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30일 수요일

정법과 거리가 먼 불교

 정법과 거리가 먼 불교



21세기 우리가 사는 이 시점에 이 나라 불교나 여러 나라의 불교는 부처님의 정법과 거리가 너무 멉니다. 내가 항상 이야기하는 말입니다. 오늘은 계율(戒律)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말씀드리기 전에 스님이 이 나라 사랑스러운 우리 참한 불자님들, 그리고 전 세계의 불자님들에게 힘주어서 알려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나는 이 거룩한 법좌에서 다시 한 번 힘주어서 선언합니다.


부처님, 보살님, 모두 계십니다.

마음 안에도 아니고, 마음 밖에도 아니고, 유․무를 초월한 '무아 속 절대세계(적멸계)'에 여여히 계십니다.


극락도 있습니다. 보살 인가를 받은 성자가 가는 극락세계는 분명히 있습니다. 지옥도 있고, 아귀세계도 있고, 하늘천국도 있습니다. 외부적(객관적)으로 존재합니다.



명부를 들어가지 못한 무주고혼들이 사는 중음세계도 있습니다. 중생은 스스로 업을 지어 육도(六道)라는 여섯 세계를 윤회생사(輪廻生死)합니다.



이 모든 사실은 부처님 공부를 잘해서 붓다가 되면 확실히 봅니다(압니다). 이건 진실입니다.





심즉시불(心卽是佛),

마음이 곧 부처라고 하면서 부처! 부처님이 없다고 대망어 하지 마시오.



지금 근심걱정 번민하는 그 자리가 지옥, 번뇌를 떠나 행복을 느끼는 그 순간 그 자리를 극락이라고 합니다.



그런 대망어로 눈먼 중생을 오도하면 과보가 무섭습니다.



기뻐하다가 곧 괴로워함을 윤회라고 한답니다. 영혼 따위는 인정하지 않고, 인과(因果)는 끝나는 것으로 보고, 다음 생도 없다고 말하는 법문을 서슴없이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본래의 위대한 불교는 이렇듯 망가졌습니다. 신근(信根)이 있는, 믿음의 선근이 있는 선남자 선여인들을 어찌 구원한단 말입니까? 부처님께서는《정토삼부경》《아함경》《능엄경》등 수많은 방등경전,《법화경》《화엄경》등 대승경전 곳곳에서 극락을 말씀하셨고, 지옥을 이야기하셨고, 육도를 설하셨고, 윤회를 확실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모두를 방편(方便)으로 설한 것이 아닙니다. 일부 학승들, 불교학자들, 선승들, 포교사들은 대망어의 과보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있다 없다를 초월한 자리, 거기서도 더 나아가 '무아 속 절대계'를 알지 못하고 함부로 법을 설하면 무간지옥에 간다고 부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우리 교주 불세존, 이 말씀은 부처님세계에서 붓다님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 말씀이십니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최초 불이요, 붓다 중의 붓다이시고, 삼계의 지존이시고, 미래제가 다하도록 남섬부주의 대교주이십니다. 우주 온 법계의 주(主)이시고, 법계의 법왕이신 진정한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나는 여기서 이 나라, 그리고 세계의 수많은 불자님들 앞에 힘주어 선포합니다.



부처님께서는 큰 지혜와 복덕, 원력과 자비, 항하사의 신통과 크신 위신력을 지니신 지존이십니다. 백천삼매, 해인삼매, 대적정삼매에 자유자재하시고, 법․보․화 삼신(三身)을 구족히 갖추셨으며, 그래서 삼천대천세계에 당신의 천 만억 화신을 나투어 중생을 교화하고 계시는 지존이십니다. 무아 속 절대계에 천억 아승지색깔의 억종무량광 빛으로 된 32상 80종호의 인격적 우주적 색신, 소위 지복의 몸, 영원불멸의 몸뚱이를 지니고 계십니다.



경험세계(상대세계, 중생세계)에 나투실 때의 거동 거동은 실로 삼천위의 팔만세행(三千威儀 八萬細行)이 맞는 말입니다. 제자를 대함에 있어서 그 지극한 자비는 흉내를 낼 수 없고, 음성(목소리)은 최상의 미묘음이어서 표현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 몸(佛身의 몸)의 구석구석 어느 한 곳을 보고 있으면, 너무나 예쁘고 아름다워서 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시는 말씀마다 거룩하고 희유한 법의 감로비, 법보 아님이 없습니다.



상품보살 가운데 불종자(佛種子)가 인신을 받아와 정진하는 중에 깊은 삼매에 들어서 부처님 빛(무량억종광)을 보게 됩니다. 너무 밝고 아름다워서 이 세상천지, 아니 하늘과 극락에도 없는 그런 희유한 빛을 볼 때, 비로소 그 두터운 무명의 껍질이 타파되는 것입니다. 이때 수행자는 깊은 선정에서 지옥과 극락, 중생이 윤회전생(輪廻轉生)하는 그 모습도 분명히 봅니다.



요즘 신문이나 TV를 보니까 무서운 사건들이 빈발합니다. 여러분, ‘묻지마 살인사건’있지요. 행복해 하는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듣기 싫어서(자기보다 행복해 하는 저 사람들이 보기 싫어서) 그 웃음소리가 나는 그 집에 들어가서 사람을 죽였대요. 30대 남자가 부부를 살해했지요. 또 우리나라에 도박중독자가 200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아마 이 숫자보다 더 많을 거예요. 한 400만 명은 될 거예요. 4억 원의 도박 빚 때문에 부인을 목 졸라 죽이고, 잠자는 아들을 둔기로 쳐 죽인 40대 살인범이 잡혔습니다.



나도 없고 너도 없고, 외부적(객관적)으로 지옥도 없고 극락도 없고, 윤회도 없고, 육도도 없고, 귀신도 없고, 불보살도 없다면, 모든 수단 방법을 다 강구해서 한 생 적당하고 멋지게 살아야지요. 아무것도 없으니까 죄도 적당히 짓고요. 죽어서 가는 자기도 없고, 가는 저 지옥도 없고, 육도도 없고, 극락도 없고, 불보살도 없고 한다면 마음대로 살아야지요. ‘마음껏 살아라 하는 것’이 선(善)이지요. 선(善)의 가르침이지요.



이렇게 되면 안 됩니다. 현재의 불교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불교 집안, 승속(僧俗)간에 죽어서 어디로 가는 가를 보니까 대부분 삼악도로 떨어지더라 그거예요. 이거 안 됩니다. 즐거웠다가 금방 또 괴로움으로 바뀌어 지는 것(바뀌어 돌아가는 것), 이것이 윤회라고 한답니다. 지금 이런 실정입니다. 큰스님들이 다니면서 이렇게 포교를 해요. 여러분, 이건 대망어입니다. 법을 모독하고 능멸한 이야기인 거예요. 이것은 큰 죄인 거예요. 오역죄보다도 더 무서운 죄인 거예요. 지금 이걸 알아야 되요. 세상이 이렇게 되어서 모두(冒頭)에 스님이 여러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소위 ‘전생, 육도, 윤회, 이것은 불교의 가르침이 아니고 힌두교에서 주장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거든요. 힌두교에서 주장한다는 이 부분은 맞아요. 그런데 왜 불교에서 주장하지 않았어요? 부처님이 왜 주장하지 않았어요? 부처님은 이 우주 이치를 보다 깊이 들어가 봤어요. 그래서 중생이 업을 지어서 육도를 윤회전생(輪廻轉生)하는 것을 보셨어요. 성자의 법을 따라서 법답게 잘사는 사람은 윤회를 벗어나기도 하고, 더 나아가서 아라한도 되고, 보살도 되고, 붓다가 되는 것까지도 부처님께서는 보셨습니다. 그래서 경전 곳곳에, 방등대승경전인《아함경》부터 곳곳에 지옥을 말씀하시고, 극락을 말씀하셨어요. 왜 안했어? 힌두교를 따랐다고?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힌두교보다도 훨씬 깊이 보셨습니다. 이것을 말씀드립니다.


사랑하는 불자여러분!


지금의 여러 나라 불교는 부처님 말씀, 진리와 너무 멀리 떠나있습니다. 본래의 위대한 불교는 너무 왜소화 되었고, 왜곡되고 망가진 불교가 되어버렸습니다. 방금 스님이 여러분 앞에서 힘주어 선언한 바를 모두 믿어 주십시오. 진실입니다. 잠깐 염불하겠습니다.



나무 영산불멸 학수쌍존 시아본사 구원실성 석가모니불...

천상천하무여불 시방세계역무비 세간소유아진견 일체무유여불자

고아일심귀명정례

2010.9.15.수(음8.8) 자재 만현 큰스님 대전 법문 /계율(戒律) 중 발췌





 왜곡된 부처님의 가르침


오늘의 한국불교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많이도 왜곡되어 있습니다.



생사관生死觀 하나 뚜렷하지 않고 불교수행의 기본은 철저한 지계持戒에

있는 데도 승려들의 승행僧行은 심각할 정도로 타락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지만 크게 눈뜬 성자가 없어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으려고 하는 것은 모래를 쪄서 밥을 구하는 것과

같다고 지금의 불교에서는 말합니다.



이 마음이 부처요, 마음자리가 극락이라고 합니다.



지옥과 극악을 마음 안에서만 찾으며 "지옥과 극락은 따로 존재하고

있는 실재가 아니라, 우리 마음의 산물에 불과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마음 밖의 지옥 극락, 불 보살 등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과연 눈을 뜨고 나서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인지요? 불안佛眼이나

오안五眼을 갖추고 나서 하는 말인지요? 실제로 지옥과 극락이 안

보입니까? 정말로 마음에도 안팎이 있다는 말입니까? 공空에도

안팎이 있습니까?



마음眞如自性은 수긍삼제竪亘三際요, 횡변시방이며 불생불명不生不滅입니다.

일심一心 혹은 법성法性은 시방법계 어디에도, 심지어 티끌이나

먼지 속에도 주변하여 뻗쳐 있습니다.



동시에 시공時空을 초월超越해 있습니다.  영원히 경계에 물들지

않습니다.



자성自性은 청정무구요, 여여如如부동不動입니다.

그런데 이 마음자기를 깨친 정도로는 아직 지옥과 극락이 안보입니다.



이 경지에 이르러서는 결코 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려분! 지옥과 극락은 실제로 있습니다.  불 보살도 계십니다.



윤회도 사실입니다.  200여 불교 경전에서 지옥 등을 분명히 말씀

하신 부처님이 거짓말쟁이란 말입니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부터 공空을 지나, 무아 속 삼매에

들어 그동안 보고 들은 것을 간략히 줄여 전합니다.  공부해서 뚫은

바를 수행인의 양심으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고민 있으면 지옥?_지옥은 실제로 있다!



지옥은 분명히 있습니다.  '고민이 있으면 마음은 무간지옥' 이라

는 설법은 실제로 하나만 알고 들은 모르는 말입니다.



지옥은 우리 육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영체 세계의 남방 지장

궁 방향에 있습니다.  차별의 현상세계에서 볼때 지옥은 엄연히 존

제한다는 말입니다.



내가 무아 속 삼매에 들어 보니, 지장본원경에 나오는 지옥은 그

일부에 불과했습니다.  여기서는 중지옥 가운데 한곳만 소개하겠

습니다.



열 손가락 손톱 밑을 대꼬챙이로 찌르는 그런 지옥도 있습니다.



이곳에서 우리의 영체는 고통으로 까무러쳐서 하루에도 만 번 죽

고 만 번 살아날 정도로 지독한 벌을 받습니다.  그 고통은 육신이

당하는 고통과 똑같이 느껴집니다.



오역죄, 사중죄를 지으면 보다 무서운 무간지옥으로 갑니다.



극무간지옥도 있습니다.  그곳의 수명은 한량없는 시간으로 정

해집니다. 지옥의 벌은 자동自動으로 집행됩니다.  하나의 지옥은

사바세계보다 넓습니다.  그것이 특징입니다.



지옥으로 들어갈 때는 크나큰 철문을 통과합니다.  지금은 이 정

도만 말해 두겠습니다."

현지사 영산불교의 수행법

 현지사 영산불교의 수행법




그래서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어떻게 시키느냐?

스님이 법문 중에 많이 이야기를 했을 겁니다.



•눈높이에 맞추어 벽에다가 마음의 점하나를 찍고, 초심자는 벽에다가 점을 표시해도 됩니다,


•눈은 절대로 깜빡거리지 말고,


•입으로는 '석가모니불'을 낭낭한 목소리로 칭명을 하고, 속으로는(뜻으로는) '금강반야바라밀'을 동시에 칭하라고 그랬지요?



•그런데요, '금강반야바라밀'이 잘되면 마음가운데 불국사 석굴암의 석가모니불 불상 미간을 관(觀)하라고 했을 거예요.


이렇게 정진해 들어가는 것이 정말 좋습니다.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립니다.


•이 공부가 잘 되어 가다가 보면,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하루에 1시간씩, 그 다음도 그 다음도 한달 1년...되다가 보면 정신이 맑아지고 업식이 맑아지고 업장이 많이 씻겨져 나가고 해서 공부가 잘 되다가 보면 결국 양쪽 귀가 덜커덩 하고 닫히는 소리가 들리는 경지가 옵니다. 

여러분, 이 중에서 그런 경지에 들어간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런 소리는 이제 외부의 감각, 오감이 막 제어되고 끊겨지는 경계입니다.


•거기서 더욱 정신을 모아서 정진해 들어가면 이제 육근(六根)의 기능이 완전히 외계의 자극에서 벗어납니다. 그래서 눈앞의 벽이 뚫리고, 벽 자체가 다 시야에서 벗어나버립니다. 이런 경계가 나옵니다.


•계속 의식을 집중해 들어가면 맑은 하늘이 찢어지면서 적정의 세계로 퐁 빠집니다. 여기가 이제 앞에서 말한 라자요가 파탄잘리요가에서 말하는 삼매의 경지올시다. 

주관과 객관의 의식이 없어지고 자아의식까지 소멸되어 버립니다. 부처님 불상을 관하는 나와 대상인 부처님 불상 미간이 하나가 되어버립니다.

자신은 허공과 같이 확~비어져 있습니다. 정말로 신령스러운 빛만이 남습니다. 여기가 황홀경이고 법열(法悅)에 듭니다. 

우리 영산불교에서 여기까지 들어가신 분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기까지 오면 거의 아라한 경계에 다가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윤회생사에서 해탈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이제 바깥세상의 모든 법이 공(空)한 줄 알아서 이 거짓 몸에 집착하지 말고 계속 삼매 공부를 하다가 보면 이 몸에 대한 애착이 마침내 끊어지고 그러면 이제 아라한의 경지에 올라갑니다. 이것이 인간이 자력으로 올라갈 수 있는 극과(極果)올시다.

•여기서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우주적 구원의 힘을 지니신, 붓다의 붓다이신 불세존이나 아미타부처님이나 문수보살님의 가피를 받아가지고 이제 보살의 삼매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보살의 삼매에 들어가고 붓다의 삼매에 들어가는 거예요. 이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진정한 성공, 진정한 행복은 우리 안에 숨어있다는 거예요. 안에 숨어 있어. 그러려면 선정 삼매로 들어가라. 선정 삼매에 들어갈 수 있는 저 인도의 요가 명상법은 대단한 공부이지만, 그것은 완전하고도 충분한 공부는 아니다. 

오히려 외도의 공부로서 그 이시와라 최고신의 권속이 되는 일이다. 그러니까 나는 경계해서 여러분에게 그런 공부를 하라고 하지 않고, 우리 영산불교에서 이야기하는 공부를 하라고 권합니다.

예수의 하나님, 또 마호메트의 알라, 그 교단의 목사나 신부, 그들 성직자들 설교를 잘하지요. 다~옳은 소리 같지요. 그 옳은 소리 하는 것을 ‘옳다’ 하고 귀의해버립니다. 예수교에 귀의하고, 알라 쪽 마호메트교에 귀의합니다. 큰일이지요. 

그래서 그들 가르침에 따라 착하게 착하게 살면 하늘에 태어나지요. 죽으면 천상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외도의 하늘에 갑니다. 이걸 알아둬야 됩니다, 여러분. 스님이 뭐라고 했습니까? 외도의 하늘에 갑니다. 이거 무서워요. 이거 무서워.

이번에 나하고 같이 조계종에서 도반이라고 하면 좀 말이 어색하지만, 본부에서 부장을 하고 본사 주지를 산 두 사람, 소위 조계종에서 이야기하는 지도급 스님인데 입적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죽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두 스님은 상당히 모범적인 스님이었습니다. 또, 1~2년 전에 어떤 큰스님이 입적을 했지요.

나는 그 사람들이 어디에 갔나 하고 살펴보고는 실망했습니다. 잘 아는 스님들이라 조금 씁쓸했습니다.그 분들이 어디로 갔다 하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지는 않고, 여러분한테 간절히 바라는 것은,

•부처님께 귀의할 것을 바라고


•칭명염불 하시고


•선근공덕을 많이 쌓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그런 분들보다도 훨~씬 법위가 높아질 겁니다. 이것만 말씀드립니다. 출가 비구스님들이 불행하고 안타깝게도 그 누구도 평생에 부처님께 꽃 한 송이 올린 적 못 봤고, 공양다운 공양 한 번 올려보지 못하더라고요. 이게 중요한 일이어요. 

간절히 부처님을 염하는 것을 못 봤습니다. 왜냐하면, 한국 불교는 선불교(禪佛敎)이기 때문에. ‘이 뭣꼬?’, ‘무(無)~’하는 화두를 들라고 하지. 염불하라고는 안 해. 염불하면 외도라고 그랬으니까.

그 출가비구들이 공부한답시고 살아계신 자기 부모님들께 효다운 효를 하는 것 못 봤고, 돌아가신 후에도 돌아가신 부모를 위시해서 그 조상님들에게 천도재다운 천도재 한번 올려드리는 것을 못 봤습니다. 불행하지요. 

이거 불행하지요. 그렇게 비구생활을 마쳤다 합시다. 잘하면, 정말로 모범적으로 살았다면 하늘은 가겠지요. 그러나 하늘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정법, 염불 정법을 만나지 못한 그 사람들을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우리 영산불교의 현지사 신도분들은 부처님 믿음이 대단한 줄 압니다.



•불과를 증한 붓다님들이 저기 무아속 절대세계에 여여히 계신다는 것을 아십니다.



•빛으로 계신다는 것을 아십니다.



•32상의 색신으로 계신다는 것을 아십니다.



•우주적인 능력을 힘을 지니고 계신다는 것을 아십니다.



•윤회한다는 것을 알고, 저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다.

이 몸뚱이는 생로병사의 과정을 겪으면서 끊임없는 윤회를 거듭거듭 반복하지요. 그렇다면 생사를 반복하는 이 육신의 본체(本體) 기체(基體)가 있어야 됩니다. 이 인간 존재의 핵이 있어야 됩니다.

나는 그것을 영혼체(靈魂體)라고 했습니다. 이건 정말로 엄청난 발견이요 선언입니다. 영혼체 이야기를 5년 전에 하고 나오니까 외도라고 합니다. 불교의 핵심교리인 무아법(無我法)에 반하는 말을 한다고 외도라고 합니다. 

이 기체(基體) 본체(本體)가 없이는 윤회할 수 없는 거예요. 그 본체가 있기 때문에 이 몸뚱이가 자꾸 나고 죽고 육도를 윤회하는 것이어요. 이 상식을 정말 모르고 이 기체(基體)의 존재를 부정합니다.



무아(無我)라고 해가지고, 무아(無我)를 잘못 해석해가지고 이 기체(基體)의 존재를 부정합니다. 무아(無我)를 잘못 해석해가지고 우리 불교가 인도에서 망해버렸는데, 불교가 무아의 해석을 잘못해가지고 인도에서 쫓겨나서 불교의 터전인 그 인도를 놓쳐버린 거예요. 그래서 우리 부처님께서 “왜곡된 무아를 바로 잡으라, 부처님이 계심을 선언해라”고 하신 거예요. 그 법의 말을, 부처님의 말씀을 오히려 비방하고 외도라 합니다.

 

기체(基體)가 없이, 본체(本體)가 없이 이 몸뚱이가 어떻게 나고 죽고 나고 죽고 윤회를 한단 말이오? 나무도 10년이나 100년송(松)도 뿌리가 깊으면 겨울에 낙엽이 지고 곁가지가 다 죽어. 그러다가 봄에 다시사는 이유는 본체가 있으니까 그러는 거예요. 본체가 있으니까.



이런 영산불교의 가르침이 지금부터 800년 전에만 인도 땅에서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불교가 힌두교에 흡수당하지 않고, 힌두교가 불교에 흡수되었을 거예요.



힌두교에서의 중요한 개념은 아트만(atman)인데, 아트만이라는 말을 스님이 여러 번 법문했을 거예요. 1번 영체와 유사하거든. 그러나 아트만으로는 윤회를 못하는 법입니다. 우리는 힌두교의 결점을 지적하지요. 딱 딱 지적하지요.



•영체는 4개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1번, 2번, 3번 영체는 뭉쳐 다닌다는 것.



•영체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



영산불교는 영체에 대한 비밀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리해서 이 영산불교의 가르침이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이 나라의 모든 종교, 세계의 모든 종교를 포용할 수 있습니다. 통일시킬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그 큰스님이 죽어서 지금 어디에 가셨습니까?’ 하고 물으면

“그 사람은 결코 나를 찾은 적이 없느니라. 내 공부 한 적이 없다” 하시며 딱 잡아뗍니다. 그러면 뻔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49일이 지나서 확인을 하면 6하늘에서 4하늘, 혹은 하지옥에 있더라고요. 이거 슬픈 일이지요. 그러나 우리 신도분들은 모두 신심이 두텁지요.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부처님이 계심을 알고



•그 위대하신 우주적 구원의 힘을 지니신 그 부처님을 여러 번 찾고 찾고 염불하고 계십니다.



•업을 지으면 생사에 윤회한다는 것도 알고



•해탈하면 윤회를 벗어난다는 것도 압니다.



•보살이 되어서 상락아정의 니르바나세계 극락세계에 가야 그래야 완전히 삼계를 탈출하고 영원히 불퇴전 한다는 것도 여러분은 알아요.



•인간 자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도 알고



•부처님의 가피에 의해서 삼계를 탈출할 수 있다는 것도 여러분이 알아요.



•그리고 인간존재의 핵이고 본체인 기체(基體), 영혼체가 있다는 것을 알아요.

굉장히 많이 알아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미래가 밝습니다. 앞날이 대단히 밝습니다.




출처/2011.11.06.일 현지궁 현지사 자재 만현 큰스님 정기법문중 발췌






요가

  요가(yoga)



저 인도라고 하는 나라가 참 묘한 나라예요. 인도라는 나라가 대단한 나라예요. 여러분, 요가(yoga)라고 많이 들었지요? 요가(yoga)의 나라입니다. 

요가는 삼매를 얻는 수단입니다. 그래서 스님이 앞에서 삼매라는 이야기를 끄집어내었는데 당연히 힌두교의 여러 요가를 소개하고, 삼매를 소개하는데 그것을 평가해줘야 됩니다.

여러분은 요가(yoga) 그러면 요가의 자세만 알아요.



요가의 자세, 그것이 요가인줄 알아요. 물론 그 몸 자세는 요가의 중심을 이룹니다. 요가에는 84가지의 자세가 있다고 합니다. 84가지가 아니라 8만4천 가지의 자세가 있다고도 합니다. 혹은 8만4천 가지가 아니라 8백4십만 가지의 자세가 있다고도 합니다. 

요가에서는 이 자세를 대단히 중요시 합니다. 몸가짐을 대단히 중시합니다. 삼매에 들어가려면 그래야 됩니다. 거기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래가지고 호흡으로 들어갑니다. 조식(調息), 호흡. 이 호흡, 대단히 중요합니다.



삼매에 들어가는데 호흡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불교에서도 이것은 긍정합니다. 호흡, 여러 호흡이 있잖습니까? 

호흡 하나만 가지고도 흉식, 복식, 단전호흡 등 여러 가지로 나눕니다. 여기에다가 수식관이니 부처님이 말씀하신 안반수의(anapana-sati, 安般守意), 호흡에 주력(呪力)수행을 병행하는 등 밀교 쪽으로 가면 더욱 많습니다. 

도인들 가운데는 호흡을 10년 이상 수련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호흡, 대단합니다. 그래서 인도에서는 요가(yoga)에 대해서 굉장히 관심을 갖고 그 사람들이 건강을 위해서도 요가와 호흡을 합니다. 윤회를 벗어나는데는 요가가 필수라고 그들은 생각합니다. 나도 그것을 상당히 긍정합니다. 많은 요가가 있습니다.

 

여러분, 라자요가(Raja Yoga)라고 있어요. 파탄잘리요가라고.

 
[파탄잘리(Patañjali, Patanjali, (기원전 2세기 경 혹은 5세기 경)는 요가 수트라(Yoga Sutra)의 편찬자로 힌두교의 정통 육파철학 중 하나인 요가학파의 창시자이다. 파탄잘리는 필명일 가능성이 많다. 

요가 수트라는 요가 수행의 요체를 집성한 중요한 저작이며, 최근 수십 년 동안 요가 수트라는 라자 요가(Raja Yoga: "왕의 요가"라고 해석된다)의 수행과 관련된 가르침을 담고 있으며 라자 요가의 철학적 기반을 제공하는 힌두 경전으로서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힌두교 전통에서 "요가"(Yoga)는 윤리적 실천, 명상(meditation) 수행, 형이상학적 앎 또는 지혜 등을 포괄하는 수행 체계이다. ※출처: 위키백과, 브리태니카백과사전]

그 외에도 즈나나요가(Jnana Yoga, 지혜의 요가), 하타요가(Hatha Yoga), 크리야요가(Kriya Yoga), 만트라요가(Mantra Yoga), 박티요가(Bhakti Yoga)...많이 있어요. 10여 가지가 있습니다.



오늘은 라자요가 그러니까 파탄잘리요가, 요가 중에도 정석입니다. 이 요가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해야 됩니다.



진정한 행복은 안에 있다고 하니까, 마음을 제어해서 마음 속 깊이 들어가는 방법을 체계화해 놓은 것이 이 요가수행이에요. 그래서 이 요가를 여러분에게 이야기해줘야 되요. 그러면서 우리 영산불교의 수행법을 이야기해 드립니다.



요가하면 몸의 자세만 가지고 수행하는 것으로 알기 쉬운데 그것은 아니고 그 외 여러 부분으로 이루어진 수행체계예요. 요가에서 몸의 여러 가지 자세를 통해서 정신을 집중하는 조신법(調身法)이 좌법(坐法, 아사나asana)이에요. 방금 말씀했지요. 그리고 조식(調息, pranayama), 호흡을 통해서, 깊~은 호흡을 통해서 우주의 생명력까지 이것을 프라나(prana)라고 하는데, 그것을 흡수한답니다. 그 정도 되어야 돼. 그렇게 하기 전에 재계(齋戒)와 내제(內制)가 있어. 재계(齋戒)라는 것은 규제한다고 해서 재(齋)자이고, 계(戒)는 계율이라서 계(戒)자인데, 요가 수행자는 반드시 이 재계와 내제를 준비해서 수행하라고 했어.



▸재계(齋戒)는 우리 불교의 계율(戒律)이어. 그 라자요가에도 불살생 불망어 불투도 불사음 불탐 등의 다섯 가지 계율을 엄정히 지키라고 그랬어. 불탐(不貪), 탐내지 말라 그거예요.



▸내제(內制), ‘안으로 삼가한다’ 그 말이어. 안 내(內)자, 내재(內制).

마음으로 지켜야할 규율을 말해요. 순결, 지족, 고행, 학습, 최고신에 대한 귀의. 이것이 있어.



최고신에 대한 귀의, 요가의 최고신 이시와라(Isvara)에 대한 귀의, 이것을 의무적으로 하라고 그래. 요가에서는 인격신을 인정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것이 방편이라 그래.



지족은 자기의 현 생활에 대해서 만족하고 탐내지 마라. 욕심내지 마라 그거요.

그리고 고행, 학습이 있어. 힘든 일이 있어도 참고 견디라 그거요.

그리고 성스러운 진리의 음성인 ‘옴’을 알고 베다의 성전을 읽고 외워라 그거예요. 다른 쓸데없는 것은 하지 말고 그런 것만 공부해라 그거예요. 이게 재계(齋戒)와 내제(內制)예요.

재계, 내제, 좌법, 호흡 이렇게 네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다음에 다섯 번 째가 뭐냐? 제감(pratyahara, 制感)입니다.

제감이라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오관을 통해서 자꾸 밖으로 밖으로 달려가고 생각하지요. 마음이 밖으로 밖으로만 달려가는 것을 안으로 안으로 돌려서 마음을 컨트롤 할 줄 알아야 돼. 안으로.

여섯 번째, 총지, 응념(凝念). 응시한다고 해서 응(凝)자, 생각 념(念)자. 응념(凝念), 하나의 대상을 두어 가지고 거기에 의식을 집중해라 그거예요. 정신집중을 말해.

그다음에 정려(靜慮). 그렇게 하게 되면 선정에 들어간다 그거라. 그렇게 들어가면 선정에 들어간다. 여기에서 정려는 온갖 잡다한 관념 표상이 없어지고, 다만 대상을 향해서 집중해가는 자의식만은 남는 것이어. 그건 선정이어.


마지막으로 삼매(samadhi)인데 이제 삼매에 들어갈 때에는 자의식도 없어져버려. 그래서 주객(主客)이 없어져 버려. 좀 어려운 말이어. 주객이 융합되어 버려. 자신이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아. 허공과 같이 비어버려. 

다만 빛나는 예지만이 독존한다고 그래. 거기는 법열(法悅)에 들어간다고 그래. 그 정도 들어가면 법열이 있어. ‘하!~행복하다!’하는 거예요. 정말로 안온하다. 여기가 무척 안온한 경지여.


이게 라자요가의 8단계 수행법, 라자요가를 이루는 8가지 수행법인데, 이렇게 해서 삼매에 들어가야 된다. 그래야 윤회를 벗어난다. 삼매에 들어가야 삼재팔난의 이 세상의 고통도 극복이 된다. 

그래서 안으로 안으로 선정에 들어가고 삼매에 들어가도록 해라 하는 가르침이 힌두교의 기본적인 내용으로 되어있어요. 그리고 인도사람들은 이것을 받아들인 거예요. ‘옳다’ 그거라. 이런 점에서 보면 많은 문제가 있다 해도 힌두교가 대한한 면이 있는 거예요.

 

스님이 이제 영산불교 입장에서 이야기합니다.

여기는 지도자가 필요할 것이다.



‣스승이 없으면 큰일 나게 되어 있어. 스승 없이 하게 되면. 이 자세도 360가지의 경혈과 경락을 자극해 주는 것인데, 그렇게 함으로서 마음을 집중시키는 작용을 합니다. 

그러한 문제나, 호흡도 잘못하면 큰 문제가 와. 병을 얻거나 수명이 단축되기도 해. 호흡이 대단히 중요한 것이어. 그러니까 스승 없이 하면 안 되게 되어 있어. 

스승의 지도를 받아가지고 해야 돼. 멈추는 데가 문제예요. 길~게 내뿜으면서 멈춰야 되고, 또 깊~이 호흡하면서 다음에 또 멈춰야 되고, 이 멈추는 법을 모르고 하면 큰일 나. 그렇기 때문에 이 조신(調身)이나 조식(調息)에 있어서 대단히 문제가 돼. 스승 없이는 안 돼.


‣둘째, 내제(內制)로 들어가서 최고신에 대한 귀의가 있어요.

최고신에 대한 귀의. 요가의 최고신 ‘이시와라(Isvara)’에 대한 귀의 귀명, 이건 요가행자로서는 철칙이어요. 반드시 갖춰야 돼. 그렇게 되면 ‘이시와라(Isvara)’신의 권속이 되는 거예요. 이게 문제예요. 그래서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이것은 접수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삼매, 요가에서 말하는 이 삼매에 들어갔다고 하더라도 윤회생사에서의 해탈은 어려워. 어려운 이유가 많아.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천마라든지 용신이라든지 망량신이라든지, 이런 신들의 장애가 있어서 대단히 위험해. 

그러니까 지도자가 있어야 돼. 지도자도 천신이라든지 천마라든지 용신이라든지 망양신이라든지, 이런 것을 떼어주고 제어해 줄만한 스승이 없으면 큰일 나는 거예요. 큰일 나. 삼매에 들었다고 하더라도 윤회생사에서 곧 해탈 한다는 것은 아니어. 이걸 가지고도 아직은 약해.

그래서 우리 영산불교에서 이야기하는 부처님이 이끄시는 보다 차원 높은 깊은 삼매에 들어가야 완전히 해탈이 되고 극락에 왕생할 수 있는 거예요.


‣그 다음에, 이 라자요가, 파탄잘리요가도 대단히 정석인데, 이것과 궤를 상당히 달리하는 쿤달리니요가가 있습니다. 쿤달리니요가가 있는데, 이것을 여러분에게 이야기해줄 필요가 있을까?

우리의 몸에는 일곱 개의 영혼 중추가 있거든요. 그건 맞아요. 차크라(chakra)가 있어요. 우리 몸 척추의 가장 밑에 있는 그 영혼 중추가 물라다라 차크라(muladhara chakra)인데, 거기에는 쿤달리니라고 하는 근원적인 힘이 뱀처럼 또아리를 감고 있듯이 있습니다. 

이것을 각성시켜가지고 여섯 챠크라를 통해서 일곱 번째의 사하스라라 차크라(sahasrara chakra)까지 올라가게끔 하는데, 이렇게 되면 이건 순수의식이 발현되고 다겁생으로 내려오면서 지은 업이 정화가 되고, 챠크라 내지 '나디'를 전부 각성화시키고, 그리해서 삼매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주의식, 내가 앞에서 말한 공(空) 본체를 깨쳐가지고 윤회생사를 벗어날 수 있다고 하고, 또 많은 신통이 벌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챠크라 각성법도 쿤달리니 요가도 스승 없이 하면 큰일 납니다.




부처님이 없다고 합니다.

 부처님이 없다고 합니다



 부처님이 없다고 합니다. 선불교에서는 부처님 없어요. 여러분은 공부를 안 해서 또 불교 이론에 밝지를 못해서 그 사람들이 써놓은 그럴듯한 말을 들으면 실력이 없으니까 빠질거요. 쉽게 말하면, 그 사람들은 극락이 없고 지옥이 없고 불보살 없습니다. 

이 마음이 부처입니다. 그걸 어려운 말로 심즉시불이라고 합니다. 중국의 큰 간화선의 대종장 달마나 혜능에 어깨를 견줄만한 마조 도인이 한 말인데, 그 가르침이 한국의 선불교에 지금까지 영향을 주고 있어요. 그것이 또 선불교의 기치고요. 심즉시불입니다. 

나는 스님이 되면서부터 간화선을 했습니다. 그래서 간화선에 대해서는 잘 압니다. 최고 종장인 경봉스님 문하에서 했습니다.



  내 책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를 보셨으면 알겠지요. 나도 그때 그 정도는 갔다고요. 그래서 게송(偈頌)도 있지요. 내 게송 중에 어떤 게송하나가 우리 문수보살님이 주신 겁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그 게송을 잡고 이것이 말이 되느냐고 해요. 

그러니 말이 됩니까? 여러분, 이건 무서운 죄 인거요. 내가 1집에는 간단간단히 쓴 거요. 내가 2집, 3집까지 구상을 하고 있는데 상당히 깊이 쓸 거요. 내가 말할 수 있는 한 쓸 거요.



  서문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그 서문 내용을 여러분 아실 겁니다. 또 부처님께 공양드리는 공덕은 대단하다는 말씀을 내 책에 썼는데, 공양 받을 대상의 부처님이 있느냐 그거요. 웃기는 소리 하지마라 그거요. 

이런 식으로 나가요. 내가 그런 말은 아직 안 했지만, 그러면 뭣 하려고 불공을 하고 귀신도 없다고 하면서 뭣 하러 천도하라고 그래. 절마다 지금 천도한다고 그래. 이건 앞뒤가 맞지 않는 자가당착(自家撞着)인 것이오.



이러한 교설 가지고는 중생을 교화할 수가 없는 거요. 지옥도 없다 극락도 없다고 하는 너희들이 말이 안 된다. 내가 책에 충고하니까 지금은 이런 말을 하더군요. 누가 지옥, 극락 없다고 했소? 이런 말을 하더군요. 

그러면 지옥과 극락을 구체적으로 말해야지. 한마디도 안 합니다. 봤어야 말하지. 안 되는 거요. 거기는 볼 수가 없는 거요. 거기는 화두타파 해가지고는 안 보여.



화두타파라는 건 뭐냐? 마음 본성의 바탕, 이것을 구경(究竟)이라고 그래. 이걸 깨치면 그걸 구경각이라 그래. 그런데 학자들이 잘못 표현했어. 구경각은 붓다만이 하는 거요. 

바탕을 깨쳐버렸는데 그  이상 무엇을 공부하느냐 그 말이어. 저것들 말이 그 이상 무슨 계를 지키고 말고 하느냐 그거요. 이런 식입니다.



그런 시각에서 욕하면서 막 따지는 거요. 그러니 이건 상대할 수가 없는 거요. 그래서 내가 오늘 이 녹음을 받아가지고, 여러분 녹음해도 좋습니다. 정말로 그럴 리야 없겠지만 한두 사람씩 끼어들어 온다고요. 카페 보니까 그러더라고요. 정말로 불쌍한 사람들이죠.

 큰스님을 비방하는 죄는 엄청납니다. 이것은 《법화경》〈방편품(비유품)〉에 있지요. 이것은 엄청 난거요. 자기가 수행을 해서 깨쳤으면 겸손하게, 깨쳐가지고도 부처님이 설한 《아함경》이나 《법화경》이나 《화엄경》을 들여다 볼 때 이것 참 이상하다. 이것을 알 때까지 공부를 해야 돼.

  지금 선불교에서는 《법화경》과 《화엄경》을 해석을 못해. 내가 다보탑 속에서 다보부처님이 땅 속에서 올라오는 부분을 TV법문 석상에서도 말을 했고, 내 책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서도 이야기를 했는데,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그거요. 무슨 다보탑 속에 다보부처님이 있느냐 그거요.

이러면서 문수부처님이 무슨 지혜지 문수부처님이 있냐 그거요. 그런데 그런 표현이... 어쨌든 간에 너무도 저질적으로 나옵니다. 그러니 이거 어떡합니까? 지금 이런 분들이 지도자입니다. 이런 분들이 지도자요.

그러면 극락도 없고 부처님도 없고 지옥도 없고 귀신도 없다면 무엇하려고 중노릇을 해? 무엇 때문에 중노릇을 하느냐 그거요. 그런 스님들은 뭐라고 하느냐? 다음에 죽으면 승려로 나온다고 그래. 다음 발원은 정법을 만나서 승려 되기가 원이라고 합니다. 

그런 스님들은 적당하게 잘 삽니다. 신도분들이 갖다 바친 공양물을 무섭게 생각 안 합니다. 마구 쓰지요. 얼마나 무서운 돈인데, 이런 말을 한 사람이 외도냐? 사이비냐? 분명히 지옥과 윤회를 보고, 부처님을 적멸의 세계에서 뵙고 대화하는 이 큰스님이 외도냐? 사이비냐?



  《아함경》에 외도와 사이비를 구분하는 잣대가 있어.

  뭐냐? 육도윤회를 부정하면 그건 법이 아닌 거여. 불교는 육도윤회를 주장합니다. 중생은 업을 지으니까 삼세를 두고 윤회를 합니다. 삼세라는 것은 과거 현재 미래를 말해요. 중생은 업을(죄업을) 지으니까.



사람으로도 오고 짐승도 되고 하늘도 가고 아귀도 되고 지옥도 가고 이런단 말이어요. 그래서 육도윤회를 벗어나야 되는 것이어. 벗어나는데 목표를 두었다면 그걸 생사해탈이라고 그래. 생사해탈에 목표를 두었다면 그 경지에 확실히 이를 때까지는 정말로 겸손하게 공부만 해야 되는 거요. 함부로 법을 설하면 안 되는 거요. 큰일 날 법인 거요.



부처님을 능멸하고 법을 능멸한 죄는 엄청난 거요. 그건 협박이 아니어. 협박이 아닙니다. 정말로 엄청 납니다. 그것도 이제 정도에 차버리면 금생부터 받아버리는 거요. 앞으로 그 사람들 보세요. 지금 정도에 지나쳐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화엄성중이 가만히 안 두는 거요.

  한국, 우리나라의 민족성은 안 그랬어요. 그런데 우리 스님들이 그러면 됩니까? 스님들은 인천(人天)의 사표(師表)가 되어야 되는 거요. 같은 종파, 같은 승려로서 그러면 됩니까? 

그리고 조계종 종헌(宗憲)은 간화선이 아닙니다. 통불교입니다. 통불교란 말이 무슨 말이냐?

  염불을 해도, 다라니를 해도, 기도를 해도 그것을 이단이라고 안 하기로 했습니다. 통불교라고 했어. 엄연히 통불교여. 그런데 어떻게 염불을 권하는 사람을 갖다가 그냥 공산당 잡듯이 나가느냐 그거요. 이건 옳지 않거든요. 이건 업입니다. 큰 업입니다.

  여러분한테 말씀하기가 참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언론지상에 난 말이기 때문에 말합니다.

  대만의 불자들은 이런답니다.

  말세의 비구 모습을 보려면 한국으로 가라.

  이거 창피한 일인 거요. 출가한 스님은 정말로 출가승답게 공부를 해야 되는 거요. 그러면 어떻게 공부를 해야 되느냐? 첫 번째로 계율을 지켜야 되는 겁니다. 

내가 계율을 굉장히 강조하고 강조하고 하니까 또 이론을 담당한 그 스님이 부처님이, 석가모니부처님께서 할 일이 없어서 할 말이 그렇게 없어가지고 계율, 계율하겠느냐며 비아냥 거려요.

 중들이 계율을 안 지키거든요. 얼마나 계율을 안 지키면 말세의 비구를 보려면 한국으로 가라고 했겠습니까? 이건 정말로 심각한 일입니다. 여자를 보면 절대 안 됩니다. 비구, 비구니 율장을 보면 수행하는 도중에 음계를 첫 번째로 갖다 놓습니다.

재가불자들에게는 살생이 첫 번째입니다. 첫 번째가 음계입니다. 우리가 삼매에 들어서 부처님들의 하신 말씀은 첫 번째가 음계입니다. 음계가 어마어마합니다. 중이 한 번이라도 음계를 범하면 무간지옥에 가게 됩니다. 

깨친 이라 하더라도 이제부터 정말로 음계를 지키고, 중계를 지키고, 중계라는 것은 사바라이죄와 십중계를 말합니다. 중계(重戒), 무거운 계, 사바라이, 열 가지 계를 지키면서 정말로 깨달을 때까지 공부를 해야 되는 거요.

  깨달아가지고도 이제 거기가 끝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제 시작이어. 견성, 성품자리, 마음자리, 모든 것의 본성, 이걸 깨달으면 다 된 것이 아니어. 이제 나와 이것을 계합을 해야되는데 계합이 문제인 것이요. 

합일을 해야 돼. 합일 할 때까지 공부해야 되는 것이어. 그래서 깨달으면 이제부터 진짜로 수행을 해야 돼. 진짜 수행, 부처님께서 두타행을 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몸에 대한 애착도, 모든 경계 욕심에 끄달리는 것도, 성내는 경계, 어리석음의 경계에 떨어지지 말라 그거요. 그 착을 끊었다 싶을 정도가 아라한입니다. 

그 정도 가야 윤회에서 벗어나는 거요. 언젠가 구체적으로 말을 했을 거요. 욕심의 경계를 당했어도 흔들리지 않아야 되는 것이어. 여자가 아무리 옷 벗고 유혹을 해도 절대로 흔들리지 않을 정도의 수행이 되어야 되는 거요. 

그걸 자유롭다고 그래. 그 경계에서도 자유로워야 돼. 저 사람들은 자유라는 말을 묘하게 쓰더라고. 막행막식 하는 것이 자유인가? 그것은 방종이야.

성내는 경계를 당했어도 성이 안 나야 되는 것이어. 그렇게 자유로워야 돼. 그래야 이 몸뚱이에서 마음대로 나가고 들어 갈 수가 있는 거요. 이 몸뚱이라는 집, 감옥에서 마음대로 나오고 들어가고 할 정도가 되어야 고통에서 벗어날 수가 있는 것이어. 여기가 아라한입니다.

그러나 경을 보면 아라한도 마지막 무명까지 다 벗어버린 경계라고 되어 있지마는 학자들이 아라한을 설명하는 그것은 아니어. 아라한도 착이 남아있고 상이 남아 있더라. 마지막 무명번뇌는 도저히 못 벗어. 그건 부처님의 위신력으로만이 가능해. 

그러기 때문에 아라한이 다시 사람 몸을 받아 오는 거여. 사람 몸을 다시 받아와 가지고 보살이 되기 위해서 두타행을 하고, 반드시 염불로(타력으로) 들어가야 돼. 그래서 자력과 타력으로 해서 보살이 되어서 정토에 가야 돼.

십념왕생인데 스님은 왜 보살과를 얻어야 정토에 가느냐 그거요. 십념왕생, 아미타불은 법장비구로 있을 때 48원을 세운 것은 확실해. 그건 사실입니다. 48원 중에서 18원을 보면 십념왕생원이 있어. 열 번만 나무아미타불을부르면 사람 죽여가지고도 극락을 간다고? 

이건 아닌 거요. 여러분, 사람을 죽이고 세상에 오역죄를 지은 사람이 죽어서 열 번 나무아미타불 한다고 극락 간다면 말이 됩니까?  이것은 방편이었어. 방편설이어. 이것은 아미타부처님이 보살 인행시에 서원을 48가지를 세웠는데 18번째 십념왕생원은 서원이어 서원. 그 원(願)이어.



  이건 부처님의 말씀이지만 하늘도 54하늘이 있어. 저쪽에서 이렇게 또 공격하더라고요. 28천도 모르느냐? 누가 28천을 모른다고 해. 그건 교학으로도 다 나와 있어. 40년 전 청담스님 당시 엄격히 심사하고 엄격히 시험을 봐가지고 우리 상임포교사를 두 사람 모집했어. 내가 거의 만점 받은 사람이어. 전국에서 두 명 되었어. 무진장 스님하고 나하고. 그런데 28천을 모르겠습니까? 욕계 색계 무색계. 욕계가 여섯이고, 색계가 열여덟, 무색계가 넷 아니어? 28하늘. 그것은 바라문교(힌두교)의 교설이어.



우리 불교에서 그것을 나중에 채용해 온 것이어. 부처님 당시에 채용해 온 것이 아니어. 지금 부처님께서는 무색계를 인정 안 해. 54하늘을 말씀하시고 계셔. 9홉 하늘을 묶어서 한 하늘로, 지금 여섯 하늘로 말씀하시고 계셔. 그러니까 54품, 여섯 하늘을 지나가야 하늘을 지나가는 거여. 그래서 윤회를 벗어나는 거야.



윤회를 벗어나는 하늘, 아라한들이 가는 하늘이 있어. 그것을 성중하늘이라고 그래. 성인의 반열에 올라간, 그래서 성중이어. 성인의 반열에 올라간 그 성자들이 가는 하늘이 있어. 그것도 27등급이 있어. 거기서 더 가면 도솔정토가 있어. 내가 그런 말을 하니까 또 뭐라고 하느냐?



도솔천은 네 번째 하늘인데 그것도 모르느냐 그거요. 그걸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어? 기초인데. 도솔천에 내원궁이 있어. 미륵부처님이 계시는 내원궁이 있어. 여기는 윤회를 벗어난 곳이어. 그걸 도솔정토라고 그래.



  우리사바세계도 하늘 아랫이지요. 사바세계 인도의 영축산에 영산궁이 있어. 남섬부주교주 우리 석가모니부처님께서 거기 계셔. 거기 계시면서 보살들을 교화하고 있겠지요.



  천태지의라고 당나라 당시 교학으로 선의 정맥을 이은 분, 아니 천태종의 종정인데 이 분이 선정에 들어가서 영산 신앙을 알 수 있는 말씀을 하신 것이 있어. 선정에 들어가서 ‘영산일회 엄연미산’ 이런 말이 있어.



  영산일회, 영산당시의 모임이 지금도 내가 봤다 그거요. 천태로 하면 천태지의라는 분은 어마어마한 분이어. 천태지자라고 그래. 그 분이 선정가운데서 지금도 영산궁의 영산회상 우리 부처님께서 보살들을 교화하고 있는 장면을 봤다 그거요. 그건 맞아.


그래서 영산신앙이 내려 온 것이고, 사바세계 남섬부주를 교학하는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사바세계가 영산정토라고 하지. 그건 아니어. 영산궁, 거기가 영산정토여, 그러면 사바세계를 윤회 안에 하늘 밑에 인줄도 모르느냐 만현아 그러겠지.

 그걸 내가 알아서 괄호를 해가지고 좀 써놓은 거여. 영산궁, 현재 우리 석가모니부처님게서 보살을 교화하는 영산궁이 있는데 거기를 영산정토라고 한다. 거기는 윤회 밖이다. 도솔정토 위여 거기는. 아미타불국 그 정도 이상이지 거기는.


  그리고 아까 외도와 정도, 정로, 정사를 분간하는 《아함경》, 내가 언젠가 TV법문 때 말을 했지요. 육도 윤회를 주장하지 않는 것은 외도다. 그런데 지옥 없다고 하고, 지옥 없고 귀신이 없으니까 아귀도 없고 하늘도 없고,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그건 아닌 것이어. 정법이라고 볼 수 없어.


 여러분도 정사正邪를 분간하는 잣대를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정사를 분간하는 잣대를 가지고 있어야 된다고요. 그리고 그 쪽은 부처님을 안 믿어. 심교心敎여. 그래서 내가 내 책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 심교라고 했어. 마음?마음?마음, 마음에서 모두가 나온다는 것을 모르는가?


마음의 바탕을 깨치는 것은 이제 시작이어. 거기서 이제 계율을 지키고 수행을 잘 해 나가야 돼. 그래서 마음의 때를 벗겨야 돼. 완전히 마음의 때를 벗겨야 선정 본연과 하나가 되는 거여. 

이것(육신)은 이대로 남겨두고 청정 본연하고 하나가 되어야 불과를 증하는, 몸소 계합이 되는 거여. 그러더라구요. 불과를 증하면서 청정과 계합을 해야 돼. 불신, 내 불신이 생기고 이영체가 빛덩어리가 되고 계합이 되고, 그 불신은 청정한 빛이어.

  그리고 그 스님의 모두를 봐야 돼. 음계를 지키고 있는 가를 봐야 돼. 이것은 정사正邪를 분간하는 잣대입니다. 입만 살아가지고 법을 설하는 것은 누구나 해. 행이 똑같아야 돼. 법문하려면 적어도 성과를 얻어야 돼. 입으로 성과 얻는 것은 누구나 문자 보면 돼. 선서禪書보고 선어록禪語錄 보면 돼.


  우물 안의 개구리가 어느 날 바다 개구리를 만났어. 바다 개구리가 어느 날 세상을 구경하려고 돌아다니다가 실수해서 우물 안으로 떨어져 빠져 버렸단 말이어요. 

우물 안의 개구리들이 그 놈을 보고 조금 다르게 생겼으니까 네 이놈! 어디서 왔느냐 라고 물어. 저기 바다에서 왔다고 하거든. 그건 거짓말이 아니지. 바다가 어떤 곳이냐? 

대단히 넓고 물도 굉장이 많고 깊이도 정말로 알 수 없을 정도라고 하니까, 요놈 이거 사기꾼이다 라고 해가지고 내쫓아 버렸다는 비유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러분! 뜻있는 비유 이야기입니다.


  둘째로 코끼리를 눈 먼 봉사 6명이 만져요. 꼬리를 만지는 사람은 밧줄이다 그래. 꼬리는 밧줄과 같다 그거요. 밧줄이다 그거요. 귀를 만지는 사람은 그것은 밧줄이 아니라 키다키(시골에서 곡식을 고를 때 아낙네들이 사용하던 물건). 

둘이 죽도록 싸운다 그거요. 코끼리 꼬리를 만진 사람은 죽어도 이건 밧줄이라 그래. 귀를 만진 사람은 이것은 절대로 키야. 눈뜬 사람이 보니까 이건 가소롭지요. 가소로운 거요.


  많은 사람들이, 우리 불자들 많은 사람들이, 참 착한 사람들이 어쩌다가 죄를 지어도 악도에 많이 가기 때문에, 악도에 너무나도 많이 가기 때문에 이런 선불교의 교리 갖고는 도저히 안 되겠다 생각을 해서, 이 칭명염불의 가르침이 정말 값어치가 있다고 보고 최상의 말씀이라고 보고 내가 법문을 할 겁니다.


그런데 지옥 말을 하고 싶어서 한 것 아니어. 내가 지난 5년의 통계를 보니까 너무너무도 많이 지옥?아귀?축생으로 떨어지더라 그거요. 그래서 이것을 막아보자고 생각 한 것이 내가 내놓은 그 법문이 있을 겁니다.



  좋은 일 하고,

  나쁜 일 하지마시고 죄를 짓지 마시오.

  마음을 닦아야 되는데 경전을 읽으시오.



  하루에 한번 씩이라도 팔만대장경 중에서 부처님이 주신 것이 있습니다. 《금강경》입니다.《금강경》을 하루에 한 번씩 읽고, 우리 인간은 나약하기 때문에 다라니를 해야 된다 그럽니다. 희유합니다. 그래서 지금 《금강경》을 우리 부처님 경전으로 봅니다.



  다라니도 부처님 다라니가 있어요. 비로자나총귀진언.

  현지사에서 권하는 다라니입니다. 이것을 많이 읽으십시오.


  우리 석가모니부처님은 삼계의 왕이시고 남섬부주 교주이시고 최초 불이시더라고. 이것을 세상에 선포한 사람이 우리 현지사요. 우리 석가모니부처님의 위상은 엄청납니다. 부처님의 부처님의 부처님이시라고요. 

그 다음이 다보불이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조석 예불문을 보면 참 희유합니다. 시간을 갖고 한번 보세요. 조석 예불문, 저기 부산 분원에서 예불하신 분들은 아실 거예요. 이런 예불문이 없습니다. 나를 공격하는 저기 카페의 그분이 보면 정말로 이런 말이 나올 거요. 잠꼬대하느냐 뭐하느냐고 할 거요.


  지심귀명례 삼계지존 남섬부주교주 시아본사 구원실성 석가모니불 이렇게 시작합니다. 석가모니불은 삼계의 왕이시기 때문에 좌우보처가 있어. 모든 붓다는 좌우보처가 있습니다. 문수보현이 양대 보처 보살입니다.


  문수보살은 과거 무량겁 전에 네 번이나 불과를 이루신 분이어. 마지막으로 환희장마니보적불이라는 불과를(붓다를)이루셨어. 보현보살은 부처이름이 청정행왕불입니다.


  그 다음에 다보여래불의 좌우보처는 유리왕불 청정보살. 상원왕불 보승보살, 좌보처는 유리왕불 청정보살, 오여래는 좌우보처가 부처요. 그래서 유리왕불이라고 하는 부처, 그런데 보살행을 할 때는 청정보살로 나툽니다. 상원왕불은 보승보살이라고 그래. 나중에 한번 보시오.


  그래서 석가모니불 칭명염불을 30분에서 1시간정도 공부답게 해야 돼. 햐! 저 사람 공부답게 한다 할 정도로 해야 돼. 혼을 빼서. 또 혼을 뺀다 하는 것 갖고도 물고 늘어지더라고요. 그것은 간절히 하란 말이어. 그런데 그걸 가지고 또 늘어진단 말이야. 

그리고 보살행을 하시고 효를 해야 돼. 부처님께 공양도 드려야 돼. 내가 그 말은 강조를 안 합니다. 돈과 관련 되어서. 그러나 이 이상 복도 없어.




출처/현지궁 현지사 자재 만현 큰스님 정기법문 춘천편 2006년 03월 31일 중 발췌







2022년 3월 29일 화요일

三. 선, 위빠사나 등 자력불교

 三. 선, 위빠사나 등 자력불교



특히, 티베트 밀교의 즉신성불에 대하여

우리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힌두교, 자이나교, 도교, 유대교, 이슬람 수피즘, 유교적 수행으로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공空 체험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제법무아諸法無我인 공의 진리를 깨칠 수는 있습니다.

이후 윤회생사를 벗어나려면 나에 대한 착着이 떨어져버려야 하는데 이 공부를 마치려면 부처님의 청정계를 지키면서 두타행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아라한이 됩니다.

나아가 정토에 왕생할 수 있는 보살이 되려면 부모 조상님께 효를 다하면서 보살행을 해가야 합니다. 부처님께 선근을 심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염불행자가 되어야 합니다.

티베트 밀교의 수장 달라이라마와 그 윗대 스승들을 향해 잠깐 고언을 드리고 밀교의 삼신설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분들은 대단히 훌륭한 불자입니다. 달라이라마는 당초 극락정토 상품보살입니다. 사바세상에 와서 학문과 덕행을 쌓아 지도자의 자질을 갖추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입적하신 스승들 역시 지계持戒에 충실했고 수행 잘하셨으며 보살행 잘하다 간 것으로 믿어집니다.

그러나 한 가지 - 윤회생사를 거슬러 해탈과 적멸로 향상해가야 되는 것을, 정법연기正法緣起로 아라한이 되고, 보살 되고, 불과를 증하도록 정진해 올라가야 하는 것을 그렇게 하지 않고 반복해서 사람 몸 받아 환생을 거듭해 오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역행하는 일입니다.

또한 윗대 스승들 역시 명부에 들어 심판 결과에 따르는 것이 우주의 질서인데도 밀교 교단을 위한답시고 이승에 머물러 있는 것은 논죄 받을 일인 것입니다. 이 점을 간과하고 우주의 이법에 역행하고 있는 점을 깊이 뉘우치고 이제부터라도 자재 만현의 충고를 섭수해주기 바립니다.

그리고 티베트 밀교에서는 비밀한 수행으로써 금생 한 생으로도 무상한 이 육신 속에 삼신三身 혹은 四身을 현증해서 진실로 생사를 초월한 붓다가 될 수 있다 합니다. 또한 밀교의 즉신성불卽身成佛로서 십력 등 부처님의 능력과 32상의 색신을 실현할 수 있다합니다.

바르도中陰에 의생신意生身을 얻어 정광명淨光明과 화합하면 보신불에 해당하는 불신을 성취한다 합니다. 의생신은 밀교의 빔리한 방편도인 의식전이意識轉移로 얻는다 하는 바, 나 자재 만현은 밀교에서 보신불이라 하는 것을 진정한 보신불로 보지 않습니다.

진정한 보신은 유무를 초월한 무아 속 절대계에서 생깁니다. 바르도에 두지 않습니다. 절대계의 자기 보신報身은 억종광이라는 부처님 광명으로 이루어집니다. 정광명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정광명은 진여의 광명, 자성의 광명입니다. 그 보다 몇 차원 높은 빛이 억종광, 무량광입니다.

백종오색광으로 이루어졌기에 불신은 영원히 멸도할 수 없습니다. 또한 무아 속 절대계, 부처님 세계인 지복의 세계에 32상 80종호가 갖추신 보신불이 계십니다.

정광명으로 바르도에서 이루어지는 의생신은 32상이 아닙니다. 의생신이 정광명과 화합된다 해서 영원히 멸도하지 않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정광명과 화합한다고 해서 의생신이 보신불이 될 수는 없습니다.

보신불은, 절대계의 불신은 대적정삼매의 힘으로 우주적인 능력을 갖추게 되어 항하사의 신통 묘용을 쓸 수 있습니다. 지혜, 자비, 공덕을 구족하십니다.

억겁 다생 실로 삼아승기겁의 수행과 바라밀의 공덕, 보살도를 완성함으로써 천만겁 이래 지은 업장이 한 티끌까지도 소멸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탐진 번뇌가 모두 녹아져버려야 보신불이 생깁니다. 다겁생의 악습과 탁기와 악이 모두 없어져야 합니다. 또한 다겁생 동안에 갚아야 할 은혜와 빚이 남아 있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법계 지존이신 우리 교주 불 세존 원만보신의 필수적인 작업이 있어야 나의 불신이 생깁니다.

법신불에 대한 밀교 측의 해석은 바르지 않다는 말씀도 덧붙이겠습니다. 또 밀교의 보신에선 백천만억 이상의 자기 화신불을 나툴 수도 없습니다.

 자재 만현의 지적은 진실한 것이라고 다시 강조해 둡니다. 밀교의 즉신성불은 사실상 허구임을 단정하는 바입니다. 밀교의 삼신·사신설은 진정한 삼신설이 절대 아닙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2권 10장 중에서







선불교의 삼신설, 자성삼보설

 선불교의 삼신설, 자성삼보설


든 부처님들께서 원만보신으로 절대계에 계실 때는 머리를 말끔히 깎으시고 황금 장삼에 빨강 가사를 두르시는데 불 세존은 108쪽 가사, 오여래 부처님은 55쪽, 여타 부처님들은 32쪽 가사를 수하십니다. 모든 부처님들은 절대계에 자기 궁宮이 있습니다.

불과를 증득한 분의 보신부처님은 사실상 진짜 하느님이라 할 만합니다. 일부러 신격화하거나 초인화하려는 말이 아닙니다. 이는 불과를 증득한 현지궁 두 분 큰스님이 실제 보고 경험한 내용을 전하는 생생한 육성肉聲의 가르침입니다. 불교 경전을 연구해서 강의하는 그런 논서의 삼신설이 아닙니다.

이 자리를 빌어 삼신三身이 인간 자성 속에 갖추어져 있다고 보는 선불교<육조단경>의 삼신설은 이설異說임을 확실히 해둡니다. 

삼신은 ≪금광명경≫ ≪화엄경≫ ≪법화경≫ ≪열반경≫ ≪해심밀경≫ ≪능가경≫ ≪30만송 반야바라밀다경≫ 보성론 섭대승론 등 여러 대승경론의 부처님 말씀처럼 붓다에 한정된 용어입니다. 곧 불과를 증한 붓다의 불신을 세 방면에서 보는 것입니다.


인간 색신 안의 청정법신불에 귀의하고, 색신 안의 원만보신불에 귀의하고, 색신 안의 천백억화신불에 귀의한다는 이러한 선가禪家의 법설은 결코 옳지 않습니다.

단경壇經에서는 절대계에 여여히 계시는 불신을 전혀 몰랐습니다. 대승경론에 나오는 삼신관을 인정하지도 않았습니다. 선불교에선 본래 구족한 청정한 마음 성품을 법신으로 보고, 생각 생각 자성을 보는 지혜를 보신으로 하고, 지옥이나 천당을 만들어 내는 한 생각을 화신으로 봅니다. 

즉 사람 사람 자성 속에서 삼신을 말하는 것은 부처님의 산심을 전혀 모르는 이설異說임을 다시 분명히 해둡니다.

다만 한 차원 더 깊이 정진해 들어가 진정한 삼신관을 오득悟得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불‧법‧승 삼보까지도 이를 관념화시켜 자성삼보로 해석하는 것 역시 지나치다 아니할 수 없습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2권







지옥 극락은 마음의 산물?

 지옥 극락은 '마음의 산물'?



자, 복잡한 사안을 두고 성굽하게 옳고 그름을 논하지 말자.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서구의 지식사회는 그들 나름의 제한된
틀 속에서나마 인간 생사관을 정립하려는 피나는 노력을 기울
이고 있다는 점이다. 또 종교를 가진 사람, 아니 가진 사람들을
막론하고 서구의 근대과학이 적지 않은 일정한 '세속 종교'의
구실까지 해내고 있다는 발견도 해볼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의
한계를 지적하고 나설 것이 아니라, 불교를 포함한 다양한 종
교들의 직무유기부터 탓해야 할 지 모른다.

그 점에서 만현 스님의 지적대로 현재의 한국 불교가 "마음
이 곧 부처요, 마음자리가 곧 극락"이며, "지옥과 극락이 따로
존재하는 실재가 아니라 우리 마음 속의 산물에 불과하다."는
식의 단순논리는 도무지 설자리가 없다. 그런 섣부른 단순논리
를 앞세울 경우 불교는 거의 유사 불교의 수준으로 떨어질 것
은 물론이고, 거기에 더해 올바른 생사관에 목말라하는 우리
시대의 갈증을 외면하는 결과를 빚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결과 혹세무민에 불과한 무당이나 도인들의 검증되지 아
니한 신통력에 빠져들어 헛 인생을 살 가능성도 농후하다. 확
실히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그런 믿거나 말거나 하는 세계에서
헤매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아니면 이 정신 없는 정보화의 세
계화 세상, 동시에 법이 죽어가는 말법의 세상에서 사람들은
저 세상이란 없으며,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믿는 극도의
허무주의 속에서 그저 부대끼며 사는 것은 아닌지 모른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수행자들의 경우 무애라는 높은 경
지를 자신의 것인양 희롱하며, 음계를 지키지 않는 막행막식에
빠져들 가능성도 배졔할 수 없다. 반면 만현 스님의 메시지가
전하는 불교의 모습은 심히 장대 장려하다. 엄격한 위계를 가
진 장엄한 세계는 거의 전율스럽기 조차하다. 또 깨달음의 단
계와 맞춰 수미일관하는 틀을 가지고 정교하게 움직인다. 윤회
와 전생이란 불교의 핵심 가르침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로 다가
온다.

이런 상황에서 지옥이나 하늘과 천상은 빼도 박도 못할 위계
질서 속에 층층으로 구분되어 있다. 54개 층의 하늘로 낱낱이
구분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하늘 세계란 모두가 윤회에
서 벗어나지 못한 세상에 불과하다. 훨씬 아래의 지옥도 존재
하며, 제대로 명부에도 들지 못해 중천을 떠도는 무주고혼들의
중음의 세계 역시 엄연하다. 반면 부처와 보살 역시 구체
적인 모습으로 존재한다. 이 대목이야말로 결정적으로 중요한
대목이다.

실은 적지 않은 불자들이 당혹스러워하는 핵심 대목이기도
한데, 만현 스님에게 부처와 보살들은 그저 추상적인 법신
의 개념으로 파악되는 것이 아니다. 구체적인 현존인 보신
의 차원에서 지금 여기에 여여하게 존재한다. 즉 석가모니 부
처는 지금도 인도 영축산의 영산정토에서 법을 설하고 있으며,
보살들을 교화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또 화두를 타파한 수행자가 자력의 힘으로, 즉 인간의 능력
으로 오를 수 있는 구경각의 단계는 아라한 단계일 뿐이며,
그 이후 부처의 가피라는 타력의 힘으로 비로소 보살 단계
에 오를 수 있다는 점도 분명히 하고 있다. 아라한이란 나를
죽이는 무아의 공부로 들어가 중생이 이룰 수 있는 최고의 경
지임이 분명하지만, 아라한의 단계는 결코 골인 지점이 아니다.
그 단계란 아직은 '작은 열반'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놓치면 안 될 대목은 이런 작은 열반이란 다양한 수행에서
가능한 세계이다. 경계가 온통 뒤집힘으로써 환해져 자성(마음자
리)이 드러나는 것은 조계종의 핵심 수행법인 간화선으로도 가
능하지만 남방 불교의 위빠나사 수행, 그리고 밀교 수행으로도
가능하다. 따라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아라한 단계 이후 '큰 열
반'의 세계다. 그 이후는 어떻게 될까?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


간화선 실체

 간화선 실체



지금 우리나라 불교는 조사선이 주도하고 잇다. 이것
을명 간화선이라고 하는데, 그 정통성을 따져보면 사
실 족보가 없다. 교단 안에서조차도 그 핏줄이 불분명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해서 정법 수행과 코드가 맞는 것도 아
니다. 각각 문중마다 그 맥을 짜 맞추어 각자의 정통성을 주장
하고 있지만 누가 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냉정하게 말
하면 간화선이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한국 불교를 대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가장 큰 걸림돌은 화두 탐구로 공을 타파한 이후 진공묘유
의 무아 속 절대세계로 들어가기 전후의 수행록을 제시
해야 하는데, 간화선을 추구한 수행자 가운데 그런 대원의 경
지에 이른 수행자가 아직 없다는 것이다. '있긴 뭐가 있어', '보
림을 잘 해야지' 이 정도의 법거량이 오고갈 뿐 확실하고도 명
확한 지표를 제시하지 못한다. 때만 되면 ㅇㅇ대회니 이름 붙
여 수행자들을 불러모아 자파 문중의 위상을 높인다고
하지만 오고가는 언어를 살펴보면 며칠만 연습해도 누구든 따
라할 수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말장난일 뿐 어떤 경지의 의미
를 함축한 것은 더욱 아니라는 것이다. 아라한과도 얻지 못한
상태에서 공의 현상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모순일 뿐
이다.

그들이 자기 모순에 빠져 있는 근본 원인은 스스로 말한 것
을 스스로 부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근한 예를 들면 병마를
여의기 위해서 수행을 일삼았다고 말하고, 그 수행자들은 생전
에 스스로 어는 경지에 이른 것처럼 뉘앙스를 풍겼지만, 그들
이 법석에서 말한 그 병마의 덫에 스스로 걸렸던 것이다.

이런 일들이 어느 한 두 수행자들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면
표본을 삼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금생에서 큰 공
을 쌓아 내생에서 일어날 업장까지 차생에서 받는 사례와는 분
명 다르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스스로 어떤 경지에 이르렀
다고 이미 대중 앞에서 선언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스스로
이르렀다는 경지가 문제이든지 아니면 스스로 뭔가를 착각하고
있다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는다.

사실 경지에 이른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마침내 실
존의 붓다의 세계를 부정하고 육도윤회를 부정하며 무애
를 들어서 걸림 없이 행하는 것을 마치 묘유인양 그   행위를
포장하지만, 이러한 행위는 아무리 성숙된 사회라고 해도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그야말로 한갓 만행일
뿐이다.

필자는 연전에 학인들을 앞에 두고 이런 말을 한 일이 있었
다. 물론 취화선이 담아낸 한국 영화를 보고 그에 대한 소감을
피력한 것이지만, "경허선사의 행적을 영상에 담아 '무상의 도
리'를 유럽에 소개한다면 그 보다 더 나은 우리 문화의 소개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을 하면서도 필자의 뇌리 한편에 스치고 지나가
는 것은 극과 극을 달리는 그의 만행 도두가 공을 설명하는 범
주에 들어갈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창문으로 들어온 구렁이가
가슴에 똬리를 튼 상태에서도 정진하는 그 모습은 더 없는 두
타행이었지만 유부녀를 희롱하는 행위까지 과연 공의 도리로
설명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필자는 대선지식을 독대하는 자리
면 이것을 꼭 한 번 물어보고 싶었다. 금년 7월 하순 경, 큰스
님을 뵌 자리에서 큰스님께서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이후 그런
일을 하셨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수행자가 공을 타파하면 천상
에서 그 때부터 특별 관리하게 되는데 음행은 그 그릇을 깨버
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때 그 이후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소상히 법을 설하
여 주셨지만 지면이라 차마 싣지 못함을 독자들이 이해해주었
으면 한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는 큰스님 저서 곳곳에서 이
미 언급된 사항이다.

그리고 만행 가운데 가장 용서될 수 없는 일은 실존의 붓다
를 부정하는 것인데 이 과보는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이
다. '우리 마음이 곧 부처이다'라는 말은 누가 들어도 진정 매
혹적인 말이다. 지존을 한껏 세워주는 이 말이야말로 정말 귀
에 와 닿는다. 그러나 이 말이 탈콤한 만큼 무서운 독소가 들
어있는 것도 사실이다.

단지 부처를 이룰 수 있는 가능성만을 갖고 있을 뿐이지 '그
자체가 바로 부처는 아니라는 것이다. 비록 수행자라고 해도
그것만으로 윤회를 벗어나는 것은 아닐 터이다. 그런 마음을
갖고 부처로 인식하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일 뿐이다.

자존은 비록 수행자가 아닐지라도 누구라도 갖고 싶어
하는 소망이다. 그러나 수행에 있어서는 몽땅 버리고 가야 하
는 문제이기도 하다. 만행을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런 자존
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런 생각이 결국은 자기 이외에 누
구도 존재할 수 없게 만드는 셈이다.

그들 앞에서 교학을 수행으로 삼거나 독송을 소임
으로 삼는 수행자들은 근기가 매우 천박한 자들로 낙인찍혀 언
제나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 점, 그동안 간화선이 얼마
나 많은 해악을 끼친 것인지, 지금 철저히 반성하여도 늦지 않
다. 붓다와 경전을 무시가 아니라 멸시하게 한 점, 이것은 분명
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다.

역사적인 사건은 한 단락만을 요구한다. 그동안 무량광을 체
험한 수행자가 없었기 때문에 몰라서 저지른 행위로 용서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게 밝혀진 상황에서 과거의 잘
못된 행위에 대하여 침묵하는 것을 역사는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다. 이미 오래 전 로마 교황청은 십자군 전쟁 등에 대해서
'만행'이었음을 정식으로 만천하에 선포하였다. 지금 간화선이
이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때이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


부처님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선불교의 선지식을 따를 것인가

 부처님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선불교의 선지식을 따를 것인가



우리는 부처님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선불교의 선지식을 따를 것인
가를 고민해야 한다. 부처님께서는 분명 아함경에서 육도 윤회가
있다고 설하셨으며, 법화경에는 묘희의 세계를 많이 설해주셨
고, 화엄경에는 비로자나부처님의 세계를 말씀하셨다.

정토삼부경에선 서방정토 극락세계를, 약사여래본원경에서는
동방 만월세계를 말씀하셨다. 선불교의 선지식은 이러한 부처님의 대
승경전에 대한 언급은 없고 오로지 화두 타파 이야기만 한다. 어찌된
것인가? 부처님의 말씀을 경청해야 하는가 선불교의 선지식들을 추종
해야 하는가?

지혜로운 식견을 구비한 불제자라면 답은 훤히 결정되어 있다. 뭐라
고 해도 우리 불교의 교주가 되시는 분은 석가모니부처님이시다. 선불
교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달마 조사는 부처님의 법을 이어받은 28대
법손에 지나지 않는다. 달마 조사가 더 높을까 부처님이 더 높을까?
선불교의 선지식들은 부처님과 달마 조사의 경지가 동일하다고 평
가하고 있는 듯하다.

정말 부처님과 선사들은 동일한 경지일까? 너무나 오랫동안 한국에
만연된 선가의 선서들에 찌들어서인지 분간이 안 된다. 정말 선사들이
부처님과 동일한 경지인가? 많은 불제자들은 이 부분에 대해서 궁금해
한다. 급기야 이러한 의문은 제차두고 선사들이 부처님과 동일한 경지
라고 확고한 신념으로 살아가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좀 무언가 석연치 않다. 달마 조사는 왜 그렇게 박식하지 못
했을까? 부처님은 수많은 경전을 설하시고 헤아릴 수 없는 가르침들을
많이 베풀어 주셨는데, 달마 조사가 남긴 서적들은 거의 손에 꼽을 정
도이니 말이다.

달마 조사를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진실로 수행의 경지가 높은 분들은 제자들을 많이 육성하고 좋은 경전
을 많이 남기며 자비와 지혜가 출중하고 변재하다는 것으로 전하고 있
다. 그러나 달마 조사는 석가모니부처님보다 제자 유성이나 경전 찬술
그리고 자비와 지혜면에서 부족하다고 보여진다.




출처/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


선불교의 폐습과 성서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출현

 선불교의 폐습과 성서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출현



오늘날 선불교의 여러 가지 폐습, 즉 공허한 선문답, 뚜렷하지
못한 경지, 계율을 중시하지 않는 막행막식, 육도 윤회를 관하지 못함,
생사관의 미확립, 공사상의 허무주의화 등등으로 인해 수많은
수행자들이 막연한 이상향을 기대하거나 수행의 한계를 겪고 있고 불
교에 대한 오도된 인식을 갖게 되었다.

수행자들은 선불교의 폐습에 가리어 불교 공부를 너무 어렵게 느끼
며 불교 수행체계에 대한 명료한 안목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선불교의 문제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종교 명상세계가 공성과 
신성을 철견하는 경지에 만족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공성이나 신성이라는 것은 어떤 확고한 경기가 아니다. 그것은 고요
한 마음의 평화를 주는 경지이다. 이 경지가 마치 최고의 경지인양,
그리고 더 나아가 궁극적인 경지인양 수행자들의 의식 속에 만연되어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마음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두뇌에서 번뇌를 지멸시키는 것이 수행의
완성이라면 종교의 시원적 근거이면서 종교가 수천 년 동안 내려오면
서 간직해온 사후 세계에 대한 해답은 어떻게 풀어야 할 까? 

사후 세계는 이론이고 말로만 존재하는 것이며 실재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닌 것인가? 

그렇다면 세계의 최대 종교들에 속하는 불교와 기독교, 이슬
람교 등의 교주들께서 모두 사후 세계를 설파한 것은 거짓이요 위선
이란 말인가?

우리는 진실로 정신 차리고 이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매우 중요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다른 종교는 차지하고 불가에 소속한 불제자로
서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설법하신 육도 윤회와 사후 세계를 부인해야
할까? 그렇다면 정녕 부처님께서는 거짓을 말씀하신 것일까?

선불교의 선지식들은 마음이 극락이고 지옥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지옥은 실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부처님께서 설하신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수라, 천상의 육도 세계를 부인하는 것이 아닌가?
부처님의 말씀이 맞다면 선불교의 선지식이 틀린 것이고 선불교의 선
지식이 맞다면 부처님께서 틀리신 것이다.

이러한 이분적인 구분을 짓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될 수 있으나 지
금은 현실세계에서 너무나 극명하게 불교 수행문화의 오류들을 많이
보는지라 옳고 그름을 정확하게 판단해야 할 때이다.




출처/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








화두선(간화선)수행법

 화두선(간화선)수행법



한국에서는 도의국사를 기원으로 해서 천여 년이 넘게 전승된 유서
깊은 화두선이 화두 일념을 통해서 일념삼매를 통과하여 무념삼
매로 증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최근까지 훌륭한 수행법으로 인정되어
왔다. 화두선도 위빠사나선이나 일반 염불선과 동일하게 삼매를 얻을
수 있다. 

그 점으로도 충분한 가치는 있다. 하지만 수행자의 채질이
화두선에 적합해야 하며 시간을 많이 소비한다는 단점과 함께 현대 한
국불교 수행 문화를 선양하고 수행 세계를 고취시키는데 있어서 여러
가지 문제점과 한계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화두선은 이제 더 이상 한국불교, 더 나아가 전 세계 불교의
21세기 수행법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할 실정에 와 있다.


한국과 티베트을 왕래하고 달라이라마로부터 공부를 배우신 유명한
청전 스님께서도 "한국에는 부처같은 큰 소리는 많은데 부처같은 행동
은 왜 없나 ."라고 일갈한 것처럼 선불교에 찌들은 한국불교계는 깊은
반성을 해야 한다.

여기서는 간략하게 화두선의 문제점과 병폐를 지적하여 더 이상 화
두선은 21세기 대표 수행법이 될 수 없음을 말해두고자 한다.



출처/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

선불교의 참선 수행은 중국불교의 산물

 선불교의 참선 수행은 중국불교의 산물



밀교의 우수한 수행 체계, 타력 염불 수행의 우수성 외에도 힌두교
의 삼매에 드는 요가 수행, 유대 신비주의의 심오함, 이슬람 수피즘,
기독교의 신비주의 유교의 격물치지 수행, 도가의 기동 수행법으로도
달공하여 불교의 아라한위까지 진입 가능하다.

선불교의 참선 수행은 부처님 가르침이 아닌 중국불교의 산물이자
경전 상 명문 근거가 없다. 

화두선에 대해서는 정말 언급하고 싶지 않으나 너무 오랫동안 우리 
한국불교를 병들게 해서 별도의 단원으로 다루었다.

큰스님 말씀대로 화두선을 통해서도 견성을 할 수 있으므로 화두선
이 100% 나쁜 것은 아니다. 수행자의 체질이나 전생 선근에 따라 화
두선이 잘 맞는 사람이 있다고 하신다.

하지만 일부 수행자들에게나 효험이 국한되는 수행법으로는 21세기
한국 불교 아니 전 세계 불교를 견인할 수 없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만약 화두선이 그렇게 휼륭한 수행법이라면 왜 청전 스님처럼 한국
불교에는 위대한 큰스님들이 그렇게 많지 않고, 왜 스님들의 명성이
널리 선양되지 못하고 있는가 말이다. 화두선 수행자들은 깊이 이 점
에 대해서 숙고하고 반성해야 할 것이다.



출처/ 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





선불교의 흠결을 말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부처님에 대한 신행, 즉 부처님의 존재를 믿는 불제자로서의
기본 수행 마음 자세가 안 되어 있다는 것이다. 마음이 부차라고 하는
실정인데 말해야 무엇하겠는가? 마음이 부처라면 모든 중생이 이미 다
부처인데 수행은 왜하고 불교는 왜 믿는지 의문스럽다. 

마음이 부처라면 종교는 종교도 아니고 존재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않다는 것을 신심 깊은 불제자들은 알 것이다. 

그리고 믿음이 없는 종교는 세계 그 어느 종교에도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둘째, 견성, 즉 깨달으면 부처가 됐으니 막행막식하고 사음도 가하다
고 하는 것이 오늘날 선불교의 현주소다. 

계율이 없는 불교는 불교가아님을 알아야 한다. 
계율이 있기 때문에 불교가 2500여 년을 존속 유지되어 왔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셋째, 경전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어찌 잘해야 아라한 자리에
불과한 조사들의 어록들을 부처님의 경전보다 더 소중히 하는지 이유
를 모르겠다. 이제부터라도 한국불교가 살아남으려면 대승경전을 읽고
공부해야 한다.

넷째, 염불을 하근기라고 하지 말아야 한다. 어찌 염불 수행을 제대
로 해본 적이 없이 하근기라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염불 수행의 오묘한 맛과 쉽고 빠른 경지 증득을 모르고서는 절대 
염불선을 하근기 수행이라고 모독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화두선은 상기병, 정신질환, 주화입마에 걸리기 
쉬운 수행법인 반면 염불수행은 부작용이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다섯째, 효를 다해야 한다. 부처님이 주관하시고 불과를 중한 청정하
신 큰스님이 집전하시는 천도대재를 치르고 돌아가신 부모와 조상
그리고 친인척들을 하늘로 천도해야 할 것이다.

여섯째, 부처님은 마음의 산물이 아니다. 어찌 마음이 부처님이 될
수 있을까? 마음이 부처님이라면 그것은 부처님을 모욕하고 능멸하는
행위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법화경 비유품의 부처님 말씀처럼 공성의 증득으로 붓다라
할 수 없다. 32상 그리고 10력 등 모든 붓다의 공덕을 갖춘 색신보신
을 성취해야 붓다인 것이다. 큰스님께서는 불신을 얻지 못하면 붓다가
아니라고 확인하신다.

일곱째, 생사관이 없고 육도 윤회를 인정하지 않는다. 만약 지옥이
없고 천상이 없다면 아함경에서 설한 육도 윤회는 거짓이란 말인
가? 그것은 부처님을 능멸하는 행위임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여덟째, 참선만이 유일무이한 깨달음의 수행법이라고 생각한다. 독선
적이고 배타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함경에서 부처님께서는
위빠사나선이 깨달음에 이르는 유일한 방법이라 분명히 하셨다.




출처/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 117~119


마음이 곧 부처는 아니며 견성은 성불이 아니다

 마음이 곧 부처는 아니며 견성은 성불이 아니다



선 불교의 구습에 물들어 있는 수행자나 학인, 특히 도올 선생과 같은 분은 마음이 곧 부처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결코 마음의 공성을 철견하였다고 해서 붓다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즉, 공을 철견하면 바로 그것이 견성이요 아라한이 되는 길목임을 알아야 합니다.

큰스님께서는 바로 이렇게 천여 년이 넘게 내려온 선 불교의 구습을 청산시키는 "마음이 곧 부처가 아니다."라는 최초의 사자후를 하셨다는 점에서 우리는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마음이 부처라면 그것은 부처님을 우롱하는 처사임을 알아야 합니다.

마음이 부처라면 그것은 큰스님 말씀대로 심교지 불교가  아님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큰스님께서는 '마음이 부처'라고 하는 선 불교 수행자와 중간 계통 유식 불교학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강력한 문제 의식을 제기하셨습니다. 

즉 "선 불교에서 주장하는 무아와 마음이 곧 부처라 하면, 다시 말해 나가 없다면 불과를 증하신 부처님께서 적멸로 돌아가서 계합하시고 근원 자리(공)이 되어 실체가 없어져서 불과를 증하신 붓다님이 중생을 구제하고자 화신으로 인간 몸을 받아오시는 분이 있는데 그 무엇이 판단하고 생각하고 결정해서 이 세상에 오실 수 있단 말인가? 

육도 윤회를 하려면 윤회를 하는 실체가 있어야 하는데 그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육도 윤회를 인정은 하는 것인가? 

그런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무엇 때문에 불공을 하고 천도재를 지내는가?

이건 완전히 허무주의 아닌가? 그리고 가끔 자신들의 의견과 다르다고 법문하면 천마에 섭했다고 하는데 그럼 천마는 실체가 아닌가? 실체가 없다고 하는 당신들이 말하는 천마는 무엇 이냐?"라고 말입니다.

과연 무엇이라 큰스님께 대답해야 할까요? '마음이 부처라는 논리로는 결코 큰스님이 제기한 문제의식을 해소시킬 수 없다 는 것을 학인들은 알아야 할 것입니다. 

즉, 모르는 것에 대해서 는 함구하고 알려거든 큰스님께 공손히 여쭈는 것이 진실한 학인의 자세라 생각합니다.

마음이 부처가 아니며, 견성이 성불이 아니라는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서 강조하신 가르침은 선 불교에 찌들어 있는 전 세계 불교계에 시원하고 청량한 바람을 불러일으킬 사자후 입니다. 

그만큼 신선하고도 전대 미문의 사자후이며 매우 중차대한 말씀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는 불제자들이 그동안 답습해오던 선 불교 수행에 종지부를 찍고 견성을 넘어서 붓다를 증위하도록 가르침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즉, 기존의 간화선 일변도에서 탈피하고 염불선으로 희귀하여 새로운 각오와 마음으로 정진할 것을 권청하고 계십니다.

정법을 걷는 불제자라면 큰스님의 의중을 깊이 있게 관철해야 할 것입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는 수많은 가르침을 심득하신 큰스님께서 아낌없는 마음으로 불제자들을 위해 베풀어주신 사자후 모음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항목 하나하나가 주옥같은 내용들로 가득 차 있고 책을 읽는 불제자들의 의식을 송두리째 환골탈태시키는 가르침들로 영롱하게 아로새겨져 있음을 명각해야 할 것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







영혼체 / 영체

 


영혼체 / 영체

 

 

 

오늘 1,000여 명이 왔다고 하는데, 대단히 좋은 일입니다. 대단히 좋은 일이어요. 그래서 이 사람(자재 만현)이 법상에 와서 입정을 딱 하게 되면, 붓다가 들어오고, 우리 부처님께서 정수리에 좌정하시고, 모든 붓다님들이 쭈~욱 오셔서 부처님의 빛을 쏘아주는데, 그때 쏘지 않으면 중간에 쏘고, 마지막 때 꼭 쏘아 주십니다.

 

여러분, 그래서 이 정법교단의 법문은 업장이 씻겨나가고 소멸되니까 꼭 와서 들어야 돼. 그 누구도 업장소멸을 해 줄 수가 없어. 부처님 아니면 없습니다. 이건 분명하니까 스님이 강조 강조합니다.

 

오늘 처음 오신 분들, 앞으로도 계속 나오셔서 업장을 많이많이 씻고 닦고 소멸해 가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여러분들이 삽니다. 죽으면 대부분이 지옥을 가는데, 이렇게 붓다 회상의 법회에 나오는 여러분은 지옥을 갈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몸속에 진짜 여러분이 있어. 스님이 항상 이야기하잖아요. 진짜 여러분의 몸뚱이가 있어. 그것을 영체라고 하잖아요. 경전에도 간간이 나옵니다. 영혼체, 무슨 건달바, 무슨 식신, 신식 등 여러 가지 말이 나와요.

 

그런데 그것을 간과(看過) 해가지고 무아(無我)를 엉뚱하게 해석해서 불교가 망해버린 거예요. 무아(無我)를 잘못 해석해 가지고 인도에서 쫓겨나버린 거예요. 그래서 스님은 시간 시간마다 이것을 이야기하잖아요. 여러분의 몸속에 보이지 않는, 그 누구도 볼 수 없는, 불(佛)의 경계에 가서 보이는 그런 진짜 여러분이 있다고요.

 

그것을 영체라고 그래. 그 영체는 여러분의 정신 ․ 생각 ․ 마음 ․ 업의 종자를 담고 있는 그릇이어요. 정신, 유식에서는 이것을 식(識)이라고 해. 식(識)이 윤회의 주체가 된다고 하는데, 그건 말이 안 됩니다.

 

식(識)은 윤회의 주체가 될 수 없는 거예요. 여러분, 무아(無我)에 대해서 법문을 많이 들으셨으니까 알 거예요. 식(識)이 또 대승 유식(唯識)에 와서는 ‘아뢰야식(阿賴耶識)이 윤회의 주체다’라고 지금까지 그래왔습니다. 그것은 아니어. 식(識)이 어떻게 윤회의 주체가 되는 가?

 

식(識)은 판단하고, 생각하고, 업을 저장하고 할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식(識)은 반드시 근(根)과 외경이 있어야 그것이 존재하는 거예요. 근(根)과 외경이 없이 식(識)하나가 어떻게 극락을 갑니까? 식(識)은 감정도 없어. 감수가 없어(생각도 없어). 판단도 못해. 그런 식(識)이 어떻게 극락을 가나요? 왕생하라는 말이 틀리지.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몸속에 있는 진짜 여러분이(눈 코 입 달린 그 영체가) 모든 업장을 벗어버리면, 그러니까 마음공부를 해서, 지혜를 닦아서, 또 선근 공덕을 지어서 부처님의 가피를 얻으면, 그 영체가 아주 많이 덕지덕지 붙어있던 업의 찌꺼기를 다 떼어버리고 맑아져(맑혀져)서 이제 유아(有我)가 돼. 무아(無我)가 아니라 유아(有我)가 돼. 진짜 나(我)가 돼. 그래가지고 극락을 가게 되면 눈 코 입이 달린 놈이 가. 그 영체가 청정하고 밝아져서 빛이 되어서 간다고. 32상을 갖춰 가지고 간다고. 그러면서 극락세계의 그 장엄(기쁨)을 만끽한다고.

 

‘아! 참 내가 잘 왔구나. 내가 영산불교를 만나지 못했으면 영원히 그 무서운 지옥에 가고, 또 짐승이 되고, 짐승도 수없이 죽었다가 살아났다가 하면서 다른 몸뚱이를 받고 입고해서 사람이 되어가지고 거의 영원히 악도에서 윤회할 것인데, 영산불교 큰스님을 만나서 이렇게 극락에 왔구나’ 하는 것을 알아. 눈이 있고, 코가 있고, 입이 있고, 귀가 있고, 생각이 있으니까 알아. 식(識)이 가는 것이 아니어요. 몸뚱이가 가야 되는 거예요.

 

그래야 외경을 보고 ‘아! 참 볼만 하구나. 이 아름다운 절경! 아! 우리 다른 불자님들이 이곳에 와야 되는데, 이곳에 오게 되면 영원히 사는데...’한단 말이어요. 극락세계에 가면 불퇴전(不退轉)입니다. 불퇴전이어요. 왜냐? 자기의 애기(꼬마)가 있어요. 자기가 있어. 그 자기와 내가 하나가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오면 또 그 자기의  애기는 거기에다가 그대로 놔두고 와. 극락에서 오게 되면 여기서는 죄를 별로 짓지 않습니다. 또 반드시 붓다 회상을 만납니다. 그 때 옵니다. 그러니까 마음대로 교화하고, 그리고 극락세계의 자기한테로 간다고요. 그래서 불퇴전이라고 합니다. 지옥 아귀 축생으로 안 떨어진다고 해. 우리는 꼭 그런 성과(聖果)를 얻어야 됩니다. 꼭 얻어야 돼.

 

그러려면 붓다 회상을 만나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 아무리 자기 홀로 수행을 하고, 부처님의 가피 없이는 절대로 거기(극락세계)에 갈 수 없습니다. 갈 수 없는 이유가 네다섯 가지가 있어.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꼭 스님 말씀을 유념해서 우리 현지사의 진짜 신도가 되기를 신묘년 한 해 부탁을 하고, 또 여러분들은 마음속으로 그렇게 결심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우리 출가한 제자 분들이 70명이나 됩니다. 속속 과거 전생이 드러나고 있어요. 속속 드러나요. 영산당시 1,250명 중에서 지금 많이도 왔어요. 이 붓다 회상을 만나기 위해서 발원을 하고 한국 땅에 왔어요. 외국에도 나가 있어요. 지금 못 만났지. 70명의 제자들은 거의 대부분이 1,250명이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도 1,250명 중 일부가 지금 있더라고. 지금 있어.

 

그런 분들은 부처님에 대한 믿음이 대단해요. 확실해요. 이번에 몇 사람이(다섯 명 정도가) 1,250명이었고, 그 중에서도 500명의 비구에 뽑혀가지고 1차 결집할 때 참석한 비구들이었습니다. 지금 다 드러난다고요. 붓다 회상이라는 것이 증명 되잖아요. 우리 부처님께서 와계시기 때문에 증명이 되지만, 우리를 따르는 그 제자들이, 우리 신도 분들이 대부분 영산당시 1,250명의 비구들이더라 하는 것입니다.

 

 

 

출처/ 현지사 정기법문 2011.2.6.일요일 중 발췌

2022년 3월 28일 월요일

생사관의 정립 - 인생의 진단과 생의 목표

 생사관의 정립 - 인생의 진단과 생의 목표


지금까지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연기법과 사성제의 진리를 통해 우주의 창조에서부터 인간의 실체, 인생의 문제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우리 중생들의 실상은 어떠하며, 무엇을 대상으로 수행해야 되는지, 그리고 실제로 우리가 죽은후에 가게 되는 사후세계로서 중생들의 윤회세계의 실상을 알아보았고 성자들의 해탈세계가 있음도 보았습니다. 

이제 이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올바른 생사관을 정립할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인생의 목표는 무엇이 되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며 불자로서 어떤 수행을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정리해 드립니다.

(1) 우주의 창조와 인간의 실체

① 우주와 인간은 인연에 의해 존재의 원천인 공(空)으로 부터 창조되었다.
② 인간은 육체와 4개의 영체로 구성되어 있다.
-영체 중 질적 등위가 가장 높은 순위대로 편의상 1, 2, 3, 4번 영체로 부른다.

③4개의 영체 중 가장 고급영체인 1번 영체가 나의 실체(본체)다.


(2) 사후 세계와 실상과 영체가 가는 길

① 사람이 죽으면 영체가 빠져 나온다.

② 영체는 지은 업에 따라 중음계, 육도윤회계, 탈윤회계의 3갈래로 갈라져 간다.

③ 중음계는 4번영체로 가며, 명부에 들지 못하고 소속이 없는 무주고혼이 된다.

④ 육도윤회계는 3번 영체가 주체가 되어 가며, 전생의 지은 업에 대해 열시왕의 심판을 받고 그 결과에 따라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아수라, 천상의 다양한 경로로 윤회전생을 한다.

- 지옥은 죄업 많은 사람이 가는 곳으로서, 극무간 · 무간 · 중 · 하 · 대기지옥의 5등급으로
구분 하는데 중지옥 이상은 형언할 수 없는 형벌이 가해진다. 죽은 사람 중 97-98% 정도가
지옥으로 가고 그 대부분이 중지옥으로 간다.

- 아귀는 인색하거나 간탐이 많은 사람이 가는 곳으로서 배고픔과 기갈의 고통이 심하다.
- 축생은 은혜를 모르고 우치하거나 삿된 견해가 많은 사람이 가는 곳으로서, 사람은 업에
따라 영체가 들어가는 동물로 태어날 수 있다.

- 인간세계는 선업, 악업이 혼재한 우주 유일의 독특한 세계다.
- 아수라세계는 복은 지었으나 시기, 질투심이 많은 사람이 간다. 1하늘 하품정도에 속하는
부유다복한 곳이나 싸움이 많다.

- 천상세계(하늘)는 욕계 6하늘과 성중하늘이 있다. 욕계 6하늘은 선업 많이 지은 사람이
가는 곳으로 용모 수려하며 의식주 걱정 없이 안락한 삶을 누린다. 6등급 54품이 있다.
성중하늘은 상당한 선정에 들어야 갈 수 있다. 금강경의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이 나는
하늘로 성인류의 반열에 들어가는 법위다. 3등급 27품이 있다.

⑤ 해탈계는 윤회를 벗어난 성자가 가는 세계로서 아라한 해탈오계, 보살정토계, 붓다의 무아 속 절대계의 3대 해탈계가 있다.

- 아라한 해탈오계는 2번 영체가 주가 되어 간다. 영체는 보름달같이 빛난다.

- 보살정토계는 1번 영체가 주가 되어 간다. 영체는 아침 햇살처럼 빛난다.

-붓다는 4개의 영체가 빛덩어리가 되어 우주 본성인 자성광의 본원광인 무량광과 하나가
되어 무아 속 절대계에 불신을 둔다.


(3) 인생의 진단과 삶의 목표

①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어 윤회하는 삶은 고통이다 (고성제-일체개고)

② 고통의 원인은 탐욕과 집착이고, 탐욕과 집착은 무명에서 비롯된다 (집성제-고통의 원인)

③ 고통의 원인을 완전히 제거하면 환희의 세계인 열반적정에 이르게 된다. (멸성제-열반적정 지향)

④ 우리 삶의 목표는 윤회생사를 영원히 벗어나 완전한 생사해탈을 이루는 것이다.

- 1차적으로는 생사 윤회를 벗어나는 아라한에 목표를 둔다.
- 2차적으로는 붓다의 지위가 보장되는 보살(8지 이상)에 둔다.
- 궁극적인 목표는 영원한 환희를 누리는 붓다가 되는 것이다.


(4) 어떻게 살아야 하나?
① 인생의 고통에서 완전히 해방되려면 열반적정에 이르는 방법을 실천해야 한다(도성제-8정도 수행)

② 이것은 결국 아라한이 되고, 보살이 되고, 궁극적으로는 붓다가 되는 수행방법을 실천해야 한다는 말이다. 즉 지혜와 복덕을 완성하는 수행을 해야 한다. 

이것은 부처님께서 이 사바세계에 오신 목적인 일대사인연을 실현하는 길이기도 하다.

- 팔정도의 종합적 실천수행인 칭명염불이 핵심적인 수행방법이다.

- 부처님에 대한 믿음, 효행, 계행, 보살행(자비이타행), 경전공부가 핵심적인 실천과제이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요해





중음계/ 육도

 고민 있으면 지옥? _ 지옥은 실제로 있다!


지옥은 분명히 있습니다. '고민이 있으면 마음은 무간 지옥'이라
는 설법은 실제로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말입니다.

지옥은 우리 육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영체 세계의 남방 지장
궁 방향에 있습니다. 차별의 현상세계에서 볼 때 지옥은 엄연히 존
재한다는 말입니다.

내가 무아 속 삼매에 들어 보니, 지장본원경에 나오는 지옥은 그
일부에 불과했습니다. 여기서는 중지옥 가운데 한곳만 소개하겠
습니다.

열 손가락 손톱 밑을 대꼬챙이로 찌르는 그런 지옥도 있습니다.
이곳에서 우리의 영체는 고통으로 까무러쳐서 하루에도 만 번 죽
고 만 번 살아날 정도록 지독한 벌을 받습니다. 그 고통은 육신이
당하는 고통과 똑같이 느껴집니다.

오역죄, 사중죄를 지으면 보다 무서운 무간지옥으로 갑니다.
극무간지옥도 있습니다. 그곳의 수명은 한량없는 시간으로 정
해집니다. 지옥의 벌은 자동으로 집행됩니다. 하나의 지옥은
사바세계보다 넓습니다. 그것이 특징입니다.

지옥으로 들어갈 때는 크나큰 철문을 통과합니다. 지금은 이 정
도만 말해 두겠습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중음계



중음계에 대한 설명이 경전에는 대단히 약합 니다. 우
리 현지사만큼 중음계에 대해서 잘 아는 데가 없습니
다. 사람이 비명에 죽으면 중음계에 떨어지거든 요.

명부에 못 들어갑니다. 여러분 하도 많이 법문 들 어서
여러분 잘 아실텐데. 오늘 처음 오신 분은 잘 모르실거요.
이 중음계는 춥고, 배고프고, 공포에 떱니다.

그것이 속성입니다. 지옥도 못갔다고 하지요. 그렇게
표현할 정도로 고통스럽습니다. 지금 고통스럽게 사는
사람도 지옥, 아귀, 축생의 고통에 비하면 천상이요, 천
상락을 누리고 있어.

그러니까 지장보살은요 지옥중생 한 사람이라도 남아
있는 한 나는 불과를 증하지 않으리라. 인행시에 서원
을 그렇게 세웠어요. 그러나 지장보살은 그 후에 완벽
한 불과를 이루셨습니다.

그걸 알아야 돼. 그래서 지옥에 떨어지면 아귀나 축생
계에 반드시 오게 되거든요. 그 무서운 형벌의 세계에
서 벗어나게끔 우리 자손들이, 아들,딸들이 해주어야
해요. 요게 정말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역설합니다.

그 육신을 벗어나면 우리가요, 몸뚱이를 벗어나면 보
고 듣고 생각하는 것이 사람보다도 몇 십 배 예민해요.

그런데 모든거리와 골목과 마을과 시장과 도살장과 무덤,
심지어는 강, 산천, 나무까지도 이 중음신들이 의지하고
살아요.

그래서 해가 넘어가면 음산한 이슬비가 오는 그런 날
어둑어둑할 때 죄를 짓고 밖에 나가면 안 돼요. 죄를
짓지 않고 덕스럽고 착한 일을 하게 되면 그 귀신도,
하늘신이 도와줘요.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되요.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 그 귀
신도, 하늘신이 도와줘요.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되요. 그
리고 아버지 어머니 정자와 난자가 아무리 합해져도 아뢰
야식의 영혼체가 들어가지않으면 사람이 안 됩니다.


출처/2007.1.1.월(음11.13) 큰스님 부산 법회중에서





육도

육도가 있습니다. 분명히,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수라, 천상세계가 있습니다. 육도가. 여섯 세계가. 사람
이 죽으면 그걸 윤회를 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윤회를하는데 이걸 강조를 해야 되요.
우리 불자들을, 영혼을 구원하려면, 지금 법문은 그런
법문을 하는 곳이 없어요.

자신이 없으니까. 모르니까 그래요. 전번에 내가 말
했지요. 그래서 하늘 사람들이 복을 마음대로 쓰는 것
을 보고 보살들이 보고, 저 하늘사람은 얼마 못가서 타
락하겠구나. 사람으로 떨어지겠구나.

거기 가서 법문을해주는 거요. 법문을 해줘요. 보살들
이요. 육도는 분명히 있고 육도윤회는 사실입니다. 그
래서 육도윤회에 대한 법문, 인과에 대한 법문을 많이
해 줘야 합니다.

실감 나게 해줘야 됩니다. 지옥법문 해 줘야 되고, 축
생, 아수라 법문 해줘야 되고 그럽니다. 윤회법문 해줘
야 돼는 거요. 그런데 지금 지옥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정신적인 고통으로 시달리면 그 자리가 지옥이다
그럽니다. 마음밖에 극락이 있는 것이 아니다. 즐겁고
행복할 때 그때야 말로 거기가 극락이다.

지금 이렇게 스님들이 법문을 하는데 이것은 하나밖에
모르는 이야기에요. 지옥이 분명히 있고, 성중하늘을
넘어서 저기 극락정토가 있어요, 부처님도 계시고, 극
락세계, 지옥, 이걸 긍정해 주고 우리는 지옥 아귀 축
생으로 떨어지면 안 되니까.

여러분 절대 그런 나쁜 짓 하지 마시고 착하게 사시오.
인과법문을 해 줘야되. 윤회법문을 해줘야 되는 것이요.
하늘 보살들은 그 법문을 해줘요. 욕계 하늘 천인들한테.




2007.1.1.월(음11.13) 큰스님 부산 법회중에서






죽으면 어디로 가나

 죽으면 어디로 가나


이제 사람이 죽으면은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좀 잘 아시지요. 그러나 라디오를 시청하는 청취하는 분들은 아주 모릅니다. 정말 모릅니다. 자 말씀 드리겠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가는 곳이 있습니다. 가는 곳이 있는데 집착이 강한 사람은 명부를 못 들어 갑니다. 집착이 강한 사람은 명부를 못 들어 갑니다. 집착 때문에 이 세상 그리고 자기 자식 애인 손주 돈 등등 집착이 강한 사람은 명부에 못 들어 갑니다. 그 다음 자살 한 사람은 명부에 못 들어갑니다.

자기 명을 다 살아야지 살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은 결코 명부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명부가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확실히 저승사자가 와서 잡아간답니다. 이것은 맞는 말입니다. 여기서부터 축생이나 지옥에서 온 사람들은 이제 웃을 거에요.

이제부터 비웃습니다. 어디가 죽어버리면 끊나고 묘지를 가보면은 허망하더라. 공동묘지가 가봐라 뭐가 있더냐 그래가지고 내 법문을 비아냥 거립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정말 불쌍한 사람들이지요. 이 세상 물질만 알고 저 내면세계는 전혀 모르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짖는 것이 업이지요. 그래서 다시 악도로 악도의 업을 지어서 악도로 갑니다.

20세기에 들어서 주로 일부 과학자들에 의해서 사람이 죽으면은 아주 죽는 것이 아니고 영혼은 죽는 것이 아니고 영혼. 죽는 것이 아니고 다시 전생(轉生)을 하더라. 전생. 생을 바꾼다. 

전생을 하더라 하는 결론을 냈습니다. 주로 근사경험(近死經驗)이라고 해서 의료계에 종사하는 의학자들이 많이 이 사례를 수집했습니다. 사람이 죽어서 다시 살아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의사가 진단을 해서 이건 완전히 사망입니다 하고 진단이 끊났어요. 그런데 하루 이틀 삼일 만에 살아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요런 사례를 수천 건 이 사례를 모집한 어느 미국의 의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한테 가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 온 동안에 무엇을 경험했느냐 하고 녹취해보니까 공통됩니다 거의.

그 다음. 대게 두서너 살 된 아이들에게 나타나는데요 전생 기억을 하는 수가 있습니다. 사람이 다시 사람으로 오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대게 하나 천의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그 어린이는 두 세 네살 될 때 말이 이제 말을 할 수 있을 때 부모님들이 황당할 정도로 이상한 말을 합니다. 요건 우리 집이 아니라고. 내 집은 저기 부산에 있다 요런다든지.

우리 마누라는 이름이 머다 한다고 한다든지 여러분 어떻게 받아 들이겠습니까 황당하지. 그러면 메모를 해놓았어요. 이렇게 해서 수천 건을 사례를 수집해가지고 과학적인 방법에 의해서 증명을 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완전히 죽는 것이 아니구나 다시 사람으로도 오구나. 저기 미국에 스티븐스라고 하는 교수가 이천 건 자료를 수집했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 차시환생(借屍還生) 이라는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차시환생 뭐냐. 중국에 상동성에서 일어난 일인데 죽은 지 3일만에 관속에서 소리가 납니다. 입관을 했는데 죽은 지 3일이 됐는데. 그래서 우리 아버지 살았다 해가지고 관을 열어보니까 살아나. 

그래 얼마나 부인하고 자식이 반가워 합니까. 근데 말을 못해. 전혀 말을 못해. 몸뚱이는 아버지인데 말을 못해. 그래서 종이를 갖다 달라고 하니까 종이를 갖다 줬어. 

펜을 갖다 달라고 하니 그야 몸짓으로 하는 거지 펜을 갖다 주니까 자기는 베트남 사람 안남인이라 그거요 이름은 유건중이라고 합니다. 유건중. 죽은 사람은 최천선이야. 여러분 아시겠지요.

그래서 이 북경대학교 조사단이 현지를 가서 확인을 했답니다. 그랬더니 맞어요. 유건중의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자기 자식이 홍열 무슨 병 있잖아요. 그래서 여름인데 지금같이 삼복더위인데 두터운 두터운 이불을 얼굴까지 그냥 덮어 씌워. 어떻게 추워라고 합니다. 

그래서 질식했다는. 질식사했어. 질식사해서 인제 저승 저쪽을 가가지고 오니까 자기 송장은 땅속으로 들어가버렸어. 안되죠.

그러니까 찾아 다니는 거요 막 죽은 송장을. 막 죽은 송장을. 3일된 최천선이라는 송장에 쏙 들어가버렸어. 그러니까 몸뚱이는 아버지지만 실은 유건중이라. 안남사람. 베트남하고 중국하고는 한자를 같이 씁니다. 그래서 이 사건이 대단히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건입니다. 

더러 더러 있습니다 그런데. 더러 더러 있습니다. 더러 더러 있는데 내가 정확한 메모를 한 것이 없네요.

그 다음에 전생회귀라는 것이 있습니다. 연령역행이라고 하지요. 최면술에 의해서. 최면도 깊은 최면 1단 2단 3단계가 있습니다. 3단계까지 깊이 넣어서 연령역행 시간역행을 하면은 전생을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사건으로는 1959년에 ‘브라이드머피를 찾아서’라고 하는 책이 미국 번스타인이라고 하는 최면학자에 의해서 쓰여져 있는데 그건 대단히 참 재미있는 사건인데 이것이 미국 98개 신문 신문에 대서특필이 돼 가지고 전세계가 놀랐습니다. 

요건 뭐냐 하면은 최면을 통해서 전생 전생 전생 4생까지 소급해서 봤다는 기록도 있고 칠생 전까지 소급해서 봤다는 기록이 있는데 바로 전생 그것은 대부분 상당히 맞았다 그거요. 

과학적으로 검증해보니까. 현지에 파견 해보니까 학자들 조사단 그래서 여러분 사람이 죽으면은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인생이란 무엇이냐 죽음이란 무엇이냐에 대해서 정말 역사가 시작한 이래로 많은 관심 있는 의식 있는 사람들이 거기에 대해서 골몰히 연구를 했습니다. 

그리스 학자 중에서 플라톤이나 피타고라스 같은 사람들은 영혼은 죽지 않고 전생은 전생한다 까지 알았습니다 지금부터 그러니까 2천 몇 백년전이지요. 유명한 사람들 아닙니까. 세계적인 유명한 지식인들이 많이 전생을 믿었습니다. 

우리 불교는 전생이 문제가 아니라 육도에 윤회전생 하는 것까지 알아버렸습니다. 육도 더 깊이 알았지요. 육도 죽으면 지옥 축생 아귀 인간 수라 천상 여섯 세계를 윤회하더라 하는 것까지 아는 종교가 우리 불교하고 힌두에 인도에서 발상한 힌두교하고 브라만교하고 자이나교입니다. 이 세 종교는 알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 현지사는 그보다 더 알고 있습니다. 무엇을 알고 있느냐. 윤회안 육도를 넘어서 윤회밖 세상을 잘 알고 있습니다. 깨달아가지고 보림을 마치면 아라한입니다. 윤회를 벗어나게 되요. 

윤회를 벗어나는 세계를 성중하늘이라고 합니다 내 책에서요. 성중하늘을 더 가면 거기는 적멸의 세계요 빛의 세계요. 더 가면은 도솔정토가 있어요. 도솔천 내원궁이라는데 도솔하늘이 아니오. 도솔천 내원세계가 있어요. 거기는 불모가 가는 불부가 가는 정토입니다. 

붓다를 낸 부모 붓다를 낸 공덕으로 그 하늘 갑니다. 거긴 윤회 밖입니다.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영원히 여기 안 올 라면 안 올 수 있습니다 하늘에서 하늘이라고 하는 곳이니까. 

그리고 거기서도 더 가면은 부처님께 시중하는 천녀의 정토가 있습니다. 거기서 더 가면 극락정토가 있습니다. 

거기서 더 가면 약사정토가 있고 약사정토에서 마지막으로 사람을 몸을 받아서 붓다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붓다들이 계시는 무아속 절대 세계가 있다는 것.

나쁜 사람이 죽으면은 머리에서부터 심장을 향해서 식어갑니다 여러분 몸이. 송장이요. 그리고 정말 훌륭한 세상에 환생할 정도로 착하게 산 사람들은 심장부터 식어간다는 것을 알아 두십시오. 심장부터. 모든 것은 자기가 지은 업에 따라서 몸을 받습니다. 

모든 것은 모든 사람들은요 자기가 지은 업에 따라서 몸을 받아간다는 것. 착하게 살았으면 착한 곳으로 갑니다. 죄업을 많이 지으면은 지옥 아귀 축생으로 떨어지는데 내가 볼 때는 많은 사람들이 명부에도 못 들어가더라는 것. 

명부에도 못 들어간 사람은 전생에 업이 지중합니다. 이제 천도해보면 그 사람들은 거의 중지옥을 가더라고요. 중지옥도 세 층이 있습니다.

근데 그곳으로 가더라고요. 그리고 지옥을 거쳐서 축생으로 옵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일이지만 특별한 예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마구 죽어서 뱀이 되고 구렁이가 된 사람이 있습니다.

 저번에 천도재를 해보니까 자기 집이 자기 집 사정을 듣기 전에 전부 수배가 끝났지요 부처님들이. 수배가 딱 끝났는데 아드님이 어디로 가서 갔나 하고 굉장히 알고 싶어해.

그 사람이 왔으면 내가 미안한 데. 가르켜 달라고 했는데 안 가르켜 주었거든. 말 할 수가 없어. 뱀이 되었기 때문에. 20년 전에 간질을 앓다가 죽었어. 뱀이 됐더라구요. 

또 조상 중에 구렁이가 된 조상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 집은 문제가 있다고 했는데 내중에 천도재를 하러 와서 물어보니까 자기 집이 집에 뱀이 구렁이가 그렇게 많이 나온다 그래. 그래서 천도한다는 거요. 그 친구들이 온 겁니다.



2006년 06월 28일 자재만현큰스님 춘천현지사 정기법회





인간의 실체 그리고 육도윤회하는 업덩어리 중생

 인간의 실체 그리고 육도윤회하는 업덩어리 중생



(1) 영체는 인간의 실체본체이며 윤회의 주체
인간의 실체는무엇일까요? 이 문제 대해서도
동서고금을 통해 많은 문제 제기와 다양한 논의와 논란이
있어왔습니다. 힌두교에서 비교적 정답에 가까운 해답을 내
놓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 인간의 행위 주체로서의 실체본체와
존재 이전의 차원인 본성의 문제를 혼동하고 있는 것 같습
니다. 여기 영산불교에서 한 점 의혹 없이 인간의 실체를
밝혀 드립니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육체와 영체영혼체로 되어 있습니다.
육체는 지수화풍의 4대 요소로 이루어져 있고 영체는 4개
로 겹쳐진 상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영체의 집이 바로 육
체라고 보면 됩니다.

사람이 죽으면 영체는 육신으로 부터 빠져나오게 됩니다.
착하게 산 사람이 죽으면 심장부터 머리 쭉으로 식어갑니
다. 반대로 악업을 지은 사람은 머리에서부터 심장 쪽으로
식어갑니다. 영체는 우리 일반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성자의 혜안으로는 볼 수 있습니다.

영체는 일종의 에너지덩어리로서, 의식과 기억을 가진 생
명체입니다. 원자핵 같은 소립자 보다 더 작은 초미립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입자와 파동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파동의 성질로 보면 영체는 파장이 극히 짧고 진동수가 극
히 많은 전자파 에너지의 형태를 띤 생명체인 것입니다.

네 개의 영체는 계단식으로 겹친 형태로 존재하는데 가장
심층부의 질적 수준이 높은 영체부터 차례로 1,2, 3, 4번 영
체로 부르고자 합니다. 

1번 영체가 가장 고급영체이고, 4번
이 가장 저급 영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번 영체는 감정의 영역으로서, 육체와 다른 영체를
연결하는 안테나 구실을 합니다. 저승에 못 들어가고 중음
계에서 떠도는 무주고혼의 주체로서 죽어 명부에 들어가게
되면 죽어버립니다. 음기가 성한 무당이나 천안을 얻은 아
라한 이상 성자가 봅니다. 에테르체Ether라고도 합니다.

3번 영체는 4번 영체보다 더 미세한 입자로 이루어져 있
으며 윤회세계의 주체가 됩니다. 아스트랄체Astral라고도 합
니다. 2번 영체는 윤회를 벗어난 성중해탈세계의 주체가 되
어 살아갑니다. 멘탈체Mental라고도 합니다.

가장 심층부에 있는 1번 영체는 보살8지 이상이 가는 극락
정토의 주체가 됩니다. 코잘체Causal라고도 합니다. 붓다는
네 개의 영체 모두가 빛덩어리가 되어 절대계의 불신과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합일됩니다. 아라한과나 보살과를 이루
고 입적하는 성자가 4번 영체를 버리고 가는 것과는 대조
적입니다.

붓다와 보살은 영체가 몸 밖으로 나올 때 앞쪽에서 나오
고 앞쪽으로 들어가지만, 아라한이나 중생의 영체는 옆쪽에
서 나오고 옆쪽으로 들어갑니다.

여기서 또 중대한 선언을 합니다. 그 동안 불교계에서 많
은 논란이 되어왔던 윤회의 주체에 대해 결론을 내려드립
니다. 영체 중 1, 2, 3번 영체는 영원히 죽지 않고 윤회의
주체가 되고, 동시에 해탈세계의 주체가 됩니다.

업덩어리가 붙어 있는 영체는 윤회의 주체가 되고, 업이
떨어져 나간 청정한 영체는 해탈세계의 주체가 되는 것입
니다. 이 3개의 영체 중 가장 내면의 고급 영체인 1번 영
체가 바로 나의 실체, 나의 본체입니다.



(2) 스스로 윤회의 업덩어리를 짊어진 중생

이 몸은 매미의 허물과 같이 죽어 없어지는 '거
짓 나'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거짓 나'에게 속아 한평
생 속박 속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100년도 못살고 없어
질 이 몸뚱이에 온갖 정성을 다 바쳐 호사시키려고 애쓰고
있는 것입니다.

탐내는 마음,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 이 탐 진
치의 세 마리 독사가 죄를 짓는 주범입니다. 그 중에서도
탐심이 왕독사입니다.

살생을 하고, 도적질을 하고, 사음을 하고, 망녕된 말을
하는 등 온갖 악행을 저지르게 만듭니다. 심지어 부모에
대한 패륜과 불교, 불 법 승 삼보에 대한 훼방과 능멸 등
용서 받을 수 없는 증죄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몸이 원하
는 온갖 욕구를 다 채워줘야 되니까 많은 업을 짓게 되고,
이 업은 바로 윤회의 원인이 됩니다.

중생은 이 죄업을 다겁생 동안 지어왔습니다. 자기 스스
로가 자기를 윤회의 수레바퀴를 타게 만듭니다.

중생의 어리석음은 극을 치닫습니다. 100년도 못
살고 배반할 이 몸뚱이에 대해서는 그렇게 많은 죄업을 지
어 가면서까지 호강시키려고 하면서, 영원히 죽지 않는, 우
리의 실체인 영체에 대해서는 그 존재조차 인정하지 않으
려고 합니다. 설사 인정하더라도 무관심하게 내버려두고 전
혀 돌보지를 안습니다. 그러면 영체는 어떻게 될까요?

사람이 살아가면서 죄를 짓고 업을 지으면 모두 영체에
반영이 됩니다. 몸에도 떼가 있듯이 영체에도 업의 떼가 쌓
이게 됩니다. 온갖 더러운 죄업의 쓰레기며 오물들이 덕지
덕지 달라붙습니다. 몸의 떼는 보통 자주자주 씻어주지만
게으른 거지들처럼 안 씻고 오래두면 떼가 굳어 단단해지
고 나중에는 피부의 일부를 이루게 됩니다. 그래서 벗셔 내
려면 피를 흘리는 고통을 감수해야 합니다.

영체의 떼도 마찬가지입니다. 탐욕과 집착으로 죄업을 지
어 영체의떼가 자꾸 자꾸 쌓이다 보면 굳어지고 단단해져
영체의 일부를 이루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업덩어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여러분이 이 업덩어리를 떼어
내는 것은 육체가 피를 흘리는 고통과는 비교도 안 되는
훨씬 큰 고통을 받아야 됩니다.

그 하나가 삼악도라는 고통의 세계에 가서 과보를 청산
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면 과보를 받은 만큼만 업덩이가 줄
어들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현생에서 수행하여 업장을 씻
어내는 방법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부처님의 '업장소멸'이라
는 우주적 구원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런데 육체의 때는 평생 한 번도 안 씻어봤자 기껏해야
100년 분도 안 쌓이지만 영체의 때는 수억겁을 윤회전생하
면서 수천만생의 죄업이 쌓이고 쌓여 중생은 태산만한, 지
구만한 업덩어리를 달고 다닙니다. 이 업력으로 중생은 육
도윤회를 끝없이 반복하는 것입니다. 이 무거운 업덩어리를
달고 어찌 윤회의 수레바퀴를 벗어날 생각을 할 수 있겠습
니까? 이것이 우리 중생들의 실상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요해






윤회전생~

 윤회전생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수행자들과
구도자들 그리고 불제자들이 숙지해야 할 사항을 요약 정리해
서 간명하게 정문일침 형식으로 큰스님이 사자후하신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윤회와 전생 이야기는 한 번 더
강조해야 하고 그 중요성에 대해서 재삼 신도들과 수행자 그리
고 구도자들에게 환기시켜 주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누차 사
자후를 설하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윤회전생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이며, 윤회전
생의 존재는 수행자와 구도자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발심
할 수 있도록 해줌으로써 좋은 가르침이 됩니다. 그리고 윤회
가 있기 대문에 수행이 필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
다. 

가장 기초적인 진리의 가르침을 너무 무시하거나 도
외시하는 우를 범하면 결코 높은 경지에 이를 수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큰스님께서는 불교의 기초적 교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를 거듭 강조하고 계심을 명료히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미혹한 구도자들은 큰스님을 비방하지 말고, 불교의 기본 교
리에 충실하는 지혜로운 식견을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기초가
부실한 상태에서 그 위의 경지에 오를 수 있겠습니까? 가령 석
탑의 맨 아래층을 잘못 쌓으면 위층을 쌓아올릴 수 없다는 것
을 알아야 합니다. 

큰스님께서는 석가모니부처님의 기본 교리가
매우 중요함을 깨닫고 이를 자비로우신 마음으로 중생들과 구
도자 그리고 불제자들에게 설파한 것이라는 사실을 명지하고
명각해야 할 것입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서 큰스님은 윤회 전생의 존재가
분명히 있음을 확인해 주는 동시에 죄를 지으면 죄업을 받으
며, 선한 일을 하면 선한 업을 받게 된다는 가르침을 사자후하
고 계십니다. 우리가 행도한 행위와 말들 그리고 생각들 하나
하나가 파장으로 이루어져 정신세계의 아카샤 레코드에 기록된
다고 서양의 영성 세계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아카샤 레코드
란 무의식 세계를 기록해 두는 공간계의 업식기록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윤회 전생을 확철히 깨우쳐 알아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믿어
야 합니다. 저 또한 윤회 전생을 믿지 못해서 수행 기간 동안
방황한 적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죄업이 많으면 이러한
정신적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고 선근 부족으로 나쁜 
인연과 자주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윤회전생, 아카샤 레코드 등의 실존적 유무를 떠나서 유명한 
수학자이자 철학자 파스칼이 그의 서적에서 "신이 비록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모르지만 나는 착하게 살겠다. 그래야 죽어서도 
밑져야 본전이 되기 때문이다. 

즉 신이 없어도 나는 착하게 산 것으로 그만이고
신이 있다면 그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철학
자의 양심을 밝힌 젓처럼 우리는 바르게 사라야 할 것입니다.

공부를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른 마음으로
부처님을 믿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는 믿음의 중요성을 큰스님의 자상하고도 엄중한 필치
로 여러 번 역설하고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윤회로 이루어진 사바세계
는 부정적인 에너지와 부정적 의식, 다시 말해서 저급한 욕망
과 잘못된 사유들이 존재하는 한 중생들은 사바세계를 맴
돌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올바른 불제자라면 어떻게 해서
든지 윤회를 벗어나기 위해서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부정적
기운을 모두 몰아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삿된 기운을 모두 몰아내도록 노력할 때 비로소 윤회의 끈을 끊고 
사바세계로부터 탈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큰스님께서 "삿된 기운을 제거하는 것이 수행이다."라고
사자후하신 말씀에서 얻은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큰스님께서 설
하신 팔정도를 통해 깨달음을 증득하게 된다는 말씀은
불제자들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해 줍니다. 

즉 팔정도가 구도자들을 미혹하는 사바세계를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로 이어준 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윤회 공간은 부정적 기운이 많고 큰스님 말씀대로 유혹의
늪이 많습니다. 따라서 늪에 빠지게 되면 부정적 의식에 잠식
되거나 부정적 영향에 빠져 무한 반복적으로 고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무한 반복이란'에서 나온 말로 비유하자면 '뫼비우스
의 띠'처럼 띠의 양끝이 서로 반대편으로 연결되어 있어 그 위를
걷는 개미는 영원히 그 띠를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윤회 세계라는 사바세계도 '뫼비우스의 띠'와 마찬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자세히 목도하면 매우 무서운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 윤회를 필사적인 칭명염불과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끊어버리는 것이 무엇보다도 절실히 불제자들에게
요구됩니다. 

뫼비우스의 띠를 끊어야 합니다. 그래야 윤회로부터
벗어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자신의 모든 것을 올바른 존재자들에게 바치는 자세가 필요합
니다.

윤회 시스템에서는 자신이 삿된 의식으로 모은 물건이 많을
수록 업이 많은 것으로 압니다. 따라서 윤회에서 탈출하기 위
해서는 삿된 마음으로 얻은 재물과 재산을 가급적 적게 소유하
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소유를 통해서 참다운 자신의 존재성을
찾고 그 후 다시 소유의 세계로 접어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렇게 될 때 존재성을 찾은 후의 소유는 진실된 무소유, 즉 순
수한 무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큰스님께서 책 전체를 통해서 윤회 전생을 많은 페이지를 할
애하여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
다. 그리고 윤회 전생으로부터 해탈하기 위해서는 깨달음 너머
의 세계와 불보살님의 세계에 대한 믿음이 중요합니다. 

윤회도 사실이며 불보살님의 가피가 없으면 윤회에서 빠져나오기가 
지극히 어렵다는 큰스님의 말씀도 사실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윤회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
서 설하고 있는 가르침들을 모두 잘 소화하고 실재로 경험적으
로 체득하여 수행 정진해 나가야할 것입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의 에센셜 포르테(본질적 강점)는 바
로 불교의 총체적 수행 체계와 심오한 세계관을 폭넓게 아우르
면서 불제자가 이해하기 쉽게 서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출처/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






육도윤회

 육도의 세계


마치 매미가 허물을 벗고 빠져나가는 놈이 진짜 매미이듯, 우리 사람도 죽으면 몸뚱이라는 허물을 버리고 자기의 영혼이 빠져나갑니다. 이 영혼은 몸뚱이가 있어 영혼체라 합니다.

영혼체는 네 개의 영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4번 영체는 자기 몸뚱이의 복사체입니다. 명부에 들지 못한 이들은 자기의 몸뚱이에서 빠져나가 중음계에 떠돕니다. 

죽어서 바로 명부에 들어간 이들은 영체의 껍질 부분4번 영체 겉부분_영체에 대한 법설은 다음 장에서 한다을 이승에다 버리고 사자를 따라 저승에 들어가 49일간 대기해 있습니다. 그 사이 열시왕의 논죄를 받습니다.

이 49일간을 중유中有라 합니다. 위에서 말한 명부에 들지 못하고 떠도는 중음中陰과는 다릅니다. 중유와 중음세계는 엄연히 다릅니다. 논죄를 받고 판결대로 육도六道에 가서 나게 됩니다.

대개 사람들은 업을 짓고 살기 때문에 지옥에 갑니다. 자신이나 남의 삶을 파괴한 악행, 그리고 부모님께 불효하고, 부처님의 교법Dharma을 비방하는 등 죄업을 지으면 지옥에 떨어집니다.

지옥 벌은 빙한氷寒과 화염火炎, 기타…… 로 가해옵니다. 화탕지옥, 흑암지옥, 독사지옥, 도산지옥, 분뇨지옥 등……. 모두 있습니다.

한 가지 벌을 받는 지옥도 이 사바세계만합니다. 중지옥 이상의 무서운 지옥에서 형벌을 받고 있는 장면을 보면 성자라도 너무 끔찍하여 자지러지고 까무러칠 정도입니다.

불바다 지옥,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뗄 때마다 괴로워하는 죄수를 보면 간이 다 녹아질 지경입니다. 물 없는 사막, 태양이 작열하는 열 지옥을 걸어가는 죄수, 입이 다 마르고 목이 탑니다. 

냉동실의 냉각기 바람의 온도가 영하 수십 도로 내려갑니다. 벌거벗은 몸뚱이가 순간 얼어붙어 괴로움에 괴성을 지르며 숨이 넘어갑니다.

날카로운 대꼬챙이가 열 손가락의 손톱 사이를 서서히 파고듭니다. 지네지옥에서는 지네가 사람 몸뚱이의 구멍구멍마다 파고들어 물어뜯습니다. 이하 중략

이것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보는 이는 오장육부가 다 끊어지는 듯합니다.

형벌의 무서운 정도와 지옥 수명을 기준으로 나누자면 극무간지옥, 무간지옥, 중지옥, 하지옥, 대기지옥으로 구분하고 이들 다섯 지옥마다 각 지옥의 형벌 수준에 해당하는 지옥이 각기 수백이 됩니다.

《지장보살본원경》의 지옥 수는 그 일부라고 어느 날 대세지보살께서 법문해주셨습니다.

지옥의 형벌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운 것이 사실입니다. 가련하고 불쌍해서 볼 수 없습니다. 지옥 중생은 고통으로 인해 넋이 나가 자기가 누군지도 모릅니다. 고통이 시작되면 자지러질 듯 놀라고, 그 질려있는 모습은 차마 눈뜨곤 볼 수 없습니다.

장이 터져버릴 듯하여 보는 자가 오히려 가슴 조여 두 번 다시 보기 무섭습니다. 지옥의 벌은 옥졸은 있으나 자동으로 집행됩니다. 지옥의 공기는 탁합니다. 

안개 낀 날처럼 음산하고 맑지 않습니다. 낮과 밤도 없습니다. 항상 희미할 뿐입니다. 지은 죄업이 많으면 많은 지옥을 돕니다. 지옥에서 받는 벌의 아픔은 몸뚱이가 고문 받을 때보다 더하면 더하지 덜할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나의 진짜 몸, 영체는 거짓 몸뚱이를 벗고 빠져나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옥 중생은 고통으로 혼절하기 때문에 1초도 참회할 정신적인 여유가 없습니다. 지옥문에는 옥졸 수백 명이 밀어서 여는 철대문도 있고 작은 문도 있습니다. 

에스컬레이터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지장보살은 지옥을 관장하십니다. 명령은 10시왕으로 그것이 판관에게로 옥사장 앞으로 옥졸로 하달됩니다.

무간지옥의 죄수는 우리 교주 불 세존의 하명Order 없인 구제가 안 됩니다. 붓다의 경지에 올라야 지옥을 보고, 또 거기에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장보살의 위신력으로 꿈 속에서나 염불 공부 중에 지옥의 한 장면을 언뜻 볼 수도 있습니다.

지옥의 벌을 다 받고 나온 이들은 축생이나 아귀세계로 떨어져 그 곳의 업보를 채웁니다.
항상 굶주림과 갈증으로 극심한 고통을 당하는 아귀계가 있습니다. 간탐, 진심瞋心과 질투가 아귀세계에 나는 주원인입니다. 배는 엄청나게 큰데 목구멍은 너무나 작습니다. 물을 마셔도 속에 들어가면 불로 변해버린다 합니다.

그리고 주로 바람직하지 않은 성행위로, 또한 사견邪見과 우치愚癡의 업으로 말미암아 태어나는 축생, 동물세계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영체靈體가 축생류 전부를 대상으로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포유류에는 영체가 들어갑니다. 열두 디에 속하는 동물에는 모두 들어갑니다. 조류 중에서 비둘기, 독수리, 학, 꿩, 제비, 공작, 앵무새, 구관조, 까치, 까마귀는 윤회의 대상에 들어갑니다.

파충류로는 열두 띠에 드는 뱀 외에 거북이가 들어가고, 양서류인 두꺼비에도 영체가 들어갑니다. 어류로는 상어, 잉어에 영체가 들어갑니다. 물개, 물표범, 고래는 물에 살지만 어류가 아니고 포유류이기 때문에 영체가 들어갑니다.

곤충류에는 들지 못합니다. 엄밀히 말해서 영체가 들어가는 축생류만이 불성이 있다고 봐야 합니다.

축생의 보를 다 받고 나서 다시 인간 몸을 받아오는 것이 정석입니다. 사람 따라 축생보를 먼저 받고, 지옥에 가는 이도 있습니다. 사람 사람마다 지은 업은 명부에서 논죄합니다.

무슨 지옥 몇 겁 또는 다른 지옥 몇 겁, 축생보로 구렁이 몇 생 다른 짐승으로 몇 십 생, 아귀보로 몇 겁, 이렇게 지은 업대로 산계소작算計所作하여 컴퓨터 이상으로 정죄定罪가 됩니다. 그럼 추호도 사私가 없이 집행됩니다.

우주 공간 안의 수많은 별나라에는 기체 인간들 소위 외계인이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죄업의 원인이 되고 근본이 되는 육신이라는 것이 없고 다만 기 영혼체로 살기 때문에 큰 죄를 짓지도 않고, 크게 착한 일도 하지 않습니다.

사는 것이 비교적 안정돼 있어서 악업이 없고 마장이 적어 부처님 공부도 잘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영적 진화가 느립니다. 가끔 외계인이 인간 몸을 받아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수라阿修羅의 세계도 실제로 있습니다. 1하늘 하下급의 별도의 하늘입니다. 복을 많이 지었으나 시기·질투심이 있어 싸우기를 좋아합니다. 제석천왕에게 여자를 달라고 싸우게 됩니다. 편싸움으로 부상을 크게 입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죽지는 않습니다. 영체는 죽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하늘세계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립니다.
하늘도 크게는 여섯 하늘로 나누고 자세하게는 54품의 구분이 있습니다. 

하늘 천국도 54하늘이나 된다는 말입니다. 오계五戒·십선十善으로 산 이들이 갑니다.

사람이 죽어 하늘에 갈 때는 3번 영체로 가 납니다. 3번 영체의 설명은 다음 장에서 하겠습니다. 하늘천상, 천당은 올라갈수록 수명도 길어지고, 복 수용도 더 합니다.
하늘의 복이 다하면 인간으로 오게 됩니다.

죄업도 지었지만 착한 일도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럴 경우에는 먼저 지옥에 가서 업보를 다 받고 하늘에 오르기도 합니다. 삼계·육도를 윤회하는 한 죽음을 피할 방법이 없습니다. 하늘 꼭대기에 올라간다 할지라도, 바다 속 들어가거나 산을 쪼개고 그 가운데 몸을 숨긴다 할지라도 죽음은 반드시 그 자를 찾아냅니다.

중생은 윤회생사합니다. 육도의 윤회생사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윤회를 벗어난 아라한·보살·붓다의 세계, 여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위로 1하늘을 지나면 제석천왕의 거소가 있고, 사천왕의 거소도 있습니다. 

제석천왕은 1하늘~6하늘 사람들을 관장합니다. 불격을 갖춘 최상수보살입니다. 바로 위에 성중하늘도 셋으로 자세히는 27품으로 나눔 구분합니다. 

성중하늘을 여기서 언급하는 이유는 성자의 반열에 든 이들이라 마음 공부를 할 줄 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이들은 그래서 거의 퇴전하지 않고 윗 성중하늘로 오릅니다. 성중하늘에 태어나려면 착하게 살고, 불법 공부 잘해서 선정에 들 수 있어야 합니다.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이 가는 세계입니다. 성자의 반열에 듭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Ⅱ≫ 13장 사람이 죽으면 어찌되나-불교의 생사관
광명 만덕    자재 만현 저






윤회로 부터 벗어나라 / 중음의세계

 윤회로 부터 벗어나라!


금생에 불법을 만나 생사를 벗어나고 윤회를 벗어나려면 시공을 초월
위에서 강조했듯 몸과 마음이 청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중아라한이
됩니다.

나아가 성중하늘에서 와서 보살을 목표로 수행하는 대수행인들
은 고기와 술, 담배도 멀리해야 합니다. 몸에 이런 이물질이 들어
오면 탐진치 삼독이 정화되지 않습니다. 정신이 혼미해지고 탁해
져서 공부가 되지 않고 청정한 정토에 날 수 없습니다.

물론 6하늘이나 5하늘 정도에 태어나고자 하면 술, 고기, 담배
피우는 정도는 상관없습니다. 부부생활도 좋습니다. 그러나 이 경
우에도 개나 뱀의 고기만큼은 절대로 먹는 걸 금해야 합니다.
출가자와 재가 사부중들에게 말씀드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죄업을 지어 삼악도에 갑니다. 그 중 절반 정도는
지옥에도 못가고 중천을 떠도는 무고혼이 됩니다. 처자와 재물에
대한 미련과 착심 때문입니다.

고혼이 되면 너무 춥고 배고픕니다. 효성이 지극한 자손이 큰스
님을 만나 천도해주지 않는 이상, 수백 년 혹은 그 이상이 지나도
록 중음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지옥이나 짐승세계에 난다는 경고를 남의 일쯤으로 생각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 세계의 고통을 생각하지 않고 삼
악도로 떨어진다는 큰스님 말씀도 새겨듣지 않습니다. '그런 게
어디 있느냐' 는 식입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다. 삼악도의 세계가 있고, 천상도 있습니
다. 진실로 있습니다!
육도의 세계가 실재하고 중생들이 삼세를 통해서 윤회전생한다
는 이 말씀을 거듭거듭 힘주어 말씀드립니다. 

아직도 지옥, 축생종자들은 의심하고 이 진실의 외침을 비웃는 분도 
계시겠지만 순박하고 믿음 있는 불자들이라면 나의 법문을 경청하시리라 
믿습니다.

허물을 벗고 날아가는 매미가 진짜이듯, 이 거짓 몸뚱이를 벗어
던지고 빠져나가는 영혼체가 진짜입니다. 오히려 그 영체가 느끼
는 감도가 이 육신의 그것보다 더욱 생생합니다. 

지옥이나 아귀세계로 떨어진 이 영제가 고통을 받을 뿐 아니라 
배고픔도 느낍니다. 

이 거짓 몸뚱이가 고문당할 때의 고통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덜 하지 않습니다.

죽어서 지옥이나 짐승이 될 때 우리의 4번 영체가 짐승의 뱃속
으로, 그 악도로 가는 것입니다. 4번 영체는 우리 몸뚱이와 털구멍
하나까지도 다르지 않습니다. 꼬부랑 할머니가 죽어 지옥으로
떨어지면 그 4번 영체는 꼬부랑 할머니 그대로 입니다. 살았을 때의
기억이 그대로 영혼체로 옮겨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코 악도로 가면 안 됩니다. 그러려면 죄를 짓지 마
십시오. 절대로 부처님과 법을 능멸하거나 모독해선 안 됩니다. 그리
고 5무간업, 4바라이죄, 10악업을 차례로 경계해야 합니다.


불교_오도증입을 요구

불교는 실천을 요구합니다. 아무리 학식이 있고 변재라 해도 실천
수행이 없으면 안 됩니다. 세계적인 대석학이라 해도 믿음이 없고 행
이 없으면 악도행입니다.
마음공부해서 깨달아야 하고 깨달음을 완성해서 아라한이 되고,
보살지에 오르고, 궁극에 이르러 붓다가 돼야 합니다.

불교는 오도증입을 요구합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중음無主孤魂의 세계

육도의 세계, 그리고 이 삼천대천세계는 그 누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업이 만든 것입니다. 인과의 법칙과 인연의 도리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착이 많은 사람이 죽으면 그 집착 때문에 명부, 저승에 들어가지 못하고 중음이라는 윤회에 들지 못하는 세계에 머뭅니다.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상황에 해당하는 경우에 무주고혼이 됩니다.

첫 번째, 과부로 사는 여인이 어린 자식을 두고 비명으로 돌연사할 때 눈을 감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린 자식이 마음에 걸려, 집착하여 저승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또한 탐심이 많은 사람은 자기 재산 생각 때문에 이승에 남습니다.

두 번째, 암이나 중풍, 불구자 등 큰 병을 앓다가 죽어도 명부에 들지 못합니다.

세 번째, 밖에서 횡사한 분들 -. 교통사고 기타 사건사고로 갑자기 죽은 사람도 저승에 들지 못합니다.

네 번째, 자살하는 사람들 역시 명부에 들지 못합니다.
사람들 중에서 죽어 명부에 들어가는 이들은 절반도 못 될 것입니다. 명부에 들지 못한 영가귀신들은, 배고프고 춥습니다. 

엄연한 하나의 생명체이기에 우리들이 먹고, 마시고……. 성생활하고 살 듯 거기 중음세계의 영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최소한의 욕구 - 먹고 사는 문제 등을 가까운 인연에 빙의해서 해결합니다.

자기 형수를 몹시 좋아하다가 죽은 청년이 있었습니다. 형수는 평소에도 신기가 있었는데 청년시동생의 고혼이 빙의되어 밤마다 통정을 했습니다. 형수는 빙의되어 그런 줄도 모르고 더 만족해했다고 합니다.

나쁜 병으로 죽은 조상의 무주고혼 영가가 빙의되면 그 자손은 조상이 앓던 병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을 비관하여 높은 낭떠러지에서 추락해서 자살한 친인척 조상 영가가 빙의되면중음계의 시간은 정지 되어 있어 죽을 당시의 생각이 어려 있다 그 자손은 기어이 그렇게 추락해서 자살합니다. 큰스님을 찾아가 조상 영가를 천도해주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명부에 들어가지 못한 영가들은 몇 년, 몇 십 년, 몇 백 년…… 혹은 그 이상도 중음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이승을 떠돕니다. 명부에서 정리하는 때가 있는데 그때 빠지게 되면 천 년도 넘게 중음계에서 떠돌게 됩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정리가 됩니다. 귀신도 기氣가 다하면 거동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때 명부에서 붙들어가게 됩니다. 중음계에서 오래 있을수록 큰 업을 짓습니다.

우리가 죽으면 가능한 한 속히 명부, 윤회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당사자에게도 이익이고 자손에게도 이익입니다.

무주고혼 영가를 귀신이라 하는 것입니다. 많은 종류의 귀신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동아리를 만들어 떼를 지어 다니면서 추위와 굶주림, 여타의 욕구를 해결해 가면서 삽니다. 많은 업을 짓습니다.

술을 좋아하며 중독이 되면 주정뱅이 무주고혼들이 붙습니다. 말술을 먹게 됩니다. 이때 무주고혼을 떼어놓아도 다른 동아리의 주정뱅이 고혼이 빙의되므로 떼어도 떼어도 한이 없습니다. 큰 문제입니다.

그리고 축생의 무주고혼도 큰 문제가 됩니다. 명命이 다해 죽지 않고 타살, 병으로 죽으면 고혼이 되는 것입니다. 

구렁이나 뱀의 고혼이 사람들에게 빙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로 인한 신통이 벌어져 뭇 여인들과 간음하는 등 크나큰 업을 짓는 사이비 도인들이 있습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Ⅱ≫ 13장 사람이 죽으면 어찌되나-불교의 생사관
광명 만덕    자재 만현 저