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19일 금요일

과연 어떤 내용의 종교가 이 인류를 이끌 만한 자격이 있는가에

 



 
 어떤 내용의 종교가 
이 인류를 이끌 만한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서 한번 생각을 해 봤습니다. 지난 20세기까지 기독교의 교세가(교리가) 서구(서 구라파, 동구)를 중심으로 해서 이끌고 왔습니다. 막강한 권력을 쥐고 왕권도 무릎을 꿇었죠. 그런데 이제는 그 인류의 지성이 대단히 밝아 갑니다. 개명해갑니다. 


그래서 이 기독교 교리 가지고는 안 됩니다. 기독교 교리 가지고는 첨단을 가는 물리학 · 철학사상을 수용 · 지도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이미 안 됩니다. 일신교의 교리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대단히 미미합니다. 그 정도 가지고는 안 됩니다.

 

  우선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서 투철한 안목이 없습니다.  그래서 21세기는 이제 불교 쪽으로 옵니다. 세계 최고의 지성인들이 불교 쪽으로 눈을 돌립니다. 이 불교는 자격이 있다고 봅니다. 불교는 인류를, 퇴락 해 가는 그 영혼을 살려내고 살 수 있는 곳으로 향도 할 그런 깊은 사상이 있습니다.

 

런데 불교는 사실 두 가지 면에서 보완을 해야 되고, 더욱 불교의 본 면목을 다시 발굴해야 하는 그런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지금의 불교는 스님이 가끔 말씀을 드리는 바와 같이 너무 축소되고 왜소해져 버렸습니다. 그런 불교 가지고는 안 됩니다. 21세기를 이끌어 가지 못합니다.

 

  어떤 점에서 그러느냐? 지금 서양의 최고 지성인들이 영적인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최고의 지성인들이 무엇을 원하느냐 하면, 과연 사람이 죽어서 끝나버리는 것이냐? 안 그러느냐? 이 문제부터 시작해 가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느냐? 그래서 또 거기서도 영원하냐? 거기서도 죽는 것이냐?

 

이런 생사관(生死觀)문제에 대해서 해답을 찾으려고 대단히 갈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불교 가지고는 그 갈증을 해소 못합니다. 저 세상은 있지요. 귀신도 있고, 지옥도 있고, 극락정토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억겁 전에 생을 받아서(이 말이 문제가 되는데, 이건 전번에 내가 이야기한 '맑은 하늘에 홀연히 구름 한 점이 생긴다' 는 그런 연기 가지고 이야기하면 되지만, 백 천만 억겁 전부터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나고 죽고 나고 죽고를 해왔단 말이에요), 


앞으로 미래제가 다 하도록 여러분은 죽으면 또 어디로 가고, 어디를 가서 또 거기를 다 살고, 또 어디로 오고, 어디로 가서 나고, 어디로 가서 죽고...이런 것을 영원히 반복 합니다. 이걸 우리는 알았습니다.

 

  이 깊은 이치를(사실을) 이미 알아버린 종교가 힌두교와 불교입니다. 그런데 힌두교는 깨달음 이후에 대해서는 없습니다. 깨달음 이후에 대해서는 오리무중입니다. 전혀 이야기를 못합니다. 범아일여(梵我一如)를 알아서, 범행(梵行)을 해서 범천(梵天)에 나버린다. 거기는 영원한 곳이다. 이렇게 해서 그 이상은 모릅니다.

 

거기서도 또 사람 몸을 받아 오는데요, 그 보다도 더 위 차원의 영적인 성자의 세계가 있는데 그것을 모릅니다. 그 보다도 더 높은 차원의 성자의 세계가 있습니다. 이것을 완전히 뚫어 버리려면 부처(붓다)의 경지로 들어가야 되빈다. 하지만 부처님 이후로 그러한 큰 성자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내 책에는 그 깊은이야기를 안했지만 3,4년 법문을 했기 때문에 오늘 스님이 그 부분에 대해서 간략하게나마 짚고 넘어 갈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앞으로 많은 법문을 할 것입니다. 주로 나의 경험을 토대로 말씀을 드립니다. 나는 50년 가까이 승려생활을 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그 화두를 통해서 이 생사관을 뚫으려고 했습니다. 다른 스님들 하고 조금 달랐을 것입니다.

 

나는 유난히도 이 죽음에 대해서 굉장히 관심이 많았습니다. 충분히 승려다운 자세로 과거 생을 참회하고, 잘못된 처신에 대해서 반성하고, 부단히 깊이 참회하면서, 계율을 지키면서, 무아(無我)공부로 들어갔습니다. 효는 완벽하게 하지 못했지만 그때 대단히 효심도 있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책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참선공부는 한계가 있구나' 해서 일찍이 버렸습니다.

 

또 그들만큼 경계도 갔었지만 내 욕구(내 바램)를 충족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버려버리고 염불로 돌아왔습니다. 염불만이 사는 길이다. 왜냐? 붓다(부처)의 위신력은 <<화엄경>> 을 보면 여러분이 아시지만, 선불교에서는 <<화엄경>> <<법화경>> 을 작품(소설)으로 압니다. 슬픈 일이죠. 자기들은 아무리 보림을 해도 그것은 알 수가 없는 거요. 더 뚫지 않으면 모릅니다.

 

그래서 1~2시간씩 염불을 몇 십 년을 한 결과 내 책에 나온 것처럼 그런 큰 부처님으로부터 인가를 받았는데, 그 과정을 여러분이 공부하니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나는 빙의가 없는 상태에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빨랐지요. 



여러분도 조상 천도를 많이 하셨기 떄문에 빙의가 없습니다. 빙의가 있어가지고는 공부가 안됩니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여러분들은 굉장히 행운아입니다. 여러분들은 이제 공부를 해야 됩니다. 빙의가 있는 입장에서(처지에서) 공부를 아무리해도 그것은 외도로 빠집니다. 그들 세계로 가까이 갑니다. 그러니 외도지요. 귀신이나 기껏 해야 하늘 외도 신들이니까요.

 

  이제 여러분들이 염불을 하려면 한 두 시간씩 해야 됩니다. 쭈욱 해 나가십시오. 이제 많이 염불하게 되면, 그러니까 철저히 계율을 지키고, 효를 하면서, 참회하면서, 나라고 하는 생각과 나라고 하는 이 몸뚱이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서, 요놈(몸뚱이)한테 붙잡히면 공부는 안 됩니다.

 

  그러니까 나를 버려버리고(내 생각을 비워버리고), 또 이 모든 삼라만상(이 대상)이 사실 비어있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저 대상에 대해서 끌려가면 공부가 안 됩니다. 그래서 공부를 하는데 지독히도 지독히도 열심히 하다가 보면 양귀가 딱 막힐 때가 있을 것입니다. 양귀가 딱 막혀가지고 외부의 소음(소리)이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이건 대단히 좋은 경계입니다. 이제부터. 그런데 이정도 공부가 될 때에는 꿈에 좋은 경계가 나옵니다. 꿈에도 말입니다. 어떤 꿈이 꾸어지느냐? 아주 맑은(청정한) 시냇물 속에 들어가 목욕을 한다든지, 이건 참 좋습니다. 업장시 씻어져가는 그런 것을 상징하니까요. 참 좋지요.

 

  또 더러운 자기 옷가지를 빨래(세탁) 한다든지 하는 꿈.

  별이나 해나 대낮같이 밝은 그러한 꿈.

  이러한 것이 가끔 꾸어질 것입니다. 혹은 그러다가 가사장삼을 수한 스님을 보는 꿈도 꿀 거고요, 이건 참 좋습니다.

 

지금 오백여명의 우리 신도분들, 열심히 염불공부를 하는데 이런 수행체계로 공부해 가야 됩니다. 여러분! 이런 수행체계로 공부를 해 가야 됩니다. 조금 더 여러분을 위해서 말씀드리자면, 불효하고 오역죄를 지어가면서 공부하면 안 됩니다. 공부가 안 됩니다. 부모님께 불효하고, 오역죄(이건 지중한 죄거든요), 여러분 아시죠? 이건 무간지옥 간다고요. 



이런 죄를 지으면 무간지옥을 가는데, 혹 사람 몸을 받아 온다 하더라도 뇌성마비가 된다든지, 삼중고 사중고의 그런 숙명적인 큰 병을 얻어 온다든지, 문둥병 황자 그런 병을 얻어 온다든지...이런단 말이에요. 이런 지중한 업으로 인한 과보는 금생 한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다시 그 지옥으로 가거나, 다시 어쩌다가 사람 몸을 받아 온다 하더라도 또 그렇게 옵니다. 몇 생입니다. 그건 또 짧지요. 그렇게 옵니다. 그러니까 부모에게 불효하거나 오역죄를 지으면 절대 안 됩니다. 그러면 이제는 끝납니다. 과거 생에 그러한 죄를 지은 사람은 아무리 큰스님이 교화를 하려고 해도 말을 안 듣습니다. 절대 말 안 듣습니다. 내 앞에서는 듣는 체해도 집에 가서는 욕하거나 이해를 못합니다. 절대 말 안 듣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죄업을 절대 지어서는 안 됩니다.

 

십악, 십선도의 반대 개념이어요. 살(殺) · 도(盜) · 음(淫) · 망(妄), 망을 이제 네 가지로 나눕니다. 알지요? 그 다음에 탐 · 진 · 치. 그래서 10개인데 그 십악(十惡)을 범하면 중지옥 이상으로 가기 때문에 여러분 십악을 범해서는 안돼요. 그러니까 그렇게 업을 짓지 말고, 이제 삼보에 귀의하고, 오계를 받아 지니고 십선(十善)을 해야 됩니다. 십악(十惡)을 안 하고 십선(十善)을 해야 되는 거요. 그러면서 염불 공부를 해야 된다 그 말입니다. 이건 기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쭈욱 해 들어가면 소리라는 게 들어오지 않습니다. 한없이 한없이 깊이 들어갑니다. 그렇게 되면 정말로 대낮같이 훤한 경계가 나옵니다. 항상 현란한 빛의 입자를 봅니다. 이 정도의 경계는 화두공부를 할 때 견성한 단계, 견성도 강약(强弱)이 있는데 이 경우가(여기가) 약한 견성단계입니다.

 

  이제 계속 공부를 해 가십시오. 계속 공부를 해 가게 되면, 이제 정말 조용한 곳으로 쑥 빠져 들어갑니다. 쑥 빠져들어가는데 아직도 멀었어요. 그 밝은 빛의 세계로 더 빠져 들어가는데 내 마음은 항상 깔끔하고 청정 해 질 것입니다. 항상 깨끗하고, 맑고 그렇습니다. 이제 거기서도 한 없이 하다가 보면 아무 생각도(어떤 생각도) 일어나지 않고, 흔들림이 없고 편안히 안주될 것입니다. 여러분! 염불은 이제 계속이 됩니다. 마침내 풍 빠져드는데 시간을 초월한 적정의 세계로 빠져 들어갑니다. 여기가 완전히 견성입니다. 강(强)입니다.

 


이제 여기가 무아입니다. 나라고 하는 생각도 대상도 아무 것도 없이 완전 공(空)에 빠집니다. 공(空), 일심이라고도 해. 거기는 광명자체이기 때문에(광명세계이기 때문에) 나(我)라고 하는 생각이 없고, 자기가 광명자체가 되어버립니다. 여기가 소위 여러 종교에서 이야기하는 하나님, 거기를 기독교에서는 하느님이라고 했습니다. 


지난 시간에 I am (자존자)이라고 했지요. 거기를 '스스로 존재하는 자존자' 이럽니다. 시공을 초월해 버렸으니까, 모든 생각이 끊어져 버렸으니까, 인과가 끊어져 버렸으니까, 거기를 스스로 존재 한다 그래요. 거기는 일찍이 난적도 없고 죽을 수도 없어요. 그건 죽지도 않는 거요. 그래서 그 자리를 불생불멸이라고 그래. 거기에 들어가 버렸단 말 이오. 그곳을 깨쳤단 말이오. 그 자리르 저쪽 일신교에서는 이제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우리 불교에서 볼 때에는 그 자리를 공(空)이라고도 하고, 일심(一心)이라고도 합니다. 거기를 깨쳤어요. 깨치면(그 정도 가게 되면) 이제 탐 · 진 · 공포의 경계에서 자유롭습니다. 말하자면 탐욕(貪慾), 탐욕이 다섯 가지가 있잖습니까. 


그 중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색(色)입니다. 성(여자). 그다음에 진(嗔,성내는 것), 그다음에 공포(恐怖), 이 육신에 대한 애착이 굉장히 무섭습니다. 뿌리가 깊습니다. 거기에서부터 떠나버렸어요. 여기서 이제 보림을 많이 하면 그럽니다. 이말 알아듣겠습니까?   자, 여기까지는 이제 아라한이 되는 과정입니다.

 

 

그 다음, 이제 보살로 뛰어 가야 하는데 보살은 철저하게 자력과 타력이라야 됩니다. 자력 갖고는 안 됩니다. 절대 안 됩니다. 그래서 보살이 없습니다. 정말로 천 년 만년에 하나가 옵니다. 보살은 없습니다. 이제 공부할 때에 양 귀 쪽에 하얀 햇빛 같은 라이트(빛)가 쏟아져 나갑니다. 바깥은 찬란하다 못한 밝은 빛이 깔립니다. 이것은 보살로 가는 관문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이 정도를 뚫고 가야 됩니다. 그 다음에 보살행 하시는 문수 · 보현 두 큰부처님의 가사장삼을 수하고, 삼매 가운데 나와서 봥광을 해 줘야 됩니다. 이게 보살이 되는 관문입니다.

 

 

붓다가 되는 관문은 어떠냐? 붓다가 되는 관문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만 밀장이라서 내 책에는 내가 뺐습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를 조금 말씀드리겠습니다. 무량광이라고 하는 천문학적인 광도(光度)와 강도(强度)를 지닌 입자 빛을 보게 되는데, 내 책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가 그렇게 나가니까 여기저기서 자기도 무량광 봤다고 편지가 와요. 


그건 전부 아닙니다. 그래서 문수보살님께서 이 빛에 대해서 이야기가 있으신데, 그건 오늘 시간이 없어서 할 수 없습니다. 삼매에 들어가서 하늘을 가리는 바위를 만납니다. 하늘을 가리는 바위, 이걸 염불의 힘으로 뚫어야 됩니다. 푸욱 뚫고 나가면 붓다(부처님)를 봅니다.

 

  여기서 솔직하게 스님이 말씀을 드리면, 스님은 여기는 통과를 못했습니다. 여기를 통과해서 대적정삼매를 통과 하신 분은 (현지궁 현지사의)광명 만덕입니다.

 

  나(현지궁 현지사의 자재 만현)는 우리 부처님의 힘으로 대적정삼매까지 통과를 했습니다. 대적정삼매를 통과하게 되면 비로소 자기 불신을 절대계에 둡니다. 순서입니다. 자기 불신을 절대계에 두는데 억겁으로 내려 온 업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안 됩니다. 또 탐 · 진 · 치가 아주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안 됩니다.

  앞에서 언급한 적정단계에 가버리면 석녀가 되어 버립니다.

 

여자 같으면 석녀, 남자도 석남이 됩니다. 그래서 앞에서 말씀 드린 혜안 스님은 그 미모의 여자들이 유혹을 하는 그 방에서도 깨끗했던 거예요. 더더구나 이렇게 보살의 경지를 가가지고, 바위를 뚫고 가가지고 대적정삼매에 들어가 버리면 영체가 남자가 되어 버립니다. 영체 네(4) 개는 남자 고추가 달립니다. 그래서 완전 석녀입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두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자기 불신이 절대계에 생긴다는 것.

 

  지금 잘못 들으면 절대계를 적정세계로 이야기 할 수가 있지요(무아속 절대계를 적정세계로 잘못 알아들을 수 있다). 그러나 적정세계(空의세계)를 들어가서, 보살의 세계를 지나가서, 붓다의 세계(절대계)입니다. 내 표현은 '무아속 절대세계' 라고 합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적정은 '무아' 죠. '무아속 절대세계' 에 자기 불신(자기 부처의 몸을)을 둔단 말이에요. 거기서부터의 이야기는 밀장이기 때문에 말을 못합니다.

 

  여러분, 이해하시고. 다만 광명 만덕님은 사실은 일체 신통이 자재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차~악 막고 있습니다. 신통은 기본적으로 업을 짓습니다. 붓다도 신통을 하면 죄를 짓습니다. 죄를 지어 버리면 받습니다.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네(광명만덕)가 죄를 못 짓도록, 그 죄보를 내가(부처님이) 받는 한이 있어도 이제 막 태어난 붓다(남섬부주의 꽃, 삼천대천세계의 꽃)를 삼천대천세계의 붓다님들이 그렇게 가꿉니다.

 

 

 

선불교에서 천마(天魔, 하늘 마)라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하늘 마(魔)는 하늘 54품의 외도들입니다. 그것들이 공부하는 사람들한테 방해를 하려고 불 · 보살의 모습으로 화현을 잘합니다. 두 목적입니다. 그러나 이미 보살과를 넘어가버리면 할 수 없습니다. 그때는 마왕(魔王)이나 그 무리들 전부가 방해를 합니다. 


그런 적은 있습니다마는 그래도 부처님 바운다리(영역)안에 있으면 방해가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 현지사는 부처님 상주 도량이어서 유리관으로 되어 있어 가지고 절대로 마왕이나 외도 파순 무리들이 못 들어옵니다.

 

  그래서 스님이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에 선언을 했지요. 지옥도 있고, 극락도 있고, 귀신도 있다고 말입니다. 이것을 말한 종교는 없습니다. 앞에 말씀드린 힌두교는 상당히 이야기 해 놓았지요. 그러나 힌두교도 깨달은 이후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현지사에서는 깨달음 이후 아라한의 세계, 보살의 세계, 붓다의 세계를 말하고 있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를 <<금강경>> 위에 놓고 있습니다.

 

부처님들이(불과를 증한 붓다들이) 절대계에 계신다는 것을 내 책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에서 선언을 해 놓았습니다. 선언했는데, 세상 사람들은(세상 사람들이라고 하면 불교계의 인사들입니다) 알 턱이 없습니다. 지금 적정단계에도 들어간 사람은 정말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 그 단계도 없습니다. 아라한 없습니다.

 

그러니까 내 책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를 진단 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 책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는 정말로 확고한 신념으로 쓴 사자후이며, 생사관에 대해서 써 놓았습니다. 부처님들은(불과를 이룬 붓다님들은) 무아속 절대세계에 계신다고 선언을 해 놓았습니다.

 

 

지금의 천도재, 여기 밖에 안 됩니다.이 붓다 회상 밖에 천도재는 할 수 없는 거예요. 다른 절에서 아무리 해도 안되는 거예요. 백번 천번 해도 안 됩니다. 오히려 그렇게 되면 거기는 그 귀신소굴이 되고, 그 귀신들이 뿜은 탁기로 해서 성지가 큰 똥통 성지가 됩니다. 이걸 나는 말해줍니다.

 

그러니까 여기는 다 끝나면 성중이나 관세음보살님이나 이분들이 엄청나게 영적으로 청소를 해 주는데, 천도재 전보다도 더 깨끗하고 향기롭게 만들어 준다 그거요. 이게 무서운 거요. 여기는 그렇게 해요. 그리고 다른 데는 천도재를 하면 보내 줘야 되는데 보내줄 힘이 없습니다. 불러다 놓고 보내줘야 되는데 힘이 없으니까 거기에 앉아 버려요. 


그 성지에 눌러 앉아 버린 다구요. 그러니까 귀신이 아주 그냥 1개 여단이 있다고요. 큰 문제라고요. 여러분, 이게 문제입니다. 그리고 천도재든지 불공이든지 한번 쓴 쌀이나 과일은 절대 두 번 쓰면 안 됩니다.

 

  우리 절 보십시오. 철저 합니다. 최고로 써야 되고 두 번 다시 안 씁니다. 다른 절, 내가 왜 모르겠습니까? 총무원에서 부장을 얼마나 했는데요. 다 알지요. 두 번 세 번 다섯 번 쓰지요. 여러분은 몰라. 여러분을 속이니까.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내가 오늘 정말 중요한 법좌에서 그들에게 경고 합니다.

 

다음에 구렁이가 됩니다. 철저하게 구렁이 보를 받습니다. 내 책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에 어느 주지스님이 말을 하는데 입에서 구렁이 혀가 나온다고 했지요. 바로 그 죄였습니다. 그 분은 착한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천도재를 많이 한단 말이에요. 공양물을 두 번 세 번 쓴다고요. 올렸던 쌀을 가지고 떡을 해서 또 올린다고요. 현지사에서 그렇게 하는가를 살펴보세요. 만일 그런다면 여기는 큰일 납니다.

 

무아속 절대세계에 부처님이 계신다고 선언을 했습니다. 공성을 증득해 가지고는 붓다라고는 못합니다. 지금 선종(禪宗)에서는 '심즉시불' 이라고 해서 '견성=성불' 이렇게 보는데 이건 아닙니다. 그건 아니라고 <<법화경>> <비유품> 에 있습니다. "32상을 갖춘, 색신을 갖추어야 붓다이다" 라고 나옵니다. 그런데 그걸 보지도 않습니다. <<법화경>> 이나 <<화엄경>> , 그 대승경전, 경전의 꽃이라고도 하고 경전의 왕이라고도 하는 그 경, 우리는 인정합니다. 경전의 꽃이요 왕입니다.

 

<<법화경>> 과 <<화엄경>> 이 우리 현지사의 소의경전도 됩니다. 어떻게 불과를 증한 그 부처님의 위신력을 자세히 잘도 그려 놓았는지, 우리는 100%인정하지만 다른 불교에서는 그것을 알지도 못하고, 이건 뭐 도저히 이해도 안되고 해서 소설책, 무슨 문학작품, 이러게 봐 버리지요. 이 죄를 짓지요. <<화엄경>> 의 <불부사의품> <여래신력품> <십정품> <심통품> , <<법화경>> 의 <여래수량품> <신력품> 을 우리 현지사에서는 쌍수를 들어서 맞다고 증언합니다.

 

  여러분! 그렇게 아시고, 석가모니불을 봉창을 하시되 꼭 오늘 스님이 이야기한 이 수행체계가 전제가 되는, 이 마음 닦아 가는, 그러면서 염불 공부를 해야 됩니다. 그래야 타력이 옵니다. 부처님이 가피를 주십니다. 그걸 아십시오.

 

  내 법문은 선(禪)법문이 아닙니다. 주장자 탁 치고도 할 수 있지요. 옛날에 많이 했으니까. 그러나 이것은 안 되는 거요. 그리 해서는 안 돼요. 자기가 선(禪)의 경지, 그 격외의 경지를 모르고 그걸 최고로 알거든요. 거기서 두타 행을 해 가지고 완전히 찌꺼기를 빼버려야 됩니다. 이 거짓 나의 찌꺼기를요.

 

그래서 무아가 되어야 되거든요. 여기가 아라한입니다. 이렇게 가야 되는데 여기서 머물러 버립니다. 머물러 버리고서 온갖 막행막식을 한다고요. 부처도 없고, 지옥도 없고, 극락도 없고, 이렇게 나가 버린다고요. 그러면 그 죄는 정말로 정말로 큽니다. 그걸 이야기를 해 주는데도 나를 욕하고, 책을 보려고도 안하고, 본다고 하면 선(禪)입장에서 보려고 하고, 지옥이 없다 그거요. 어떻게 지옥이 있느냐?

 

공(空)에 들어가면 어디가 있느냐 그거요. 내 대답은 차별세계(差別世界)에 나와 봐라. 차별세계에 나와 보면 지옥도 있고, 하늘도 있고, 사람도 있고, 짐승도 있어. 공(空)세계에 가서 체험 안 해봤나? 축생도 없고, 사람도 없고, 나도 없고 너도 없고, 다 공(空)이야. 그걸 모르는 건 아니야. 


그러나 현상세계(경험세계)에 나와서 중생을 제도해야지. 죄 짓는 것은 죄 못 짓게 하고, 붙잡고 '착한 짓해라' 해야지. 이렇게 본 사람이 정말로 힘이 있는 법문을 하는 거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법문이 매가리가(힘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래를 씹는 겁니다.

 

여러분들! 하느님은 없으니까 깊은 믿음을 가지십시오. 하느님은 없습니다. 그건 우상입니다. 엿새 동안에 이 우주를 말 한마디로 해서 '있어 버려라' 해 가지고 이렇게 생겼다는 것은 말도 되지도 않는 거요. 이건 앞으로 발을 못 붙입니다. 21세기로 가면 안 됩니다. 철저하게 이제 검증해 나갈 것입니다. 그래서 일신교의 그 허황된 교리에 대해서 내가 흉보는 건 아니어. 그건 알아야 되는 거요.

 

  머리 깎은 우리 불상, 이것부터 부처님은 있다 그 말이어요. 여기 머리 깎은 불상이 있는 절 어디 있습니까? 세계 어디를 찾아 봐도 머리 깎은 불상은 우리 현지사에 와가지고 보실 거예요. 절대계의 부처님은 머리를 깎으셨거든요.

 

  절대계에 부처님은 계신다 하는 웅변이어요 여러분.

  할 말 많지요. 다보불에 대한 실체도 우리가 밝혔지요. 준제보살을 관세음보살로 알거든요. 그렇지 않습니다. 준제보살님은 칠구지불모왕불로서 모든 붓다의 어머니 역을 하십니다. 관세음보살님보다도 훨씬 오래전에 불과를 이루신 분이라는 것도 우리 현지사에서 외친 것이고, 지장보살도 십지보살이 아니어. 십지보살 가지고 그러한 깊고 위대한 원력을 수행 해 갈 수 없어. 그 행에 있어서도 지장보살은 너무너무도 거룩한 분이어. 이미 알고 보니까 불과를 증한 분이어. 시방여래불이어. 다만 서원(誓願)이 그랬어. 그런데 보살이라고 해가지고 지금 하고 있는데 이런 것이라든지,

   

오신채를 왜 안 먹습니까? 이것도 질문이 많이 들어오는가 봐요. 익혀서 안 먹고 생으로 먹으면 진심(嗔心, 성내는 것)을 더해줍니다. 익혀 먹으면(淫心)을 더해줍니다. 아셨습니까? 그래서 수행자들은 오신채를 안 먹습니다. 안 먹으나, 우리 현지사에서는 가끔 부처님께서 일부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요쿠르트 · 우유 · 계란이 든 빵도 안 먹거든요. 우유 · 계란 든 빵을 먹으면 큰일 나거든요. 모두 정토를 바라보니까. 정토를 바라보면 그것을 먹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이물질이 들어가면 안 되니까... 부처님께서 일부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일부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가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가 '우리 현지사 스님들처럼 그렇게 먹는 것에도 조심하시오' 이런 말 않습니다. 여러분이 가정을 가지고 있는 한 가정의 평화를 위해 주어야 되고, 우선해야 되니까 잡수세요. 다만 어떤 인연이 되어 가지고 이제 우리 현지사 스님이 되었을 경우 그때부터는 정말 지킵니다. 그래도 늦지 않습니다. 아셨죠?  

   


출처/현지사 법문집3권중- 2008.2.14.목  자재 만현 큰스님 부산 법문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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