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6일 수요일

적정삼매송*영산불교 현지사

 


적정삼매송



우리가 사는 이 시대, 이 나라의 불교는 많이도 왜곡되어 있습니다.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계율이 없는 불교란 있을 수 없습니다.

첫째도 계율, 둘째도 계율입니다.


염불을 경시하고, 부처님 경전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불교가 아닙니다.

외도요, 외도의 권속입니다.


팔정도 수행과 나 없는 공부工夫로써 대보살의 깊은 삼매三昧에 들 수

없다면 눈 먼 중생을 이끌 수 없는 법입니다.

먼저 적정삼매에 들어 읊은 송을 소개하고 법문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비었어라 비었어라

텅 비었어라

네 것 내 것 어디 있으며

가고 오는 게 어디 있으랴

하나가 여럿 되고

여럿이 하나 되어

하나까지도 없는 것

무아 무아로다

맑고 깨끗한 청정 자체

환희 환희

환희인 것을.




위 삼매송은 삼라만상우주의 근원인 마음바탕이 드러나 공空을 잠깐

체험한 후 견성해서 읊는 오도송보다 높은 차원의 노래입니다.

불자 여러분! 다른 불교계 신문 지상에 불법을 능멸하는 기사가 자주

눈에 뜨입니다.



지옥, 천상, 극락세계가 실제로 있는데도 수많은 불자들 앞에서 이를

부인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럲지 않습니다. 지옥, 천상, 극락뿐 아니라 중음세계도 엄연히

있습니다. 집착이 강한 사람이 지중한 업으로 병을 얻어 죽거나, 횡사

또는 자살로 죽으면 고혼으로 중천을 떠도는 영적세계도 있다는 말입니다.


물론 대보살이나 불과를 이룬 대성자는 이 육도六道세계 안의 일이나,

윤회를 벗어난 해탈세계를 모두 봅니다觀. 다만 이러한 큰스님이 나오지

않고 일갈하지 않아서 지금의 한국불교가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순수하고 순박한 많은 재가불자들, 그리고 1할 정도의 비구 비구니 스님들에

이르기까지 성과聖果를 이룰 가능성이 있는 이들 4부중을 위해 정법을

연설해 줘야 할 책무가 있기 때문에 나는 분연히 붓을 들게 되었습니다.


선불교의 수행법은 훌륭합니다.  화두일념이 돼야 화두타파가 되는

것이므로 지옥 극락 불 보살 등 일체 다른 생각을 하지 말라는 취지로

이를 부인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마음자리가 부처이지, 마음 밖에서 부처 극락을 이야기 하는

것은 외도요, 마구니라' 고까지 우긴다면 문제가 아닐수 없습니다.


그러면 심교心敎이지 불교가 아닌 것입니다.  적어도 중국의 영명연수

선사나 한국의 서산 휴정, 함허 기화 선사의 사상을 잇는 정도의

선불교는 되어야겠습니다.


하늘 마와 마왕 파순이도 불 보살 형상으로 얼마든지 변화할수는 있으나

붓다의 빛, 곧 청정하고 영롱한 빛억종광명 무량광명만은

흉내내지 못합니다.


불성은 어디까지나 붓다 될 수 있는 종자일 뿐입니다.  견성見性했다는 것도

이제 붓다를 이루어 가는 기나긴 도정道程에서 시작이자, 출발점일 뿐입니다.

'천지가 공空합니다. 무아無我입니다.' 라는, 경계가 뒤집히는 화두타파의

경지는 한 식경을 지나가지 않습니다.


이 경지에 영원히 계합할 수만 있다면 여기가 수행의 종착점이라 볼 수 있겠으나,

화두타파만으로는 계합할 수 없어서 문제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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