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28일 수요일

선불교의 한계

선 불교의 한계


선 불교에서는 인연을 멸하여 생각의 생멸까지 쉬게 하
는 것을 수행의 요체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의
생멸을 그치게 하는 것은 큰스님께서 말씀하신 바 아라한위나
잘해야 보살위에 지나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더욱 아쉬운 사실
은 오늘날의 간화선 수행법으로는 아라한 이상으로 높이 올라
갈 수 없는 것이 현실적인 수행자들의 실정임을 여실지견으로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화두선은 자력으로 자신을 구원해 나가는 수행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화두선 또는 간화선을 통해
서 많은 부작용이 발생해서 정신병, 주화입마, 상기병 등에 걸
린 수행자들이 적지 않다고 수행자들 간에 은밀히 회자되고 있
다고 합니다.

선 불교의 폐단은 너무 편협하고 독선적인 아성을 구축
하고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또 넌센스식의 화두를 제시하여
수행자들의 마음을 너무 많은 시간 동안 미로 속에서 헤메게
만드는 폐단을 지니고 있습니다. 결국 얻는 것은 흔히 말하는
대오각성, 즉 견성의 완성을 통해 얻은 아라한위까지입니다. 무
엇보다도 오늘날의 선사들의 가르침에는 원시불교를 아름답게
수놓은 석가모니부처님의 자비심을 찾아보기가 참으로 어렵다
는 것입니다.

반면 염불은 실제로 부처님의 칭호를 염송하는 것으로서 직
접 부처님의 위신력과 가피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칭호를 염송하는 염불 수행이 선 수행법 보다 못하다면 부처님
의 위신력에 우리는 회을 가져야할 것입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것이 사실이며 실재로 과거에도 수행승들께서 아미타부처
님을 30년 간 지극 정성으로 염불하여 절 천장을 뚫고 날아서
극락 왕생했다는 이야기까지 전해오고 있습니다.

지금도 아미타불을 찾는 염불선이 많은 영험이 있다고 네티
즌 수행자들 간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염불선의 위신력
이 선 수행보다 우월함은 당연한 일입니다. 물론 염불선도 큰
스님의 지도에 따라 제대로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염불
선도 외도 기운의 영향을 받아 잘못된 길을 걸을 수 있기 때문
닙니다.

2500년 전 부처님이 이 세상에 몸을 입고 오셔서 전해주
신 위빠사나 수행이나 아나파니사띠 수행법도 좋은 효험이 있
음을 인정합니다. 다만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에서 설파한
대로 부처님의 칭호를 염송하는 칭명염불이 무엇보다도 중요함
을 강조하는 바입니다. 앞으로 큰스님께서 주창하신 칭명염불선
은 새로운 불교 수행의 중흥을 이루고 새로운 불교 문화를 꽃
피우고 창당하는데 크게 이바지할 것이라 확신합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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