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23일 수요일

왜곡되고 왜소화된 세계 불교의실상을 안타까워하며

 

무량겁 전에 우주 법계 최초로 불과를 이루시고, 다

시 2600여 년 전에 사바세계에 몸 받아오셔서 위없는

가르침을 주시고 대열반에 드신 후, 무아 속 절대계에

빛의 인격체로 여여히 살아계신 거룩하신 우리 교주

불세존께 백천만 번의 오체투지로 예경 드리옵니다.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우주적 진리의 불교가 2600

여 년의 오랜 세월을 거쳐 오면서 너무도 많이 왜곡

되고 왜소화 되어 위대한 불교 본래의 진면목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

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 왜곡된 우리 불교의 실상을 반성

적 차원에서 냉철하게 파악하고 왜곡의 원인을 정확히

밝혀, 진정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토대로 새로운 불교

의 방향을 정립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위대한 우리 불교의 진면목을 드러내어 정법을 세상에 널

리 알려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불교는

환골탈태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우리 불교도들이 깨어나야 합니

다.  긴긴 잠에서 깨어나, 훌훌 털고 일어나야 합니다.

눈을 똑바로 뜨고 귀를 크게 벌리고 마음을 활짝 열고

진리의 말씀 - 정법의 사자후를 드러야 합니다. 

 

구절 진리의 게송을 듣기 위해 흉악한 나찰에게 한 몸

을 기꺼이 던지는 설산동자와 같이 진리를 갈구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귀 기울여야 합니다.

 

수천 년 간 많은 훌륭한 학자들이 해설하고 주석을

해놓은, 그래서 불교의 정설로 굳어진 교설조차도 때

로는 과감하게 버릴 줄 아는 용기와 지혜를 가져야 합

니다.  이제까지 나의 분신처럼 가지고 있던 불교에 대

한 지식도 버릴 줄 아는 아픔도 감수해야 합니다.

 

지금 세계불교는 남방불교, 북방불교, 티베트불교라

는 세 갈래의 큰 흐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중 어느 불교도 부처님의 법통을

이어받지 못하고, 왜곡되거나 왜소화되어 있습니다. 

 

정법불교의 위대한 면면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

다.  이제 우리 불교의 실상을 아주 포괄적으로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불자로서 현행 불교

를 비판할 목적은 추호도 없음을 미리 밝혀 드립니다.

 

오로지 우리 불교의 앞날을 위해서라는 것이 유일한

이유입니다.

 

고대 인도의 마가다국 아쇼카왕 때 스리랑카로 전해

져 꽃을 피운 동남아시아 중심의 남방 상좌부불교는

스스로의 틀에 갇혀 감히 그 틀을 깨고 밖으로 나올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계율을 엄격히 지키는것은 높이 사줄만합니다. 위빠사나

행법도 불교 경론에 있는 수행법입니다.

 

그러나 그 수행법에만 집착하다 보니 부처님의 위신

력을 받는, 보다 수승한 수행법을 알려고 하지 않습니

다.  아라한이 수행 목표이고 해탈신을 갖는 보살이나

불신을 두는 붓다의 경지는 감히 생각하지 못하고 있

습니다.

 

부처님의 어마어마한 위신력과 심원한 적멸의 해탈

세계를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방불교는 이런 한계가 있지만 그래도 크게 왜곡

되지 않은 것만이라도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북방으로 전해진 중국불교와 한국불교는 소위 선불

교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으나, 태동  초기부터

외도사상과 혼합되어 불교의 본질에서 많이 벗어나 있

습니다. 

 

심즉시불이니 견성성불이니 하면서 그럴듯한 교설을

내세우고 있지만, 부처님의 참 경계를 이해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불교를 왜소화시키고 부처님을 격하

시키고 있습니다.

 

한국의 간화선도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화두를 들

려면 부처님의 성호가 가장 좋은 화두가 되어 밤낮

으로 불러야지, 왜 경전에도 없는 조사 스님의 말씀을

화두로 들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큰 성과도 없고 본격적인 수행의 시작단계인

견성,즉 공을 깨치는 수준에 이르는 것이 고작입니다.  그것

을 위해 고생스럽게 오랜 기간 수행을 해야 하는지 이제 한

번쯤은 되돌아볼 시점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래도 최후의 보루로서 티베트불교가 있지 않느냐

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랬으면 참 좋겠

습니다.  티베트불교는 수행체계가 잘 갖추어져 있긴

합니다. 

 

그러나 수행의 어는 단계에서 하고 있는, 힌두교 요가

수행이 가미된 밀교 수행법은 정법이 아닙니다. 또한 티베

불교의 지도자는 신통을 사용하여 환생을 함으로써

정법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티베트불교를 위한다고 하지만 정법에 반하

는 것은 하면 안 됩니다.  티베트불교의 우수성으로 주

장하고 있는 즉신성불의 교설은 불자들의 안목을

흐리게 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불신보신불이 얼마나 거룩하고 위대하고 차원

높은 존재인지도 모른 채, 중음계에서 우주 본성의 빛인

정광명을 받은 의생신을 보신불이라 여기는 어처구니

없는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세계 불교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

점을 몇 가지로 요약해서 정리해봅니다.

 

1. 세계 불교는 부처님의 실존과 위신력을 믿지 않

는 부처님 없는 불교가 되어버렸습니다.

 

2. 세계 불교는 인간의 실체인 영혼체을 부정하고 윤회

주체마저 없다고 하는 주인공 없는 불교가 되어버렸

습니다.

 

3. 우리 불교는 붓다가 되고 보살이 되는 완전한 생사

해탈을 이루는 수행법이 없는 불교가 되어버렸습

니다.

 

4. 우리 불교는 해탈법위와 해탈의 적멸세계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지 못하는 차원 낮은 불교가 되어버렸습

니다.

 

불교는 우주 법계의 법왕이신 부처님을 교주로 모시

고 있으며 완벽한 교리체계와 구원사상을 갖추고 있습

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신도 수로 보면 기

독교천주교 포함, 이슬람교, 힌두교 다음으로 겨우 네 번

째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신도 수가 종교 평가의절대적인 지표가 되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이것은 오늘날 불교의 위상을 보여주는

단적인 하나의 지표가 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입니다.

 

그리고 불교의 고향 인도에서는 불교가 사라져 버렸

습니다.  불교가 세계로 뻗어나가 널리 정착되지 못하

고, 아시아 일원에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을 정도로 쇠

퇴했습니다.

 

불교 교리의 위대함과 우주 법계영역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불교의 위상을 감안한다면 이는 초라하

기 그지없는 성적표인 것입니다.  그럼 불교가 왜 이런

모습이 되었을까요?  이제 그 이유를 한 번 찾아보겠

습니다

 

 

출처/2천년간 무아윤회 논쟁에 종지부

             영혼체 윤회론 

펴낸곳/현지사-영산불교사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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