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30일 금요일

지옥도 있고, 천상도, 극락도 있다. 업(業) 무서운 줄 알라.

[ 자재만현 큰스님 온라인 설법 ]

2022년 임인년 양력 227


지옥도 있고, 천상도, 극락도 있다.

() 무서운 줄 알라.

 

사랑하는 세계 불자 여러분!

영산불교 현지사 자재만현입니다.

나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고통 없이 행복하게 살기를,

그리고 다음생도 고통받지 않고 행복하게 살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입니다. 가능하다면 영원히 미래제가 다하도록 여러분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면서 오늘의 법문을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업 무서운 줄 알라!’는 제목을 가지고

법설 하고자 합니다.

 ()이란, 인도 불교에서 사용되는 카르마(karma)라는 어휘를 한역한 것으로 신··의로 짓는 의도적인 행위를 말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여러 경전상에서

중생들은 업이 바로 그들의 주인이고, 업의 상속자이고, 업에서 태어났고, 업이 그들의 권속이고, 업이 그들의 의지처이다.”라는 말씀을 강조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정업불면(定業不免)’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기가 지은 업의 과보는 고스란히 자신이 전부를 받는다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업은 자기의 운명이 되고 그 업은 우주를 창조할 수도 있는 힘을 갖추고 있어 철저히 선인낙과(善因樂果) 악인고과(惡人苦果)의 이치를 실현합니다.

 법구비유경(法句譬喩經)에 나와 있는 부처님 당시에 있었던 이야기를 하나 해 드리겠습니다.

어떤 거지가 성안에 들어가 걸식을 하던 중에 갓 새끼를 낳은 암소의 뿔에 받혀 죽었습니다. 사람을 죽인 암소의 주인은 겁을 먹고 그 소를 재빨리 다른 사람에게 팔아넘겼습니다. 그 소를 산 사람은 소를 끌고 집으로 가는 도중에 소에게 물을 먹이러 물가로 끌고 가다가 뒤에서 갑자기 소가 소뿔로 떠받아 버리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바로 죽고 말았습니다.

소를 샀던 사람의 아들은 화가 너무 나서 소를 당장 죽여 시장에 내다 팔았는데 어떤 시골 사람이 그 소의 머리를 사서 짊어지고 돌아오다가 집에서 십리(5)쯤 떨어진 곳에 있는 나무 밑에 앉아 잠시 쉬게 되었습니다. 소머리를 잠시 나뭇가지에 걸어 두었는데 갑자기 나뭇가지가 끊어지는 바람에 소머리의 뿔이 시골 사람 머리 위로 떨어져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이 하루 동안에 세 사람이 죽게 되자, 빔비사라(Bimbisara)왕은 그 말을 듣고 너무나 괴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신하들과 함께 부처님께서 계시는 처소로 찾아가 예배한 후 부처님께 아뢰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암소 한 마리가 세 사람을 죽였습니다. 무슨 변고로 이런 큰 사건이 벌어졌는지 부처님께 그 이유를 여쭙고 싶습니다.”

부처님께서 빔비사라왕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일에는 반드시 그 원인이 있기 마련인데, 이 소 때문에 세 사람이 죽은 사건은 지금 시작된 일이 아닙니다.”

지금은 그것이 이해가 되지 않아 보여도 그 과보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왕은 말했습니다.

그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부처님께서 이 사건과 관련된 인연담을 왕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옛날에 세 사람의 상인이 다른 나라로 장사를 하러 가는 길에 혼자 사는 어떤 노파의 집에 며칠 묵기를 원했습니다.

할머니, 저희 세 사람이 할머니 댁에서 며칠 묵기를 원하니 잘 부탁드립니다. 저희들이 떠날 때는 숙식비를 넉넉하게 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믿은 노파는 지극한 정성을 다해 잠자리와 먹을 것을 제공했습니다. 며칠 동안 편안히 지낸 세 상인은 노파가 잠시 집을 비운 틈을 타서 숙식비도 치르지 않고 도망치듯 떠나버렸습니다.

 밖에서 돌아온 노파는 그들이 말도 없이 떠난 것을 알고는 매우 화가 나서 수십 리 길을 뒤쫓아 가서 기어이 그들을 잡았습니다.

 이 날강도 같은 놈들아! 어서 숙식비를 내놓아라

할머니의 화가 난 말에 상인들은 오히려 더 화를 내며 큰소리로 말합니다.

뭐라고? 이 할망구야! 오늘 아침에 분명히 숙식비를 다 주었는데 여기까지 따라와서 숙식비를 또 달라고 하는 걸 보니 노망이 들어도 단단히 들었구먼.”

돈에 눈이 멀어, 혼자 사는 노파를 만만하게 본 상인들은 도리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주며 노파를 몰아세웠습니다. 할머니는 기가 차고 너무나 억울했지만 힘이 빠져 제대로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정성을 다해 먹여주고 재워준 은혜를 한순간에 져버리고, 그것도 모자라 시치미를 떼고 거짓말까지 함부로 하며 모욕감을 주는 그들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주체할 수 없는 배신감과 분노로 그들을 향해 이를 갈면서 할머니는 저주의 맹세를 퍼부었습니다.

내가 지금은 힘이 없어 너희들에게 이렇게 당하지만 죽어서 귀신이 되고 짐승이 되어서라도 이 억울한 원한을 꼭 갚을 것이다. 너희들을 만나 기어이 죽이고야 말 것이다.”

 그때 저주의 맹세를 한 노파가 바로 오늘의 저 암소요, 소뿔에 받혀 죽은 세 사람은 숙식비를 떼어먹고 달아난 그때의 상인들이다.”라고 부처님께서 인연담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할머니의 처절한 저주의 맹세대로 인과가 펼쳐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빔비사라왕과 그 관속(官屬)들은 모두 숙연해져서 부처님을 우러러 공경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업()을 지으면 그에 따른 과보를 반드시 받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지었다 하더라도 반드시 그 과보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닙니다. 결코 피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 과보는 반드시 오게 되어 있는데, 일찍 오느냐 늦게 오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마치 우리가 밭에다가 씨를 뿌리면 3개월 있으면 열매를 맺는 곡식이 있고, 5년 정도를 키워야 열매를 맺는 과일도 있듯이 업에 따른 과보는 고스란히 자기가 지은 대로 받습니다. 나쁜 업을 많이 짓게 되면 다음 생이 아닌 금생에 그 과보를 받게 될 수도 있습니다. 업에는 힘이 있습니다. 업의 힘을 업력(業力)이라 하는데 인연이 열리면 반드시 거기에 상응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그래서 업이 무서운 줄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세계 불자 여러분!

불교에서는 우리들 각자가 몸으로, 말로, 뜻으로 짓는 업이, 자기의 모든 것과 우주 삼라만상까지도 짓는다고 합니다. 이것을 업감연기설(業感緣起說)이라고 합니다.

어떤 창조주가 있어서 우주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고, 그 운명까지도 점지한 것이 아니고, 우리 각자 모두가 지은 업이 각자의 삶과 우주 역사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업이 모두를 만듭니다.

 빨리어 경전, <맛지마 니까야><업 분석의 짧은 경>에 나와 있는 부처님 말씀을 소개합니다.

한때 세존께서 사밧티에 있는 제따숲에 계셨는데 바라문 학생이었던 수바가 세존께 인사를 드리고 예의 바른 자세로 질문을 드렸습니다.

고타마 스승이시여,

왜 인간은 열등해 보이기도 하고, 우월해 보이기도 하는지,

그 원인과 조건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사람들은 단명하기도 하고, 장수하기도 하고,

병약하기도 하고, 건강하기도 하고,

추하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고,

영향력이 없기도 하고 있기도 하고,

가난하기도 하고, 부유하기도 하고,

지체가 낮게 태어나기도 하고 지체가 높게 태어나기도 하고,

우둔하기도 하고, 영리하기도 합니다.

부처님, 어떤 원인 어떤 연고로 말미암아

사람들에게는 열등함과 고상함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수바에게 말씀하시길

축생으로 태어나거나, 사람으로 태어나 수명이 짧은 것은 과거생에 살생을 많이 한 과보이며

병이 많은 사람은 과거생에 손이나 채찍과 칼로 다른 사람들을 고통스럽게하고 괴롭힌 과보이다.

못생기고 추한 외모는 말을 할 때 욕이나 저주를 퍼붓고 성내고 악의를 품고 화를 많이 낸 과보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공경을 받는 것은 과거생에 시기와 질투를 하지 않은 과보이며

오만하지 않아서 귀한 사람에게 자리를 제공하고, 길을 내어 드리고 공경 받아야 할 사람을 대우하고, 존경하며, 숭배한 그 사람은 높고 귀한 신분으로 태어난다.

가난하고 부유함은 과거생에 도를 닦는 수행자를 보고 음식이나 옷 등으로 널리 보시를 하지 않았던 인색함과 정성을 다해 보시를 한 과보이며

천함과 귀함은 교만함과 겸손의 과보이다.

지혜로움은 스승님을 얼마나 정성껏 잘 모셨는가에 따른 과보이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수바는 감동을 받고 세존께 말씀드렸습니다.

고타마 스승님이시여! 훌륭하십니다.

스승님께서는 마치 뒤집어진 것을 바로 세우듯이,

길 잃은 사람에게 길을 보여주듯이,

눈을 가진 사람이 형상을 보도록 어둠 속에서 등불을 들어 보이듯이,

많은 방법으로 진리를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오늘 고타마 스승님과 담마(, )와 비구들의 승가에 귀의합니다. 저는 종신토록 부처님께 귀의하겠나이다.”

부처님께서 업의 과보에 대해 상세하게 말씀하시자 수바는 그날 바로 계를 받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부처님의 말씀처럼 모든 것은 인연으로 되는 겁니다. 인과의 법칙입니다. 콩을 심으면 반드시 콩이 나오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나오는 겁니다.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고 음성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운명이 다른 이유는 모두가 본인이 각자 지은 업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 많은 종교 중에서 불교만이 철저히 우리 중생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해서 중생이 윤회하는 여섯 세계와 우주 만물이 생겨났고, 각자가 자신이 지은 업으로 인해 그 사람의 얼굴, 체격, 운명 그리고 환경까지도 만들어 진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입니다.

 중생은 곧 업이 있기 때문에 업력에 이끌려 육도(六道)를 반복해서 윤회하며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업의 힘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우선은 악업을 짓지 않아야 합니다.

불교에서 악()이란, 우주 이법에 어긋난다는 뜻으로 불선(不善)이라고도 합니다.

악업이란 인과법(因果法)에 따라 반드시 현세나, 내세에 자기와 남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는 악한 행위들을 말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가 짓지 말아야 할 악업으로 열 가지 악업을 강조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꼭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십악업은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열 가지 죄업으로 먼저

몸으로 짓는 살생, 도둑질, 사음 그리고 입으로 짓는 거짓말, 이간질하는 말, 속이는 말, 악한 말을 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짓는 탐욕, 성냄, 사견 즉 인과법을 부정하는 것, 이 모두를 합하여 열 가지 악업이라고 합니다.

십악업의 과보는 앞에 소개해드렸던 <업 분석의 짧은 경>에도 구체적으로 잘 설명되어 있고 <삼세인과경>이나 다른 경전에서도 매우 많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특히 살생의 과보가 무서운데, 예들 든다면 사람으로 태어나 모든 조건이 좋은데 수명이 짧아 일찍 죽게 되는 것은 전생에 많은 살생을 한 과보이며, 평생을 괴롭히는 간질병은 고의로 불을 질러 수많은 생명을 죽게 한 과보입니다.

그 외에도 나쁜 악업을 많이 쌓게 되면 이번 생에 바로 암이나 중풍 등의 불치병에 걸리기도 하고, 아주 무겁게 범하면 죽어서 지옥으로 갑니다.

 그리고 <능가경(楞伽經)> <오무간품(五無間品)>에서 오역죄를 소개하고 있는데

오역죄(五逆罪)

1. 어머니를 죽이고,

2. 아버지를 죽이고,

3. 아라한 성자를 죽이고,

4. 화합 승단을 파괴하고,

5. 해로운 마음을 품고 부처님 몸에 피를 내게 한 죄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죄는 인간이 짓는 악업 중에서 가장 무서운 죄로서 죽으면 잠시도 쉼이 없이 계속해서 무서운 고통을 받는다는 무간지옥(無間地獄)을 가는 것입니다.

이런 폐륜을 저지르면 사람으로 태어나도 온갖 고통 속에서 비참하게 살다가 죽어서는 무간지옥을 가서 오랫동안 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또 어떤 사람이 금생에 문둥병이나 정신병을 앓게 되는 원인은 전생 또는 과거생에 부모님과 스승님을 죽인 과보입니다. 이 사람은 이런 업병(業病)을 앓으면서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한 생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고 여러 생을 이렇게 살아가게 됩니다.

 끝으로 정말 무서운 죄는 정법을 비방하고 훼손한 죄(正法毁損罪)입니다.

정법비방훼손죄란

1.부처님을 모독 능멸함,

2.경전을 능멸함,

3.정법을 고사(枯死), 파멸 시키려 하는 죄입니다.

 부처님은 없다 하고 지옥 극락 없다고 하면서 부처님과 그 법을 모독하고 능멸하며 중생을 삿된 길로 인도하는 망어죄를 지으면,

사람으로 태어나더라도 벙어리, 맹인, 귀머거리의 삼중고를 받게 됩니다. 나아가 사찰의 전각을 파괴하고 불을 지르며, 불상의 목을 치는 등 불상과 탱화를 훼손하면 다음생에 뇌성마비나 식물인간의 과보를 받게 됩니다.

이렇게 정법을 비방훼손한 죄인이 죽으면 무간지옥에 떨어졌다가 겁이 다하면 또 다시 다른 무간지옥으로 옮겨져 벌을 받는데 부처님께서도 그 죄인이 나올 시점을 알지 못한다고 하였으니, 정법을 비방하고 훼손한 죄가 이렇게 무거운 죄인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라도 악업을 짓지 말아야 하고 선행을 하는데 최선을 다하야 합니다.

 먼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계율 중 우리 중생들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계율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를 불교에서는 오계라고 합니다.

첫째, 함부로 산 목숨을 죽이지 않는 것

둘째, 도둑질하지 않는 것

셋째, 거짓말하지 않는 것

넷째, 사음하지 않는 것

다섯째는 술을 취할 정도로 마시지 않는 것

여기서 네 번째까지의 계율은 행위 자체가 악업이기 때문에 절대로 하지 않아야 합니다.

다섯 번째 계율인 술을 마시는 것은 악업이 아니지만 과도하게 마시면 반드시 앞의 네 가지 악행을 범할 수 있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술을 자제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착한 일을 많이 하면 당연히 좋은 과보가 오게 됩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열 가지의 착한 일을 하면 좋은 과보를 받는 일을 권선하고 이를 십선법(十善法)이라고 부릅니다.

십선법은

살아있는 생명을 살려주는 것

널리 보시를 행하는 것,

음행함 없이 몸을 청정히 지키는 것,

진실된 말을 하는 것

이간질하는 말이 아닌 화합하도록 하는 말을 하는 것

욕설을 하지 않고 부드러운 말을 하는 것

의로운 말로써 사람들을 이익 되게 하는 것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

성내지 않고 자비와 인욕의 선법을 행하는 것

인과법을 잘 아는 정견을 가지고 지혜롭게 사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를 오탁악세(五濁惡世), 매우 각박한 세상이라고 말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착한 행을 몸소 실천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일본에서 자신의 몸을 던져 타인의 목숨을 구하고자 했던 의인(義人) 이수현 청년의 이야기는 많은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2001년 일본에 유학 중이었던 한국인 청년 이수현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하철을 기다리는 중, 선로로 술에 취한 어떤 남자가 떨어지자 이 남자를 구하기 위해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선로로 뛰어내렸습니다. 불행히도 술에 취한 남자와 그 남자를 함께 구하려 했던 일본인과 이수현 청년은 미처 지하철을 피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기주의가 팽배했던 당시의 일본 사회에서 일본인이 아닌 그것도 한국인이 아무 연고도 없는 일본인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소중한 목숨을 희생했다는 사실에 일본 국민들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선법을 실천한 착한 사람들의 생생한 실화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에 회자되어 모든 사람들에게 오랜 시간이 지나도 깊은 감동을 줍니다. 이런 사람들은 이 우주에서 착한 일을 직접 실천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큰 선행은 아니더라도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선행들도 찾아보면 많습니다. 이러한 선행을 많이 행한 사람은 죽은 뒤에도 오래도록 복락을 누리는 높은 하늘세계에 나게 됩니다. 사람으로 태어나도 많은 면에서 복을 갖추고 옵니다. 뭘 해도 잘 되고 바라는 대로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풀립니다. 인과응보의 이치인 것입니다.

 지금 인류는 역사상 가장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는 환경파괴와 이상기후, 전 지구적인 각종 재난과 재해, 물질만능주의로 인한 생명의 경시, 인간성의 파괴, 도덕적 타락 등 오탁악세의 징후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런 위기적 상황에서 위에서 강조했던 다섯가지 계율과 십선행의 소중함을 믿고 지금 이 순간부터 실천하는 여러분들이 되신다면 여러분들의 앞날은 보다 더 밝고 행복한 삶이 될 것입니다. 더불어 맞이하게 될 미래생 또한 희망찰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지은 모든 업은 우주의 법칙에 따라 계산되는 산계소작(算計所作)’입니다. 컴퓨터의 정확도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계산되어 과보를 받게 됩니다.

다겁생을 살아오면서 우리가 지은 수미산만한 업은 자신의 힘으로는 결코 소멸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지중한 업들을 깨끗이 소멸 받을 수 있는 길이 여기에 있습니다.

부처님이 계심을 믿고 부처님 가르침대로 실천하는 삶을 산다면, 부처님의 절대적인 위신력으로 우리의 그 지중한 죄업장을 소멸 받을 수 있습니다.

그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오계를 지키고 십선을 행하는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시 한 편을 소개하면서 오늘의 법설을 마칠까 합니다.

20세기 세계적인 실존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

교수 정년 마지막 강의에서 읊은 시입니다.

 나는 왔누나, 온 곳을 모르면서,

나는 있누나, 누군지도 모르면서.

나는 가누나,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나는 죽으리라, 언제 죽을지도 모르면서!’

 인생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답을 얻지 못했다는,

사람은 어디서부터 왔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살다 간다는

최고 지성인의 진실한 고백의 시입니다.

 만약 이 노철학자가 업의 무서움을 알고 불교의 진면목을 제대로 알았더라면 그의 생의 마지막 노래가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불교를 모른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삶과 죽음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게 될 것입니다. 오직 자신의 업력에 이끌려 영원토록 육도를 윤회하는 불행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전 세계 사랑하는 불자 여러분!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이제부터라도 불교의 깊은 진리를 만나서 이번생도 잘 살고 다음생도 잘 살 수 있도록 준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영산불교 현지사 자재만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