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22일 금요일

사성제



오늘 법문할 내용은 『사성제』입니다. 다섯 비구를 향해서 부처님께서 법문해주는 거예요. 당신은 다시 크~게 깨쳐서 내려와 보니까 다섯 비구들은 아직도 깨치지를 못했어요. 다섯 비구들이 깨친다고 해야 거기는 아라한이지요. 거기는 아라한입니다. 


아직 못 깨쳤어요. 그래서 법문해주시는 거예요. 법문해주시는데 위신력을 놓으면서 하거든요. 부처님들은 가피를 주면서 해요. 업장을 씻어주고 저 비구 몸속에 빙의된 것을 떼어 주시기도 하십니다. 그


러시면서 법문을 해주시거든요. 수행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 수준에 맞추어서 법문을 하십니다. 그래서 잘도 알아듣고 ‘정말 진짜 법문이구나!’ 해서 그 법문 끝에 깨치기도 해요. 많이 깨쳤어요. 많이 깨칩니다.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설법을 한 끝에 대부분 사람들은 복이 많아서 많이도 깨쳤어요. 곧 아라한과도 증하게 되었어요. 이것은 부처님의 위신력이어요.


어떤 법문을 하셨느냐? 앞에서도 말씀드렸지요. 부처님은 다시 불과를 이루어서 인생과 우주의 모든 것을 꿰뚫어 봤어요. 꿰뚫어보니까 업이 지중한 사람은 지옥을 가고, 지옥에서 사람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짐승으로 나오고 아귀의 몸을 받는 것을 보니까 너무도 불쌍해요. 지옥은 너무너무도 무서워요. 짐승세계도 너무너무도 그 환경이 열악해요. 


그렇지요? 그러니까 제도하지 말라고 해도 그 자비심으로 제도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제도 안 할 수가 없어요. 


너무도 불쌍하니까 제도하고 싶은 생각이 난단 말이어요. 놔두면 지옥 이귀 축생으로 갈 사람들이거든요. 그러니까 붙들고 붙들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지옥 아귀 축생으로 떨어진 이유를 부처님 지혜로 뚫어보니까 탐‧진‧치어요. 탐‧진‧치 때문에 지옥 아귀 축생으로 떨어지더라 그거예요. 어리석은 짓을 많이 했으면 반드시 축생 보를 받습니다. 


탐욕심이 많아서 인색하면 반드시 아귀 몸을 받거든요. 또 진심(瞋心, 성내는 마음) 분노(憤怒) 화를 시도 때도 없이 분출하고 아주 악한 짓을 하게 되면 지옥에 가거든요. 탐‧진‧치 업을 지어서 지옥 아귀 축생에 가 나더라 그거예요.


‣ 그래서 이 법문을 다섯 비구를 향해서 이렇게 설법하십니다.

“너희들이 사람으로 살았으니까 알겠지만, 이 인간세상은 고해(苦海)다. 고통 아님이 없단다. 


육신의 고통과 마음의 고통, 이거 너무 고통스러워. 인간은 고해야. 지옥 아귀 축생의 중생은 말할 것도 없어. 사람의 10배 100배 1000배라네. 하늘 중생도 잘 산다고 하지만 복이 다하면 떨어진다네. 지옥으로도 떨어지고 인간으로도 온다네.”


이 고통에 대해서 괴로움에 대해서 이야기해줍니다. 여러분 전번 시간에도 이야기했지만 고통 근심 걱정 등 이런 것 없으면 살겠지요? 그러나 고통 없이 사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괴로움 없이 괴로움 당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거예요. 


오복(五福)을 갖추었다고 해도 아니지요. 자식이 남편이 부모가 아파서 마음고생을 하면 괴로워요. 이 고통, 괴로움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정말 우리가 바라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우리 부처님께서 생로병사, 이 괴로움에서 어떻게 벗어나는 길이 없느냐 해서 출가하셨던 거예요. ‘내가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알게 되면 많은 사람에게 법을 설해서 많은 사람을 구제하리.’ 이런 소망으로 출가해서 수도한 거예요. 


그래서 깨달으신 후 고통에 대해서 이야기한 거예요. 이것을 고성제(苦聖諦)라고 합니다. 사성제 중에서 고성제라고 그래요. ‘괴로울 고’자, 제(諦)자는 ‘말씀 언言’변에 ‘임금 제’자가 있어요. 


그러니까 이것은 ‘아주 거짓 없고 진실하다.’ 그 말이어요. 고라는 말은 ‘인간은 고다. 생존이 곧 고다. 생즉고(生卽苦)다. 생(生), 사는 것이 곧 고(苦)다.’ 이것이 진리라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한 때에는 그저 기쁘고 행복해서 ‘하하 히히’ 하고 그러지만, 이것은 노래에 있듯이 눈물의 고통, 눈물의 씨앗이라고 하는 거예요. 


맞는 거예요. 그래서 중생이 사는 것은 고다. 인간세계는 고해(苦海)이다. 이것을 고성제라고 해요. 이것은 진리라는 거예요.


이 말은 진리라는 거예요.

‣ 그다음, 내가 그렇게 수행을 많이 하고 삼계를 뚫어버리고 모든 것을 통찰해보니까 하나님은 없더라 그거예요. 절대자는 없더라 그거요. 우주만물을 창조한 절대자는 없더라. 그러면 이 고통이라는 것은 도대체 어디서 왔느냐? 


사유를 거듭해서 내가 불과를 이루어보니까 고통이라는 것이 어디에서 오느냐? 탐진 번뇌에서 오더라 그거요. 고통이라는 것은 업(業)에서 오는데 업은 어디서 오느냐? 탐진 번뇌에서 업을 짓거든요. 탐진 번뇌에서 오더라.


탐진은 어디에서 오느냐? 삼독 탐진은 어디서 오느냐? 12연기에서 보면 갈애(渴愛)그래요. 애(愛), 그것을 갈애라는 거요. 애에서 온다. 갈애에서 온다. 갈(渴)자는 여름에 운동을 많이 하다가보면 갈증이 난다는 말이어요. 갈증이 나요. 


갈증이 나면 먹어도 먹어도 먹고 싶어요. 그 갈(渴)자입니다. 애자는 ‘사랑 애’자예요. 정애, ‘사랑 애’자. 이것은 사실 그 근본이 애욕(愛慾)이어요. 


여러분, 애욕 알지요? 남녀 간의 사랑, 애욕, 이것의 근본은 무엇이냐? 무명(無明)이라고 그래요. 이 무명에서 애욕과 갈애가 나오고, 갈애에서 집착하게 되고, 집착에서 업을 짓고, 업을 지어서 고통이 온다

그거예요.


그러니까 모든 고통의 근본, 윤회고(輪廻苦)의 근본, 우리가 살아가면서 당하는 고통의 근본은 어디서 오느냐? 탐진 삼독 번뇌에서 오는데 더 뚫어보면 갈애에서 온다. 


갈애와 집착, 이놈을 끊어버려야 육신의 고통과 마음의 고통에서 해방된다 그거예요. 그렇더라 그거예요. 그러니까 너희들은 반드시 갈애와 집착을 끊어야 된다. 


이 갈애와 집착을 집(集)이라고 합니다. 집제(集諦)라고도 하는데 집이라고 그래요. 앞의 고제(苦諦), 그 다음에 집제, 집성제(集聖諦) 그럽니다. 


이 집(集)자가 ‘새 추’밑에 ‘나무 목’을 한 자예요. ‘새 추’밑에 ‘나무 목’을 한 자인데 무슨 뜻이냐 하면 한문학자들이, 중국의 불교학자들이 산스크리트어의 삼우다야samudaya, 결합해서 상승한다, 삼우다야samudaya를 집으로 번역한 거예요. 


고통의 원인, 고통을 가지고 오는 원인을 집이라고 해요. 고통이 오는 원인 ‧ 고통을 가져다주는 원인, 집이라고 그래요. 번뇌라고도 해요. 


이 번뇌가 고통의 원인이 되더라 그거예요. 하나님이 아니고 우리가 스스로 탐‧진‧치 번뇌를 일으켜 업을 짓는데, 이 때문에 고통이 오더라 그거예요. 왜 그러느냐? 


이 몸뚱이에는 사실 갈애와 애욕이라는 것이 깔려있습니다. 녹아있습니다. 이 몸뚱이가 그래요. 사실은 이 몸뚱이가 있어서 그래요.


‣ 그래서 이 갈애와 집착을 뿌리 뽑아버리면 고통이 오지 않는데, 그 뿌리를 뽑아버리는 방법이 뭐냐? 팔정도(八正道)라고 해요. 팔정도가 뿌리를 뽑는 방법이어요. 이것을 도성제(道聖諦)라고 그래요. 도제(道諦)라고도 합니다.


‣ 뿌리를 뽑아버리면 어떻게 되느냐? 멸성제(滅聖諦) ‧ 멸제(滅諦), ‘해탈 열반에 이른다.’ 그거예요.


그러니까 사성제라고 하면 고성제고제 ‧ 집성제집제 ‧ 멸성제멸제 ‧ 도성제도제 그럽니다. 이것이 진리다 그거에요. 우리 부처님께서는 평생 이것을 의식하셔서 법문하신 거예요. 사성제를 기반으로 해서 법문하신 거예요. 


그러니까 불교의 모든 교설이 사성제로 다 어우러질 수가 있어요. 그래서 사성제 법문을 맨 처음 하신 것입니다. 다섯 비구를 상대로 해서 말씀하신 것이거든요.


그런데 부처님께서 깨달았다고 하면 뭘 깨달았지요?


⁃ 사람이 어떻게 탄생하고

⁃ 우주만물이 어떻게 해서 생겨나고

⁃ 생겨나서 어떻게 어떻게 진화하고

⁃ 그러다가 그 후에는 어떻게 파괴되지요.

⁃ 또 그 후에는 어떻게 없어지지요.

⁃ 그 후에는 이것을 반복하지요. 이것을 보신 거예요. 깊이 통찰하신 거예요.


인간과 우주만물이 어떻게 해서 생겼느냐? 보니까 우주본체에서 모든 씨종자가 나왔는데, 그것이 연기법(緣起法)으로 전부 인연 따라서 이루어지더라 그거예요. 


인연 따라서 이루어지는데 중생들이 지은 업과 이 우주본체의 힘이 인간의 탄생과 우주만물을 생성 가능하게 하고, 성주괴공(成住壞空)을 가능하게 하더라. 그래서 모든 것은 인연으로 된다 그거예요. 인연으로 된다.


내가 과거 생에 어떤 사람이 보기 싫어서 칼로 찔러 죽였단 말이에요. 무서운 살인을 했단 말이에요. 그렇게 되면 나와 그 사람 간에는 인연이 맺어진단 말이에요. 나쁜 인연인 악연(惡緣)이 맺어져요. 원결이 맺어진단 말이에요. 


그러면 그것이 돌고 돌아요. 나로 인해서 죽은 사람이 원한을 가지고 나를 죽이려고 호시탐탐(虎視耽耽) 기회를 노린단 말이어요. 기어이 죽이려고 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결국은 내가 그 사람한테 죽어요. 죽으면 또 내가 그 사람을 죽이려고 해요. 전생을 모르니까 그 사람을 죽이려고 해요. 그러니까 죽고 죽이고 죽고 죽이고 하더라 그거예요. 계속 그러더라 그거예요.


또 내가 어떤 사람한테 크게 은혜를 입었으면 사람이니까 그 은혜를 잊을 수 없단 말이에요. 그러면 할 수 있는 한 내가 그 은혜를 갚으려고 하잖아요. 은혜가 지중하고 많으면 반드시 갚게 되어 있습니다.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것이 있고, 좋은 것이 오면 좋은 것으로 주고, 나쁜 것으로 받으면 나쁜 것으로 갚아요. 이것을 인과(因果)라고 합니다. 이러한 것을 연기법(緣起法)이라고 합니다. 인과의 법칙, 인연의 법칙을 모두 연기법이라고 해요. 부처님께서는 연기법을 깨친 것이어요. 연기법을 깨쳤는데 왜 연기법과 십이인연을 설하지 않고 먼저 사성제를 설했느냐?


사성제가 최초 법문입니다. 그래서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고 해요. 사성제 중에서 앞에서 말씀드린 팔정도를 도성제라고 하는데 이 고통을 가져오는 원인인 갈애와 집착 무명 등을 뿌리 채 뽑을 수 있는 방법은 아무리 사유해도 팔정도가 최고예요. 그래서 불교에서는 도제(道諦) 팔정도(八正道)를 성스러운 진리로 알고 있어요. 팔정도로 깨닫는 거예요


 팔정도로 우리는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부처님께서는 사성제를 설하십니다. 팔정도로 탐진 삼독의 뿌리를 뽑아버리면 멸제(滅諦)라고 그래요. 멸제‧멸성제라고 하는데 그것을 해탈 열반이라고 그래요. 


그때는 해탈 열반까지만 이야기하고 우리 현지사에서 이야기하는 상락아정 니르바나세계라든지 부처님의 저 절대계 상적광세계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그 당시 다섯 비구를 향해서 그저 윤회생사에서 벗어나는, 생노병사에서 벗어나는 길만 가르쳐 주신 거예요. 그것이 사성제 법문이어요. 그래서 다섯 비구가 아라한과를 얻게 됩니다.



신불기17   불기2558년 갑오년 음력 6.24.

(2014. 7. 20.일) 큰스님 부산 법문  VI-30, 245회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