가지고 그 사람이 벌써 죽이려고 태어났단 말이에요. 나이대도 30대 정도가 되어버렸단 말이에요. 그러면 언젠가 만나게 되면서 반드시 죽이게 되어 있는데 놔두면 되겠습니까? 그때 부처님께서 한 삶 정리를 해줍니다. 한 삶 정리를 오늘 처음 이야기 해줍니다. 더 깊이는 말씀드리지 않아야겠습니다. 이건 밀장입니다. 그 원결을 끊어 줘버려요. 한 삶 정리를 해주지 않으면 반드시 만나게 됩니다. 반드시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끊어 주는 거예요.

▸다섯 번째, 정토에 자기보살(아기보살)을 만들어야 돼. 누가 만들어 주겠습니까? 부처님의 그 우주적인 힘 아니고는 못 만듭니다. 개인이 어떻게 만듭니까? 절대 불가능 합니다. 다섯 가지 이유입니다.



그래서 아라한은 보살이 될 수 없는 이유예요. 아라한에서 보살이 되려면 내마는 이미 이겼잖습니까. 이어서 엄청난 외마가 와. 천마, 용신, 악어신, 사신(코브라 같은 사신), 이매먕량신 등등 엄청나게 달려 들어와요. 보살이 기어이 못되게끔 방해를 해. 그렇기 때문에 큰 스승을 만나야 됩니다. 지금 큰 스승이 없어. 눈 밝은 스승이 어떻게 있어? 천마나 용신을 떼어주는 스승이 어디에 있어? 없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 회상을 만나야 되는 거예요. 부처님의 가피를 입어야 되는 거요. 역사적인 그 어떤 수행법도, 어느 나라 어느 종파의 불교 수행법도 지금까지 99%모두가 다 자력수행이었어요. 깨달음이 최고인 줄 알고, 그것이 다 인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영산불교에서는 ‘이것은 시작이다’고 외치며 나왔습니다. 우리는 깨달음을 넘어서 아라한이 되어야 돼. 윤회를 벗어나는 자리예요. 아라한 갖고도 사바세계에 와가지고 또 떨어지더라고. 영원히 오지 않으면 되는데, 보살이 되기 위해서 또 옵니다.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될 수 있는 길은 칭명염불입니다. 이 수행법입니다. 오늘 이 수행법을 여러분들이 스님으로부터 친히 자상하게 들었는데, 이거 공덕으로 말하면, 여러분이 선근공덕이 없으면 여기에 올 수도 없고, 이런 법문을 들을 수가 없어. 이런 초유의 법문을 듣지 못한 사람은 불행하지요. 그 듣지 못하는 원인을 봅시다. 법문을 못 듣도록 막습니다. 막는 사람은 한없는 무간업을 짓는 것이고, 이런 법문을 하는 스님을 내리게 하는 것은 그 책임을 추궁해서 연루자들은(관련자들은) 한없는 업을 짓는 것입니다. 그렇잖습니까? 그런 것입니다. 이런 법문, 부처님 법문이 나가야 됩니다. 그래야 많은 사람들이 삽니다. 윤회에서 벗어나고, 악도에서 벗어나고 그럽니다. 지금까지의 불교 가지고는 안 됩니다. 결코 될 수가 없습니다. 깨달음 가지고는 안 됩니다. 깨달아 가지고는 안 돼. 지옥 아귀 축생을 봐야 돼. 윤회세계도 봐야 되고, 윤회를 벗어난 저 정토 적멸의 세계를 봐야 돼. 그래서 우주의 이치를 달관해야 돼. 부처님의 거룩한 힘(가피)을 받아 올수 있어야 돼. 이런 교단이라야 돼. 이건 부처님의 교단이어요. 그래서 여러분, 원력발원을 항상 하라고 했지요. ‘나는 세세생생 날 적마다 부처님 회상 만나리..’ 왜 그런 발원을 하도록 하느냐? 여러분은 출가할 여건이 안 되어 있거든요. 그러나 재가불자로서도 충분히 보살도 될 수가 있어. 부처님 회상을 만나서 여기를 잘 활용하면 보살도 될 수 있어요. 그러니까 부처님 회상을 만나면 우리는 구제를 받을 수 있는 거예요.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어. 지금까지 죽은 사람들의 대다수가 악도로 가더라 그거예요. 우리 현지사 신도 분들 절대다수가 하늘세계에 납니다. 말씀드렸지요. 업장을 자꾸 씻어주기 때문입니다. 자꾸 타력으로 씻어 줘. 겁에 하나 있을 붓다회상만이 그럽니다. 그렇기 때문에 붓다회상을 만나고자 하는 거예요. 앞으로 부처님 가신지 3000년경에 미륵부처님이 오십니다. 그분의 회상에 나와야 돼. 이번에 윤회에서 못 벗어나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발원해야 되고, 발원을 현실화시켜 주려면 공덕을 지어야지, 원만 세운다고 되나요? 안 되거든요. 그만큼 선해지고 착해지고, 그만큼 부처님을 따르고 좋은 일 많이 하고, 선근공덕을 지어야 점찍지. 무조건 발원 한다고 되나? 그렇습니다. 오늘 칭명염불을 가지고 한 시간을 했는데, 지금 이야기 하지 않은 것도 많네요. 많은데, 어쨌든 또 두 시간 하면 너무 지루하다고 하니까 오늘 한 시간으로 끝냅니다. 내 말 한마디 한마디는 정말로 무서운 법어일 것입니다. 법어입니다.



부처님 칭명하겠습니다.



나무 영산불멸 학수쌍존 시아본사 구원실성 석가모니불...

천상천하무여불 시방세계역무비 세간소유아진견 일체무유여불자 고아일심귀명정례



오늘 처음 나오신 분, 앞으로 계속 나와야 되겠습니까, 나오지 않아야 되겠습니까? 終





현지사 자재 만현 큰스님 춘천 법문
2010. 6. 5. 토(음4.23) 

부처님은 얼마나 위대한 어른이신가(Ⅱ)


 법회는 매월 두 번씩 갖는 정기법회일입니다. 음력4월23일 현지사 본사 법회입니다. 와달라고는 안했지만 오늘도 멀리서 일부러 와주신 일본의 우리 신도분들, 제주도, 그리고 전국 각지에서 이렇게 많이 올라와 주신 우리 현지사 단월님들 고맙습니다.



약속대로 오늘 법문은 ‘부처님은 얼마나 위대한 어른이신가’에 대한 4.8절 법문에 이어서 두 번째입니다. 첫 번째는 인간 영혼의 실체에 대한 규명, 생사관의 정립을 생각해서 그 제목으로 법문을 했습니다. 부처님은 얼마나 위대한 어른이신가?



여기 현지사 새벽4시반, 13년 정도 계속되고 있지만 거룩하신 우리 석가모니부처님, 열여섯 분의 부처님, 그리고 많은 부처님들의 공양을 올립니다. 여러 많은 절, 이 사바세계만 보더라도 사찰이 많습니다. 13년 동안을 하루같이 영산당시의 가섭 '광명 만덕'과 그 당시 아난 '자재 만현'이 올리는 공양을 드시기 위해 아침 일찍이 오십니다. 공양을 드시는 장면 하나하나는 언젠가 말씀을 올릴 것입니다. 우리 현지사가 그러한 절입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영산불교 전국의 우리 단월님들에 대한 기도를 꼭 해드립니다.



내가 처음 BTN TV법문에 나가서 일성(一聲)이 그랬습니다. 많은 세상 사람들, 죽어서 어디로 가는 가를 봤더니 정말로 대다수가 악도로 가더라. 불교가 뭔가 잘못되었다. 영산불교를 따르는, 정법을 따르는 우리 현지사 신도 분들만은 악도를 면해줘야 되겠다하는 크고 비슷한 것을 한 사람이 올시다.



우리 신도 분들은 전생에 선근이 많습니다. 법문이 5년 정도 계속 되어왔습니다. 지금까지 개근한 분들, 부처님 말씀을 대신해서 여러분한테 전하자면, 그분들은 악도에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업장을 많이도 소멸해주셨습니다.



업장소멸에 대한 경전적 근거는《열반경》에 있습니다. 아무도 모릅니다. 부처님께서 중생의 업장을 씻어주시는 것은 지금까지 그 누구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법문을 하지 않습니다. 그 적멸계의 소식도 조금 들어가면 밀장입니다.



조금씩 조금씩 깊이 깊이, 여러분들이 모르고, 여러 나라 불교 성직자들이 모르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법문을 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엊그제) ‘영혼체 윤회론, 육도에 윤회하는 주체는 비아(非我)다’하는 것을 말씀드렸는데, 어느 불교학자가 ‘이것은 메가톤급 폭발력이 아니라 기가톤급 폭발력이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2600년 동안 ‘무아윤회론(無我輪廻論)’은 논쟁의 쟁점이 되었습니다. 무아(無我), 무아윤회론(無我輪廻論), 이것을 정말로 분명하고 확실하게 하여 그 어떤 학승도 반론을 제기할 수 없도록 ‘영혼체 윤회론’을 세상에 발표했습니다. 여러분, 이 책(영혼체 윤회론)은 꼭 구입하십시오. 갖기를 희망하시는 분은 그냥 드리겠습니다.



오늘은 ‘부처님은 도대체 얼마나 위대한 어른이냐’하는 주제를 가지고 4.8법문에 이어 법문해드리겠습니다. 주로《법화경》본문 쪽, 그 중에서도〈8품〉, 그리고《화엄경》, 기타 대승경전을 바탕으로 합니다. 지금의 불교는 얼마만큼 왜곡이 되었느냐? 우리는 아주 심각하다고 봅니다. 이렇게 가면 불교는 소멸이 됩니다. 지금의 불교로서는 21세기를 향도 못합니다.



지금의 불교로서는 안 됩니다. 부처님의 정법이 되살아나야 됩니다. 그렇다면 인도에서 쫓겨난 불교, 그 인도가 고향인 불교를 복원해야 됩니다. 여러분, 세계의 불교 인구가 3억~4억 정도 된다고 했지요. 인도는 거의 없습니다. 인도를 다 먹은 우리 불교가 쫓겨났습니다.



인도에서 소멸되어 버린 거예요. 약50년 전에 이 세상을 떠난 '암베드카르(Ambedkar, Bhimrao Ramji 1893.4.14 인도 모우~1956. 12.6뉴델리. 인도의 정치가. 하리잔(불가촉천민계급)의 지도자로 1947~51년 법무장관을 지냈다. 인도 서부의 불가촉천민 계급인 마하르가(家) 출신으로 불교에 귀의함)'라고 하는 분, 인도국민으로서 간디와 더불어 국부라고 추앙받는 그 분이 불교 부흥운동을 했습니다.



그 분은 천민출신이었습니다. 힌두교를 버리고 불교로 개종한 후 불교 부흥운동을 한 거예요. 그리해서 인도국민들의 어느 정도가 불교에 관심을 갖고 신앙하게 되었습니다. 그 영향으로 지금 인도의 불교도가 0.7%라고 합니다. 인도국민의 0.7%가 불교신도라는 말이어요.



힌두교는 85%정도 됩니다. '아쇼카 대왕'당시에는 불교가 85%, 힌두교가 0.7%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시간을 통해서 스님이 말씀드렸듯이 인간 영혼의 실체, 영혼체에 대한 그 비밀, 지금 서구의 지성인들이 가장 알고 싶어 하는 이 부분에 대해서 규명한 분이 부처님 이후로 없습니다. 역사상 없습니다. 영산불교에서 규명을 했습니다.



무아론(無我論), 무아(無我)를 가지고는 윤회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윤회가 안 되는 것입니다. 무아(無我), 나(我)가 없는데, 주체가 없는데 어떻게 윤회를 합니까? 지금까지의 불교는 그랬습니다. 이것은 말도 안 되지만, 이것을 뒤집을 만한 그러한 경지는 현상세계를 뚫고 지나가서 본체계를 봐야 되고, 본체계를 더 뚫고 가가지고 적멸의 세계를 봐야 됩니다. 그래야 영혼체의 비밀을 확실히 압니다. 영혼체의 비밀, 영혼체가 바로 윤회의 주체올시다.



육도윤회는 비아(非我)입니다. 숯검정처럼 오염이 된 우리의 1번 2번 3번 4번 영혼체, 그 오염이 되었다는 것은 업을 지어서 그 업장이 붙어있다는 말입니다. 그 영혼체에 업장이 믹스가 되어 있기 때문에 윤회를 하는 거예요. 업이 있으니까 윤회를 하는 거예요.



힌두교에서는 아트만을 윤회의 주체라고 합니다. 아닙니다. 아트만은 윤회의 주체가 안 됩니다. 왜냐? 아트만은 세계를 창조했다고 하는 소위 범(梵)과 본질적으로 같기 때문에(청정무구하고, 생각지도 않고, 행위 하지도 않기 때문에) 윤회의 주체가 될 수 없는 거예요. 거기에 업이 달라붙어 있어야 되요. 업이 지어져서(업을 지어가지고) 그 업장이 영혼체에 믹스가 되어야 되요.



그렇게 되자면 2번 영체, 3번 영체가 생겨야 되는 거예요. 거기에서도 더 업장이 붙어 있어서 4번 영체가 되어야 이제 육도를 윤회할 수 있는 원인이 되는 거예요.



철학사상이 가장 깊다고 하는 저 힌두교, 범(梵)에서(梵이) 일체 만물을 창조했다는 것 그 자체도 아닙니다. 범(梵)은 비 인격입니다. 생각을 못해요. 생각이 없어요. 우리 불교에서 말하는 법신불이어요. 법신불은 생각이 없습니다. 생각하고 분별하는 것은 눈, 귀, 코, 이 몸뚱이, 생각입니다. 이것이 분별하는 거예요. 이것을 낳은 마음(空)은 비 인격입니다.



그것은 이 세계가 생겨났다가 파괴되어서 없어졌다에 관계없이, 무수히 반복하는 소위 생멸(生滅)에 관계없이 무시무종 여여합니다. 이것은 의식이 없습니다. 하나의 생명체이지만 의식이 없습니다. 분별하는 의식이 없습니다. 분별하는 의식이 없기 때문에 각본을 어떻게 씁니까? 판단을 어떻게 합니까? 범(梵)이 우주만물을 창조했다고 하는 그 설은 아닙니다.



어쨌든 스님이 오늘 여러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부처님은 얼마나 위대한 어른이냐?’ 지금의 북방불교, 남방불교, 티베트불교, 한국불교, 일본불교는 부처님이 계시는 것조차도 모릅니다.《법화경》〈여래수량품 본문8품〉에서 분명히 부처님은 그 수명이 무한하다. 그래서 구원실성을 밝혔지만 그건 학자들의 이야기로(말로) 치부해 버리고, 실제로 수행하는 승려들이나 신도들은 부처님이 어떻게 계시고, 얼마만큼 위대한 어른인지를 모릅니다.



다만 학승들은, 지금부터 가장 가까운 저 옛날 2600년 전에 부처님께서 오셔서 다시 불과(佛果)를 증하시고 45년 동안 중생을 위해서 사시다가 가셨잖아요. 역사 안의 붓다(석가모니불), 80세를 일기로 해서 반열반 하신 그분 밖에 모릅니다.



그분만 이야기해요. 그러면《법화경》〈여래수량품〉에 나오는 본화 보살님들,  천만억 이상이 되는 그 많은 본화 보살님들이 땅을 찢고 올라오니까 이제 그에 대해서 본문이 전개되는데, “이 많은 본화 보살은 내가 정말 옛적 옛적 미진겁 전, 나유타하고도 아승지겁 전에 불과(佛果)를 이룬 후에 교화해서 보살로 만들어 놓은 대중 보살들이다”하는 말씀을 하신 거예요.



그렇지만 학자들은 윤회세계(현상세계)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그 지혜로서는 뚫지를 못했기 때문에) 이것을 문학적인 픽션(虛構)으로 보는 거예요.《법화경》이나,《화엄경》이나, 기타 대승경전을 그렇게 봅니다. 아닙니다. 아주 잘못 본 것입니다. 절대로 픽션이 아닙니다. 비유와 상징으로 말씀한 부분도 있지요. 있지만, 부처님은 나유타하고도 아승지겁 전에 불과(佛果)를 이루신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면 나유타하고도 아승지겁 전에 불과를 이루셔가지고 어떻게 되었습니까? 우리 석가모니부처님께서 81세를 일기로 반열반에 드셨는데 어떻게 되신 거예요? 불교인들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반열반에 들었다, 지금까지 영혼을 부인하는 불교에서는 어떻게 보느냐? 앞에서 말씀드린 비 인격인 공(空, 梵, 마음)으로 돌아갔다, 공(空)에 계합했다, 적멸과 계합했다는 말을 합니다. 그 이상 말도 못해요. 공(空)하고 한 몸이 되어버렸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 모든 부처님의 심의식(생각, 마음, 그 인격, 지혜 등)이 공(空)으로 분해 되어가지고 공(空)으로 회귀해버렸다. 이제 비 인격이 되어버렸다는 말이어요. 비 인격이 되어버렸다. 공(空)으로 소멸해 들어가 버렸다. 그렇다면 그런 부처님이 어떻게 또 다시 사람 몸을 받아옵니까? 우리 부처님은 이 세상에 많이도 많이도 오셨습니다. 그것은 확실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무수한 본화 보살님들을 양성한 거예요.



여러분, 보살이라고 하면 어마어마한 법위입니다. 지금의 불교에서는 보살도 모릅니다. 어떠한 정도가 보살인지를 모릅니다. 우리 아미타부처님의 말씀을 여러분한테 전합니다. “보살, 보살은 하늘의 별따기다. 하늘에 있는 저 별 따기다. 부처님 교단을 만나지 않으면, 불과(佛果)를 이룬 그 성자의 회상, 부처님 회상을 만나지 않으면 보살은 나올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아마 몇 달 전에 우리한테 들려주신 말씀입니다. 자력으로는 안 됩니다.



자력으로는 보살과를 증오(證悟)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보살과를 꼭 증오(證悟)해야 합니다. 그래야 영원히 생사에서(삼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아라한 가지고도 삼계를 벗어나고, 자기의 생각이 ‘이제는 사람으로 가지 않으리’ 하면 안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게 되어 있습니다.《법화경》은 바로 그것입니다. 모든 성중, 아라한들에게 붓다 되는 길을 가도록 간곡하게 바라셨습니다. 이것을 일불승(一佛乘)이라고 합니다. 부처님(붓다) 되도록 강하게 권유하신 거예요. 그 길로 들어오라는 거예요. 그러려면 우리가 우리 신도들을 상대로 해서 말씀드리지요.



아! 보살, 부처? 부처님 당시에는 보살 부처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거리가 멀어. 너무도 먼 이야기야. 그래서 목표를 아라한에다가 둔 거예요. 아라한의 과(果)를 증오(證悟)하도록 지도하신 거예요. 그때는 3000여 년 전이니 문화 초창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거의 아라한과를 증오(證悟)하도록 목표를 거기에다가 두고 법문 하신 거예요. 그런데 지옥 중생들한테는 그것도 이것도 아니어요. 지옥중생들한테는 삼악도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설법했습니다. 이것을 삼론설법이라고 합니다. 차제설법(次第說法)이라고도 하는 거예요. 지옥 갈 사람한테 아라한 되라고 하면 됩니까? 또, 보살이 되라고 하고, 부처세계만 이야기하면 됩니까?



그런데 스님이 왜 이렇게 붓다의 세계를 강조하고, 불․보살의 적멸세계 이야기를 가끔 해드리느냐 하면, 지금의 티베트불교라든지,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저쪽 남방불교라든지, 한국 불교라든지 등등 지금의 불교가 부처님이 없다고 해요. 없다, 혹은 부처님이 있다 없다를 언급 하지 않아요. 모르고 확신이 없으니까 그렇습니다.《법화경》〈여래수량품〉에 분명히 부처님의 수명을 다룬 거예요.



수량은 근본이어요. 이것을 다룬다는 것은 ‘불과(佛果)를 증하면 미래제가 다하도록 멸도할 수 없다’는 말이어요. 그런데《법화경》이나《화엄경》이나 여러 대승경전에 부처님의 위덕에 대해서 많이도 말씀했지만, 우리 영산불교에서 적멸의 세계나 붓다․보살의 세계에 대해서 말씀을 많이 하잖아요. 이것은 《법화경》이나《화엄경》을 더욱 위대한 경전으로 해주는 작용을(기능을)할 거예요. 많은 소식을 전해주니까요. 우리의 법문을 듣고《법화경》《화엄경》을 보십시오. 모든 경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리무중입니다.



불교학 박사도 오리무중인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대화하고 상대해 보면 몰라. 모릅니다. 영산불교의 이 법문, 과거생에 누구다 누구다(가섭이다, 아난이다)하고, 금생에 와서 불과(佛果)를 증했다고 하면, 불교인의 양심으로서 그 큰스님을 법좌에 모셔야 되는 거예요. 모시지 않는 다고 하면 그 주체는 업이 됩니다.



전번에 어떤 불교TV에 관계하는 책임자 한 분이 스님을 찾아왔어요. 그래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 너의TV에 나가고 싶다. 나의 이 청을 받아준다면 너는 큰 공덕을 지을 것이다. 그러나 네가 그 자리에 있으면서 나의 청을 묵살한다면 정말로 불행할 것이다. 네가 살면 얼마나 살겠다고 생각하느냐’라는 말을 했는데 구체적인 말씀은 드리지 않겠습니다. 여러분, 불교를 조금 더 학문적으로 공부하고, 수행을 해보고 한 사람들은 내 말을 긍정합니다. 긍정합니다 여러분.



부처님은 계시는지 계시지 않는지, 부처님의 위신력은 어떠한지, 경전에 기록되어 있는 십력이라든지 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이라든지, 또 무슨 여러 가지 지혜의 능력을 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지금에는 휴지조각에 지나지 않게 치부되고 있습니다. ‘그건 뭐 이야기거리야’ 하는 정도입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그렇게 지나갑니다.



정말로 안타깝지요. 그래서 전번에 말씀드린 비아(非我), 이것이 윤회의 주체이고, 그리해서 영혼체가 윤회하는 것이고, 영혼체에 달라붙은 그 오물(찌꺼기)들인 업장 ․ 탐진 삼독 ․ 기타 탁한 기 등이 쏙 빠져버린 자리가 아라한입니다. 여기는 해탈인 거예요. 더더욱 수행해 들어가면 보살로 가고, 붓다가 되는 거예요. 그 부분, 오늘 부처님 부분, 이 두 주제는 대단히 중요한 주제가 됩니다. 그래서 스님이 이렇게 강조 강조합니다. ‘《법화경》과《화엄경》을 잘 보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영산불교의 자재 만현이 더욱 부연해서 말씀드립니다.



▸첫째,《법화경》〈여래수량품〉에 있는 구원실성의 그 경의 말씀을 옳다 하고(나는 긍정하고)

▸둘째, 여러 대승경전에 있는 부처님의 위신력을 ‘그렇다’라고 하고, 그 경전에 기록 된 것보다 더하다 하는 것을 오늘 확인해 드립니다. 붓다가 되면 왜 영원히 악도에 떨어지지 않는가.



(보살은 악도에 떨어질 수 있습니다. 불퇴전이라고 했지만 예외가 있습니다. 우주의 질서를 역행하면 보살도 지옥에 떨어집니다. 그래서 스님이 언젠가 저 밀교에다가 쓴 소리를 했습니다. 사람으로 자꾸 오는데, ‘그러지 말라. 그건 우주질서에 역행하는 것이다. 열시왕의 논죄를 받을 날이 있을 것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무서운 말입니다.)



우리 부처님, 불과(佛果)를 증하게 되면(붓다가 되면) 크게 세 몸으로 이야기 합니다. 여러분은 몸뚱이가 언제나 하나예요. 윤회하는 이상 몸뚱이는 하나예요. 그렇지만 아라한을 지나고, 보살을 지나고, 붓다가 되면 크게 세 몸으로 이야기 합니다. 세 유형의 몸을 말합니다. 이것도 맞습니다.《화엄경》에서 십신을 이야기하지만 이 이야기입니다. 삼신이 맞습니다. 자기의 법신불이 저 시공을 초월한(유․무를 초월한) 저 절대계(저 적멸계, 무아속 절대계, 상적광세계)에 생깁니다.



그러면 법신불이 뭐냐? 우주의 본체, 즉 스스로 있는 자존자, 우주 본체를 우리말로 해석하면 그렇습니다. 스스로 있는 자존자, 거기에다가 조금 더 부연하면 불생불멸(不生不滅)-영원히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우주에 두루한(遍在한) 실상(자존자), 이렇게 말합니다. 그 우주의 본체와 하나로 계합이 된 몸이 법신불 올시다. 좀 어렵지요. 어려운 이야기이지요.



여러분, 우주라고 하면 우리 불교에서는 삼천대천세계라고 하지요. 삼천대천세계도 오백 천만억 나유타 아승지만큼 많다고 해요. 이 우주공간에는 삼천대천세계도 많아. 그러면 삼천대천세계는 뭣을 말하는가? 하나의 단위, 곧 지옥, 지옥도 팔만사천지옥, 표현이 좀 그렇지만 어쨌든 지옥의 종류도 많습니다. 지옥도 무서운 지옥,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벌 받는 정도에 따라서 다섯으로 나눕니다. 그렇듯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아수라 하늘(천상), 이것을 한 단위로 봐요. 이것이 1,000개 모인 것을 1소천세계라고 해. 이 단위가 1000개 모인 것을 소천세계라고 그래. 소천세계 1000개를 중천세계라고 합니다.



1중천세계. 중천세계 1000개가 모인 것을 1대천세계라고 해요. 이것을 삼천대천세계라고 하는 거예요. 이 삼천대천세계가 한 단위입니다. 이것이 무수히 있다는 말이어요. 지금 20세기말 천문학에서 별의 수효를 어떻게 계산하는 줄 아십니까? 1,000억×1,000억도 더 된다고 합니다. 저 별의 수효가 1,000억×1,000억도 더 돼. 그런데 삼천대천세계는 우리 지구와 거의 비슷한 환경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건 물질의 세계잖아요. 저 별은 추대한 물질로 이루어진 세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라든지 축생이라든지 이런 중생들이 사는 데예요. 지옥, 아귀 혹은 하늘 세계는 허공중에 있어요. 그러니까 이 우주가 얼마나 넓습니까. 그런데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뭐라고 하느냐? 이 우주, 스님이 지금 말하고 있는 우주는 어쨌든 현상세계(육도세계) 전부를 포함하고, 거기를 벗어난 해탈세계(무루대아라한이 가는 정토, 보살이 가는 정토, 붓다가 가는 정토인 이 해탈 적멸의 세계)까지 포함을 시켜서 우주법계라고 합니다. 이제 거기를 우주법계라고 하는 거예요.



‘우주법계의 근본 본체와 하나가 되어버린 것이 부처님이오. 법신불이어요.’ 일찍이 이 우주법계 안에는 주인이 없습니다. 먼저 차지한 사람이 주인이어요. 누가 차지하느냐? 부처님이 차지해요. 우주본체와 하나가 되어버리니까. 이걸 법신불이라고 해요. 그러면 법신불이 생길 그런 정도의 경지는 어느 정도이냐? 스님이《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Ⅱ》권에 써놨을 거예요.



▸다겁생으로 내려오면서 지은 업장이 정말로 하나도 없이 소멸되어 버려야 돼. 먼지 티끌만큼도 없이 소멸되어 버려야 돼. 이건 붓다 밖에 없어.



▸그 다음에 탐진 삼독 108번뇌가 완전히 뿌리 뽑혀져 버려야 돼.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이어요. 다겁생으로 저지른 악, 또 습의 기가 있어. 이것이 둘 다 뿌리 채 뽑혀가지고 소멸되었다 하더라도 탁한 기가 있어. 이것까지 전부 먼지 티끌만큼도 남김없이 다 소멸되어 버려야 거기가 무죄(無罪)예요.



이제 무죄라고 스님이《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Ⅱ》권에 써놨지요. 이건 정말로 죄가 없는 거예요. 붓다는 무죄인 거예요. 어느 정도가면 부처님께서 무죄를 선언합니다. 이렇게 되면 저 상적광세계에 자기 법신불을 두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 부처님의 법신불은 좀 달라요.



부처님의 법신불 이름은 청정법신비로자나불입니다. 부처님은 최초 불이어요. 이것도 지금의 불교계에서는 모릅니다. 스님이《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권을 쓸 때 선언한 거예요. 최초 불은 우리 부처님이시다. 그 부처님에 의해서 그 많은 부처님과 본화보살님들과 저 정토보살님들이 쏟아져 나온 거예요. 그 기밀이 있어요. 그런데 말할 수가 없어요.



어쨌든 부처님께서는 붓다한테 “아들아! 내 아들아!”라고 하십니다. 우리 광명 만덕님께는 법통제자이기 때문에 “태자야!”그러지요. 자재 만현에게는 “아들아!”그럽니다. 여러분, 부처님께서 아들 사랑하는 것은 어머니가 아들 사랑하는 것의 백천만배입니다. 부처님세계의 붓다들의 사이는(관계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끈끈합니다. 전부 한 몸으로 봅니다.



어느 붓다한테 무슨 일이 있다? 내 몸으로 봐버려요. 한 몸으로 봐버린단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섬부주에 와서 불과(佛果)를 갓 증한 붓다를 아기 붓다라고 해요. 아기 붓다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서 부처님과 여러 부처님, 그리고 여러 성중님들, 보살님들이 완전히 겹겹으로 보호해 주고 있어요. 얼마나 지극하신 줄 아십니까?



이런 것이 경전 어디에 있습니까? 어디에도 없습니다.《법화경》이나《화엄경》에 아무리 봐도 없어요. 스님이 지금 일러드리는 것을 가지고 보면 ‘《법화경》이나《화엄경》이 더욱 위대한 경전이다. 과연 경중의 왕이다’ 하는 것이 이해 될 것입니다. 그런 말이어요.



부처님은 또 한 몸이 있어요. 보신부처님(보신불)입니다. 보신(報身)이라는 것입니다. 보신불이란 무슨 말이냐? 지금의 불교가 정말로 이것을 몰라요. 그러니까 영산불교의 사상이 드러나는 날 우리 불교는 정말로 꽃을 피울 것입니다. 모든 종교가 전부 귀의하지 않을 수 없고, 그 많은 세계불교인들이 전부 쌍수를 들고 귀의하지요. 스님이 말씀드리는 것은 진실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믿어주지 않는 그 사람은 정말로 정말로 불쌍한 사람이지요. 붓다회상을 놓쳐버리면 희망이 없습니다. 그때는 자력으로 가야 됩니다. 자력으로 가는 거요. 자력으로 아라한이 된다는 것, 자력으로 윤회를 벗어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렵습니다. 여러분,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긴다는 것이 진정한 승리다(승자다)’라는 말을 하지요. 그 말 알지요?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긴다. 그 경지가 아라한입니다. 그런데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되려면, 이제 자기와의 싸움이 아니라 외마(外魔)와의 싸움이 있습니다. 자꾸 이런 말씀을 드려서 미안한데, 지금의 불교는 외마를 그냥 환영(幻影)으로 봅니다. 실체로 보지 않고 환영(幻影)으로 봐요. 아닙니다. 외마가 있습니다. 천마(天魔)도 있고, 용신도 있고, 이매망량신도 있는데, 이거 정말로 무섭습니다. 이것들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됩니다. 적어도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되려면 정말로 그 장면이 있습니다.



하나의 붓다를 내는 과정 하나만 이야기해 드릴게요. 우리 부처님께서는 하나의 붓다를 내기 위해서 당신의 몸을 버립니다(던집니다). 마왕 파순이, 혹은 파순이 애제자와 결투하게 되어 있습니다. 붓다를 이룰 사람한테는 그 사람이 반드시 빙의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결투하게 됩니다. 결투장면이 무섭습니다.



그렇게 해서 붓다를 만들어 놓은 거예요. 이건 부처님의 힘이 아니면 안 됩니다. 이길 수가 없습니다. 이 인간, 나약한 인간의 힘으로는 아라한의 성과를 얻기도 어렵습니다. 깨치는 것도 어렵습니다. 견성 어렵습니다. 너무 깊이 들어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보신부처님을 조금 말씀드리면서 결론내리겠습니다. 보신부처님, 보신불은 어떻게 해서 생기는 것이냐? 앞에서 말씀드렸지요. 모든 업장이 소멸되고, 탐진의 뿌리가 뽑혀지고, 악과 습의 기가 뿌리 뽑혀지고, 나쁜 인연 나쁜 악연이 전부 단절되고, 천 만억 생을 살아오면서 지은 원결이 다 해소되고, 금생 전생 과거생에 지은 빚이 다 정리가 되면 무아속 절대계에 자기 불신(佛身)이 생깁니다. 그걸 보신(報身)이라고 합니다.



무아속 절대계라는 말은 있다 없다를 초월한, 거기서도 무아속 절대계 올시다. 그 불신(佛身)이 자랍니다. 그 보신불이 자랄 때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의 청정한 무량광의 기를 먹고 자랍니다. 이것을 말씀드릴게요. 이것은 정말로 깊은 비밀 올시다. 그렇게 해서 자라기 때문에 보신불의 능력은 우주적인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우주적인 능력을 갖추게 되는 거예요. 자비와 지혜를 체득하기 위해서, 자비와 지혜 공덕을 구족하기 위해서 백천만겁을 닦았잖아요.



백천만겁을 보살도를 완성했잖아요. 거기에다가 플러스 부처님의 가피(위신력)에 의해서 절대계에 자기 불신(佛身)이 생깁니다. 그런 사람들은 겁에 하나가 나옵니다. 깨친 것이 불(佛)이 아닙니다. 깨치고 보림이 다 끝난 것이 불(佛)이 아닙니다. 그건 아라한입니다. 완전히 착이 떨어져버렸다고 하더라도 거기가 아라한이어요. 아라한 수천만을 합해도 보살의 가치만 못합니다. 보살 수천만을 합해도 붓다 이룬 분의 가치만 못합니다. 붓다가 더 낫습니다.



오늘은 부처님 이야기를 하니까 어차피 여러분한테 들려드립니다. 지금 부처님 이야기를 해서 죄송합니다. 너무 떨어진 이야기를 하니까 죄송합니다만, 지금까지 이 부처님이 어떤 분인 줄 몰랐기 때문에 이것을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리고 이제 여러분한테 진정 부처님께 귀의하도록 하는 거예요. 부처님한테 귀의하고 그 신심이 철기둥 같으면 살아요. 산다고 했지요. 아흔아홉 가지를 이루어도 어쩐다고? 부처님에 대한 신심을 잃으면 그 이룬 아흔아홉 가지를 전부 잃는다고 했지요. 그러나 부처님에 대한 신심 하나만 있으면 아흔아홉 가지를 채워준다고 그래요. 그 말씀 맞아요. 이 신심의 진정한 뜻을 몰라요.



이제 정말로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 부처님의 몸뚱이는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어떤 것으로 이루어져 있습니까? 보신불은 눈 코 귀가 다 달렸어요. 그래야만이 생각을 하고, 중생을 불쌍히 여기고, 내가 어떻게, 언제, 어느 나라 땅, 어떤 부모를 정해서 내가 나가서 다시 불과(佛果)를 이루어 중생을 제도하겠다 하는 것이 되지요. 그래서 눈 코 귀가 다 달려 있습니다. 그러면서 32상입니다. 지옥중생부터 올라가다가 보면, 우리 인간들은 지옥중생보다도 훨씬 거룩하고 예뻐요. 그러나 우리 인간 세상의 인간들은 하늘 사람(天人)들한테 비하면 사람도 아니어요.



또 하늘 사람은 정토보살한테 비하면 거러지야. 정토보살은 해탈신이기 때문에 너무너무도 잘 생겼어요. 빛이 납니다. 정말로 최고인 줄 알아도 붓다한테 비하면 또 애기예요. 그건 또 말도 안 돼. 이런 부처님, 정말로 한군데만 봐도 쏙 빠져가지고 나올 줄 모를 정도로 잘 생겼어요. 그런데 그런 부처님이 없다고 해요. 아침에 우리 현지사에 오셔서 공양 드신 그 많은 부처님이 없다고 그래. 이건 큰일인 거예요. 지도자가 그런 말을 하면 중생을 오도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업은 무섭다는 것이지. 그런데 그 부처님의 몸은 도대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습니까?



사람 몸은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오온(五蘊)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도대체 부처님은 어떤 것으로 이루어져 있습니까? ‘무량억종광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스님이 이야기했지요. 무량억종광, 이것은 불과를 증한 사람만이 알아. 보살도 전생에 불격을 갖춘 보살이 사람으로 와서 불과를 이룬다고 공부를 할 때 그 무량억종광을 보면, 그런 높은 법위의 수행자도 눈이 멀 지경이어요. 그 수행의 깊이를 언젠가 스님이 이야기해 줬을 거예요. 수행의 깊이를 전번에 이야기해 줬나?



오늘 시간이 40분 지났기 때문에 이야기를 다음 시간으로 미룹니다. 어쨌든 무량억종광, 백종오색광,《법화경》이나《화엄경》등 여러 대승경전에서는 이것을 천 만 억 가지 색깔의 부처님 빛, 나유타하고도 아승지 수만큼 많은 빛깔의 청정한 빛, 이런 식으로 표현합니다.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무량광, 혹은 억종광, 무량억종광, 열반광이라고 했어요.《열반경》에서는 열반광이라고 했어요. 이것으로 부처님의 몸뚱이가 이루어져 있어요. 이 자연의 빛보다도 훨씬 수승한 본원적인 빛이 자성광입니다. 자성광이 드러난 것이 견성이어요. 그것으로 해서(거기에서) 만물이 온 거예요. 이것이 만물의 모체예요. 공(空)입니다.



그 자성광은 무량광에 비하면 색깔이나 광도(光度)나 강도(强度)에 있어서 하늘과 땅차이어요. 그 무량억종광은 안팎이 없어. 희유한 것이어요. 색깔의 안팎이 없다는 것은 투명하다는 말이어요. 투명해요. 안팎이 없는데, 정말로 갖고 싶고, 가지고 놀고 싶을 정도로 예쁘고 깨끗하고 청정해요. 이것으로 부처님의 몸이 이루어져 있어요. 그런데 부처님은 때에(필요에) 따라서 천 만 억 화신을 낼 수 있잖아요. 이건 엄청난 이야기예요. 왜 그것이 가능 하느냐?



대적정삼매를 자유로이 들고 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제 붓다만이 드는 대적정삼매가 있습니다. 붓다만이 드는 대적정삼매,《아함경》에 나오는 구차제정(九次第定) 끝의 멸진정(滅盡定)은 아라한 삼매예요. 그것보다도 훨씬 높은 것이《화엄경》을 쓸 수 있는 해인삼매입니다. 수능엄삼매(首楞嚴三昧). 그것하고 붓다가 드는 대적정삼매하고는 비교가 안 됩니다. 그런 대적정삼매를 자유로이 드시고, 그런 엄청난 선정의(삼매의) 힘이 있고, 당신의 몸뚱이가 빛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빛을 마음대로 방광하는 거예요. 대적정삼매의 힘으로 천백억 화신의 몸을 내는 거예요. 그래서 보신불의 능력은 정말로 무한합니다.



어떤 붓다가 자기의 법신불과 하나가 될 때에는 법계의 주가 됩니다. 더더구나 붓다의 붓다이신 우리 부처님의 원만보신노사나불이 당신의 청정법신비로자나불과 계합이 될 때가 있어요. 그 부처님의 그 노사나불(불신)과 그 청정법신과 합쳐진 그 부처님은 우주의 주(主)예요. 우주의 힘을 마음대로 쓸 수 있어. 정말로 그렇습니다. 그걸 알아야 돼. 여러분, 이게 불교입니다.



이렇게 위대한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청정법신을 모르고 보신을 모르면 불교를 논할 자격이 없는 거요. 2600년 이후 지금까지 그 누구도 몰랐어요. 그리고 수많은 하늘, 성중하늘, 기타 보살국토에 가서 교화하는 화신이 있어요. 백 천 만억 화신이 있다고 했지요. 화신을 나툴 수 있어요. 또 인간세계에 와서 이 중생을 교화하고 제도하는 응화신이 있어요.



응화신을 응신이라고도 하고, 화신이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크게 세 가지의 유(有)인 법신․보신․화신 등 삼신을 구족하고 있어요. 이 삼신을 구족한 분이 붓다예요. 절대계에 자기의 불신(보신)이 없으면 붓다가 아니어요. 이건 붓다를 가름하는 절대적인 잣대가 된다고 했지요. 그것을 알아주십시오. 지금 정확히 시간이 얼마나 되었나? 50분 되었어? 자꾸 스님의 법문을 끊어버리기 때문에 내가 시간을 지키려고 합니다.



그 많고 좋은 법문을 자꾸 끊어버리기 때문에 흐름이 끊어져요. 저 사람들한테 할 말이 많은데 내가 미안해요. 두 시간으로 해서 붓다론을 다 해주려고 했습니다. 많습니다. 많아요. 도대체 부처님은 어떤 어르신인가? 살아계시는지, 살아계신다면 어디에 계시는지, 반열반 후에 어디로 가시는지, 부처님을 친견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뵙고 법문을 듣고 그 붓다의 세계에 살고 있는 스님은 어떻습니까? 의심이 많이 날 거예요.



그 붓다의 생각, 붓다님들의 세계에 대해서 스님이 아주 자상하게 20가지의 항목으로 대답을 해 놓았는데 이 다음시간으로 미루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부처님께서 인간의 몸을 받아와가지고 어떻게 사셨다는 이야기를 전번에 하다가 시간이 없어서 그냥 끊어버렸는데, 그것으로 간략히 말씀드리고 오늘 법문을 마치겠습니다. 그 이야기는 전번에 간단하게 했지요.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치 않아 마음에 걸려가지고 오늘 다시 말씀드립니다(이야기 합니다).



이야기①

카시아파(가섭,迦葉) 삼형제가 있었습니다. 부처님의 상수제자인 '마하가섭'이 아닙니다. 맏형이 '우루빈라가섭(優樓頻螺迦葉)', 둘째가 '나제가섭(那提迦葉)', 셋째가 '가야가섭(伽耶迦葉)'입니다. 이분들이 공부를 많이 한 분들인데, 불(火)을 숭상하는 외도인들이어요. 불은 더러운 모든 것을 태워버리기 때문에 깨끗하지요. 그 불의 성품을 숭배하는 그런 사마외도였습니다. 부처님께서 불과(佛果)를 증하신지 몇 년 되지 않았습니다. 이분들 제자까지 하면 1,000명인데, “이 1,000명을 내가 교화를 하리라(제도 하련다)”하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그렇게 다짐을 하신 후, 삼형제 중의 맏형인 '우루빈라가섭(優樓頻螺迦葉)'을 찾아갔습니다. 가섭이란 말이 불전에 다섯 분이 나옵니다. 전번 시간에 이야기했지요. '우루빈라가섭(優樓頻螺迦葉)'은 불을 섬기는 사화외도(事火外道)였었는데, 특히 이 분은 화룡(火龍)을 섬겼습니다. 화룡, 혹은 독룡이라고도 합니다. 불을 뿜는데, 불을 뿜는 길이가 10미터도 더 되는 그 독룡(독한 구렁이)을 섬겼어요.



그래서 외도를 성취한 사람입니다. 우리 부처님의 관심사는 '우루빈라가섭(優樓頻螺迦葉)' 삼형제를 꼭 내가 제도하면 1,000명의 사문(沙門)을 한꺼번에 얻으니까 얼마나 마음이 벅찼겠습니까? 충분히 자신 있었기 때문에 관심이 가지요. 그러한 부처님께서 지금 몸 받아 왔어요. 그래서 다시 불과(佛果)를 이루었습니다. 불과(佛果)를 이루면 언제나 자기의 보신불과 계합하려 하고, 법신불과 계합이 되려면 언제나 되고, 삼신이 하나로 되려면 언제나 합니다. 이걸 알아야《화엄경》을 이해해요.



자, 부처님께서 '우루빈라가섭(優樓頻螺迦葉)'을 찾아가십니다. '우루빈라가섭(優樓頻螺迦葉)'은 자기 나름대로 아라한과를 증했기 때문에 그냥 자기를 찾아온 모든 사람들을 자기보다 한수 아래로 보았던지 찾아오신 부처님도 그냥 깔고 봅니다(얕잡아 봅니다). 그렇지만 부처님께서는 '우루빈라가섭(優樓頻螺迦葉)'과 정담을 나누시고 그날 밤을 '우루빈라가섭(優樓頻螺迦葉)'의 숙소에 머물 것을 청하십니다. 부처님께서 방을 하나 달라고 하니까 방이 없다는 거예요.



‘다만, 저쪽에 석굴이 하나있긴 한데 거기라도 괜찮겠습니까’ 라고 하니까 부처님께서는 좋다고 하시며 쾌히 승낙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저 석굴 속에는 독룡(화룡)이 있습니다. 화룡이 불을 뿜으면 돌도 녹아버립니다. 그래도 좋습니까’라고 하니까, 부처님께서는 “허허, 좋소”하시고 석굴로 들어가셨어요. 그 석굴에 들어가셔서 딱 가부좌를 하고 선정에 드셨는데 독룡(화룡)이 우리 부처님을 향해서 불을 뿜으면서 나온 거예요. 독을 뿜으면서 입을 촤~악 벌리고 달려들어요.



우리 부처님의 특유한 힘이 있습니다. 전번에 뭐라고 했지요? 화광삼매화가 있습니다. 이건 정말로 무서운 붓다들의 무기입니다. 부처님께서 화광삼매를 쫘~악 놨어요. 이 화광삼매는 외도를 제압할 때는 1,000℃ 10,000℃ 몇 억℃로 자재하게 올려버립니다. 전(全) 외도를 제압하려고 싸울 때가 있어요. 그러나 죽이지를 않습니다. 얼마나 자비합니까?



외도 같으면 다 섬멸해 버릴 거예요. 우리 부처님은 절대로 죽이지 않으셔요. 불살생(不殺生)이어요. 20미터나 되는 그 구렁이가 (독룡이) 부처님 앞에 툭 떨어져버려요. 화광삼매화를 받고서 그 영혼체가 완전히 기가 빠져버린 거예요. 부처님께서 “이만한 정도(한 30㎝ 정도)의 실뱀이 되어가지고 내 그릇 속에 들어가거라” 해가지고 그 발우(鉢盂)속에 넣어버린 거예요. 그리고 저녁 내내 삼매에 드시고 아침이 되었습니다.



'우루빈라가섭(優樓頻螺迦葉)'은 석굴속에 들어간 사문(沙門)이 기척이 없자, ‘어떻게 되었을까. 참 불쌍한 사람인데...’하고 석굴 문을 딱 열고 보니까 그 사문이 터~억 앉아 계시는데 기가 막혀요. 기가 막힌 거요. 거기의 부처님한테서 풍겨 나오는 기, 아라한정도의 과(果)를 얻었으니까 봅니다. 느낍니다. 거기서 살려달라고 엎어진 거예요. 그래서 여러 신통을 보여 주고 500명이나 되는 그 제자들을 당신의 제자로 받아주었습니다.



그 근처 가야산 앞에 네란자라(니련선하)강이 있어요. 한강같이 물이 많은 니련선하를 건너려고 하는데, 그때 비가 굉장히 많이 와서 홍수가 나가지고 강이 범람하여 물살이 산하대지를 집어 삼킬 위세였습니다. 부처님께서 그 강을 건너려고 하니까 '우루빈라가섭(優樓頻螺迦葉)'이 ‘물살이 너무 세고, 장마끝이라 곤란합니다. 걸어서 건너시면 아주 위험합니다. 배를 띄우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만류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놔두게”라고 말씀하시고 처~억 건너가신 거예요. 날아서 건너가신 거예요. 그래서 '우루빈라가섭(優樓頻螺迦葉)'의 두 동생의 제자 500명까지 한꺼번에 제자로 받아줬습니다. 그래서 가야산에 가가지고 그 유명한 “모든 것은 불타고 있다”는 산상설법을 하신 거예요. 그 자리에 있던 1,000명 가까이가 아라한과를 얻습니다.



부처님의 신통, 정말로 위대한 그 인품, 이것을 아무도 모릅니다. 적어도 그 정도의 적멸세계(무아속 절대계)에 계시는 저 부처님, 붓다의 아버지이시고 스승이시고 최초 불이시고 그 수많은 붓다와 보살을 내신 그 정도의 어른이 몸 받아 왔기 때문에 그렇게 힘이 나오는 거예요. 이제 처음 불과를 증한 우리들도 다음 생에 몸 받아 나올 때에는 훨씬 낫습니다. 또 세 번째 나오면 더 낫고요. 안 그러겠습니까? 그러는 거예요. 부처님의 위대함, 학승들이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정말로 알아주면 좋겠습니다.



이 나라 불교도들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불교도들도 부처님의 그 위대한 점, 불교의 위대한 점, 그러니까 청정법신을 모르게 되면 불교를 모릅니다. 우주적인 종교가 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왜곡되고 왜소화 된 종교로 밖에 있을 수 없지요. 이것이 가다가 보면 안 됩니다. 내가 젊어서 학교에 다닐 때에 어느 성당에 들어가 가지고 신부한테 ‘불교를 어떻게 보시오’ 라고 물었더니, ‘불교는 철학입니다. 불교는 다음생도 없습니다. 윤회, 그건 말만하지 아닙니다’라는 대답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 ‘영혼체 윤회론’을 세상에다가 선포한 거예요. 영산불교의 이 심오한 교리에 무릎을 꿇지 않을 종교가 없고, 또한 불교가 없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세 번째 주제를 가지고 할 것입니다. 6개월을 약속했습니다. 부처님에 관한 부분만 해도 3시간 4시간 필요합니다. 그러나 부처님 이야기를 너무 하다가 보면 부처님께서 자꾸 그런 법문(말씀)을 조금씩만 하라고 하셔요. 스님도 알지. 차제설법을 할 줄 알아. 여러분은 아닙니다만, 저 지옥중생을 향해서 아라한 이야기를 하고, 보살이야기를 하면 되겠습니까? 안 돼. 오늘도 마지막으로 여러분한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부처님께 귀의하는 그 신심 하나만은 우리 영산불교 신도분들이 꼭 지녔으면 좋겠어요.



말로만 무슨 철석같다는 둥, 철기둥 같다는 둥 하는데 정말로 그랬으면 좋겠어요. 정말로 그랬으면 좋겠어.’《법화경》이나 모든 경전을 보면, 그 경을 설하고 공덕을 이야기해 놓은 것이 있습니다. 이 공덕이 어마어마합니다.《법화경》〈여래수량품〉에 대한 그 신심을 넣어주는〈분별공덕품〉이라든지, 독송하는 공덕을 갖다가 홍포(弘布)하는 공덕 등을 이야기 하신 것을 보면, 그 공덕이 허공과 같다고 했어. 여러분, 허공이 얼마나 큰지 측량할 수 없지요. 그런 거예요.



오늘 이 시간에 말씀드리는 부처님의 위대함, 이걸 들으면 들을수록 부처님에 대한 신앙이 더욱 돈독해져 갑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스님이 이렇게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러나 다음에는 부처님의 말씀도 계시고 하기 때문에, 이제 스님도 차제설법으로 갈 거예요. 아셨죠? 우리 부처님 정근을 좀 하겠습니다.



나무 영산불멸 학수쌍존 시아본사 구원실성 석가모니불...

천상천하무여불 시방세계역무비 세간소유아진견 일체무유여불자 고아일심귀명정례 終





현지사 자재 만현 큰스님 춘천 법문
 2010.5.21.금(음4.8)



부처님 오신 날 대웅보전 개원 봉축 대법회

오늘 위대하시고, 희유하시고, 거룩하신 우리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응화신으로 이 사바에 사람 몸 받아 오신 날을 맞이해서 전국의 영산불교 현지사 2만 신도 여러분과 이 나라 1,200만 불자들, 그리고 이 지구촌에 사는 3억 불자님들 앞에 꼭 전해야 할 부처님의 말씀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우선 오늘을 진심으로 봉축합니다. 지혜와 자비, 복덕을 두루 갖추신 우리 교주 불세존께 한없는 공경과 고마움, 자재 만현의 일편단심을 10만개의 붉은 초롱 등에 담아 오체투지로 오늘을 봉축합니다.



지금까지의 불교, 즉 남방불교, 북방불교, 티베트불교, 한국불교 등은 거룩하신 우리 부처님의 실존(계심)을 모릅니다. 따라서 우리 부처님의 크신 위신력을 또한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단히 불행한 일입니다.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무아설(無我說)의 진의(眞意)를 왜곡함으로서 인간의 실체인 '영혼체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또 본체계의 깊은 적멸의 세계를 모르고 있습니다. 자재 만현은 실로 2000년간 왜곡된 무아설(無我說)과 무아윤회(無我輪廻)의 질곡(桎梏)과 어둠에서 부처님께서 친히 부촉하신 대로 지금의 왜소화된 불교를 인연 있는 중생을 위해 이 목숨 다하는 그날까지 '영혼체 윤회설(영혼체 윤회론)'을 새로운 교설로 삼고, 부처님의 실존과 위대한 실상을 세상에 드러낼 것입니다. 사랑하는 불자 여러분! 영산불교 현지사 자재 만현입니다. 오늘 뜻 깊은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해서 자재 만현은 또 한 가지 세상에 다시 선포할 명제가 있습니다.



부처님은 계십니다.

부처님은 무아속 절대계에 여여히 계십니다.

부처님은 유․무를 초월한 무아속 절대계에 빛의 인격체로 여여히 계십니다.



오늘 여러 많은 불자들에게 이점을 힘주어서 선포합니다. 마음이 부처라고 합니다. 아닙니다.《법화경》〈비유품〉에 “공(空)을 깨치고 공성을 깨친 후 32상을 갖춘 색신을 절대계에 두어야 붓다이다”라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마음이 부처라고 하는 데서 백 천만리 더 들어가야 됩니다. 그러면 무아속 절대계의 부처님을 뵙습니다. 여러분에게 스님이 지난 5년 동안 많이도 설법을 했습니다.



여러분의 집에서(공부방에서) 스님처럼 이렇게 앉아서 합장을 하고, 눈높이에 마음의 점을 찍고, 석가모니불을 봉창(칭명)하라고 했습니다. 그러기 전에《금강경》1독을 하고, 비로자나총귀진언을 1독하고, 석가모니불을 찾으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공부를 해가면(달이가고 해가가면)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업장이 씻겨지고, 그리해서 여러분은 좀 더 깊은 경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삼귀 오계 십선을 지키면서 과거생에 또 지난날 자기의 잘못을 참회하면서 열심히 열심히 공부를 해가는 불자들은 급기야는 두 귀가 철커덩하고 막히는 경계를 맞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깊은 경계올시다. 여기서도 공부를 더 정진해 들어가면 시공을 초월한 적정의 상태로 퐁 빠지게 됩니다. 여기가 무루대아라한과의 자리입니다. 여기까지 들어가는 데는 수많은 마(魔)의 장난이 따릅니다. 마장(魔障)이 따릅니다.



그것을 극복하고 우리 인간은 여기까지는 갈 수 있습니다. 이제 더욱 정진을 하고, 선근공덕을 쌓고 정진을 해 들어가면(무루대아라한과에서 백천만리입니다), 보살의 경계가 나옵니다. 보살의 경계는 부처님이나 보살과 같은 위대한 성자의 가피 속에서 가능합니다.



불보살님의 위신력(가피)없이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방금도 말씀드렸듯이 인간의 능력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이길 수 없는) 천마(天魔), 색심(色心), 색마(色魔), 용신 등 기타 많은 마(魔)들의 장난에 도저히 그 이상 뚫고 들어갈 수 없답니다. 그리해서 부처님의 가피가 필요합니다.



이제 정토의 빛을 보고, 문수 ․ 보현 ․ 관음 ․ 세지와 같은 큰 불보살님의 빛을 보고, 부처님께서 몇 가지 작업을 해주심에 의해서 우리는 극락에 왕생할 수 있는 보살과를 증오(證悟)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백 천만리 더 들어가야 붓다의 경계가 나옵니다. 여기서부터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마장(魔障)을 맞이하게 됩니다. 부처님의 가피로 해서 뚫고 들어가면 부처님의 몸을 이루고 있는 무량억종광을 봅니다. 그 무량억종광에 대해서는 스님이《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Ⅱ》권에 자세히 써놨습니다.



그 누구도 모르는 불가사의한 빛입니다.《법화경》,《화엄경》,《열반경》,《반야경》에서 나오는 그 빛입니다. 부처님의 청정하신 빛(천 만억 색깔의 광명, 백 천만 나유타 색깔의 빛)을 봄으로 해서 이제 부처님을 친견하게 되는 날이 가깝습니다. 부처님 이후로 그 많은 선지식(큰스님)들이 이 세상에 왔지만, 부처님께서는 부처님의 몸을 이루고 있는 무량억종광을 본 사람이 없다고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저 절대계에 계시지만, 그 누구도 친견하거나 법문을 들은 선지식이 없었습니다. 오직 '사리불 존자'와 '수보리 존자'가 보셨고, 그리고 2600년 만에 우리 광명 만덕님께서 이 무량억종광을 분명히 보셨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의 일입니다.



그리해서 부처님을 친견하게 되었고, 수많은 부처님들의 법문을 들었고, 수많은 부처님들과 대화를 하셨고, 지금도 그렇게 하시고 계십니다. 여기는 삼매로 보면 상품보살이 드는 해인삼매를 뛰어 넘어서 붓다가 드는 대적정삼매가 있습니다. 해인삼매,《화엄경》을 쓸 수 있는 경지입니다. 해인삼매에서 붓다의 삼매인 대적정삼매를 논하라고 하면, 바위에다가 계란던지기 식의 정도입니다. 해인삼매와 대적정삼매는 비교 자체가 안 됩니다.



여러분, 내면세계로 내면세계로 들어갈수록 우리의 기쁨은 더하답니다. 선정삼매에 들어간 그 기쁨은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는 기쁨이랍니다. 보살이 드는 삼매정도에 들어간 사람이 나와서 그럽니다. 너무너무도 환희스러워서 그 기쁨을 말로 할 수 없으니까 이렇게 묻습니다. ‘사람들이 세상을 살면서 정말로 내가 행복하다(정말로 나는 행복하다)고 할 때의 기분과 어떠하냐’고 물어보면, 그것은 비교가 안 된다고 대답합니다. 비교가 안 됩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드는, 붓다가 드는 대적정삼매는 그것의 백천만배입니다.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쾌락 기쁨 환희의 백배에다가 지수 7이라고 합니다. 100의 7승(100^7). 그러므로 붓다가 드는 삼매는 여러분이 헤아릴 수가 없고, 상상할 수가 없지요. 이게 불교입니다. 이러한 대적정삼매에 드는 분이 2600년 이후로 몇 사람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시절 때, 이 종교에 관심이 있어서 깊이도 공부를 했는데 그때 내 생각은 이랬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출세했던 신라시대의 원효스님 ․ 의상스님, 고려 당시의 보조스님, 이조 당시의 서산스님, 최근의 성철스님, 그 다음 일본으로 가서《법화경》을 너무도 깊이 연구하셨고 일련종에서는 부처님과 같이 보는 일련스님(니치렌) ․ 조동종에서의 도오겐, 중국의 달마 ․ 혜능 ․ 마조 ․ 법장 ․ 현수 ․ 청량 ․ 진관, 태국의 아짠문, 요즘 프랑스에서 수행중인 베트남 출생의 틱낫한, 티베트의 파드마삼바바 ․ 밀라레빠․ 지금의 달라이 라마, 인도 쪽으로 가서 자기의 나라에는 100~200명에 달하는 세계의 그 어느 성자가 따라갈 수 없는 성자를 배출했다고 자랑합니다. 밀교 쪽에서는 84명의 구루를 들고 있습니다.



우리 인류문화사,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예수님 ․ 공자님 ․ 소크라테스 ․ 마호메트 ․ 노자...이런 분들 외에 우리 인류가 낳은 수많은 무명의 성자들이 왔다가 갔습니다. ‘그런 분들은 붓다가 되었겠지. 불과를 증한 훌륭한 어른들이겠지’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불과(佛果)를 이룬 후에 보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저 무아속 절대계에 자기의 32상을 갖춘 빛의 인격체인 보신 부처님(佛身)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해서 이것은 붓다가 되느냐의 여부를 가리는 절대적인 잣대입니다.



여러분! 우리 석가모니부처님은 붓다 중의 붓다올시다. 말로 할 수 없는 나유타하고도 아승지겁 전에 처음으로 불과(佛果)를 이루신 어른입니다. 우리 영산불교 현지사는 그것을 깨닫고, 불교가 왜 그 너른 땅 인도에서 쫓겨났는지를 연구했습니다. 13억 인구 중에서 힌두교가 80~85%입니다. 지금 현재 불교인구가 0.12%~0.7%정도로 올라갑니다.



이 원인이 어디에 있는 것인가를 면밀히 연구 검토를 해 본 결과 이 스님이 지난 BBS TV에 두세 번 나가서 힘주어 말씀했듯이(많은 부분을 잘라버렸지만) 진리인 '영혼체 윤회론'이 묻혀져 왔습니다. 이것은 진리인데 이 '영혼체 윤회론'이 묻혀져 왔습니다.



삼법인(三法印), 사법인(四法印)에 나오는 무아설(無我說)을 주장하면서 윤회를 주장하고, 육도에 윤회한다는 진리를 접목시키려 하다가 보니까 무아설(無我說) 때문에 안 되어요. 이것이 접목이 안 되고 2600년 동안 내려왔습니다. 접목이 될 수가 없지요.



윤회의 주체가 없다고 하는데 어떻게 윤회를 합니까? 이번에 스님이 TV에 나가서, ‘윤회의 주체는 우리의 영혼체이다. 유아윤회(有我輪廻)라고 봤다. 유아윤회(有我輪廻)이다. 바라문교(힌두교)에서 주장하는 것은 옳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교 중에 가장 우수하다고 하는 종교인 힌두교, 그 힌두교보다도 훨씬 차원이 높은 그 심오한 데까지 뚫었습니다.



윤회의 주체는 영혼체이고, 그 영혼체는 다겁생으로 내려오면서 탐진 삼독에 의해서 많이도 오염되어서, 그 오염된 비본질적인 것들이 영혼체에 엉켜가지고 숯검정처럼 되어버렸어. 그래서 비아(非我)라고 한 거예요. 나(我)가 아니다. 그 오염된 비본질적인 것(업장)을 씻고 씻으면 완전하고 순수한 영혼체가 드러나게 됩니다.



이것은 진짜 나(我)입니다. 이렇게 되면 윤회를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영혼체가 업장(비본질적인 것들)에 의해서 숯검정이 되고, 숯덩어리가 되고, 진흙덩어리가 된 것은(이 非我는) 육도를 윤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전부 수행에 의해서, 선근공덕에 의해서, 단 부처님의 가피에 의해서 그 영혼체에 얽히고설킨 그런 찌꺼기들을 모두 다 씻어버리면 이제 자기의 순수 자아(自我)가 나옵니다. 여러분, 이제 해탈입니다. 윤회에서 해탈하는 거예요.



이러한 진리를 지금까지 2600년이 흐르는 동안 그 어떤 사람도 말을 못했습니다. 그 어떤 사람도, 그 어떤 큰 선지식도,  그 어떤 성자도 말한 적이 없습니다. 일부는 보았습니다. 일부는 알았습니다.



그 다음, 오늘 여러분에게 힘주어서 또 선포한 것은 즉,



부처님은 계신다.

부처님은 절대계에 계신다.

부처님은 무아속 절대계에 여여히 계신다.



하는 이 폭탄선언을 여러분들한테 오늘 말씀드립니다. 내가 지난 5년 전에《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 썼습니다.《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Ⅱ》권에 상당히 자세하게 썼습니다. 이 부처님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는 불교를 알 수 없습니다. 대승불교를 논할 자격이 없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오늘의 불교는 부처님이 없다고까지 합니다. 부처님에 대해서 모릅니다.《법화경》,《화엄경》, 다른 대승경전에서 상당한 설명을 해놨지만 그것을 이해 못합니다.



문학적인 픽션(fiction,虛構)이라고 합니다. 지옥도 있고, 극락도 있고, 불․보살님들도 계시고, 무주고혼들도 있고, 하늘도 있고, 아귀세계도 있는데, 지금의 불교는 이것을 모릅니다. 이래가지고는 중생제도를 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의 존재를 부인(否認)하고, 육도를 부인하고, 마음속에서(인간 내부에서) 찾는 그런 불교는 21세기 인류를 향도할 수 없습니다.



불교경전을 볼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이제 자재 만현의 법문을 듣고, 이번에 출간한〈영혼체 윤회론〉의 책자를 구입해 보시고, 우리 영산불교에서 내놓은 그 동안의 책자가 10권~20권이 됩니다. 이것을 구입해 보시면 모든 경전을 볼 수 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었던 오리무중한 불교, 어렵기만 한 그 불교가 이제 선명하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다음 법문을 들어가기 전에 오늘 여러분을 위해서 그 거룩하신 우리 부처님의 칭명염불을 30초간 하겠습니다. 모두 합장하시고 따라해 주십시오.



나무 영산불멸 학수쌍존 시아본사 구원실성 석가모니불...

천상천하무여불 시방세계역무비 세간소유아진견 일체무유여불자

고아일심귀명정례



부처님께서는 아주 오래 전에 불과(佛果)를 증하시고 보니까 중생들이 너무너무도 불쌍합니다. 육도를 윤회하는 그 고통의 쇠사슬에서 도저히 나오지를 못합니다.



그리해서 우리 부처님이나 불과를 이룬 대성자들은 화두가 ‘어떻게 하면 저 불쌍한 윤회중생을 건질까’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어서 절반은 중음계에 떨어집니다. 절반정도는 명부를 들어갑니다. 이것도 진실(사실)입니다. 명부에 들어간 사람들의 절대다수가 지옥을 가게 됩니다.



이것을 본 부처님께서는 그 최고의 진락을 누리시는 무아속 절대계에 그대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가끔 이 사바세계에 몸 받아 오십니다. 몸 받아 오실 때에는 많은 고통이 따릅니다. 이것을 각오합니다. 우리 부처님을 두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부처님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위대한 어른이다’라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2600년 전 인도 땅, 지금의 네팔 국 땅입니다. 카빌라국의 조그마한 나라에 왕자로 오셨습니다. 여러분들도 다 알고 계시죠? 외동아들인 왕자로 오셨습니다. 그러면 아버지 정반왕의 왕권을 자연히 승계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 부처님께서 사바에 오신 서원이 있습니다.



“많은 중생을 건진다” 하는 서원이 있습니다. 이 서원이 너무도 절실합니다. 사람 몸을 받아온 후에도 그 생각이 항상 잠재의식 속에서 가끔 불쑥불쑥 일어납니다. “이 많은 사람들을 구원(구제)하려면 내가 일단 붓다가 되어야 겠다”해서 스물아홉 살 때 출가를 합니다.



여러분, 아시죠? 6년 동안을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는 고생, 고행, 각고의 수행을 해왔습니다. 2600년 전의 히말라야 산을 상상해 보십시오. 지금은 모두 개발이 되고 교통이 발달했지만, 그 당시는 자연 그대로였을 겁니다. 2600년 전입니다. 히말라야 산은 정글(밀림)입니다. 밀림, 그 속으로 들어가면 뭐가 많지요?



독사, 코브라, 전갈, 맹수... 그 밀림 속으로 들어가서 6년을 고행합니다. 당신은 왕의 자리를 자연히 승계 받을 수 있었지만, 그것을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사문(沙門)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사문(沙門)의 길은 4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이것을 사의법(四依法)이라고 합니다. 사의법(四依法), 4가지 원칙에 의해서 살아가는 거예요.



①도를 이룰 때까지는 걸식(탁발)을 한다는 것입니다.



②도를 이룰 때가지는 분소의(糞掃衣)를 입는다. 분소의(糞掃衣), 옛날 농촌에 가면 똥 푸는 사람 있지요. 그 사람들이 깨끗한 옷을 입고 똥을 풉니까? 그런 사람들이 걸친 갈기갈기 찢어진 옷, 그 천도 거의 낡아 가지고 살이 비칠 정도이며, 그런 천을 입고 평생을 살아야 됩니다.



③수하좌(樹下座). 지붕이 있는 데에서는 잠을 잘 수 없습니다. 그것이 규칙입니다. 엄한 룰(규칙)이 되어 있습니다. 지붕이 없는 곳, 그러니까 숲속, 나무 밑, 강가, 광야, 그리고 공동묘지, 이곳을 내 집으로 삼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수행을 해야 됩니다.



④그 다음에 진기약(陳棄藥). 사람의 몸뚱이는 가끔 아프게 되어있습니다. 지금은 약국에 가면 온갖 약이 있지요. 그 당시는 없었어요. 그리해서 진기약(陳棄藥), 부란약(腐爛藥), 부뇨약(腐尿藥)이라고 합니다. 이건 뭐냐? 소똥을 가지고 만든 약이에요. 소똥을 버무려가지고 환을 지은 거예요. 혹은 사람 똥이나 오줌을 버무려가지고 환약을 만든 거예요. 몸이 아플 때에는 이것을 먹어야 돼. 이게 4가지 수행의 원칙 올  시다. 수행자는 이 고난의 길을 가야 됩니다.



우리 부처님께서는 “좋다. 나는 사문(沙門)의 길을 택한다. 나는 도를 이루어야 되겠다. 그리고서 길을 모르는 이 불쌍한 중생들, 우주와 인생의 진리를 모르는 이 불쌍한 중생들에게 진리를, 살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줘야 되겠다.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줘야 되겠다. 윤회의 고통에서 헤어 나올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줘야 되겠다.”



해서 그런 어려운 수행을 6년 동안 하셨답니다. 그리해서 서른다섯 살이 되던 해에 크게 불과(佛果)를 증합니다. 증한 후 이제는 전법(傳法)으로 나섭니다. 중생을 위해서 법을 전하는 전도(전법)의 길을 떠납니다. 45년 동안 마지막 사라쌍수 하에서 반열반에 드실 때(임종하실 때)까지 중생을 제도합니다. 그날 밤을 넘기면 이제 반열반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103살이 된 '수밧다'라고 하는 수행자가 부처님을 뵙기 위해서 찾아왔습니다. 부처님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거예요. 그런데 아난존자가 ‘지금은 부처님을 면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뵙고만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제 소원입니다’하고 청을 간절히 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그 소리를 들으시고, “아난아! 그 수밧다를 나에게 안내하고, 그의 청을 들어 주도록 해라”고 하십니다.



수밧다가 부처님 앞에 가서 삼배를 하고, 자기는 ‘도를 얻기가 소원인데 100살이 될 때까지 수행이 안 되어서 이렇게 도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하는 말을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그 수밧다에게 마지막 설법을 하셨습니다. 그 수밧다는 부처님의 크신 위신력으로 아라한과를 증했습니다. 그때는 아라한과는 아니었습니다. 아라한과는 아니었는데 어쨌든 견성을 했습니다.



그래서 몇 시간 더 정진해서 곧 아라한과를 얻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 부처님보다도 몇 시간 전에 그냥 이 몸을 벗어버리고 갔습니다. 우리 부처님께서는 오직 중생을 건지는 일, 이게 화두입니다. 얼마나 자비하시고, 얼마나 대자대비하십니까?



이제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간략히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1,000명 정도의 제자들을 데리고, 우리 부처님께서 6년 동안 고행하셨던 산(가야산이라고 하는 산입니다), 그 가야산 산정에 오르십니다. 그들에게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시가지를 보시면서 말씀을 하십니다. 유명한 산상의 설법을 하십니다. 500년 후의 인물 '예수'가 산상설교를 했다고 하지요.



카시아파(가섭,迦葉) 삼형제(우루빈라가섭(優樓頻螺迦葉), 나제가섭(那提迦葉), 가야가섭(伽耶迦葉)의 삼 형제. 본래 외도(外道)의 무리였으나, 성도(成道)한 석가모니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 그 제자가 되었다)와 그들을 추종하는 외도 1,000여명의 대중을 이끌고 가야산 산정에서 “모든 것은 불타고 있다”하는 법문을 하십니다. 여러분이 조금 알아듣기 쉽게 부연설명을 하겠습니다. “비구들아! 사람들의 눈이 불타고 있고, 또 눈의 대상도 불타고 있느니라...”



이렇게 주~욱 나갑니다. 번뇌의 불꽃이 모든 것을 불태우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과 세계의 모습을 비유로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이렇게 보는 자는 능히 모든 것에 염오(厭惡: 싫어하다)하는 마음이 생기고 즉, 눈에 있어서 눈을 염오(厭惡)하고, 귀에 있어서 귀를 염오(厭惡)하고. 자, 마음에 있어서 마음을 염오(厭惡)하고, 일체 염오(厭惡)하는 마음이 있으면 곧 탐내는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단다. 탐내는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으면 곧 해탈을 얻을 수 있단다 하는 산상설법을 하십니다. 그리해서 많은 대중들이 이 자리에서 아라한과를 얻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모든 것은 불타고 있다”고 하는 가야산 산정에서 설법하는 골격입니다.



우리 불교는 탐진 삼독을 대단히 주목합니다. 욕심(지나친 욕심),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 탐진 삼독을 비롯해서 모든 번뇌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합니다. 모든 번뇌의 뿌리인 탐․진․치, 이놈의 뿌리를 뽑아야 된다는 것이 우리 불교의 종지(宗旨)올시다. 다른 종교는 안 그럽니다. 우리 종교는 탐․진․치를 거세(去勢)하는데(뿌리 뽑는데) 수행의 목표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해서 사성제와 팔정도를 통하지 않는 저 외도의 인물들, 교주 내지 그 지도자급들, 그 모두는 아라한 성과를 정통 아라한 성과가 아니라고 합니다(그 모두는 아라한 성과에 해당 된다고 하지만, 면밀히 보면 정통 아라한 성과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인격과 신통에 있어서 우리 불교의 보살, 상품보살까지도 인정해 줍니다만, 어쨌든 그분들은 마음속의 탐․진․치를 완전히 뿌리 뽑은 그런 사람들은 아니라고 합니다. 이것을 알아주십시오.



이야기①

'앙굴리 말라'라고 하는 희대의 살인자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그 당시 그 외도의 제자들은 한500명 정도 되었습니다. 부처님 당시 외도의 종류가 대단히 많았습니다. 그 교리 내용을 엄격하게 따져보면 90여 가지(정확히 96가지) 정도 된다고 합니다. '앙굴리 말라'는 일찍이 어느 외도의 제자로 들어갔습니다.



그 곳에는 500여명이나 되는 제자가 있었는데, 사실은 그 제자들 중에서 가장 선망 받는(장래가 촉망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앙굴리 말라'는 체격도 좋고, 아주 똑똑하고 총명했습니다. 그래서 외도의 수장(교주) 부인이 '앙굴리 말라'에게 연정을 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해서 여러 가지의 방법으로 '앙굴리 말라'를 유혹하고 유혹해도 '앙굴리 말라'는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교주의 부인이 은근히 화가 나서 시샘과 질투를 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여 자기의 남편(교주)한테 ‘'앙굴리 말라'가 자기를 겁탈하려 했다’며 음모를 꾸며 고자질을 합니다. 교주는 그 부인의 거짓말을 믿고 버럭 화를 냅니다. ‘이놈의 자식! 어디 두고 보자. 감히 내 마누라를 넘보다니...’ 하면서 좋지 않은 감정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앙굴리 말라'를 불렀습니다. '앙굴리 말라'를 앉혀놓고 ‘너! 내가 도를 이룰 수 있는 첩경이 있다. 비법이 있어. 너한테 일러주니까 그리 알아라. 사랑하는 '앙굴리 말라'야’라고 말하니 '앙굴리 말라'는 그 말을 듣고 날아 갈듯이 기뻐했습니다. 그 교주는 이런 말을 합니다. ‘너! 내말을 믿느냐?’하니까 '앙굴리 말라'가 ‘예, 믿습니다.’ ‘내 말대로 하면 너는 도를 얻는다’고 하니까 '앙굴리 말라'가 ‘하! 그러합니까’하고 무릎을 꿇고 부복합니다. ‘앙굴리 말라야! 오늘부터 사람을 100명 죽여라. 100명을 죽이면 너는 도를 이룰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앙굴리 말라'는 시가지로 나와서 칼을 휘두르며 사람을 죽입니다. 10명, 20명, 50명, 70명...죽여 갈 때, '앙굴리 말라'의 어머니가 그 소문을 듣고 ‘자기 자식이 어떤 외도의 사주를 받아가지고 미쳐서 저 무서운 죄를 짓는데 내가 가서 말려야지’ 하고 시가지로 당신의 아드님을 찾아서 나옵니다. '앙굴리 말라'는 자기의 어머니를 보고 칼을 휘두르며 죽이려고 합니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탁발을 나갔다가 들어온 제자들로부터 '앙굴리 말라'라는 사람이 지금 어느 시가지 골목에서 사람을 마구 죽인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100명을 죽이면 도가 이루어진다고 해가지고 지금 아마 80명~90명은 죽였을 것이다’ 라는 이야기를 듣고 부처님께서는 “그러냐! 좋다, 내가 직접 가겠다. 내가 간다”하시고 제자들이 따라오는 것을 전부 뿌리치고 혼자 가십니다. '앙굴리 말라'가 어머니를 죽이려고 칼을 빼들었는데, 저쪽에서 어떤 사문(沙門)이 걸어오고 있거든요.



'앙굴리 말라'는 그 사문을 보고 ‘됐다! 사문을 죽이겠다. 이 까까머리 중아! 거기에 멈추지 못하겠느냐!’ 하고 고함을 치면서 달려가는데, 아무리 달려가도 부처님은 천천히 걸어가십니다. '앙굴리 말라'는 부처님을 따라가 시해(弑害)하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붙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우리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잘 들어 보세요.



“나는 이미 오래 전에 멈추었는데 너는 아직도 멈추지를 못하고 있구나. 나는 해치려는 마음을 모두 멈추었으나 너는 아직도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멈추지 못했느니라. 나는 번뇌 망상을 끊고 진리에 머물러 있으나 너는 진리를 보지 못하였으니 번뇌 망상을 멈추지 못하는 구나.”



이 말을 듣고 무엇에 머리를 몽둥이로 맞은 것처럼  번쩍하면서 본래의 자기로 돌아와 자기의 잘못을 생각하고,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은 거예요. 그길로 기원정사로 부처님을 따라서 사문(沙門)이 되었습니다(부처님 제자가 되었습니다). 이 '앙굴리 말라'는 원래 총명했고, 많은 세월을 수행한 덕분에 곧 아라한과를 증했다고 합니다.



아라한과를 증하고서 선정에 들어가 있을 때입니다. 그 당시 왕이 '빠세나디'입니다. 그 왕이 군사를 이끌고 살인마 '앙굴리 말라'를 잡으러 온 거예요. 그 당시에는 많은 소국이 있었잖습니까. 인도에는 16나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문(沙門)들에게는 치외법권(治外法權)이 있었습니다. 죄를 지어도 사문(沙門)들에게는 죄를 묻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이 '앙굴리 말라'는 수 십 명을 죽인 죄인이어요. 그리해서 자기가 존경하는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고 하니까 사실을 알아보려고 부처님한테 오신 거예요. 보니까 '앙굴리 말라'는 저쪽 나무 밑에서 선정에 들어있어요. 왕이 가서 삼배를 합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그 위대한 교화력에 더욱 감복해서 오체투지의 예를 올리고 돌아갑니다.



그 '앙굴리 말라'는 이제 아라한과를 증했으니까 자기의 소원이 이루어졌어요. 그래서 어느 날 시가지로 탁발을 나갔습니다. '앙굴리 말라'를 알아 본 사람들이 ‘이놈이 살인을 한 놈이다! 이놈이 살인을 한 놈인데 머리 깎고 중이 되어서 나왔다!’고 하며 마구 돌을 던지고, 몽둥이질을 해서 피투성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피투성이가 되어서 돌아온 '앙굴리 말라'가 하는 말입니다. ‘나는 누구를 원망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습니다. 설사 칼이나 몽둥이에 맞아 죽더라도 이제 나는 스스로를 항복했습니다. 어떤 고통을 당하더라도 감정을 억제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 내 마음은 해탈의 기쁨으로 충만해 있어서 마음은 어떠한 경계를 당하더라도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부처님!’ 하고 말했답니다.



여기서 우리 부처님의 위대한 면을 읽어야 됩니다. 한 사람도 놓치지 않고 인연 있으면 다 건지시려고 하시는 그 대자대비, 어느 성자가 이런 분이 있습니까? 100명을 죽여 가는데, 그 희대의 살인마 앞에 내 몸을 던질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어느 성자가 그랬습니까?



이야기②

'제바달다(提婆達多)'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당신의 사촌동생입니다. 한문으로는 '조달(調達)'이라고 합니다. '제바달다(提婆達多)', 여러분들도 아마 잘 아실 겁니다. 내가 보는 시각으로, 이 '제바달다(提婆達多)'는 정말로 공부를 잘 한 분입니다. 공부 잘했습니다. 세존의 교단에 들어왔지요. 12년 동안 공부 잘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부처님을 이기려고 하는 생각이 있어요.



'제바달다(提婆達多)'의 눈으로는 그 당시 우리 부처님 교단에 출가한 비구들의 수행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 몇 가지 건의한 사항이 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6년 동안 수행을 하실 때에 온갖 외도의 교단에 들어가서 수행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고행을 하는 교단에 들어가서도 수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불과(佛果)를 증한 후 보니까, 고행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안락하게 수행하는 것도  아니라고 했어요. 그래서 중도 행을 선언하지 않습니까? 중도 행, 중도 행으로 수행하도록 비구들에게 타이른 것이 '제바달다(提婆達多)'에게는 불만이었습니다.



'제바달다(提婆達多)'는 ‘수행자는 마땅히 지금의 다른 외도들의 사문처럼 고행난행을 해야 된다. 그래야 도를 이룰 수 있는 것이지, 중도 행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부처님께 건의한 것이었어요.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제바달다(提婆達多)'의 건의사항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제바달다(提婆達多)'가 뛰쳐나간 거예요.



뛰쳐나가가지고 급기야는 당시의 '아사세왕'과 은밀히 음모를 꾸밉니다. ‘부처님을 제거합시다. 그리고 나를 세워주시오. 그러면 진짜 정법의 교단이 될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아세사왕'이 '제바달다(提婆達多)'의 그 말에 ‘그렇게 하라’하고 찬동해서 많은 코끼리들에게 술을 먹여가지고 미치게 만든 거예요. 그리해서 부처님께서 다니시는 그 길에 코끼리를 풀어 놓습니다.



저 쪽에서 부처님께서 오시는데 코끼리에게 술을 잔뜩 먹여 미치게 해가지고 우리 부처님을 덮치라고 한 거예요. 코끼리 떼들이 부처님을 향해서 달려듭니다. 마침 우리 부처님을 시봉하는 여러 제자들이 길을 오다가 이 광경을 봅니다. 이 사람들은 신통이 있어서 하늘로(공중으로) 올라 가버렸어요.



우리 부처님께서는 그런 신통이 그 제자들보다도 10배, 100배 이상 있지요. 정면에서 아난존자하고 미친 코끼리 떼를 맞이했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바른편 손을 듭니다. 바른편 손을 딱 드니까 이 다섯 손가락에서 무엇이 튕겨 나오는데 사자로 화합니다. 다섯 마리의 아주 용맹스러운 사자로 현신해요.



코끼리들이 그 사자를 보고, 부처님의 그 거룩한 자비와 지혜와 태산 같은 그 위엄(위압)에 눌려가지고 무릎을 꿇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 부처님께서 '아사세왕'한테 설법하신 내용이 팔풍의 설법입니다. 이것은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제바달다(提婆達多)'가 1차 시해(모해)에 실패를 하고, 2차로 부처님을 시해하려고 합니다. 활을 잘 쏘는 사람 500명을 모이도록 해서 많은 상금을 약속하고, 부처님께서 항상 다니시는 그 길목에 잠복을 시켰습니다. '제바달다(提婆達多)'는 ‘부처님이 지나가면 활을 쏴버려라. 활시위를 당겨라’하고 명령을 내립니다. 부처님께서 탁발하고 그 길을 따라  돌아오실 무렵, 수 백 명의 궁수(군사)들이 부처님을 향해서 활을 쏩니다. 화살 끝은 모두 날카로운 독화살인데, 그 독화살이 모두 연꽃으로 변합니다.



이야기③

부처님 당시 가섭(迦葉)삼형제가 있었습니다. 여기의 가섭은 부처님의 십대제자인 '마하 가섭'이 아닙니다. 맏형이 '우루빈라 가섭(優樓頻螺 迦葉)', 둘째가 '나제 가섭(那提 迦葉)', 셋째가 '가야 가섭(伽耶 迦葉)'으로 삼형제가 있었어요. 화룡을 섬기고 있던 '우루빈라 가섭(優樓頻螺 迦葉)'으로부터 그 유명한 화룡(火龍, 불룡)을 항복받고, 우리 부처님의 제자가 된 그 '우루빈라 가섭(優樓頻螺 迦葉)'은 '마하 가섭'이 아닙니다.



'가섭'이라는 이름이 우리 부처님 당시에 다섯이 있었어요. '십력 가섭'도 있었고, 또 BC 3세기에는 음광부(飮光部)라는 소승 부파불교가 있었는데 그 음광부의 개조(開祖)도 '가섭'이었습니다. 여기 '우루빈라 가섭(優樓頻螺 迦葉)' 삼형제가 500명씩, 1,000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앞에서 말씀드린 산상의 설법을 하실 때 있었던 분들이 그 제자들입니다.



이 귀한 사건이 있습니다. 이것은 화룡을 항복 받은 사건이고, 그리고 네란자라(니련선하)강을 잘라가지고 길을 만들어서 유유히 저 언덕까지 걸어간 사건입니다. 그리해서 1,000명의 가섭삼형제 제자들을 전부 받습니다. 1,000명 모두 귀의합니다. 유명한 사건입니다. 이런 일을 비롯해서 우리 부처님의 위대한 것은 많습니다. 이것은 학승들도 다 아는 일이지요.



학승들이 우리 부처님의 정말로 위대한 점을 모르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걸 오늘 말씀해 드립니다.

▸우선, 어머니를 위해서 42살 때 도리천에 올라가셔서《지장경》을 설한 사건이 있습니다. 두 번째,《화엄경》을 설하실 적에는 도리천, 야마천, 도솔천, 타화자재천을 순차로 올라가시면서《화엄경》을 설합니다. 그런데 지상의 기원정사에 당신이 설법하셨던 그 상황을 그대로 놔두고 도리천에서 설법을 합니다. 그대로 거기서 법을 설하십니다.



기원정사에 그대로 놔두고 도리천에 가는 거예요. 그건 갈 수 있는 이유가 있어요. 절대계에 계시는 자기의 불신(자기의 보신불)이 있거든요. 그때 이 영체가 계합하게 됩니다. 그래서 도리천에 가서 법문을 설해요. 그리고 또 야마천에, 도솔천에, 타화자재천에 가요.



이것은 신통이 아닙니다. 이것은 대적정삼매의 힘으로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붓다의경지에서는 대적정삼매의 힘으로 백천만억 화신을 낼 수 있어요. 이러한 점입니다. 여러분, 많은 점이 있는 데 다음 시간에 거듭 이야기하기로 하겠습니다.



▸우리 부처님께서 설법하실 때에는(크나큰 법문을 설하실 때에는) 꽃비가 내려오게 되어 있습니다. 큰 삼매에 들어가셔서 방광을 하고 하면 꽃비가 내리고, 수 백 만의 청법 대중이 몰려오고, 그래서 설법을 하시거든요. 이런 부분, 저런 부분에 대해서 학승들이 ‘이것은 문학적인 픽션(虛構)이다’하고 방기(放棄)해 버린 것입니다(픽션으로 치부해 버린 것입니다). 스님이 볼 때는 아닙니다. 이거 이상입니다. 보니까 이것 이상이어요.



▸우리 부처님은 어마어마한 힘도 있습니다. 외도의 전부가 우리 부처님을 향해서 달려든다고 하더라도 능히 제압할 수 있는 화광삼매화가 있습니다. 이것은 다음 시간에 말씀을 드리기로 하겠습니다.



부처가 되려면 마음속의 삼독 108번뇌가 완전히 다해야 되고, 그리고 다겁생의 죄업장이 완전히 소멸되어야 하고, 악과 습의 탁한 기가 완전히 빠져나가야 되고, 여러 생 동안의 원결(나쁜 인연)이 해결 되어야 하고, 은혜와 빚이 정리되어야 저 절대계에 자기의 불신이 생긴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말씀드리면서 우리 부처님의 위대한 이 실상이 여러분을 비롯해서 한국의 많은 불자님들이 알았으면 좋겠고, 학승들이(큰스님들이) 알아서 이제 이 부처님을 진짜로 믿고, 전번에 스님이 말씀드린 '영혼체 윤회설(영혼체 윤회론)'을 받아들이고 해서 이 불교가 다시 본래의 불교로 돌아가 가지고 힌두교도 흡수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위대한 부처님의 교리는 힌두교를 충분히 흡수할 수 있습니다. 또한 모든 종교를 전부 통합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이런 신불교 운동이 영산불교 현지사를 주축으로 해서 번져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영산불교 현지사를 많이 사랑해주시고 밀어주시기를 마지막으로 당부 드립니다.



여러분! 절대로 지옥 아귀 축생의 삼악도에 떨어지면 안 됩니다. 기어이 삼악도에서는 벗어나야 됩니다. 삼악도로 가면 안 됩니다. 지금 절대다수가 삼악도로 갑니다. 이 진짜 법문을 모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리고 여러분 모두가 윤회를 벗어나야 됩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간절하게 여러분에게 바라는 바 올 시다. 그리해서 모두모두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이라고 합니다.



※사회자 : 새로운 불교, 정법의 세계를 열어주는 감로의 법문을 해주신 우리 자재 만현 큰스님께 다시 한 번 큰 박수 올리겠습니다. 자재 만현 큰스님의 오늘 법문은 세계 불교사의 새 지평선을 여는 진리의 사자후입니다.



특히 오늘의 이 법문은 우리 교주 불세존과 다보부처님을 비롯한 오여래부처님, 그리고 삼천대천세계의 수많은 불․보살님과 성중님들께서 함께한 크나큰 붓다회상이었음을 여러분들께서는 가슴깊이 간직하시고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들의 업장이 참으로 많이 씻겨나간 희유한 붓다 회상임을 진정으로 믿어주시기 바랍니다. 저희들에게 이토록 감동적이고 역사적인 감로법을 설해주신 문수보살 법왕자 자재 만현 큰스님께 다시 한 번 큰 박수로 고마움의 예를 올리겠습니다. 終







자재 만현 큰스님 춘천법문
2010.5.6.목요일 



(BBS불교방송 제2회)
무아설 ․ 영혼체 이론


TV에 방영되기 때문에 군더더기 말은 생략합니다. 나는 지난 법회에 비아윤회설(非我輪廻說)을 주창했습니다. 그 동안의 무아설(無我說)은 잘못된 해석으로 인하여 우리 불교는 크게 낭패를 보았습니다. 똑같이 회교도의 침입을 받아서 엄청나게 탄압을 받고, 승려들이 살육을 당하고, 전각이 방화되고 했지만, 그런데도 힌두교는 살아남았습니다. 우리 불교도 힌두교와 함께 그렇게 무서운 침략을 당하고 짓밟혔지만, 우리 불교는 인도 땅에서 아쇼카왕, 칸슈카왕 등이 전 인도를 통일하고 불교를 전 인도화 시켰습니다. 그렇지만 그 후로 우리 불교는  힌두교에 밀리고, 흡수당하고 해서 설자리를 잃고 도망 나왔습니다. 이것은 분명한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나는 그 이유를 전번에 말씀드린 대로 무아설(無我說), 무아(無我)와 윤회의 주체, 여기서 찾았습니다.



여러분들이 아시는 바와 같이 불교는 삼법인(三法印), 혹은 사법인(四法印), 이러한 종래에 없었던(인도 철학계에 없었던) 새로운 사상을 내놨습니다. 그 중에서 특색이 무아(無我)입니다. 제법무아(諸法無我), 여기에서 이제 무아(無我)가 나옵니다. 얼마 전에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이 있습니다.



“무아(無我)가 잘못 해석 되었느니라. 자재 만현이 맞느니라. 자재 만현은 법왕자로서 이것을 바로 잡아야 하느니라. 이것이 불교가 망한 원인이 되느니라.”



2600년이 흐르도록 그 어떤 종파(교파)에서 큰스님들이(학승들이) 무아(無我)를 ‘그저 내(我)가 없다 하는 식(단순히 내가 없다 하는 식)’으로 해석을 하고, 심지어 그런 맥락에서 육도윤회를, 그러니까 지옥 천상 아귀세계 중음세계 극락세계 그리고 불보살까지 외부현상으로 보지 않고 마음속에서(의식차원에서) 이것을 해석해왔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알아듣기 쉽게 말하자면, ‘고민 번민 고통스러운 그 자리가 지옥이고, 그 번뇌 고민이 다 사라진 자리가 극락이다’ 하는 식으로 모두 유심화 시켰습니다.



지금까지의 불교가 그래왔습니다. 이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불교의 확실한 견해이고 주장입니다. 나는 여기서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자 합니다. 현지사 영산불교 교단이 탄생 된지가 지금 3, 4년밖에 안 됩니다. 이제 BTN TV에서 말하려고 했는데 1년 계약을 했기 때문에 다 말을 못했지요.



이제 TV나 라디오가 전 국민 1,200만 명 우리 불자들에게 시청이 되고 청취가 되기 때문에 이런 문제점을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이 다음번에는 이보다도 더 중량감 있는, 정말로 중요한 불보살의 적멸세계를 들고 나올 것입니다. 이 적멸의 세계도 2600년 동안 전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것은 다음 시간에 하기로 하겠습니다.



오늘은 전번시간에 이어서 무아설(無我說)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무아설(無我說)은 너무도 중요한 문제이자 불교의 몸통입니다. 이것을 바로 잡아야 됩니다. 그래야 불교가 살아납니다. 그렇지 않으면 위빠사나든, 밀교든, 선불교든 어느 나라 불교를 막론하고 불교는 사양길에 들것입니다. 말이 안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무아(無我), 단순히 내가 없다 하는 것은 말이 안 되어요. 부처님께서는 그런 생각에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그 생각이 아니고, 현상세계의 이 몸뚱이는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오온(五蘊)이라고 하는 크나큰 요소로 인연 따라 이루어진 거예요. 이건 확실합니다. 이 몸뚱이는 인연이 다하면 오온(五蘊)은 제각기 돌아갑니다.



그러면 공(空)이죠. 실체가 없지요. 현상세계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큰스님이(자재 만현) 그 심의식, 그 생각(사람 마다마다 생각을 지니고 있잖아요)의 뿌리를 관해보니까 엄청난 소식이 있어요. 본체가 있어요. 본체가 없으면 이 현상세계, 또 이 몸뚱이는 한번 생겨났다가 없어져버립니다. 그러나 본체가 있기 때문에 우주는 성주괴공을 반복하고, 우리 사람은 생로병사를 반복하면서 윤회를 하는 것입니다. 뿌리가(본체가)있어요. 기체(基體)가 있다고요. 이걸 모릅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 ‘바로 그것이 영혼체다’하고 '영혼체 이론'을 세상에 내놨습니다. 많은 반발이 있었지요. 그러나 그 누구하나라도 당당하게 나선 사람이 없지요.



학자들은 한계가 있습니다. 과학이나 철학을 하는 사람들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 한계를 넘어야 되는데, 그 한계를 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해석에 그칩니다. 무아(無我)이기 때문에 윤회의 주체를 부정하지요. 윤회의 주체를 부정하는 2600년 동안의 불교는 육도는 맞다고 해. 그러나 지옥이라든지, 천국이라든지, 아수라, 아귀세계라든지, 중음세계라든지, 또 해탈의 저 적멸세계인 극락세계라든지, 또 보살님이라든지, 부처님이라든지 하는 이것을 객관적으로 실재한 것으로 말하지 않고, 무아설(無我說)을 내가 없다고 해석을 하니까 그것도 전부 없는 것이고, 지금까지 이 불교가 그것들을 마음차원에서(의식차원에서) 파악을 해왔다 그거예요. 이것이 문제예요.



그러니까 그러한 사상이 불교라면 인도국민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거예요. 말이 되느냐 그거예요. 무아(無我), 아무것도 없다. 이게 말이 됩니까? 현상세계에서는 무아(無我)입니다. 현상세계는 실체가 없지요. 그러나 이 생각의 근원은(토대는) 있더라 그거요. 본체가 엄연히 있더라 그거요. 그런데 왜 이것을 몰랐느냐?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학승들이 이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한계라는 것은 현상세계와 본체계입니다. 현상세계에서 본체계를 뚫고 들어가 봐야 되는데, 그런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부족하지요.



이 다음시간에 적멸의 세계를 들춰낸다고 했습니다. 눈을 떠서 적멸의 세계까지를 봐야 되는데 그러지를 못했어요. 그러지를 못하고, 부처님의 이 무아설(無我說)을 잘못해석 해버렸다고요. 잘못 해석했어. 여러분, 이게 엄청나게 중요한 문제입니다. 엄청난 문제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뭣 때문에 살아요? 나(我)가 없으면 행위 하는 주체도 없고, 생각하는 주체도 없고, 감정을 느끼는 주체도 없다고 하면 말이 됩니까? 이건 말이 안 됩니다.



그러면 죽어서 갈 놈도 없어요.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다시피, 다시 사람 몸을 받아 올 때는 부모가 교합할 때(수정할 때) 영혼체가 들어가야 되어요. 영혼체가 안 들어가면 안 됩니다. 본체가 안 들어가면 안 되어요. 여러분에게 말씀드렸지요. 지금 그것을 모릅니다. 이 핵폭탄을 능가하는 엄청난 발언인 이 선지식의 말씀을 뭉개버린다고 하면, 그런 사람들은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마땅히 무간지옥행입니다. 무간지옥에 가지요. 왜 그렇게 불교를 훼손합니까? 당초 그렇게 위대한 불교를 왜 그렇게 짓밟아 버립니까?



이런 현지사 영산불교의 사상을 우리 불자들뿐만 아니라 세계의 많은 불자들이 들어야 됩니다. 나는 그러한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불교와 인연 있는 수많은 착한 우리 단월들이 살아납니다. 악도에 가지 않습니다. 무아(無我)를 잘못 해석해 가면, 이거 적당히 살아야지요. 나(我)라는 실체가 없다면, 나(我)라는 자아(自我)가 없다면, 주체가 없다면, 죽어서 가는 것(곳)도 없고 오는 것(곳)도 없으니 뭐 적당히 살아야지요.



그런데 지금 불교가 제사(천도재)는 왜 합니까? 부처님, 보살님한테 공양은 왜 드립니까? 앞뒤가 맞지 않잖아요. 그러면 안 됩니다. 이건 불교가 아닙니다. 내가 바른말을 한다고 거부감을 가지고 도저히 방영을 못한다고 하는데, 그러면 안 되지요. 한번 들어봐야지요. 지난시간에 ‘비아(非我)가 윤회의 주체다’하고 결론을 냈습니다. ‘비아(非我)가 윤회의 주체다. 영혼체가 윤회의 주체다.’



오늘은 스님이 영혼체설에 대해서 이 세상을 향해 처음으로 자상하게 말씀드릴 것입니다. 여러분들한테는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보다 먼저 우리 부처님께서 나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간단하게 받아 적은 것을 여러분한테 읽어드리겠습니다.



“무아(無我)는 잘못 해석한 것이니라. 나는 무아(無我)를 이야기했지만 저세상이 없다고 아니했다. 살아있는 것, 언젠가 죽는다.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것이라 생각하는 것을 말했다. 하늘에 태어나거나 인간으로 오길 말했노라(처음 법문을 그렇게 했었어요. 그걸 생천설이라고 합니다). 태어나는 것도 고통이고, 죽는 것도 고통이다. 육도윤회에 돌면서 고생하는 것을 끊어주기 위해 무아(無我)를 이야기 했노라. (전번시간에 스님이 부연설명을 했을 거예요. 또 의미가 다른 말씀을 하셨습니다) 있다 없다를 확실하게 알면서 있다 없다를 초월한 자리, 더 나아가서 대적정삼매에 들어 무아(無我)의 환희는 붓다의 경계이니라. 여기까지 공부 못하고 법을 모독 능멸하여 중생을 오도한 죄는 무간지옥에 가느니라. 붓다와 법은 영원히 멸도하지 않느니라.”



이거 녹음이 되어 있으니까 테이프를 꼭 구입해서 우리 부처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많은 말씀이 있지만 간단한 말씀을 여러분한테 소개했으니까 우리 자재 만현스님의 전번 법문에 이어서 오늘 법문을 이해하게 되실 겁니다.



처음으로 지금 때가 되어서 내가 이 세상에 영체설을 밝힙니다. 영혼체(영체)이론입니다. 영산불교에서 오늘 공식으로 이 세상을 향해서, 1,200만 불자를 향해서, 세계 3억~5억의 우리 불자들을 향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이걸 여러분들이 들으시면 정리가 됩니다.



(1) 영혼체는 4개로서 다중구조를 지니고 있다. 즉, 영혼체는 밀도와 진동수가 다른 4번, 3번, 2번, 1번의 네(4)체(몸뚱이)로 겹쳐져 있다. 단, 4번에서 1번 영혼체로 갈수록 밀도가 높아진다.



(2) 4번 영혼체는 육체와 1․2․3번 영혼체를 접합하는 구실을 한다.



(3)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덩어리이다.



(4) 영혼체를 줄여서 영체라 부르기도 한다. 자이나교에서, 힌두교의 어느 학파에서,《아함경》에서는 식신(識身, 業身)이라고도 하는 그런 기록을 봤습니다. 과거생 자기의 의식과 기억을 지닌 생명체이다.



(5)물리학에서 말하는 소립자보다도 더 작은 초미립자로 되어있다. 초미립자이기에 입자와 파동의 양면성을 갖고 있다. 파동으로 보면 극히 파장이 짧은 전자파에너지 생명체이다.



이상 다섯 가지는 힌두교에서도 이미 BC1000년 경, 그러니까 3000년 전에 그들 최고의 수행자(대성자)가 이를 보았습니다. 이 정도를 알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아래와 같이 깊이 파헤치지는 못했다. 붓다의 경지로 올라야 우리 영혼의 실체를 완벽히 규명하게 된다. 19세기 신지학에서 힌두교의 이 영혼의 구조까지를 이해하고, 지금 이를 원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저것들이 모르는 영산불교의 영혼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들이 도저히 알 수 없었던 영혼체에 대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1) 인간에게는 누구나 행위의 주체요, 윤회의 주체인 영혼체라는 영적실체가(주인공이) 있다.



(2) 영혼체란 인간의식의 근거가(토대가) 되는 이 영혼을 담은 그릇이라는 말이다. 영적인 인간모습이다.



(3) 4번 영혼체는 이 몸뚱이와 100%닮았다. 3번, 2번, 1번 영체 역시 근간은 같은 닮은 형이다. 근간이 같다. 4번 영체의 수명은 한시적(限時的)이다. 이 몸이 명부로 들어가게 되면 그 4번 영체는 커트(cut)당합니다. 아시죠? 그 말이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 몸과 거의 같은 수명을 합니다. 그러나 비명(非命)에 죽게 되면 그 4번 영체로 살아가는데, 천도를 올린다든지 할 때 윤회의 주체이자 주인공인 1․2․3번 영혼체를 명부로 넣어주잖아요. 4번 영체(영혼체)는 그로부터 2, 3년 정도 있거나 화장(火葬)을 하게 되면 곧 소멸 됩니다만, 그렇지 않으면 그 4번 영혼체는 유령이 되어서 자기가 살던 집, 걸어 다녔던 낯익은 길, 자기의 묘지, 자기 위패가 기록된 영구위패로 모셔놓은 절을 왔다 갔다 합니다. 그렇게 되면 젊은 자식을 잃은 어머니가 그 유령을 보면 어떻게 됩니까? 그래서 우리 현지사 천도재에서는 그 유령을 산화시켜줍니다. 그런데 요즘은 별로 안 해줍니다. 그것은 부처님께서 해주셔야 되기 때문에 그런 수고까지는 청하지 않습니다.



(4) 인간, 동물의 태중(胎中)에 들 때에는 이제 4번 영체가 생깁니다. 1․2․3번 영혼체는 안 그럽니다. 이것은 반드시 뭉쳐 다니는데 죽지 않습니다. 영원히 불사(不死)입니다. 4번 영체만은 인간이나 동물의 뱃속으로 들어갈 때에는 그때부터 생겨서 자랍니다.



(5) 소위 12띠 동물이면 영혼체가 들어간다. 조류 어류의 일부에도 그들 영혼체가 든다. 여러분 아시죠. 곤충류 벼룩 이(louse)와 같은 해충, 거머리 등과 같은 미물들, 식물 광물, 그리고 지수화풍 공(空)에는 영혼체가 들 수 없다. 이들은 윤회의 대상이 아니다. 자연생 자연사한다. 그러나 자이나교에서는 다 들어간다고 했어요. 잘못 본 것이다.



(6) 1번 2번 3번의 영혼체는 항상 뭉쳐 다닌다. 이것이 중생들의 주인공이다. 그 중에서 1번의 영체는 인간의 본체다. 힌두교에서 이야기하는 아트만 정도이다. 힌두교에서는 아트만이 윤회의 주체라고 하지만, 여기 영산불교에서는 아니다 그럽니다. 윤회의 주체는 1․2․3번 영체가 생겨야 됩니다. 1․2․3번 영체하고 4번 영체가 생길 수 있는 업을 지어야 그것이(그 몸뚱이가) 윤회하는 주체가 됩니다. 1번 영체를 가지고는 절대로 윤회할 수가 없습니다. 1번은 본체계입니다. 본체계에 있는데 왜 윤회 합니까? 업이 있어야 윤회를 하지요. 그래서 업을 지어 감으로서 2번 영체가 생기고, 3번 영체가 생기고, 4번 영체가 생겨요. 이것이 윤회를 하는 거예요. 이것이 윤회를 해.



(7) 1번, 2번, 3번 영혼체의 수명은 무한하고 영원하다. 1번 영혼체의 수명은 무시로부터 있었고, 영원토록 불사(不死)한다. 이것은 엄청난 새로운 소식입니다. 이 영혼체는 바로 윤회의 주체이다. 즉, 이것은 다겁생을 내려오면서 지은 업 때문에 중생들의 영혼체 색깔은 대부분이 거무튀튀하다. 업장은 태산만하다. 마치 숯덩이와 같고, 진흙덩이와 같아서 영산불교에서는 이를 비아(非我)라고 한다. 비아(非我), 나(我)가 아니다. 비아(非我)라고 한다. 바로 이것이 윤회의 주체가 된다. 비아(非我)라야 윤회합니다. 아트만과 같이 지고지순하고 행위 하지 않는 것은 절대 윤회를 못합니다. 2번 3번 4번이 붙은 비아(非我), 숯 덩어리가 된 이놈, 이 업 때문에 육도를 윤회 하는 거예요.



(8) 이 영혼체 3번으로 하늘 천국에 가서 난다(하늘 천국에 갈 때에는 3번 영혼체가 간다). 이때는 2번 영혼체와 1번의 영혼체는 그 안으로 겹쳐든다. 성중하늘은 2번으로 간다. 이때도 3번 1번은 그 안으로 겹친다. 1번 영혼체로 극락에 왕생한다. 3번 2번의 영혼체는 그 안으로 겹친다.



(9) 영혼체는 그 사람의 영격에 따라 빛(색깔)을 띄우고 있다. 오라와는 다르다. 오라(aura)는 영혼체의 색깔이 그 사람의 몸뚱이를 거쳐나온 색깔이다. 지옥 등 악도로 떨어질 사람은 영혼체가 거무튀튀한 색깔이다. 하늘이나 인간의 몸을 받아 올 사람은 하얀색이다. 보살은 아침 햇빛깔이고, 불과를 증한 이는 눈이 부셔서 볼 수 없는 햇속 빛이다. 그러면서 안과 밖이 투명하고, 영롱하고 아름다운 무량억종광 빛이다.



(10) 부처님은 수행자의 다겁생의 업장을 씻어주시고, 또 그것을 소멸하실 수 있다. 그 영혼체에 더덕더덕 붙어있는 그런 업장들을 부처님만이 씻어주시고, 소멸도 하신다 그거예요. 유대 신비주의 카발라에서 자기 신의 애제자의 수행을 돕기 위해 그들의 하늘 최고신은 빛을 정수리에 쏟아 부어서 빛의 몸으로 만든다고 한다.



그래서 영원히 죽지 않는 자기의 천국으로 데려간다. 그러나 우리 불교의 교주이신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수행자의 영혼체를 꺼내어서(꺼내는 것부터는 그들은 할 수 없다. 영혼체를 끄집어내는 것은 오직 부처님만이 하신다) 끈끈이 막으로 각 영혼체가 붙어 있는 것을 무량광으로 씻고 닦아 4영혼체를 분리 한 후(그들은 분리도 못한다.



세계의 어떤 종교의 교주도 이 일은 못한다), 몸뚱이까지 다섯 개의 영혼체 각 정수리 위에 부처님이나 오여래부처님이 올라가서 억종무량광으로 쏟아 붓는다. 먹물 같은 업장의 찌꺼기가 내를 이룬다. 이 정도 되면 지옥은 가지 않습니다. 이건 순 타력이지요. 자력수행 갖고는 못합니다. 이러기를 여러 번 작업  함으로서 아라한을 보살로 만든다. 이러한 작업은 부처님과 오여래, 그리고 문수 보현 관음 지장 정도의 기라성 같은 붓다만이 할 수 있다.



또 영혼체를 감은 쇠토막 같은 업장은 아주 지중한 업을 짓게 되면 그렇게 되는데, 석가모니부처님 만이 이를 끊어 주시고, 그 끊겨진 쇠토막들은 삼매화라고 하는 불 속으로 던져 녹여버린다. 녹여 소멸시켜 주신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또 그 영혼체의 쇠토막이 다시 붙기 때문에 그렇게 까지 해주신다. 자력을 기반으로 하고, 타력 수행만이 보살과 붓다가 될 수 있다는 말의 뜻이 여기에 있다.



여기부터는 밀장이어서 여태 말을 못했지만, 지금 현재 이 불교에서 영혼체를 부정하기 때문에 오늘은 이 부분까지 과감하게 말씀을 해드립니다.

(11) 업이 지중한 이의 영혼체는 부처님도 몸에서 꺼내기 조차 어렵다. 그 영혼체는 다겁생으로 내려오면서 지은 업장이 두터워 태산만 하고, 숯검정 같고, 영혼체 끼리는 껌과 같이 달라붙어 있으며, 몸뚱이와도 하나로 붙어 있어서 꺼내어 씻는 것조차도 어렵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당신의 금단을 영체에게 먹인다(영체 속으로 믹스시킨다). 한의원에서 만드는 환약 같은 금단이라고 있어요. 각 부처님마다 이런 신비스러운 약이 있습니다. 영체 속으로 그걸 흡수시킴으로서 밖으로 꺼낼 수 있다. 꺼낸 다음 네(4)영체를 억종광명의 빛으로 분리하신다. 이런 과정을 거친 수행자는 지옥 등 삼악도를 면한다. 이때 빠져나가는 먹물 같은 오물은 도랑을 이룬다.



(12) 아까 말씀했지요. 보살의 법위부터는 영혼체를 꺼내어 놓으면 즐거워서 뛴다. 4영혼체를 분리해 놓으면 각각 즐거워서 환희용약한다.



(13) 불과를 이룬 대성자의 영혼체는 스스로 나와서 4개의 영혼체가 독립적으로 뛰어 놀고, 공중이나 물속에서 자유자재로 활동한다.



(14) 아라한까지의 영혼체는 그 사람 몸뚱이의 옆으로 나오고 들어가지만, 보살 이상의 영혼체는 앞으로 나오고 앞으로 들어간다.



(15) 불과를 이룰 수행자나, 불과를 이룬 이의 영혼체는 절대계 목욕탕의 가장 위의 탕인 (약사여래부처님이 계신 저 약사궁에는 삼탕이 있는데) 일탕에서 영혼체를 분리해서 목욕을 시킨다(목욕을 한다).



(16) 불과를 이룬 대성자가 잠을 잘 때,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오시면 곧 몸 밖으로 영혼체가 빠져나와 오체투지 인사를 한다.



(17) 불과를 이룬 이는 열반에 들 때 1번 2번 3번 4번 영혼체는 바람같이 몸을 빠져나와 절대계의 자기 불신으로 들어가 계합한다.



(18) 과거생에 불과를 이룬 붓다가 사람 몸을 받아 오실 때는 자기불신 속 4영혼체가 어머니 뱃속으로 든다.



(19) 불과를 이룬 붓다는 업이 없다. 악연도 모두 단절되어 있고, 원결도 없고, 갚아야할 빚도 없기 때문에 태어나면 그 용모가 32상을 갖추고, 지혜가 있고 자비스럽다.



(20) 어머니 뱃속에 있음을 알고, 이 세상에 나옴도 안다. 소위 생이지지한다.

이상 스무 가지입니다. 위의 다섯 가지는((1)~(5)) 자이나교나 힌두교에서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후 많지만 스무 가지는 우리 영산불교에서 이 세상에 처음 발표한 내용입니다.



이야기입니다. 여러분들이 영혼체에 대한 이해를 충분히 하시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두 가지 실화를 소개하겠습니다. 1924년이니까 약85년전입니다. 진주시 옥봉동에 사는 '김재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진주시 옥봉동이라는 동이 있는가 봐요. 그 김재이라는 노인은 80살을 먹었어요. 또한 진주시 비봉동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김재이라는 이름을 가진 38살 먹은 사람이 있었어요. 그런데 비봉동에 사는 38살 먹은 김재이라는 사람이 저녁에 잠을 잡니다. 꿈이라고 봐도 되지만 꿈이 아닙니다.



형사 같은 이가 와서 ‘좀 가야할 일이 있으니까 나를 따라 가자’그러더래요. 그래서 그 형사를 따라갔습니다. 어디만큼 갔는데, 어느 큰 관공서(경찰서)같은 곳으로 들어갔다 그거예요. 여기에 들어가라고 하면서 밀어 넣는데 보니까 이미 20여명이 와있더라 그거요. 그런데 한참 있으니 밖에서 소란스러운 말소리가 나서 가만히 들어보니까 비봉동에 사는 38살 먹은 김재이를 내보내라 그거예요. 왜 옥봉동80노인  김재이를 안 잡아 왔냐 그거라.



그래서 비봉동 38살 김재이가 석방되어 자기의 집으로 왔다 그거예요. 와서 시계를 보니까 새벽 2시예요. 그래서 아침 일찍 종을 시켜서 옥봉동 80노인 김재이씨 집을 가보라고 했어요. 가봤더니 거기에 초상이 났어. 그래서 ‘김재이라는 노인이 몇 시경에 운명하셨오’ 라고 물으니까 ‘새벽 3시쯤 됩니다’ 라고 하더래.



따라가고, 잡혀가고, 또 오고 한 놈이 뭐죠? 영혼체입니다. 4번 영혼체. 4번 영혼체 속에 3번 2번 1번이 겹쳐있습니다. 4번 영혼체는 우리 사람과 털구멍 하나 틀림없이 100% 닮았다고 했지요. 1․2․3번 영혼체도 닮아 있습니다. 사실은 1․2․3․4번 영혼체가 닮았습니다. 그런데 올라 갈수록 조금씩 모양이 다르지만 근간은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에 천도되어 가지고 올라간 어머니 아버지는 척 보면 알아요. 지옥에 있었는데도 알아. 그런데 천도를 몇 번 하니까 하늘에 올라가셨어요. 우리의 경우입니다. 아버지인지 어머니인지 그냥 알아. 또 우리 어머니가 성중하늘을 가고 극락세계에 이제 가셨잖아요. 아주 잘생기고 빛이 나고 하는데도 우리 어머니가 이렇게 아는 거예요.



그걸 근간이라고 하는데, 근간은 변하지 않습니다. 근간을 가지고 그냥 알아봐지더라. 그런데 대승불교쪽인 유식학, 부파불교에서는 무아설(無我說)하고 윤회의 주체 간에 모순이 없도록 이론을 창출하려고 굉장히 노력을 했습니다. 그 결과 심상속 이론이 나오고, 푸드갈라 이론이 나오고, 무슨 근본 식이 나오고... 많이 나오잖아요. 대승불교 쪽으로 와서도 역시 그렇습니다. 아까 스님이 말씀했던 것처럼 가령, 지옥이라든지, 윤회의 세계(육도의 세계)라든지, 또 적멸의 세계(해탈의 세계)라든지, 불보살님이라든지, 심지어 선불교에서는 삼보라든지 붓다의 삼신설이라든지 하는 그 전부를 마음차원에서 해석해버려요. 이래서는 안 된다 그거예요. 이렇게 되면 불교가 망한다는 것이지요. 그것을 누가 믿겠어요. 이렇기 때문에 인도에서 쫓겨나왔는데 말입니다.



그러면 영산불교에서 공식적(대내외적)으로 내가 '아난이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내말을 어떻게 합니까? 그런 사람이 아니고는 말할 수 없는 거예요. 그런 사람이 아니고는 저 적멸의 세계라든지, 대적정삼매에 들 수가 없는 거예요.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우리 신도 중에서 어떤 남편 이야기예요. 성명은 생략합니다. 어떤 모 사장이 50대에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어요. 그 부인 되는 분이 선근이 있어요. 그래서 우리 영산불교를 책자를 통해서 알고, 우리 신도가 된 지가 2, 3년 됩니다. 49재를 의뢰해왔어요. 그 부인되시는 신도분이(보살님이) 대단히 착하고 진실하고 전생에 선근이 있어요. 그래서 신경을 써서 천도재에 임했습니다.



그 남편의 49재는 그분이 살았을 당시에 다녔던 절에서 했으니까 아마 49재가 지나갔을 거예요. 우리 현지사에서 새로이 천도재를 하면서 보니까 무주고혼으로 있어요. 명부를 못 들어갔어요. 이런 이야기는 지금의 불교가 전혀 모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들어보지 못했으니까 돌았다든지, 묘한 말을 한다든지 해가지고 색안경을 쓰고 본다 그거예요.



지금의 불교가 이렇게 되어버렸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 무주고혼이 된 그 남편을 붙들어 왔지요. 붙들어 오는 것도 정말로 능력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아시죠? 그 남편 되시는 분은 자수성가를 해가지고 돈을 많이 벌었어요. 그러니까 사랑하는 처자가 있지, 돈이 있지 하니까 죽어서 무주고혼이 되는 거예요.



무주고혼이 되는 4가지 이유가 있다고 했지요. 어쨌든 무주고혼이 되어있어요. 그래서 잡아다 놓고 ‘당신, 명부를 들어가라. 명부로 들어가지 않으면 당신이 지금까지 지은 업이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죽으면 저 불바다 지옥으로 간다. 그러니 말을 들어라’ 하니까 말을 잘 안 들어. 이 몸뚱이가 그대로 가니까 자기가 죽은 줄도 몰라. 전혀 모릅니다. 모르는 거예요. ‘당신은 죽었다. 자, 봐라.’ 그래가지고 큰스님의 영혼체가 큰스님의 몸에서 쏙 빠져나와가지고 보여줍니다.



그 영혼체는 빛덩어리이기 때문에 눈이 부셔서 상하니까 빛을 흡수해버립니다. 그러면 빛이 아롱아롱해요. 보여주면서 이것이(영혼체가) 바로 내 몸속에서 나왔잖느냐. 당신도 그래. 지금 당신도 그랬어. 죽었는데 지금 죽었다는 것을 몰라. 나 들어간다 하고 쏙 들어가거든. 또 나가고 하니까 이제 알아.



그제야 ‘아! 그렇습니까’라고 한단 말이에요. ‘이 큰스님 말을 안 들으면 당신은 업이 지중하니까 저 불바다 지옥으로 간다’고 하니까, ‘아! 그러냐’고 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들어가거라. 들어가고, 저 사랑하는 처자를 위해서 네가 몰래 감춰두었던 돈, 모든 통장(사후에 형제들 끼리 재산다툼도 있잖아요. 그걸 막아주기 위해서입니다)등 모든 것을 갖다 줘라.



그러니까 그 사장이 모든 통장이며 도장, 자기의 통장이며 도장 등 모든 것을 갖다가 자기 부인한테 안겨주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지금 한 몇 십일 동안 부인 몸속에 들어가 있었는데 그 기를 빼라. 그것을 빼야 됩니다. 그래야 환영(幻影)이 없어집니다. 주~욱 빼가지고 한 짐 짊어지고 명부로 갔어요. 그 부인 되시는 분이 착하고, 신심이 있고, 선근이 있어서 그 남편의 천도재를 몇 번 해서 지금 제3하늘에 있습니다.



우리 신도분들, 이 법문을 듣고 계시는 우리 불자님들, 영혼체라는 것이 우리 인간 중생의 윤회 주체입니다. 윤회의 주체입니다. 이 윤회의 주체를 아무도 모릅니다. 앞에서도 말씀했듯이 깊이 공부를 많이 하고, 착실히 하고, 바르게 하고, 그리고 선근공덕을 지어야 현상세계에서 본체계로 들어갑니다. 윤회에서 벗어난다는 말이어요.



그런데 이 윤회에서 벗어나는 분들이 얼마나 됩니까? 혼자 공부해가지고는(자력으로는) 어렵습니다. 자력으로는 어려운 거예요. 자력의 한계가 윤회를 벗어나는 아라한 자리인데, 아라한 되기가 어려운 거예요.



다만, 부처님의 가피로(위신력으로)해서 저 본체세계(적멸의 세계)로 갑니다. 보살이 되고 그러는 것입니다. 우리 부처님의 능력은 정말 무한하더라 그거예요. 왜 그러느냐? 이제 적멸의 세계를 이야기할 때 말씀을 드리겠지만, 우리 부처님의 능력은 상상할 없습니다. 그래서 '우주적인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우주적인 능력을 지니고 계시더라. 지금 그 많은 붓다님들을 전부 없다고 하네. 상징으로 봐버려요. 비유로 봐버려. 그런 세상이 되어버렸어.



그런 불교가 어떻게 크겠습니까. 진리 아닌 것은 죽는 거예요. 진리는 반드시 살아나는 거예요. 우리 현지사 3, 4년 밖에 안 되었지만 사방에서 엄청나게 시기 질투가 심합니다. 이게 TV석상이라서 자세히 말을 못하는데, 외압이라고 할까 시기 질투가 너무도 심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성장해왔잖아요. 앞으로 정말 클 것입니다. 아무리 사방에서 우리가 잘 되는 것을 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성장할 것입니다. 우리 부처님 말씀이, 정말로 진짜 부처님 사상이 널리 포교 되어야 합니다. 널리 포교 되어야 됩니다.



우리 현지사 착한 우리 단월님들, 3년 5년 다녔잖아요. 그래서 업장을 많이도 씻었잖아요. 업장을 씻는 그 부분을 전혀 모릅니다. 저쪽에서는 부처님도 없다고 하는데, 무슨 업장을 씻는다고 해? 전혀 모릅니다. 이 방송, 이 말을 들으면 아마 의아해 하고, 어떤 선근이 없으면 욕하고 그러겠지요. 그러나 그런 업을 지으면 안 됩니다. 이것은 법을 능멸하고 모독하는 것입니다. 그 업은 오역죄보다도 더 무서운 거예요. 법을 능멸하고, 붓다를 모독하는 것은 무서운 업이랍니다.



무아(無我), 범어로는 아트만(atman) 앞에다가 an을 더 붙여줍니다. anatman그럽니다. 무아(無我, anatman), 현상계의 무상한 몸이 내가 아니라는 것이야.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이야. 우리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을 뿐이어. 그런데 왜 무아(無我)를 갖다가 단순하게 ‘내가 없다’라고 해석 해가지고 불교를 그 인도 땅에 설자리가 없도록 만들었느냐구요. 이 위대한 불교가(종교가) 이미 세계화 되어 있어야지요. 세계화 되었어야지. 그러나 이런 법문을 듣고, 깊이 스스로 반성하고 참회하고 한다면, 우주적인 종교인 진짜 불교가 원상대로 복원 될 것입니다.



심지어 저 사람들은 석가모니부처님 같은 위대한 부처님도 반열반에 드시면 공(空)과 계합한다 그래요.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공(空)과 하나로 되어버렸으면 어떻게 됩니까? 다시 오겠습니까? 올 수가 없지요. 공(空)과 하나로 되어버렸어. 인격적인 자아가 소멸되어 버린 거예요. 소멸되었다고 하면 어떻게 됩니까? 부처님께 다시 못 오십니다. 이렇게 해석하면 안 되지요. 큰일 날 해석이지요. 거듭 말씀을 드립니다. 본체세계(적멸세계)는 상락아정입니다.



상락아정이라고 해요. 거기는 무상(無常)하지 않아요. 상(常)이어요. 현상계인 여기는 실체가 없고, 인연이 모여서 이루어지고, 또 인연이 다해서 흩어지면 실체가 없지요. 그건 현상세계에서 이야기하는 말이어요. 그건 맞아. 그러나 적멸세계까지 들어가 봐. 거기는 아(我)입니다. 유아(有我)예요. 거룩한 보살님들이 계셔요. 부처님들은 정말로 절대계에 계시고요. 또 현상세계 윤회 안의 지옥도 영혼체가 가는 것이니까 가서 벌 받고, 또 하늘은 3번 영혼체가 간다고 했지요.



 3번 영혼체가 하늘 천인으로 있단 말입니다. 그런데 유식에서는(대승불교에서의 유가행파인 법상종) 제8아뢰야식이 윤회의 주체가 된다고 합니다. 여러분, 전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식(識)은 절대로 윤회의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스님이 무슨 비유를 했느냐 하면, 식(識)이 극락을 간다? 식(識)은 느낌도 없고, 생각도 못하고, 판단도 못하고 그럽니다. 그 모양도 없는 식(識)이 떨어져 나가가지고 극락을 가서 산다? 식(識)이 행위 한다? 행위 하지도 못해. 식(識)은 과보를 받지도 않아. 다만 이 근(根)이 있어야 돼. 이 몸뚱이가 있어야 되는 거예요. 몸뚱이가 있고, 경계가 있어야 식(識)이 생기는 거예요. 식(識)이 활동을 하는 거요.



그런데 이 몸뚱이가 없다고 해버리면 영혼체(영혼을 담은 그릇, 영혼을 담은 몸뚱이)가 벌을 받고 또 극락에 가서 ‘햐! 여기는 정말로 환희로구나’한단 말이에요. 붓다가 되면 아까 무아속 환희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힌두교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브라만은(梵은) 100^7(100의 7승)의 환희 속에 있다 그러거든요. 그러니까 인간들이 누릴 수 있는 최고 쾌락의 100배에다가 지수 7승을 해줘요. 그런데 우리가 볼 때에는 그게 참 우스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붓다는 그럽니다. 범(梵)은 붓다가 아닙니다. 자기들의 말로 하자면 범(梵)은 이 현상계를 낸 소위 창조주이지요. 창조주는 없습니다. 힌두교 식으로 말하면 현상계를 낸 창조주입니다. 이 범(梵)은 공(空)입니다. 공(空)을 인격화 시킨 것이 범(梵)이어요. 범(梵)은 인간이 누리는 최고 행복, 최고 쾌락의 100^7이다라는 것입니다. 붓다의 무아속 절대세계에 들어가는 대적정삼매의 환희가 그 정도입니다. 무아(無我)를 잘못 해석 했지요.



다시 여러분들한테 바른 정의를 말씀드립니다. 현상계의 존재인 나는 무상하고, 실체가 없는 오온으로 이루어진 집합체에 불과해. 그렇지요.  무아(無我)는 실체로서의 진정한 나(我)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현상계의 나(我)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으로 무아를 이야기하신 거예요. 그러지, 나(我)라는 것은 완전히 없는 것이다. 실체가 없는 것으로 현상계의 시각에서 보지말라 그거예요. 현상계의 시각에서 불교를 다루지 마라 그거요. 적멸세계와 본체계와 현상세계를 아우르는 시각에서 불교를 다루어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이해하시겠습니까?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무아(無我)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승경전에 나오는 그 수많은 불보살을 어떻게 해석 합니까? 어떻게 해석하는 줄 아십니까?《화엄경》《법화경》이 진짜 법문인데 상징, 비유로 해석합니다. 부처님 반열반 후에 두 세 사람의 학승을 꼽으라면 용수, 무착, 세친 같은 분들을 꼽을 거예요. 무착 같은 분이 윤회의 주체를 알려고  하면서 무아(無我)를 갖다 놓기도 했지만, 윤회의 주체가 있어야 되겠거든요. 그런데 없다고 하니까 이거 도저히 알아낼 수가 없어서 자살을 결심했답니다. 자살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친구의 권유로 계속 공부를 해가지고 삼매에 들어 도솔천에 가서 미륵부처님한테 유식의 이론을 공부해가지고 왔어요.



이분을 유식학의 조(祖,鼻祖)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8아뢰야식 갖고는 윤회를 못합니다. 식(識)으로는 윤회가 안 됩니다. 식(識)은 윤회의 주체가 안 됩니다. 몸뚱이가 있어야 됩니다. 이걸 몰랐어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지금의 불교는 이대로 가면 안 됩니다. 이대로 가면 안 됩니다. 크게 공부해서 대선지식이라는 분이 출세했다고 하면 법상에 올려놔야지요. 왜 내려 버리려고 합니까? 그분의 말씀을 경청해야지요. 들어봐야지요. 정말로 한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불자들은 앞으로 모두모두 삼악도를 벗어나야 됩니다. 최소한 하늘을 가야 됩니다. 최소한 하늘, 그리고 인간세계를 왔다 갔다 하다가 부처님 회상을 만나서 윤회를 벗어나야 됩니다. 여러분, 그걸 잘 아시죠. 그런데 종래의 불교는 안 그럽니다. 붓다도 없고, 보살도 없고, 극락도 없고, 지옥도 없고, 귀신도 없어요. 영혼이 없다고 딱 성명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교화할 수가 없습니다. 도덕 윤리를 주장할(선창할) 기반을 잃어버렸는데, 어떻게 그 윤리 도덕이 가치가 있습니까? 이렇게 되면 안 되지요.



다음 시간은 본체, 적멸의 세계를 이 세상에 처음으로 밝힐 겁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 불교는 정말로 위대한 우주적인 종교로 거듭납니다. 우리 부처님은 붓다 중의 붓다이시고, 사생의 자부이시고, 삼계의 대도사임이 분명합니다. 지금 그것을 모릅니다. 입으로는 그렇게 이야기하지요. 그런데 없다고 하는데요. 또 공(空)과 계합 해버렸다는데요. 공(空)과 계합해버리면, 그 인격적인 그분이 공(空)과 계합해버렸으니까(흡수당해 버렸으니까) 이제 완전히 소멸되어 버렸어. 정말로 한탄할 현재의 불교입니다. 여러분, 꼭 영산불교를 사랑해주시고, 우리 석가모니부처님을 항상 놓치지 마시고(염불 하시고), 우리 교단에서 권하는 공부 잘하시고, 선근공덕 쌓으십시오. 여러분들은 대부분 하늘에 간다고 그랬어요. 3년 정도 씻겨주고 씻겨주고 복을 주었기 때문에 앞으로 부자 된다고 했어요. 여러분, 앞으로 부자 됩니다. 오늘 이 말씀을 유념하십시오. 사랑해주세요. 스님 따라서,



나무 영산불멸 학수쌍존 시아본사 구원실성 석가모니불...

천상천하무여불 시방세계역무비 세간소유아진견 일체무유여불자

고아일심귀명정례 終





 현지사 자재 만현 큰스님 춘천 법문
2010.4.21.수(음3.8)


비아설(非我說) - 비아(非我)가 윤회한다


오늘 처음 오신 분에게 박수로 환영해 주세요. 오늘따라 여러분의 얼굴을 보니까 더욱 사랑스럽고 예쁩니다. 그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스님은 인터넷도 모르고 컴퓨터를 할 줄 모릅니다. 모르는데, 잠깐 들여다보니까 우리 신도 분들의 의식수준이, 불교를 이해하는 수준이 어느 사찰 신도들과 비교를 하더라도 상대가 안 되고, 성직자 교직자 불교학자들 이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억울하고 억울해도 절대로 이성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국가의 법질서, 법테두리 안에서 당당하게 불자의 본분을 지키면서 그렇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내 법문이 끝나면 원장스님께서 경위의 말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선 우리가 이겼습니다. 오늘 이 법회에 녹화를 하러 온다는 것을 우리가 거부했습니다. 이다음부터 합니다.



여러분, 아셔야 됩니다. 무엇을 알아야 되느냐? 불교가 대단히 왜곡되어 있습니다. 2500년을 내려오는 동안에 많이 왜곡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전번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해서 나는 그 왜곡된 부분을 하나하나 짚고 넘어간다고 했습니다. 첫 번째 폭탄이 무아설(無我說)입니다. 이것은 비아설(非我說)로 대체(代替)해야 된다 하는 바램입니다. 여러분, 이 발언은 아주 큰 핵폭탄과도 비교가 안 되는 얼마나 무서운 발언인 줄 아십니까?



불교의 역사가 2600년이지요. 깊은 선정에서, 더 깊은 고요에서 볼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무량겁 전이죠? 그건 우리가 다 아셔요. 이 점만 해도 대단하십니다. 어쨌든 우리가 이 인간세계에 사람 몸을 받아와가지고 지금 살고 있잖아요. 그 2600년의 불교역사가 너무도 왜곡 되었다는 말입니다. 뭐가 왜곡 되었느냐? 여러분, 이제는 이 노래를 자꾸 불러야 되겠어요.



뭐가 왜곡 되었느냐? 이 왜곡된 부분을 그 어떤 석학도, 그 어떤 큰스님도, 그렇게도 많이 출세했던 큰스님도, 이것을 이야기 못했습니다. 이건 사실입니다. 부처님에 버금간다고 하는 인도의 '용수보살'도, '마명'이라고 하는 그 보살도(그 큰스님도), 그 다음에 200~300년 후에 출세했던 '무착', '세친'이라는 엄청난 논사도, '고법'이라는 분도 이걸 몰랐습니다. 정말 몰랐습니다.



뭘 몰랐느냐? ‘비아(非我)가 윤회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비아(非我)가 윤회하는 거예요. 무아(無我)는 윤회할 수가 없어요. 무아(無我)는 윤회의 주체가 없습니다. 무아(無我)라는 것은 나(我)가 없다는 거예요. 내가 없는데, 말할 놈도 없고 ․ 말할 주인도 없고 ․ 행위 할 주인도 없는데, 여러분들은 지금 말하고 행위를 하고 있잖습니까?



저 지금 비아(非我)를 모르는 우리 불쌍한 불교계 인사들, 생각하고 말하고 행위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그 본체를 부인한다는 것은 이건 상식이 아닌 거예요. 여러분, 나(我)가 없으면 어떻게 됩니까? 죽어서 나갈 놈도 없습니다. 태어날 때 반드시 그 식신(識身)이 와야(영혼체가 와야) 잉태(수태)가 되는 거예요. 이걸 모르면 이건 불교도 아니고, 종교도 아니고, 자격이 없는 거예요. 불교는 정말 위대한 종교입니다. 우리 영산불교, 정말로 위대한 종교올시다.



스님이 TV나, 라디오나, 세계적인 매스컴이 오면 터뜨리려고 한 거예요. 놔둔 거예요.《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권에는 싹만 보인 거예요. 2600년 동안 무아설(無我說)이 너무너무도 고착화 되어버렸어요. 이걸 때려 부숴버려야 되요. 그래야 정말로 불교가 사는 거예요. 21세기를 불교가 향도할 수 있는 거예요. 모든 불교와 모든 종교를 통합할 수 있는 거예요.



진리 앞에는 모두 다 무릎을 꿇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Ⅱ》탄에는 한 장(章)을 다루었습니다. 무아설(無我說)과 윤회의 주체에 대한 언급을 했지요. 그리고 이제 기회를 본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자기들의 걸음으로 왔어. 자기들이 온 거예요.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그걸 자르지도 말고 그대로 방영하겠느냐? 그대로 내보내겠느냐?



두 번 세 번 내가 다짐 받은 거예요. 그러면 계약을 하자. 그래서 도장을 찍었습니다. 자세한 기록은 자기들이 해오지 않고 도장만 찍어왔더라고. 그래서 내가 웃고 말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비아설(非我說)이 나가고, 무아설(無我說)을 부정하고, 이걸 때려 부수니까 교계가 발칵 뒤집힌 거예요.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교수들이 난리난 거예요. 그럴 만도 한 것이 무아설(無我說)은 불교의 생명이올시다. 이 무아설(無我說)은 그 동안의 생명입니다.



이런 무아설(無我說)을 부정하니까 난리가 난 것이지요. 여러분, 내가 인터넷을 보니까 여러분들이 그분들 보다 더 낫더라고요. 정말입니다. 유식의 권위자라고 하는 모 교수, 어느 큰스님의 말은 이렇답니다. 그리고 모 종단의 공식 성명은 이렇습니다. ‘영혼체가 없다’하는 것이 공식 성명입니다. 본분입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야 되요. 그 사람, 소위 한국을 대표할 만한 석학이라고 하는 교수가 하는 말인 즉, ‘의식이라는 것은(심식이라는 것은, 식이라는 것은) 이 근(根)과 경(境)이 반연(攀緣)이 되어가지고 생기는 것이다.



근(根, 六根)이 없어져버리면(죽어버리면 그 말이어) 따라서 식(識)도 없어져 버린다.’ 이게 그 사람들의 생각과 주장이고, 지금까지 불교의 생각이었습니다. 이것은 정말 사설(邪說)이고, 사마외설입니다. 이 몸뚱이가 죽어버리면 영혼도 죽어버린다는 그 말이 맞습니까? 여러분, 이건 유물론적인 인식(관념)입니다. 이것은 유물론자들의 생각이올시다. 유물론에서는 생각이라는 것은 뇌의 산물이다 그럽니다. 그러니까 이 육신, 뇌가 죽어버리면 그 산물인 것은 당연히 없다(죽어버린다). 이게 유물론자들의 생각이어요. 그런데 불교의 그 생각이 그 유물론적인 생각이라고 하면, 이건 말이 안 되는 거예요. 이 불교는 더 클 수가 없는 거요.



이 무아설(無我說), 윤회설이 2600년 되었습니다. 우리 불교의 사상은 확실합니다. 그런데 이 무아(無我), ‘무아(無我)인데 어떻게 윤회하느냐’ 하고 힌두교의 여러 학파에서 막 포화를 뿜은 거예요(공격한 거예요). 거기에 대해서 부파불교의 석학들이 그걸 대답하려고(무아설(無我說)이면서 윤회 한다는 것을 양립하려고, 어느 하나를 포기해 버리면 되는데 이 두 사상은 불교의 양축이니까 이걸 둘 다 양립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연구하고 연구한 것 들이 전번 시간에 이야기 했던 경량부의 심상속 이론, 독자부의 푸드갈라 이론, 그리고 여러 부파불교에서 이야기 했던 소위 여러 식(識)이론, 대승으로 넘어와 유식에서 제8아뢰야식을 내놨어요.



이건 안 되는 거요. 식(識)이 어떻게 윤회합니까? 전번에도 이야기했지만,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가 대단히 불심이 장하고, 좋은 일도 많이 했다면 그 영전 앞에 무릎을 꿇고 합장하시고 이러실 거예요. ‘우리 어머니는 좋은 일 많이 하시고, 불교를 돈독하게 믿으셨기에 부처님 나라로 혹은 극락세계에 왕생하소서’ 하실 거예요. 안 그러겠습니까? 저 사람들의 말대로라면 극락세계에 왕생할 주체가 없는데, 누가 가느냐 그 말이어요. 식(識)이 갑니까?



식(識)은 추상적인 개념입니다. 식(識)이 가는 것이 아니어. 식신(識身)이 가는 거예요. 식(識)의 몸뚱이가 가는 거예요. 식(識)이 들어있는 몸뚱이, 그것을 영혼체라고 해요. 지금까지 영혼이라는 말은 했지만 영혼체라는 말은 그 어느 종교에서도, 철학에서도 나오지를 않았어. 다만, 몇 명의 힌두교 성자들이 영혼체라는 말을 했어. 기원전 그 사람들은 영혼체도 봤어요. 힌두교의 상키아학파의 이론을 들어보면 영혼체 이야기가 나옵니다.



붓다의 경계에서 영혼체를 자세히 압니다. 보살의 경계는 영혼체가 있는 것을 알아요. 영혼체를 봐요. 상품보살의 경계에서 영혼체를 봅니다. 그러나 영산불교에서 처럼 여러분이 영혼체에 대해서 잘 알지만 더욱 정리를 해드릴 거예요. 이렇게 자세히 보는 것은 붓다의 경계에서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의 무아설(無我說)을 바로 잡지 못했어요. 비아(非我)로 잡아야 되는데, 바로 잡지를 못했어. 2600년이 흐른 오늘, 이제 우리가 이것을 내놓는 거예요.



인도 땅에 세계적인 종교가 셋이 나왔습니다. 힌두교, 불교, 자아나교입니다. 자이나교도 대단합니다. 그 자이나교에서도 '업신' 정도를 봤어요. 그 사람들은 그것을 영혼체라고 안 하고 '업신'이라고 했어. 보기는 했습니다. 자이나교의 바르다마나(마하비라, 기원전 559~527년)교주는 그 정도 수준이 되었어요. 그러나 우리 현지사에서 말하는 그 자상한 영체의 내용은 몰랐습니다. 알 도리가 없지.



우리는 너무도 자세히 알기 때문에《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Ⅱ》권에서도 그렇게 해왔지만, 보는 사람들은 우리 학자들도, 석학들도, 큰스님들도 이게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를 못해. 그게 당연해요. 그렇다면 적어도 '가섭이다', '아난이다'하고 나온 사람이 법문하고, 쓴 책이라면 정말인지 아닌지를 봐야지. 그런 분들이 아니면 이걸 쓸 수도 없는 거예요.



이것은 내놓을 수가 없어요. 힌두교(힌두이즘) 여러 학파의 석학들한테 무아설(無我說)이 완전히 깨어져버린 거예요. 사상적으로 눌려 버렸어. 논쟁에서 완전히 패배해버린 거예요. 그래서 아쇼카 대왕이나 칸슈카 대왕, 그후 300~400년 후에 출세했던 그런 분들이 전 인도를 통일해가지고 불교화 했는데 밀려나와 버린 거예요. 여러분, 얼마나 억울합니까? 그것을 지금 내가 들고 일어난 거예요. 이건 역사적인 사실이어요. 내가 지어서 한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 코페르니쿠스라는 분을 알지요. 코페르니쿠스, 지동설을 세상에 선포한 사람입니다. 그 당시는 중세였어요. 이태리 로마 교황권이 막강한 세력을 거머쥐고, 심지어 서구 열강들의 왕권을 쥐고 있었던 시대였습니다. 거슬리면 종교재판에 회부하고, 기독교 성서에 어긋난 발언을 했다든지, 또는 그런 행위를 하면 신의 이름을 빌어 마구 처단했습니다. 스님이 언제 여러분에게 마녀사냥을 이야기 했나요? 기독교가 서구를 꽉 쥐고 있었을 때예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신대륙의 섬 쪽을 발견하고, 나중에 신대륙을 발견했는데, 그 신대륙에 진출하기 위하여 종교라는 미명으로 북미 중미 남미 원주민들을 마구 학살한 거예요. 자기들은 신의 군대다, 신의 교도다 그거예요. 얼마나 많이 죽인 줄 압니까? 여러분, 알아야 됩니다. 스님이 남의 종교이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나, 알아야 됩니다. 원주민을 죽인 수가 1,000만명, 아니 1억도 더 되요. 지금의 통계를 보면 2억이어요.



이렇게 많이 원주민을 죽여 버린 거예요. 그리고 땅을 뺏고, 부녀자를 강간 약탈하고, 방화하고, 정부 재산을 전부 도적질한 거예요. 그것도 모자라 아프리카로 가서 죄 없는 원주민들을 마구 죽이고, 노동력이 될 만한 청년들을 갖다가 노예로 팔아먹은 거예요. 죄 없는 원주민들은 아버지가 잡혀가니까 부인과 애기는 서럽게 살지. 당초에 노예도 아닌데 강제로 노예의 신분으로 만들어 미주로 데리고 가서 노예로 팔아먹은 거예요. 그 광활한 땅을 그렇게 해서 경작하여 돈을 벌어먹은 거예요. 이러한 죄악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러한 때에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부르짖은 거예요. 성경에 기록 되어 있는 것은 글자 한자, 한 획도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진리다 그거예요. 한 글자, 한 획이라도 절대 고치지 못해. 그런데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발표 했어. 그 성경에 적혀 있는 것은 천동설이어. 하늘의 별이나 지구의 주위를 태양이 돈다고 하는 거예요. 그것을 천동설이라고 해. 그런데 지동설을 가지고 나오니까 어떻게 됩니까? 발칵 뒤집힌 거지.



그러나 코페르니쿠스는 발표하고 수 십 년 만에 저 세상으로 갔지만, 그 다음에 천문학자들이 천체를 관찰하고 실험해 보니까 코페르니쿠스가 한 말이 맞거든. '부르노'가 그래서 화형에 처해진 것 아닙니까? 지동설을 부르짖는다고 불에 태워서 죽여 버린 거예요.



나중에 그 유명한 갈릴레오가 잡혀가 공개재판에 회부 되었어. ‘너도 지동설을 주장하는데, 이 자리에서도 주장할 것이냐, 아니면 승복하겠느냐’고 했거든. 그러니까 갈릴레오는 지동설을 주장하지 않겠다고 해버렸어요. 그래서 살았습니다. 살아가지고 법정을 나오면서 혼자 투덜거리는 말이 있지요.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했어. 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너무도 유명하기 때문에, 어떤 사상과 정반대되는 사상을 ‘코페르니쿠스적이다’라고 표현합니다. ‘코페르니쿠스적인’이라는 말을 씁니다. 그것도 아실 겁니다.



인도 남쪽의 섬나라 스리랑카를 아시죠. 19세기 후반에 스리랑카에서도 기독교와 불교의 대논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불교는 무아설(無我說)을 바탕으로 한 이론이고, 기독교의 철학은 유일신을 바탕으로 한 이론이죠. 여러분, 기독교의 철학을 아시죠? 양측에서 서로 논쟁한 것들은 지금의 영산불교 현지사에서 보면 둘 다 바보예요. 그걸 우문우답(愚問愚答)이라고 해. 그렇게 끝났습니다.



전번에 스님이 이야기했나? 이 과학계, 특히 물리학계에서 ‘진공이 있다 없다’하는 두 파가 2000년 전부터 싸웁니다. 아리스토텔레스를 정점으로 하는 흐름은 없다고 하고, 원자론을 내놓은 데모크리토스를 정점으로 하는 그 흐름은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2000년 동안의 논쟁으로 끌어 온 거예요. 끌어왔는데, 아인슈타인이라고 하는 세계적인 거두가 나와서 특수상대성이론을 내놓습니다. 특수상대성이론을 알지요? 전번에 스님이 말했지요.



에너지는 곧 질량이라는 것(E=mc^2). 1g의 질량을 가지고 완전히 연소해서 열량으로 빼면(열로, 에너지로 빼면) 10만㎾의 발전소가 250시간 쓸 수 있는 양이어요. 그런 세상이 되면 어쩐다고 했지요? 살기 편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석유가 없어도 되지요. 그렇잖습니까? 이인슈타인은 이런 위대한 발견을 한 사람이어요. 그리해서 그 분이 통일장이론을 내놓았는데, 그 통일장이론을 완성은 못했지만 그분의 업적에 의해서(물론, 그 앞뒤 과학자들의 업적으로 해서) '있다 없다'가 잠재워져 버립니다.



봉합되어 버립니다. 그걸 아십니까? 봉합이 되었어요. 그러니까 이 두 논쟁이(있다 없다하는 논쟁이) 어떤 위대한 분에 의해서 이론 제기는커녕, 반론을 제기치 못할 정도로 되어버립니다. 그러면 이제 그 두 논쟁은 잠자고, 새로운 이론이 힘을 얻게 되는 거예요(세계화 되는 거예요).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코페르니쿠스적인 지동설은 두 논쟁이 아니고, 확고하게 믿었던 천동설, 그 기독교 세력 하에 있었던 그 당시에 새로운 설을 내놓는 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거예요. 어마어마한 위험이 따른 거요. 코페르니쿠스가 살았다면 화형 감이었지요. 그걸 아십시오.



그 다음, 선불교에서도 돈점논쟁(頓漸論爭)이 있습니다. 돈점논쟁(頓漸論爭)을 아시는 분은 아실 거예요. 선불교에서 돈점논쟁(頓漸論爭)이 있습니다. 선불교는 어떤 종교냐? '심즉시불'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마음이 부처다'하는 거예요. 마음이 부처다, 마음을 깨치면 부처다 하는 사상을 들고 나온 것이 선불교입니다. 돈오돈수(頓悟頓修)와 돈오점수(頓悟漸修)의 돈(頓)자와 점(漸)자를 합해서 돈점논쟁(頓漸論爭)이라고 하는데, 돈오돈수(頓悟頓修)라는 말은 무슨 말이냐?



최근 우리나라에서 입적했지만, 돈오돈수(頓悟頓修)를 주창한 그 어떤 큰스님이라는 분이 계셨죠? 돈오점수(頓悟漸修)를 주창한 분은 돈오돈수(頓悟頓修)를 주장한 스님보다도 몇 백 년 전 인물입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스님인데, 그 인물을 아십니까? 한번 말해 보세요. 고려때 스님인 '보조국사 지눌'이예요. 보조는 돈오점수(頓悟漸修)를 주창했어요. 돈오점수(頓悟漸修)는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다겁생으로 내려온 우리 중생들은 번뇌망상 삼독번뇌 업장 습 등 이런 것이 있단 말이에요.



이것이 다 녹아야 되니까 충분히 보림을 해야 된다 하는 것입니다. 돈오돈수(頓悟頓修)는 그것이 아니고, 그저 신문도 보지 말고, 라디오도 듣지 말고, 오직 화두일념으로 가라. 오직 화두일념으로 가라. 그래서 크게 깨쳐버리면 닦을 것, 무슨 번뇌망상, 업장, 이런 것이 전부 떨어져 버린다. 그냥 여래지에 든다 하는 것이 돈오돈수(頓悟頓修)입니다. 그분은 가셨지만, 이 큰스님에 의해서 돈점논쟁(頓漸論爭)이 주창되니까 이것은 매스컴에 조명을 받으면서 다룰만한 깜이거든(다룰만한 기사거리거든). 그래서 한참 많이 다루었습니다. 그런데요 선불교는 불교의 한 지파입니다. 그렇잖습니까? 여러분이 또 아셔야 돼.



그러면 우리가 본단 말이어요. 영산불교에서 봅니다. 돈오돈수(頓悟頓修), 돈오점수(頓悟漸修), 돈점(頓漸)에서 돈(頓)이 맞느냐 점(漸)이 맞느냐? 둘 다 아닙니다. 내가 이 법상이 아니고, 여러분 몇 사람하고 앉아서 이야기한다면 참 웃기는 이야기를 해버릴 것입니다. 그것은 둘 다 아닌 거예요. 인간의 한계는 잘 수행해야 어느 정도 간다고? 아라한입니다. 그런데 자력으로 어떻게 불과(佛果)를 증합니까? 보살과(菩薩果)도 어렵습니다.



 왜 어려운지 아는 사람? 혼자 힘으로(자력으로) 보살과를 이루기가 왜 어려운줄 아십니까? 네 가지, 다섯 가지 이유가 있다고 했지요. 이거 기가 막힙니다. 여러분이 이 정도를 아니까, 우리 현지사 신도 분들의 수준은 상당하지요. 내가 그분들을 다 알거든요. 나한테 오면 내가 그렇게 법문을 해줍니다. 그러면 아무 말 없이 듣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알아. 그 수준을 알거든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훨씬 낫지요. 훨씬 낫지.



정토보살이 자력으로는 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첫째, 거기에 아기보살을 만들 수 없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붓다의(부처님의) 우주적인 능력이 아니면 정말로 안 됩니다.



������둘째, 변녀성남(變女成男)입니다. 여자 분들이 정토에 갈 경우 4영체 모두 다 고추를 달아줘야 돼. 누가 답니까? 자기혼자는 절대 안 돼. 그 변녀성남의 어려움입니다.



������셋째, 영체분리입니다. 이건 정말로 부처님 아니면 안 됩니다. 자이나교 교주인 '마하비라', 그분은 영체를 보기는 했지만 어떻게 영체를 꺼냅니까? 못 끄집어내. 영체를 끄집어내려면 붓다의 힘이 있어야 됩니다. 딱 꺼내려면 부처님이라야 돼. 그래서 분리를 딱․딱해 놓거든요(가지런히 해놓거든요). 우리 스님들 모두 다 보살을 만들려고 그 절차를 밟아줘요. 여러분도 해주는 사람 있어요. 영체분리까지 해준단 말이에요.



영체분리를 다해주고 정화해 주는 거예요. 씻어 줘. 빛으로 부어줍니다. 그래야 4영체가 밖으로 나와가지고... 4영체가 모두 다 막으로 싸여있기 때문에, 또 막으로 간격이 다 엉켜있기 때문에, 껌과 같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이 분리작업을 하고 그 무량억종광으로 퍼부어(씻어) 주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다시 하나로 해서 딱 넣어줍니다. 그러면서 또 이제 빛으로 해주는 거예요. 보살이 되려면. 그러니까 영체분리가 안 되죠? 그 어떤 성자도 못합니다. 여러분, 부처님 다음가는 성자들도 못합니다. 스님이 거명을 하고 싶지만 이 석상에서 말하기 곤란합니다.



어쨌든 다른 종교의 교주도 안 됩니다. 그 작업을 못해요. 우선 영혼체의 내용도 모르는데, 어떻게 끄집어 낼 실력이 있습니까? 또, 어떻게 분리할 실력이 있습니까? 어떻게 무량억종광으로 퍼부어 줍니까? 자기의 몸뚱이는 무량억종광이 아닌, 차원이 낮은 빛으로 이루어져 있는 데요.(※한 삶 정리는 그 속에 포함이 안 돼. 물론 나쁜 원결이(그 사람하고 아주 상극의 원결이)태어났다? 그런데 그 사람이 벌써 30대다 하면 만날 시간이 되잖아요. 만날 시간이 되면 저 사람이 이 사람한테 맞아 죽을 수도 있잖아요. 전생에 죽였으니까. 그 상극의 원결을 지었다면 말이에요. 그러면 그때 한 삶 정리를 해줘버립니다. 그러면 안 만납니다.)



������넷째, 마장(魔障)입니다. 잘 아시네요. 마장(魔障), 내마와 외마가 있는데, 내마는 색신이라는 것을 아시죠. 외마는 천마, 용신, 이매망량 등등인데, 자세히 보면 많아요. 어쨌든 이런 등등의 내․외마를 막아줄 사람이 없으면 아라한이 되고, 보살이 되려면 이거 엄청나. 도고마성이어요. 그 말이 맞는 거예요. 도고마성.



이거 막아줄 사람이 없어. 그렇기 때문에 보살을 하나 만들려면 보살이 함께 와줘야 되는 거예요. 그러거나 영적으로 그 진짜 몸뚱이(보살 몸, 보신)를 가진 관음․지장․문수․보현 같은 불과(佛果)를 이룬 그 보살이 와서 그 사람을 공부시켜야 돼. 마장(魔障)을 딱 막아줘야 돼. 외마를 막아주고. 그리고 문제가 있으면 전부 제거해 주고. 빙의가 되어 있으면 제거해 주고. 업장이 크다면 씻어주고, 소멸해 주고. 그렇잖으면 안 돼.



������다섯째, 사중죄(四重罪)정도는 소멸해줘야 돼. 극락정토에 가려면 사중죄 정도는 반드시 소멸이 되어야 돼. 그런데 우리는 많은 과거생에 사중죄를 지었거든. 이 사중죄를 가지고, 이 업을 가지고는 극락을 못 가. 문수보살님의 사중죄 소멸은 그분의 고유권한으로 주어져 있어요. 고유권한, 아시죠?



그런데 선불교에서는 '심즉시불이다'라고 하거든. 여러분, 이게 1300년 동안 내려왔습니다. 깨치면 불(佛)이다 그거예요. 마음이 곧 불(佛)이니까 마음을 깨치면 불(佛)이다 그거예요. 마음을 깨치면 불(佛)이다? 돈오점수(頓悟漸修)에서는 그건 아니다. 돈오돈수(頓悟頓修)에 반론을 제기 하는 것은, 깨쳐가지고 업장 ‧ 탐진 삼독 등등을 다 씻어버려야 한다. 보림이 필요하다. 보림이 다 잘 되어 버리면 부처이다. 여러분, 그게 부처입니까?



아니지요. 그건 아라한으로 보는 거예요. 그러면 아라한이지. 그래서 우리 입장에서 볼 때는 돈(頓)도 아니고, 점(漸)도 아니어요.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더 참고 될 말씀을 많이 해주는 거예요. 안 그렇습니까? 지금 아인슈타인이 유(有)다, 무(無)다(진공이 있다, 없다)하는 것을 거의 종식시킨 것 같이 되었는데, 나보고(우리보고) 물어보면 여러분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유(有)도 아니고, 무(無)도 아닌 거예요. 진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거예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 영산불교에서 말하는 비아설(非我說)이 나옵니다. 비아(非我)라야 윤회합니다. 힌두교(브라만교)의 아트만 갖고는 윤회를 못합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설명할 수 있어야 돼. 내가 가만히 보니까 이것을 몇 사람이 알더라고요. 아트만 가지고는 윤회가 안 된다. 아트만은 범(梵)과 본질이 똑같습니다. 그 범(梵)이 만물을 만들어서, 다시 범(梵)이 낱낱의 개아(個我)‧개물(個物)에 들어가 버렸다고 했지요. 그것이 아트만이어요.



그러니까 우리 사람도 아트만을(실체를) 지니고 있다 그거예요. 그런데 그것 가지고는 윤회가 안 된다고요. 그 아트만은 우리 영산불교에서 말하는 1번 영체(본체)예요. 본체 갖고는 윤회를 못하는 거예요. 그건 순수히 지고지선 하니까. 그것 갖고는 안 되는 거예요. 그것은 윤회 밖에 무시무종(無始無終)으로 있었어요. 윤회하려면 2번 영체, 3번 영체, 4번 영체까지 생겨야 이 사람 몸을 받아가지고 악도로도 가고, 육도를 윤회하는 거예요. 여러분, 스님의 말을 꼭 알아들어야 됩니다. 이해해야 됩니다. 업을 지으면 인연 따라서 2번 영체, 3번 영체가 생긴 다고요.



그래서 1‧2‧3번이 생겼어. 우주법칙에 의해서 생겼어요. 그거 3번까지 생기면 어떻게 되느냐? 3번까지 생겨서 자그마한 업을 지으면 하늘과 성중으로 왔다 갔다 하지. 육도윤회는 못하지. 그러나 4번 영체가 생길 정도로 업을 지어 놓으면 1‧2‧3번 영체가(본체가) 엄마 뱃속에 탁 들어가잖아요. 4번이 이제 3번 영체에 딱 붙어가지고 똑같이 자라. 자라되, 이 몸하고 영체하고 딱 중간에 서서 접착 구실을 한다고.



그렇기 때문에 몸뚱이와 이 4번 영체는 털구멍하나도 틀리지 않아. 90살 먹은 꼬부랑 할머니가 죽으면 4번 영체가 어쩐다고? 무주고혼으로 있을 때에는 그대로 꼬부랑 할머니로 돌아다녀. 19살 먹은 애가 곱사(곱추)였으면 그 죽은 놈도 곱사예요. 그럽니다. 그런데 그 4번 영체는 어쩐다고? 이것이 이 사바세상의 조건에 맞아서 생기는 거예요. 물리학적으로 말하면 밀도가 맞아야 돼. 밀도가 맞아서 여기에서 사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저승을 가게 되면, 지옥을 가게 되면 지옥하고 이 사바세상의 기가(조건이) 다르잖아요. 그러니까 4번 영체는 들어갈 수가 없어요. 그러나 4번 영체의 안쪽 것은 따라가요. 안쪽 것은 따라가기 때문에 대성자가 볼 때는 ‘아! 저 엄마가 다섯 살 먹은 놈하고 같이 물에 빠져 죽었구나. 혹은 어떻게 횡사해서 죽었구나’하고 아는 것은 지옥에서 엄마가 애기를 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알겠습니까?



하늘을 갈 때에는 1‧2‧3번이 가되, 바깥 몸뚱이인 3번 안에 1번 2번이 그 속으로 겹쳐있어요. 밀도가 다르기 때문에 탁 겹쳐져요. 알았습니까? 3번 2번 1번 영체는 올라갈수록 입자가 적어져요. 이 정도는 이해할 거예요. 알아듣기 어려워도 이 정도는 알아야 돼. 그래서 1‧2‧3번 영체는 하나로 꽉 뭉쳐있습니다. 하나로 영원히 뭉쳐져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1번은 본체이고, 주인공이어요. 부처님께서 이것이(1번이) 주인공이라고 하셔요. 그래서 우리도 ‘아하! 이것이(1번이) 주인공이구나’하고 안다고. 선(禪)에서 말하는 주인공은 이것이(1번이) 아닌 이것의 본체, 소위 일심진여라든지, 불성이라든지, 우주본체, 이것을 주인공이라고 하잖아요. 진아(眞我)라고도 하고요. 이건 말이 안 됩니다.



이것은(불성은) 나의 진아(眞我)도 되고, 여러분의 진아(眞我)도 되고, 저기 우리 땡삐의 진아(眞我)도 되고, 저기 산의 진아(眞我)도 되고 해. 그 진아(眞我)와의 용어가 틀린 거예요. 그때는 본체라고 해야 돼. 주인공은 1‧2‧3번 영체입니다. 선(禪)에서는 이걸(일심진여, 불성, 우주본체) 주인공이라고 해. 그 주인공이라는 용어가 틀리는 거예요.



3번 영체가 하늘을 갈 때에는 관문이 있습니다. 하늘의 그 안락하고 평안한 것 등에 의해서 3번 영체가 활짝 핍니다. 어떻게 피느냐? 미스코리아보다도 더 예쁘게 핀다고요. 알았습니까? 지옥을 갈 때에는 1‧2‧3번 영체가 어떻게 되는 줄 압니까? 그 4번 영체 안부분이 지옥의 조건에 맞게 되고, 아귀세계에 갈 때에는 그 세계의 조건에 맞게 되는데, 배가 풍만하고 목구멍이 아주 가늘어요. 그렇게 탈이 바뀌어 진다는 말이어요. 그러나 1‧2‧3번 영체는 그대로 뭉쳐있다 그거예요. 이것이 본체입니다.



사람 몸을 받아 올 때에는, 수정할 때 본체가 들어가야 사람이 됩니다. 윤회의 주인공이 됩니다. 이것까지 알았지요? 아귀세계나, 하늘세계나, 성중세계나, 보살세계나, 붓다의 세계는 몸뚱이가 없는 세계입니다. 알지요? 3번 영체가 성중하늘을 갈 때에는 2번 영체가 탁 와가지고 3번 1번이 그 속에 딱 겹쳐있단 말이에요. 입자가 적은 3번 영체부터, 무주고혼부터는 초미립자로 되어 있습니다. 소립자를 더 지나가서 초미립자로 되어있는 거예요.



그러니 이것은 볼 사람이 없어. 삼매에 들어가서 지혜의 눈으로 보살, 상품보살, 붓다가 보는 거예요. 천인을 봤다는 사람이 있습니까? 거의 없지요. 기독교에서 한 사람 있었어요. ‘돈 모드코비’인가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이름이 그 사람뿐입니다. 그래서 천국의 생활에 관한 책을 썼잖아요. 그러니까 '칸트'가 그걸 부인(부정)했어요. 사람의 오성(悟性,감성·이성과 구별되는 인식능력)은 한계가 있어. 형이상의 세계는 못 보는 거예요. 칸트에 의하면 볼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건 맞아. 그러니까 보려면 이 한계를 벗어나야 돼. 벗어나서 불보살의 가피를 입어야 비로소 보는 거예요.



극락은 1번 영체가 갑니다. 그때 2번 3번은 속으로 들어갑니다. 1번 영체가 가지만 그 속에 2번 3번이 겹쳐있다. 그런데 극락은 너무너무도 여기에서 머잖아요. 우선 여러분이 이해하기 쉽게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렇게 표현하면 또 반박할 사람이 있어요. 거기는 적멸의 세계인데, 시공을 초월한 세계인데, 차별세계를 벗어나 버렸는데 뭘 멀고 가깝고 하느냐고 할 거예요. 그걸 몰라서 하는 것은 아니어. 여러분이 이해하기 쉽게 하는 거예요.



저 극락세계, 서방으로 십 만억 불국토를 넘어서 있잖아요. 영적인 개념에서 보면 그 말이 맞습니다. 거기의 조건은 여기의 사바세상하고, 하늘세계하고, 성중세계의 여건하고 아주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당신의 큰 위신력으로 여러분의 꼬마 아기를 만들어 놓은 거예요. 그 놈은 거기의 여건에 충분히 살 수 있어요. 1‧2‧3번 영체가 그 꼬마 속으로 쏙 들어가 버리는 거예요. 믹스가 되어버려요.



그러면서 정말로 해탈신이 되어버리는 거예요. 앞에서 말한 하늘신이 문제가 아니어요. 성중 몸뚱이가 문제가 아니어. 정말로 경에는 32상을 갖춘다고 하지. 그러나 32상은 붓다만이(붓다의 저 보신들이) 갖추어요. 이 보살들의 얼굴은 하늘 천인들하고는 비교가 안 될 만큼 기가 막히지. 그리고 몸에서 방광을 하니까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여러분, 방광을 상상해 보세요. 전번에 어느 TV에서 빛의 축제를 보여준 것 같은데, 한번 보세요. 현란할 거예요.



그러나 미타정토의 그 부처님 몸에서 나오는 이 빛들, 그 많은 보살들에게서 나오는 빛들이 어우러져 가지고(빛들이 서로 교합해서), 그 분위기가 극치를 이루는 아름다움입니다. 여러분, 여름 한 낮에 다이아몬드를 밖에다가 놔두고 보세요. 이것이 발산해가지고 어떻게 됩니까? 참 아름답지요. 그 다이아몬드가 천만가지 색깔을 지닌 투명한 다이아몬드라고 합시다.



그때 나오는 빛깔이 또 어떠하겠습니까? 아까 그것보다도 훨씬 더 수승하겠지요? 그런 다이아몬드가 천개 만개가 있어서 어우러져서 스스로 발산하면 어떠하겠습니까? 이 광경은 말로 표현이 안 되는 거예요. 그렇게 아십시오.



붓다의 세계는 또 어떠한 줄 압니까? 여러분들이 꼭 아셔야 할 것은 미타국토의 꼬마는 영원히 꼬마예요. 그걸 알아야 됩니다. 저기 붓다 세계의 불신(佛身)은 어떠한 줄 알아요? 애기가 커. 그래서 완전히 사람 몸을 갖추고 있어요. 그것이 달라. 그 몸하고 1‧2‧3‧4번 영체가 계합이 되어버리는 거예요. 불신(佛身)을 가지고 있는 이 수행자의 1‧2‧3‧4번 영체가 어찌나 빛과 같이 깨끗하든지. 무량광하고 털끝만큼 틀려도 계합이 안 돼.



그러니까 우리가 땡삐를 만져도 씻어주는 거예요. 바깥에만 갔다 와도 그 무량광 빛덩어리로 영체를 씻어 주는 거예요. 그걸 유지 하려고 하니까. 그래서 그 나하고 이것하고 믹스가 아닙니다. 이때는 그것이 들어가 버립니다. 그 불신(佛身)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그 불신(佛身)의 위력은 우주적이어요. 왜 우주적이냐? 붓다는 대적정삼매에 들어가서 우주 본체와 하나가 되어 버립니다. 자기의 법신불이 생긴다고 했지요. 그 법신불이 구체화 된 것이 불신(佛身)입니다. 아셔야 돼. 그래서 4영체까지 합해진 이 법신불은 우주적인 힘을 행사할 수 있는 거예요.





여기서 지금 우주라는 말이 나오는데, 지금의 천체물리학에서는 이 우주가 어찌나 넓던지, 끝도 갓도 없이 넓어요. 지구도 하나의 별이거든요. 지구만한 별 덩어리가 얼마나 많으냐? 여러분 아실 거예요. 2,000억 정도 지니고 있는 그 한 집단을 섬우주라고 해요. 그 섬우주가 수 천 개라고 해요.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별이 얼마나 많지요? 물리학자들은 이걸 우주라고 봅니다.



그런데 영산불교에서는 그것은 현상계이고, 적멸 묘유 해탈오계가 또 그만큼 있어. 그래서 우리 영산불교의 어느 학자는 '우주정법계'라고 했단 말이어요. 그건 자기가 지은 주인 이름입니다. 그렇게 하더라고. '우주정법계'를 주관하시는 왕이 붓다의 붓다이신 석가모니부처님이셔요. 이거 기가 막힌 거예요. 지금 천문학자, 물리학자들이 아는 우주만 해도 이건 수수께끼라고 했어요. 아인슈타인도 수수께끼라고 했어.



공부하면 할수록 이건 오리무중이라. 뉴턴은 뭐라고 했느냐? 뉴턴(Newton, Sir Isaac 영국의 물리학자·천문학자·수학자(1642~1727). 광학 연구로 반사 망원경을 만들고, 뉴턴 원무늬를 발견하였으며, 빛의 입자설을 주장하였다.)이라고 하면 대단한 분입니다. 고전물리학에서 최고의 자리를 찾으신 분인데, 그분은 자기가 아는 것은 저 강변의 모래 한 알 정도라고 했어요.



그런데 아인슈타인에 와서는 ‘역시 우주는 수수께끼다. 나로서는 수수께끼이다. 그러나 이 수수께끼가 영원히 수수께끼일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라고 말한 거예요. 아인슈타인은 굉장한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이지만 이 불교의 화엄사상을 접했습니다. 여러분, 화엄사상을 접했어요. 그래서 무릎을 친 거예요. 오직 불교만이 진정 미래의 세대를 리더할(이끌) 만한 종교로구나. 그래가지고 종교를 3단계로 구분한 분이 그 분이어요. 세 종류로 말한 거예요. 여러분, 그거 아시는지 모르겠어.



▸첫 번째, 원시시대의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가지고 종교를 만들었다는  거예요. 원시의 애니미즘(정령신앙(精靈信仰)이라고도 함)이 있지요. 태양신을 믿는 다든지, 혹은 전쟁신도 믿고 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공포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습니다. 어떤 공포냐? 그 당시는 기술도 떨어졌고, 지금처럼 이렇게 비옥한 땅도 개간할 능력도 없고 해서 하루하루의 삶이 참 고단했지요. 그런데다가 무서운 질병이 오잖아요. 오면 죽으니까 이것이 두려웠어. 전쟁 질병 천재지변 등은 지금의 사람들도 무서워하지. 지진 화산폭발도 무서워하지. 이런 것들 로 인한 죽음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 그런 원시 신앙을 만들어 놓은 거예요. 이것을 원시종교라고 합니다.



▸둘째, 아리스토텔레스가 분류한 거예요. 이제 사회생활을 하잖아요. 사람들의 수가 많이 불어나기 때문에 서로서로 교류한단 말이에요. 우리나라 같으면 각 도의(각지의) 사람들이 서로 교류하고, 문물을 바꾸고, 사고팔고 해서 편하게 살아가잖아요. 국가 간에도 서로 교역을 하고, 교류도 하잖아요. 이것을 사회적이라고 해요. 이 사회적인 윤리종교가 나온 거예요. 이 사회가 안정되고 잘살려면, 선을 권장하고 악을 징계해야 돼. 어떻든 이 두 번째 단계의 종교는 이런 것을 포함하되, 반드시 유일신(唯一神)이 나와요. 유일신(唯一神). 범(梵)과 같은, 그래도 힌두교의 범(梵)은 의인화했지만, 범(梵)보다도 더 심하게 인격화한 그런 종교가 나와요. 그렇게 인격화를 심하게 하는 것이 아니어. 그걸 내가 ‘어떤 종교입니까’라고 묻지 않아도 알겠지요.



▸셋째, 아인슈타인이 그 우수한 두되로 연구를 하고 불교를 접해 보니까 '원리', '어떤 원리'를 알게 되어요. 무슨 원리인지 아시는 분? 연기의 원리(緣起의 原理)입니다. 좀 달리 말하면 인연의 도리(因緣의 道理), 인과법(因果法, 업의 법칙, 카르마의 법칙)등 이런 것이 나와요. 불교는 절대자를 인정하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연기(緣起), 인연(因緣)에 의해서 전부 진화해가지고 된 거예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너무도 깊고 깊기 때문에 이것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야 됩니다.



여러분,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없다. 연기(緣起) 안에는 의식적인 동인, 효율적인 동인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필요 없어요.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있어야지. 저 절대 신을 믿는 사람들은 거기까지만 본 거예요. 지휘자가 있어야 되지 않나? 그러니 이 원리 안에, 그걸 의식적 동인이라고 해. 의식적 동인(意識的 動因). 뜻 의(意), 알음알이 식(識), 의식적 동인이라고 그래. 저 하늘을 봐라. 별들이 저렇게 많은데, 다 각기 궤적을 따라서 운동(운행)을 하는데, 그 수억이 문제가 아니라 앞에서 말한 2천억×2천억을 해도 더 되어. ‘저 충돌하지 않고 정밀하게 돌아가는 저 별들을 봐라.



하나님 아니고는 누가 저런 것을 만들었단 말이야’하는 것이 저 종교야. 조물주가 아니고서야 누가 만들었단 말이야. 그러나 이것을 '효율적 동인'이라고 해. 효율적 조화, 효율적 동인이 있기 때문에, 또 '의식적 동인'이 있기 때문에 이 영혼체는 사람을 보면 오른쪽 눈하고 왼쪽 눈하고 구도가 똑 같아요. 안 그럽니까? 눈이 하나 있고 한쪽 눈이 세로로 있으면 어떻게 되나? 그건 아니어. 딱 지선을 그어놓고 양쪽을 보면 아주 정교하게 조화가 되어있어. 이걸 효율적 동인이라고 해. 그러니까 이 연기(緣起), 연기(緣起)에 대한 내용을 모르고 저 사람들이 우리 불교를 얕잡아 보는데, 그 깊은 철학사상을 들어야지.



그리고 이제 TV에 나가게 되면, 스님이 대 여섯 가지 엄청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할 것입니다. 처음 무아설(無我說)을 가지고 비아(非我)다 하고 나가는 거예요. 이것도 지금 핵폭탄이어. 그러니까 발칵 뒤집히지. 이 모든 종교를 포괄하고, 선도하고, 과학을 선도하고, 철학을 선도하는 것은 불교뿐이어요. 여러분, 불교뿐이어. 이런 고도의 철학과 과학을 지닌 종교가 없어. 불교밖에 없어. 어떻게 해서 이 불교가 이렇게 조그랑 망태기가 되었습니까?



이거 슬픈 일인 거예요. 정말 슬픈 일인 거요. 우리 불교에서만이 보살이 나오고, 붓다가 나오는 거예요. 위대한 불교에서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어떻게 보살이 나오느냐고. 보살이 나오는 종교가 어디에 있느냐고. 없어. 그래서 때가 왔기 때문에  앞으로 스님이 하나씩 하나씩 터뜨릴 거예요. 그러면 나는 이 사상만 이렇게 전하고 가면 돼. 몫은 여러분한테 있어. 여러분이 수준을 높이라고. 현지사에서 나온 책, 이건 세상에 없는 책이어요. 이 책을 정독 했으면 좋겠습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Ⅱ》,〈관음태교〉,〈관음태교에서 부처님천도재까지〉등등. 이러한 천도재가 없고, 이런 태교가 없는 거예요. 이런 것을 여러분이 숙지해야 되겠어. 그래서 부지런히 공부해서 수준을 향상시켜 주시오. 현재 여러분들이 인터넷에 올린 글을 보고 ‘아이구! 이거 어느 교수보다 났네’라고 했다고요.



무아(無我)인데 뭣 하러 천도를 해. 어느 종단에서 우리를 따라서 천도바람이 불었어. 우리를 따라서 한 술 더 떠가지고 49일×7일을 하네. 343일을 천도한다든가? 이거 웃기는 일이지. 여러분, 사람은 양심이 있어야 됩니다. 자기 소신에 살아야 됩니다. 자기의 철학이 무아(無我)이면, 하나도 없다고 하면, 가는 놈도 없고 엄마 뱃속으로 들어가는 놈도 없다고 하면, 그 철학을 바탕으로 해서 하루를 살더라도 바르게 살아야 양심이 있고 그게 사람이지 어떻게 변절 합니까? 이게 우리 영산불교의 주장이고 생각입니다.



무아설(無我說)은 윤회설과 양립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무아설(無我說)은 윤회설과 양립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 만유는 인연 따라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오. 인연소생(因緣所生). 인연 따라 진화합니다. 인연생기(因緣生起). 이건 진리예요. 이건 자기들보다도 더 강하게 주장해. 그래서 지금 제법무아(諸法無我)라고 합니다. 그러나 제법무아(諸法無我)가 '용수'때 와서는 제법개공(諸法皆空)이 되어버렸어. 참말로 공(空)이 되어버렸어. 이게 큰일입니다. 사람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이라는 오온(五蘊)으로 이루어졌어요.



색(色)은 지수화풍으로 구성된 물질이어. 수상행식(受想行識)은 정신적인 것, 그러니까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으로 이루어졌어. 이 정신적인 것을 스님이 삼매에 들어서 관해보니까, 이인슈타인도 선정정도에 들어간 분이 아니면 그 물리학이 안 나옵니다. 보니까 영혼체가 있어. 영혼체가 있더라 그거예요. 이 몸뚱이는 죽어도 나가는 본체가 있습니다. 1․2․3․4번 영체가 있습니다. 1․2․3번 영체는 영원히 죽지 않기 때문에 하늘을 가고, 어디를 가고, 사람 될 때가 되어도 요놈이(1․2․3번 영체가)와.



요놈이 와야 복사체인 몸뚱이가 나오는 거예요. 내가 금생에 사람을 죽였으면 금생에 징역 가지. 그래도 그 업은 너무도 무겁기 때문에 지옥을 가요. 그러다가 언젠가 옵니다. 언젠가 오는 놈하고 나하고 같아야지. 내가와야지 보살이 오겠습니까? 보살이 온다고 하면 말이 되겠소? 무아(無我)라고 하면 그거예요. 그러나 본체가 있기 때문에 언제나 행위 하는 놈하고, 업보를 받는 놈하고 같아야 되는 거예요. 안 그렇습니까? 그런데 무아설(無我說)은 그것이 아니어. 이러한 무아(無我)해석을, 또 부처님께서 왜 무아(無我)라고 하셨느냐? 그걸 몰라. 이 상대세계(현상세계)에 사는 우리 인간은 고해(苦海)에서 산다고 하잖아요.



이 현상세계는 고해(苦海), 고(苦)가 충만 되어 있어. 그냥 고통이어요 고통. 하늘세계도 죽을 때 오쇠(五衰)현상이 있어. 그것까지는 이야기할 수 없고, 어쨌든 하늘도 죽어야 할 때가 있어. 거기서 영원히 살면 좋지. 죽는 고통이 있어. 그 서러움이 있어. 어쨌든 간에 육도는(현상세계는) 고통이 있어. 이 고통의 세계에서 건져 주려고 하는 분이 부처님이어요. 이게 부처님의 자비야. 정토보살부터 자기라는 생각이 없어. 자비야. 아상이 없어. 내 것도 없어.《금강경》의 말씀이 맞는 거예요. 불쌍한 중생을 건질 생각이어요.



그래서 나(我)라는 생각을 하지 말라. 나의 몸뚱이에 대해서 집착하지 말라. 이 몸뚱이는 가짜니까(비아니까). 이 몸뚱이는 언젠가 죽어버릴 것이어. 이것은 가짜니까 여기에 집착하지 말라. 집착하고 보니까 죄를(업을)짓더라 그거예요. 업을 짓는 원인이 집착이어요. 집착의 원인은 욕심(탐욕)이어. 그러니까 그것을 끊어주기 위해서 무아(無我)를 말씀하신 거예요. 그리고 현상계의 고통에서 건져주기 위해서 무아(無我)를 말씀하신 거예요.



그러니까 현상세계에 적용되는 것이 무아(無我)예요. 그 무아(無我)를 저기 본체계까지 연결해 버리면 큰일나버려. 본체계에는 엄연히 그 아름다운 상호를 가지신 보살님이 계셔요. 지금 그걸 없다 한다고요. 그 보살도 없고, 부처도 없고, 극락도 없고, 지옥도 없고, 그 지옥에 가서 벌 받는 것을 일체 부인(否認)해버려. 영혼체도 없다고 해버려. 귀신도 없어. 제사지낼 필요도 없어. 그러려면 뭣 하러 살아? 뭣 하러 먹으려고 해? 뭣 하러 공부해?



저 유물론자들처럼 쾌락을 생의 목표로 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멋지게 살아야지. 도덕이 필요 없는 거예요. 무아설(無我說)은 도덕의 기반이 무너져 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무아설(無我說)을 잘 해석해야 됩니다. 비아(非我)로 대체해야 됩니다. 비아윤회(非我輪廻)인 거예요. 아셨지요?



이렇게 말을 해도 여러분들이 다는 이해 못할 거예요. 며칠 전에 온 사람은 참말로 모르고. 한 5년 다닌 분도 그 일부가 조금 알아들을 거야. 그렇잖습니까? 그래서 여러분들이 다 알 때까지 스님이 노래를 부를 거예요. 스님이 내 놓은 영산불교 비아(非我)의 사상, 이건 핵폭탄입니다. 그래서 지금 종단에서 야단 났는 거예요. 교수들이 야단나고. 앞에서 말한 것처럼 최고의 학승이라는 사람, 석학이라는 사람들의 ‘근(根)이 없어져 버리면 식(識)도 없어진다’는 이야기, 이건 참 희한한 이야기이지. 여러분의 본체가 있는데 이걸 아예 모르니까 그러지요.



식(識)은 왜 윤회의 주체가 될 수 없느냐? 몸이 있어야 배경을 반연해서 식(識)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느낌 이후 생각을 하는 거예요. 몸이 없어 버리면 이 식(識)의 활동이 안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몸체가 윤회의 주체가 되어야 되는 거요. 비아(非我)라는 것은 어찌나 많이 업을 지었던지 숯검정이 되어버렸어. 부처님께서 볼 때 진흙덩어리가 되었단 이에요. 여러분, 진흙덩어리가 되었는데 저것이 나(我)라고 하겠소?



‘저건 나(我)가 아니야’라고 말하겠지. 씻고씻고 씻으면, 다 정화가 되면, 자기의 몸뚱이인 1․2․3번 영체가 순수하고 깨끗하게 드러나. 이건 유아(有我)인 거예요. 이제 본체계부터는 유아(有我)인 거예요. 알았습니까? 지금 부처님께서 보실 때에는 정말 한심한 일입니다. 정말 한심한 일이지.



지금 이 주제를 가지고 나왔는데, 이게 아니라고 해가지고 방영금지 한 거예요. 저들이 죽으니까. 현지사를 얕잡아 본 거예요. 영산불교를 얕잡아 본 거예요.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는데, 천마나 섭해 가지고 무슨 아는 소리나 하는 줄 알았는데, 이론이 논리 정연한 엄청난 철학을 들고 나오거든. 이번에 우리 홈페이지에 게재된 성명을 봤지요. 그걸 보세요. 얼마나 논리정연 합니까? 모두 집에 가시면 빼보십시오.



인터넷이 없으면 우리 현지사 종무실에 가서 꼭 출력해 보세요. 10페이지 정도 됩니다. 아셨지요? 이렇게 5년 동안 법문을 들었으니까 이걸 열 번 스무 번 읽어라 하면 아주 이해도 되고, 그러면 여러분들이 진정한 사상으로 무장이 되어 있으니까 그 어떤 스님들 학승들 신도들한테 지지 않습니다. 그건 사실이니까 꼭 열독하십시오. 숙독하십시오.

합장하시고,



나무 영산불멸 학수쌍존 시아본사 구원실성 석가모니불...

천상천하무여불 시방세계역무비 세간소유아진견 일체무유여불자

고아일심귀명정례



부처님! 거룩하시고 희유하시고 위대하신 우리 부처님! 오늘 자재 만현이 비아에 대한, 비아윤회에 대한 부처님의 진정한 말씀을 들으신 전국의 우리 단월님들에게 업장 많이 씻어주시고 지혜주소서. 업장 많이 씻어주시고 지혜 주소서. 그리해서 우리 영산불교 현지궁 현지사가 부처님 대열반 이후 2600년 만에 이 잘못 전해진 무아설(無我說)을 깨고 비아설(非我說)을 내놓습니다. 부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자재 만현이 조금 한 것 같습니다. 우리 신도 분들에게 가피 주소서. 업장 많이많이 씻어 주소서.



천상천하무여불 시방세계역무비 세간소유아진견 일체무유여불자

고아일심귀명정례



여러분! 영산불교를 사랑해 주세요. 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