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16일 목요일

삼신설 ---- 2

색신의 수행과 공덕으로 불신이 생긴다


보신으로부터 응화신이 생깁니다. 응화신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나투시는 몸입니다. 백천만억화신은 지복의 보신에서 나옵니다. 보신불이 중생 앞에 바로 현신한다면 그 엄청난 광도 때문에 모두 가루가 될 것입니다. 다만 10지에 오른 보살이라면 부처님의 보신원만보신의 몸을 알아볼 수 있다는 중관中觀 논사들의 견해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불지에 올라야 붓다님들의 원만보신의 몸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붓다님들은 육도 중생의 영체가 빛으로 손상되지 않도록 그들의 근기에 맞게 응화신으로 현신하여 교화합니다.

법신·보신이 생길 때는 이 거짓 몸뚱이가 없으면 생길 수 없습니다. 색신의 수행과 공덕으로 인하여 법신, 보신의 불신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응신은 응화신이라고도 하는데 붓다가 중생 구제를 위해 인간으로 탁생한 육화肉化된 몸을 말합니다. 인간 세상으로 나투신 몸입니다. 2600여 년 전 부처님처럼 사바세계에 태어난 몸과 같습니다. 탐진과 업장이 모두 지멸된, 불과를 증한 이가 중생 구제를 하기 위해서 사바세계에 임의로 몸을 받아 옵니다. 주로 왕궁으로 탁생합니다.

여러 하늘세계의 천인 교화는 화신이 나투어 갑니다. 성중들이나 극락세계 보살들에게는 변화신이 갑니다. 변화신은 원만보신께서 두발‧의복…… 등 외형만 그 세계 사람들의 근기에 맞게 변신하여 나투는 몸입니다.

이 삼신설에 대하여 그간 3~4년 동안 설법하면서 종종 자세한 점을 이야기 한 바 있기에 여기서는 간략하게 짚고 가겠습니다.

1. 법신불, 법신과 우주의 진리인 진여의 이치 곧 여여의 이理, 법法을 서로 혼동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시 확인하지만 억겁을 수행하고 보살도를 완성한 이의 여여한 지智가 우주의 본체인 법과 계합할 법신, 법신불이 생긴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일체 중생은 법신으로부터 화생化生한 것으로 보면 안 되고 우주에 주변한 불생불멸의 대생명에서 화생한 것으로 보라는 것입니다.
2. 법신, 보신, 화신은 일체一體이기에 불과를 증한 이가 열반에 들면 자기의 네 영혼체는 곧 자기 불신, 절대계에 있는 자기 보신불 속으로 든다는 것입니다. 평소 중요한 법회 때 자기 보신佛은 이 거짓 몸뚱이에 들어와 계합합니다. 깊은 삼매에서 삼신三身이 하나가 됩니다.

화신으로 어느 나라, 어느 절에 나가 있으면서 10년이고 100년이고 그곳 중생을 접인接引하다가 본불인 자기 불신으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보신에서 백천만억의 자기 화신을 내어 시방十方에 나아가 교화 활동을 하는 실로 불가해한 경지가 붓다의 법위입니다.

3. 기독교의 성부‧성자‧성신의 삼위일체설, 힌두교의 브라흐마‧비슈누‧쉬바의 삼신일체설은 우리 불교의 삼신설과 크게 다릅니다. 불과를 증한 이는 누구나 상적광세계에 법신을 두고 절대계에 보신을 둡니다.

4. 깊은 삼매 속에서 백종오색광무량광, 억종광을 보고, 자기 불신을 갖고, 어떻게 해서 법신불이 생기고 보신불이 생기는지1급의 밀장임에 대한 그 이유를 알고 불 세존석가모니불으로부터 붓다로서 인가를 받는 일이 불과를 이룸에 있어 필요 충분조건인 것입니다.

법신부처님과 원만보신불을 친견할 수 있는 이는 불과를 증한 붓다라야 가능합니다. 무량광을 보고 안으로는 육종의 진동을 겪어야 합니다.

보신의 변화신이나 화신불은 최소한 아라한과 이상의 성과聖果를 이루어 부처님을 향한 청정한 믿음이 깊은 불자가 선정에 들어 뵙습니다. 하늘의 외도, 천마天魔들이 부처님을 흉내 내어 불보살로 나투는 일이 많기 때문에 말씀드리는 바이니 꼭 주의하기 바랍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보신불의 모습



≪화엄경≫ 등 대승경전에서 볼 수 있듯, 보신불은 그 신체의 양미간과 10군데의 신체 주요 부분에서 단색으로 혹은 억종광명으로 우주 어디에나, 지옥이든 천상 어느 세계든 비출 수 있습니다. 가슴 한가운데에선 만卍자를 방광합니다.

머리 쪽에서 나오는 빛은 원광을 띄고, 신체 각 부분에서 발광하는 빛은 신광을, 몸 전체에서 방사하는 빛은 후광을 - 그 광휘는 내와ㅣ가 드러나고 밝고 아름다우며 햇빛에 노출된 크리스털 다이아몬드처럼 휘황찬란한 빛을 내십니다.

보신은 원만보신이라고도 합니다. 절대계에 계시는 모든 보신부처님들은 머리를 깨끗이 깎으시고, 황금 장삼에 빨강 가사를 수하고 계십니다.

붓다들끼리는 빛으로 상속이 돼 있어서 원근에 관계없이 의사가 소통 되며, 모든 붓다들은 백종오색광으로 이루어졌기에 모두 같아 보이지만 깊은 삼매에서 보면 얼굴, 음성, 성격…… 등이 각각 다릅니다. 마지막 붓다 이룰 때의 성격, 얼굴, 키, 몸무게…… 모두가 절대계의 자기 불신에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보신의 변화신


부처님들께서는 여기 사바세계의 인연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 변화신으로 보살행을 하십니다. 영기서 말하는 보신변화신 - 진신眞身은 화신과 다릅니다. 사바세계의 중생의 근기에 따라 원만보신본불께서 머리나 의복 등으로 외형만 약간 변장하신 모습을 말합니다.

몇 분의 부처님의 변화신을 소개합니다.

1. 불 세존 : 삼계의 법왕이시고 남섬부주의 교주이시기에 항상 머리는 말끔히 백호친 모습에다 언제나 가사‧장삼을 수하시며 보통 때는 8고리 석장을 짚고 다니신다.

2. 문수보살 : 머리는 상투하시고 구레나룻 수염을 기르셨다. 삿갓 쓰시고, 백색 동정이 달린 짙은 회색 두루마기를 입으신다. 짚신을 신으시고, 바랑가사, 발우, 목탁, 경전이 들어 있음을 등에 메신다. 7색깔을 띤 칼 지팡이를 짚으신다. 눈빛이 날카로우시다.

3. 보현보살 : 머리를 풀어 둔부엉덩이까지 길게 늘어뜨리셨다. 머리카락은 갈색이며 수염을 기르시고 삿갓을 쓰신다. 노르스름한 백색 광목으로 된 장삼 비슷한 것 입으시고 앞에는 리본을 메어서 리본자락이 길게 내려온다. 속옷은 백색이다. 짚신을 신으시고 바랑을 메시고 7색깔을 띤 용머리 지팡이주장자를 짚으신다.

4. 약사여래불 : 아래는 백색 옷 입으시고 가슴 위는 가사만 두르신다. 투명한 몸이시다.

5. 준제보살 : 비녀 꽂으시고 보라색 바탕에 황금색 연꽃이 수놓아진 긴 저고리와 백색치마를 입으신다. 전형적인 왕비의 모습이시다.

6. 지장보살 : 이마에 띠를 두르신다. 회색 두루마기를 입으신다. 배가 볼록 나온 모습이 특징이다.

7. 다보불 : 짧은 수염이 많으시다.

8. 대세지보살 : 항상 깔끔한 차림에 머리도 불 세존처럼 언제나 말끔히 깎고 다니신다. 회색 두루마기를 입으신다.

9. 아미타불 : 언제나 황금색 장삼에 빨강가사55쪽를 수하신다.

10. 광명불 : 불 세존의 태자이기에 이마에 세존을 정대한 띠를 두르신다. 정수리 아래에 불 세존의 태자라는 인印이 찍혀있다. 하얀색 옷을 입으신다. 소매와 바지는 30cm 정도로 폭이 좁다.
11. 자재통왕불 : 문수보살의 법왕자이기에 이마에 문수보살을 정대한 띠를 두르신다. 정수리 아래에 문수보살 법왕자라는 인印이 찍혀있다. 회색 두르마기동정 역시 문수보살처럼 백색를 입으신다.
12. 관음보살 : 하얀 실크 한복을 입으신 전통적인 한국 여인상이시다. 낭자에 긴 칠보 비녀 꽂으시고, 이마에 아미타불을 정대한 띠를 두르신다. ※백의관음 한국의 주처 : 낙산 홍련암

13. 해수관음 : 관음보살의 좌보처. 길게 늘어뜨린 실크 옷을 입으시고 관을 쓰신다. 불단에 모셔진 관음상으로서 서구적인 얼굴 모습이다. ※해수관음 한국의 주처 : 남해 보리암

14. 육관음 : 관음보살의 우보처. 한 사람의 남자 모습이지만 필요에 따라 여섯으로 나투시기도 한다. 인도의 남자상으로서 머리를 수건 같은 것으로 두르고 계신다. ※육관음 한국의 주처 : 강화 보문사

모든 부처님의 눈은 대세지보살을 제외하고는 쌍꺼풀이시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불신에 대한 문헌학적 고증

큰스님께서는 <<대반열반경>>을 원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대열반광(부처님의 광명)이 중생의 털구멍으로 들어가는 자는 반드시 불
도를 이루리라' 이르신 대목과, '만약에 부처님(불신)을 보는 자는 곧 일
체 번뇌가 다 끊어지고 부처님 말씀을 듣는 자는 반드시 불도를 이루
이라'하신 말씀을 주목해주시기 바랍니다."

큰스님께는 부처님의 대승경전 외에도 수많은 기라성 같은 대선지식
께서 집필하신 불서와 논서를 인용하시면서 불신사상과 붓다 삼신
설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상세히 설하신다. 큰스님의 불신사상, 즉 붓
다의 삼신설에 대한 대의를 받아 정리한 내용을 소개한다.

첫째, <<금광명최승왕경>> 제 二 권 <3 분별삼신품> 을 보면, 부처님께
서 허공장 보살에게 " 모든 부처님에게 세 가지 몸이 있다. 화신
응신 법신이 그것이니라."고 말씀해 주셨고, 이러한 "세 가
지 몸이 구족하여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거두어준다"고 이르셨다.
"가지가지 몸을 나타내는 것이 응신이라 하고 오직 여여와 여여의 지
혜만이 있는 것 그것을 법신이라 한다"고 하셨다.

법신은 앞의 두 몸의 근본이 되며 "부처님은 큰 삼매의 힘으로 온
갖 선정, 대자대비, 온갖 다라니, 온갖 신통, 온갖 자재를 나타낸다. 큰
지혜의 힘으로 열 가지 힘, 사무소외, 네 가지 걸림없는 변재,
280(18)불공법.... 온갖 희유하고 생각할 수 없는 법을 모조리 나타낸
다."고 하셨다.

이러한 전거로 미루어보면 부처님께서 얼마나 위대한 분이신지
알 수 있다 하겠다. 견성한 도인과 깨달음을 얻은 수행승들은 과연 이
러한 부사의한 능력과 힘을 구족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용수의 이신관을 거론할 수 있다. 석존 재세시에는 인간
석가모니불 이외에는 아무런 불신관도 없다가, 석존께서 열반에 드신
후 경전이 결집되면서 <<아함경>>에는 육신불, 그의 교법을
뜻하는 정도의 법신불의 이신관이 나오게 된다. 불멸 후
6~7백년 경에 태어난 용수가 지은 것으로 알려진 <<대지도론>>
에는 부모생신과, 단순한 교법의 의미를 훨씬 벗어난,
언제 어디서나 여러 가지 몸, 여러 가지 방편을 내어 시방 중생을
제도하는 근원적 존재이며, 항상 광명을 내고, 항상 설법하는 존재인
무상의 혜인 법성신의 이신관이 나온다고 하셨다.

이 또한 큰스님의 지혜가 아니면 경전으로부터 감히 초출할 수 없다
하겠다. 사실 오늘날 견성이나 깨달음도 제대로 구족하지 못한 수행승
이나 불제자가 어디 이러한 지극히 미묘한 경전 내용을 알려고 하겠는
지 의문이 들기까지 한다.
이제 큰스님의 불신 사상과 붓다의 삼신설 사상은 복원
되어야 하고 불제자들 간에 크게 추앙되어야 할 사상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셋째, 유가행 학파 기타 논서..... 제 논사의 주창을 이야기할
수 있다. 무작은 <<섭대승론>>에서 모든 부처님들
은 진신 보신 응신 세 몸을 갖춘다라고 하였으며, 세친의 <<대
승장엄경론>>에서는 불과를 증한 모든 붓다님들은, 자수용신, 타
수용신, 변화신의 삼신을 구족한다고 하였다. 4C말 경 인
도의 논사 견해의 <<보성론>> 즉, <<구경일승보성론>>에는 모든
붓다님들은 법신 보신 화신의 삼신을 구족한다고 주찰하였다.

그러나 그 누구의 소론도 거룩하고 희유하신 붓다의 삼신 설명이 너
무 관념적일 수밖에 없어 불교학을 공부하는 이들로서는 이해하기 어
려운 게 사실이었다. 큰스님의 이 부분에 대한 법설은 체험하지 않고
이리 말할 수 없을 만큼 극명하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와 10회에 걸친 TV 법문, 현지사 그리고
부산분원에서 정기적으로 설법하신 내용 등을 들어보면, 불의 삼신에
대한 법설은 너무 구체적이고 자세하다.

영산 당시 아난이 아니고서는, 불과를 증하지 못하고서는, 자기 불신
이 없는 이로서 그 누가 만고에 비밀이요 부처님만이 알 수 있는 삼신
설에 대해 이리도 분명하게 자신 있게 설할 수 있겠는가?

11세기 티베트의 전설적인 수행자인 밀라레빠도 "붓다라면 삼신
을 구족해야 붓다"라고 했지만, 그의 <<밀라레빠 10만 송>> 어디를 보
아도 원만보신에 관해서 만은 실제로 보고 체험하여 법설한 것으로 보
이지 않는다.

참고로 선불교의 삼신 해석을 간략히 소개한다면 우리 인간 마음 가
운데 삼신을 갖추고 있다면서, 우리가 마음 속에 지니고 있는 본래 청
정한 마음, 성품을 법신불로 보고, 자성의 변화 한 생각 사량분별
을 화신불로, 생각 생각 자성을 보는 지혜를 보신불로 본다.

산심은 부처님에 한한 말인 것이다. 붓다의 삼신까지도
유심화, 관념화시켜 보는 것은 불의 경계를 전혀 모르는 소리다.

티베트 밀교에서는 공성의 증득만으로는 진실한 멸도, 성불일 수 없
고 무량한 선업으로 색신을 성취해야 대승의 진정한 성불이라면서 선
불교를 비판하다.

<<법화경>> <비유품>에서는 "공의 법을 증득하고, 32상의 색신을 성
취했을 때 성불"이라 한다. 이러한 밀교의 견해들은 전적으로 옳은 말
이지만 바르도에서 의생신을 얻어 보신불의 몸으로 성불한 다며, 육신
속에 삼신을 성취하는 위가 불이라 주창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견해라
사자후하신다.

진정한 불신은 티베트 밀교의 의생신 따위와는 차원이 다르다.
불신은 바르도가 아닌 상적광 세계의 정광명보다 몇 차원 높은
무량광으로 이루어진다. 영원히 멸도하지도 않고 자비와 지혜, 그리고
복덕을 구족한다. 또 항사의 신통 묘용을 쓰며, 대적정삼매에 자유로이
들어 백천만억 화신을 내어 삼천대천세계의 인연 중생을 구제하는 것
이다.
이같이 대승불교에 와서야 유가행 학파의 몇몇 논사들이 <<화엄>>
 <<법화>> <<능가>> <<열반>> <<반야>> 그리고 <<해심밀경>>등을
깊이 꿰꿇어 연구하여 부처님들은 중생이나 보살과 달리 세 몸(법.보.응)
을 지닌다는 결론에 따라 삼신설은 확립이 된다.

여러 경론 <<금광명최승왕경>> <<반야바라밀다경>> <<십지경론
>> <<금강반야바라밀경론>> <<장엄경론>> <<섭대승론>> <<보성
론>>에서 표현은 약간씩 다르나, 법신은 영겁토록 변치 않는 만유
의 본체를 법으로 보고 신은 이 본체에 인격적 의미를 붙여 법신이라 했다.

보신은 보살의 위에서 무량겁을 두고 어려운 수행을 한 결과로
얻는, 영구성이 있는 유형의 불신을 뜻한다(아미타불과 같이)고
되어 있다. 응신은, 보신불을 보지 못하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나타
나는 불신, 역사적 존재로 석가모니부처님과 같음으로 되어 있다.

출처/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영산불교사상연구소





모든 붓다님들은 삼신불의 모습으로 실제로 존재한다

사바세계 대수행자가 불과를 이루게 되면 세 가지 유형의 몸이 생기게 된다.
이것을 삼신불이라고 한다. 이 삼신불의 실체는 불교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최
고 차원의 영역으로서 붓다가 아니고서는 이론적으로 접근하는데 많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여러 경론상의 내용이나 학자들이 주장해온 삼신설은 정
확하지 못하고 심지어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그리고 티베트 밀교나 선불교에서
말하는 불신관을 보면 실체와 너무나 거리가 멀다.

이번 기회에 영산불교에서 부처님 이후 처음으로 삼신불에 대한 명확한 설명
을 해주고자 한다. 영산불교의 법신, 보신, 화신의 삼신불신관은 불과 이룬 현
지사 큰스님께서 몸소 경험하시고 직접 본 사실에 근거하므로 실체적 진실의
불신관이다.

법신불은 우주 본성과 붓다의 햇빛보다 밝은 지혜와 품성이 하나된
무형의 우주적 몸뚱이다

육신을 가진 수행자가 억겁의 수행을 통해 붓다를 이루면 몸 속에 있는 4개
의 영체는 무량의 지혜와 복덕과 자비를 구족한 빛덩어리가 된다. 법신불은 이
붓다된 수행자의 수행 결실인 우주적인 대지혜 복덕 자비가 우주 본성(공)의
빛인 자성광과 완전히 합치됨으로써 생기는 불신을 말한다.

즉, 붓다의 품성과 우주 본성이 완전히 하나 된 몸이 바로 우주적 광명체인
법신불이다. 법신불은 불신의 모체가 되는 근본 진불로서, 시공을 완전히 초월
한 무아속 절대계인 상적광세계에 그 불신을 둔다.

우주 만물에 내재해 있는 동시에 일체 처, 일체 시에 아니 계신 곳이 없다.
언제나 삼천대천세계를 섬광처럼 밝게 비추면서 우주 만물을 정화하고 있다. 햇
빛이 미치지 않는 땅 속도, 우리들 마음 속도 다 비쳐준다. 법신불은 분별과 사
량을 하지 않는 이불(理佛)이지만 공성과는 다른, 붓다의 살아있는 우주적 몸이
다. 그러나 보신불이 법신불에 들어갈 때는 판단도 하고 실질적인 우주적 능력
을 발휘할 수 있다. 비로자나불은 석가모니부처님의 법신불인 동시에 모든 붓다
들의 법신의 총합체이다.

보신불은 32상 80종호를 갖춘 빛의 인격체로서,
믿음의 대상이 되는 중심불이다

보신불은 생전에 억겁의 수행을 통해 우주적 지혜와 복덕을 완성한 불신이다.
무아속 절대계인 연화장세계에 그 불신을 둔다. 보신불은 그 모체인 자기의
법신불로부터 영양을 공급받아 성장, 존립한다. 보신불은 32상 80종호의 인격적
형상을 갖추고 적멸상으로 나투시는 몸으로서 지혜 자비 복덕을 구족하신다.

억종광이라는 무량광으로 이루어진 보신불은 창조주적인 능력을 갖는다. 머리
를 깎고 가사 장삼을 수하시고 눈을 뜨고 활동하신다. 가장 깊은 삼매인 대적정
삼매를 자유자재로 수용하시면서, 천백억 화신불을 내어 삼천대천세계의 인연
있는 중생들을 구제하신다. 보신불은 보살을 교화하시며, 중생의 업장을 씻어주
시고 우주 법계의 평화를 위해 활동하시는 실질적인 중심불이다.

모든 부처님들의 불국토에는 보신불이 상주하신다. 그러므로 우리 중생들이
믿고 귀의해야 할 부처님이 바로 보신불이다. 남섬부주는 석가모니부처님의 불
국토이므로 부처님의 보신불(원만보신 노사나불)이 상주하고 계신다. 바로 그 보신
불이 상주하고 계시는 궁이 영산불교 현지궁이다.

보신불은 도가에서 말하는 허공신 체외신이나 티베트 밀교에서 말하는 바르
도의 정광명과 화합한 의생신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차원임을 확실히 해
둔다. 보신불은 중생을 제도하기에 좋고 편안한 변화신의 모습으로 사바세계에
오신다.
화신불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백천만억 형상으로 나투시는 몸이다.
보신불이 중생 교화 등의 목적을 위해 삼매력으로 만들어낸 불신이 화신불이
다. 보신불이 허공의 달이라면 화신불은 물 속에 비친 달이라고 할 수 있다. 화
신이지만 몸에 청정하고 밝은 빛을 띠고 있으며, 모습은 자비의 상, 선정의 상,
인욕의 상, 계율의 상을 모두 갖추고 있다. 신통으로 만들어내는 것과는 질적으
로 다르다. 화신불은 각기 독립된 하나의 부처님으로 활동하실 수 있다.
붓다가 중생 구제 등의 사명을 띠고 사람 몸을 받아온 경우 그 분을 화신, 응
화신, 또는 응신이라고 한다. 사바세계에 육신을 받아 처음으로 불과 이룬 분도
화신이라고 한다. 화신불은 삼천대천세계의 수많은 하늘과 중생 국토의 최일선
에서 중생을 교화하신다. 삼매에 들 정도의 수행인에게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
타나시어 공부를 지도하고 이끌어주신다. 우리나라의 절에도 이 화신불이 계신
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화신불이 가시는 절은 전체 절의 절반 전도에 불과하다.

화신불 마저 가지 않는 절이라면 어찌 절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런 절에서
수행하는 스님이나 불자들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출처/우주적 진리의 신불교 영산불교의 법세계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1권,2권 축약판)




붓다는 삼신을 구족하고
절대계와 중생계를 넘나들면서 교화하는 분


그리고 부처님의 위신력은 천도대재 등을 통해서 중생을 천도하고
천도대재를 지낸 복위자의 업장을 녹여준다는 점에서 정말 희유하다는
사실을 명각해야 한다.

큰스님께서는 부처님의 위신력을 이렇게 설하신다. "명부에 들지 못
해서 떠도는 고혼 영가들을 찾아내서 붙들어 오는 일, 지금 지옥에서
형벌을 받고 있는 영가를 천도하는 법석으로 데려오는 일, 짐승 몸을
받아 난 영가의 영체를 빼내어 데려오는 일은 오직 붓다만이 할 수 있
습니다."

오늘날의 불교는 영체가 무엇인지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니 오죽하랴! 부처님께서 어떠한 위신력을 구족하시고
계시는지 전혀 알지도 못하며 마음이 붓다라고 하는 세태에서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말이다. 오호 통재라! 우리는 큰스님의 장엄하고 웅대한
법 세계를 통해서 하루빨리 쇠락해 가는 불교를 진작 및 중흥시켜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하게 된다면 인류는 숭고한 불교 문화의 광명과 그
종적을 망각하고 불교사에 천추의 한을 남기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어떻게 해서 이와 같은 위신력을 구비하시고 계
시는가? 그 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큰스님게서는 자상하게 설명해
주신다. "붓다 이룬 이는 법, 보, 화 삼신을 구족해서 평등적인 무아
속 절대세계와 차별적 중생세계를 자유로이 넘나들면서 중생을 교화하
는 분이라고 분명히 밝힙니다. 중생이 아라한과를 이룰 때까지는 반야
바라밀이 중요하지만, 보살이나 붓다 되기 위해서는 큰 삼매력이 아니
면 안됩니다. 백천 삼매, 대적정삼매에 자유로이 들 수 있어야 자기의
불신을 얻고, 그 깊은 삼매력으로 생사를 자재하며 14무외려과 지혜와
자비, 항사의 신통을 얻고 천백억 화신도 나툴 수 있는 것입니다."

큰스님의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삼매력을 얻는 것이 관건이라
고 할 수 있다. 얼마나 높은 삼매를 얻느냐가 자신의 불신을 얻고 생
사를 자재하고 다양한 권능을 갖게 된다고 할 수 있다.

부처님 위신력에 대한 해답의 황금열쇠는 바로 강한 삼매력에 있다
하겠다. 또한 큰스님께서는 붓다 중의 붓다라고 할 수 있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법신불인 비로자나불에 대한 감회를 이렇게 밝히신다.
"여름 한 낮의 햇살, 눈이 시려 볼 수 없는 그런 빛을 백천만 개 합친
것과도 비교가 안 될 만큼 엄청난 밝은, 수미산만한 대지의 빛덩어리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을 보고, 하나님이나 창조주 따위를 넘어서 우주
자체가 되어 버린 무서운 그 부처님의 능력과 지혜를 감득할 수만
있다면 불교의 위대함에 감읍하지 않고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이다.

과거 현지사와 인연된 공덕으로 두 분 큰스님의 불신들께서 전
해주신 메시지들 두뇌를 통해 원격으로 받은 적이 있었다. 그 체험은
참으로 밝고 밝아서 두뇌를 시원하게 정화하는 것 이상의 환희심을 가
져다 주었다.

너무나 깨끗한 광명의 에너지였다. 그렇다면 부처님 법신의 무량광명
체로부터 빛을 받는다면 그것은 정말 얼마나 거룩한지 통절히 절감하
지 않을 수 없을 것이리라.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감회, 아니 세상에
태어나 겪은 모든 인생에 있어서 가장 기쁜 최대의 희열을 경험하리라.




붓다 삼신의 경계는 붓다가 아니고서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부처님의 상모의 훌륭함을 큰스님께서는
상세히 설하신다.

"보신불의 능력은 무한합니다.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지혜, 자비를
갖추고 있어서 백천만억의 화신을 내어 중생을 교화할 수도 있습니다.

얼굴과 모습은 필설로 그릴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훌륭한 상모를 다
갖추십니다. 음성 역시 미묘하여 모든 붓다들은 그 거룩하고 희유하심
이 우리 인간들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붓다 삼신의 경계는 붓다가 아
니고서는 알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 부여되는 최고의 극찬이라 할 수 있는 진 선 미를 모두 구족
하신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하겠다. 큰스님의 법문을 들어보면 정말로
인간 중생이라는 존재는 얼마나 하찮으며 미물에 불과한지 여실히 통
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불제자들은 지저분한 사바세계로부터 벗어나 고원하고 거룩하
신 부처님 세계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발을 내딛어 결연한 마음으로
정진해 나가야 하리라.

부처님께서는 상모만이 아름다우신 것이 아니라 우주적인 모범을 보
이신다는 것을 또한 큰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붓다를 이룬 이는 법 보 화 삼신을 구족해서 평등적인 무아 속
절대세계와 차별적 중생세계를 자유로이 넘나들면서 중생을 교화하는
분이라 밝힙니다."라고 큰스님게서는 말씀하셨다.

우리 불제자들은 부처님께서 우리들을 위해서 힘써주고 계시는 것에
감사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큰스님께서는 우리에게
그토록 부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고 바르게 살아야 한
다고 말씀하신 것이리라. 또한 이와 같이 거룩하신 부처님께 귀의 귀
명하고 그동안에 지은 죄를 참회하고 발원하는 것이 필요하리라.




또 부처님의 위신력은 다음과 같다고 말씀하신다.


"중생이 불신을 본다면 즉시 가루가 되고 말 것입니다. 마치 100볼
트 전구에 수십억 볼트 고압이 들어와 산산이 부서지듯 말입니다. 그
래서 붓다들은 32응신으로 나투어 중생을 교화하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부처님의 중생들을 위해 베푸시는 한량없는 자비심에 감사히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하겠다.

<<법화경>>을 보면 독을 먹은 자녀들에 대해서 아버지가 방편으로
아이들에게 돌아가셨음을 알리는 구절이 나온다. 이와 같이 부처님은
방편으로 열반하셨지만 지금도 일체 시, 일체 처 우리들을 보이지 않
는 곳에서 알게 모르게 살펴보시고 우리들의 영혼의 질병을 치료해 주
시는 자비로운 의사와도 같으시다.

출처/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영산불교사상연구소





자재 만현 큰스님의 불의 삼신설



넷째, 자재 만현 큰스님의 '불의 삼신설'이다. 위에서 든 것
같이 불과를 증한 붓다만이 법 보 응 삼신을 구족한다는 경
전적 근거는 <<금광명최승왕경>> 등에 있다.

불교사적으로 보살이라 존칭을 부여받은 바 있는 인도의 마명, 용수
큰스님과 몇몇 중관의 논사들 그리고, 무착, 세친..... 등 유가행 학파
의 조사들의 연구 논문인 <<대지도론>> <<섭대승론>><<보성론>>등에
의해 불신관은 삼신설로 정립이 된다.

1) 자재 만현 큰스님은 다음 같이 불의 삼신설에 대해 법문하신다.
번신(불)은 만유의 본체인 여여한 이 (법신)에 우주의 본
질 실재에, 불지에 오른 수행자의 보신불의 여여의 지가 합일
한 우주적인 광명(자기 원만보신의)을 법신불이라 한다.

(원만)보신은, 보살의 위에서 무량겁을 두고 어려운 수행 (무주상 보신
-육바라밀, 보현행원)을 한 결과로 비아를 털어 버린 수행자의 영아
가 청정을 넘어선 빛(광도와 강도가 햇빛 섬광보다 더한 안팎이 드러나 하나
된 아름답고 영롱한 무량광)으로 자라면서, 이루어진 모든 영구성이 있는 유
형의 불신, 지복의 몸을 말한다(바로 보신에서 응화신, 분신, 변화신을 냅니다).

응(화)신은 중생의 마음이 탁하고 어두워 광명으로 이루어진 불신을
보지 못해 그들을 제도하기 위해 나타나는 불신으로 (a)역사적 존재인
석가모니부처님과 같음 (b)원만보신에서 신발이나 옷, 머리, 때로는
성별까지 바꾸고, 방사하는 빛을 흡수해서 사바세계에서 보살의
모습으로 활동하는 변화신을 말한다. 화신은 불신이 전제되고
따라서 불신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2) 큰스님은 법설하시기를 법신불은 우주적인 몸으로소 분별을 떠나
있고 삼천대천세계를 비추고 있는 광명 지로서의 존재이고, 보신불
(원만보신)은 불지에 오른 이만 볼 수 있으며 32상 80종호를 갖추고,
삼명, 육통, 삼신, 사지, 대자대비, 복덕..... 등 일체에 자재하는 삼매력
을 지닌 신격적인 지복의 존재라 하시고 인행시 서원에 따라 보품(계
인)을 지니신다 하신다 (문수보살-칼, 관세음보살-버들가지, 지장보살-
석장, 약사여래불-약병...등).


3)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은 나투실 때 모든 삼천대천세계의 부처님들
이 각기 법신불이 되어 이 비로자나불 하나의 부처님으로 흡수된다.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의 능력은 하늘 창조주(창조주란 없습니다)적
능력을 지니신다. 석가모지부처님의 청정법신 이름이기도 하다.
4) 불과를 증한 이는 불신(원만보신)을 지닌다는 것, 법 보 화 삼신
을 갖춘다. 법신 보신 응(화)신은 하나이지만 특별한 경우 외에는 각
각 달리 활동한다.

5) 화엄경에서 부처님은 염부제(남서부주) 보리수 밑을 떠나지 않고
수미산정에 올라 도리천 제석궁으로 가서 법을 설하고, 다시 보리수와
제석궁을 떠나지 않고 야마천궁으로 가서 법을 설하시고, 또 다시 위
여러 곳을 떠나지 않고 도솔천궁으로 가서 법을 설하신다.

독자들은 이 부분에서 부처님의 위대하시고 희유한 신력을 확인해야
한다. 이때는 부처님의 원만보신이 보리수 하 석가모니불 자기 색신으
로 합일해서 법을 설하시고, 그 색신(응화신)은 그 자리에 놔두고 수미
산정 제석궁으로 나아가신다.

이때 부천님은(원만보신)은, 물론 그 안에 4 영체를 흡수해 계합한 상
태이다. 제석궁에서 법문이 마쳐지고 다시 야마천궁으로 가서 법이 설
해질 때 역시 보리수 하 그리고 제석궁의 부처님(화신)은 그대로 놔둔
다. 붓다의(원만)보신은 이렇듯 백천만억의 화신을 낼 수 있다.

이 얼마나 부사의한 장관이 아니랴! 세계 어는 성인이 이러한 장면
을 연출한 적 있는가? 삼신을 구족한 붓다들은 이것이 가능하지만
최초 불이요 붓다 중 붓다이신 석가모니불의 위신력은 특히 괄목
하다 할 수 있다.

삼신을 두는 것은 기본적으로 대적정삼매를 자재하는 데서 오는 것
이지, 신통이 아니다(선불교의 육조 혜능 조사에 의해서 주장된 인간 정신 내면
자성 속, 마음의 채용을 불의 삼신으로 해석함은 붓다의 참 경계를 전혀 모르는
법설이라 는 것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다섯째, 기독교의 성부 성자 성신 삼위일체설과 힌두교의 브라마
비슈누 쉬바의 삼신일체설은 불가의 삼신설과 전혀 다르다. 우주
법신(부라마 비슈누 쉬바)에서 화신은 나올 수 없다. 원만보신에서 (응)화
신이 나온다는 것은 위에서 말한 바 있다.

의지가 있고, 욕구가 있다는 것은 중생이며 그곳 (보신, 하느님)은 대자
대비 원력과 지혜와 위신력만이 존재한다. 법신은 무시무종이니 우주
를 내고 유지 상속하는 이법일 뿐이다.

여섯째, <<화엄경>> 삼현위에서 보이는 불신은 화신(분신)불이
고, 초지에서 십지 보살이 볼 수 있는 것은 붓다의 변화신이
며, 불지에 든 붓다만이 원만보신을 친견할 수 있다는 말씀이 자재
만현 큰스님의 법문이다(오직 십지에 오른 보살들만이 보신불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몇몇 논사들 의견임을 철언한다).

앞에서 소상히 밝힌 바와 같이 만현 큰스님께서는 삼신설은 인도의
무착, 세친 큰스님에 의해 확립되었다고 하셨다. 그 다음으로는 <<보성
론>>의 삼신을 들 수 있다고 하시며 여기서는 불신 곧 원만보신은 무
량광, 즉 억종광, 백종 오색광, 열반광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이는 맞다
고 하셨다.

큰스님께서는 <<금광명최승왕경>> 제二권 <3 분별삼신품>, 용수의
삼신관, 인도의 마명과 용수 큰스님과 몇몇 중관의 논사들 그리
고 유가행 학파 기타 논서 등 붓다의 삼신설과 관련하여 무수히
많은 역대 불가의 최고의 큰스님들과 그 분들의 주저들을 모두
꿰뚫어 보시는 탁월한 안목과 식견을 겸비하셨다는 점에 필자는
크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중의 불서는 물론이거니와 많은 득도한 수행승들도 올바르게
삼신설과 불신사상에 대해서 논하는 바가 없다. 비록 논한다고 해도
메마른 지혜로서의 사변적 지식에 불과하다.

출처/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영산불교사상연구소




삼신을 구족한 붓다는 오직 불교에서만 출세


또한 큰스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사자후하셨다.
"붓다들의 현신했을 때의 모습은 해탈신이기에 그렇겠지만
보살의 그것과도 하는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납니다. 붓다의 음성 역시
그러합니다. 일거수일투족이 자비롭습니다. 보신의 미간, 눈, 입, 손바
닥 등 열 군데서 '빛'을 방사할 때에는 녹색이나 무색 광명같이 단색을
방광할 때도 있고, 백종 오색광명을 놓을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억종
광명을 방사할 때도 있습니다.

붓다께서 방광사히는 빛은 마왕 파순이나 하늘 마는 물론 귀신들도
모두 무서워하는 대상입니다. 탐 진 치 삼독이 녹아버린 성자의 마
음 빛이기에 악심이나 사악한 기를 물리치고 녹이는 불가사의한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무량광은 영롱하고 청정하며, 내외명철합니다."

중요한 점은 마왕과 마구니들도 부처님의 무량광 앞에서는 꼼짝도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 얼마나 고마운 사실이 아닌가. 마구니와 외도들
의 세력에 시달려봤던 수행자라면 부처님의 존재가 얼마나 큰 힘이 되
고 고마운지를 알 것이다.

부처님이 계심을 믿고 부처님의 위신력이 이렇게 희유하며 거룩하다
는 것을 절실히 인식하면 인식할수록 우리의 영혼은 그만큼 더 정화되
고 맑게 치유된다고 할 수 있다.
큰스님께서는 "불교의 위대한 점은, 불교에서는 이러한 붓다가 나온
다는 점입니다. 삼신을 구족한 붓다가 오직 불교에서만 출세합니다. 실
제로 어는 대성자라도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을 볼 수 있다면 감격의 눈
물을 흘릴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시고, 또한 "여기서 나는 말합니다. 무
아 속 절대 초월의 세계가 있음을 밝힙니다. 여기는 오직 불과를 이룬
붓다만이 들어갈 수 있는 세계이며 우리 교주 불세존께서 최초로 발견
하셨습니다."라고 사자후하신다.

우리는 석가모니 부처님께 정말 감사에 감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우주에 불교가 없고 부처님이 계시지 않다면, 얼마나 불행하고 어
두운 세력에 휘말리게 될지 감히 상상만 해도 두렵지 않을 수 없다.

큰스님께서는 법문 도중에 말씀하신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크게 다음과
같이 네 가지를 열거하셨다.

첫째 붓다를 내실 수 있는 큰 지혜와 힘, 둘째 중생의 지중한 업장
을 소멸할 수 있는 삼매력, 셋째 지옥, 아귀, 축생(악도) 중생을 건질
수 있는 위신력 넷째 땅의 일부, 전부까지도 여기에서 저기로 옮길 수
있는 부사의한 큰 힘 등을 지니신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힘이 있으나 밀장이라서 공개할 수 없다고 하
셨다. 큰스님 말씀대로 붓다가 나오는 종교는 불교밖에 없는 유일무이
한 종교라는 점을 감사히 생각하고 항상 부처님을 억념하면 그에 상응
하여 부처님께서 우리를 호념하신다는 것을 명각해야 할 것이다.

항상 부처님을 억념하면, 상응하여 우리를 호념
참고로, 큰스님의 성서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9판의 부록
에 '무량광! 불신을 이루는 빛'에 대한 서술 내용을 여기에 싣는다.

1. 미래제가 다해도 없어지지 않는, 따라서 일찍이 생긴 적도 없는
불생불멸의 빛 그래서 훼손 될 수 없다.

2. 그 빛은 오염될 수도 없다. 불구부정인 것이다.

3. 지극히 청정하고,

4. 한없이 예쁘고 아름답다.

5. 안팎이 드러나 영롱하기 그지없다.

6. 어던 빛보다 차원이 다르게 밝다. 중생이 본다면 가루가 될 것이
다. 일생 보처의 보살도 선정에서 보지만 실명할 정도다.

7. 천둥 번개 칠 때의 섬광과도 비교 안 되는 강도이다.

8. 천만억의 빛깔로 되어 있다. 그래서 경에서는 백종 오색광, 억종
광이라 한다.

9. 한량없이 방사(방광)해도 끝이 없어 무량광이라 하겠다. 삼천대천
세계를 감싸고도 남는다.

10. 땅 속이든 물 속이든 마음 속이든 삼천대천세계 어디든(지옥이든
천상이든, 윤회 안이든 밖이든) 비친다. 그러니 자연의 빛과도 다르다.
이미 이 빛은 입자가 아님은 물론이다.

11. 중생의 지중한 업장을 소멸도 하고,

12. 그래서 신통력을 지닌 빛이요.

13. 물 속 깊이, 땅 속 깊이 숨어버린 영악스런 무주 고혼을 잡아
낼 수 있기도 하는 그런 지혜 광명이요.

14. 백천삼매, 대적정삼매를 들 수 있는 부사의한 빛이요.

15. 중생이 그 앞에 있는 빛인데도 이를 볼 수 없는 신비스런 빛이요.

16. 일체 자재한 신력을 지닌 빛이요.

17. 사바세계를 들어 던져 버릴 수 있는 큰 힘을 지닌 빛이요.

18. 외도를 조복받는 빛이요(참 진이 남아 있는 외도는, 두더지와 같이 그들
은 햇빛무량광에 결정적으로 약하다)

19. 부처님들은 이러한 청정 무량광(모든 빛-자성광이나 극락정토의 빛의)
으로 불신이 이루어져 있으므로 부처님은 32상 80종호를 구족하고
삼신, 사지, 오안, 자비, 복덕 등 18불공법을 구족하게 됩니다.

출처/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영산불교사상연구소





삼신설에대한 문답



문1
'성인이라야 능지성인'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붓다
만이 삼신을 구족하신다고 말씀하셨는데, 육조단경이나 많은
불교학자들은 인간중생의 육신 속에 있는 자성 가운데서 삼신불
을 말하고 있습니다. 불의 삼신을 갈파하는 일은 불교사적으로 주
목할 만한 큰 사건임에 분명합니다.

불 삼신설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법문해 주십시오.




법신 보신 화신 삼신불이라는 용어는 부처님에게만 한정된
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따라서 범부들의 색신 가운데 있는
자성에 법 보 화 삼신불이 내재한다는 주장은 삼신불
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소치입니다.


삼신은 불성과 함께 불가사의한 붓다의 경계입니다. 나는 이 질
문에 대한 답을 한국 불교 아니, 세계 불교의 역사 앞에 드리고자
합니다.

붓다의 존재를 이해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
니다.



먼저 법신 보신 화신입니다.

관세음보살을 두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관세음보살
은 무량겁 전에 불과를 증득하여 불호가 '정법명왕' 입니다.
상품보살이 다겁생 동안 수행하여 마지막으로 남섬부주에 인신
을 받아와 대적정삼매를 통과하여 불과를 증하면 자기
불신의 몸을 얻습니다.

불신을 보신 또는 원만보신이라고 하는데 그 몸뚱이는 빛으로
이루어집니다. 그 빛을 무량광이라 하며, 햇빛 백천만 개를 더한
것보다 강한, 불가사의한 지혜의 빛입니다. 붓다를 뵙는 관문이 되
는 빛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몸은 사대라 하는 물질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유한
하지만, 불신은 불가사의한 빛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수
명이 무한합니다.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부처님 좌보처에 계시는
관세음보살 역시 보신불입니다.

법신불은 청정법신불이라고도 합니다. 무아 속 절대계에 두시
는 보신의 진불이라는 뜻입니다. 법신불은 보신의 체요, '우
주적인 몸' 입니다.

다음으로 붓다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나투는 몸을 화신 혹
은 응화신, 변화신이라 부릅니다.

주로 당대에 붓다 이룰 수행인에게 변화신으로 내려와 지도하며
32 응신으로 인천 중생을 교화하기도 합니다. 자기의 원만보
신을 붓다세계에 그대로 놔두고 사람 몸을 받아 오기도 하는데, 그
분을 화신 또는 응신이라고 하는것입니다.

보신불의 능력은 무한합니다.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지혜
자비를 갖추고 있어서 백천만억의 화신을 내어 중생을 교화할 수
도 있습니다. 얼굴과 모습은 필설로 그릴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훌륭한 상모를 다 갖추십니다. 음성 역시 미묘하여 모든 붓다들은
그 거룩하고 희유하심이 우리 인간들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붓다
삼신의 경계는 붓다가 아니고서는 알 수 없습니다.

불교 학자들의 삼신 해석은 실제를 접하지 못하고 다만 여러 경
전에 포함된 내용을 취합해서 설명하고 있기에 추상적입니다.

가령, 그들은 법신을 '진리의 몸' 이라고 관념적으로 정의합니
다. 소위 존재의 근원은 빛인데, 그 빛의 본원정수 엑기스으
로 보신불신이 이루어지고, 그것의 체가 법신이기 때문에 '진리
의 몸' 이라든가 혹은 '완전한 지혜의 몸', '궁극적인 실재'라고
법신을 해석하는 것까지는 들어줄 수 있으나, 법신의 의미를 시
공을 초월해 있고 동시에 시공에 변재해 있는 '우주 생기기 이전
의 면목', '사람의 마음 본체'라 하여 법성 혹은 자성과
같은 의미로 보는 것은 붓다의 경계를 모르는 말이요, 중생의 안목
을 흐리게 하는 잘못된 해석입니다.

심지어 도올 김용옥 같은 이는 법신 해석을 "진리의 구현체
로서의 존재성" 으로 규정하고, "먼 훗날 나 김용옥이 대학의 강사
로서,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추상적인 김용옥이 바로 법신" 이
라고 하는 둥 망언을 내뱉고 있습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자기가
깨달은 사람이라 전제하고 보신을 설명해 가고 있습니다.

"보신은 역사적 업보의 존재를 말하며, 곧 양무제 같은 이가 바
로 그 사적과 유적이 확실한 역사적 보신의 정형태" 라는 것입니
다. 이는 낙제점수는 고사하고, 아예 점수조차 줄 수 없는 답입
니다.

불교의 교가에서는 보신의 설명을 "보살위의 곤란한 수행
을 견디고, 정진 노력한 결과로 얻은 영구성이 있는 유형의 불신의
로 아미타불과 같다"고 대답합니다.

각설하고 처음 불과를 증한 수행인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오온이 녹아 억겁의 업장이 다하고, 탐진치 등 번뇌의 뿌리
가 온전히 뽑혀지고, 다생의 습이 녹고, 천만생 동안 익힌 악기
가 소멸되고, 악연이 단절되고, 전생의 빚이 다 청산되어서
삼천대천세계 모든 붓다들의 위신력으로 불과를 증한 이는 붓다
들의 세계에 저 태양 속의 눈이 시리도록 밝은 빛과도 비교가 안
되는 무량광으로 이루어진 자기 불신을 얻게 됩니다.

깨달음은 한 순간이지만, 자기 불신을 얻어 처음으로 붓다 되는
데까지는 상당한 기간이소요됩니다. 그 불신을 가리켜 보신이요,
원만보신이라고 합니다. 전지전능할 정도의 초월적 인격체입니다.

이것은 중생의 눈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습니다. 아라한이라 보
살과를 증득한 수행인의 그 청정한 눈으로도 그 불신의 엄청난 광
도 때문에 불신만은 볼 수 없습니다. 불과를 증해가는 이의 맑은
눈을 가진 자만이 불신을 봅니다.

보신에서 천백억 화신이 나옵니다. 인천의 알맞은 모습으로
각기 나투어 인연 중생을 교화, 구제하려는 것입니다.

불과를 증하면 그의 육체는 화신이 되면서 그 안에 깃들어
있던 네개의 영체가 빛덩어리가 됩니다. 자기 불신과 격을 같
이 해야 하므로 영체 모두는 빛덩어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육
체 역시 그 빛덩어리 영체를 담는 그릇이니까 청정해야 합니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생겁 동안 향상만 하는 오
랜 수행 기간이 소요됩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새로운 붓다가 출
세하는 데는 겁의 시간이 소요된다' 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
입니다.

붓다는 삼천대천세계 중생들 전부와도 바꿀 수 없는 우주의 보
물이라고 하십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에 와서 불과를 이룬 제
자를 '남섬부주의 꽃' 이라 받들어 아끼십니다. 따라서 '깨치면 곧
붓다' 라고 보는 견해는 옳지 않습니다. '삼신을 구족해야 붓다'라
고 다시 말해둡니다.

불과를 이룬 붓다가 죽거나 입적할 때는 이 몸뚱이 육체는 버리
고 그 안의 네 영체가 불계에 있는 자기 불신과 하나로 계합이
되고 다시 자기의 청정법신불과 합일 합니다. 또 모든 붓다님
들의 청정법신불은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안으로 뭉칩니다. 이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은 석가모니부처님의 법신체입니다. 청정법
신불은 원만보신의 빛보다 훨씬 광도가 높습니다. 석가모니부
처님의 보신을 원만보신 노사나불이라 합니다. 밀교에서는 청정
법신 비로자나불을 대일여래라고도 합니다.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은 삼천대천세계를 항상 두루 비추고 있습
니다. 저 태양은 비가 올 때 구름이 가리면 대지를 비추지 못하지
만,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은 온 법계를 언제나 섬광같이 비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일체처 일체시 아니 계신 곳이
없으십니다.

붓다의 삼신을 게송으로 노래하겠습니다. 아래 게송에 담긴 뜻
은 실로 미증유한 소식이요, 인식의 지각 변동입니다.



있다 없다를 초월하신 붓다님들!

무아 속 절대계에 청정법신 비로자나불로,

영원히 멸도하지 않는 빛으로 계신다네.

때에 따라 원만보신 나투시어

보살을 교화하고

제자를 양성하시고

결국에 붓다 만들어 내시네.



말세 중생 구원하실 적엔

남섬부주 땅에 태어나

응화신 나투시어

중생 교화하신다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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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신설

삼신(三身)을 갖춘 붓다는 불가(佛家)에서만 나옵니다.




불교에서만이 보살이 나오고 붓다가 나옵니다.

그러면 삼신(三身)이 뭐냐? 삼신(三身), 스님이 많이 이야기를 했지요.

▸첫 번째, 화신(化身)입니다.

어디라고 말씀은 드리지 않겠습니다. 우리 절에 태사부님하고 나하고 크게 촬영한(찍은) 사진이 몇 개 걸려 있습니다. 그런데 한 쪽만 이렇게 보고 찍었단 말이에요. 한 쪽만 보고. 그러면 보는 사람들이 사진을 보면 ‘아! 그렇구나’하지요. 그런데 이 사진은 화신(化身)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각자의 붓다 화신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여기를 보고 찍었지만, 보는 사람이 정반대(180°)방향에서 본단 말이에요. 그래도 자기를 봅니다. 100명 1,000명이 여기서 보고, 저기서 보고, 중앙에서 봐도 꼭 자기만 봅니다. 이것은 화신불이 들어 있기 때문에 그럽니다. 그러니까 21세기 첨단의 과학에서도 과학자들이 풀 수 없는 부사의 한 것이지요. 화신은 그렇습니다.

‘붓다의 출세는 겁에 하나’그럽니다. 그러니까 ‘천만년 혹은 천만 생에 한번 붓다가 출세하는데, 한 분의 보살이 붓다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 때는 꼭 지존께서, 삼계의 지존이신 붓다의 붓다께서, 최초 불이신 우리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오시는데, 그 분의 진짜 몸인 원만보신노사나불이 오십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의 진짜 몸을 원만보신노사나불이라고 하지요.

그 붓다는 입멸하신 후 어디에 계셨느냐? 반열반 하신 후 어디에 계셨느냐? 어디로 가셨느냐? 어디에 계시느냐?

여러 번 말씀드렸지요. ‘유․무를 초월한 무아속 절대계에 계신다’고 했지요. 그런데 지금까지의 불교는

‘마음밖에 붓다를(佛을, 佛이)있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 밖에 불(佛)이 있는 것으로 보면 그것은 사도(邪道)다(사도의 견해다). 마음이 곧 붓다이기 때문에 마음밖에 붓다를 이야기하는 그것은 아니다’

이렇게 말을 했고, 이해해왔습니다. 그런데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부처님 당시 가섭이 여자의 몸을 받아와서, 소위 우주에 변만(遍滿)해 있는 불생불멸의 우주의 생명(대생명체, 실상, 진여당체)을 깨치고(견성입니다), 깨친 후 많은 선정(禪定)을 익혀 착(着)을 떼어서 아라한이 된 후, 그 후 부처님의 크신 가피를 입고(지도를 받아서 가피를 입고), 많은 삼매를 쌓아서 보살 삼매의 힘을 얻어 급기야는 불과(佛果)를 성취하면서 절대계에 당신의 몸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 세계의 비밀을 모두 알았는데, 그러고 보니 붓다는 어디에 계시느냐? 지금까지 불과(佛果)를 증한 분들은 모두 절대계에 계신다 그말입니다. 그 절대계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지금까지의 불교가 뭐라고 했지요? 마음밖에 붓다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고 했지요.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실 그렇고요. 마음 밖도 아니고 마음 안도 아니고, 그런대 유․무를(있다 없다를)초월한 절대, 무아속, 거기 중에서도 절대, 그러니까 ‘마음 밖도 아니고 마음 안도 아니고 유․무를 초월한 무아속 절대계에 여여히 계신다’라고 말합니다. 불과(佛果)를 증한 분들이 다 거기에 계시더라 그거예요. 어떻게? 지난 시간에 많이 이야기했기 때문에 그런 말은 또 접겠습니다.

우리 원만보신노사나불께서 거기에 계시다가 당신의 제자가 불과(佛果)를 이룰 쯤 되어서 인신(人身)을 받아오신 것을 알고 이 사바에 오신 거예요. 원만보신노사나불은 그때 오시는 거예요. 그러니까《열반경》에서는 “내가 다시 올 때”라고 되어 있어요. 내가 다시 올 때 어떻게 와?

그때는 이제 육신으로 오는 것이 아니고 진짜 당신의 본불(보신불, 지복의 몸)이 오시는데, 절대계에 계시는 삼계 지존의 그 붓다로서 제자로 하여금 불과(佛果)를 증하도록 외마를 막아주고 삼매로 이끌어 주고, 그리해서 불과(佛果)를 얻도록 하시기 위해서 오신다는 말이에요. ‘내가 다시 올 때’라는 말의 의미는 그거예요. “다시 올 때 묘한 감로가”라는 말은 대열반광을 말해요. “묘한 감로(甘露)가 나와서 중생들의 업장을 멸해줄 것이다.” 지금 그러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업장소멸이라는 것은 절대 자기 개인의 힘으로는 안 됩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업장소멸이 안 됩니다. 정화는 할 수 있습니다. 공부를 잘하면(마음공부를 잘하면), 반듯하게 생각하고 업을 짓지 않고 과거에 지은 업을 참회하면서 마음공부를 잘 합니다. 마음공부가 많지요. 지금까지 소개된 마음공부가 많습니다. 종파마다 수행법이 있지요. 자기의 근기에 따라 그 수행법을 통해서 공부하게 되면(정말로 바르게 공부한다면), 그리고 전생에 선근이 있다면 자기 업장의 일부가 정화됩니다. 정화는 됩니다. 정화는 되지만 업장소멸은 안 됩니다. 업장소멸은 붓다만이 해줍니다.

붓다만이 해주는데, 어떻게 해주느냐? 그 맑고 청정하고, 그 현란 황홀하고 아름다운 그 무량억종광으로 업장을 소멸해줍니다.

그러니까 세세생생 불구자로 태어날 업을 지은 사람이 있어요. 세세생생 태어나면 불구자로 태어날 업을 지은 사람이 있다고요.

가령, 누구라고 거명은 못하겠습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왕)으로서 정치를 하는데 잘못 할 수가 있어요. 크게 잘 못할 수가 있어. 실수할 수가 있어. 그래서 무고한 양민이 100만이고 수 백 만 명이 그 대통령(왕)으로 인해서 죽을 수가 있어. 우리는 역사에서 그런 인물을 몇몇 봤습니다. 그랬다거나(그런 지중한 업을 지었다가나),

두 번째, 부처님이 없고(부처님이라는 것은 없고), 또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육도를 윤회하고 하는 중생, 윤회를 벗어난 저 해탈세계, 이것도 방편으로 한 이야기이지 사실은 아니고, 이런 식으로 법을 능멸하고 모독하고 중생을 오도(誤導)하는 말을 하게 되면, 그건 용서가 없습니다. 그것은 무간지옥 극무간지옥을 간다고 합니다.

이런 업을 지은 사람은 혹 사람의 몸을 받아났다고 하더라도 세세생생 하나의 고통이 아니고 이중 삼중 사중의 고통을 받는, 그러니까 눈 코 귀 입의 기능을 못하는, 혹은 팔다리를 못 쓰는 뇌성마비 등 여러 가지의 고통이 합쳐진 그런 고통 즉, 세세생생 지중한 과보를 받는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과거에 선근이 있어가지고 그 부모가 붓다 회상을 만나서 큰 공덕을 지어 줄 때에는 부처님께서 그 애의 업장을 소멸해 줄 수 있는 그러한 일이 있어요. 그럴 수가 있어요. 한 달 전에 그런 경우도 봤습니다. 한 달 전에 생전예수재(生前豫修齋,산재)를 지내줄 때 어떤 애가 그랬어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인간 영혼의 실체를 규명 못하고 있었는데, 우리 영산불교에서 완전히 규명했다고 했지요. 영체(영적인 실체), 이것을 몰랐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불교가 윤회(輪廻)와 무아(無我)의 관계를 이야기하다가 보니까 앞뒤가 맞지를 않아. 무아(無我)이면서 윤회를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것을 부파 불교부터 연구해 가지고 내놓은 것이 소위 지난번에 이야기했던 '푸드갈라(pudgala)'이론이라든지, '식(識)이론'이라든지, '상속이론'이라든지 하는 온갖 이론이 나왔습니다.

대승 유식에서도 결국 아뢰야식으로 나오는데, 이렇게 밖에 말 못해요. 이렇게 밖에 말 못해. 그런데 이것이 다가 아니어요. 그 어떤 큰스님이 인간 영혼의 실체인 영체를 봤으면 답이 그냥 나오는 것인데 보이지 않으니까(그 영체를 본다는 것은 붓다의 경지이니까) 지금까지의 불교가 그렇게 되어버렸어. 그래서 심지어 기독교 측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사람의 영혼이 없으면 어떻게 되느냐 그거예요. 영혼이 없다고 한 것이 인도에서 우리 불교가 망한 정말 중요한 이유인데, 이렇게 되어가지고는 안 되지요.

지금까지의 불교가 그래요. 붓다(부처님)없고, 영혼이 없어. 지금 한국 종단을 대표한 모 종단에서 ‘영혼이 없다’고 정식으로 발표했습니다. 이건 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불교를 죽이는 이야기인 거예요. 여러분! 영혼이 없으면 천도(薦度)는 뭣 때문에 하고, 다음 생이 어떻게 있습니까? 나(我)가 없으면(영혼이 없으면), 삶의 의미도 필요 없는 것이지요. 살 필요가 없는 것이어. 영혼이 없는데 저 세상, 극락 운운할 자격이 없어. 무아(無我)를 그렇게 잘못 해석해 가지고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영산불교의 탄생은 굉장한 의미가 있습니다. 대단한 의미가 있습니다. 불(佛)이 되면(불과를 증하게 되면) 무량억종광을 방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 불과(佛果)를 이루었기 때문에 약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해주십니다. 삼계의 지존이신 부처님께서 오셔서 정수리에 앉아서 해주셔요. 그러나 세 번씩이나 불과(佛果)를 이루신 우리 미륵부처님이 오실 때에는 현지사로 오셔. 현지사 스님이 되셔. 그래서 불과(佛果)를 증하셔요.

(미륵부처님이 오시거든요. 불멸 후 3000년이라고 했는데, 북방의 불기로 보자면 지금 불기가 3000년이 넘어갔지요. 왔어야지요. 그런데 아직 오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현지궁 현지사에 계시거든요. 언제 오시느냐? 이것도 천기이기 때문에 말 못해요. 말을 못하지만 상당히 먼 훗날 오셔요. 먼 훗날. 100년 200년 300년 400년 후입니다. 그러나 오셔요)

그 분은 네 번째 불과(佛果)를 증하기 때문에 상당한 선정력(禪定力, 삼매의 힘)으로 청법 대중의 업장을 씻어 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만은 못합니다. 지금은 우리 부처님 법의 상속자인 태자가 와서 불과(佛果)를 증해버렸고, 문수의 법왕자가 불과(佛果)를 증했기 때문에 두 아들이 있어서 항상 계셔요. 그래서 무량광을 방광해서 많은 사람들의 업장을 씻어 주십니다. 우리 영산불교의 비밀이 이렇습니다.

영산불교에서 불공(佛供)을 올리는 것, 천도재(薦度齋)를 드리는 것, 기도를 하는 것, 심지어 사월 초파일 때 연등을 켜는 것 등등은 다른 절하고 비교가 안 됩니다 여러분. 스님이 이것을 비교하면 부덕할 것 같아서 말을 하지 않지요. 말을 못하지요.

예를 들면, 예수가 다시 사람 몸을 받아가지고 나와서 서울에다가 조그마한 예배당(교회)을 지었다고 합시다. 거기를 가는 것이 낫겠오, 아니면 그렇고 그런 목사가 잘 지어놓은 그 교회에서 예배를 보는데 내가 최고이고, 나한테 여기 교회 다니는 것이 최고이니까 이 교회로 오라고 해서 가는 그 신도도 있을 거예요. 어느 예배당으로 가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지혜가 있어야 되거든요. 스님들이라고 해서 다 똑같은 스님이 아니어요. 머리 깎았다고 해서, 이렇게 염의를 입었다고 해서 다 똑같은 스님이 아니어. 속을 들여다보면 천층만층이어. 갖추어진 실력 정도가 또 그래. 우리 영산불교 현지사가 정식으로 탄생한지 5년 되었습니다. 미륵부처님이 다시 스님이 되어 현지사로 오셔서 불과(佛果)를 증하여 우리 영산불교 현지궁 현지사의 맥을 이어간다고 할 때, 이게 얼마만큼 무서운 이야기입니까? 현지사가 이런 교단입니다.

그리고 48년 동안의 설법은 진짜 핵을 말씀하시지 않으셨어요. 진짜 핵을 우리한테 넘겨주신 거예요. 그 핵이 뭐냐?

첫째, 부처님 세계, 상락아정(常樂我淨)의 열반의 세계입니다. 이 부분이 지금 빠졌거든요. 이 부분을 영산불교에서는 정말로 잘 압니다. 이것이 핵입니다.

둘째, 인간 영혼의 실체(영체)입니다. 우리는 영체에 대해서 잘 압니다. 지금까지 그 어떤 사람도 몰랐어. 그 유명한 팔조의 스승이라고 하는(조사라고 하는), 제2의 석가라고 하는 용수도, 그 후 무착, 세친도, 중국으로 와서 달마도, 혜능도, 임제도 전혀 몰랐어. 우리나라에서 정말로 불교계의 고금 독보적인 존재라고 하는 원효도 몰랐어. 영체에 대해서도 몰랐고, 부처님이 마음 밖도 아니고 마음 안도 아니고 유·무를 초월한 무아속 절대세계에 여여히 계신다는 것은 까마득히 몰랐어. 그것을 절대 몰랐어. 이것은 스님이 여기서 분명히 이야기해 주는 거예요. 자신 있게 이야기해 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 위대한 불교가 이렇게 왜곡되고 왜소화(矮小化) 되어 버렸습니다. 앞으로 영산불교의 교학이 전부 틀을 갖추고, 많은 주석서가 나오고 할 때에, 이 영산불교 안으로 모든 불교가 · 종파가 통일이 될 거예요. 그 깊은 철학사상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모든 종교가 영산불교로 통일 될 수도 있어요.

이것은 김일부씨가 하는 말이어요. 100여 년 전에 왔다 가신 김일부씨라고 하는 정말로 대단한 역학자가 있었어요. 그분이 앞으로 하나의 종교로 통일 될 것이라고 했어요. 하나의 종교로. 지금 이런 예언이 많아. 새로운 불교가 탄생해서 세계를 지도한다고 하는 예언서가 있어. 이건 영산불교를 이야기한 거예요.《열반경》이야기도 영산불교를 이야기한 거예요.

거듭 이야기하지만, 초기 근본불교인 부처님 당시 그 교단에서는 무량광으로 중생의 업장을 씻어주지 않으셨어요. 그 모든 것은 영산불교, 3000년 후 당신의 아들이 불과(佛果)를 증할 그때에 당신이 오셔서 하실 것으로 이야기 하셨어요. 그래서 지난 수 천 년 동안의 불교계의 세계관과 수행법이 완벽해지고 달라지게 되어있어. 이제는 반 조각 진리가 아니라 만자(滿字)의 가르침이 될 거예요. 만자(滿字), 완전한 진리의 가르침이 많이 전도가 될 거예요. 그걸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이 감로의 광명(대열반광, 무량억종광),《화엄경》을 보면 해(海), 해인(海印)이라고 되어 있어요. 해인(海印)인 거예요. 해인(海印). 여의주적으로 마음대로 모두를 만들 수 있고, 마음대로 할 수 있어. 이 무량광으로요. 이것으로 불보살님이 상락아정의 정토세계를 만든 거예요. 보면 그 무량광으로 못할 일이 없어. 업장을 씻어주기도 하고, 업장을 소멸해 주기도 하고, 불교에 반(反)한 그 많은 외도들, 외도의 괴수들을 이것으로(무량광으로) 제압하고, 이것으로(무량광으로) 49제 때 혹은 천도재 때 귀신 영가를 잡아옵니다.

이 세상에 가득한 그 귀신들, 그 영가들 중에서, 무주고혼들 중에서 그 집 조상님 한 사람을 수배 못했을 경우, 그 많은 무주고혼들에다가 이 무량광을 쫘~악 비추면 그 조상이 툭 튀어 나온다고요. 이 무량광은, 그러니까 이 빛은 부처님의 지혜예요. 이 무량광은 못할 일이 없는, 능력이 있는 큰 힘이에요. 여기서 지장궁으로, 그러니까 명부(冥府)로 그 많은 무고혼들을 갖다가 연행할 경우, 너무 많아서 지장궁의 신장들이 와도 안 될 경우가 있어.

이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이 뜨셔서 작업하실 때 이런 경우가 있어. 그것은 빛으로 된다고. 지옥에 빛으로 길을 만들어 줘가지고 그리 쏘면 그 수많은 무주고혼들이 그 지장궁으로 갈 수가 있어.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어. 이 무량광은 천 만 억 가지의 색깔이고, 그러면서 투명한데, 밝기는 섬광(閃光)보다도 더 밝다고 했지요. 강하기도 섬광 이상으로 강하고요. 중생들은 물론, 외도의 수장들도 눈을 뜨면 실명이 되고 재가 되어 버립니다.

그러니까 그 무량광을 외도의 수장들에게 쏴버리면 부복해버려. 어찌할 수가 없어요. 그런 빛입니다. 그런 빛으로 붓다의 몸은 이루어져 있어요. 모든 붓다는 그렇게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모든 붓다끼리는 그런 무량광 빛으로 연결되어 있어. 이걸 상속되어 있다고 해. 부처님들은 빛으로(무량광으로) 상속되어 있어요.

이 무량광의 빛깔 수가 천 만 억 가지가 되듯이, 천 만 억 가지의 일을 할 수가 있어요. 어떨 때에는 두 색깔을 뽑아가지고도 하고, 또 어떨 때에는 다섯 색깔을 뽑아가지고 조합해서 일을 하시기도 합니다. 못할 일이 없어. 그래서 이것을 해인(海印)이라고 해. 붓다는 해인(海印)을 지니고 있어요. 그 말이 무슨 말이냐? 붓다는 무량광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이어요. 무량광으로 이루어져 있다. 무량광을 방광할 수 있다. 그래서 여러분이 지은 죄업을 무량광으로 씻어 줄 수 있어요.

큰 성인(聖人)의 출현을 불경(佛經)이나, 심지어 여러 종교에서, 유가(儒家)나 도가(道家)나 성경(바이블)까지, 혹은 주역(周易)같은데, 혹은 어떤 선지자가 쓴 예언서인 정감록이라든지 격암록이라든지에 예언을 해놨습니다. 알았습니다. 부처님 가신 후 3000년 쯤 되면 메시아가 오신다는 거예요. 그런데 어느 종파에서는 자기들의 교주가 메시아인 줄 알고 있지만 아니어. 삼신(三身)을 갖추어야 돼. 삼신(三身)을 갖춘 어른이 최고의 어른(성현)이어요. 그 누구도 삼신(三身)을 갖추지 않았어. 다시 말씀드립니다. 삼신(三身)은 법신불 보신불 화신불입니다. 붓다는 이 삼신(三身)을 갖추고 있어.


‣두 번째, 법신불(法身佛)입니다.

법신불은 뭐냐? 우주와 법계(온 법계), 우주를 넘어간 온 법계의 실상(핵, 실체), 그것과 하나가 되어버려야 돼. 붓다는 그 무량광 빛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금방 하나가 돼. 이것들의(본체의) 색깔은 자성광이기 때문에 그냥 흡수해 버려요. 하나가 되어버려. 그리고 이 빛이 우주와 법계에 충만(充滿)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주인이 되었기 때문에) 이 우주가 지니고 있는 힘을 쓰는 거예요. 이게 법신불이어요. 이건 형상이 없어. 이것은 우주적이어요. 붓다가 되면 자기 법신불이 생깁니다. 청전법신비로자나불 안에 생겨요. 다 있어.


‣세 번째, 보신불(報身佛)입니다. 보신불은 뭐냐?

절대계에 이 법신불과 똑같은 능력을 지니고 있되, 눈 코 귀 입이 있는 부처님, 그것을 보신(보신불)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보신불을 몰랐어요. 2500년 3000년이 흘렀는데 보신불을 정확히 몰랐어. 무착, 세친 대에 와서 미륵보살님의 말씀을 듣고《화엄경》과 모든 경전을 연구해서 삼신을 내놨지요. 그러나 그 삼신설(三身說)은 와 닿지를 않아. 지금 영산불교에서는 아주 자세히 이야기하잖아요. 그때는 이렇게 못했어. 그러니까 여러분들이나 대학원생들이 삼신(三身)을 가지고 박사 논문을 쓴 그 논문은 아니어. 와 닿지를 않아. 모래 씹는 맛이어요.

보신은 법신과 같은 능력이 있되 눈 코 입이 달려있는, 모습을 지닌 자기 부처를 말합니다. 이게 진짜 부처입니다. 우리 현지사에 원만보신노사나불이 와 계시잖아요. 그리고 좌우보처 문수·보현의 원만보신이 또 시립하고 계시잖아요. 그 삼계의 많은 붓다의 보신불들이 음력25일 날 현지궁 현지사로 전부 오시잖아요. 혹은 음력 초하루 날은 법신불 속으로 모두 들어가 버리잖아요.

그때의 능력은 우주적이고 온 법계의 능력을 지니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은 말세(오탁악세)이지만, 그래도 지금은 부처님의 가피로(은혜를 입어서) 잘 사는 거예요. 왜냐? 당신들의 두 아들이 왔기 때문에 오셨어. 이런 어른이 올 때에는 세상이 태평하다고 했습니다. 태평한 거예요. 지금 잘잘한(사소한)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닌 거예요. 부처님들께서 오셔서 작업을 해주시기 때문에 세상이 그래도 큰 불행은 카바 해가는(막아가는) 거예요. 지금처럼 잘 살고 있는 적이 있습니까? 앞으로 더 잘살아.

성인(聖人)은 붓다예요. 삼신(三身)을 갖춘 붓다가 대성자(성인)인 거예요. 그러면 어디서 오느냐? 역경(주역)에서도 간방에 위치한 한반도에서 출세한다고 했어요. 계두왕이 다스리던 곳, 한반도에서 나오신다. 《화엄경》에 해인(海印)을 가지고 성인(聖人)은 오신다. 성인(聖人)은 해인(海印)을 지니고 있다. 언제? 부처님 입멸 후 삼 천 년 쯤에 오신다. 성인 붓다는 이자삼점(伊字三點, ∴)과 같다. 삼신(三身)을 갖춘 어른이 성인(聖人)이다. 내가 다시 올 때 묘한 감로(무량광, 해인)를 내어서 중생의 업장을 멸해 줄 것이다. 지금 그러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어느 절에 가면 업장을 씻어 준다더라 하는 절이 있습디까? 그런 말 들어봤습니까? 영산불교 현지사 이후부터 이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승려들이 공부할 때, 저 애는 마장이 너무 심해서 도저히 공부하기가 어렵다고 판단이 될 때, 큰스님이 ‘너 어느 기도처에 가서 100일 업장소멸 기도하고 오너라’그럽니다. 100일 1,000일...아무리 해도 업장소멸 할 수 없는 거예요. 정화는 되지요. 업장소멸은 안 되는 거예요.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세세생생 불구로 태어날 사람, 불구도 이중 삼중 사중고의 불구로 태어날 사람의 업장 정도는 우리 원만보신노사나불 만이 해주셔요.

오여래라든지, 기타 여러 붓다님들은 그렇게 큰 지중한 업장이 아닌 정도는 소멸해 주셔요. 그러나 크고 지중한 업을 짓게 되면, 구체적으로 말해서 영체에 30㎝ 정도의 철판으로 가둬져 있어. 그 철판을 잘라서 그 철판 조각을 삼매화에 넣어서 재로 만들어 줘야 되고, 그러면 또 다시 다음단계도 보면 쇠사슬로 얽혀 있고, 고무 같은 그런 판이 또 덮혀 있고, 또 그것을 씻어주고 또 소멸해주고 또 소멸해주고... 이렇게 여러 번 많이도 해서 그 지중한 중생의 업장을 씻어주는 것을 봤습니다. 이건 현지사 밖에 없어. 이것은 영산불교에서 만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출처/현지사(대전)자재 만현 큰스님 정기법문 2011년3.6.중 발췌




스승의 날 특별 법문중 발췌(부처님의 불신 삼신)

여러분, 꼭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제 20세기를 마감하고 21세기로 들어 온지가 약 8년 밖에 안됐습니다. 앞으로 인류를 정신적으로 향도할만한 충분한 자격을 갖춘 그러한 종교는 지성인들이 너나없이 불교 그럽니다. 이제 기독교 갖고는 안 된다 그럽니다.

여러분도 이 견해에 대해서는 동의 할 것입니다. 기독교의 옅은 교리 갖고는 21세기의 지성 있는 인류를 이끌고 갈(향도할)수 없습니다. 이제 불교에다가 기대를 하는데, 불교도 부처님의 삼신관 · 불신관 중에서 보신의 사상, 참 법신의 의미를 모르면 우주적인 메타종교가 될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을 잘 알아두어야 합니다. 아주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부처님이란 어떤 분이고, 부처님은 여러분들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종교가들도 이것은 이해가 안 된다고 하는 불신관 · 삼신관, 그러니까 부처님의 몸뚱이에 대해서 확실히 모르면 우주적인 종교라고 할 수도 없고, 21세기를 끌고 갈 수도 없습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21세기 우주적 메타종교, 신불교가 될 수 없습니다.

부처님의 불신 · 삼신, 그렇게 중요 합니다. 왜 그러느냐? 이 우주 만물이 어디서 왔느냐? 여러분들은 강의를 많이 들었으니까 스님 법문을 조금 이해 할 것입니다. 어디서 왔느냐? 저기 기독교 같은 일신교(一神敎)에서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존자, 유일하고 절대한 하나님이 있어서(태초에 하나님이 있어서) 만물을 창조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 불교에서는 그렇게 이야기를 안 합니다. 우리 현지사에서는 그건 말이 안 된다고 했지요. 그것을 논박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오늘은 그런 시간이 없고 내가 법문 때마다 가끔씩 문제를 짚고 넘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은 그걸 공박할 필요성도 없고, 가치도 없습니다. 그건 다음기회에 하기로 하겠습니다.

우주에 편만(遍滿)하고, 편재(扁在, 두루두루 해 있다)하고, 만물에 내재하고(모든 것에 속속들이 있고), 그러한 일심 · 진여 · 마음 · 일원상 · 법성, 이것은 우주 만물에 내재해 있으면서 우주에 주변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절대요 초월이요 하나요 유일입니다. 이것은 미묘합니다.

이것은 정의하기가 대단히 어렵지만 사랑이요, 힘이요, 지혜입니다. 거기서부터 나왔다 그럽니다. 이것을 공(空), 주인공, 원각(圓覺)이라고도 하는 등 이름이 많습니다. 모든 것이 거기서 나왔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나왔느냐? 저 푸른 하늘에 갑자기 구름이 일듯, 그 구름은 누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갑자기 구름이 일듯, 그 구름이 이제 인연 따라서 중중무진으로 연기(緣起)하기를 20겁, 20겁 토록 진화 한 거요.

그래서 만들어지고, 지금도 유지 되고 있고, 더욱 진화 되고 있고, 그러다가 언젠가는 사멸해버리는, 사멸해버린다 하더라도 또 다시 20겁이 흐르면 다시 생성과 사멸을 반복한다. 이것을 영겁토록 반복한다. 이렇게 봅니다. 이것이 불교의 우주론입니다. 그걸 알아야 되요.

그런데 우주에 편만(遍滿) 해있고, 모든 만물에 내재 해있는 소위 우주의 진리(법성)와 내가 하나가 되는 거요. 계합을 하는 것이 법신불이요. 줄여서 법신이라고도 합니다. 지금 이걸 모릅니다.

대석학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이걸 모른다고요. 모르면서 앞에 말한 우주에 주변하고, 만물에 내재한 소위 일심 · 진여 · 자성 · 마음 · 공(空) · 법 · 법성 · 원각, 여기다가 인격화 시켜버린 것을 법신이라고 하는데, 우리 현지사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주의 진리하고 내가 억겁을 수행해서 청정과 무소유를 닦아서, 두타 행을 해서 실로 억겁을 수행을 해가지고 내가 청정하고 밝기가 저 햇빛을 초월할 정도가 되면 순도가 100% 넘어버려. 그렇게 되면 거기가 붓다의 경지인데, 그 경지에 가서 소위 법성과 내가 하나가 되는 거요. 이걸 법신불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우리 석가모니불의 법신불은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인 거요.
모든 붓다는 자기의 법신불이 있는 것입니다. 이게 대단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이 이 정도를 이해하게 되면 아주 차원 높은 불자인거요. 많은(상당한) 지식이 있는 불자라고 볼 수 있어. 이걸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 그래서 법신불을 이룬 자기의 법신불은 무형이어요. 형상이 없어. 이건 빛이야. 빛이지만 자기의 생명체이어요. 대우주의 대생명체하고 자기하고 계합 한 거요.

자기는 이미 억겁을 수행한, 그렇기 때문에 완전히 업장도 없고(녹아져버리고), 번뇌도 녹아져버리고, 습도 녹아져버리고, 기도 녹아져버린, 불지(佛智)에 올라간 나(我)가 법성(法性)과 계합 할 수가 있는 거요. 그렇지 않으면 계합이 안돼요. 우주 자체인 법성, 우주 진리와 계합하려면 내가(수행자가) 그만큼 순도 100%가 되어야 돼. 청정무구해야 돼. 그래야 법성과 계합이 되는 거요.

계합이 된 그 몸뚱이를 법신불(법신)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만이 우주적인 종교인 거요. 그래서 불교의 교리(부처님 말씀)는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시공을 막론하고, 초월해서 까지 보편타당 한 거요. 부처님 말씀은 진리인거요. 불교의 계율에도 첫째가 불살생 이렇게 나오잖아요.

다른 종교는 안 그럽니다. 우주적인 종교인 우리 불교의 계율은 첫 번째로 불살생입니다. 생명이상 소중한 것 없는 거요. 두 번째, 생명 다음으로 소중한 것은 재물이어. 그래서 도둑질 하지 말라 이렇게 나가잖아요. 완전히 우주적인 종교는 그렇습니다. 계율만 보더라도 안단 말이어요. 이 법신불에 대한 이해를 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 다음에 억겁을 수행해서 업장을 녹이고(태산만한 자기업장을 녹이고), 탐 · 진 · 치 삼독내지 모든 108번뇌의 뿌리를 다 녹여버리고, 습 · 기도 녹여버리고, 이정도로 수행한 분은 이제 붓다의 경지에 간 분들인데, 그 정도 가게 되면 저기 무아속 절대세계에 자기의 유형의 몸을 두게 됩니다.

그 때는 유형의 몸이어. 법신은 무형의 몸이지만 이건 유형의 몸을 둔단 말이어요. 32상 80종호의 유형의 몸을 두어. 유형의 몸을 두는데, 우리 업 덩어리인 우리 중생들은 물질로 몸뚱이가 이루어져 있지만, 그리고 하늘 사람(윤회안의 하늘사람, 몸뚱이 없는 저 하늘사람)도 미립자입니다.

공(空)을 지나가지 못한 미립자(초미립자)로 이루어져 있지만, 절대계에 계시는 저 부처님의 몸뚱이는 빛으로 이루어져 있어. 빛도 보통 빛이 아니어. 앞에 말했던 법성의 빛도 아니어. 법성의 빛, 그걸 자성광이라고 하는데, 앞에 이야기 한 우주에 편만하고 내재한 것은 자성광(법성광)인데, 붓다의 빛은 그걸 넘어서 무량광(억종광)이라고 그래. 이건 빛의 빛이라고요.

그 빛(억종광 · 무량광)은 여름 한 낮 햇빛 속에 시려서 볼 수 없는 그런 빛 까지도 초월해 있습니다. 억종광으로 이루어진 몸뚱이를 절대세계에 둔다 그 말이어요. 또 절대세계의 몸뚱이는 항상 대적정삼매를 수용하고 있다고요. 대적정삼매는 모든 삼매의 삼매입니다. 대적정삼매에 들어가야(통과해야) 절대세계에 들어 갈 수가 있어.

그러니까 거기에 있는 보신 부처님은(지복의 몸뚱이는) 항상 대적정삼매를 수용하고 계신단 말이어요. 형상도 있는 32상 80종호를 갖추고 있고, 몸뚱이는 억종광으로 이루어져 있고, 정신적으로는 환희 환희입니다. 환희라는 말을 함부로 쓰면 안 되는데, 부처님의 법열을 환희라고 해. 환희를 맛 볼 수 있는, 항상 환희 속에 있어요. 대적정삼매의 세계가 환희의 세계입니다.

그 환희의 세계에서 있을 수 있는 자기의 몸뚱이를 저 연화장세계(유 · 무를 초월한 절대세계)에 둔다 그 말이어. 이걸 알아야 돼. 이걸 보신의 사상, 보신이라고 그래. 절대세계의 몸뚱이를 보신불(보신)이라고 합니다. 보신만 있느냐? 앞에 말한 법신도 있단 말이어요. 보신은 법신이 없으면 안 돼. 법신이 없으면 보신이 자랄 수가 없어.

그런데 법신이나 보신이나 이 몸뚱이가 없으면 안 돼. 이 몸뚱이가 억겁으로 내려오면서 수행한 결과로 해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법신불이 생기고, 보신불이 생기고 그래. 요놈(육신은)은 거짓 몸뚱이지만 불과를 이룬 분을 화신(화신불)이라고 그래.

인간 세상에 사는 그러면서 교화하는 몸뚱이를 화신불이라고 그래. 그리고 하늘, 성중하늘, 극락세계에 다니면서 교화하는 것을 화신이라고 그래. 그 화신은 보신에서 나와. 자기를 백 천 만억 동시에 낼 수 있어.

그 낱낱 부처가 또 낱낱 불국토를 가서 교화를 한다고요. 그러니까 수백천만 자기 몸뚱이를 낼 수 있는 몸뚱이는 보신이어. 법신이 아니어. 보신에서 나와요. 보신에서 나오는 이유가 있어요.

보신불 · 화신불(응화신불) · 법신불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삼신관, 삼신설 혹은 불신관 그럽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의 삼신설(불신관)을 모르면 21세기 메타종교, 신불교란 있을 수 없습니다.

보신(지복의 몸), 우주적인 무형의 몸은 법신불이지요. 이걸 모르고서는 불교를 모릅니다. 진짜 불교를 모르는 거요. 지금까지 많은 스님들, 많은 불교학자들이 법신을 이야기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법신의 뜻이 아닙니다.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대단히 소중히 하고, 깨달음을 목표로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맞지 않는 말입니다. 전혀 틀리는 말은 아니지만 깨달음은 이제 시작입니다. 깨달아서 계율을 엄정히 지키면서 자기 없는 수행(두타행)을 함으로서 이 몸의 착(着)을 떼어버리고 , 이 우주의 무상(無常) · 고(苦) · 무아의 성품을 체득한 데가 아라한입니다.

아라한은 다시 타력으로 보살이 되는 것이고, 보살은 다시 타력으로 보살도를 완성하고 보현행원을 실천하고 완성을 해야 붓다가 되는 것이고, 붓다가 되면 저기 상적광세계에 자기 법신불을 두고 동시에 연화장세계(무아속 절대세계)에 보신불을 두고, 그 세 몸뚱이는 하나이고, 언제라도 하나로 계합이 되고 떨어지고 이렇게 한다 그거요.

그러니까 이 몸뚱이가 죽을 때는 이 몸뚱이를 놔둬 버리고 이 몸속에 있는 네 개의 영체 모두가 자기 불신으로 들어가 버리는 거요. 저기 법신불한테는 안 들어갑니다. 보신불로 들어간다고. 보신불이 중심이니까 보신불로 들어가 버려. 그래서 만년 후에 다시 사람 몸을 받아오고 싶다 할 때 이 속에 들어있는 본래 네 개의 영체가 다시 사람 몸을 받아 옵니다.

힌두교의 교리를 보면 바라마라고 하는 범(梵)에서 벌써 아홉 분의 화신이 나왔다고 하거든요. 9번째가 붓다이고 8번째가 크리슈나이고, 그건 말이 안 돼. 범(梵), 저 법신에서 못나오는 거요. 더구나 법성 · 일원상 · 일심 · 진여, 거기서는 나올 수도 없어. 나하고 계합해버린 법신불에서도 나올 수가 없어. 여기는 초월 평등 한 곳(세계)입니다.

그래서 여여의 이(理)와 여여의 지가 계합했다 그래. 법신불은 생각이 없고 판단이 없어. 전부 평등이어. 거기는 대원경지상 평등해. 이제 네 개의 영체가 들어간 보신불 쪽으로 오게 되면 그 보신불은 여러분과 같은 망상을 피우는 것이 아니고, 오직 지혜와 자비로서 중생을 교화하니까 판단은 대단히 명석하지요. 보신불에서는 판단도 하고 구상도 하는데 법신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법신은 그걸 초월해 버린 거요. 여러분들이 그러한 사상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깊은 사상을 갖고 있는 종교만이 세계(인류)를 인도(지도)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그 왜소한 사상가지고는 절대 안 됩니다.

모든 사람들한테는 불성이 있다 그러거든요. '모든 사람뿐만 아니라 준동함령이 다 불성이 있느니라' 라고 경에 쓰여 있지만, 그 불성, 여래장, 이것은 씨앗(씨)이지 열매가 아니다. 이 씨앗을 틔워가지고 줄기 · 가지를 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려면 이건 자력과 타력으로 가능하다.

'모든 움직이는 동물들, 만물의 영장인 우리 안에(이 마음속에) 모두 불성이 있다.' 이러한 경의 말씀을 너무 지나치게 해석해 가지고, '중생은 본래 불(佛)이다.' 이렇게 과장 해석해가지고, 내가 본래 불인데 적당하게 불교도 믿고 적당하게 살면 되는 거지. 이런 생각을 하면 큰 착오다. 위험한 생각이다. 어디까지나 그것은 씨앗이다.

씨앗이니까 이 씨앗을 열매로 만들려면 많은 타력이 필요하다. 비옥한 땅속에 씨앗을 뿌려야 되고(심어야 되고), 싹이 나오면 잡풀도 뽑아주는 사람, 물주는 사람, 필요하다면 거름도 주고, 가지도 쳐 주고, 병충해를 없애는 약도 뿌려주고, 햇볕도 쪼여야 되고, 비도 내려 주고, 바람도 불어주고... 이렇게 해서 씨앗이 싹이 나고, 줄기와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거요. 절대 타력이 필요합니다.

타력이 없으면 안 되는 거요. 그런데 오늘날 한국불교는 완전 자력불교입니다. 그리고 세게불교도 미얀마 저쪽의 남방불교는 완전 자력불교입니다. 그러나 미얀마 불교는 여기 선불교 보다는 우수합니다.

어떤 점이 우수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시간 관계상 말 할 수 없으나 어쨌든 자력불교입니다. 저기 티베트 밀교는 어느 정도 주력에 의지하고, 밀장을 의지하기 때문에 조금 평가를 하지만 티베트 밀교는 붓다의 삼신을 모릅니다.

그 쪽에서 삼신, 사신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아닙니다. 어떤 것이 법신인줄도 모르고, 어떤 것이 보신인줄도 몰라요. 보신을 바르도(중음)세계에 두는 그런 수행법이 있습니다. 그걸 보신으로 아는데, 아닙니다. 보신은 어디까지나 중음이 아니고, 하늘도 아니고, 성중하늘도 아니고, 정토도 아니고, 극락도 아니고, 저기 '무아속 절대세계' 에다 두는 거요.

'상적광 세계' 에다가 두는 거요. 보신을 중음세계에다가 두는 것이 아니어. 전혀 다릅니다. 그래서 밀교 갖고도 안 되고, 밀교는 또 신통이 많이 나오지요. 신통을 부리면 안 되는 것이고(업만 짓는 것이고), 신통을 부리면 무서운 죄업의 과보가 있는데 과보를 받기 때문에 큰일 날 일입니다.

그래서 오직 타력이 필요한데, 오직 절대하신, 엄청난 능력을 지니신, 진정한 하나님이신 우리 부처님의 타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붓다는 우주에 주변하고 내재해 있는 그것과 하나가 되어버렸잖아요. 하나가 되어 있는데 보신이 그리 들어 갈 때가 있어요. 법신불로 들어갈 때가 있는데 그때는 정말 우주적인 능력을 쓸 수 있는 거요.

우주에 편재하고 내재한 그 공(空)과 하나가 되어 버렸는데, 하나가 되어버린 그 법신불 속으로 다시 삼신의 중심인 보신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이건 우주적인 온갖 질료(質料)와 지혜등 모든 것을 잡아 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붓다는 사실상 하나님이지만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인 우리 석가모니부처님이야말로 그 법신불(청정법신비로자나불)로 모든 붓다가 들어가 있기 때문에 그 능력은 진정 하나님인 것입니다.

그러하지 이러한 빛 이전의 하나님은 없었던거요. 공(空) · 법(法) · 법성(法性)이 먼저 있었다니까요. 모든 것에 먼저 있었어. 천지 나기 전에 있었어. 그걸 천지 미분전이라고 그래. 이것은 시간 공간 이전에 있었어. 그런데 하나님이 어떻게 있어. 법이 하나님보다 먼저 있었다니까요. 법이라는 것은 하나님보다 먼저 있었어요.

출처/ 2008.5.15. 목(음4.11) 큰스님 춘천 법문 중 발췌





천만억 화신을 내시는 보신불의 위신력
- 《화엄경》에서 보이는 부처님의 위신력 장면

나는 감히 이 책을 통하여 세계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특히 여러 나라 불교 지도자들에게 우리 교주 불 세존의 거룩하고 희유하신 깊은 삼매력에서 오는 위신력을, 이는 사실이며 픽션이 아니라고 선언하면서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화엄경》에서는 부처님께서는 마갈타국 니련선하尼蓮禪河의 강가 보리수 하에서 대정각을 이루시고 2600년 전 다시 사바세계에서 와서 또 불과를 이루시고 21일간혹은 7일간 깊은 삼매 속에서 삼천대천세계 거의 모든 우두머리 신들과 그 권속들 그리고 수많은 호법 성중들과 상품보살들에게, 문수·보현 등 여러 상수보살들을 통해서 부처님을 공경 찬탄하게 하며 교법을 설하시고, 보광명전, 하늘의 도리천궁5하늘, 야마천궁4하늘, 도솔천궁3하늘, 타화자재천궁1하늘으로 차례로 옮겨가면서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경계, 보·화신報·化身, 삼매, 방광, 자재, 신통, 지행智行, 자비, 거룩하신 32상의 원만 상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자재 만현은 주석해설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수많은 불경 가운데 경經 중의 왕이라 불리는 《화엄경》은 부처님께서 불과를 증하시고 난 후 깊은 백천삼매獅子頻伸三昧에 드시어 몸 여러 군데에서 방광하면서 이루어진 화엄의 장면들입니다.

원만보신 노사나불석가모니불의 보신 명칭의 부사의한 경계들입니다. 따라서 《화엄경》의 교주는 형상 없는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 아니고, 32상을 구족하신 그리고 지혜와 자비를 갖추신 원만보신 노사나불이십니다.

다만 붓다 이룬 이는 무릎을 치며 “옳지, 그렇지!…….”하게 되는 진실한 장면들이라는 것을 강조해 두는 바입니다. 결코 어느 작가의 상상력으로 쓴 픽션허구이 아님을 다시 확언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무상 정각을 이루심에 땅은 금강으로 장엄을 갖추었고, 광명이 두루 비쳐 모두가 기특하고, 보리수는 청정한 유리로 그 밑동이 되었고, 불가사의한 석상石上 사자좌는 갖가지 묘한 보배 꽃으로 장엄하였다. 마니구슬보다 더 빛나는 부처님 광명은…… 운운, 열 세계 티끌 수 같은 큰 보살들, 금강역사들, 천왕·신들이 모여들었고……. 깨끗하고 청정한 부처님 광명이 분사噴射되었다.”

-《화엄경》 <세주묘엄품>

이 같은 장엄한 광경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장면들 모두가 사실입니다.
《화엄경》의 말씀입니다.

“그때 여래의 위신력으로 사방 일체세계의 수많은 낱낱 남섬부주南閻浮提 밑에 앉으신 데서 각각 보살들이 부처님의 자재 신통하신 힘으로 법을 연설하는데 각자 부처님을 대하였노라 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세존께서는 모든 세계의 보리수 아래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도리천 수미산에 오르시어 제석의 궁으로 향하시었다.

이때 세존께서 도리천의 묘승전에 드시어 결가부좌하시니 이 궁전이 홀연히 넓어지고 사방의 세계에서도 모두 이와 같은 장면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때 세존께서는 부처님의 자재하신 위신력으로 수많은 국토의 보리수 아래와, 수미산 꼭대기와, 야마천궁을 떠나지 아니하시고 도솔타천으로 가시어 천왕의 영접을 받으신다.
백만억 꽃 구름으로, 백만억 향으로, 백만억 보배 깃발로, 마음을 기쁘게 하는 백만억 음성으로…… 불 세존께 공양을 드린다. 무수히 많은 정토보살들, 하늘 왕들이 모여와 여래께 공양을 드린다…….

그때 저들 대중이 보니 여래의 몸 낱낱 털구멍에서 백천억 나유타 아승기 광명이 나오고 그로 인해 부사의한 끝없는 세계를 본다.

토솔타천왕은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부처님을 찬탄하는 게송을 읊는다…….”

이 모든 일들 역시 사실임을 나 자재 만현은 선언하는 것입니다. 윤회 안의 중생들이 사는 세계는 항하의 모래 수와도 같이 많습니다. 죄업 중생이 가는 지옥, 아귀, 축생세계들이 있고 착한 중생이 나는生 인간, 수라, 하늘천국이 있습니다.

이 육도를 한 단위로 하여 이의 천 배를 1소천세계라 하고, 이 소천세계의 천 배를 1중천세계, 이 중천세계의 천 배를 1대천세계라 하며 이 소·중·대천세계를 합해 삼천대천세계라 합니다.

육체 인간이 사는 곳은 지구남섬부주는 유일하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별과 같은 물질세계에는 기체氣體 인간들이 살고 있으며, 윤회 안 허공 중엔 많은 천상세계가 있어 영체하늘 인간들이 삽니다. 윤회 안의 기器세계는 중생들의 업력으로 이루어지고 없어진다는 것도 말씀드립니다.

윤회 밖에는 여러 부처님들과 보살들의 원력에 의해 많은 정토들이 적멸 속에 건립되어 있습니다.

이 경《화엄경》에서는 최초 불이신 석가모니부처님원만보신 노사나불의 크신 위신력을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인도 땅에 오셔서 또 다시 불과를 이루시고 그 위신력으로 삼천대천세계와 윤회 밖 해탈오계, 붓다님들의 세계와 불 보살들의 하시는 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중생이 사는 세계 가운데 남섬부주 지구와 상당히 유사한 세계에 사는 중생들을 위해 각각 보리수 밑에서 대정각을 이루어 적정삼매에 드시는 모습 곧 무수히 많은 석가모니불의 화신을 보여주시면서, 그 보리수 밑을 떠나지 않으시고 도리천 수미산정으로 가십니다.

이때는 불과를 이루시어 절대계에 계신 원만보신 노사나불과 계합이 된 상태이기 때문에 육신의 화신불을 놔두고 보신부처님圓滿報身佛이 도리천궁으로 가시는 것입니다.

신기하기도 합니다. 어느 역사적인 성인이 이렇듯 불가사의한 자재自在 신통을 행했습니다. 부처님은 다시 야마천궁으로 설법 장소를 옮기십니다. 도리천궁을 떠나셨어도 부처님化身佛은 거기에 그대로 선정에 들어계시고 보살들은 법을 설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도리천궁을 떠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당신의 화신을 거기다 그대로 두고 가시기 때문입니다. 이때 삼천대천세계 그 많은 도리천과 같은 국토에도 각각 당신의 화신을 두고 법설을 연출합니다. 다음 도솔타천, 도솔타천에서 타화자재천으로 설법 장소를 옮기실 때마다 도솔타천을 떠나지 않으시고 또 하나의 화신을 거기 놔두시고 그리고 수많은 도솔타천에도 각기 한 분의 화신들을 놔두시고 타화자재천으로 가실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부처님의 원만보신은 동시에 백천만억의 화신을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수많은 곳에 화신불이 삼매에 드시어 티끌 수 같이 많은 광명을 놓으시는 가운데 많은 상품보살들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입어 똑같이 여러 화엄법문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 교주 불 세존은 천상천하에 지존이십니다. 거룩하시고 희유하십니다.

나는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 깨끗하고 청정한 부처님의 광명을 무량광, 억종광, 백종오색광, 대열반광이라 했습니다. 《화엄경》《법화경》에서는 무량억 나유타 아승기 광명, 한량없는 억 나유타 아승기 광명, 백천억 묘한 빛 광명, 백천억 나유타 아승기의 청정한 광명, 한량없고 수없는 빛깔의 광명 등으로 풀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양미간에서, 몸에서, 입에서입과 낱낱 치아 사이에서…… 방광하신다 합니다. 사실은 밀장이기에 자세한 말은 아끼고 싶으나 불신 10군데에서 방광을 하는 것만을 말해둡니다.

불신은 티끌 수 같이 많은 억종광명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필요에 따라 자유자재로 억종광을 낼 수도 있고 단색을 놓을 수도 있습니다.

아승기 천억 나유타 광명으로 그 보신불의 몸이 이루어져 있고, 원만보신은 천만억의 화신을 나투실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이것은 네 영혼체가 무아정화된 여여의_心意識의 빛으로 되어 자기 불신 속으로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적정삼매의 큰 힘이 있어 그러합니다.

여러 대승경에서는 밝히지 않고 있으나 이 부처님 광명은 내가여러 차례 소개한 것과 같이 깨끗하고 영롱하며 아름답고 안팎이 없다는 것입니다. 탐진 삼독, 일체의 번뇌의 뿌리가 다 녹아버리고 다겁생의 업장과 악·습의 기까지 모두 진멸해버려 그렇습니다.

이런 부처님의 수명은 빛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무량합니다. 그리고 백천삼매화엄삼매를 자유자재로 드시기에 언제나 환희 속에 여여히 계십니다.

여기서 부연해 드리고자 합니다.

일찍이 불과를 이루신 시방의 부처님붓다들은 역시 위신력에 있어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깊은 삼매에 들고, 그 큰 삼매력 때문에 몸의 여러 군데에서 나유타 천억 광명을 낼 수 있습니다.

백으로 천으로 억으로 당신들의 몸을 나누어 시현할 수도 있다는 것을 강조해 드립니다.

영산불교 현지궁 광명 만덕 큰스님도 한두 관문을 통과해 가면 이 거짓 몸뚱이까지 위의 모든 신력神力이 가능한 수준입니다.

붓다의 희유함은 그러합니다. 하물며 붓다 중 붓다이신 석가모니부처님의 위신력은 가히 측량할 길 없답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2권 중 발췌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법.보.화.삼신

자력으로는 대단히 어려워. 자력으로는 어려워. 그러므로 타력 부처님의 가피를 입어야 돼. 절대 가피는 염불에서와 칭명염불에서와. 지금까지는 실상 염불이 득세했지만 그것은 화두선과 거의 성격이 같아. 칭명염불을 해야 돼. 부처님들이 다 계시니까. 그런데 하나하나 부처님들이 능력은 어마어마한데 하나하나 부처님의 능력이. 우리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그 능력이 한이 없어. 부처님의 부처님이니까. 우리 석가모니 부처님은.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님을 많이 염하시요 하는 거에요. 여러분한테 제일 좋은 것만 취해서 주는 거요 지금.

이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이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법신 이름입니다. 달리 말하면 이렇습니다. 모든 불과를 증한 붓다들은요. 삼신을 갖추어요. 여러분들은 몸이 하나지만 불과를 이룬 분들은요. 크게 세 몸을 둡니다. 사람 몸으로 왔을 때, 요걸 화신 이라고 해요. 불과를 증한 사람은 화신이라고 해요.

몸뚱이를 화신. 그리고 그리고 하늘이나 또 삼매에 들 정도의 공부인한테 모습을 자꾸 여러 가지로 나투어서 현신한 것을 화신이라고 해요. 화신 백천만억으로 나툴 수 있는 자기 화신을요. 동시에요. 그건 그걸 화신이라고 하고, 그 화신을 나툴 수 있는 소위 몸이 보신이어요 보신. 원만보신이라고 그래요. 모든 부처님들은 다 불신 원만보신이라고 이 불신을 갖추고 있어요 다.

이 원만보신의 능력이 그렇게 무섭다고요. 백천만억 화신을 낸다고요. 요 원만보신. 근데 그럼 보신은 그렇고 법신불은 뭐냐? 보신불의 소위. 보신불이 존재할 수 있는 근거에요. 자기 법신불. 부처님마다 자기 법신불 이름이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법신불 이름은 청정법신 비로자나입니다. 다 부처님마다 법신불이 있어요. 다 있으니까. 그것은 우주적인 몸이에요. 우주와 하나로 계합한 빛덩어리에요 빛이에요.

그러나 그 법신은 법신불은 판단이라든지 어떤 의욕이라든지 결정이 없어요. 못해요. 거기는 식이 없으니까 식 의식. 부처의 경계에서 의식이라고 안하고 지혜라고 하지만 그것 없어요. 그래서 보신불이 자기 법신불로 떡 들어가게 되면은 이제 살피는 거에요. 살필 수 있어요. 그런데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은 보든 부처님의 법보 법신 보신이 뭉쳐져 버린거에요 하나로. 뭉쳐져 버릴 때가 있어요. 삼천대천세계에 모든 부처님의 몸이 하나로 되어 버릴 때가 있어요. 요걸 청정법신 비로나자불이라고 그래요. 그러면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법신이름이어요.

이렇게 될 때는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 뜰 때는 이야기하는 하나님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 능력이요. 그 능력이요. 이걸 아무도 몰라요.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의 경지를 아무도 몰라요. 요런 말을 하면 또 선에서는 상에 집착했다 그러죠. 이건 상이 아닌 상이어요. 적멸의 상이죠. 빛 빛의 상이 아닌 상이어요.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님은 최초불이시기 때문에 붓다 되신 지가 한량없는 겁 전에 붓다를 이루셨어요. 최초로요. 얼마나 오래 전에 붓다를 이루셨느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얼마나 오래 전에 이루셨느냐 하는 것은요. 여래수량품에 있어요. 그 말이요. 여래수량품이라는 데가 있어요. 여러분 가셔서 법화경 여래수량품을 한번 들쳐보세요. 부처님이 얼마나 오래 전에 불과를 증하셨느냐 하는 것이 나와요. 그런데 이걸 하도 이걸 도저히 헤아리 수도 없고 그래서 믿기지 않을 거에요. 자. 여러분 조금 들어보세요. 이 석가모니 부처님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되거든요. 그러면 대단히 여러분 복된 삶을 살 수 있어요. 그래서 석가모니부처님을 비롯해서 부처님 믿음을 여러분한테 심어주기 위해서 지금 시간을 할애합니다.

출처/2006년 04월 10일 자재만현큰스님 부산현지사 정기법회중 발췌




삼신불 불교 역사상 이렇게 자세하게 설명한곳은 없어

불과를 이루면 세 가지의 혹은 세 몸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세 몸을 갖추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 현지사에서는 이러한 스님의 말을 이해 할 분들이 많습니다. 대부분 다 이해하실 것입니다. 불과를 이루게 되는 붓다는 세 몸을 갖춘다(구족한다). 절대계에 자기불신(원만보신)을 갖는다.

원만보신은 또 청정법신을 지닌다. 청정법신불을 뿌리로 해서 계신다. 그러니까 불과를 증하게 되면 유무를 초월한 ‘무아 속 절대계’에 자기불신(원만보신불)을 두고, 그 너머에(상적광세계에)자기 청정법신불을 둔다.

그 절대계의 원만보신은 필요하다면 동시에 언제라도 백 천 만 억의 몸을 나투어서 인간, 하늘 사람, 성중, 정토세계에 화신을 뿌린다. 백 천 만 억의 몸을 뿌린다.

그 절대계에 계시는 불신(원만보신)은 인간세계로도 가끔 온다. 석가모니부처님처럼 인간의 몸을 받아 오기도 한다. 그렇게 될 때 그 인간의 몸을 응화신이라고 한다. 여러분, 이것을 다 이해를 해야 됩니다.
그런데 그 절대계에 계시는 원만보신은 이 남섬부주같이 시공(時空)안으로 윤회 안으로 상대세계로 경험세계로 오실 때에는 변화신으로 오신다. 이것을 여러분들은 많이 아실 겁니다. 이 사실은 스님이 강조하지만 현지사 밖에 모른다는 것.

부처님 이후로 그 많은 걸출한 승려들(큰스님들)이 출세했지만, 예를 들어 인도의 용수, 마명, 무착, 세친 같은 정말로 위대한 학승들이 나왔지만, 그 사람들이 팔만대장경을 연구하고 수행을 해보고 각각 논장(논문)을 썼는데, 그 논문 안에 무착 대에 이르러(부처님 가신지 1000여년 만에) 무착스님에 의해서 부처님의 몸(삼신)에 대해 연구를 하여 부처님은 이런 분이라는 것이 정리가 (정립이)됩니다.

그러나 무착스님도 불과를 증하지 못했기 때문에(삼신의 정립이 어려웠지만) 그 당시 미륵부처님이 내려오셔서 스승으로 많은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삼신불을 정립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경과 논장에 삼신불에 대해서 지금의 현지사 같이 그렇게 깊이, 내가 지금 곧 시판하게 되는 붓다의 메시지 2권처럼 그렇게 깊이 다루지를 못했습니다.

자, 음력10월15일 날 삼천대천세계의 그 많은 원만보신불님들이 우리 대적광전 청정법신비로자나불 속으로 들어오십니다. 이건 너무도 큰 쾌거입니다. 불교 역사상 너무너무도 상상할 수 없는 쾌거입니다. ≪화엄경≫, ≪법화경≫, ≪열반경≫, ≪해시밀경≫, ≪삼십만송≫, ≪반야바라밀다경≫, ≪능가경≫, ≪금광명최승왕경≫등에 삼신불에 대한 이야기가 쓰여 있습니다.

붓다는 대열반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된다 하는 것이 쓰여 있어요. 그러나 그 경과 보살들에 의해서 쓰여 진 논장, 보신론이라든지 섭대승론이라든지 많은 논장에 쓰여 있는 삼신설은 대단히 부족하더라 그거요.
이제 <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Ⅱ권으로 해서 정립이 완벽히 됩니다.

출처/2008. 8. 23. 토(음7. 23) 큰스님 부산 법문중 발췌




법문 내용 中 발췌

자력으로는 대단히 어려워. 자력으로는 어려워. 그러므로 타력 부처님의 가피를 입어야 돼. 절대 가피는 염불에서와 칭명염불에서와. 지금까지는 실상 염불이 득세했지만 그것은 화두선과 거의 성격이 같아. 칭명염불을 해야 돼. 부처님들이 다 계시니까. 그런데 하나하나 부처님들이 능력은 어마어마한데 하나하나 부처님의 능력이. 우리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그 능력이 한이 없어. 부처님의 부처님이니까. 우리 석가모니 부처님은.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님을 많이 염하시요 하는 거에요. 여러분한테 제일 좋은 것만 취해서 주는 거요 지금.

이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이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법신 이름입니다. 달리 말하면 이렇습니다. 모든 불과를 증한 붓다들은요. 삼신을 갖추어요. 여러분들은 몸이 하나지만 불과를 이룬 분들은요. 크게 세 몸을 둡니다.

사람 몸으로 왔을 때, 요걸 화신 이라고 해요. 불과를 증한 사람은 화신이라고 해요. 몸뚱이를 화신. 그리고 그리고 하늘이나 또 삼매에 들 정도의 공부인한테 모습을 자꾸 여러 가지로 나투어서 현신한 것을 화신이라고 해요. 화신 백천만억으로 나툴 수 있는 자기 화신을요. 동시에요. 그건 그걸 화신이라고 하고, 그 화신을 나툴 수 있는 소위 몸이 보신이어요 보신. 원만보신이라고 그래요. 모든 부처님들은 다 불신 원만보신이라고 이 불신을 갖추고 있어요 다.

이 원만보신의 능력이 그렇게 무섭다고요. 백천만억 화신을 낸다고요. 요 원만보신. 근데 그럼 보신은 그렇고 법신불은 뭐냐? 보신불의 소위. 보신불이 존재할 수 있는 근거에요. 자기 법신불. 부처님마다 자기 법신불 이름이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법신불 이름은 청정법신 비로자나입니다. 다 부처님마다 법신불이 있어요. 다 있으니까. 그것은 우주적인 몸이에요. 우주와 하나로 계합한 빛덩어리에요 빛이에요.
그러나 그 법신은 법신불은 판단이라든지 어떤 의욕이라든지 결정이 없어요. 못해요. 거기는 식이 없으니까 식 의식. 부처의 경계에서 의식이라고 안하고 지혜라고 하지만 그것 없어요. 그래서 보신불이 자기 법신불로 떡 들어가게 되면은 이제 살피는 거에요. 살필 수 있어요. 그런데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은 보든 부처님의 법보 법신 보신이 뭉쳐져 버린거에요 하나로. 뭉쳐져 버릴 때가 있어요.

삼천대천세계에 모든 부처님의 몸이 하나로 되어 버릴 때가 있어요. 요걸 청정법신 비로나자불이라고 그래요. 그러면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법신이름이어요. 이렇게 될 때는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 뜰 때는 이야기하는 하나님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 능력이요. 그 능력이요. 이걸 아무도 몰라요.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의 경지를 아무도 몰라요. 요런 말을 하면 또 선에서는 상에 집착했다 그러죠. 이건 상이 아닌 상이어요. 적멸의 상이죠. 빛 빛의 상이 아닌 상이어요.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님은 최초불이시기 때문에 붓다 되신 지가 한량없는 겁 전에 붓다를 이루셨어요. 최초로요. 얼마나 오래 전에 붓다를 이루셨느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얼마나 오래 전에 이루셨느냐 하는 것은요. 여래수량품에 있어요. 그 말이요. 여래수량품이라는 데가 있어요. 여러분 가셔서 법화경 여래수량품을 한번 들쳐보세요. 부처님이 얼마나 오래 전에 불과를 증하셨느냐 하는 것이 나와요.

그런데 이걸 하도 이걸 도저히 헤아리 수도 없고 그래서 믿기지 않을 거에요. 자. 여러분 조금 들어보세요. 이 석가모니 부처님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되거든요. 그러면 대단히 여러분 복된 삶을 살 수 있어요. 그래서 석가모니부처님을 비롯해서 부처님 믿음을 여러분한테 심어주기 위해서 지금 시간을 할애합니다.

2006년 04월 10일 자재만현큰스님 부산현지사 정기법회




붓다의 삼심설(三身說)


한편 큰스님께서는 염불선 뿐만 아니라 붓다의 삼신설에 대해서 많은 가르침을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를 통해 설해 주셨다. 붓다의 삼실설은 그동안 승가(僧家)에서 그렇게 잘 알려지지 않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최고의 비결(秘訣)이라 할 수있다.

큰스님께서는 이렇게 사자후 하신다. “붓다를 이룬이는 법, 보, 화 삼신을 구족해서 평등적인 무아 속 절대세계와 차별적 중생세계를 자유로이 넘나들면서 중생을 교화하는 분이라 밝힙니다.” 이는 인류 최대의 문명의 총아인 컴퓨터 시스템을 통해 서도 여실히 알 수 있다.

최근 컴퓨터 시스템은 3계층 구조로 구축되어진다. 3계층은 바로 3단계로 처리(프로세스)가 이루어 진다는 뜻이다. 이 3계층 컴퓨터 시스템은 서양철학에 의하면 플라톤의 이데아( 여기서는 붓다의 삼신)를 모사(模寫)한 시뮬라크로(Simulacra)에 해당한다.

즉, 부처님의 법신을 근간으로 보신이 있고 보신을 배경으로 응화신을 나툰다는 점은 인류 최대의 이기(利器)인 컴퓨터 문명의 핵심 프레임워크(뼈대)로서 3계층 컴퓨터 시스템에 투영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어찌 지고한 붓다의 삼신을 현상계의 단지 하나의 미물(微物)인 컴퓨터 시스템에 비교할 수 있겠는가?

다만 포괄적 이해를 위해서 이데아가 바로 붓다의 삼신이라면 이 이데아를 모사한 시뮬라크르가 바로 3계층 컴퓨터 시스템이라고 비유한 것이다. 강조하는 바 이러한 비유는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지 실재의 복사는 아니다. 다만 불가의 고승(高僧)께서 “삼라만상이 설법을 한다.”는 이치를 올바르게 해득한다면 이 이치가 삼천대천세계의 핵심 메타포(Metaphor)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각설하고 만현 큰스님께서는 삼신설은 인도의 무착, 천친 큰스님에 의해 확립되었다고 하셨다. 그 다음으로는 <<보성론>>의 삼신을 들 수 있다고 하시며 여기서는 불신, 곧 원만보신은 무량광, 즉 억종광, 백종오색광, 열반광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이는 맞다고 하셨다. 큰스님께서는 <<금광명최승왕경>> 제 二권 3<분별삼신품>, 용수의 삼신관(三身觀), 인도의 마명과 용수(주저<<대지도론>>) 큰 스님과 몇몇 중관의 논사들 그리고 유가행(瑜伽行)학파 기타 논서(가령 무착<<섭대승론>>, 견해 <<보성론>>)등 붓다의 삼신설과 관련하여 무수히 많은 역대 불가의 최고의 큰스님들과 그 분들의 주저(主著)를 모두 꿰뚫어 보시는 탁월한 안목과 식견을 겸비하셨다는 점에 필자는 크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큰스님은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불신을 얻지 못하면 붓다가 아니며 사바세계에 한 분의 붓다가 나오려면 삼계왕이신 석가모니부처님의 선택이 있어야 합니다. 주로 선근 보따리가 붓다 되기에 충분한 수행승이 낙점됩니다. 선택된 이가 바로 상품상의 보살입니다. “이 얼마나 자세한 말씀인가? 큰스님이 자상하게 밝히신 붓다의 삼신설 내용들은 어느 하나하나 경천동지(驚天動地)가 아닌 사자후가 없다.

여기에 큰스님은 연이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이 수행승은 공부 중에 무량광을 봅니다. 그런 다음 또 하나의 큰 관문을 거쳐서 자기를 찾아온 많은 부처님들을 뵙고 직접 법문을 듣게 됩니다. 거룩하신 부처님들의 법문을 듣고 공부를 지도 받는 것입니다. 보다 자주 깊은 삼매에 들어가서 붓다로서의 공부를 마치게 됩니다.”

이 부분은 심도 있게 정신계를 공부하거나 정신계에 대한 심오한 이해를 구족한 수행자 또는 구도자라면, 물론 그러한 구도자가 지구상에 드물지마는 여타의 종교와 영성세계를 수행한 구도자건 상관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할 내용이다. 왜냐하면 서양의 신지학(神智學) 등에서도 모든 수행이 정신계의 스승으로부터 공부를 배워야 진실된 공부라 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수행자들 간에 회자되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음의 큰스님의 말씀을 살펴보자.

“불과를 이룬 이의 4개의영체는 각기 독립해서 분리하여 활동합니다. 바람과도 같이 이거짓몸뚱이서 빠져 나와서 말입니다. 죽을 때는 4개의 영체가 자기 불신, 부처님 세계에 있는 자기 불신과 하나로 계합합니다. ‘지복의 몸’과 하나가 됩니다. 그 불신(원만보신)은 무아 속 절대세계, 즉 상적광토에 청접법신 을 둡니다. 자기의 법신, 곧 ‘우주적인 몸’을 둡니다. 이제 우주 자체(시공을 자체화함)인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큰스님께서 생사(生死)의 과정(Process)과 흐름 속에서 우리의 영혼체가 어떻게 변전(變傳)하는 지를 여실지견으로 파악하고 계신다는 점을 알 수 있다.

4개의 영체에 대한 설명은 힌두의 수행체계에서 취하신 것이나 원래 근본불교에서 전해져왔는데 어느 순간 누실되었다고 하신다. 이 4개의 영체에 대한 이론은 신지학에서도 거론되고 있다. 그리고 부처님 세계에는 불신으로서 원만보신이 그리고 무아 속 절대세계인 상적광토 (연화장세계)에는 청정법신을 둔다는 것은 가히 큰스님이 친히 증험한 붓다의 경지가 아니고서는 그누가 할 수 있는 말이겠는가?

큰스님께서 하신 다음의 가르침을 해석해 보자. “사실은 부처님의 법신이야말로 진불(眞佛)입니다. 거래도 없고 머묾도 없습니다. 법계를 비추는 대지의 광명체로서 초월이요, 평등입니다. 초월적 인격적 실존이신 보신의 근본이 되어 이미 인격이 아닙니다. 대우주아입니다. “여기서는 석가모니부처 님의 법신이 우주적인 몸으로서의 법신이며 진불임을 소상하게 밝히셨다.

여기서 우리는 법계를 비추는 대지의 광명체로서 초월적이고 평등적인 법신과 인격적 실존으로서 보신을 비교해서 이해할 수 있다. 이 얼마나 극명한 설명인가? 어느 누가 붓다의 삼신설에 이렇게 자세하게 증험(證驗)적 차원에서 서술 할 수 있을까? 수행의 진검승부는 바로 고강한 내공으로 얼마나 고난이도의 승탑(僧搭)을 쌓느냐, 즉 자신의 내면에 최고의 경지를 구축하고 완성하느냐에 있다 하겠다.

더 나아가서 큰스님께서는 이렇게 밝히신다. “붓다 세계에 계신 불신이 보신입니다. 보신은 무아 속 절대계에 자기의 법신을 둡니다. 그래서 법신은 보신과 화신의 근본체입니다.” 이제 법신과 보신의 관계는 자명해 졌다. 법신이 체라면 보신은 용이며 보신이 체라면 화신은 용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불가에서 진부하게 거론되고 있던 체용철학(體用哲學)에서 그토록 강조하고 찬탄한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에 대한 설명을 큰스님은 보다 간명하고 확실하게 적고 있다.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은 저 하늘에 떠 있는 태양과도 같이 언제나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비추고 있습니다. ‘전 우주적인 몸뚱이’가 그의 본질적인 성품입니다. 대우주이시며 절대와 동일한 변조 광명입니다.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은 석가모니부처님의 법신체로서 모든 붓다들의 청정법신을 총섭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거룩하고 희유한 사자후요 가르침이 아니겠는가? 선근을 지닌 모든 불제자라면 부처님에 대한 신심(信心)을 더욱 굳건하게 해주고 발심(發心)을 내어 수행정진하게 해주는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추가로 말씀하신다. “부처님의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은 언제나 온 법계를 두루 비추고 계십니다.”라고. 우리는 왜 시방세계와 삼천대천세계에 부처님이 두루 상주하고 계시는지에 대한 의미를 이제야 보다 실재적으로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또 다음의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글을 원용해 본다. “ 그 렇듯 붓다님들은 빛으로 일체처 일체시에 아니 계신 곳 없기 때문에 법신 개념에서 볼 때 천수천안이 문제가 아니며 가고 오고하는 그런 존재도 아닙니다. 무소종래이며 역무소거입니다. 삼천대천세계 우주 자체가 바로 붓다의 몸입니다.” 참으로 희유한 가르침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 구절 ‘ 삼천대천세계 우주 자체가 바로 붓다의 몸’이라는 내용은 붓다의 삼신설의 백미(白眉)요 압권(壓卷)이다. 이 말씀에는 불제자가 만약 붓다를 이룬다면 진실되고 완벽하게 우주와 계합된 우주대아(宇宙大我)를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영산불교사상연구소




법신불을 총섭하는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은 저 하늘에 떠 있는 태양과도 같이 언제
나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비추고 있습니다. '전 우주적인 몸뚱
이' 가 그의 본질적인 성품입니다. 대우주이시며 절대와 동일한 변
조 광명입니다.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은 석가모니부처님의 법
신체로서, 모든 붓다들의 청정법신을 총섭하고 있습니다.

저 유명한 당의 이통현 장자는 그의 화엄경론에서 비로
자나가 모든 부처님의 총명으로, 대지의 광명체라고 했습
니다. 대단한 안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허공 가운데 떠있는 태양은 구름이 끼거나 비가 오는 날에는 가
려져 안 보일 수도 있으나 부처님의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은 언제
나 온 법계를 두루 비추고 계십니다.

그렇듯 붓다님들은 빛으로 일체처 일체시에 아니 계신 곳 없기
때문에 법신개념에서 볼 때 천수천안이 문제가 아니며 가고 오고
하는 그런 존재도 아닙니다. 무소종래이며 역무소거입니다. 삼천
대천세계 우주 자체가 바로 붓다의 몸입니다.

불신보신은 백천만억의 화신을 내십니다. 문수보살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그 분은 무량겁 전에 불과를 이루신 이래 4번이나 사바세계에
다시 오셔서 붓다 되신, 지혜와 변재가 뛰어난 부처님이십니다. 최
초로 불과를 이루시어 불호를 '용종정지존왕' 이라 한 이래 두 번
째 붓다 이루시어 '대신', 세 번재 이루시어 '승선', 네 번째로 불
과를 증하셔서 '환희장마니보적불' 이라 했습니다. 최초로 불과를
증한 후무량겁전부터 석가모니부처님의 좌보처로 계십니다.

모든 붓다님들은 무아 속 절대계에 당신들의 법신불청정법신불을
두십니다. 대적정삼매에 계시면서 한걸음도 당처를 이탈하지 않
으시면서도 각기 자기 국토의 중생을 위해 원만보신으로 나투어
그들을 교화하십니다.

변화신이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방편으로 나투시는, 형
체를 띠고 나타난 몸을 가리킵니다.

문수보살의 변화신은 항상 회색 두루마기에 하얀 동정, 대삿갓
을 쓰셨으며 등에는 개나리봇짐, 손에는 지혜의 칼을 들고, 발에는
버선에 행건과 짚신을 신으신 게 특징입니다.

응화신이란 화신이라도고 하는 바 붓다가 사람 몸을 받아 날 때
가 있는데 그 사람 몸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법신, 화신 이야기는 이쯤에서 멈추고 중심이 되는 보신붓다의 초
월적 인격체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불신보신은 '지복의 몸' 이라 하겠습니다. 지혜와 북덕을 환
전구족하기에 미래제가 다하도록 진락을 누리기에 그런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청정법신 곧 '전우주적인 몸' 이 육체적인 형태를 띠
고 경험세계 속에 반영된 몸이 바로 불신입니다.

부처님붓다의 몸보신, 곧 불신은 거듭 말씀드리지만 엄청난 광도
를 지닌 무량광으로 이루어집니다. 무량광은 우주의 근원인 빛
이 아니라 그것의 본원_엑기스광이요, 부처님 광입니다.
중생이 불신을 본다면 즉시 가루가 되고 말 것입니다. 마치 100
볼트 전구에 수십억 볼트 고압이 들어와 산산이 부서지듯 말입니
다. 그래서 붓다들은 32응신화신으로 나투어 중생을 교화하시는
것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불 법신 _즉 '우주적인 몸'


사실은 부처님의 법신이야말로 진불입니다. 거래도 없고
머묾도 없습니다. 법계를 비추는 대지의 광명체로서 초월이요 평
등입니다. 초월적 인격적 실존이신 보신의 근본이 되어 이미 인
격이 아닙니다. 대우주아입니다.

전생에 이미 불과를 이룬 붓다가 이 사바세계에 사람 몸을 받아
오실 경우가 있습니다. 그 몸을 응화신이라 합니다. 붓다는 원력
수생하기 때문에 주로 왕궁으로 몸을 받아 나십니다.

이때에도 자기의 불신은 거기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한번 얻
은 불신은 그 생명이 영원합니다. 보신은 유시무종합니다.

붓다세계에 계신 불신이 보신입니다. 보신은 무아 속 절대계
에 자기의 법신을 둡니다. 그래서 법신은 보신과 화신의 근본체입
니다. 삼차원 세계에 사는 우리들의 의식구조로서는 이해하기가
다소 어려울 지도 모르겠습니다.

몇 마디 더 부연해서 해설해 보겠습니다.

아미타불은 지금 서방극락세계의 교주이시며,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한 보살들을 붓다 될 수 있도록 교화하고 계십니다. 아미타불
의 불신을 <보성론>의 개념으로 보면 보신이라는 것으로, 원만보
신입니다. 색상이 단엄한 32상 80종호를 구족 하시고 광휘가
현란합니다.

그런데 그 부처님은 10겁 전이 아니고 실로 무량겁 전에 불과를
이루신 오여래 부처님 가운데 한 분이십니다. 당신의 법신을
무아 속 절대계에 두고 계십니다.

관세음보살은 무량겁 전에 불과를 이루셨고 붓다 이름이 '정법
명왕' 입니다. 무아 속 절대계에 법신을 두시고 원만보신을 나투어
극락세계에서 아미타부처님의 좌보처로 계십니다.

관세음보살이 남섬부주 중생을 교화하시려 변화신으로 오실 때
는 자모의 모습이십니다. 머리엔 아미타불을 정대한 화관을
쓰시고, 목엔 영락을 두르시고 하얀 실크드레스 같은 옷에 가끔은
버들가지를 드신 백의관음의 모습이십니다. 남선부주에 와서 불
과를 이룬 붓다의 대법회에 가끔 현신하셔서 천수천안1천의 화신을
나투실 때도 종종 있으며 이때에는 백종오색광명을 놓아 축복해
주십니다. 32응신을 나투시어 불법과 인연 있는 불자들을 교화해
서방극락정토로 인도하시기도 합니다.

관세음보살의 좌우보처는 해상용왕과 남순동자가 아닙니다. 큰
부처님이시기에 불격을 갖추신 상수보살인 해수관음과 육관음이
좌우 보처가 됩니다. 해수관음은 여인상이지만, 육관음은 때에 따
라 여섯 몸으로 나투시는 남자상입니다.

불정심 관세음보살 모다라니 진언은 해수관음 진언이며, 육관음
진언은 "옴 마하 가로니가 사바하"로서 부사의한 힘이 있음을 전
합니다.

따라서 관세음보살은 지금 불가에서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일생보처 보살이 아니라 이미 붓다를 이른 부처님
으로 바로 잡습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의 법 세계


큰스님께서 모든 법신을 총섭하는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의 법 세계를
살펴보자. 큰스님께서는 비로자나불의 세계를 이렇게 피력하신다.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은 저 하늘에 떠 있는 태양과고 같이 언제나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비추고 있습니다. '전 우주적인 몸뚱이'가 그의
본질적인 성품입니다. 대우주이시며 절대와 동일한 변조 광명입니다.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은 석가모니부처님의 법신체로서 모든 붓다들의
청정법신을 총섭하고 있습니다."

아! 이 얼마나 거룩하고 지고한 법 세계인가~ 말로만 들어서 그렇지
실제로 수행을 통해서 신비 체험을 경험해 본 수행자라면 분명 이러한
법문을 듣는 것만으로 내면의 정화와 두뇌에 강렬한 법열을 느꼈
으리라.

어느 경전 어는 불교 수행 서적에 이러한 비로자나 법신에 대한 이
야기를 이토록 간명하고 극명하게 서술할 수 있을까! 여기서 더 나아
가 큰스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사자후하신다.

"불과를 이룬 붓다가 죽거나 입적할 때는 이 몸뚱이 육체는 버리고
그 안의 4 영체가 불계에 있는 자기 불신과 하나로 계합이 되고
다시 자기의 청정법신불과 합일합니다. 또 모든 붓다님들의 청정법신
불은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안으로 뭉칩니다. 이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은 석가모니부처님의 법신체입니다. 청정법신불은 원만보신의 빛보다
훨씬 광도가 높습니다."

컴퓨터 사이언스 세계에서는 '구조적'이란 용어를 자주 사용한
다. 이 구조적이라는 용어는 조화물의 구성과 얼개를 가리킨다.

일반 사상가나 철학가의 사유가 건전할 경우 매우 구조적인 사유를 하
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사유가 조화를 이루고 사유의 구성 요소들이 건전한 균형 관
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의식을 일종의 우주의 모사
라고 했을 때 의식이 조화, 즉 코스모스를 이룰 때 건전한 사
유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큰스님의 비로자나 법신불 세계는 일반 불제자들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법 세계로서 이러한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우리 불제자의 정신
세계가 매우 구조적이고 정합적으로 탈바꿈된다.

왜냐하면 큰스님의 법 세계는 허황된 가설이나 꾸며낸 허위가 아니
며 매우 정교하고 체계적인 사유에 근거를 두기 때문이다.
고대로부터 힌두의 베다학파에서는 인체는 육체를 포함하여 미묘한 코
샤(몸)와 거치른 코샤 등 세 개의 덮개로 구성되어 겹쳐 있다고 전한다.

데이비드 플로리가 지은 <<베다 입문>>에서는 음식과 호흡의 표피는
거친 육체의 몸, 스툴라 샤리라를 만들며, 호흡 마음 지
성의 표피는 미묘한 아스트럴 몸인 슈슈마 샤리라를 만
들며, 지성과 희열의 표피는 원인(코절)의 몸인 카라나 샤리라
를 만든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이 힌두 사상의 한계이다. 큰스님께서는 정확하게 4대 영체를
제시하였으며 그들이 인생이라는 배움과 체험을 통해서 얻은 정보
를 가지고 자신의 원만보신인 불신과 합일을 하고 그
것이 다시 자신의 법신과 합일하여 궁극적으로 비로자나 법신과
합일을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우주는 이 장엄한 비로자나불과 각 붓다의 법신불들
그리고 붓다의 보신불들이 공생하고 연동하여 우주의
평화와 안녕 그리고 자유와 질서를 관장하고 주관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얼마나 장엄한 세계이며 웅대한 사상체계가 아니겠는가!
또한 큰스님께서는 이와 같은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은 언제나 온 법
계를 두루 비추고 계신다고 설하신다.

그리고 "붓다님들은 빛으로 일체 처, 일체 시에 아니 계신 곳 없기
때문에 법신 개념에서 볼 때 천수천안이 문제가 아니며 가고 오고 하
는 그런 존재도 아닙니다. 무소종래이며 역무소거입니다. 삼천대천세계
우주 자체가 바로 붓다의 몸입니다. "라고 설하신다.

우리는 이러한 위대하신 부처님의 세계를 한 번 불 수 있다면 정말
로 큰스님 말씀대로 감읍하지 않을 수 없다 하겠다.




불신의 위신력

지금까지 불신의 존재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하지만 이제는 이
러한 불신이 얼마나 큰 위신력을 지니고 있으며 부처님의 가피가 얼마
나 소중한지 고찰해 보고자 한다.

큰스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사자후하신다. "부처님들은 모두 무량광으
로 이뤄진 몸을 지니셔서 무량수가 되므로, 삼세의 여래가 똑 같습니
다. 무량광으로 이루어진 불신에서 백천만 억의 화신이 현현하는 것입
니다." 사실, 이러한 말씀에 평술을 하는 것은 사족에 불과할 것
이다. 큰스님의 문장 그대로 완벽하기 때문이다.

큰스님께서는 말이 백천만 억 화신이지 그 이상의 화신을 낸다고 하
신다. 어찌 이를 수치로 계산할 수 있으랴! 그만큼 부처님은 위대하시
고 고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꼭 명심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일부 수행자들은 백천만억 화신을 천백억 화신으로 격하시키거
나 아예 이를 믿으려 하지 않는다.

오늘날의 과학 문명에서는 카오스와 프렉탈 이론을 제
창하여 우주가 동형 구조로 자신을 복제하고 자신의 정보를 자기 유사
성을 지닌 복제로 무한 상속시킨다고 한다. 이는 서양 과학기술에서도
이미 불교 수행세계를 관통하는 학설을 주창하고 있으며 이는 천백억
화신에 대한 타당성을 입증하여 준다는 것을 보여준다.

참고로, 부처님의 화신으로는 싯다르타 태자 외에도 구마라즙 대사,
아쇼카왕, 이차돈, 일본의 성덕태자 등으로 사바세계에 오셔서 불교의
증흥을 위해 희생 및 헌신하시고 가겼다고 큰심께서는 말씀하신다.

또한 부처님의 불신의 위신력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밝히셨다.
"무량광으로 이루어진 불신에서 법보화 삼신, 부처님의 8만
4천 신통, 백천 삼매, 지혜와 자비, 복덕이 우러나옵니다. 바로 무량광
이 지혜 자비 복덕 삼매 신통능력 자체인 불가사의한 빛덩이기 때문입
니다."

우리는 이로서 왜 부처님을 믿고 귀의 귀명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으리라. 우리 인간 존재는 우주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서양 철학자
파스칼이 말한 대로 생각하는 갈대에 자니지 않는다. 중생들에게 무슨
무량광이 있으며 법보화 삼신이 있으며 지혜, 자비, 복덕, 삼매, 신통
능력이 있는가 말이다.

우리는 자비로움으로 우리를 보살펴 주시는 보다 상위 존재로서의
부처님께 몸을 맡기고 부처님을 위해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우주적인 섭리에 대한 지견을 확립해 나가는 과
정이라 할 수 있다.

한편, 큰스님께서는 불과를 증해야 생사관이 확립된다고 다음
과 같이 밝히셨다. 즉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거기서 명이 다
하면 다시 어디로 가고, 또 그곳에서 업연이 다하면 어디로 가는지
중생이 각자 지은 업에 따라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수라, 천상을 어
떻게 전생하게 되며, 윤회 안의 세계와 삼계를 뛰어넘어 해탈을 이룬
성중(/아라한 혹은 조사), 보살, 붓다들은 또 어디로 가는지를 확실히 관하
고서 세운 견해, 즉 생사관은 붓다의 경계에 들지 않고서는 알 수도
없고, 정립할 수도 없다고 말이다.

실제로 오늘날의 선불교의 구습과 병폐에 찌들은 수행자들이
나 선사들은 제대로 생사관을 확립하고 있지 못하다. 왜냐하면 지
옥을 관하지도 못하고 그냥 안 보인다고 없다로 치부하는 실정이며 마
음이 붓다이며 붓다가 마음이라고 부처님의 위상을 실추 및 격하시켰
기 대문이다.

타종교 신자들도 자신의 교가 최고라고 자부하는 마당에 어찌 실제
로 최고의 종교인 불교에 귀의한 불제자들이 이토록 불교의 가르침을
일종의 심교로서 희석시켜서야 되겠는가 말이다.

부처님 세계에 대해서 큰스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밝히셨다. 즉 "붓
다는 빛으로 계십니다. 빛이시기에 삼세의 여래는 한 티끌, 한 생각이
모두 같습니다. 모든 붓다들이 무량광으로 이루어졌기에, 빛 그 자체이
시기에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붓다끼리는 서로 항상 상속되어 있고 그
래서 한 티끌 한 생각이 똑같습니다. 말 그대로 삼세여래 일체동입니
다."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이는 일체의 삼천대천세계를 아우르는 우주 속에 거하시는
모든 부처님들은 하나같이 생각이 같으시고 뜻이 같기 때문에 그 분들
의 총체적 힘이란 가히 어마어마하며 상상을 초월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또 큰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불과를 이룬 성자에게
는 좌우보처가 배정되고, 대아라한 급의 금강역사 50명이 항상 호신합
니다. 그리고 보살과를 이룬 이에겐 두 명의 금강역사가 따릅니다."라
고 말이다.

고대 힌두교나 이집트문명 그리고 유대교나 기독교에 이러한 가르침
과 위신력이 어디 있는가 말이다. 우리는 새삼 부처님의 세계를 다른
종교와 비교할 바가 아님을 알아야 할 것이다.
불교의 세계는 월등히 수승하고 탁월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다
만, 그동안 가리웠던 부처님 세계의 웅대한 법력을 오늘날 큰스님
께서 사자후하심으로써 복원했다고 할 수 있다. 큰스님 말씀대로 우리
불교는 힘이 있는 종교라는 것을 새삼 인식할 필요가 있다.


출처/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영산불교사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