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19일 금요일

[BBS 불교TV 현지궁 현지사 자재 만현 큰스님 법문모음 ]







                               현지사 춘천 본원



                                      

현지사 대전 분원


                                                                     현지사 부산 분원







현지사 자재만현 큰스님 정기법문
2010. 4. 7. 수(음2.23) 대전 분원


(BBS불교방송 제1회)


4, 5년 전 불교TV BTN방송에서 6개월 정도 설법을 했던 자재만현입니다. 몇 년이 흘러 이제 BBS 불교TV방송에 나와서 부처님 말씀을 전하게 된 것을 대단히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BBS불교 라디오방송과 BBS 불교TV방송을 시청해 주시는 이 나라 1200만의 우리 사랑스러운 불자님들, 그리고 오늘 일본에서도 7명이 왔습니다. 현지사 신도 분들입니다. 그 분들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나는 이 귀중한 시간을 부처님의 진정한 말씀, 위대한 불교를 여러분들한테 소개할까 합니다. 지금 세계인구는 70억 가까이 됩니다. 많은 종교집단이 있습니다. 수만(數萬)을 헤아리는 종교집단이 있습니다. 그리해서 많은 종교인구가 됩니다. 미국만 해도 5,000여개의 사교집단(邪敎集團)을 위시해서, 개신교만 해도 2만5천여 개의 종파가(교단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수만을 헤아리는 교단(종파)이 있습니다. 종교집단이 있습니다. 기독교 신도들이 약10억을 넘을 겁니다. 힌두교가 또 그렇습니다. 이슬람교가 또 그 정도 됩니다. 그런데 너무도 희유하시고 위대하신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교도는 아마 2, 3억을 넘지 못한다고 합니다. 슬픈 일입니다. 사실 불교는 역사가 2600년이 아닙니다.



우리 부처님께서 성불하신지가 2600년 전이 아닙니다. 아주 옛적에, 무량겁 전에, 진묵겁 전에 이미 불과(佛果)를 이루신 어른입니다. 그 동안 사바세계에 많이도 다녀가셨습니다. 불교는 가장 우수한 종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불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 불교는 대단히 슬프게도 원형불교(본래의 불교)에서 너무 떨어져 있습니다. 너무 왜소화(矮小化) 되어있고, 너무 왜곡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기꺼이 이 법문을 수락했습니다.



부처님께서 다시 이 사바세계에 오셔서 불과(佛果)를 이루신 2600년 전만 하더라도 종이도 없었고, 볼펜도 없었고, 녹음기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그 귀중한 말씀을 담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많은 제자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외워서 ‘아! 그것이 옳다’하게 되면 합송으로 내려갑니다. 모두 함께 외워요.



그렇게 하기를 부처님 열반 후 100년, 200년, 그때부터 이제 경전이 편집되어 갑니다. 여기서 많이 왜곡 됩니다. 인도라는 땅에 사는 사람들의 방언은 1,600여 가지가 넘습니다. 중국도 심하지만 인도의 방언이 아주 심합니다. 그런데다가 불멸후(부처님 가신 후) 100년쯤 되어서 부처님의 교단이 상좌부(上座部), 대중부(大衆部)등으로 분열됩니다.



그로부터 100년간에 20여개 부파로 분열됩니다. 그래서 불교의 사상은 왜곡되어 갑니다. 그 구어체인 부처님 말씀을 문자로 정착하다가 보니까(문어체로 쓰다가 보니까) 왜곡 되고, 이러저러한 이유 때문에 많이 왜곡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제 불교는 발전해 가는데, 여러분이 아셔야 될 것은 부처님 가신지 200년 쯤 되어서 마우리아(Maurya)왕조의 3대왕인 '아쇼카왕(아육왕(阿育王))'이 출세했습니다.



그분은 최초로 전 인도를 통일한 대단한 불자였습니다. 아쇼카왕은 인도 자체는 물론, 지금의 이라크 이란 쪽의 페르시아뿐만 아니라 그리스까지 불교를 전파했습니다. 그 이쇼카왕은 이제 보니까 어떤 붓다의 후신이었습니다. 부처님 이후 붓다의 후신이 열분 정도 오셨습니다. 최초로 인도를 통일한 아쇼카왕의 덕분으로 그 당시 면면히 내려오던 브라만교(브라마니즘, 나중에 힌두교로 개칭함)를 누르고 불교가 전 인도를 석권했습니다.



그러나 개탄스럽게도 부처님 가신지 1500년~1600년 후, 아쇼카왕이 가신지 1400년 쯤 되어서 불교는 인도 땅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힌두이즘(힌두교)에 흡수되는 등, 어쨌든 간에 불교는 자취를 감춰버렸습니다. 슬픈 일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주목했습니다. 이 좋은 교리, 부처님 사상인 불교가 왜 망했느냐?



대학교에 가서 인도철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알 것입니다. 우리 불자들이 이걸 알아야 됩니다. 불교가 망한 이유가 있습니다. 11세기에 회교군의 침입이 결정적인 원인이 되지만, 그보다도 정신적․사상적으로 힌두교에 눌려버렸습니다. 다시 부흥한 힌두교(브라만교)에 눌려버렸습니다. 그 인도사람들은 종교심이 대단히 강합니다. 브라만교는 범(梵)·아트만(atman)종교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좀 더 말씀을 해드려야 됩니다.



브라만교(힌두교)란 뭐냐? 이걸 이해하려면 간단하게 말씀을 드려야 됩니다. 태초(太初)에 우주에 변재(遍在)해 있는(우주에 충만해 있는, 꽉 들어차 있는)어떤 절대자, 이게 범(梵)입니다. 범(梵)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지금 아무것도 없는 태초입니다. 그 범(梵)이 스스로 자기를 전개시켜가지고 사람을 비롯해서 우주만물을 냈다고 합니다. 그런 후에 그 범(梵)은 우주만물 속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참 이상하고, 재미있지요?



이것이 만물을 냈으니까 질료인(質料因)이라고 합니다. 질료, 질료인(質料因), 원인이 되어요. 그리고 다시 들어가서 그것들이 모든 활동을 하여 업을 짓고,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냈으니까 그것을 동력인(動力因)이라고 합니다. 우리 사람들 개개인은 범(梵)이 들어갔으니까 그것을 아트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범(梵), 아트만이라고 하는 개념을 알아야 됩니다.



이건 인도의 힌두교(브라만교)입니다. 이 브라만교에서 불교를 볼 때, 불교는 이러한 종교입니다. 인연소생 인연생기(因緣所生 因緣生起)를 이야기합니다. 인연소생(因緣所生), 인연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인연생기(因緣生起), 모든 역사는(모든 사건은) 인연으로 일어나 생긴다는 거예요. 이걸 연기법(緣起法), 또는 연기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 부처님께서 최초로 발견한 정말로 위대한 사상입니다.



그 당시 인도에서는 벌써 많은 주장이 있었습니다. 범(梵)이 스스로 자기의 몸을 전개해서 만물을 냈다고 하는 것을 '전변설(轉變說)'이라고 합니다. 그 당시 '전변설(轉變說)'은 큰 무게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교가 '전변설(轉變說)이 아니다'라고 주장합니다. 우주에 충만해 있는 힘, 태초부터 불생불멸(不生不滅)이면서 우주에 두루 한 스스로 있는 자존자, 이것을 우리가 범(梵)이라 하고, 공(空)이라 하고, 일심진여, 진여불성(眞如佛性), 마음이라고도 하는 등 여러 가지로 이야기하잖습니까? 브라만교에서는 이것에다가 인격을 부여해줍니다. 거기서도(브라만교에서도) 그렇습니다.



인격을 부여해줘. 그래서 범(梵)이 스스로 전개해서(활동을 해서, 몸을 뒤틀어서) 우주만물을 냈다 그거예요. 이걸 행위로 봅니다. 그것은 인격이기 때문에 그렇게 이야기하나, 우리 불교에서는 그건 아닙니다. 이 자존자는(空은, 佛性은, 마음은) 어디까지나 비인격(非人格)의 원리입니다. 그것은 비인격입니다. 이것은 견성(見性)해보면 압니다. 우주본체를 보는 그 자리를 견성이라고 합니다. 본래의 마음, 우주의 근원적인 본체를 보는 것을 견성이라고 합니다. 견성해 본 사람(견성한 사람)은 압니다.



뒤집혀가지고, 경계가 뒤집히더니 하나도 없어. 텅 비어있어. 나도 없고, 너도 없고 텅 비어 있단 말이어요. 실체가 없더라 그거요. 가고 오고하는 것이 없어. 머물고 하는 것도 없어. 이것이 본체야. 이게 본체인데, 여기에다가 심하게 인격을 붙여가지고 인격신으로 화한 것은 기독교와 이슬람교 올 시다. 어쨌든 이건 인격이 아닙니다. 이건 비 인격입니다.



불교에서는 이것에다가 인격을 부여한 소위, 신(神)을 부정합니다. 자이나교도 그렇지만 불교는 신의 존재를 부정합니다. 신(神)을, 인격신(人格神)을 부정합니다. 비인격(非人格)의 원리는 긍정합니다. 비인격적인 원리, 이것은 긍정합니다. 이게 불교입니다.



비인격의 그 범(梵)에서(자존자에서, 空에서) 현상세계가 어떻게 벌어져 나왔느냐? 대단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인연 따라서 모든 것은 생기고, 인연 따라서 일어났다고 이야기합니다. 인연의 법칙, 인과의 법칙, 연기의 법칙을 이야기합니다. 여러분이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겠습니다. 여기에 성냥이 있습니다. 성냥을 그으면 어떻게 됩니까? 불이 일어나지요.



이거 한 가지만 예를 들겠습니다. 그 일어난 불은 하나님이 만들었습니까? 아니지요? 그러면 어떻게 불이 생겼습니까? 불은 어떻게 생겼습니까? 성냥이라는 것 하고, 사람이라는 것하고의 인연에 의해서 일어난 거예요. 그러면 뭐가 문제냐? 이 공(空), 진여불성, 법성, 법신, 범(梵), 범(梵)이라고 합시다.



이건(이 곳에는) 모든 사물을 이루고 있는 요소들의 성품이 녹아 있는데 예요. 불이라고 하는 성품이 상주생 상주멸(常住生 常住滅)이라고 합니다. 상주생 상주멸(常住生 常住滅), 불이라고 하는 성품이 이 우주 안에 가득히 있어요. 불(火)만 그러느냐? 물, 땅, 허공, 바람이라는 성품(지·수·화·풍의 성품)도 그래요. 이 우주 안에 충만해 있다 그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성냥개비를 가지고 그으면 불이 나온다 그거예요. 이 본체(우주만물)에, 우주 간에 이런 성품이 없으면(있지 않으면) 아무리 그어대도 불이 일어나지 않는 거예요. 알겠지요? 간단한 예를 들어주는 거예요.



그래서 연기법(緣起法)이라는 것은 불과(佛果)를 이루지 않고는 알 수가 없어. 이것을 알 수가 없어요. 이 세상만물이 어떻게 생겼느냐? 다른 종교의 철학, 다른 종교의 교주들은 그걸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어. 이것은 인간의 한계예요. 알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있지도 않은 하나님이라고 하는 인격신을(절대자를) 딱 설정해 놓고 보니까 다 되어. 전부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이 창조해버렸어. 엿새 동안에 다 만들어 버렸어. 이렇게 해버리니까 해석이 쉬워. 그렇지만 수십, 수 백 천 가지의 많은 모순이 옵니다. 모순이 있어요. 그러나 연기법으로는 전부 설명할 수 있습니다. 불교는 연기법(연기의 법칙)입니다. 창조론(創造論)이나 전변론(轉變論)이 아닙니다. 일단 그것을 아십시오.



불교가 망한 이유를 지금 이야기하기 전에, 이렇게 조금 알아듣기 쉽게 말씀을 해드리는 거예요. 불교가 왜곡되지 않았더라면, 아쇼카왕이 저 너른 인도 땅을 전부 통일하고 페르시아까지 포교를 했잖습니까? 그 후에 우리 불교가 발전을 거듭했다면, 당나라 때 중국뿐만 아니라 아시아권은 자연히 접수했잖아요(먹었잖아요). 서구라파, 미국까지도 가지 못했다는(갈 수 없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렇게 못할 이유가 없어요.



전 세계를 먹을 수 있었어요(접수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왜 망했느냐? 재래불교에는 결정적인 흠결이 있습니다. 여러분, 듣고 싶죠? 불교를 사랑하는 여러분, 듣고 싶죠? 불교는 인연소생 인연생기, 연기법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육도윤회를 이야기합니다. 그렇지요? 여섯 세계를 업을 따라서, 지은 업에 의해서 여섯 세계를 가서 죽고, 여기서 나고 여기서 가고 죽고해서 여섯 세계를 왔다 갔다 합니다. 윤회, 다람쥐가 쳇바퀴 돌 듯 하는 그 비유가 맞지 않습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어떤 사람은 죽어서 하늘 간 분도 있고,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지옥 가는 분도 있고, 그러더니 사람으로 오고, 축생으로 오고, 사람마다 각각이기 때문에 윤회생사라는 말이 좀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윤회전생(輪廻轉生)이라는 말이 정확한 표현입니다. 중생은 육도에 윤회전생(輪廻轉生)합니다. 윤회를 벗어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육도에 윤회전생(輪廻轉生)합니다. 이것이 불교의 중심사상입니다.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 등이 그렇습니다. 육도윤회를 전생합니다. 이건 맞습니다.



그러면 육도를 윤회하는데, 불교에서는 무아설(無我說)을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따라해 보세요. ‘무아설(無我說).’ 무아설(無我說)을 주장합니다. 이것은 불교의 특색이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이 삼법인(三法印)사상을 공부할 때 ‘제법무아(諸法無我)’를 공부했을 거예요. 무아설(無我說)을 주장합니다. 이제 여기서부터 문제가 옵니다. 모든 사물을 봅시다.



이 세상 우주만물을 한번 봅시다. 여기에 놓여있는 컵, 책상, 마이크, 저기 보이는 산, 바위, 돌, 자갈, 땅, 별...등 이 모든 것도 인연 따라서 이루어진 거예요. 그건 맞는 거예요. 인연 따라서 이루어졌어요. 더 구체적으로 여러분들에게 알기 쉽게 말씀드리자면,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사대요소가 모여진 것은 우리 눈에 보여서 이제 있다고 하고, 이 인연이 다해서 흩어져버리면 없다고 합니다. 공(空)이 되어버려. 전부 항상 있는 것이 아니어요. 왜 그러느냐?



인연소생(因緣所生)이기 때문에 항상 있는 것이 아니어요. 완전히 흩어져버리면 아무것도 없어. 실체가 없어. 아주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실체가 없어요. 자아(自我)라는 것이 없어요. 우리 육신도 봅시다.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을 봅시다. 이것도 나(我)가 아닙니다. 이것도 나(我)라고 하는 실체가 없어요. 눈(眼)이 실체가 있으면 영원히(백천만겁을) 놓아두어도 눈(眼)으로 있어야 돼. 그런데 이것은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인연으로 모여졌기 때문에, 이것은 금방 없어져버려요. 그렇지 않습니까? 여기의 이 컵도 흙하고, 물하고, 불이 모여서 된 거예요. 안 그렇습니까?



이 몸뚱이를 봐요. 이 몸뚱이도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이루어졌어. 그렇기 때문에 이것도 실체가 없어요. 죽어버리면 허망합니다. 다비(茶毘)해버리면 한줌의 흙(재)으로 되어버려. 허망해. 그런데 사람을 비롯해서 유정은 지수화풍으로 이루어진 색(色)이 있습니다. 지수화풍, 이것을 색(色)이라고 해요. 색깔, 또는 색(色) · 색대 · 색의 원소(요소)라고 합니다. 이 네 가지를 묶어서 색(色)이라고 합니다. 그 다음에 정신적인 것이 있습니다. 그렇잖습니까? 사람은 정신적인 것이 있잖아요. 그것을 수상행식(受想行識)이라고 합니다.



수(受)-받아들이고, 상(想)-받아들인 것을 생각하고, 행(行)-그것을 갖다가 정신적으로 행위하고, 식(識)-인식해(판단해). 정신(생각)이라는 것은 이런 수상행식(受想行識)이라고 하는 요소가 있어요(요소로 이루어져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색·수·상·행·식이라는 오온(五蘊)으로 되어있다고 합니다. 색(色)은 지수화풍(地水火風)을 말한다고 했지요.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이라는 오온(五蘊)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온(蘊)이라고 하는 것은 '쌓임'이라는 뜻이어요. 쌓임, 과학에서 볼 때 산소라고 하는 원소는 산소원자의 집합이어요. 그렇잖습니까? 무수하고 동일한 산소원자의 집합이 산소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쌓인 거예요. 수온(受蘊), 상온(想蘊), 행온(行蘊), 식온(識蘊) 그래요. 그래서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을 오온(五蘊)이라고 그래. 사람은 오온(五蘊)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오온(五蘊)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정신,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 정신, 이것이 문제야.



유물론자들은, 저 세상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정신을 뇌의 산물로 봅니다. 그러나 우리 종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우리 불교에서는 정신을 뇌의 산물로 보는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뇌를(육신을) 조종하는 주인으로 봐요. 안 그렇습니까?



이제 무아(無我)를 설명하는데, 여러분! 좀 지루할 것입니다.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에 잘 들으세요. 인간은 오온으로 이루어져있어요. 그런데 그 수·상·행·식(受·想·行·識)이 문제더라 그거요. 이것을 실체로 볼 것인가, 이것을 실체 아닌 것으로 볼 것인가? 그런데 육도윤회를 한다고 하니까,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한다고 하면 주체가 있어야 되는 거예요. 윤회하는 주체가 없이는 육도윤회를 할 수가 없어.



그런데 불교는 무아설(無我說)이거든요. 부파 불교에서 어떻게 이 생각을 실체로 안 봐요. 그러니까 부처님 멸후 100년 이후 20여개의 교파가 나누어져 버렸는데, 이 각 부파 불교에서 무아설(無我說)에 충실해야 되고, 육도윤회에 충실해야 되고, 그러니까 무아설 · 육도윤회 주체설이라는 두 가지에 모순되지 않도록 현학적 · 학문적으로 깊이 학승들이 연구를 한 거예요. 연구를 했어요. 그래서 이 생각(정신)도 인연이 다해버리면 공(空)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 아니다.



공(空)으로 되어버리는 것이 아니다. 어떤 실체가 있어야 되겠다. 실체가 없이 어떻게 윤회의 주체를 이야기한다고 하면 이거 안 돼. 힌두교에서 공격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힌두교의 여러 베다 학파의 학승들이 무아설(無我說)을 가지고 집요하게 공격을 했어. 그거 말이 되느냐 그거예요. 윤회를 하는데, 윤회를 하면 주체가 있어야 되는데, 이 몸에 주체가 없다고 하면 말이 되느냐 그거예요.



그래서 무아설(無我說)에 충실해야 되겠고, 윤회를 한다고 하는 윤회의 주체도 맞아야 되겠고, 그러니까 이것을 각 부파에서 연구해내기를(생각해내기를) 거듭했습니다. 어떤 부파에서는, 아마 '경량부(輕量部: Sautrantika)'일 것입니다. 소승불교 20부파 가운데 하나인 '경량부(輕量部: Sautrantika)'는 후세에까지 대단히 힘을 썼던(힘이 있는) 부파 불교인데, 거기서는 마음(생각)이 찰나생(刹那生)찰나멸(刹那滅)한다고 했습니다. 찰나생(刹那生)찰나멸(刹那滅), 앞생각이 없어지면 뒷생각, 앞생각이 가지고 있는 모든 정보를 뒷생각에다가 줘. 이렇게 이렇게 찰나생(刹那生)찰나멸(刹那滅)하는 심의 상속이론, 심-마음이 흐른다. 생각이 흐른다.



이것이 윤회의 주체다. 생각이 찰나생(刹那生) 찰나멸(刹那滅)하지만, 이것이 물 흐르듯이 흘러. 촛불처럼 흘러. 초저녁 촛불, 한밤중 촛불, 새벽 촛불이 같듯이 흐름, 식(識)의 흐름, 이것이 윤회의 주체다 하고 나온 데도 있습니다. 여러분한테 소개해드리는 것은 재미있는 학설이 그렇다 그거요.



'포두갈라(podugla)', 한문으로는 '보특가라(補特伽羅)'라고 하는 윤회의 주체가 있는데, 그것은 이 몸속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이 몸을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어떤 주체가 있다 그거예요. '보특가라(補特伽羅)'라고 하는 주체가 있다. 그래서 육도를 윤회한다 해가지고 '보특가라(補特伽羅)' 이론을 내놓습니다. 나중에 대승불교가 흥기해가지고 BC 1세기부터 대승불교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용수 · 마명'이라는 걸출한 학승이 나옵니다. 거기는 공(空)·공(空)·공(空)했는데, 그걸 힌두교에서 볼 때에는 허무주의라고 그래요. 나중에 '무착 ․ 세친'이 나와 가지고 ‘아니다.



모든 우주 산물은 이 마음이 변형된 것이다. 식(識)이 변형된 것이다. 마음밖에 아무것도 없다’ 고 합니다. 힌두교에서 볼 때에는 이것은 대단히 관념론이어요. 이것은 사변론이어. 대단히 공허한 사변론이라고해. 힌두교 쪽에서는 그것을 가치 없는 것으로 치부해 버립니다. 그러면서 무아(無我)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단 말이에요.



거기에 대해 속 시원하게 대답을 못한단 말이에요. 앞의 '무착·세친'은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내놓고 있어요. 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고 하면 모든 식(識)을 저장하고, 모든 식(識)의 정보를 저장하고, 신·구·의 삼업(업)의 종자를 저장하고 하는 식(識)을 말하는데, 그런 식(識)이 있다고 하여 그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내놓고 있는데, 그러면서도 무아설(無我說)에 충실하려고 하니까 ‘상주도 아니고 단멸도 아니다’라는 말을 합니다. 어쨌든 간에 힌두교(브라만교)의 그 많은 학파의 학승들에 의해서 질타를 당합니다.



불교가 집요하게 질타당합니다. 그러면 인도국민이 ‘불교란 어떤 종교인가’라는 것을 다 듣는단 말이에요. 다 듣습니다. 인도국민은 전통적으로 범(梵)·아트만 사상으로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상에서 볼 때 불교의 무아설(無我說)은 인도국민으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갑니다. ‘이 모든 물상(물체)들은 인연이 모이면 생기고, 인연이 다하면 없어진다’하는 그것은 이해가 돼. 그런데 ‘오온으로 이루어진 사람까지도 인연이 되면 다 흩어져버린다’고 해버리면, ‘내(我)가 없다’해버리면, 여러분! 이게 말이 됩니까? 심각하게 들어보세요. ‘나(我)가 없다. 당신도 없어.’ 그렇다면 그게 말이 되느냐 그거예요. 말이 됩니까? 상식으로 볼 때 이것은 도저히 용납이 안 돼. 그래서 이제 불교에서 멀어지는 거예요.



두 번째로 불교가 크게 궁지로 몰린, 불교의 교설이 크게 밀린 그 두 번째 문제도 있습니다. 그건 다음에 말씀드리기로 하겠습니다. 그리해서 불교는 인도국민의 관심 밖으로 밀려납니다. 이것이 결정적인 원리(이유, 원인)입니다. 이 무아설(無我說)이 그렇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경전을 한 번 들여다보자 그거예요. 경전을 들여다보면 인연소생(因緣所生)이 맞아요. 말이 다 그렇게 되어있어요. 인연생기(因緣生起)도 맞아요. 그런데 유정, 사람에 와서는 이렇게 말해요. 눈은(눈도) 나(我)가 아니다. 입․귀․코도 나(我)가 아니다. 이 몸뚱이도 나(我)가 아니다로 나가요. 비아(非我)로 말해요. 이제 비아(非我)로 나갑니다. 비아(非我)를 말씀하셨어요. 곳곳에서 분명히 말씀하셨어요. 비아(非我)란 것은 뭐냐? 내(我)가 아니다 그거예요.



‘내(我)가 아니다’하면, ‘내(我)가 있다’하는 것을 암시하는 거예요. ‘내(我)가 아니다 하는 것은 내(我)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거예요. 이제 현지사 불교사상이 나옵니다. 이 몸도 내(我)가 아니다. 이 생각, 앞에서 수상행식(受想行識)이라고 했는데 약(略)해가지고 '생각'이라고 합시다. 정신, 생각. 이 생각이 내(我)가 아니어요. 왜 그러느냐? 이 생각은 시시각각으로 변해요.



안 그렇습니까? 일어났다 없어졌다 일어났다 없어졌다 합니다. 이러하기 때문에 이 생각은 사실 진짜 내(我)가 아닌 거예요. 이 몸뚱이도 진짜 나(我)가 아닌 거예요. 이 몸뚱이는 100년 있으면 허물어져서 다 사대로 흩어져요. 한 줌의 흙으로 되거나 재로 됩니다. 안 그럽니까? 진짜 나(我)라고 하면 이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아야 진짜인 거예요.



나(我)라고 하면, 내 몸뚱이라고 하면, 내 것이라고 하면 나(我)가 마음대로 할 수 있어야 돼. 병도 안 걸려야 되겠다고 하면 안 걸려야 돼. 그런데 이 몸뚱이가 병에 걸리잖아요. 나는 오래 살고 싶다 하면 오래 살아야 돼. 그런데 어느 날 밖에 나가서 교통사고를 당해가지고 갑자기 죽어버려.



이 몸뚱이는 진짜 나(我)가 아니어. 이 몸뚱이는 가짜 나(我)예요. 이것은 확실히 그렇습니다. 이 생각도 그래요. 여러분, 이 생각을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까? 애들에게 ‘너 그런 짓하면 안 돼’라고 하면, 애들은 자꾸 안 된다고 하는 쪽으로 갑니다. 이 생각이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이 생각도 사실 따지고 보면 나(我)가 아니어. 그건 맞아요. 그러니까 어디를 봐도, 사람의 어디를 봐도 나(我)가 아니어요. 나(我)가 없어. 이렇게 나가는 거예요. 나(我)가 없어.



그런데 부처님께서 무아(無我)라는 말씀을 쓴 이유가 있습니다. 공(空)에서는 무아(無我)다 그럽니다. 공(空)에서는 무아(無我)다 그러는데, 이 무아(無我)라는 말씀을 쓴 까닭을 아셔야 됩니다.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인 불교의 핵심은 어디에 있느냐? 여러분이 이건 꼭 알아두셔야 됩니다.



고통의 제거에 초점이 있습니다. 불교의 가르침의 핵심은 우리 사람들, 유정들의 고통 제거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다른 형이상학적인 문제는 거의 무시하다시피 합니다. 그러니까 어느 외도가 와서 형이상학적인 문제를 가지고 질문하면 묵묵부답으로 나가십니다.



 묵묵부답을 '무기(無記)'라고도 해. '무기(無記)'로 대답한단 말이에요. 요즘에 나도 그런 질문을 받습니다. 어떤 사람(대학생 등)이 찾아와서 ‘스님! 이 세계는 언제 어떻게 해서 생기게 된 것입니까. 이 세계는 언제 어디서 생긴 것입니까.



혹은 사람은 어찌해서 생겨났고, 남녀의 성별이 왜 거의 절반 절반을 이룹니까?’ 이런 식으로 묻는다고요. 이런 것을 형이상학이라고 해요. 이런 형이상학적인 질문은 대답을 안 하셔요. '무기(無記)'로 응해버립니다. '무기(無記)'로 대답을 하지 않으십니다. 이걸 십사무기라고 해요. 오직 불교의 궁극적인 이상은 고(苦)의 문제 해결에 있습니다. 고(苦, 고통)의 문제해결에 있어요.



고(苦), 가난하여 먹을 것이 없는 그 설움, 고통이지요. 둘째, 온갖 질병으로 시달리는 것도 큰 고통이지요. 요즘은 현대의학으로 나을 수 없는 중한 병들이 많이 옵니다. 셋째, 비명횡사(非命橫死)입니다. 이런 죽음은 고(苦)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런 고통의 제거에 있습니다. 당신도 그렇고, 당신의 법문을 듣는 사람에게도 저 사람의 고통을 내가 제거해줘야 되겠다. 이것밖에 관심이 없어요. 1차적인 관심은 그것 밖에 없어.



그래서 보면, 세상 사람들 거의 많은 수가 죽으면 지옥으로 간다 그거예요. 지옥을 가거나 짐승이 됩니다. 하늘을 가거나 사람으로 오는 경우는 100에 한 둘입니다. 이거 슬픈 일이어요. 지옥의 고통, 지옥의 수 등은 나중에 이야기 하겠지만 아주 많습니다. 낱낱의 지옥은 사바세계만큼 넓어. 그 각각의 지옥에 많은 중생들이 들어차 있어요.



어떤 지옥은 그 받는 형벌이 상상할 수 없어. 이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짐승으로 와서 살 때의 고통은 얼마나 큽니까? 짐승이 죽을 때 어떻게 죽습니까? 칼로 목을 따거나, 혹은 망치로 머리를 내리치기도 하고, 펄펄 끓는 물에 집어넣기도 하고, 살아있는 상태에서 가죽을 벗기기도 하지요. 이거 비참합니다. 짐승으로 한 생을 사는 것도 비참한데 죽을 때도 비참해. 나나 여러분은 절대로 지옥을 가서는 안 되고, 짐승이 되어서도 안 되고, 아귀세계에 가도 안 돼. 이걸 막아줘야 돼. 부처님의 관심사는 고통의 제거, 중생의 고통 제거에 있어요. 얼마나 자비하십니까?



무아(無我)를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중생들은 집착이 강합니다. 집착이 아주 강해. 이 몸뚱이에 대한 집착, 재물에 대한 집착, 권력․명예에 대한 집착, 이성에 대한 집착이 아주 강합니다. 이 집착 때문에 업을 짓습니다. 부처님께서 보실 때 업을 짓는 원인이 되기 때문에 그 집착을 떼어줘야 됩니다. 집착이 고(苦, 고통)를 낳는 원인입니다.



그래서 이 몸뚱이에 대한 집착만 떼어 줘버리면, 이 몸뚱이에 대한 집착만 놔버리면, 나머지 집착은 자연히 떨어집니다. 재물에 대한 집착, 명예․권력에 대한 집착, 성에 대한 집착 등등, 이것은 지말적인 것이어요. 이 몸에 대한 집착만 떼어주면 돼. 그래서 무아(無我)를 말씀하신 거예요. 이것은 방편이어. 집착을 떼어주기 위한 방편으로 무아(無我)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현상세계의 모든 개개물이 인연으로 되어있고, 인연 따라 흩어져서 없어집니다.



이것은 맞습니다. 맞는데, 인연소생 인연생기는 어디까지나 현상세계에 국한한 이야기 올 시다. 현상세계에 국한한 이야기예요. 이것을 저기 묘유(妙有) ․ 적멸(寂滅) ․ 본체의 세계까지 끌고 가면 안 돼. 그래서 말씀을 드립니다.



지금 시간이 거의 다 되었는데, 앞으로 스님이 매회 50분 씩 한 달에 두 번, 6개월 동안 하기 때문에 주~욱 해갈 것입니다. 이 위대한 불교가 세력을 잃고, 억울하게도 인도 땅에서 쫓겨나 설 수 없는, 그리해서 인도 땅을 버리고 나온 이유, 지금의 불교는 원래의 불교에 비해서 대단히 왜소하게 되어버렸습니다. 왜소화 되었어. 그 교리가 너무 왜곡 되었어. 그래서 스님이 감히 이 자리에 서서 6개월 동안 위대한 불교의 면목을 여러분한테 알려 드릴 겁니다.



▸이 무아설(無我說)과 윤회주체 간의 상관관계를 말씀드리고,

▸그 다음, 어떠한 종교도, 모든 종교의 종교라고 하는 힌두교도 알지 못하는 소식입니다. 그건 뭐냐? 힌두교는 범아일여(梵我一如)로 끝납니다. 범아일여(梵我一如)를 깨치면 윤회에서 벗어난다고 이야기합니다. 거기서 끝납니다. 그런데 범아일여(梵我一如)를 깨친 것으로 해서 윤회를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깨쳤으면 보림을 해야 돼. 우리 선불교(禪佛敎)에서 말하는 보림을 해야 돼. 그 말이 무슨 말이냐? 깨쳤으면 나(我)라는 착을 완전히 뗄 수 있어야 돼. 이제 떼어버려야 돼. 나(我)라고 하는 착을 떼어버려야 돼. 업장을 씻고 씻고 소멸해야 돼. 악과 습의 기를 뽑아버려야 돼. 그래야 완전히 해탈 되는 거예요. 완전히 해탈 했다? 아라한, 무루대아라한이 그래요.



거기가 완전 해탈한 자리예요. 거기에서 더 나아간 소식은 모든 종교가 깜깜입니다. 그러나 위대한 불교, 진짜 우리 부처님 불교는 깨달음 이후를 주~욱 말씀하십니다. 보살의 세계, 붓다의 세계를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이다음에 많은 주제를 가지고 말씀을 하겠습니다만, 정말 우리 본래의 불교로 우리가 복원해가야 됩니다. 본래의 불교로 복원해가야 됩니다.



50분이 거의 된 것 같습니다. 무아(無我)라고 말씀하신 것은 방편으로 말씀한 것입니다. 경에서 말씀했듯이 이 몸뚱이도 내 것 아닌 것이 분명하고, 이 생각도 내 것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분명하지만, 진짜 주인공이 있습니다. 선불교에서는 그것을 진아(眞我), 앞에서 말씀했던 소위 자존자, 공(空), 진여불성(眞如佛性)을 이야기하지만, 그 말은 맞는데 여기서는 그것을 가지고 진짜 나(我)라고 안 합니다.



그것은 나(我)의 진짜 몸도 되고, 나의 근원, 당신의 근원, 저 모든 무정물의 근원도 돼.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아닌 윤회의 주체가 있습니다. 윤회의 주체는 찰나생 찰나멸하는 그 생각의 흐름도 아니고, 보특가라(補特伽羅)도 아니고, 유식(唯識)에서 말하는 아뢰야식도 아닙니다. 식(識)이 윤회의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윤회의 주체는 몸뚱이를 지녀야 됩니다. 식(識)이, 영혼이, 혼이 몸뚱이를 지녀야 됩니다. 혼의 몸뚱이, 이게 윤회의 주체입니다. 이것을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영혼체'그럽니다. 영혼체가 윤회의 주체가 됩니다. 몸뚱이가 있어야 됩니다. 사람도 아주 볼만한 구경거리가 있으면 몸뚱이가 있어야 ‘야! 참 구경할만 하네’ 그런다고요. 이 몸뚱이가 있고 눈이 있어서 그런다고요.



이런 오근․육근이 있어가지고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 지옥에 가서 벌을 받는다? 벌을 받는 몸뚱이가 있어야 돼. 식(識)이 어떻게 벌을 받습니까? 몸뚱이가 받는다고요 몸뚱이가. 하늘(천국)을 가고, 극락을 가서, ‘햐! 행복하다’고 느끼는 식(識)의 몸뚱이가 있어야 되는 거예요. 육근(六根)이 없이 육식(六識)이 있을 수 없습니다. 육근(六根)과 육경(六境)이 합해서 육식(六識)이 나오는 겁니다. 이 식(識)이 혼자 존립할 수 없습니다. 이 식(識)은 근(根)과 경(境)에 의해서 존립할 수 있는 거예요. 식(識)은 윤회의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여기 지금 인도의 석학들이 모여 있다고 합시다. 좋소! 당신 말이 옳소! 식(識)은 윤회의 주체가 될 수 없소. 윤회의 주체는 영적 실체인   '영혼체'입니다. 그래서 영혼체의 설명을 앞으로 주~욱해 갈 것입니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지옥에 갔어. 그러더니 하늘로 천도를 해주니까 하늘로 가셨어. 그 몸뚱이, 그 몸뚱이가 가시더라 그거예요. 지금은 아버지가 성중하늘에 계셔. 그 하늘에 계시는 것은 그 몸뚱이에요. 얼굴만 조금 더 아름답고 청정하고 옷만 더 바꿔 입었지. 우리 아버지란 말이에요. 그 몸뚱이가 중요하다 그거요. 그 몸뚱이가 윤회의 주체가 되는 거예요.



그 몸뚱이 안에 식(識)이 있어. 8식이 있고, 식(識)이 다 있어. 그 몸뚱이는 불성을 지니고 있어요. 나도 불성을 지니고 있고요. 그 영혼체가 윤회의 주체입니다. 그래서 ‘비아윤회설(非我輪廻說)’과 ‘유아윤회설’을 주장합니다. 이거 맞습니다. 만약 이러한 교설이 아쇼카왕 이후로 불교를 그렇게 선전했더라면 힌두교의 모든 국민들이 전부 흡수 되었을 거예요. 불교로 흡수 되지요.



그리고 모든 종교가 진짜 정법인 불교에 흡수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다음 시간에 주~욱 이야기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들을 수 없는, 듣지 못했던 이야기들입니다. 조금 어렵게 이야기해서 죄송하지만, 이해하실 수 있도록 이야기를 함께 해주었기 때문에 이해하실 겁니다. 여러분 대단히 고맙습니다.



전국에 계신 우리 1200만 불자들에게 권합니다. 경전을 독송하고, 다라니를 하고, 염불을 하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경전을 독송하고, 다라니를 하고, 염불을 하면 죽을 때도 편히 갑니다. 염불하고, 경전 읽고, 다라니를 하면 여생도 편합니다. 큰 고통이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염불하고, 경전 읽고, 다라니하고, 그리고 여러분이 지켜야할 부처님의 계율을 지키면 여러분의 장래는 밝습니다. 다음생이 복될 것입니다. 그리해서 부처님공부를 하고, 부처님께 선근공덕을 짓고 하면 극락도 갈 수 있습니다.



스님 따라서 염불중에서도 염불이라고 하는 석가모니부처님 칭명을 하겠습니다.



나무 영산불멸 학수쌍존 시아본사 구원실성 석가모니불...

천상천하무여불 시방세계역무비 세간소유아진견 일체무유여불자

고아일심귀명정례 終





현지사 자재 만현 큰스님 정기법문

2010.5.6.목(음3.23) 춘천 본원


(BBS불교방송 제2회)




무아설 ․ 영혼체 이론


TV에 방영되기 때문에 군더더기 말은 생략합니다. 나는 지난 법회에 비아윤회설(非我輪廻說)을 주창했습니다. 그 동안의 무아설(無我說)은 잘못된 해석으로 인하여 우리 불교는 크게 낭패를 보았습니다. 똑같이 회교도의 침입을 받아서 엄청나게 탄압을 받고, 승려들이 살육을 당하고, 전각이 방화되고 했지만, 그런데도 힌두교는 살아남았습니다. 우리 불교도 힌두교와 함께 그렇게 무서운 침략을 당하고 짓밟혔지만, 우리 불교는 인도 땅에서 아쇼카왕, 칸슈카왕 등이 전 인도를 통일하고 불교를 전 인도화 시켰습니다. 그렇지만 그 후로 우리 불교는  힌두교에 밀리고, 흡수당하고 해서 설자리를 잃고 도망 나왔습니다. 이것은 분명한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나는 그 이유를 전번에 말씀드린 대로 무아설(無我說), 무아(無我)와 윤회의 주체, 여기서 찾았습니다.



여러분들이 아시는 바와 같이 불교는 삼법인(三法印), 혹은 사법인(四法印), 이러한 종래에 없었던(인도 철학계에 없었던) 새로운 사상을 내놨습니다. 그 중에서 특색이 무아(無我)입니다. 제법무아(諸法無我), 여기에서 이제 무아(無我)가 나옵니다. 얼마 전에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이 있습니다.



“무아(無我)가 잘못 해석 되었느니라. 자재 만현이 맞느니라. 자재 만현은 법왕자로서 이것을 바로 잡아야 하느니라. 이것이 불교가 망한 원인이 되느니라.”



2600년이 흐르도록 그 어떤 종파(교파)에서 큰스님들이(학승들이) 무아(無我)를 ‘그저 내(我)가 없다 하는 식(단순히 내가 없다 하는 식)’으로 해석을 하고, 심지어 그런 맥락에서 육도윤회를, 그러니까 지옥 천상 아귀세계 중음세계 극락세계 그리고 불보살까지 외부현상으로 보지 않고 마음속에서(의식차원에서) 이것을 해석해왔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알아듣기 쉽게 말하자면, ‘고민 번민 고통스러운 그 자리가 지옥이고, 그 번뇌 고민이 다 사라진 자리가 극락이다’ 하는 식으로 모두 유심화 시켰습니다.



지금까지의 불교가 그래왔습니다. 이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불교의 확실한 견해이고 주장입니다. 나는 여기서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자 합니다. 현지사 영산불교 교단이 탄생 된지가 지금 3, 4년밖에 안 됩니다. 이제 BTN TV에서 말하려고 했는데 1년 계약을 했기 때문에 다 말을 못했지요.



이제 TV나 라디오가 전 국민 1,200만 명 우리 불자들에게 시청이 되고 청취가 되기 때문에 이런 문제점을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이 다음번에는 이보다도 더 중량감 있는, 정말로 중요한 불보살의 적멸세계를 들고 나올 것입니다. 이 적멸의 세계도 2600년 동안 전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것은 다음 시간에 하기로 하겠습니다.



오늘은 전번시간에 이어서 무아설(無我說)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무아설(無我說)은 너무도 중요한 문제이자 불교의 몸통입니다. 이것을 바로 잡아야 됩니다. 그래야 불교가 살아납니다. 그렇지 않으면 위빠사나든, 밀교든, 선불교든 어느 나라 불교를 막론하고 불교는 사양길에 들것입니다. 말이 안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무아(無我), 단순히 내가 없다 하는 것은 말이 안 되어요. 부처님께서는 그런 생각에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그 생각이 아니고, 현상세계의 이 몸뚱이는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오온(五蘊)이라고 하는 크나큰 요소로 인연 따라 이루어진 거예요. 이건 확실합니다. 이 몸뚱이는 인연이 다하면 오온(五蘊)은 제각기 돌아갑니다.



그러면 공(空)이죠. 실체가 없지요. 현상세계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큰스님이(자재 만현) 그 심의식, 그 생각(사람 마다마다 생각을 지니고 있잖아요)의 뿌리를 관해보니까 엄청난 소식이 있어요. 본체가 있어요. 본체가 없으면 이 현상세계, 또 이 몸뚱이는 한번 생겨났다가 없어져버립니다. 그러나 본체가 있기 때문에 우주는 성주괴공을 반복하고, 우리 사람은 생로병사를 반복하면서 윤회를 하는 것입니다. 뿌리가(본체가)있어요. 기체(基體)가 있다고요. 이걸 모릅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 ‘바로 그것이 영혼체다’하고 '영혼체 이론'을 세상에 내놨습니다. 많은 반발이 있었지요. 그러나 그 누구하나라도 당당하게 나선 사람이 없지요.



학자들은 한계가 있습니다. 과학이나 철학을 하는 사람들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 한계를 넘어야 되는데, 그 한계를 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해석에 그칩니다. 무아(無我)이기 때문에 윤회의 주체를 부정하지요. 윤회의 주체를 부정하는 2600년 동안의 불교는 육도는 맞다고 해. 그러나 지옥이라든지, 천국이라든지, 아수라, 아귀세계라든지, 중음세계라든지, 또 해탈의 저 적멸세계인 극락세계라든지, 또 보살님이라든지, 부처님이라든지 하는 이것을 객관적으로 실재한 것으로 말하지 않고, 무아설(無我說)을 내가 없다고 해석을 하니까 그것도 전부 없는 것이고, 지금까지 이 불교가 그것들을 마음차원에서(의식차원에서) 파악을 해왔다 그거예요. 이것이 문제예요.



그러니까 그러한 사상이 불교라면 인도국민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거예요. 말이 되느냐 그거예요. 무아(無我), 아무것도 없다. 이게 말이 됩니까? 현상세계에서는 무아(無我)입니다. 현상세계는 실체가 없지요. 그러나 이 생각의 근원은(토대는) 있더라 그거요. 본체가 엄연히 있더라 그거요. 그런데 왜 이것을 몰랐느냐?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학승들이 이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한계라는 것은 현상세계와 본체계입니다. 현상세계에서 본체계를 뚫고 들어가 봐야 되는데, 그런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부족하지요.



이 다음시간에 적멸의 세계를 들춰낸다고 했습니다. 눈을 떠서 적멸의 세계까지를 봐야 되는데 그러지를 못했어요. 그러지를 못하고, 부처님의 이 무아설(無我說)을 잘못해석 해버렸다고요. 잘못 해석했어. 여러분, 이게 엄청나게 중요한 문제입니다. 엄청난 문제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뭣 때문에 살아요? 나(我)가 없으면 행위 하는 주체도 없고, 생각하는 주체도 없고, 감정을 느끼는 주체도 없다고 하면 말이 됩니까? 이건 말이 안 됩니다.



그러면 죽어서 갈 놈도 없어요.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다시피, 다시 사람 몸을 받아 올 때는 부모가 교합할 때(수정할 때) 영혼체가 들어가야 되어요. 영혼체가 안 들어가면 안 됩니다. 본체가 안 들어가면 안 되어요. 여러분에게 말씀드렸지요. 지금 그것을 모릅니다. 이 핵폭탄을 능가하는 엄청난 발언인 이 선지식의 말씀을 뭉개버린다고 하면, 그런 사람들은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마땅히 무간지옥행입니다. 무간지옥에 가지요. 왜 그렇게 불교를 훼손합니까? 당초 그렇게 위대한 불교를 왜 그렇게 짓밟아 버립니까?



이런 현지사 영산불교의 사상을 우리 불자들뿐만 아니라 세계의 많은 불자들이 들어야 됩니다. 나는 그러한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불교와 인연 있는 수많은 착한 우리 단월들이 살아납니다. 악도에 가지 않습니다. 무아(無我)를 잘못 해석해 가면, 이거 적당히 살아야지요. 나(我)라는 실체가 없다면, 나(我)라는 자아(自我)가 없다면, 주체가 없다면, 죽어서 가는 것(곳)도 없고 오는 것(곳)도 없으니 뭐 적당히 살아야지요.



그런데 지금 불교가 제사(천도재)는 왜 합니까? 부처님, 보살님한테 공양은 왜 드립니까? 앞뒤가 맞지 않잖아요. 그러면 안 됩니다. 이건 불교가 아닙니다. 내가 바른말을 한다고 거부감을 가지고 도저히 방영을 못한다고 하는데, 그러면 안 되지요. 한번 들어봐야지요. 지난시간에 ‘비아(非我)가 윤회의 주체다’하고 결론을 냈습니다. ‘비아(非我)가 윤회의 주체다. 영혼체가 윤회의 주체다.’



오늘은 스님이 영혼체설에 대해서 이 세상을 향해 처음으로 자상하게 말씀드릴 것입니다. 여러분들한테는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보다 먼저 우리 부처님께서 나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간단하게 받아 적은 것을 여러분한테 읽어드리겠습니다.



“무아(無我)는 잘못 해석한 것이니라. 나는 무아(無我)를 이야기했지만 저세상이 없다고 아니했다. 살아있는 것, 언젠가 죽는다.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것이라 생각하는 것을 말했다. 하늘에 태어나거나 인간으로 오길 말했노라(처음 법문을 그렇게 했었어요. 그걸 생천설이라고 합니다). 태어나는 것도 고통이고, 죽는 것도 고통이다. 육도윤회에 돌면서 고생하는 것을 끊어주기 위해 무아(無我)를 이야기 했노라. (전번시간에 스님이 부연설명을 했을 거예요. 또 의미가 다른 말씀을 하셨습니다) 있다 없다를 확실하게 알면서 있다 없다를 초월한 자리, 더 나아가서 대적정삼매에 들어 무아(無我)의 환희는 붓다의 경계이니라. 여기까지 공부 못하고 법을 모독 능멸하여 중생을 오도한 죄는 무간지옥에 가느니라. 붓다와 법은 영원히 멸도하지 않느니라.”



이거 녹음이 되어 있으니까 테이프를 꼭 구입해서 우리 부처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많은 말씀이 있지만 간단한 말씀을 여러분한테 소개했으니까 우리 자재 만현스님의 전번 법문에 이어서 오늘 법문을 이해하게 되실 겁니다.



처음으로 지금 때가 되어서 내가 이 세상에 영체설을 밝힙니다. 영혼체(영체)이론입니다. 영산불교에서 오늘 공식으로 이 세상을 향해서, 1,200만 불자를 향해서, 세계 3억~5억의 우리 불자들을 향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이걸 여러분들이 들으시면 정리가 됩니다.



(1) 영혼체는 4개로서 다중구조를 지니고 있다. 즉, 영혼체는 밀도와 진동수가 다른 4번, 3번, 2번, 1번의 네(4)체(몸뚱이)로 겹쳐져 있다. 단, 4번에서 1번 영혼체로 갈수록 밀도가 높아진다.



(2) 4번 영혼체는 육체와 1․2․3번 영혼체를 접합하는 구실을 한다.



(3)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덩어리이다.



(4) 영혼체를 줄여서 영체라 부르기도 한다. 자이나교에서, 힌두교의 어느 학파에서,《아함경》에서는 식신(識身, 業身)이라고도 하는 그런 기록을 봤습니다. 과거생 자기의 의식과 기억을 지닌 생명체이다.



(5)물리학에서 말하는 소립자보다도 더 작은 초미립자로 되어있다. 초미립자이기에 입자와 파동의 양면성을 갖고 있다. 파동으로 보면 극히 파장이 짧은 전자파에너지 생명체이다.



이상 다섯 가지는 힌두교에서도 이미 BC1000년 경, 그러니까 3000년 전에 그들 최고의 수행자(대성자)가 이를 보았습니다. 이 정도를 알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아래와 같이 깊이 파헤치지는 못했다. 붓다의 경지로 올라야 우리 영혼의 실체를 완벽히 규명하게 된다. 19세기 신지학에서 힌두교의 이 영혼의 구조까지를 이해하고, 지금 이를 원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저것들이 모르는 영산불교의 영혼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들이 도저히 알 수 없었던 영혼체에 대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1) 인간에게는 누구나 행위의 주체요, 윤회의 주체인 영혼체라는 영적실체가(주인공이) 있다.



(2) 영혼체란 인간의식의 근거가(토대가) 되는 이 영혼을 담은 그릇이라는 말이다. 영적인 인간모습이다.



(3) 4번 영혼체는 이 몸뚱이와 100%닮았다. 3번, 2번, 1번 영체 역시 근간은 같은 닮은 형이다. 근간이 같다. 4번 영체의 수명은 한시적(限時的)이다. 이 몸이 명부로 들어가게 되면 그 4번 영체는 커트(cut)당합니다. 아시죠? 그 말이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 몸과 거의 같은 수명을 합니다. 그러나 비명(非命)에 죽게 되면 그 4번 영체로 살아가는데, 천도를 올린다든지 할 때 윤회의 주체이자 주인공인 1․2․3번 영혼체를 명부로 넣어주잖아요. 4번 영체(영혼체)는 그로부터 2, 3년 정도 있거나 화장(火葬)을 하게 되면 곧 소멸 됩니다만, 그렇지 않으면 그 4번 영혼체는 유령이 되어서 자기가 살던 집, 걸어 다녔던 낯익은 길, 자기의 묘지, 자기 위패가 기록된 영구위패로 모셔놓은 절을 왔다 갔다 합니다. 그렇게 되면 젊은 자식을 잃은 어머니가 그 유령을 보면 어떻게 됩니까? 그래서 우리 현지사 천도재에서는 그 유령을 산화시켜줍니다. 그런데 요즘은 별로 안 해줍니다. 그것은 부처님께서 해주셔야 되기 때문에 그런 수고까지는 청하지 않습니다.



(4) 인간, 동물의 태중(胎中)에 들 때에는 이제 4번 영체가 생깁니다. 1․2․3번 영혼체는 안 그럽니다. 이것은 반드시 뭉쳐 다니는데 죽지 않습니다. 영원히 불사(不死)입니다. 4번 영체만은 인간이나 동물의 뱃속으로 들어갈 때에는 그때부터 생겨서 자랍니다.



(5) 소위 12띠 동물이면 영혼체가 들어간다. 조류 어류의 일부에도 그들 영혼체가 든다. 여러분 아시죠. 곤충류 벼룩 이(louse)와 같은 해충, 거머리 등과 같은 미물들, 식물 광물, 그리고 지수화풍 공(空)에는 영혼체가 들 수 없다. 이들은 윤회의 대상이 아니다. 자연생 자연사한다. 그러나 자이나교에서는 다 들어간다고 했어요. 잘못 본 것이다.



(6) 1번 2번 3번의 영혼체는 항상 뭉쳐 다닌다. 이것이 중생들의 주인공이다. 그 중에서 1번의 영체는 인간의 본체다. 힌두교에서 이야기하는 아트만 정도이다. 힌두교에서는 아트만이 윤회의 주체라고 하지만, 여기 영산불교에서는 아니다 그럽니다. 윤회의 주체는 1․2․3번 영체가 생겨야 됩니다. 1․2․3번 영체하고 4번 영체가 생길 수 있는 업을 지어야 그것이(그 몸뚱이가) 윤회하는 주체가 됩니다. 1번 영체를 가지고는 절대로 윤회할 수가 없습니다. 1번은 본체계입니다. 본체계에 있는데 왜 윤회 합니까? 업이 있어야 윤회를 하지요. 그래서 업을 지어 감으로서 2번 영체가 생기고, 3번 영체가 생기고, 4번 영체가 생겨요. 이것이 윤회를 하는 거예요. 이것이 윤회를 해.



(7) 1번, 2번, 3번 영혼체의 수명은 무한하고 영원하다. 1번 영혼체의 수명은 무시로부터 있었고, 영원토록 불사(不死)한다. 이것은 엄청난 새로운 소식입니다. 이 영혼체는 바로 윤회의 주체이다. 즉, 이것은 다겁생을 내려오면서 지은 업 때문에 중생들의 영혼체 색깔은 대부분이 거무튀튀하다. 업장은 태산만하다. 마치 숯덩이와 같고, 진흙덩이와 같아서 영산불교에서는 이를 비아(非我)라고 한다. 비아(非我), 나(我)가 아니다. 비아(非我)라고 한다. 바로 이것이 윤회의 주체가 된다. 비아(非我)라야 윤회합니다. 아트만과 같이 지고지순하고 행위 하지 않는 것은 절대 윤회를 못합니다. 2번 3번 4번이 붙은 비아(非我), 숯 덩어리가 된 이놈, 이 업 때문에 육도를 윤회 하는 거예요.



(8) 이 영혼체 3번으로 하늘 천국에 가서 난다(하늘 천국에 갈 때에는 3번 영혼체가 간다). 이때는 2번 영혼체와 1번의 영혼체는 그 안으로 겹쳐든다. 성중하늘은 2번으로 간다. 이때도 3번 1번은 그 안으로 겹친다. 1번 영혼체로 극락에 왕생한다. 3번 2번의 영혼체는 그 안으로 겹친다.



(9) 영혼체는 그 사람의 영격에 따라 빛(색깔)을 띄우고 있다. 오라와는 다르다. 오라(aura)는 영혼체의 색깔이 그 사람의 몸뚱이를 거쳐나온 색깔이다. 지옥 등 악도로 떨어질 사람은 영혼체가 거무튀튀한 색깔이다. 하늘이나 인간의 몸을 받아 올 사람은 하얀색이다. 보살은 아침 햇빛깔이고, 불과를 증한 이는 눈이 부셔서 볼 수 없는 햇속 빛이다. 그러면서 안과 밖이 투명하고, 영롱하고 아름다운 무량억종광 빛이다.



(10) 부처님은 수행자의 다겁생의 업장을 씻어주시고, 또 그것을 소멸하실 수 있다. 그 영혼체에 더덕더덕 붙어있는 그런 업장들을 부처님만이 씻어주시고, 소멸도 하신다 그거예요. 유대 신비주의 카발라에서 자기 신의 애제자의 수행을 돕기 위해 그들의 하늘 최고신은 빛을 정수리에 쏟아 부어서 빛의 몸으로 만든다고 한다.



그래서 영원히 죽지 않는 자기의 천국으로 데려간다. 그러나 우리 불교의 교주이신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수행자의 영혼체를 꺼내어서(꺼내는 것부터는 그들은 할 수 없다. 영혼체를 끄집어내는 것은 오직 부처님만이 하신다) 끈끈이 막으로 각 영혼체가 붙어 있는 것을 무량광으로 씻고 닦아 4영혼체를 분리 한 후(그들은 분리도 못한다.



세계의 어떤 종교의 교주도 이 일은 못한다), 몸뚱이까지 다섯 개의 영혼체 각 정수리 위에 부처님이나 오여래부처님이 올라가서 억종무량광으로 쏟아 붓는다. 먹물 같은 업장의 찌꺼기가 내를 이룬다. 이 정도 되면 지옥은 가지 않습니다. 이건 순 타력이지요. 자력수행 갖고는 못합니다. 이러기를 여러 번 작업  함으로서 아라한을 보살로 만든다. 이러한 작업은 부처님과 오여래, 그리고 문수 보현 관음 지장 정도의 기라성 같은 붓다만이 할 수 있다.



또 영혼체를 감은 쇠토막 같은 업장은 아주 지중한 업을 짓게 되면 그렇게 되는데, 석가모니부처님 만이 이를 끊어 주시고, 그 끊겨진 쇠토막들은 삼매화라고 하는 불 속으로 던져 녹여버린다. 녹여 소멸시켜 주신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또 그 영혼체의 쇠토막이 다시 붙기 때문에 그렇게 까지 해주신다. 자력을 기반으로 하고, 타력 수행만이 보살과 붓다가 될 수 있다는 말의 뜻이 여기에 있다.



여기부터는 밀장이어서 여태 말을 못했지만, 지금 현재 이 불교에서 영혼체를 부정하기 때문에 오늘은 이 부분까지 과감하게 말씀을 해드립니다.

(11) 업이 지중한 이의 영혼체는 부처님도 몸에서 꺼내기 조차 어렵다. 그 영혼체는 다겁생으로 내려오면서 지은 업장이 두터워 태산만 하고, 숯검정 같고, 영혼체 끼리는 껌과 같이 달라붙어 있으며, 몸뚱이와도 하나로 붙어 있어서 꺼내어 씻는 것조차도 어렵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당신의 금단을 영체에게 먹인다(영체 속으로 믹스시킨다). 한의원에서 만드는 환약 같은 금단이라고 있어요. 각 부처님마다 이런 신비스러운 약이 있습니다. 영체 속으로 그걸 흡수시킴으로서 밖으로 꺼낼 수 있다. 꺼낸 다음 네(4)영체를 억종광명의 빛으로 분리하신다. 이런 과정을 거친 수행자는 지옥 등 삼악도를 면한다. 이때 빠져나가는 먹물 같은 오물은 도랑을 이룬다.



(12) 아까 말씀했지요. 보살의 법위부터는 영혼체를 꺼내어 놓으면 즐거워서 뛴다. 4영혼체를 분리해 놓으면 각각 즐거워서 환희용약한다.



(13) 불과를 이룬 대성자의 영혼체는 스스로 나와서 4개의 영혼체가 독립적으로 뛰어 놀고, 공중이나 물속에서 자유자재로 활동한다.



(14) 아라한까지의 영혼체는 그 사람 몸뚱이의 옆으로 나오고 들어가지만, 보살 이상의 영혼체는 앞으로 나오고 앞으로 들어간다.



(15) 불과를 이룰 수행자나, 불과를 이룬 이의 영혼체는 절대계 목욕탕의 가장 위의 탕인 (약사여래부처님이 계신 저 약사궁에는 삼탕이 있는데) 일탕에서 영혼체를 분리해서 목욕을 시킨다(목욕을 한다).



(16) 불과를 이룬 대성자가 잠을 잘 때,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오시면 곧 몸 밖으로 영혼체가 빠져나와 오체투지 인사를 한다.



(17) 불과를 이룬 이는 열반에 들 때 1번 2번 3번 4번 영혼체는 바람같이 몸을 빠져나와 절대계의 자기 불신으로 들어가 계합한다.



(18) 과거생에 불과를 이룬 붓다가 사람 몸을 받아 오실 때는 자기불신 속 4영혼체가 어머니 뱃속으로 든다.



(19) 불과를 이룬 붓다는 업이 없다. 악연도 모두 단절되어 있고, 원결도 없고, 갚아야할 빚도 없기 때문에 태어나면 그 용모가 32상을 갖추고, 지혜가 있고 자비스럽다.



(20) 어머니 뱃속에 있음을 알고, 이 세상에 나옴도 안다. 소위 생이지지한다.

이상 스무 가지입니다. 위의 다섯 가지는((1)~(5)) 자이나교나 힌두교에서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후 많지만 스무 가지는 우리 영산불교에서 이 세상에 처음 발표한 내용입니다.



이야기입니다. 여러분들이 영혼체에 대한 이해를 충분히 하시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두 가지 실화를 소개하겠습니다. 1924년이니까 약85년전입니다. 진주시 옥봉동에 사는 '김재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진주시 옥봉동이라는 동이 있는가 봐요. 그 김재이라는 노인은 80살을 먹었어요. 또한 진주시 비봉동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김재이라는 이름을 가진 38살 먹은 사람이 있었어요. 그런데 비봉동에 사는 38살 먹은 김재이라는 사람이 저녁에 잠을 잡니다. 꿈이라고 봐도 되지만 꿈이 아닙니다.



형사 같은 이가 와서 ‘좀 가야할 일이 있으니까 나를 따라 가자’그러더래요. 그래서 그 형사를 따라갔습니다. 어디만큼 갔는데, 어느 큰 관공서(경찰서)같은 곳으로 들어갔다 그거예요. 여기에 들어가라고 하면서 밀어 넣는데 보니까 이미 20여명이 와있더라 그거요. 그런데 한참 있으니 밖에서 소란스러운 말소리가 나서 가만히 들어보니까 비봉동에 사는 38살 먹은 김재이를 내보내라 그거예요. 왜 옥봉동80노인  김재이를 안 잡아 왔냐 그거라.



그래서 비봉동 38살 김재이가 석방되어 자기의 집으로 왔다 그거예요. 와서 시계를 보니까 새벽 2시예요. 그래서 아침 일찍 종을 시켜서 옥봉동 80노인 김재이씨 집을 가보라고 했어요. 가봤더니 거기에 초상이 났어. 그래서 ‘김재이라는 노인이 몇 시경에 운명하셨오’ 라고 물으니까 ‘새벽 3시쯤 됩니다’ 라고 하더래.



따라가고, 잡혀가고, 또 오고 한 놈이 뭐죠? 영혼체입니다. 4번 영혼체. 4번 영혼체 속에 3번 2번 1번이 겹쳐있습니다. 4번 영혼체는 우리 사람과 털구멍 하나 틀림없이 100% 닮았다고 했지요. 1․2․3번 영혼체도 닮아 있습니다. 사실은 1․2․3․4번 영혼체가 닮았습니다. 그런데 올라 갈수록 조금씩 모양이 다르지만 근간은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에 천도되어 가지고 올라간 어머니 아버지는 척 보면 알아요. 지옥에 있었는데도 알아. 그런데 천도를 몇 번 하니까 하늘에 올라가셨어요. 우리의 경우입니다. 아버지인지 어머니인지 그냥 알아. 또 우리 어머니가 성중하늘을 가고 극락세계에 이제 가셨잖아요. 아주 잘생기고 빛이 나고 하는데도 우리 어머니가 이렇게 아는 거예요.



그걸 근간이라고 하는데, 근간은 변하지 않습니다. 근간을 가지고 그냥 알아봐지더라. 그런데 대승불교쪽인 유식학, 부파불교에서는 무아설(無我說)하고 윤회의 주체 간에 모순이 없도록 이론을 창출하려고 굉장히 노력을 했습니다. 그 결과 심상속 이론이 나오고, 푸드갈라 이론이 나오고, 무슨 근본 식이 나오고... 많이 나오잖아요. 대승불교 쪽으로 와서도 역시 그렇습니다. 아까 스님이 말씀했던 것처럼 가령, 지옥이라든지, 윤회의 세계(육도의 세계)라든지, 또 적멸의 세계(해탈의 세계)라든지, 불보살님이라든지, 심지어 선불교에서는 삼보라든지 붓다의 삼신설이라든지 하는 그 전부를 마음차원에서 해석해버려요. 이래서는 안 된다 그거예요. 이렇게 되면 불교가 망한다는 것이지요. 그것을 누가 믿겠어요. 이렇기 때문에 인도에서 쫓겨나왔는데 말입니다.



그러면 영산불교에서 공식적(대내외적)으로 내가 '아난이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내말을 어떻게 합니까? 그런 사람이 아니고는 말할 수 없는 거예요. 그런 사람이 아니고는 저 적멸의 세계라든지, 대적정삼매에 들 수가 없는 거예요.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우리 신도 중에서 어떤 남편 이야기예요. 성명은 생략합니다. 어떤 모 사장이 50대에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어요. 그 부인 되는 분이 선근이 있어요. 그래서 우리 영산불교를 책자를 통해서 알고, 우리 신도가 된 지가 2, 3년 됩니다. 49재를 의뢰해왔어요. 그 부인되시는 신도분이(보살님이) 대단히 착하고 진실하고 전생에 선근이 있어요. 그래서 신경을 써서 천도재에 임했습니다.



그 남편의 49재는 그분이 살았을 당시에 다녔던 절에서 했으니까 아마 49재가 지나갔을 거예요. 우리 현지사에서 새로이 천도재를 하면서 보니까 무주고혼으로 있어요. 명부를 못 들어갔어요. 이런 이야기는 지금의 불교가 전혀 모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들어보지 못했으니까 돌았다든지, 묘한 말을 한다든지 해가지고 색안경을 쓰고 본다 그거예요.



지금의 불교가 이렇게 되어버렸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 무주고혼이 된 그 남편을 붙들어 왔지요. 붙들어 오는 것도 정말로 능력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아시죠? 그 남편 되시는 분은 자수성가를 해가지고 돈을 많이 벌었어요. 그러니까 사랑하는 처자가 있지, 돈이 있지 하니까 죽어서 무주고혼이 되는 거예요.



무주고혼이 되는 4가지 이유가 있다고 했지요. 어쨌든 무주고혼이 되어있어요. 그래서 잡아다 놓고 ‘당신, 명부를 들어가라. 명부로 들어가지 않으면 당신이 지금까지 지은 업이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죽으면 저 불바다 지옥으로 간다. 그러니 말을 들어라’ 하니까 말을 잘 안 들어. 이 몸뚱이가 그대로 가니까 자기가 죽은 줄도 몰라. 전혀 모릅니다. 모르는 거예요. ‘당신은 죽었다. 자, 봐라.’ 그래가지고 큰스님의 영혼체가 큰스님의 몸에서 쏙 빠져나와가지고 보여줍니다.



그 영혼체는 빛덩어리이기 때문에 눈이 부셔서 상하니까 빛을 흡수해버립니다. 그러면 빛이 아롱아롱해요. 보여주면서 이것이(영혼체가) 바로 내 몸속에서 나왔잖느냐. 당신도 그래. 지금 당신도 그랬어. 죽었는데 지금 죽었다는 것을 몰라. 나 들어간다 하고 쏙 들어가거든. 또 나가고 하니까 이제 알아.



그제야 ‘아! 그렇습니까’라고 한단 말이에요. ‘이 큰스님 말을 안 들으면 당신은 업이 지중하니까 저 불바다 지옥으로 간다’고 하니까, ‘아! 그러냐’고 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들어가거라. 들어가고, 저 사랑하는 처자를 위해서 네가 몰래 감춰두었던 돈, 모든 통장(사후에 형제들 끼리 재산다툼도 있잖아요. 그걸 막아주기 위해서입니다)등 모든 것을 갖다 줘라.



그러니까 그 사장이 모든 통장이며 도장, 자기의 통장이며 도장 등 모든 것을 갖다가 자기 부인한테 안겨주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지금 한 몇 십일 동안 부인 몸속에 들어가 있었는데 그 기를 빼라. 그것을 빼야 됩니다. 그래야 환영(幻影)이 없어집니다. 주~욱 빼가지고 한 짐 짊어지고 명부로 갔어요. 그 부인 되시는 분이 착하고, 신심이 있고, 선근이 있어서 그 남편의 천도재를 몇 번 해서 지금 제3하늘에 있습니다.



우리 신도분들, 이 법문을 듣고 계시는 우리 불자님들, 영혼체라는 것이 우리 인간 중생의 윤회 주체입니다. 윤회의 주체입니다. 이 윤회의 주체를 아무도 모릅니다. 앞에서도 말씀했듯이 깊이 공부를 많이 하고, 착실히 하고, 바르게 하고, 그리고 선근공덕을 지어야 현상세계에서 본체계로 들어갑니다. 윤회에서 벗어난다는 말이어요.



그런데 이 윤회에서 벗어나는 분들이 얼마나 됩니까? 혼자 공부해가지고는(자력으로는) 어렵습니다. 자력으로는 어려운 거예요. 자력의 한계가 윤회를 벗어나는 아라한 자리인데, 아라한 되기가 어려운 거예요.



다만, 부처님의 가피로(위신력으로)해서 저 본체세계(적멸의 세계)로 갑니다. 보살이 되고 그러는 것입니다. 우리 부처님의 능력은 정말 무한하더라 그거예요. 왜 그러느냐? 이제 적멸의 세계를 이야기할 때 말씀을 드리겠지만, 우리 부처님의 능력은 상상할 없습니다. 그래서 '우주적인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우주적인 능력을 지니고 계시더라. 지금 그 많은 붓다님들을 전부 없다고 하네. 상징으로 봐버려요. 비유로 봐버려. 그런 세상이 되어버렸어.



그런 불교가 어떻게 크겠습니까. 진리 아닌 것은 죽는 거예요. 진리는 반드시 살아나는 거예요. 우리 현지사 3, 4년 밖에 안 되었지만 사방에서 엄청나게 시기 질투가 심합니다. 이게 TV석상이라서 자세히 말을 못하는데, 외압이라고 할까 시기 질투가 너무도 심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성장해왔잖아요. 앞으로 정말 클 것입니다. 아무리 사방에서 우리가 잘 되는 것을 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성장할 것입니다. 우리 부처님 말씀이, 정말로 진짜 부처님 사상이 널리 포교 되어야 합니다. 널리 포교 되어야 됩니다.



우리 현지사 착한 우리 단월님들, 3년 5년 다녔잖아요. 그래서 업장을 많이도 씻었잖아요. 업장을 씻는 그 부분을 전혀 모릅니다. 저쪽에서는 부처님도 없다고 하는데, 무슨 업장을 씻는다고 해? 전혀 모릅니다. 이 방송, 이 말을 들으면 아마 의아해 하고, 어떤 선근이 없으면 욕하고 그러겠지요. 그러나 그런 업을 지으면 안 됩니다. 이것은 법을 능멸하고 모독하는 것입니다. 그 업은 오역죄보다도 더 무서운 거예요. 법을 능멸하고, 붓다를 모독하는 것은 무서운 업이랍니다.



무아(無我), 범어로는 아트만(atman) 앞에다가 an을 더 붙여줍니다. anatman그럽니다. 무아(無我, anatman), 현상계의 무상한 몸이 내가 아니라는 것이야.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이야. 우리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을 뿐이어. 그런데 왜 무아(無我)를 갖다가 단순하게 ‘내가 없다’라고 해석 해가지고 불교를 그 인도 땅에 설자리가 없도록 만들었느냐구요. 이 위대한 불교가(종교가) 이미 세계화 되어 있어야지요. 세계화 되었어야지. 그러나 이런 법문을 듣고, 깊이 스스로 반성하고 참회하고 한다면, 우주적인 종교인 진짜 불교가 원상대로 복원 될 것입니다.



심지어 저 사람들은 석가모니부처님 같은 위대한 부처님도 반열반에 드시면 공(空)과 계합한다 그래요.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공(空)과 하나로 되어버렸으면 어떻게 됩니까? 다시 오겠습니까? 올 수가 없지요. 공(空)과 하나로 되어버렸어. 인격적인 자아가 소멸되어 버린 거예요. 소멸되었다고 하면 어떻게 됩니까? 부처님께 다시 못 오십니다. 이렇게 해석하면 안 되지요. 큰일 날 해석이지요. 거듭 말씀을 드립니다. 본체세계(적멸세계)는 상락아정입니다.



상락아정이라고 해요. 거기는 무상(無常)하지 않아요. 상(常)이어요. 현상계인 여기는 실체가 없고, 인연이 모여서 이루어지고, 또 인연이 다해서 흩어지면 실체가 없지요. 그건 현상세계에서 이야기하는 말이어요. 그건 맞아. 그러나 적멸세계까지 들어가 봐. 거기는 아(我)입니다. 유아(有我)예요. 거룩한 보살님들이 계셔요. 부처님들은 정말로 절대계에 계시고요. 또 현상세계 윤회 안의 지옥도 영혼체가 가는 것이니까 가서 벌 받고, 또 하늘은 3번 영혼체가 간다고 했지요.



 3번 영혼체가 하늘 천인으로 있단 말입니다. 그런데 유식에서는(대승불교에서의 유가행파인 법상종) 제8아뢰야식이 윤회의 주체가 된다고 합니다. 여러분, 전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식(識)은 절대로 윤회의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스님이 무슨 비유를 했느냐 하면, 식(識)이 극락을 간다? 식(識)은 느낌도 없고, 생각도 못하고, 판단도 못하고 그럽니다. 그 모양도 없는 식(識)이 떨어져 나가가지고 극락을 가서 산다? 식(識)이 행위 한다? 행위 하지도 못해. 식(識)은 과보를 받지도 않아. 다만 이 근(根)이 있어야 돼. 이 몸뚱이가 있어야 되는 거예요. 몸뚱이가 있고, 경계가 있어야 식(識)이 생기는 거예요. 식(識)이 활동을 하는 거요.



그런데 이 몸뚱이가 없다고 해버리면 영혼체(영혼을 담은 그릇, 영혼을 담은 몸뚱이)가 벌을 받고 또 극락에 가서 ‘햐! 여기는 정말로 환희로구나’한단 말이에요. 붓다가 되면 아까 무아속 환희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힌두교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브라만은(梵은) 100^7(100의 7승)의 환희 속에 있다 그러거든요. 그러니까 인간들이 누릴 수 있는 최고 쾌락의 100배에다가 지수 7승을 해줘요. 그런데 우리가 볼 때에는 그게 참 우스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붓다는 그럽니다. 범(梵)은 붓다가 아닙니다. 자기들의 말로 하자면 범(梵)은 이 현상계를 낸 소위 창조주이지요. 창조주는 없습니다. 힌두교 식으로 말하면 현상계를 낸 창조주입니다. 이 범(梵)은 공(空)입니다. 공(空)을 인격화 시킨 것이 범(梵)이어요. 범(梵)은 인간이 누리는 최고 행복, 최고 쾌락의 100^7이다라는 것입니다. 붓다의 무아속 절대세계에 들어가는 대적정삼매의 환희가 그 정도입니다. 무아(無我)를 잘못 해석 했지요.



다시 여러분들한테 바른 정의를 말씀드립니다. 현상계의 존재인 나는 무상하고, 실체가 없는 오온으로 이루어진 집합체에 불과해. 그렇지요.  무아(無我)는 실체로서의 진정한 나(我)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현상계의 나(我)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으로 무아를 이야기하신 거예요. 그러지, 나(我)라는 것은 완전히 없는 것이다. 실체가 없는 것으로 현상계의 시각에서 보지말라 그거예요. 현상계의 시각에서 불교를 다루지 마라 그거요. 적멸세계와 본체계와 현상세계를 아우르는 시각에서 불교를 다루어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이해하시겠습니까?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무아(無我)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승경전에 나오는 그 수많은 불보살을 어떻게 해석 합니까? 어떻게 해석하는 줄 아십니까?《화엄경》《법화경》이 진짜 법문인데 상징, 비유로 해석합니다. 부처님 반열반 후에 두 세 사람의 학승을 꼽으라면 용수, 무착, 세친 같은 분들을 꼽을 거예요. 무착 같은 분이 윤회의 주체를 알려고  하면서 무아(無我)를 갖다 놓기도 했지만, 윤회의 주체가 있어야 되겠거든요. 그런데 없다고 하니까 이거 도저히 알아낼 수가 없어서 자살을 결심했답니다. 자살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친구의 권유로 계속 공부를 해가지고 삼매에 들어 도솔천에 가서 미륵부처님한테 유식의 이론을 공부해가지고 왔어요.



이분을 유식학의 조(祖,鼻祖)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8아뢰야식 갖고는 윤회를 못합니다. 식(識)으로는 윤회가 안 됩니다. 식(識)은 윤회의 주체가 안 됩니다. 몸뚱이가 있어야 됩니다. 이걸 몰랐어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지금의 불교는 이대로 가면 안 됩니다. 이대로 가면 안 됩니다. 크게 공부해서 대선지식이라는 분이 출세했다고 하면 법상에 올려놔야지요. 왜 내려 버리려고 합니까? 그분의 말씀을 경청해야지요. 들어봐야지요. 정말로 한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불자들은 앞으로 모두모두 삼악도를 벗어나야 됩니다. 최소한 하늘을 가야 됩니다. 최소한 하늘, 그리고 인간세계를 왔다 갔다 하다가 부처님 회상을 만나서 윤회를 벗어나야 됩니다. 여러분, 그걸 잘 아시죠. 그런데 종래의 불교는 안 그럽니다. 붓다도 없고, 보살도 없고, 극락도 없고, 지옥도 없고, 귀신도 없어요. 영혼이 없다고 딱 성명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교화할 수가 없습니다. 도덕 윤리를 주장할(선창할) 기반을 잃어버렸는데, 어떻게 그 윤리 도덕이 가치가 있습니까? 이렇게 되면 안 되지요.



다음 시간은 본체, 적멸의 세계를 이 세상에 처음으로 밝힐 겁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 불교는 정말로 위대한 우주적인 종교로 거듭납니다. 우리 부처님은 붓다 중의 붓다이시고, 사생의 자부이시고, 삼계의 대도사임이 분명합니다. 지금 그것을 모릅니다. 입으로는 그렇게 이야기하지요. 그런데 없다고 하는데요. 또 공(空)과 계합 해버렸다는데요. 공(空)과 계합해버리면, 그 인격적인 그분이 공(空)과 계합해버렸으니까(흡수당해 버렸으니까) 이제 완전히 소멸되어 버렸어. 정말로 한탄할 현재의 불교입니다. 여러분, 꼭 영산불교를 사랑해주시고, 우리 석가모니부처님을 항상 놓치지 마시고(염불 하시고), 우리 교단에서 권하는 공부 잘하시고, 선근공덕 쌓으십시오. 여러분들은 대부분 하늘에 간다고 그랬어요. 3년 정도 씻겨주고 씻겨주고 복을 주었기 때문에 앞으로 부자 된다고 했어요. 여러분, 앞으로 부자 됩니다. 오늘 이 말씀을 유념하십시오. 사랑해주세요. 스님 따라서,



나무 영산불멸 학수쌍존 시아본사 구원실성 석가모니불...

천상천하무여불 시방세계역무비 세간소유아진견 일체무유여불자

고아일심귀명정례 終





현지사 자재 만현 큰스님 봉축 법문
2010.5.21.금(음4.8)춘천

부처님 오신 날 대웅보전 개원 봉축 대법회


오늘 위대하시고, 희유하시고, 거룩하신 우리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응화신으로 이 사바에 사람 몸 받아 오신 날을 맞이해서 전국의 영산불교 현지사 2만 신도 여러분과 이 나라 1,200만 불자들, 그리고 이 지구촌에 사는 3억 불자님들 앞에 꼭 전해야 할 부처님의 말씀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우선 오늘을 진심으로 봉축합니다. 지혜와 자비, 복덕을 두루 갖추신 우리 교주 불세존께 한없는 공경과 고마움, 자재 만현의 일편단심을 10만개의 붉은 초롱 등에 담아 오체투지로 오늘을 봉축합니다.



지금까지의 불교, 즉 남방불교, 북방불교, 티베트불교, 한국불교 등은 거룩하신 우리 부처님의 실존(계심)을 모릅니다. 따라서 우리 부처님의 크신 위신력을 또한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단히 불행한 일입니다.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무아설(無我說)의 진의(眞意)를 왜곡함으로서 인간의 실체인 '영혼체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또 본체계의 깊은 적멸의 세계를 모르고 있습니다. 자재 만현은 실로 2000년간 왜곡된 무아설(無我說)과 무아윤회(無我輪廻)의 질곡(桎梏)과 어둠에서 부처님께서 친히 부촉하신 대로 지금의 왜소화된 불교를 인연 있는 중생을 위해 이 목숨 다하는 그날까지 '영혼체 윤회설(영혼체 윤회론)'을 새로운 교설로 삼고, 부처님의 실존과 위대한 실상을 세상에 드러낼 것입니다. 사랑하는 불자 여러분! 영산불교 현지사 자재 만현입니다. 오늘 뜻 깊은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해서 자재 만현은 또 한 가지 세상에 다시 선포할 명제가 있습니다.



부처님은 계십니다.

부처님은 무아속 절대계에 여여히 계십니다.

부처님은 유․무를 초월한 무아속 절대계에 빛의 인격체로 여여히 계십니다.



오늘 여러 많은 불자들에게 이점을 힘주어서 선포합니다. 마음이 부처라고 합니다. 아닙니다.《법화경》〈비유품〉에 “공(空)을 깨치고 공성을 깨친 후 32상을 갖춘 색신을 절대계에 두어야 붓다이다”라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마음이 부처라고 하는 데서 백 천만리 더 들어가야 됩니다. 그러면 무아속 절대계의 부처님을 뵙습니다. 여러분에게 스님이 지난 5년 동안 많이도 설법을 했습니다.



여러분의 집에서(공부방에서) 스님처럼 이렇게 앉아서 합장을 하고, 눈높이에 마음의 점을 찍고, 석가모니불을 봉창(칭명)하라고 했습니다. 그러기 전에《금강경》1독을 하고, 비로자나총귀진언을 1독하고, 석가모니불을 찾으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공부를 해가면(달이가고 해가가면)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업장이 씻겨지고, 그리해서 여러분은 좀 더 깊은 경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삼귀 오계 십선을 지키면서 과거생에 또 지난날 자기의 잘못을 참회하면서 열심히 열심히 공부를 해가는 불자들은 급기야는 두 귀가 철커덩하고 막히는 경계를 맞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깊은 경계올시다. 여기서도 공부를 더 정진해 들어가면 시공을 초월한 적정의 상태로 퐁 빠지게 됩니다. 여기가 무루대아라한과의 자리입니다. 여기까지 들어가는 데는 수많은 마(魔)의 장난이 따릅니다. 마장(魔障)이 따릅니다.



그것을 극복하고 우리 인간은 여기까지는 갈 수 있습니다. 이제 더욱 정진을 하고, 선근공덕을 쌓고 정진을 해 들어가면(무루대아라한과에서 백천만리입니다), 보살의 경계가 나옵니다. 보살의 경계는 부처님이나 보살과 같은 위대한 성자의 가피 속에서 가능합니다.



불보살님의 위신력(가피)없이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방금도 말씀드렸듯이 인간의 능력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이길 수 없는) 천마(天魔), 색심(色心), 색마(色魔), 용신 등 기타 많은 마(魔)들의 장난에 도저히 그 이상 뚫고 들어갈 수 없답니다. 그리해서 부처님의 가피가 필요합니다.



이제 정토의 빛을 보고, 문수 ․ 보현 ․ 관음 ․ 세지와 같은 큰 불보살님의 빛을 보고, 부처님께서 몇 가지 작업을 해주심에 의해서 우리는 극락에 왕생할 수 있는 보살과를 증오(證悟)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백 천만리 더 들어가야 붓다의 경계가 나옵니다. 여기서부터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마장(魔障)을 맞이하게 됩니다. 부처님의 가피로 해서 뚫고 들어가면 부처님의 몸을 이루고 있는 무량억종광을 봅니다. 그 무량억종광에 대해서는 스님이《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Ⅱ》권에 자세히 써놨습니다.



그 누구도 모르는 불가사의한 빛입니다.《법화경》,《화엄경》,《열반경》,《반야경》에서 나오는 그 빛입니다. 부처님의 청정하신 빛(천 만억 색깔의 광명, 백 천만 나유타 색깔의 빛)을 봄으로 해서 이제 부처님을 친견하게 되는 날이 가깝습니다. 부처님 이후로 그 많은 선지식(큰스님)들이 이 세상에 왔지만, 부처님께서는 부처님의 몸을 이루고 있는 무량억종광을 본 사람이 없다고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저 절대계에 계시지만, 그 누구도 친견하거나 법문을 들은 선지식이 없었습니다. 오직 '사리불 존자'와 '수보리 존자'가 보셨고, 그리고 2600년 만에 우리 광명 만덕님께서 이 무량억종광을 분명히 보셨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의 일입니다.



그리해서 부처님을 친견하게 되었고, 수많은 부처님들의 법문을 들었고, 수많은 부처님들과 대화를 하셨고, 지금도 그렇게 하시고 계십니다. 여기는 삼매로 보면 상품보살이 드는 해인삼매를 뛰어 넘어서 붓다가 드는 대적정삼매가 있습니다. 해인삼매,《화엄경》을 쓸 수 있는 경지입니다. 해인삼매에서 붓다의 삼매인 대적정삼매를 논하라고 하면, 바위에다가 계란던지기 식의 정도입니다. 해인삼매와 대적정삼매는 비교 자체가 안 됩니다.



여러분, 내면세계로 내면세계로 들어갈수록 우리의 기쁨은 더하답니다. 선정삼매에 들어간 그 기쁨은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는 기쁨이랍니다. 보살이 드는 삼매정도에 들어간 사람이 나와서 그럽니다. 너무너무도 환희스러워서 그 기쁨을 말로 할 수 없으니까 이렇게 묻습니다. ‘사람들이 세상을 살면서 정말로 내가 행복하다(정말로 나는 행복하다)고 할 때의 기분과 어떠하냐’고 물어보면, 그것은 비교가 안 된다고 대답합니다. 비교가 안 됩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드는, 붓다가 드는 대적정삼매는 그것의 백천만배입니다.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쾌락 기쁨 환희의 백배에다가 지수 7이라고 합니다. 100의 7승(100^7). 그러므로 붓다가 드는 삼매는 여러분이 헤아릴 수가 없고, 상상할 수가 없지요. 이게 불교입니다. 이러한 대적정삼매에 드는 분이 2600년 이후로 몇 사람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시절 때, 이 종교에 관심이 있어서 깊이도 공부를 했는데 그때 내 생각은 이랬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출세했던 신라시대의 원효스님 ․ 의상스님, 고려 당시의 보조스님, 이조 당시의 서산스님, 최근의 성철스님, 그 다음 일본으로 가서《법화경》을 너무도 깊이 연구하셨고 일련종에서는 부처님과 같이 보는 일련스님(니치렌) ․ 조동종에서의 도오겐, 중국의 달마 ․ 혜능 ․ 마조 ․ 법장 ․ 현수 ․ 청량 ․ 진관, 태국의 아짠문, 요즘 프랑스에서 수행중인 베트남 출생의 틱낫한, 티베트의 파드마삼바바 ․ 밀라레빠․ 지금의 달라이 라마, 인도 쪽으로 가서 자기의 나라에는 100~200명에 달하는 세계의 그 어느 성자가 따라갈 수 없는 성자를 배출했다고 자랑합니다. 밀교 쪽에서는 84명의 구루를 들고 있습니다.



우리 인류문화사,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예수님 ․ 공자님 ․ 소크라테스 ․ 마호메트 ․ 노자...이런 분들 외에 우리 인류가 낳은 수많은 무명의 성자들이 왔다가 갔습니다. ‘그런 분들은 붓다가 되었겠지. 불과를 증한 훌륭한 어른들이겠지’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불과(佛果)를 이룬 후에 보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저 무아속 절대계에 자기의 32상을 갖춘 빛의 인격체인 보신 부처님(佛身)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해서 이것은 붓다가 되느냐의 여부를 가리는 절대적인 잣대입니다.



여러분! 우리 석가모니부처님은 붓다 중의 붓다올시다. 말로 할 수 없는 나유타하고도 아승지겁 전에 처음으로 불과(佛果)를 이루신 어른입니다. 우리 영산불교 현지사는 그것을 깨닫고, 불교가 왜 그 너른 땅 인도에서 쫓겨났는지를 연구했습니다. 13억 인구 중에서 힌두교가 80~85%입니다. 지금 현재 불교인구가 0.12%~0.7%정도로 올라갑니다.



이 원인이 어디에 있는 것인가를 면밀히 연구 검토를 해 본 결과 이 스님이 지난 BBS TV에 두세 번 나가서 힘주어 말씀했듯이(많은 부분을 잘라버렸지만) 진리인 '영혼체 윤회론'이 묻혀져 왔습니다. 이것은 진리인데 이 '영혼체 윤회론'이 묻혀져 왔습니다.



삼법인(三法印), 사법인(四法印)에 나오는 무아설(無我說)을 주장하면서 윤회를 주장하고, 육도에 윤회한다는 진리를 접목시키려 하다가 보니까 무아설(無我說) 때문에 안 되어요. 이것이 접목이 안 되고 2600년 동안 내려왔습니다. 접목이 될 수가 없지요.



윤회의 주체가 없다고 하는데 어떻게 윤회를 합니까? 이번에 스님이 TV에 나가서, ‘윤회의 주체는 우리의 영혼체이다. 유아윤회(有我輪廻)라고 봤다. 유아윤회(有我輪廻)이다. 바라문교(힌두교)에서 주장하는 것은 옳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교 중에 가장 우수하다고 하는 종교인 힌두교, 그 힌두교보다도 훨씬 차원이 높은 그 심오한 데까지 뚫었습니다.



윤회의 주체는 영혼체이고, 그 영혼체는 다겁생으로 내려오면서 탐진 삼독에 의해서 많이도 오염되어서, 그 오염된 비본질적인 것들이 영혼체에 엉켜가지고 숯검정처럼 되어버렸어. 그래서 비아(非我)라고 한 거예요. 나(我)가 아니다. 그 오염된 비본질적인 것(업장)을 씻고 씻으면 완전하고 순수한 영혼체가 드러나게 됩니다.



이것은 진짜 나(我)입니다. 이렇게 되면 윤회를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영혼체가 업장(비본질적인 것들)에 의해서 숯검정이 되고, 숯덩어리가 되고, 진흙덩어리가 된 것은(이 非我는) 육도를 윤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전부 수행에 의해서, 선근공덕에 의해서, 단 부처님의 가피에 의해서 그 영혼체에 얽히고설킨 그런 찌꺼기들을 모두 다 씻어버리면 이제 자기의 순수 자아(自我)가 나옵니다. 여러분, 이제 해탈입니다. 윤회에서 해탈하는 거예요.



이러한 진리를 지금까지 2600년이 흐르는 동안 그 어떤 사람도 말을 못했습니다. 그 어떤 사람도, 그 어떤 큰 선지식도,  그 어떤 성자도 말한 적이 없습니다. 일부는 보았습니다. 일부는 알았습니다.



그 다음, 오늘 여러분에게 힘주어서 또 선포한 것은 즉,



부처님은 계신다.

부처님은 절대계에 계신다.

부처님은 무아속 절대계에 여여히 계신다.



하는 이 폭탄선언을 여러분들한테 오늘 말씀드립니다. 내가 지난 5년 전에《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 썼습니다.《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Ⅱ》권에 상당히 자세하게 썼습니다. 이 부처님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는 불교를 알 수 없습니다. 대승불교를 논할 자격이 없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오늘의 불교는 부처님이 없다고까지 합니다. 부처님에 대해서 모릅니다.《법화경》,《화엄경》, 다른 대승경전에서 상당한 설명을 해놨지만 그것을 이해 못합니다.



문학적인 픽션(fiction,虛構)이라고 합니다. 지옥도 있고, 극락도 있고, 불․보살님들도 계시고, 무주고혼들도 있고, 하늘도 있고, 아귀세계도 있는데, 지금의 불교는 이것을 모릅니다. 이래가지고는 중생제도를 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의 존재를 부인(否認)하고, 육도를 부인하고, 마음속에서(인간 내부에서) 찾는 그런 불교는 21세기 인류를 향도할 수 없습니다.



불교경전을 볼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이제 자재 만현의 법문을 듣고, 이번에 출간한〈영혼체 윤회론〉의 책자를 구입해 보시고, 우리 영산불교에서 내놓은 그 동안의 책자가 10권~20권이 됩니다. 이것을 구입해 보시면 모든 경전을 볼 수 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었던 오리무중한 불교, 어렵기만 한 그 불교가 이제 선명하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다음 법문을 들어가기 전에 오늘 여러분을 위해서 그 거룩하신 우리 부처님의 칭명염불을 30초간 하겠습니다. 모두 합장하시고 따라해 주십시오.



나무 영산불멸 학수쌍존 시아본사 구원실성 석가모니불...

천상천하무여불 시방세계역무비 세간소유아진견 일체무유여불자

고아일심귀명정례



부처님께서는 아주 오래 전에 불과(佛果)를 증하시고 보니까 중생들이 너무너무도 불쌍합니다. 육도를 윤회하는 그 고통의 쇠사슬에서 도저히 나오지를 못합니다.



그리해서 우리 부처님이나 불과를 이룬 대성자들은 화두가 ‘어떻게 하면 저 불쌍한 윤회중생을 건질까’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어서 절반은 중음계에 떨어집니다. 절반정도는 명부를 들어갑니다. 이것도 진실(사실)입니다. 명부에 들어간 사람들의 절대다수가 지옥을 가게 됩니다.



이것을 본 부처님께서는 그 최고의 진락을 누리시는 무아속 절대계에 그대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가끔 이 사바세계에 몸 받아 오십니다. 몸 받아 오실 때에는 많은 고통이 따릅니다. 이것을 각오합니다. 우리 부처님을 두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부처님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위대한 어른이다’라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2600년 전 인도 땅, 지금의 네팔 국 땅입니다. 카빌라국의 조그마한 나라에 왕자로 오셨습니다. 여러분들도 다 알고 계시죠? 외동아들인 왕자로 오셨습니다. 그러면 아버지 정반왕의 왕권을 자연히 승계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 부처님께서 사바에 오신 서원이 있습니다.



“많은 중생을 건진다” 하는 서원이 있습니다. 이 서원이 너무도 절실합니다. 사람 몸을 받아온 후에도 그 생각이 항상 잠재의식 속에서 가끔 불쑥불쑥 일어납니다. “이 많은 사람들을 구원(구제)하려면 내가 일단 붓다가 되어야 겠다”해서 스물아홉 살 때 출가를 합니다.



여러분, 아시죠? 6년 동안을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는 고생, 고행, 각고의 수행을 해왔습니다. 2600년 전의 히말라야 산을 상상해 보십시오. 지금은 모두 개발이 되고 교통이 발달했지만, 그 당시는 자연 그대로였을 겁니다. 2600년 전입니다. 히말라야 산은 정글(밀림)입니다. 밀림, 그 속으로 들어가면 뭐가 많지요?



독사, 코브라, 전갈, 맹수... 그 밀림 속으로 들어가서 6년을 고행합니다. 당신은 왕의 자리를 자연히 승계 받을 수 있었지만, 그것을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사문(沙門)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사문(沙門)의 길은 4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이것을 사의법(四依法)이라고 합니다. 사의법(四依法), 4가지 원칙에 의해서 살아가는 거예요.



①도를 이룰 때까지는 걸식(탁발)을 한다는 것입니다.



②도를 이룰 때가지는 분소의(糞掃衣)를 입는다. 분소의(糞掃衣), 옛날 농촌에 가면 똥 푸는 사람 있지요. 그 사람들이 깨끗한 옷을 입고 똥을 풉니까? 그런 사람들이 걸친 갈기갈기 찢어진 옷, 그 천도 거의 낡아 가지고 살이 비칠 정도이며, 그런 천을 입고 평생을 살아야 됩니다.



③수하좌(樹下座). 지붕이 있는 데에서는 잠을 잘 수 없습니다. 그것이 규칙입니다. 엄한 룰(규칙)이 되어 있습니다. 지붕이 없는 곳, 그러니까 숲속, 나무 밑, 강가, 광야, 그리고 공동묘지, 이곳을 내 집으로 삼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수행을 해야 됩니다.



④그 다음에 진기약(陳棄藥). 사람의 몸뚱이는 가끔 아프게 되어있습니다. 지금은 약국에 가면 온갖 약이 있지요. 그 당시는 없었어요. 그리해서 진기약(陳棄藥), 부란약(腐爛藥), 부뇨약(腐尿藥)이라고 합니다. 이건 뭐냐? 소똥을 가지고 만든 약이에요. 소똥을 버무려가지고 환을 지은 거예요. 혹은 사람 똥이나 오줌을 버무려가지고 환약을 만든 거예요. 몸이 아플 때에는 이것을 먹어야 돼. 이게 4가지 수행의 원칙 올  시다. 수행자는 이 고난의 길을 가야 됩니다.



우리 부처님께서는 “좋다. 나는 사문(沙門)의 길을 택한다. 나는 도를 이루어야 되겠다. 그리고서 길을 모르는 이 불쌍한 중생들, 우주와 인생의 진리를 모르는 이 불쌍한 중생들에게 진리를, 살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줘야 되겠다.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줘야 되겠다. 윤회의 고통에서 헤어 나올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줘야 되겠다.”



해서 그런 어려운 수행을 6년 동안 하셨답니다. 그리해서 서른다섯 살이 되던 해에 크게 불과(佛果)를 증합니다. 증한 후 이제는 전법(傳法)으로 나섭니다. 중생을 위해서 법을 전하는 전도(전법)의 길을 떠납니다. 45년 동안 마지막 사라쌍수 하에서 반열반에 드실 때(임종하실 때)까지 중생을 제도합니다. 그날 밤을 넘기면 이제 반열반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103살이 된 '수밧다'라고 하는 수행자가 부처님을 뵙기 위해서 찾아왔습니다. 부처님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거예요. 그런데 아난존자가 ‘지금은 부처님을 면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뵙고만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제 소원입니다’하고 청을 간절히 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그 소리를 들으시고, “아난아! 그 수밧다를 나에게 안내하고, 그의 청을 들어 주도록 해라”고 하십니다.



수밧다가 부처님 앞에 가서 삼배를 하고, 자기는 ‘도를 얻기가 소원인데 100살이 될 때까지 수행이 안 되어서 이렇게 도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하는 말을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그 수밧다에게 마지막 설법을 하셨습니다. 그 수밧다는 부처님의 크신 위신력으로 아라한과를 증했습니다. 그때는 아라한과는 아니었습니다. 아라한과는 아니었는데 어쨌든 견성을 했습니다.



그래서 몇 시간 더 정진해서 곧 아라한과를 얻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 부처님보다도 몇 시간 전에 그냥 이 몸을 벗어버리고 갔습니다. 우리 부처님께서는 오직 중생을 건지는 일, 이게 화두입니다. 얼마나 자비하시고, 얼마나 대자대비하십니까?



이제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간략히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1,000명 정도의 제자들을 데리고, 우리 부처님께서 6년 동안 고행하셨던 산(가야산이라고 하는 산입니다), 그 가야산 산정에 오르십니다. 그들에게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시가지를 보시면서 말씀을 하십니다. 유명한 산상의 설법을 하십니다. 500년 후의 인물 '예수'가 산상설교를 했다고 하지요.



카시아파(가섭,迦葉) 삼형제(우루빈라가섭(優樓頻螺迦葉), 나제가섭(那提迦葉), 가야가섭(伽耶迦葉)의 삼 형제. 본래 외도(外道)의 무리였으나, 성도(成道)한 석가모니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 그 제자가 되었다)와 그들을 추종하는 외도 1,000여명의 대중을 이끌고 가야산 산정에서 “모든 것은 불타고 있다”하는 법문을 하십니다. 여러분이 조금 알아듣기 쉽게 부연설명을 하겠습니다. “비구들아! 사람들의 눈이 불타고 있고, 또 눈의 대상도 불타고 있느니라...”



이렇게 주~욱 나갑니다. 번뇌의 불꽃이 모든 것을 불태우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과 세계의 모습을 비유로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이렇게 보는 자는 능히 모든 것에 염오(厭惡: 싫어하다)하는 마음이 생기고 즉, 눈에 있어서 눈을 염오(厭惡)하고, 귀에 있어서 귀를 염오(厭惡)하고. 자, 마음에 있어서 마음을 염오(厭惡)하고, 일체 염오(厭惡)하는 마음이 있으면 곧 탐내는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단다. 탐내는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으면 곧 해탈을 얻을 수 있단다 하는 산상설법을 하십니다. 그리해서 많은 대중들이 이 자리에서 아라한과를 얻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모든 것은 불타고 있다”고 하는 가야산 산정에서 설법하는 골격입니다.



우리 불교는 탐진 삼독을 대단히 주목합니다. 욕심(지나친 욕심),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 탐진 삼독을 비롯해서 모든 번뇌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합니다. 모든 번뇌의 뿌리인 탐․진․치, 이놈의 뿌리를 뽑아야 된다는 것이 우리 불교의 종지(宗旨)올시다. 다른 종교는 안 그럽니다. 우리 종교는 탐․진․치를 거세(去勢)하는데(뿌리 뽑는데) 수행의 목표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해서 사성제와 팔정도를 통하지 않는 저 외도의 인물들, 교주 내지 그 지도자급들, 그 모두는 아라한 성과를 정통 아라한 성과가 아니라고 합니다(그 모두는 아라한 성과에 해당 된다고 하지만, 면밀히 보면 정통 아라한 성과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인격과 신통에 있어서 우리 불교의 보살, 상품보살까지도 인정해 줍니다만, 어쨌든 그분들은 마음속의 탐․진․치를 완전히 뿌리 뽑은 그런 사람들은 아니라고 합니다. 이것을 알아주십시오.



이야기①

'앙굴리 말라'라고 하는 희대의 살인자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그 당시 그 외도의 제자들은 한500명 정도 되었습니다. 부처님 당시 외도의 종류가 대단히 많았습니다. 그 교리 내용을 엄격하게 따져보면 90여 가지(정확히 96가지) 정도 된다고 합니다. '앙굴리 말라'는 일찍이 어느 외도의 제자로 들어갔습니다.



그 곳에는 500여명이나 되는 제자가 있었는데, 사실은 그 제자들 중에서 가장 선망 받는(장래가 촉망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앙굴리 말라'는 체격도 좋고, 아주 똑똑하고 총명했습니다. 그래서 외도의 수장(교주) 부인이 '앙굴리 말라'에게 연정을 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해서 여러 가지의 방법으로 '앙굴리 말라'를 유혹하고 유혹해도 '앙굴리 말라'는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교주의 부인이 은근히 화가 나서 시샘과 질투를 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여 자기의 남편(교주)한테 ‘'앙굴리 말라'가 자기를 겁탈하려 했다’며 음모를 꾸며 고자질을 합니다. 교주는 그 부인의 거짓말을 믿고 버럭 화를 냅니다. ‘이놈의 자식! 어디 두고 보자. 감히 내 마누라를 넘보다니...’ 하면서 좋지 않은 감정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앙굴리 말라'를 불렀습니다. '앙굴리 말라'를 앉혀놓고 ‘너! 내가 도를 이룰 수 있는 첩경이 있다. 비법이 있어. 너한테 일러주니까 그리 알아라. 사랑하는 '앙굴리 말라'야’라고 말하니 '앙굴리 말라'는 그 말을 듣고 날아 갈듯이 기뻐했습니다. 그 교주는 이런 말을 합니다. ‘너! 내말을 믿느냐?’하니까 '앙굴리 말라'가 ‘예, 믿습니다.’ ‘내 말대로 하면 너는 도를 얻는다’고 하니까 '앙굴리 말라'가 ‘하! 그러합니까’하고 무릎을 꿇고 부복합니다. ‘앙굴리 말라야! 오늘부터 사람을 100명 죽여라. 100명을 죽이면 너는 도를 이룰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앙굴리 말라'는 시가지로 나와서 칼을 휘두르며 사람을 죽입니다. 10명, 20명, 50명, 70명...죽여 갈 때, '앙굴리 말라'의 어머니가 그 소문을 듣고 ‘자기 자식이 어떤 외도의 사주를 받아가지고 미쳐서 저 무서운 죄를 짓는데 내가 가서 말려야지’ 하고 시가지로 당신의 아드님을 찾아서 나옵니다. '앙굴리 말라'는 자기의 어머니를 보고 칼을 휘두르며 죽이려고 합니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탁발을 나갔다가 들어온 제자들로부터 '앙굴리 말라'라는 사람이 지금 어느 시가지 골목에서 사람을 마구 죽인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100명을 죽이면 도가 이루어진다고 해가지고 지금 아마 80명~90명은 죽였을 것이다’ 라는 이야기를 듣고 부처님께서는 “그러냐! 좋다, 내가 직접 가겠다. 내가 간다”하시고 제자들이 따라오는 것을 전부 뿌리치고 혼자 가십니다. '앙굴리 말라'가 어머니를 죽이려고 칼을 빼들었는데, 저쪽에서 어떤 사문(沙門)이 걸어오고 있거든요.



'앙굴리 말라'는 그 사문을 보고 ‘됐다! 사문을 죽이겠다. 이 까까머리 중아! 거기에 멈추지 못하겠느냐!’ 하고 고함을 치면서 달려가는데, 아무리 달려가도 부처님은 천천히 걸어가십니다. '앙굴리 말라'는 부처님을 따라가 시해(弑害)하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붙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우리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잘 들어 보세요.



“나는 이미 오래 전에 멈추었는데 너는 아직도 멈추지를 못하고 있구나. 나는 해치려는 마음을 모두 멈추었으나 너는 아직도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멈추지 못했느니라. 나는 번뇌 망상을 끊고 진리에 머물러 있으나 너는 진리를 보지 못하였으니 번뇌 망상을 멈추지 못하는 구나.”



이 말을 듣고 무엇에 머리를 몽둥이로 맞은 것처럼  번쩍하면서 본래의 자기로 돌아와 자기의 잘못을 생각하고,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은 거예요. 그길로 기원정사로 부처님을 따라서 사문(沙門)이 되었습니다(부처님 제자가 되었습니다). 이 '앙굴리 말라'는 원래 총명했고, 많은 세월을 수행한 덕분에 곧 아라한과를 증했다고 합니다.



아라한과를 증하고서 선정에 들어가 있을 때입니다. 그 당시 왕이 '빠세나디'입니다. 그 왕이 군사를 이끌고 살인마 '앙굴리 말라'를 잡으러 온 거예요. 그 당시에는 많은 소국이 있었잖습니까. 인도에는 16나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문(沙門)들에게는 치외법권(治外法權)이 있었습니다. 죄를 지어도 사문(沙門)들에게는 죄를 묻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이 '앙굴리 말라'는 수 십 명을 죽인 죄인이어요. 그리해서 자기가 존경하는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고 하니까 사실을 알아보려고 부처님한테 오신 거예요. 보니까 '앙굴리 말라'는 저쪽 나무 밑에서 선정에 들어있어요. 왕이 가서 삼배를 합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그 위대한 교화력에 더욱 감복해서 오체투지의 예를 올리고 돌아갑니다.



그 '앙굴리 말라'는 이제 아라한과를 증했으니까 자기의 소원이 이루어졌어요. 그래서 어느 날 시가지로 탁발을 나갔습니다. '앙굴리 말라'를 알아 본 사람들이 ‘이놈이 살인을 한 놈이다! 이놈이 살인을 한 놈인데 머리 깎고 중이 되어서 나왔다!’고 하며 마구 돌을 던지고, 몽둥이질을 해서 피투성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피투성이가 되어서 돌아온 '앙굴리 말라'가 하는 말입니다. ‘나는 누구를 원망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습니다. 설사 칼이나 몽둥이에 맞아 죽더라도 이제 나는 스스로를 항복했습니다. 어떤 고통을 당하더라도 감정을 억제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 내 마음은 해탈의 기쁨으로 충만해 있어서 마음은 어떠한 경계를 당하더라도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부처님!’ 하고 말했답니다.



여기서 우리 부처님의 위대한 면을 읽어야 됩니다. 한 사람도 놓치지 않고 인연 있으면 다 건지시려고 하시는 그 대자대비, 어느 성자가 이런 분이 있습니까? 100명을 죽여 가는데, 그 희대의 살인마 앞에 내 몸을 던질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어느 성자가 그랬습니까?



이야기②

'제바달다(提婆達多)'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당신의 사촌동생입니다. 한문으로는 '조달(調達)'이라고 합니다. '제바달다(提婆達多)', 여러분들도 아마 잘 아실 겁니다. 내가 보는 시각으로, 이 '제바달다(提婆達多)'는 정말로 공부를 잘 한 분입니다. 공부 잘했습니다. 세존의 교단에 들어왔지요. 12년 동안 공부 잘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부처님을 이기려고 하는 생각이 있어요.



'제바달다(提婆達多)'의 눈으로는 그 당시 우리 부처님 교단에 출가한 비구들의 수행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 몇 가지 건의한 사항이 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6년 동안 수행을 하실 때에 온갖 외도의 교단에 들어가서 수행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고행을 하는 교단에 들어가서도 수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불과(佛果)를 증한 후 보니까, 고행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안락하게 수행하는 것도  아니라고 했어요. 그래서 중도 행을 선언하지 않습니까? 중도 행, 중도 행으로 수행하도록 비구들에게 타이른 것이 '제바달다(提婆達多)'에게는 불만이었습니다.



'제바달다(提婆達多)'는 ‘수행자는 마땅히 지금의 다른 외도들의 사문처럼 고행난행을 해야 된다. 그래야 도를 이룰 수 있는 것이지, 중도 행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부처님께 건의한 것이었어요.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제바달다(提婆達多)'의 건의사항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제바달다(提婆達多)'가 뛰쳐나간 거예요.



뛰쳐나가가지고 급기야는 당시의 '아사세왕'과 은밀히 음모를 꾸밉니다. ‘부처님을 제거합시다. 그리고 나를 세워주시오. 그러면 진짜 정법의 교단이 될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아세사왕'이 '제바달다(提婆達多)'의 그 말에 ‘그렇게 하라’하고 찬동해서 많은 코끼리들에게 술을 먹여가지고 미치게 만든 거예요. 그리해서 부처님께서 다니시는 그 길에 코끼리를 풀어 놓습니다.



저 쪽에서 부처님께서 오시는데 코끼리에게 술을 잔뜩 먹여 미치게 해가지고 우리 부처님을 덮치라고 한 거예요. 코끼리 떼들이 부처님을 향해서 달려듭니다. 마침 우리 부처님을 시봉하는 여러 제자들이 길을 오다가 이 광경을 봅니다. 이 사람들은 신통이 있어서 하늘로(공중으로) 올라 가버렸어요.



우리 부처님께서는 그런 신통이 그 제자들보다도 10배, 100배 이상 있지요. 정면에서 아난존자하고 미친 코끼리 떼를 맞이했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바른편 손을 듭니다. 바른편 손을 딱 드니까 이 다섯 손가락에서 무엇이 튕겨 나오는데 사자로 화합니다. 다섯 마리의 아주 용맹스러운 사자로 현신해요.



코끼리들이 그 사자를 보고, 부처님의 그 거룩한 자비와 지혜와 태산 같은 그 위엄(위압)에 눌려가지고 무릎을 꿇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 부처님께서 '아사세왕'한테 설법하신 내용이 팔풍의 설법입니다. 이것은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제바달다(提婆達多)'가 1차 시해(모해)에 실패를 하고, 2차로 부처님을 시해하려고 합니다. 활을 잘 쏘는 사람 500명을 모이도록 해서 많은 상금을 약속하고, 부처님께서 항상 다니시는 그 길목에 잠복을 시켰습니다. '제바달다(提婆達多)'는 ‘부처님이 지나가면 활을 쏴버려라. 활시위를 당겨라’하고 명령을 내립니다. 부처님께서 탁발하고 그 길을 따라  돌아오실 무렵, 수 백 명의 궁수(군사)들이 부처님을 향해서 활을 쏩니다. 화살 끝은 모두 날카로운 독화살인데, 그 독화살이 모두 연꽃으로 변합니다.



이야기③

부처님 당시 가섭(迦葉)삼형제가 있었습니다. 여기의 가섭은 부처님의 십대제자인 '마하 가섭'이 아닙니다. 맏형이 '우루빈라 가섭(優樓頻螺 迦葉)', 둘째가 '나제 가섭(那提 迦葉)', 셋째가 '가야 가섭(伽耶 迦葉)'으로 삼형제가 있었어요. 화룡을 섬기고 있던 '우루빈라 가섭(優樓頻螺 迦葉)'으로부터 그 유명한 화룡(火龍, 불룡)을 항복받고, 우리 부처님의 제자가 된 그 '우루빈라 가섭(優樓頻螺 迦葉)'은 '마하 가섭'이 아닙니다.



'가섭'이라는 이름이 우리 부처님 당시에 다섯이 있었어요. '십력 가섭'도 있었고, 또 BC 3세기에는 음광부(飮光部)라는 소승 부파불교가 있었는데 그 음광부의 개조(開祖)도 '가섭'이었습니다. 여기 '우루빈라 가섭(優樓頻螺 迦葉)' 삼형제가 500명씩, 1,000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앞에서 말씀드린 산상의 설법을 하실 때 있었던 분들이 그 제자들입니다.



이 귀한 사건이 있습니다. 이것은 화룡을 항복 받은 사건이고, 그리고 네란자라(니련선하)강을 잘라가지고 길을 만들어서 유유히 저 언덕까지 걸어간 사건입니다. 그리해서 1,000명의 가섭삼형제 제자들을 전부 받습니다. 1,000명 모두 귀의합니다. 유명한 사건입니다. 이런 일을 비롯해서 우리 부처님의 위대한 것은 많습니다. 이것은 학승들도 다 아는 일이지요.



학승들이 우리 부처님의 정말로 위대한 점을 모르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걸 오늘 말씀해 드립니다.

▸우선, 어머니를 위해서 42살 때 도리천에 올라가셔서《지장경》을 설한 사건이 있습니다. 두 번째,《화엄경》을 설하실 적에는 도리천, 야마천, 도솔천, 타화자재천을 순차로 올라가시면서《화엄경》을 설합니다. 그런데 지상의 기원정사에 당신이 설법하셨던 그 상황을 그대로 놔두고 도리천에서 설법을 합니다. 그대로 거기서 법을 설하십니다.



기원정사에 그대로 놔두고 도리천에 가는 거예요. 그건 갈 수 있는 이유가 있어요. 절대계에 계시는 자기의 불신(자기의 보신불)이 있거든요. 그때 이 영체가 계합하게 됩니다. 그래서 도리천에 가서 법문을 설해요. 그리고 또 야마천에, 도솔천에, 타화자재천에 가요.



이것은 신통이 아닙니다. 이것은 대적정삼매의 힘으로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붓다의경지에서는 대적정삼매의 힘으로 백천만억 화신을 낼 수 있어요. 이러한 점입니다. 여러분, 많은 점이 있는 데 다음 시간에 거듭 이야기하기로 하겠습니다.



▸우리 부처님께서 설법하실 때에는(크나큰 법문을 설하실 때에는) 꽃비가 내려오게 되어 있습니다. 큰 삼매에 들어가셔서 방광을 하고 하면 꽃비가 내리고, 수 백 만의 청법 대중이 몰려오고, 그래서 설법을 하시거든요. 이런 부분, 저런 부분에 대해서 학승들이 ‘이것은 문학적인 픽션(虛構)이다’하고 방기(放棄)해 버린 것입니다(픽션으로 치부해 버린 것입니다). 스님이 볼 때는 아닙니다. 이거 이상입니다. 보니까 이것 이상이어요.



▸우리 부처님은 어마어마한 힘도 있습니다. 외도의 전부가 우리 부처님을 향해서 달려든다고 하더라도 능히 제압할 수 있는 화광삼매화가 있습니다. 이것은 다음 시간에 말씀을 드리기로 하겠습니다.



부처가 되려면 마음속의 삼독 108번뇌가 완전히 다해야 되고, 그리고 다겁생의 죄업장이 완전히 소멸되어야 하고, 악과 습의 탁한 기가 완전히 빠져나가야 되고, 여러 생 동안의 원결(나쁜 인연)이 해결 되어야 하고, 은혜와 빚이 정리되어야 저 절대계에 자기의 불신이 생긴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말씀드리면서 우리 부처님의 위대한 이 실상이 여러분을 비롯해서 한국의 많은 불자님들이 알았으면 좋겠고, 학승들이(큰스님들이) 알아서 이제 이 부처님을 진짜로 믿고, 전번에 스님이 말씀드린 '영혼체 윤회설(영혼체 윤회론)'을 받아들이고 해서 이 불교가 다시 본래의 불교로 돌아가 가지고 힌두교도 흡수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위대한 부처님의 교리는 힌두교를 충분히 흡수할 수 있습니다. 또한 모든 종교를 전부 통합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이런 신불교 운동이 영산불교 현지사를 주축으로 해서 번져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영산불교 현지사를 많이 사랑해주시고 밀어주시기를 마지막으로 당부 드립니다.



여러분! 절대로 지옥 아귀 축생의 삼악도에 떨어지면 안 됩니다. 기어이 삼악도에서는 벗어나야 됩니다. 삼악도로 가면 안 됩니다. 지금 절대다수가 삼악도로 갑니다. 이 진짜 법문을 모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리고 여러분 모두가 윤회를 벗어나야 됩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간절하게 여러분에게 바라는 바 올 시다. 그리해서 모두모두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이라고 합니다.



※사회자 : 새로운 불교, 정법의 세계를 열어주는 감로의 법문을 해주신 우리 자재 만현 큰스님께 다시 한 번 큰 박수 올리겠습니다. 자재 만현 큰스님의 오늘 법문은 세계 불교사의 새 지평선을 여는 진리의 사자후입니다.



특히 오늘의 이 법문은 우리 교주 불세존과 다보부처님을 비롯한 오여래부처님, 그리고 삼천대천세계의 수많은 불․보살님과 성중님들께서 함께한 크나큰 붓다회상이었음을 여러분들께서는 가슴깊이 간직하시고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들의 업장이 참으로 많이 씻겨나간 희유한 붓다 회상임을 진정으로 믿어주시기 바랍니다. 저희들에게 이토록 감동적이고 역사적인 감로법을 설해주신 문수보살 법왕자 자재 만현 큰스님께 다시 한 번 큰 박수로 고마움의 예를 올리겠습니다. 終






현지사 자재 만현 큰스님 정기법문
2010.9.15.수(음8.8)  대전 분원



계율(戒律)




오늘 법회에 처음 나오신 분 손을 들어주세요. 많은 박수로 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스님의 법문을 하나도 빠짐없이 잘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21세기 우리가 사는 이 시점에 이 나라 불교나 여러 나라의 불교는 부처님의 정법과 거리가 너무 멉니다. 내가 항상 이야기하는 말입니다. 오늘은 계율(戒律)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말씀드리기 전에 스님이 이 나라 사랑스러운 우리 참한 불자님들, 그리고 전 세계의 불자님들에게 힘주어서 알려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나는 이 거룩한 법좌에서 다시 한 번 힘주어서 선언합니다. 부처님, 보살님, 모두 계십니다. 마음 안에도 아니고, 마음 밖에도 아니고, 유․무를 초월한 '무아 속 절대세계(적멸계)'에 여여히 계십니다. 극락도 있습니다. 보살 인가를 받은 성자가 가는 극락세계는 분명히 있습니다. 지옥도 있고, 아귀세계도 있고, 하늘천국도 있습니다. 외부적(객관적)으로 존재합니다. 명부를 들어가지 못한 무주고혼들이 사는 중음세계도 있습니다. 중생은 스스로 업을 지어 육도(六道)라는 여섯 세계를 윤회생사(輪廻生死)합니다. 이 모든 사실은 부처님 공부를 잘해서 붓다가 되면 확실히 봅니다(압니다). 이건 진실입니다.



심즉시불(心卽是佛), 마음이 곧 부처라고 하면서 부처! 부처님이 없다고 대망어 하지 마시오. 지금 근심걱정 번민하는 그 자리가 지옥, 번뇌를 떠나 행복을 느끼는 그 순간 그 자리를 극락이라고 합니다. 그런 대망어로 눈먼 중생을 오도하면 과보가 무섭습니다. 기뻐하다가 곧 괴로워함을 윤회라고 한답니다. 영혼 따위는 인정하지 않고, 인과(因果)는 끝나는 것으로 보고, 다음 생도 없다고 말하는 법문을 서슴없이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본래의 위대한 불교는 이렇듯 망가졌습니다. 신근(信根)이 있는, 믿음의 선근이 있는 선남자 선여인들을 어찌 구원한단 말입니까? 부처님께서는《정토삼부경》《아함경》《능엄경》등 수많은 방등경전,《법화경》《화엄경》등 대승경전 곳곳에서 극락을 말씀하셨고, 지옥을 이야기하셨고, 육도를 설하셨고, 윤회를 확실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모두를 방편(方便)으로 설한 것이 아닙니다. 일부 학승들, 불교학자들, 선승들, 포교사들은 대망어의 과보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있다 없다를 초월한 자리, 거기서도 더 나아가 '무아 속 절대계'를 알지 못하고 함부로 법을 설하면 무간지옥에 간다고 부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우리 교주 불세존, 이 말씀은 부처님세계에서 붓다님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 말씀이십니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최초 불이요, 붓다 중의 붓다이시고, 삼계의 지존이시고, 미래제가 다하도록 남섬부주의 대교주이십니다. 우주 온 법계의 주(主)이시고, 법계의 법왕이신 진정한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나는 여기서 이 나라, 그리고 세계의 수많은 불자님들 앞에 힘주어 선포합니다.



부처님께서는 큰 지혜와 복덕, 원력과 자비, 항하사의 신통과 크신 위신력을 지니신 지존이십니다. 백천삼매, 해인삼매, 대적정삼매에 자유자재하시고, 법․보․화 삼신(三身)을 구족히 갖추셨으며, 그래서 삼천대천세계에 당신의 천 만억 화신을 나투어 중생을 교화하고 계시는 지존이십니다. 무아 속 절대계에 천억 아승지색깔의 억종무량광 빛으로 된 32상 80종호의 인격적 우주적 색신, 소위 지복의 몸, 영원불멸의 몸뚱이를 지니고 계십니다.



경험세계(상대세계, 중생세계)에 나투실 때의 거동 거동은 실로 삼천위의 팔만세행(三千威儀 八萬細行)이 맞는 말입니다. 제자를 대함에 있어서 그 지극한 자비는 흉내를 낼 수 없고, 음성(목소리)은 최상의 미묘음이어서 표현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 몸(佛身의 몸)의 구석구석 어느 한 곳을 보고 있으면, 너무나 예쁘고 아름다워서 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시는 말씀마다 거룩하고 희유한 법의 감로비, 법보 아님이 없습니다.



상품보살 가운데 불종자(佛種子)가 인신을 받아와 정진하는 중에 깊은 삼매에 들어서 부처님 빛(무량억종광)을 보게 됩니다. 너무 밝고 아름다워서 이 세상천지, 아니 하늘과 극락에도 없는 그런 희유한 빛을 볼 때, 비로소 그 두터운 무명의 껍질이 타파되는 것입니다. 이때 수행자는 깊은 선정에서 지옥과 극락, 중생이 윤회전생(輪廻轉生)하는 그 모습도 분명히 봅니다. 사랑하는 불자여러분! 지금의 여러 나라 불교는 부처님 말씀, 진리와 너무 멀리 떠나있습니다. 본래의 위대한 불교는 너무 왜소화 되었고, 왜곡되고 망가진 불교가 되어버렸습니다. 방금 스님이 여러분 앞에서 힘주어 선언한 바를 모두 믿어 주십시오. 진실입니다. 잠깐 염불하겠습니다.



나무 영산불멸 학수쌍존 시아본사 구원실성 석가모니불...

천상천하무여불 시방세계역무비 세간소유아진견 일체무유여불자

고아일심귀명정례



무시무종(無始無終), 이건 어려운 말인데 ‘시작도 없고 끝이 없다’는 말이에요. 스스로 있는 자존자, 우주에 충만한 하나의 큰 생명, 모양도 없고 모습도 없고 따라서 생각도 없고 행위 하지도 않고 판단하지도 못하는 이 실상, 이것은 비 인격이면서 하나의 생명, 시작함과 끝남도 없이 언제나 우주에 두루해 있습니다. 대단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다시 강조합니다. 이것은 비 인격입니다. 우주이법이요, 자연법칙이요, 인과법이요, 인연의 도리올시다.



우주만물을 창조한 그런 인격적 절대자는 없습니다. 창조한 절대자가 있다면 처음과 마지막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계속 진행 중입니다. ing입니다. 그러므로 힌두교의 창조론도 거짓입니다. 영원 이전부터 미래제가 다하도록 우주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을 합니다. 다른 우주도 그렇습니다. 윤회를 벗어나지 못한 인간을 포함한 유정들은 언젠가 공(空, 스스로 있는 자존자), 원래의 실상자리로 돌아갑니다.



그러다가 다시 자연법칙에 따라서 영원히 성주괴공을 시작합니다. 소위 기세간(器世間), 무정의 세계, 천지(天地) 일월성신(日月星辰) 같은 것, 이것은 자연법칙에 따라 생성 진화 소멸합니다. 인간을 포함한 유정은 자유의지가 있어서 인연의 도리와 인과의 법칙에 따라서 지옥까지 스스로 만들어 거기에 들고(떨어지고), 윤회를 벗어난 자도 있고, 불․보살이 된 자도 있습니다. 지금 현재 이대로가 과거요 영원 이전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이게 아주 깊은 이야기입니다. 그 어디에도 없는, 지금까지 그 누구도 미처 말 못한 우주의 깊은 수수께끼입니다.



하나님이라고 하는 창조자가 있어서 어떤 이에게는 복을 주고, 어떤 이에게는 비참한 운명으로 살도록 벌을 주고, 남편을 주고 아들딸을 주고,...이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창조론은 처음과 끝이 있게 됩니다. 그러면 처음 이전, 과거전생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론은 허구(虛構)입니다. 착한 이가 가난하게 살기도 하고, 악한 사람이 잘사는 현실, 창조론 가지고는 이것을 설명 못합니다.



배넷병신(배안의 병신, 선천적 병신으로 태어난 것)을 설명 못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라면서 그럴 수 있습니까?

소위 영혼체를 보는 수준이면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실히 압니다. 영혼체, 스님이 영혼체를 윤회의 주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형이상적인 실체로서 중생들은 못 봅니다. 영혼체가 윤회생사의 본체(本體)요, 기체(基體)입니다. 이 영혼체를 볼 정도이면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의 그 유무를 확실히 압니다. 우주만물이 어떻게 해서 생기고, 인간을 포함한 유정과 남녀는 어떻게 해서 생겨났고 하는 것을 봅니다. 



이 우주 만법은 자연법칙, 다시 말씀드려서 우주법칙에 따라서 생성되고 소멸되는 것을 반복한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인간을 포함한 유정들은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인연의 도리와 인과의 법칙에 따라서 죄를 지으면 지옥까지 가고, 착하게 살면서 성인(聖人)의 법을 따라 살면 극락을 감은 물론, 붓다까지 됩니다.



우리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기 전에 아난존자에게 마지막 유언(유계)을 하셨습니다. 중요한 말씀은 “계(戒)로서 스승을 삼아라. 내가 반열반 후에 스승을 잃은 너희들은 슬퍼하지 말라. 계(戒)로서 스승을 삼고 살아라”하고 이계위사(以戒爲師)를 말씀하셨습니다.《화엄경》에서도 “계(戒)라는 것은 위없는 보리를 이룰 수 있는 근본이 되고, 그렇기 때문에 마땅히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구족계를 선지할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능히 이 맑고 청정한 구족계를 지니면 모든 부처님들이 칭찬할 것이다.” 나는 여기서 말씀드립니다. ‘동진출가(童眞出家, 어렸을 때 출가)해서 계(戒)를 잘 지키고 염불한다면(염불로 한 생을 보내는 그런 스님이 있다면), 그 스님은 분명히 왕생극락 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요즘 신문이나 TV를 보니까 무서운 사건들이 빈발합니다. 여러분, ‘묻지마 살인사건’있지요. 행복해 하는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듣기 싫어서(자기보다 행복해 하는 저 사람들이 보기 싫어서) 그 웃음소리가 나는 그 집에 들어가서 사람을 죽였대요. 30대 남자가 부부를 살해했지요. 또 우리나라에 도박중독자가 200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아마 이 숫자보다 더 많을 거예요. 한 400만 명은 될 거예요. 4억 원의 도박 빚 때문에 부인을 목 졸라 죽이고, 잠자는 아들을 둔기로 쳐 죽인 40대 살인범이 잡혔습니다.



나도 없고 너도 없고, 외부적(객관적)으로 지옥도 없고 극락도 없고, 윤회도 없고, 육도도 없고, 귀신도 없고, 불보살도 없다면, 모든 수단 방법을 다 강구해서 한 생 적당하고 멋지게 살아야지요. 아무것도 없으니까 죄도 적당히 짓고요. 죽어서 가는 자기도 없고, 가는 저 지옥도 없고, 육도도 없고, 극락도 없고, 불보살도 없고 한다면 마음대로 살아야지요. ‘마음껏 살아라 하는 것’이 선(善)이지요. 선(善)의 가르침이지요.



이렇게 되면 안 됩니다. 현재의 불교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불교 집안, 승속(僧俗)간에 죽어서 어디로 가는 가를 보니까 대부분 삼악도로 떨어지더라 그거예요. 이거 안 됩니다. 즐거웠다가 금방 또 괴로움으로 바뀌어 지는 것(바뀌어 돌아가는 것), 이것이 윤회라고 한답니다. 지금 이런 실정입니다. 큰스님들이 다니면서 이렇게 포교를 해요. 여러분, 이건 대망어입니다. 법을 모독하고 능멸한 이야기인 거예요. 이것은 큰 죄인 거예요. 오역죄보다도 더 무서운 죄인 거예요. 지금 이걸 알아야 되요. 세상이 이렇게 되어서 모두(冒頭)에 스님이 여러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소위 ‘전생, 육도, 윤회, 이것은 불교의 가르침이 아니고 힌두교에서 주장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거든요. 힌두교에서 주장한다는 이 부분은 맞아요. 그런데 왜 불교에서 주장하지 않았어요? 부처님이 왜 주장하지 않았어요? 부처님은 이 우주 이치를 보다 깊이 들어가 봤어요. 그래서 중생이 업을 지어서 육도를 윤회전생(輪廻轉生)하는 것을 보셨어요. 성자의 법을 따라서 법답게 잘사는 사람은 윤회를 벗어나기도 하고, 더 나아가서 아라한도 되고, 보살도 되고, 붓다가 되는 것까지도 부처님께서는 보셨습니다. 그래서 경전 곳곳에, 방등대승경전인《아함경》부터 곳곳에 지옥을 말씀하시고, 극락을 말씀하셨어요. 왜 안했어? 힌두교를 따랐다고?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힌두교보다도 훨씬 깊이 보셨습니다. 이것을 말씀드립니다.



이제 계율(戒律)에 대해서 쭈~욱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사람 몸 받기 어렵습니다. 인신난득(人身難得)이라고 합니다. 사람 몸 받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사람 몸 받아 와서도 불법(佛法)만나기 어렵습니다.  불법난봉(佛法難逢)입니다. 불법(佛法)만나기 어렵습니다. 불법(佛法)을 만나야 구원을 받습니다. 구제가 됩니다 여러분. 그런데 이 불법(佛法)이 지금 현재 이렇게 망가졌어. 스님이 가끔 말씀을 드리지만, 수적으로는 불교도 숫자를 3억, 5억 그래. 그런데 우리 영산불교 신도 분들 처럼 알차게 믿는 가?



아니어. 그런 포교사들, 그런 큰스님들의 법문에 그저 적당히 살면 되는 구나. 그저 적당히 살고, 우리 남편 잘되고, 자식 잘되고, 적당하게 즐기면서 살아야 된다 하는 생각으로 살다가 보니까 지나친 업도 짓고 해서 악도에 간다고요.



부처님께 계(戒)를 받으면서 ‘확실히 지키겠습니다’하고 약속을 한 스님들은 무섭습니다. 스님들이 부처님께 약속한 바는 죽을 때까지 책임지고 가야 됩니다. 부처님께 한 말(약속)은 대단히 무섭습니다. 내가 10여 년 전에 우리 도반, 포교사나 종단의 지도층 스님들끼리 앉아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아! 이 불교가, 이 승단이 너무도 문제다. 계(戒)를 지키는 사람이 없다. 계(戒)를 지키는 사람이 없다.



오계(五戒)를 반듯하게 지키는 사람이 하나 둘 셋 될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요, 저 서구의 일신교, 인도 쪽의 대단한 철학사상을 지닌 힌두교라든지 자이나교의 계명 수(계목 수)는 다섯 가지 내지 열 가지를 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불교의 계목(계본)이나 율장(律藏), 저기 남전(南傳) 팔리어 율장(실론, 태국, 미얀마 쪽으로 흘러간 불교의 율장)을 보면 비구는 227계, 비구니는 311계의 계목이 나옵니다. 이것을 지키라는 것이 나옵니다.



다섯 가지, 열 가지가 아니라 227가지와 311가지를 지키라고 말입니다. 또 북전(北傳), 저기 티베트, 중국, 한국, 일본 쪽으로 포교해서 우리 불법(佛法)이 전해졌잖아요. 그 북전율장(北傳律藏)이 오부율(五部律 : 불교교단의 기강 확립과 불교도들의 본분 유지를 위해 필요한 여러 부(일종의 종파)의 계율을 한데 모은 것을 율장이라고 한다. 그 중 유명한 다섯 가지 율장을 오부율(五部律)이라고 한다. 오부율은 대중부의《마하승기율》, 법장부의《사분율》, 유부의《십송율》, 화지부의 오분율》, 음광부의《해탈율》을 말한다. 이 중《해탈율》은 전하지 않아 나머지 율만을 모아 사대광률(四大廣律)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백제 성왕대에 백제승(百濟僧) 겸익(謙益)이 인도에까지 가서 범어(梵語)를 연구하고 오부율(五部律)의 범어 경(梵語 經)을 가지고 와서 번역하여 율부(律部)72권을 펴내고 백제 율종(律宗)을 성립시켰다)이라고 해서 다섯 개가 있는데, 그 사분율만 보더라도 비구는 250개, 비구니는 348개를 지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질과 양에 있어서 다른 종교는 불교에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잖습니까? 또 율장에 있는 것은 놔두고, 기타 여러 경전에 쓰여 있는 계(戒)가 있습니다.《범망경(梵網經)》에 보살계(대승보살계)가 있지요. 그건 십중대계와 48경계, 그러니까 58계를 말해요. 58가지를 또 지키라고 되어 있어. 보살이 되려고 하는 자는 반드시 지켜야 돼. 그리고 재가불자들한테 준 계율이 있어요. 삼귀 오계 대승십선계가 있어. 거기에다가《화엄경》이나《해심밀경(解深密經)》을 보면 삼취정계(三聚淨戒)라고 있어. 삼취정계의(三聚淨戒儀)란



▸첫 번째, 섭률의계(攝律儀戒)입니다. 모든 계를 지켜라 그거요.



▸두 번째, 섭선법계(攝善法戒)입니다. 착한 일은 전부해라. 착한 일은 부지런히 해라.



▸세 번째, 섭중생계(攝衆生戒)입니다. 불쌍한 저 중생들, 한 사람이라도 힘이 닿는 데까지 건져라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런 삼취정계(三聚淨戒)를 호지(護持)하도록 원하십니다. 우리 현지사에서는 우리 출가승들에게 삼취정계(三聚淨戒)를 줍니다. 그러니까 오계가 문제가 아니라 수 백 가지입니다. 우리 신도 분들한테는 삼귀 오계 십선을 지키도록 합니다. 거기에다가 플러스 보살계를 지켜야 돼. 항상 공부하고 보살계까지 받아서 지켜야 돼. 거기에다가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4가지 계를 더욱 지키도록 합니다. 율장에도 없는, 그러니까 북전오부율(北傳五部律)이나 남전팔리어율에도 없는, 또 보살계에도 없는, 또 재가승들에게 준 계율에도 없는, 계목에도 없는, 2600년 전이기 때문에 시대가 다르다 보니 어떤 게 빠졌느냐?



▸흡연이 빠져있습니다. 담배 먹는 것. 담배 먹는 것은 율장에 없으니까 먹어도 괜찮다 해서 먹어요. 저기 남전(남방) 쪽의 스님들, 담배 먹는 분들이 많은데 먹으면 안 됩니다.



▸아편하지 말라.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아편하지 말라 한다고. 율장, 보살계목에도 아편 말이 없어.



▸도박(돈을 걸고 내기 하는 것)을 하지 말라. 화투, 투전, 당구, 요즘은 골프까지 돈을 걸고 한다 그래요. 그런 것 하면 안 되는 거요. 도박을 해서는 안 됩니다.



▸동성연애가 빠져 있습니다. 모든 율장(율목), 소승 대승 보살계목을 훑어봐도 동성연애라는 말이 없어. 그런데 우리 부처님께서는 그걸 강조하시거든.



우리 영산불교 현지궁 현지사는 부처님 교단이라고 했지요. 그 말은 삼계지존 석가모니부처님을 비롯해서 기라성 같은 부처님들이 와계신다 그 말이어요. 그 부처님은 법신불도 아니고, 화신불도 아닌 보신불(중심불)이어요. 눈 코 입이 다 달렸어. 너무나 거룩해. 앞에서 말씀드렸잖아요. 여러분, 부처님을 내가 그려놨으니까 테이프를 구입해가지고 여러 번 들어보세요. 제자의 약점을 너무도 잘 아시기도 해서 지적도 하십니다.



잘못한 것은 불벼락이 떨어집니다. 공부한 정도에 따라서는 법계(법위)를 인가해 주십니다. 그리고 삼매로 이끄시고, 업장도 씻어주시며, 병을 낫게 해주십니다. 이러한 부처님, 이게 중심(진짜) 부처님이어요. 법신 보신 화신할 때의 보신불이어요. 우리 영산불교는 보신부처님이 계신단 말이어요. 그래서 부처님회상이라고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겁에 하나 이러한 교단이 이 사바세계에 있게 된다 그거예요. 겁에 하나 붓다가 나오니까 그렇단 말입니다. 그 제자를 붓다 만들어 데려가기 위해서 와계신단 말이에요.



이 나라만 해도 문수보살님의 주처가 저기 강원도 오대산, 오대산을 그렇게 말하지요. 관세음보살님의 주처는 남해 보리암, 낙산사 홍련암, 강화 보문사라고 하지요. 또 지장보살님의 주처는 어디죠? 전라북도 도솔암, 강원도 심원사라고 하지요. 약사여래부처님의 주처는 어디라고 보는지 아십니까? 저기 대구 팔공산 허공에 있는 갓바위 절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여러분, 이 모든 부처님들이 전부 우리 현지궁 현지사에 계셔요.



그래서 큰스님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책을 낸 것이《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Ⅱ》권입니다. 그리고 법문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저 사람들이 처음에는 영산불교 현지사에 대해 아주 그냥  말도 못하게 텃세를 부렸어. 텃세가 무서웠어. 지금은 영산불교 현지사를 많이 주목하지요. 지금은 아무 소리를 못합니다.



몇 달 전에 신문 한 면에다가 우리의 사상을 광고했지요. 또 양면을 인터뷰 했잖아요. 수준이 상당히 높습니다. 그 아무도, 학승도, 큰스님도 아무 말 못합니다. 그 사람들이 대답할 수 없지요. 무아(無我)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어떻게 대답합니까?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형이상적 실체요, 윤회의 주체(主體)요, 본체(本體)요, 기체(基體)인데.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볼 수 없기 때문에 엉뚱하게 무아(無我)를 해석해가지고 불교를 그냥 망쳐버린 거예요. 여러분, 대단히 심각한 이야기입니다. 이 무아(無我), 무아설(無我說)의 진리를 알아야 되요.



우리 영산불교 현지궁의 무아(無我)에 대한 견해를(시각을) 배워 알아야 됩니다. 이 무아(無我)의 잘못된 해석 때문에 ‘이 불교는 종교도 아니고, 이건 아니다’ 해가지고 아쇼카대왕께서 전인도를 통일하면서 불교화 했던 그 황금 밭 인도 땅을 잃어버렸습니다. 인도에서 쫓겨나버린 거예요. 이 위대한 불교가 완전히 소멸되어 버렸어. 이거 그럴 수가 없는 거예요. 역사상 그럴 수가 없어. 이 무아(無我)가 잘못 전해져가지고 부처님 말씀이 왜곡 되어버렸어. 그래서 불교가 망해버린 거예요.



당초 부처님께서 모든 사람을 살펴보니까 이 몸뚱이를 자기의 것으로 착각을 해. 이 몸, 이 생각을 진짜 자기로 봐. 이건 내가 아닌데, 이건(이 몸뚱이는) 내 것이 아닙니다. 이 몸뚱이는 분명히 가짜입니다. 이 생각도 가짜예요. 그런데 모든 사람들(중생들)은 진짜 자기로 보거든. 여기에 집착을 해가지고 탐진치 번뇌가 일어나서 업을 지어. 그래서 그것을 막아주기 위해서 무아(無我)를 말씀했던 것입니다. 그것은(몸뚱이는) 내가 아니다 그거요.



너희들이 생각하는 이 몸뚱이, 이 생각은 진짜 내가 아니고, 너의 것도 아니다 그것이어. 한발 더 나아가서 “나(我)라는 것은 없다”해버린 거예요. 이건 방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우주만법은 인연생기(因緣生起)한 것들이기 때문에 인연이 흩어져버리면 공(空)으로 돌아가. 그런데 이 사람을 포함한 유정은 안 그래. 사람, 유정은 달라. 이제 공부를 많이 해서 보니까 몸속에 들어와 있는 형이상적인 실체가 있어. 그것이(형이상적 실체인 영혼체) 윤회의 주체가 되어 있어. 그것이 윤회의 주체다 그거요. 주체가(主體), 본체가(本體), 기체가(基體) 없이 윤회를 못하는 거예요.



원판(본판)이 있어야 돼. 사진을 딱 찍어가지고 이것을 현상하면 100개 1,000개가 나오잖아요. 원판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원판(본체) 없이 어떻게 윤회를 해. 이건 아닌 거예요. 그래서 영혼체 이야기를 조금씩 했던 거예요. 이제 ‘영혼체가 윤회의 주체다’하고 나온 거예요. 그러니까 불교계에서 심상치 않게 생각하지요. 맞는 것 같지요. 조금도 모순이 없어요. 흠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말을 못하는 거예요. 여기서는(현지사에서는) 보고 말하고, 저기서는 보지 못했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  반론할 수가 없는 거예요. 내 이 말이 얼마나 자신 있으면 여기서 이런 말을 합니까 여러분!



진짜 불법(佛法) 만나기는 어렵습니다.

차신불향금생도(此身不向今生度)하면, 갱대하생도차신(更待何生度此身)이리요. ‘내 이 몸을 금생에 제도하지 못하면, 언제 이 몸을 제도하리오’ 라는 말이어요. 부처님 교단을 만나면 이 몸을 제도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스님이 항상 강조하잖아요. 할 수 있습니다. 우리 현지사에서 벌써 윤회를 벗어날 수 있는 아라한 이상이 30여 명 나왔습니다. 이건 엄청난 이야기입니다. 무루대아라한 하나 출세, 이 세상에 한 50년 만에 하나 나올까? 자기의 힘으로는 거의 안 되게 되어있습니다. 부처님의 가피 아니면 안 됩니다.



다시 계율(戒律)로 들어갑니다. 그 많은 계목(戒目)이 있는데 반듯하게 지키는 사람이 거의 없지요. 오계도 지키는 사람이 하나 둘 셋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어느 포교사가 조계사 법회에서 법문할 때 그 말을 한 거예요. ‘우리 종단은 큰일났다. 오계를 지키는 스님이 거의 없어’라고 말해버렸습니다. 그래버리니까 이 말이 술렁거려가지고 문제가 되었었지요. 그러나 그 말이 맞기 때문에 아무 말도 못해버린 거예요. 이렇게 되면 불교는 망합니다.



부처님의 가피가 올 수가 없습니다. 계율이 없으면 부처님께서 가피를 주지 않습니다. 계율이 없으면 절대로 가피가 내려가지 않습니다. 가피가 없으면 어떻게 됩니까? 그 사람의 미래는 안 보이지요. 그 교단은 안 되는 거예요. 망하는 거예요. 불교는 망할 수 없습니다. 우주의 진리인데 망해서는 안 되지요. 이거 다시 살려야 됩니다. 여러분! 이 기치를 들고 일어난 것이 영산불교 현지궁 현지사입니다. 불교 계율의 본질적인 성격이 있습니다. 우리 부처님은 우주의 진리와, 우주 자체와 하나가 되어버리신 거예요. 하나가 되셨어요. 이걸 법신불이라고 해요. 우주적인 입장에서 “아! 중생들이 이렇게 이렇게 사니까 지옥을 가고, 천국을 가고, 윤회를 벗어나고, 보살이 되는 구나”하는 것을 잘 아시기 때문에 계율을 설한 거예요.



계율이라는 계(戒)자는 범어로 ‘실라(SILA)’라고 합니다. 방비지악(防非止惡)이라는 말이 있어요. 죄나 악을 더 이상 짓지 말라 그거예요. 방지해준다 그거요. 율(律)은 불교 교단의 규율(법률)이어요. 그러니까 계율이라는 것은 우리 불교도가 지켜서 죄악을 더 이상 짓지 않고, 부처님 말씀대로 여법하게 살 수 있도록 제정하신 규율(법률)이어요. 이건 지켜야 되는 거요. 지켜야 돼. 비구250계, 비구니311계, 100가지의 중학법(衆學法)이 있어요.



칠취(七聚)중에서 마지막 계율인데, 오늘날 우리 스님들이 그걸 보면 ‘이거 너무도 하찮은 것 아니냐’하지만 아니어요. 그것을 꼭 배워서 몸에 배이게 해야 돼. 그 100가지가 위의(威儀)를 말씀해 놓은 것인데, 성자로 갈수록 위의(威儀)가 있어야 되는 거예요. 위의(威儀)가 서야 돼. 그래서 부처님 정도 되면 삼천위의 팔만세행(三千威儀 八萬細行) 이어요. 나는 그 계율 모두가 부처님 말씀으로서 존중히 여법하게 지켜야 할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계율은 우주법칙입니다. 오계 십선, 이것이 모든 계법의 근간입니다. 오계(五戒)는 우주법칙이어요. 이 오계(五戒)가 우주법칙인지 아닌지를 봅시다. 다른 종교인 일신교, 그건 우주법칙이 아닙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오계(五戒)중에서,



▸‘사람을 죽이지 말라’ 그랬거든요. 이것은 불살생(不殺生)이어요.

여러분, 누가 칼을 들고 와서 '묻지마 살인범'처럼 죽인다고 하면, 그 단란하고 평화로운 가정을 이루고 잘사는데, 어떤 살인범이 들어와서 이유 불문하고 찔러 죽이면 그거 어떻게 됩니까? 남은 아들딸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건 과보가 무섭습니다. 죽이면 어떻게 되지요? 분명히 영혼체가 있기 때문에 그 정보가 영혼체에 반드시 들어갑니다. 그대로 그대로 들어갑니다. 말(言) 행동 생각, 신구의(身口意) 삼업이 그대로 그 영혼체로 흘러들어간다는 거예요. 그것이 맞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은 사람의 그 영혼체가 알아. 그래서 기어이 복수할 날을 기다리는 거예요. 이건 무섭습니다.



오늘 시간이 있으면 많은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은데, 이 계율에 대해서는 몇 날 몇 일을 해도 부족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님 말씀을 하나도 빠짐없이 마음에 꼭 새기십시오. 가면 오는 거예요. 콩을 심으면 꼭 콩이 나는 거예요. 팥이 안 나와. 팥을 심어야 팥이 나오는 거예요. 뺨을 한 대 때리면 ‘아이구! 고맙소’할 사람 없어. 주먹뺨이 들어와. 이게 이치입니다. 이게 우주의 이법이어요. 이것을 인과법(因果法)이라고 해. 그렇기 때문에 살생계(살인계)를 첫 번째로 하신 거예요. 사람 목숨보다 더 귀중한 것이 있습니까? 나에게 있어서도 가장 귀중한 것이 목숨 아닙니까? 돈(재물)은 그 다음이어요. 정조는 세 번째요. 명예는 네 번째이고요. 이건 상식이어.



▸두 번째 무서운 것은 재물을 뺏는 거예요. 피땀 흘려서 1,000만원을 모아 장롱에다가 넣어 놨는데 도둑놈이 가져가버렸어. 이거 죽을 일이야. 이거 용서 안 되는 거예요.



▸계율을 소중히 지키는 여스님(비구니)을 범했다? 이거 용서가 안 되는 거예요. 이걸 바라이죄라고 해.



▸또, 도를 이루어 가지고(도를 통해서) 나는 이미 성자의 반열에 올라간 사람인 양 행세를 하는 그 망어 죄는 큽니다. 우리나라에 지금도 있어요. 기껏 천마에 빙의되어 가지고 신통이나 좀 하고, 귀신도 좀 본다고 어떻게 어떻게 하면서 자기가 붓다인양 최고라고 하는 사람이 지금 있어. 이건 사바라이어. 이것은 사바라이죄예요.



이런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되느냐? 앞에서 업을 지으면 그 종자가 자기의 영혼체로 영혼체로 흘러 들어간다고 했지요. 시간이 흘러 큰스님이 보면, ‘아! 저 사람은 전생에 큰 죄를 지었구나’하는 것을 알아요. 그래서 지옥에 가서 지옥 벌을 받고, 어떻게 선근을 지었던지 왔단 말이에요. 보면 왔어도 있어요. 그 사람은 또 지옥에 갈 사람이야.



이름을 밝히지 않겠습니다. 우리 스님 중에 3년 동안 부처님 교단에 정말로 공을 세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저녁이면 자기도 모르게 악을 써. 소리를 지른다고요. 그러면서 목이 조금 기울어져 있어. 그리고 그저 뱀(구렁이) 꿈 생각을 많이 하고, 실제로 또 구렁이가 입 맞추는 꿈도 꾸는 등 그런 환상도 가끔 떠오르고 해. 그런데 겹겹이 벗기고 벗겼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불안(佛眼)이니까 보시고 알지요. 다 압니다. 보시고, 세 번인가 벗기고 벗기고 씻고 했는데 천여마리의 구렁이가 목을 감고 있어. 그런데 그 중에 한 마리가 입을 목 부위에 탁 대고 있었기 때문에 목이 약간 기울어져 있어. 이것을 이번에 처리했습니다. 이건 자력으로는 안 됩니다. 역사 이후로 처리해 줄 큰스님이 없어요. 그걸 알아야 됩니다.



이야기 거리가 많은데, 어쨌든 신구의 삼업으로 업을 짓게 되면 그 업의 종자가(업의 세력이) 영혼체로 흘러들어간다. 그래서 때가 되면 그것이 큰스님의 눈에 띈다. 붓다는 그 업이 들어간 것까지 아니까.



그래서 우리는 계율을 지켜야 되고, 계율을 가볍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계율을 가볍게 생각한다는 말은 함부로 업을 짓는다는 거예요. 함부로 업을 지으면 그렇게 되어요. 이러한 깊은 이치,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 신근(信根)있는 착한 신도 분들이 잘못 법문을 듣고, 그저 적당히 인생을 엔조이(enjoy)까지 해. 엔조이(enjoy)해도 좋다는 식으로 산다고. 이거 큰 일 날 생각이어. 계(戒)가 없고, 경전을 읽지 않고, 염불하지 않고, 삼매가 없으면 정법교단이라고도 할 수 없고, 불교의 지도자 자격이 없는 거요.



▸사자신중충(獅子身中蟲)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자는 여러 산짐승뿐만 아니라 동물의 왕이어요. 산중 동물의 왕이 사자입니다. 이 사자는 어찌나 무섭든지 다른 동물들이 살아 있는 사자는 물론이고, 죽어 있는 사자의 고기도 뜯어 먹지 못해. 너무 무서운 놈이라서 죽어 있어도 못 뜯어 먹어. 그게 사자야 사자. 그런데 사자가 신중충(身中蟲), 몸속에 벌레가 생겨 뜯어 먹혀 죽기도 하고, 죽은 후에 그 충이 다 갉아 먹는 거예요. 몸속에 생긴 조그마한 벌레가 그런단 말입니다. 이걸 사자신중충(獅子身中蟲)이라고 합니다.



이 불교 교단이 너무도 위대한 종교이기 때문에 모든 인류들이 다 불법을 듣고 구원 받아야 돼. 그렇기 때문에 우리 성직자는 책임감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성직자로서 부처님 앞에서 사미십계를 받고 비구250계를 받고, 비구니는 또 사미니 십계를 받고 식차마나니계를 받고 또 비구니계를 받았다면, 그 250계 311계 348계를 다 모른다고 하더라도 절반 이상은 알아야 돼. 그걸 지키려고 해야 돼. 그런데 다섯 가지도 못 지킨다고 하면 어떻게 됩니까 여러분. 다섯 가지도 못 지킨다고 하면 그 불교는요, 이건 말할 수 없어. 이건 망가져버렸어. 썩어버린 불교, 이거 문제예요. 이것은 큰일이어.



부처님 당시 포살자자(布薩自恣)가 있었습니다. 포살자자(布薩自恣),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이 좋은 제도를 그대로 살릴 겁니다. 설명은 나중에 하기로 하겠습니다.



▸파계한 스님들은 깨끗이 환계하고 속가로 가야 되요. 내 말이 틀립니까? 부처님 팔아서 살면 안 됩니다. 깨끗이 환계, 계를 받쳐야 되는 거예요. 받치고 속가로 가서 살아야 되는 거예요.



▸둘째, 그리 못한 스님들아! 우리 영산불교로 오라. 와서 부처님께 정말로 참회하고, 다겁생으로 지은 은혜와 빚은 조상님 천도재로 해서 갚고, 그리고 부처님 공양을 많이많이 해서 지은 죄업을 씻고, 그리고 부처님 교단에 귀의해서 부처님 공부 잘 하기 바란다 하는 것을 이 자리를 빌러 오늘 스님들한테 말씀을 올립니다.



죄 중에서 제일 무서운 죄가 불효 오역죄예요. 오늘 시간이 좀 부족해서 낱낱해설을 못합니다. 두 번째로 훼욕삼보(毁辱三寶)예요. 불법승 삼보를 훼손한 죄예요. 세 번째로 파어금계(破於禁戒)입니다. 부처님께서 제정하신 계법, 이건 파계할 수 없어요. 그 다음, 국가의 법을 지켜야 되요. 이게 무서운 죄목입니다. 우리는 인륜과 도덕, 준법정신의 자세로 살아야 되지요. 인륜도덕을 존중하고, 나라의 법을 지키고 살아야 되요. 여기서 한걸음 아니 몇 걸음 더 나아가서 착하고 바르게 살아야 되요. 맑고 깨끗한(청정한) 삶을 살아야 되요. 불교는 그것을 요구합니다.



여러분한테 꼭 알려드릴 것이 있네요. 부처님 가신지 100년 쯤 되어서 우리 교단이 둘로 쪼개어집니다. 그 이유는 십사비법(十事非法)이라는 게 있어요. 또한 대천오사(大天五事)가 있어요. 이것도 다음 어느 시간에 이야기해드리겠습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 교단이 둘로 갈라집니다. “영산불교는 둘로 갈라지면(가르면) 안 된다”고 부처님께서 영산불교 교훈에다가 박아버렸어요. “누구를 막론하고 우리 교단을 둘로 분열시킨 책임자는 무간지옥에 넣으리라” 하고 분명히 말씀하시고 계셔요. 불행하게도 우리 교단은 둘로 나누어졌습니다. 이것이 100년 200년 흘러가지고 20개 부파로 나뉘어져 버렸어.



그런데 ‘십사가 비법이다’ 하고 인정을 한 장로 쪽에 나는 손을 들어줍니다. 십사라는 것이 아주 사소해요. ‘돈도 받지 마라’ 이렇게 되어 있어. ‘금은 돈은 만지지도 말라’ 이렇게 되어 있어요. 이거 참 엄청나지. 그런데 ‘이런 정도는 그냥 덮어 놓고 가자’ 한 것이 대중부예요. 그런데 상좌부는 ‘아니다! 부처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를 우리는 절대적으로 따라야 된다. 바꿀 수 없다’ 하는 것이 그때 가섭존자의 주장이었습니다.



이 광률, 율장을 보면 동서고금(東西古今), 시대와 장소가 다르기 때문에, 또 그 당시는 경제 환경이 열악했기 때문에 2600년 전 영산당시의 출가승려 비구 250계로 봐서 아무리 그런다하더라도 나는 그 계본이(계법이, 그 행동규범이) 옳았다고 봅니다. 지금의 21세기 경제문화의 선진국 입장에서 볼 때 맞지 않는 계율이 있어요. ‘때 아닌 때 밥 먹지 말라. 금은 돈을 만지지 말라...등등.’ 그러나 그것은 부처님께서 그 계목을 제정하신 취지를 봐야 돼. 합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중생은 다겁 생으로 죄업을 짓고 왔어요. 이 마음이 얼마나 원숭이처럼 교활한 줄 압니까? 이걸 묶어놔야 되는 거예요. 속박해야 되는 거예요. 틀에 짜는 데에다가 넣어서 이걸 몸에 배이도록 해줘야 되는 거예요. 그래야 윤회를 벗어나게 되어 있어. 죄를 짓지 않게 되어 있어. 지금 악의 유혹이 얼마나 심합니까?



그래야 이길 수 있어. 그렇기 때문에 나는 부처님께서 제정하신 그 모든 계법을 지지해야 된다고 봅니다. 지켜야 된다고 봅니다. 백중학법(百衆學法)을 보더라도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성자는 위의(威儀)를 갖춘 수행이 필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소속애 역시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입니다. 우리 부처님께서 열반하실 때 “소속애는 버려라. 버려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부처님의 유계에는 “부처님 계시지 않은 세상에서는 글쎄 큰 계도 지키지 못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차라리 소속애 정도까지는 봐준다”고 하셨어요. 그러나 소속애까지도 ‘출가한 우리 승려들은 꼭 그 위의(威儀)도 배워서 몸에 배이도록 공부해야 되겠다’해서 우리는 열다섯 행동수칙을 인쇄해서 아침저녁으로 읽고 있습니다.



▸이《범망경》의 보살계, 보니까 빠져야할 계목(戒目)이 있습니다. 이 부분은 언젠가 짚고 넘어가야할 줄 압니다만, 그 계목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계율이 아닙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말하는 것보다 덮어 두고 있다가 언젠가 지적하고 갈 것입니다.



▸또 아쇼카대왕이 전 인도를 통일하는 과정에서 부득이 야기된 수만에서 수십만의 인명 살상 건(件)이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잠시 언급합니다. 아쇼카대왕은 붓다의 후신입니다. 불교를 국교화 하고자 서원을 세워 어느 부처님이 몸 받아 오셨습니다. 그 대왕에 의해서(그 대왕으로부터) 희생된 수 만 명의 생명들은 지옥에서 온 사람들이거나, 그때 죽어야할 중생들이었습니다. 대왕의 대작불사에 희생양이 된 공덕도 있습니다. 이 정도만 말해줍니다.



▸구마라즙이 또 붓다의 후신입니다. 그런데 여인들과의 동거설이 있습니다. 큰 불사를 위해서 부득이한 삶은 부처님세계 안에서 양해된 사안이었습니다.



▸일본 진종(眞宗)의 개조 '진단', 13세기의 인물입니다. 그의 스승 '법연', 법연은 정토종의 개조이지요. 이분들 중의 한 분은 취첩을 했습니다. 이 부분도 살펴보니까 그 분은 불격(佛格)을 갖춘 최상수보살로 계시다가 오셨습니다. 염불하도록 일본 불자들을 교화하기 위해서 몸 받아 오셨습니다. 이러지 않고는, 그러니까 불보살이 아니고는 모두가 부처님께서 제정하신 청정계율을 지켜야 하는 겁니다. 이유 없습니다. 절대 지켜야 됩니다.



지금 시간이 어떻게 되었나? 한 시간 넘었나? 이거 한마디도 빼면 안 되는데... 우리 신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꼭 삼귀 오계 십선을 지켜야 되요. 그리고 보살계를 앞으로 설할 것입니다. 보살계도 받으시고. 그래서 우리 모두 삼악도에 가지 않아야 되요. 그리고 윤회를 벗어나야 됩니다. 이때 못 벗어나면 안 됩니다. 모두가 다 저 극락세계에 가야 되요. 거기는 영원히 극락입니다. 불퇴전(不退轉)입니다. 꼭 그것을 당부 드립니다. 오늘 설법한 계율, 여러분에게 조금 수월하게 말씀드려야 되는데 이 방송은 녹화 중에 있습니다. 전국의 스님들이나 많은 신도들이 보기 때문에 이 계율에 대한 개요를 짚고 말씀을 한 것입니다. 양해해 주십시오. 스님 따라서 염불하고 마치겠습니다.



나무 영산불멸 학수쌍존 시아본사 구원실성 석가모니불...

천상천하무여불 시방세계역무비 세간소유아진견 일체무유여불자

고아일심귀명정례


여러 신도 분들! 스님이 말씀하신 것이 옳습니까, 어떻습니까? 옳지요? 終





현지사 자재 만현 큰스님 정기법문
2010.10.15.금(음9.8) 대전 분원 


        부처님은 빛의 존재이시며, 우주법계의 주(主)이시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의미


     현지사 터를 잡은 이야기


     효(孝)를 다하라


     관음태교 교육원 개강



오늘 처음 오신 분 손들어 보세요. 박수로 격려해 주십시오.

오늘 처음 오신 분들은 이 만현스님의 설법이 조금 어려워서도 그렇고, 또 지금까지 듣지 못한 말씀을 하기 때문에 생각이 좀 많을 것입니다. 그동안 BBS TV를 6개월 했습니다. 6개월의 계약 기간이 다 끝나고 오늘이 종강인 것 같습니다만, 아마 다음 달까지 하게 된다고 합니다. 하고 싶은 말은 많고, 너무도 중요한 부분을 지적하고, 그동안 불교계에서 알고 있었던 점, 또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던 점들을 부각시켜서 지적하지 아니할 수가 없고, 부처님의 정법이 무엇인가를 알려주고 싶고, 그리해서 오늘까지의 동영상 내지 TV법문이 BBS TV를 포함해서 130회 정도 된 것 같습니다. 오늘 법문은 TV를 시청하는 분들을 고려해야 됩니다. 그래서 약간 어렵다고 하더라도 양해를 해주시고, 스님이 깨쳐서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여러분들에게 알려드리고 싶지만, 밀장 부분이 많고 해서 지금까지 절반 정도도 이야기를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우리 영산불교 현지궁 현지사에 대하여 여러분들이 도저히 이해 못할 점, 아마 시청하시는 TV불자님들도 이해를 못하실 것입니다. 꼭 불가사의한 이야기 같기도 할 것이고, 현지사 터를 잡은 이야기 하며, 또 우리 부처님의 거룩한 점, 스님이 강조하고 싶은 점이 있습니다. 부처님은 빛의 존재라는 것, 이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고 싶고, 우리가《금강경》을 보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나오는데, 이것도 지금 학승들이나 그 어떤 큰스님들도 이 뜻을 아주 왜곡해가지고 해설을 하고 법문을 하기 때문에 이것도 지적해서 바로잡아 주고 싶습니다.



TV법회가 끝난다고 해서 동영상법문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한 달에 두 번씩 계속할 것입니다. 오늘 처음 나와 주신 우리 단월님들은 꼭 앞으로도 계속 나와 주십시오. 부처님의 정법 말씀을 듣는 공덕은 한이 없습니다. 여기 오셔서 법문을 들은 것만 해도 대단한 소득이 있습니다. 첫째로 업장이 씻겨나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아무리 오랫동안 장좌불와 하면서 단식을 하고, 고행을 하고, 자력으로 수행을 한다고 하지만 업장소멸은 안 됩니다.



일부 정화는 되지만 업장소멸은 안 됩니다. 그러니까 계속 나오셔서 들어 주십시오. 첫째로 우리 영산불교는 부처님을 믿는 교단입니다. 부처님을 믿습니다. 부처님이 살아 계심을 믿습니다. 지금까지의 불교는 아닙니다. 심즉시불(心卽是佛), 마음이 곧 부처라고 해서 마음 밖에 부처를 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외도라고 합니다.



나는 그 점에 대해서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중생을 오도(誤導)하면 큰 죄가 됩니다. 부처님을 없다고 해버리면 이건 대망어(大妄語)입니다. 부처님이 없다고 하면 설법을 듣는 단월들이 어떻게 행하겠습니까? 부처님이 없다, 극락세계도 없고, 지옥도 없고, 윤회도 아니고, 인과(因果)도 부정하는 그러한 법문, 이건 불교를 훼손하는 무서운 대망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불교의 성직자 내지 단월들, 죽어서 모두 어디로 가는가를 보면 악도로 가는 것이 절대 다수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어요. 불교를 그런 식으로 이해하면서 경전을 해설하고, 법문을 하고, 그것을 듣는다? 부처님이 안 계시고, 극락과 지옥이 없고, 윤회가 없다고 하면 이렇게 우리가 스님이 되어서 고행할 필요가 없습니다. 스님이 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 영산당시(부처님 당시) 우리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혹독하리만큼 무섭게 교육을 시켰습니다. 당신 아들도 스님 만들었어요. 사촌동생들, 자기 어머니 등 모두 스님 만들었어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우주와 우주 적멸 법계 모두를 아우르는, 이 우주와 온 법계와 하나가 된 경지의 깨달음 올시다. 지금 선불교(禪佛敎)에서 이야기 하는 견성(깨달음), 이 견성은 우리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견줄 수 없습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하고는 천지차이입니다. 견성(깨달음)은 현상계를 낳은 본체를 보는 경계, 그래서 상당한 지혜와 깨달음을 얻는 거예요.



여기서 부처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하려면 백천만겁의 수행을 해야 됩니다. 그걸 아십시오. 견성, 소위 선불교(禪佛敎)에서 이야기하는 깨달음과《금강경》에서 나오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하고는 천지차이 올시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하게 되면 삼명육통(三明六通), 오안(五眼), 항하사의 신통, 삼매(백천삼매 뿐만 아니라 대적정 삼매까지), 중생의 업장소멸, 정화까지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깨달음의 지혜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인 거예요. 선방(禪房)에서 '이 뭣꼬'해가지고 깨달은 것? 그건 이제 가장 기본이고 초보입니다.



그래서 스님이 10년 전에 ‘깨달음은 붓다를 이루는 대장정의 시작일 뿐이다’하고 사자후 한 거예요. 이런 말을 비롯해서 할 말이 많습니다. 너무도 많습니다. 130여회의 동영상 법문을 했지만, 앞으로 그 정도 해야 될 거예요. 많은 밀장은 또 이야기를 못합니다.



백천만겁 지내어도 만나 뵙기 어려운 붓다회상, 음력 매월 25일이면 허공계에 가득 메운 붓다님들께서 시방세계를 깨끗하게 씻어 더러움 없게 해주시고, 부산 대전 춘천본사 도량(道場)을 청정하게 해주신다. (이거 붓다회상입니다) 부처님 회상에 나와 절대계의 부처님들께 예배하고, 삼계에서 제일 높은 부처님과 그 교법의 진리 말씀을 큰스님으로부터 듣는다. 거짓을 말하지 않고 진실만을 말하노니 나만 잘 배우고 복 지을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진리 말씀 전도해서 다 같이 함께 안락해야 됩니다.



부처님의 위대한 점이 많지만 그 동안의 삼신(三身), 그리고 빛(무량억종광의 빛), 대적정삼매, 지혜 자비 복덕 원력, 있다 없다를 초월한 무아 속 절대계에 32상 빛의 몸으로 계심을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이야기합니다.

▸부처님을 믿는다? 살아계심을 믿는다? 그러면 어디에 계시나?

▸어떻게 계시는가?

▸어떻게 해야 뵐 수 있는가?

▸어떤 능력을 지니고 계시는가?

▸그 크신 능력을 지니고 있는 이유, 크신 능력을 내 것으로 하는 이유, 이것은 무엇인가?

▸소위 삼신설(三身說)이라고 하는데, 그 말은 무엇인가? 부처님은 세 몸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 중생은 몸이 하나잖아요. 도대체 부처님은 어떤 분이신가?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외도를 제압할 수 있다고 하는데,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힘은 어떤가?

▸왜 법신불을 모르면 불교가 우주적인 종교인 줄 모른단 말인가?

▸부처님의 모습은? 음성은? 일거수 일투족을 말해보시오.

▸어떻게 해야 붓다가 될 수 있습니까? 그 품성은? 인품은? 뭐가 위대한 점이오?

▸극락 중 극락에서 사신다?

▸미래제가 다하도록 십력사무소외(十力四無所畏) 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으로, 자비로 백천만억 화신을 나투어서 중생 교화 하신다?

▸심즉시불이라고 하는데,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는 것은 외도라고 하는데 불신(佛身)이 생기는 까닭은?

▸불과(佛果)이루신 붓다는 미래제가 다하도록 어떻게 사시는 가요?



이런 등등의 자상한 것까지 다 밝게 말하고 있는 우리 영산불교, 지금까지의 불교는 ‘부처님이 없다’고 봅니다. ‘부처님이 안 계신다’고 단호히 이야기합니다. 이건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정말로 무서운 대죄(大罪)입니다. 그래서 오늘 TV석상에서 다시 고언(苦言)을 드립니다. 소위 많은 큰스님들, 학승들, 대학교 강단에서 불교학을 강의하는 학자들한테 고언(苦言)을 합니다.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대망어의 과보는 무섭습니다 여러분. 극무간지옥을 갑니다. 극무간지옥 갑니다. 나올 기약이 없습니다. 그런 지옥으로 간다고요.



자기만 가나? 강의를 듣는 사람, 법문을 듣는 사람, 경전을 해설하는 그 장(場)에 앉아서 듣는 사람들, 세뇌(洗腦 )된다고요. 그래서 소위 인륜과 도덕을 존중하고 살아야 된다고 하는 가르침이 온당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강의를 듣다가 보면 ‘허허! 저세상도 없고, 나도 없고 너도 없고, 부처도 없고, 지옥도 없고, 허! 그러면 적당히 살아야지. 적당히 살아야지’하게 된다고요. 적당히 산다는 말은 대단히 무서운 말입니다. 그렇게 살다가 보면 짓는 것은 업입니다. 그래서 모두 업을 짓고, 업을 짓게 되면 반드시 과보가 따라오는 거예요. 물체에 그림자가 따라다니듯이 반드시(절대적으로) 따라 오는 거예요.



그리해서 스님이 이 세상에 출세한 첫 번째 법문부터 ‘부처님은 계십니다. 유무를(있다 없다를) 초월한 저 무아 속 절대계에 32상 거룩한 빛의 모습으로 계십니다’하고 역설을 한 거예요. ‘부처님 없다’하지 말라고. 그 무서운 말을 하지 말라고. 그러나 듣지를 안 해. 지금까지 계속이어요. 스님이 그런 말을 한 사람은 대망어라고 했잖아요. 대죄(大罪)라고 당당히 말하는 거예요. 그 사람의 영혼체는 그 말을 하면서부터 그 업의 종자가 심어져가지고 나중에 철판으로 둘러씌워진다든지, 수갑과 족쇄가 채워지고, 목에는 쇠사슬이 칭칭 감겨져 묶여 들어간다고. 자기는 자기의 영혼체를 못 보기 때문에 함부로 말을 해요.



지금까지의 불교는 첫째, 불신관(佛身觀)이 없습니다. 부처님을 모릅니다. 둘째, 역사 이후로 인간 영혼의 실체를 규명하지 못했습니다. 부처님 이후로 인간 영혼의 실체를 규명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윤회의 주체를 볼 수가 없어. 형이상적 실체를 볼 수가 없어. 이건 붓다의 경지이니까요. 그래서 부처님께서 무아(無我)를 방편으로 말씀하셨는데, 이 무아(無我)를 존재의 부정으로 해석을 해가지고 ‘나도 없고 너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고 해석을 해가지고 불교를 이렇게 망쳐 놓은 거예요.



그리해서 인도에서 쫓겨난 거예요. 사멸(死滅)되어버렸어. 아주 망해버렸어. 이것을 알아야 되어요. 우리 불자님들 입장에서 보면 이건 천추의 한이어요.



천추의 한이 돼. 불신관(佛身觀)과 무아(無我)의 도리는 불교의 핵인데, 불신관(佛身觀)이 없고, 무아(無我)의 도리를 모르면서 함부로 경전을 해설한다든지(지금 보면 경전을 많이도 해설하고 다녀), 산림(山林)이라고 해서 무슨 화엄산림(華嚴山林) 법화산림(法華山林)을 한다고 하는데 그건 좋지. 그러나 모르면 모르는 대로 해석을 해줘야 돼. 자기가 대 학승인 양, 깨친 사람인 양, 부처 없다고 하고, 인과(因果)도 부정하고, 윤회도 부정하고, 이런 수준에서 거룩하신 우리 부처님 말씀(경전)을 해설한다든지, 책을 쓴다든지, TV매체나 라디오매체 앞에 나가서 당당히 설법을 한다든지 하면, 이건 중생을 오도(誤導)할 위험이 많습니다. 큰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리해서 나는 우리 단월님들을 상대해서 법문 할 때 이 두 핵(두 축)을 항상 유념하면서 지금 많이 왜곡된 것을 시정하고 있습니다. 스님이 그동안에 130여회 법문한 것을 책으로 낼 것입니다. 시리즈로 낼 예정인데 나오면 꼭 읽어 봐주시고, 자재만현의 법문이 무엇이 틀렸는가(뭐가 틀린 점이 있는가)를 한번 찾아봐 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부처님께서는 항상 우리 불자들이 착하고 바르고 정직하게 살기를 바라십니다. 착하고 바르고 정직하게 살기를 바래. 부모님께 효도하기를 바래. 그리고 대성자 붓다님의 말씀을 따르기를 바래. 그렇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이 육도 윤회를 부정하는 분들이 지금 많이 나오는데, 이것은 경전을 편집할 때부터 잘못된 거예요. 그리고 번역할 때, 그 경전을 한문으로나, 티베트어로, 우리나라 말로, 일본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크게 잘못된 것으로 보입니다.《반야경》에서는 공(空) 공(空)하거든요.《원각경》을 보면 또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거든요.《원각경》을 보면 윤회의 정의를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번뇌 망상 등 온갖 생각이 어떨 때에는(기쁜 일을 당해서는) 희희낙락하다가, 또 어떨 때에는(가정에 불행한 일이 닥치고 자기의 기대가 무너지고 할 때에는) '이이쿠! 나죽었다. 큰일 났구나'합니다. 이렇게 번민하면서 살잖아요.



이렇게 생각이 자꾸자꾸 뒤바뀐다고요. 이걸 윤회라고 봅니다. 마음상태가 여섯 가지로 바뀌어 지는 것을 육도윤회라고《원각경》에 쓰여 있기도 해. 그러니까 스님이《화엄경》이나《법화경》, 그 좋은 경(經)중의 왕인 이 경을 보면 한 부분(한 장, 한 품)이 독소조항으로 되어 있어. 그런데 화두타파(견성)해가지고는 그걸 몰라. 볼 수가 없어. 알 수가 없어. 그 본체의 소식 갖고는 알 수가 없어. 그 본체의 소식에 아무리 밝아도 지옥 극락을 못 봐. 보살을 넘어서, 상품보살을 넘어서 붓다의 경지에 가야 드러난다고. 윤회는 그것이 아니어요.



분명히 육도에 윤회한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나한테 많은 법문을 들었잖아요. 스님이 말씀드린 육도윤회가 정답이어요. 지옥은 분명히 있어. 너무너무도 무서운 지옥이 있어. 수많은 지옥이 있어. 사람이 죽으면 49일 동안에 명부에 가서 논죄를 받는 것도 사실이어요. 그런데 안 보이니까 그걸 다 부정한단 말이오. 안 보이면 안 보이는 대로 말을 하지 않아야 되는 거예요. 그것은 너무도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치 선지식인 양 하고, 그런 질문을 받으면 정답인 양 대답해 버리면 묻는 단월들이 어떻게 됩니까? ‘아하! 지옥이라는 것이 없구나. 부처라는 것은 우리 마음이 부처인가 보다’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해서 인생을 적당히 살고, 가끔 경계에 따라서는 엔조이(enjoy)도 하면서 적당히 살아. 우리가 볼 때에는 크고 작은 업을 마구 지어가. 그렇기 때문에 지옥이 실제로 있다는 것을 꿈속에서라도 생생하게 봤다고 하면 그렇게 하지를 않아. 그런 짓을 안 하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법이 망가져가지고 정법을 듣지 못해서 우리 중생들은 그저 감정대로, 업대로, 업식 대로 살아간다 그거예요. 안타깝지요.



그리고 선불교(禪佛敎)에서 소의 경전으로 까지 보는 선서(禪書), 모두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즐거우면 거기가 극락이고, 번민하는 자리는 지옥이고 하는 식으로 되어 있어. 그러므로 이런 경전이나 선서(禪書)를 보게 되면 취향 따라서 학자들이 그렇게 나가버려요. 과학 하는 사람들, 자기의 불교관 인생관 세계관을 그렇게 정립하고 교수를 해. 그것이 어떻게 무서운 줄도 모르고 말입니다. 불신관(佛身觀)이 없으면, 붓다를 모르면, 부처님의 그 위대함을 모르면, 그것이 중심이 된 교단이 아닌 다른 종파는(교단은) 앞으로 점점 세계종교 가운데서 가장 뒤처지는 종교가 될 것입니다. 뭐라도 내세울 것이 있습니까?



저 일신교는 '사랑'을 앞세워가지고 사회사업이나 해. 사회사업이나 한다고. 그런데 우리 불교는 그것도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어. 우리나라의 불교집안에서 종합병원 설립하고, 큰 유치원 고아원 설립하고 합디까? 요즘에 와서 하나씩 생기지. 육바라밀의 행인 보시는 역설하면서 사회사업에는 등한시해요. 더구나 현재의 불교는 이대로 가면 더욱더 쇠락(衰落)해져. 망해버려. 스님의 말씀 유념하고 앞으로 한번 보십시오. 그리해서 우리 영산불교 현지사가 정법의 불교를 세우려고 이렇게 애를 쓰고 있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화엄경》에

불신보방대광명(佛身普放大光明)하시니

색상무변극청정(色相無邊極淸淨)하고

여운충만일체토(如雲充滿一切土)하야

처처칭양불공덕(處處稱揚佛功德)이로다.



부처님이 대광명을 널리 놓으시니, 끝이 없는 빛깔이 너무도 깨끗하시네. 그 청정하고 깨끗한 광명이 구름처럼 온 세계에 가득하여, 가는 데마다 부처님의 공덕을 찬양하네.



불신보방대광명(佛身普放大光明)하시니, 부처님께서 대광명(大光明)을 널리 놓으시니, 대광명(大光明)-오늘 이 시간은 이 빛에 대해서 이야기할 거예요. 아무도 모르니까. 대승경전을 보면  많이도 나와. 그러니까 부처님의 존재까지 부정해버렸는데, 이런 글귀가 나오면 (이 대광명을)어떻게 해석하나? 몰라. 픽션(虛構)이라고 하면서 그냥 지나간다고.



색상무변극청정(色相無邊極淸淨)하고, 끝이 없는 빛깔이 너무 깨끗해. 이걸 몰라. 우리 영산불교에서 지금 이 부분을 자꾸 이야기하고 있어. 부처님의 그 위대한 점 중에서 큰 몫을 차지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빛의 존재라는 것.



여운충만일체토(如雲充滿一切土)하야, 그 청정하고 깨끗한 광명이 구름처럼 온 세계에 가득하여서라는 말이어.



처처칭양불공덕(處處稱揚佛功德)이로다, 가는데 마다 부처님 공덕 칭찬하도다.



▸《미륵삼부경(彌勒三部經)》을 봐도

“이시세존(爾時世尊)이 출광장설상(出廣長舌相)하사 방천광명(放千光明)하시니 일일광명(一一光明)이 각유천색(各有千色)이요 일일색중(一一色中)에 유무량화불(有無量化佛)하니 시제화불(是諸化佛)이 이구동음(異口同音)으로 개설청정제대보살(皆說淸淨諸大菩薩)의 심심불가사의제다라니법(甚深不可思議諸陀羅尼法)하시니..”라는 말이 있어.



해설 : 그때 세존께서는 ‘넓고 긴 혀(廣長舌)’를 드러내시어 갖가지 광명을 놓으셨는데, 그 낱낱의 광명마다 천 가지 빛깔이 있고, 한 빛깔 속마다 각각 한량없이 나툰신 부처님(化佛)이 계시었다. 이 모든 나투신 부처님들이 한 목소리로 거룩한 보살네의 심오하고 불가사의한 다라니법을 말씀하셨다.



“방천광명(放千光明)하시니 일일광명(一一光明)이 각유천색(各有千色)이요 일일색중(一一色中)에 유무량화불(有無量化佛)..”

모든 대승경전에 이런 것이 나옵니다. 그 깨끗한(청정한) 빛을 방광하는데 그 광명 하나하나에는(낱낱광명 하나하나에는) 백 천 만 색깔이 있더라 그거예요. 하나하나의 색 가운데는 수를 헤아릴 수 없는 화신불이 계시더라 그거예요. 이런 표현도 나옵니다. 지금 경전만 소개해주고 곧 이어서 이야기해드리겠습니다.



▸《지장본원경》을 봐도 “여래함소(如來含笑)하시고 방백천만억대광명운(放百千萬億大光明雲)하시니 소위대원만광명운(所謂大圓滿光明雲)이며 대자비광명운(大慈悲光明雲)이며 대지혜광명운(大知慧光明雲)이며 대삼매광명운(大三昧光明雲)이며 대복덕광명운(大福德光明雲)이며...”



여래께서 활짝 웃으시니까 백천만억 가지의 색깔을 띠운 광명의 구름이, 어떤 구름의 모습은 대원만광명운이요, 대자비를 생각케 하는 광명운이요, 어떤 빛의 모임은 구름같이 되어 있는데 지혜의 대광명이요, 삼매의 대광명이요, 대복덕의 대광명이요...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묘법연화경(법화경)》을 보면

 “부처님께서 무량의처 삼매에 드시니, 이때 하늘에서 만다라 꽃 등등 이런 꽃들이 비 오듯이 내리더라. 대지는 육종으로 진동하고, 그때 부처님께서는 미간 백호상으로부터 광명을 놓으시니 동방 만팔천세계를 모두 비추시더라.” 이런 표현도 나와요.



이건 사실입니다. 사실임에도, 아예 부처님이 없다고 해버리니까 그것도 저것도 뭐 생각지도 않겠지만, 우리 부처님의 위대한 점 가운데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빛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거예요. 얼마나 위대하면 빛으로 이루어져 있습니까. 그 빛도 무량억종광, 그러니까 백천만억 아승지 종류의 색깔을 띤 그 수만 가지 빛의 덩어리란 말이에요. 그런데 이제 보니까 낱낱 빛이 다 쓰이는 데가 있어요. 이건 사실이어.



▸〈화엄경 여래현상품〉을 보면

“이시(爾時)에 세존(世尊)이 지제보살심지소념(知諸菩薩心之所念)하사 즉어면문중치지간(卽於面門衆齒之間)에 방불찰미진수광명(放佛刹微塵數光明)하시니...”

그때 세존께서 모든 보살들의 생각함을 아시고 입과 치아로써 세계의 티끌 수처럼 많은 광명을 놓으셨다...

신체 곳곳에서, 입과 치아, 털구멍, 미간 백호상에서 광명을 놓아 설법을 위한 상서(祥瑞)를 보이는 것이 서술되어 있다.

▸〈화엄경 광명각품〉에서 보면 발바닥에서,

▸〈화엄경 여래십신상해품〉에서 보면 정수리에서, 이렇게 신체의 다섯 군데에서 광명을 놓으시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신체의 다섯 군데가 아니라 열 군데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 부처님의 어디에서 나오고, 어디서 어떤 색이 나오고, 어디서 어떤 색이 나오고 하는 것을 누누이 말씀해 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열군데 올 시다.



이제 우리 영산불교가 세상에 나와 가지고 두 분 큰스님이 경험하고 본 것입니다. 지장보살께서 빛으로 화하시어 제자의 업장을 씻어 주신다. 지장보살님께 공양드릴 때, 지장보살님이 현신하시더니 그대로 빛이 되어가지고 제자의 업장을 씻어주시더라. 지장보살님도 지금 현재 십지보살로 알고 있어. 부처가 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지옥중생이 하나라도 남아 있는 한 나는 부처를(불과를) 이루지 않으리라’ 하는 서원(誓願)이 있어요. 그러나 지장보살님은 무량겁 전에 불과(佛果)를 이루었어요. 그건 하나의 큰 서원이었습니다.



불과를 이룬 지가 무량억겁 전이어요. 그렇기 때문에 명부(冥府)를 관장하지요. 그 무서운 힘이 나오지요. 십지보살이 어떻게 저 지옥을 관장합니까? 지장보살님이 현신하시더니 빛으로 변해가지고(빛덩어리가 되어가지고) 제자의 업장을 씻어주시더라. 어느 제자의 모습입니다.



몸뚱이는 사슬에 묶여있고, 혀는 절반정도 검게 굳어 있고, 손은 수갑으로 채워져 있고, 양 발목에는 족쇄가 채워져 있고, 양 귓구멍은 막혀 있어서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다. 특히 정법의 말은 들어가지를 못하더라. 이것을 전부 무량억종광으로 사슬을 풀어주고 끊어주고, 굳은 혀를 전부 빛으로 주물러서 정상으로 만들고, 양손에 채워져 있는 수갑과 쇠사슬을 끊어 주고, 발목의 족쇄를 끊어 주고, 막힌 양귀를 송곳으로 파주시더라.



자력수행을 해가지고 이렇게 할 수 있는 줄 압니까? 이렇게 해주시면서 하신 말씀이 있어요. “이 사람이 자력으로 천 만 생을 산다고 해도 이 영체에 묶여있는 사슬을 무슨 재주로 끊겠느냐. 자기 자력으로는 되지 않는다. 부처님의 위신력이 아니면 안 된다.” 여러분, 이 대목을 유념해 주세요. 지금의 학승들, 지금까지의 스님들은 업장을 모릅니다. 말은 업장이라고 해요. 업장소멸 해야 된다고 말은 하지. 그러니까 공부하기 전에는 ‘저기 강원도 오대산 적멸보궁에 가서 20일을 기도하고 오너라’한단 말이에요.



20일을 기도해가지고 이 사슬이 다 풀어지고 끊어지느냐고요. 이 사슬은 백 천 만 생을 수행을 해도 끊어질 수가 없다는 거예요. 끊어질 수가 없다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대망어를 해가지고 두터운 쇠판이 몸을 싸고 있는데, 어떻게 그 쇠 철판을 제거하느냐고요. 이것을 제거하더라도 처리를 잘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 부처님들은 화광삼매를 터~억 만들어가지고 거기에다가 던져버립니다(넣어버립니다). 그러면 녹아버려요. 놔두면 그 쇠 철판이 다시 옵니다. 그 업을 내가 지었으니까요. 그러면서 병든 사람을 약사부처님이 치료해야 이제 병이 낫는 거예요. 효과도 있고요.



부처님은 가부좌로 정좌하셔가지고 방광하시잖아요. 방광을 하실 때에는 전부 필요에 따라서 하십니다. 이 억종광명을 열군데 전부에서 뿜어내게 되면, 그 억종광명(무량광명, 부처님의 광명)의 빛은 불가사의합니다. 힘이 있고, 강도(强度)가 있습니다. 광도(光度)는 스님이 누누이 이야기 했잖아요. 햇속, 여름 햇속의 그 속을 눈이 시려서 볼 수 없는 그것하고 비교가 되지 않는 광도(光度)를 지니고 있으며, 강도(强度)도 쫘~악 방광하면 희유하게 이 물속이나 땅속까지 뚫고 가버려. 방광을 할 때에는 대적정삼매의 힘으로 방광을 해. 쫘~악 방광하면 이 빛이 한없이 나가잖아요. 한없이 나간단 말이에요.



그럴 때 백 천 만 몸의 화신을 나투어 버리면(허공중에 백 천 만의 당신(부처님) 화신을 나투어버리면서), 그 각각의 화신에서 또 방광한단 말이에요. 부처님은 지혜의 제1인자이시고, 큰 지혜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분이시기 때문에 그 영롱하고 아름다운 빛이 교차되면서(뭉쳐지면서) 그 지혜와 빛으로 구름도 만들 수 있고 꽃도 만들 수 있다고요. 이 장관은 언설로 표현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화엄경》을 보고 모든 경전을 보면 ‘햐!~’하고 감탄을 하는데, 이것 가지고는 약해. 우리 부처님은 이렇게 위대한 분이어요. 그런데 부처님이 없다고 한단 말이에요. 부처님이 없다고 해. 여러분, 어떻게 생각합니까?



서울을 갔다 온 사람이 서울 이야기를 하는데 ‘너! 이놈의 자식 사기 치지 마. 서울이 어디에 있느냐!’ 그런 격이에요. 바다개구리가 여행을 하다가 조그마한 우물 안에 빠졌단 말이에요. 스님이 그 비유 이야기를 했지요.

-우개(우물 안의 개구리가) : 너 이놈의 자식! 어디에서 왔냐? 너의 생김새가 묘한데 말이다.

-바개(바다개구리가) : 나는 저기 바다에서 왔단다.

-우개 : 뭐! 바다? 바다란 말이 무슨 말이냐? 이놈의 자식!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네. 이놈의 자식이.

-바개 : 아니야! 바다가 있다고. 바다는 이 우물보다도 백천만배의 물도 많고, 깊이도 이 우물보다도 백천만배나 더 깊고, 많은 고기도 있고, 사람이나 배도 왔다 갔다 하고, 우리 친구들도 많단다.

-우개 : 아니! 뭐라고? 이놈의 자식! 순 사기꾼 아니냐?

바다개구리를 보고 순 사기꾼이라고 한단 말이에요. 순 사기꾼이다 그거예요. 우물 안 개구리는 그 우물밖에 모르거든요. 이 우물 안 밖에 몰라. 다른 이야기를 하면 사기꾼이라고 해. 말도 안 된다고 해. 듣지 말라고 해. 그 격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렸기 때문에 부처님의 위대함은 정말로 우주법계의 주(主)이십니다. 주(主)이시고, 진정한 창조주라는 것이 맞습니다. 부처님은 우주 뿐 만이 아니라 우주법계와 하나가 되어버리신 분이어요. 그래서 법신불이 생기고, 무량겁을 지혜와 공덕을 쌓았기 때문에 그 삼매력 그 공덕으로 보신(報身)이 생기는 거예요. 보신이 생기는 이유가 따로 있지만, 어쨌든 그래서 보신이 생기는 거예요. 그 위대함은 말할 수가 없어요.



그 지혜와 자비와 원력과 신통과 삼매는 말할 수가 없어. 그런데 부처님이 없다고 하면 됩니까? 그래가지고 죄를 지으면 됩니까? 얼마나 큰 죄인 줄도 모르고 말입니다. 스님이 이 법상에서 아무리 이렇게 외쳐도 들으려고도 안 해. 이것이 전파를 타고 나가지요. 전파를 타고 나가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큰스님들도 듣지 않으려고 해. 들어보지도 않고, 다 그렇고 그런 법문이라 이거지. 지금까지의 법문과 같다 그거지.



만현스님의 법문은 깊이가 영 다릅니다. 겁에 한번 들을 만한 법문이지요 여러분. 그리고 부처님들이 오셔서 업장을 씻어드리라고 하면 씻어주십니다. 부처님들은 무슨 분신정도가 아니고 한 몸이어요 한 몸. 서로서로 아끼는 것이 그래요. 그래서 큰 법문을 하실 때에는 경전에 나오듯이 하늘에서 꽃비가 내린단 말입니다. 그게 사실입니다. 꽃비가 한 없이 오는 거예요. 그리해서 그 많은 하늘, 불교를 좋아하는 신들이 와서 듣고, 성중이 듣고, 보살들이 와서 듣는 거예요. 그것이 사실이어요.



지난 8월12일 스님의 생일날 준제보살님이 나오셔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그러니까 광명만덕님 영체하고 내 영체가 나와서 세 사람이 춤판이 벌어졌습니다. 들어보십시오. 곧 절대계의 광명불이 내려오셔서 당신의 영체와 하나가 되어버렸고, 자재통왕불이 내려와서 당신의 영체와 하나가 되어버렸어. 그러니까 이제 진짜 붓다들 세 분이 세존(世尊) 앞에서 춤마당이 벌어진 거예요. 그날(내 생일날) 열다섯 사부님들, 불보살님들이 빛으로 화하셔서 나에게 지혜와 변재를 주셨어요. 부처님들이 붓다한테는 그렇게 해요. 심혈을 기울여서 붓다라고 하는 작품을 만들어요. 아직도 안 끝나 있어요. 그래서 붓다가 다 되었으면 붓다세계로 데리고 가요. 아시겠지요? 이런 부처님들을 안 계신다고?



하기야 부처님을 뵈려면 깊은 삼매를 들어가야 됩니다. 지금 어떻게 삼매에 들어갑니까? 누가? 삼매를 들어가려면 한평생 계율이 완벽히 청정해야 됩니다. 그래서 정진 정진을 해서 옅은 삼매를 들어가는 거예요. 깊은 삼매, 더 깊은 삼매가 아니면 부처님광명(무량광명)을 못 봅니다. 보면 눈이 실명(失明)되어 버려요. 못 봐요. 그러니까 더 깊은 삼매로 들어가야 되는 거예요. 더 깊은 삼매로 들어가려면 소위 유식(唯識)에서 이야기하는 거짓 몸, 내 팔식이 전부 해체되어서 정화되어야 되는 거예요.



제7식, 제8식, 소위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이 다 파열 되어버려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소위 나의 주인공, 유식(唯識)에서는 십식(十識)을 나의 주인공으로 보는데 십식(十識)은 나의 주인공이 아니어요. 잘못 본 것이지만 십식(十識)이 드러나 가지고 십식(十識)을 진아(眞我)로 보지요. 진아(眞我)가 드러나 가지고 더욱더 정진해서 아집(我執)이 떨어져 버리고, 그리고 보살행이 원만히 성숙되고 완성 될 때 무량억종광을 볼 수 있는 거예요.



그 공덕의 힘으로, 그 청정한 무아(無我)가 되어버린 나(我)가 무량억종광을 보는 거예요. 거기서 더 나아가야 붓다를 본다고요.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면 ‘천마(天魔)를 봐놓고’ 그러거든. 천마(天魔)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가 나옵니다. 천마(天魔)이야기를 해 드릴 것입니다.



현지궁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천마(天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처님이 계시는 곳을 궁(宮)이라고 합니다. 중국 당나라 이전 수나라 때 당시 최고의 큰스님이 있었잖아요. 천태종을 크게 일으킨 천태지의(天台智, 538~597). 그분은 법화(法華)학승인데, 지금까지 그분을 능가할 분은 없습니다. 그분이 법화삼매에 들어서 보니까 영축산에 부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법문하시는 장면을 봤어요. 그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고 하는데, 영산회상이 아직도 흩어지지 않고 있단 말이에요. 그 한 장면을 슬쩍 본 거예요.



그래서 나중에 그것이 영산정토라는 말이 있어요. 영산정토. 영산궁은 사실이어요. 우리 부처님께서는 사바세계 교주이시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영산궁에 계셔요. 절대계에도 계시지. 삼계지존이시니까. 무아속 상적광세계, 거기에도 궁(宮)이 있어요. 우리 부처님과 가장 가까운 붓다들이 문수․보현이죠. 그리고 태자 광명이 있고, 문수법왕자인 자재가 있잖아요.



그 절대계에 모두 다 궁(宮)이 있어요. 그러면서 여기 영산궁에도 있어요. 우리 부처님께서 영산궁에 와계십니다. 그런데 오늘 밀장이어서 조금만 해석 해 줄게요. 여러분한테 조금 말씀해드리겠습니다. 오늘 법문은 굉장히 중요한 법문입니다. 그 영산궁에는 부처님께서 계시고, 많은 붓다들이 계시고, 많은 보살님들이 계셔요. 그런데 이 세상 사람들은 영축산을 뒤지고 찾아도 못 찾아요.



과학자들뿐만 아니라 최고의 선지식이라고 하는 분도 100년이 아니라 아무리 찾아도 못 찾게 되어있어요. 못 찾지요. 현지사에 현지궁이 있습니다. 아직은 자세히 말 안했지만, 조금 이야기했지요. 못 찾지요. 찾을 수가 없지.《화엄경》에 이런 말이 있지요.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한 개 티끌 가운데 시방세계가 싸여있고)”이라는 말이 있어요. “일중일체다중일(一中一切多中一, 하나 가운데 모든 것이 있고 많은 가운데 하나뿐이며), 일중다 다중일(一中多 多中一)”의 도리가 있어요.《유마힐경(維摩詰經)》을 봐도 그것이 나와요. 조그마한 방에 수만(數萬)의 붓다님들이 의자를 갖다가 앉아계셔도 그 방이 좁지도 않고 넓지도 않고 한다는 것, 그것을 사사무애(事事無碍)의 도리라고 해요.



좀 어려운 이야기예요. 영산불교 영산궁이 그렇게 있습니다. 있는데, 두 제자를 불과(佛果)이루어서 데려가시기 위해 현지궁에 와계시잖아요. 그래서 현지사에다가 현지궁을 만들어 놓은 거예요. 현지궁의 실체를 좀 알려 주려고 하는데, 이게 밀장이기 때문에 오늘 조금만 이야기 합니다. 우리 제자 누가 조금 알아가지고 써놨더구먼. 이 밀장부분은 여러분들한테 전부를 공개 못하는 것입니다. 어느 벽이 있어요. 이 조그마한 벽 사이에 서울시보다도 더 넓고, 사바세계보다도 더 넓은 세계를(부처님나라를) 창조해 놨어요. 알았습니까?



그래서 열다섯 사부님들이 거기에 계셔요. 여러분! 그 부처님들께서 어디에 계시는지 아무리 찾아보라고. 모르잖아요. 그런데 그 궁(宮)은 그렇게 넓고, 기가 막히게 절경이고, 강이 흐르고 하는데도 여러분들은 모르잖아요. 거기에서 식사도 해요. 식사하는 곳이 있어요. 그러면 하늘에서 천녀들이 내려와서 시중을 들고, 차를 갖다 바치고, 삼천대천세계 우리 부처님께서 결재해야할 것들이 산적히 들어와요. 여러분, 이렇게 쉽게 말해주면 이해하시겠지요. 그래서 현지궁, 궁(宮)을 쓴 거예요.



우리가 10년 전에 그 자리를 잡은 이야기는 어느 제자가 또 슬쩍 써놓았기 때문에 이야기를 하지 않고, 거기에 얽힌 불가사의한 이야기를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11세기, 지금으로부터 1000년 전, 티베트의 붓다의 화신이라는 전설적인 고행의 성자 '밀라레빠'를 아시지요. '밀라레빠십만송'이라는 두꺼운 책이 나와 있어요. 여러분 한번 보십시오. 잘못 기록된 것이 많습니다만, 한번쯤 읽어 봄직 합니다. 이 '밀라레빠'는 붓다의 후신이 아니고 상품보살이어요.



이걸 말하면 티베트 사람들은 화가 날거예요. 그 '밀라레빠'가 우리한테 두 번 와서 친견을 하고 갔어요. 200년 안팎엔가 또 한 번 왔어요. 그때도 수행을 잘 했어요. 어쨌든 그 정도로 아십시오. 이 '밀라레빠'가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과 함께 수행을 하는데, 제자들이 많이 나오면 수행처가 부족하잖아요. 여기저기 수행처를 잡는데 가끔 그 수행처를 자기의 집으로 삼고 사는 신들이 있어요.



그런데 이 '밀라레빠 십만송'은 잘 못해 놨더구먼요. 요괴들인데, 많은 요괴들이 삽니다. 요괴는 이매망량신들이어요. 그래서 여자로(요녀로) 둔갑을 잘해. 자기의 집에 와서 공부하고 있으니까 그 동굴 같은 것을 뺏기지 않으려고 해요. 안 그럽니까? 나타나서 아주 훼방을 부리는 거예요. 훼방을 부려요. 웬만한 신통이 없으면 당해요(죽어요). 신통으로 죽여요. '밀라레빠'는 대단한 분이지요. 그러니까 싸워요. 법문을 해주기도 하고. 그래서 조복을 받습니다. 그래서 많은 동굴과 절경이 어우러진 수행처, 수행하기에 적합한 설산 수행처를 빼앗잖아요.



그 중에서 '띠세'설산이라는 곳이 유명하고, 동굴은 '링와'동굴이 유명한데 이건 모두 다 빼앗은 거예요. '밀라레빠 십만송'을 보면 그런 것들이 나와요. 그런데 이걸 꾸민 이야기로 알지요. 읽은 사람들은 모두 그러겠지요. 그래서 오늘 현지궁 이야기를 하면서 현지사 터를 잡았을 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불보살로 잘 변술(화현)도 하고, 어떨 때에는 구렁이로, 사자로, 여자로, 노인으로 애기로도 금방 변화해버리는 변화술에 능한 하늘 마(天魔), 외도의 집단이 거기서 터를 잡고 수  백 년을 있었어요. 여러분, 그것들이 우리한테 양보해 주려고 합니까?



처음에는 설득해도 듣지 않아요. 이 귀가 막혀가지고 안 들어. 안 들어가. 그러니까 저들의 괴수, 반드시 그 집단은 괴수가 있습니다. 대장이 있는 거예요. 괴수가 저들의 집단을 이끌고 우리한테 도전을 한 거예요. 도전을 하는데, 거기는 높은 하늘 외도마(外道魔, 天魔)라서 무서운 신통이 있어요. 전쟁을 하는데 어떻게 오느냐? 독침을 날려요. 화살에다가 독을 발라서 쏘는 것처럼 독침을 마구 신통으로 쏜다고요. 맞아버리면 죽는 거예요.



그 영체가 죽어버린다고요. 무수히 날아온다고요. 그러니까 여러분, 어떻게 하겠습니까? 저들보다도 더 무서운 위신력이 없으면 당해버리는 거예요. 당해버려요. 거기는 붓다가 나올 곳이어요. 우리가 서울에 있었을 때 부처님께서 자꾸 “여기는 우리 광명불이 기를 다하고(붓다가 되었으니까), 자재를 위해서 그곳으로 옮겨 가거라”해가지고 꼭 거기를 가게 되어 있었어요. 가야만 돼. 그래서 이제 거기를 차지했는데 도전해 오더라고. 더 무섭게 도전을 하는 것은 독 가루입니다. 독 가루를 뿌려버린다고요. 이 독 가루가 태풍이 몰아치듯 한  속력과 속도로 온다고요. 이걸 어떻게 막아내느냐?



막아내지 못하면 죽는 거예요. 이걸 전부 막아내어요. 무량광으로 이루어진 영체는 그걸 막아냅니다. 못 옵니다. 그리고 이 영체가 장풍도 있습니다. 장풍을 확~놓아서 독 가루가 오는 것을 막아낸다고요. 저들이 이제 해도 해도 안 되니까 하늘 신(자기의 도반들), 말하자면 자기의 신들(천마들)을 부른다고. 이제 일개 군단이 된다고.



그러면서 2차 도전을 해온다고요. 그걸 우리는 응전을 않고 응전을 했어요. 응전을 하지 않고 장풍으로만 하다가. 저것들이 아무리 해도 안 되거든. 그때 곧 우리 광명불님께서 오셔서 광명불 영체하고 합해가지고 불로 포위를 한 거예요. 불기둥으로 포위를 시켜버린 거예요. 순식간에 해버립니다.



그래가지고 조여 들어와. 그런데 그 온도를 백도 천도 만도 억도까지 높이면서 조였어. 저것들이 이제 타 죽게 생겼거든. 여러분, 불이 났다고 생각해보세요. 사면에서 불이 막 좁혀 들어 올 때 어떻게 됩니까? 이제 죽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는 그 영체가 견딜 수 없는 온도로 높여서 좁혀 들어갔다고. 그러니까 전부 살려달라고 비는 거예요. 그래서 조복을 받고, 그들이 지니고 있는 못 된 신통을 전부 거둬버린 거예요. 부처님은 그 능력이 있어요. 그들이 갖고 있는 최고의 일급무기는 빼앗아 버린 거예요. 빼앗아버렸어. 그래도 우리가 미안하잖아요.



인연이 다 되어서 우리가 왔는데 미안하니까 전라도 어디로 터를 잡아서 보내준 거예요. 아시겠지요. 오늘 처음 스님이 성지(聖地)를 빼앗은 이야기를 해드립니다. 이것을 읽고 이제 '밀라레빠 십만송'을 읽어보라고. 그러면 다른 학승들이나 큰스님들은 ‘이것은 뭐 이야기이고, 말도 아니고, 이건 뭐...’그런다고. 여러분은 이제 실제로 ‘아하! 이렇게 해서 빼앗아 버렸구나’라고 이해하실 겁니다. 그 설산 3,000미터 5,000미터 고봉의 동굴 산을 많이 빼앗았어요.



부처님 말씀이올시다. 잘 들으세요.

“이 세상에는 많은 종교와 가지가지의 가르침이 있다. 그 종교의 성인(聖人)이 되는 팔정도 법이 있는지를 보라. 만약 팔정도 법이 없다면 그 가르침은 아무리 열심히 실천수행을 해도 아라한 성자가 절대 나올 수 없다.” 알았지요. 이 정법팔정도, 그래서 우리는 '팔정도칭명염불'이라고 합니다. ‘사성제 팔정도를 통해서 수행하지 않는 종교나 종파는 전부 성인이 나올 수 없다.’ 맞습니다.



그 위대하신 우리 부처님께서는 항상 역설 하시는 것이 효(孝)입니다. 부모님께 효도해라. 돌아가셨으면, 붓다회상 이때, 이 부처님께서 계실 때 천도를 해라. 그래야 천도가 된다. 네 번만 해라. 하늘로 보내 줄 것이다. 천도를 해라. 그래서 지금 많이 하고 있는데, 이 천도재가 돈이 비싸다느니, 뭐뭐 어떻다느니 해가지고 말들이 많지만, 비용은 다른 절과 같습니다. 값은 다른 절과 같습니다. 10년 전에도 그렇게 했습니다. 선근이 있는 자들만 오라고 했더니, 계속하고 있어요. 이 효를 굉장히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효를 하는 사람은 안 되는 사람이 없어요. 무슨 일이든지 잘 되는 거예요. 효를 하는 사람은 하늘이 도와주니까요. 효는 불보살님도 도와줘요.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관음태교, 앞으로 태교원을 개강할 것입니다. 관음태교, 우리나라가 앞으로 부강해지려면 인재밖에 없습니다. 인재가 나와야 됩니다. 각계각층에서 인재가 나와야 돼. 지하자원도 없고 하니까 인재가 나와야 돼. 덕이 있고, 불교를 좋아하는 그런 인재가 나오게 돼. 관음태교를 해야 돼. 지금 이렇게 관음태교를 역설하는데, 이렇게 해서 끝나버리면 또 시들어버려. 그래서 관음태교 교육원을 개강할 거예요. 1기 2기 3기...앞으로 쭈~욱 10일 간격으로. 10일 정도로 해서《관음경》을 강의하고, 불교사상을 강의해주고, 또 가능하면 꽃꽂이나 다도(茶道)도 좀 넣어서 해줄 것입니다.

앞으로 또 불보살님이나 자기부모를 잔인하게 시해한 그런 지중한 업을 지어가지고 과보로 받은 병 아니고는 거의 다 고쳐질 수 있는 약사전(藥師展)을 동해안에다가 금년에 착수합니다.



여러분! 왜 스님이 되어야 되고, 왜 우리 부처님 말씀을 따라야 되고 하는 줄 압니까? 다 대답할 수 있어야 돼. 아마 300명 정도의 우리 신도 분들은 대답하실 겁니다. 참으로 지옥이 있고, 윤회가 있고, 악도로 떨어지기 때문에, 거기에 가면 안 되지요. 거기 가면 안 되지요. 최소한 하늘 가야지. 그리고 사람으로 와야지. 하늘가고 사람 되고, 나아가서 그 윤회를 벗어나야지. 영원히 오지 않을 수 있는, 정말로 윤회를 벗어나는 하늘의 하늘이 있어. 아라한, 무루대아라한 정도 가면 거기에 가. 그러니까 거기에 가는 것을 목표로 해서 가능하면 보살이 되고, 그래서 정토에 왕생을 하고, 또 언젠가 불종자(佛種子)가 되어가지고 붓다가 되고 하는 거예요.



 이러기 위해서 승려가 되고, 우리가 정법을 만나서 부처님 말씀을 따라 수행을 하는 거예요. 여러분, 목표가 있어야 돼. 현지사 우리 신도 분들 한500명은 정말로 열성이어. 참 착해. 부처님께서 평가해 주셔요. 참 착해. 여러분들만 사는 길로 가지 말고, 옆에 사는 불쌍한 사람, 그 영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꼭 데리고 와서 구제를 해줘야 돼. 데리고 와야 돼. 오늘 처음 오신 분들, 스님이 어렵게 이야기한 것도 아니어. 우리는 죄를 지으면 안 됩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 그 과보를 받음은 물론, 악도에 떨어집니다. 악도에서 나와 사람이 되더라도 습기과(習氣果) 때문에 절대로 안 됩니다. 습기과라고 해. 살생을 많이 한 사람은 병이 많고 단명해. 더 무서운 오역죄를 지은 사람은 나와서도 정신불구, 육체불구자가 되어 살아. 죽어도 그리로 가. 지금 보면 또 많은 사람들이 빙의 되어있습니다.



빙의 되어 있는 분들이 많아. 구렁이가 빙의 되어 있는 사람, 독사가 빙의 되어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은 죽으면 다 그 지옥에 가고, 축생 되면 그 축생이 되고, 사람으로 오면 또 그것이 빙의해. 이걸 놔두면 됩니까, 이걸 놔두면. 이 불쌍한 중생들을 놔두면 됩니까 여러분. 그래서 우리는 영산불교를 키워야 됩니다. 영산불교를 키워야 됩니다 여러분.



우리 광명만덕 태사부님께서 이번에 읊은 게송이 좋아서 오늘 읽어 드리겠습니다.



세상 모든 것이 텅 비고 고요한데

진실한 것 없거늘

이 몸으로 인하여 매달린다네.

이 몸뚱이 실체 없이 물거품 같은데

나(我)라는 것이 어디 있는 가

진실로 참된 것이 없거늘

환영(幻影)과 환상(幻想)에 쫓아다닌다.

오온(五蘊)이 덧없는 것을 알아

애욕을 떨치고 부처님 품안으로 돌아왔다네.

많은 것이 나를 부르며 쫓아오지만

진실한 마음 오직하나

부처님 찾아 염불하며 깊은 삼매에 든다네.

세세생생 당신 찾아 앞만 바라보며

결국에는 붓다 되었네.

감사하는 마음 헤아리기 어려워

나도 같이 부처님 따라 대자대비 바르게 행할 것이네.



‘이 몸뚱이 실체 없이 물거품 같은데 나(我)라는 것이 어디 있는 가’, 여기에 아주 주목을 해야 돼. 나(我)라는 것이 없다고 했지요. 진짜 나(我)라는 존재가 없다는 말이 아니어요. 존재의 부정이 아니어요. 이건 방편으로 한 거예요. 그걸 알아야 돼. 여러분, 무아(無我)의 도리를 알아야 돼. 그런데 무아(無我)를 글자 그대로 나(我)가 없다. 실체가 없다.



고정불변한 실체는 없다. 이렇게 해석하면서 문자에 얽매어가지고 경전을 해석하고, 법문을 설하게 되면 큰 낭패여. 이 무아(無我)는 아집을 털어내기 위해서 벗어 버리라는 가르침이어요. 존재의 부정이 아니어. 우리가 이렇게 엄연히 있는데, 모든 비본질적인 것을 전부 털어버리고 남은 것이 있잖아요. 진짜 나(我)가 있어. 여기가 윤회를 벗어난 아라한이어요. 더 정진해서 보살행 하면 보살이 됨으로써 아주 거룩한 몸매를 갖추고, 옷도 그렇고, 그런 환경 거기가 극락입니다.



‘오온이 덧없는 것을 알아’, 여기의 오온(五蘊)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입니다. 이번에 게송 읊어서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선불교(禪佛敎)에서 화두타파 해가지고 나온 게송하고, 우리 부처님 게송하고는 다릅니다. 화두타파하면 지혜를 얻는다고 하는데, 그 지혜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하고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언제 시간을 내어서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금강경》은 우리가 항상 읽는 경전이고, 불교의 정수를 써놓은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수지 독송을 하는데,《금강경》강의를 여러분들이 들었지만 우리 그 제자 분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잘못 알려 주었을 거예요. 보통의 지혜 정도로, 이 본체 진여의 개념으로 알려 줬을 거예요.



할 말이 많습니다만 오늘은 이정도로 하겠습니다. 부처님은 빛의 존재라는 것. 그 빛은 무량광이라는 것. 자성광도 아니고, 저기 보살이 가는 정토광도 아니고, 무량억종광이라는 것. 외도의 수괴들 광명도 방광을 해요. 그런데 그 색깔은 자성광도 아니고, 더 하급이거나 바로 윗 급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교전을 보면 빛의 존재라고 하잖아요. 그렇지만 우리 부처님의 빛하고는 천지차이입니다.



그래서《금강경》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깨달으려면, ‘마땅히 보살이 되어서 보살행을 하거라’ 하는 가르침을 담은 경전이《금강경》이고, 그리해서 무아(無我)를 이야기한 거예요. 자꾸 나를 비우라는 것. 대상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말고, 모든 것에 집착하지 말고, 성이나 권력이나 명예나 부(富)에 집착하지 말고, 이 몸뚱이나 아집에 집착하지 말고, 여기《금강경》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려면 오직 육바라밀 행으로, 보살행으로 가거라 하는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부처님 칭명하겠습니다.



나무 영산불멸 학수쌍존 시아본사 구원실성 석가모니불...

천상천하무여불 시방세계역무비 세간소유아진견 일체무유여불자

고아일심귀명정례 



여러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려면 보살행을 해야 돼. 한 사람이라도 데려 오는 것은 큰 보살행 올 시다. 이정법, 부처님 교단으로 이끌어 이렇게 인도해 오는 것, 큰 보살행입니다. 제일의 보살행입니다. 부처님께 선근공덕 쌓는 것은 더 큰 보살행입니다 여러분. 終






현지사 자재 만현 큰스님 정기법문
2010.11.28.일(음10.23) 춘천 본원 



팔정도(八正道)



들어가면서

오늘 처음 오신 분 손들어 보십시오. 박수로 환영해 주세요.

오늘은 무척 춥습니다. 아침 기온이 영하 7도(-7℃)라고 합니다. 이곳은 38선 이북이지요. 오늘도 이렇게 전국에서 부처님의 법 말씀을 듣고자 올라오신 1,000여명의 단월님들, 대단히 고맙습니다.



오늘은 팔정도(八正道)라고 하는 제목으로 BBS TV마지막 법문을 해드립니다. 팔정도(八正道)를 팔성도(八聖道)라고도 하지요. 우리 부처님께서 다섯 비구에게 처음으로 설하신 소위 초전법륜이라고 하는 법문입니다. 초전법륜(초전법문). 부처님께서 불과(佛果)를 증하시고 45년 동안 설하신 모든 가르침은 이 여덟 가지의 성스러운 길(바른 길)을 여러 가지 형태로 설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대단히 중요한 법문입니다. 팔정도(八正道) 법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오늘 처음 와주신 우리 단월님들, 그리고 전국에 이 법문을 시청하시는 우리 한국의 불자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영산불교 현지궁 현지사의 설법은 내 책에도 쓰여 있습니다. 불과(佛果)를 증한 법왕자의 설법은 여러분들이 깊은 삼매에 들지 못해서 보지를 못하지만,

▸저 절대계(상적광세계)에 있는 자재통왕불이 이 육신 속으로 들어옵니다.

▸우리 교주 불세존은 삼계의 지존이시고, 붓다 중의 붓다이시고, 최초불이시지요. 그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내 정수리 위에 정좌하셨습니다.

▸그리고 문수․보현 양대 협시보살이 좌우로 안주 하시고, 수많은 붓다님들이 나를 중심으로 배후에 진을 치고 앉아 계십니다.

▸성중들, 정토보살들, 그리고 하늘 천인들, 경전에는 100만이라고 했지요.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법문은 보통 법문이 아닙니다. 감히 말씀드립니다. 그렇게 운집해서 경청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부처님 교단입니다. 부처님 회상이 올 시다. 그래서 현지궁입니다. 부처님이 계시는 곳, 우리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사바세계의 교주이시기 때문에 이 사바세계에 불과를 증한 제자가 출세하면 오셔서 상주하십니다. 그래서 현지궁입니다. 지금 우리 현지사는 현대불교신문 하단에다가 광고를 열다섯 번째인가 하고 있습니다.



오늘 정확히 말씀드립니다. 인도 영축산 바로 위 허공에 영산궁이 있습니다. 중국 수나라 때 천태지의(天台智, 538~597, 형주(荊州)출생. 이름은 ‘지의’이고 자(字)는 ‘덕안’이다. 18세 때 출가하였고, 23세 때 혜사(慧思)의 문하에서 ‘법화삼매’를 배우다), 대단히 큰스님이지요. 그분이 법화삼매에 들어서 슬쩍 봤다고 합니다. 아직도 우리 부처님께서 영산회상에서 법을 설하고 있는 장면을 선정에서 봤습니다. 사실입니다. 영산궁외 현지궁이 대한민국 땅 춘천 현지사에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기는 우리 부처님께서 상주하시는 도량이고 주처입니다. 두 제자 때문에 영축산에 계시지 않고 주로 여기 현지사에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수․보현, 오여래, 그리고 우리가 현지사에서 조석으로 올리는 공양을 잡수시는 많은 불보살님들이 여기에 상주하고 계십니다. 관세음보살님도 여기가 주처요, (약사여래부처님도 여기에 계시기 때문에) 약사불의 주처요, 지장보살의 주처요, 문수보살의 주처요, 보현보살의 주처요, 준제보살님(칠구지불모왕불 준제 어머님)의 주처이십니다.



사실 전부 따지고 보면 부처님께서는 45년 동안 이 팔정도(八正道)를 중심으로 해서 말씀드린 거예요. 오늘 한 시간을 가지고 팔정도(八正道)를 말씀드린다는 것은 대단히 무리입니다. 그리해서 여러분들께 양해를 구합니다. 대충 짚고 갑니다. 우선 영산불교가 그렇다는 것을 아십시오. 둘째, 지금 여기(현지사 여래전) 우리 부처님 좌우보처로 미륵불과 지장보살님을 모셨습니다.



오늘 처음 나오신 분들, 우리 현지사에 오셔서 대전 분원이나 부산 분원 법당에 들어서면 국내의 다른 절, 세계의 다른 어느 절에서도 볼 수 없는 부처님상의 모습입니다. 머리를 깎았지요, 눈을 부릅뜨고 계십니다. 이것은 마음 안에도 아니고 마음 밖에도 아니고, 있다 없다를 초월한, 시공(時空)을 초월한 무아 속 절대세계(상적광세계, 부처님세계)의 보신(報身)부처님 모습입니다. 법신 보신 화신할 때 그 보신(報身)의 모습입니다.



그 보신의 모습을 역사 이후로, 부처님 이후로 본 분이 없습니다. 그 보신 부처님이 진짜 부처님이십니다. 법신불(法身佛)은 우주적인 몸, 형상이 없는 몸으로서 뿌리는 부처의 뿌리이지만 생각이 없기 때문에 그렇고, 화신(化身)은 유한한 생명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보신(報身)은 천 만억 나유타 색깔의 빛, 그것을 우리 현지사에서는 무량광 또는 억종무량광이라고도 하고,《열반경》에서는 열반광, 문수보살님의 여러 경전에서 보면 백종오색광 등으로 여러 가지 표현을 하고 있고,《법화경》에서도 여러 색깔의 그 부처님 빛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절대계의 부처님의 몸은 그 빛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 인간을 포함한 중생들은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로 이루어져 있잖아요. 부처님은 그 빛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빛은 이러한 태양 빛하고(소위 본체가 되는 자성광 빛하고)는 밝기나 강도(强度)에 있어서 천지차이입니다. 그 빛을 중생이 보면 가루가 되어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깊은 선정(禪定)에 들어가야 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는 거예요. 누구나 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팔정도(八正道)의 마지막 부분인 정정(正定, 바른 선정), 그것도 깊은 아라한 선정(삼매)이지요. 더 깊은 보살 삼매이지요. 더 깊은 대적정 삼매에 들어가야 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부처님은 억종무량광이라는 빛으로 이루어진 32상80종호의 거룩하신 모습이 올 시다. 자비의 극치이신 모습이고, 지혜 자체이시고, 복덕 자체이시고, 그 위신력은 우주적입니다. 지금까지의 세계 불교는 이걸 몰랐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에 대한 이해가 없습니다. 마음이 부처라고 합니다. 거기서 더 들어가야 됩니다.



백 천만리도 더 들어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불교는 점점 쇠락(衰落)의 일로에 있습니다. 인도에서 우리의 불교가 쫓겨난 이후부터 점점 왜소화(矮小化) 되어버렸습니다. 지금의 불교 가지고는 안 됩니다. 우리는 정말 부처님을 알아야 됩니다. 부처님을 말하지 않는 불교는 불교가 아닙니다. 불교인데 왜 부처님을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왜 부처님을 믿지 않습니까? 부처님의 모든 면을 알아야 됩니다. 영산불교에서는 자세히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경전이나 논장, 그건 부처님에 대한 면을 대충 나타낸 것이고, 아무리 봐도 오락가락 하며,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부처님을 친견하고 언제라도 대화할 수 있는 그런 대성자가 나오지 못했기 때문에 불교가 이렇게 왜소화 되어버렸고, 왜곡 되어버렸고, 심지어 사도화(邪道化) 되어버렸습니다. 그 이야기를 또 하면 한정이 없습니다.



지금 '혜위등왕불'이신 미륵부처님(미륵보살님)께서 나오셨어요. 많은 과거생에 세 번 씩이나 불과(佛果)를 증한 분이십니다. 서기3000년 쯤 되면 저 미륵부처님께서 이 사바세계에 사람 몸 받아 오십니다.《미륵삼부경》에 나오는 내용은 많이 왜곡되어 있습니다. 저 부처님께서 이 사바 세상에 몸 받아 오실 때가 있습니다. 서기3000년경입니다.



경전의 이야기하고 좀 다릅니다. 한국 땅으로 오시게 되어 있습니다. 한국 땅으로 오십니다. 한국 땅으로 오셔서 (400년, 500년 후에 보니까)현지사로 출가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불과(佛果)를 이루십니다. 저 분이 부처를(불과를) 이루어서 법문을 많이 하실 겁니다. 팔정도(八正道)를 중심으로 해서 이야기하게 되어 있습니다. 팔정도(八正道). 지금까지 많은 나라의 선지식들이 법문 한 것을 보면 팔정도(八正道)에 어긋납니다.



팔정도(八正道)



① 정견(正見)입니다.

정견(正見)이 문제입니다. 정견(正見), 진정한 부처님의 사상, 진짜 불교에서 보는 우주관, 인생관입니다. 이 우주와 이 세계, 우리 인간들을 포함한 유정들이 어떻게 해서 왔고(태어났고), 무엇 때문에 이렇게 이렇게 살고 죽고, 이걸 또 반복하고, 윤회를 한다고 하는 그 원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견(正見)이 확립되지 않으면 그건 벌써 사도(邪道)입니다. 정견(正見)이 확립 되어야 됩니다. 정견(正見)이 뭐냐? 연기(緣起)의 원리입니다.



연기법(緣起法)입니다. 이 기세간(器世間), 이 우주 삼라만상, 이 세상은 많은 자연법칙에 의해서 나고, 유지해가다가 사멸해갑니다. 이것을 반복합니다. 그런데 유정은, 우리 인간들은 자유 의지가 있어서 인연의 도리와 인과의 법칙에 의해서 나고 죽고 합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연기의 원리(緣起의 原理)라고 합니다. 연기의 원리 또는 연기법(緣起法)이라고 합니다. 이 연기의 원리는(연기는) 바로 법이 올 시다. 진리입니다. 부처님 나기 이전부터, 시공(時空) 이전부터 미래제가 다하도록 오직 연기(緣起)의 원리가 있어서 우주만물을 지배하고, 그것 때문에 우주만물은 굴러갑니다. 이게 연기(緣起)의 원리입니다.



이 연기(緣起)의 원리, 이것은 정말 깊이 봐야 됩니다. 불과(佛果)를 증한 분상에서 이 연기의 원리를 압니다. 이 연기법에 따라서 지옥도 있고, 하늘도 생기고, 인간세계도 생기고, 아수라, 아귀 축생 등 여섯 세계(육도)가 벌어집니다. 육도를 벗어난(윤회를 벗어난) 니르바나(열반)의 세계도 벌어집니다(생기게 됩니다). 이것은 업을 짓다가 ‘아! 이것이 참 된 길이 아니구나. 착하게 살아야 되겠구나. 부처님 말씀대로 살아야 되겠구나’해서 찾은 결과의 세계입니다. 천상천하에 부처님같이 거룩한 분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연기의 원리로 정견(正見)을 삼으라고 한 그것에 의해서 인과(因果)과 소중함을 알고, 모든 것이 인과법(因果法)이라고 우리 사람들은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착하게 살아야 좋은 결과가 와요. 나쁜 짓하면 반드시 고통의 결과(과보)가 옵니다. 부처님은 무량겁(진묵겁)전에 이것을 아셨습니다. 우리와 같은 중생이었을 때에는 정견(正見)을 체득하지 못했지요. 그러나 성품자체가 대단히 착하고 진실했었기 때문에 착하게 사셨고, 그러면서 그러면서 이 고통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아갔어요.



지혜를 닦아야 알아요. 그런데 어떤 큰 깨달음, 더 큰 깨달음을 이루기 위해서는 남을 위해서 헌신할 줄 아는 이타행(보살행)을 해야 된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지혜와 보살행과 공덕 닦기를 백 생, 천 생, 겁, 몇 천겁, 몇 억겁을 하시고 나서 불과(佛果)를 증하신 거예요. 불과(佛果)를 증하시고 보니까 있는 것은 연기(緣起)의 이법이어. 하나님은 우상이야. 그래서 팔정도(八正道)가 나옵니다. 정견(正見), 정사(正思,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 이것을 팔정도(八正道)라고 합니다.



정견(正見), 그러니까 연기의 원리, 이 연기(緣起)라는 것은 정말 우리 불교의 근본사상입니다. 초전법륜하신 그 사제팔정도(四諦八正道), 팔정도(八正道)는 이 행동 실천의 핵심 덕목입니다. 부처님의 모든 교설은 이 정견(正見)으로부터 나옵니다. 정견(正見)으로부터 나와요. 연기(緣起)의 이법(理法)에서 나와요. 이것은 진리(眞理)요 법(法)이어요.   오늘 팔정도(八正道)를 한 시간에 이야기하려니까 조금 어렵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모든 현상계의 만유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하나도 독립됨 없이 서로 인(因)이 되고 연(緣)이 되어서 서로가 서로를 의지한 채 인연생기(因緣生起)하고 있습니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아주 깊은 이야기입니다.



본래 없는 마음, 마음은 본래 없어요. 이 마음은 아무 형상도 없고, 맛도 없고, 만질 수도 없어요. 이름 하여 마음이라고 한 거예요. 해와 같이 밝아. 시방에 두루합니다. 온갖 법이 인연으로 좇아 일어나는 지라 환상 같아서 실체가 없어요. 이것은 체(體)로 설명한 것이고, 용(用)으로 설명한 것이 연기(緣起)입니다. 잘 들으십시오. 중생들이 사는 이 우주와 세계는, 기세간(器世間)은 자연법칙에 의해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합니다. 성주괴공(成住壞空)을 영원히 반복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을 다시 부연합니다. 우리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어서 생로병사(生老病死,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음)를 반복한단 말이에요. 영원히 그래요. 여러분! 영원히 죽지 않아요. 여러분은 영원히 죽지 않아요.



윤회한다고 하면 반드시 기체(基體, 本體)가 있어야 되는 거예요. 지금 불교에서 이걸 몰라요. 힌두교에서는 알았어요. 힌두교한테 무아(無我)라고 따지면서 공격(반격)하다가 결국은 당했어요. 기체(基體)가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윤회하는 거예요. 그 윤회하는 기체(基體)를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영혼체(영체)라고 합니다.



그 영혼체는 1,2,3,4번으로 되어 있어요. 오늘 설명을 빨리 합니다. 이건 시간이 없어서 설명을 많이 할 수가 없습니다. 1,2,3번 영체는 영원히 뭉쳐가지고 죽지 않아요.  본체는 1번 영체이어요. 이것만 이야기 합니다. 이것을 아무도 몰라요. 그래서 무아(無我)가 왜곡 되어 버렸어요. 나(我)도 없고, 너도 없고, 모든 것이 없다고 해석해버려요. 그걸 이르러 아트만이라고 하지요. 이거 큰일 날 일이어요. 지금까지 부처님의 말씀을 이렇게 왜곡해가지고 왔어요.



현상계의 만유는 인연의 도리와 인과의 법칙에 따른 것이다. 다시 말하면, 현상계의 만유는 모두 연기의 원리(이법)에 따라 굴러가는 것이지 태초에 하나님이 있어서 창조 되어진 것도 아니고, 그분의 뜻에 따라 운명이 정해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지금 시간이 너무도 없지만 팔정도를 꼭 해드려야 되겠고, 안타깝습니다. 정견(正見)이라고 하면 ‘바로 보라’하는 거예요. 바로 보기 어려운 거예요. 바로 보려면, 나중에 여덟 번째 덕목인 정정(正定)이 나옵니다. 삼매에 들어가야 되요. 그래야 바로 보기 시작하는 거예요. 우리는 사물을(대상을) 바로 못 봐요. 왜냐하면, 탐진 삼독이 있지요, 습이 있지요, 업장이 있지요, 빙의가 되어 있기 때문에 대상을 정확히 통찰 못합니다. 저것을 전부 거둬버려야 되요. 그러면서 삼매에 들어가고, 그래야 밝은 지혜가 나오고, 또 열심히 지관수행(명상수행)을 해가지고 삼매도 더 깊은 삼매에 들고 해서 불(佛)의 경지에 가야 영체를 봅니다. 이 육안으로는 안 보여요. 혜안으로도 안 보여요. 천안으로도 안 보여요.



그래서 부처님은 정견(正見)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육신을 먼저 바로 보아라.” 우리는 이 육신을(내 몸뚱이를) 깨끗하고 귀중하고 사랑스럽다고 보잖아요. 그러나 우주 법계의 주(主)이신 우리 부처님께서는 “이 몸은 그렇게 깨끗한 것이 아니다”라고 하십니다. 바로 보아야 돼. 더럽고 부정한 거예요. 알지요? 여러분, 몸뚱이가 깨끗합니까? 부정한 거요. 모든 걸림에서 떠나서 볼 줄 알아야 돼. 부정하고 더러운 것이어. 모든 재앙과 고통의 근본이어. 고(苦)의 그릇이어. 고통(苦痛)의 그릇이어. 이렇게 보는 것이 옳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낙(樂)으로 보지요. 그러고 살아. 그러나 부처님은 모두가 고(苦)의 종자로 봐버리는 거예요. 고(苦)의 과보(果報)로 봐버려요. “낙(樂)으로 보지 말고 고(苦)로 보는 것이 옳다”고 하셨습니다. 우주만법은, 산하대지(山河大地) 일월성신(日月星辰) 금수초목(禽獸草木) 유정무정(有情無情) 할 것 없이 영구히 존재하는 것은 하나도 없어. 결국 모두가 공(空)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우리는 있는 것으로 잘못 보고 있다는 거예요.



▸그 다음, 물심양면에 현상으로 나타나는 우주만유는 하나도 상주불멸 하는 것은 없고 변화무상하다는 이치를 알아야 된다. 무상(無常)을 말씀하신 거예요.



▸그 다음, 우리는 우주만유의 모든 법이 각각 나(我)라는 존재가, 실체라는 존재가 분명히 있다고 보지만, 부처님은 모든 것은 지수화풍 내지 육대(六大, 만물을 생성하는 여섯 가지 요소. 지대(地大), 수대(水大), 화대(火大), 풍대(風大), 공대(空大), 식대(識大)를 이른다)가 일시적으로 모여지고 흩어지는 것으로 봐. 그래서 그 무엇이 나(我)라고 하겠는가. 고정 불변하는 나(我)라고 하는 실체는 없는 것이다. 있다고 보는 것은 잘못 본 것이다.



무아(無我)를 말씀하신 것이어요. 다시 말해서 우주만유, 물신, 유정 무정을 막론하고 다 부정하고 괴로운 것이오. 모두가 공(空)으로 돌아간다.  또한 허망 무상한 것이고 실체적인 나(我)가 없어. 무아(無我)여. 이렇게 보는 것이 우주관이고 불교의 인생관이란 말이어요. 이것이 정견(正見)이어요. 여기서 시작해야 되요. 여기까지는 정립해 놔야 됩니다. 그런데 진리를 꿰뚫는 정견(正見)은 앞에서도 말씀 했지만, 깊은 부처님 삼매 속에서만이 가능합니다.



방금 말씀했지만 이 세상 현상계, 삼계의 지침 상에 대한 올바른 네 가지 진리 즉, 고(苦) ․ 공(空) ․ 무상(無常) ․ 무아(無我)라고 해. 이 네 가지의 진리, 네 가지의 정견(正見)을 사정견(四正見)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내세운 이 정견(正見), 이것을 우리가 꼭 배워서 정견(正見)을 확립해 둬야 됩니다. 이 거짓 몸뚱이까지 보면 이 세상은 부정 ․ 고(苦) ․ 공(空) ․ 무상(無常) ․ 무아(無我)예요. 이게 정견(正見)이어.



앞에서 연기(緣起)의 원리가 아주 기초가(근본이) 된다고 했습니다. 연기의 원리에 따라서 곧 업의 법칙, 인과의 법칙(선악 인과의 법칙), 인연의 도리, 카르마의 법칙 등 이런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연의 법칙, 연기의 원리, 연기법(緣起法)이어요. 이것에 따라서 선한 행위는 선한 과보가 오고, 나쁜 짓을 하면 나쁜 과보가 옵니다. 선악 인과응보라고 하지요. 이 세상과 다음 세상이 있다는 것은 자연히 결론이 나와요. 지옥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중생들의 업으로 해서 육도윤회가 벌어지는 거예요. 윤회를 벗어 날 수 있는 공부를 하면 윤회를 벗어난 세계가 있어요. 모두 다 우리 중생이, 성자가 결국 업으로 만든 것인데, 그런 세계가 다 있다고요. 그래서 부처까지도 될 수 있다 그거예요. 불보살은 저 절대계에 적멸의 상으로(빛의 몸으로) 엄연히 계신다. 그런데 그렇게 까지 못 봐요. 연기의 원리를 깊이 연구하지 않고, 사유(명상)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요즘 많은 스님들이 대단히 불행스럽게도 ‘지옥과 극락은 실제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이 기쁘고 번민이 없으면 극락이고, 마음에 그저 번민과 괴로움이 꽉 차있으면 그 자리가 지옥이다’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이것은 중생을 오도(誤導)하는 대망어입니다. 중생을 이렇게 오도하는 대죄를 지으면 가는 곳은 분명히 있습니다. 어디로 가느냐? 무간지옥이어요. 이런 무서운 죄를 짓지 않기 바랍니다.



② 정사(正思), 혹은 정사유(正思惟)입니다.

정사(正思), 생각을 올바르게 해라 그거예요. 진정하게 사유를 해라. 바르게 생각하라 그 말이어요. 무엇을 바르게 생각하라는 말이오? 정견(正見)을 얻게 되면 그 정견(正見)에 따라 참다운 지혜의 눈이 열립니다. 참다운 지혜의 눈으로서 모든 사물을 관찰하게 되면 고집멸도(苦集滅道) 사제법(四諦法)의 이치를 분명히 압니다.



욕심 분노 폭력 사견(邪見)을 떠난 생각, 우리는 정사(正思)를 할 줄 알아야 됩니다. 정사(正思), 여러분은 한 시만이라도 욕심과 망상을 생각하지 말고, 미운사람 생각도 하지 말고, 또 사견(邪見, 삿된 소견)을 하지도 말아야 되는데, 이렇게 하려면 정정(正定) 즉, 삼매에 들면 점점 그런 생각을 안 해요. 이 생각도 맑아요. 저녁에 기와집 안 지어요. 욕심 때문에 그렇지요. 안 지어요. 아무리 철천지 원수가 있어도 삼매 정도 들어가 수행하게 되면 원수 없어요.



그러니까 생각이 고달프지 않아요. 그저 착하고 진실해요. 오직 윤회를 벗어난 공부만 하려고 해요. 이 현상계는 모두 다 고(苦)로 꽉 차있어요. 인간세계도 그렇습니다. 내려가 봅시다. 아수라세계는 어떠합니까. 아귀, 짐승세계, 지옥세계, 모두 고(苦)로 충만 되어 있어요. 그 지옥의 형벌은 도저히 무서워서 못 봐. 그런 곳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윤회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생각만 해요. 그런 공부만 하려고 해요.



③ 정어(正語)입니다.

바른 말입니다. 입으로 입으로 죄를 많이 지어요. 거짓말도 해요. 온갖 거짓말을 해요. 욕심 때문에 그래요. 진심(瞋心) 때문에 그렇고, 어리석은 마음 때문에 그래요. 기어(綺語), 쓸데없는 말, 음담패설 등입니다. 양설(兩舌), 가끔 자기의 이익을 따라 두말을 해요. 법정에서 증인으로 앉아서도 거짓말을 해요. 그것이 들통 나면 처벌 받지요. 악구(惡口), 악담을 해요. 화가 나면 자식한테도 악담을 해요. 우리는 입으로 그러한 업을 짓지 말라 그 말이어요. 정어(正語)입니다. 입으로 짓는 죄 중에서 불법(佛法)을 능멸하고 모독하는 것이 최고 무서운 죄예요. 부처님과 부처님 법을 능멸하고 모독한 죄예요.



④ 정업(正業)입니다.

네 번째 실천 덕목인 정업(正業)이라는 것은 몸뚱이로 업을 짓지 말라는 말입니다. 정사(正思) 정어(正語) 다음이니까 정업(正業)입니다. 살생(殺生), 도둑질, 사음(邪淫) 등은 몸뚱이로 하지요. 그래서 불살생(不殺生), 불투도(不偸盜), 불사음(不邪淫)의 계(戒)를 내리고 있는데, 이런 신체상의 기거동작에 과오가 없는 신업(身業), 바른 행동을 하라는 거예요. 정업(正業)으로 살라는 거예요. 불교는 이렇게 뜻으로(意) 입으로(口) 몸으로(身) 깨끗이 살라는 거예요. 업을 짓지 말라는 거예요. 업을 지어버리면 과보(果報)가 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업(正業)으로 살아야 됩니다.



⑤ 정명(正命)입니다.

정명(正命)이라는 것은 불교의 정신에 따라서 생활하는 것입니다. 정당하지 못한 직업을 가지고 살지 말라는 거예요. 아시겠지요. 우리가 이 고해(苦海)에서 벗어나려면 신구의(身口意) 삼업이 청정해야 되요. 병도 안 오고, 또 병이 온 것도 낫게 하려면 요. 지금부터라도 신구의(身口意) 삼업이 청정하게 살아야 되요. 우리는 더 이상의 업을 지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까 정명(正命)이라는 것은 뜻으로 바른 생각을 하고, 입으로 바른 말을 하고, 몸뚱이로 바른 업을 짓는 등 신구의(身口意) 삼업을 청정하게 해야 되요. 그래서 일상생활에 정견(正見)을 구현할 것을 말해요.



⑥ 정정진(正精進)입니다.

정정진(正精進), 부지런히 노력하는 거예요. 꾸준하게 정진(精進)하는 거예요. 끊어짐이 있으면 안 됩니다. 정정진(正精進)은 팔정도 중에서 나머지 칠정도를 구현하기 위한 노력입니다. 부지런하게 노력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도 성공하기 어려워요. 우리 출가 승려들은 해탈(解脫)이 목표 아닙니까. 열반으로 가는 것이 목표예요. 그 목표에 도달하려면 부지런해야 됩니다. 거기에 가기 어려워요. 거기에 도달하기는 대단히 어려워요. 그러니까 정정진(正精進)해야 되요.



선정(禪定)이나 삼매의 수행에 큰 장애가 되는 것이 있어요. 이것을 오개(五蓋)라고 해요. 여러분, 이 오개(五蓋, 다섯 덮개)를 알아 둬야 되요. 개(蓋)자는 덮을 개(蓋)자입니다.



다섯 가지 덮개가 있어요. 깨끗한 심성을 가렸다고 해서 오개(五蓋)예요. 여러분은 그 오개(五蓋)를 끊어야 되요. 오개(五蓋)가 뭐냐? 마음을 덮어 선법(善法)을 할 수 없게 하는 다섯 가지 번뇌를 말하는데, 즉  탐욕이 마음을 덮는 탐욕개(貪慾蓋), 성냄과 분노가 마음을 덮는 진에개(瞋恚蓋), 게으름(교학에서는 해태․혼침이라고도함) ․ 혼미함 ․ 멍함 등으로 마음이 흐려지는 수면개(睡眠蓋), 흥분과 회한 불안 등으로 마음이 흔들리고(요동하고) 들떠서 근심이 생기는 도회개(掉悔蓋), 불법을 의심하고 법에 대하여 결단 없이 미루는 의법개(疑法蓋)가 있습니다.



이 다섯 가지의 법을 끊어야 돼. 이게 문제예요. 이것을 끊어야 되요. 사실 이것을 끊는 것은 뒤에서 이야기하겠지만 정정(正定, 바른 정), 삼매에서 끊어져요. 끊으려고 노력은 해야지요. 일단 노력해라 그거예요. 그 다음에 정정진(正精進)이라고 하면 사정근을 말한다고요.

뭐가 사정근이냐?



▸아직 생겨나지 않은 악한 마음의 발생을 방지해라. 그 말의 의미를 알겠습니까? 아직 생겨나지 않은, 내가 살아 온 족적을 봐도 아직 내 마음에서 생겨나지 않은 악한 마음의 발생을 방지해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을 보면 악한 마음을 가지고 나쁜 짓하는데, 그런 마음이 아직 나에게 안 생겼다고 하면 안 생기도록 그걸 눌러라 그거예요.



▸그 다음, 이미 생겨난 욕심에 대한 생각, 분노에 대한 생각, 사견(邪見), 폭력적인 사유를 버리고 제거하고 파괴하고 없애버려라는 거예요.



▸그 다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착하고 건전한 상태를 익히도록 하라.

▸그 다음, 이미 생겨난 착하고 건전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하라.

이것이 사정근입니다. 그러니까 착한 사람이 되라는 말입니다. 착하게 살도록 하라.



⑦ 정념(正念)입니다.

시간이 없으니까 빨리 나갑니다. 정념(正念)은 올바른 새김, 올바른 생각을 말합니다. 올바른 생각, 그 생각을 새김. 그 새김은 무슨 뜻이냐? 주의 깊게 세밀히 관찰해라. 관(觀), 정념(正念). 그러니까 이 '염(념,念)'자는 '생각 염(념,念)'자인데, '념(염)'자는 통찰을 의미하고, 관(觀)을 의미하고, 위빠사나라고도 하는 거예요. 관(觀),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의 본질을 면밀히 관찰하도록 몸과 느낌과 마음과 법을 관찰하라.



사념처 수행(四念處 修行, ①身念處 ; 나의 몸은 더러운 것으로서 집착할 것이 못된다고 보는 것이다. ②受念處 ; 어떠한 느낌을 받아도 그것을 모든 괴로움의 근원으로 본다. ③心念處 ; 나의 마음은 머물러 있지 않고 항상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④法念處 ; 모든 것은 원인과 조건에 의하여 성립되는 것이므로 하나로서 영원히 머무는 것이 아님을 나타낸다)을 권합니다. 정념(正念)이 되어야 됩니다. 이것을 조금 달리 말하면 '지혜명상'이라고도 하고, '위빠사나'라고도 하고, '관(觀)'이라고도 합니다.



이제 뒤에 나오는 정정(正定)은 '지(止, 사마타(samatha))'입니다. 그런데 정념(正念)에 대한 교학 서적을 보면 대단히 중요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영구적인 자아(自我), 혹은 개체적인 영혼이라는 것이 없다. 어떤 법칙, 업(카르마)의 법칙에 따라 흐르고 있다는 것을 뚜렷이 볼 것이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큰 잘못입니다. 여러분,《아함경》을 볼 수 있도록 스님이 지침을 가르쳐 주는 거예요. 이런 것이 쓰여 있어요.



공부를 더 깊이 하지 않아서 이렇게 빠지는 거예요. ‘영혼이 없다는 것을, 영혼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영구적인 자아, 혹은 개체적인 영혼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 관(觀)을 더 깊이 해서, 정정(正定)으로 들어가서, 삼매에 들어가서, 더욱더 공부 공부 해가지고 보살 상품보살 최상품보살 붓다의 경계에 가야 영체를 본다고 했지요. 못 보면 가만히 있지, 왜 이런 무서운 말을 했느냐 그거예요. 편집한 사람이 크게 잘못한 거예요. 지금 이 법문이 전국으로 방영되기 때문에 중요한 것을 스님이 지적한 거예요. 이것 때문에(이렇게 보았기 때문에) 불교가 망한 거예요.



신체에 대한 관찰, 정념(正念)에서 신체의 사념처(四念處)가 나오는데,

▸몸은 덧없고 괴롭고 나(我)아닌 것으로 보라. 여러분! 이 몸뚱이, 또 우리의 생각은 무상하고 덧없고 괴로움 덩어리이고, 그리고 나(我)가 아니어요. 생각도 나(我)가 아니어요. 내 것도 아니어요. 이걸 비아(非我)라고 그래요. 무아(無我)라고 쓰는 것이 아니어요. 비아(非我)라고 해야 되요. 비아(非我)예요. 그러나 공부를 더 해서 관(觀)과, 염(念)과, 정(定)을 더 향상시키고, 지관수행(止觀修行)을 더 해 들어가 보니까 육도 윤회를 하는데, 연기(緣起)의 이법에 따라서 육도 윤회를 합니다.



이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부부가 살면서 수정을 하잖아요. 그때 들어오는 놈이 있고, 우리가 죽을 때 나가는 놈이 있어요. 그놈이 나가버리면 죽는 거예요. 그놈을 바로 영산불교에서는 '영체(영혼체)'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이 영혼체에 대해서 몰랐어. 이것을 알았더라면 우리 불교가 인도에서 쫓겨나지 않았어요. 여러분, 알아야 됩니다. 이 신체에 대한 관찰, 신체가 12가지의 부정물이 있는데, 이것을 관찰하고, 또 죽은 사체를 관찰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느낌에 대한 관찰

▸그 다음, 마음에 대한 관찰

▸그 다음, 법에 대한 관찰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덧없고, 괴롭고, 무아(無我)로 보는 것입니다. 법에 대한 관찰은 오개(五蓋)가 있고, 오온(五蘊)이 있고, 칠각지 사성제의 관(觀)을 해야 됩니다. 어쨌든 정념(正念)에는《아함경》을 보면 여러 가지 공부법이 있습니다. 정견(正見)에 해당되는 것으로 오온관, 사제관, 인연관, 사념처관, 부정관, 백골관, 자비관, 염불관, 수식관 등이 있습니다.



⑧ 정정(正定)입니다.

정정(正定)으로 들어갑니다. 정정(正定)은 진정한 삼매를 말해요. 집중을 해야 삼매에 들어가게 되는데, 집중하는데 있어서 우리 부처님께서는 40가지를 집중의 대상으로 가르쳤어요. 청황적백 지수화풍 등등 40가지입니다. 그래서 참 선정으로 들어가는데, 선정으로 들어가면 우주의식을 깨칠 수 있고, 아스트랄 영역까지 체험하게 된다 그래요. 탐욕과 증오심을 제거한다고 하는데, 더 깊은 삼매에 들어가게 되면, 더 깊은 세계인 성중하늘 세계 ․ 극락세계 ․ 절대계까지 볼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생사에서 해탈하려면 삼매를 얻어야 되요. 삼매에 들어갈 수 있어야 되요.



삼매에 들어가려면 앞의 정견 정사(정사유)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이 토대가 되고, 공부는 정념과 정정(正定)을 해야 돼. 정념, 정정(正定), 이것을 꾸준히 해나가는 것을 지관수행(止觀修行)이라고 해요. 지관수행, 명상, 불교명상, 선(禪)이라고 해요. 앞으로 쭈~욱 들어가서 삼매에 들어가는 거예요. 부처님께서 성도한 요결도 이 선정(삼매)에 의해서 붓다가 되신 거예요. 정(定)은 선정(禪定)이라고도 하고, 심일경성(心一境性)이라고도 정의해요. 그 정도로 하고,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칭명염불을 권합니다. 이 칭명염불이 팔정도의 정념(正念) 정정(正定)에 해당합니다. 칭명염불을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먼저《금강반야바라밀경》을 1독하라고 했지요. 이는 공덕을 짓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 다음, 부처님다라니(비로자나총귀진언)를 하도록 한 거예요. 이는 영적인 힘을 넣어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 다음에 '석가모니불'을 염불 하는데, 입으로는 석가모니불을 하고, 이 몸속에 있는 한 놈(마슬다니는 놈, 도망다니는 놈)한테는 '금강반야바라밀'을 하라고 했지요. 그러니까 입으로는 '석가모니불'을 하고, 뜻으로는 '금강반야바라밀'을 하는데 동시에 해라. 정신집중이 문제인 거예요. 정념(正念) 정정(正定)은 정신집중을 시키기 위해서 하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해봐서 알 거예요. 이 정신집중을 시키려고 하면(여러 갈래로 산만하게 흩어져 있는 생각들을 하나로 묶으려면)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차라리 둘로 쪼개 줘버리는 거예요. 하나는 '금강반야바라밀'을 시키고, 하나는 염불을 시키는 거예요. 그래서 일념(정념)이 되게 한 거예요.



▸그 다음에, 저기 석굴암 불상을 마음속에 그려라고 했을 거예요. 그리는 것이 관(觀)이어요. 위빠사나예요. 미간에서 방광함을 보라. 거기에다가 집중해라. 이건 지(止)예요. 지관(止觀), 지(止)의 수행이어요. 사마타(samatha) 수행입니다. 그리고 석가모니불을 칭명하라는 이유는 우주적인 부처님의 가피력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팔정도 칭명염불'을 하는 거예요.



그냥 칭명염불이 아니라 더 자세히 말하면 '팔정도 칭명염불'이어요. 부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세요. '팔정도 칭명염불'을 하라는 거예요. 그러면 선정에 들어가지 않아도 앞에서 말한 오개(五蓋), 심성을 덮고 있는 탐진이라든지 하는 다섯 가지의 덮개가 벗겨지지요. 탐진의 뿌리가 뽑혀지려면 부처님께서 가피를 주시면 뽑혀져요. 업장도 소멸 되고요. 그래서 영산불교에서는 '팔정도 칭명염불'을 제창합니다.



여기에 반드시 윤회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면, 윤회는 접어두고 여러분들이 높은 하늘에 태어나기를 바란다면 여러분의 돌아가신 부모 조상님을 아래 하늘 정도까지는 천도해줘야 됩니다. 이게 필수입니다. 이게 뭐냐? 많은 생을 살아오면서 내가 은혜를 입고, 빚진 것을 갚으라는 말입니다. 나를 낳아 길러주고, 오늘날 이렇게 훌륭하게 된 것은 모두 다 부모님 덕(은혜)이어요. 그런데 부모님은 죽어서 지금 저기 지옥에 있는데, 자기만 하늘가고 윤회를 벗어나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현지사에서는 부모님 살아계실 때 잘해드려라. 돌아가셨으면 그 진짜 몸뚱이가 지금 지옥에 가 있으니까 그 영혼체를 구제해 드려라. 그 영혼체를 구제해 줘야 되요. 중생들은 지은 업에 따라서 그대로 과보를 받습니다. 이제 타력으로(부처님의 가피력으로) 구제해 주는 거예요. 구제해 줘야 되요. 은혜를 갚아줘야 되요. 빚을 갚아야 되요. 그래야 내가 아라한이 되든지 보살이 되든지 하는 것예요. 부처님께서 인가하실 때, 무루대아라한과를 인가하심에 있어서 아직 부모님과 모든 조상님들이 지옥에 있으면 인가를 안 해 주시더라고요. 이것을 꼭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팔정도 칭명염불'로 끝나는 것이 아니어요. 보살행을 해라 그거예요.《금강경》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맞습니다.《금강경》의 말씀이 맞다 그거예요. 깨달음을 위해서는(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하기 위해서는) 보살행을 하라 그거예요. 보살행을 해야 되는 거예요. 공부만 한다고 해서 아라한이 되고, 보살이 되는 것이 절대 아니어요. 그건 절대로 아니어. 이타행, 보살행을 해야 돼. 보살행 중에서는 부처님 교단을 위해서, 정법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도와주는 것이 최고의 보살행이어요. 이건 보현십행(십대보현행원)이 있잖아요.



여섯 가지가 다 부처님에 대한 항목입니다. 부처님 잘 모시는 거예요. 부처님 정법을 위해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것, 이게 최고의 보살행이어요. 그러면 우리 부처님께서 업장을 씻어 주시더라고요. 업장을 씻어줘. 다겁생래 죄업장을 씻어주시더라고. 소멸까지 해주시더라고. 이건 누구나 못하는 거예요. 자력으로는 자기가 지은 업장을 소멸하지 못합니다. 죽으라고 공부하면 정화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멸은 안 돼.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소멸해 주시더라고요. 이끌어 주시고요. 그리고 무서운 것이 또 있지요.



여러분 알지요. 내․외마(內․外魔)가 있습니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용신이나 망양신이나 천마(天魔)한테 빙의되면 이건 끝나는 거예요. 아마 상당한 미래 생까지 가요. 용신이 빙의되면 축생으로 오더라도 구렁이가 되게 되어있어요. 지옥을 가면 구렁이지옥에 가고, 또 사람으로 와도 그놈이 빙의하게 되어있어요. 이건 정말 밀장인데, 용신 따위가 자기의 졸개로 표시를 해 놔버리면 그런다고요. 이 소식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부를 하려면 스승을 잘 만나야 되요. 다 하는 것이 아니어요. 공부는 혼자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어요.  스승님 밑에서 해야 돼. 그렇게 해야 외마가 들어오는 것을 막아주고, 빙의되어 있으면 떼어주고, 삼매에 이끌어 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스승이 있어야 됩니다. 그것을 꼭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천상천하에 부처님 같은 위대하신 대성자가 계셨을 때에는, 그 분의 위신력으로 1,250명의 비구 분들이 팔정도(八正道)와 기타 지관수행을 통해서 성문사과(聲聞四果, 성문들이 얻는 네 단계의 깨달음. 수다원과, 사다함과, 아나함과, 아라한과이다)의 성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스승 없이는 성과(聖果)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내․외마, 특히 외마인 용신 망양신 천마 등의 방해와 빙의를 막을 수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선 경계에 착(着)하면 빙의의 시작입니다.



천마 등 외마를 막아주고 빙의를 떼어줄 수 있는 큰 스승을 만나야 됩니다. 그래야 공부가 됩니다. 그 다음, 말씀드렸다시피 돌아가신 부모 조상님을 하늘까지 천도해 주지 않고서는 아라한 이상의 성과는 도저히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우리들 승려들은 이 두 가지 점을 유념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주관하시는 우리 현지사의 완벽한 천도재를 지혜 있는 사람들은 꼭 모셔서 돌아가신 부모 조상님들을 하늘까지 천도해 줘야 할 것입니다.



지옥에서 무서운 형벌을 받고 있는 영가를 어떻게, 어떤 도인이 있어서 그 지옥의 영가를 데려온다고 합디까? 짐승 몸을 받아서 갔는데, 그 조상 영가를 어떻게 짐승 몸에서 빼낼 것이며, 하늘세계로 올려 줄만한(천도해 줄만한) 큰스님이 역사이후로 있답디까? 그리고 '팔정도 칭명염불'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법문과 학승들의 법문과 도인의 법문과 영산불교 자재만현의 법문은 다를 것입니다.



시간이 다 되었기 때문에 게송만 읽어드리겠습니다. 지금 관세음보살님을 뵙고 하는 게송입니다.



관세음보살 친견 게송



오! 아름다움이어! 장관이어라

정법명왕불 백의관음보살님이시어

수 천안 나투시구나.

밝은 거울 허공에 있는 듯

시방이 모두 밝음 뿐이라

깊이 삼매 청정함이어

무엇으로 견줄 수 있으리.

오! 자비스러운 스승님이시어 크고 넓은 바다여

환희로운 대적정삼매여라.

한 티끌 한 생각 오고 감이 없는

신령스러운 빛만이 여여 하구나.

대자대비하신 크신 사랑 밝은 지혜 드러내니

한량없는 마음으로 감사의 절 올립니다.



원만보신부처님께 올린 오시공양 게송



원만보신불님들께 대웅보전에서 오시 공양을 올렸다.

허공계 가득 메운 원만보신불님들 헤아릴 수 없이 많으시다

모두 깔끔한 인상에 자비로움 극치이시고

황금색 장삼에 빨강 대가사

보기만 해도 아름답고 장엄 하구나

지금까지 공부하여 많은 붓다님들을 친견하였지만

늘 함께해서 보고 있지만

뵈올 때마다 그 희유하신 모습과 청정함 허공 같아서

환희로운 마음 견딜 수 없네.

삼계의 붓다님 원만보신불님들 끼리는 빛과 빛으로 상속되어

광명과 자재는 깊은 삼매 속에 위신력 많이도 받는다.

현지사 춘천본사 부산 대전분원 억종 대광명으로

나쁜 기 있으면 모두 제거하시는 구나.

말할 수 없이 깔끔하고 깨끗하다

동참 신도 분들까지 업장 씻어내고 벗겨주셨다

부처님 억종광명은 중생들 선근 따라 복을 주신다

착해 질수록 나쁜 업 제거해주신다.



하나만 더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전생의 신라시대 선덕여왕, 우리 현지사 어느 여자신도 분 있지요. 그분이 정토26품의 보살과(菩薩果)를 인가받았습니다.



신라 선덕여왕 보살과(菩薩果)인가받다



그분은 나(我)라는 생각이 없는 부처님 교단에 많이 시주를 한 착한 여인이다. 불세존께서 정토26품을 인가하셨다. 약사여래부처님께서는 약사궁 보살의 피로 교체해주셨다. 아미타부처님께서는 박덕임 보살 아기 안고 오셨다. 아주 예쁘게 잘생긴 남자아이다. 지장보살님께서는 정토보살답게 업장소멸 정리 해주셨다. 허리 병은 업병인데 소멸시켜주셨다. 문수보살님께서는 사중죄를 목한삼으로 정리해주셨다. 미륵보살님께서는 사업이 잘 될 수 있도록 복을 주셨다. 박충희 보살, 박덕임 보살을 우리 현지사로 인연 짓도록 모셔온 분인데, 그 박덕임 보살이 보살과를 얻었기 때문에(보살이 되었기 때문에) 공덕으로 성중25품 인가를 받았다.



마치면서



스님이 지금 풀어서 이야기할 시간이 없어요. 제한된 시간이고 해서 여러분들에게 팔정도 법설을(이야기를) 해준다고 하여, 팔정도 말씀을 간단간단하게 짚어가면서 우리 영산불교에서 본 시각으로 팔정도 해석을 해드렸고, 영산불교의 수행은 '팔정도 칭명염불'인데, 이건 정말 완벽하고 역사적인 수행법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 현지사가 현지궁이라는 소식. 미륵보살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잠깐 해드렸습니다.



충분하지 못해서 아쉽지만, 한 달에 두 번씩 법문을 하고 있습니다. 조금 어려운 불교용어를 사용하여 법문을 하더라도 여기 동참한 인연공덕으로 업장이 많이 벗겨져 나가고 떨어져 나간다는 것을 아십시오. 왜냐하면, 앞에서 부처님께서 정좌하시는 법문 장면을 소개해 올렸지요. 그렇기 때문에 스님 말씀이 진실임을 꼭 믿으십시오. 또 여러분이 잘 되려면, 사업이 잘 되고, 자식이 훌륭하게 되고, 또 출가인(출가승)들이 윤회를 벗어나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전생의 은혜와 빚을 갚아라. 조상님들은 전생의 부모요, 자식이고, 마누라요, 남편이고 하기 때문에, 그 모든 분들을 네 번 다섯 번 정도는 천도재해서 6하늘 정도, 그러니까 사왕천 하늘입니다. 거기 까지는 올려드려라. 거기 까지 만이라도 올려드려라. 그 복을 지어야 된다. 그래야 된다. 그러지 않고서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을 힘주어 말씀드리면서 오늘 법설을 이만 마치겠습니다.



함께 석가모니불 칭명염불을 합니다.



나무 영산불멸 학수쌍존 시아본사 구원실성 석가모니불...

천상천하무여불 시방세계역무비 세간소유아진견 일체무유여불자

고아일심귀명정례 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