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24일 토요일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1]










머리말


상수보살이 사바세상에 인신을 받아와 다시 수행자 되어 깊

은 선정에 들면 무량광을 봅니다.  그리고 안으로 육종진동을

맞습니다.  그럼 무아 속 절대세계에 여여(如如)히 계시는 부처님

들을 뵙고 법문을 듣게 됩니다.  이 경지에서 자기 불신(佛身)이

생깁니다.



모든 부처님들은 무량광(無量光)이라는 빛으로 몸이 이루어집

지다.  무량광! 불신을 이루는 빛--------



1.    미래제가 다해도 없어지지 않는, 따라서 일찍이 생긴 적도

       없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의 빛 그래서 훼손 될 수 없다.  또



2.    그 빛은 오염될 수도 없다 불구부정(不垢不淨)인 것이다.



3.    지극히 청정하고



4.    한없이 예쁘고 아름답다.



5.    안팎이 들어나 영롱하기 그지없다.



6.    어떤 빛보다 차원이 다르게 밝다.  중생이 본다면 가루가

       될 것이다.

       일생보처의 보살도 선정에서 보지만 실명할 정도다.



7.    천둥번개 칠 때의 섬광과도 비교 안 되는 강도에다



8.    천만억의 빛깔로 되어 있다.  그래서 경에서는 백종 오색광,

       억종광이라 한다



9.    한량없이 방사(방광)해도 끝이 없어 부량광이라 하겠다. 

       삼천대천세계를 감싸고도 남는다.



10.   땅 속이든 물 속이든 마음 속이든 삼천대천세계 어디든

       (지옥이든 천상이든, 윤회 안이든 밖이든) 비친다,

       그러니 자연의 빛과도 다르다.  이미 이 빛은

       입자가 아님은 물론이다.



11.   중생의 지중한 업장을 소멸도 하고



12.   그래서 신통력을 지닌 빛이요



13.   물 속 깊이, 땅 속 깊이 숨어버린 영악스런 무주고혼을

       잡아 낼 수 있기도 하는 그런 지혜 광명이요,



14.   백천삼매, 대적정삼매를 들 수 있는 부사의한 빛이요,



15.   중생이, 그 앞에 있는 빛인데도 이를 볼 수 없는 신비스런 빛이요,



16.   일체 자재한 신력(神力)을 지닌 빛이요



17.   사바세계를 들어 던져 버릴 수 있는 큰 힘을 지닌 빛이요.



18.   외도를 보복받는 빛이요(탐진이 남아 있는 외도는, 두더지와도 같이

        그들은 햇빛 --- 무량광에 결정적으로 약하다)



19.   부처님들은 이러한 청정 무량광(모든 빛 ---

         자성광이나 극락정토의 빛의 本源光)

       으로 불신(佛身)이 이루어져 있으므로

       부처님은 32상 80종호를 구족하고 삼신 사지 오안 자비 복덕등

       18불공법을 구족하게 됩니다.

      부처님들은 자유자재로 신체의 19군데에서 단색을, 

      혹은 억종광을 그때그때 필요에 의해서 방광합니다.

      <<화엄경>>이나 대승경전에 볼 수 있는 것처럼

      사실로 그러합니다.





불신(佛身 - 청정법신불 원만보신불 변화신佛)을 없다 하면 이렇듯

법을 모독 능멸하면 무간지옥의 과보를 받습니다.  심즉시불

(心卽是佛)이라고 우기고 막행막식하면 영원히 구제할 수 없습니

다.  거룩하시고 희유하신 부처님께 우리는 미래제가 다하도록

이 목숨 내 놓고 귀의 귀명해야 합니다.



음계 중계를 목숨처럼 소중히 지키면서 대승경전 읽고 염불

하면서 참회 발원해야 합니다.  효(孝)를 다하고 이타행(보살행)을

열심히 지어가야 합니다.  팔정도, 육바라밀 수행하지 않으면 이

몸 제도할 수 없습니다.  아라한의 성과(成果)나, (정토)보살이 될

날 없습니다.



바야흐로 정법(正法)은 쇠잔해 있는 악세(惡世)입니다.

내가 쓴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책 내용 모두는 진실임을

거듭 밝힙니다.  그동안 수 10회에 걸쳐 불교TV, Radio, 인터넷

음성법문 .....을 진지하게 들어 본 이들로부터 감격에 겨워 수

많은 격려 편지와 전화 등이 걸려오고 있습니다.



그 중, 책을 내어달라고 써 보낸 원고 6편을 여기 실어 <<21

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이라는 제목을 달아 세상에 내 놓습

니다.  내 진실한 법문 말씀을, 머리가 돈 사람의 지껄임으로 모

함합니다.  그러나 스스로 일어서서, 나에게 열렬히 박수를 보내

는 최고의 불자(佛子) 지성인들의 글을 우선 내 놓습니다.



나는 내가 쓴 책<<21세기 붓다의 메시지>> 내용 모두를 인류

역사의 제단(濟檀)에 올려놓습니다.



남섬부주 모든 이들에게 두 손 모아 바칩니다.





                                                        불기 2550년  11월  15일

                                                       현지궁 현지사 자재 만현





한국 불교, 자기 갱신 없이 앞날 없다


-조우석-


우리가 덕담을 겸해서 던지곤 하는 한국 불교에 대한 호의적

평가란 대강 이쯤 된다.  "고대 이래 10세기 넘는 지금까지 동

북아시아 선 불교의 수행 전통을 간직하고 있고, 특정 종교의

차원을 넘어선 우리 기층문화의 소중한 유산."



사람들의 평균적 인식을 반영하는 이런 평가에 단골로 따라

붙는 메뉴는 또 있다.  통通불교라는 자랑..... 선 수행을 중신

으로한 종풍에다 교종과 밀교가 두루 포함된 불교 백화점이라

는 주장이다.  이런 통념이 분명 검증된 것은 아닌데도 우리는

종종 턱없이 비약과 함께 '기분'에 취한다.



"이웃 궁국은 문화혁명 이후 망가진 자기 전통을 복원하기

위해 한국 불교를 배우려고 유학생 파견하고 있잖아. 일본 불

교? 그들은 스즈키 다이세츠 이래로 '학문화된 불교'라서 선 수

행의 전통은 부실하다고 봐야지. 서구 사회가 1868혁명을 전후

해 불교에 괸심을 가진 게 벌써 수십 년인데, 불교 세계화의

이 시대에 한국 불교의 전망은 좋다고 봐야지."



과연 그럴까?  의심받지 않은 진리란 썩기 마련인데, 1천 년

전통의 한국 불교는 과연 건강한가?  조선조 때 권력에 의해 강

제로 선종과 교종이 합쳐지고, 이후 축소 일변도로 흘러와 조

선 중기 이후 지금까지 정말 필요했던 자기 갱신에서 한참 멀

었던 역사를 막연하게 '통불교'라고 일컫고 있는 것은 아닌가?



9세기 중국 고대의 당나라에서 시작된 선 불교란 본디 인도

불교와 중국 문화, 도교의 사이에서 만들어진 제3의 변용인데,

그 조사선만이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불교 패러다임의

전부일까?  혹시 조사선이란 오랜 동어반복의 과정 속에서 많이

진부해지고 활력을 잃은 것은 아닐까?



이런 의문은 한국 불교의 역량이 만천하에 유리알처럼 들여

다보이게 된 이 시대 더 이상 피할 수 없다.  21세기 초입의 지

금 시대란 불교가 고대나 중세 때와 또 달리 '전 지구적 종교'

의 차원으로 대두된 시기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에 앞서 티벳 불교나 남방 불교, 여기에 위빠사나

선 등이 서구에 먼저 소개됐고, 영향력 역시 한국 불교에 비해

크다.  티벳 불교 들이 '속이허한' 한국 불교에 여수입된 지도

10여 년이 됐다.  달라이라마와 틱낫한 스님을 포함해 불교 관

련 영문 저술의 번역물이 독서 시장에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

다.  급한 마음에 사람들은 미국 명문대 출신 제자들을 길러낸

숭산 스님의 업적을 들먹이지만, 그건 외려 서구 콤플렉스를

반영할 뿐이다.



서구사회가 그들 언어로 노자의 <<도덕경>>이나 공자의<<논

어>>등 동양고전들을 휼륭하게 번역해 온 역사가 이미 2백여

년이고, <<법화경>>을 포함한 불교 경전의 번역 역시 우리를

앞선 지 오래라는 점도 이미 상식이 됐다.



선 참구 수행만이 정통이고, 나머지는 속 좁게도 외도로 내

모는 이 와중에 '동북아 선 불교의 본거지'라는 덕담 혹은 자랑

이란 철모르는 소리가 아닌지를 되물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

다.




 한국 불교는 우물 안 개구리?


한국 불교에 대한 이런 의문 속에서 만난 법문집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자재 만현 스님 지음, 현지궁 현지사 펴냄)는 예사롭

지 않았다.  고백컨대 충격으로 다가왔다.  앞서 필자가 언급했던

오랜 의문에 일정 부분 실마리를 제공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이 법문집은 지금 한국 불교계의 오랜 '관습화됀 유산'을

뒤흔듣다.  가히 파천황이다.  냉정하게 말해 '한국 불교의 정체

성에 대한 도전이고, 자기 갱신을 요구하는 사자후'에 다름 아

니었다.  <만현 스님과 인터뷰 참조>



"한국 불교가 천 년 넘게 선 불교 영향을 받아서 많은 불자

들의 인식이 고착돼 있음을 잘 압니다.  선종과 대다수 불교학

자들은 마음이 곧 부처라는 말을 '마음을 깨치면 부처'라고 해

석합니다.  그러나 나는 견성이 공부의 시작에 불과하며, 부처를

이루는 머나먼 도정의 출발점에 불과하다고 선언하는 바입니다.



이 나라의 불교 가르침은 많이 왜곡돼 있습니다.  교학의 바탕

이 되는 불교 경전 공부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11족~12쪽)



만현 스님은 화두 참구 일변도로 진행되어 온 지금의 한국

불교 수행 방식에 '노!'를 분명히 하는데, 내가 보기에 만현 스

님의 이런 문제 제기는 지난 1981년 당시 조계종 종정이었던

성철 스님의 돈점노쟁과 일단 비견할 만하다. 아니 그 위력은

크게 앞선다.  20년 전의 돈점논쟁이 한국 불교 정체성 자체는

피해간 데 비해(아니 고착시킨 데 반해), 만현 스님 쪽은 훨씬 근

본적인 문제 제기로 시종한다.



이 점을 선명하게 의식하고 있기 때문에 그는 "내 문제 제기

는 불교 교학 발전의 한 획을 긋는 일"(13족)이라고 밝히고 있

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해당되는 자신의 법문은 먼 훗날

평가받을 것"(166쪽)이라는 발언도 던져 놓고 있다.  어쨌든 간에

만현 스님의 발언은 "불교사적으로주목할 만한 큰 사건"(156쪽)

이면서도 지금의 한국 불교계에 뜨거운 메시지다.  무엇보다 현

재의 한국 불교는 정연한 체계를 갖춘 정통 불교가 아니라 심

교, 즉 마음의 종교 수준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우선 강

렬하게 눈에 뜨인다.



왜 그럴까?  대승불교의 주요 경전인 <<법화경>> <<화엄경>>

등을 잘 읽으려 하지 않으니 교학에 어둡고, 거기에 나오는 생

사관을 포함한 핵심 교리들을 방편설 정도로 치지도외하는

몽매한 태도로 일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법

문집은 '우물 안 불교'에 대한 정문일침이다.  자기의 오랜 수행

이력의 내공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도 당당하다.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으려고 하는 것은 모래를 쪄서 밥을

구하는 것과 같다고 지금의 불교계에서는 말합니다.  이 마음이

곧 부처요, 마음자리가 곧 극락이라고 합니다.  (그 결과) 지옥과

극락을 마음 안에서만 찾으며 그것(지옥과 극락)은 따로 존재하는

실재가 아니라 우리 마음의 산물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때문에) 마음 밖에 엄연히 존재하는 지옥, 극락, 부처와 보살

등을 인정하지 않습니다."(40쪽)



"선은 자기 존재의 본성을 꿰뚫어 보는 것 정도로만 가르쳐

왔습니다.  그래서 지옥이란 것도 우리 마음의 산물로 (가볍게)

봅니다.  서방극락 역시 우주생명의 근원적인 바탕 정도록 봅니

다.  ----- (이런 식의 소박한 인식은) 자유와 평등의 정의사회를 구

현할 때 그곳이 바로 극락이라는 비약으로 연결됩니다.  관세음

보살, 관세음보살 하는 말도 우주 생명을 의인화한 것이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말합니다."(192쪽~193쪽 요약)



만현 스님은 이 같은 법설이 정법을 능멸하는 외도의 설이라

고 단언한다.  이를테면 선 불교 쪽에선 <<법화경>> 속에 등장

하는 족쇄, 독충, 귀신 등을 비유와 상징으로 해석해 왔다.  대

중교육을 위한 서적 상상력의 장치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다.



상황이 그러하니 <<법화경>> 11장 <견보탑품>, 15장 <종지

용출품> 그리고 16장 <여래수량품>, <<화엄경>>의 <세주묘

엄품> 을 '시성정각' 이후의 위대한 메시지를 문학작품

정도로 읽고 만다.




법신에서 보신 개념으로 대전환

그러면 만현 스님 법문의 키워드는 무엇일까.  그것은 '법신

개념 위주의 불교'에서 보신개념 위주의 불교'로 대전

환일 것이다.  보신 개념으로 불교 세계를 전면 재구성하는 것

이다.  자재 만현 스님의 말대로 필자는 그런 불교관을 불교 세

계의 새 패러다임 도입과 구축 노력이라고 보는 쪽이다.  대승

경전에 나타난 핵심 정보와 사항이 새롭게 이해되기 때문이다.



읽어보자.

<<법화경>> 16장의 경우, 부처는 "나의 말은 진리이므로, 나

의 말을 믿으라."는 권면으 세 번 되풀이한 뒤 자신이 지난 40

년 간 이 땅에서 설법을 했던 '역사 차원의 석가모니'가 아니

라, 백천만 아유타겁 동안 이미 부처였다고 설파한다.  즉 절대

세계에 따로 존재하는 '궁극적 실재'로서의 부처라는 점을 언명

한 것이다.  따라서 2500년 전 출현한 석가모니란 중생을 위한

현현의 한 방식이었을 뿐이다.



당시 제자들은 일상의 차원에 갇힌 채로 부처님 말씀에 그저

당혹해 한다.  11장 <견보탑품> 에서 현실의 이 땅인 영취산

바로 그 자리에서 다보탑이 땅 속으로부터 솟아오른다.  더욱

놀랍게도 '부처님께서 설법을 하는 곳마다 나타나 부처님의 법

문이 옳다고 증명할 것이라 맹세했던 '다보여래'가 그 곳 다보

탑 안에 들어 있었다.



장려한 불국의 장면, 즉 절대세계의 자세한 모습까지를 다시

한번 선명하게 보여줬다.  심지어 제자들 앞에서 석가모니는 다

보여래의 옆 사좌좌에 않아 보이기도 했다.  이야말로 역사 차

원의 이 시공간에 연출해 보인 궁극적 실재, 즉 절대세계의 돌

연한 출현이고, 궁극적 실재와 역사적 석가모니가 하나임을 보

여준 위대한 기적에 다름 아니다.



문제는 그동안 우리는 이런 정보를 시적인 상상력으로 읽어

왔다.  대중 교화를 위한 방편설로.... 즉 추상화 내지 관념화

시켜서 받아들인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자재 만현 스

님의 개입이 시작된다.  그것은 바로 '인견적이면서도 초월적인

부처님 세계의 구체적인 묘사에 다름 아니라는 주장이다.  자재

만현 스님의 불교 세계관을 특징짓는 철두철미한 보신 중심주

의의 등장이다.  무량광으로 된 보신, 절대계에 엄연히 존재하는

보신을 중심축으로 해서 불교 세계를 전면 재구성하는 것이다.



즉, 법신은 비로자나불로 상징되는 빛 그 자체, 진리 그 자체

혹은 우주 그 자체를 말하는 '우주적 몸'.  따라서 보신과는 불

이의 관계인데, 보신은 이 법신을 근거로 해서 나온다.  다

르게 말해 보신은 궁극적 절대계에 존재하는 불신의 구체적인

모습니다.



주목할 점은 이것이 불교학자의 책상머리 발언이 아니고, 독

자적인 수행론과 불교 생사관의 정립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또 만현 스님의 수행 과정과도 긴밀하게 엮여 있다.  그 문제의

보고서가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다.



때문에 만현 스님은 한국 불교에서 말하는 화두 타파, 즉 견

성을 둘러싼 새로운 해석부터 정면에서 문제 제기하고 있다.



흔히 '견성이 곧 성불'이라고 하지만, 만현 스님은 이를 철두철

미 부정한다.  한 마디로 "위험한 표현"일 뿐이라는 지적이

다.  외려 견성은 기나긴 수행의 출발점에 불과하다.



만현 스님은 자신의 수행 경험을 토대로 이렇게 말한다.  즉

화두 타파로 인한 마음자리를 깨치는 순간 하늘과 땅의 경계가

확 뒤집힌다는 것, 바로 이때 "내 앞의 모든 게 공이요, 나도

없고 나라는 생각까지도 사라진" 자성광명을 본다.



생각 이전의 본래 진면목이다.  이때 몸뚱이라는 것이 '가짜 옷'

이고, 나라는 것도 '가짜 나'이며 무상한 존재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이 대목부터다.



그 견성의 단계가 완전한 깨달음이고, 따라서 생사윤회를 벗

어나 삼계를 완전히 뛰어넘기에는 턱없는 것

이라고..........., 이 대목에서 만현 스님은 논리와 문자에 굳이 매

달리지 않고 화두 타파 뒤 선정에 들었던 상태의 경험을 털어

놓고 있어 주목된다.



그에 따르면 선정 속에 몰입했던 때, 한 이불 속에서 심한

문둥병 환자와 함께 밤잠을 자게 되었다.  이런 선정 속 상황에

서도 만현 스님은 문둥이의 존재가 자꾸 의식이 됐다.  또 토굴

에서 보림하던 중 커다란 구렁이 한 마리가 다가올 때도 너무

긴장한 나머지 진땀을 흘리는 자신을 발견했다.  우연히 보게

된 미모의 여인을 보고도 마음이 설레었다고 한다.  그의 표현

대로 "(그런 자신이) 역겹고 싫었다."고 한다.  자신의 화두 타파와

선정이 부처님이 말한 진정한 삼매의 경지가 아니었다는 중간

결론을 만현 스님은 그때 내리게 된다.



그 순간 "진여실상이란 용광로에 무명 번뇌나 업장 따위가

모조리 녹아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고 주장했던 지난 날 "나의

법문을 스스로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경험을 하면서, 진

여자성을 보았다 해서 곧바로 붓다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

았습니다.  부처님과 보살을 뵙고자 했으나 친견은 고사하고 지

옥, 천상도 관할 수 없었습니다.  도솔정토나 서방극락도 끝내

관할 수 없었습니다.'(26쪽~29쪼 요약)



선승인 그가 염불선으로 과감히 방향 전환을 한 것은 그 때

문이다.  이 방향 전환은 두 가지 점에서 놀라운 사건임에 분명

하다.  염불선.  그것은 조사선 일색의 한국 불교에서 오랫동안

외도로 치지도외 돼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현 스님은 염불선

이 인도의 용수와 마명, 중국의 혜원, 선도와 각현 그리고 한국

의 의상과 원효 스님 또 서산 선사 등의 수행법이기도 했음을

주목하고 "침묵 속의 정토업을 쌓는" 수행을 거듭했다고 밝힌

다.  가히 놀랍다.




염불선이야말로 수행의 으뜸


이런 용기는 <<화엄경>> <<법화경>> <<율장>>의 가르침대로

무엇보다 계율을 존중하며, 경전을 읽고 염불을 하는 수행이

부처가 될 수 있는 길임을 확신했기 때문일 것이다.  1970년대

시절의 그 일이 놀랍다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인간 스스로의 수

행인 자력에 의존하는 것에 일정 부분 한게를 긋고 있다

는 점이다.  부처님의 가피라고 하는 타력에 의존하기 시작

한 것이다.  다음 그의 고백을 유심히 음미하기 바란다.



"덕산의 30방을 흔들며, 상에 집착 없는 언어로 공을 읊

고 마치 우주의 주인이 다 된 양 착각 하며 오만을 떨었던 지난

날을 생각하면 그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30대 중반 서울에

올라와 총무원 상임포교사로 법상에 앉은 지 2~3년이 못돼 나

의 공부에 회의를 품기 시작했습니다."(25쪽)



바로 이 지점에서 고유의 불교 세계관이 본격적으로 펼쳐진

다.  그의 단언에 의하면 출가자가 자력의 수행으로 오를 수 있

는 최고의 경지는 아라한까지다.  즉 곧바로 성불한다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인 셈이다.  견성 그 이후부터는 철두철미 부처



님의 가피가 필요하고, 다음 생애에 몸을 받은 아라한의 공덕

이 다시 쌓여 그 결과로 보살의 반열에 오른다.



"문수보살, 보현보살 그리고 관음보살께서 뿌리는 부처님의

광명을 온 몸의 털구멍으로 받아들이는 경계를 종종 만나는 위

력"이 바로 보살의 경계다.



이때 모든 보살이 아닌 최상수 보살 정도가 되면 부처가 뿌

리는 무량광이라는 빛덩어리를 보게 된다.  다음이 부처님 친견

의 경지다.  즉 '불과를 증한 대성자'의 단계에 바로 이때 들어

가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자신의 불신을 절대계의 부처

님 나라에 둔, 즉 법신 보신 화신의 3신을 완벽하게 구족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높디 높은 까마득한 위계의 관문 때문에 '견

성 즉 성불'이라는 습관화된 말은 턱없는 노릇인 것이다.



"무량광을 보기 이전에 부처와 보살이 있다 없다고 말하는

것은 한낱 범부가 지껄이는 망언일 뿐입니다."는 단언(35쪽)은

여기에서 나온다.  만현 스님은 자신이 구축한 삼신 이론과 부

처 성불 단계론이 11세기 티벳의 전설적인 성자 미라래빠보다

구체적이며, <<반야경>> 등에서 설명된 법신 이론 중심의 부처

설명보다 정교한 것이라고 밝히지만, 지금 이 원고는 그걸 검

증할 수 있는 자리는 안 된다.



용궁에 들어가 <<화엄경>>을 가져왔다는 인도의 용수와 달리

만현 스님 자신은 이 책의 도처에서 부처님을 친견했다고 말하

지만, 그것 역시 제3자가 쉽게 용훼할 수 있는 일이 못된다.



독자의 입장에서, 그리고 불교에 관심 있는 이의 입장에서

보건대 만현 스님의 이 '신 불교론'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불교

가 훨씬 불교다워진다는 점이다.  장려한 체계의 구축과 함께

그가 강조하는 신행 활동의 3박자인 염불 - 계율 - 효도는 출

가자와 불자들을 위한 덕목으로 돌연 떠오르게 된다.



장려한 체계라 함은 수행의 단계와 관문만이 아니라 올바른

생사관을 위해 필수인 대목이다.  이를테면 만현 스님은 부처와

보살이  보신으로 존재하는 것은 물론, 지옥과 극락 그리고 윤

회 역시 분명히 존재한다고 설파한다.  마음자리를 깨친 정도의

수행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지장보살본원경>>에 설명되는 끔

찍한 무간지옥은 실제로 있다.  따라서 출가하여 수행하는 이가

설혹 선근공덕이 있어 견성했다 해도 계율을 지키지 않을 경우

특히 음행 무간지옥에 떨어진다고 지적하고 있다.



비유컨대 "수행자가 여자를 가까이 하는 행위란 마치 깨끗한

물 한 컵에 똥물 한 방울이 떨어져 그 물을 마실 수 없게 되

는 것"과 같은 것이니 무소유와 청정을 지향할 것을 권한다.



이 점 요즘 흔들리는 모습의 불교계에 중대한 암시가 될 것이

고, 지옥과 극락 그리고 윤회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대망언을

했던 동양철학자 도올 김용옥 역시 가슴 철렁할 노릇이다.  책

에서 만현 스님은 부처 말씀을 인용하며 "정법을 비방하는 구

업은 그 어떤 죄업보다 지중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만현 스님 설법에서 중요한 점은 따로 있다.  삼신을

두루 갖춘 부처의 위신력에 대한 강조다.  훌륭한 상모와 지혜

그리고 자비와 신통을 두루 갖춘 부처는 온 세상에 자재한 존

재로 성큼 부각된다.  만현 스님이 화두 참구에 앞서 부처님의

이름을 부르는 염불 공부를 "가장 훌륭한 수행법"(208쪽)으로 권

장하는 것 역시 자연스럽다.



"붓다 중의 붓다께서 일러주신 수행법은 바로 염불선입니다.

위빠사나선도 2500년 부처님이 가르쳐주신 공부이기 때문에 훌

륭한 수행법입니다.  염불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하고

부르는 것이요. "지장보살, 지장보살'해도 좋습니다.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하면 더욱 좋습니다.  이것을 칭명염불이라고 합

니다."(208쪽)





신 불교를 대망한다


앎이 짧은 필자같은 이가 불교 교학사의 새로운 장을 열지도

모르는 만현 스님의 메시지를 전한다는 것은 애시당초 무리다.



그러나 그와 우리 동시대를 사는 사람의 느낌으로 말하건대 만

현 스님의 법문은 분명 경청할만했다.  현재 한국 불교의 내용

없는 동어반복의 와중에 감로수를 마신 듯한 느낌 또한 들었

다.  일본 인문학의 젊은 거물인 나카자와 신이치 교수(주오대)가

"일본 불교는 에도시대 들어 창조적인 힘이 멈춘다."고  비판(<<

불교가 좋다>> 133쪽)했지만, 내가 보기에 조선조 중후기 이후 한

국 불교는 자기 갱신 능력에 문제가 있어 왔다.



지난 5월 현지사를 찾은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높은 산 정상

에 올라 보면 앞과 뒤의 정경이 보입니다.  산 중턱에 서서 보

면 시야가 가려 겨우 일부분만이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발언이 갖는 주관적 측면에 대한 위험성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대목은 정작 따로 있다.  <<21세기 붓다의 메

시지>>는 그동안 천 년 넘게 관습화된 수행법과, 선명치 못할

뿐더러 주요 경전들과 따로 노는 생사관에 대한 휼륭한 대안이

자 해석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만현 스님의 발언은 현재의 조계종이라는 틀보다는 정토종에

가깝거나, 아니면 그런 저런 구분을 떠나 '신 불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른다.  이름이야 어떻든 간에 포스트 모던의 이 시대에

불교는 능동적인 자기 변화를 요구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만현 스님의 법문은 '딿아진 이름' 조계종, 아니 한국 불교의

문패를 벗어나 '불교 문예부흥'의 참신한 시도인지도 모른다.




-인터뷰- 

"1973년 전남 함평 태생. 1960년 부산에서 출가(당시 법명

법성)한 뒤 조계종 총무원에서 포교부장과 상임포교사 활동. 서

울 연화사 주지와 해동불교대학장 역임. <<화엄경>>의 선재동자

처럼 여러 신지식을 두루 참방하였으나 뒤에 염불삼매로 부처

님 친견....."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책 날개에 보이는 자재 만현 스님

의 이력의 일부이다.  최근 몇 년 새 <현대불교신문> <대한

불교신문> 등과 불교TV 등 미디어를 토해 법문으로 새롭게

관심을 끌고 있는 만현 스님을 필자는 지난 5월 중순 춘천 현

지사에서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는 1970년대 청담 스님을 모시

고 총무원을 이끈 뒤 돌연 은거 수행해 온 그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스님의 생각이 이토록 새로운데, 차라리 창종을 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과 이에 대한 답변도 포함돼

있다.



스님의 법문은 가히 파천황으로 시종하지만, 화두 타파와 견성은

수행의 출발에 불과하다는 말씀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나는 정통 조계종 사람입니다.  크게 이름을 내지 않으셨지만

대단한 율사였던 석암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지요.  석암 스님은

뒤뜰에서 멸치 한 마리를 먹는 것도 금기를 삼으셨던 분인데,

그 어른의 입적까지 10년을 시봉하였습니다.  통도사 극락암의

경봉 큰스님 문하에 들어가 '이뭣꼬를 붙들고 전라도의 토굴에

서 참구를 했습니다.





자, 중요한 질문입니다.  간화선에 대한 회의는어느

때부터 들었습니까?



밝히지만, 화두 타파를 했던 초창기부터 그랬습니다.  견성이

란 것이 미약했고 크게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염불선으로 돌

아선 것도 그런 배경입니다.





본래 법명이 법성이었는데 세상에 나온 지금은 법명도 바꾸고

하실 말씀이 많을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더 휼륭한 부처님의 제자가 되려는 원력이 컸습니다.



요즘은 밀교, 위빠사나, 남방 불교가 자리를 잡아가는 상황이지

만, 부처님이 직접 가르친 그런 수행법을 외도로 치고 경전을

가볍게 여기는 절 분위기에서는 수행이 어려웠습니다.  화두 타

파는 수행의 시작일 뿐이라는 생각에 나 혼자 염불선에 전념을

했습니다.





책을 펴내기 전 몇 해 전부터 <대한불교신문>에 연재도 하시고 하는데

지금의 불교계에서 이렇다 할 반론 등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유감스럽게도 묵묵부답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많큼 불교

계의 공부가 안 돼있고 또 내 책의 깊이 때문에 손 쉬운 반대

의견 제시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한 가지 묻겠습니다.  만현 스님의 불교관이 이처럼 현재의 불교와 많이

다른 상황이라면 창종도 생각 못해 볼 것이 아니겠습니다.



......... 장종을 못할 것도 없습니다.  고려 중입니다.  그러나 그

래도 부처님의 정법에 근접해 있고 계율에 신경 쓰려는 종단은

현재의 조계종이라는 저의 판단도 동시에 밝혀둡니다.







송구스런 질문입니다.  책에 보면 만현 스님이 아난 존자의 후신이라고 쓰

여 있습니다.  또 수행일지를 보면 부처님 친견을 했다는 말도 거듭 나옵니

다.  이런 말을 액면 그대로 믿어야 할까요?



제가 친견을 한 부처님의 말씀이 그러할 뿐입니다.  단 그것

은 밀장이기도 하니 여러분 앞에서 증명해 보일 수 없습

니다.





사실 얼마 전 입적하신 청화 스님께서도 염불선을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매우 좋은 문제 제기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

는 칭명염불과는 조금 구분되는 '실상염불'이지요.  실상염불은

모든 것의 근본 자리 곧 진여(실상)를 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

로 보고 그 실상의 대명사를 부르는 염불입니다.  저의 염불은

무아 속 절대계에 계시는 부처의 존호를 부르는 칭명염불입니

다.



-스님 지금까지 좋은 답변 고맙습니다.-





지금 서구는 올바른 생사관에 목마르다.


현재 한국 불교가 봉착한 이런 엄청난 문제를 풀기 위해서라

도 올바른 생사관의 정립은 절대로 중요하다.  또 다른 문제는

앞에 언급한 '마음의 종교' 수준으로는 불자를 포함한 수많은

이 시대의 대중들이 당면한 지적 혼란을 감당할 수 없게

된다.  대중들이 곤혹스러워하는 삶과 죽음에 관한 커다랗고 정

확한 그림을 불교가 그려줄 수 없다면, 소망스러운 목표인 '불

교=지구촌 종교'는 역부족이다.



앞에 인용한 단행본 <<스티프>>도 삶과 죽음을 대면하는 서

구사회 엘리트들의 진지하면서도, 그러나 실체에서 거리가 없지

않아 꽤나 안타까울 수밖에 없는 노력의 한 자락을 보여주지

만, 그런 사례는 실은 부지기수이다.



이를테면 지난 해 출간돼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미 하버드

대의 심리학자 스티분 핑거의 단행본 <<빈 서판>>(사이언스 북스

펴냄)만 해도 그렇다.  1,000쪽 가까운 묵직한 분량의 이 책

2003년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의 최종 후보작이자 2002년 아마

존닷컴 에디터가 선정한 최고의 과학저술로 평가받은 이 책은

현 단계 인간의 마음 내지 영혼을 둘러싼 서구 지식사회 지식

의 전부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인간 영혼의 실체 규명과 올바른 생사관 정립에

목말라하는 서구 지식사회의 몸부림도 간취할 수 있다는 얘기

다.  영혼과 생사관 문제에 관한 한 그토록 오랜, 그리고 넓고

깊은 노하우가 있는 불교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을 때, 서구사

회는 그들의 지적 전통 안에서나마 나름대로 눈물겨운 노력을

경주한다.  물론 자기네 패러다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채

맴맴돌이를 하면서도, 자연과학의 최신 성과를 토대로 해서 자

기들 나름의 영혼관, 생사관을 구축하려는 것이다.



그런 노력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면서도, 결국에는 한계에

봉착한다는 점이 함께 눈에 뜨인다.



이를테면 저자 스티분 핑거에 따르면, "인간 영혼, 인간 마음

이란 무엇인가?"를 설명하려는 서구의 지식 전통 중에 가장 힘

이 센 두 개의 이론이 바로 '빈 서판' 이론과, '기계 속의 유령'

이란 이론으로 요약된다.  문제는 이것이 생물학을 포함해 과학

적 토대가 없는 사이비 과학이론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우선 빈 서판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깨끗이 닦아낸 칠판'이

라는 뜻의 중세 라틴어 '타불라 라상'에서 나온 말.



즉 인간의 마음이란 본래 아무 것도 적혀있지 않은 깨끗한 백

지 상태라는 신념을 반영한다.  따라서 착한 본성이나 악한 마

음은 물론 영원한 진리나 신의 관념 따위란 것도 이 깨끗한 마

음에 그림을 그려준 교육과 경험이 심어준 '정보들의 더미' 혹

은 '환영의 흔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빈 서판 이론을 들춰보면 서구사회의 어제와 오늘이 한꺼

번에 보인다고 나는 본다.  즉 인간은 본래가 백지상태를 가지

고 태어나니까 귀족 - 평민 등의 신분의 차이를 인정할 수 없

고, 모두가 평등하다는 서구 근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으로

발전할 수도 있는가 하면, 동시에 '인간 개조'의 헛된 꿈을 가

질 수도 있다.  전체주의 사회에 대한 열망 혹은 우격다짐식의

사회적 열정으로 곧바로 연결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20세

기 초중반의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자들이야말로 그들이다.



 본디 텅 비어있는 인간 마음에 전혀 새롭고도 바람직한 그림

을 그려 넣어서 (프로그래밍을 해서) 사회가 요구하는 사람으로,



즉 전혀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내자는 맹목적 욕심으로 마구 치

달았던 것이다.



그러면 '기계 속의 유령'이라는 또 다른 신념이란 무엇인가.



간단하다.  인간의 육체란 마치 시계나 자동차와도 같은 '기계'에

불과하지만, 이 속에 담긴 마음이란 육체가 죽은 뒤에도 계속

존재하기 마련인 별도의 실체라고 굳게 확신을 하는 또 다른

신념이다.  즉 육체가 공간 안에 존재한다면, 마음은 물리적 공

간 따위와는 전혀 상관없이 유령처럼 존재하는 제3의, 비물질

적인, 그리고 불멸의 존재라서 육체 따위와는 분리가 가능한

그 무엇이라고보는 것이다.  어떠신지.  이런 분석에 왠지 비아

냥거림 내지 조롱의 분위기가 들어있다는 점이 가늠이 되시는

지..... 즉 인간 마음을 보는 이런 두 개의 신념체계는 인지심

리학과 언어심리학 분야 서구 최고의 학자인 핑커가 보기에는

가짜 과학에 불과하다.  왜?  그는 인간의 진정한 주인은 유전자,

즉 DNA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핑커가 보기에 이 진정한 주인공인 유전자를 제쳐놓고 인간

본성을 '텅 빈 칠판'이네 뭐네라고 섣부르게 바라보거나, 마음이

란 것을 기계에 다름 아닌 육체 안의 어떤 유령 내지 실체 따

위로 보는 관념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간단한 문제

가 아니다.  중요한 점은 핑커의 이론이 또 다른 한계에 봉착하

고 있다는 점이다.  그 한계란 '생물학적 결정론'을 말한다.  즉

인간이란 존재를 유전자의 장난에 다름 아니라고 보는 생각 말

이다.  이 경우 적지 않은 당혹스런 결론들을 피할 수 없다.  신

적인 높이를 다투는 인간 고유의 위대함이나 성취란 것도 단박

에 허무해지기 마련이다.





지옥 극락은 '마음의 산물'?


자, 복잡한 사안을 두고 성굽하게 옳고 그름을 논하지 말자.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서구의 지식사회는 그들 나름의 제한된

틀 속에서나마 인간 생사관을 정립하려는 피나는 노력을 기울

이고 있다는 점이다.  또 종교를 가진 사람, 아니 가진 사람들을

막론하고 서구의 근대과학이 적지 않은 일정한 '세속 종교'의

구실까지 해내고 있다는 발견도 해볼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의

한계를 지적하고 나설 것이 아니라, 불교를 포함한 다양한 종

교들의 직무유기부터 탓해야 할 지 모른다.



그 점에서 만현 스님의 지적대로 현재의 한국 불교가 "마음

이 곧 부처요, 마음자리가 곧 극락"이며, "지옥과 극락이 따로

존재하는 실재가 아니라 우리 마음 속의 산물에 불과하다."는

식의 단순논리는 도무지 설자리가 없다.  그런 섣부른 단순논리

를 앞세울 경우 불교는 거의 유사 불교의 수준으로 떨어질 것

은 물론이고, 거기에 더해 올바른 생사관에 목말라하는 우리

시대의 갈증을 외면하는 결과를 빚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결과 혹세무민에 불과한 무당이나 도인들의 검증되지 아

니한 신통력에 빠져들어 헛 인생을 살 가능성도 농후하다.  확

실히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그런 믿거나 말거나 하는 세계에서

헤매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아니면 이 정신 없는 정보화의 세

계화 세상, 동시에 법이 죽어가는 말법의 세상에서 사람들

은 저 세상이란 없으며,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믿는 극도

의 허무주의 속에서 그저 부대끼며 사는 것은 아닌지 모른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수행자들의 경우 무애라는 높은 경

지를 자신의 것인양 희롱하며, 음계를 지키지 않는 막행막식에

빠져들 가능성도 배졔할 수 없다.  반면 만현 스님의 메시지가

전하는 불교의 모습은 심히 장대 장려하다.  엄격한 위계를 가

진 장엄한 세계는 거의 전율스럽기 조차하다.  또 깨달음의 단

계와 맞춰 수미일관하는 틀을 가지고 정교하게 움직인다.  윤회

와 전생이란 불교의 핵심 가르침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로 다가

온다.



이런 상황에서 지옥이나 하늘과 천상은 빼도 박도 못할 위계

질서 속에 층층으로 구분되어 있다.  54개 층의 하늘로 낱낱이

구분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하늘 세계란 모두가 윤회에

서 벗어나지 못한 세상에 불과하다.  훨씬 아래의 지옥도 존재

하며, 제대로 명부에도 들지 못해 중천을 떠도는 무주고혼들의

중음의 세계 역시 엄연하다.  반면 부처와 보살 역시 구체

적인 모습으로 존재한다.  이 대목이야말로 결정적으로 중요한

대목이다.



실은 적지 않은 불자들이 당혹스러워하는 핵심 대목이기도

한데,  만현 스님에게 부처와 보살들은 그저 추상적인 법신

의 개념으로 파악되는 것이 아니다.  구체적인 현존인 보신

의 차원에서 지금 여기에 여여하게 존재한다.  즉 석가모니 부

처는 지금도 인도 영축산의 영산정토에서 법을 설하고 있으며,

보살들을 교화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또 화두를 타파한 수행자가 자력의 힘으로, 즉 인간의 능력

으로 오를 수 있는 구경각의 단계는 아라한 단계일 뿐이

며, 그 이후 부처의 가피라는 타력의 힘으로 비로소 보살 단계

에 오를 수 있다는 점도 분명히 하고 있다.  아라한이란 나를

죽이는 무아의 공부로 들어가 중생이 이룰 수 있는 최고의 경

지임이 분명하지만, 아라한의 단계는 결코 골인 지점이 아니다.



그 단계란 아직은 '작은 열반'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놓치면 안 될 대목은 이런 작은 열반이란 다양한 수행에서

가능한 세계이다.  경계가 온통 뒤집힘으로써 환해져 자성(마음자

리)이 드러나는 것은 조계종의 핵심 수행법인 간화선으로도 가

능하지만 남방 불교의 위빠나사 수행, 그리고 밀교 수행으로도

가능하다.  따라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아라한 단계 이후 '큰 열

반'의 세계다.  그 이후는 어떻게 될까?





 작은 열반과 큰 열반

아라한이 작은 열반에 만족하지 않고 <<법화경>>에서 가르

치는 대로, 보다 높은 위인 보살 붓다가 되기 위해 이사

바세계에 몸을 받아와야 한다.  아라한이 되고 난 뒤 다시 대비

심을 발해서 자기의 원력에 따라 이 세상에 몸을 받아온 뒤에

후퇴 없는 수행 정진을 거듭해야 한다.  그 뒤 결정적으로 부처

의 위신력이라는 절대적인 가피에 의해 비로소 얻을 수 있는

다음의 단계가 바로 보살.



"아라한이라 해도 성중 하늘에 태어났다가 남섬부주(인간세상)

에 다시 오면 잘못된 길에 빠져들 경우 악도에 떨어질 수도 있

다."(<<21세기 붓다의 메시지>> 45쪽, 이하 같은 책)는 만현 스님의 지

적도 도를 이뤘다는 수행자들 사이에서 섣부른 법을 설하는 행

위에 대한 천둥소리로 들어야 옳다.  어쨌거나 이렇게 해서 불

과를 증한 대성자는 엄청난 빛으로 이뤄진 자신의 불신을 무아

속의 절대계, 즉 상적광토인 부처의 나라에 비로소 두

게 된다.



흥미롭다.  고백하지만 미욱한 나는 평소 의문 하나를 품어왔

다.  인간 생사에 관한 의문과 연결된 것인데, 밝히자면 이렇다.



화두를 타파했다는 수행자들의 마음 세계란 어는 정도일까?  확

철대오를 했다는 선사들이 도달한 깨침의 수준이란 과연 어느

정도일까?  또 전등 조사들의 깨침이란 과연 어떤 종류의 것일

까?  여전히 미욱한 나는 이런 의문 앞에 명쾌한 답을 얻을 수

없었다.



이유는 경계에 매달려 사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그 오묘한

깨달음의 세계를 전하기 어렵다는 말 앞에 질려서 그만 등을

돌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현 스님의 법문 이후

앞서의 의문들은 조금은 명쾌해졌다.  "경계가 뒤집혀 온 세계가

안팎이 훤하여 공이 되는 세계"(44쪽)인 견성에도 강약의 단계

가 여럿 있다.  크게 깨쳐 오매일여가 되어 꿈에도 법문을 하는

단계에서 더욱 계율을 견지하여 두타행으로 나가는 것이 필요

하다는 것이다.



또 화두 타파 이후 아라한에 이른 뒤에도 무수한 단계가 더

있으며, 이런 단계는 인간의 노력이라는 자력 외에 타력의 부

처님 가피가 전제가 된다는 것을 안 것이다.  이 경우 불교의

세계란 더 할 나위 없이 장려해지고 지옥과 극락이란 마음의

산물일 뿐이라고 하는 섣부른 통념에서 벗어날 경우 불교 세계

란 진정한 위용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를테면 만현 스님에 따르면 지옥은 분명히 존재한다.  비록

우리 육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영체(영혼체)세계의 남방 지장궁

방향에 있다는 점, <<지장경>>에 등장하는 지옥이란 분명 존재

하는 지옥의 일부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그 중 중지옥의 한 곳

의 경우 열 존가락 손톱 밑을 대꼬챙이로 찌르는 그런 지옥도

존재한다.  이곳에서 우리의 가련한 영체는 무시무시한 고통으로

까무러쳐도 하루에도 만 번이나 죽고 다시 만 번을 되살아나야

하는 지독한 벌을 받게 된다.



앞에서 영체를 말했지만, 자재 만현 스님에 따르면 영제야말

로 진짜 생명체로 파악된다.  매미가 허물을 벗을 때 빠져나가

는 몸이 진짜 매미이듯, 사람이 죽을 때 사대로 이뤄진 것

에 불과한 거짓 몸뚱아리를 떠나는 진짜 생명체가 바로 영체이

다.  따라서 이런 파악에서 앞서 언급했던 서구의 심리학자 핑

커가 냉소적 시각으로 언급했던 육체 마음의 이분법은 보다

큰 설득력을 가지고 다가온다.



다음 자재 만현 스님의 발언을 귀담아 들어보자.  불교가 훨

씬 위대한 종교 세계로 성큼 내 안에 들어온다.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생에 선근 공덕이 있어

온갖 마장을 이겨내고 정진을 멈추지 않아 크게 도를 깨친 이

라도 음행을 저지르며, 또는 불보살과 지옥 극락이 실제로 있

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 있을 뿐이라는 망언을 통해 부처님

과 법을 왜곡 능멸한다면 무간지옥에 빠져나올 기약이 없습니

다.  불교에서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많은 선행을 행하라'고 가

르칩니다.  궁극에는 자정기위해서 생사의 해탈을 바라는 위대한

종교입니다."(43쪽)



이 밖에 변화술에 능한 천마의 속임수로 부처님을 보았

다는 등속의 언술에는 상대적으로 초연해질 수도 있다.  확실히

우리 중생들은 과거의 도인들이 보여준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능력인 천안통,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것을

알아체는 타심통, 나와 다른 사람의 전생을 아는 숙명통

을 포함한 신족통, 누진통 등의 신통력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인간의 앞날을 말하고 병을 낫게 해주는 영

체은 주로 저급한 영이 인간 몸에 빙의하여 생기는 수준의 신

통력이라는 것이 만현 스님의 말이다.  하지만 아라한 성자만

돼도 빙의가 일절 없으며, 영체에서 보름달 같은 백색광이 뿜

어져 나와 일체의 귀신이나 외도의 하늘 신들이 혼비백산한다

는 메시지는 명쾌하기 짝이 없다.



이런 생사관을 전제로 하고 우리가 알만한 동서고금의 주요

수행자와 철학자들의 깨침의 정도를 구체적으로 언급한 대목도

이 잭에는 꽤 등장해서 여러 가지로 흥미롭다.



이를테면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  그는 '자성은 본 사람으로

규정된다.  11세기 전설의 성자인 밀라레빠.  그는 정토의 상품상

의 보살로 왕생했다.  또 인도의 용수 마명 무착 천친 호법,

중국의 현자 혜원, 우리나라의 원효 의상 서산 함허 스님들

의 경우 서방 극락세계에 왕생한 정토 보살들이라고 언급된다.



이런 언급이란 '큰 종교'의 본래 모습을 회복한 불교의 세계

가 동서고금의 주요 수행자들과 종교인들을 배척하지 않고 외

려 끌어안는다는 점에서 눈 여겨봐야 한다.  불교 외에도 윤회

를 말하는 등 불교에 버금가는 철학을 가진 힌두교나 자이나교

의 경우 그 세계의 위대한 성자들도 "중국이나 한국 불교의 대

선사라는 분들보다 못할 게 없고"(133쪽) "불교의 관점에서 볼

때 아라한급이나 상품 보살급의 수준"(13쪽)이라는 발언은 정말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그런 발언은 우리 한국 불교가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자기

자랑에 정신 팔리지 말라는 것, 그러나 그들은 '작은 열반'에

이르렀을 뿐 진정 불신(보신과 법신)을 구족한 부처의 존재와는

거리가 있다는 당당한 발견으로 이어진다.  자이나교 힌두교

유교 유태교 이슬람교 등의 수행법으로도 휼륭하게 삼매에

들 수 있고, 윤회를 벗어난 초인이나 도인이 될 수는 있으나

부처와 부처의 위대한 법에 귀의하지 못한 '외도'일 수밖에 없

다는 것이다.



"나는 말합니다.  유교의 격물치지, 힌두교의 유가 탄트라, 이

슬람교의 수피즘의 명상 수행, 유태의 카바리즘 수행으로도 우

주의 궁극이나 존재의 근원까지를 깨칠 수 있습니다.  힌두의

요기인 부레 바바, 조선 유가도인인 정북창 같은 도인도 이 세

상에는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붓다는 아닙니다."(135쪽)





 한국 불교, 올바른 생사관부터 정립을

-자재 만현 스님의 법세계를 다시 본다-

 "사체 부패의 첫 단계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자기 분해,

즉 자기 소화이다.  인간 세포는 효소를 이용해 활용이 가능한

분자 단위로 쪼개지는 것이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세포의 통제

를 받던 효소들은 이제 아무런 제한없이 세포를 먹어 들어가기

시작하고, 그러면 사체 안에 있는 액체가 흘러나오게 된다.  일

부 박테리아들은 그 액체를 타고 둥둥 떠다니며 사체의 머나먼

변방으로까지 이주한다.  어디를 가도 박테리아가 가득하다.



이제 무대는 다음 장으로 넘어간다.  바로 팽창 단계다.  박테

리아가 우리를 먹는 과정에서 가스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생기

는 과정이다.  이른바 정상적인 소화과정에서 생겨나는 장 가스

와 차이점은 우리가 살아있을 때는 그 가스를 밖으로 내

보내지만, 죽은 뒤에는 위 근육이나 괄약근이 유명무실해진다는

것이다.  때문에 배가 팽창하는데, 박테리아가 그 중 많은 복부

가 가장 두드러지게 부풀어오른다.  다른 부분에서도 팽창은 일

어난다.  대표적인 것은 입과 성기.  남자일 경우 음경과 고환이

대단히 커진다.  그렇다.  멜론 정도의 크기일까?



사체 부패 2주 정도가 지나면 유충들의 크기가 예전의 쌀알

크기에서 밥알 만하게 커진다.  유충들이 우글거리는 소리가 사

체에 한두 뼘 이내로 머리를 바짝 들이밀면, 뭔가 소리가 들린

다.  유충들의 사체를 갉아먹는 소리.  내 곁을 따라다니며 설명

을 해주던 연구원이 알려준다.  '꼭 뻥튀기를 갉아먹는 소리죠'

간혹 몸통 자체가 터지는 때도 있다고 한다.  다시 연구원이 설

명해준다.  '그 때는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납니다'  그렇게 해서

3주 정도가 되기까지는 장기의 잔해를 분간할 수 있다고 한다.

그 뒤에는 수프처럼 된다.  영락없이 노란색의 닭고기 수프다."

                                                  어느 서구 지식인의 구상관 하나





마음 공부를 위한 불교의 관법에는 자비관도 있고, 수식

관도 있다지만, 앞에 인용한 글도 휼륭한 관법의 하나가 아닐

까 싶다.  말하자면 구상관 혹은 백골관..... 읽기

거북스럽다는 첫 느낌 따위는 중요한 것이 결코 못된다.



이 글은 서양의 한 여성 저널리스트가 미국 테네시대학의 메

디컬센터 안에 있는 인체 부패를 연구하는 시설을 꼼꼼히 들러

본 뒤 쓴 냉철한 보고서의 일부다.  지난 해 나온 책 <<스티프

-죽음 이후의 새로운 삶>>(메리 로치 지음, 파라북스 펴냄)의 한 대

목인데, 저자 특유의 쿨한 유머 감각이 놀랍고 리얼한 묘사 때

문에 그저 정신이 번쩍 든다.







생사관, 이것이 정말 큰 문제





그렇다.  바로 그것이 저자의 의도일 것이다.  저자는 때로는

불교경전 <<염처경>>을 들먹인다.  그것이야말로 지수화풍

으로 이뤄진 인간의 신체라는 것, 그리고 오온의 변화

에 다름 아닌 삶과 죽음, 그리고 영혼의 문제에 대한 그들 나

름의 절실한 관심이리라.



서구사회의 지성들은 이제 동서양의 핵심 고전들에 아무런

편견 없이 우리 시대의 새로운 생사관을 정립하고 있는 중이라

는 좋은 증거로 받아들여도 좋을 듯 싶다는 게 내 판단이다.



그렇다.  생사관, 이것이 정말 큰 문제다.



(선문화) 6월호에 나는 자재 만현 스님(춘천 현지사)의 법문

집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를 소개할 기회가 한 차례 있었

고, 현재의 조계종단에는 파천황의 문제 제기로 들릴 수

밖에 없는 그 스님 특유의 법 세계를 의미 있게 일별해 본 일

이 있다.  당시, 현재의 한국 불교의 상황과 인식의 측면에서 그

토록 생각과 법 세계가 다르다면 "창종을 못할 것도 없

다."는 만현 스님과 일문일답 내용도 함께 음미했었지만, 고백

컨대 미진했던 대목이 적지 않았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생사

관의 문제에 대한 소개였다.



사실 지난 6월호의 만현 스님 법 세계의 소개와 함께 얹어봤

던 나의 질문은 간단치 않은 것이라고 본다.



1천만이 넘는 불자 수를 자랑하는 한국 불교이지만, 과연 1

천 년 전의 중국 조사선에 매달리면서 껍데기만 남은 것은 아

닌지, 그래서 이 '지구촌 종교' 불교의 상황에서 우물 안의 개

구리 신세로 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물었던 것이다.



이번 호 지면에서는 생사관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뤄보려

한다.  만현 스님 법 세계에서 커다란 특징을 이루는 핵심이 생

사관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즉 만현 스님은 지금의 한국 불교

가 '견성=성불'로 보는 것에 반대하고, 대신 견성이란 공부의

첫걸음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동시에 철저한 지계를

강조함으로써 현재의 조계종과는 수행론에서부터 180도 다르

다.  하지만 이런 차이란 결국에는 불교 생사관을 둘러싼 근본

적인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상식이지만 현재의 한국 불교처럼 "지옥과 극락은 마음의 산

물일 뿐"이라고 간단하게 정리해놓고 나머지 복잡한 문제를 나

몰라라 하며 지치도외할 경우, 매우 유감스럽게도 두 가지의

문제를 떠 안을 수밖에 없게 된다.



우선 지난 호의 지적처럼 본디의 '장대한 종교'인 불교의 자

취는 온데간데없이 겨우 마음의 종교 수준으로 떨어지고

만다.  이 경우 <<법화겨>> <<화엄경>> <<아함경>> 등의 핵심

가르침과 배치된다는 점도 여간 우려스러운 것이 아니다.



즉 <<아함경>> <<지장경>> 속에 등장하는 지옥을 포함한 장

대한 세계가 겨우 대중교화를 위한 편의적인 방편 내지 비유

정도로 치부되고 마는 결과란 정말 자가당착의 경우라서 유감

스러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윤회와 전생의 문제를 포함한 불

교 고유의 생사관 문제 역시 미긍의 늪에 빠져버려 거의 '믿거

나 말거나'의 수준으로 밀려나 버리고 만다.  역시 대단한 착오

가 아닐 수 없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추신/"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은 이 시대 최고의 성서인<21세기 붓다의 메시지>를 각 계의 대표적 불자 지성인들이 읽고  진솔하게 밝힌 찬사와 감동의 평론을 담은 글입니다.  

[라디오 법회]2001년 자재 만현 큰스님께서 처음으로 하신 법문입니다




라디오 법회 1집 (2001.6.24. 일(음력5월4일)


주제  :  불교와 윤회



사부대중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만현입니다.

오랫동안 법성스님으로 불리어졌었죠.  한때는 법류스

님이라고도 했습니다.



70년대는 중앙상임포교사로 무진장스님과 함께 불법

을 전도하는데 열중했었던 스님입니다.  56년도에 전남

광주에서 광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물론 최고 학부를

마치고 부산 선암사 석암스님을 은사로 스님이 되어 부

처님의 일대시교를 공부하면서 수행한지 40년이 됩니

다.  많은 경력은 생략합니다.  그동안 율사이신 은사 스

님의 지계수행을 본받아 술, 담배는 물론 우유, 요쿠르

트까지 부처님의 청정계율이라면 이를 생명으로 알고

지키면서 18년 이후로는 주지직을 포함한 모든 종무직

을 떠라서 오늘날까지 남모르게 온갖 고행 수행을 해오

고 있습니다.



특히 저는 저 선재동자와도 같이 교파, 종파를 떠나

선지식이라면 그들을 찾아뵙고 많은 것을 배웠고, 그래

서 여러 외도의 세계를 알았습니다.  그 실체도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로지 불자로써 견성성불을

우선 목표로 대승경전을 즐겨 독송하고, 염불을 하면서

아울러 선을 닦아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2~3년 정도

용맹 정진하여 억겁의 세운 서원을 이룬 후 여러분 앞

에 나와 사자후하려 했지만 이렇게 오늘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저 법문을 청취하고 있는 사부대중이시여,

만현 스님의 오늘의 실체를 그간 저의 공부깊이를 드러

내어 보이고자 1999연 9월 실로 상당한 시간 진짜

삼매에 들어 읊은 게송 삼매송, 정각송을 감히 여기에

소개합니다.  지금은 자유로이 보다 높은 위의 많은 삼

매에 들고 있습니다.  여러분 들어보십시오.



세상사 허망하여

믿을게 하나 없네



움직이지 않은 것 하나 없고

변하지 않는 것 하나 없구료



니것 내것 어디 있으며

가고 오는 게 어디 있으리



마음은 오고 감이 없는데

눈, 귀 있어 갖가지로 분별할 뿐



하나가 여럿 되고 여럿이 하나 되어

하나까지도 없어라.



비었어라

비었어라

텅 비었어라



나도 없고

남도 없고

중생도 없고

오래 사는 것 또한 없어라



모두가 공空, 공空, 공空이라네

무아, 무아라네



그 생각마저 없어라

다만 맑고 청정하여

환희, 환희, 환희

그 자체인 것을.



불교란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

윤회를 벗어나는 가르침이 불교입니다.  따라서 불교

의 목표는 생사에서 벗어나는 해탈에 있습니다.  생사해

탈이 불교수행 목표입니다.  생사를 마음대로 한다는 것

입니다.  모든 인생의 고통의 원인은 바로 생生 즉 태어

남이 있어서 벌어집니다.  태어나지 않았다면 이런 저런

고생 고통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역시 죽음도 마음

대로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람은 정법을 만나 수

행을 잘하면 생生과사死 즉 나고 죽는 일을 임의대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를 수 있답니다.  이 경

지를 아라한이라고 합니다.  아라한 성인의 경지에 오르

면 영원히 중생계에 오지 않을 수도 있고, 그리고 죽을

때도 아무 병 없이 거짓몸뚱이 집에서 벗어날 수 있습

니다.



사부대중 여러분 사람은 평생 동안 크고, 작은 업業

을 짓고 살아갑니다.  무서운 악업을 지은 이는 지옥에

갑니다.  지옥은 있습니다.  확실히 지옥은 객관적으로

존재 합니다.  중생의 업이 지옥을 만든 것입니다.  지장

경에 나오는 그 지옥은 일부에 불과합니다.  최소한 보

살과를 증한 성자 혜안으로만 지옥을 볼 수 있답니다.

평생 자기만 알고 남의 덕으로 사는 사람은 빚이 많아

소나 돼지로 태러나기도 합니다.  축생으로 나면 거

의 12지를 돕니다.

12띠 짐승 몸을 두루 받아 납니다.  개를 끝으로 지옥

에 가거나 아니면 사람이 됩니다.



윤회는 사실입니다.  진실로 윤회는 사실입니다.  사람

이 죽어 짐승 몸을 받아 나온다면 얼마나 억울할까요?

또 그 무서운 형벌을 받는 지옥에 떨어지면 얼마나 억

울할까요?  머지않아 지옥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소개

할 큰스님이 이 땅에 출세할 것입니다.  아라한보다 보

살보다 크게 도를 이루어야 지옥을 보고 하늘 천상을

본답니다.  극락까지 보고요.  아라한보다 큰 성인을 보

살이라 합니다.  경에 말하는 8지 부동지 이상 등각보살

까지를 저는 보살로 부릅니다.  한 분의 보살은 수백,

수천만의 아라한을 합한 것 보다 낫답니다.  그리고 보

살보다 윗 성인을 붓다라고 합니다.  부처님이라 합니

다.  붓다는 따라서 성인 중 성인인 것입니다.  가령 관

세음보살 보문품, 관음경을 보십시오.  붓다 한 분은 백

만, 천만의 보살과도 바꿀 수 없답니다.  지옥의 실상을,

윤회의 사실을 확실히 보려면 붓다의 경지에 오른 대적

정삼매를 통과한 진짜 큰스님이라야 가능하답니다.



30년, 그러니까 1세대 안에 몇 사람의 아라한의 성인

이 나올 것입니다.  백년 만에 한 두분 보살이 출세하고

요.  저 신라 원효스님은 보살입니다.  지금 서방 정토

극락세계에 계십니다.  부처님 말씀에 붓다는 천만 생을

가도 혹은 겁에 한분 나올까 말까 하다고 말씀하십니

다.  천상천하무여불입니다.

사랑하는 이 나라 사부대중 여러분!

오늘 이 거룩한 법좌에 않아 전국 라디오 망을 통해

설법하는 만현스님의 법문내용은 결코 사실입니다.  앞

으로 2,3년 안팎 용맹정진해서 큰 뜻을 이룬 후 사자후

법문을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의 이 법문은 만현 스님

의 노래입니다.  확신과 신념을 갖고 토해내는 설법입니

다.  붓다께서 증명하신 법어이기도 합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문제가 있습니다.  견성은 곧 성

불이라고 보는 것은 큰 착오입니다.  견성은 이제 시작

입니다.  이 문제는 붓다에 대한 법문과 더불어 2,3년

후에 자세히 다를 것입니다.  다만 오늘은 간단히 언급

하고 지나가겠습니다.  정각, 대각 했다고 해서 붓다라

볼 수 없습니다.  불신을 갖추어야 붓다입니다.  빛 자체

인 불신을 지녀야 합니다.  무량광, 열반광인 빛으로 이

루어진 불신은 영겁이 지나도 멸도 할 수 없습니다.  영

원히 미래제가 다 하도록 붓다는 죽을 수 없다는 이유

입니다.  그리고 붓다는 모든 백천삼매를 임으로 두십니

다.  붓다만이 드는 가장 깊은 삼매를 대적정삼매, 대적

광삼매라 합니다.  해인삼매 위입니다.  그 삼매는 환희

그 자체입니다.  붓다는 천 만억화신을 동시에 일체 처

에 나툴 수도 있습니다.  또한 붓다는 팔만 사천 신통묘

력과 더불어 실로 일체에 자재하십니다.  무한한 능력을

소유하신 법황이십니다.  절대자이십니다.  항하사수와

같이 많은 붓다님들 그들은 서로 한 티끌, 한 생각이

같답니다.  불교는 최초불이 출세하면서 그 가르침이 전

해졌습니다.  따라서 불교의 역사는 2500년이 아니라,

진묵겁전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에겐 염불이 최고의 수

행 덕목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극한 마음으로

일심칭명해야 할 것입니다.  석가모니불을 고성으로 염

念하십시요.  죄업장이 소멸됩니다.



붓다는 해탈신입니다.  붓다만이 32상 80종호의 해탈

신을 불신을 지니십니다.  그리고 붓다는 자비와 청정,

지혜자체이기도 하십니다.  불교 역사상 그 어떤 큰스님

이 있어서 이렇듯 붓다에 대하여 소상히 말씀을 했습니

까?  크게 대오철저大悟撤低 대각한 붓다, 부처인줄로

만 지금까지 그리 알았습니다.  그러나 거듭 분명히 말

씀드립니다.  붓다는 빛 자체요, 청정자체인 불신을 지

녀야 합니다.  그래서 불佛은 - 붓다는 - 부처님은 너무도

위대한 지존이십니다.  모든 윤회세계와 해탈정토를 구

슬 보듯 하십니다.  삼천대천세계를 거의 찰나에 왕래하

십니다.  빛 자체이기 때문에 빛으로 오고 가십니다.  그

빛은 중생의 자성광이 아니라 그걸 넘어선 불성광입니

다.  여래는 오고감이 없다는 말이 그래서 맞습니다.  법

신불은 무소종래 역무소거라고 합니다.  화신불에 대하

여나 법신, 보신불에 관한 더욱 상세한 말씀은 다음 기

회로 미루겠습니다.  심오한 소식을 모르고 지옥도 없

고, 극락세계도 없다고 합니다.  불보살도 없다고 합니

다.  이건 붓다의 법을 능멸하는 구업임을 지적합니다.

큰 망어로써, 무서운 지옥에 떨어질 무서운 구업임을

또 다시 지적하고, 이를 엄숙히 불보살의 이름으로 경

고해 둡니다.  그래서 제가 견성은 이제 불과를 이루는

시작에 불과하다 한 것입니다.  빛 자체요, 청정자체인

붓다를 10지 보살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아라한이나

보살도 붓다의 화신만은 백 천 만억으로 화해 현신한

변화신만은 볼 수 있습니다.  본불, 불신은 볼 수 없습

니다.  붓다라야 붓다를 봅니다.  붓다라야 붓다의 말씀

을 들을 수 있습니다.  어는 수행인이 가서 붓다를 보고

자기가 붓다와 대화를 했고, 그런 말을 한 사람이 있다

면 그 사람은 100% 외도입니다.  보살을 포함, 중생이

붓다를 봤다면 본 순간 눈이 멀고, 붓다의 말씀을 들었

다면 그 순간 귀가 망가져 있어야 됩니다.  아니 몸뚱이

가 가루가 될 것입니다.  붓다의 불신의 빛은 즉, 무량

광은 마치 산소용접 시에 튕겨져 나오는 빛의 백 천만

배가 되기 때문입니다.  저 높은 히말라야동굴에서 200

년, 500년, 1000년, 2000년 장수하면서 수행, 도를 이

루었다는 초인들 가운데는 그들 몸에서 10억, 20억 와

트의 빛을 낼 수 있다고 합니다.  붓다는 그 빛의 만배

이상 낼 수 있습니다.  그런 빛으로 그런 대 광명, 열반

광으로 이루어진 불신을 붓다는 지닙니다.  이게 아라한

이 되어도, 보살이 되어도 진짜 본불을, 불신을, 붓다를

볼 수 없다는 이유입니다.  여러분 붓다는 빛 자체이시

기에 미래제가 다 해도 죽을 수 없습니다.



며칠 전에 서점에 들려 20세기 태국의 대성자 위대한

성자라고 칭송받고 있는 아짠문의 일대기를 읽었습니

다.  그 분이 입적한 지는 50년쯤 된 것 같습니다.  정말

그 분은 잘 수행한 불제자였습니다.  영산당시 가섭존자

처럼 십두타행까지 잘 해낸 위대한 고행 승이었습니다.

완벽히 아라한과를 성취한 아라한이었습니다.  진짜

부처님께서 방사하는, 내뿜는 붓다의 대광명 열반광,

무량광을 팔만사천 털구멍으로 받아들인 그런 경지에

이르어야 비로소 보살 8지가 되어 정토에 왕생할 수

있는데 아짠문은 보살지에 이르지는 못했어도 금세기에

아라한 성과를 이룬 휼륭한 수행승이었습니다.



그리고 11세기 티벳의 또 한 분의 역사상 위대한 밀

교행자가 있습니다.  밀라래빠입니다.  새처럼 하늘을 나

르고 많은 아라한, 보살의 삼매와 신통이 자재했습니

다.  난행, 고행했던 전설적인 성자 밀라래빠.  그 분은

대보살과를 성취한 큰 어른이십니다.  사람들은 그이를

부처, 붓다라고 보지만 아닙니다.  불신을 얻은 붓다는

아닙니다.  지금 북방 태세보살로 계시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아라한, 보살은 붓다 되기를 발원하고 사람 몸을 받

아온답니다.  붓다 같은 어른이 사바에 오실 때를 맞춰

어쩌면 퇴전할 수 있다고 보아도 선뜻 남섬부주에 몸

받아 태어난답니다.  이 남섬부주만이 보살, 붓다를 이

를 수행의 최적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석가모니부처님이후 붓다를 이룬 두 분이 있습

니다.  영산당시 10대 제자였던 수보리존자와 사리불존

자가 대적정삼매를 통과하고 붓다를 이루었습니다.  석가

모니불은 남섬부주교주이시기에 모든 붓다 중에서도 붓

다이십니다.  당대에 붓다를 이를 보살 아라한이 될 불제

자들을 선호념하십니다.  저의 법문을 관심 있게 듣는 이

들은 어마어마한 불법의 세계를 그려 가실 것입니다.



불교는 위대한 가장 위대한 종교입니다.  진실로 윤회

안의 중생이나 윤회를 벗어난 아라한, 보살을 넘어서는

우주적인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부처님 가신 지 2500

년이 흐르다보니 너무도 왜곡이 되었습니다.  많은 부분

이 땅에 묻힌 것입니다.  다시 정법을 세워야 합니다.

지금은 뚜렷한 생사관 하나 분명치 않습니다.  일반 불

교신도들은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감로의 법

을 듣고자 진정 갈망하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바른 스

님, 큰 성자가 출세하여 진짜 법을 설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많은 사도邪道에 빠져있습니다.  사마외도가

자기네들의 가르침, 자기들의 교리가 옳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 말하건대 그들의 교주는 불신을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 외도의 교주는 불신을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 외도의 교주는 불신이 없

습니다.  신통을 잘한다고 기적, 기사이적을 밥

먹듯 행한다고 해서 제일이 아닙니다.  그건 생사해탈과

는 거리가 멉니다.  여러 요가수행이나 밀교수행을 통해

서 얻어지는 신통들, 그 모두를 저는 부정적으로 보진

않습니다.  잘못하면 외도하늘에서 붙잡아가는 경우가

문제입니다.  그리고 바람직하게 나간다 해도 아라한 혹

은 보살과를 얻을 뿐 불신은 얻을 수 없습니다.  불신

은 십지 보살, 등각보살정도의 성자가 선근이 익어 붓

다 이를 때가 되면 불신이 생기는 이유가 있습니다.  까

닭이 있습니다.  이 점은 여래의 비밀장이기에 함구합

니다.



거듭 말합니다.

붓다는 가장 중요한 불신을 포함해서 몸이 여섯입니

다.  인간은 몸뚱이가 다섯입니다.  20세기말 신지학에서

사람은 이 육체와 4개의 영체가 합해져 이루어졌다고

발견해 냈습니다.  탁월한 성과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몸뚱이, 이 거짓 몸뚱이는 여러 물질, 불교에서는 지.수.

화.풍이라고 합니다.  그 사대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이 거짓'나'는, 이 몸뚱이 집은 백년을 못 살

고 죽습니다.  땅 속으로 묻힙니다.  지.수.화.풍 사대로

돌아갑니다.



사람이 죽으면 대부분 악도로 가기 때문에 네 개의

자기 영체중 4번 영체가 영계에 듭니다.  그때 1, 2, 3

번 영체는 4번 영체 속에 겹쳐져 있습니다.  4번 영체는

이 거짓 몸뚱이와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 사부대중 불자님들.  다시 말씀하노니, 사람은 죽

으면 완전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지은 업에 따라 가는

곳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대해서나 재물이나 자기 몸뚱이, 처자 등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집착이 대단한 사람은 죽어 명부

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저 세상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들은 곧 윤회에 들어가지 못한다 이 말입니다.  천명

天命에 가더라도, 명命이 다해 죽어도 저승사자를 따라

가다가 되돌아오는 수가 있습니다.  저승에 들지도 못하

고, 이 몸뚱이도 이미 땅속에 들어갔으므로 중천을 헤

매는 고혼이 됩니다.  그 세계를 중음계라 하는데 이 세

계는 춥고 배고픕니다.  어둡고, 무섭고 외롭습니다.



그리고 천수, 천명이 남았는데도 도중에 요절한 사람

들, 그 영가들은 또한 중음계에 떨어집니다.



교통사고나, 스스로 음독이나 다른 수단으로 자진. 자

살한 사람들, 전쟁에 나가 총, 칼 맞아 객사해 죽었다

든지,



횡사  객사한  그런 사람들, 거의 대부분 중

음계에 들어 중음 고혼으로 떠돕니다.



다음으로 무서운 질병으로 많은 세월을 신음하다 죽

은 영가도 즉, 암이나 간질, 중풍, 에이즈 같은 하늘이

준 천질로 죽은 사람들 그 영가들도 거의 중음계에 듭

니다.



저의 소견으로는 사망한 사람의 70~80%정도가 중음

고혼이 됨을 말씀드립니다.  사부대중 여러분!  저 이 법

문은 진정 사실입니다.  그런데 새상 사람들은 물질만

능, 황금만능 사상에 젖어 보고, 듣고, 느끼는 바깥세상

만을 전부로 알고 살죠.  성을, 이성을 탐하고, 스포츠를

즐기고, 돈 버는 데만 골몰하죠.  명예와 권력을 쫓고

삽니다.  이 몸뚱이가 진짜 자기로 알고 죽으면 끝이라

생각합니다.  온갖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위해

온갖 죄업을 짓고 삽니다.  피땀 흘려 벌어 놓은 돈, 한

푼도 죽어 가져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명예도 사랑하는

이도 저승에 같이 따라가 주지 않습니다.  죽으면 끝나

는 것입니다.  물론 이 육체는 땅속으로 들어가 흙밥이

되죠.  그러나 이 몸뚱이를 집으로 삼고 한평생 살았던

자기는 주인공은 명이 다하면 의식이 그대로 남아있는

4번영체로 지옥이나 축생 혹은 아까 말했던 중음영가

로 새로운 고달픈 생을 살아갑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죽어 상당기간 4번영체로 살아가는

데 4번영체는 이 몸뚱이의 털구멍하나 다름없이 꼬부

랑 할머니가 목발 짚고 살다 죽었으면 목발 짚고 악도

에서 지냅니다.  그때 3번, 2번, 1번영체는 4번영체 안

에 겹쳐져 있습니다.  그러나 정직하고 부지런하게 큰

죄업도 짓지 않고, 남에게 폐도 끼침이 없이 오히려 착

한일 많이 하고 살다 죽으면 틀림없이 하늘 천상에 납

니다.  앞에서 말한 4번 영체는 하늘천상엔 적응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4번 영체는 죽어버립니다.  3번 영체

가 가서 납니다.  이때 2번, 1번 영체는 3번 영체 속으로

로 겹쳐듭니다.



90살에 죽었어도 3번 영체의 나이는 40대입니다.  몸

은 건강하고 얼굴은 미스코리아보다도 더 아름답습니

다.  아라한 성과를 이룬 성자는 성인이 나는 하늘에 2

번영체가 가서 납니다.  보살과를 이룬 성자는 서방정

토 극락세계에 1번 영체로 가서 납니다.  그때 2번, 3번

영체는 1번영체 속으로 깃듭니다.  중생의 1, 2, 3번영

체는 영원히 죽지를 않습니다.



화두타파하여 자성이 드러나 견성하여 다생의 습기를

녹이는 보림공부를 잘 마친 이는 비로소 아라한이 됩니

다.  중생은 아라한 이상 될 수 없습니다.  구조상 그렇

습니다.  전생에 아라한이나 보살과를 이룬 이는, 그런

선근이 있는 이는 금생에 잘 하면 보살이나 붓다까지

이룰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부대중 여러분!

위에서 말씀 드렸듯이 중음계 영가들, 소위 중천을

떠도는 영가들, 그 고혼들은 대단히 불쌍합니다.  그리

고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 고혼 영가들은 배고픔이나

이성 욕구 해결을 위해서 가까운 인연을 따라 빌붙어

해결합니다.  그래서 업을 짓고 지냅니다.  중음세계에

오래있는 영가 일수록 업이 지중해져서 큰 스님을 만나

천도 되어 간다해도 지옥 중에서도 무서운 지옥으로 떨

어집니다.



저는 지옥을 크게 3등분합니다.  무간지옥, 중지옥, 하

지옥입니다.  죽는 이들이 10명이면 부간지옥으로 떨어

지는 이들이 그 중 한, 두 명은 되는가 싶습니다.  그곳

은 그 벌이 여러분!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입니다.  모골

이 송연할 정도입니다.  저 역시 공부가 다 끝나 이 법

좌에 설때, 그때 이 법문 해 드리겠습니다.  다만 부처

님 같은 큰 스님을 만나 무간지옥에 떨어질 이런 영가

를 천도 한다면 혹 나올 수 있답니다.  그렇지 않고는

천 만생을 지나도 무간지옥 중생들은 거기서 나올 기약

이 없습니다.  그 무간지옥의 중생이 천도 된다면 그래

서 중지옥으로 나온다면 그건 대 축복인 것입니다.  여

러분의 조상 중 동기일신 중에서 중음계로 떨어진 고혼

이 있다면 문제가 생기니까 꼭 천도해 주시기 바랍니

다.  어떤 사람이고 그 조상이나 동기일신, 영가님들을

훑어보면 10여명, 20여명정도의 중음고혼이 있음을 봅

니다.  그 중음고혼중에 가령 중풍이나, 간질, 암, 중치

매, 정신이상을 앓다가 죽은 영가가 있다고 합시다.  그

영가는 자손중 인연이 있는 이에게 빙의되어 살기 때문

에 그 자손은 중풍이나 간질, 암, 중치매, 정신 이상 같

은 중병을 반드시 얻게 된답니다.  그래서 이것이 문제

입니다.  꼭 천도재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건

중병을, 천질을 앓다가 죽어 중음고혼이 된 영가를 어

떻게 하면 명부에 윤회에 들 수 있도록 할까요?  이런

중음고혼을 저는 무고혼이라고 부릅니다.  진짜 큰 성자

의 축복 아니면 이런 무고혼들은 백년도 어쩌면 천년이

넘도록 중음계를 벗어날 수 없답니다.



이름 있는 무당이나 법력이 없는 스님들이 천도재를

아무리 많이 한다 해도, 그것은 영가들을 기껏 한끼,

포식 시켜주는 정도에 그칩니다.  여러 번 지내도 소용

없습니다.  아라한이나 대보살과를 이룬 큰 대성자스님

이 사랑과 정성을 모아 천도한다면 가능도 하겠습니다

만, 그래도 충분하지 못합니다.  오직 붓다권내에 드는

대성자가 집전하는 천도는 완벽합니다.  어떠한 무거운

죄업 중생의 천도도 100% 가능합니다.  그 무거운 업장

까지도 소멸이 됩니다.  무거운 업보가 다음생 혹은 5

생, 10생까지도 갑니다.  그 천질을 알아야 업보가

다 한다 하더라도 대 성자는 그 업장을 소멸해 줄 수도

있습니다.  무고혼들의 거의 대부분은 부른다고 해서 모

두 오는 게 아닙니다.  잡히면 자기들은 죽는다 생각하

기때문에 필사적으로 도망가 숨습니다.  마치 몇 년 전

인가 살인 강도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감옥생활하다

탈옥한 모 탈옥수가 신출귀몰 도망 다녔듯 붙잡기 어렵

습니다.  대성자가 베푸는 천도재일수록 옴짝달싹 하지

않고 은밀한데 숨습니다.  그런 영가를 붙들어 구제해주

는 천도재의 장에 데려와야 되는데 이 일이 어렵습니

다.  이때는 많은 성중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백 천

만억 영가를 성중의 큰 신통력으로 호랑이가 고양이 잡

듯, 그래도 여려울 경우에는 지장보살이나 부처님의 위

신력까지 동원하게 됩니다.  그래서 붓다 같은 대성인이

아니고는 무주고혼들을 명부에 들게 하는 그런 천도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이런 죄업중생들이 무슨 공덕이 있다고 과연

이고득락이 되겠습니까?  다만 그 영가의 이름으로 크

나큰 공덕을 지어서 회향해 주는 길이 있습니다.  그래

야 됩니다.  많은 붓다님들께서 본불님들께서 대공양을

드실 수 있도록 공양을 드리는 길이 있습니다.  이 공

덕은 엄청나게 큽니다.  경에도 한 분의 진짜 부처님께

공양을 드리면 90겁의 생사중죄가 소멸된다고 했습니

다.  그렇습니다.  많은 수의 진짜 붓다님께 공양만 드릴

수만 있다면 그 공덕은 하늘과 땅을 덮습니다.  이 공덕

으로 구제하는 자산을 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공양

을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대선지식 큰스님을 만나야

됩니다.



다음으로 무간지옥이나, 중지옥에 떨어진 영가들 역

시 그 지옥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일은 붓다 같은 어른

아니면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부처님 당시 10대

제자였던 목건련(목련존자)의 어머니 청제부인도 부처

님께서 베풀어주신 천도재 그 인연공덕으로 무간지옥에

서 소흑암지옥으로, 거기서 또 한번 천도재를 지내서

아귀세계로, 또 한 번 천도재를 모셔서 개의 몸으로,

마지막에 7월 백중(우란분절)에 모심으로 해서 하늘 천

상 화락천에 가셨답니다.  그 청제부인은 지금 서울 어

느 구 어느 동에 여자의 몸을 받아 나와 있습니다.  여

러분, 지금 이 나라에서 제일 천도재를 잘 지낸다는 모

스님 약간의 법력은 있습니다.  아라한의 성자는 아닙니

다.  지장보살의 가피를 입은 스님입니다.  그러나 이 정

도의 스님으로서 어느 영가가 어디에 있고, 천도재를

모셨으니 그 영가가 이제 이다음 어디로 갔는가는 모릅

니다.  다만 빙의된 영가를 떼어주고, 잘 하면 일분 양

질의 영가만을 명부에 인도 해줄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정도도 대단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부대중 불자님들 제가 보기엔 우리 불교신

도 100명 가운데 1, 2명 정도가 하늘 천상에, 그것도

낮은 하늘에 태어남을 봅니다.  여기서 우리 모두는 최

소한 어떻게 하면 인간이나 하늘천상에 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봐야 되겠습니다.



자기가 지난날 지은 죄를 진심으로 참회하고, 악을

멀리해야 되겠죠.

진짜 큰 스님을 찾아뵙고, 조상님을 비롯, 동기일신영

가 모두를 구제해달라고 간청 하십시오.  중음무주고혼

이나, 지옥에 떨어진 조상님들, 그리고 짐승 몸을 받아

나온 인연 있는 동기일신을 건지십시오.  이 일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큰 효요, 공덕입니다.



다음으로는 대승경전을 독송하시오.  지성으로 다라니

진언을 하시고 염불을 하십시오.



그리고 착하게 사십시요.  많은 선행을 요구합니다.  그

렇다면 우리들은 비로소 삼악도 업을 벗고, 곧 인간이

나 하늘천상에 날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부대중 여러분.

이 세상에서도 무기징역이나 사형이 확정된 죄수를

석방, 자유를 안겨드린다면 그 사람은 죽어도 보은하고

죽을 것을 뼈에 새길 것입니다.  그러한 것입니다.  좋은

걸 받으면 좋은 것으로 갚습니다.  이게 인과의 도리입

니다.  또 여러분의 조상님 영가 중에 짐승이나 미물의

몸을 받아갈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돼지가 될 사

람은 돼지가 항상 옆에 따라 다닙니다.



그렁이가 될 어느 주지스님을 봤습니다.  구렁이가 몸

속에 가득해서 말을 할 때마다 혀를 널름거리고 있습니

다.  어느 큰 스님이 있어서 이 사람의 업보를 잘라, 소

멸시켜 줄 수 있겠습니까?  다만 대보살과를 넘어선 붓

다권내에 든 진짜 큰스님만이 그 사람의 업보를 자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무슨 복으로 그 큰스님을 만날 수

있단 말입니까?  전번에 이승을 떠난 큰 재벌의 다음

생을 전 압니다.  지금 어디로 갔는지.

그 다음 생은 어떨지.  또 그 다음 생까지도 압니다.

그분의 아드님을 만났으면 합니다.  저의 일기를 보여드

리고 싶습니다.



이제 결론으로 끝맺음을 하고자 합니다.

오늘 제가 불교와 윤회라는 제목을 가지고 여러분을

찾아뵙게 된 데에는 어떤 목적이 사실은 있습니다.  그

러나 말씀드리기 뭐해서 그건 생략합니다.  다만 붓다,

부처님은 가장 위대한 지존이심을 다시 만방에 선언합

니다.  그 가르침은 중생이 윤회 고에서 해탈하는 길,

곧 아라한이 되는데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이 법좌에

올라왔습니다.  깊은 삼매를 들고 보니 불은, 붓다는

빛 자체요, 청정자체이며, 또한 지혜자체이신 천상천하

에 가장 위대한 어른이심을 알았습니다.  이 점을, 이

중후한 점을 저는 중언부언해 드리고 싶고 강고하

고 싶습니다.  깨끗하고 청정한 무량광, 그 빛에 대해서

는 다음기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지옥, 극락, 불

보살은 실재하시고, 윤회도 사실이라는 것을 확실히 깨

달았습니다.  중생이 업을 짓는 한 영원토록 생사에, 육

도세계에 윤회한다는 것은 사실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

서 이 법좌에 그 말씀 드리고 싶어서 올라왔습니다.



우리 불자는 모름지기 부처님 영산당시 구도정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계율을 존중해야 됩니다.  계율을, 팔

정도의 수행을 해야 됩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태국의

아짠문이나 티벳의 밀라래빠를 본받으십시오.  꼭 본받

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맑고 청정한

빛, 무량광, 이걸 경에서는 억종광명, 백종오색광명이라

고 부릅니다.  이 빛을 보기 이전엔 수행승 공부 중에

드러나는 경계는 모두 거의 허상이 아니면 마의 경계

임을 밝혀 둡니다.  불신이 생겨서 당대의 붓다 이를 인

가를 받은 대보살이 아니고는 지옥, 극락의 진실상을

볼 수 없습니다.



중국의 고승으로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어떤 법

사가 있습니다.  15년 전 싱가포르 강연에서 자기가 어

느 날 선정에 들어 서방극락세계를 유람했고 아미타불

의 설법까지 듣고 왔노라는 내용을 담은 "극락세계 유

람기"라는 책을 이번에 책방에서 구입해 1독 하였습니

다.  그런데 여러분 한마디만 말씀드립니다.  이 책 속에

는 많은 거짓말이 섞여있습니다.  불교도들을 우롱하는

망어가 많습니다.  저 햇빛의 백 만 배도 더 되는 부처

님 몸을 이루고 있는 그 청정하고 깔끔한 빛을 보아야

진짜 부처님을 뵈올 수 있는 것입니다.



불신이 생긴, 그래서 붓다권내에 든 성자라야 극락정

토를, 그 청정국토에 가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진

짜 부처님을 볼 수도 있고, 법문을 들을 수도 있는 것

입니다.  불신을 얻지 않은 이가 어찌 극락세계에 가고

부처님 법문을 듣는다는 말입니까?  이 점 만현은 여러

분에게 강조, 강조해둡니다.



3번 영체가 육체를 이탈해서 여러 하늘천상을 유람할

수는 있습니다.  이것는 선정이 아닙니다.  진짜 삼매가

아닙니다.  그리고 장작더미위에 않아 스스로 불을 지피

고, 육체를 이탈했다 해서, 마음대로 했다 해서 견성도

인, 곧 아라한이라는 지금의 왜곡된 불교를 한탄하면서

부처님의 정법의 기치를 다시 세운다는 사명의식으로

이번 라디오법회에 임하였습니다.  인생은 가치가 있는

여정입니다.  보람을 챙기십시오.  허망 되게 살면 지옥

만이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부디 자격 있는 훌륭한 영

적지도자를 찾아 지도받으며 인생을 살아가십시오!


나무 삼계지존 남섬부주 대교주 구원실성 석가모니불





라디오 법회2집(2002. 8. 18. 일./음력7월10일)


주제  :  삼계의 위대한 지존 


  불교 라디오 방송을 청취하시는 여러 선남자, 선여인

들이시여!


  자재 만현입니다.  옛날의 법성스님입니다.  나 자재 만

현은 오늘 여러 불 보살님을 대신하여 크나큰 확신과

용기를 가지고 불법을 설하고자 또 이 법좌에 올라왔습

니다.  이 시간의 법문은 나 만현스님이 그동안 깊이 깨

달은 핵심 내면세계를 사실 그대로 설파한, 실로 경천

동지할 자재의 노래임을 전제해 둡니다.  불교는 가장

위대하고 그 어느 종교와도 비교할 수 없는 그 진리가

심오한 종교입니다.  우리가 사는 남섬부주 사바세계뿐

만 아니라 실로 삼천대천세계 온 우주 과거, 현재, 미

래를 관통하는 위대하고도 심오한 진리인 것입니다.



산하대지 인간 동식물과 그것들의 운명 모두를 무에

서 창조한 그런 하나님은 없습니다.  당신의 뜻대로 일

체를 창조한 소위 하나님은 없습니다.  부처님과 같이

크게 눈을 떠서 보면 모든 것은 인연으로 된다는 것입

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만들어낸 우상일 뿐입니다.  다

만 관리자는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중생은 자신과 자

신의 운명과 환경까지도 스스로 지어서 받습니다.  원인

없는 결과는 하나도 없다고 불교는 그렇게 말합니다.



거듭 전제 하건데 나 자재 만현은 특정종교나 어떤 사

상을 진실과 달리 이를 깍아 내릴 생각은 추호도 없고

다만 사실을 사실대로 수행인의 양심에 따라 말씀드리

고 있다는 것을 양지해 주십시오.



부처님, 붓다는 거룩하신 삼계의 지존이십니다.  천상

천하 시방법계를 다 흝어보아도 부처님과 견줄만한 이

없습니다.  천인들을 다 합쳐도 신, 천인, 신선들을 몽땅

함쳐보아도 한분의 부처님과 바꿀 수 없을 만큼 희유하

고도 거룩하신 어른이십니다.



티 하나 없이 깔끔하시고 청정한 얼굴 모습에서 그렇고

문수보살예찬문경에 "어일언음중 구일체묘음 일일묘

음중 구족최승음"이라 했듯이 필설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미묘 음성에서 그렇고,

흉내 낼 수 없을 정도로 자비 뚝뚝 흘러내리는 일거

수 일투족이 그렇고,

아라한, 보살의 신통을 뛰어넘어 무량무변의 신통, 신

력에 있어 서 그렇고

해인삼매, 대적정삼매등 백천삼매를 자유로이 수용함

에 있어 그렇고,

거의 일체 자재함이 과연 천상천하무여불인 것입니

다.  햇빛보다 백천만배나 되는 대열반광으로 이우러진

불신을 지닌 점에서 보면 저 조물주격으로 보는 최고신

옥황상제와도 견주는 자체가 불경죄에 해당할 것 같습

니다.



불자 여러분!

이 시간에 설법하는 내용은 진실이며 사실입니다.

견성했다는 큰스님들이 부처님도 없고 보살도 없다.

그것은 인간 마음자리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법문을 하

니 이 점 통탄해 마지않습니다.  2000여년을 내려오면

서 이런 류의 설법만 들었으니 모두가 자재 만현의 아

직은 이 외로운 사자후, 이 외침을 선뜻 믿으려 하지

않겠으나.  여러분 실제로 아미타불 계시고요.  그 서방

정토 극락세계도 있습니다.  대승경전에 나오는 불 보살

님들 모두 참으로 계신다고 내 이 자리에 나와 힘주어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대중을 상대로 법을 잘못 설한다면 진리 아닌 말을

진실이라고 잘못 가르친다면 그 죄 극무간지옥 행입니

다.  다행히 사람 몸을 받아 나오더라도 불구 장애자가

됩니다.  성자 중 성자요.  더구나 삼계의 왕이시며, 남섬

부주 대 교주이시고 이미 구원실성하신 무량겁 전에 성

불하신 우리 석가모니불, 세존께서 말씀하신 진리 곧

불교는 가장 위대하고 지고한 가르침일 수밖에 없습니

다.  부처님께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밝은 미래가 약

속 될 것이고, 불교를 멀리한 자 그러할수록 더욱 고통

스럽고 불행해져만 갈 겁니다.



비었어라.

비었어라.



삼천대천세계가 비었어라.



먼지하나

티끌하나 없는

공의 세계.



맑고 깨끗한 청정자체.

환희, 환희.

환희인 것을.



이건 금년 1월에 깊은 삼매에서 나와 읊은 나 자재

만현의 삼매송입니다.  부처님이 이끄신 무아 속 깊은

삼매, 불보살이 이끄는 무아 속 삼매에 들어 노래한 겁

니다.  제법의 궁극실상은 공이면서 무아입니다.  깊은

삼매는 청정한 계율을 지님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거

기에다 용맹정진 없이는 깊은 삼매에 들 수 없습니다.



생사에서 해탈하는 일이 불교수행의 목표인 바, 깊은

삼매에 자유롭지 못한다면 나고 죽는 일에 영원히 자재

할 수는 없습니다.  소위 앉아서가고 서서 갈려면, 죽음

도 태어남도 마음대로 할려면, 깊은 삼매를 마음대로

들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삼매는 소중한 겁니다.



여기서 더욱 나아가 붓다를 이루려면 모든 삼매보다 보

다 깊은 일체가 드러나는 해인삼매, 부처님들만이

드는 대적정삼매를 스스로 통과해야 합니다.  억겁다생

에 지은 업장이 녹고 탐, 진이 녹고 다겁생래의 습기가

녹아서 삼천대천세계 모든 부처님의 위신력을 입어야

비로서 불신, 자기 불신이 생깁니다.



선남자, 선여인 여러분!

어쩌다 인간의 몸을 받아 난 우리들은 악업을 짓고

살면 안 됩니다.  죄를 짓고 살면 안 됩니다.  죄업을 지

으면 언젠가 반드시 그 과보를 받습니다.  죄도 여러 가

지여서 백가지, 천 가지가 됩니다.  명예, 재물이나, 성

을 밝히는데서 죄업을 짓게 됩니다.  이 몸뚱이의 종이

되면 지옥에 가고 짐승이 될 업을 짓게 됩니다.  이 몸

뚱이는 지  수  화 풍으로 인연 따라 생겨난 가짜  '나'

입니다.  백년을 먹여 살리고 위해주어도 한순간에

우리를 등집니다.  지 수 화 풍으로 돌아가 버리는 허망하

기 짝이 없는 겁니다.  진짜 생명, 진짜 나는 아닙니다.

주인이 한 생 살다가 명이 다해서 떠나는 여인숙, 집에

불과 합니다.  진짜 내가 이 몸뚱이에서 떠나버리면 이

가짜 몸뚱이는 나무토막 같아서 불에 들어가도 모르고,

물속에 잠겨도 모릅니다.



부처님을, 붓다를 능멸하고 불법을 모독하는 짓은 가

장 무서운 죄입니다.  부처님을 상대하여 지은 죄는 극

무간으로 떨어집니다.  출가 수행하는 스님들에 있어서

는 음행이 또한 가장 무서운 죄입니다.  죽어 무간지옥

에 갑니다.  이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사실입니다.  우

리 불자들은 바르고 착한 일일랑 많이많이 하고 살아야

합니다.  어디 죽어 단돈 1000원인들 가져갑니따?  홀랑

벗고 갑니다.  지은 업만이 나를 끌고 가는 것입니다.



살아생전에 좋은 일 많이 많이 하고 가야 합니다.

부처님같이 크게 눈을 떠서보면 <지장경>에 나오는

지옥들이 엄연히 존재하는 것을 알고 정토삼부경에 나

오는 사방극락세계가 분명 실재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대승경전에 나오는 그 수많은 불보살님들이 계시다는걸

압니다.  중생이 윤회전생 하는 것도 사실임을 알게 됩

니다.  삼천대천세계를 다 봅니다.



사랑하는 불자 여러분!

인간은 탐 진 치 삼독 때문에 죄업을 짓습니다.

막는 사람 없는데도 하늘천상에 나는 이 드뭅니다.

대부분 명부에 들어가지도 못해서 지옥도 못가고 중음

계 무주고혼으로 헤메다가 너무도 춥고 배고파 자손

주위를 맴돕니다.  가끔은 구렁이나 소, 돼지 같은 짐승

몸을 받는 이도 있습니다.  슬픈 일입니다.  이렇듯 중생

은 자기가 지은 업을 따라 전생하면서 윤회를 계속합니

다.  이게 엄연한 사실인데도 사람들은 윤회전생을 믿으

려 하지 않습니다.  미신이라 합니다.  통탄할 일입니다.

어찌하면 좋습니까?  많이 배운 사람일수록 코웃음을

치니 말세가 분명 한가 봅니다.



청취자 여러분!

참선을 많이 해서 견성해서 깨쳤다는 선지식이란 분

들이 지옥도, 극락도 실은 없는 것이다라고 설법합니

다.  부처도 없고 보살도 없다 합니다.  이건 아닙니다.

이건 진정 법을 모독하고 부처를 능멸하는 짓입니다.



다만 화두일념이 되어야 깨칠 날이 있는 것인데 이것저

것 망상 피우면 안 되는 것이니까.  그래서 일체를  부정

하는 취지라면 몰라도 진짜 없다라고 말한다면, 마음밖

에 극락 지옥 부처 없는 것이라 말을 한다면 이건 중죄

가 뵙니다.  이 죄는 곧 저승의 명부 열시왕, 염라대왕

에 바로 입력이 됩니다.  그러면 죽어 극무간으로 갑니

다.  사실입니다.  이런 중죄를 지은 자는 천만 생에도

나올 기약이 없습니다.  정말입니다.





청취자 여러분!

마은자리가 드러난 경지, 자성이 드러난 경지, 크게

깨쳤다는 정각의 경지가 바로 아라한의 경지입니다.  인

간은 구조상 아라한 이상은 자력으로 이룰 수 없습니

다.  이게 한계입니다.  그리고 보살은 아라한성자 입장

에서 볼때 구름 위 높은 성자랍니다.  대수행인이 이제

붓다 되기 위해 염불삼매에서 더욱 향상해 나아갈 때,

부처님의 대열반광을 온몸 털구멍으로 받아들이고, 부

처님 세존으로 부터 사방정토에 나리라는 인가를 받는

경지에 들어야 보살의 반열에 들게 됩니다.  열반경 여

래성품에 "대열반과입중생모공자"라야 부처님께서 방광

하는 빛을 모든 털구멍 속으로 받아들이고 보살의 문턱

에 들어서는 것입니다.  여기가 8지보살입니다.  공부가

여기에 이르면 이제 신장님들이 와서 호신하게 됩니

다.  그리고 서방정토극락세계에 비로소 왕생할 수가 있

습니다.



어느 선여인이 크게 공부 이루어서 극락에 갈 정도면

그1번영체가 남성, 남자로 변해서 왕생합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보살이라는 성자의 입장에서 볼 때 하늘같은

어른이십니다.  대보살로써 불신을 얻어야 만이 붓다의

반열에 오릅니다.  불신, 붓다의 몸은 바로 그 대열반광,

무량광이라고도 하는 빛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

므로 불신을 갖추어야 붓다입니다.  이점 거듭 분명히

해둡니다.



역사상 불신을 갖춘 붓다는 세존 이후 두 분이었습니

다.  수보리존자와 사리불존자이십니다.  이 분들은 세존

가신 지 각각 천이백년, 천삼백년 만에 남섬부주에 오

셔서 대적정삼매를 통과해서 처음으로 붓다를 이루고

조용이 열반에 드셨습니다.  물론 지금은 붓다세계에 계

시면서 남섬부주에 오셔서 보살행하고 계십니다.  부처

이름은 각각 명상불, 화광불이시고, 보살명은 무현, 모

현입니다.



무량광, 대열반광이라고 하는 빛으로 이루어진 불신

을 갖추신 부처님은 <열반경> 23권에서 볼 수 있듯

이 능히 한 몸으로 많은 몸을 나툴 수 있어서 몸의 수

요가 마치 작은 먼지와 같이 끝없는 우주를 가득 채울

수도 있고, 항하사 모든 부처의 세계를 가볍게 잠깐 사

아에 날아다닐 수도 있다는 경전말씀은 사실이고 맛는

말입니다.  또 부처의 마음은 부동심으로 조금도 움직이

지 않으시면서 수많은 온갖 형상으로 스스로를 나타내

보일 수도 있다는 경전 말씀도 진실한 말입니다.  부처

님은, 붓다는 이런 대신통, 신력을 지니십니다.  부처님

은 또 설법하실 적에 <대반야경>, <법화경>에서 볼

수 있는 바, 이 땅덩이가, 이 세계가 진동하여 육종의

로 진동하여 부처님말씀을 대우주가 천지가 옳다고 증

명하는 것입니다.  부처님 설법은 이렇듯 불가사의 합니

다.  또 부처님은 스스로 방광해서 빛을 놓아서 동방 만

팔천 세계를 비추신다는 법화경 서품에서 볼 수 있는데

이것도 진실한 말입니다.





청취자 여러분!



나  자재 만현은 이러한 부처님의 지고한 위신력을

100% 1000% 인정하고 긍정합니다.  부처님의신력은

이 정도만이 아닙니다.  화엄경등 여러 대승경전에서 기

록하고 있는 자재하신 신력은 훨씬 그 이상입니다.  그

렇습니다.  그것은 불신을 이루어서 가능한 것입니다.



백천삼매, 대적정삼매를 임으로 자재하기 때문에 가능

합니다.  그런데 불 보살이 없다구요?  요달하지 못하면

묵묵히 정진할 뿐이지중생의 안목을 흐리게 하는 대망

어를 그것도 어록에다가 매스컴을 통해 사실인 양 힘을

주어 설법한다면 다시 단언하건대 이것은 극무간죄입니

다.  자성이 드러난 견성경계는 이제 성불로 가는 시작

에 불과한 것입니다.





출가 수행인이 참선하여 화두를 타파 한다는 일도 그

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천에 하나, 만에 하나 있을까

말까하는 그런 어려운 공부 아닙니까?  전생에 보통선

근이 아니고는 안 되는 일인 것입니다.  견성하고 보니

깨닫고 보니 인간의 내면 본성이 일월같이 밝고 청정할

뿐 아무것도 없고 일체가 텅 비었더라 그것입니다.  너

와 나 삼천대천세계 모두가 공이 되니까.  지옥도 극

락도 불보살도 없다고 설법합니다.  오직 존재하는 것은

마음뿐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

죠.  하나 밖에 모르고 둘은 모르는 말입니다.  붓다의

경지에 들면 지옥, 극락을 여실히 봅니다.  이건 어디까

지나 결코 주관적인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들을 뵈옵고

법문도 듣습니다.  대적정삼매에 들기에 가능합니다.



적정삼매는 환희, 환희 그자체입니다.  백천삼매중 가장

깊은 삼매입니다.  붓다라면 언제나 이 적정삼매를 임의

로 드십니다.  그리고 붓다는 또한 빛으로 이루어졌기에

미래제가 다해도 멸도 할 수가 없습니다.  죽을 수가 없

습니다.  그래서 붓다의 수명은 부처님의 수명은 법화경

수량품에서 처럼 영원한 것입니다.



이 방송을 청취하시는 불자여러분!

사람이 은혜를 모르면 짐승과 다룰 긋이 없다는 선현

들의 금언이 있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은혜 중에서 부

모님에 대한 은혜, 조상님에 대한 은혜만은 천도해 드

림으로써 꼭 갚아야 할 것입니다.  나를 그토록 사랑하

여 길러주신 부모님이 지금 돌아가셔서 악도에 계시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자기 살 궁리만 하고 혹 오

욕락을 즐기고만 산다면 어쩝니까?  천벌 받아 마땅합

니다.  은혜를 망각하고 소나 돼지같이 자기 삶에 취해

산다면 하늘이 노합니다.  수행자들이 공부 안 되는 중

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고, 여러분의 삶이 고달픈 그 이

유 중 하나가 이 점에 있는 겁니다.



여러분!  세간의 세속의 어떤 영광, 가령 시험에 합격

한다든가, 선거에 당선한다든가, 사업의 성공을 여러

분들이 진정바란다면 먼저 조상을 진짜 천도해 드리는

효를 다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들의 소원이 이우러질

겁니다.



일자 출가면 구족이 생천 한다구요?  과장입니다.  과

장도 지나친 과장이지요.  출가해 공부 잘해서 아라한

성자가 된다면 그 수행자는 윤회를 벗어난 성인이 나는

하늘에가 태어나죠.  거기서는 영원히 인간으로도 안 오

고 싶으면 안 올수 있는 곳입니다.  다시 말하거니와,

생사에서 벗어나는 일 곧 해탈을 이룬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공부 잘 해가다가도 돈과 여자 때문

에 중도에 탈락하는 수가 많은데 이것이 사바세계의 실

상입니다.



이렇듯 남섬부주는대단히 위험한 곳입니다.  온갖 마

장을 이겨내고 끝까지 공부 잘하는 이들이 얼마나 됩니

까?  그래서 한 세대를 두고 보아도 몇 안 되는 사람만

이 자력으로 성취할 뿐입니다.



가령 한 분의 아라한 성자가 그 집안에 났다 해도 구

족이 생천 한다는 것은 무리입니다.  대보살이나 붓다

같은 대성자가 풀세했다면 이 경우에는 가능합니다. 구

족뿐 아니라 하나의 지옥까지도 비울수가 있습니다.  반

듯한 스님이 아니면 하늘천상에도 나기 어려운데 일자

출가로 어찌 구족이 새천한다는 말입니까?



사랑하는 불자여러분!

그런데 천도란 어려운 일입니다.  사실 불과를 증한

대성자가 집전하는 천도대재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라

고 단언하는 바입니다.  온갖 중 죄업을 지어 무서운 지

옥이나 축생계에 떨어진 영가들을 무슨 법력이 있다고,

그 누가 그 지옥 축생 보를 사면해 준답니까?  그 누가

있어서 인간이나 하늘천상 세계에 나도록 천도해 줄 수

있단 말입니까?  업장이 지중한 영가를 천도하려면 우

선 최소한 영가를 확실히 볼 수 있어야 하고 그 다음

명부, 저 세상으로 인도해줄 수 있는 법력이 있어야 합

니다.  어떤 무주고혼이라도 수배해서 천도의 장으로

붙들어 올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게 어렵습니다.  중지옥

에 있는 영가를 데려올 수 있어야 하고, 짐승 몸을 받

았다면 그 영체를 데려온 수 있어야 하고, 짐승 몸을 받

았다면 그 영체를 끄집어내어 데려와야 하는 등 대법력

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돌아가신 부모 조상님들이

지금 어디 어느 세계에 계시고 천도를 마친 후에는 어

디로 천도되어 갔는지를 깊은 삼내에 들어서 알 수 있

어야 합니다.  지장보살과 삼매에 들어 독대해서 확인절

차를 거챠야 합니다.  이런 큰일을 해내는 데는 붓다의

화신이나 당대의 붓다 이를 대성자 아니고는 결코 안

되는 겁니다.



다음으로 부처님께 공양드리는 대공덕을 말씀디리겠

습니다.



<<법화경>><여래수량품>에서 볼 수 있듯이 부처님께

서 여러 대 제자들에게 수기 주실 적에 많은 부처님께

공양드림을 성불의 첫째 요건으로 꼽았습니다.  그렇습

니다.  본불님께 고양드리는 일은 무한 공덕이 됩니다.



큰 선근이 됩니다.  보현보살행원 중에도 광수공양원이

그중에도 대단히 중요한 행원입니다.  부처님은 빛으로

되어있으나 잘 살펴보면 32상 80종호를 갖추셨습니다.



일체시 일체처에 항하사 티끌수와도 같이 무수한 화신

을 나툴 수 있는 그런 지존이십니다.  여기서 공양이라

하면 그런 부처님 본신 본불님께 드리는 공양을 말합

니다.  그러므로 붓다의 반열에 드는 대성자만이 공양다

운 공야을 드린답니다.  그런 대성자는 여러 불세존의

본불신과 항상 함께 하시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여러

사찰은 본불이 아닌 화신불이 머무십니다.  화신도 없는

절이 많습니다.  그런 절은 외도신이나 귀신들이 우글거

리고 있습니다.  역사상 얼마만한 불자들이 이런 진짜

공양을 드렸는지 모르겠습니다.  불자여러분!  본불님께

진짜 공양다운 공양을 드리십시오.  업장이 소멸됩니다.



운명이 바뀌어집니다.



부처님 가신 지 3000년이 되다보니 당신의 금옥같이

지중한 말씀도 많이 묻혀지고 많이도 왜곡되어 내려옴

을 보고서 나 자재 만현은 진짜 불교의 기치를 들고 싶

습니다.  땅 끝까지 정법을 전하고 싶습니다.  겁에 한

분 나올까 말까 하는 부처님, 천만 생에 한 분 나올까

말까한 그런 붓다, 그 붓다의 세계에 대해선 중생들에

게 설법할 필요가 없기 대문에 우리 부처님께서는 거의

말씀을 안 하셨습니다.  또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는 이

유가 있기 때문에 여래의 비밀장으로 덮어두셨습니다.



그래서 남섬부주에서 볼 수 있는 대장경에는 인간이 이

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 아라한 성자되기까지의 가르침

만이 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버화경에서 다만 생

사해탈이 가능한 아라한의 자리에 만족하지 말고 보다

높은 자리 곧 붓다 될 것을 최고 목표로 정해서 정진하

라고 권하고 있을 뿐, 그에 수행방법은 언급함이 없습

니다.  그래서 밀장으로 남겨 두었습니다.



사랑하는 불자 여러분!

아침 일찍 일어나면 꼭 <<금강경>>을 독송하십시오.

그 후 석가모니불을 고성으로 정근하시고 일과를 시

작하십시오.  <<금강경>>은 불교의 중심이자,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께서 설하실 대승경전이십니다.  시간

이 많으신 분은 <<화엄경>>, <<보현행원품>>, <<법화경>> <본

문 8품>  그 중에서도 <여래수량품>, <여래신력품>을

독송하십시오.  그리고 선을 하십시오.  사경도 하십시오.



적정삼매에 들어 석가모니 부처님의 본불신으로 부터

법문들은 두 말씀을 여기 소개합니다.



법 아닌 생각이 일어나면

손에 불덩이를 쥔 듯 놓아버려라.



크게 좋은 일 있어도 좋다 말 못하고

크게 나쁜 일 있어도 나쁘다 말 못 하는 것,



이것이 붓다의 가르침이니라.



불자 여러분!

큰스님들은 다 아셔서 신도 분들의 길흉이나 미래사

를 말씀 해 주신다는 데 그런 소리 마시오.  아는 소리

하는 이들은 영가가 빙의 되었거나 외도들이 즐겨합니

다.  생사만을 다루는 정법 문중에서 오직 공부만 하는

수행승들은 생사 해탈하는 법 이외에는 말도 함부로 못

하게 되어있습니다.  천기를 누설하는 것은 대망어죄인

것입니다.  하늘을 나르고 이산도수하는 신통이 있는 들

뭘 합니까?  그들이 죽으면 대부분 그로 인해서 지은

죄업 때문에 악도에 떨어지는걸요.  오직 아라한이 되고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되는 마음공부에 정진해야 하는

것.  이게 부처님의 가르침이요, 뜻입니다.  저 사람이 내

일 교통사고로 뻔히 죽을 줄 알면서도 말하면 안 되는

것이 정법의 가르침입니다.



사랑하는 불자여러분!

재가불자라면 신도5계를 지키시고 10선만은 실행 하

십시요.  출가수행승이라면 출가계와 보살계를 잘 지키

는 것이 기본의무입니다.  승려가 중음계를 파한다면 결

정코 악도를 윤회합니다.  법복 입은 도둑이 되어 부처

를 팔아 갖가지 죄업을 짓는다면 무간지옥입니다.



마지막 간곡히당부하고픈 말씀이 있습니다.

다행히 소중한 인연을 만났으면 영적스승으로 모십시

오.  그게 사는 길입니다.  금생에 와서 지은 죄, 십악의

죄, 십중대죄를 깊이 깊이 참회하십시오.  우리가 불법

을 만나서 이 좋은 인간 몸을 버린 후에 지옥을 가고

짐승 몸을 받아 난데서야 말이 됩니까?  최소한 다시

인간 몸을 받아나거나, 하늘천상에 가 나야죠.  길은 있

습니다.  이 생도 다음 생도 잘 살 수 있는 길은 있습니

다.  작년 6월 첫 번째 설법에 이어 이번의 붓다 이후

실로 미중유한 사건입니다.  백년 안에 출세하실 어느

부처님께서 무릎을 칠 것입니다.



그럼 다음 세 번째 그때는 더욱 사자후할 나의 설법

을 기대해 주십시오.  아직 마쳐야 할 공부가 많습니다!



나무 삼계왕 남섬부주 대교주 시아본사 구원실성 석

가모니불....



찬진시념가수지 대해중수가음진 허공가량풍가게 무능

진설불공덕 고아일심귀명정례.






라디오 법회 3집 (2003. 7. 13 일요일(음 6.14)

주제 : 바른길 지혜로운 삶


강원도 불자 여러분!

춘천시 일원에 사시는 선남자 선여인 불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법성입니다.  지금은 자재 만현이라고

합니다.



춘천시 교외 수행 토굴을 지어 결사에 들어서 정진하

고 있는 수행승입니다.  여러분 이 시간 만현스님 법

문 내용을 경청하시고 이를 실천에 옮기시면 천상과

인간을 왕래하다가 마침내 큰스님을 만나 윤회에서 벗

어나고 구경에는 붓다가 될 수 있는 인연이 될 것

이라 감히 일러둡니다.



비었어라

비었어라

텅 비었어라.



나도 없고

남도 없고

중생도 없고

오래 사는 것 또한 없어라.

모두다 공, 공이라네



네 것 네 것 어디 있으며

가고 오는 게 어디 있으리.



마음은 오고 감이 없는데

눈 귀 있어 갖가지로 분별할 뿐

무아 무아로다.



다만 맑고 청정하여

환희 환희 환희 그 자체인 것을.



이는 이 자재 만현이 우주의식이라는 자성삼매에 들

어 아니 보다 깊은 무아 속 삼매에 들어 읊은 삼매송입

니다.



선남자. 선여인 불자 여러분!

되도록 쉽게 부처님 말씀을 전하고 싶어. 한 가지 실

화를 먼저 소개합니다.



조선조 순조왕 때의 일이니 지금으로 부터 약 150여

년전 쯤 되겠습니다.  경기 공양군 신도면에 사는 윤덕

삼이라는 착한 노총각이 있었습니다.  그 총각, 가진 재

산이란 하나 없고, 거기에다 70이 넘은 병약한 노부모

를 모시고 살라갑니다.  나이 20이 채 못 되서부터 10

년이 넘도록 오직 산에 나무를 해서 서울 장안까지 짊

어지고 가 팔아서 그걸로 사랑하는 늙으신 부모님 약

도 사다드리고 가끔 고기를 사서 눈물겹도록 효도를 다

하면서 어렵게 어렵게 살아가고 있었답니다.



그 노총각은 이제 장가를 들어야겠는데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고 정말 하나도내세울 것 없는 가난한 노총

각한테 시집올 색시가 있으랴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자하문 밖 옥천암을 지날 때 한 생각

이 떠오릅니다.  옥천암 해수관음부처님의 영험이 대단하

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옮지  그렇지 여

기 옥천암 부처님께 기도를 드려보자.  부처님께 매달려

보자.  하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쳐갑니다.  하루에도 두

번씩 옥천암을 지나가고 오니까 정성을 다해 빌어보

자.  난 이 길뿐 다른 수가 없겠다.  날마다 점심요기로

싸가지고 가는 주먹밥이 있지 않는가.  비록 깡보리밥,

수수주먹밥, 감자, 조밥등이지만 나에게는 이 이상 공

양물은 없다.  죄송하기 이를데없으나 그걸로 부처님들

공양을 올리자.  이런 생각을 굳히고 그 이튿날부터 나

뭇짐지고 가면서 절에 들러 맑은 우물물을 퍼다가 다기

그릇에 듬뿍 부어 올려놓고 부처님 앞에 꿇어앉아 빌기

시작 했답니다.



"부처님, 부처님 어디어디에 사는 나이가 얼마인 윤

덕삼이란 노총각 이옵니다.  전 세상에 죄업만 짓고, 공

덕일랑 조금도 짖지 못해서 이렇게 귀한 사람 몸을 받

아왔지만 보통사람들 처럼 지금 이 나이 되도록 장가들

지 못하고, 병약하신 우리 노부모 봉양하기도 벅찬 생

활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 사는 것을 보고 내 처

지 생각하면 아무런 희망이 없어 가끔씩은 죽어버리고

만 싶은데 사랑하는 우리 부모님 생각에 차마 이 한 많

은 세상을 벌릴 수가 없군요.  부처님 저 윤덕삼이를 불

쌍하게 보시사 큰 욕심 없습니다.  다만 참한 아내를 맞

이할 수 있도록 복을 주옵소서."



하고 무수히 절을 하면서 기원을 하고, 나뭇짐을 지

고 자하문 사대문을 들어서서 서울장안에 와 서울사람

상대해서 팔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제 점심이라고

어머님께서 싸주신 깡보리주먹밥을 부처님 전에 올려놓

고 절을 하면서 빌기를 100일, 또 100일 200일 기도에

도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렇게 치성을 올린 지 300일이 거의 되어갈 무렵, 어

느 날 밤 꿈에 어떤 깔끔하고 점잖게 생긴 노부인께서



"너가 내일 첫 새벽 닭이 울 때에 나뭇짐을 지고 떠

나 밤이 새기 전에 자하문 밖에 가서 기다리고 있다가

문이 열리면 첫 번째로 나오는 규수가 있거든 붙들고

말하기를 "남녀가 유별한데 먼저 말하기는 미안하지만

어디로 가시는 길입니까?  가시는 곳을 재가 안내하여

줄 터이니 나를 따라갑시다"  하고 애원하고 놓치지 말

아라.  그리하여 그 여자를 데리고 너의 집으로 돌아가

면 너의 소원을 이룩하리라."



고 말하는 것입니다.

꿈일망정 하도 좋아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

하겠습니다 하고 10번도 더 절을 하다 깨어보니 윤덕

삼 노총각은 첫닭 우는 소리를 듣고 바쁘게 매무새를 바

르게 하고 밖으로 나가 나뭇짐지게를 지고 삼십리 길을

총총 걸음으로 걸어서 희망의 벅찬 꿈을 안고 단숨에

자하문에 당도해서 문이 열리기만 기다렸습니다.  자하

문이 열립니다.  이때 한 30세 가까운 젊은 여인이 머리

위에 보따리를 이고 문을 나오더니 두리번거리다가 세

검정 쪽으로 내려갑니다.  그때 노총각은 지갯짐도 던져

버리고 그 여자를 뒤쫓아 가서 소매를 붙잡고 하는 말

"놀라지 마십시요.  남녀가 유별한데 먼저 붙잡고 말을

하기는 실례인줄 압니다마는 어디로 가시는 낭자이십니

까?  제가 길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속으로는 낭자가 생파리같이 툭 쏘고 말대답도 안 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잡은 손을 뿌리치지도 아니하고

부드러운 말로 "전 윤도령이란 총각을 찾아갑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바로 윤총각입니다." 하고

대답하니, "네 그러세요.  어떻게 알고 오셨나요?" 한다.

노총각 "미리 오실 줄 알고 마중을 나왔죠." 하면서 지

난밤의 꿈 이야기를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낭자 놀

라기도하고, 반가워하면서 저도 간밤의 꿈에 그러한 분

이 나타나서 말씀하시길 "너가 자하문을 나가면 첫 번

째 만나는 윤도령이란 노총각이 있다.  그를 따라가면

심덕이 좋아서 해롭지 않을 것이니 따라가라고 하여서

나와씁니다.  어쩌면 꿈이 그리 같을까요?" 낭자는 수줍

어하면서 몸 둘 바를 몰라 해 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주거니 받거니 길을 따라갑니다.  해는 불꾼 솟아 두 사

람을 축복하는 듯 비쳐주고 있습니다.



어느덧 해수관음이 있는 절 앞에 다가섭니다.  윤덕삼

은 낭자에게 권하여 부처님 앞에 가서 공손히 절을 하

는데 그 낭자 부처님상호를 보고 깜짝 놀라면서 "이 분

이 간밤에 뵙던 분의 얼굴과 똑같아요." 합니다.



선남자, 선여인 불자 여러분!

이 낭자는 서울 명문 대가집 규수였습니다.  열여덟

살에 어떤 양반집으로 시집을 갔으나 공방살이 끼었던

지 첫날부터 소박당하여 친정으로 쫓겨와서 10년을 수

절하면서 남편의 개심을 기다렸으나 아주 희망이 없게

되자 평생을 수절하며 살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 당시

대가집 규수가 버젓하게 재가 할 수도 없어서 친정살이

만 하다가 마침내 어머님께 집을 떠날 것을 말씀드리고

마지막 밤을 보내는데 바로 그날 밤 꿈에 부처님이 노

부인으로 나타나서



"니가 다른 문으로 나가지 말고 자하문으로 나가되

문이 열리거든 첫 번째 만나는 윤총각이라는 남자를 따

라가면 행복하게 살리라."고 일렀답니다.



윤덕삼은 날을 받아 간소하게 행례를 치르고 낭자 성

은 심씨.  심낭자가 싸가지고 나온 많은 금 은 패물을

팔아 집도 짓고 땅도 사고, 산도 사고, 그 부근에서 벼

락부자가 되어 잘 살았답니다.  지금 윤덕삼 5대손이 지

금도 살고 있어서 옥천암의 단골신도로 5대째 내려오

고 있습니다.



 이 방송을 청취하고 계시는 선남자, 선여인 불자여러분!

이 자재 만현스님이 깊은 삼매에 들어 석가모니 본불

님, 관세음보살 진신을 뵈옵고 법문들은 내용 일부를

여기에 니와서 말씀드리니 부디 메모해 두셔서 모두

에 말씀드린바 같이 실천에 옳겨 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관세음보살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을 보면 관세음보살

은 62억 항하사보살을 합한 것보다 수승한 부처님이십

니다.  무량겁 전에 성불을 하셔서 이름은 "정법명왕"이

시고 보살 이름은 관세음이십니다.  남섬부주인간을 불

법으로 이끄시고자 여러 변화신을 나투십니다.  불구덩

이에 떠밀려 떨어진다고 해도, 풍랑을 만나거나, 천만

길 높은 산에 올라섰을 때 왠 사람이 별안간 떠밀어도,

사형대 끌려선 마지막 순간에도, 큰칼 쓰고 옥에 같혀

도, 독약과 주술로 해꼬지해도, 나찰 독룡 아귀떼를 만날

지라도, 사나운 맹수를 만나서도, 살모사왕 독충들이

달려들 때라도, 뇌성벽력 칠 때도, 그때 관세음을 일심

칭명하면 그 생각이 마슬가지 않고 다만 일심으로 칭명

하면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께선 일천의 화신을 나투

시고, 서른 두가지 다른 변화신을 나투시어서 이 남섬

부주에 사는 중생들을 온갖 고난에서 건져주신다.  이

말입니다.



이 뿐만 아니라, 둥생들 가운데 음욕이 많거나 성내

는 마음이 많고, 또 어리석은 마음이 많다하더라도, 또

는 어떤 여인이 사내아이를 낳기 원하거나 영특한 계집

아이를 낳기 원해도 항상 관세음보살 생각하고 예배공

양하면 관세음보살께선 당신의 크신 위신력으로 그 중

생들의 소원을 이루어주신다 이 말입니다.



관세음보살은 이렇듯 중생의 어떤 고난이나 소망이라

도 일심칭명으로 당신을 찾으면 어느 곳이든 찾아가서

해탈 시켜주신다고 하는 <법화경> <관세음보살 보문

품>에 부처님 말씀은 진실이라는 것을 다시 자재 만현

은 이 법좌를 빌어 사자후로 확인하는 바입니다.  깊은

삼매, 무아 속 삼매에서나 뵐 수 있는 관세음보살님은

그 행동거지 일거수 일투족이 아룸다움과 자애로움, 성

스러움의 극치이십니다.  당신의 법신은 빛, 무량광자체

이지만 사람 몸으로현신 하셨을 때 자세히 보면 필설

로 형용할 수 없으리만큼 아름답습니다.  어찌 경에서

말하는 소위 32상 80종호를 가지고이야기 할 수 있답

니까?  가장 높은 하늘 천상의 여인이나, 선계의 제일

윗 급의 선녀와 천지차이도 더 나는 희유하시고 거룩하

신 불보살이십니다.  자재 만현스님이 지난 1집, 2집 법

문에서 언급했듯 관세음보살은 부처이면서 보살이시기

에 저 태양과 같은 빛 덩어리면서 동시에 모든 중생의

고난을 하늘의 태양이 세상을 비추듯 백천만억 화신을

시현해서 도탈, 해탈케 하시는 성모, 자모이십니다.



부처님들의 불신은 중생의 육안으로 잣대로 보아 40

대에서 50대 남자이십니다.  다만 칠구지불모인 준제보

살과 관세음보살만이 필요의 의해서 여인상으로 나투시

어 중생을 건지는 보살이십니다.  불보살은 유 무 일체를

초월해 계십니다.  감정 생각을 초월해 있습니다.  집착

도 없고, 머뭄도 없으십니다.  빛이시기에 삼천대천세계

에 안 계신 곳 없으십니다.  빛이시기에 모든 부처님은

한 생각, 한 티끌이 같습니다.  붓다의 몸뚱이는 빛, 비

로자나자체이십니다.  그러므로 아라한이나, 십지보살도

붓다를 친견할 수 없습니다.  육신이나 몸속 네 개의 영

체 모두 빛 덩이가 되고, 불신을 증득한 삼신을 구족한

붓다라야 부처를 봅니다.  동방으로 10항하사 국토 멀리

떨어져 계신 약사 부처님과도 언제나 마주 앉아 대화

할 수 있고말고요.  멀고 가까운 원근이 없습니다.  부처

님은 부처님의 법문을 항상 들을 수 있습니다.

 

다시 선언합니다.  부처님 몸은 비로자나이십니다.  빛

자체이십니다.  그리고환희자체이기도 하십니다.  대적

정삼매, 대적광삼매에 들고계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붓다는 영원히 미래제가 다하도록 멸도, 죽을 수 없습

니다.  붓다는 백천만억 화신을 나툴 수 있고, 일체신통

을 갖추고 계십니다.  해인삼매, 적정삼매, 백천삼매에

자재하십니다.  일체 지혜와 복덕을 구족하시고, 대자대

비이십니다.  빛으로 계십니다.  이런 부처님을 없다 하

고 이 마음이 부처라 하면서 막행막식하면 극무간지옥

을 갑니다.  마음의 본성, 실상을 요달 했으면 이제 자

기 부처를 지어가야 합니다.  견성은 시작이니까요.



석가모니부처님 이후로 우리 인류 역사상 두 분의 부

처가 새로이 탄생하셨습니다.  명상불과 화광불입니다.

이후에 도 두 분의 새로운 붓다가 출세 할 것입니다.

그 중 한분은 최초불이래 그 많은 붓다들께서 출세하여

설한 법장 용궁에 있는 경장을 섭렵하고 붓다로 출세하

여 사자후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법좌를 빌어 마음은 안팎이 없다는 것을

말씀해 둡니다.  형상이 있는 현상계는 안팎이 있습니다

만 공에는 안팎이 없습니다.



이 방송을 청취하고 계시는 불자여러분!

해수관음은 관세음보살의 변화신이 아니랍니다. 엄연

히 다른 인격체이십니다.  관세음보살의 좌보처 보살이

십니다.  해상용왕과 남순동자가 좌 우 보처인양 성문

에 보면 그렇게 쓰여 있으나 아닙니다.  관세음보살의

법문 말씀입니다.  우보처는 육관음이십니다.



청취자 여러분!

어떤 소원이 있어 기도하실 때는 먼저 불보살께 귀의

하고, 지난날의 죄업을 눈물로 참회해야 합니다.  내를

이를 정도로 눈물을 흘리면서 잘못을 참회하십시요.  그

리고 기도 성취에는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는 걸 명심하

십시오.



그것은 부모님께, 친정이나 시댁 부모님께 효도를 다

하는 그런 착한사람이 되어있어야 합니다.



다음에는 소위 재가 5계만은 꼭 지켜야 하며, 고기를

먹고 기도하면 기도 성취가 늦습니다.



그리고 관세음보살기도라면

첫째, 관음성지를 찾아가서 기도를 드리십시오.  관음

보살의 진신이 주하는 곳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나라에도 관음성지는 몇 군데가 있습니다.  양양 낙산

사, 남해 보리암, 강화 보문사 등입니다.



다음은 꼭 관음경, 법화경, 관세음보문품을 꼭 읽은

후에 불정심관세음보살 모다라니를 다섯 번이나 스물다

섯 번 정도 독송 후에 그리고 청문을 하신다음 정근으

로 들어가십시오.



청문이란 어디 어디에 사는 누구가 언제, 어디서, 무

얼 발원하오니 가피주옵소서.  이렇게 고하는 것을 청

문이라 합니다.  불정심관세음보살 모다라니는 해수관음

의 진언이라는 것을 밝혀둡니다.  몇몇 진언, 다라니는

큰 힘이 있다는 것을 부처님께서 누누히 말씀해 주신

바 있습니다.



관음기도든, 지장기도든, 문수기도든, 성중기도든, 산

신기도든, 나한기도든 간에 진에 걸리면 기도 성취는

안 됩니다.  진에 걸린다는 말은 기도드리는 불자라면

자기 욕심을 비우고 하라는 말입니다.  관음, 문수, 지장

은 큰 부처님이시고 산왕대신은 보살이십니다.  성중,

나한은 아라한이기에 이런 성자님들은 욕심이 듬뿍 밴

그런 제자의 소원은 들어주시지를 않습니다.  제삼 욕심

을 비우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합니다.  어찌 모

래를 삶아 밥을 얻를 수 있습니까?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생사를 걸고 기도에 임하라는 것을 특별히 주문합

니다.  기도하는 제자도 그 소원성취를 바라거든 분심을

갖고, 용맹스럽게 공부해서 도를 이룬 도인들 버금가게

초인적이리만큼 그런 자세로 기도에 들어가야 합니다.



혹 이 방송을 듣고 계시는 스님들이 있을까 싶어 몇

마디 도움 될 말씀드리겠습니다.  출가해서 마음공부 하

시는 스님들은 무엇보다 첫째로 부처님의 청정계율을

자기목숨 소중히 알듯 그리 지켜야 된다는 것을 강조,

강조 합니다.  도를 이루기 위해서 수행정진, 용맹정진

하고 계시는 스님들이나 또는 스님들 못지않게 불법공

부하고 계시는 거사님, 선남자나 선여인들이시여 계율

중에서도 남 녀간 사음이 제일 경계해야 할 율이랍니다.



아무리 선방에 오래 있으면서 수행을 잘해오고 있다하

더라도, 나아가 수행 잘 해서 크게 깨쳤다하더라도, 사

음을 행하면 단 한번이라도 음행을 저질렀다면 중지옥

이나 무간지옥에 간다는 것을 분명히 일러듭니다.  이건

부처님의 특별하신 메시지입니다.  여기 청정한 물이 한

항아리에 가득 차 있다고 합시다.  거기에다가 한 방울

똥물을 떨어뜨렸다면 그 물을 마실 수 없는 것처럼 음

행 죄를 범한 수행승은 이미 수행승의 자격이 없습니

다.  악도에 떨어진다고 부처님은 말씀하십니다.



다음으로 정녕 이르고 싶은 말씀은 붓다, 부처님을

능멸하거나 법을 모독하는 말은 절대해서는 안 됩니다.

잠깐 보기만해서 모골이 송연해지는 그런 무서운 지옥

으로 갑니다.  그리고수행하시는 모든 분들이시여 다시

강조합니다.  부모에게 효를 다 하십시요.  나를사랑으

로 낳아 길러주신 부모 은예를 꼭 갚아야만 공부에 진

척이 있습니다.  부모님이나 조상, 동기일신이 돌아가셨

으면 천도를 잘해서 악도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합니다.

영가의 천도는 성자의 반열에 오른 진짜 큰스님만이 가

능합니다.



자재 만현스님이 1집, 2집, 법문테이프 법문 말씀을

참고 하십시오.





끝으로 금강경 같은 대승경전을 하루도 빠짐없이 꼭

독송하십시오.  독송공덕을 외면하시면 안 됩니다.  기도,

염불, 참선하는 수행승들이라 해도 반드시 이참에 한번

만이라도 고성으로 금강경을 읽으십시오.  가사, 어떤

포교사가 남섬부주사람을 다 교화한다 하더라도 금강경

을 독송하고 상을 여윈 공덕만 못합니다.  다라니진언

역시 수행하시는 분들에게꼭 필요한 공부입니다.  큰

힘이 있습니다.  무시하고 이것을 하찮게 보는 스님들이

있는데 모르는 소리입니다.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정

근을 하루에 적어도 20~30분씩 정도는 하십시오.  법화

경의 핵심은 구원실성하신 석가모니불 위신력을 믿고

찬탄하며 그 말씀을 따르는데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

님은 삼계의 왕, 지존이십니다.  남섬부주 교주이십니다.

진점겁 전에 성불하신 삼계의 도사요.  진정 최초불이십

니다.  자재 만현의 이 말씀을 의심하지 마시고 무시하

지 마십시오.  석가모니불을 염송한 공덕은 실로 그 무

엇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크고 큽니다.



다음은 이 방송을 청취하시는 모든 분들께 드리는 말

씀입니다.  중생은 도를 크게 이루었다 해도 아라한까지

밖에 오를 수 없답니다.  대오했다느니, 정각을 했다느

니, 대각을 했다 해도 그래서 오랫동안 보림을 잘 마쳤

다하면 이제 비로소 그 자리가 아라한입니다.  부처가

아닙니다.  붓다가 아닙니다.  붓다는 이 거짓몸뚱이 그

리고 이 몸속에 4개의 영체(영혼체)외에 무량광이라고

하는 빛으로 이루어진 불신을 하나 더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불신을 못 얻었으면 부처가 아닙니다.  소위 교

과에서 말하는 법신 보신을 합한 개념이 불신입니다.

따라서 부처는 삼신을 구족해야 부처입니다.  법화경에

서 부처님은 회삼귀일을 소원하셨습니다.  아라한의 조

그만 열반에 만족하지 말고 보다 높은 목표, 붓다 이루

는데다 수행의 좌표를 설정해야 한다고 많은 비유 말씀

과 여러 제자들에게 수기까지 주셨습니다.  도를 깨쳐가

지고는 불신을 얻을 수 없습니다.  삼신을 구족할 수 없

습니다.  보림을 다 마쳤다하더라도 이제 부처기 될 수

있는 대문 하나 열고 발을 내딛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이제 시작에 불과한 것입니다.



저 히말아야 고산 동굴의 초인들 천년, 이천년을 살

고, 하늘을 날으고 몸에서 10만와트광을 낼 수 있는 신

통묘력을 지녔어도 불신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완전 생

사 해탈이 아닙니다.  불신의 비밀은 붓다 된 이라야 만

이 압니다.  불신은 수행승이 억겁다생이래로 공부 많이

해오고 선근공덕 많이 많이 쌓아서 이 남섬부주에 마지

막으로 몸 받아와서 억겁이래로 지은 업장이 한 티끌이

라도 남아있으면 불신을 얻을 수 없습니다.  천만 생토

록 살아오면서 지은 악습이 털끝만큼도 남아있으면 안

됩니다.  탐 진 치 삼독의 뿌리가 몸땅 빠져 버려야 됩니

다.  금생, 전생, 다겁생의 악연들이 모두 끊어져야 합니

다.  억만생을 내려오면서 지은 빚을 모두 끊어져야 합니

다.  억만생을 내려오면서 지은 빚을 모두 갚아야만 됩

니다.  그리고 신  구  의 삼업이 말끔히 다듬어져 있어

야 그런 훌륭한 수행승만이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부처

님들의 위신력으로 그 수행승 불신, 부처 몸이 부처나

라에 탄생한답니다.  불신을 얻은 대 축복을 받는 이는

겁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하답니다.  그 사람은, 그 수행

승은 거짓몸뚱이를 비롯해서 몸속 4개의 영체가 모두

빛 덩어리가 되기까지 수행을 해 가야 됩니다.  급기야

불과를 증하게 되면 자기 불신과 자기 영체는 하나로

계합을 합니다.  더 이상 언급은 여래의 밀장이기 때문

에 접습니다.



위헤서 예를 든 관세음보살님은 오랜 겁 전에 불신을

얻어 불과를 증하신 분입니다.  마찬가지로 문수보살,

보현보살, 대세지보살, 준제보살, 미륵보살님께서는 삼

신을 구족하신 분들이십니다.  이 점 중요한 새로운 말

씀인 줄 아십시오.  머지않아 이 남섬부주에 두 분의 새

로운 붓다다 탄생할 겁니다.  한분은 비구요.  한분은 비

구니로 지금 수행 중에 있습니다.  이 두 분은 2500년

전 석가모니불 영산 당시 부처님의 상수 제자 분들이었

습니다.



이 방송을 청취하고 계신 선남자, 선여인 여러분!

극락과 지옥은 있답니다.  중생이 지은 업을 따라 천

상, 아수라, 인간, 축생, 아귀, 지옥이 육도를 윤회 전

생하는 것도 사실이랍니다.  먼저 극락은 관세음보살 법

문에 따르면 보살8지 이상이 되어야 왕생이 가능한 정

토랍니다.  보살8지부터 부처님들은 보살의 칭호를 붙입

니다.  보살은 아라한성자의 입장에서 볼 때 구름뒤의

높은 어른이랍니다.  부처님의 무량광명을 온몸 털구멍

으로 받아 4영체가 무량광으로 세척되어야 보살의 반

열에 듭니다.  <<열반경>> <여래성품>에 있는 말씀입니

다.  보살은 사람 몸 받아오기를 여러 번해서 큰 선근공

덕을 쌓아야 붓다가 될 수 있습니다.  극락세계 상품보

살이 그 곳에서 성불한다고 하는 경전의 말씀은 바로

잡아야 할 것입니다.  극락상품보살이 이 남섬부주에 와

서 선근공덕을 쌓고 동방만월 세계 약사불 정토에 왕생

한 후 다시 남섬부주에 와서 성불하게 된다고 모든 부

처님께서 확인하신 법문말씀임을 선포합니다.  남섬부주

는 이렇듯 수행하기 적합한 특별한 별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이 남섬부주 교주이십니다.  그러

면서 삼계의 왕이십니다.  남섬부주를 떠나지 아니하십

니다.  영축산에 계십니다.  항상 여러분 다시 언급해 둡

니다.  지옥도 있습니다.  <<지장본원경>>에 나오는 지옥

수는 그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옥은 땅속 지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지구 본체격인 보이지 않는 영

계의 남방 지장궁 쪽에 있습니다.  보살의 혜안으로 볼

수 있으나 붓다 아니고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중생들

은 주로 대개 오역죄와 사바라이죄와 10악업을 짓고

살기에 염라대왕을 비롯한 열시왕에 입력되어 거의 지

옥을 가게됩니다.  그 지옥의 실상을 좀 더 자상하게

설 할 큰스님이 머지않아 출세하실 것이니 그 분 몫으

로 그 법문은 남겨두겠습니다.



여러 사랑하는 불자님들!

중생이 지옥 갈 업을 지었다 해도 짐승이 될 업을 많

이많이 지었다 손 치더라도 지옥, 축생 업을 벗고 하늘

천상에도 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진짜 선지식에게

그 열쇠가 있습니다.  대선지식이라면 그 길을 알고 있

습니다.  이 방송을 끝으로 몇 가지 소식을 접합니다.



부처님께서 대열반에 드신 후 200여년 후 인도국을 통

일해서 불법을 홍전한 아쇼카왕이나, 중국불교 홍

포에 심대한 영향을 준 양무제나, 오늘의 일본의 불교

에 큰 공이 있는 성덕태자나, 몽골의 자나바자라 국왕

이나 그리고 당나라 때의 현장법사, 신라시대의 이차돈

성사 등은 불보살의 화현이십니다.  그리고 서방극락정

토 보살로 있다가 지금 선근공덕을 쌓고 있는 보살화현

으로는 평택시 어는 절 비구스님, 부산 어느 선여인,

캄보디아의 고승 고사남다, 월남의 틱닛한 스님이 있습

니다.  티벳의 달라이라마 그 분은 서방 극락세계 상행

품 상행상 보살 화현이십니다



사랑하는 불자 여러분!

한 분의 붓다를 내는데 큰 선근을 지은 이는 극락세

계까지 왕생할 수 있습니다.  명년 초파일 전으로 네 번

째 사자후 법문이 있었으면 바라면서 자재 만현 스님

법문 이만 마칩니다.  내내 바른길 지혜로운 삶 사시길

바랍니다.  피땀 흘려 모은 재산 죽어 단 한 푼도 가져

가지 못 하는 것, 그리고 큰 스승 만나는 복은 비견할

수 없는 대 축복이라는 것, 불타는 삼신을 구족하여 완

전하게 생사해탈을 성취하는 법왕자라는 것, 이 법좌를

내려오면서 뒤로 하는 말입니다!



나무 삼계왕 남섬부주 대교주 시아본사 구원실성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출처 / 법문집 1권
펴낸곳/현지궁 현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