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12일 토요일

상락아정의 본체계 아我의 세계를 말씀하시다


≪대반열반경≫은 줄여서 ≪열반경≫이라고도 합니다.  ≪열반경≫은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것을 사실 중심으로 서술한 소승의 ≪열반경≫과 철학적 . 종교적의미를 부여하여 기록한 대승의 ≪열반경≫이 있습니다.  대승의 ≪열반경≫은 중국 북양시대의 담무참 번역의 북본≪열반경≫과 유송시대의 혜엄스님등이 번역산 남본 ≪열반경≫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필요에 따라 두 본을 함께 인용토록 하겠습니다.  남본 ≪열반경≫은 동국역경원의 한글 팔만대장경본을, 북본 ≪열반경≫은 황용 선생의 번역본 ≪불설대반열반경≫을 인용하겠습니다.

대승의 ≪열반경≫은 불신상주사상과 열반 4덕으로 표현하고 있는 상락아정, 그리고 일체중생의 실유불성사상을 담고 있습니다. 이 중 본고의 무아사상과 관련이 있는 상락아정에 관한 내용을 중심으로 보도록 하겠습니다.

≪열반경≫을 관통하는 핵심사상은 상락아정의 세계인 본체계의 존재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열반경≫을 통해 무아가 아닌 진아의 존재를 분명하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북본 ≪열반경고귀덕왕보살품, 애탄품≫에 나와 있는 내용을 인용합니다. 비구들이여 마땅히 알라.  여래 세존도 대의왕으로 세상에 나와 외도사술을 없애기 위해 중생왕과 점점 가까이 하여 좋아하게 되면 문득 가르치기를, 외도사견을 버릴 것이니 나와 중생 . 

수명은 없는 것이며, 저 벌레 먹은 곳이 글씨처럼 나타나듯 한 것이라고 하니, 모든 외도들이 그 말을 받아들이고 일체중생도 여래의 말씀이라고 돌아가며 펼쳐 다들 무아라고 하였다

이것은 여래가 때를 알고 방편으로 중생을 제도하려는 고로 일체법에 그 성품이 나라고 할 것이 없다고 설했으나 세간에서 받아들이는 오아吾我가 아니다. 고로 일체법에 그 성품은 무아라고 한 것이며, 이때 다시 나란 것을 설하니 저 명의가 유약법을 밝힘과 같다.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니 나란 것은 이것이 실제있는 것이며, 상주불변법이며 마멸되지 않는 법이며, 시덕이며 자재며 좋은 유약이니라, 여래도 역시 그러하여 진실법을 설하니 일체 사부대중이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할 줄 안다.

이 말씀을 알기 쉽게 풀어서 정리해보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중생의 외도사견을 버리게 하는 방편으로 '나와 중생 ' 수명'은 없는 것이고, 허망한 것이며 일체 법의 성품이 나라고 할만한 것이 없는 '무아'라고 설했는데, 중생과 외도들이 이를 부처님 말씀이라하여 과도하게 받아들여본체계의 실체까지도 없는무아로 이해하였으나, 내가 다시실체로서의나를 설하니, 이것은  명의가 필요에 따라 유약을사람 살리는 데도 쓰고 죽이는 데도쓰는 것과 같은 이치이니라.

그러므로 상주 불변하는 나란 것은 실체 있는 것이니, 일체 사부 대중은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다시 남본 ≪열반경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20권≫을 인용합니다.

여래는 함이 있음이 아니니 왜냐하면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므로 함이 있음이 아니며, 함이 없음도 아니니 왜냐하면 오고 가고 앉고 누움이 있으며, 열반을 나타내므로 함이 없음도 아니니라.

남본 ≪열반경고귀덕왕보살품, 19권≫에는 또 끊어버려야 할 다섯 가지 의심으로

①부처님의 열반에 대한 의심

②부처님이 항상 계시는지 의심

③부처님께서 참으로 즐거운가 의심

④부처님께서 참으로 깨끗한가 의심

⑤부처님께서 참으로 내가 있는지 의심

을 들고 있습니다.  이것은 부처님께서 열반에 들어 상락아정을 누리고 계시다는 것을 의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동품23권에는 열반의 모양을 여덟 가지로 들고 있는데 상락아정과 진, 선성실, 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다시 북본≪열반경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을 인용합니다.

상락아정이 대열반이며, 삼승성자와 여래의 귀입처가 대열반이며......번뇌대해에 두려움 없이 널리 중생을 제도하며 삼악도도 두려움 없고 일체중생의 부모 되니 대열반이며, 대장부요, 불가사의하고 오직 불보살의 소견이니 대열반이니라.  대열반은 대아가 있으니 팔대자재를 갖추었다.

남본≪열반경사자후보살품≫을 인용합니다.

나는 모든 중생이 모두 내가 없다고 말하지 아니하였고, 모든 중생들에게 불성이 있다고 말하였으니, 불성이 어찌 내가 아니겠는가. 이런 뜻으로 나는 아주 없다고 말하지 않았건만, 모든 중생이 불성을 보지 못하므로 무상하고, 즐겁지 않고, 내가 없고, 깨끗하지 못한 것이니 이것을 아주 없다는 소견이라 하느니라.

북본 ≪열반경사자후보살품≫을 인용합니다.

중도는 불성이고 상락아정인데 일체 중생은 불성은 못보는 고로 무상  .  무락  .  무아  .  무정이니라.  비유하자면 빈궁한 자가 자기 집 보장을 몰랐다가 선지식의 지시로 무궁무진한 보장을 얻으면 상락아정인 것과 같다.

불성은 비인비과며 대열반 상락아정인 고로 그 뜻이 심히 깊다.  무지, 부견 불가사의 하니 불보살의 경계요, 이승이 미칠 바 아니니라. 여기서 우리 독자들이 다소 지루함을 느낄 정도로 경전의 많은 부분을 인용한 것은 ≪열반경≫에서 말하는 본체계의 상락아정의 세계를 통해 본체계에 존재하는 '나의 실체'를 확실하게 확인시켜 드리고 싶은 심정에서였습니다.

이렇게 ≪열반경≫에서는 본체계의 존재와 나의 실체가 있음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는데 어떻게 왜곡된 무아설에만 흘려 이 ≪열반경≫의 부처님 말씀을 외면하고 있는지 안타깝기만 합니다.  대승경전은 후대 학자들의 윤문이나 첨삭이 일부 있었다고 보지만 기본적으로 부처님의 소중한 말씀이 담긴 경전입니다.

우리 학자들이 조금만 더 치밀하게 초기의 무아설과 ≪열반경≫의 진아의 사상을 비교 검토하고 실상을 규명했더라면 왜곡된 무아설이 그렇게도 오랫동안 불교교설로 자리 잡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제 상락아정의 본체계 존재와 상주불면하는 나의 실체가 있음을 확고하게 믿어주시기 바랍니다.

본체계에서는 무아가 아닌 유아, 비아가 아닌 진아, 소아가 아닌 대아가 확실히 존재 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러면 영원하고, 즐겁고 진정한 나이고, 청정함의 본체계와 현상계의 모습을 대비시켜 보겠습니다. 부처님의 핵심 가르침인 4법인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먼저 제행무상의 무상은 상으로, 일체개고의 고는 락으로, 제법무아의 무아는 아로 그리고 열반적정은 그 자체가 본체계의 모습이므로 그대로 정이 됩니다.  정은 굳이 표현하자면 현상계의 번뇌오염의 부정에 대한 정의 개념일 것입니다.

본체계는 완전한 생사해탈을 이룬 세계를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정토보살과 붓다의 세계를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불보살의 실존 사상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육도윤회세계와 극락세계 등 해탈계, 불보살님을 내면의 마음 차원으로만 존재한다고 보는 것은 완전히 사설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지옥도 가고 축생도 되는 것이 미래의 현실입니다.

그리고 본체계에서 말하는 아는 나의 실체이고 본체이고, 진아인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것은 바로 우리 인간의 영혼체를 말합니다.  우리는 드디어 영혼체의 존재를 끌어낸 것입니다.  이제 영혼체에 대하여 보다 자세하게 알아보겠습니다.




진아眞我는 바로 영혼체
지옥 중생에서 붓다까지 가는 주인공



지금까지 우리 불교계에서는 영혼체의 존재를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 불교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실생활에서 제사도 지내고 불자들은 천도재도 흔하게 지냅니다.  무속인과 영 능력자들도 돌아가신 분의 영혼체를 보고 불러내어 대화하기도 합니다.  이 정도는 우리에게 크게 낯설지 않은일이 된지 오래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들의 정서나 생활 속에는 이미 영혼체의 존재가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영혼체를 인정하지 않는 분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어떻든 이렇게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영혼체가 불교계에서는 왜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을까요?

이것은아마도 불교의 무아사상, 그 동안 잘못 알려져 온 무아사상에 그 원인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우리 불교계는 무아사상을 영원불멸하는 어떤 실체의 개념을 절대로 인정할 수 없는 것으로 잘못 이해해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불교의 무아사상이 바로 영원불멸의 실체인 아트만을 인정하는 힌두교와의 차별이라고 2000여 년 동안이나 강변을 해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불교는 영혼체에 대해서도힌두교보다 훨씬 깊고 상세한 내용을 알고 있습니다.  얼마든지 질적 차별화가 가능합니다.

사실 부처님께서 경전을 통해 영혼체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하신 부분은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이유는 영혼체에 대한 내용이 붓다의 경지에 가서야 제대로 알 수 있는 매우 깊은 교설이라는 점과, 이런 류의 형이상학적 문제에 대해 부처님께서 무기로서 대하고 구체적으로 대답을 하지 않으셨던  사례를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를 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그 대신 부처님께서는 영혼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실질적인 사례를 통해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단적인 예가 부처님 제세시의 천도재입니다. <<목련경>>에는 부처님께서 목건련존자의 어머니를 천도시켜 준 내용이 나옵니다.

또한 앞에서 본 <<열반경>>의 상락아정도 본체계의 진아인 영혼체를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부처님께서는 영혼체에 해당하는 다양한 개념들 - 예를 들면 식신, 혼백, 신식, 건달바, 중음증유같은 용어를 <<증일아함경>><<잡아함경>> <<대보적경>><<약사여래본원경>> 등 많은 경전을 통해 사용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잡아함경발가리경>>에서는 죽은 박칼리 비구의 중음신을 식신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중음신은 바로 4번 영체입니다. 영산불교는 영원불멸하는 영혼체가 나의 실체 또는 본체 - 진아로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대내외에 공식적으로 천명합니다.  아울러 이 교설은 부처님의 정법임을 분명히 해둡니다.  이제 이 영혼체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인간의 실체인 영혼체- 네 개 영혼체의 비밀



인간의 실체를 확실히 알기 위해서는 인간의 생전과 사후에 대한 존재의 형태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육체는 우리 모두가 볼 수 있는 물질이기 때문에 그 존재에 관한한 의문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체의 존재에 관해서는 존재 여부에서부터 그정체에 이르기까지 예로부터 많은 논란이 있어왔습니다. 영혼체를 줄여서 영체라고도 부릅니다.



여기서는 현지사 자재 만현 큰스님께서 직접 확인하시고 법설해주신 내용을 중심으로 영혼체의 비밀스런 정체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대부분 경전에 없는 깊은 내용이 나온다는 것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우리 인간은 살아 있을 때 육체와 영혼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수화풍의 4대 요소로 이루어져 있고 육체가 집이라면, 영혼체는 그 집에 사는 주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혼체는 행위의 주체이고 윤회와 해탈의 주체인 영적 실체입니다.



영혼체는 인간 의식의 근거가 되는 영혼을 담는 그릇으로서, 영적인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영혼체는 끈끈이막 같은 것에 의해 4개로 겹쳐진 상태로 계단식의 다중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영혼체는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성자의 천안으로만 볼 수 있는 일종의 에너지 덩어리로서, 의식과 기억을 가진 생명체입니다. 소립자보다 더 작은 초미립자로 되어 있으며 입자와 파동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파동으로 본다면 영체는 파장이 극히 짧은, 곧 진동수가 극히 많은 전자파 에너지의 형태를 띤 생명체입니다.



인간의 4개의 영혼체를 밀도와 진동수, 즉 질적 수준에 따라 각각 1.2.3.4번으로 구분한다면 1번이 가장 차원이 높고, 4번이 가장 차원이 낮은 영체로 볼 수 있습니다. 4번에서 1번으로 갈수록 밀도가 높아지고 진도수가 많아집니다. 4번 영체는 우리 몸과 100% 닮았습니다. 1.2.3.번 영체는 모습이 약간씩 다르지만 근간은 닮은 형입니다.



1.2.3번 영체는 항상 뭉쳐서 다니면서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영체는 인간의 생명활동에서부터 감정. 욕망작용, 지적 기능, 예지적 기능, 영적 에너지 저장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능을 수행합니다. 이러한 기능은 네 영체가 어는 정도 공통적으로 갖고 있으면서 상호 영향을 미치지만 각 영체마다 주도적으로 수행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4번 영체에테르체는 육체의 복사체로서 육체와 나머지 세 영체를 접합하는 역할을 합니다. 육체와 함께 생명 유지와 생리적 기능의 원천으로 작용합니다. 부모의 수정시에는 이 4번 영체는 들어가지 못합니다.붓다가 사람 몸 받아 올 때는 4번 영체까지 들어감. 모태 속에서 생기고 성장합니다. 동물도 4번 영체는 들어가지 못하고 어미의 뱃속에서 생겨나서 자랍니다.



3번 영체아스트랄체는 감정과 욕망작용을 주로 담당합니다. 2번 영체맨탈체는 분석. 추리. 기억 등 지적 기능을 주로 담당합니다. 1번 영체코살체는 입자를 완전히 초월한 빛의 존재로서 이성적 기능, 예지적 기능을 주로담당합니다. 이 중에서 1번 영혼체가 인간의 실체, 즉 본체이고 4번 영혼체를 제외한 1.2.3번 영혼체는 영원히 사멸되지 않고 윤회의 주체가 됩니다.



사람이 죽으면 이 영혼체는 육체로부터 빠져나옵니다. 집이 완전히 파괴 되었으니 당연히 그 집에서 살 수가 없겠지요.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사람에게서 영혼체가 빠져나오는 것을 우리는 죽음이라고 합니다.





영체는 업과 윤회의 주체-
지옥 중생에서 붓다까지 가는 주인공


우리가 행한 선악의 행위는 업력으로 모두 영체에 기록됩니다. 동영상으로 촬영되어 보존된다고 보면 됩니다. 내가 아무리 그 누구도 모르게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했다고 하면 자신의 영체에는 그 일이 기록으로 보존되기 때문에 언젠가는 그것이 인연을 만나 밖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비밀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 말에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고 하는 말도 이런 의미입니다. 이것은 우주이법인 인연법의 인과응보적 성격입니다. 이런 불교의 가르침만 정확히 알고 있어도 우리는 죄를 지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업을 짓는 주체는 우리의 영체입니다. 영체는 항상 이 업보따리를 가지고 다닙니다.



유식학에서는 이 업이 아뢰야식에 저장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뢰야식은 어디까지나 식의 개념입니다. 그러므로 업을 가지고 있는 업식으로 봐야 합니다. 식은 어떤 경우에도 주체로서의 기능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 부분은 나중에 상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영체를 볼 수 있는 대성자는 어는 사람의 영체만 보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 됨됨이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무속인들이 귀신을 보는 그런 차원이 아님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죽어서 명부에 들어가면 열시왕은 바로 우리의 영체을 업경대에 비추어보고 심판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필자는이 영체에 기록된 우리의 모든 행위를 인생성적표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무량의 세월을 윤회전생하면서 살아온 인생의 총체적 성적표입니다. 우리말에 마음씨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의 인생성적표를 말합니다. 우리의 모든 업력이 담겨 있어 인연을 만나면 언제나 밖으로 표출될 수 있는 이 잠재적 힘을 우리는 마음/씨/이라고 합니다. 업의 종자/씨앗/가 심어져 있다는 의미입니다.



마음이 좋다고 하는 것은 전체적으로 착한 업력이 나쁜 업력에 비해 우세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보통 우리가 마음이라고 할 때에는 때가 많이 묻은 현재의 영체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마음을 본성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것은 때가 하나도 묻지 않은 청정무구한 영체를 말합니다.



하여튼 우리는 각자의 성적표에 따라, 죽어서 지옥도 가고 짐승의 몸을 받기도 하며 천상에 태어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죽어서 과거생의 성적표에따라 가게 되는 세계는 지옥.아귀.축생.인간.아수라.천상의 영석 세계인데, 윤회를 벗어나지 않는 한 우리는 영원히 이 여섯 세계를 돌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을 육도윤회라고 합니다.



모든 중생이 지은 업력이 합해진 공동업력이 동인이 되어 바로 여섯 윤회세게를 창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생들이 지금부터 하나도 죄를 짓지 않고 착한 일만하게 된다면 지옥이나 아귀, 축생의 3악도는 없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섯 세계를 살아가는 경로는 업에 따라 다양하게 정해집니다. 여섯 세계 중몸 몸과 영체가 함께 살아가는 경우는 인간과 축생이고 나머지 네 세계는 영체만으로 살아갑니다. 동물 중에는 영체가 들어가는 동물만 윤회를 합니다. 영체는 12띠류 동물용은 제외에 들어갑니다. 일반적으로 포유류에 들어간다고 보면 됩니다.



그 외에도 조류.어류.양서류의 일부에 들어갑니다. 곤충류에는 영체가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모기. 벼룩. 하루살이와 같이 영체가 들어가지 않는 미물은 자연생 자연사합니다.



사람이 죽어 지옥을 가고 축생도 되고 천상세계도 가는 것은 내 마음 차원의 문제가 결토 아닙니다. 닥쳐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아주 먼 나라의 이야기도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죽으면 닥쳐올 가까운 미래의 현실입니다.



우리의 삶의 지평선을 육도윤회세계와 해탈계로 넓히는 것이 인간 생사관의 핵심입니다. 이것이 바로 불교 생사관의 출발이고 끝입니다. 이 육도윤회의 고통을 벗어나 해탈을 하는 것이 바로 불교 수행의 목표입니다.



그 목표의 종착역은 최고의 해탈계인 무아속 절대계의 주인공 – 바로 붓다가 되는 것입니다. 종착역에 도달했으면 다시 되돌아와 무명에 빠져 허덕이고 있는 중생들의 손을 잡아 붓다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 보살행입니다. 세상을 구하는 것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사바세계에 도신 뜻입니다. 일대사 인연의 의미입니다. 부처님을 대신하여 이 사바세계에서 보살행을 하고 계시는 네 분의 붓다님이 바로 문수보살님. 보현보살님. 관세음보살님. 지장보살님입니다. 이 네 붓다님들은 우리 중생들을 위해 너무나 큰 보살행을 하고 계시므로 실제로 큰 붓다님들 이지만 우리가 보살님으로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불교는 이렇게 세상을 구하는 위대한 종교입니다. 그리고 그 정점에 우리 불세존께서 계십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업을 짓는 주체는 영체이고 과보를 받는 주체도 영체이며, 윤회를 하는 주체도 영체이고 해탈을 하는 주체도 영체이므로, 영체는 아래로는 지옥중생에서부터 위로는 붓다에 이르기까지 가야하는 머나먼 여정의 주인공이라는 것입니다.




영체가 지은 업의 소멸과 부처님의 우주적 구원력


우리가 지은 나쁜 업, 즉 죄업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크나큰 장애로 작용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하는 일마다 틀어지는 경우,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경우는 모두 이 업의 장애로 볼 수 있습니다.



좀 더 크게 보면 해탈을 가로막고 있는 장인 것입니다. 그래서 업을 흔히 업장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죄업을 지어 일단 영체에 반영이 되면 그 과보를 받지 않고는 그 업은 절대로 스스로 소멸되지 않습니다. 그 자체는 결코 선업과 비교해서 상쇄되지 않습니다. 오로지 과보에 의해서만 소멸됩니다.



내가 살인을 했다면 금생에 감옥살이를 하거나, 금생에 범죄가 발각되지 않고 죽게 되면 다음 생에는 지옥에 가서 엄청난 고통의 벌을 받게 됩니다. 그런 과보 속에서만 업장이 소멸됩니다. 그런데 그런 과보를 받지 않고 업장이 소멸되는 단 한 가지 예외가 있습니다. 그것은 부처님의 우주적 구원력입니다.



오로지 부처님만이 업장을 소멸시킬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지옥에 갈 죄보를 끊어주고 짐승이 될 업장을 소멸시켜줄 수가 잇습니다. 업장 소멸도 그럴만한 인연이 있거나 그만한 공이 있는 사람에게 그에 상응하는 범위 내에서 해줍니다. 말하자면 우주이법에 맞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천도재는 부처님께서 주관해야만 실질적인 천도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종교의 어떤 교주나 성자도 할 수 없는 능력입니다. 그만큼 부처님은 위대하신 분입니다. 창조주적 위신력을 가지고 계신 우주 법왕이십니다. 업장소멸이라는 부처님의 우주적 구원력 – 그것은 불교만이 실질적인 구원의 종교일 수밖에 없는 증거이기도 한 것입니다. 우리가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께 매달려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업장 소멸을 통해 구원하시는 과정을 잠깐 설명 드리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수행자의 영혼체를 끄집어 내어 끈끈이막으로 붙어있는 영혼체를 무량광 빛으로 씻고 닦아 네 영체를 분리시킵니다. 이 작업은 부처님 외에는 어떤 종교의 교주도 어느 누구도 못합니다.



그런 다음 몸과 네 개의 영혼체 정수리에 올라가셔서 억종무량광을 쏟아 붓습니다. 그러면 먹물 같은 업장의 찌꺼기가 내를 이루며 흘러나와 사라집니다. 이 정도로 영체를 정화시켜주면 지옥은 멸할 수 있습니다. 이런 수많은 과정을 거쳐 하늘을 가고 윤회를 벗어나고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되는 것입니다.



유대신비주의 카발라에서 애제자의 정수리에 빛을 쏟아 붓는 것과는 천지현격의 차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왜 부처님의 가피를 불러오는 타력수행 – 칭명 염불수행을 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구원력을 행사하시는 당연한 논리적 결과로 부처님께서는 생각하시고 판단하시는 인격적 존재로 살아계셔야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부처님은 유무와 시공을 초월한 절대계에 빛의 인격체로 영원히 살아계십니다.



이 인격적 실체가 바로 불신론에서 이야기하는 삼신불법신불. 보신불. 화신불 중 보신불입니다. 보신불은 부처님의 불신과 부처님의 영혼체와 우주 본성이 하나로 합쳐진 빛의 인격체인 것입니다. 영혼체의 존재를 인정하면 우리는 거룩하신 부처님의 실존을 믿게 됩니다. 이것이 독자 여러분에게 전해주고 싶은 또 하나의 메시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