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13일 목요일

영체(영혼체)

  

영체(영혼체)



처음으로 지금 때가 되어서 내가 이 세상에 영체설을 밝힙니다. 영혼체(영체)이론입니다. 영산불교에서 오늘 공식으로 이 세상을 향해서, 1,200만 불자를 향해서, 세계 3억~5억의 우리 불자들을 향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이걸 여러분들이 들으시면 정리가 됩니다.

(1) 영혼체는 4개로서 다중구조를 지니고 있다. 즉, 영혼체는 밀도와 진동수가 다른 4번, 3번, 2번, 1번의 네(4)체(몸뚱이)로 겹쳐져 있다. 단, 4번에서 1번 영혼체로 갈수록 밀도가 높아진다.

(2) 4번 영혼체는 육체와 1․2․3번 영혼체를 접합하는 구실을 한다.

(3)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덩어리이다.

(4) 영혼체를 줄여서 영체라 부르기도 한다. 자이나교에서, 힌두교의 어느 학파에서,《아함경》에서는 식신(識身, 業身)이라고도 하는 그런 기록을 봤습니다. 과거생 자기의 의식과 기억을 지닌 생명체이다.

5)물리학에서 말하는 소립자보다도 더 작은 초미립자로 되어있다. 초미립자이기에 입자와 파동의 양면성을 갖고 있다. 파동으로 보면 극히 파장이 짧은 전자파에너지 생명체이다.

이상 다섯 가지는 힌두교에서도 이미 BC1000년 경, 그러니까 3000년 전에 그들 최고의 수행자(대성자)가 이를 보았습니다. 이 정도를 알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아래와 같이 깊이 파헤치지는 못했다. 붓다의 경지로 올라야 우리 영혼의 실체를 완벽히 규명하게 된다. 

19세기 신지학에서 힌두교의 이 영혼의 구조까지를 이해하고, 지금 이를 원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저것들이 모르는 영산불교의 영혼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들이 도저히 알 수 없었던 영혼체에 대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1) 인간에게는 누구나 행위의 주체요, 윤회의 주체인 영혼체라는 영적실체가(주인공이) 있다.

(2) 영혼체란 인간의식의 근거가(토대가) 되는 이 영혼을 담은 그릇이라는 말이다. 영적인 인간모습이다.

(3) 4번 영혼체는 이 몸뚱이와 100%닮았다. 3번, 2번, 1번 영체 역시 근간은 같은 닮은 형이다. 근간이 같다. 4번 영체의 수명은 한시적(限時的)이다. 이 몸이 명부로 들어가게 되면 그 4번 영체는 커트(cut)당합니다. 아시죠? 그 말이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 몸과 거의 같은 수명을 합니다. 그러나 비명(非命)에 죽게 되면 그 4번 영체로 살아가는데, 천도를 올린다든지 할 때 윤회의 주체이자 주인공인 1․2․3번 영혼체를 명부로 넣어주잖아요. 4번 영체(영혼체)는 그로부터 2, 3년 정도 있거나 화장(火葬)을 하게 되면 곧 소멸 됩니다만, 그렇지 않으면 그 4번 영혼체는 유령이 되어서 자기가 살던 집, 걸어 다녔던 낯익은 길, 자기의 묘지, 자기 위패가 기록된 영구위패로 모셔놓은 절을 왔다 갔다 합니다. 

그렇게 되면 젊은 자식을 잃은 어머니가 그 유령을 보면 어떻게 됩니까? 그래서 우리 현지사 천도재에서는 그 유령을 산화시켜줍니다. 그런데 요즘은 별로 안 해줍니다. 그것은 부처님께서 해주셔야 되기 때문에 그런 수고까지는 청하지 않습니다.

(4) 인간, 동물의 태중(胎中)에 들 때에는 이제 4번 영체가 생깁니다. 1․2․3번 영혼체는 안 그럽니다. 이것은 반드시 뭉쳐 다니는데 죽지 않습니다. 영원히 불사(不死)입니다. 4번 영체만은 인간이나 동물의 뱃속으로 들어갈 때에는 그때부터 생겨서 자랍니다.

(5) 소위 12띠 동물이면 영혼체가 들어간다. 조류 어류의 일부에도 그들 영혼체가 든다. 여러분 아시죠. 곤충류 벼룩 이(louse)와 같은 해충, 거머리 등과 같은 미물들, 식물 광물, 그리고 지수화풍 공(空)에는 영혼체가 들 수 없다. 이들은 윤회의 대상이 아니다. 자연생 자연사한다. 그러나 자이나교에서는 다 들어간다고 했어요. 잘못 본 것이다.

(6) 1번 2번 3번의 영혼체는 항상 뭉쳐 다닌다. 이것이 중생들의 주인공이다. 그 중에서 1번의 영체는 인간의 본체다. 힌두교에서 이야기하는 아트만 정도이다. 힌두교에서는 아트만이 윤회의 주체라고 하지만, 여기 영산불교에서는 아니다 그럽니다. 윤회의 주체는 1․2․3번 영체가 생겨야 됩니다. 

1․2․3번 영체하고 4번 영체가 생길 수 있는 업을 지어야 그것이(그 몸뚱이가) 윤회하는 주체가 됩니다. 1번 영체를 가지고는 절대로 윤회할 수가 없습니다. 1번은 본체계입니다. 본체계에 있는데 왜 윤회 합니까? 업이 있어야 윤회를 하지요. 그래서 업을 지어 감으로서 2번 영체가 생기고, 3번 영체가 생기고, 4번 영체가 생겨요. 이것이 윤회를 하는 거예요. 이것이 윤회를 해.

(7) 1번, 2번, 3번 영혼체의 수명은 무한하고 영원하다. 1번 영혼체의 수명은 무시로부터 있었고, 영원토록 불사(不死)한다. 이것은 엄청난 새로운 소식입니다. 이 영혼체는 바로 윤회의 주체이다. 즉, 이것은 다겁생을 내려오면서 지은 업 때문에 중생들의 영혼체 색깔은 대부분이 거무튀튀하다. 업장은 태산만하다. 

마치 숯덩이와 같고, 진흙덩이와 같아서 영산불교에서는 이를 비아(非我)라고 한다. 비아(非我), 나(我)가 아니다. 비아(非我)라고 한다. 바로 이것이 윤회의 주체가 된다. 비아(非我)라야 윤회합니다. 아트만과 같이 지고지순하고 행위 하지 않는 것은 절대 윤회를 못합니다. 2번 3번 4번이 붙은 비아(非我), 숯 덩어리가 된 이놈, 이 업 때문에 육도를 윤회 하는 거예요.

(8) 이 영혼체 3번으로 하늘 천국에 가서 난다(하늘 천국에 갈 때에는 3번 영혼체가 간다). 이때는 2번 영혼체와 1번의 영혼체는 그 안으로 겹쳐든다. 성중하늘은 2번으로 간다. 이때도 3번 1번은 그 안으로 겹친다. 1번 영혼체로 극락에 왕생한다. 3번 2번의 영혼체는 그 안으로 겹친다.

(9) 영혼체는 그 사람의 영격에 따라 빛(색깔)을 띄우고 있다. 오라와는 다르다. 오라(aura)는 영혼체의 색깔이 그 사람의 몸뚱이를 거쳐나온 색깔이다. 지옥 등 악도로 떨어질 사람은 영혼체가 거무튀튀한 색깔이다. 하늘이나 인간의 몸을 받아 올 사람은 하얀색이다. 보살은 아침 햇빛깔이고, 불과를 증한 이는 눈이 부셔서 볼 수 없는 햇속 빛이다. 그러면서 안과 밖이 투명하고, 영롱하고 아름다운 무량억종광 빛이다.

(10) 부처님은 수행자의 다겁생의 업장을 씻어주시고, 또 그것을 소멸하실 수 있다. 그 영혼체에 더덕더덕 붙어있는 그런 업장들을 부처님만이 씻어주시고, 소멸도 하신다 그거예요. 유대 신비주의 카발라에서 자기 신의 애제자의 수행을 돕기 위해 그들의 하늘 최고신은 빛을 정수리에 쏟아 부어서 빛의 몸으로 만든다고 한다.

그래서 영원히 죽지 않는 자기의 천국으로 데려간다. 그러나 우리 불교의 교주이신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수행자의 영혼체를 꺼내어서(꺼내는 것부터는 그들은 할 수 없다. 영혼체를 끄집어내는 것은 오직 부처님만이 하신다) 끈끈이 막으로 각 영혼체가 붙어 있는 것을 무량광으로 씻고 닦아 4영혼체를 분리 한 후(그들은 분리도 못한다.

세계의 어떤 종교의 교주도 이 일은 못한다), 몸뚱이까지 다섯 개의 영혼체 각 정수리 위에 부처님이나 오여래부처님이 올라가서 억종무량광으로 쏟아 붓는다. 먹물 같은 업장의 찌꺼기가 내를 이룬다. 이 정도 되면 지옥은 가지 않습니다. 

이건 순 타력이지요. 자력수행 갖고는 못합니다. 이러기를 여러 번 작업 함으로서 아라한을 보살로 만든다. 이러한 작업은 부처님과 오여래, 그리고 문수 보현 관음 지장 정도의 기라성 같은 붓다만이 할 수 있다.

또 영혼체를 감은 쇠토막 같은 업장은 아주 지중한 업을 짓게 되면 그렇게 되는데, 석가모니부처님 만이 이를 끊어 주시고, 그 끊겨진 쇠토막들은 삼매화라고 하는 불 속으로 던져 녹여버린다. 녹여 소멸시켜 주신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또 그 영혼체의 쇠토막이 다시 붙기 때문에 그렇게 까지 해주신다. 자력을 기반으로 하고, 타력 수행만이 보살과 붓다가 될 수 있다는 말의 뜻이 여기에 있다.

여기부터는 밀장이어서 여태 말을 못했지만, 지금 현재 이 불교에서 영혼체를 부정하기 때문에 오늘은 이 부분까지 과감하게 말씀을 해드립니다.

(11) 업이 지중한 이의 영혼체는 부처님도 몸에서 꺼내기 조차 어렵다. 그 영혼체는 다겁생으로 내려오면서 지은 업장이 두터워 태산만 하고, 숯검정 같고, 영혼체 끼리는 껌과 같이 달라붙어 있으며, 몸뚱이와도 하나로 붙어 있어서 꺼내어 씻는 것조차도 어렵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당신의 금단을 영체에게 먹인다(영체 속으로 믹스시킨다). 한의원에서 만드는 환약 같은 금단이라고 있어요. 각 부처님마다 이런 신비스러운 약이 있습니다. 영체 속으로 그걸 흡수시킴으로서 밖으로 꺼낼 수 있다. 꺼낸 다음 네(4)영체를 억종광명의 빛으로 분리하신다. 이런 과정을 거친 수행자는 지옥 등 삼악도를 면한다. 이때 빠져나가는 먹물 같은 오물은 도랑을 이룬다.

(12) 아까 말씀했지요. 보살의 법위부터는 영혼체를 꺼내어 놓으면 즐거워서 뛴다. 4영혼체를 분리해 놓으면 각각 즐거워서 환희용약한다.

(13) 불과를 이룬 대성자의 영혼체는 스스로 나와서 4개의 영혼체가 독립적으로 뛰어 놀고, 공중이나 물속에서 자유자재로 활동한다.

(14) 아라한까지의 영혼체는 그 사람 몸뚱이의 옆으로 나오고 들어가지만, 보살 이상의 영혼체는 앞으로 나오고 앞으로 들어간다.

(15) 불과를 이룰 수행자나, 불과를 이룬 이의 영혼체는 절대계 목욕탕의 가장 위의 탕인 (약사여래부처님이 계신 저 약사궁에는 삼탕이 있는데) 일탕에서 영혼체를 분리해서 목욕을 시킨다(목욕을 한다).

(16) 불과를 이룬 대성자가 잠을 잘 때,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오시면 곧 몸 밖으로 영혼체가 빠져나와 오체투지 인사를 한다.

(17) 불과를 이룬 이는 열반에 들 때 1번 2번 3번 4번 영혼체는 바람같이 몸을 빠져나와 절대계의 자기 불신으로 들어가 계합한다.

(18) 과거생에 불과를 이룬 붓다가 사람 몸을 받아 오실 때는 자기불신 속 4영혼체가 어머니 뱃속으로 든다.

(19) 불과를 이룬 붓다는 업이 없다. 악연도 모두 단절되어 있고, 원결도 없고, 갚아야할 빚도 없기 때문에 태어나면 그 용모가 32상을 갖추고, 지혜가 있고 자비스럽다.

(20) 어머니 뱃속에 있음을 알고, 이 세상에 나옴도 안다. 소위 생이지지한다.

이상 스무 가지입니다. 위의 다섯 가지는((1)~(5)) 자이나교나 힌두교에서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후 많지만 스무 가지는 우리 영산불교에서 이 세상에 처음 발표한 내용입니다.

이야기입니다. 여러분들이 영혼체에 대한 이해를 충분히 하시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두 가지 실화를 소개하겠습니다. 1924년이니까 약85년전입니다. 진주시 옥봉동에 사는 '김재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진주시 옥봉동이라는 동이 있는가 봐요. 

그 김재이라는 노인은 80살을 먹었어요. 또한 진주시 비봉동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김재이라는 이름을 가진 38살 먹은 사람이 있었어요. 그런데 비봉동에 사는 38살 먹은 김재이라는 사람이 저녁에 잠을 잡니다. 꿈이라고 봐도 되지만 꿈이 아닙니다.

형사 같은 이가 와서 ‘좀 가야할 일이 있으니까 나를 따라 가자’그러더래요. 그래서 그 형사를 따라갔습니다. 어디만큼 갔는데, 어느 큰 관공서(경찰서)같은 곳으로 들어갔다 그거예요. 여기에 들어가라고 하면서 밀어 넣는데 보니까 이미 20여명이 와있더라 그거요. 

그런데 한참 있으니 밖에서 소란스러운 말소리가 나서 가만히 들어보니까 비봉동에 사는 38살 먹은 김재이를 내보내라 그거예요. 왜 옥봉동80노인 김재이를 안 잡아 왔냐 그거라.

그래서 비봉동 38살 김재이가 석방되어 자기의 집으로 왔다 그거예요. 와서 시계를 보니까 새벽 2시예요. 그래서 아침 일찍 종을 시켜서 옥봉동 80노인 김재이씨 집을 가보라고 했어요. 가봤더니 거기에 초상이 났어. 그래서 ‘김재이라는 노인이 몇 시경에 운명하셨오’ 라고 물으니까 ‘새벽 3시쯤 됩니다’ 라고 하더래.

따라가고, 잡혀가고, 또 오고 한 놈이 뭐죠? 영혼체입니다. 4번 영혼체. 4번 영혼체 속에 3번 2번 1번이 겹쳐있습니다. 4번 영혼체는 우리 사람과 털구멍 하나 틀림없이 100% 닮았다고 했지요. 1․2․3번 영혼체도 닮아 있습니다. 사실은 1․2․3․4번 영혼체가 닮았습니다. 그런데 올라 갈수록 조금씩 모양이 다르지만 근간은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에 천도되어 가지고 올라간 어머니 아버지는 척 보면 알아요. 지옥에 있었는데도 알아. 그런데 천도를 몇 번 하니까 하늘에 올라가셨어요. 우리의 경우입니다. 아버지인지 어머니인지 그냥 알아. 또 우리 어머니가 성중하늘을 가고 극락세계에 이제 가셨잖아요. 아주 잘생기고 빛이 나고 하는데도 우리 어머니가 이렇게 아는 거예요.

그걸 근간이라고 하는데, 근간은 변하지 않습니다. 근간을 가지고 그냥 알아봐지더라. 그런데 대승불교쪽인 유식학, 부파불교에서는 무아설(無我說)하고 윤회의 주체 간에 모순이 없도록 이론을 창출하려고 굉장히 노력을 했습니다. 

그 결과 심상속 이론이 나오고, 푸드갈라 이론이 나오고, 무슨 근본 식이 나오고... 많이 나오잖아요. 대승불교 쪽으로 와서도 역시 그렇습니다. 아까 스님이 말씀했던 것처럼 가령, 지옥이라든지, 윤회의 세계(육도의 세계)라든지, 또 적멸의 세계(해탈의 세계)라든지, 불보살님이라든지, 심지어 선불교에서는 삼보라든지 붓다의 삼신설이라든지 하는 그 전부를 마음차원에서 해석해버려요. 

이래서는 안 된다 그거예요. 이렇게 되면 불교가 망한다는 것이지요. 그것을 누가 믿겠어요. 이렇기 때문에 인도에서 쫓겨나왔는데 말입니다.


그러면 영산불교에서 공식적(대내외적)으로 내가 '아난이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내말을 어떻게 합니까? 그런 사람이 아니고는 말할 수 없는 거예요. 그런 사람이 아니고는 저 적멸의 세계라든지, 대적정삼매에 들 수가 없는 거예요.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우리 신도 중에서 어떤 남편 이야기예요. 성명은 생략합니다. 어떤 모 사장이 50대에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어요. 그 부인 되는 분이 선근이 있어요. 그래서 우리 영산불교를 책자를 통해서 알고, 우리 신도가 된 지가 2, 3년 됩니다. 49재를 의뢰해왔어요. 그 부인되시는 신도분이(보살님이) 대단히 착하고 진실하고 전생에 선근이 있어요. 그래서 신경을 써서 천도재에 임했습니다.

그 남편의 49재는 그분이 살았을 당시에 다녔던 절에서 했으니까 아마 49재가 지나갔을 거예요. 우리 현지사에서 새로이 천도재를 하면서 보니까 무주고혼으로 있어요. 명부를 못 들어갔어요. 

이런 이야기는 지금의 불교가 전혀 모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들어보지 못했으니까 돌았다든지, 묘한 말을 한다든지 해가지고 색안경을 쓰고 본다 그거예요.

지금의 불교가 이렇게 되어버렸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 무주고혼이 된 그 남편을 붙들어 왔지요. 붙들어 오는 것도 정말로 능력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아시죠? 그 남편 되시는 분은 자수성가를 해가지고 돈을 많이 벌었어요. 그러니까 사랑하는 처자가 있지, 돈이 있지 하니까 죽어서 무주고혼이 되는 거예요.

무주고혼이 되는 4가지 이유가 있다고 했지요. 어쨌든 무주고혼이 되어있어요. 그래서 잡아다 놓고 ‘당신, 명부를 들어가라. 명부로 들어가지 않으면 당신이 지금까지 지은 업이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죽으면 저 불바다 지옥으로 간다. 그러니 말을 들어라’ 하니까 말을 잘 안 들어. 이 몸뚱이가 그대로 가니까 자기가 죽은 줄도 몰라. 전혀 모릅니다. 모르는 거예요. 

‘당신은 죽었다. 자, 봐라.’ 그래가지고 큰스님의 영혼체가 큰스님의 몸에서 쏙 빠져나와가지고 보여줍니다.

그 영혼체는 빛덩어리이기 때문에 눈이 부셔서 상하니까 빛을 흡수해버립니다. 그러면 빛이 아롱아롱해요. 보여주면서 이것이(영혼체가) 바로 내 몸속에서 나왔잖느냐. 당신도 그래. 지금 당신도 그랬어. 죽었는데 지금 죽었다는 것을 몰라. 나 들어간다 하고 쏙 들어가거든. 또 나가고 하니까 이제 알아.

그제야 ‘아! 그렇습니까’라고 한단 말이에요. ‘이 큰스님 말을 안 들으면 당신은 업이 지중하니까 저 불바다 지옥으로 간다’고 하니까, ‘아! 그러냐’고 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들어가거라. 들어가고, 저 사랑하는 처자를 위해서 네가 몰래 감춰두었던 돈, 모든 통장(사후에 형제들 끼리 재산다툼도 있잖아요. 그걸 막아주기 위해서입니다)등 모든 것을 갖다 줘라.

그러니까 그 사장이 모든 통장이며 도장, 자기의 통장이며 도장 등 모든 것을 갖다가 자기 부인한테 안겨주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지금 한 몇 십일 동안 부인 몸속에 들어가 있었는데 그 기를 빼라. 그것을 빼야 됩니다. 

그래야 환영(幻影)이 없어집니다. 주~욱 빼가지고 한 짐 짊어지고 명부로 갔어요. 그 부인 되시는 분이 착하고, 신심이 있고, 선근이 있어서 그 남편의 천도재를 몇 번 해서 지금 제3하늘에 있습니다.

우리 신도분들, 이 법문을 듣고 계시는 우리 불자님들, 영혼체라는 것이 우리 인간 중생의 윤회 주체입니다. 윤회의 주체입니다. 이 윤회의 주체를 아무도 모릅니다. 앞에서도 말씀했듯이 깊이 공부를 많이 하고, 착실히 하고, 바르게 하고, 그리고 선근공덕을 지어야 현상세계에서 본체계로 들어갑니다. 윤회에서 벗어난다는 말이어요.

그런데 이 윤회에서 벗어나는 분들이 얼마나 됩니까? 혼자 공부해가지고는(자력으로는) 어렵습니다. 자력으로는 어려운 거예요. 자력의 한계가 윤회를 벗어나는 아라한 자리인데, 아라한 되기가 어려운 거예요.

다만, 부처님의 가피로(위신력으로)해서 저 본체세계(적멸의 세계)로 갑니다. 보살이 되고 그러는 것입니다. 우리 부처님의 능력은 정말 무한하더라 그거예요. 왜 그러느냐? 이제 적멸의 세계를 이야기할 때 말씀을 드리겠지만, 우리 부처님의 능력은 상상할 없습니다. 

그래서 '우주적인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우주적인 능력을 지니고 계시더라. 지금 그 많은 붓다님들을 전부 없다고 하네. 상징으로 봐버려요. 비유로 봐버려. 그런 세상이 되어버렸어.

그런 불교가 어떻게 크겠습니까. 진리 아닌 것은 죽는 거예요. 진리는 반드시 살아나는 거예요. 우리 현지사 3, 4년 밖에 안 되었지만 사방에서 엄청나게 시기 질투가 심합니다. 이게 TV석상이라서 자세히 말을 못하는데, 외압이라고 할까 시기 질투가 너무도 심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성장해왔잖아요. 

앞으로 정말 클 것입니다. 아무리 사방에서 우리가 잘 되는 것을 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성장할 것입니다. 우리 부처님 말씀이, 정말로 진짜 부처님 사상이 널리 포교 되어야 합니다. 널리 포교 되어야 됩니다.

우리 현지사 착한 우리 단월님들, 3년 5년 다녔잖아요. 그래서 업장을 많이도 씻었잖아요. 업장을 씻는 그 부분을 전혀 모릅니다. 저쪽에서는 부처님도 없다고 하는데, 무슨 업장을 씻는다고 해? 전혀 모릅니다. 

이 방송, 이 말을 들으면 아마 의아해 하고, 어떤 선근이 없으면 욕하고 그러겠지요. 그러나 그런 업을 지으면 안 됩니다. 이것은 법을 능멸하고 모독하는 것입니다. 그 업은 오역죄보다도 더 무서운 거예요. 법을 능멸하고, 붓다를 모독하는 것은 무서운 업이랍니다.

무아(無我), 범어로는 아트만(atman) 앞에다가 an을 더 붙여줍니다. anatman그럽니다. 무아(無我, anatman), 현상계의 무상한 몸이 내가 아니라는 것이야.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이야. 우리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을 뿐이어. 그런데 왜 무아(無我)를 갖다가 단순하게 ‘내가 없다’라고 해석 해가지고 불교를 그 인도 땅에 설자리가 없도록 만들었느냐구요. 

이 위대한 불교가(종교가) 이미 세계화 되어 있어야지요. 세계화 되었어야지. 그러나 이런 법문을 듣고, 깊이 스스로 반성하고 참회하고 한다면, 우주적인 종교인 진짜 불교가 원상대로 복원 될 것입니다.

심지어 저 사람들은 석가모니부처님 같은 위대한 부처님도 반열반에 드시면 공(空)과 계합한다 그래요.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공(空)과 하나로 되어버렸으면 어떻게 됩니까? 다시 오겠습니까? 올 수가 없지요. 공(空)과 하나로 되어버렸어. 

인격적인 자아가 소멸되어 버린 거예요. 소멸되었다고 하면 어떻게 됩니까? 부처님께 다시 못 오십니다. 이렇게 해석하면 안 되지요. 큰일 날 해석이지요. 거듭 말씀을 드립니다. 본체세계(적멸세계)는 상락아정입니다.

상락아정이라고 해요. 거기는 무상(無常)하지 않아요. 상(常)이어요. 현상계인 여기는 실체가 없고, 인연이 모여서 이루어지고, 또 인연이 다해서 흩어지면 실체가 없지요. 그건 현상세계에서 이야기하는 말이어요. 그건 맞아. 

그러나 적멸세계까지 들어가 봐. 거기는 아(我)입니다. 유아(有我)예요. 거룩한 보살님들이 계셔요. 부처님들은 정말로 절대계에 계시고요. 또 현상세계 윤회 안의 지옥도 영혼체가 가는 것이니까 가서 벌 받고, 또 하늘은 3번 영혼체가 간다고 했지요.


3번 영혼체가 하늘 천인으로 있단 말입니다. 그런데 유식에서는(대승불교에서의 유가행파인 법상종) 제8아뢰야식이 윤회의 주체가 된다고 합니다. 여러분, 전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식(識)은 절대로 윤회의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스님이 무슨 비유를 했느냐 하면, 식(識)이 극락을 간다? 식(識)은 느낌도 없고, 생각도 못하고, 판단도 못하고 그럽니다. 

그 모양도 없는 식(識)이 떨어져 나가가지고 극락을 가서 산다? 식(識)이 행위 한다? 행위 하지도 못해. 식(識)은 과보를 받지도 않아. 다만 이 근(根)이 있어야 돼. 이 몸뚱이가 있어야 되는 거예요. 몸뚱이가 있고, 경계가 있어야 식(識)이 생기는 거예요. 식(識)이 활동을 하는 거요.

그런데 이 몸뚱이가 없다고 해버리면 영혼체(영혼을 담은 그릇, 영혼을 담은 몸뚱이)가 벌을 받고 또 극락에 가서 ‘햐! 여기는 정말로 환희로구나’한단 말이에요. 붓다가 되면 아까 무아속 환희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힌두교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브라만은(梵은) 100^7(100의 7승)의 환희 속에 있다 그러거든요. 그러니까 인간들이 누릴 수 있는 최고 쾌락의 100배에다가 지수 7승을 해줘요. 그런데 우리가 볼 때에는 그게 참 우스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붓다는 그럽니다. 범(梵)은 붓다가 아닙니다. 자기들의 말로 하자면 범(梵)은 이 현상계를 낸 소위 창조주이지요. 창조주는 없습니다. 힌두교 식으로 말하면 현상계를 낸 창조주입니다. 이 범(梵)은 공(空)입니다. 

공(空)을 인격화 시킨 것이 범(梵)이어요. 범(梵)은 인간이 누리는 최고 행복, 최고 쾌락의 100^7이다라는 것입니다. 붓다의 무아속 절대세계에 들어가는 대적정삼매의 환희가 그 정도입니다. 무아(無我)를 잘못 해석 했지요.

다시 여러분들한테 바른 정의를 말씀드립니다. 현상계의 존재인 나는 무상하고, 실체가 없는 오온으로 이루어진 집합체에 불과해. 그렇지요. 무아(無我)는 실체로서의 진정한 나(我)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현상계의 나(我)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으로 무아를 이야기하신 거예요. 그러지, 나(我)라는 것은 완전히 없는 것이다. 

실체가 없는 것으로 현상계의 시각에서 보지말라 그거예요. 현상계의 시각에서 불교를 다루지 마라 그거요. 적멸세계와 본체계와 현상세계를 아우르는 시각에서 불교를 다루어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이해하시겠습니까?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무아(無我)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승경전에 나오는 그 수많은 불보살을 어떻게 해석 합니까? 어떻게 해석하는 줄 아십니까?《화엄경》《법화경》이 진짜 법문인데 상징, 비유로 해석합니다. 

부처님 반열반 후에 두 세 사람의 학승을 꼽으라면 용수, 무착, 세친 같은 분들을 꼽을 거예요. 무착 같은 분이 윤회의 주체를 알려고 하면서 무아(無我)를 갖다 놓기도 했지만, 윤회의 주체가 있어야 되겠거든요. 

그런데 없다고 하니까 이거 도저히 알아낼 수가 없어서 자살을 결심했답니다. 자살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친구의 권유로 계속 공부를 해가지고 삼매에 들어 도솔천에 가서 미륵부처님한테 유식의 이론을 공부해가지고 왔어요.

이분을 유식학의 조(祖,鼻祖)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8아뢰야식 갖고는 윤회를 못합니다. 식(識)으로는 윤회가 안 됩니다. 식(識)은 윤회의 주체가 안 됩니다. 몸뚱이가 있어야 됩니다. 이걸 몰랐어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지금의 불교는 이대로 가면 안 됩니다. 이대로 가면 안 됩니다.

 크게 공부해서 대선지식이라는 분이 출세했다고 하면 법상에 올려놔야지요. 왜 내려 버리려고 합니까? 그분의 말씀을 경청해야지요. 들어봐야지요. 정말로 한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불자들은 앞으로 모두모두 삼악도를 벗어나야 됩니다. 최소한 하늘을 가야 됩니다. 

최소한 하늘, 그리고 인간세계를 왔다 갔다 하다가 부처님 회상을 만나서 윤회를 벗어나야 됩니다. 여러분, 그걸 잘 아시죠. 그런데 종래의 불교는 안 그럽니다. 

붓다도 없고, 보살도 없고, 극락도 없고, 지옥도 없고, 귀신도 없어요. 영혼이 없다고 딱 성명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교화할 수가 없습니다. 도덕 윤리를 주장할(선창할) 기반을 잃어버렸는데, 어떻게 그 윤리 도덕이 가치가 있습니까? 이렇게 되면 안 되지요.

출처/2010.5.6.목요일 자재 만현 큰스님 춘천법문 (BBS불교방송 제2회)중에서 발췌



왜소화된 불교/삼신

 왜소화된 불교/삼신



우리 불교는, 위대한 우리 불교는 왜소화 되어버렸습니다. 현재 아라한이 목표입니다. 아라한도 아닌 깨달음을 종착지로 하고 있습니다. 대단히 슬픈 일입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공부한 바로는 이거 안 되겠다 싶어서 책을 썼고,

70여회에 거쳐서 이 문제에 대해서 법문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래의 불교로 올려줘야 됩니다. 불교는 위대합니다. 본래 불교는 아라한을 넘어서 보살, 보살을 넘어서 붓다 이루는 것입니다. 붓다를 이루었다고 하는 것은 우주 진리․ 우주 본체와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 합니다.

우주 본체와 하나가 된 것을 법신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법신불이라고 하는 개념을 학자들도, 그 어떤 스님들도 모릅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법신불에서 보신불이 나옵니다. 불과를 증한 분은 유․무를 초월한‘무아 속 절대계’에 자기 불신을 두는 겁니다. 이건 대단히 엄청나고 매력적인 이야기입니다.

그 불신에서 천백억 화신을 냅니다. 천백억 화신을 내어서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중생 국토에 가서 그들을 교화 합니다. 그리고 그 보신에서 이 사바세상에 사람 몸을 받아 옵니다. 인신을 받아 옵니다. 그 인신을 응신, 응화신, 화신 그럽니다. 이렇게 불과를 이룬 어른은 세 몸을 둡니다. 법신불․보신불․화신불. 이제 조금 더 깊이 이야기 해드립니다.

보신불은 상대세계(경험세계)를 초월해서 저 절대계에 몸을 둡니다. 그 절대계에 몸을 두는 그 보신의 모습은 32상80종호를 갖춥니다. 그 이상입니다. 그 몸뚱이는 부처님의 개끗하고 청정한 광명의 빛입니다. 

무량광입니다. 그 무량광으로 이루어집니다. 무량광은 소위 모든 존재의 근원인 빛, 그것을 자성광명이라고 하는데 그 자성의 광명보다도 훨씬 더 깊이 들어가야 정토(극락세계의 빛)세계의 빛이 나오고,

거기서 한없이 수행하고 보살행을 완성해서 절대계에 이르는데 그 절대계는 무량광의 세계입니다. 그 무량광으로 붓다의 몸이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몸뚱이를 원만보신(줄여서 보신불)이라고 합니다. 빛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미래제가 다하도록 영원히 멸도 할 수 없습니다. 죽을 수 없습니다. 그 절대세계는 환희의 세계입니다. 

환희의 세계. 여러분, 극락을 표현 할 수 없어서 극락(즐거움의 극치)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절대계의 부처님 세계는 극락을 백 천 만 배 보다도 훨씬 뛰어 넘어서 환희 자체입니다. 빛으로 이루어져 있지, 환희 자체입니다.

환희 자체인 그 세계는 대적정삼매(대적광삼매)를 통과해야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원만보신(보신불)의 세계는 그러합니다. 이 지구가, 이우주가 완전히 파괴되어도 거기는 미칠 수 없습니다.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수행자는 목표를 붓다 이루는데 두어야 됩니다. 원만보신이 필요에 따라서 자기 몸뚱이를 백 천 만억의 몸으로 동시에 나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는 우주의 수많은 중생국토에 가서 교화를 합니다. 인간 몸으로 받아 온 이 몸뚱이를 화신불(화신, 응화신)이라고 합니다.

이 자리를 빌어 여러분한테 스님이 간곡히 말씀해 드릴 바가 있는데, ‘광명 만덕 ․ 자재 만현’을 우리 입으로 부처님이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내 책<21세기 붓다의 메시지>이 나가고 해서 여러분들이 그렇게 부르는데, 앞으로 부처님․ 

붓다라고 부르지 마시길 바랍니다. 여기 화신은 어디까지나 화신입니다. 저기 절대계에 있는 불신(원만보신)은 부처님이올시다. 여기 와서 처음으로 깨달았건, 어떤 겁 전에 불과를 이룬 분이 사람으로 와서(인신을 받아와서) 다시 불과를 이루었던 간에 이 몸뚱이는 화신입니다.

화신과 보신은 대단히 차이가 있습니다. 화신과 보신은 한 몸이지마는 유한한 물질로 이루어진 이 육신의 능력과 지혜는 저 보신의 능력과 지혜를 따를 수 없습니다. 

저 보신이 이 육신(화신)속으로 들어와도 그 무량한 지혜와 능력을 주지 않습니다. 내가 받으면 이것이 가루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받을 수 없습니다.

죽을 때 이 네 개의 영체가 자기 불신과 합일이 됩니다. 계합이 되어버려요. 그 때의 그 불신의 능력은 무한하지요. 합일이 안 된 상태의 그 절대계에 있는 보신불의 능력은 무한합니다. 능력이 무한합니다.

자, 삼신을 갖추고 있지요, 소승이나 대승에서 이야기하는 18불공법이 있는데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무한한 능력이 있습니다. 붓다라고 하면 엄청난 능력이 있습니다. 내가 한 70여회를 두고 가끔 가끔 부처님세계의 이야기를 하는데 여러분들도 어느 정도 이해를 하실 겁니다.



2008. 9. 7. 토(음8.8)큰스님 춘천법문중 발췌



왜소화된 오늘날의 종교

 왜소화된 오늘날의 종교



2600여 년 전 영산 당시 이후로 불신관佛身觀, 불佛의 삼신설三身設은 두터운 장막 속으로 가려져 버렸습니다. 사람 사람 마음 속 자성에서 삼신三身이 해석되고 있습니다. 크게 왜곡된 것으로, 눈 먼 선량한 중생을 오도誤導하고 있습니다.

우주적인 불교는 여기서부터 왜소화矮小化돼 버렸습니다. 축소화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오늘날의 여러 나라 불교, 특히 한국의 선禪불교는 깨달음만을 소중히 하고 있습니다.

선불교에서는 깨달음이 목표요, 수행의 종착지입니다. 이제부터가 중요한데도 말입니다. 음계‧중계를 철저히 지키면서 나없는 공부, 두타행으로 공성空性을 증득하여 아라한과를 증해야 합니다.

나아가 자·타력수행으로 정토업을 닦아 삼계를 완전히 탈출하여 보살이 되어 서방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영원히 불퇴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보살도를 완성하여 절대계에 빛으로 이루어진 자기 부처를 이뤄야하고, 상적광세계에 자기의 청정법신불을 두어야 비로소 수행은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실로 위대한 우주적인 메타 불법佛法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2권

불가의 가르침은 본성을 철견하는 것이 일차적 목표

 



불가의 가르침은 본성을 철견하는 것이 일차적 목표




진여일성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참됨의 본성을 뜻한다. 불

가의 가르침은 본성을 철견하는 것에 일차적 목표를 둔다.

이 본성이란 본 면목, 자성, 참 나라고 일컬어지는 것으로 이것이 바
로 우주의 체성이다.

자신의 마음이 근원 일성으로 돌아가면 본 고향에 돌아온다. 그

래서 유가에서는 이를 복명이라고 하여 명(목숨)을 태어나

기 이전의 원래 생명의 시기로 되돌인다는 것이다.

이것이 견성이다. 본성을 체화하여 증득하면 그것으로 성품과
계합하여 하나가 된다. 여기까지가 삶도 죽음도 없는 시공을 초월한

경지이다.

오온은 집착을 일으키는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을

의미하며, 이 오온이라는 것에 의해 오감이 일어난다. 오온의 본

질이 텅 비어 있음을 관하기 위해서는 계율, 특히 음계를

철두철미하게 지켜야 한다.
사실, 불가의 가르침이 귀중한 이유는 계 정 혜 삼학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뼈를 깎는 노력과 눈물겨운 노력만

이 영혼을 환골탈테시킬 수 있다.

그리고 빛을 되돌이켜 거꾸로 내면을 비춰 보는 것을 화광반조
라고 한다. 그리고 잃어버린 고향을 찾는 것, 또는 잃어버린 마음

을 찾는 것이 바로 복본심성이다.

견성을 하게 되면 심원하고도 고차원적인 세계로 증입해 들어

간다고 큰스님께서는 전하신다. 죽 청정하고 고원하며 지고한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큰스님을 제외하고 견성 이후 아라한과

이상에 대해서는 언급한 선지식이 전무하다.

필자 수준에서도 이 논고를 작성하면서 알 수 없는 내용을 말할 수

없어 큰스님의 가르침을 열거하는 미흡한 수준을 면치 못한 점, 큰스

님께 그리고 불제자님들께 너그러운 양해를 구한다.
큰스님의 법 세계를 필설로 언급하는데 한계가 있으며 큰스님의 법

세계는 가히 상상을 초월하며 부사의하며 어마어마하고 장엄하고 거룩

하다는 점을 말해둔다.
타종교 어디를 봐도 아라한, 보살, 붓다라는 체계적인 위계는 전무하
다. 그러므로 불제자들은 불가에 귀의 귀명한 것을 큰 기쁨으로 삼고

열심히 구법 정진을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아라한, 보살, 붓다라는 명료한 위계는 불제자가 한 걸음 한

걸음 더 지고한 곳으로 향하고자 하는 향상심을 불러일으키는데

큰 자극제가 된다는 점 두 말할 필요가 없다 하겠다. 그리고 일체 중

생을 비롯하여 견성과 아라한과를 이룬 수행자라면 자력 수행만을 고

집하거나 고수하지 말고 이제부터는 큰스님이 하사하신 칭명염불선

을 통해서 부처님의 가피와 위신력을 받아 타력 수행으로 아라

한과를 넘어서 보살과 그리고 불과로 증입해 나가는데 진력할 것

을 권청하는 바이다.
희유하시고 거룩하신 부처님의 법세계를 남섬부주 대한민국에 펼쳐

주신 두 분 큰스님께 오체투지하고 예배드린다.




출처/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



불교가 지향해야 할 방향

 불교가 지향해야 할 방향


오늘날 수행자들이 구가(謳歌)하는 정신세계는 견성(見性), 즉 깨달음이다. 하지만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는 이러한 수행자의 한계, 즉 견성을 초월하여 아라한, 보살, 붓다를 거론한다. 지극히 장엄(莊嚴)한 세계가 견성의 세계를 넘어서 존재한다는 것을 극명하고도 자상하게 서술하고 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지금까지 어느 누가 아라한, 보살, 붓다라는 존재의 계층적 도식(Hierarchy Schema)과 붓다의 삼신설(三身說) 그리고 칭명염불에 의한 염불선(念佛禪)의 중요성을 이렇게 큰스님처럼 명료하게 서술하였던가?

우리 불제자는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해야할 것이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는 기존 선 불교를 건전한 시각에서 올바른 비판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을 불제자들은 명료하게 인식해야 한다. 

즉, 큰스님께서 선 불교가 100%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시고자 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다만 선 불교의 세계를 환골탈태시켜 더욱 고원하고도 지고하게 확장시키려는 각골쇄신(刻骨碎身)과 혼연(渾然)의 노력들을 엿 볼 수 있다.

선 불교는 엄연히 한국 불교의 수행적 토양을 다지는데 좋든 나쁘든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우리 모든 불제자들은 이 점을 명각(明覺)해야 한다. 따라서 긍정적으로 볼 때 그 공로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다만 선 불교가 주장하는 견성, 깨달음(Elightenment), 확철대오(廓徹大悟)는 모두 아라한을 한계점으로 갖는다. 큰스님 말씀대로 인간으로서 견성을 하여 보림 후 아라한에 이르는 것만도 엄청난 일이며 참으로 힘든 일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선 불교의 이러한 아라한까지의 깨달음에 의해서 근본불교 당시 석가모니부처님의 삼신설 체계가 가리워지고 퇴색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점을 알리기 위해 <<21세기 붓다의 메시지>>가 출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정령 큰스님께서 단순히 선 불교의 폐단만을 비평하기 위해서 성작(聖作)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를 친술 하셨겠는가?

올바른 지견과 식견을 구비하여 큰스님의 서적과 법문을 대면한 불제자라면 큰스님의 심오한 대의(大意)를 해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즉 선 불교의 한계를 냉정하게 지적하고 선 불교를 근본불교에 기초하여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시키고자 하는 큰 스님의 염원에서 쓰여졌다고 해석할 수 있다. 

왜냐하면 견성(見性)이라는 것은 힌두교의 범아일여 사상과 서양의 유대신비주의 인 그노시즘(Gnosticism 靈智主義)의 최종 목표와도 맥락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카발라에서는 아인 소프(Ayin Soph 히브리어로 무한이라는 뜻)로, 타로체계에서는 우아일체(宇我一體)로, 힌두교에서는 범아일여(梵我一如)로, 그노시즘에서는 영지(靈智 Gnosis)로서 알려져 있다. 

도가(道家)에서도 노자(老子)는 도가 수행 세계의 종지(宗指)를 현묘지도(玄妙之道)로 거론하고 있다. 현묘함이란 바로 불가(佛家)의 진공묘유(眞空妙有)와 비슷한 맥락을 한다. 따라서 전 세계의 수행문화가 20세기까지 그 최종 목적을 아라한 정도에 만족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21세기를 살아가면서 시대는 급변하고 전 세계에는 아쿼리안(Aquarius)문명을 맞이하여 뉴에이지 열풍에 명상수행에 요가, 단전호흡 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난립하고 범람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과 세태 속에는 세계 구도자들의 보다 큰 소식에 대한 염원과 갈망이 관통하고 있다.

또한 견성의 수준으로는 생사를 완전히 초월할 수 없으며 확고한 생사관을 확립하거나 정립할 수 없다. 즉, 선 불교만이 한계를 갖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영성문화와 종교 수행 체계가 한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불교는 지구상에서 아니 우주상에서 가장 심오한 수행체계이자 광대무한(廣大無限)한 철학사상을 함유하고 있다. 한편 지구 역사를 통해서 수많은 불교 박해와 탄압이 외부적이거나 묵시적으로 행해져 왔었다. 

그러한 박해와 탄압의 어려운 시절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너무 고차원적인 경지에 목표를 두는 것보다는 어쩌면 단순히 아라한 경지에 목표를 두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교 존망의 위기를 벗어나는데 나름대로 일조를 했다고 필자는 생각해 본다.

결국 선 불교는 불교의 맥(脈)을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오는 역할을 잘 이행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 자각(自覺)의 눈을 크게 뜨고 오늘날의 위기에 몰린 불교를 복원시키고 중흥을 도모해야 할 때가 왔다. 

불제자들 간에 너무 음계(淫戒)가 무시되고 막행막식으로 수행을 하는 경향이 불가에 만연해 지고 있다. 이 시점에서 이를 차마 그대로 방관할 수 없는 큰스님께서 친히<<21세기 붓다의 메시지>>를 집필하여 세상에 내놓게 된 것이리라.

재차 강조하는바 선 불교는 강직한 행동과 난해한 언어구사를 통해서 어려운 시절과 고비를 잘 넘겨왔다. 어리석은 자들에게 매우 높이 보이도록 했으며 불교의 권위를 실추시키지 않도록 여러 형태로 공헌을 했다고 보아도 잘못된 것은 아니니라, 진리(Truth)는 사실은 사실이라고 말할 때 증득된다.

즉 선 불교가 전승을 통해서 이루어온 그동안의 공과는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한다. 선 불교의 화두(話頭)와 공안(Koan)이라는 어휘는 전 지구적이고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통용어가 되기도 하였다. 다만, 큰 스님께서는 이제 21세기를 맞이하여 선 불교가 환골탈태(換骨奪胎)해야 할 시기라고 사자후하신 것임을 명각(明覺)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저 유명한 리차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에서 이런 말이 있다. “가장 높이 나는 갈매기가 가장 멀리 본다.”고 말이다. 이말은 매우 중요한 의미와 시사점을 지니는 명언이라고 할 수 있다. 

큰스님께서 설파하신 대로 “산 정상에 오른 사람만이 산에서 내려다본 정경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리고 높은 산에 오른 사람일수록 크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수행의 경지가 높은 사람만이 정확하고 올바르게 수행세계를 통찰할 수 있는 것이다.

큰스님께서 종교명상수행세계에 있어서 가장 높고 궁극적 경지라고 하는 붓다위에 이르셨다는 사실을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를 읽어본 이라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21세기 붓다의 메시지>>는 큰스님께서 증험한 최상승 경지에서 불교의 수행체계와 사상체계의 숭고(崇高)하고 광오(廣澳)한 면을 여실히 밝히셨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존평 p211~216





불교의 목표는 완전한 생사해탈

 불교의 목표는 완전한 생사해탈




윤회에서, 삼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어른은 아라한 성자부터라고
했습니다.
아라한부터 빙의가 없습니다.
명부에도 못 들어간 영가귀신가 빙의된다면 성자가 아닙니다.
성자의 몸은 청정하며 보살은 청정하다못해 발광發光하는 것입니다.
붓다는 발광 정도가 아니라 빛덩어리 그 자체가 됩니다.
성자는 자기 나라의 말로 자기만의 노래를 부릅니다.

노래는 공空을 깨쳐서, 혹은 묘유 속으로 헤엄쳐 나가며 부르게 됩니다.
따라서 그 노래는 착이 없고, 상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오도송을 읊고, 법거량하는 것은 공부의 완성이 아니라 이제 겨우
시작입니다. 옛 스님의 것을 표절하여 흉내나 낸다면 더더욱 안될
일입니다.

먼저 불성을 보왔다면, 나의 본질도 보아야 합니다. 인간 영혼체의
비밀도 보아야한다는 말입니다. 영혼체를 영체라고도 부릅니다.
중생의 영혼체는 다층구조이며 4개의 영혼체가 겹쳐져 있습니다.
아라한 도道 이상을 이뤄야만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깊은 삼매에 자재해야 해탈이 가능합니다.

3번 영체로 몸을 빠져 나간다면, 그것은 삼매가 아니고 하늘을 여행하고
돌아온 것에 불과합니다. 스스로 장작더미를 쌓아 놓고 기름을 붓고
불을 붙여 소신한다 해도 3번 영체로 빠져 나가는 삼매진정한 삼매가
아니라면 그를 도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2번 영체로 몸을 자유로이 나고 든대도 그것 역시 진정한 삼매가 아닙니다.
1번 영제로 나갈 수만 있다면 극락정토까지 갈 수 있어서 여기부터가 진정한
삼매의 시작입니다.

삼매에 들려면 심신이 맑고 청정해야 합니다. 우주가 이 몸 안에 있고,
내가 우주 안에 있습니다. 주관과 객관이 무너진 이 경계는 아라한부터
가능합니다. 보살의 마음은 안과 밖이 수정같이 맑아 깨끗함과 더러움의
분별을 뛰어 넘습니다. 그저 깨끗하고 깨끗할 뿐입니다.

여기서부터 상대가 빙의됐는지 여부도 압니다. 그 사람이 진정한 삼메에
들었는지도 압니다. 견성하고 도통했다지만 절반 이상은 빙의된 경우이고,
공부 많이 한 수행자가 명부에 못 들어가 수행자에게 빙의된 사례도
많습니다.

그가 빙의된 데다, 그리고 선서를 많이 보아서 오도송도 나오고, 법거량도
휼륭하게(?) 하기때문에 격외를 노래한다고 해서, 아라한 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무아 속 삼매가 진정한 삼매이고, 완벽한 생사해탈, 즉 대열반은 무아 속 삼매에
자재해야 하며 무엇보다 자기의 불신을 얻는 것이 필요충분조건입니다.
불신을 얻는다는 것은 대우주와의 완전 계합입니다. 업장과 번뇌, 그 습기의
찌꺼기까지 다 녹아야 불신이 생깁니다. 이 일은 부처님 경계이기에 윤회 안
중생과는 너무 거리가 먼 법문이라 생략하겠습니다.

다만, 단언하건대 무아 속 절대계에 자기의 불신을 두지 못하면, 즉
청정법신과 원만보신을 구족하지 못하면 붓다가 아니라는 것만 재삼
말씀해 둡니다.

불법, 정법을 만나 삼악도에 안 떨어지는 것만도 대단하게 여기지만
가능하면 여기에서도 큰스님을 만나 수행해서 윤회를 벗어나 성자,
아라한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성중의 반열에 들면 영원히 인간세계에 안 나오려면 안 나올 수 있습니다.
어쩌다 귀한 인간의 몸을 받아서 불법을 만나고 더구나 정법의 감로
법문을 듣고서도 우리 이대로 살아야 되겠습니까?

아라한 성과를 이루면 보살행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아니, 공부까지는
아니더라도 반드시 이타행만은 해야 합니다.
언젠가는 그 과정을 거쳐야 하므로 선근공덕의 보따리가 문제입니다.
그 보따리가 커지면 우리는 영적으로 진화합니다.
아라한 되고, 보살 될 수 있는 필요한 조건을 갖추어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선근보따리입니다.


출처/ 21세기 붓다의 메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