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29일 금요일

[전생사례-1]모든 것은 업이 만듭니다. 인연으로 되는 것입니다 外

모든 것은 업이 만듭니다. 인연으로 되는 것입니다.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어가고 있는 어떤 청년거사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부모는 몇 번의 조상님 천도재를 올렸지만 아드님의 시력엔 차도가 없었습니다.



물론 천도재는 돌아가신 조상 영가를 악도에서 하늘로 구원하는 일이지 복위자천도재 모시는 자손 당사자의 병고를 치료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곳 현지사 천도재로 효를 다하는 복위자에게 부처님께서는 업장의 일부를 씻어주십니다.



금년에무자년 그 아드님은 자기 이름으로 조상 천도재를 올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드님의 눈병의 원인이 밝혀진 것입니다.



바로 전생에 한 여인20세쯤에게 독가루를 뿌려 시력을 잃게 한 악행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 후 여인은 스스로 자진합니다.



그 여인은 한이 맺혀 이 청년에게 복수하고자 수백 년을 무주고혼의 몸으로 기다렸다가 금생에 그 청년을 만나 몸속으로 빙의했습니다.

 

천도재를 지내기 위해서 남자는 절에 왔고 그에게 빙의되어 있던 여인 영가는 현지사에 들어올 수 없었기 때문에 일주문 밖에서 남자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불 세존께서 그 젊은 눈 먼 여인 영가를 향해 석장을 들고 빛을 쏘아 잡아 들여와서 법문해주셨습니다.

 

“이 청년이 독가루로 너의 눈을 망가뜨린 것은 바로 3생 전 네가 그 청년에게 몹쓸 짓을 한 때문이다. 네가 이제청년 몸 속에 빙의해 들어가 청년의 시력을 잃게 되면, 다시 다음 생에 인과응보로 네가 똑같이 또 당하게 되는 것 -



이제 한 쪽이 참아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네 억울한 처지를 알았으니 지장보살님과 열시왕에게 특별히 당부할 것이다. 그러니 이 청년 속에 쌓아둔 그 동안의 너의 살림짐과 청년의 눈에서 저주의 독기를 모두 뽑아 챙겨 명부의 길로 떠나라-.”

 

잡혀 가면 죽을 것으로 알았던 그 여인 영가무주고혼은 처음엔 억울하다며 발버둥치다 결국 부처님 말씀대로 저주했던 모든 악의 기氣를 거두어 지장보살을 따라 명부로 들어갔습니다.



이제 청년이 시력을 회복하는 길은 불쌍한 여인 영가를 하늘로 천도해서 원결을 해소하고, 부처님께 선근공덕을 지어서 과거 생의 업장을 소멸하는 것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Ⅱ  7장 우주의 절대자이신 부처님





어느분 천도재 지내고 사례 


엊그저께 어떤 사람 천도재를 했습니다.

당신 남편이 평생을 아프대요. 평생을 아파. 특히 목을 어떤 올가미로 감아 잡아당기는 느낌을 받는 답니다. 병원에 가도 이상이 없다고 합니다. 다섯 번째 천도재 때 이것은 분명히 지중한 죄업으로 인한, 혹은 지독한 원결로 인한 것이다 라고 판단을 해서 부처님과 함께 살폈어.



살펴보니까 그 남자가 과거 생에 조강지처 몰래 아주 예쁜 여자를 알았어(사랑했어). 몰래 작은 부인으로 두고 살아. 그런데 첫 부인(조강지처)이 그 사실을 알았어. 그러니 어떻게 됩니까? 이제 가정은 분란이 일어나지요. 이 남자는 새로운 젊은 미인한테 쏙 빠져 버리니까 조강지처에 이미 정이 다해버렸어. 그래서 이 남자가 생각 생각 끝에 내가 큰 부인을 죽여야 되겠다 그거요. 죽이지 않으면 작은 부인과의 행복이 깨질 것 같아. 나는 작은 부인과의 행복을 깰 수가 없어.



그래서 그 남자가 저녁에 큰 부인하고 자면서 목을 조여 죽였습니다. 이 사실이 들통이 나면 자기는 사형이나 무기징역을 받아야 되니까 위장(僞裝)을 했어요. 큰 부인이 광목천을 이용하여 대들보에 스스로 목을 매어 죽은 것처럼 위장을 했습니다. 이것이 수사당국에 포착이 되어 가지고 살인죄로 입건되어 20년의 징역형을 선고 받고 수감 생활을 하다가 옥사 했어. 옥사했는데 그 후 어떻게 되었나? 중지옥으로 갔어.



그 다음에 축생으로 빠졌어. 축생을 몇 번 돌다가 이번에 사람 몸을 받아 왔다고. 여러분, 지중한 죄업은 이렇게 거듭거듭 과보를 받습니다. 그 사람이 지은 업에 따라서 5중으로 과보를 받기도 하고, 거듭 거듭 다섯 세계 그러니까 지옥․아귀․축생․무주고혼 이렇게 다섯으로 거듭 받기도 하고, 세 번으로 받기도 하고, 사람에 따라서 그러지요. 그 사람이 이제 인간의 몸으로 왔습니다.



그 당시 남편의 손에 의해서 목 졸려 죽은 큰 부인, 그렇게 죽으면 명부를 못 들어가지요. 여러분 아시죠? 그러니까 지금 현재 여러분들은 상당한 수준입니다. 이것은 어느 승려도 모릅니다. 모르는 거요. 이 생사관이나, 인간 영혼의 실체나, 부처님이 존재하는가의 여부 등은 우리 현지사에서 정말로 완벽하게 역사이래로 처음 밝혀 내놨습니다. 이건 사실입니다.



자, 큰 부인이 무주고혼이 되었어. 그 억울한 천추의 한을 풀어야 되겠어. 그래서 기다린 거요. 남편이 사람 몸 받아 오기를 기다리는 거요. 한번 무주고혼이 되면 저기 명부에서 정리하지 않는 이상 100년이고 1000년이고 무주고혼으로 살아. 여러분 그것을 알아야 돼. 남편이 이제 사람 몸 받아오니까 무주고혼인 큰 부인이 ‘아! 옳다. 됐다’ 해가지고 빙의가 되는 거요.



그래서 계속 할 수 있는데 까지 복수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현지사 천도재 때문에 들통이 났지요. 들통이 났어. 우리는 부처님께 공양을 드리고 부처님이 관할(주관)하시는 천도재이기 때문에 그 큰 부인을 잡아서 명부에 집어넣으려고 하니까 그 큰 부인이 발버둥을 쳐. 내 이 억울함을 어디에서 보상 받을 것이냐 하면서 발버둥을 쳐.



그러나 명부로 압송을 시켰습니다. 그 사람은 과거 생의 큰 부인을 정말로 마땅히 하늘로 올려 줘야 될 거요. 하늘로 천도를 해줘서 그 무서운 원결을 풀어야 됩니다. 그리고 살인한 그 죄업, 지중한 죄업을 씻고 씻고 소멸해야 됩니다. 그 분은 그러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죄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절대로 죄를 지어서는 안 돼요. 절대 죄를 지어서는 안 돼. 저 영계의 낱낱 소식을 잘 아는 스님으로서 이것을 말해 주어야 돼. 이것을 모르는 스님들은 지나가지 뭐. 그냥 지나가지. 지옥, 이 단상(법좌)에 앉아서는 ‘죄짓지 마시오. 지옥 가오.’라고 말하지만 지옥이 있는지도 없는지도 몰라. 법상에서 내려와서는 ‘지옥이 뭐가 있다고 그래. 뭐가 지옥이 있어. 번민하는 그 자리가 지옥이고 고통이 떠난 자리가 극락이어’이렇게 말해 버리거든. 그렇기 때문에 성과를 얻은 이의 법문하고 틀립니다. 정말로 천지현격으로 다릅니다. 여러분 그렇게 아십시오. 절대 죄를 지으면 안 됩니다. 절대 죄를 지으면 안 돼. 뿐만 아니라 국가의 법질서도 꼭 지켜야 되겠다 하는 것이어.

출처/2008. 9. 7. 토(음8.8)큰스님 춘천법문 내용중 발췌







'대각국사 의천'의 설화/전생담


고려시대의 고승 '대각국사 의천'의 설화(전생담)를 들려드리겠습니다. 고려 당시 제11대 문종왕의 4째 아들이 있었는데 그분이 유명한 대각국사 의천이어요. 고려 당시에 한 두 사람의 큰스님을 꼽으라고 하면  '대각국사 의천'과 '보조국사 지눌'을 꼽아요. 대각국사 의천은 4번째 왕자입니다. 11살 때 출가를 해서 승려가 되었습니다.



30대 초반에 중국의 송나라(그 당시 당이 망하고 송나라 건국)에 건너가서 공부를 1년 남짓하고 돌아왔는데, 이분의 전생담입니다. 이분이 갓 태어나면서 울기를 시작해요. 1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고 백일이 다 되도록 울음을 그치지 않아요. 계속 울어댔습니다. 왕이 하도 기이해서 몇몇 신하에게‘도대체 이 꼬마가 우는 원인을 한번 찾아 봐라’라고 특별히 명을 내렸습니다. 가끔 이 애기가 울다가 뚝 그친 적이 있어요.



그 때는 가만히 들어보니까 아주 멀리서 종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요. 종소리가 울릴 때에는  이 애기(문종의 4째 아들인 대각국사 의천)가 울음을 그쳐요. 그래서‘참 이상하다. 종소리가 나는 곳을 우리가 추적해 보자’고 하여 추적을 했어요. 여러분, 그것이 실화라고 하지만 우리가 받아들이기가 곤란한 신비함 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실화에다가 조금 보태졌으니까 믿으셔도 됩니다.



들려오는 종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만주 벌판까지 갔다는 것입니다. 도착하니까 절이 있어요. 거기서 종을 치면 애기(대각국사 의천)가 듣는 다는 거요. 그 주지를 불러들였습니다. 그 주지가 방안에 들어오니까 애기가 울음을 뚝 그쳤습니다. 그러니까 그 주지가



‘죄송하지만, 이 왕자님의 배꼽 밑을 보고 싶습니다. 내가 아는 우리 절 주지스님이 언제 입적을 했는데 배꼽 밑에다가 부처 불(佛), 없을 무(無), 신령 영(靈) 자를 썼으니까 한번 조사를 해보겠습니다.’라고 말하자 왕이 허락을 했습니다.



그래서 애기의 배꼽 밑을 보니까 과연 불무영(佛無靈)이라고 쓰였어요. 그 주지가‘우리 스승(주지스님)이 틀립없습니다.’라고 했어요. 왕이‘너의 주지 스님이 한평생을 어떻게 살았느냐?’고 하니까



‘우리 스승은 정말로 한평생을 말로 할 수 없는 기이한 점이 있습니다. 스님되기 전까지 종노릇(머슴살이) 했습니다. 머슴살이를 수 십 년 했는데 그 동안의 세경(노임)을 받아가지고 장가도 안가고 금붙이를 사서 우물 속에다가 저장을 했답니다. 몇 십 년을 하니까 금붙이 덩어리가 대단히 컸습니다. 그 당시 어느 절이 화재가 나서 소실이 되었는데 그 절의 승려들도 나몰라라하며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때 우리 스승이 머슴살이를 해서 모아 놓은 금붙이를 가지고 중창을 했습니다. 그런 후 스스로 머리를 깎고 주지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 주지 밑에서 시봉을 하다가 승려가 되었습다. 주지가 되었는데 정말로 이상한 일입니다. 주지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 스님이 벼락을 맞아 꼽추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듬해 또 벼락을 맞았습니다. 그 이듬해에 죽어버렸습니다.’



라고 하는 거요. 주지스님이 두 번이나 벼락을 맞고 죽어버렸다는 거요. 그 참 이상하지요. 이 애기가 우리 주지스님이라는 거요. 그 운명이 너무너무도 기구하고 말로 표현 할 수 없으리만큼 이상해서 내가 배꼽 밑에다가 부디 부처가 되라고 부처 불(佛)자를 썼고, 불교에서 무(無)자가 가장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도가(道家)에서 조차도 최고의 의미를 지닌 무(無)자를 써놨고, 그리고 신령 영(靈)자도 썼다는 거요.



그게 역력하게 써져 있었답니다. 그래서 우리 스승이라는 거요. 과연 그 대각국사 의천이 왕자의 신분으로서 불도에 뜻을 두고 11살 되던 해에 출가를 했답니다. 11세 소년이‘왕과 국가를 위해서 내가 큰스님이 되겠습니다.’하고 자원을 하니 문종 임금이 감동해가지고‘너의 뜻이 그렇다면 출가를 하여 훌륭한 스님이 되어라.’



해서 승려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30살이 넘도록 수행을 잘하다가 더 많은 공부를 하기 위하여 중국의 송나라로 들어갔습니다. 1년 여 동안에 중국의 큰스님들을 모두 만나서 담론을 하고, 법열을 논의 하는 등 덕행을 쌓다가 귀국을 해서 약 4,000여권에 이르는 장소(경·율·론 삼장을 주석하는 것)를 번역했습니다.



그 당시 흥왕사에서 간경 교장도감(고려시대 속장경의 판각을 맡아 보던 관아. 선종3년(1086년)대각국사 의천의 제청으로 흥왕사에 설치)을 두고 장소 만을 4,000여권 번역 출간한 대각국사 의천은 불교 중흥에 크게 일조를 하였고, 47세를 일기로 입적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여러분한테 하는 것은 부처님의 교단을 찾아와서 불공을 하거나, 천도재를 모시거나, 크게 불사를 일으켰거나, 불·보살이 알아줄만한 크나큰 불사를 일으켰거나 한 사람들은 한평생 묘합니다. 여러분들이 금생만 가지고 볼 때는 참 우습지요. 머슴살이를 하면서 이렇게 불사를 했는데 어떻게 3년 동안에 벼락을 두 번이나 맞아가지고 죽어버려요. 그렇지요?


출처/2009.02.02.월(음1.8)큰스님 춘천 법문 中 발췌





조선시대 선조대왕 때 일어난 실화


가끔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 있는데, 조선시대 선조대왕 때 일어난 실화입니다. 선조대왕은 임진왜란(1592~1598년)이 일어났던 그 당시를 살았던 왕입니다. 선조대왕은 덕이 있는 대왕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역사에서도 명군으로 기록됩니다. 상당히 덕이 있고, 지혜도 있는 명군으로 인정해 주는데, 그 당시 동인·서인이라고 하는 당쟁(黨爭)이 심한 때인지라 어진 정치를 펼치지 못했습니다.



그 때 전라도 진도 군수로 발령을 받아 부임해 간 ‵이응′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이름이 외자이지요. 이분은 대단히 선정(善政)을 베풀었습니다. 어느 날 일본 선박 한 척이 조선의 수군에게 나포(拿捕)되었어요. 조선의 관리들이 그 선박 속의 일본 사람들을 묶어가지고 데려왔어요. 그런데 진도 관아의 아전들은 일본 선박 뱃사공들의 수괴(수장)를 죽이려고 해요. 이 사람만은 죽여야 된다 그거요. 말도 통하지 않고, 왜 우리나라에 왔느냐 그거요.



‘이건 필시 무슨 뜻이 있다. 스파이가 아니냐. 이 못된 놈들. 이 중에서 한 놈은 죽여야 된다’

하면서 참수(斬首)할 찰나입니다. 진도군수 ‵이응′이 그 사실을 보고 받고 곧 명령을 내렸어요.

‘절대로 참수하지 마라. 심한 풍랑이나 태풍을 만나가지고 불시에 기착했을 것이다. 죽이지 마라. 내가 지령한다.’

하고 명령했습니다. 그런 후에 오히려 10일 동안 융숭한 대접을 해서 일본으로 돌려보냈답니다. 진도군수 ‵이응′에게는 ‵창해′라고 하는 손자가 있었어요. ‵창해′는 머리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기골이 남자답고, 지혜 총명하고, 빼어난 용모를 갖추었답니다. 어느 날 ‵창해′라는 분이 제주도 목사로 발령을 받아 관속 20여명을 거느리고 부임하는 길에 태풍을 만나 조난을 당하여 ‵이 창해′등 관속 3사람만이 겨우 목숨을 건졌습니다.



한참을 표류하다가 ‵지마도′라고 하는 일본 땅에 기착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 일본 섬의 도주(島主, 섬을 다스리는 어른)앞에 끌려가 가지고 심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아서 손짓 발짓으로 의사소통을 했지만, 도주가 볼 때는 죄인(스파이)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난날 자기들처럼 한때 조난을 당하여 조선의 진도 땅으로 표류해서 그렇게 고생을 한 사람들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도주가 바로 진도군수 ‵이응′이 살려 보낸 일본 선박의 수장이었습니다. 그 도주가‘너희들 ‵이응′이라는 사람을 아느냐?’라고 묻더랍니다. ‵이응′이 누구죠? 진도군수로 살았던 ‵창해′의 할아버지이지요. 그러니까 ‵창해′라는 사람이‘우리 할아버지입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도주는 너무도 반가워하며 융숭한 대접을 합니다. 그 창해라는 사람이 머리도 총명하고, 용모도 잘생기고, 남자답고 하니까 도주가 정을 붙입니다.



도주는 아들이 없고 딸만 하나 있었습니다. 가끔은 자질구레한 심부름을 시키다가, 차츰 상당한 어느 직책을 맡겨봅니다. 맡기는 쪽쪽 착실하게 일을 잘 처리했답니다. 그러니까 도주의 눈에 들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창해′를 불러가지고‘우리 딸하고 네가 평생 가약을 맺고 살아라. 부부인연을 맺고 살아라.’라고 말했습니다.



그 당시는 적어도 300~400년 전이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민주사회는 아니었습니다. 그 섬의 도주이면 그 섬에서는 완전히 삼권을 쥐고 있는 거요. 그런데 ‵이창해′는 그 당시 나이가 아마 30세 정도 되었습니다. 일찍이 12살 때 18살 처녀와 결혼해 가지고 살다가 19살 때 상처(喪妻)했어요. 일본여인들은 일반적으로 남편을 대단히 공경하고 예절이 분명해요.



‵이창해′는 도주의 딸과 결혼을 하여 사는데 이름도 성도 바꿉니다. ‵창해′는 놔두고 그 도주의 성을 따서 ‵모찌모또 창해′가 되었어요. 나중에는 도주가 모든 도의 정사(政事)를 ‵창해′한테 맡겨 버립니다. 그래서 30년을 삽니다. 슬하에는 아들 딸 12명의 자녀를 두었답니다. 그 중 큰아들 이름이   ‵의충′이었어요. ‵의충′은 자기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닮아가지고 도량이 넓고, 잘생기고, 아주 용맹스러웠어요.



이렇게 30년이 흘러갔습니다. 한편 고국에서는, ‵창해′어머니가 오씨인데 강원도 고성사람이어. 불교 신자였는데 관음 행자(관음 신자)였습니다. 자기 아들 제주 목사   ‵창해′일행이 바다를 건너다가 조난을 당했다는 비보를 듣고 실신했어요. 그래서 가까운 낙산사를 다니면서 아들 명복을 비는 것이 일과가 되고 습관이 되었답니다. 강원도 양양 낙산사는 지금도 유명한 곳이죠.



낙산사를 다니면서 아들이 조난당한 그날을 기일로 꼭 알고 해마다 천도재를 모십니다. 30년이 흘렀습니다. ‵창해′의 어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창해′의 어머니 곁에는 ‵남향′이라는 ‵창해′의 남동생이 있었습니다. 돌아가시면서 ‵남향′을 불러놓고 유언을 하기를‘너의 형이 떠난 날(조난당한 날)이 아무 달 아무 날이니까 이날만은 반드시 낙산사에 가서 천도를 해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창해′의 어머니가 신심이 있는 분이었어요.



고국에서는 그랬고, 일본에서의 창해는 이제 아들도 그렇게 많이 낳았고, 또 자기 아들이 대단히 남자답고 지성스럽고 일처리도 잘하기 때문에 모든 정사를 아들한테 물려주었습니다. ‵창해′가 하는 것이라고는 날마다 낚시질이나 하면서 소일 했답니다. 하루는 바다에 나가서 낚시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일진광풍이 일더니 무서운 파도가 ‵창해′의 낚시 배를 휘몰아 이끌고 어디로 달려가 버렸습니다. 어디에 도착했느냐하면 강원도 통천에 도착했답니다. 기절을 했다가 깨어나 눈을 떠보니까 조선 사람들이 구경을 하고 있었어요. 고국의 사람들이어요. 낯익은 땅이었습니다.



일본과 한국이 얼마나 먼 바다 거리입니까. 자기가 승선했던 배는 낚시 배였는데 옷만 좀 적셨더라 그거요. 정신을 수습해서 물어보니까 강원도 통천이라는 거요. 그렇다면 낙산사가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도 낙산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또 자기 있는 곳에서 가까우니까‘낙산사를 한번 구경해 보자. 가서 부처님께 기도나 올리자’하며 낙산사에 가서 기도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자기 동생을 만납니다.



그날이 자기가 조난당했던 날인지 동생 ‵남향′이 천도재를 마치고 귀가하는 중이었고, 형 ‵창해′도 낙산사에서 기도를 마치고 낙사사를 구경하면서 나오는 중이었는데 뜻밖에 동생을 만났어. 마주쳤는데 30~40년의 세월이 흐르다가 보니 동생(남향)이 형(창해)을 못 알아 봤습니다. 그런데 일본 복장을 한 남자가 지나가니까 동생이‘참 묘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다가가 묻습니다.



‘당신 일본 사람이오, 조선사람이오’라고 하니까 ‵창해′가‘사실 나는 조선 사람입니다.’‵남향′이‘그러면 당신이 혹시 ‵창해′가 아닙니까’라고 물었어. 30~40년 흘렀다고 해도 동생을 몰라보겠습니까? 알 수 있지요. 그래가지고 서로를 알아보고‘아이구 형님!’하면서 붙들고 뒹굴고 얼싸안고 울었다는 거요. 고국에 계시는 부모와 조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통곡을 했답니다. 이이야기는 실화입니다.



이렇게 인과는 분명한 것입니다. 표류하던 일본인 도주(島主)에 대하여 자기 할아버지가 따뜻하고 융숭하게 대접해서 돌려보냈기 때문에 손자인 ‵창해′도 뜻밖의 태풍으로 인한 조난을 당해가지고 일본 지마도 땅에서 그 도주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고, 도주의 사위가 되고 한 그 결과는 인과의 선인선과인 것입니다. 인연의 도리인 거요. 왜 하필 조선 땅으로 태풍이 몰아쳐 버렸어. 인연의 도리인 거요.



그래서 모든 인간사는 하나님이 만들고 하나님이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전생에 사람을 죽였다? 반드시 죽입니다. 눈을 떠서 보니까 반드시 인과가 있어요. 하나님은 없어. 붓다까지 올라가서 보니까 절대로 하나님은 없어. 이 법계의 주인은 없어. 그러나 다만 부처님은 계셔. 왜? 부처님은 본래 중생으로 해서 수행을 했거든요. 여러분들도 모두 다 붓다가 될 수 있습니다.

출처/2009. 02. 17. 화(음1.23) 큰스님 부산 법문 中 발췌





어떤 분의 삼생 전 이야기입니다

어떤 분의 삼생 전 이야기입니다. 어떤 여인의 삼생 전 이야기예요. 그 때도 그 여인은 대단히 예뻤습니다. 미국의 어느 중인 가정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나이가 들어 결혼을 했습니다. 남자를 잘 만났다 싶었습니다. 남자도 잘 생기고 미남이었어요. 그 두 사람의 생활은 대단히 만족했고 행복했습니다. 그 여자는 자연스레 임신을 하게 되었고 남편은 밖에서 열심히 다녔습니다.



 이 여자는 남자가 무슨 직업인지를 알려고도 안했어요. 많은 직업이 있지요. 부동산 중개업, 사업, 기타 등등의 여러 가지 직업이 있을 겁니다. 그 남편은 처음에는 아주 자상하고, 가정밖에 모르고, 열심히 벌어서 돈을 갖다가 아내에게 주고... 그 이상 행복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나는 대단히 행복하게 산다.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냐 하고 반문할 정도로 잘살았습니다. 돈도 많고, 남편한테 사랑도 많이 받았고 해서 이 세상 누구도 부러울 사람이 없었어요. 그러는 중에 임신을 해서 아들을 낳았어요. 아들을 낳은 지 9개월 쯤 되었는데 남편은 구속이 되어 재판에 회부되었습니다.



그 남편의 죄명은 살인강도였어요. 그래서 사형선고를 받아 남편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버렸습니다. 이렇게 되자 이 여자의 갈등과 고뇌는 여러분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남편을 잃은 충격도 충격이고, 남편이 자기를 배신한 그 배신감도 있고, 어쨌든 이 생각 저 생각 복합적으로 갈등을 했어요.



이 여자의 아이는 살인강도범의 애기예요. 그렇지요? 이 아이는 살인강도범의 아이여. 이 아이는 성장해도 출세할 수가 없어요. 신원조회를 하니까 출세를 할 수가 없어.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나 하고 생각해 낸 것이 죽여야 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들을 죽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죽이기로 결심했습니다. 목을 조르려고 하니까 그 아기가 엄마를 쳐다보고 좋아하며 방긋 웃는 그 모습에 차마 죽일 수가 없어. 몇 번 시도 했지만 안 돼. 그래서 시간이 흘러가는데 결단을 내린 거예요. 죽일 방법을 알았어. ‘이것을 질식사 시키자. 내가 죽이는 것은 아니니까. 질식사 시켜 놓으면 내가 직접 죽이는 것이 아니잖아.’ 해가지고 이불 세 채를 가져다가 딱 덮어버린 거예요.



그래서 애기가 죽었습니다. 자기자식을 죽이면 그 과보는 무서운 거예요. 이런 큰 죄는 과보가 5가지 4가지 3가지가 온다는 것을 알아야 돼. 금생에 사람을 죽였으니까 살인범으로 징역을 살아야 되는 법적인 책임을 져야 되는 거예요. 이런 과보가 있지요. 그리고 명부에 들어가면 지옥에 가. 사람을 죽이면 지옥으로 가. 물론 열시왕이 아주 자세하게 심리를 하겠지요.



논죄를 하지만 지옥이어요. 그것은 중지옥 이상을 갑니다. 이제 두 가지의 과보를 말씀드렸지요. 그리고 무주고혼으로 떨어질 수도 있어요. 그 다음에 지옥 벌을 다 받으면 끝나는 것이냐? 끝나기도 하는 사람이 있지만, 아귀나 짐승세계로도 오는 사람이 많아요. 네 가지(군데)이지요. 짐승 몸을 다 받고 나서 사람으로 오는 것이지만 그런 큰 죄를 지은 사람은 하천(下賤)한 신분의 부모를 만나는 거예요.



그래서 병(病)이 오게 되어요. 다병(多病) 또는 심각한 병을 앓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다섯 가지 정도의 5중 과보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업이 그렇습니다. 물론 이 여인은 아마도 지옥, 짐승의 세계를 거쳤을 겁니다. 이 여인이 사람으로 오니까 그 동안 기회를 보면서 복수하려고 노리고 있었던 아드님 영가가 엄마의 뱃속으로 들어간 거예요.



아드님 영가가 9개월이지만 영체로는 40대입니다. 명부로 들어갈 때에는 모든 사람들의 영체는 40대입니다. 4번 영체는 그 죽을 때의 나이 대이지요. 그러나 4번 영체는 명부로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4번 영체는 놔두고 1․2․3번 영체는 뭉쳐서 지옥으로 가는데, 이 4번 영체는 유령으로 일정기간(1~2년)을 활동하다가 소멸됩니다.



이 4번 영체는 생명체가 아니어요. 습대로 살아(돌아다녀). 스님이 유령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지요? 그런데 이 아기는 아기의 몸으로, 이건 죽었으니까 그 몸 그대로 복수를 하려고 엄마 뱃속으로 들어간 거예요. 이제 엄마가 금생에 사람으로 왔으니까요.



사람으로 온 것을 딱 보고 뱃속으로 들어간 거예요. 이 빙의는(원결은) 꼭 그 몸 안으로 들어갑니다. 몸 안으로 들어가는데 몸 안에서도 모든 장기에 같이 붙어버려요. 그건 기어이 죽는 거예요. 그 사람을 죽여야 원결이 끝나는 거예요. 그 꼬마(애기)는 사실 아주 양순하고 업이 그렇게 지중한 애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이 4번 영체의 꼬마가 하는 말이



‘내가 이 정도로 해서 접겠다. 이 정도로 해서 과거에 내가 당한 이 서러움을(원한을) 끊겠습니다. 내가 앞으로 계속 악의를 품고 작해(作害)를 하게 되면, 또 이렇게 윤회를 하게 되면 끝없는 원결이 이어질 것 아닙니까? 이 정도로 해서 접겠다.’고 한 거예요.


출처/현지궁 현지사 2009.8.13.목 자재 만현 큰스님 부산법문 中 발췌





 150여 년 전 경기도 지역에서 일어난 실화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50여 년 전 경기도 지역에서 일어난 실화입니다. 어느 김씨 성을 가진 남자가 죽었습니다. 그 가족은 슬피 울면서 아버지를 매장했습니다. 그리고 삼우제(三虞祭)도 다 지내고 했는데, 어떤 남자가 자기 집으로 들어오더니 ‘모두 앉아라.



내가 사실은 너의 아버지니라.’ 라고 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망자의 부인이며, 자식, 손주들이 의아해 하지요. 전혀 딴 사람이 와서 ‘내가 너의 아버지니라. 앉아라. 들어봐라.’ 내가 죽은 지 얼마 되었어(얼마 되었지). 그런데 명부에서 아직도 더 살아야 된다고 보내줬어.



그래서 이승을 와보니까 내 몸뚱이는 벌써 파묻어 버렸어. 그래서 갈 곳이 없어서 헤매다가 마침 여기 집하고 얼마 떨어지지 아니한(몇 킬로, 몇 십리 정도 떨어진) 거리에 이 몸뚱이가 있더라(죽어 있더라) 그거예요. 방금 죽어 있더라 그거예요.



그래서 그 몸뚱이를 내 옷으로 갈아입고 왔다 그거예요. 그러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너무도 소상하게 이 집안일을 잘 알아. 아버지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일까지 다 알아. 분명히 아버지여. 분명히 아버지인데 몸뚱이는 아니어요. 그러니까 가족들이 긴가민가(반신반의)하지요.



그 몸뚱이, 지금 아버지가 입고 있는 이 몸뚱이(옷), 이것은 누구냐? 알아보니까 박씨 성을 가진 분이었어요. 어느 고을의 박씨 성을 가진 집안에서 자기 아버지가 행방불명(실종)이 되었어.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어. 그런데 자기 아버지 같은 분이 어느 마을의 김씨 성을 가진 집안에 나타났다고 하니까 모두 찾아 왔단 말이에요.



보니까 자기 아버지예요. 박씨 성을 가진 가족들이 자기 아버지를 찾다가 소문을 듣고 김씨 집안에 어떻게 생긴 분이 아버지라고 하며 나타났다고 하니까 박씨 집안에서 몰려왔단 말이에요. 보니까 아버지여. 아버지! 하고 붙들고 우는데 이 사람은 김씨 성을 가진 아버지거든. 껍데기만 아버지다 그거지(껍데기는 행방불명된 박씨라 그거지). 그래서 진위여부를 가려 달라고 두 집안에서 관가에 소송을 제기한 일이 있었습니다.


출처/현지사 9.26.일 자재 만현 큰스님 춘천 법문 중 발췌






달마대사


여러분, 달마스님(달마대사) 알지요? 달마대사는 지금으로부터 1500여 년 전 인물입니다. 큰스님이라고 하지요. 달마스님(달마대사)이 길을 가는데 막 죽은 큰 구렁이가 길을 막고 있었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구렁이를 보면 놀라고 징그럽다는 생각을 할 테니까 내가 치워 줘야 되겠다(이것도 좋은 일이니까 치워 줘야 되겠다)’ 하고 자기 몸뚱이는 놔두고 구렁이 속으로 들어갔어요. 구렁이 속으로 들어갑니다.


몸뚱이는 놔두고 몸뚱이에서 나와 구렁이 몸속으로 들어간 것이 무엇이지요? 영체입니다. 그런데 영체는 몇 개로 되어 있다고 스님한테 들었습니까?


 네(4)개 이지요. 1․2․3번 영체는 항상 뭉쳐져 있습니다(뭉쳐 다닙니다). 이것도 알아야 됩니다.


엄마 뱃속으로 들어갈 때에는 1․2․3번 영체가 들어갑니다. 이제 꼬마(태아)가 한달 두 달 세 달 네 달...자라지요 네 달 이후에는 이목구비(耳目口鼻)가 생깁니다.


이러면서(육신이 생기면서) 4번 영체가 생깁니다. 4번 영체는 이 육신과 영체를 지남철(자석)처럼 접합시켜 주는 기능을 합니다.

이럴 때에는 구렁이 속으로 1․2․3․4번 영체까지 들어가야 됩니다. 그래서 구렁이를 저쪽 숲에다가 딱 갖다놓고 와보니까 자기 몸뚱이가 없어졌어. 자기 몸뚱이는 없어졌는데 우락부락하게 생긴 몸뚱이 하나가 있었어요.


그래서 달마스님이 선정에 딱 들어서 보니까, 아차! 자기를 따라서 오던, 그러니까 자기보다도 몇 십분 후에 그 길을 가던 어느 신선이 달마스님의 몸뚱이가 더 좋으니까(당초에 달마대사는 왕족이었으며 거룩하게 생겼어요) ‘이 몸뚱이로 내가 살면 더 좋겠구나’ 해서 그냥 바꿔 가버렸어요.


바꿔 가버린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소장하고 있는 지금의 달마대사 그림을 보면 눈은 크게 생겼고, 전반적으로 우락부락하게 생겼잖아요. 그러한 자기 몸도 아닌 자기 몸을 가지고 살다가 죽었다고 하거든요.
출처/현지궁 현지사 9.26. 일 자재 만현 큰스님 춘천 법문 중 발췌





중국 신주일보(神州日報)에 실린 실화


다음은 1916년 2월26일자 중국 신주일보(神州日報)에 실린 실화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김씨 성을 가진 이야기와 거의 비슷합니다.



중국 산동성 어느 마을에 최천선(崔天選)이라고 하는 석공(石工, 돌로 비석도 만들고, 사람의 형상을 비롯하여 여러 형상을 만드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 분이 한 여름인데도 호열자(虎列刺, cholera)를 앓으니까 어머니가 땀을 푹 내라고 이불을 덮어 씌워 주었답니다. 그 어머니가 큰 실수를 했지요.



그로인해 최천선(崔天選)이가 숨이 막혀서 죽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앞의 김씨 이야기처럼 최천선(崔天選)이가 명부를 갔는데, 명부에서 아직 명(命)이 남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승으로 돌아왔는데 최천선(崔天選)의 집안에서는 이미 최천선(崔天選)이를 매장해 버렸어(묘를 써버렸어.) 이렇게 1․2․3․4번 영체가 의지 처를 얻지 못하면 무고혼(무주고혼)이 됩니다. 그러니까 자꾸 의지 처를 만나려고 해요.



역시 최천선(崔天選)이도 자기가 살던 집근처에서 시작하여 중국 일대를 샅샅이 뒤지다가 월남(안남)쪽까지 내려갔어요. 안남(安南, 베트남)쪽까지 내려갔어.



베트남 쪽에서 막 죽은 유씨 성을 가진 몸속으로 들어 가버렸다고요. 묘금도 유(劉)자가 있습니다. 유건중(劉建中)이라고 하는 막 죽은 몸속(송장 속)으로 들어가 버렸어요.



거기서(유건중 집에서) 눈을 뜨고 몸을 움직이고 하니까 그 집안 역시 부인이며 자식들이 아버지가 살아났다고 아주 좋아라고 했단 말이에요. 아버지는 살아났는데 전혀 아버지가 아니어요. 이거 참 서로가 아주 고약스럽지요.



이 사람은 자기의 1․2․3․4번 영체가 들어갔기 때문에 다 알아요. 자기는 산동성에 살고 있던 석공 최천선(崔天選)이라는 것을 알아요. 그러나 여기 유건중(劉建中)의 집안 내력이라든지, 유건중(劉建中)이가 살았던 기억은 없어요. 모르니까.



몸뚱이가 다르니까. 그래서 글씨로 자기의 신분을 밝힙니다. ‘나는 산동성에서 살았던 석공 최천선이라는 사람인데 호열자(虎列刺)를 앓고 있는 나에게 어머니가 땀을 푹 내라고 두꺼운 이불을 덮어 씌워주는 바람에 질식해서 죽었답니다.’ 라고 한자로 썼어요(중국은 한자를 쓰니까). 또한 베트남도 한자입니다.



그러니까 ‘아! 그런가 보다’해서 이 불가사의한 일이 소문에 꼬리를 물고 널리 알려져 신문에 보도 되면서 세계가 놀란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 사건에 대하여 기자들이나 그 방면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조사를 하고 확인을 해보니까 사실이었답니다.



여러분, 이 몸뚱이의 주인공은 영혼체라는 사실, 인간 영혼의 실체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여러 기성종교, 세계의 큰 종교, 불교에서도 선불교라든지, 저기 남방불교(위빠사나 불교) 등에서는 이것을 모릅니다.



모르기 때문에 여러분들은(우리 신도 분들은) 이 점에 대해서 ‘좀 투철히 알아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면 죄는 안 지을 것이다.



이걸 알면 이기심도 욕심도 적어질 것이고, 정법을 듣는데 있어서 아주 좋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영혼체에 대한 상식을 여러분들이 투철히 알았으면 해서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출처/현지궁 현지사 2009.9.26. 일 자재 만현 큰스님 춘천 법문 中 발췌






기미(己未)만세운동이 있던 1919년 이야기


지금으로부터 90여 년 전쯤이니까 기미(己未)만세운동이 있던 1919년 이야기입니다. 해인사에 '환경'이라는 스님이 있었습니다. 성은 임씨였습니다. '임 환경'이라는 스님이 있었는데, 그 절의 감원(監院: 암자나 교당을 감찰하는 역승. 院主라고도 함.)이었어요.



하루는 경상북도 지례군 지례면 옹팽리 라는 마을에 사는 김재선(金在善)이라는 사람이 개를 한 마리 데리고 와서 개를 업고 해인사 도량을 다녔어요. 이 이야기를 들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해인사 감원(監院) '환경'스님이 ‘여기는 성지이기 때문에 개를 데리고 들어올 수 없습니다. 그리고 개를 업고 다니는 것이 뭐냐’며 주의를 주니까, 김재선이가 그 사연을 이야기 했습니다.



‘스님! 사연이 있습니다. 들어봐 주십시오. 작년 5월쯤 우리 어머니가 별세했습니다.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요.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4개월쯤 되어 집에서 기르던 개가 희한하게도 새끼를 한 마리 낳았습니다. 탐스럽고 귀여워서 예쁘게 길렀는데 아주 총명해요. 그래서 사냥개를 만들려고 어느 날 귀를 쨌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꿈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나타나서 ‘이 불효 놈아 내가 선업을 쌓지 못하고(착하고 바르게 살지를 못하고) 업을 짓고 살아서 좋은 곳은 가지 못하고 이 개의 몸을 받았다.



그런데 사냥개를 만들려고 귀를 째버렸으니까 내가 너무 아프다.’라고 하거든요. 깜짝 놀라 깨어보니까 꿈이거든요. (그 착한 아드님이 김재선(金在善)입니다. 김재선이가 부인과 뜻이 맞았어. 그걸 믿어. 그래서 이제 먹이도 잘 먹이고, 그날부터는 어머니 대우하듯 했답니다.) 그런데 또 꿈에 그 어머니가 나타나서 ‘아들아! 내 평생  소원이 두 가지가 있었단다.



그 소원을 이루지 못했구나. 너희들이 내 소원을 이루어 다오. 첫째, 기차를 한번 태워다오. (지금 90년 전 이야기입니다.) 그 다음, 해인사라고 하는 절에 팔만대장경을 구경하는 것이란다.’ 이 두 가지가 소원이라는 거요. 그래서 하루는 거기서 가까운 김천역에 어머니를 모시고 가서 기차를 태워드렸답니다. 그 다음에 팔만대장경을 어머니에게 구경 시켜드리려고 해인사에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지이하 삼직 스님들이 너무도 희유한 이야기이고, 이것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죽은 사람이 짐승도 되는 구나. 사람이 짐승(열두 띠 짐승 등)도 된다”는 부처님말씀을 확인한 것이지요. 그 부처님의 말씀을 확실히 경험한 그 젊은이(직접 개를 데리고 온 그 젊은이)의 말을 듣고 감복했습니다.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대장경 판각에는 한 사람 또는 몇 사람 가지고는 안 들어갑니다. 그렇지만 딱 열어서 전부 구경을 시켜줬답니다. 어느 날 그 어머니가 또 다시 꿈에 나와서 ‘이제 내가 두 가지 소원이 이루어졌으니까 천도재를 해다오.



이 해인사 큰절에서 내가 천도재를 받고 싶다. 그러면 좋은 데로 갈 것 같다. 그러니 천도재를 좀 해다오.’라고 말씀을 했답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위해 해인사에서 49재를 했어요. 천도재를 모셨어요. 천도재가 다 끝난 해인사에서 상당히 정성들여 칠재 내지 49재를 했는가 봐요.



어느 날 아침에 깨어서 어머니를 보려고 밖에 나갔더니 그 어머니 개가 죽어있었어요(죽었어요). 또 꿈에 ‘좋은 데로 갔다.’ 그거예요. 그러니까 ‘아들아! 정말 고맙구나.’ 하는 이것은 실화입니다.



여러분! 지옥도 있고, 그리고 우리가 짐승세계로도 빠지고, 그래서 짐승이 되어 나오고 합니다. 여러분, 절대로 의심하지 마세요. 스님은 10년 전부터 그 많은 천도재를 주관했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을 자세히 압니다. 천도재 때 선대 영가님을 적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너무도 너무도 자세히 압니다. 그런데 이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모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전혀 모릅니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철학을 하고, 종교를 했다는 교수 석학들도 사람이 죽어서 지옥을 가고, 또 짐승도 되고 하는 이것을 웃기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이거 웃기는 이야기라고 하거든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사람이 짐승 몸을 받습니다. 그리해서 짐승 몸도 한 번 죽었다가 받는 것이 아니고 닭 장사 하는 사람의 경우, 전생에 닭을 많이 죽인 사람은 23생을 닭으로 태어나라.



이런 것이 나옵니다. 여러분에게 언젠가 말씀해드린 적이 있을 겁니다. 닭으로 끝나나? 이제 또 구렁이로도 오고(수십 생으로 오고), 또 다른 동물로도 오고, 그런 후에 사람 몸을 받아옵니다. 우리가 지은 그 업은 태산만 합니다. 여러분의 업장은 태산만 합니다.



그 태산만한 업장을 금생에 부처님 교단을 만났을 때에 모두 소멸해야 됩니다. 소멸하지 않으면 삼악도를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한 5년 동안 동영상 법문을 한 것입니다. 100회째니까 5년이 되지요. 앞으로 많은 법문을 할 것입니다.



여러분, 그때마다 모두 나오시고, 여러분만 나오실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말을 듣는 사람을 데리고 나오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눈에는 안 보이지만, 그 많은 업장이 벗겨져 나가는 것이 사실이니까 그런 축복을 받으시고, 그러다가 보면 여러분들이 돌아가시더라도 절대다수가 하늘세계로 갈 것입니다. 스님이 이것을 힘주어서 말씀드립니다.


출처/현지사 2009.10.11.일 자재 만현 큰스님 부산법문 중 발췌





중국 명나라때 이야기

지금으로부터 600~700년 전, 중국 명나라 때 이야기입니다. 성씨는  '방'이요 이름은 '효유', '방효유'라고 하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방효유의 아버지가 어머니 상(喪)을 당해서 묘 터를 잡았어요. 그러니까 돌아가신 분은 방효유 입장에서 보면 할머니지요.



이제 묘 터를 파서 그 분의 시신을 묻게 되겠지요. 묘 터를 잡아 놓고 장례를 준비 중인데 꿈에 붉은 옷을 입은 노인이 나타나 가지고 ‘3일만 여유를 주시오. 3일만 여유를 주시오.’라고 하며 간청을 했답니다.



깨어보니까 꿈이거든요. 그래서 ‘이건 뭐 개꿈이겠지’ 하고 그대로 자기의 어머니를 그 묘 터에다가 매장을 하려고 그 묘 터를 파보니까 뱀들이 드글드글 해. 그 뱀들을 모두 태워 죽여 버렸어요. 그런데 그 붉은 옷을 입은 노인이



 ‘3일만 기한을 달라. 내 자손이 800이나 되는데 3일만 주면 전부 옮겨 줄 것이다. 그러니까 3일만 기한을 주시오. 만약 당신이 내 말을 들으면 크게 좋은 일이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큰 액운이 닥칠 것이오.’ 이런 말을 했어요.



그런데 이 방효유의 아버지가 그걸 믿지 않고 묘 터를 파 보니까 그 많은 구렁이(뱀)들이 있는데 다 잡아다가  불에 태워 죽여 버렸어요.



나중에 어떻게 되었느냐? 그 후로 방효유가 한림학사 까지 되었습니다. 한림학사라고 하면 한직(閒職)이지만 나라에서 알아주는 석학이어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방효유가 모반(반역사건)에 연루가 되었답니다. 그 당시 왕(천자)이 성조예요. 성조가 화를 내어가지고 ‘이 놈은 10족을 멸해라’라고 명한 거예요. 10족을 멸하고 보니까 약 800명이 되더라는 겁니다.



여러분, 짐승(동물)중에서 사람의 영체가 들어가는 동물을 알지요. 뱀은 들어가지요. 그런데 우리는 지난날 그 많은 업을 지어놓고 자기는 깨끗이 사는 줄 압니다.



자기는 깨끗이 사는 줄로 알아요. 아니지요. 명부에는 모든 것이 입력됩니다. 자기의 행위는, 자기의 신․구․의 삼업의 행위는 전부 명부에 입력이 되고, 그것이 입력된 것은 기록 되어서 장부로 보관 됩니다. 똑같이 내 자신의 영체에도 반영이 됩니다.



그 업의 종자는 내 영혼체에 그대로 심어집니다. 업의 종자는 절대로 썩지를 않습니다. 업의 종자는 반드시 인연 따라서 싹을 틔워 꽃을 맺고, 열매를 맺습니다. 열매를 맺을 때에는 화(禍)를 당하지요(나쁜 짓을 했으면).



그래서 영혼체를 볼 정도의 수행의 경지에 오른 불과(佛果)를 증한 사람은, 스님이 가끔 이야기 하지만 저 영혼체에 쇠사슬로 묶여 있다든지 하면 ‘이제 저 사람은 곧 식물인간이 되겠구나.


또는 중풍을 맞겠구나.’ 하는 것을 압니다. 그 영혼체에 묶여있는 쇠사슬을 잘라주고, 그것을 완전히 분해시켜 버릴 수 있는 분은 오직 우리 부처님뿐입니다. 자, 합장하시고 염불을 좀 하겠습니다.


출처/현지사 2009.10.25. 일 자재 만현 큰스님 춘천 법문중 발췌





'소신공양(燒身供養)'이야기


이야기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이야기 좋아하시지요. 150년 전 경상도 어느 큰 절에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그 절 주지도 역임했었어요. 그러나 뒷방에서 한평생 공부한 적도 없고, 한 평생을 다 털어서 한두 시간 염불한 적도 없고, 중생을 위해서 선업을 쌓은 적도 없고, 부처님께 선근공덕 지은 것도 없어.


이제 늙어가지고 죽을 나이가 되니까 자기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런 일을 한 것이 없어. 내가 지금 죽으면 큰일인데... 아무리 살펴봐도 좋은 일을 한 것은 없어. 그렇게 살아버렸어. 허송세월을 보냈구나.


내가 스님이 되어가지고 큰 절 주지도 하긴 했는데, 구체적으로 따져보니까 좋은 일 한 것은 없어. 큰스님들 법문에, 또 경에는 염불이 최고고, 경전 독송이 최고고, 다라니도 해야 되고, 참회도 해야 되고, 불사에 동참도 해야 되고, 부모님께 효도도 해야 되고 한다는데 나는 한 것이 없어. 그러니 나는 죽으면 지옥이구나. 나는 지옥에 갈 수 밖에 없구나.


이렇게 고민 고민을 하다가 무릎을 탁 쳤어요. 햐! 나는 살았구나. 무슨 생각을 하고 무릎을 쳤느냐 하면,《법화경》에 '소신공양(燒身供養)'이라는 것이 있어요. 소신공양, 여러분 중에 아시는 분이 있을 거예요. 소신공양을 하면 그 공덕은 정말로 제일의 공덕이 된다고 하는 경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경의 말씀은 독소(毒素)입니다. 아닙니다. 이건 빼야 됩니다. 어쨌든 그 스님은 그걸 생각해 냈어. 어느 큰스님이 그걸 법문했다 그거요. 말씀을 했다 그거요.


한평생 공부도 안하고, 공덕도 안 짓고, 좋은 일 한 것도 없고, 착하게 산 것도 없고, 그 대신 못 된 짓은 했어. 중이면 하지 말라는 부처님의 계율, 엄정한 계율을 많이도 파했어. 그러니 나는 이대로 죽으면 지옥을 가.

그러니까 카바를 해야 되겠는데, ‘옳다! 소신공양을 하면 되겠다. 소신공양(燒身供養)을 하자.’ 그런 생각을 하고 새끼와 석유기름을 구했습니다. 새끼 아시죠? 그래서 뒷산으로 올라가가지고 결정(결심)을 했어. 뒷산에 올라가가지고 스스로 소나무에다가 묶고 석유통을 머리에 부었어.


그리고는 성냥으로 촤~악 그어대 버렸다고. 이렇게 되었습니다. 큰 절에서 밖을 나온 스님들이 어디서 연기가 무럭무럭 나오는데 ‘앗~뜨거워 앗~뜨거워...사람 살려 사람 살려...’하는데 그 목소리가 어디서 들은 목소리다 그거요. 가만히 들어보니까 노스님 목소리야. 그래서 대중들이 모두 쫓아갔지요. 가보니까 이미 숨은 멎었어요. 완전히 절명해 버렸어.

그래서 그 시신을 옮기고, 전직 주지에다가 부자 절이니까 49일 동안을 다비문대로 잘 치러줬습니다. 49재를 잘도 치러줬어요. 그런데 그 절에 정신이 실성한 어느 40대 여인이 가끔씩 들리곤 했습니다. 그 여인이 하루는 ‘앗~뜨거워 앗~뜨거워...사람 살려 사람 살려...’하면서 다닌다고요. 그러니까 대중스님들이 모두 의아해 하지요.


49재를 잘 했는데, 그러면 극락을 갔어야 되는데, 저 여자가 왜 또 저렇게 하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 했습니다. 목소리가 이상하게도 노스님 목소리 같았어요. 그런 목소리로 그렇게 외치고 다닌다고. 그래서 그 절에서 경을 많이 읽고 공부를 많이 했다고 하는 스님들이 모여가지고 ‘우리 스님이 극락에 못 갔다. 지금 저 여자한테 빙의 됐다.



그러니까 우리가 다시 우리 스님의 천도재를 모셔주자.’라고 했어. 그런데 천도재를 모셔줄 사람이 없어. 공부를 많이 한 스님들이 전국의 큰스님들을 두루 살펴봐서 어떤 스님을 모셔다가 ‘49재를 해 주십시오’하고 청해야 되는데 마땅한 사람이 안 잡혀. 공부를 많이 한 스님이나, 연륜이 많이 쌓인 스님들은 ‘그 종단의 스님은 큰스님이 아니다. 그 큰스님은 괜찮다’ 하는 것을 다 압니다. 많이 교유하고 많이 들어보고 하니까 알아요.



그런데 ‘햐!~ 저기 어느 깊은 산에서 이름 없이 공부를 잘하는 스님이 한분 있단다.’ 이걸 전해 들었어요. 그래서 찾아갔습니다. 요청을 하니까 ‘그렇게 하지요’ 하고 승낙을 받았어요. 그래서 다시 그 미친 여자를 잡아다 놓고 49재를 모시는 거요. 49재를 잘했어. 잘하고 나니까 회향 날 그 여자가 정신이돌아왔어.



막 절을 하면서 ‘노장 이름을 대면서 내가 누구인데, 이제 나는 좋은 데로 가게 되었다. 내가 다시 사람 몸을 받아 올 때에는 정말로 큰스님이 되어야겠다. 진짜 큰스님이 되어야겠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 이걸 깨달았다. 그런데 이렇게 성대하게 두 번 씩이나 49재를 모셔준 대중들한테 고맙다’ 고 하며 백배 인사를 하더랍니다.



이것이 이야기의 줄거리입니다. 이것을 스님이 점검을 합니다. 그 스님은 명부에는 들어갔어요. 명부에 들어가기는 했어. 그러나 지옥에 갔습니다. 지옥에 갔어. 소신공양, 부처님이 소신공양 받는 분입니까? 정말로 왜곡된 가르침이올시다. 이렇게 우리 절에서는 내가 이런 말을 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대전 구미 광주 전주 인근의 절에 다니시는 신도 분들로 압니다. 이런 분들한테는 오늘 처음 합니다. 안 할 수가 없지요. 바른 말을 해야지요. 바른 가르침을 전해줘야지. 여러분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정법으로 이끌어야지.



이것이 이 스님의 사명이니까 말입니다. 나는 그 동안에 무척 많은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전번 어느 때인가 ‘정말로 나 이상의 법을 아는 분은 거의 없을 겁니다. 내 법문 말씀을 꼭 그대로 듣고 따라 주십시오’ 하고 호소했습니다. 그 미친 여자? 정신 안 돌아왔지. 일시적이었지. 사람이 미치는 이유가 있습니다. 정신병환자가 되는 이유가 있어요. 그렇게 간단히 낫는 것이 아니어. 그것은 어느 생엔가(전생에) 자기를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님을 흉측스런 방법으로 시해(弑害)한 과보입니다. 아셨습니까? 내 말 이해하겠지요.



전생에 자기를 낳아준 부모를 패륜적인 소행으로 칼로 도끼로 둔기로 때려서 죽인, 하늘도 땅도 용서할 수 없는 업을 지은 과보입니다. 우리 영산불교 현지사에서는 그거 낫게 해 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너무도 지중한 업이 가증스럽기 때문에 손을 안댑니다. 현지사에서 손을 안대는 부분이 있습니다. 문둥병, 그런 것도 손 안댑니다. 몇 가지가 있습니다. 또 몇 가지 이야기하고 싶은데 생략하겠습니다. 그 외에는 다 할 수 있습니다. 다 해드릴 수 있습니다.

출처/현지궁 현지사 2010.1.30.토 자재 만현 큰스님 대전법문 중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