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27일 월요일

쌈예사의 논쟁












쌈예사의 논쟁


유명한 법전! 그것이 무엇이냐? 여러분이 지금 아시는 달아이라마의 고국 티벳트, 티벳트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200년전, 티벳트 불교는 인도에서 들어 왔습니다. 네팔을 통해서요.
 그래서 큰 절을 짓고 왕, 대신 이하 많은 지도층에서 토속종교인 본교를 극복하고 불법을 널리 폈습니다. 때가 중국은 당나라지요. 중국에서 선불교가 들어와서 포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잘 아시죠 선불교. 선불교가 지금 우리 한국 불교입니다. 이 선불교는 한국에 일찍들어 왔지요.

이 선불교가 한국으로 들어 온것은 신라 도의국사 때니까 지금부터 약 1200년 전입니다. 역시 티벳트도 그랬습니다. 선불교의 큰 스님들이 티벳트에 가서 포교를 하고 많은 제자들을 확보 했습니다. ! 동시에 인도에서 대승불교가 티벳트에 들어 왔습니다.

그래서 인도 불교를 따르는 승려들, 재가단월들. 중국 불교인 선불교를 따르는 승려들, 단월들이 가끔 갈등하고, 또 시비하고 그러면서 점점 그 대립이 대단히 심각 해졌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티벳트 왕이 좌시 할 수가 없어서 국론이 분열되고 그 아무것도 모르는 국민들은 도대체 어느 종교를, 어느 종파의 수행을 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을 두고 갈팡질팡 하니까 나라의 총 지도자로서 이것을 가려줘야 하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으로부터 1200년 전에 중국 선종을 돈문(티벳트 말로는 뗀뭔이라고 해), 돈문이라는 것은 돈, 아시는 분은 아실거요. 돈오! 돈오라는 것은 다시말해서 일초직입여래지. 선종의 성격이 그렇습니다. 오를 이야기 합니다. 오늘 법문이 지금까지 16개월간,2년동안 점점 쉬운 것부터 깊이 들어갑니다. 스님법문이. 그런데 앞으로 2달을 쉬려고 하니까.

우리 현지사의 불교사상! 현지사의 불교는 현재 주목받고 있는 티벳트의 불교, 남방불교, 그리고 소위 선불교, 정토 염불종 불교와 대비해서 이야기를 해 주어야겠다 우리 신도들한테. 법문의 내용이 조금 어렵다 하더라도 진지하게 들어주시면, 지금 많은 불보살님들이 여러분을 응시하고 방광해 주시기 때문에 듣는 것 만으로도 큰 공덕을 짓게 되기 때문에, 녹음테이프를 사가지고가셔서 많이 들어보십시요.

 오늘 내가 선불교를 고의적으로 폄하하기 위해서 나는 이런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닙니다. 러분은 뭘 모르기 때문에, 불교 교의도 잘 모르고, 그런 분들이 많기 때문에, 또 그러나 이중에는 상당한 수준을 갖춘 그런 단월님도 계시기 때문에, 오늘 꼭 이 법문을 해 줘야겠다 싶어서 이 제목을 가지고 법문을 해 드리는 것입니다.

 중국 선종을 지지하는 뗀뭔과 인도 불교를 따르는 쩬뭔, 점문이라고 합니다. 선은 '돈오' , 인도는 '그래요. 이제 스님 법문을 들은 후에는 여러분이 많이 들어서 이제 이해가 잘 될 것입니다.

 , 돈오! 돈오문중에서도 '돈오돈수' 가 있고 '돈오점수' 가 있어. 성철스님은 '돈오돈수' 를 주장했고 보조나 다른 역대 많은 조사님들은 '돈오점수' 를 이야기 했어. 여기까지 아시고. , 들어보세요.
  
 인도불교(대승불교)를 따르는 '쩬뮌 !   '점문' , '점수' 를 주장하는 교가의 입장(대승불교 교가). 기는 선가 그래. 선종(선가라고도하고,선문이라고도하고,돈문이라고도 해). , 여기 교는 '교가' 라고도하, '교문' 이라고도 하고, '교학' 이라고도 해. 교가를 '점수' 라고도하고 '점문' 이라고도해.

 이의 극한 대립상황은 결국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체 '쌈예사의 논쟁' 이라는 역사적인 대사건으로 비약하게 된다. 그 당시에 쌈예사라고 하는 크나큰 절을 지었어요. 아주 잘 지었어요. 그 쌈예사에서 국왕임석하여 '돈문'   '점문' , 과연 어느 쪽이 옳으냐? 대 논쟁을 하도록 한 거요. 대논,대론을 하도록 한거요. 법전. 법의 전쟁에서 패하면 안 되지요. 3년에걸쳐 양측에서 벌엿던 격렬한 논쟁이 결국은 쌈예사의 법전이라는 양자의 대론을 통해서 종식 된다. 이건 상당히 의미 있는 법문입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

내가 선불교를 비방하고 고의로 폄훼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아니고, 객관적으로 여러분한테 알려드리는 것이오. 드디어 '아사리 까말라실라' 가 도착, 인도불교를 티벳트에 포교하고, 상당히 수행이 깊고, 교리에 밝은 인도스님 입니다. 까말라실라! 한문으로 번역하면 이름이 연화계입니다. 왕이 인도 큰스님(대승불교의 큰스님)하고 중국불교의 큰스님 마하연을 지금 앉히는 것이오.

그래가지고 대론하도록 하는 것이오. 까말라실라가 도착하자 중앙의 사자좌에는 국왕이 앉고, 오른쪽의사자좌에는 마하연 화상(중국선불교의 큰스님)이 오르고, 그 뒤를 따라서 비구니가 된 왕비, 도사장춘, 쑤양땅, 당까 등등 비구 등이 뗀뮌(돈문)의 많은 제자들이 열을 지어서 길게 앉았다. 왕비도 선불교에 빠졌어요.그때

그래서 왕비를 비롯해서 여러 비구들 돈문의 여러 비구제자들이 마하연 오른쪽 사자좌 뒤로 쭉 앉았다. 그말이오. 또 왼쪽의 사자좌에는 아사리 까말라실라가 자리를 잡고 점문의 제자들인 삘량과 바이로짜나와 에쉬왕뽀 등 많은 비구들이 따라 앉았다. 이렇게 해서 법전이벌어집니다.

 이에 국왕이, (두 아사리는, 큰 스님을 말하는거요) 두큰스님과 땐뮌과 돈문, 쩬뮌, 점문의 모든 승려들에게 흰 꽃다발을 하나씩 손에다 바치고 나서 말한다. 왕이내가 뵌교, 뵌교의 흑법을 고집하는 옹아리지방의 백성들을 위해 인도에서 친교사 보리삿다를 모셔온 뒤 적은수 백성이나마 불법을 믿게 하였고 신심 있는 몇몇은 출가를 하기도 하였다.

 (왕이 지금 하는 말이오) 또 사원도 여럿 건립해서 삼보의 터전을 마련한 뒤 모든 백
성들로 하여금 불법을 배우도록 하게 해서 소수 신심있는 자들이 출가하는 상황아래 마하연 화상이 여기에 와서 머물게 되어 (중국 선불교 마하연 화상이 포교차 들어와서 머물게 되자) 대부분의 반대승려들이 중국 화상의 가르침을 따라 배우게 되었다. (왕이 하는 말이오) 그 나머지는 친교사 보디삿다의 제자들인 까닭에 화상의 법을 따라 배우지 않게 되자 마침내 뗀민과 쩬민의 둘로 갈라지게 되었다.

양측의 견해가 같지 않아서 서로 다투는 것에 대하여 나의 명령을 달가워하지 않는 화상의 제자들 가운데서 양 샤민은 자신의 살을 끊어서 죽었고 마고화상은 자기의 머리에 불을 질러서 죽었고 옹옥림뽀쩨와 낙제마라는 자신의 성기를 돌로쳐서 죽었다. 나머지 무리들은 비수를 하나씩 품고서 쩬뮌들 전부를 죽이고 우리들도 역시 궁전 앞에서 죽겠다고 말함으로써 (선불교가 그렇게), 그 당시도 그렇지만 지금도 대단히 배타적이고 그럽니다

내가 그와 같이 하지 못하게 하고자 이와 같은 방안을 마련한 것이다. (법전이라고 하는 대론의 장을 마련했다 그거요.) 쩬민의 대표는 친교사 보디삿다이며 그 제자가 까말라실라인 바 그가 이제 여기 왔으므로, 마하연 화상과 둘이서 논쟁토록 하라. 논리가 수승한 쪽에게 논리가 부족한 측이 교만을 버리고 법답게 꽃다발을 바치도록하라. (이렇게 명령을 했습니다.)

 그 당시 왕의 명, 권력은 날아가는 새가 문제가 아니라, 삼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절대자였습니다. 왕인 그사람도 어쩔 수가 없었어. 이 대론을 통해서 승패를 가려가지고 승자를 밀어주려고 했어중국의 마하연 화상이 말하되 (선불교 대표자지요), 내가 이곳에 먼저 왔으므로 먼저 묻겠으니 답변하기 바란다. 까말라실라한테 말한 거요 (인도불교, 대승불교의 큰스님한테.)  그러니까 아사리 까말라실라가 말하되 그러면 먼저 그대의 견해를 변론토록 하라, 했단 말이오. 참 멋지지요이해하겠습니까?

 이제 마하연 화상이 말한 것, 이걸 강의를 해야되는데 시간은 적고 그래서 이걸 여러분한테 죽 읽어만 드립니다. 그리고 내가 조금씩 조금씩 해설해 드립니다. 마하연 화상은 누구냐 하면, 선불교를 대표하는 중국에서 온 선승이여. 선승이 먼저 이제 말한단 말이에요.  '중국의 마하연 화상' , 모든 유정들이 마음의 분별로 야기한 선과 불선에 의해서 선취와 악취등의 과보를 받으면서 삼계에 윤회하는 것이다.

어떤이가 일체를 저혀 사유하지 않고 전혀행하지 않는다면 그는 윤회에서 완전히 해탈하게 된다.그러므로 일체를 전혀 사유하지 않는 것이다. 보시 등의 10법해을 행하는 것은 범부로서 선근이 없는 우둔한 자들을 위해서 설해진 것이다. 미리 지혜를 닦아서 근기가 날카로운 자들에게는 흰 구름이든 검은 구름이든 그 둘 전부가 또한 태양을 가리는 것과 같이 선악의두 가지도 역시 장애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체를 전혀 사유하지 않고 전혀 분별하지 않고, 전혀 관찰하지 않는 것은 제법을 가히 보지 않고 곧바로 10지 보살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은 마하연 화상이 말한 내용인데, 이 내용이 저말이 무슨 말이냐? 하고 이해를 못하실 것 같아서 스님이 간간히 말해줍니다."일체를 사유하지 말고 분별하지도 말고 오직 화두일념으로 들어가라. 그러면 깨달아 부처를 이루리라" 이 말이오.

 이제 이것은 선종을 대표하는 마하연 스님의 일장법문이었어(주장이었어). 이에 대해서 인도 까말라실라의 답변이 나옵니다. 답변이 나오는데 너무 장황하게 쓰여있어서 이것도 대충 줄여서 이야기 합니다.

  '인도의 까말라실라무분별의 법계에 증입하는 데는 여실히 관할 수 있는 반야로써 가능하다. 여실히 관찰해 들어감으로써 무분별 제법의 무자성성의 공성을 깨닫는다. 억념과 작의를 행함 없이는 일체 지를 얻을 수 없다여실히 관찰하는 반야로써 전도된 망상을 영원히 여의게 되는 것이다.

일체의 분별망상을 제멸하고 모든 악견들을 영원히 여읨으로써, 원만한 지혜를 구족, 불지에 드는 것이다.

 좀 어려운 말인데, 답론을 장황하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국왕이 , 마하연도 할 말 다했고, 인도 불교를 대표하는 교학승 까말라실라도 반론을 제기했고, 그러니까 국왕이 그럽니다. 여기 온 사부대중들도 할 말이 있으면 논쟁에 참여해도 좋다. 그렇게 선언했어요. 그러니까 대승불교 교학,

 인도불교 교단의 수장인 삘량스님이 말하되, "만약 단번에 깨달아 부처 된다면, 들어가는 문이 옳다고 하면, 그것이 만약 단번에 깨달아서 부처될 수만 있다면, 그 말은 부처님이 말씀하신 6바라밀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다." 이렇게 말했어요

그 다음에  에쉬왕뽀라고 하는 큰 인도불교를 신봉하는 티베트의 큰 스님이 말하되,  "산을 오르는 것도 반드시 한 걸음씩 올라가야 하며, (이게 아주 중요해요) 보살이 초지를 얻는 것조차 지극히 어려운데, 하물며 일체지를 얻는 것은, 부처가되는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일체를 전혀 행함이없이 성불을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경전의 말씀에 크게 위배됩니다. 문사수의 세 지혜에 의해서 법의 뜻을 전도됨 없이 바르게 이해한 뒤, (나중에 문사수라든지 그런 것은 스님이 법문할 때 합니다), 10법행을 배우고닦아서 ((10법행도 나중에 말씀을 합니다), 가령 보시도 하고, 공양도 하고, 경전도 읽고 열 가지가 있어요. 기초 수행) 10법행이 초지에 들어가는 가행도 일위에 오르는 것, 그 다음 무과실 정성에 들어가고, 그 다음 청정한 반야의 지혜로써 나머지 구지들을 차례로 수습, 10바라밀경을 수확, 의식의 흐름을 정화하고 복혜의 두 자량을 온전히 구족한 뒤 비로소 성불하는 것이다.

그대들처럼 (선승을 가리키면서) 두 자량도 쌓지 않고, 복혜((복도 쌓지 않고 지혜도 쌓지 않고), 부처님은 복혜 양족존이라고 하지, 복도 쌓지 않고 지혜도 쌓지 않고 두 자량도 쌓지 않고) 의식의 흐름도 정화하지 않고, 세간사도 또한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일체지를 성취할 것이냐? 단지 공성 하나만은 자리에도 도움이 되지 못한 것이니 어떻게 이타의리를 완성 할 수 있는 것이냐."

 토굴을 파고, 토굴에서 스님들이 1030년 정진하는 선방승들이 있습니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그렇게 곰부한다고 해서 도가 안 터진다. 왜냐? 자리自利만을 생각해서 토굴 생활을 10년하고 30년 한다고 해서 도가 터질 줄 아느냐?

아무리 깊은 산 토굴에서 공부한다고 하더라도. 가끔 말합니다. 도를 이루려면 새의 양날개가 있지요. 양 날개가 있어야 날아가지. 지혜와 복덕을 갖추어야 해. 닦아야 되는 거요, 교가에서 쓰는 말이 맞는 거요, 그래서 여러분 보고 조상님을 천도해 주시오. 그래야 억겁을 내려오면서 지은 업장과 그리고 지은 은혜, 빚과 그리고 업을 짓는 원인이 되는 탐진치, 무지 요런 것의 뿌리를 뽑을 수가 있으니 그런 공덕을 짓고 또 선근공덕을 지으시오. 하는 말이 그 말이오. 앉아서 공부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닌 거요. 덕도 닦아가야 되는 거요. 그래서 부처님은 복덕과 지혜가 완전히 구족해야 됩니다.(복혜구족, 복혜양족존). 하나만 닦아가지고 안 되는 거야. 그리고 공부가 안 되는 이탐,,,,의 또 많이 있습니다.

 "공성 하나만은 '자리' 自利에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니 어떻게 '이타' 利他의 의리를 완수할 수 있겠소? 그와 같이 선불교는 경론의 전거도 없고, 부처님의 팔만사천대장경을 아무리 더듬어 봐도 선불교가 참선하는 구체적인 말씀이 없다.

경론에 전거도 없고, 방편과 반야가 함께하지 않는 법은 (아까 공덕과 지혜를 말하는 거요) 곧 부처를 훼손하고 기만하는 것이오. 보살이란 중생의 이익을 위햇 발심한 뒤 이타행을 근수해서 복덕의 자량을 쌓고 일체의 지식을 배워 통달하고 참회로써 마음을 닦아 지혜의 자량을 쌓는다.

그래서 성불한 다음에는 모든 중생들을 부처의 지위에 인도하는 여래의 사업을 윤회의 길이 다할 때까지 행하는 것이 경전의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먼저 일체의 경전을 읽어서 그 뜻을 통달하고, 고요한 처소에서 사미타와 위빠사나를 수행해야 되는 것이오" 하고 에쉬왕뽀가 마지막으로 또 인도불교 교학(점수문)이 옳다고 변론한 것입니다.

 중국 불교 선불교는 많은 헛점이 이렇게 있다. 이것은 아니다라고 한 말이오. 이에 뗀뭔이(선불교를 말합니다. 돈문) 변론의 의지를 상실한 채, 꽃다발을 던지고 패배를 인정하였다. 그 때 화상의 시자인 쪼마마라고 하는 중이 분을 못 이겨서 자기의 성기를 짓이겨서 그 자리에서 자살했다.

 이에 국왕이 선언 했습니다.

 "단박에 꺠쳐 들어간다고 주장하는 중국 선불교의 화상에의 참선법은 10법행을 훼멸하는 법이므로 행하지 말라." 

 이걸 자세히 이야기했으면 좋겠으나, ! 스님이 우리 현지사 불교도 그렇고 인도 대승불교의 가르침도 그렇습니다. ! 선방을 봅시다. 고등학교 나왔소? 대학교 나왔소? 물어보고 은사가 선방으로 데려갑니다. ! 고등학교 나오고 대학교 나와서 어느 정도 기초 학문은 했으나 불교 교학은 몰라. 불교 기초 교학도 없이 막바로 선방에다가 넣는 다고요. 선방에 가서 화두 받아가지고 면벽하고 앉았어. 화두가지고 공부한단 말이오.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기초, 예비 교육, 예비 수련이 있어야 되는 거요. 막바로 해서는 안 되는 거요.

 그래서 왕이 하는 말,   "마음이 우매해서 자타로 하여금 수심의 문을 닫고, 중단시킨다면 마음은 몽매해지고 법은 쇠락하게 되니 그와 같은 법은 화상, 그대만이 닦도록 하시오" . 마하연한테, 그랬어.   "그 밖의 화상의 제자들과 티베트 승려들은 이제부터 종교는 나가라쥬나의 법을 따르고 대승 불교의 창립, 개종, 석가모니 부처님 다음으로 위대한 대승불교의 큰 스님을 용수라고 합니다.

나가라쥬나, 그 나가라 쥬나가 모든 대승경론 체계의 골격을 체계적으로 잡은거요. 그래서 종교는 나가라 쥬나의 용수의 법을 따르고, 도행은 육바라밀과 10법행을 실천하고, 수행은 삼혜를 통해서 마음을 닦고 방편과 반야를 겸수해서,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닦도록 하라. (왕의 명령이오. 이제) 이후부터는 우리의 티베트 군신들과 백성들도 역시 불법을 닦는 것을 이와 같이 행하도록 하라. 대저 티벳트는 땅이 외지고 궁벽하며 사람의 심성은 우둔하고 성정이 거칠어서 이와 같은 법을 이해하기가 힘들고 어렵다. 그래서 왕이 인도의 저명한 대학자들을 초빙해 후원하고 뛰어난 역경사가 번역해서 확정한 불법을 닦도록 하라. 국왕이 후원하지 않고 역경사가 확정하지 않는 불법은 닦지 말라."

 이렇게 엄중히 명령을 내렸습니다. 선대의 국왕 5대에 걸쳐 확립하지 못한 붑법을 띳송뎃쩬(이 분이 보살의 화현입니다), 왕과 친교사 보디삿다와 에쉬왕뽀와 쌍싯따등 네사람이 삼보의 공양체를 확립하고 불법을 전 티베트인들에게 전파했다. 그래서 오늘날 티베트불교가 순수 대승불교입니다.

 지금 티베트 불교의 지도자들은 무엇이라고 하느냐?  8세기 당시(지금부터 1200년 전), 쌈예사의 논쟁을 통해서 만약에 인도 불교가 중국의 선불교한테 져버렸다면,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하다지지 않고 이기기를 얼마나 천만다행이냐? 저 선불교 무지와 계행, 외도나부랭이들. 그럽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선불교가 신라통일 이후부터 도의국사를 시발로 해서 중국에 들어가서 선사들한테 공부를 해서 법을 받아가지고 구산선문을 일으켜 그것이 선종 하나로 통합이 되었지만, 그것이 지금까지 우리 한국 불교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선불교가.

 자재만현이 말합니다. 이제 평가합니다.  흠결이 한 두 개만 있어도 그건 아닌 거요. 그런데 많다면 그건 생각해 볼 일입니다. 돈오를 주장하는 선불교, 이것을 하는 사람이 있어요. 체질에 따라서 선을 할 사람이 있어요. 여러분 해봐요 되나. 잘 안 돼. 왜 그러느냐?

화두에 의심이 붙어야 되고, 의심이 쌓여서 단이 이루어져야 되요 의단이라고 합니다. 내가 화두를 해서 잘 알지요. 의단이 쌓여야 돼, 의단이 더 커지고 더 커지고 의단이 커져가야 되는 거요. 그래야 탁 터져요. 그런데 의단이 터질려면 신심이 있어야 되고, 신심이 있을려면 불교의 어느 정도 기초 교학이 있어야 되는 거요. 그 다음에 기초 교학이 있어서 신심이 있다고 하더라도 분심이 없으면, 의심은 의단을 낳을 수가 없어.....

오늘은 티베트 불교가 소위 쌈예사의 논쟁을 거치면서 티베트 불교에서는 중국 불교의 전통이 완전히 사라지고 인도의 대승불교 전통이 자리잡게 되었는데, 정말순수합니다. 지금. 선불교는 범접을 못합니다. 갈 수가 없습니다. 아주 순수합니다. 쌈예사의 논쟁은 8세기,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200년 전의 티베트 대표적 큰 사찰인 쌈예사에서 띳송덴쩬 국왕 임석하에, 중국의 선승 마하연 스님과 인도의 까말라실라 스님이 벌인 논쟁
이다. 이걸 알아두시고. 한국 불교에는 도의국사가 있었지요. 도의 국사가 선불교를, 선을 중국에 가서 법을 받아왔습니다. 1200년 전됩니다. 지금부터 티베트 불교에는 까말라실라 라고 하는 스님이 티베트 불교의 틀을 잡아준 인도 스님입니다.

 티베트 불교에는 잊을 수 없는 대단한 은인입니다.선종 중심의 한국불교는 신라 말, 도의국사로부터 시작했습니다. 대승 불교 가운데 밀교적 특징을 가지고 있는 티베트 불교는 까말라 실라 스님으로부터 시작합니. 따라서 도의국사라든지, 티베트의 까말라 실라 스님 등, 이 두 스님은 한국 불교와 티베트 불교의 원류라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합니다.

 다행히도 우리 현지사 신도 분들은 참선도 하셨지만, 그 참선에 대한 회의를 갖고 다시 우리 칭명염불로 들어온 분들도 더 있는 걸로 압니다. 인도 불교와 중국선종의 역사적 충돌이 쌈예사 논쟁입니다. 성불의 방법상 견해를 놓고. 일대의 격론을 벌인 법론이었습니다.법전이었습니다. 이걸 우선 알아두십시오. 선종은 '지인심 견성성불' 을 주장합니다. 그 말은 무슨 말이냐. 마음이 부처니까 그저 마음 마음, 안으로 내관해가지고 마음을 보아라 그거요.

그래서 마음자리 하나 딱 깨쳐버리면 그러니까 텔레비젼도 보지 말고, 책도 보지말고, 신문도 보지 말라고 그럽니다. 선방에서는요. 이마음 딱 하나만 깨쳐버리면 심즉시불이오, 붓다요, 처요, 그렇게 주장하기 때문에 돈문 그럽니다.  '몰록그럽니다. , 돈오, 몰록, 깨쳐버렸다. 돈오 그런데 돈문에서는 돈오 돈수가 있고 돈오 점수가 있어. 돈오 돈수라는 말은,  '몰록' 깨쳐버리면 억겁의 습도 다 제거해버릴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그건 말이 안됩니다. 돈오 점수는 말이 됩니다. 돈오 점수는 깨쳤어도 다생겁으로 익혀 온 습이라든지, 기라든지, 탐진치는 닦고 닦아서 씻어내야 한다는 거요.

 그래서 돈문에는, 돈오돈수가 있고, 돈오 점수가 있다는 것. 그리고 돈점  지금 돈점 논쟁을 이야기했는데, 돈은 오, 깨달았다고 해서 거기가 부처가 아니라는 것, 아라한도 아니라는 것, 진짜로 수행해 가서 증오해야 아라한이 된다는 것, 아라한은 다시 사람 몸을 받아와 가지고 보살과를 이루지요. 보살도 사람 몸을 여러번 받아와서 바라밀 수행을 하고, 보현행원을 다 하면 붓다가 된다는 것. 요 정도 알아두시고 우리 현지사의 불교 사상과 수행법은 정말로 괄목할 만한, 평가할 만한, 역사가 평가할 만한 시간이 흐를수록 평가해주는 그러한 불교다. 벌써 <존평>이 나왔지요. 벌써 1년밖에 안되었는데 <존평>이 나왔지요. 의식 있는 훌륭한 학자들은 이거다 그러지요. 우리 선불교는 현지사 불교 사상을 많이 배워야 할 것입니다!



출처/법문집 2권 /2007.1.21.일.현지사 자재만현큰스님 춘천법문중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