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14일 월요일

견성오도見性梧道 전체공개

 견성오도見性梧道 전체공개



의심하는 이 놈은 무엇인고?
화광반조 10여 년만인 7월 어느 날, 생각을 놓아도 저절로 화두
가 들리길 여러 날 동안 이어졌습니다.

답답함이 부풀어 올라 풍선같이 극치를 이룰 즈음, 큰 소리로
금강경을 봉독하는데, '여래는 어디로부터 온 바도 없고, 또한
가는 데도 없다'는 대목에 이르러 갑자기 온몸이 폭발하듯 하
면서 세상이 확 뒤집혔습니다.

주主와 객客의 벽이 무너져 버리고, 툭 터져 허공같이 비었습니
다. 적조寂照요, 만고萬古의 광명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마음은 실체가 없어서 가고 옴이 없고 여여부동如如不
動하다는 것을 확실히 보았습니다.

나는 저절로 일어나, 실로 법열法悅이 어떤 것인가를 실감하면서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다겁생多劫生의 업業의 나무 무성하더라
팔만 사천 가지마다 줄기마다

망상 꽃이 피었더라.

내 이것을

송두리째 뽑아 버렸더니

하늘도 없고 땅도 없더라.

거짓몸뚱이 산산이 부서져

가루되어 없는데

착着할 게 어디 있는가.

마음 마음
본래부터 없는 것

이름하여 마음이라 하네



이것이 벌써 30여 년 전의 일입니다. 마음의 본래면목本來面目,
존재의 진상, 우주의 체성體性을 확실히 철견할 수 있었던 것은 오
매불망 간절히 의단을 쌓아온 나의 정성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
합니다.






염불선으로의 회귀


돌계집石女의 겁외가劫外歌와 동산수상행東山水上行을 말하고 '덕
산德山' 의 30방을 흔들며, 상相에 집착 없는 언어로 공空을 읊고
마치 우주의 주인이 다된 양 착각하여 오만을 떨었던 지난날을 생
각하면 그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30대 중반 서울에 올라와 상임포교사로서 불법을 포교하기 위해
법상에 앉은 지 채 2~3년도 못 되어 나의 공부禪수행 保任에 회의
를 품기 시작했습니다.

히말라야 초인超人들, 힌두교 성자요기 Ylgi들 및 티베트 밀교의
성자 미라래빠의 수행담을 접하고 법화경, 화엄경 등 대승경
전을 정독하면서 나의 선수행을 비교 점검해본 결과 중대한 발
견을 하게되었습니다.

자성을 깨치는 것은 공부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견성見性이 곧
성불成佛' 이라는 산가의 기치旗幟는 분명코 잘못됐으며, 설사 견성
하고 나서 보림을 마친다 하더라도 곧 붓다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부처님이 거룩하시고 희유하시며 거의 절
대자라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또한 인간 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결국 아라한에 그칠 뿐
이라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아라한으로서는 우주와의 계합이라는
것이 결코 불가능하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실존철학의 소위 존대sein 불교의 법성法性, 선禪의 자성自性에 해당가
드러나서 머무는 건 순간일 뿐입니다. 영원히 우주와 계합을 이루
는 성불만이 완벽한 생사해탈을 보장합니다.

소위 견성에 이름으로써 저 일신교에서 말하는 '하나님' 이 우상
일 뿐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말하자면, '절대적인 창조주란 없
다!' 고 선언하는 단계가 바로 견성의 경지였습니다.


이 경지에 이르면서 이 몸뚱이란 4대지수화풍로 이루어진 옷이나
집과 같은 '가짜 나假我' 라는 것과, 나我라는 것도 오온五蘊-色受想行
識으로 이루어진 인연소생의 가아假我이며 이 세상은 꿈이나 그림
자 또는 이슬과 같은 무상無常한 존재라는 사실도 발견하였습
니다.

분별하고 사량하는 것은 생각일 뿐, 마음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
습니다. 이것만 해도 크나큰 깨침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천지天地 이전, 곧 부처 나기 이전의 적멸寂滅과 우주가 생
기기 이전의 면목을 깨친 이라면 당연히 불교의 연기법만이 진리
라는 것을 사자후할 것입니다.

내가 갑자기 염불선 공부로 용감하게 회귀할 수 있었던 것은 화
엄경 입법계품, 법화경 본문 팔품에서 가르친 대로 무엇보다
도 계율을 존중하며, 경전을 읽고 염불하는 수행만이 부처가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정토삼부경에서 수행인이 생사윤회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지름길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경전 읽고 염불하는 것만이
우리가 보다 잘 살수 있는 오직 하나의 대안代案임을 확실히 보았
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나는 인도의 용수, 마명보살, 중국의 혜원 조사, 진晋의
각현, 담란, 천태지의, 선도, 도작, 영명연수 선사, 한국의 의상, 원
효스님, 서산 선사의 염불선을 크게 주목하면서 우주생명의 실상
實相을 관觀하며 보림을 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미모의 젊은 여인을 보고 마음이 설레는 자신을 발견
했습니다.

그 순간 '진여실상이라는 용광로에 무명번뇌나 억겁의 죄장 따
위가 모조리 녹아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고 주장했던 지난날의 나
의 법문을 스스로 반추하고 의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혼자 산행山行을 하던 중에 쉬어갈 만한
곳에서 선정禪定에 들었습니다. 그 선정 중에 문둥병을 심하게 앓
고 있는 남자가 들어와 한 이불 속에서 자고, 밥지어 먹고 지냈을
때, 정말 선정에 들었으면서도 알고보니 천인天人의 선정이었다
중생심의로 돌아가 역겹고 싫은 생각이 줄곧 따라붙고 있었습니다.

한 태백산의 토굴에서 보림하던 어는 여름날, 커다란 구렁이
가 내 곁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너무도 긴장하여 진땀을
흘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습니다.

이런 경험들을 하면서 본래면목의 실상, 진여자성眞如自性을 철
견하고 보림한다고 해서 붓다가 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오백생 이전에 수행하실 때에 '가리왕' 이라는 포
악한 악인을 만나 난자당해 돌아가셨을 때에도 그에게 성내고 원
망하는 마음이 조금도 일어나지 아니하셨는데, 도대체 나는 어디
쯤 와 있단 말인고? 결국 인간 능력의 한계라는 명제와 타력他力, 곧
'부처님의 가피' 라는 주제를 두고 차츰 골똘히 생각하였습니다.

그 당시에 나는 깊은 선정에 들어서 그것을 진짜 삼매라고 오해
한 나머지 불 보살을 뵙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친견은 고사하고
지옥 천상세계도 관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윤회를 벗어난 해탈
오계解脫梧界, 곧 도솔정토나 서방극락세계도 끝내 관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선승禪僧이었음에도, 이 모두가 실제로 존재할 것이
라고 믿었기 때문에 염불선으로 과감히 방향전환하였으나 특히
1970년대 당시의 한국불교에서 선수행이 강고되다 보니, 염불하
는 행자들을 무조건 외도로 몰아 배척하였기 때문에 겉으로 내색
하지 못하고 침묵 속에 정토업淨土業을 쌓았습니다.

또 하나 내가 염불선으로 방향전환을 결심한 데는, 선재동자와
같은 나의 과거 행각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마친 화엄경 입법계품의 선재동자처럼 나이와 성별, 출가
재가를 가리지 않고, 이단異端-제2의 예수라 자칭하는 어느 목사님, 부처라
고 떠받드는 어는 재가보살 그리고 전라도 토굴의 어느 도인 등을 이해하고 오
랜 세월 교유함으로써 선禪의 참구參究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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