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30일 금요일

지옥도 있고, 천상도, 극락도 있다. 업(業) 무서운 줄 알라.

[ 자재만현 큰스님 온라인 설법 ]

2022년 임인년 양력 227


지옥도 있고, 천상도, 극락도 있다.

() 무서운 줄 알라.

 

사랑하는 세계 불자 여러분!

영산불교 현지사 자재만현입니다.

나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고통 없이 행복하게 살기를,

그리고 다음생도 고통받지 않고 행복하게 살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입니다. 가능하다면 영원히 미래제가 다하도록 여러분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면서 오늘의 법문을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업 무서운 줄 알라!’는 제목을 가지고

법설 하고자 합니다.

 ()이란, 인도 불교에서 사용되는 카르마(karma)라는 어휘를 한역한 것으로 신··의로 짓는 의도적인 행위를 말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여러 경전상에서

중생들은 업이 바로 그들의 주인이고, 업의 상속자이고, 업에서 태어났고, 업이 그들의 권속이고, 업이 그들의 의지처이다.”라는 말씀을 강조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정업불면(定業不免)’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기가 지은 업의 과보는 고스란히 자신이 전부를 받는다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업은 자기의 운명이 되고 그 업은 우주를 창조할 수도 있는 힘을 갖추고 있어 철저히 선인낙과(善因樂果) 악인고과(惡人苦果)의 이치를 실현합니다.

 법구비유경(法句譬喩經)에 나와 있는 부처님 당시에 있었던 이야기를 하나 해 드리겠습니다.

어떤 거지가 성안에 들어가 걸식을 하던 중에 갓 새끼를 낳은 암소의 뿔에 받혀 죽었습니다. 사람을 죽인 암소의 주인은 겁을 먹고 그 소를 재빨리 다른 사람에게 팔아넘겼습니다. 그 소를 산 사람은 소를 끌고 집으로 가는 도중에 소에게 물을 먹이러 물가로 끌고 가다가 뒤에서 갑자기 소가 소뿔로 떠받아 버리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바로 죽고 말았습니다.

소를 샀던 사람의 아들은 화가 너무 나서 소를 당장 죽여 시장에 내다 팔았는데 어떤 시골 사람이 그 소의 머리를 사서 짊어지고 돌아오다가 집에서 십리(5)쯤 떨어진 곳에 있는 나무 밑에 앉아 잠시 쉬게 되었습니다. 소머리를 잠시 나뭇가지에 걸어 두었는데 갑자기 나뭇가지가 끊어지는 바람에 소머리의 뿔이 시골 사람 머리 위로 떨어져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이 하루 동안에 세 사람이 죽게 되자, 빔비사라(Bimbisara)왕은 그 말을 듣고 너무나 괴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신하들과 함께 부처님께서 계시는 처소로 찾아가 예배한 후 부처님께 아뢰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암소 한 마리가 세 사람을 죽였습니다. 무슨 변고로 이런 큰 사건이 벌어졌는지 부처님께 그 이유를 여쭙고 싶습니다.”

부처님께서 빔비사라왕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일에는 반드시 그 원인이 있기 마련인데, 이 소 때문에 세 사람이 죽은 사건은 지금 시작된 일이 아닙니다.”

지금은 그것이 이해가 되지 않아 보여도 그 과보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왕은 말했습니다.

그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부처님께서 이 사건과 관련된 인연담을 왕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옛날에 세 사람의 상인이 다른 나라로 장사를 하러 가는 길에 혼자 사는 어떤 노파의 집에 며칠 묵기를 원했습니다.

할머니, 저희 세 사람이 할머니 댁에서 며칠 묵기를 원하니 잘 부탁드립니다. 저희들이 떠날 때는 숙식비를 넉넉하게 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믿은 노파는 지극한 정성을 다해 잠자리와 먹을 것을 제공했습니다. 며칠 동안 편안히 지낸 세 상인은 노파가 잠시 집을 비운 틈을 타서 숙식비도 치르지 않고 도망치듯 떠나버렸습니다.

 밖에서 돌아온 노파는 그들이 말도 없이 떠난 것을 알고는 매우 화가 나서 수십 리 길을 뒤쫓아 가서 기어이 그들을 잡았습니다.

 이 날강도 같은 놈들아! 어서 숙식비를 내놓아라

할머니의 화가 난 말에 상인들은 오히려 더 화를 내며 큰소리로 말합니다.

뭐라고? 이 할망구야! 오늘 아침에 분명히 숙식비를 다 주었는데 여기까지 따라와서 숙식비를 또 달라고 하는 걸 보니 노망이 들어도 단단히 들었구먼.”

돈에 눈이 멀어, 혼자 사는 노파를 만만하게 본 상인들은 도리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주며 노파를 몰아세웠습니다. 할머니는 기가 차고 너무나 억울했지만 힘이 빠져 제대로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정성을 다해 먹여주고 재워준 은혜를 한순간에 져버리고, 그것도 모자라 시치미를 떼고 거짓말까지 함부로 하며 모욕감을 주는 그들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주체할 수 없는 배신감과 분노로 그들을 향해 이를 갈면서 할머니는 저주의 맹세를 퍼부었습니다.

내가 지금은 힘이 없어 너희들에게 이렇게 당하지만 죽어서 귀신이 되고 짐승이 되어서라도 이 억울한 원한을 꼭 갚을 것이다. 너희들을 만나 기어이 죽이고야 말 것이다.”

 그때 저주의 맹세를 한 노파가 바로 오늘의 저 암소요, 소뿔에 받혀 죽은 세 사람은 숙식비를 떼어먹고 달아난 그때의 상인들이다.”라고 부처님께서 인연담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할머니의 처절한 저주의 맹세대로 인과가 펼쳐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빔비사라왕과 그 관속(官屬)들은 모두 숙연해져서 부처님을 우러러 공경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업()을 지으면 그에 따른 과보를 반드시 받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지었다 하더라도 반드시 그 과보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닙니다. 결코 피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 과보는 반드시 오게 되어 있는데, 일찍 오느냐 늦게 오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마치 우리가 밭에다가 씨를 뿌리면 3개월 있으면 열매를 맺는 곡식이 있고, 5년 정도를 키워야 열매를 맺는 과일도 있듯이 업에 따른 과보는 고스란히 자기가 지은 대로 받습니다. 나쁜 업을 많이 짓게 되면 다음 생이 아닌 금생에 그 과보를 받게 될 수도 있습니다. 업에는 힘이 있습니다. 업의 힘을 업력(業力)이라 하는데 인연이 열리면 반드시 거기에 상응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그래서 업이 무서운 줄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세계 불자 여러분!

불교에서는 우리들 각자가 몸으로, 말로, 뜻으로 짓는 업이, 자기의 모든 것과 우주 삼라만상까지도 짓는다고 합니다. 이것을 업감연기설(業感緣起說)이라고 합니다.

어떤 창조주가 있어서 우주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고, 그 운명까지도 점지한 것이 아니고, 우리 각자 모두가 지은 업이 각자의 삶과 우주 역사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업이 모두를 만듭니다.

 빨리어 경전, <맛지마 니까야><업 분석의 짧은 경>에 나와 있는 부처님 말씀을 소개합니다.

한때 세존께서 사밧티에 있는 제따숲에 계셨는데 바라문 학생이었던 수바가 세존께 인사를 드리고 예의 바른 자세로 질문을 드렸습니다.

고타마 스승이시여,

왜 인간은 열등해 보이기도 하고, 우월해 보이기도 하는지,

그 원인과 조건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사람들은 단명하기도 하고, 장수하기도 하고,

병약하기도 하고, 건강하기도 하고,

추하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고,

영향력이 없기도 하고 있기도 하고,

가난하기도 하고, 부유하기도 하고,

지체가 낮게 태어나기도 하고 지체가 높게 태어나기도 하고,

우둔하기도 하고, 영리하기도 합니다.

부처님, 어떤 원인 어떤 연고로 말미암아

사람들에게는 열등함과 고상함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수바에게 말씀하시길

축생으로 태어나거나, 사람으로 태어나 수명이 짧은 것은 과거생에 살생을 많이 한 과보이며

병이 많은 사람은 과거생에 손이나 채찍과 칼로 다른 사람들을 고통스럽게하고 괴롭힌 과보이다.

못생기고 추한 외모는 말을 할 때 욕이나 저주를 퍼붓고 성내고 악의를 품고 화를 많이 낸 과보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공경을 받는 것은 과거생에 시기와 질투를 하지 않은 과보이며

오만하지 않아서 귀한 사람에게 자리를 제공하고, 길을 내어 드리고 공경 받아야 할 사람을 대우하고, 존경하며, 숭배한 그 사람은 높고 귀한 신분으로 태어난다.

가난하고 부유함은 과거생에 도를 닦는 수행자를 보고 음식이나 옷 등으로 널리 보시를 하지 않았던 인색함과 정성을 다해 보시를 한 과보이며

천함과 귀함은 교만함과 겸손의 과보이다.

지혜로움은 스승님을 얼마나 정성껏 잘 모셨는가에 따른 과보이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수바는 감동을 받고 세존께 말씀드렸습니다.

고타마 스승님이시여! 훌륭하십니다.

스승님께서는 마치 뒤집어진 것을 바로 세우듯이,

길 잃은 사람에게 길을 보여주듯이,

눈을 가진 사람이 형상을 보도록 어둠 속에서 등불을 들어 보이듯이,

많은 방법으로 진리를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오늘 고타마 스승님과 담마(, )와 비구들의 승가에 귀의합니다. 저는 종신토록 부처님께 귀의하겠나이다.”

부처님께서 업의 과보에 대해 상세하게 말씀하시자 수바는 그날 바로 계를 받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부처님의 말씀처럼 모든 것은 인연으로 되는 겁니다. 인과의 법칙입니다. 콩을 심으면 반드시 콩이 나오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나오는 겁니다.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고 음성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운명이 다른 이유는 모두가 본인이 각자 지은 업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 많은 종교 중에서 불교만이 철저히 우리 중생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해서 중생이 윤회하는 여섯 세계와 우주 만물이 생겨났고, 각자가 자신이 지은 업으로 인해 그 사람의 얼굴, 체격, 운명 그리고 환경까지도 만들어 진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입니다.

 중생은 곧 업이 있기 때문에 업력에 이끌려 육도(六道)를 반복해서 윤회하며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업의 힘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우선은 악업을 짓지 않아야 합니다.

불교에서 악()이란, 우주 이법에 어긋난다는 뜻으로 불선(不善)이라고도 합니다.

악업이란 인과법(因果法)에 따라 반드시 현세나, 내세에 자기와 남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는 악한 행위들을 말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가 짓지 말아야 할 악업으로 열 가지 악업을 강조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꼭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십악업은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열 가지 죄업으로 먼저

몸으로 짓는 살생, 도둑질, 사음 그리고 입으로 짓는 거짓말, 이간질하는 말, 속이는 말, 악한 말을 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짓는 탐욕, 성냄, 사견 즉 인과법을 부정하는 것, 이 모두를 합하여 열 가지 악업이라고 합니다.

십악업의 과보는 앞에 소개해드렸던 <업 분석의 짧은 경>에도 구체적으로 잘 설명되어 있고 <삼세인과경>이나 다른 경전에서도 매우 많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특히 살생의 과보가 무서운데, 예들 든다면 사람으로 태어나 모든 조건이 좋은데 수명이 짧아 일찍 죽게 되는 것은 전생에 많은 살생을 한 과보이며, 평생을 괴롭히는 간질병은 고의로 불을 질러 수많은 생명을 죽게 한 과보입니다.

그 외에도 나쁜 악업을 많이 쌓게 되면 이번 생에 바로 암이나 중풍 등의 불치병에 걸리기도 하고, 아주 무겁게 범하면 죽어서 지옥으로 갑니다.

 그리고 <능가경(楞伽經)> <오무간품(五無間品)>에서 오역죄를 소개하고 있는데

오역죄(五逆罪)

1. 어머니를 죽이고,

2. 아버지를 죽이고,

3. 아라한 성자를 죽이고,

4. 화합 승단을 파괴하고,

5. 해로운 마음을 품고 부처님 몸에 피를 내게 한 죄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죄는 인간이 짓는 악업 중에서 가장 무서운 죄로서 죽으면 잠시도 쉼이 없이 계속해서 무서운 고통을 받는다는 무간지옥(無間地獄)을 가는 것입니다.

이런 폐륜을 저지르면 사람으로 태어나도 온갖 고통 속에서 비참하게 살다가 죽어서는 무간지옥을 가서 오랫동안 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또 어떤 사람이 금생에 문둥병이나 정신병을 앓게 되는 원인은 전생 또는 과거생에 부모님과 스승님을 죽인 과보입니다. 이 사람은 이런 업병(業病)을 앓으면서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한 생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고 여러 생을 이렇게 살아가게 됩니다.

 끝으로 정말 무서운 죄는 정법을 비방하고 훼손한 죄(正法毁損罪)입니다.

정법비방훼손죄란

1.부처님을 모독 능멸함,

2.경전을 능멸함,

3.정법을 고사(枯死), 파멸 시키려 하는 죄입니다.

 부처님은 없다 하고 지옥 극락 없다고 하면서 부처님과 그 법을 모독하고 능멸하며 중생을 삿된 길로 인도하는 망어죄를 지으면,

사람으로 태어나더라도 벙어리, 맹인, 귀머거리의 삼중고를 받게 됩니다. 나아가 사찰의 전각을 파괴하고 불을 지르며, 불상의 목을 치는 등 불상과 탱화를 훼손하면 다음생에 뇌성마비나 식물인간의 과보를 받게 됩니다.

이렇게 정법을 비방훼손한 죄인이 죽으면 무간지옥에 떨어졌다가 겁이 다하면 또 다시 다른 무간지옥으로 옮겨져 벌을 받는데 부처님께서도 그 죄인이 나올 시점을 알지 못한다고 하였으니, 정법을 비방하고 훼손한 죄가 이렇게 무거운 죄인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라도 악업을 짓지 말아야 하고 선행을 하는데 최선을 다하야 합니다.

 먼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계율 중 우리 중생들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계율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를 불교에서는 오계라고 합니다.

첫째, 함부로 산 목숨을 죽이지 않는 것

둘째, 도둑질하지 않는 것

셋째, 거짓말하지 않는 것

넷째, 사음하지 않는 것

다섯째는 술을 취할 정도로 마시지 않는 것

여기서 네 번째까지의 계율은 행위 자체가 악업이기 때문에 절대로 하지 않아야 합니다.

다섯 번째 계율인 술을 마시는 것은 악업이 아니지만 과도하게 마시면 반드시 앞의 네 가지 악행을 범할 수 있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술을 자제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착한 일을 많이 하면 당연히 좋은 과보가 오게 됩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열 가지의 착한 일을 하면 좋은 과보를 받는 일을 권선하고 이를 십선법(十善法)이라고 부릅니다.

십선법은

살아있는 생명을 살려주는 것

널리 보시를 행하는 것,

음행함 없이 몸을 청정히 지키는 것,

진실된 말을 하는 것

이간질하는 말이 아닌 화합하도록 하는 말을 하는 것

욕설을 하지 않고 부드러운 말을 하는 것

의로운 말로써 사람들을 이익 되게 하는 것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

성내지 않고 자비와 인욕의 선법을 행하는 것

인과법을 잘 아는 정견을 가지고 지혜롭게 사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를 오탁악세(五濁惡世), 매우 각박한 세상이라고 말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착한 행을 몸소 실천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일본에서 자신의 몸을 던져 타인의 목숨을 구하고자 했던 의인(義人) 이수현 청년의 이야기는 많은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2001년 일본에 유학 중이었던 한국인 청년 이수현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하철을 기다리는 중, 선로로 술에 취한 어떤 남자가 떨어지자 이 남자를 구하기 위해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선로로 뛰어내렸습니다. 불행히도 술에 취한 남자와 그 남자를 함께 구하려 했던 일본인과 이수현 청년은 미처 지하철을 피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기주의가 팽배했던 당시의 일본 사회에서 일본인이 아닌 그것도 한국인이 아무 연고도 없는 일본인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소중한 목숨을 희생했다는 사실에 일본 국민들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선법을 실천한 착한 사람들의 생생한 실화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에 회자되어 모든 사람들에게 오랜 시간이 지나도 깊은 감동을 줍니다. 이런 사람들은 이 우주에서 착한 일을 직접 실천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큰 선행은 아니더라도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선행들도 찾아보면 많습니다. 이러한 선행을 많이 행한 사람은 죽은 뒤에도 오래도록 복락을 누리는 높은 하늘세계에 나게 됩니다. 사람으로 태어나도 많은 면에서 복을 갖추고 옵니다. 뭘 해도 잘 되고 바라는 대로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풀립니다. 인과응보의 이치인 것입니다.

 지금 인류는 역사상 가장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는 환경파괴와 이상기후, 전 지구적인 각종 재난과 재해, 물질만능주의로 인한 생명의 경시, 인간성의 파괴, 도덕적 타락 등 오탁악세의 징후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런 위기적 상황에서 위에서 강조했던 다섯가지 계율과 십선행의 소중함을 믿고 지금 이 순간부터 실천하는 여러분들이 되신다면 여러분들의 앞날은 보다 더 밝고 행복한 삶이 될 것입니다. 더불어 맞이하게 될 미래생 또한 희망찰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지은 모든 업은 우주의 법칙에 따라 계산되는 산계소작(算計所作)’입니다. 컴퓨터의 정확도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계산되어 과보를 받게 됩니다.

다겁생을 살아오면서 우리가 지은 수미산만한 업은 자신의 힘으로는 결코 소멸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지중한 업들을 깨끗이 소멸 받을 수 있는 길이 여기에 있습니다.

부처님이 계심을 믿고 부처님 가르침대로 실천하는 삶을 산다면, 부처님의 절대적인 위신력으로 우리의 그 지중한 죄업장을 소멸 받을 수 있습니다.

그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오계를 지키고 십선을 행하는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시 한 편을 소개하면서 오늘의 법설을 마칠까 합니다.

20세기 세계적인 실존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

교수 정년 마지막 강의에서 읊은 시입니다.

 나는 왔누나, 온 곳을 모르면서,

나는 있누나, 누군지도 모르면서.

나는 가누나,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나는 죽으리라, 언제 죽을지도 모르면서!’

 인생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답을 얻지 못했다는,

사람은 어디서부터 왔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살다 간다는

최고 지성인의 진실한 고백의 시입니다.

 만약 이 노철학자가 업의 무서움을 알고 불교의 진면목을 제대로 알았더라면 그의 생의 마지막 노래가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불교를 모른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삶과 죽음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게 될 것입니다. 오직 자신의 업력에 이끌려 영원토록 육도를 윤회하는 불행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전 세계 사랑하는 불자 여러분!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이제부터라도 불교의 깊은 진리를 만나서 이번생도 잘 살고 다음생도 잘 살 수 있도록 준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영산불교 현지사 자재만현이었습니다.



2022년 10월 2일 일요일

22년10월2일 현지사 제주제2본산 자재만현 큰스님 설법

  자재만현 큰스님 제주제2본산 설법

2022102


오늘 여러분들에게 설법할 주제는

영겁(永劫)을 사는 해탈(解脫) 열반의 세계(극락정토)에 가 날 수 있다.

우리가 부처님을 찾아야 하는 이유 중 하나

 

사랑하는 현지사 전국 신도 여러분!
본래 인간이 밝은 자성(自性)을 등지고, 어리석게도 이 거짓 몸뚱이를 자기로 알고 자기 이익 중심으로 살다 보니, 윤회의 고통을 부르는 업만 짓고 살아왔습니다. 우리 중생은 무시이래로 6도윤회세계를 지어, 무량무수 겁()을 생사윤회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윤회생사에서 벗어나는 길은?,

나아가 해탈 열반에 드는 보살이 되는 길은 없을까요?

 

비행기를 전세 내어 제주도까지 자재만현의 설법을 들으시고자 이 법회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에게, 나는 천배·만배의 값진 감로의 법문으로 선물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진리의 법설입니다.

 

1. 사람이 죽으면 끝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업을 짓고 살기 때문에, 죽은 뒤에는 춥고 배고프고 병든 몸으로 죽지 못해 사는 중음 귀신이 되기도 하고, 소름 끼치는 형벌만을 받는 지옥이나, 마시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해서 지옥에 버금가는 고통의 아귀계에 떨어지거나, 축생계의 짐승으로 몸을 받아 태어나 살기도 한답니다. 이와 반면에 죄짓지 않고 착하게 좋은 일 많이 하고 살았으면, 인간으로 다시 환생하여 살기도 하고, 극소수 인간은 하늘 천상에 태어나기도 합니다. 중생은 각자 짓는 업이 있어서 이와 같이 몸을 받아 태어나기를 반복합니다. 6도 윤회생사를 영원히 다람쥐가 쳇바퀴 돌 듯 사는 것이 중생이 사는 삶입니다.

 

그런데 생사에서 벗어나는 길이 있습니다. 해탈의 세계가 있습니다.

해탈 성자 아라한이 되는 길도 있고, 영겁토록 극락세계에 왕생해서 살 수 있는 보살이 되는 길도 있습니다. 오늘은 일체중생 가운데 가장 높은 사람, 즉 보살이 되어서 해탈 열반의 세계, 곧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는 길을 중심으로 법문하겠습니다.

이러한 꿈을 이루려면 부처님이 어떤 분이신지? 얼마나 위대하신지?를 우선 알아야 합니다. 법화경, 화엄경을 봅시다.

중생을 윤회생사로부터, 아니 악도(惡道)에서 건질 비장의 열쇠(key)를 부처님만이 갖고 계십니다. 6도 윤회를 벗어나서 3계를 초탈한 상락아정의 정토극락세계에 날 수 있는 비밀의 열쇠(key)를 석가모니부처님만이 지니고 계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부처님을 찾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또한 우주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붓다까지 낼 수 있는 황금의 열쇠(key)를 부처님만이 쥐고 계십니다.

인간을 비롯한 우주 만물은 창조주가 있어, 만들어 낸 것이 결코 아니고, 우주 자연의 법칙, 이법 곧 연기법(緣起法)이 있어 생겨난 것입니다. 연기법이 있어 우주가 생성되고, 운행하며 파멸합니다. 중생들의 공업(共業) 때문에 다시 우주는 성주괴공을 반복합니다. 영원히!

더 자세히 말합니다.

현상계의 우주 만물은 그 안에 사는 수많은 중생(衆生)들이 전날에 지었던 공업(共業)의 업력이, 우주의 이법(理法)인 연기법을 따라서 나고 없어짐을 영원히 반복하는 것입니다.

무시무종(無始無終)입니다. 연기법의 진리는 현상계에 속하는 법계(法界)에 항상 상주 작동(常住作動) 합니다.

현상계의 모든 법(), 현상이나 관념 즉 오온(五蘊), 쉽게 말하자면 형상(形相)을 띤 물질적인 것이나 정신적인 온갖 생각들이, 어떠 어떠한 것을 인연으로 해서, 유무(有無)와 생멸(生滅)이 있게 된다는 것을 연기(緣起)라 합니다. 잡아함경에 연기법이란 차유고피유(此有故彼有) 차기고피기(此起故彼起)니라.’ 이것이 있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겨 저것이 생긴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부모를 인연으로, 부모가 있었기에 자식이 생긴다. 산소(01) 한 분자가 있어서 수소(H2O) 두 분자를 만나면 물이 생긴다. 세종대왕이 계셨기에 한글이 있을 수 있었다.’ 이것을 어려운 말로 상의성(相依性) 또는 상의성의 법칙이라 하고 연기(緣起)의 정의라고 하겠습니다.

화엄교학의 무진연기(법계연기)의 일즉다, 다즉일(一卽多多卽一) 일중다, 다중일(一中多多中一) 입니다. , ‘하나가 곧 전체인 것이요, 전체가 곧 하나요, 하나 속에 전체가 들어있고, 전체 속에 하나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 뜻을 쉽게 풀이해서 말하자면, ‘세상 모든 것은 서로 관련성을 갖고 있다. 서로 의지해야 살아간다. 혼자서는 존재할 수도 없다. 상대 역시 나를 비롯 모두가 필요하다. 모두는 한 몸뚱이다. 마치 인드라(INDRA) 망의 구슬들이 서로 비추듯.’

우주의 진리가 이러할진대, 우리는 이웃을, 남을 자비와 사랑으로 대해야 합니다. 기분 따라서 욕하고 모함·폭력을 쓰는 것은 이치를 등지는 행위입니다. 악이요, 죄가 됩니다.

 

그러므로 연기법, 연기에는 또한 인과율이 있습니다. 인과의 법칙이 있습니다. 인과법은 진리라는 말입니다.

자유의지를 지닌 인간에게 선인선과 악인악과(善因善果 惡因惡果)의 우주 법칙이 적용됩니다.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일, 죄될 짓을 하면 벌을 받습니다. 이것은 인과의 철칙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짓지 말고 착하게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사후세계가 있어야 하고, 지옥·아귀·축생 세계가 있어야 하고, 또 사실 있는 이유입니다.

연기법에는 또 인연 화합, 인연법이 있습니다. 인연법은 진리라는 말입니다.

모든 것은 인연으로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자식 인연 없으면 아무리 첩을 많이 두어도 제2세가 없는 것입니다. 나쁜 인연·악연을 지으면 안 됩니다. 언젠가는 만나 그로 인해서 큰 고통·불행을 당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 우주 만물을 지배하는 자연 법칙, 곧 연기법을 우주 최초로 깨달으신 어른이 바로 부처님이십니다. 그래서 불교를 우주적 진리의 종교라 하는 것입니다.

 

염불이 아닌 법으로 깨쳐서 견성하여 설사 아라한이 됐다 하더라도 아직은 우주의 깊은 연기법의 진리를 모릅니다. 산에 들어가 평생 도()를 닦아 크게 도통을 했다면, 거기가 아라한의 경지라고 말해도 좋습니다.

그 도인을 찾아가 진리란 무엇인지요? 곧 무엇이 도()이며, 우리가 마땅히 어떤 가르침을 받들어 살아야 됩니까? 하는, 어떻게 우린 살아야 되지요, 알고 싶어서 묻는 질문에, 선을 해서 깨달은 견성 도인은, !을 하거나, 방망이로 책상을 내리치고는, ··· 알았는가?’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겨우 우주의 본성자리 · 마음자리를 보았을 뿐입니다.

아무것도 없이 텅빈 자성광을 보았을 뿐입니다. 이 자리에선 지옥도 없고 극락세계도 안 보이고 부처도 모릅니다.

우주의 진리인 연기법을 깊이 알 수 없는 수준으로서는 부처님 같은 시원한 진리의 답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더구나 영통을 얻어 약간의 신통을 얻은 도인들은 우주 본성, () 자리를 깨친 아라한보다 못한 것입니다.

자력 수행으로는 윤회에서 벗어나 해탈한 아라한이 되기도 어렵습니다. 더구나 정토에 가 날 수 있는 보살지에 오른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공성 자리를 진정으로 깨쳐서 보림을 잘해 아라한 성자가 됐다면, 오온이 공() 함을 깨달아 해탈의 즐거움 속에 머물러 있을 것이 아니라, 아직은 사실상 선정의 힘, 지혜의 힘이 부족하지만, 이제는 악도에 떨어질 저 불쌍한 중생을 한 사람이라도 건지기 위한, 보살행의 실천을 위해 육진 세속으로 뛰어 들어와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부처님의 뜻이요, 대승의 가르침입니다. 물론 이것이 연기법에 맞는 진리입니다. 진정 부처님 제자라면 대승을 수행하는 초발심 보살이라 하더라도 지금부터는 신··3업을 청정히 하고, 부처님을 찾아 지극정성 염불하고, 보살행을 실천하되 없는 행()으로 중생 구제를 위한 대승의 삶이 바른 정법입니다. 대승이란, 일체의 모든 지혜를 얻어 모든 중생을 구제하려함을 말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부처님 제자다운 삶인 것입니다.

 

2. 부처님은 우주의 진리, 이법인 연기법과 한 몸을 이루셔서 법신(法身, 우주 진리의 몸)을 얻게 되셨습니다. 바로 청정법신 비로자나부처님이 되셨습니다.

연기법은 물론 비인격이지만 부처님께서 한량없고, 그지없는 백천만억 나유타겁 이전에 우주법계 최초로, 부사의한 무량광 빛을 얻으셔서 무상정각을 이루신 것은, 연기법이 부처님으로 인격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곧 우주적 진리를 깨치면서, 그 진리와 한 몸이 되신 것입니다. 붓다의 교단만이 알고 있는 부사의한 초천문학적인 무량광 빛은 우주 본체가 되는 Ayin-sof-Aur 무한광(無限光), 소위 자성광 진리의 빛을 흡수할 수 있는 부사의한 천만억 나유타 빛줄기입니다. 사익범천소문경에서 설하고 있는 이 빛은 우주를 한없이 압축해서 하나의 먼지 입자로 만들 수만 있다면 얻을 수 있는, 중생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그런 불가사의한 빛입니다. 수많은 삼천대천세계와 적멸계, 그리고 절대계까지 창조할 수 있는 대우주의 핵이 되는 빛인 것입니다. 이 광명 빛을 당신 것으로 하기에 성공하셨다는 말입니다. 바야흐로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부처님이 되신 겁니다. 이 진실이야말로 부처님 아니면 해낼 수 없는 우주적인 대사건으로 기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무량무수의 삼천대천세계 구석구석, 안팎을 비추지 아니한 곳 없이 항상 방광할 수 있었습니다. 삼계에 두루 충만한 빛의 몸이 되셔서, 대우주를 포용·포섭, 일합상의 몸을 이룰 수 있게 되셨습니다.

우주의 대법왕이요, 삼계의 지존이십니다. 미래제가 다 해도 이런 위대한 우주적 인물은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 진리)이 그러한 연고입니다. 산봉우리는 으레 하나이듯.

 

3. 우주의 진리, 연기법을 깨달으셔서, 중생은 어리석어 탐진으로 업을 지어 한없이 윤회의 생사고를 받고 있는 것과 그 고()가 오는 원인을 아셔서, 우리가 공부하는 불교, 소대승의 모든 교리 곧 4성제, 8정도, 12연기(인연), 3법인···그리고 6바라밀, (), 무아(無我), 중도(中道)···를 설하셨습니다. 악도에 떨어질 중생이나 지금 악도에서 소름 끼치는 형벌을 받고 있는 중생을, 단 공덕이 있다면, 업장소멸을 해 건져줄 결정적인 위신력을 갖추시게 되셨습니다. 부처님 만세입니다. 부처님 만만세입니다.

중생은 사실 한 몸뚱이, 일체(一体) 임을 깨달으시고, 무량한 자비 원력으로 중생 구제에 나서셨습니다. 삼계 육도 사생의 윤회 중생들이 이젠 살게 되었습니다. 행복한 삶을. 영생토록 극락정토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깊고 깊은 까닭을 우리는 기억하고, 부처님께 한없는 사랑과 공경심으로 믿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부처님 되신 이후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악도 중생을 하늘로 나게 하시고, 인천의 과보를 받는 중생을 윤회에서 벗어나는 아라한 하늘로 이끄셨고, 그리고 대승법으로 당신을 따르는 많은 착한 불제자들을 보살로 인가하셔서 극락정토에 왕생토록 하셨습니다. 더욱 부처님 말씀 따라 만족할 만하게 청정히 살고, 지구 땅덩어리만한 선근공덕이 있는 불자는 붓다로 만드셨습니다. 그지없는 백천만억 나유타겁 전 불신을 얻으신 이후로 쌓으신, 대우주만한 부처님의 공덕이야말로 화엄경에서 말하듯, ‘불가설 불가설 겁을 두고 삼계의 모든 붓다들이 상속 연설한다 해도 끝이 없을 정도이다.’ 인 것입니다.

 

부처님이 깨달으신 경지가 측량할 수 없다 할 수 있는 것을, 하나의 실예를 든다면, 당신의 가르침을 팔만대장경으로도 써놨지만, 그 수천만 배의 경전이 용궁에 소장돼 있고, 자내증(自內證) 하신 경계를 설했다는 화엄경만 해도 상··하본이 있답니다. 지금 인간 세상에서 우리가 보는 화엄경은 하본입니다. 이것의 수천수만 배의 중본·상본의 화엄경이 있습니다. 부처님 경전과 각 붓다님들의 경전까지 수많은 법보를 보명부처님께서 관장하십니다. 용궁에 소중히 소장되어 있습니다.

 

4. 이렇듯 진리자체가 되는 부처님만이 전지하시고 만능 자재하십니다. 불교는 그만큼 위대한 우주적 진리의 종교입니다.

마음이 곧 부처요, 마음을 깨치면 부처라 하면서, 부처 없고, 지옥·극락 없다.’ 합니다. 인간 본체의 주인공인 영혼체를 부인하고, 불교의 경전도 하나의 문학 작품같이 보는 것이 오늘의 불교입니다. 위대하시고 거룩하신 불세존의 살아계심을 몰라서, 부처님을 모독하는, 무간지옥 갈 대망어를 1,000년도 넘게, 그것도 일부 최고 불교 지도자급 수행자들이 감히 막말 해오고 있어 그동안의 수많은 무고한 불자들의 눈과 귀를 멀게 해서, 악도로 인도해 오고 있습니다.

또한 다음 기회에 법문할 때 말씀드리겠지만, 소위 무아(無我)’불교 사상의 핵심 사상을 왜곡해서 불교를 잘못 인식시켜, 인도 불교가 사라진 역사적 사실까지를 고려하면, 부처님 입멸 이후 지금까지 수천 년 동안 불교는 크게 잘못된 곁길로 걸어왔습니다. 고언(쓴소리, 苦言)을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여러 번 지적해 왔지만 지금의 불교는 불신관·붓다관·영체론, 생사관 하나 분명히 정립돼 있지 않습니다. 불교 경전에 대한 소중한 가치 평가도 없습니다. 창작물·문학작품 정도로 평가절하하고 있습니다. 문수 큰 부처님은 경전은, 소중하다.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다.’고 힘주어 말씀하십니다. 오늘의 말세의 불교는 계율 정신도 해이해져 있습니다. 통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의 세계 인류를 진정 구제하기를 원한다면, 그들을 세세생생 보다 더 행복하게 잘 살고, 끝끝내는 윤회의 사슬에서 해탈, 열반의 세계로 인도하려 한다면, 지금의 선종, 교종, 율종, 정토종, 비밀불교 등의 파벌을 과감히 타파, 오직 석가모니부처님을 찾는 칭명염불을 주장하는 정법 교단 중심으로 뭉쳐야 합니다. ‘없는 보살행을 실천하는 용감한 지혜로운 부처님의 제자로 거듭나야 합니다.

 

화엄경, 아함경, 수능엄경, 반야경, 법화경, 열반경, 아미타경, 부모은중경84, 일대(一大) 장경의 골간입니다.

영산불교는 21세기 이후 중생을 건질 수 있는 위대한 철학이 있습니다.

현지사의 사상은 대승 3부경 〔≪금강경, 법화경, 화엄경≫〕아미타경 등의 골수입니다. 현지사의 법 세계는 이런 대승 경전의 위대한 사상을 그대로 포용하고, 여기에 미증유한 영체설과 계율 및 사상을 아우르고 있습니다.

영산불교는 부처님 경전을 더욱 빛나게 할 깊은 사상이 있고, 악도 중생을 인간이나 천상으로 구원할 수 있으며, 인간과 천상 사람들을 6도 윤회생사로부터 상락아정의 해탈 열반의 세계까지 왕생케 할 수 있는, 실로 일체중생을 구원할 수 있는 깊은 철학과 사상을 갖고 있습니다. 거듭 영산불교 현지사는 악도 윤회생사로부터 건지고, 영겁을 기쁨과 환희에서 사는 극락정토에 왕생할 보살을 낼 수 있는 위대한 정법 교단임을 선언합니다. 의심하고 따라만 와도 그런 현지사 신도는 하늘은 간다고 태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은 본질상 죄를 짓고 살기 때문에, 다수가 악도로 갑니다.

인류 역사 이후, 인류의 진정한 사표라고 추앙받는 이들이라면, 특히 불교의 견성 도인들이라고 불리우는 이들은, 이번에 인간이 내놓을 수 있는 인류 최고의 성서 중 성서인 태사부님께서 내신 염불삼매를 읽으시고, 법신·보신·화신 삼신을 갖춰야 인류 만세의 사표라 할 수 있고, 6도 사생의 진정한 스승이라는 나의 오늘의 이 법설을 성찰할 기회를 가졌으면 합니다.

 

5. 앞으로의 자재만현의 설법은 대설법회를 중심으로, 주로 경전을 근거해서 진리의 법설을 할 것입니다. 내 남은 인생, 정법 불교의 전도에 바치고 싶습니다. 거듭 부처님을 찾는 염불이 정법임을 사자후하는 것입니다.

 

법화경,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소승으로 수많은 중생을 제도해 아라한과를 받게 하였다 하자.

소승의 그 모든 공덕보다,

부처님께선 백천만억 나유타겁 이전에 우주 법계 최초로 성불하셔서,

수량(수명)은 무량아승기겁이라는 경전 말씀을 환희하여 마음속에 새긴다면, 이 공덕이 모든 소승의 공덕보다 크다고 법설하고 있습니다.

영산불교 현지사에서는 부처님께서 이후 삼계의 여러 국토를 불신으로 다니시면서, 본화보살과 붓다를 만들어 내신, 그러한 무한한 위신력과 우주적 구원력을 갖추셨다고 천명하고 있습니다.

이 부처님에 대한 신심을 마음속에 새긴다면 그 공덕이 모든 소승의 공덕보다 크다는 이 깊은 말씀은 백번 옳은 진리의 폭탄선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법화경을 경중의 왕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입니다.

 

나는 감히 오늘의 이 설법회에서 부처님의 위대함을, 그리고 부처님의 실존을 믿고, 부처님을 간절히 찾는 칭명염불하는 한 사람의 대승 불교도(불자)의 공덕이 수많은 중생을 아라한과를 얻게 하는 공덕보다 더 크다는 경전 말씀은 진리의 선언이라고 다시 확인해 드립니다.

 

 

6. 여기에 덧붙여,

법화경방편품에 여래의 무량한 지혜는 가령 갠지스 강가의 모래수만큼 많은 불퇴의 보살들(화엄8지 이상 등각까지)이 한자리에 앉아 겁을 두고 사유해도 이를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는 말씀을 믿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 무량한 지혜와 우주만한 공덕을 구족하신 부처님은, 또한 무한한 위신력·신통으로 적멸세계와 절대계를 건설, 불신과 보살 아기 해탈신을 만들어 붓다와 보살을 내시며, 대자비로 중생의 업장을 소멸해서 악도 고해에서 구할 수 있는 우주적 원력과 구원력을 지니고 계신다는 이 영산불교 현지사의 가르침을 환희하는 마음으로 믿어주시길 바랍니다.

 

다음은 화엄경의 법설입니다.

여래수호공덕품부처님(보신) 몸은 미진수 빛깔 색과 모습(相海)으로 장엄하고, ··화 삼신이 한 몸으로 나툴 때의 불신의 잘 생긴 모습(隨好)은 미진수의 대인상(大人相)에 따라서 미진수의 수호가 있다는 경전 말씀과, 어느 때는 이 지구만큼 커지기도 하고, 삼천대천세계만큼 크게 나투시는 부처님 광명의 분량은 법계를 비추지 아니함이 없다는 법설을 듣고 기뻐하며, 부처님에 대한 변치 않는 신심을 낸다면, 부처님으로부터 수기 받아 결정코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무상정각을 얻으리라 하셨습니다.

맞습니다. 자재만현은 위와 같은 경전의 말씀을 다시 이 자리를 빌려 긍정하고 확인합니다. 진리의 말씀입니다.

 

7. 다시 말합니다. 부처님은 과연 어떤 분이신지를 깊이 알고 믿는 것은, 여러분의 미래생을 좌우하는 너무 중요한 명제인 것입니다.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은 부처님의 진불이시고, 원만보신 노사나불은 부처님의 본불이십니다. 부사의한 무량광 빛으로 이루어진 부처님은 삼천대천세계 모든 붓다(부처님, 여래)를 만들어 내시고, 연화장세계(절대계)와 상락아정의 정토세계(극락정토)를 창조하시고, 중생의 업장을 소멸하실 수 있는 무한한 지혜, 위신력이 자재하신 우주 최고의 어른, 지존이십니다. 그 부처님의 무량광을 받으면 언젠가는 무상보리를 이룰 수 있답니다.

그렇듯 위대하고 존귀하신 대우주의 주() 이십니다. 그래서 부처님을 찾는 염불이 정법입니다. 염불이 아닌 수행법으로는 아라한과를 얻는 일도 어렵습니다.

 

8. 비행기를 전세 내어 이곳 제주제2본산 설법회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

오늘의 나의 법문 원고를 받아 보시기 원한다면 현지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시면 됩니다.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어서 여러 사랑하는 현지사 불자님들 꼭 부처님이 바라시는 한 사람의 소중한 대승 불자가 되어 주십시오. 소승의 아라한들과 바꿀 수 없는 정법 불교의 부처님 제자가 되어 주십시오.

그러면 하늘에 나고, 성중 아라한이 되고, 보살 법위를 인가 받아 극락정토에 결코 날 것입니다.

 

9. 부처님은 계십니다. 우주의 대법왕이시고, 지존이시며, 전지 만능 자재하신 부처님은 계십니다. 부처님을 찾는 염불이 정법입니다. 지극정성 금강경 읽고, 총귀진언 하신 후에 석가모니불을 칭명하면서 없는 보살행으로 사신다면 여러분 모두 천년만년이 아니라 천겁만겁 아니 영겁을 해탈 열반의 상락아정 극락정토에 절대로 왕생하십니다. 부처님 입멸하신지 2,500년 만에 처음으로 들으시는 현지사가 천명하는 정법 불교의 수행법입니다.

또 한 말씀만 덧붙입니다. 공경과 정성을 담아 가끔 부처님들께, 정법 교단에 와서 공양 올려 주시기를 당부합니다. 경중의 경인 화엄경에서는 거의 전품에 걸쳐 염불과 부처님께 공양을 올려드림이 최고의 보살행으로 법설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화엄경의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물론 돌아가신 부모·조상님의, 부처님께서 주관하는 천도대재는 꼭 모셔 드려야 한다는 말씀도 덧붙입니다.

부모님이 하늘 천상에 가 있지 않으면 반드시 악도로부터 부모를 천도해서 하늘로 보내드려야 극락에 왕생할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를 으뜸으로 합니다.

 

10. 끝으로 여러분이 현지사를 진심으로 사랑해서 우리의 정법 교단을 위해준 만큼, 그보다 더 천만 배 더 많은 복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말씀드리면서, 부처님의 무한한 지혜, 위신력을 극명하게 느낄 수 있는 화엄경도솔궁중게찬품의 한 게송과 또 지장보살 발원문한 부분을 소개하며 오늘의 대설법을 마칩니다.

 

만일 모든 중생들,

보리심 내지 못하였어도,

부처님 이름 한번 들으면,

결정코 보리 이루리― 『도솔궁중게찬품

 

 

한중생을 제도하려 백천생을 따라다녀

끝끝내야 건져냄이 불보살의 대자비라― 『지장보살 발원문

 

 

영산불교 현지사 문수보살 법왕자

자재 만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