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21일 금요일

붓다의 설법을 듣는 불가사의한 공덕

 붓다의 설법을 듣는 불가사의한 공덕


여기 와서 불과를 이룬 붓다의 설법을 듣는 공덕은 큽니다. 삼생을 두고 지은 공덕보다 큽니다. 그것은 대승경전상에 나와 있는 부처님의 설법 장면처럼 자재통왕불의 법문이기 때문입니다.

법왕자이지만 자재 만현은 아직 어리기에 오늘 이 설법에 와주신 우리 교주 불 세존과 더불어 다보불 등 오여래 큰 부처님, 문수·보현·관음·지장........... 수많은 부처님......... 특히 삼계의 법왕이신 석가모니부처님께서 깨끗하고 청정한 부처님의 광명을 놓으시어 청법 대중의 업장을 씻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각기 선근 따라 어떤 불자는 1겁, 10겁 등 겁 단위의 업장도 떨어져 나갑니다.

무량광이란 깨끗하고 청정한 부처님 광명을 말합니다. 두 눈썹 사이에서, 두 발바닥 법륜무늬에서, 온 몸에서 방사하는 억종광億種光, 열반광涅盤光, 백종오색광百種五色光입니다.

≪화엄경≫ 등 대승경전에서는 이를 티끌 수 같은 광명, 아승기 나유타 광명, 백천억 묘한 빛 광명…… 으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이는 안팎이 없이 드러나는 아름답고 영롱한 빛입니다. 한없이 방광해도 끝이 없습니다.

중생들의 앞에 있어도 그들이 볼 수 없는 희유한 빛입니다. 그리고 밝기는 섬광 이상입니다. 중생이 보게 된다면 가루가 돼 버릴 부사의한 부처님 광명입니다.

자성‧진여의 광명부터는 태양빛과 달라서 밝고 어두움, 멀고 가까움, 땅 속, 물 속, 사람들의 마음 속까지 비추는 것입니다.

특히 무량광부처님광명은 부처님의 우주적인 힘이 뒷받침되는 지혜의 빛입니다. 삼천대천세계 어디라도 비출 수 있고 천마, 외도 수장 모두를 조복할 수도 있고 중생의 업장을 씻고 소멸할 수도 있습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2권








자재 만현 법왕자의 설법

 자재 만현 법왕자의 설법


문수보살의 법의 아들 자재 만현 법왕자가 사자좌에 앉아 설법할 때는 절대계에 있는 자재통왕불께서 큰스님 몸속으로 드시고, 불 세존께서 정수리 위에 정좌하시고, 좌우보처 문수·보현보살께서 시립, 자재통왕불 좌우보처 상행·정행보살께서 큰스님 법좌 좌우로 서시고, 오여래 부처님들 수많은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부처님들께서 겹겹이 운집하십니다.

나, 자재 만현의 온 몸에서는 붓다의 청정한 빛을 방광합니다. 정토보살들, 성중들, 하늘 사람들 백천만이 이 법회에 모입니다.

불교 대승경전 서품에 나오는 부처님 법문 장면은 사실인 것입니다. 이 법회에 동참, 청법하는 전국 불자들은 업장이 정화, 소멸되는 엄청난 축복을 받습니다.

기氣, 공부해서 영적 능력이 있는 이들은 나, 자재 만현이 빛덩이가 돼 온 몸으로 부처님 빛을 방사하는 것을 봅니다.

이렇듯 붓다의 설법은 장관입니다. 법왕자붓다의 법문을 청법함은 삼생의 공덕을 합한 것보다 수승한 것입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Ⅱ≫ 20장

104위 화엄성중을 부리다

 104위 화엄성중을 부리다



광명 만덕 큰스님은 수초數秒 안으로 깊은 삼매에 드십니다. 지옥, 천국, 극락세계 어디든 보십니다. 귀신을 잡습니다. 

남섬부주교주 대행 자격으로서 104위 성중을 부리고 결과를 보고 받습니다. 이 나라의 안위와 세계 평화에 대한 필요한 영적 작업을 하십니다.

현지사 신도분들의 조상 영가들을 삼악도에서 구제해주십니다. 불자들의 복전이 돼주십니다. 무슨 원이든, 부처님께 선근을 심는 자이면 들어주시기도 합니다.

이곳으로 출가하여 수행하는 제자들의 업장을 씻어주시고, 마장도 막아주시고, 병고도 치유해주십니다. 고약한 외도, 천마도 떼어줄 수 있는 분은 세상에 큰스님밖에 없을 것입니다. 

여기 정법, 부처님 교단을 비방하는 자 있으면 살아 생전에도 무서운 과보를 받을 것입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Ⅱ≫ 20장




다 보 탑

 다 보 탑


다보탑은, 여러 불경 중 왕이라는 ≪법화경묘법연화경≫에 나오는 탑입니다. 탑 중의 왕입니다. 이 보탑 안에는 다보부처님의 전신全身이 항상 계십니다. 이 보탑이나 다보부처님은 불의 경계입니다. 불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몇몇 학승들이 ≪법화경≫이나 ≪화엄경≫을 작품시합니다.

불안佛眼이 열리지 않아서 이들 대승경전의 심오한 장면을 이해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다보탑도 사실이며 다보부처님도 확실히 계신다는 것을 강조해드립니다.

다보탑은 또 항하恒河의 모래 수와 같이 많은 본화보살님들의 거소居所이기도 합니다. 사바세계 아래의 허공 중에 머물러 부처님의 교법을 수호하면서 많은 항하사 수 권속들을 교화하고 있습니다.

다보부처님의 극락 정토세계는 영적 개념으로 볼 때 사바세계 땅 밑 동방으로 아승기세계를 지난 보정寶淨이란 국토입니다. 다보불은 거기 보정국토에 계십니다. 그 다보탑은 땅을 헤치고 솟아납니다. 불과를 증한 대성자는 가끔 이런 광경을 목격합니다.

우리 한국의 경주 불국사에 다보탑이 있습니다. 사바세계 유일한 다보탑입니다. 대승경전이 유포된 북방 불교권에서도 한국을 빼놓고는 다보탑을 볼 수 없습니다.

불국사의 다보탑은 물론 ≪법화경≫에 근거해서 축조됐습니다. 절대계의 실제 다보탑과 거의 유사하지만 실제는 5층으로 되어 있습니다. 설법당과 다보부처님의 거실, 시중드는 천녀들의 방, 본화보살들의 거실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 영산불교 현지사에서는 다보탑을 건립하기로 했습니다. 국내 최고의 기술진에 발주한 상태입니다.

헤아릴 수 없는 본화보살님들의 법위는 거의 상수보살들입니다. 불격을 갖춘 최상수보살들도 많습니다. 이들 보살들 낱낱의 능력은 문수·보현보살의 능력을 뛰어넘는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닙니다. 문수·보현보살은 붓다를 이루신 보살이십니다. 본화보살들은 절대계에 불신을 둔 붓다들은 아닙니다. 등각, 묘각의 위位에 이른 불격을 갖춘 보살들입니다.

항하사 수의 그 많은 본화보살님들은, 나유타하고도 아승기겁 전에 최초고 불과를 이루신 우리 교주 불 세존 석가모니부처님의 작품들이십니다.그간에 교화 받아 이런 출중한 최상수보살들로 자랐습니다. 실로 부처님의 하해와 같은 은덕입니다. 그 많은 보살들의 지도자이신 상행보살의 한 말씀을 여기 옮깁니다.

“우리는 불 세존께 이 몸 가루되어 바치더라도 오히려 그 은혜 다 갚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또 분명히 하고 싶은 점은 불국사의 다보탑은 점안이 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점안을 한다고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나 다보탑 점안은 원만보신들을 보고 상대하며 대론對論하는 불과를 이루신 붓다, 그런 붓다의 점안에 따라 실제 다보탑과 같은 기능을 하게 됩니다.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대적광전과 다보부처님 그리고 수많은 본화보살의 거소이기도 한 다보탑은, 불과를 이루신 큰스님들에 의한 점안을 통해 한국 땅 영산불교 현지사에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참으로 역사 이후 진정한 대작불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의 염원이 현지궁 현지사로 인해서 이루어지기 바랍니다.

출처 :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Ⅱ≫19장

대적광전

 대 적 광 전


신라와 고려왕조는 불교를 국교로 하였습니다. 따라서 호국불교로 백성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국운융창을 도모하였습니다.

이러한 호국불교 사상에 대한 근거는 ≪호국인왕경≫ ≪금광명경≫ 등의 호국 불교경전에 두고 있습니다.

신라의 자장율사는 외적의 침입을 막고 삼국을 통일하고자 호국 국방의 탑인 황룡사 9층탑을 건립했습니다.

고려조의 현종, 고종 대代 두 번에 걸쳐 조성한 대장경도 북방의 거란, 몽고 군대들의 침입을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격퇴하고자 판각한 것입니다.

금정산 범어사 또한 의상대사에 의해 왜구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물론 현지사의 대적광전·다보탑 불사는, 황룡사 9층탑이나 대장경 판각불사와는 비교가 될 수 없는 수승한 대작불사인 것입니다. 이 나라의 안녕과 번영 그리고 세계의 평화를 담보하는 불사 중 불사입니다.

영산불교 현지궁 현지사에서는 불과를 이루신 두 분 큰스님께서 청정법신 비로자나부처님을 모시는 대적광전을 건립했습니다. 꿈만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 많은 부처님들께서 상주하시고 현신하시게 됩니다. 다만 불과를 증하신 큰스님들께서 점안해야 합니다. 불과를 이루지 못한 이의 점안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여러 큰 사찰에도 대적광전이 있으나 부처님, 한 분의 보신부처님도 상주하시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점안이 안 되어 있어 그러합니다. 부처님들의 무한한 가피로 두 분 큰스님께서 살아계시는 한 평화로운 세상이라는 소원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불자들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는 이 사바세계 유일한 기도처가 될 것입니다. 영산불교 현지궁은 비로소 이 나라와 세계의 평화를 빚어내는 평화의 중심지가 됩니다. 세계 불교도의 진정한 정법도량이 될 것입니다. 부처님의 성지를 찾는 세계적인 명소의 보물 1호가 될 것입니다.



출처 :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Ⅱ≫19장





광명 만덕 큰스님은……

 


광명 만덕 큰스님은……


광명 만덕 큰스님은 어렸을 때부터 빨강 가사 장삼을 수하신 부처님들 꿈을 종종 꾸셨다 합니다. 특히 경을 읽고 자는 날이면 꿈에 부처님이 오셔서 공부를 이끄셨다합니다. 성년이 되면서부터 큰스님은 공부하실 때 집중력이 출중하시어 깊은 선정에 들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 선정 속에서 바위산에 터널을 뚫을 정도이며 관음보살님께서 바다 수면에 현신하실 때는 큰 연꽃을 염불의 힘으로 만들어 보살님을 떠받드시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큰스님은 정신을 집중하여 석굴암 부처님 상을 만들어놓고 석가모니불의 존호를 봉창하는 염불 공부를 하신 특별한 분으로서 깊은 불연 아니면 이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미 13년 전에 불과를 증하신 이래 부처님 세계에서 사시다시피 하십니다. 본격적으로 공부하신 이래 지금까지 하루도 부처님 공양을 거른 적 없으시고 꽃 공양 빠진 날이 없으십니다.

대쪽 같은 성품에 중생을 위하는 자비심, 부처님을 공경하는 마음 지극하시어 우리 제자들의 귀감이 되십니다. 삼계의 왕이시오 법계의 지존이신 부처님의 법통을 이으신 가섭존자이시며, 이제는 불과를 증한 법왕의 아드님으로서 좌우보처가 붓다이신 수보리 명상불, 사리불 화광불을 두십니다.

절대계 부처님 세계에서는 오여래다보불, 약사불, 아미타불, 보명불급으로서 광명불광명 만덕 큰스님의 보신불은 앞으로 남섬부주교주이신 부처님을 대해하시게 될 것입니다. 모든 붓다의 삼매에 자재하시고 104위 화엄성중을 부리신다는 점만 밝힙니다.

우리 영산불교 교단의 중핵中核으로서 중생의 복전이 되십니다. 11년 동안 나는 광명 만덕 큰스님과 함께 붓다로서의 지혜와 복덕을 닦음으로써 불과를 증할 수 있었습니다. 그 동안의 자세한 이야기는 지금은 말할 수 없는 밀장이 대부분이어서 내가 열반에 들기 직전 세상에 알리고 가기를 희망할 뿐입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Ⅱ≫ 20장
광명 만덕, 자재 만현 저


2023년 7월 13일 목요일

영체(영혼체)

  

영체(영혼체)



처음으로 지금 때가 되어서 내가 이 세상에 영체설을 밝힙니다. 영혼체(영체)이론입니다. 영산불교에서 오늘 공식으로 이 세상을 향해서, 1,200만 불자를 향해서, 세계 3억~5억의 우리 불자들을 향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이걸 여러분들이 들으시면 정리가 됩니다.

(1) 영혼체는 4개로서 다중구조를 지니고 있다. 즉, 영혼체는 밀도와 진동수가 다른 4번, 3번, 2번, 1번의 네(4)체(몸뚱이)로 겹쳐져 있다. 단, 4번에서 1번 영혼체로 갈수록 밀도가 높아진다.

(2) 4번 영혼체는 육체와 1․2․3번 영혼체를 접합하는 구실을 한다.

(3)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덩어리이다.

(4) 영혼체를 줄여서 영체라 부르기도 한다. 자이나교에서, 힌두교의 어느 학파에서,《아함경》에서는 식신(識身, 業身)이라고도 하는 그런 기록을 봤습니다. 과거생 자기의 의식과 기억을 지닌 생명체이다.

5)물리학에서 말하는 소립자보다도 더 작은 초미립자로 되어있다. 초미립자이기에 입자와 파동의 양면성을 갖고 있다. 파동으로 보면 극히 파장이 짧은 전자파에너지 생명체이다.

이상 다섯 가지는 힌두교에서도 이미 BC1000년 경, 그러니까 3000년 전에 그들 최고의 수행자(대성자)가 이를 보았습니다. 이 정도를 알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아래와 같이 깊이 파헤치지는 못했다. 붓다의 경지로 올라야 우리 영혼의 실체를 완벽히 규명하게 된다. 

19세기 신지학에서 힌두교의 이 영혼의 구조까지를 이해하고, 지금 이를 원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저것들이 모르는 영산불교의 영혼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들이 도저히 알 수 없었던 영혼체에 대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1) 인간에게는 누구나 행위의 주체요, 윤회의 주체인 영혼체라는 영적실체가(주인공이) 있다.

(2) 영혼체란 인간의식의 근거가(토대가) 되는 이 영혼을 담은 그릇이라는 말이다. 영적인 인간모습이다.

(3) 4번 영혼체는 이 몸뚱이와 100%닮았다. 3번, 2번, 1번 영체 역시 근간은 같은 닮은 형이다. 근간이 같다. 4번 영체의 수명은 한시적(限時的)이다. 이 몸이 명부로 들어가게 되면 그 4번 영체는 커트(cut)당합니다. 아시죠? 그 말이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 몸과 거의 같은 수명을 합니다. 그러나 비명(非命)에 죽게 되면 그 4번 영체로 살아가는데, 천도를 올린다든지 할 때 윤회의 주체이자 주인공인 1․2․3번 영혼체를 명부로 넣어주잖아요. 4번 영체(영혼체)는 그로부터 2, 3년 정도 있거나 화장(火葬)을 하게 되면 곧 소멸 됩니다만, 그렇지 않으면 그 4번 영혼체는 유령이 되어서 자기가 살던 집, 걸어 다녔던 낯익은 길, 자기의 묘지, 자기 위패가 기록된 영구위패로 모셔놓은 절을 왔다 갔다 합니다. 

그렇게 되면 젊은 자식을 잃은 어머니가 그 유령을 보면 어떻게 됩니까? 그래서 우리 현지사 천도재에서는 그 유령을 산화시켜줍니다. 그런데 요즘은 별로 안 해줍니다. 그것은 부처님께서 해주셔야 되기 때문에 그런 수고까지는 청하지 않습니다.

(4) 인간, 동물의 태중(胎中)에 들 때에는 이제 4번 영체가 생깁니다. 1․2․3번 영혼체는 안 그럽니다. 이것은 반드시 뭉쳐 다니는데 죽지 않습니다. 영원히 불사(不死)입니다. 4번 영체만은 인간이나 동물의 뱃속으로 들어갈 때에는 그때부터 생겨서 자랍니다.

(5) 소위 12띠 동물이면 영혼체가 들어간다. 조류 어류의 일부에도 그들 영혼체가 든다. 여러분 아시죠. 곤충류 벼룩 이(louse)와 같은 해충, 거머리 등과 같은 미물들, 식물 광물, 그리고 지수화풍 공(空)에는 영혼체가 들 수 없다. 이들은 윤회의 대상이 아니다. 자연생 자연사한다. 그러나 자이나교에서는 다 들어간다고 했어요. 잘못 본 것이다.

(6) 1번 2번 3번의 영혼체는 항상 뭉쳐 다닌다. 이것이 중생들의 주인공이다. 그 중에서 1번의 영체는 인간의 본체다. 힌두교에서 이야기하는 아트만 정도이다. 힌두교에서는 아트만이 윤회의 주체라고 하지만, 여기 영산불교에서는 아니다 그럽니다. 윤회의 주체는 1․2․3번 영체가 생겨야 됩니다. 

1․2․3번 영체하고 4번 영체가 생길 수 있는 업을 지어야 그것이(그 몸뚱이가) 윤회하는 주체가 됩니다. 1번 영체를 가지고는 절대로 윤회할 수가 없습니다. 1번은 본체계입니다. 본체계에 있는데 왜 윤회 합니까? 업이 있어야 윤회를 하지요. 그래서 업을 지어 감으로서 2번 영체가 생기고, 3번 영체가 생기고, 4번 영체가 생겨요. 이것이 윤회를 하는 거예요. 이것이 윤회를 해.

(7) 1번, 2번, 3번 영혼체의 수명은 무한하고 영원하다. 1번 영혼체의 수명은 무시로부터 있었고, 영원토록 불사(不死)한다. 이것은 엄청난 새로운 소식입니다. 이 영혼체는 바로 윤회의 주체이다. 즉, 이것은 다겁생을 내려오면서 지은 업 때문에 중생들의 영혼체 색깔은 대부분이 거무튀튀하다. 업장은 태산만하다. 

마치 숯덩이와 같고, 진흙덩이와 같아서 영산불교에서는 이를 비아(非我)라고 한다. 비아(非我), 나(我)가 아니다. 비아(非我)라고 한다. 바로 이것이 윤회의 주체가 된다. 비아(非我)라야 윤회합니다. 아트만과 같이 지고지순하고 행위 하지 않는 것은 절대 윤회를 못합니다. 2번 3번 4번이 붙은 비아(非我), 숯 덩어리가 된 이놈, 이 업 때문에 육도를 윤회 하는 거예요.

(8) 이 영혼체 3번으로 하늘 천국에 가서 난다(하늘 천국에 갈 때에는 3번 영혼체가 간다). 이때는 2번 영혼체와 1번의 영혼체는 그 안으로 겹쳐든다. 성중하늘은 2번으로 간다. 이때도 3번 1번은 그 안으로 겹친다. 1번 영혼체로 극락에 왕생한다. 3번 2번의 영혼체는 그 안으로 겹친다.

(9) 영혼체는 그 사람의 영격에 따라 빛(색깔)을 띄우고 있다. 오라와는 다르다. 오라(aura)는 영혼체의 색깔이 그 사람의 몸뚱이를 거쳐나온 색깔이다. 지옥 등 악도로 떨어질 사람은 영혼체가 거무튀튀한 색깔이다. 하늘이나 인간의 몸을 받아 올 사람은 하얀색이다. 보살은 아침 햇빛깔이고, 불과를 증한 이는 눈이 부셔서 볼 수 없는 햇속 빛이다. 그러면서 안과 밖이 투명하고, 영롱하고 아름다운 무량억종광 빛이다.

(10) 부처님은 수행자의 다겁생의 업장을 씻어주시고, 또 그것을 소멸하실 수 있다. 그 영혼체에 더덕더덕 붙어있는 그런 업장들을 부처님만이 씻어주시고, 소멸도 하신다 그거예요. 유대 신비주의 카발라에서 자기 신의 애제자의 수행을 돕기 위해 그들의 하늘 최고신은 빛을 정수리에 쏟아 부어서 빛의 몸으로 만든다고 한다.

그래서 영원히 죽지 않는 자기의 천국으로 데려간다. 그러나 우리 불교의 교주이신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수행자의 영혼체를 꺼내어서(꺼내는 것부터는 그들은 할 수 없다. 영혼체를 끄집어내는 것은 오직 부처님만이 하신다) 끈끈이 막으로 각 영혼체가 붙어 있는 것을 무량광으로 씻고 닦아 4영혼체를 분리 한 후(그들은 분리도 못한다.

세계의 어떤 종교의 교주도 이 일은 못한다), 몸뚱이까지 다섯 개의 영혼체 각 정수리 위에 부처님이나 오여래부처님이 올라가서 억종무량광으로 쏟아 붓는다. 먹물 같은 업장의 찌꺼기가 내를 이룬다. 이 정도 되면 지옥은 가지 않습니다. 

이건 순 타력이지요. 자력수행 갖고는 못합니다. 이러기를 여러 번 작업 함으로서 아라한을 보살로 만든다. 이러한 작업은 부처님과 오여래, 그리고 문수 보현 관음 지장 정도의 기라성 같은 붓다만이 할 수 있다.

또 영혼체를 감은 쇠토막 같은 업장은 아주 지중한 업을 짓게 되면 그렇게 되는데, 석가모니부처님 만이 이를 끊어 주시고, 그 끊겨진 쇠토막들은 삼매화라고 하는 불 속으로 던져 녹여버린다. 녹여 소멸시켜 주신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또 그 영혼체의 쇠토막이 다시 붙기 때문에 그렇게 까지 해주신다. 자력을 기반으로 하고, 타력 수행만이 보살과 붓다가 될 수 있다는 말의 뜻이 여기에 있다.

여기부터는 밀장이어서 여태 말을 못했지만, 지금 현재 이 불교에서 영혼체를 부정하기 때문에 오늘은 이 부분까지 과감하게 말씀을 해드립니다.

(11) 업이 지중한 이의 영혼체는 부처님도 몸에서 꺼내기 조차 어렵다. 그 영혼체는 다겁생으로 내려오면서 지은 업장이 두터워 태산만 하고, 숯검정 같고, 영혼체 끼리는 껌과 같이 달라붙어 있으며, 몸뚱이와도 하나로 붙어 있어서 꺼내어 씻는 것조차도 어렵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당신의 금단을 영체에게 먹인다(영체 속으로 믹스시킨다). 한의원에서 만드는 환약 같은 금단이라고 있어요. 각 부처님마다 이런 신비스러운 약이 있습니다. 영체 속으로 그걸 흡수시킴으로서 밖으로 꺼낼 수 있다. 꺼낸 다음 네(4)영체를 억종광명의 빛으로 분리하신다. 이런 과정을 거친 수행자는 지옥 등 삼악도를 면한다. 이때 빠져나가는 먹물 같은 오물은 도랑을 이룬다.

(12) 아까 말씀했지요. 보살의 법위부터는 영혼체를 꺼내어 놓으면 즐거워서 뛴다. 4영혼체를 분리해 놓으면 각각 즐거워서 환희용약한다.

(13) 불과를 이룬 대성자의 영혼체는 스스로 나와서 4개의 영혼체가 독립적으로 뛰어 놀고, 공중이나 물속에서 자유자재로 활동한다.

(14) 아라한까지의 영혼체는 그 사람 몸뚱이의 옆으로 나오고 들어가지만, 보살 이상의 영혼체는 앞으로 나오고 앞으로 들어간다.

(15) 불과를 이룰 수행자나, 불과를 이룬 이의 영혼체는 절대계 목욕탕의 가장 위의 탕인 (약사여래부처님이 계신 저 약사궁에는 삼탕이 있는데) 일탕에서 영혼체를 분리해서 목욕을 시킨다(목욕을 한다).

(16) 불과를 이룬 대성자가 잠을 잘 때,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오시면 곧 몸 밖으로 영혼체가 빠져나와 오체투지 인사를 한다.

(17) 불과를 이룬 이는 열반에 들 때 1번 2번 3번 4번 영혼체는 바람같이 몸을 빠져나와 절대계의 자기 불신으로 들어가 계합한다.

(18) 과거생에 불과를 이룬 붓다가 사람 몸을 받아 오실 때는 자기불신 속 4영혼체가 어머니 뱃속으로 든다.

(19) 불과를 이룬 붓다는 업이 없다. 악연도 모두 단절되어 있고, 원결도 없고, 갚아야할 빚도 없기 때문에 태어나면 그 용모가 32상을 갖추고, 지혜가 있고 자비스럽다.

(20) 어머니 뱃속에 있음을 알고, 이 세상에 나옴도 안다. 소위 생이지지한다.

이상 스무 가지입니다. 위의 다섯 가지는((1)~(5)) 자이나교나 힌두교에서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후 많지만 스무 가지는 우리 영산불교에서 이 세상에 처음 발표한 내용입니다.

이야기입니다. 여러분들이 영혼체에 대한 이해를 충분히 하시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두 가지 실화를 소개하겠습니다. 1924년이니까 약85년전입니다. 진주시 옥봉동에 사는 '김재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진주시 옥봉동이라는 동이 있는가 봐요. 

그 김재이라는 노인은 80살을 먹었어요. 또한 진주시 비봉동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김재이라는 이름을 가진 38살 먹은 사람이 있었어요. 그런데 비봉동에 사는 38살 먹은 김재이라는 사람이 저녁에 잠을 잡니다. 꿈이라고 봐도 되지만 꿈이 아닙니다.

형사 같은 이가 와서 ‘좀 가야할 일이 있으니까 나를 따라 가자’그러더래요. 그래서 그 형사를 따라갔습니다. 어디만큼 갔는데, 어느 큰 관공서(경찰서)같은 곳으로 들어갔다 그거예요. 여기에 들어가라고 하면서 밀어 넣는데 보니까 이미 20여명이 와있더라 그거요. 

그런데 한참 있으니 밖에서 소란스러운 말소리가 나서 가만히 들어보니까 비봉동에 사는 38살 먹은 김재이를 내보내라 그거예요. 왜 옥봉동80노인 김재이를 안 잡아 왔냐 그거라.

그래서 비봉동 38살 김재이가 석방되어 자기의 집으로 왔다 그거예요. 와서 시계를 보니까 새벽 2시예요. 그래서 아침 일찍 종을 시켜서 옥봉동 80노인 김재이씨 집을 가보라고 했어요. 가봤더니 거기에 초상이 났어. 그래서 ‘김재이라는 노인이 몇 시경에 운명하셨오’ 라고 물으니까 ‘새벽 3시쯤 됩니다’ 라고 하더래.

따라가고, 잡혀가고, 또 오고 한 놈이 뭐죠? 영혼체입니다. 4번 영혼체. 4번 영혼체 속에 3번 2번 1번이 겹쳐있습니다. 4번 영혼체는 우리 사람과 털구멍 하나 틀림없이 100% 닮았다고 했지요. 1․2․3번 영혼체도 닮아 있습니다. 사실은 1․2․3․4번 영혼체가 닮았습니다. 그런데 올라 갈수록 조금씩 모양이 다르지만 근간은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에 천도되어 가지고 올라간 어머니 아버지는 척 보면 알아요. 지옥에 있었는데도 알아. 그런데 천도를 몇 번 하니까 하늘에 올라가셨어요. 우리의 경우입니다. 아버지인지 어머니인지 그냥 알아. 또 우리 어머니가 성중하늘을 가고 극락세계에 이제 가셨잖아요. 아주 잘생기고 빛이 나고 하는데도 우리 어머니가 이렇게 아는 거예요.

그걸 근간이라고 하는데, 근간은 변하지 않습니다. 근간을 가지고 그냥 알아봐지더라. 그런데 대승불교쪽인 유식학, 부파불교에서는 무아설(無我說)하고 윤회의 주체 간에 모순이 없도록 이론을 창출하려고 굉장히 노력을 했습니다. 

그 결과 심상속 이론이 나오고, 푸드갈라 이론이 나오고, 무슨 근본 식이 나오고... 많이 나오잖아요. 대승불교 쪽으로 와서도 역시 그렇습니다. 아까 스님이 말씀했던 것처럼 가령, 지옥이라든지, 윤회의 세계(육도의 세계)라든지, 또 적멸의 세계(해탈의 세계)라든지, 불보살님이라든지, 심지어 선불교에서는 삼보라든지 붓다의 삼신설이라든지 하는 그 전부를 마음차원에서 해석해버려요. 

이래서는 안 된다 그거예요. 이렇게 되면 불교가 망한다는 것이지요. 그것을 누가 믿겠어요. 이렇기 때문에 인도에서 쫓겨나왔는데 말입니다.


그러면 영산불교에서 공식적(대내외적)으로 내가 '아난이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내말을 어떻게 합니까? 그런 사람이 아니고는 말할 수 없는 거예요. 그런 사람이 아니고는 저 적멸의 세계라든지, 대적정삼매에 들 수가 없는 거예요.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우리 신도 중에서 어떤 남편 이야기예요. 성명은 생략합니다. 어떤 모 사장이 50대에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어요. 그 부인 되는 분이 선근이 있어요. 그래서 우리 영산불교를 책자를 통해서 알고, 우리 신도가 된 지가 2, 3년 됩니다. 49재를 의뢰해왔어요. 그 부인되시는 신도분이(보살님이) 대단히 착하고 진실하고 전생에 선근이 있어요. 그래서 신경을 써서 천도재에 임했습니다.

그 남편의 49재는 그분이 살았을 당시에 다녔던 절에서 했으니까 아마 49재가 지나갔을 거예요. 우리 현지사에서 새로이 천도재를 하면서 보니까 무주고혼으로 있어요. 명부를 못 들어갔어요. 

이런 이야기는 지금의 불교가 전혀 모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들어보지 못했으니까 돌았다든지, 묘한 말을 한다든지 해가지고 색안경을 쓰고 본다 그거예요.

지금의 불교가 이렇게 되어버렸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 무주고혼이 된 그 남편을 붙들어 왔지요. 붙들어 오는 것도 정말로 능력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아시죠? 그 남편 되시는 분은 자수성가를 해가지고 돈을 많이 벌었어요. 그러니까 사랑하는 처자가 있지, 돈이 있지 하니까 죽어서 무주고혼이 되는 거예요.

무주고혼이 되는 4가지 이유가 있다고 했지요. 어쨌든 무주고혼이 되어있어요. 그래서 잡아다 놓고 ‘당신, 명부를 들어가라. 명부로 들어가지 않으면 당신이 지금까지 지은 업이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죽으면 저 불바다 지옥으로 간다. 그러니 말을 들어라’ 하니까 말을 잘 안 들어. 이 몸뚱이가 그대로 가니까 자기가 죽은 줄도 몰라. 전혀 모릅니다. 모르는 거예요. 

‘당신은 죽었다. 자, 봐라.’ 그래가지고 큰스님의 영혼체가 큰스님의 몸에서 쏙 빠져나와가지고 보여줍니다.

그 영혼체는 빛덩어리이기 때문에 눈이 부셔서 상하니까 빛을 흡수해버립니다. 그러면 빛이 아롱아롱해요. 보여주면서 이것이(영혼체가) 바로 내 몸속에서 나왔잖느냐. 당신도 그래. 지금 당신도 그랬어. 죽었는데 지금 죽었다는 것을 몰라. 나 들어간다 하고 쏙 들어가거든. 또 나가고 하니까 이제 알아.

그제야 ‘아! 그렇습니까’라고 한단 말이에요. ‘이 큰스님 말을 안 들으면 당신은 업이 지중하니까 저 불바다 지옥으로 간다’고 하니까, ‘아! 그러냐’고 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들어가거라. 들어가고, 저 사랑하는 처자를 위해서 네가 몰래 감춰두었던 돈, 모든 통장(사후에 형제들 끼리 재산다툼도 있잖아요. 그걸 막아주기 위해서입니다)등 모든 것을 갖다 줘라.

그러니까 그 사장이 모든 통장이며 도장, 자기의 통장이며 도장 등 모든 것을 갖다가 자기 부인한테 안겨주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지금 한 몇 십일 동안 부인 몸속에 들어가 있었는데 그 기를 빼라. 그것을 빼야 됩니다. 

그래야 환영(幻影)이 없어집니다. 주~욱 빼가지고 한 짐 짊어지고 명부로 갔어요. 그 부인 되시는 분이 착하고, 신심이 있고, 선근이 있어서 그 남편의 천도재를 몇 번 해서 지금 제3하늘에 있습니다.

우리 신도분들, 이 법문을 듣고 계시는 우리 불자님들, 영혼체라는 것이 우리 인간 중생의 윤회 주체입니다. 윤회의 주체입니다. 이 윤회의 주체를 아무도 모릅니다. 앞에서도 말씀했듯이 깊이 공부를 많이 하고, 착실히 하고, 바르게 하고, 그리고 선근공덕을 지어야 현상세계에서 본체계로 들어갑니다. 윤회에서 벗어난다는 말이어요.

그런데 이 윤회에서 벗어나는 분들이 얼마나 됩니까? 혼자 공부해가지고는(자력으로는) 어렵습니다. 자력으로는 어려운 거예요. 자력의 한계가 윤회를 벗어나는 아라한 자리인데, 아라한 되기가 어려운 거예요.

다만, 부처님의 가피로(위신력으로)해서 저 본체세계(적멸의 세계)로 갑니다. 보살이 되고 그러는 것입니다. 우리 부처님의 능력은 정말 무한하더라 그거예요. 왜 그러느냐? 이제 적멸의 세계를 이야기할 때 말씀을 드리겠지만, 우리 부처님의 능력은 상상할 없습니다. 

그래서 '우주적인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우주적인 능력을 지니고 계시더라. 지금 그 많은 붓다님들을 전부 없다고 하네. 상징으로 봐버려요. 비유로 봐버려. 그런 세상이 되어버렸어.

그런 불교가 어떻게 크겠습니까. 진리 아닌 것은 죽는 거예요. 진리는 반드시 살아나는 거예요. 우리 현지사 3, 4년 밖에 안 되었지만 사방에서 엄청나게 시기 질투가 심합니다. 이게 TV석상이라서 자세히 말을 못하는데, 외압이라고 할까 시기 질투가 너무도 심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성장해왔잖아요. 

앞으로 정말 클 것입니다. 아무리 사방에서 우리가 잘 되는 것을 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성장할 것입니다. 우리 부처님 말씀이, 정말로 진짜 부처님 사상이 널리 포교 되어야 합니다. 널리 포교 되어야 됩니다.

우리 현지사 착한 우리 단월님들, 3년 5년 다녔잖아요. 그래서 업장을 많이도 씻었잖아요. 업장을 씻는 그 부분을 전혀 모릅니다. 저쪽에서는 부처님도 없다고 하는데, 무슨 업장을 씻는다고 해? 전혀 모릅니다. 

이 방송, 이 말을 들으면 아마 의아해 하고, 어떤 선근이 없으면 욕하고 그러겠지요. 그러나 그런 업을 지으면 안 됩니다. 이것은 법을 능멸하고 모독하는 것입니다. 그 업은 오역죄보다도 더 무서운 거예요. 법을 능멸하고, 붓다를 모독하는 것은 무서운 업이랍니다.

무아(無我), 범어로는 아트만(atman) 앞에다가 an을 더 붙여줍니다. anatman그럽니다. 무아(無我, anatman), 현상계의 무상한 몸이 내가 아니라는 것이야.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이야. 우리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을 뿐이어. 그런데 왜 무아(無我)를 갖다가 단순하게 ‘내가 없다’라고 해석 해가지고 불교를 그 인도 땅에 설자리가 없도록 만들었느냐구요. 

이 위대한 불교가(종교가) 이미 세계화 되어 있어야지요. 세계화 되었어야지. 그러나 이런 법문을 듣고, 깊이 스스로 반성하고 참회하고 한다면, 우주적인 종교인 진짜 불교가 원상대로 복원 될 것입니다.

심지어 저 사람들은 석가모니부처님 같은 위대한 부처님도 반열반에 드시면 공(空)과 계합한다 그래요.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공(空)과 하나로 되어버렸으면 어떻게 됩니까? 다시 오겠습니까? 올 수가 없지요. 공(空)과 하나로 되어버렸어. 

인격적인 자아가 소멸되어 버린 거예요. 소멸되었다고 하면 어떻게 됩니까? 부처님께 다시 못 오십니다. 이렇게 해석하면 안 되지요. 큰일 날 해석이지요. 거듭 말씀을 드립니다. 본체세계(적멸세계)는 상락아정입니다.

상락아정이라고 해요. 거기는 무상(無常)하지 않아요. 상(常)이어요. 현상계인 여기는 실체가 없고, 인연이 모여서 이루어지고, 또 인연이 다해서 흩어지면 실체가 없지요. 그건 현상세계에서 이야기하는 말이어요. 그건 맞아. 

그러나 적멸세계까지 들어가 봐. 거기는 아(我)입니다. 유아(有我)예요. 거룩한 보살님들이 계셔요. 부처님들은 정말로 절대계에 계시고요. 또 현상세계 윤회 안의 지옥도 영혼체가 가는 것이니까 가서 벌 받고, 또 하늘은 3번 영혼체가 간다고 했지요.


3번 영혼체가 하늘 천인으로 있단 말입니다. 그런데 유식에서는(대승불교에서의 유가행파인 법상종) 제8아뢰야식이 윤회의 주체가 된다고 합니다. 여러분, 전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식(識)은 절대로 윤회의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스님이 무슨 비유를 했느냐 하면, 식(識)이 극락을 간다? 식(識)은 느낌도 없고, 생각도 못하고, 판단도 못하고 그럽니다. 

그 모양도 없는 식(識)이 떨어져 나가가지고 극락을 가서 산다? 식(識)이 행위 한다? 행위 하지도 못해. 식(識)은 과보를 받지도 않아. 다만 이 근(根)이 있어야 돼. 이 몸뚱이가 있어야 되는 거예요. 몸뚱이가 있고, 경계가 있어야 식(識)이 생기는 거예요. 식(識)이 활동을 하는 거요.

그런데 이 몸뚱이가 없다고 해버리면 영혼체(영혼을 담은 그릇, 영혼을 담은 몸뚱이)가 벌을 받고 또 극락에 가서 ‘햐! 여기는 정말로 환희로구나’한단 말이에요. 붓다가 되면 아까 무아속 환희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힌두교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브라만은(梵은) 100^7(100의 7승)의 환희 속에 있다 그러거든요. 그러니까 인간들이 누릴 수 있는 최고 쾌락의 100배에다가 지수 7승을 해줘요. 그런데 우리가 볼 때에는 그게 참 우스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붓다는 그럽니다. 범(梵)은 붓다가 아닙니다. 자기들의 말로 하자면 범(梵)은 이 현상계를 낸 소위 창조주이지요. 창조주는 없습니다. 힌두교 식으로 말하면 현상계를 낸 창조주입니다. 이 범(梵)은 공(空)입니다. 

공(空)을 인격화 시킨 것이 범(梵)이어요. 범(梵)은 인간이 누리는 최고 행복, 최고 쾌락의 100^7이다라는 것입니다. 붓다의 무아속 절대세계에 들어가는 대적정삼매의 환희가 그 정도입니다. 무아(無我)를 잘못 해석 했지요.

다시 여러분들한테 바른 정의를 말씀드립니다. 현상계의 존재인 나는 무상하고, 실체가 없는 오온으로 이루어진 집합체에 불과해. 그렇지요. 무아(無我)는 실체로서의 진정한 나(我)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현상계의 나(我)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으로 무아를 이야기하신 거예요. 그러지, 나(我)라는 것은 완전히 없는 것이다. 

실체가 없는 것으로 현상계의 시각에서 보지말라 그거예요. 현상계의 시각에서 불교를 다루지 마라 그거요. 적멸세계와 본체계와 현상세계를 아우르는 시각에서 불교를 다루어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이해하시겠습니까?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무아(無我)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승경전에 나오는 그 수많은 불보살을 어떻게 해석 합니까? 어떻게 해석하는 줄 아십니까?《화엄경》《법화경》이 진짜 법문인데 상징, 비유로 해석합니다. 

부처님 반열반 후에 두 세 사람의 학승을 꼽으라면 용수, 무착, 세친 같은 분들을 꼽을 거예요. 무착 같은 분이 윤회의 주체를 알려고 하면서 무아(無我)를 갖다 놓기도 했지만, 윤회의 주체가 있어야 되겠거든요. 

그런데 없다고 하니까 이거 도저히 알아낼 수가 없어서 자살을 결심했답니다. 자살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친구의 권유로 계속 공부를 해가지고 삼매에 들어 도솔천에 가서 미륵부처님한테 유식의 이론을 공부해가지고 왔어요.

이분을 유식학의 조(祖,鼻祖)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8아뢰야식 갖고는 윤회를 못합니다. 식(識)으로는 윤회가 안 됩니다. 식(識)은 윤회의 주체가 안 됩니다. 몸뚱이가 있어야 됩니다. 이걸 몰랐어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지금의 불교는 이대로 가면 안 됩니다. 이대로 가면 안 됩니다.

 크게 공부해서 대선지식이라는 분이 출세했다고 하면 법상에 올려놔야지요. 왜 내려 버리려고 합니까? 그분의 말씀을 경청해야지요. 들어봐야지요. 정말로 한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불자들은 앞으로 모두모두 삼악도를 벗어나야 됩니다. 최소한 하늘을 가야 됩니다. 

최소한 하늘, 그리고 인간세계를 왔다 갔다 하다가 부처님 회상을 만나서 윤회를 벗어나야 됩니다. 여러분, 그걸 잘 아시죠. 그런데 종래의 불교는 안 그럽니다. 

붓다도 없고, 보살도 없고, 극락도 없고, 지옥도 없고, 귀신도 없어요. 영혼이 없다고 딱 성명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교화할 수가 없습니다. 도덕 윤리를 주장할(선창할) 기반을 잃어버렸는데, 어떻게 그 윤리 도덕이 가치가 있습니까? 이렇게 되면 안 되지요.

출처/2010.5.6.목요일 자재 만현 큰스님 춘천법문 (BBS불교방송 제2회)중에서 발췌



왜소화된 불교/삼신

 왜소화된 불교/삼신



우리 불교는, 위대한 우리 불교는 왜소화 되어버렸습니다. 현재 아라한이 목표입니다. 아라한도 아닌 깨달음을 종착지로 하고 있습니다. 대단히 슬픈 일입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공부한 바로는 이거 안 되겠다 싶어서 책을 썼고,

70여회에 거쳐서 이 문제에 대해서 법문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래의 불교로 올려줘야 됩니다. 불교는 위대합니다. 본래 불교는 아라한을 넘어서 보살, 보살을 넘어서 붓다 이루는 것입니다. 붓다를 이루었다고 하는 것은 우주 진리․ 우주 본체와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 합니다.

우주 본체와 하나가 된 것을 법신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법신불이라고 하는 개념을 학자들도, 그 어떤 스님들도 모릅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법신불에서 보신불이 나옵니다. 불과를 증한 분은 유․무를 초월한‘무아 속 절대계’에 자기 불신을 두는 겁니다. 이건 대단히 엄청나고 매력적인 이야기입니다.

그 불신에서 천백억 화신을 냅니다. 천백억 화신을 내어서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중생 국토에 가서 그들을 교화 합니다. 그리고 그 보신에서 이 사바세상에 사람 몸을 받아 옵니다. 인신을 받아 옵니다. 그 인신을 응신, 응화신, 화신 그럽니다. 이렇게 불과를 이룬 어른은 세 몸을 둡니다. 법신불․보신불․화신불. 이제 조금 더 깊이 이야기 해드립니다.

보신불은 상대세계(경험세계)를 초월해서 저 절대계에 몸을 둡니다. 그 절대계에 몸을 두는 그 보신의 모습은 32상80종호를 갖춥니다. 그 이상입니다. 그 몸뚱이는 부처님의 개끗하고 청정한 광명의 빛입니다. 

무량광입니다. 그 무량광으로 이루어집니다. 무량광은 소위 모든 존재의 근원인 빛, 그것을 자성광명이라고 하는데 그 자성의 광명보다도 훨씬 더 깊이 들어가야 정토(극락세계의 빛)세계의 빛이 나오고,

거기서 한없이 수행하고 보살행을 완성해서 절대계에 이르는데 그 절대계는 무량광의 세계입니다. 그 무량광으로 붓다의 몸이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몸뚱이를 원만보신(줄여서 보신불)이라고 합니다. 빛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미래제가 다하도록 영원히 멸도 할 수 없습니다. 죽을 수 없습니다. 그 절대세계는 환희의 세계입니다. 

환희의 세계. 여러분, 극락을 표현 할 수 없어서 극락(즐거움의 극치)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절대계의 부처님 세계는 극락을 백 천 만 배 보다도 훨씬 뛰어 넘어서 환희 자체입니다. 빛으로 이루어져 있지, 환희 자체입니다.

환희 자체인 그 세계는 대적정삼매(대적광삼매)를 통과해야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원만보신(보신불)의 세계는 그러합니다. 이 지구가, 이우주가 완전히 파괴되어도 거기는 미칠 수 없습니다.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수행자는 목표를 붓다 이루는데 두어야 됩니다. 원만보신이 필요에 따라서 자기 몸뚱이를 백 천 만억의 몸으로 동시에 나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는 우주의 수많은 중생국토에 가서 교화를 합니다. 인간 몸으로 받아 온 이 몸뚱이를 화신불(화신, 응화신)이라고 합니다.

이 자리를 빌어 여러분한테 스님이 간곡히 말씀해 드릴 바가 있는데, ‘광명 만덕 ․ 자재 만현’을 우리 입으로 부처님이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내 책<21세기 붓다의 메시지>이 나가고 해서 여러분들이 그렇게 부르는데, 앞으로 부처님․ 

붓다라고 부르지 마시길 바랍니다. 여기 화신은 어디까지나 화신입니다. 저기 절대계에 있는 불신(원만보신)은 부처님이올시다. 여기 와서 처음으로 깨달았건, 어떤 겁 전에 불과를 이룬 분이 사람으로 와서(인신을 받아와서) 다시 불과를 이루었던 간에 이 몸뚱이는 화신입니다.

화신과 보신은 대단히 차이가 있습니다. 화신과 보신은 한 몸이지마는 유한한 물질로 이루어진 이 육신의 능력과 지혜는 저 보신의 능력과 지혜를 따를 수 없습니다. 

저 보신이 이 육신(화신)속으로 들어와도 그 무량한 지혜와 능력을 주지 않습니다. 내가 받으면 이것이 가루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받을 수 없습니다.

죽을 때 이 네 개의 영체가 자기 불신과 합일이 됩니다. 계합이 되어버려요. 그 때의 그 불신의 능력은 무한하지요. 합일이 안 된 상태의 그 절대계에 있는 보신불의 능력은 무한합니다. 능력이 무한합니다.

자, 삼신을 갖추고 있지요, 소승이나 대승에서 이야기하는 18불공법이 있는데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무한한 능력이 있습니다. 붓다라고 하면 엄청난 능력이 있습니다. 내가 한 70여회를 두고 가끔 가끔 부처님세계의 이야기를 하는데 여러분들도 어느 정도 이해를 하실 겁니다.



2008. 9. 7. 토(음8.8)큰스님 춘천법문중 발췌



왜소화된 오늘날의 종교

 왜소화된 오늘날의 종교



2600여 년 전 영산 당시 이후로 불신관佛身觀, 불佛의 삼신설三身設은 두터운 장막 속으로 가려져 버렸습니다. 사람 사람 마음 속 자성에서 삼신三身이 해석되고 있습니다. 크게 왜곡된 것으로, 눈 먼 선량한 중생을 오도誤導하고 있습니다.

우주적인 불교는 여기서부터 왜소화矮小化돼 버렸습니다. 축소화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오늘날의 여러 나라 불교, 특히 한국의 선禪불교는 깨달음만을 소중히 하고 있습니다.

선불교에서는 깨달음이 목표요, 수행의 종착지입니다. 이제부터가 중요한데도 말입니다. 음계‧중계를 철저히 지키면서 나없는 공부, 두타행으로 공성空性을 증득하여 아라한과를 증해야 합니다.

나아가 자·타력수행으로 정토업을 닦아 삼계를 완전히 탈출하여 보살이 되어 서방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영원히 불퇴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보살도를 완성하여 절대계에 빛으로 이루어진 자기 부처를 이뤄야하고, 상적광세계에 자기의 청정법신불을 두어야 비로소 수행은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실로 위대한 우주적인 메타 불법佛法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2권

불가의 가르침은 본성을 철견하는 것이 일차적 목표

 



불가의 가르침은 본성을 철견하는 것이 일차적 목표




진여일성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참됨의 본성을 뜻한다. 불

가의 가르침은 본성을 철견하는 것에 일차적 목표를 둔다.

이 본성이란 본 면목, 자성, 참 나라고 일컬어지는 것으로 이것이 바
로 우주의 체성이다.

자신의 마음이 근원 일성으로 돌아가면 본 고향에 돌아온다. 그

래서 유가에서는 이를 복명이라고 하여 명(목숨)을 태어나

기 이전의 원래 생명의 시기로 되돌인다는 것이다.

이것이 견성이다. 본성을 체화하여 증득하면 그것으로 성품과
계합하여 하나가 된다. 여기까지가 삶도 죽음도 없는 시공을 초월한

경지이다.

오온은 집착을 일으키는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을

의미하며, 이 오온이라는 것에 의해 오감이 일어난다. 오온의 본

질이 텅 비어 있음을 관하기 위해서는 계율, 특히 음계를

철두철미하게 지켜야 한다.
사실, 불가의 가르침이 귀중한 이유는 계 정 혜 삼학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뼈를 깎는 노력과 눈물겨운 노력만

이 영혼을 환골탈테시킬 수 있다.

그리고 빛을 되돌이켜 거꾸로 내면을 비춰 보는 것을 화광반조
라고 한다. 그리고 잃어버린 고향을 찾는 것, 또는 잃어버린 마음

을 찾는 것이 바로 복본심성이다.

견성을 하게 되면 심원하고도 고차원적인 세계로 증입해 들어

간다고 큰스님께서는 전하신다. 죽 청정하고 고원하며 지고한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큰스님을 제외하고 견성 이후 아라한과

이상에 대해서는 언급한 선지식이 전무하다.

필자 수준에서도 이 논고를 작성하면서 알 수 없는 내용을 말할 수

없어 큰스님의 가르침을 열거하는 미흡한 수준을 면치 못한 점, 큰스

님께 그리고 불제자님들께 너그러운 양해를 구한다.
큰스님의 법 세계를 필설로 언급하는데 한계가 있으며 큰스님의 법

세계는 가히 상상을 초월하며 부사의하며 어마어마하고 장엄하고 거룩

하다는 점을 말해둔다.
타종교 어디를 봐도 아라한, 보살, 붓다라는 체계적인 위계는 전무하
다. 그러므로 불제자들은 불가에 귀의 귀명한 것을 큰 기쁨으로 삼고

열심히 구법 정진을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아라한, 보살, 붓다라는 명료한 위계는 불제자가 한 걸음 한

걸음 더 지고한 곳으로 향하고자 하는 향상심을 불러일으키는데

큰 자극제가 된다는 점 두 말할 필요가 없다 하겠다. 그리고 일체 중

생을 비롯하여 견성과 아라한과를 이룬 수행자라면 자력 수행만을 고

집하거나 고수하지 말고 이제부터는 큰스님이 하사하신 칭명염불선

을 통해서 부처님의 가피와 위신력을 받아 타력 수행으로 아라

한과를 넘어서 보살과 그리고 불과로 증입해 나가는데 진력할 것

을 권청하는 바이다.
희유하시고 거룩하신 부처님의 법세계를 남섬부주 대한민국에 펼쳐

주신 두 분 큰스님께 오체투지하고 예배드린다.




출처/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



불교가 지향해야 할 방향

 불교가 지향해야 할 방향


오늘날 수행자들이 구가(謳歌)하는 정신세계는 견성(見性), 즉 깨달음이다. 하지만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는 이러한 수행자의 한계, 즉 견성을 초월하여 아라한, 보살, 붓다를 거론한다. 지극히 장엄(莊嚴)한 세계가 견성의 세계를 넘어서 존재한다는 것을 극명하고도 자상하게 서술하고 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지금까지 어느 누가 아라한, 보살, 붓다라는 존재의 계층적 도식(Hierarchy Schema)과 붓다의 삼신설(三身說) 그리고 칭명염불에 의한 염불선(念佛禪)의 중요성을 이렇게 큰스님처럼 명료하게 서술하였던가?

우리 불제자는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해야할 것이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는 기존 선 불교를 건전한 시각에서 올바른 비판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을 불제자들은 명료하게 인식해야 한다. 

즉, 큰스님께서 선 불교가 100%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시고자 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다만 선 불교의 세계를 환골탈태시켜 더욱 고원하고도 지고하게 확장시키려는 각골쇄신(刻骨碎身)과 혼연(渾然)의 노력들을 엿 볼 수 있다.

선 불교는 엄연히 한국 불교의 수행적 토양을 다지는데 좋든 나쁘든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우리 모든 불제자들은 이 점을 명각(明覺)해야 한다. 따라서 긍정적으로 볼 때 그 공로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다만 선 불교가 주장하는 견성, 깨달음(Elightenment), 확철대오(廓徹大悟)는 모두 아라한을 한계점으로 갖는다. 큰스님 말씀대로 인간으로서 견성을 하여 보림 후 아라한에 이르는 것만도 엄청난 일이며 참으로 힘든 일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선 불교의 이러한 아라한까지의 깨달음에 의해서 근본불교 당시 석가모니부처님의 삼신설 체계가 가리워지고 퇴색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점을 알리기 위해 <<21세기 붓다의 메시지>>가 출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정령 큰스님께서 단순히 선 불교의 폐단만을 비평하기 위해서 성작(聖作)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를 친술 하셨겠는가?

올바른 지견과 식견을 구비하여 큰스님의 서적과 법문을 대면한 불제자라면 큰스님의 심오한 대의(大意)를 해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즉 선 불교의 한계를 냉정하게 지적하고 선 불교를 근본불교에 기초하여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시키고자 하는 큰 스님의 염원에서 쓰여졌다고 해석할 수 있다. 

왜냐하면 견성(見性)이라는 것은 힌두교의 범아일여 사상과 서양의 유대신비주의 인 그노시즘(Gnosticism 靈智主義)의 최종 목표와도 맥락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카발라에서는 아인 소프(Ayin Soph 히브리어로 무한이라는 뜻)로, 타로체계에서는 우아일체(宇我一體)로, 힌두교에서는 범아일여(梵我一如)로, 그노시즘에서는 영지(靈智 Gnosis)로서 알려져 있다. 

도가(道家)에서도 노자(老子)는 도가 수행 세계의 종지(宗指)를 현묘지도(玄妙之道)로 거론하고 있다. 현묘함이란 바로 불가(佛家)의 진공묘유(眞空妙有)와 비슷한 맥락을 한다. 따라서 전 세계의 수행문화가 20세기까지 그 최종 목적을 아라한 정도에 만족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21세기를 살아가면서 시대는 급변하고 전 세계에는 아쿼리안(Aquarius)문명을 맞이하여 뉴에이지 열풍에 명상수행에 요가, 단전호흡 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난립하고 범람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과 세태 속에는 세계 구도자들의 보다 큰 소식에 대한 염원과 갈망이 관통하고 있다.

또한 견성의 수준으로는 생사를 완전히 초월할 수 없으며 확고한 생사관을 확립하거나 정립할 수 없다. 즉, 선 불교만이 한계를 갖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영성문화와 종교 수행 체계가 한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불교는 지구상에서 아니 우주상에서 가장 심오한 수행체계이자 광대무한(廣大無限)한 철학사상을 함유하고 있다. 한편 지구 역사를 통해서 수많은 불교 박해와 탄압이 외부적이거나 묵시적으로 행해져 왔었다. 

그러한 박해와 탄압의 어려운 시절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너무 고차원적인 경지에 목표를 두는 것보다는 어쩌면 단순히 아라한 경지에 목표를 두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교 존망의 위기를 벗어나는데 나름대로 일조를 했다고 필자는 생각해 본다.

결국 선 불교는 불교의 맥(脈)을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오는 역할을 잘 이행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 자각(自覺)의 눈을 크게 뜨고 오늘날의 위기에 몰린 불교를 복원시키고 중흥을 도모해야 할 때가 왔다. 

불제자들 간에 너무 음계(淫戒)가 무시되고 막행막식으로 수행을 하는 경향이 불가에 만연해 지고 있다. 이 시점에서 이를 차마 그대로 방관할 수 없는 큰스님께서 친히<<21세기 붓다의 메시지>>를 집필하여 세상에 내놓게 된 것이리라.

재차 강조하는바 선 불교는 강직한 행동과 난해한 언어구사를 통해서 어려운 시절과 고비를 잘 넘겨왔다. 어리석은 자들에게 매우 높이 보이도록 했으며 불교의 권위를 실추시키지 않도록 여러 형태로 공헌을 했다고 보아도 잘못된 것은 아니니라, 진리(Truth)는 사실은 사실이라고 말할 때 증득된다.

즉 선 불교가 전승을 통해서 이루어온 그동안의 공과는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한다. 선 불교의 화두(話頭)와 공안(Koan)이라는 어휘는 전 지구적이고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통용어가 되기도 하였다. 다만, 큰 스님께서는 이제 21세기를 맞이하여 선 불교가 환골탈태(換骨奪胎)해야 할 시기라고 사자후하신 것임을 명각(明覺)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저 유명한 리차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에서 이런 말이 있다. “가장 높이 나는 갈매기가 가장 멀리 본다.”고 말이다. 이말은 매우 중요한 의미와 시사점을 지니는 명언이라고 할 수 있다. 

큰스님께서 설파하신 대로 “산 정상에 오른 사람만이 산에서 내려다본 정경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리고 높은 산에 오른 사람일수록 크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수행의 경지가 높은 사람만이 정확하고 올바르게 수행세계를 통찰할 수 있는 것이다.

큰스님께서 종교명상수행세계에 있어서 가장 높고 궁극적 경지라고 하는 붓다위에 이르셨다는 사실을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를 읽어본 이라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21세기 붓다의 메시지>>는 큰스님께서 증험한 최상승 경지에서 불교의 수행체계와 사상체계의 숭고(崇高)하고 광오(廣澳)한 면을 여실히 밝히셨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존평 p211~216





불교의 목표는 완전한 생사해탈

 불교의 목표는 완전한 생사해탈




윤회에서, 삼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어른은 아라한 성자부터라고
했습니다.
아라한부터 빙의가 없습니다.
명부에도 못 들어간 영가귀신가 빙의된다면 성자가 아닙니다.
성자의 몸은 청정하며 보살은 청정하다못해 발광發光하는 것입니다.
붓다는 발광 정도가 아니라 빛덩어리 그 자체가 됩니다.
성자는 자기 나라의 말로 자기만의 노래를 부릅니다.

노래는 공空을 깨쳐서, 혹은 묘유 속으로 헤엄쳐 나가며 부르게 됩니다.
따라서 그 노래는 착이 없고, 상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오도송을 읊고, 법거량하는 것은 공부의 완성이 아니라 이제 겨우
시작입니다. 옛 스님의 것을 표절하여 흉내나 낸다면 더더욱 안될
일입니다.

먼저 불성을 보왔다면, 나의 본질도 보아야 합니다. 인간 영혼체의
비밀도 보아야한다는 말입니다. 영혼체를 영체라고도 부릅니다.
중생의 영혼체는 다층구조이며 4개의 영혼체가 겹쳐져 있습니다.
아라한 도道 이상을 이뤄야만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깊은 삼매에 자재해야 해탈이 가능합니다.

3번 영체로 몸을 빠져 나간다면, 그것은 삼매가 아니고 하늘을 여행하고
돌아온 것에 불과합니다. 스스로 장작더미를 쌓아 놓고 기름을 붓고
불을 붙여 소신한다 해도 3번 영체로 빠져 나가는 삼매진정한 삼매가
아니라면 그를 도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2번 영체로 몸을 자유로이 나고 든대도 그것 역시 진정한 삼매가 아닙니다.
1번 영제로 나갈 수만 있다면 극락정토까지 갈 수 있어서 여기부터가 진정한
삼매의 시작입니다.

삼매에 들려면 심신이 맑고 청정해야 합니다. 우주가 이 몸 안에 있고,
내가 우주 안에 있습니다. 주관과 객관이 무너진 이 경계는 아라한부터
가능합니다. 보살의 마음은 안과 밖이 수정같이 맑아 깨끗함과 더러움의
분별을 뛰어 넘습니다. 그저 깨끗하고 깨끗할 뿐입니다.

여기서부터 상대가 빙의됐는지 여부도 압니다. 그 사람이 진정한 삼메에
들었는지도 압니다. 견성하고 도통했다지만 절반 이상은 빙의된 경우이고,
공부 많이 한 수행자가 명부에 못 들어가 수행자에게 빙의된 사례도
많습니다.

그가 빙의된 데다, 그리고 선서를 많이 보아서 오도송도 나오고, 법거량도
휼륭하게(?) 하기때문에 격외를 노래한다고 해서, 아라한 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무아 속 삼매가 진정한 삼매이고, 완벽한 생사해탈, 즉 대열반은 무아 속 삼매에
자재해야 하며 무엇보다 자기의 불신을 얻는 것이 필요충분조건입니다.
불신을 얻는다는 것은 대우주와의 완전 계합입니다. 업장과 번뇌, 그 습기의
찌꺼기까지 다 녹아야 불신이 생깁니다. 이 일은 부처님 경계이기에 윤회 안
중생과는 너무 거리가 먼 법문이라 생략하겠습니다.

다만, 단언하건대 무아 속 절대계에 자기의 불신을 두지 못하면, 즉
청정법신과 원만보신을 구족하지 못하면 붓다가 아니라는 것만 재삼
말씀해 둡니다.

불법, 정법을 만나 삼악도에 안 떨어지는 것만도 대단하게 여기지만
가능하면 여기에서도 큰스님을 만나 수행해서 윤회를 벗어나 성자,
아라한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성중의 반열에 들면 영원히 인간세계에 안 나오려면 안 나올 수 있습니다.
어쩌다 귀한 인간의 몸을 받아서 불법을 만나고 더구나 정법의 감로
법문을 듣고서도 우리 이대로 살아야 되겠습니까?

아라한 성과를 이루면 보살행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아니, 공부까지는
아니더라도 반드시 이타행만은 해야 합니다.
언젠가는 그 과정을 거쳐야 하므로 선근공덕의 보따리가 문제입니다.
그 보따리가 커지면 우리는 영적으로 진화합니다.
아라한 되고, 보살 될 수 있는 필요한 조건을 갖추어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선근보따리입니다.


출처/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2023년 7월 12일 수요일

진짜 부처님께서는 32상 80종호의 몸을 갖춥니다.

 진짜 부처님께서는 32상 80종호의

몸을 갖춥니다.

유형의 불신, 저 보신, 색신이 32상 80종호를 갖춥니다. 32상 중에 하나, 둘, 셋만 갖추어도 중생은 잘 삽니다. 32상을 갖추고 더 자세하게 80종호를 갖춥니다.



안으로 정신적인 힘은 정말 무한한 힘을 갖추고 있어. 10력 등 4무소외, 18불공법. 이건 맞아. 이것보다 훨씬 어마어마한 힘을 갖추고 있어.



우선 불신은 동시에 백천만억화신, 32응신으로 나툴 수도 있어. 어떤 사람을 건지기 위해서 그 사람의 근기와 그 사람의 모든 업장을 봐서 32응으로 나툴 수 있어. 그래서 교화를 합니다.

 

그리고 불신은 6도와 그를 벗어난 저기 아라한 성중의 세계와 정토의 세계를 자유자재로 다니며 교화할 수 있어.그런데 천마처럼 지수화풍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야. 부처님은 공을 지나 적멸을 지나 빛으로 이뤄졌어.



빛도 무량광이라는 빛! 이 세상에 볼 수 없는 밝은 빛, 중생이 봐버리면 재가 되버리는 빛! 이 희안한 빛이 있어. 거기 들어가기 어렵지 많은 관문을 지나가서..



그 밝은 빛의 힘은 그 섬광보다 더 강해. 그런 빛! 그 빛은 너무너무도 아름답고 영롱하고 안팎이 드러나. 하늘에서도 볼 수 없어.



하늘사람, 아라한, 보살도 본 적도 없는 무량광으로 몸뚱이가 이뤄졌어. 필요하다면 남섬부주만한 몸뚱이, 개미보다도 더 적게 날 수도 있어. 이것을 색신이라고 그래.(보신)

 

밀교에서는 선불교를 아주 낮춰 평가합니다.



공을 깨쳤다 하더라도 마음을 깨쳤다고 해서 부처가 아니다. 밀교에서 정면에서 반박하는 거죠. 공성을 증득해야 한다! 보림을 다 해서 이제 충분히 윤회를 벗어날 만한 힘과 모든 것, 삼매력을 갖췄다. 그런데 거기서도 안 된다.



억겁을 닦아서 복덕을 닦아서 바라밀, 보현행원을 닦아서 색신을 성취해야 한다. 보신, 불신을 얻어야 한다. 이러지 않으면 부처가 아니다.

 

그래서 내가 검토해본 결과 남방불교 위빠사나선은 선불교보다 한 차원 높습니다. 수행자에게는 음계가 최고인데 남방불교에서는 엄격히 음계를 명합니다.



그래서 환영할만하고 그리고 수행법이 아함경에 투철히 근거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그래서 이것은 분명히 권장할 만 하다. 중생들은 위빠사나선에 의해서 공부해야한다. 남방불교 소승이라 하지 마라.

 

그런데 남방불교보다 티벳불교가 한 수 위야. 방금 이렇게까지 붓다는 이래야 된다. 공성의 증득과 더불어 색신을 성취해야 한다. 색신은 억겁수행을 통해 공덕을 쌓아야 한다. 그런데 색신의 설명에 가서 현지사와 거리가 좀 멉니다.



색신의 성취. 자기들은 이 몸 안에서 색신, 법신, 화신을 성취해야 한다. 성취할 수 있다 그럽니다.



그래서 여러분 알아듣기 좀 어렵습니다. 이 몸에서 마음체가 나가. 마음대로 나가서 나간 놈이 마음대로 활동할 수 있어. 의생신이라고 그래. 생각이 만들었다고 해서.. 의생신이 원초의 빛, 정광명과 화합해야 한다. 그래야 보신이다.



정광명은 여기서 말하는 진여자성의 빛. 무량광 아닙니다. 그러면 이 의생신이 바르도, 중간세계에서 원초의 빛과 합일되면 수승한 유형의 불신을 갖추고 무서운 힘을 갖춘다.

 

그런데 내가 말하는 삼신, 보신, 화신은 몸 안에서 갖추지 않습니다. 저기 대적광세계, 연화장세게에 자기 불신을 둡니다. 이것이 다르고 (차원이) 얼굴이나 모습도 너무나 천지현격으로 다릅니다. 불신은 그 의생신과 비교가 안 됩니다. 능력도 비교가 안 됩니다. 그래서 현지사의 불신관, 삼신설은 정말 밀교와 비교가 안 됩니다.

 

이런 발견을 무서운 붓다의 경지를 들어간 분이 처음 수보리, 사리불이요 가섭이요 아닌이었습니다.




출처/여기 올린 내용 글은 자재만현 큰스님의 법문과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1권2권중에서 발췌했습니다.

부처님은 빛의 존재이시며, 우주법계의 주(主)이시다

 부처님은 빛의 존재이시며, 우주법계의

주(主)이시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의미   

그동안 불교계에서 알고 있었던 점, 또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던 점들을 부각시켜서 지적하지 아니할 수가 없고, 부처님의 정법이 무엇인가를 알려주고 싶고, 그리해서 오늘까지의 동영상 내지 TV법문이 BBS TV를 포함해서 130회 정도 된 것 같습니다. 오늘 법문은 TV를 시청하는 분들을 고려해야 됩니다. 그래서 약간 어렵다고 하더라도 양해를 해주시고, 스님이 깨쳐서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여러분들에게 알려드리고 싶지만, 밀장 부분이 많고 해서 지금까지 절반 정도도 이야기를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우리 영산불교 현지궁 현지사에 대하여 여러분들이 도저히 이해 못할 점, 아마 시청하시는 TV불자님들도 이해를 못하실 것입니다. 꼭 불가사의한 이야기 같기도 할 것이고,  우리 부처님의 거룩한 점, 스님이 강조하고 싶은 점이 있습니다. 부처님은 빛의 존재라는 것, 이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고 싶고, 우리가《금강경》을 보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나오는데, 이것도 지금 학승들이나 그 어떤 큰스님들도 이 뜻을 아주 왜곡해가지고 해설을 하고 법문을 하기 때문에 이것도 지적해서 바로잡아 주고 싶습니다.



TV법회가 끝난다고 해서 동영상법문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한 달에 두 번씩 계속할 것입니다. 오늘 처음 나와 주신 우리 단월님들은 꼭 앞으로도 계속 나와 주십시오. 부처님의 정법 말씀을 듣는 공덕은 한이 없습니다. 여기 오셔서 법문을 들은 것만 해도 대단한 소득이 있습니다. 첫째로 업장이 씻겨나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아무리 오랫동안 장좌불와 하면서 단식을 하고, 고행을 하고, 자력으로 수행을 한다고 하지만 업장소멸은 안 됩니다.



일부 정화는 되지만 업장소멸은 안 됩니다. 그러니까 계속 나오셔서 들어 주십시오. 첫째로 우리 영산불교는 부처님을 믿는 교단입니다. 부처님을 믿습니다. 부처님이 살아 계심을 믿습니다. 지금까지의 불교는 아닙니다. 심즉시불(心卽是佛), 마음이 곧 부처라고 해서 마음 밖에 부처를 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외도라고 합니다.



나는 그 점에 대해서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중생을 오도(誤導)하면 큰 죄가 됩니다. 부처님을 없다고 해버리면 이건 대망어(大妄語)입니다. 부처님이 없다고 하면 설법을 듣는 단월들이 어떻게 행하겠습니까? 부처님이 없다, 극락세계도 없고, 지옥도 없고, 윤회도 아니고, 인과(因果)도 부정하는 그러한 법문, 이건 불교를 훼손하는 무서운 대망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불교의 성직자 내지 단월들, 죽어서 모두 어디로 가는가를 보면 악도로 가는 것이 절대 다수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어요. 불교를 그런 식으로 이해하면서 경전을 해설하고, 법문을 하고, 그것을 듣는다? 부처님이 안 계시고, 극락과 지옥이 없고, 윤회가 없다고 하면 이렇게 우리가 스님이 되어서 고행할 필요가 없습니다. 스님이 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 영산당시(부처님 당시) 우리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혹독하리만큼 무섭게 교육을 시켰습니다. 당신 아들도 스님 만들었어요. 사촌동생들, 자기 어머니 등 모두 스님 만들었어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우주와 우주 적멸 법계 모두를 아우르는, 이 우주와 온 법계와 하나가 된 경지의 깨달음 올시다. 지금 선불교(禪佛敎)에서 이야기 하는 견성(깨달음), 이 견성은 우리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견줄 수 없습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하고는 천지차이입니다. 견성(깨달음)은 현상계를 낳은 본체를 보는 경계, 그래서 상당한 지혜와 깨달음을 얻는 거예요.



여기서 부처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하려면 백천만겁의 수행을 해야 됩니다. 그걸 아십시오. 견성, 소위 선불교(禪佛敎)에서 이야기하는 깨달음과《금강경》에서 나오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하고는 천지차이 올시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하게 되면 삼명육통(三明六通), 오안(五眼), 항하사의 신통, 삼매(백천삼매 뿐만 아니라 대적정 삼매까지), 중생의 업장소멸, 정화까지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깨달음의 지혜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인 거예요. 선방(禪房)에서 '이 뭣꼬'해가지고 깨달은 것? 그건 이제 가장 기본이고 초보입니다.



그래서 스님이 10년 전에 ‘깨달음은 붓다를 이루는 대장정의 시작일 뿐이다’하고 사자후 한 거예요. 이런 말을 비롯해서 할 말이 많습니다. 너무도 많습니다. 130여회의 동영상 법문을 했지만, 앞으로 그 정도 해야 될 거예요. 많은 밀장은 또 이야기를 못합니다.



백천만겁 지내어도 만나 뵙기 어려운 붓다회상, 음력 매월 25일이면 허공계에 가득 메운 붓다님들께서 시방세계를 깨끗하게 씻어 더러움 없게 해주시고, 부산 대전 춘천본사 도량(道場)을 청정하게 해주신다. (이거 붓다회상입니다) 부처님 회상에 나와 절대계의 부처님들께 예배하고, 삼계에서 제일 높은 부처님과 그 교법의 진리 말씀을 큰스님으로부터 듣는다. 거짓을 말하지 않고 진실만을 말하노니 나만 잘 배우고 복 지을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진리 말씀 전도해서 다 같이 함께 안락해야 됩니다.



부처님의 위대한 점이 많지만 그 동안의 삼신(三身), 그리고 빛(무량억종광의 빛), 대적정삼매, 지혜 자비 복덕 원력, 있다 없다를 초월한 무아 속 절대계에 32상 빛의 몸으로 계심을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이야기합니다.

▸부처님을 믿는다? 살아계심을 믿는다? 그러면 어디에 계시나?

▸어떻게 계시는가?

▸어떻게 해야 뵐 수 있는가?

▸어떤 능력을 지니고 계시는가?

▸그 크신 능력을 지니고 있는 이유, 크신 능력을 내 것으로 하는 이유, 이것은 무엇인가?

▸소위 삼신설(三身說)이라고 하는데, 그 말은 무엇인가? 부처님은 세 몸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 중생은 몸이 하나잖아요. 도대체 부처님은 어떤 분이신가?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외도를 제압할 수 있다고 하는데,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힘은 어떤가?

▸왜 법신불을 모르면 불교가 우주적인 종교인 줄 모른단 말인가?

▸부처님의 모습은? 음성은? 일거수 일투족을 말해보시오.

▸어떻게 해야 붓다가 될 수 있습니까? 그 품성은? 인품은? 뭐가 위대한 점이오?

▸극락 중 극락에서 사신다?

▸미래제가 다하도록 십력사무소외(十力四無所畏) 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으로, 자비로 백천만억 화신을 나투어서 중생 교화 하신다?

▸심즉시불이라고 하는데,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는 것은 외도라고 하는데 불신(佛身)이 생기는 까닭은?

▸불과(佛果)이루신 붓다는 미래제가 다하도록 어떻게 사시는 가요?



이런 등등의 자상한 것까지 다 밝게 말하고 있는 우리 영산불교, 지금까지의 불교는 ‘부처님이 없다’고 봅니다. ‘부처님이 안 계신다’고 단호히 이야기합니다. 이건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정말로 무서운 대죄(大罪)입니다. 그래서 오늘 TV석상에서 다시 고언(苦言)을 드립니다. 소위 많은 큰스님들, 학승들, 대학교 강단에서 불교학을 강의하는 학자들한테 고언(苦言)을 합니다.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대망어의 과보는 무섭습니다 여러분. 극무간지옥을 갑니다. 극무간지옥 갑니다. 나올 기약이 없습니다. 그런 지옥으로 간다고요.



자기만 가나? 강의를 듣는 사람, 법문을 듣는 사람, 경전을 해설하는 그 장(場)에 앉아서 듣는 사람들, 세뇌(洗腦 )된다고요. 그래서 소위 인륜과 도덕을 존중하고 살아야 된다고 하는 가르침이 온당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강의를 듣다가 보면 ‘허허! 저세상도 없고, 나도 없고 너도 없고, 부처도 없고, 지옥도 없고, 허! 그러면 적당히 살아야지. 적당히 살아야지’하게 된다고요. 적당히 산다는 말은 대단히 무서운 말입니다. 그렇게 살다가 보면 짓는 것은 업입니다. 그래서 모두 업을 짓고, 업을 짓게 되면 반드시 과보가 따라오는 거예요. 물체에 그림자가 따라다니듯이 반드시(절대적으로) 따라 오는 거예요.



그리해서 스님이 이 세상에 출세한 첫 번째 법문부터 ‘부처님은 계십니다. 유무를(있다 없다를) 초월한 저 무아 속 절대계에 32상 거룩한 빛의 모습으로 계십니다’하고 역설을 한 거예요. ‘부처님 없다’하지 말라고. 그 무서운 말을 하지 말라고. 그러나 듣지를 안 해. 지금까지 계속이어요. 스님이 그런 말을 한 사람은 대망어라고 했잖아요. 대죄(大罪)라고 당당히 말하는 거예요. 그 사람의 영혼체는 그 말을 하면서부터 그 업의 종자가 심어져가지고 나중에 철판으로 둘러씌워진다든지, 수갑과 족쇄가 채워지고, 목에는 쇠사슬이 칭칭 감겨져 묶여 들어간다고. 자기는 자기의 영혼체를 못 보기 때문에 함부로 말을 해요.



지금까지의 불교는 첫째, 불신관(佛身觀)이 없습니다. 부처님을 모릅니다. 둘째, 역사 이후로 인간 영혼의 실체를 규명하지 못했습니다. 부처님 이후로 인간 영혼의 실체를 규명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윤회의 주체를 볼 수가 없어. 형이상적 실체를 볼 수가 없어. 이건 붓다의 경지이니까요. 그래서 부처님께서 무아(無我)를 방편으로 말씀하셨는데, 이 무아(無我)를 존재의 부정으로 해석을 해가지고 ‘나도 없고 너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고 해석을 해가지고 불교를 이렇게 망쳐 놓은 거예요.



그리해서 인도에서 쫓겨난 거예요. 사멸(死滅)되어버렸어. 아주 망해버렸어. 이것을 알아야 되어요. 우리 불자님들 입장에서 보면 이건 천추의 한이어요.



천추의 한이 돼. 불신관(佛身觀)과 무아(無我)의 도리는 불교의 핵인데, 불신관(佛身觀)이 없고, 무아(無我)의 도리를 모르면서 함부로 경전을 해설한다든지(지금 보면 경전을 많이도 해설하고 다녀), 산림(山林)이라고 해서 무슨 화엄산림(華嚴山林) 법화산림(法華山林)을 한다고 하는데 그건 좋지. 그러나 모르면 모르는 대로 해석을 해줘야 돼. 자기가 대 학승인 양, 깨친 사람인 양, 부처 없다고 하고, 인과(因果)도 부정하고, 윤회도 부정하고, 이런 수준에서 거룩하신 우리 부처님 말씀(경전)을 해설한다든지, 책을 쓴다든지, TV매체나 라디오매체 앞에 나가서 당당히 설법을 한다든지 하면, 이건 중생을 오도(誤導)할 위험이 많습니다. 큰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리해서 나는 우리 단월님들을 상대해서 법문 할 때 이 두 핵(두 축)을 항상 유념하면서 지금 많이 왜곡된 것을 시정하고 있습니다. 스님이 그동안에 130여회 법문한 것을 책으로 낼 것입니다. 시리즈로 낼 예정인데 나오면 꼭 읽어 봐주시고, 자재만현의 법문이 무엇이 틀렸는가(뭐가 틀린 점이 있는가)를 한번 찾아봐 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부처님께서는 항상 우리 불자들이 착하고 바르고 정직하게 살기를 바라십니다. 착하고 바르고 정직하게 살기를 바래. 부모님께 효도하기를 바래. 그리고 대성자 붓다님의 말씀을 따르기를 바래. 그렇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이 육도 윤회를 부정하는 분들이 지금 많이 나오는데, 이것은 경전을 편집할 때부터 잘못된 거예요. 그리고 번역할 때, 그 경전을 한문으로나, 티베트어로, 우리나라 말로, 일본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크게 잘못된 것으로 보입니다.《반야경》에서는 공(空) 공(空)하거든요.《원각경》을 보면 또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거든요.《원각경》을 보면 윤회의 정의를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번뇌 망상 등 온갖 생각이 어떨 때에는(기쁜 일을 당해서는) 희희낙락하다가, 또 어떨 때에는(가정에 불행한 일이 닥치고 자기의 기대가 무너지고 할 때에는) '이이쿠! 나죽었다. 큰일 났구나'합니다. 이렇게 번민하면서 살잖아요.



이렇게 생각이 자꾸자꾸 뒤바뀐다고요. 이걸 윤회라고 봅니다. 마음상태가 여섯 가지로 바뀌어 지는 것을 육도윤회라고《원각경》에 쓰여 있기도 해. 그러니까 스님이《화엄경》이나《법화경》, 그 좋은 경(經)중의 왕인 이 경을 보면 한 부분(한 장, 한 품)이 독소조항으로 되어 있어. 그런데 화두타파(견성)해가지고는 그걸 몰라. 볼 수가 없어. 알 수가 없어. 그 본체의 소식 갖고는 알 수가 없어. 그 본체의 소식에 아무리 밝아도 지옥 극락을 못 봐. 보살을 넘어서, 상품보살을 넘어서 붓다의 경지에 가야 드러난다고. 윤회는 그것이 아니어요.



분명히 육도에 윤회한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나한테 많은 법문을 들었잖아요. 스님이 말씀드린 육도윤회가 정답이어요. 지옥은 분명히 있어. 너무너무도 무서운 지옥이 있어. 수많은 지옥이 있어. 사람이 죽으면 49일 동안에 명부에 가서 논죄를 받는 것도 사실이어요. 그런데 안 보이니까 그걸 다 부정한단 말이오. 안 보이면 안 보이는 대로 말을 하지 않아야 되는 거예요. 그것은 너무도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치 선지식인 양 하고, 그런 질문을 받으면 정답인 양 대답해 버리면 묻는 단월들이 어떻게 됩니까? ‘아하! 지옥이라는 것이 없구나. 부처라는 것은 우리 마음이 부처인가 보다’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해서 인생을 적당히 살고, 가끔 경계에 따라서는 엔조이(enjoy)도 하면서 적당히 살아. 우리가 볼 때에는 크고 작은 업을 마구 지어가. 그렇기 때문에 지옥이 실제로 있다는 것을 꿈속에서라도 생생하게 봤다고 하면 그렇게 하지를 않아. 그런 짓을 안 하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법이 망가져가지고 정법을 듣지 못해서 우리 중생들은 그저 감정대로, 업대로, 업식 대로 살아간다 그거예요. 안타깝지요.



그리고 선불교(禪佛敎)에서 소의 경전으로 까지 보는 선서(禪書), 모두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즐거우면 거기가 극락이고, 번민하는 자리는 지옥이고 하는 식으로 되어 있어. 그러므로 이런 경전이나 선서(禪書)를 보게 되면 취향 따라서 학자들이 그렇게 나가버려요. 과학 하는 사람들, 자기의 불교관 인생관 세계관을 그렇게 정립하고 교수를 해. 그것이 어떻게 무서운 줄도 모르고 말입니다. 불신관(佛身觀)이 없으면, 붓다를 모르면, 부처님의 그 위대함을 모르면, 그것이 중심이 된 교단이 아닌 다른 종파는(교단은) 앞으로 점점 세계종교 가운데서 가장 뒤처지는 종교가 될 것입니다. 뭐라도 내세울 것이 있습니까?



저 일신교는 '사랑'을 앞세워가지고 사회사업이나 해. 사회사업이나 한다고. 그런데 우리 불교는 그것도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어. 우리나라의 불교집안에서 종합병원 설립하고, 큰 유치원 고아원 설립하고 합디까? 요즘에 와서 하나씩 생기지. 육바라밀의 행인 보시는 역설하면서 사회사업에는 등한시해요. 더구나 현재의 불교는 이대로 가면 더욱더 쇠락(衰落)해져. 망해버려. 스님의 말씀 유념하고 앞으로 한번 보십시오. 그리해서 우리 영산불교 현지사가 정법의 불교를 세우려고 이렇게 애를 쓰고 있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화엄경》에

불신보방대광명(佛身普放大光明)하시니

색상무변극청정(色相無邊極淸淨)하고

여운충만일체토(如雲充滿一切土)하야

처처칭양불공덕(處處稱揚佛功德)이로다.



부처님이 대광명을 널리 놓으시니, 끝이 없는 빛깔이 너무도 깨끗하시네. 그 청정하고 깨끗한 광명이 구름처럼 온 세계에 가득하여, 가는 데마다 부처님의 공덕을 찬양하네.



불신보방대광명(佛身普放大光明)하시니, 부처님께서 대광명(大光明)을 널리 놓으시니, 대광명(大光明)-오늘 이 시간은 이 빛에 대해서 이야기할 거예요. 아무도 모르니까. 대승경전을 보면  많이도 나와. 그러니까 부처님의 존재까지 부정해버렸는데, 이런 글귀가 나오면 (이 대광명을)어떻게 해석하나? 몰라. 픽션(虛構)이라고 하면서 그냥 지나간다고.



색상무변극청정(色相無邊極淸淨)하고, 끝이 없는 빛깔이 너무 깨끗해. 이걸 몰라. 우리 영산불교에서 지금 이 부분을 자꾸 이야기하고 있어. 부처님의 그 위대한 점 중에서 큰 몫을 차지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빛의 존재라는 것.



여운충만일체토(如雲充滿一切土)하야, 그 청정하고 깨끗한 광명이 구름처럼 온 세계에 가득하여서라는 말이어.



처처칭양불공덕(處處稱揚佛功德)이로다, 가는데 마다 부처님 공덕 칭찬하도다.



▸《미륵삼부경(彌勒三部經)》을 봐도

“이시세존(爾時世尊)이 출광장설상(出廣長舌相)하사 방천광명(放千光明)하시니 일일광명(一一光明)이 각유천색(各有千色)이요 일일색중(一一色中)에 유무량화불(有無量化佛)하니 시제화불(是諸化佛)이 이구동음(異口同音)으로 개설청정제대보살(皆說淸淨諸大菩薩)의 심심불가사의제다라니법(甚深不可思議諸陀羅尼法)하시니..”라는 말이 있어.



해설 : 그때 세존께서는 ‘넓고 긴 혀(廣長舌)’를 드러내시어 갖가지 광명을 놓으셨는데, 그 낱낱의 광명마다 천 가지 빛깔이 있고, 한 빛깔 속마다 각각 한량없이 나툰신 부처님(化佛)이 계시었다. 이 모든 나투신 부처님들이 한 목소리로 거룩한 보살네의 심오하고 불가사의한 다라니법을 말씀하셨다.



“방천광명(放千光明)하시니 일일광명(一一光明)이 각유천색(各有千色)이요 일일색중(一一色中)에 유무량화불(有無量化佛)..”

모든 대승경전에 이런 것이 나옵니다. 그 깨끗한(청정한) 빛을 방광하는데 그 광명 하나하나에는(낱낱광명 하나하나에는) 백 천 만 색깔이 있더라 그거예요. 하나하나의 색 가운데는 수를 헤아릴 수 없는 화신불이 계시더라 그거예요. 이런 표현도 나옵니다. 지금 경전만 소개해주고 곧 이어서 이야기해드리겠습니다.



▸《지장본원경》을 봐도 “여래함소(如來含笑)하시고 방백천만억대광명운(放百千萬億大光明雲)하시니 소위대원만광명운(所謂大圓滿光明雲)이며 대자비광명운(大慈悲光明雲)이며 대지혜광명운(大知慧光明雲)이며 대삼매광명운(大三昧光明雲)이며 대복덕광명운(大福德光明雲)이며...”



여래께서 활짝 웃으시니까 백천만억 가지의 색깔을 띠운 광명의 구름이, 어떤 구름의 모습은 대원만광명운이요, 대자비를 생각케 하는 광명운이요, 어떤 빛의 모임은 구름같이 되어 있는데 지혜의 대광명이요, 삼매의 대광명이요, 대복덕의 대광명이요...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묘법연화경(법화경)》을 보면

 “부처님께서 무량의처 삼매에 드시니, 이때 하늘에서 만다라 꽃 등등 이런 꽃들이 비 오듯이 내리더라. 대지는 육종으로 진동하고, 그때 부처님께서는 미간 백호상으로부터 광명을 놓으시니 동방 만팔천세계를 모두 비추시더라.” 이런 표현도 나와요.



이건 사실입니다. 사실임에도, 아예 부처님이 없다고 해버리니까 그것도 저것도 뭐 생각지도 않겠지만, 우리 부처님의 위대한 점 가운데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빛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거예요. 얼마나 위대하면 빛으로 이루어져 있습니까. 그 빛도 무량억종광, 그러니까 백천만억 아승지 종류의 색깔을 띤 그 수만 가지 빛의 덩어리란 말이에요. 그런데 이제 보니까 낱낱 빛이 다 쓰이는 데가 있어요. 이건 사실이어.



▸〈화엄경 여래현상품〉을 보면

“이시(爾時)에 세존(世尊)이 지제보살심지소념(知諸菩薩心之所念)하사 즉어면문중치지간(卽於面門衆齒之間)에 방불찰미진수광명(放佛刹微塵數光明)하시니...”

그때 세존께서 모든 보살들의 생각함을 아시고 입과 치아로써 세계의 티끌 수처럼 많은 광명을 놓으셨다...

신체 곳곳에서, 입과 치아, 털구멍, 미간 백호상에서 광명을 놓아 설법을 위한 상서(祥瑞)를 보이는 것이 서술되어 있다.

▸〈화엄경 광명각품〉에서 보면 발바닥에서,

▸〈화엄경 여래십신상해품〉에서 보면 정수리에서, 이렇게 신체의 다섯 군데에서 광명을 놓으시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신체의 다섯 군데가 아니라 열 군데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 부처님의 어디에서 나오고, 어디서 어떤 색이 나오고, 어디서 어떤 색이 나오고 하는 것을 누누이 말씀해 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열군데 올 시다.



이제 우리 영산불교가 세상에 나와 가지고 두 분 큰스님이 경험하고 본 것입니다. 지장보살께서 빛으로 화하시어 제자의 업장을 씻어 주신다. 지장보살님께 공양드릴 때, 지장보살님이 현신하시더니 그대로 빛이 되어가지고 제자의 업장을 씻어주시더라. 지장보살님도 지금 현재 십지보살로 알고 있어. 부처가 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지옥중생이 하나라도 남아 있는 한 나는 부처를(불과를) 이루지 않으리라’ 하는 서원(誓願)이 있어요. 그러나 지장보살님은 무량겁 전에 불과(佛果)를 이루었어요. 그건 하나의 큰 서원이었습니다.



불과를 이룬 지가 무량억겁 전이어요. 그렇기 때문에 명부(冥府)를 관장하지요. 그 무서운 힘이 나오지요. 십지보살이 어떻게 저 지옥을 관장합니까? 지장보살님이 현신하시더니 빛으로 변해가지고(빛덩어리가 되어가지고) 제자의 업장을 씻어주시더라. 어느 제자의 모습입니다.



몸뚱이는 사슬에 묶여있고, 혀는 절반정도 검게 굳어 있고, 손은 수갑으로 채워져 있고, 양 발목에는 족쇄가 채워져 있고, 양 귓구멍은 막혀 있어서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다. 특히 정법의 말은 들어가지를 못하더라. 이것을 전부 무량억종광으로 사슬을 풀어주고 끊어주고, 굳은 혀를 전부 빛으로 주물러서 정상으로 만들고, 양손에 채워져 있는 수갑과 쇠사슬을 끊어 주고, 발목의 족쇄를 끊어 주고, 막힌 양귀를 송곳으로 파주시더라.



자력수행을 해가지고 이렇게 할 수 있는 줄 압니까? 이렇게 해주시면서 하신 말씀이 있어요. “이 사람이 자력으로 천 만 생을 산다고 해도 이 영체에 묶여있는 사슬을 무슨 재주로 끊겠느냐. 자기 자력으로는 되지 않는다. 부처님의 위신력이 아니면 안 된다.” 여러분, 이 대목을 유념해 주세요. 지금의 학승들, 지금까지의 스님들은 업장을 모릅니다. 말은 업장이라고 해요. 업장소멸 해야 된다고 말은 하지. 그러니까 공부하기 전에는 ‘저기 강원도 오대산 적멸보궁에 가서 20일을 기도하고 오너라’한단 말이에요.



20일을 기도해가지고 이 사슬이 다 풀어지고 끊어지느냐고요. 이 사슬은 백 천 만 생을 수행을 해도 끊어질 수가 없다는 거예요. 끊어질 수가 없다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대망어를 해가지고 두터운 쇠판이 몸을 싸고 있는데, 어떻게 그 쇠 철판을 제거하느냐고요. 이것을 제거하더라도 처리를 잘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 부처님들은 화광삼매를 터~억 만들어가지고 거기에다가 던져버립니다(넣어버립니다). 그러면 녹아버려요. 놔두면 그 쇠 철판이 다시 옵니다. 그 업을 내가 지었으니까요. 그러면서 병든 사람을 약사부처님이 치료해야 이제 병이 낫는 거예요. 효과도 있고요.



부처님은 가부좌로 정좌하셔가지고 방광하시잖아요. 방광을 하실 때에는 전부 필요에 따라서 하십니다. 이 억종광명을 열군데 전부에서 뿜어내게 되면, 그 억종광명(무량광명, 부처님의 광명)의 빛은 불가사의합니다. 힘이 있고, 강도(强度)가 있습니다. 광도(光度)는 스님이 누누이 이야기 했잖아요. 햇속, 여름 햇속의 그 속을 눈이 시려서 볼 수 없는 그것하고 비교가 되지 않는 광도(光度)를 지니고 있으며, 강도(强度)도 쫘~악 방광하면 희유하게 이 물속이나 땅속까지 뚫고 가버려. 방광을 할 때에는 대적정삼매의 힘으로 방광을 해. 쫘~악 방광하면 이 빛이 한없이 나가잖아요. 한없이 나간단 말이에요.



그럴 때 백 천 만 몸의 화신을 나투어 버리면(허공중에 백 천 만의 당신(부처님) 화신을 나투어버리면서), 그 각각의 화신에서 또 방광한단 말이에요. 부처님은 지혜의 제1인자이시고, 큰 지혜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분이시기 때문에 그 영롱하고 아름다운 빛이 교차되면서(뭉쳐지면서) 그 지혜와 빛으로 구름도 만들 수 있고 꽃도 만들 수 있다고요. 이 장관은 언설로 표현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화엄경》을 보고 모든 경전을 보면 ‘햐!~’하고 감탄을 하는데, 이것 가지고는 약해. 우리 부처님은 이렇게 위대한 분이어요. 그런데 부처님이 없다고 한단 말이에요. 부처님이 없다고 해. 여러분, 어떻게 생각합니까?



서울을 갔다 온 사람이 서울 이야기를 하는데 ‘너! 이놈의 자식 사기 치지 마. 서울이 어디에 있느냐!’ 그런 격이에요. 바다개구리가 여행을 하다가 조그마한 우물 안에 빠졌단 말이에요. 스님이 그 비유 이야기를 했지요.

-우개(우물 안의 개구리가) : 너 이놈의 자식! 어디에서 왔냐? 너의 생김새가 묘한데 말이다.

-바개(바다개구리가) : 나는 저기 바다에서 왔단다.

-우개 : 뭐! 바다? 바다란 말이 무슨 말이냐? 이놈의 자식!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네. 이놈의 자식이.

-바개 : 아니야! 바다가 있다고. 바다는 이 우물보다도 백천만배의 물도 많고, 깊이도 이 우물보다도 백천만배나 더 깊고, 많은 고기도 있고, 사람이나 배도 왔다 갔다 하고, 우리 친구들도 많단다.

-우개 : 아니! 뭐라고? 이놈의 자식! 순 사기꾼 아니냐?

바다개구리를 보고 순 사기꾼이라고 한단 말이에요. 순 사기꾼이다 그거예요. 우물 안 개구리는 그 우물밖에 모르거든요. 이 우물 안 밖에 몰라. 다른 이야기를 하면 사기꾼이라고 해. 말도 안 된다고 해. 듣지 말라고 해. 그 격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렸기 때문에 부처님의 위대함은 정말로 우주법계의 주(主)이십니다. 주(主)이시고, 진정한 창조주라는 것이 맞습니다. 부처님은 우주 뿐 만이 아니라 우주법계와 하나가 되어버리신 분이어요. 그래서 법신불이 생기고, 무량겁을 지혜와 공덕을 쌓았기 때문에 그 삼매력 그 공덕으로 보신(報身)이 생기는 거예요. 보신이 생기는 이유가 따로 있지만, 어쨌든 그래서 보신이 생기는 거예요. 그 위대함은 말할 수가 없어요.



그 지혜와 자비와 원력과 신통과 삼매는 말할 수가 없어. 그런데 부처님이 없다고 하면 됩니까? 그래가지고 죄를 지으면 됩니까? 얼마나 큰 죄인 줄도 모르고 말입니다. 스님이 이 법상에서 아무리 이렇게 외쳐도 들으려고도 안 해. 이것이 전파를 타고 나가지요. 전파를 타고 나가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큰스님들도 듣지 않으려고 해. 들어보지도 않고, 다 그렇고 그런 법문이라 이거지. 지금까지의 법문과 같다 그거지.



만현스님의 법문은 깊이가 영 다릅니다. 겁에 한번 들을 만한 법문이지요 여러분. 그리고 부처님들이 오셔서 업장을 씻어드리라고 하면 씻어주십니다. 부처님들은 무슨 분신정도가 아니고 한 몸이어요 한 몸. 서로서로 아끼는 것이 그래요. 그래서 큰 법문을 하실 때에는 경전에 나오듯이 하늘에서 꽃비가 내린단 말입니다. 그게 사실입니다. 꽃비가 한 없이 오는 거예요. 그리해서 그 많은 하늘, 불교를 좋아하는 신들이 와서 듣고, 성중이 듣고, 보살들이 와서 듣는 거예요. 그것이 사실이어요.



지난 8월12일 스님의 생일날 준제보살님이 나오셔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그러니까 광명만덕님 영체하고 내 영체가 나와서 세 사람이 춤판이 벌어졌습니다. 들어보십시오. 곧 절대계의 광명불이 내려오셔서 당신의 영체와 하나가 되어버렸고, 자재통왕불이 내려와서 당신의 영체와 하나가 되어버렸어. 그러니까 이제 진짜 붓다들 세 분이 세존(世尊) 앞에서 춤마당이 벌어진 거예요. 그날(내 생일날) 열다섯 사부님들, 불보살님들이 빛으로 화하셔서 나에게 지혜와 변재를 주셨어요. 부처님들이 붓다한테는 그렇게 해요. 심혈을 기울여서 붓다라고 하는 작품을 만들어요. 아직도 안 끝나 있어요. 그래서 붓다가 다 되었으면 붓다세계로 데리고 가요. 아시겠지요? 이런 부처님들을 안 계신다고?



하기야 부처님을 뵈려면 깊은 삼매를 들어가야 됩니다. 지금 어떻게 삼매에 들어갑니까? 누가? 삼매를 들어가려면 한평생 계율이 완벽히 청정해야 됩니다. 그래서 정진 정진을 해서 옅은 삼매를 들어가는 거예요. 깊은 삼매, 더 깊은 삼매가 아니면 부처님광명(무량광명)을 못 봅니다. 보면 눈이 실명(失明)되어 버려요. 못 봐요. 그러니까 더 깊은 삼매로 들어가야 되는 거예요. 더 깊은 삼매로 들어가려면 소위 유식(唯識)에서 이야기하는 거짓 몸, 내 팔식이 전부 해체되어서 정화되어야 되는 거예요.



제7식, 제8식, 소위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이 다 파열 되어버려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소위 나의 주인공, 유식(唯識)에서는 십식(十識)을 나의 주인공으로 보는데 십식(十識)은 나의 주인공이 아니어요. 잘못 본 것이지만 십식(十識)이 드러나 가지고 십식(十識)을 진아(眞我)로 보지요. 진아(眞我)가 드러나 가지고 더욱더 정진해서 아집(我執)이 떨어져 버리고, 그리고 보살행이 원만히 성숙되고 완성 될 때 무량억종광을 볼 수 있는 거예요.



그 공덕의 힘으로, 그 청정한 무아(無我)가 되어버린 나(我)가 무량억종광을 보는 거예요. 거기서 더 나아가야 붓다를 본다고요.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면 ‘천마(天魔)를 봐놓고’ 그러거든. 천마(天魔)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가 나옵니다. 천마(天魔)이야기를 해 드릴 것입니다.



출처/영산불교 현지사 




무아 속 절대계에 여여히 계시는 부처님

 무아 속 절대계에 여여히 계시는 부처님


"불과를 이룬 붓다는 무아 속 절대계에 여여히

존재하고 계십니다!"  영산 당시 아난존자이신 현지사 자재

만현 큰스님께서 제1성으로 토하신 사자후를 다시 한 번

강조, 강조하여 알려드립니다.



부처님은 과연 존재하고 계실까요?   어디에 계실까요?  어

떤 모습으로 계실까요?

우리 중생을 위해 무엇을 하실까요?  우리 중생들이 부처

님을 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부처님은 얼마나 큰 능력을 가지고 있을까요?  부처님 중

에 누가 가장 먼저 부처님이 되었나요?  어떻게 하면 붓다

가 될 수 있을까요?



어디에 가서도 그 해답을 찾기 어려운 여러분들의 궁금

증에 대해 영산불교 현지사 자재 만현 큰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한 점 의혹 없이 속 시원히 대답해드리겠습니다.  추상

적이고 애매한 대답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확실한 대답을

해드리겠습니다.



이 책과 인연이 된 여러분들은 이제 노다지 다이아몬드

광맥을 발견한 분들입니다.  여기저기 도처에 널려있는 다이

아몬드를 찾아서 캐가는 것은 여러분들의 몫입니다.  대신

영산불교 현지사에서는 여러분들이 다이아몬드를 캐갈 수

있도록 모든 정보를 지금부터 제공해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세계 불교사상 어느 누구도 몰랐던 특급 고급

정보를 드릴 것이니 차분히 읽어보시고 이들 정보가 진실

임을 믿음으로써 많은 분들이 저마다 한 짐 가득 다이아몬

드를 채굴해 가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 글의 첫 시작에서 자재 만현 큰스님께서 붓다

는 분명히 실존하고 계시다고 선언했습니다.

우리가 역사적으로 알고 있는 부처님은 2600여 년 전에

인도 땅 룸비니동산에서 카팔라국 숫도다나왕의 태자로 태

어나셨습니다.  29세에 출가를 하셨고, 35세에 위없는 최고

의 깨달음을 얻어서 부처님이 되신 후, 45년간 제자를 길

러내시고 중생을 교화하시다가 2550여 년 전에 구시나가라

성 밖에 있는 두 그루의 사라나무 아래서 조용히 반열반에

드셨습니다.  이제 그 육신은 한 줌의 재가 되고 흙이 되어

인도 땅 곳곳에 흩어져 있을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다 아는 역사적 실존인 우리 부처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대열반에 드시고 난 후의 일에 대해

서는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았습니다.  아니 아무도 이야기

해줄 수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  이제 그

이후와 탄생 전의 관계에 대해 중요한 이야기를 해주려고

합니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한 가지 사실을 확인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법화경>><여래수량품>에서 말씀하신 부

처님의 구원실성은 사실임을 말씀드립니다.



우리가 차마 상상할 수도 없는 나유타 아승기 무량겁 전

에 부처님은 불과를 이미 이루셨고, 그 후에 중생 구제를

위해 여러 차례 사바세계에 오셨습니다.  오실 때마다 고통

스럽고 험난한 수행의 과정을 거쳐 불과를 이루셨습니다.



2600여 년 전에 또 인도 땅에 오셔서 설산에서 6년간 고

행 난행을 토해 또 다시 불과를 이루셨습니다.  불과를 이

루신 부처님의 영체는 청정을 넘어 빛이 나고, 빛나다 못해

완전한 빛덩어리 자체가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45년이라는 대장정의 설법여행을 마치시고

반열반에 드셨습니다.  이때 부처님 몸 속에 있던 4개의 빛

덩어리 영체가 빠져나옵니다.  육신에서 빠져나온 부처님의

4개의 빛덩어리 영체는 무아 속 절대계의 보신불과 하나로

계합이 됩니다.  지복의 몸과 하나가 됩니다.



그 불신은 다시 상적광토의 자기 법신불과 합일합니다.

그리고 필요할 때 모든 붓다들의 청정법신불은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안으로 뭉칩니다.  여기서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해 드리고자 합니다.



그 동안 불교계에서 오랫동안 많은 논란이 되어

왔던 무아와 윤회의 주체와도 관련이 됩니다.  물론 부처님

은 윤회생사를 완전히 벗어나 생사를 자유자재로 하시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언제나 사람 몸으로 태어나실

수 있습니다.

이것을 '원력수행'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불교계

에서 잘못 알고 있던 무아와 윤회의 주체 문제에 대하여는

다음 장에서 명쾌한 결론을 내려드립니다.



부처님께서 인신을 받아오실 때는, 부처님께서 인도

땅에 몸 받아오시기 전에 '내가 사바세계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야겠구나'라는 판단을 먼저 하셔

야 됩니다.  그런 다음 그 판단에 따라 행동이 이루어집니

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 먼저 판단하고 난 다음에 행

동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 판단을 하는 주체가 누구입니까?  심의

식이 완전히 녹아버린 공에서 이런 판단을 합니까?

아니면 벌도의 식이 있어서 이 판단을 합니까?  아닙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판단을 하는 주체는 바로 절대계에 빛의 인격체로 영원

히 멸도하지 않고 존재하시는 보신불이라는 불신입니다.  부

처님의 진불입니다.  이 보신불이 생각을 하고 판단을 하는

주체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이것은 부처님께서 실

존하신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무아 이론을 본체계까지 연결시켜 부처님도 없고 보살도

없고, 아무 것도 없다로 하는 그런 논리는 근본적으로 잘못

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지적해 둡니다.



그런 결심을 한 다음 보신불은 또 태어날 부모와 장소를

결정하게 됩니다.  보통 부처님들이 사바세계에 몸 받아 오

실 때에는 왕궁으로 많이 오십니다.



그래야 사바세계에 오시는 목적을 가장 잘 달성할 수 있

기 때문입니다.  우리 부처님께서 인도 카필라성 숫도다나왕

의 태자로 오신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이렇게

붓다가 사람 몸을 받아온 것을 화신, 응화신 또는 응신이라

고 합니다.



지금까지 석가모니부처님의 경우를 들어서 3가지

유형의 불신을 선보였는데 불신론은 불교의 핵심 중에도

핵심이 되는 너무도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사바세계에서

처음으로 불과를 이루는 대수행자의 경우를 예로 들어 붓

다의 세 가지 유형의 몸에 대해 보다 자세히 설명을 해드

리겠습니다.



어떤 대수행자가 수천만생을 수행하여 붓다가 되어 대열

반을 하게 되면죽게 되면육신이 없어지는 대신 세 가지 유형

의 몸이 새로 생기게 됩니다.  이것을 삼신불이라고 합니다.



영산불교에서 말하고자 하는 삼신불은 실체적 진실의 불

신관입니다.  이는 큰스님께서 몸소 경험하시고 직접 본 사

실에 근거하므로 구체적이고 정확하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여러 경론상의 내용이나 학자들이 주장해

온 삼신설, 그리고 티베트 밀교나 선불교에서 말하는 불신

과는 차원을 달리합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 나와 있는 삼신불의 설명에

대해 어떤 스님이 비판을 해왔는데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

었습니다.  기존 불교 교학의 잘못된 잣대를 가지고, 깊이도

없는 얄팍한 지식을 가지고 불과 이룬 자재 만현 큰스님께

서 몸소 경험하신 삼신불의 세계를 감히 이러쿵저러쿵 비

판하다니 도무지 그 경박함의 끝이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그리고 남섬부주에 육신을 받아와서 수행하지 않으면 불

신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도 이 기회에 알려드립니다.  매우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약사정토의 최상수보살들은 사바세계

에 오시지 않고서도 불격을 갖출 수가 있는데 이때는 불신

이 생기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출처/영산불교 현지사 






붓다는 마음과 영혼체, 불신佛身이 계합된 우주의 주主

 붓다는 마음과 영혼체,


불신佛身이 계합된 우주의 주主

이 마음空, I AM과 하나를 이룬 이가 부처님입니다. 비인격적인 마음과 식정이 멸진한 네 영혼체, 그리고 자기 불신을 합한 인격체가 부처입니다.



마음을 깨쳐 아는 견성만으로는 부처됐다 할 수 없고 자기의 네 영혼체가 억겁의 오후悟後 수행을 통하여 탐 . 진 등 뿌리가 뽑혀지고, 다겁생의 업장이 녹고, 악惡과 습의 탁한 기氣까지 몽땅 녹아져야, 그 영혼체는 청정해지고 맑고 밝아지고, 밝다 못해 빛을 발하여, 부처의 경지에 이르러서는 빛덩이 자체까지 되는 것입니다.



이때 무아 속 절대계에 자기의 32상의 장엄한 지복의 몸, 부처의 몸, 보신佛이 생기게 되어 스스로 있는 자존자와 네 영혼체, 자기 불신이 합일이 되어 마침내 붓다가 되고 우주의 주主가 됩니다.



무엇을 모르면서


마음이 부처라며,


지옥 극락 부처 없다고


눈먼 중생을 오도하는 것은
대망어로서


무간지옥을 간다.


혹 인신을 받아난다고 해도


삼중고 사중고를 받을 것이니라.



-불세존-





붓다를 내는 일은 제불 세존의 가피의 총화


밀교에서의 보신報身


바르도중간계 공간에 두는 정광명과 화합한 의생신意生身은

우주적 메타종교인 영산불교의 부처님 가피로보살 정토계에 두는 보살신과도 차원이 다른, 보다 낮은 비밀한 법이라는 것을 밝힘. 유무를 초월한 무아 속 절대계에, 무량 억종광으로 이루어진

한 분의 보신 붓다백천만의 보살과도 바꿀 수 없는를 내는 일은 우주적 능력을 구유한 제불 세존의 가피의 총화 아니면 안 됩니다.



금생도 다음생도 영원히 잘 살 수 있는 길

부처님의 실존과 우주적인 위신력을 믿고 보살행하면서 대승경전 읽고 칭명염불석가모니불하는 것입니다.



출처/영산불교 현지사 





붓다님들은 절대계에 32상 빛의 몸으로 계신다.

 붓다님들은

절대계에 32상 빛의 몸으로 계신다. 


상적광세계에 청정법신 비로자나부처님이라고 하는 당신의 법신불을 두시고, 동시에 원만보신 노사나불로 이곳 대한민국 땅 춘천 영산불교 현지궁에 현신 상주하시는 우리 교주 불 세존께 삼가 자재 만현은 가사 장삼 수하고 공경 예배드리나이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Ⅱ≫를 쓰라는 하명下命을 받은 자재 만현, 기꺼이 그 대임大任을 받잡겠나이다.




“나, 사리불은

모든 사견을 끊어 공空의 법을 증득하고

그때 마음에 생각하기를 멸도에 이르렀다고 하였더니

지금 이에 스스로 깨치니

이는 참된 멸도가 아니었나이다.

만일 성불하여 32상을 갖추었을 때

천상과 인간계와 야차들과 용‧신들이 공경하리니

이때에사 가히 영원히 다 멸하고 남음이 없다고 생각하겠나이다.

부처님이 대중 가운데서 설하시되

제가 마땅히 성불하리라고 하니

이 같은 법음을 듣고

모든 의심과

후회를 이미 끊었나이다.“

- ≪법화경≫ 비유품

라고 설함으로써 붓다를 이루는 것은成佛, 공성空性의 증득과 더불어 색신報身의 성취에 있는 것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붓다님들은 절대계에 32상 빛의 몸으로 계신다.
나는 지난 2005년 5월에 발간한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서 억겁의 수행과 무량겁 동안의 복덕을 지어 탐진 삼독, 오욕의 뿌리를 뽑고 다겁생의 업장과 악惡, 습기習氣를 녹이고 부처님의 위신력에 따라 대적정삼매를 통과해서 불과佛果를 증하신 수많은 붓다님들이 무아 속 절대계에 32상相 빛의 몸으로 계신다는 사실을 세상에 선포한 바 있습니다.  

깊은, 아주 깊은 삼매를 통해 발견한 것입니다. 진실로 소중한 발견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붓다님들은 필요에 따라 경험세계에 원만보신을 나투시어 32응신과 천만억의 화신化身을 내어 항하사恒河沙의 신통력으로 삼계三界의 인연 중생을 교화 제도하신다는 법설도 함께 덧붙인 바 있습니다.


내 진심으로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모든 붓다님들은 절대계에다 억종광億種光으로 이루어진 자기 부처불신를 두고 있습니다. 그 불신佛身의 모습은 자비‧단엄端嚴하고 광휘光輝가 찬란합니다. 부처님의 능력은 아라한, 보살이 행할 수 없는 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을 넘어 항하사의 묘용을 행사합니다.

백천삼매‧대적광정淨삼매에 자유자재하며 미래제가다하도록 멸도滅度할 수 없습니다.
 

“……넓고 긴 혀를 내시어 위로 범천세계에 이르게 하시고, 일체 터럭 구멍으로는 한량없고 수많은 빛깔의 광명을 놓으사 시방세계를 두루 다 비추시었다.”

- ≪법화경≫ 여래신력품

 

라고 말씀하신 바와 같이 절대계에 계시는 붓다님들은 무량광‧억종광‧백종오색광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5가지, 7가지 색깔이 아니라 천만억종種의 색깔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화엄경≫에서 이를 “백천억 묘한 빛깔 광명……”이라 하고, ≪법화경≫에서는 한량없고 수없는 빛깔의 광명“이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무량하기가 불가사의 합니다. 삼천대천세계를 다 감싸고도 남을 정도랍니다. 그래서 무량광이라 합니다. 이 빛의 특징은 안과 밖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빛깔 하나하나가 서로 다른 역능力能이 있습니다.

불佛은 곧 진리요, 우주 자체입니다. 우주 삼라만상은 빛의 영상映像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세계는 빛이라고 하는 궁극적 실체에서 나온 환영幻影인 것입니다. 모든 물체의 본질은 빛입니다. 따라서 모든 붓다는 우주적인 능력을 지닙니다.

 

모든 붓다들은 이 삼천대천세계에 백천만억의 자기 화신化身을 낼 수 있습니다. 넓고 긴 혀를 내어 위로 범천세계에 이르게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이러한 경천동지할 부처님의 위신력을 거듭, 오늘을 사는 인류 모두에게 알리고자 하는 바입니다.



불교만이 삼신三身을 얻는 수행법이 있다.
 

사실 우주적 메타종교, 불교 이외에 그 어떤 종교 - 소위 세계적인 대종교라고 하는 인도의 힌두교‧자이나교, 중동의 기독교‧이슬람교‧유대교, 중국의 도교‧유교에서도 유무를 초월한 무아 속 절대계에, 곧 청정법신 속에 대지大智의 광명빛으로 이루어진 초월적 인격체佛身를 얻을 수 있는 초超고도의 수행법은 없습니다. 오직 불교만이 삼신三身_法‧報‧化을 얻는 대승의 수행법이 있습니다.



출처/ 영산불교 현지사 





부처님은 계신다. 부처님은 절대계에 계신다. 부처님은 무아속 절대계에 여여히 계신다.

 부처님은 계신다.



부처님은 절대계에 계신다.


부처님은 무아속 절대계에 여여히 계신다.



하는 이 폭탄선언을 여러분들한테 오늘 말씀드립니다. 내가 지난 5년 전에《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 썼습니다.《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Ⅱ》권에 상당히 자세하게 썼습니다. 이 부처님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는 불교를 알 수 없습니다. 대승불교를 논할 자격이 없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오늘의 불교는 부처님이 없다고까지 합니다. 부처님에 대해서 모릅니다.《법화경》,《화엄경》, 다른 대승경전에서 상당한 설명을 해놨지만 그것을 이해 못합니다.

문학적인 픽션(fiction,虛構)이라고 합니다. 지옥도 있고, 극락도 있고, 불․보살님들도 계시고, 무주고혼들도 있고, 하늘도 있고, 아귀세계도 있는데, 지금의 불교는 이것을 모릅니다. 이래가지고는 중생제도를 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의 존재를 부인(否認)하고, 육도를 부인하고, 마음속에서(인간 내부에서) 찾는 그런 불교는 21세기 인류를 향도할 수 없습니다.


불교경전을 볼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이제 자재 만현의 법문을 듣고, 이번에 출간한〈영혼체 윤회론〉의 책자를 구입해 보시고, 우리 영산불교에서 내놓은 그 동안의 책자가 10권~20권이 됩니다. 이것을 구입해 보시면 모든 경전을 볼 수 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었던 오리무중한 불교, 어렵기만 한 그 불교가 이제 선명하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다음 법문을 들어가기 전에 오늘 여러분을 위해서 그 거룩하신 우리 부처님의 칭명염불을 30초간 하겠습니다. 모두 합장하시고 따라해 주십시오.



나무 영산불멸 학수쌍존 시아본사 구원실성 석가모니불...

천상천하무여불 시방세계역무비 세간소유아진견 일체무유여불자

고아일심귀명정례



부처님께서는 아주 오래 전에 불과(佛果)를 증하시고 보니까 중생들이 너무너무도 불쌍합니다. 육도를 윤회하는 그 고통의 쇠사슬에서 도저히 나오지를 못합니다.



그리해서 우리 부처님이나 불과를 이룬 대성자들은 화두가 ‘어떻게 하면 저 불쌍한 윤회중생을 건질까’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어서 절반은 중음계에 떨어집니다. 절반정도는 명부를 들어갑니다. 이것도 진실(사실)입니다. 명부에 들어간 사람들의 절대다수가 지옥을 가게 됩니다.



이것을 본 부처님께서는 그 최고의 진락을 누리시는 무아속 절대계에 그대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가끔 이 사바세계에 몸 받아 오십니다. 몸 받아 오실 때에는 많은 고통이 따릅니다. 이것을 각오합니다. 우리 부처님을 두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부처님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위대한 어른이다’라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2600년 전 인도 땅, 지금의 네팔 국 땅입니다. 카빌라국의 조그마한 나라에 왕자로 오셨습니다. 여러분들도 다 알고 계시죠? 외동아들인 왕자로 오셨습니다. 그러면 아버지 정반왕의 왕권을 자연히 승계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 부처님께서 사바에 오신 서원이 있습니다.



“많은 중생을 건진다” 하는 서원이 있습니다. 이 서원이 너무도 절실합니다. 사람 몸을 받아온 후에도 그 생각이 항상 잠재의식 속에서 가끔 불쑥불쑥 일어납니다. “이 많은 사람들을 구원(구제)하려면 내가 일단 붓다가 되어야 겠다”해서 스물아홉 살 때 출가를 합니다.



여러분, 아시죠? 6년 동안을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는 고생, 고행, 각고의 수행을 해왔습니다. 2600년 전의 히말라야 산을 상상해 보십시오. 지금은 모두 개발이 되고 교통이 발달했지만, 그 당시는 자연 그대로였을 겁니다. 2600년 전입니다. 히말라야 산은 정글(밀림)입니다. 밀림, 그 속으로 들어가면 뭐가 많지요?



독사, 코브라, 전갈, 맹수... 그 밀림 속으로 들어가서 6년을 고행합니다. 당신은 왕의 자리를 자연히 승계 받을 수 있었지만, 그것을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사문(沙門)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사문(沙門)의 길은 4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이것을 사의법(四依法)이라고 합니다. 사의법(四依法), 4가지 원칙에 의해서 살아가는 거예요.



①도를 이룰 때까지는 걸식(탁발)을 한다는 것입니다.


②도를 이룰 때가지는 분소의(糞掃衣)를 입는다. 분소의(糞掃衣), 옛날 농촌에 가면 똥 푸는 사람 있지요. 그 사람들이 깨끗한 옷을 입고 똥을 풉니까? 그런 사람들이 걸친 갈기갈기 찢어진 옷, 그 천도 거의 낡아 가지고 살이 비칠 정도이며, 그런 천을 입고 평생을 살아야 됩니다.


③수하좌(樹下座). 지붕이 있는 데에서는 잠을 잘 수 없습니다. 그것이 규칙입니다. 엄한 룰(규칙)이 되어 있습니다. 지붕이 없는 곳, 그러니까 숲속, 나무 밑, 강가, 광야, 그리고 공동묘지, 이곳을 내 집으로 삼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수행을 해야 됩니다.


④그 다음에 진기약(陳棄藥). 사람의 몸뚱이는 가끔 아프게 되어있습니다. 지금은 약국에 가면 온갖 약이 있지요. 그 당시는 없었어요. 그리해서 진기약(陳棄藥), 부란약(腐爛藥), 부뇨약(腐尿藥)이라고 합니다. 이건 뭐냐? 소똥을 가지고 만든 약이에요. 소똥을 버무려가지고 환을 지은 거예요. 혹은 사람 똥이나 오줌을 버무려가지고 환약을 만든 거예요. 몸이 아플 때에는 이것을 먹어야 돼. 이게 4가지 수행의 원칙 올  시다. 수행자는 이 고난의 길을 가야 됩니다.


우리 부처님께서는 “좋다. 나는 사문(沙門)의 길을 택한다. 나는 도를 이루어야 되겠다. 그리고서 길을 모르는 이 불쌍한 중생들, 우주와 인생의 진리를 모르는 이 불쌍한 중생들에게 진리를, 살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줘야 되겠다.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줘야 되겠다. 윤회의 고통에서 헤어 나올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줘야 되겠다.”


해서 그런 어려운 수행을 6년 동안 하셨답니다. 그리해서 서른다섯 살이 되던 해에 크게 불과(佛果)를 증합니다. 증한 후 이제는 전법(傳法)으로 나섭니다. 중생을 위해서 법을 전하는 전도(전법)의 길을 떠납니다. 45년 동안 마지막 사라쌍수 하에서 반열반에 드실 때(임종하실 때)까지 중생을 제도합니다. 그날 밤을 넘기면 이제 반열반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103살이 된 '수밧다'라고 하는 수행자가 부처님을 뵙기 위해서 찾아왔습니다. 부처님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거예요. 그런데 아난존자가 ‘지금은 부처님을 면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뵙고만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제 소원입니다’하고 청을 간절히 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그 소리를 들으시고, “아난아! 그 수밧다를 나에게 안내하고, 그의 청을 들어 주도록 해라”고 하십니다.


수밧다가 부처님 앞에 가서 삼배를 하고, 자기는 ‘도를 얻기가 소원인데 100살이 될 때까지 수행이 안 되어서 이렇게 도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하는 말을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그 수밧다에게 마지막 설법을 하셨습니다. 그 수밧다는 부처님의 크신 위신력으로 아라한과를 증했습니다. 그때는 아라한과는 아니었습니다. 아라한과는 아니었는데 어쨌든 견성을 했습니다.


그래서 몇 시간 더 정진해서 곧 아라한과를 얻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 부처님보다도 몇 시간 전에 그냥 이 몸을 벗어버리고 갔습니다. 우리 부처님께서는 오직 중생을 건지는 일, 이게 화두입니다. 얼마나 자비하시고, 얼마나 대자대비하십니까?


이제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간략히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1,000명 정도의 제자들을 데리고, 우리 부처님께서 6년 동안 고행하셨던 산(가야산이라고 하는 산입니다), 그 가야산 산정에 오르십니다. 그들에게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시가지를 보시면서 말씀을 하십니다. 유명한 산상의 설법을 하십니다. 500년 후의 인물 '예수'가 산상설교를 했다고 하지요.


카시아파(가섭,迦葉) 삼형제(우루빈라가섭(優樓頻螺迦葉), 나제가섭(那提迦葉), 가야가섭(伽耶迦葉)의 삼 형제. 본래 외도(外道)의 무리였으나, 성도(成道)한 석가모니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 그 제자가 되었다)와 그들을 추종하는 외도 1,000여명의 대중을 이끌고 가야산 산정에서 “모든 것은 불타고 있다”하는 법문을 하십니다. 여러분이 조금 알아듣기 쉽게 부연설명을 하겠습니다. “비구들아! 사람들의 눈이 불타고 있고, 또 눈의 대상도 불타고 있느니라...”


이렇게 주~욱 나갑니다. 번뇌의 불꽃이 모든 것을 불태우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과 세계의 모습을 비유로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이렇게 보는 자는 능히 모든 것에 염오(厭惡: 싫어하다)하는 마음이 생기고 즉, 눈에 있어서 눈을 염오(厭惡)하고, 귀에 있어서 귀를 염오(厭惡)하고. 자, 마음에 있어서 마음을 염오(厭惡)하고, 일체 염오(厭惡)하는 마음이 있으면 곧 탐내는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단다. 탐내는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으면 곧 해탈을 얻을 수 있단다 하는 산상설법을 하십니다. 그리해서 많은 대중들이 이 자리에서 아라한과를 얻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모든 것은 불타고 있다”고 하는 가야산 산정에서 설법하는 골격입니다.



우리 불교는 탐진 삼독을 대단히 주목합니다. 욕심(지나친 욕심),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 탐진 삼독을 비롯해서 모든 번뇌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합니다. 모든 번뇌의 뿌리인 탐․진․치, 이놈의 뿌리를 뽑아야 된다는 것이 우리 불교의 종지(宗旨)올시다. 다른 종교는 안 그럽니다. 우리 종교는 탐․진․치를 거세(去勢)하는데(뿌리 뽑는데) 수행의 목표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해서 사성제와 팔정도를 통하지 않는 저 외도의 인물들, 교주 내지 그 지도자급들, 그 모두는 아라한 성과를 정통 아라한 성과가 아니라고 합니다(그 모두는 아라한 성과에 해당 된다고 하지만, 면밀히 보면 정통 아라한 성과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인격과 신통에 있어서 우리 불교의 보살, 상품보살까지도 인정해 줍니다만, 어쨌든 그분들은 마음속의 탐․진․치를 완전히 뿌리 뽑은 그런 사람들은 아니라고 합니다. 이것을 알아주십시오.


출처/영산불교 현지사 




부처님은 계십니다.

 부처님은 계십니다.


부처님은 무아속 절대계에 여여히 계십니다.

부처님은 유․무를 초월한 무아속 절대계에 빛의 인격체로 여여히 계십니다.

오늘 위대하시고, 희유하시고, 거룩하신 우리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응화신으로 이 사바에 사람 몸 받아 오신 날을 맞이해서 전국의 영산불교 현지사 2만 신도 여러분과 이 나라 1,200만 불자들, 그리고 이 지구촌에 사는 3억 불자님들 앞에 꼭 전해야 할 부처님의 말씀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우선 오늘을 진심으로 봉축합니다. 지혜와 자비, 복덕을 두루 갖추신 우리 교주 불세존께 한없는 공경과 고마움, 자재 만현의 일편단심을 10만개의 붉은 초롱 등에 담아 오체투지로 오늘을 봉축합니다.

지금까지의 불교, 즉 남방불교, 북방불교, 티베트불교, 한국불교 등은 거룩하신 우리 부처님의 실존(계심)을 모릅니다. 따라서 우리 부처님의 크신 위신력을 또한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단히 불행한 일입니다.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무아설(無我說)의 진의(眞意)를 왜곡함으로서 인간의 실체인 '영혼체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또 본체계의 깊은 적멸의 세계를 모르고 있습니다. 자재 만현은 실로 2000년간 왜곡된 무아설(無我說)과 무아윤회(無我輪廻)의 질곡(桎梏)과 어둠에서 부처님께서 친히 부촉하신 대로 지금의 왜소화된 불교를 인연 있는 중생을 위해 이 목숨 다하는 그날까지 '영혼체 윤회설(영혼체 윤회론)'을 새로운 교설로 삼고, 부처님의 실존과 위대한 실상을 세상에 드러낼 것입니다. 사랑하는 불자 여러분! 영산불교 현지사 자재 만현입니다. 오늘 뜻 깊은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해서 자재 만현은 또 한 가지 세상에 다시 선포할 명제가 있습니다.

오늘 여러 많은 불자들에게 이점을 힘주어서 선포합니다. 마음이 부처라고 합니다. 아닙니다.《법화경》〈비유품〉에 “공(空)을 깨치고 공성을 깨친 후 32상을 갖춘 색신을 절대계에 두어야 붓다이다”라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마음이 부처라고 하는 데서 백 천만리 더 들어가야 됩니다. 그러면 무아속 절대계의 부처님을 뵙습니다. 여러분에게 스님이 지난 5년 동안 많이도 설법을 했습니다.

여러분의 집에서(공부방에서) 스님처럼 이렇게 앉아서 합장을 하고, 눈높이에 마음의 점을 찍고, 석가모니불을 봉창(칭명)하라고 했습니다. 그러기 전에《금강경》1독을 하고, 비로자나총귀진언을 1독하고, 석가모니불을 찾으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공부를 해가면(달이가고 해가가면)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업장이 씻겨지고, 그리해서 여러분은 좀 더 깊은 경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삼귀 오계 십선을 지키면서 과거생에 또 지난날 자기의 잘못을 참회하면서 열심히 열심히 공부를 해가는 불자들은 급기야는 두 귀가 철커덩하고 막히는 경계를 맞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깊은 경계올시다. 여기서도 공부를 더 정진해 들어가면 시공을 초월한 적정의 상태로 퐁 빠지게 됩니다. 여기가 무루대아라한과의 자리입니다. 여기까지 들어가는 데는 수많은 마(魔)의 장난이 따릅니다. 마장(魔障)이 따릅니다.

그것을 극복하고 우리 인간은 여기까지는 갈 수 있습니다. 이제 더욱 정진을 하고, 선근공덕을 쌓고 정진을 해 들어가면(무루대아라한과에서 백천만리입니다), 보살의 경계가 나옵니다. 보살의 경계는 부처님이나 보살과 같은 위대한 성자의 가피 속에서 가능합니다.


불보살님의 위신력(가피)없이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방금도 말씀드렸듯이 인간의 능력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이길 수 없는) 천마(天魔), 색심(色心), 색마(色魔), 용신 등 기타 많은 마(魔)들의 장난에 도저히 그 이상 뚫고 들어갈 수 없답니다. 그리해서 부처님의 가피가 필요합니다.


이제 정토의 빛을 보고, 문수 ․ 보현 ․ 관음 ․ 세지와 같은 큰 불보살님의 빛을 보고, 부처님께서 몇 가지 작업을 해주심에 의해서 우리는 극락에 왕생할 수 있는 보살과를 증오(證悟)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백 천만리 더 들어가야 붓다의 경계가 나옵니다. 여기서부터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마장(魔障)을 맞이하게 됩니다. 부처님의 가피로 해서 뚫고 들어가면 부처님의 몸을 이루고 있는 무량억종광을 봅니다. 그 무량억종광에 대해서는 스님이《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Ⅱ》권에 자세히 써놨습니다.


그 누구도 모르는 불가사의한 빛입니다.《법화경》,《화엄경》,《열반경》,《반야경》에서 나오는 그 빛입니다. 부처님의 청정하신 빛(천 만억 색깔의 광명, 백 천만 나유타 색깔의 빛)을 봄으로 해서 이제 부처님을 친견하게 되는 날이 가깝습니다. 부처님 이후로 그 많은 선지식(큰스님)들이 이 세상에 왔지만, 부처님께서는 부처님의 몸을 이루고 있는 무량억종광을 본 사람이 없다고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저 절대계에 계시지만, 그 누구도 친견하거나 법문을 들은 선지식이 없었습니다. 오직 '사리불 존자'와 '수보리 존자'가 보셨고, 그리고 2600년 만에 우리 광명 만덕님께서 이 무량억종광을 분명히 보셨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의 일입니다.


그리해서 부처님을 친견하게 되었고, 수많은 부처님들의 법문을 들었고, 수많은 부처님들과 대화를 하셨고, 지금도 그렇게 하시고 계십니다. 여기는 삼매로 보면 상품보살이 드는 해인삼매를 뛰어 넘어서 붓다가 드는 대적정삼매가 있습니다. 해인삼매,《화엄경》을 쓸 수 있는 경지입니다. 해인삼매에서 붓다의 삼매인 대적정삼매를 논하라고 하면, 바위에다가 계란던지기 식의 정도입니다. 해인삼매와 대적정삼매는 비교 자체가 안 됩니다.


여러분, 내면세계로 내면세계로 들어갈수록 우리의 기쁨은 더하답니다. 선정삼매에 들어간 그 기쁨은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는 기쁨이랍니다. 보살이 드는 삼매정도에 들어간 사람이 나와서 그럽니다. 너무너무도 환희스러워서 그 기쁨을 말로 할 수 없으니까 이렇게 묻습니다. ‘사람들이 세상을 살면서 정말로 내가 행복하다(정말로 나는 행복하다)고 할 때의 기분과 어떠하냐’고 물어보면, 그것은 비교가 안 된다고 대답합니다. 비교가 안 됩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드는, 붓다가 드는 대적정삼매는 그것의 백천만배입니다.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쾌락 기쁨 환희의 백배에다가 지수 7이라고 합니다. 100의 7승(100^7). 그러므로 붓다가 드는 삼매는 여러분이 헤아릴 수가 없고, 상상할 수가 없지요. 이게 불교입니다. 이러한 대적정삼매에 드는 분이 2600년 이후로 몇 사람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시절 때, 이 종교에 관심이 있어서 깊이도 공부를 했는데 그때 내 생각은 이랬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출세했던 신라시대의 원효스님 ․ 의상스님, 고려 당시의 보조스님, 이조 당시의 서산스님, 최근의 성철스님, 그 다음 일본으로 가서《법화경》을 너무도 깊이 연구하셨고 일련종에서는 부처님과 같이 보는 일련스님(니치렌) ․ 조동종에서의 도오겐, 중국의 달마 ․ 혜능 ․ 마조 ․ 법장 ․ 현수 ․ 청량 ․ 진관, 태국의 아짠문, 요즘 프랑스에서 수행중인 베트남 출생의 틱낫한, 티베트의 파드마삼바바 ․ 밀라레빠․ 지금의 달라이 라마, 인도 쪽으로 가서 자기의 나라에는 100~200명에 달하는 세계의 그 어느 성자가 따라갈 수 없는 성자를 배출했다고 자랑합니다. 밀교 쪽에서는 84명의 구루를 들고 있습니다.

우리 인류문화사,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예수님 ․ 공자님 ․ 소크라테스 ․ 마호메트 ․ 노자...이런 분들 외에 우리 인류가 낳은 수많은 무명의 성자들이 왔다가 갔습니다. ‘그런 분들은 붓다가 되었겠지. 불과를 증한 훌륭한 어른들이겠지’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불과(佛果)를 이룬 후에 보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저 무아속 절대계에 자기의 32상을 갖춘 빛의 인격체인 보신 부처님(佛身)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해서 이것은 붓다가 되느냐의 여부를 가리는 절대적인 잣대입니다.

여러분! 우리 석가모니부처님은 붓다 중의 붓다올시다. 말로 할 수 없는 나유타하고도 아승지겁 전에 처음으로 불과(佛果)를 이루신 어른입니다. 우리 영산불교 현지사는 그것을 깨닫고, 불교가 왜 그 너른 땅 인도에서 쫓겨났는지를 연구했습니다. 13억 인구 중에서 힌두교가 80~85%입니다. 지금 현재 불교인구가 0.12%~0.7%정도로 올라갑니다.

이 원인이 어디에 있는 것인가를 면밀히 연구 검토를 해 본 결과 이 스님이 지난 BBS TV에 두세 번 나가서 힘주어 말씀했듯이(많은 부분을 잘라버렸지만) 진리인 '영혼체 윤회론'이 묻혀져 왔습니다. 이것은 진리인데 이 '영혼체 윤회론'이 묻혀져 왔습니다.

삼법인(三法印), 사법인(四法印)에 나오는 무아설(無我說)을 주장하면서 윤회를 주장하고, 육도에 윤회한다는 진리를 접목시키려 하다가 보니까 무아설(無我說) 때문에 안 되어요. 이것이 접목이 안 되고 2600년 동안 내려왔습니다. 접목이 될 수가 없지요.

윤회의 주체가 없다고 하는데 어떻게 윤회를 합니까? 이번에 스님이 TV에 나가서, ‘윤회의 주체는 우리의 영혼체이다. 유아윤회(有我輪廻)라고 봤다. 유아윤회(有我輪廻)이다. 바라문교(힌두교)에서 주장하는 것은 옳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교 중에 가장 우수하다고 하는 종교인 힌두교, 그 힌두교보다도 훨씬 차원이 높은 그 심오한 데까지 뚫었습니다.

윤회의 주체는 영혼체이고, 그 영혼체는 다겁생으로 내려오면서 탐진 삼독에 의해서 많이도 오염되어서, 그 오염된 비본질적인 것들이 영혼체에 엉켜가지고 숯검정처럼 되어버렸어. 그래서 비아(非我)라고 한 거예요. 나(我)가 아니다. 그 오염된 비본질적인 것(업장)을 씻고 씻으면 완전하고 순수한 영혼체가 드러나게 됩니다.

이것은 진짜 나(我)입니다. 이렇게 되면 윤회를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영혼체가 업장(비본질적인 것들)에 의해서 숯검정이 되고, 숯덩어리가 되고, 진흙덩어리가 된 것은(이 非我는) 육도를 윤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전부 수행에 의해서, 선근공덕에 의해서, 단 부처님의 가피에 의해서 그 영혼체에 얽히고설킨 그런 찌꺼기들을 모두 다 씻어버리면 이제 자기의 순수 자아(自我)가 나옵니다. 여러분, 이제 해탈입니다. 윤회에서 해탈하는 거예요.

이러한 진리를 지금까지 2600년이 흐르는 동안 그 어떤 사람도 말을 못했습니다. 그 어떤 사람도, 그 어떤 큰 선지식도,  그 어떤 성자도 말한 적이 없습니다. 일부는 보았습니다. 일부는 알았습니다.

그 다음, 오늘 여러분에게 힘주어서 또 선포한 것은 즉,



출처/영산불교 현지사 



부처님은 얼마나 위대한 어른이신가

 부처님은 얼마나 위대한 어른이신가


어쨌든 스님이 오늘 여러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부처님은 얼마나 위대한 어른이냐?’ 지금의 북방불교, 남방불교, 티베트불교, 한국불교, 일본불교는 부처님이 계시는 것조차도 모릅니다.《법화경》〈여래수량품 본문8품〉에서 분명히 부처님은 그 수명이 무한하다. 그래서 구원실성을 밝혔지만 그건 학자들의 이야기로(말로) 치부해 버리고, 실제로 수행하는 승려들이나 신도들은 부처님이 어떻게 계시고, 얼마만큼 위대한 어른인지를 모릅니다.



다만 학승들은, 지금부터 가장 가까운 저 옛날 2600년 전에 부처님께서 오셔서 다시 불과(佛果)를 증하시고 45년 동안 중생을 위해서 사시다가 가셨잖아요. 역사 안의 붓다(석가모니불), 80세를 일기로 해서 반열반 하신 그분 밖에 모릅니다.



그분만 이야기해요. 그러면《법화경》〈여래수량품〉에 나오는 본화 보살님들,  천만억 이상이 되는 그 많은 본화 보살님들이 땅을 찢고 올라오니까 이제 그에 대해서 본문이 전개되는데, “이 많은 본화 보살은 내가 정말 옛적 옛적 미진겁 전, 나유타하고도 아승지겁 전에 불과(佛果)를 이룬 후에 교화해서 보살로 만들어 놓은 대중 보살들이다”하는 말씀을 하신 거예요.



그렇지만 학자들은 윤회세계(현상세계)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그 지혜로서는 뚫지를 못했기 때문에) 이것을 문학적인 픽션(虛構)으로 보는 거예요.《법화경》이나,《화엄경》이나, 기타 대승경전을 그렇게 봅니다. 아닙니다. 아주 잘못 본 것입니다. 절대로 픽션이 아닙니다. 비유와 상징으로 말씀한 부분도 있지요. 있지만, 부처님은 나유타하고도 아승지겁 전에 불과(佛果)를 이루신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면 나유타하고도 아승지겁 전에 불과를 이루셔가지고 어떻게 되었습니까? 우리 석가모니부처님께서 81세를 일기로 반열반에 드셨는데 어떻게 되신 거예요? 불교인들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반열반에 들었다, 지금까지 영혼을 부인하는 불교에서는 어떻게 보느냐? 앞에서 말씀드린 비 인격인 공(空, 梵, 마음)으로 돌아갔다, 공(空)에 계합했다, 적멸과 계합했다는 말을 합니다. 그 이상 말도 못해요. 공(空)하고 한 몸이 되어버렸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 모든 부처님의 심의식(생각, 마음, 그 인격, 지혜 등)이 공(空)으로 분해 되어가지고 공(空)으로 회귀해버렸다. 이제 비 인격이 되어버렸다는 말이어요. 비 인격이 되어버렸다. 공(空)으로 소멸해 들어가 버렸다. 그렇다면 그런 부처님이 어떻게 또 다시 사람 몸을 받아옵니까? 우리 부처님은 이 세상에 많이도 많이도 오셨습니다. 그것은 확실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무수한 본화 보살님들을 양성한 거예요.



여러분, 보살이라고 하면 어마어마한 법위입니다. 지금의 불교에서는 보살도 모릅니다. 어떠한 정도가 보살인지를 모릅니다. 우리 아미타부처님의 말씀을 여러분한테 전합니다. “보살, 보살은 하늘의 별따기다. 하늘에 있는 저 별 따기다. 부처님 교단을 만나지 않으면, 불과(佛果)를 이룬 그 성자의 회상, 부처님 회상을 만나지 않으면 보살은 나올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아마 몇 달 전에 우리한테 들려주신 말씀입니다. 자력으로는 안 됩니다.



자력으로는 보살과를 증오(證悟)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보살과를 꼭 증오(證悟)해야 합니다. 그래야 영원히 생사에서(삼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아라한 가지고도 삼계를 벗어나고, 자기의 생각이 ‘이제는 사람으로 가지 않으리’ 하면 안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게 되어 있습니다.《법화경》은 바로 그것입니다. 모든 성중, 아라한들에게 붓다 되는 길을 가도록 간곡하게 바라셨습니다. 이것을 일불승(一佛乘)이라고 합니다. 부처님(붓다) 되도록 강하게 권유하신 거예요. 그 길로 들어오라는 거예요. 그러려면 우리가 우리 신도들을 상대로 해서 말씀드리지요.



아! 보살, 부처? 부처님 당시에는 보살 부처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거리가 멀어. 너무도 먼 이야기야. 그래서 목표를 아라한에다가 둔 거예요. 아라한의 과(果)를 증오(證悟)하도록 지도하신 거예요. 그때는 3000여 년 전이니 문화 초창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거의 아라한과를 증오(證悟)하도록 목표를 거기에다가 두고 법문 하신 거예요. 그런데 지옥 중생들한테는 그것도 이것도 아니어요. 지옥중생들한테는 삼악도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설법했습니다. 이것을 삼론설법이라고 합니다. 차제설법(次第說法)이라고도 하는 거예요. 지옥 갈 사람한테 아라한 되라고 하면 됩니까? 또, 보살이 되라고 하고, 부처세계만 이야기하면 됩니까?



그런데 스님이 왜 이렇게 붓다의 세계를 강조하고, 불․보살의 적멸세계 이야기를 가끔 해드리느냐 하면, 지금의 티베트불교라든지,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저쪽 남방불교라든지, 한국 불교라든지 등등 지금의 불교가 부처님이 없다고 해요. 없다, 혹은 부처님이 있다 없다를 언급 하지 않아요. 모르고 확신이 없으니까 그렇습니다.《법화경》〈여래수량품〉에 분명히 부처님의 수명을 다룬 거예요.



수량은 근본이어요. 이것을 다룬다는 것은 ‘불과(佛果)를 증하면 미래제가 다하도록 멸도할 수 없다’는 말이어요. 그런데《법화경》이나《화엄경》이나 여러 대승경전에 부처님의 위덕에 대해서 많이도 말씀했지만, 우리 영산불교에서 적멸의 세계나 붓다․보살의 세계에 대해서 말씀을 많이 하잖아요. 이것은 《법화경》이나《화엄경》을 더욱 위대한 경전으로 해주는 작용을(기능을)할 거예요. 많은 소식을 전해주니까요. 우리의 법문을 듣고《법화경》《화엄경》을 보십시오. 모든 경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리무중입니다.



불교학 박사도 오리무중인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대화하고 상대해 보면 몰라. 모릅니다. 영산불교의 이 법문, 과거생에 누구다 누구다(가섭이다, 아난이다)하고, 금생에 와서 불과(佛果)를 증했다고 하면, 불교인의 양심으로서 그 큰스님을 법좌에 모셔야 되는 거예요. 모시지 않는 다고 하면 그 주체는 업이 됩니다.



전번에 어떤 불교TV에 관계하는 책임자 한 분이 스님을 찾아왔어요. 그래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 너의TV에 나가고 싶다. 나의 이 청을 받아준다면 너는 큰 공덕을 지을 것이다. 그러나 네가 그 자리에 있으면서 나의 청을 묵살한다면 정말로 불행할 것이다. 네가 살면 얼마나 살겠다고 생각하느냐’라는 말을 했는데 구체적인 말씀은 드리지 않겠습니다. 여러분, 불교를 조금 더 학문적으로 공부하고, 수행을 해보고 한 사람들은 내 말을 긍정합니다. 긍정합니다 여러분.



부처님은 계시는지 계시지 않는지, 부처님의 위신력은 어떠한지, 경전에 기록되어 있는 십력이라든지 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이라든지, 또 무슨 여러 가지 지혜의 능력을 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지금에는 휴지조각에 지나지 않게 치부되고 있습니다. ‘그건 뭐 이야기거리야’ 하는 정도입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그렇게 지나갑니다.



정말로 안타깝지요. 그래서 전번에 말씀드린 비아(非我), 이것이 윤회의 주체이고, 그리해서 영혼체가 윤회하는 것이고, 영혼체에 달라붙은 그 오물(찌꺼기)들인 업장 ․ 탐진 삼독 ․ 기타 탁한 기 등이 쏙 빠져버린 자리가 아라한입니다. 여기는 해탈인 거예요. 더더욱 수행해 들어가면 보살로 가고, 붓다가 되는 거예요. 그 부분, 오늘 부처님 부분, 이 두 주제는 대단히 중요한 주제가 됩니다. 그래서 스님이 이렇게 강조 강조합니다. ‘《법화경》과《화엄경》을 잘 보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영산불교의 자재 만현이 더욱 부연해서 말씀드립니다.



▸첫째,《법화경》〈여래수량품〉에 있는 구원실성의 그 경의 말씀을 옳다 하고(나는 긍정하고)

▸둘째, 여러 대승경전에 있는 부처님의 위신력을 ‘그렇다’라고 하고, 그 경전에 기록 된 것보다 더하다 하는 것을 오늘 확인해 드립니다. 붓다가 되면 왜 영원히 악도에 떨어지지 않는가.



(보살은 악도에 떨어질 수 있습니다. 불퇴전이라고 했지만 예외가 있습니다. 우주의 질서를 역행하면 보살도 지옥에 떨어집니다. 그래서 스님이 언젠가 저 밀교에다가 쓴 소리를 했습니다. 사람으로 자꾸 오는데, ‘그러지 말라. 그건 우주질서에 역행하는 것이다. 열시왕의 논죄를 받을 날이 있을 것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무서운 말입니다.)



우리 부처님, 불과(佛果)를 증하게 되면(붓다가 되면) 크게 세 몸으로 이야기 합니다. 여러분은 몸뚱이가 언제나 하나예요. 윤회하는 이상 몸뚱이는 하나예요. 그렇지만 아라한을 지나고, 보살을 지나고, 붓다가 되면 크게 세 몸으로 이야기 합니다. 세 유형의 몸을 말합니다. 이것도 맞습니다.《화엄경》에서 십신을 이야기하지만 이 이야기입니다. 삼신이 맞습니다. 자기의 법신불이 저 시공을 초월한(유․무를 초월한) 저 절대계(저 적멸계, 무아속 절대계, 상적광세계)에 생깁니다.



그러면 법신불이 뭐냐? 우주의 본체, 즉 스스로 있는 자존자, 우주 본체를 우리말로 해석하면 그렇습니다. 스스로 있는 자존자, 거기에다가 조금 더 부연하면 불생불멸(不生不滅)-영원히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우주에 두루한(遍在한) 실상(자존자), 이렇게 말합니다. 그 우주의 본체와 하나로 계합이 된 몸이 법신불 올시다. 좀 어렵지요. 어려운 이야기이지요.



여러분, 우주라고 하면 우리 불교에서는 삼천대천세계라고 하지요. 삼천대천세계도 오백 천만억 나유타 아승지만큼 많다고 해요. 이 우주공간에는 삼천대천세계도 많아. 그러면 삼천대천세계는 뭣을 말하는가? 하나의 단위, 곧 지옥, 지옥도 팔만사천지옥, 표현이 좀 그렇지만 어쨌든 지옥의 종류도 많습니다. 지옥도 무서운 지옥,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벌 받는 정도에 따라서 다섯으로 나눕니다. 그렇듯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아수라 하늘(천상), 이것을 한 단위로 봐요. 이것이 1,000개 모인 것을 1소천세계라고 해. 이 단위가 1000개 모인 것을 소천세계라고 그래. 소천세계 1000개를 중천세계라고 합니다.



1중천세계. 중천세계 1000개가 모인 것을 1대천세계라고 해요. 이것을 삼천대천세계라고 하는 거예요. 이 삼천대천세계가 한 단위입니다. 이것이 무수히 있다는 말이어요. 지금 20세기말 천문학에서 별의 수효를 어떻게 계산하는 줄 아십니까? 1,000억×1,000억도 더 된다고 합니다. 저 별의 수효가 1,000억×1,000억도 더 돼. 그런데 삼천대천세계는 우리 지구와 거의 비슷한 환경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건 물질의 세계잖아요. 저 별은 추대한 물질로 이루어진 세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라든지 축생이라든지 이런 중생들이 사는 데예요. 지옥, 아귀 혹은 하늘 세계는 허공중에 있어요. 그러니까 이 우주가 얼마나 넓습니까. 그런데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뭐라고 하느냐? 이 우주, 스님이 지금 말하고 있는 우주는 어쨌든 현상세계(육도세계) 전부를 포함하고, 거기를 벗어난 해탈세계(무루대아라한이 가는 정토, 보살이 가는 정토, 붓다가 가는 정토인 이 해탈 적멸의 세계)까지 포함을 시켜서 우주법계라고 합니다. 이제 거기를 우주법계라고 하는 거예요.



‘우주법계의 근본 본체와 하나가 되어버린 것이 부처님이오. 법신불이어요.’ 일찍이 이 우주법계 안에는 주인이 없습니다. 먼저 차지한 사람이 주인이어요. 누가 차지하느냐? 부처님이 차지해요. 우주본체와 하나가 되어버리니까. 이걸 법신불이라고 해요. 그러면 법신불이 생길 그런 정도의 경지는 어느 정도이냐? 스님이《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Ⅱ》권에 써놨을 거예요.



▸다겁생으로 내려오면서 지은 업장이 정말로 하나도 없이 소멸되어 버려야 돼. 먼지 티끌만큼도 없이 소멸되어 버려야 돼. 이건 붓다 밖에 없어.



▸그 다음에 탐진 삼독 108번뇌가 완전히 뿌리 뽑혀져 버려야 돼.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이어요. 다겁생으로 저지른 악, 또 습의 기가 있어. 이것이 둘 다 뿌리 채 뽑혀가지고 소멸되었다 하더라도 탁한 기가 있어. 이것까지 전부 먼지 티끌만큼도 남김없이 다 소멸되어 버려야 거기가 무죄(無罪)예요.



이제 무죄라고 스님이《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Ⅱ》권에 써놨지요. 이건 정말로 죄가 없는 거예요. 붓다는 무죄인 거예요. 어느 정도가면 부처님께서 무죄를 선언합니다. 이렇게 되면 저 상적광세계에 자기 법신불을 두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 부처님의 법신불은 좀 달라요.



부처님의 법신불 이름은 청정법신비로자나불입니다. 부처님은 최초 불이어요. 이것도 지금의 불교계에서는 모릅니다. 스님이《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권을 쓸 때 선언한 거예요. 최초 불은 우리 부처님이시다. 그 부처님에 의해서 그 많은 부처님과 본화보살님들과 저 정토보살님들이 쏟아져 나온 거예요. 그 기밀이 있어요. 그런데 말할 수가 없어요.



어쨌든 부처님께서는 붓다한테 “아들아! 내 아들아!”라고 하십니다. 우리 광명 만덕님께는 법통제자이기 때문에 “태자야!”그러지요. 자재 만현에게는 “아들아!”그럽니다. 여러분, 부처님께서 아들 사랑하는 것은 어머니가 아들 사랑하는 것의 백천만배입니다. 부처님세계의 붓다들의 사이는(관계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끈끈합니다. 전부 한 몸으로 봅니다.



어느 붓다한테 무슨 일이 있다? 내 몸으로 봐버려요. 한 몸으로 봐버린단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섬부주에 와서 불과(佛果)를 갓 증한 붓다를 아기 붓다라고 해요. 아기 붓다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서 부처님과 여러 부처님, 그리고 여러 성중님들, 보살님들이 완전히 겹겹으로 보호해 주고 있어요. 얼마나 지극하신 줄 아십니까?



이런 것이 경전 어디에 있습니까? 어디에도 없습니다.《법화경》이나《화엄경》에 아무리 봐도 없어요. 스님이 지금 일러드리는 것을 가지고 보면 ‘《법화경》이나《화엄경》이 더욱 위대한 경전이다. 과연 경중의 왕이다’ 하는 것이 이해 될 것입니다. 그런 말이어요.



부처님은 또 한 몸이 있어요. 보신부처님(보신불)입니다. 보신(報身)이라는 것입니다. 보신불이란 무슨 말이냐? 지금의 불교가 정말로 이것을 몰라요. 그러니까 영산불교의 사상이 드러나는 날 우리 불교는 정말로 꽃을 피울 것입니다. 모든 종교가 전부 귀의하지 않을 수 없고, 그 많은 세계불교인들이 전부 쌍수를 들고 귀의하지요. 스님이 말씀드리는 것은 진실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믿어주지 않는 그 사람은 정말로 정말로 불쌍한 사람이지요. 붓다회상을 놓쳐버리면 희망이 없습니다. 그때는 자력으로 가야 됩니다. 자력으로 가는 거요. 자력으로 아라한이 된다는 것, 자력으로 윤회를 벗어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렵습니다. 여러분,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긴다는 것이 진정한 승리다(승자다)’라는 말을 하지요. 그 말 알지요?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긴다. 그 경지가 아라한입니다. 그런데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되려면, 이제 자기와의 싸움이 아니라 외마(外魔)와의 싸움이 있습니다. 자꾸 이런 말씀을 드려서 미안한데, 지금의 불교는 외마를 그냥 환영(幻影)으로 봅니다. 실체로 보지 않고 환영(幻影)으로 봐요. 아닙니다. 외마가 있습니다. 천마(天魔)도 있고, 용신도 있고, 이매망량신도 있는데, 이거 정말로 무섭습니다. 이것들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됩니다. 적어도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되려면 정말로 그 장면이 있습니다.



하나의 붓다를 내는 과정 하나만 이야기해 드릴게요. 우리 부처님께서는 하나의 붓다를 내기 위해서 당신의 몸을 버립니다(던집니다). 마왕 파순이, 혹은 파순이 애제자와 결투하게 되어 있습니다. 붓다를 이룰 사람한테는 그 사람이 반드시 빙의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결투하게 됩니다. 결투장면이 무섭습니다.



그렇게 해서 붓다를 만들어 놓은 거예요. 이건 부처님의 힘이 아니면 안 됩니다. 이길 수가 없습니다. 이 인간, 나약한 인간의 힘으로는 아라한의 성과를 얻기도 어렵습니다. 깨치는 것도 어렵습니다. 견성 어렵습니다. 너무 깊이 들어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보신부처님을 조금 말씀드리면서 결론내리겠습니다. 보신부처님, 보신불은 어떻게 해서 생기는 것이냐? 앞에서 말씀드렸지요. 모든 업장이 소멸되고, 탐진의 뿌리가 뽑혀지고, 악과 습의 기가 뿌리 뽑혀지고, 나쁜 인연 나쁜 악연이 전부 단절되고, 천 만억 생을 살아오면서 지은 원결이 다 해소되고, 금생 전생 과거생에 지은 빚이 다 정리가 되면 무아속 절대계에 자기 불신(佛身)이 생깁니다. 그걸 보신(報身)이라고 합니다.



무아속 절대계라는 말은 있다 없다를 초월한, 거기서도 무아속 절대계 올시다. 그 불신(佛身)이 자랍니다. 그 보신불이 자랄 때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의 청정한 무량광의 기를 먹고 자랍니다. 이것을 말씀드릴게요. 이것은 정말로 깊은 비밀 올시다. 그렇게 해서 자라기 때문에 보신불의 능력은 우주적인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우주적인 능력을 갖추게 되는 거예요. 자비와 지혜를 체득하기 위해서, 자비와 지혜 공덕을 구족하기 위해서 백천만겁을 닦았잖아요.



백천만겁을 보살도를 완성했잖아요. 거기에다가 플러스 부처님의 가피(위신력)에 의해서 절대계에 자기 불신(佛身)이 생깁니다. 그런 사람들은 겁에 하나가 나옵니다. 깨친 것이 불(佛)이 아닙니다. 깨치고 보림이 다 끝난 것이 불(佛)이 아닙니다. 그건 아라한입니다. 완전히 착이 떨어져버렸다고 하더라도 거기가 아라한이어요. 아라한 수천만을 합해도 보살의 가치만 못합니다. 보살 수천만을 합해도 붓다 이룬 분의 가치만 못합니다. 붓다가 더 낫습니다.



오늘은 부처님 이야기를 하니까 어차피 여러분한테 들려드립니다. 지금 부처님 이야기를 해서 죄송합니다. 너무 떨어진 이야기를 하니까 죄송합니다만, 지금까지 이 부처님이 어떤 분인 줄 몰랐기 때문에 이것을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리고 이제 여러분한테 진정 부처님께 귀의하도록 하는 거예요. 부처님한테 귀의하고 그 신심이 철기둥 같으면 살아요. 산다고 했지요. 아흔아홉 가지를 이루어도 어쩐다고? 부처님에 대한 신심을 잃으면 그 이룬 아흔아홉 가지를 전부 잃는다고 했지요. 그러나 부처님에 대한 신심 하나만 있으면 아흔아홉 가지를 채워준다고 그래요. 그 말씀 맞아요. 이 신심의 진정한 뜻을 몰라요.



이제 정말로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 부처님의 몸뚱이는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어떤 것으로 이루어져 있습니까? 보신불은 눈 코 귀가 다 달렸어요. 그래야만이 생각을 하고, 중생을 불쌍히 여기고, 내가 어떻게, 언제, 어느 나라 땅, 어떤 부모를 정해서 내가 나가서 다시 불과(佛果)를 이루어 중생을 제도하겠다 하는 것이 되지요. 그래서 눈 코 귀가 다 달려 있습니다. 그러면서 32상입니다. 지옥중생부터 올라가다가 보면, 우리 인간들은 지옥중생보다도 훨씬 거룩하고 예뻐요. 그러나 우리 인간 세상의 인간들은 하늘 사람(天人)들한테 비하면 사람도 아니어요.



또 하늘 사람은 정토보살한테 비하면 거러지야. 정토보살은 해탈신이기 때문에 너무너무도 잘 생겼어요. 빛이 납니다. 정말로 최고인 줄 알아도 붓다한테 비하면 또 애기예요. 그건 또 말도 안 돼. 이런 부처님, 정말로 한군데만 봐도 쏙 빠져가지고 나올 줄 모를 정도로 잘 생겼어요. 그런데 그런 부처님이 없다고 해요. 아침에 우리 현지사에 오셔서 공양 드신 그 많은 부처님이 없다고 그래. 이건 큰일인 거예요. 지도자가 그런 말을 하면 중생을 오도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업은 무섭다는 것이지. 그런데 그 부처님의 몸은 도대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습니까?



사람 몸은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오온(五蘊)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도대체 부처님은 어떤 것으로 이루어져 있습니까? ‘무량억종광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스님이 이야기했지요. 무량억종광, 이것은 불과를 증한 사람만이 알아. 보살도 전생에 불격을 갖춘 보살이 사람으로 와서 불과를 이룬다고 공부를 할 때 그 무량억종광을 보면, 그런 높은 법위의 수행자도 눈이 멀 지경이어요. 그 수행의 깊이를 언젠가 스님이 이야기해 줬을 거예요. 수행의 깊이를 전번에 이야기해 줬나?



오늘 시간이 40분 지났기 때문에 이야기를 다음 시간으로 미룹니다. 어쨌든 무량억종광, 백종오색광,《법화경》이나《화엄경》등 여러 대승경전에서는 이것을 천 만 억 가지 색깔의 부처님 빛, 나유타하고도 아승지 수만큼 많은 빛깔의 청정한 빛, 이런 식으로 표현합니다.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무량광, 혹은 억종광, 무량억종광, 열반광이라고 했어요.《열반경》에서는 열반광이라고 했어요. 이것으로 부처님의 몸뚱이가 이루어져 있어요. 이 자연의 빛보다도 훨씬 수승한 본원적인 빛이 자성광입니다. 자성광이 드러난 것이 견성이어요. 그것으로 해서(거기에서) 만물이 온 거예요. 이것이 만물의 모체예요. 공(空)입니다.



그 자성광은 무량광에 비하면 색깔이나 광도(光度)나 강도(强度)에 있어서 하늘과 땅차이어요. 그 무량억종광은 안팎이 없어. 희유한 것이어요. 색깔의 안팎이 없다는 것은 투명하다는 말이어요. 투명해요. 안팎이 없는데, 정말로 갖고 싶고, 가지고 놀고 싶을 정도로 예쁘고 깨끗하고 청정해요. 이것으로 부처님의 몸이 이루어져 있어요. 그런데 부처님은 때에(필요에) 따라서 천 만 억 화신을 낼 수 있잖아요. 이건 엄청난 이야기예요. 왜 그것이 가능 하느냐?



대적정삼매를 자유로이 들고 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제 붓다만이 드는 대적정삼매가 있습니다. 붓다만이 드는 대적정삼매,《아함경》에 나오는 구차제정(九次第定) 끝의 멸진정(滅盡定)은 아라한 삼매예요. 그것보다도 훨씬 높은 것이《화엄경》을 쓸 수 있는 해인삼매입니다. 수능엄삼매(首楞嚴三昧). 그것하고 붓다가 드는 대적정삼매하고는 비교가 안 됩니다. 그런 대적정삼매를 자유로이 드시고, 그런 엄청난 선정의(삼매의) 힘이 있고, 당신의 몸뚱이가 빛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빛을 마음대로 방광하는 거예요. 대적정삼매의 힘으로 천백억 화신의 몸을 내는 거예요. 그래서 보신불의 능력은 정말로 무한합니다.



어떤 붓다가 자기의 법신불과 하나가 될 때에는 법계의 주가 됩니다. 더더구나 붓다의 붓다이신 우리 부처님의 원만보신노사나불이 당신의 청정법신비로자나불과 계합이 될 때가 있어요. 그 부처님의 그 노사나불(불신)과 그 청정법신과 합쳐진 그 부처님은 우주의 주(主)예요. 우주의 힘을 마음대로 쓸 수 있어. 정말로 그렇습니다. 그걸 알아야 돼. 여러분, 이게 불교입니다.



이렇게 위대한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청정법신을 모르고 보신을 모르면 불교를 논할 자격이 없는 거요. 2600년 이후 지금까지 그 누구도 몰랐어요. 그리고 수많은 하늘, 성중하늘, 기타 보살국토에 가서 교화하는 화신이 있어요. 백 천 만억 화신이 있다고 했지요. 화신을 나툴 수 있어요. 또 인간세계에 와서 이 중생을 교화하고 제도하는 응화신이 있어요.



응화신을 응신이라고도 하고, 화신이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크게 세 가지의 유(有)인 법신․보신․화신 등 삼신을 구족하고 있어요. 이 삼신을 구족한 분이 붓다예요. 절대계에 자기의 불신(보신)이 없으면 붓다가 아니어요. 이건 붓다를 가름하는 절대적인 잣대가 된다고 했지요. 그것을 알아주십시오. 지금 정확히 시간이 얼마나 되었나? 50분 되었어? 자꾸 스님의 법문을 끊어버리기 때문에 내가 시간을 지키려고 합니다.



그 많고 좋은 법문을 자꾸 끊어버리기 때문에 흐름이 끊어져요. 저 사람들한테 할 말이 많은데 내가 미안해요. 두 시간으로 해서 붓다론을 다 해주려고 했습니다. 많습니다. 많아요. 도대체 부처님은 어떤 어르신인가? 살아계시는지, 살아계신다면 어디에 계시는지, 반열반 후에 어디로 가시는지, 부처님을 친견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뵙고 법문을 듣고 그 붓다의 세계에 살고 있는 스님은 어떻습니까? 의심이 많이 날 거예요.



그 붓다의 생각, 붓다님들의 세계에 대해서 스님이 아주 자상하게 20가지의 항목으로 대답을 해 놓았는데 이 다음시간으로 미루겠습니다.


출처/현지사 자재만현 큰스님 2010.6.5.토(음4.23) 춘천 법문중 발췌



부처님 당시 가섭(迦葉)삼형제 /부처님의 위대한 점

 부처님 당시 가섭(迦葉)삼형제/부처님의 위대한 점



부처님 당시 가섭(迦葉)삼형제가 있었습니다. 여기의 가섭은 부처님의 십대제자인 '마하 가섭'이 아닙니다. 맏형이 '우루빈라 가섭(優樓頻螺 迦葉)', 둘째가 '나제 가섭(那提 迦葉)', 셋째가 '가야 가섭(伽耶 迦葉)'으로 삼형제가 있었어요. 화룡을 섬기고 있던 '우루빈라 가섭(優樓頻螺 迦葉)'으로부터 그 유명한 화룡(火龍, 불룡)을 항복받고, 우리 부처님의 제자가 된 그 '우루빈라 가섭(優樓頻螺 迦葉)'은 '마하 가섭'이 아닙니다.



'가섭'이라는 이름이 우리 부처님 당시에 다섯이 있었어요. '십력 가섭'도 있었고, 또 BC 3세기에는 음광부(飮光部)라는 소승 부파불교가 있었는데 그 음광부의 개조(開祖)도 '가섭'이었습니다. 여기 '우루빈라 가섭(優樓頻螺 迦葉)' 삼형제가 500명씩, 1,000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앞에서 말씀드린 산상의 설법을 하실 때 있었던 분들이 그 제자들입니다.



이 귀한 사건이 있습니다. 이것은 화룡을 항복 받은 사건이고, 그리고 네란자라(니련선하)강을 잘라가지고 길을 만들어서 유유히 저 언덕까지 걸어간 사건입니다. 그리해서 1,000명의 가섭삼형제 제자들을 전부 받습니다. 1,000명 모두 귀의합니다. 유명한 사건입니다. 이런 일을 비롯해서 우리 부처님의 위대한 것은 많습니다. 이것은 학승들도 다 아는 일이지요.



학승들이 우리 부처님의 정말로 위대한 점을 모르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걸 오늘 말씀해 드립니다.

▸우선, 어머니를 위해서 42살 때 도리천에 올라가셔서《지장경》을 설한 사건이 있습니다. 두 번째,《화엄경》을 설하실 적에는 도리천, 야마천, 도솔천, 타화자재천을 순차로 올라가시면서《화엄경》을 설합니다. 그런데 지상의 기원정사에 당신이 설법하셨던 그 상황을 그대로 놔두고 도리천에서 설법을 합니다. 그대로 거기서 법을 설하십니다.



기원정사에 그대로 놔두고 도리천에 가는 거예요. 그건 갈 수 있는 이유가 있어요. 절대계에 계시는 자기의 불신(자기의 보신불)이 있거든요. 그때 이 영체가 계합하게 됩니다. 그래서 도리천에 가서 법문을 설해요. 그리고 또 야마천에, 도솔천에, 타화자재천에 가요.



이것은 신통이 아닙니다. 이것은 대적정삼매의 힘으로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붓다의경지에서는 대적정삼매의 힘으로 백천만억 화신을 낼 수 있어요. 이러한 점입니다. 여러분, 많은 점이 있는 데 다음 시간에 거듭 이야기하기로 하겠습니다.



▸우리 부처님께서 설법하실 때에는(크나큰 법문을 설하실 때에는) 꽃비가 내려오게 되어 있습니다. 큰 삼매에 들어가셔서 방광을 하고 하면 꽃비가 내리고, 수 백 만의 청법 대중이 몰려오고, 그래서 설법을 하시거든요. 이런 부분, 저런 부분에 대해서 학승들이 ‘이것은 문학적인 픽션(虛構)이다’하고 방기(放棄)해 버린 것입니다(픽션으로 치부해 버린 것입니다). 스님이 볼 때는 아닙니다. 이거 이상입니다. 보니까 이것 이상이어요.



▸우리 부처님은 어마어마한 힘도 있습니다. 외도의 전부가 우리 부처님을 향해서 달려든다고 하더라도 능히 제압할 수 있는 화광삼매화가 있습니다. 이것은 다음 시간에 말씀을 드리기로 하겠습니다.



부처가 되려면 마음속의 삼독 108번뇌가 완전히 다해야 되고, 그리고 다겁생의 죄업장이 완전히 소멸되어야 하고, 악과 습의 탁한 기가 완전히 빠져나가야 되고, 여러 생 동안의 원결(나쁜 인연)이 해결 되어야 하고, 은혜와 빚이 정리되어야 저 절대계에 자기의 불신이 생긴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말씀드리면서 우리 부처님의 위대한 이 실상이 여러분을 비롯해서 한국의 많은 불자님들이 알았으면 좋겠고, 학승들이(큰스님들이) 알아서 이제 이 부처님을 진짜로 믿고, 전번에 스님이 말씀드린 '영혼체 윤회설(영혼체 윤회론)'을 받아들이고 해서 이 불교가 다시 본래의 불교로 돌아가 가지고 힌두교도 흡수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위대한 부처님의 교리는 힌두교를 충분히 흡수할 수 있습니다. 또한 모든 종교를 전부 통합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이런 신불교 운동이 영산불교 현지사를 주축으로 해서 번져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영산불교 현지사를 많이 사랑해주시고 밀어주시기를 마지막으로 당부 드립니다.



여러분! 절대로 지옥 아귀 축생의 삼악도에 떨어지면 안 됩니다. 기어이 삼악도에서는 벗어나야 됩니다. 삼악도로 가면 안 됩니다. 지금 절대다수가 삼악도로 갑니다. 이 진짜 법문을 모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리고 여러분 모두가 윤회를 벗어나야 됩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간절하게 여러분에게 바라는 바 올 시다. 그리해서 모두모두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이라고 합니다.



출처/영산불교 현지사 






부처님은 무한 능력을 가진 우주의 절대자

 부처님은 무한 능력을 가진 우주의 절대자


천지가 생기기 이전, 생각 이전을 공적空寂, 공, 마음眞如一心, 영원불멸의 대생명, 범梵, I AM, 빛…… 이라 합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무시무종이요 비인격적인 원리입니다. 인격화시키면 많은 모순된 주장이 나오게 됩니다.

힌두교에서는 우주 본체를 범Brahma이라 하고 유有에서 유有가 나온 것이라 합니다. 이것은 맞는 말입니다. 거미줄은 거미에서 나온 것이고, 불꽃은 불에서 나온 것입니다. 소위 주관, 객관이 벌어지게 된 차원 이전, 시공 이전 - 곧 공空 안에는 모든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힘과 질료와 지智가 있습니다.

내 속에 창조의 원리와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한 마음범梵의 운동이며 발현이요 자기 발전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객미분主客未分의 공을 저 일신교에서는 하느님이라 봤습니다. 공은 무시무종, 영원불멸이요, 힘과 지智가 있어 일신교에서는 공을 인격화시켜 이를 전지전능한 하느님으로 만들어 냈습니다.

다시 분명히 말하지만 이것은 큰 잘못을 저지른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우상입니다. 그리고 진실로 하느님이라 할 만한 능력과 인품을 가지신 대성자는 곧 부처님이십니다. 부처님은 무한한 능력을 가진 우주의 절대자이십니다. 불신을 매개로 해서 공과 완전 계합하기 때문입니다.

공空 체험으로서는 공空 자체가 될 수 없습니다. 시공 이전의 공은 청정입니다. 영원이요, 완전 절대입니다. 깨달음으로선 아직 공이 될 수 없습니다.


비록 공空 체험 이후 보림을 끝마쳤다 하더라도 오온五蘊의 집착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고, 다생에 걸쳐 지은 업과 악‧습기가 있기 때문에 청정무구한 공과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다만 불과를 증한 부처님만이 공 자체가 되어 공의 힘, 우주적인 힘을 부릴 수 있습니다. 우주적인 창조의 힘을 구유하십니다.


출처/영산불교 현지사 






불과를 증한 붓다만의 세계_무아 속 절대계

 불과를 증한 붓다만의 세계_무아 속 절대계


거룩하고 위대하신 우리 부처님께서는 결국 스승 없이 홀로 시공時空 유무有無를 초월한 무아 속 절대계인 니르바나, 열반의 세계를 찾아드셨습니다.

깊고 깊은 적정 속에 펼쳐진 무릉도원입니다. 완전히 시공을 초월한 대열반, 대해탈의 붓다 세계입니다. 이 절대계는 열반의 빛光, 억종광 아니면 뚫을 수 없는 진리 자체의 무아 속 절대계, 상적광세계입니다.
불과를 증하지 않고선 들어갈 수 없는 환희의 지복의 세계입니다. 

무량겁 이래로 붓다를 이루신 부처님의 청정법신들은 바로 이곳에서 대적정광光삼매에 들어계십니다. 억종광으로 계십니다. 이것은 불과를 증한 분 이외에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며, 부처님 이후 그 누구도 몰랐습니다. 예수, 공자, 노자, 소크라테스, 미라래빠, 사라하, 아짠문, 달마, 혜능 그 누구도 이경지에 들지 못했습니다. 다만 수보리‧사리불 존자만이 불과를 증하여 알았습니다.

부처님의 깨끗하고 청정한 무량광명 빛_억종광, 백종오색광, 대열반광 

≪10만송 반야바라밀다경≫에는 여러 페이지Pages에 걸쳐 붓다보신불 몸의 각 부분들에 대한 묘사가 등장합니다. 그의 머리, 양손, 두 발 심어지 열 손가락에서 빛이 방사되어 세계 구석구석까지 도달한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이 경에서는 전 우주적인 몸이 육체적인 형태를 띠고, 절대계에 반영된 32상 80종호를 갖추고 있는 지복의 몸보신불을 그리고 있습니다.

보신부처님에 대한 신체상의 거룩한 특징과 깨끗하고 청정한 억종광명 빛으로 이루어진 불신에서 대적정삼매의 힘으로 빛을 방사하시는 희유하신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무를 초월한 무아 속 절대계에 여여히 계시는 붓다님들의 불신은 무량광명‧억종광명‧대열반광명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누차 법문한 바 있습니다.


붓다는 그 티끌 수 같이 많은 색깔의 광명을 마음대로, 가령 단색으로든 오색으로든 억종의 색깔로든 필요한 용도에 따라 방사할 수 있음은 물론입니다. 안팎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투명하고 영롱한 광휘를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원광圓光과 배광背光 - 신광身光 역시 임의로 크게도 작게도 하며 광도를 천문학적 수준으로 밝게 할 수도 있습니다. 불신 그대로가 억종광명의 빛덩이가 되기도 합니다. 어떠한 외도의 수장들도 붓다의 억종광은 흉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도 원광, 배광, 신광을 냅니다. 그러나 외도의 빛은 투명하지도 않고 단색일 뿐입니다.

붓다는 완전한 빛의 존재이십니다. 그것도 투명하여 예쁘고 청정한 백종오색광명 자체인 것입니다.

외도의 수장首長들이 인신을 받아와서 그들의 최고 수행을 통해 허공에다 빛으로 된 자기의 체외신體外身_허공신, 양신을 둘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체외신은, 밀교 바르도의 보신정광명과 화합한 의생신과도 같이 정법佛法의 진정한 보신은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허공이나 바르도 중음계中間界는 시공時空 안의 공간입니다.

시공을 초월한 무아 속 절대계, 곧 연화장세계에 두는 무량억종광명으로 이루어진 붓다의 지복의 보신과는 천지 차이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주에 편만해 있는 대생명, 공, I AM - 과 계합, 합일한 붓다는 그 공空 속에 있는 우주의 무진장한 보물을 내 것으로 했기 때문에 항하사의 신통 묘용으로 이를 화학적으로 조합해서 무엇이든지 만들어낼 수 있으십니다.  

이번 음력 7월 칠석절에 치성광여래부처님께서 우리 현지궁 현지사 1,000여 명 신도분들에게 감로수 병에 위신력으로 만드신 안팎이 투명한 알약 한 알씩을 넣어주셨습니다. 번뇌를 줄이고 몸의 병을 치유하는 약을 그곳 정토의 감로수에 넣어주셨습니다.

부처님 세계는 100% 내외명철內外明徹_안팎이 없음한 억종광명의 세계이기에 거기 존재하는 붓다의 궁宮, 금강좌, 컵과 같은 기물, 알약 등 모두가 안팎이 없이 투명합니다. 그대로 상적광의 세계인 것입니다.


출처/영산불교 현지사 




실존하는 부처님 부처님은 어떤 존재인가?

 실존하는 부처님

부처님은 어떤 존재인가?


      "불과를 이룬 붓다는 무아 속 절대계에 여여히

계십니다!!" 영산불교 현지궁 현지사 자재 만현 큰스님께서

제1성으로 토하시는 사자후입니다.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 가르침은 신 .  해 .

행  .  증의 실천과정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물론 이 과

정이 반드시 순차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실

제에 있어서 이들 과정은 유기적이고 복합적으로 이루어져

생사해탈을 위한 상승 작용을 한다고 하겠습니다.



불교에서 부처님의 존재와 위신력에 대한 믿은음 제1의

선입니다.  모든 가르침의 토대가 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

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신심을 더욱 깊게 해주고 올바른

수행의 길로 인도해줍니다. 이러한 부처님에 대한 믿음과

가르침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실천 수행의 바른 길과 지름

길로 가도록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이 신  .  해  .  행이 원만하게 이루어져야 해탈

을 증득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부처님에 대한 믿은

과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정확산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실천 수행을 통해서 완전한 생사 해탈을 증득하는 것이 불

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불교 수행은 이 생사 해탈을 위한 머나먼 여정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불  법  승  '삼보' 라는

이름의 배를 타고 우리의 여행을 떠나고자 합니다.



        이제 여정의 첫 출발지인  '신,  믿음'에서 우리의

여행을 시작하겠습니다.  첫 출발점인 신에서는 여러분들이

부처님의 존재와 위신력에 대하여 철기둥 같은 믿음을 가

질 수 있도록 설명해드리는 것이 목적입니다.  삼보 중에

서는 '불보론'에 해당합니다.



이 여정에서 여러분들은 석가모니부처님과 오여래부처님,

그리고 삼천대천세계의 기라성 같은 부처님들께서 모두 실

제로 존재하고 계시다는 놀라운 소식을 접하고 신심 깊은

새로운 불자로 거듭 태어날 것입니다.



      불교의 교주이신 부처님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은

불교를 제대로 이해하는 첫걸음이 됩니다.  오늘 날 불교에

대한 대부분의 왜곡은 부처님의 존재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것에서 시작합니다.  단언하건데,  부처님만 올바로 이

해해도 우리 불교는 획기적으로 달라질 것입니다.  깊은 신

심이 뿌리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의 세계 불교는 이 첫걸음부터

잘못 내디녀 지금은 백척간두에 서 있는 형국입니다.  이에

영산 당시 가섭존자, 아난존자가 부처님의 부름을 받고 사

바세계에 몸 받아와 영산 당시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복

원하여 세상에 널리 펼치고자 하는 것입니다.



  경전 속의 말씀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 이 시점에서 부

처님께서 직접 가르쳐주신,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생생한

감로의 가르침입니다.





          최근 부처님께서는 자주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신심 하나가 무너지면 아흔아홉99  가지가 다 소용이 없느

니라."  이것은 부처님에 대한 신심 하나가 무너지면 이 세

상의 부귀영화 등 여러분이 소중히 여기는 아흔아홉 가지

가 다 소용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여러분이 원하는 아흔아홉 가지가

다 갖추어져 있다 하더라도 신심 하나 무너지면 모든 것이

사상누각처럼 허망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반대로 여러분이 현실 생활 속에서 아흔아홉 가지를 비

록 갖추지 못했다 해도 부처님에 대한 신심 하나만 확실하

게 서 있으면 여러분은 그 아흔아홉 가지를 모두 다 체울

수 있다는 말입니다.



  불교의 심층심리학이라는 유식학에서는 마음의 작용을 6

가지로 구분하는데, 그 중 하나가 선심소로서 '착한 마

음'을 말합니다.  이 ' 착한 마음'의 세부 내용에 11가지가 있

는데,  그 중 '믿는 마음' 즉 신심이 첫 번째로 올라와 있

습니다.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부처님에 대한 믿음이 제1의

선이라는 말이 됩니다.



      부처님은 우리가 막연히 인류의 성인 정도로 생

각하고 넘어가도 될 그런 분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

립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들이 상상할 수도 없는 무량겁

전에 우주 법계 최초로 불과를 이루신 분입니다.  차마 인간

으로서 견디기 어려운 온갖 고통과 고난과 역경을 모두 혼

자 힘으로 이겨내시고 수처만생의 뼈를 깎고 살을 저미는

수행을 통해 우주의 본성과 완전히 계합한 자리, 우주 법계

의 가장 심원한 구중궁궐,  심산유곡, 본원자리에서 우주 법

계의 왕으로 우뚝 서신 분입니다.



  우주 법왕이신 부처님께서는 우주 정법계 최초의 주인으

로서 불교의 깃발을 내걸고 불국토를 개척하셨습니다.  부처

님께서는 당신의 능력과 위신력으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항

하사 수의 불보살을 길러 오시는 한편 수많은 외도들을 조

복 받아 불교권의 우주 정법계를 형성하면서 지금은 전체

우주 법계의 가장 많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우주성단

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종교와 수많은 외

도. 마왕. 악귀 등의 세력들이 분점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우주 정법계를 이루고 있는 불교권은 우리 불세존과 붓

다들을 정점으로 한 절대계와 수많은 보살들정토계, 104위

화엄성중을 비롯한 무량의 아라한, 성중들, 신중들로 이루

어져 있습니다.  우리 사바세계 불교권도 우주 정법계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상세계의 사법부로 비유될 수 있는 명부를 지장보살님

께서 관장하고 있는 것만 봐도 우리 불교권이 우주 법계에

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른 종교

인, 비종교인들이라도 윤회하는 중생이라면 명부의 심판을

피해갈 방법은 없습니다.



         불과를 이루신 후 부처님께서는 그 환희의 극락

중 극락을 마다하시고 사바 세상에 여러 차례 몸 받아 오

셔서 두 번째 불과 이루신 다보불을 비롯하여 수많은 붓다

님들과 보살들을 길러내셨습니다.  무량의 중생들을 교화하

여 악도에서 건져내셨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삼천대천세계의 붓다들은 모두 부처님의

은혜로 붓다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법화경>>에서는 수많

은 불국토의 분신부처님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화신부처님

이 아님을 이 기회에 알려드립니다.  이 가없는 부처님의 대

자대비와 은혜를 우리는 한 시가 아니라 염념불망, 일분일

초라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마음 모두 헤아릴 수 있어도

망망대해 바닷물 남김없이 마실 수 있어도

광대무변 허공 다 헤아리고 바람 모두 묶을 수 있어도

부처님의 크신 공덕 능히 다 말할 수 없네.



찰진심념가수지

대해중수가음진

허공가량풍가계

무능진설불공덕



이 게송으로도 너무 부족합니다.  수억겁을 두고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고 그 은혜를 갚아도 우리는 부처님 은혜의

1백만분의 1도 갚지 못합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위대하신

어른이십니다.  이제 이러한 기본 지식을 갖고 여러분과 함

께 부처님 나라 깊숙이 여행을 해보겠습니다.



출처/영산불교 현지사 





미래제가 다해도 멸도할 수 없는 부처님의 수명-《법화경》여래수량품, 의 법문을 다보불께서 증명하시다

 미래제가 다해도 멸도할 수 없는 부처님의 수명-《법화경》여래수량품, 의 법문을 다보불께서 증명하시다



 

부처님께서는 노년에 왕사성 기사굴산영취산에서 많은 비구, 비구니, 8만 정토보살들과 신들의 왕인 제석천 그 2만의 천자들, 여덟 용왕, 긴나라, 건달바, 아수라, 가루라의 왕들 그 수만의 권속들에 둘러싸여 《무량의경》을 설하신 다음, 무량의처삼매三昧에 드십니다.

세존께서 삼매에 드시자 만다라 등 여러 하늘 꽃비가 내리고 전 불국토가 여섯 가지로 진동합니다.

그때 세존의 미간에서 한 줄기 광명이 비쳐 동쪽으로 1만8천의 많은 국토를 비춥니다. 지옥으로부터 하늘, 불국토…… 그 안의 중생들 부처님들도 똑똑히 보입니다. 세존께서는 그 깊은 삼매에서 깨어나 사리불을 상대로 법을 설하십니다.

부처님의 위대하심을 우리는 여기서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자재 만현은 여기서 확실히 강조 증언합니다.

진실이라고, 사실이라고……. 이것이 진짜 신통입니다.

깊은 삼매력에 의한 불 보살의 신통은 바람직하지만, 귀신이나 축생이매망량, 외도 하늘 신에 의한 신통은 사특한 힘이 들어오기 때문에 사음, 살생, 투도 등 큰 업을 짓기 마련이어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영적 성장에 전혀 도움이 되지도 않습니다. 곧 몸에서 불을 뿜거나, 홀연히 없어졌다가, 축지도 하고, 이산도수移山渡水를 하고, 공중에서 설법을 하고, 예언·치병하는 이런 것은 정법이 아닙니다. 바람직하지 못한 신통은 사특한 힘으로 지중한 죄업을 많이도 짓기에 무간지옥행하는 것입니다.

자재 만현이 불과를 이루어 문수보살의 법왕자라 하지만 아직은 소년少年 부처의 수준이어서 설법할 때 본서 1장 참조 불 세존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법화경》<종지용출품>을 보면 삼천대천세계의 땅이 진동하면서 갈라지고 천만억 대보살들이 부처님 앞에 솟아나오는 장면을 대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미륵보살에게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이 대보살들은 내가 사바세계에서 가장 높고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후부터 교화 지도한 자들 이니라”하시고 <여래수량품>에 부처님께서 성불하신 지는 실로 한량없고 가없는 백천만억 나유타겁이 지났다 하셨습니다.

나는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서 불과를 증하게 되면 무아 속 절대계에 티끌 수 같이 많은 색깔의 광명으로 이루어진 자기 불신원만보신을 둔다고 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가없는 백천만억 나유타겁 전에 부처님이 되셔서 지금까지 그 절대계에 계시는 것입니다. 빛으로 이루어지셨기에 영원히 멸도 할 수 없습니다. 그곳을 자기의 본불지복의 몸을 놔두시고 절대계를 떠나지 않으시면서 응화신인신, 화신을 나투거나 혹은 본불의 변화신으로 인연 중생을 교화하여 보살을 만들고 붓다를 만드십니다.

 

항상 대적정삼매에 자유자재로 드시기에 중생을 교화하시다 스트레스(?) 받는 일을 만나면 곧 이 깊은 삼매에 드시는 것입니다.

상대세계의 환희와 행복감은 굴곡이 있어 영원하지 않지만, 이 깊은 삼매대적정삼매 속의 환희와 행복은 설사 백천겁 혹은 나유타겁을 지나더라도 엉덩이춤이 저절로 추어지는 그런 부사의한 환희 자체입니다.

언제나 그 자리는 극락 중 극락이니 기이한 삼매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환희 자체의 세계에 들 수 있는 대적정삼매를 최초로 발견해 들어가신 부처님의 위대하심을 미래제가 다하도록 찬탄‧.공경해야 할 것입니다.

 

<견보탑품>에서는 여기서부터 하방아래 방향으로 백천만억 나유타의 세계를 지나가면 보정이라는 정토가 있고, 그곳의 교주는 다보불이심을 밝히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묘법연화경이나 큰 법을 설하실 때는 칠보로 된 보탑다보탑의 전신이 계심이 아래 땅 속으로부터 솟아나와 다보불께서 부처님의 법문 말씀이 진실하다고 증명선언하십니다. 나 자재 만현은 이 경의 말씀도 역시 진실이라고 선언합니다.

<견보탑품><종지용출품><여래수량품> 모두 붓다의 경계입니다. 이런 품들의 불가사의한 경문經文을 학승, 불교학자들은 새로이 해석하고 있습니다. 칠보의 탑을 인간 내면에 갖추어져 있는 불성으로 보고, 땅은 자기 자신으로, 다보여래란 부처님께서 깨우치신 진리로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의 경계는 차지하고, 보살·아라한의 법위에도 이르지 못한 학승들이라면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지만 이런 류의 해석은 큰 해악을 주는 대망어라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다보탑은 꼭 부처님게서 《법화경》<여래수량품>을 설하실 때만 솟아나는 것이 아닙니다. 큰 법을 설하실 때에물론 지금 이 시간에 어느 불국토에 가셔서, 혹은 사바세계에서 붓다가 새로 출현했을 때도 다보탑은 그 사실을 진실이라고 증명하고자 땅 속에서 솟아오릅니다.

다보탑이 솟아오를 때는 반드시 한량없는 천만억 보살들이 함께 땅 속에서 황금색 장삼을 수하시고 솟아올라 허공 가득히 채웁니다. 이것 - 사실입니다.

 

정법을 모독 능멸, 훼손하는 대망어는 《법화경》부처님 말씀처럼 제일 무서운 과보가 옵니다. 극무간지옥행 한다는 것을 첨언해 둡니다.

대승경전이 방편과 비유를 들어 법설하고 있다 하여 이치로만 해석해 나가는 우愚를 더 이상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치진리로써 해석하되 사실임도 간과하지 말기를 거듭 요망하는 바입니다.

공空을 깨치고 공성을 증득한 것만으로는 붓다라 할 수 없습니다. 32상을 갖춘 색신報身을 얻어야 불佛인 것입니다<비유품>. 거듭하여 강조해 둡니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아라한을 넘어서 보살의 법위法位에 올라 있는 10대 제자들에게 앞으로도 수많은 겁 동안 나유타나 되는 부처님들께 공양하고 보살의 수행을 완성하면 OO부처如來가 되리라는 수기를 주십니다. 이는 깨달음⇒아라한⇒보살⇒붓다의 위계를 말씀하신 중요한 큰 법설입니다.

절대계에 자기 불신32상을 갖춘을 얻어 붓다 되기란 이렇듯 어려운 일인 것입니다. 자재 만현은 이 법문이 곧 부처님의 말씀이라고 확인하는 바입니다.

부처님은 거룩하고 희유하십니다. 불교는 위대한 우주적 메타종교입니다.


출처/ 영산불교 현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