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24일 목요일

습(習)에 대하여



사실을 말하자면 아라한의 성과(聖果)를 얻은 수행인이라 해도

아직은 (집)착도, 습도 조금은 남아 있다.


경전에 보면 - 유식(법상)에서도, 번뇌의 뿌리가 아라한이 되면 뽑혀진다 했으나,

그것은 아라한과 붓다를 같은 선상에 두고 한 말이다.

 

집착은 갈애(본능적인 욕심)에서 오는바 유식학적으로 말하면 8식과 관련있다.

 

그러나 습기도 다겁생을 살아오면서 형성된,
법에 맞지 않는 짓이라 6식, 7식, 8식과 관련이 있다.

 

붓다 이루는 최후 관문을 통과하는데 있어 습신(習身)이 빠져나가는 것을 보면

탐애나 집착보다 습을 완전제거(소멸)하기란 더 어려운 일. 겉으로 보아도

거짓 몸둥이의 버릇이 더 끊기 어려운게 사실이다.


4번, 3번, 2번, 1번 영체로 깊이 들어가도 습의 실뿌리가 내리고 있다.

 

영적으로 크게 진화한 아라한, 보살 일수록 이치에 맞게 깨어 있을 때 같이

꿈에도 법문을 한다.

 

꿈의 나(我)는 ‘4영체 + 거짓몸둥이의 욕심, 번뇌, 습의 뭉치’이다.

따라서 꿈에 청법대중을 상대해서 법문한다는 것은 탐진등

본능적인 번뇌와 집착등이 어느 수준 다 해야 가능한데,

습도 착 못지 않게 본질적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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